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6 - 터무니없는 거짓말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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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로 발간된 『북극 허풍담』은 경이로운 대자연과 홀가분한 생활을 찾아 북극에 온 사냥꾼들이 거친 기후와 고립감을 유쾌하게 격파해나가는 매일매일의 비범한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북극 허풍담』 속 삶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냥꾼들 이야기는, 문명 세계에서 온갖 기계와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상의 해독제이자 활력소가 되어주기에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저자 요른 릴은 19세에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아예 북극에 눌러앉아버렸다. 그는 사냥꾼들과 겪은 놀라고 특별한 체험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묻힐 뻔한 그의 글은 한 책 장수 덕에 세상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저자는 콩트, 일화집, 단편집, 장편소설 등 40여 권의 책의 대부분이 이국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한 유머러스한 작품들이다. 덴마크는 물론 유럽 여러 국가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오랜 세월 널리 읽히고 있다.

작가의 자전 소설인 『북극 허풍담』 시리즈(전 10권, 1974~1996)는 그의 대표작이다. 문명을 등지고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살아가는 괴짜 사냥꾼들이 주인공이다. 한편 우스꽝스럽고 애수 띤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편은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연결성을 가진다. 이 책은 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한 덴마크에서 25만 부 이상 판매되고 전 세계 15개 이상의 국가에 번역 출간되었다. 전화기는 꿈도 꿀 수 없고, 이웃집에 가려면 개 썰매를 몰고 며칠을 이동해야 하는 고립의 공간, 북극이 무대다. 겨울이면 해가 뜨지 않는 긴 밤이 시작되고, 눈보라와 혹독한 추위를 일상처럼 겪어야 한다. 『북극 허풍담 6』은 마침내 소설을 출간한 안톤, 하늘을 날아 모두의 부러움을 산 헤르베르트, 연안에서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파티 등 위태위태한 소동이 날마다 벌어지는 여섯 번째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작품의 배경인 북극은 현대의 문명인들에게는 하루 머무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든 공간이다. 1년에 한 번 도착하는 보급선이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동료 사냥꾼의 집에 방문하려면 개 썰매를 타고 밤낮없이 이동해야 한다. 그뿐인가. 추위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만큼 혹독하며,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겨울이면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시작된다. 『북극 허풍담』에는 이렇듯 혹독한 땅 북극을 제 발로 찾아온 괴짜들이 등장한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조국을 떠나 북극에 도착한 이들이건만, 때로는 이들 역시 혹독한 자연과 고립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젊음의 혈기를 분출하지 못해 우울증을 앓고, 향수병에 시달린다.

경이로운 풍경에 취해 항해하다가도 성난 파도에 휩쓸려 북극해를 떠돌고, 한밤중에 곰을 마주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을 유쾌하게 이겨내는 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요른 릴은 북극에서 배운 것이 “북극에서 사는 법이 아니라, 살아가는 법 자체”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삶을 긍정해내는 북극의 인생관을 익히니, 어디서고 행복할 수 있었다는 뜻이리라.

 

“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저마다 좋아하는 장소가 있고, 늘 그곳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해. 상상의 장소든, 한때 살았던 곳이든, 되찾고 싶은 장소든 마찬가지지. 그건 아프리카일 수도 있고, 올란드거나 마르키즈제도일 수도 있어.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지 않아. 꿈꾸는 것에 만족하면서, 죄다 끔찍한 일상에 매여 좋아하지도 않는 곳에서 살아. 한센, 이곳은 신들의 땅이야. 하지만 신들도 이곳에 자주 오지는 못해. 다른 데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여기가 이렇게까지 신성하게 느껴지는지도 몰라.”(p.121)

 


 

북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우리 인간 삶의 한 모델이 되는 것 같다. 높은 소득, 높은 세금으로 복지국가의 선진적 모델이 되고 있어 더 모범적으로 보인다.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일컬어지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말함이다. 그들의 높은 소득은 첨단 산업이나 앞선 기술에 의하기보다는 수산업과 농업, 관광 산업 그리고 모범적 첨단 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되어 있다. 그들의 모범적 국가 운영은 그야말로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석유나 가스 자원이 풍부해 광해산업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지 않는다. 그들의 영토는 대부분 추운 지역이라 인구 밀도도 낮다. '대국'으로 평가받기에 어렵다.

이 소설이 쓰여진 배경은 그린란드이다. 덴마크령으로 되어 있는 빙하의 나라다. 인구가 5만 명밖에 안 된다고 들은 바 있다. 여기에서 국가를 이루고 사람이 산다는 것도 이 책을 보며 처음 알았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진 땅이다. 최근 자료에는 이 지역의 복지국가라는 범위에 아이슬란드도 들어가 있다. 인구 30만 정도에 머무는 말 그대로 빙하에 둘러싸인 나라다. 오랫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지구상의 '버려진 땅'이었다. 그들의 축구팀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놀랄 만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러시아 영토가 아닌 극지방이다.

