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베르나르 피보 지음, 배영란 옮김 / 생각의닻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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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는 소설이다. 제목은 마치 노년 생활의 평온한 행복을 적었을 것 같지만 실상 평온보다는 적막에 가깝다. 저자는 베르나르 피보로서 프랑스 문화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란다. 얼마 전까지 중견 출판사 대표로 있었다. 그의 지금 나이는 여든 둘. 주인공 기욤은 저자의 상황과 비슷하다. 자전 소설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은퇴한 삶은 어느 나라든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대가족 제도도 무너진 지 오래고, 자녀들도 하나나 있든지 그나마 없는 사람도 많다. 선진국 프랑스는 수십 년 전부터 인구 절벽을 느낀 나라다. 자녀의 수가 부부당 1.0 이하로 떨어진 지 30~40년 됐다. 당연히 대가족 제도는 중세 봉건주의 시대나 있을 법하다. 우리나라도 그 뒤를 잇고 있으니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있을 수만 없으리라.

주인공 기욤이 곧 나의 미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스토리가 더욱 독자에게 현실감을 준다. 주인공은 길고양이 한 마리와 연금생활자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뒷방으로 물러앉으니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서로를 돌보고 약해진 마음을 우정으로 달래기 위해 기욤은 친구들과 ‘80대 파리청년회’ 모임을 이어간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소개팅 앱에서 만난 여자와 일흔의 나이에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나선 외눈박이 코코, 이야기가 늘어지고 재미 없어지면 언제나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지병인 전립선을 화두로 던져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법무사 출신의 옥토, 부부가 서로 말꼬리 잡느라 혈안이 되어 으르렁대는 게르미용 부부, 댄디한 신사이자 유능한 번역자 남편과 은퇴한 파리시 공무원 아내 블라지크 부부, 아흔다섯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딸들과 쇼핑을 즐기는 ‘칼주름’ 노나까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덟 명의 멤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네들 사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무슨 소리. 늙어도 사는 건 다 똑같다. 여자에게 주책없이 들이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내기에 져 문신을 새기기도 한다. 부부끼리 별거 아닌 일에 죽기 살기로 싸우고 치사하게 나이를 앞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간혹 넘어지거나 뾰루지라도 날라 치면 서로를 놀려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뿐인가? 질병과 외로움, 불안 때문인지 혼자 있을 때면 ‘또 다른 나’가 나타나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사실인가 싶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문단의 교황’이라고 불렸던 남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공쿠르 문학상 심사위원장이었던 이 장편소설의 저자 베르나르 피보는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를 적절히 뒤섞어 노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호기심과 유머, 다정함까지 두루 갖춘 저자의 지혜와 통찰이 귀부 와인처럼 달콤하고 쌉쌀한 여운을 남긴다. 덤으로 행복한 노년을 누리기 위한 몇 가지 레시피와 작은 교훈도 함께 얻을 수 있다. 노인들에게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를 하면, 시시콜콜 아픈 곳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잔인한 나이 탓을 해댄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안부 인사는 짧게 끝나는 법이 없다. 80년 정도 살면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알약과 물약, 좌약까지 먹어야 할 약도 한 사발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것이기에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니 예민하고 신경질적일 수밖에.

 


 

독자도 중년이다. 중년에 가장 걱정되는 게 노년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여야 할 텐데, 독자는 노후 대책을 시작도 해보지 않아서 돈 걱정이 가장 크다. 그러나 젊었을 때 못 벌던 돈을 지금에서야 나선다고 될 일이겠나 싶어 열심히 은행을 드나드는 수밖에 없어 한숨만 나온다. 그래서 노후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대안은 짜내지 못한데 걱정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 근현대 사회엔 나이 드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암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죽을병’ 때문이 아니다.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문제다.

노동하는 사람만 근력이 떨어지고 일상에 가끔씩 지장이 생길 정도로 에너지도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평생을 사무직에만 있었다고 해도 나이듦, 늙음을 피해갈 순 없다.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거나 단추를 채우거나, 신발 끈을 묶는 것처럼 평생 일상적으로 해온 동작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느릿느릿 움직여야만 할 때가 차츰 횟수가 늘어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바로 실수를 연발한다. 양손에 서너 가지 물건을 한꺼번에 쥐고 있으면 십중팔구 그중 하나를 떨어뜨린다. 떨어진 물건이 신문이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신문을 줍겠다고 몸을 숙이는 순간 우유나 달걀을 놓쳐버려 일이 더 커진다. 바로 얼마 전까지 현직에서 힘과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모습은 정말 처량해서 봐줄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인 것을.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친구들 대부분은 죽는 것보다 꼼짝 않고 지내며 재미난 일 하나 없이 위축된 삶을 사는 게 더 무섭다고 한다. 낮이나 밤이나 별 차이가 없어져 낮도 밤처럼 어둠이 가득한 세상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p.42)

 

 

그렇다고 과거에 빠져 살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이 들고 고약한 성미를 드러내던 윗세대 노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역시 닥쳐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언젠가 큰일이 닥치면 용기가 부족할까 걱정된다. 몸이 심각하게 무너져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어지면, 과연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오랜 병치레로 생활이 무너지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도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성격이 점점 더 예민해져 가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걱정은 많아지고 몸은 말을 안 듣고 성격은 갈수록 예민해진다. 하지만 늙어서 좋은 것도 있다. 이젠 다른 사람 시선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진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낼 자유가 생겼다. 이제까지 사회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꿈꾸는 게 가능해졌다.