 

“헤르베르트, 그때 난 비행기 밑에 달린 그네 위에 앉아 있었어. 수상비행기의 플로트 사이에. 여자한테 손을 흔들려다가 그네에서 떨어질 뻔한 거고. 헤헤, 아래 있는 여자에게 얼마나 으스대고 싶었으면 그랬겠어. 하늘을 여행한 사람들은 다 그래. 잔뜩 거만해져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어지거든.”(p.57)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북극 허풍담』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고독과 죽음이다. 일상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늘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사냥꾼들의 생활을 다루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주제 역시 유쾌한 문체로 다루는 작가의 태도는 다소 이색적이다. 『북극 허풍담』 속 사냥꾼들은 동료의 장례식을 즐거운 잔치로 만들어버리고, 종국에는 자신들이 누구를 애도하는지조차 잊고 만다(『북극 허풍담 1』 중 「즐거운 장례식」). 항해 중 생사의 기로에 맞닥뜨렸으면서도 눈앞에 닥친 죽음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을 힘겨워하고(『북극 허풍담 2』 중 「짧은 우회」), 외로운 마음에 상상 속의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가(『북극 허풍담 1』 중 「차가운 처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녀를 떠나보내기도 한다(『북극 허풍담 2』 중 「그 후 엠마는 어떻게 되었나」). 동료 간의 결투에서 패배한 뒤 그 상심으로 인해 죽어버린 한 친구의 시신을 가족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쓰던 사냥꾼들은, 시신을 보관한 빙산이 떠내려가는 통에 두 계절을 온통 친구를 찾는 데 흘려보낸다(『북극 허풍담 4』 중 「잘 보존된 시체」).

물론 천진한 태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주제의 무거움을 실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랄한 문체로 쓰여진 이 이야기들이 때때로 섬뜩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자신이 쓴 이야기들을 두고 “거짓으로 들릴 수 있는 사실 혹은 그 반대”라고 말하며 “허풍담”이라 이름 붙인 요른 릴은, 때로는 과장처럼 느껴지는 활기찬 일상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어둠을 함께 그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그저 재미나고 유쾌하게만 읽고 넘길 수 없다. 작가는 이렇듯 인간의 근본적인 어둠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통해 ‘허풍담’이란 장르에 깊이감을 부여한다. 단편소설의 정석이라 불려도 지나치지 않은 훌륭한 짜임새를 지닌 각각의 이야기들은 웃음과 비극이라는 양면성을 겸비하며 문학사에 더욱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우애와 배려만으로 북극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되,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북극의 법이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북극을 찾은 이들이니 당연한 이치다. 이들은 씻지 않거나 온종일 잠을 자는 것도, 사냥꾼 자격으로 북극에 머물면서 정작 사냥보다 농사에 집중하는 것도 모두 존중한다. 다만 서로를 존중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함부로 군림하려 한 이에게는 호된 응징을 가한다. 전직 군인인 신출내기가 사냥꾼들을 제 부하처럼 대하려고 하자,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에게 북극의 규칙을 가르친다(『북극 허풍담 1』 중 「중위 길들이기」). 북극 공동체는 그렇게 따스한 동료애와 배려, 그리고 누구도 군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료 삼아 유쾌하게 굴러간다. 북극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로운 환경에서 안온한 일상을 보내는 우리에게, 혹독한 환경에서 사냥꾼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북극의 빙판처럼 깨끗한 거울이 되어준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문명 세계의 소통 방식에 대해, 그리고 배려와 존중과 우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센, 알아? 옌센은 고결한 사람이었어. 왕처럼 섬세하고 위대한 사람이었지. 그래서 난 녀석이 마리아와 내가 한 짓에 절대로 앙심을 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녀석을 믿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사실 난 위스키를 무덤에 붓지 않았어. 마리아와 함께 다 마셔버렸지. 그래서 로스킬레는 왕의 도시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잠든 곳이 되었어."(p.77~78)

 


 