회고 절정, 노인이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10대에서 20대까지의) 시절을 미화해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현상이다. 예쁘고 잘생겼던 시절, 꿈과 포부도 컸고 무엇보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젊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 때는’이 입에 붙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시간 보정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문제는 노인네들이 그렇게 미화된 당시와 현재를 끝없이 비교하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쓸데없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현재가 탐탁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뭔지 모를 과거와 끊임없이 비교되는 게 달가울 리 없지 않은가.

 


 

독자처럼 중년에 들어서면 요즘 세상을 한탄하며 젊었을 때를 그리워한다. 심지어 청춘에 대한 예찬론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동시대의 사람, 즉 같은 연령층이 들으면 공감하고 맞장구칠 일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꼰대'로 몰린다. 꼰대로 몰리는 게 억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꼰대처럼 보인다는 게 서럽다. 속마음은 아닌데 고지식하고 옛날 잣대만 들이민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스스로 체력이나 나이듦의 한계로 속상한데 꼰대로 몰리기까지 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어려운 시대였다. 밥을 못 먹어 끼니를 거르거나, 옷이 헤쳐도 새옷을 사기 어려워 기워입고 남에게 얻어 입었다. 지금 중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아니 못 겪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별천지이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일도 실제 일상에서는 거의 없다. 사실 지금의 중년 세대까지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가정보다 직장, 직장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시대였다. 산업화를 늦게 해서 그만큼 갑절 이상 노력했다. 적지 않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하루 24시간을 일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세상에서 산업화를 우리만큼 단시일 내에 달성한 나라가 없다하지 않은가.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민주화도 병행했다. 지금은 당연한 두 가지의 것을 우리처럼 50년 만에 한 나라는 없다.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단결심을 보여준 대목이다. 이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살아가기 쉽다. 물질적으로 부족했어도 사람간의 정과 위로는 그때가 더 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의 시간이 더욱 생생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저자 베르나르 피보는 이렇듯 노인이 빠지기 쉬운 ‘과거’보다는 ‘오늘’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아간다. 여든둘이라고 다르지 않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오히려 더 소중하게 느낀다. 오늘이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니까. 여든의 삶과 마흔의 삶, 아니 스무 살의 삶도 본질은 같다. 어느 연령대에 있든,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젊어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앞을 향해 달려 나갈 뿐. 하지만 삶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삶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데 집중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만, 하루하루 소중함을 깨닫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삶. 생의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이다. 저자는 죽을 때까지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숨 쉬고 있는 한 오늘은, 삶은 계속된다. 짧게 계획하고 기쁘게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라 격려한다.

오랜 시간 프랑스 ‘문단의 교황’이라 불리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남자, 세계 3대 문학상 공쿠르 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이자 2014년에서 2019년까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저자, 하지만 이 모든 영광을 깨끗하게 내려놓은 남자, 장편소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의 저자 베르나르 피보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여든둘의 나이에 모든 직함과 일에서 물러나 집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좌절되었던 오랜 꿈을 꺼내들었다. 소설을 써보겠다는 젊은 시절의 꿈.

 

내 인생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내 앞에 남은 삶이 어느 정도일지에 연연하기보다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당장 내일을 준비하는 게 더 낫다. 인생의 마침표가 찍힐 날이 최대한 뒤로 미뤄지길 바라면서 잔소리 심한 내 쌍둥이 자아가 조언하는 대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다.(p.295)

 


 

그리고 여든다섯이 되던 해 그의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은퇴한 노년의 삶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아도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고 싶은 일에 모두 쏟아부을 수도, 낭비할 수도 있다. 이것은 기쁨인 동시에 고통이다. 그는 노년에 주어진 자유와 시간을 젊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데 썼다. 대부분의 처녀작이 그러하듯 자신의 자전소설이다. 하지만 과거에 빠져 있지 않고 자신의 오늘을 돌아보고 다짐하는 이야기다. 고령의 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자신과 친구들의 일상을 통해 노년의 삶과 그 속에 숨은 묘미, 아직 젊은 사람은 모르는 어르신들의 고민까지 엿볼 수 있다. 노년의 지혜로 포장한 훈계를 늘어놓기보다 솔직한 투정과 반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이채롭고 재미있다. 늙었다고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면, 결국 시체처럼 누워만 있게 된다. 박차고 일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이야기하며 누려라. 오늘을 충실히 살아낸다면 노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저자가 스스로 증명하듯 말이다.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저자 :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

1935년 리옹에서 태어난 언론인이자 평론가다. 프랑스의 유명한 문학 잡지 〈리어LiRE〉를 창간했고, TV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피Apostrophes〉를 진행했으며 프랑스어 받아쓰기 대회 〈디코 도르Dicos d’or〉를 기획하기도 했다.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그는 ‘프랑스어의 수호자’로 추앙받았으며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문학상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최근까지 프랑스 문학과 출판, 문화계의 정점에 있었고 그의 명성과 인기는 독보적이다. 프랑스어 바로쓰기에 관한 책과 평론집을 여러 권 출간했지만, 여든다섯 나이에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역자 : 배영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순차 통역 및 번역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에 출강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핵심 서양미술사』 『브랜드와 아티스트, 공생의 법칙』 『책의 탄생』 『꿀벌과 철학자』 등이 있으며, 《고갱》전 《밀레》전 《모딜리아니》전 《르누아르》전 《오르세 미술관》전 등 주요 전시의 도록 작업을 진행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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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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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의 신’을 등장시켜 풍자와 해학으로 종교의 부패를 풍자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돈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 그리고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준 고전문학의 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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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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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세계 역사나 종교, 종교서 등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간 이에 관한 책을 읽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래도 이 책 『우신예찬』의 저자 에라스무스는 이름 정도를 안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 비록 짧지만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루터의 종교 개혁 시기와 맞물린 시대의 기독교 사제로서 활동한 사람이다. 중세 말은 기독교의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아가는 시기다. 은 1511년 출간된 고전문학의 범주에 자리잡은 작품이다. 『우신예찬』은 기독교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가 방대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 유머, 관용 정신을 담아 내놓은 걸작이다. 종교의 영향력과 힘이 최정점이던 시대에, ‘우신’(愚神, 어리석음의 신)이 등장해 자신의 능력을 자화자찬하며 특권층과 사회지도자들의 온갖 부패와 죄악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내용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이라는 신앙 운동이 맞물려 돌아가던 시대적 전환기에,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학·철학·사상 및 성경을 넘나들며 기독교 신앙(로마가톨릭)의 여러 폐해와 모순을 참신한 논리와 문학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비판했다. 에라스무스는 영국을 여행하던 중 친구인 토머스 모어(『유토피아』 저자)의 별장에 잠시 머물며 7일 만에 원고 대부분을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가 내세운 우신은 행복의 섬에서 태어나 만취와 무지의 보살핌을 받는 젊음과 부의 딸인데, 자아도취, 쾌락, 아부, 망각, 깊은 잠 같은 시종을 거느리고 다닌다. 그들을 통해 연출되는 인생의 아이러니한 순간들이 유쾌하게, 서글프게, 때로는 뜨끔하게 묘사된다. 이 책은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습을 날카롭게 꼬집었기에 1559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이른바 ‘가짜 현자들’-학자, 저술가, 법률가, 변증가, 수도사, 귀족, 군주, 성직자 등-에 대한 속 시원한 풍자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인간 본성과 사회 현실을 꿰뚫는 통찰과 웃음이 타임캡슐처럼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 시대를 위한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현대지성 클래식이 45번째로 출간한 『우신예찬』은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하고, 성실하고도 유려한 번역으로 호평을 받아온 박문재 번역가가 라틴어 원서에서 직접 옮겼으며, 에라스무스가 본문 곳곳에 사용한 그리스어 표현도 별도로 표시하여 읽는 맛을 잘 살렸다. 413개의 각주와 친절한 해제를 통해 당시의 사회·종교 및 문화 배경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펴들었어도 한달음에 읽히도록 세심하게 문장을 다듬었다. 한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풍자와 해학의 막강한 힘을 이 한 권의 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중요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세계주의자이자 근대자유주의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그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양육되었으며, 20세에 정식 수도사가 되었다. 카메리 주교의 비서가 되어 일하게 되었고, 그는 사제로서의 의무에서 면제되는 특권을 받기도 했다. 주교의 배려로 파리 대학에 유학하여 공부하고, 고전 라틴 문학을 연구했다. 1499년에 영국을 방문하여 여러 인문학자들과 교류하였고 특히 존 콜렛(John Colet)의 성서 연구에 영향을 받았다. 파리로 돌아온 후에는 그리스어를 익혀 성서를 연구하기도 했다. 1506년에는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토리노 대학을 졸업한다. 1511년, 그는 런던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 책을 구상하여 런던에 있는 토머스 모어의 집에서 집필한다. 그는 『우신예찬』에서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면서, 성직자의 위선과 신학자 허구성 등을 풍자하고 야유하였다. 1516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병기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출간하였다. 『그리스도교 군주의 교육』, 『히에로니무스 저작집』 등을 발표하다가 스위스 바젤에서 생을 마쳤다.

 

 

『우신예찬』은 기독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방대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 유머, 관용 정신 등이 모두 담겼으며, 500년이 지나도록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풍자문학의 대표작이다. 종교의 영향력과 힘이 최정점에 이른 당시 서유럽 사회에, ‘우신’이 등장해 자신의 능력을 자화자찬하며 특권층과 사회지도자들의 온갖 부패와 죄악을 풍자와 해학으로 드러낸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미학적인 차원에서 문예의 부흥을 꾀했다면, 16세기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사회 개혁과 도덕적 실천을 보다 강조했는데, 그 중심에 에라스무스가 있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이라는 신앙 운동이 맞물려 돌아가던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조화를 꾀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시절, 인문주의의 매력에 빠져 그리스 고전을 섭렵하며 갈고닦은 비판적 지성과 글쓰기 능력이 자산이 되었다. 실제로 『우신예찬』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학·철학·사상 및 성경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기독교 신앙(로마가톨릭)의 여러 폐해와 모순을 참신한 논리와 문학적 표현으로 빈틈없이 비판했다. 이 책은 그가 1516년에 편찬한 그리스어 신약 성경과 함께, 종교개혁의 효시로 인정받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1517)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 등에서 교화의 타락상과 부패를 고발하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도 사제가 성경 해석을 독점하는 현상을 타파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중세의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귀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루터를 필두로 한 종교개혁 운동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다. 에라스무스는 학문적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지지를 받고자 여러 번 요청하였으나,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에 함께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는 교회를 비판할 뿐 기존 체제에 근본적으로 반기를 들고 싶어하지는 않던 에라스무스의 성향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중립적 태도로 인해 말년에 가톨릭 진영과 신교도들의 사이에서 곤경을 겪기도 했다. 저서로는 『격언집(Adagia)』(1500), 『우신예찬』(1511), 『대화집(Colloquia)』(1518) 등이 유명하다.

이 책은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습을 날카롭게 꼬집었기에 1559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교회와 정치권력에 대한 신랄한 조롱과 속 시원한 풍자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인간 본성과 사회 현실을 꿰뚫는 통찰이 유머와 풍자라는 코드에 담겨 전달되었기에, 많은 사람이 쉽게 그 메시지를 깨달았다. 그의 풍자 정신은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나 영국의 셰익스피어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 우신은 자신을 최고 신으로 소개하며 그 근거를 든다(1-15장). 그런 후 이성과 정념, 남자와 여자, 술자리, 우정, 결혼에서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면서 우신 없이는 인간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16-21장). 국가와 영웅을 탄생시키고 모든 제도를 유지시키며 온갖 기예를 탄생시킨 것도 ‘어리석음’이므로, 이야말로 가장 유익한 것임을 설파한다(22-28장). 진정한 분별력과 행복의 근원이자 중심이 우신이며, 반대로 현자는 어떻게 불행의 중심에 있는지 설명한다(29-37장). 그런 다음 어리석음을 광기와 자아도취에도 연결한다(38-46장). 이때 우신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해학이 전면에 부각된다.

두 번째 부분에서 우신은 다른 신들과 달리 자신은 온 세상에서 숭배를 받는다면서 도처에 널린 숭배자들을 하나하나 열거한다(47-61장). 여기서는 저자인 에라스무스가 전면에 등장해 나쁜 의미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선생, 시인, 수사학자, 저술가, 법률가와 변증가, 철학자, 신학자, 수도사, 군주, 궁정 귀족, 주교, 추기경, 교황, 사제 들을 차례대로 불러내어 그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결론은 “즐겁고 부유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현자들을 피하고 짐승 같은 이들과 어울려야 한다”라는 것이다(61장). 세상만사, 돈이 있어야 돌아가는데 현자들은 돈을 멸시하니 그들을 피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풍자에서 역설로 나아가는데, 여기서도 에라스무스가 전면에 등장해 이번에는 여러 유명한 저술가들과 성경을 중심으로 좋은 의미의 어리석음을 제시한다. “기독교인들의 행복은 광기와 어리석음”에 있고 “그들이 받을 최고의 상은 광기”라고 하는 데서 그의 주장은 절정에 이른다. 이렇듯 『우신예찬』은 해학에서 풍자로, 풍자에서 역설로 진행하면서 ‘어리석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드러낸다.

 


 

서유럽에서 14~16세기에 도시 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이한 곳은 이탈리아였다. 특히 북부의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밀라노 공화국, 남부의 나폴리 왕국 같은 도시 국가들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경쟁적으로 학자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신곡』을 쓴 단테(1565~1321), 중세 가톨릭의 붕괴를 예견하고 스콜라주의를 배척하며 인문주의적이고 근대적인 면모를 보인 연애시 『칸초니에레』를 쓴 페트라르카(1304~1374),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1313~1375) 등을 중심으로 인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매개로 인간의 개성을 해방하고 완성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그들은 낡은 기독교의 내세주의적 질곡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부르짖고,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옹호했으며, 금욕주의 규범에서 벗어나 건전한 인간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것을 주장했다.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는 16세기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유토피아』를 쓴 톰머스 모어(1478~1535), 『우신예찬』을 쓴 에라스무스(1466~1536), 『어느 무명 인사의 일기』를 쓴 후텐(1488~1523)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다.(p.305~306) - 박문재 「해제」 중에서

 

나의 추종자인 바보들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군주들에게 단순히 진실을 말할 뿐만 아니라 신랄하게 욕하기도 하고 조롱도 하며 야단법석을 떠는데도 군주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즐거워합니다. 현자들이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당장 목이 날아갔겠지만, 바보들이 그런 말을 하니 놀랍게도 큰 즐거움이 생깁니다. 진실은 본래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다가갈 때에만 그 힘이 제대로 드러나는데, 신들은 이런 능력을 오직 바보들에게만 주었습니다.(p.112) - 「36장 어리석은 자들이 군주의 총애를 받는 이유」 중에서

 


 

저자 :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으로 16세기 기독교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최초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역 성경을 편찬한 일로 당대에도 유럽 최고의 지식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고전 번역, 날카로운 풍자, 수많은 서한문 및 논문 집필로도 유명했다. 가톨릭교회의 세속화와 부패를 풍자하여 종교개혁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지만, 종교개혁의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면에도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저서로는 그리스와 라틴어로 된 격언집 『아다지아』Adagia(1500), 『기독교 병사를 위한 지침서』Enchiridion militis Christiani(1504), 『우신예찬』(1509), 『그리스어 신약성서』Novum instrumentum omne(1516), 『기독교 군주의 교육』Institutio principis Christiani(1516), 『진정한 신학의 방법』(1518),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diatribe sive collatio(1524), 『아동교육론』De civilitate morum puerilium(1529), 『사도신경에 대한 설명』Explanatio symboli apostolorum sive catechismus(1533), 『대화』Colloquia familiaria(1518~1533) 등이 있다.

 

역자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솝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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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오피스
말러리안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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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뜨거운 태양을 가진 초여름의 오후였다.

쟃빛 도시를 이리저리 떠돌던 여름 바람은, 어느새 지쳐 마천루 건물 옥상에 발을 간신히 내디뎠다. 빼곡히 들어서서 무표정한 표정을 쏟아내는 콘크리트 건물들의 냉담함에 질려버린 듯,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잠시 숨을 고른다."(p.8)

 

평범하고 익숙하던 사무실이 심상치 않다. 고성과 갑질이 난무하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서 숨조차 쉴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다. 일상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블러드 오피스』는 우리 주변의 흔하디흔한 보통 회사, 평범한 회사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는 예기치 않은 상황의 발생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조용하던 사무실에서는 온갖 소동이 벌어지고, 자유로운 의견을 주고받던 회의 시간에는 욕설과 폭언, 갑질만 난무한다. 때마침 세상을 강타한 팬데믹. 이 때문에 직원들은 회사를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점점 모두를 끝없이 검은 터널로 몰아가며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만든다.

이미 사무실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이 계속되지만, 이 상황에 언론은 냉담하고 공권력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은밀한 저항이 시작되며 이야기는 점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의 실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말쑥하게 슈트를 차려입고, 교양있는 말투를 쓰는 직장인의 모습. 아니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거친 털을 세우며 다른 이를 겁박하는 모습. 어떤 것이 실체에 더 가까운 모습일까? 『블러드 오피스』는 우리가 평범하다고 느끼는 일상은 실상 수많은 폭력과 파쇼에 잠재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고 나아가 송두리째 바꿔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모두가 공감하는 ‘사무실’, ‘회사’라는 소재에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한 ‘오피스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또한 현재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현장감 있는 필력으로 묘사하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회사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둡고 부조리한 사건들, 거기에 더해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 '오피스 아포칼립스'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타났다. 이 소설은 직장인들이 흔하게 접하는 소재들로 시작한다. 야근, 보고서, 직장상사, 그런 가운데 발생하는 파벌과 갈등까지 회사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다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흔한 소재들이다. 어느 조직이 그렇듯 어김없이 회사에도 권력과 부조리가 등장하고, 그런 회사 내 권력은 속성상 폐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폐쇄적인 권력이 부조리, 불합리 등의 부정적인 요인과 결합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저자는 그런 속성적 요인으로 회사에 널리 만연되어 있는 몰상식, 부도덕, 폭력성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며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으며, 거대자본이 집중된 오너 경영 기업집단일수록 그런 성향은 더욱 강하다. 또한 그 권력의 정점에서는 일반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불합리한 사건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특유의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오피스 아포칼립스라는 흥미로운 장르가 새롭게 탄생했다.

 


 

현대의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는 서로 대립되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의 조직처럼 운명을 같이한다. 개인이 땀흘려 버는 돈의 일부를 '세금'이란 명목으로 국민들의 돈의 일부로 운영된다. 대신 국가로서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 등 많은 책임을 진다. 국가든 개인이든 서로 대립적이지만 서로 협력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유기적 관련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징수한다거나, 국민의 신변 안전과 재산 보호를 등한시할 경우 유기적 관계는 깨지고 개인은 국가를 등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는 법에 의해 다음 선거에서 국가 최고 책임자를 바꿀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법적으로 체계를 완비해 놓았다. 더 작은 집단으로 하나의 회사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회사원은 노동을 제공하고 회사는 일정 수익이 발생해 직원들에게 봉급의 형태로 주어진다. 그것은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사는 가능하다. 그러나 대개의 회사는 개인이 설립한다.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회사는 개인에게 더 적게 주려 하고 개인은 당연히 더 받기를 바란다. 회사는 국가와 달리 더 결속력이 강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유롭게 회사를 옮길 수 있고, 그 점에 기초한다면 결속력은 국가에 비해 떨어진다. 결속력이 떨어지는 만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가 지급된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특히 회사는 조금은 엉성한 결속력 때문에 권위적인 권력 구조가 부조리와 불합리하게 작용한다면 늘 피해자는 불만과 불평이 많아질 수 있다. 수직적인 권력구조에서 일방향성을 가진 채 강요되는 부조리들은 하위로 내려갈수록 그에 대한 저항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적으로 불합리를 누적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말러리안은 「작가의 말」을 통해 소설 속에서 이 같은 회사 시스템이 붕괴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을 통해 형상화했다는 점을 밝힌다. 즉 사실 현대 사회의 우리 기업의 구조가 그다지 튼튼한 결속력을 갖추지 못한 데서 나오는 불만들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는 회사 생활과 관련된 키워드만큼 익숙하지만 낯설고, 긍정적인 것 같으면서 또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 있을까요?라고 되묻고 있다. 저자는 단어들 하나가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회사 생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이를 통해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도 하지만, 절망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기업 문화를 몇 개의 핵심 단어로 표현한다.

 

"입사, 이직, 워라밸, 칼퇴, 야근, 특근, 근속년수, 퇴사, 회식, 연봉, 진급, 회의, 스펙···.(p.320)

 

그런 불합리는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객관화하거나 공론화되기 어려우며, 이는 결국 조직 전체에 누적되면서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쉽게 벌어지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 만연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장르적인 소재로 끄집어냈으며, 그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소설적 실험을 시도하면서 독자들이 보다 쉽고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그런 가운데 작가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징들이 소설 곳곳에 흥미롭게 반영이 되어있으며, 소설이 전개될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반전과 긴장감으로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두게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도 평범한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오래전부터 직장,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 돌아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세 명 중 한 명 이상은 임금 근로자이고,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동료들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공간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여러 일들이 벌어진다. 대부분 긍정적인 일들이겠지만, 미디어나 뉴스에 등장하는 것처럼 폭언, 복종, 감정 등의 부정적인 이슈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때론 보다 극단적인 사례로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부정적인 요인들이 압도해 나갈 때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질까? 이 소설은 그런 질문을 통해 기획이 되었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사건들로부터 출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결국 모든 이슈의 중심이 되는 리더십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어쩌면 더욱 부각되는 이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의 문제는 단지 회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여전히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한정된 감각을 통해 세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1부 이후 판타지 형태로 구성을 변화시킨 것도 그런 판단에서였고, 세상을 실제의 모습과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담아보고자 하는 저자의 작품 구성을 설명한다.

 


 

저자는 실체의 본질에 대해 한가지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주 작은 희망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양성은 그래서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과정은 특별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하나의 일방적 의견이 아닌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이 넘치는 세상을 꿈꾼다고도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쉽게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과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올바른 상식을 가지며 더 풍성하고 윤택해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자기 말이 맞긴 해. 하지만 그 욕망이 고통을 주기도 하니까. 그걸로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걸 수도 없이 봤어. 욕망 앞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그건 결국 자신을 넘어 상대방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그걸로 고통을 받게 하는 악순환이야.”(p.310)

 

저자 : 말러리안

 

구차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치졸한 전투와 시뻘건 피, 시체로 넘치는 마천루 사무실 한가운데서 어느 날 문득 작가로서 각성하기 시작하다. 그래 봤자 거리에 나오면 수많은 인파들과 섞여 거리 곳곳을 배회하며 어지럽히는 망령된 존재에 불과했다는 부끄러운 절망감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구도자로서 작가의 길을 찾아 나서다.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 권력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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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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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써 등단한 뒤 60년 동안 시만 써온 시인 김종해가 산문집을 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그는 '서문' 「불 켜진 시인의 주마등(走馬燈)을 바라보며」에서 소감을 밝힌다. "작은 산문집 하나 세상에 내놓습니다. 저의 첫 산문집이자 마지막 산문집이 될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가 그것입니다. 이 책 한 권을 엮는 동안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지난날의 주마등을 그림으로 보는 듯 그 안에 담긴 한 시인의 삶의 흔적과 행로가 한 컷, 한 컷 모두 덧없고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원고들 모두 불태워버리지 못한 것 또한 이미 늦었습니다. 이 한 권의 산문집을 펴냄으로써 시인으로서 지녀야 할 언어의 엄격한 통제와 자정 능력을 잃고 말았기 때문입니다."(p.5)

시인이나 소설가 등 중 일부 문인들은 수필 쓰는 것을 유난히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책의 저자 김종해 시인이 그런 것 같다. 그는 심지어 산문집을 내는 것을, 시인으로서의 엄격한 언어 통제와 자정 능력을 잃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시 이외의 장르인 산문 쓰는 일을 외도라고 생각했던 '시의 연결성'은 아직도 시인은 갖고 있다고 항변하듯 말한다. 소설가 황순원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소설가로 불리워지길 원했고, 단 한 편의 수필도 남기지 않았다고 전해 들은 바 있다. 이 때문에 김종해 시인이 산문집 내며 변명처럼 '서문'에 썼던 글은 '마지막' 작품을 쓰는 적절한 장르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이기에 평생 써온 시보다 산문을 택했을까? 이 책에 해답이 있다. 60년 여를 시와 함께 살았지만 언제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문우들이고, 가족이었을 것이다. 특히 어머니와 가족들은 실제로 세상을 떠나 곁에 없어도 시인은 떠나보내지 못했다고 생각이 든다. 이를 시로써 녹여내지 않고, 평생 안 쓰던 산문을 썼을까? 하는 질문에 하나의 '연결성'을 이유로 내세우게 된 것이란 생각도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시인의 마음과 아련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 등 시로써 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남아 마지막엔 산문으로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혹은 옳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처럼 축약과 상징, 은유를 사용하는 언어보다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산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아무튼 그의 마음을 읽어보려면 이 책은 읽어야 한다. 독자도 사실 그의 시를 많이 읽어본 기억은 없다. 어떤 시를 써왔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남긴 산문을 통해 그의 시와 시 세계, 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를 함께 기대한다.

"제가 쓴 모든 산문은 시와 시인을 이야기하고,

시와 시인이 그 구심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날까지 저는

누구보다 시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시인의 이름을 갖고 싶습니다.”(p.6)

 


 

1963년 문단 데뷔 이래 처음으로 펴내는 산문집인 이 책에는 시인 김종해의 젊은 시절부터 오랜 세월 시인으로 살아온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와 접목된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시인이여, 시를 떠나라!〉에서는 시를 향한 시인의 구도자적 마음가짐을 엿보게 하고, 2부 〈나의 문학 요람을 흔들어주었던 이들〉에서는 시인이 60년간 문단 활동을 해오며 인연을 맺었던 문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시인과 시 세계를 함께 걸어온 우리 문단의 지성들이 빚은 에피소드를 통하여 낭만과 서정의 감상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산업화 시대의 한중심에서 나오는 감성, 아날로그 감성에 흠뻑 취할 수 있다. 3부 〈시가 된 유년 삽화〉에는 시인으로서 삶의 바탕이 된 저자의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가 실려 있고, 4부 〈그 약을 다 먹으면 나는 잠들리라〉에는 시 작품의 배경과 단상이 담겨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시인은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점원 생활을 했다. 그것마저 여의치 못해 야간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부산에서 속초를 운항하는 500톤짜리 알마크호 여객화물선을 타게 되었다. 이때의 선상생활 체험은 시인이 된 이후 시인에게 중요한 시의 소재를 제공했는데, 연작시 「항해일지」가 바로 그것이다. 「항해일지」는 바다를 항해하는 수부의 기록이 아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 도시에서 노를 젓고,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화되어 있다.(p. 157)

"나는 아직 『항해일지』를 나의 대표시집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연작시 「항해일지」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는 것은 내가 살아온 누더기 같은 밑바닥 삶의 싸움과 사랑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연작시 형태로 재현해가고 있다는 재미 때문이다."(p.225)

 


 

시인은 서정주와 박목월, 황순원, 김춘수 등 학교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문인들과의 교류도 굉장히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문학 등대의 빛으로 삼았던 시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릴 때(17세) 김종해는 파랗게 불꽃을 내뿜는 철공소 용접기를 들었고 500톤 여객화물선을 탔다. 그러나 가슴속 이글거리는 10대의 열정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절실한 삶의 기록을 끊임없이 시화(詩化)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실함은 이후 「항해일지」 연작시로 이어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 김종해 시인의 문학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 서구 소재의 천마산에서 출발함을 볼 수 있다. 그는 말한다. “내 시 의식의 원천이며 모태인 초장동은 언제나 꿈속에서 시공을 뛰어넘어 나타난다.”(p.136)

특히 박목월 시인과의 만남과 인연으로 박목월 시인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물론 시 쓰는 것을 가르쳐준 스승은 아니지만, 열심히 찾아뵌 덕에 저자의 시와 시 세계의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것도 느낌을 줄 만하다. 그와의 일화도 소개한다. 상을 쾅 치고 나서 나는, “목월 선생, 할 말 있소!” 하였다. 좌중은 경악했다. “와 그라노? 할 말 있거든 해봐라.” 목월 선생의 부드러운 말이었다. 다음 순간 나의 주먹이 음식상을 또 내리쳤다. 음식 그릇들과 술잔들이 또 튀었다. “남수 선생, 할 말 있소!” 또다시 그릇들과 술잔들이 튀어올랐다. “한모 선생, 할 말 있소!” (중략) 전날 일어났던 그 무례함과 추태는 나 자신으로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모욕감을 주었다. 심한 위축감과 죄책감과 숙취로 찌든 채, 아침에 원효로의 목월 선생께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은 화들짝 웃어댔다. 그 웃음은 부끄러움 속에 꽉꽉 밀폐해놓은 나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래, 닌 술을 고거밖에 못 마시나, 우째 그래 주량이 작노? 하하하…….”(p.50~51)

 


 

박목월 시인과의 인연은 시인의 결혼식 주례를 설 정도로 진하게 이어졌다. 다동 '호수그릴'에서 박목월 선생 주례로 〈현대시〉 동인의 축하를 받으며 치른 부인 박영자 여사와의 결혼식(1971년). 3살 연상의 여대생에게 무작정 대시한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사랑 고백은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으며 결혼에 이르게 되었고 두 사람은 당시에는 드물게 1964년 동거를 먼저 시작하고 7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렸다. 미당 서정주와 목월은 스승의 예로써 숭배하였고, 스승의 댁이 있는 공덕동과 원효로는 가난한 젊은 시인들의 성지였다. 무엇보다 공덕동의 미당 선생 댁은 명절날이 아닌데도 항시 북적대었다. 미당 선생이 목탁을 두드리면 그 소리를 듣고 방옥숙 사모님이 술과 안주를 끊임없이 내오셨다. 미당 선생은 아들 또래의 우리를 술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해주셨다. 문단에 갓 등단한 60년대 중반부터 이미 우리는 미당의 아호 앞에 ‘시성’이라는 호칭을 각자 마음속에 새겨놓고 있었는데, 미당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되새겼다.

두 분을 정성으로 모시고 예도 갖췄지만 저자는 서정주의 시를 극찬한다. "러시아에 푸시킨이 있고, 인도에 타고르가 있다면 한국에는 미당이 있다. 시의 깊은 맛과 오묘함, 시정신의 넓이와 높이를 서로 재고 견줄 수는 없지만, 미당에겐 시인 최고의 호칭 '시성'이란 호칭을 붙여준다 해도 과하지 않다. 한국 현대시사 100년을 통틀어 한 사람의 시인을 호명하라고 한다면, 나는 내 시 읽기의 식성대로 서슴지 않고 미당을 뽑겠다. 릴케와 엘리엇, 칼릴 지브란, 미당과 목월, 김춘수, 김수영, 고은, 이어령은 나의 문청 시절 어둠 속의 등불이었고, 밑줄 친 문학 교과서의 한 문맥이었다."(p.118)

 


 

종로 3가에 있던 문학세계사 사무실은 한국시인협회 사무실도 겸하고 있어서 문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또 각 일간지의 문학 담당 기자들도 무시로 드나들면서 어김없이 바둑판과 고스톱판의 장이 서곤 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원로시인 박남수 선생도 귀국하면 들러 후배 시인들과 회포를 풀던 곳, 최하림 시인과 김원호 시인의 출판사도 잠시 둥지를 틀었던 곳, 1980년대 문학세계사 흑백 사진에 찍힌 추억의 한 풍광이다. 바둑과 고스톱과 술판은 그칠 날이 없었고, 만나면 즐거웠다. 고스톱을 막 배우기 시작한 정한모 선생에게 박현태 시인이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선생님, 똥 잡수이소, 똥!” 좌중은 웃음판이 되었다. (p. 79)

 

저자 : 김종해

부산에서 태어났다. 1963년 《자유문학》지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문학세계사(1979년)를 창업, 지금까지 3천여 종의 문학 관련 도서를 발행하였고,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를 간행하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발기위원,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 제34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상, 구상문학상 본상, 공초문학상, PEN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그밖에 한국출판문화상, 대한민국문화훈장 보관을 수훈했다. 시집으로 『인간의 악기』 『신의 열쇠』 『왜 아니 오시나요』 『천노, 일어서다』(장편서사시) 『항해일지』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별똥별』 『풀』 『봄꿈을 꾸며』 『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 『모두 허공이야』 『늦저녁의 버스킹』이 있고, 시선집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무인도를 위하여』 『우리들의 우산』 『어머니, 우리 어머니』(김종해·김종철 형제 시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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