저자는 이렇듯 인간의 근본적인 어둠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통해 ‘허풍담’이란 장르에 깊이감을 부여한다. 단편소설의 정석이라 불려도 지나치지 않은 훌륭한 짜임새를 지닌 각각의 이야기들은 웃음과 비극이라는 양면성을 겸비하며 문학사에 더욱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부족한 북극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사소한 것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노간주열매로 담근 술이나 종종 찾아드는 따사로운 햇빛, 1년 중 아주 짧은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낮과 밤이 있는 날들이 그렇다. 물론 최고의 행복은 동료 사냥꾼들이다. 언제나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데다, 막막한 고립감을 견뎌야 하는 북극이란 공간에서 동료들은 최고의 보물일 수밖에 없다. 동료 사냥꾼을 만나려면 개 썰매를 타고 밤낮없이 이동해야 하지만, 『북극 허풍담』 속 사냥꾼들은 곧잘 여정에 나선다. 북극 연안을 떠도는 시시콜콜한 소문을 전하거나, 그저 수다를 떨고 우정을 나누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또한 사냥꾼들은 서로를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우애와 배려만으로 북극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되,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북극의 법이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북극을 찾은 이들이니 당연한 이치다. 이들은 씻지 않거나 온종일 잠을 자는 것도, 사냥꾼 자격으로 북극에 머물면서 정작 사냥보다 농사에 집중하는 것도 모두 존중한다. 다만 서로를 존중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함부로 군림하려 한 이에게는 호된 응징을 가하기도 한다. 이들의 삶의 모습과 특성은 1~4편에도 곳곳에 등장하며 웃음을 주고, 때로는 슬픔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북극 허풍담』은 혹독한 환경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북극의 빙판처럼 깨끗한 거울이 되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고백하는데, 이렇게 따뜻한 대접을 받을 줄은 감히 예상도 못 했어. 밸프레드의 안전한 몸을 빠져나오며 몹시 불안했던 것도 그런 이유지. 그런데 이곳에 와서 내 생에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했어. 살아 있는 해골이 있는 그대로, 이렇게 허물없이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 그린란드 북동부밖에 없을 거야. 여기서는 아무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안 해. 밸프레드가 옛날에 뽑아서 이는 없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난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요소로 만들어졌어. 나와 친구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차이점은, 나는 눈에 보이지만, 모두의 해골은 카미크를 벗고 땅에 묻혀 썩을 때까지 숨겨져 있다는 거지. 하, 보다시피 나는 굉장히 감동했어. 눈물이 다 나오려 하네! 북극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사랑, 자유, 관용으로 충만한 곳이야. 여기가 아니라면 내가 어디서 또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어?”(p.186)

 


 

저자 : 요른 릴(Jørn RIEL)

 

대자연, 주로 북극을 배경으로 유머와 인간애, 호방한 철학을 담은 독특한 작품을 써온 작가이자 탐험가. 1931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늘 탐험을 동경하던 그는 19세에 라우게 코크Lauge Koch 박사의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져 북극 생활을 시작했다. 1년에 한 번 소포와 보급품을 싣고 오는 수송선이 문명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 통로인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16년을 지내면서, 그곳의 사냥꾼들과 겪은 놀라운 체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된다는 생각도 없었고, 자신이 세계적 명작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허풍담skrøner’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였다. 하마터면 묻힐 뻔한 그의 걸작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어떤 뻔뻔한 책 장수 덕분이었다. 북극 사냥꾼들에게 장식용 책을 무게로 달아 파는 그가 요른 릴의 원고를 몰래 빼내 출판업자에게 넘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작품들이 출간되기 시작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UN을 위해 중동과 파키스탄에서 파견 근무를 했으며, 파푸아 뉴기니, 알래스카 등지를 여행했다. 수마트라 섬을 걸어서 횡단하는 등 그는 여행하는 곳마다 구경꾼이 아니라 원주민으로 살아왔다. 현재 ‘해동을 위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다는 작가는 여전히 수시로 그린란드 북동부 지역을 드나들고 있다.

그가 발표한 콩트, 일화집, 단편집, 장편소설 등 40여 권의 책은 문명을 등지고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살아가는 괴짜 사냥꾼들이 주인공이다. 한편 우스꽝스럽고 한편 애수 띤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편은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연결을 가진다. 그 밖의 작품들로는 『내 아버지들의 집』(1970), 『생을 위한 노래』(1989), 『바다의 어머니를 찾으러 간 소녀』(1972), 『뚱뚱하고 하얀 투안』(1974), 『파란 문』(1982), 『혼란』(1992) 등이 있다. 1995년 덴마크 서적상 황금 월계관상을, 2010년 덴마크 학술원 대상을 받았다.

 

역자 : 이지연(지연리)

 

한국과 프랑스에서 서양화와 조형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북극 허풍담』 시리즈와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코끼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갈래 길』,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남은 생의 첫날』 등의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고,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내가 혼자 있을 때』, 『Big & Bang』 등 다수의 도서에 삽화를 그렸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파란심장』이 있고, 2020년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코끼리 이야기』로 눈높이 아동 문학 대전에서 그림책 분야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북한산 자락에서 새들과 함께 살며 화가와 삽화가, 번역가, 동화 작가의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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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 미스트랄 - 덜컥 집을 사 버린 피터 씨의 일 년 기록
피터 메일 지음,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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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피! 미스트랄』은 영국인 피터 메일이 쓴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1년 살기' 경험을 묶어 만든 에세이이다. 원제는 『A Year in Provence』이다. 프로방스(Provence)란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에 면한 지방을 일컫는다. 부슈뒤론·보클뤼즈·알프드오트프로방스·바르·알프마리팀의 5개 주로 이뤄져 있다. 론 강 하류 유역의 평야 지대로 휴양지로 명성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역이다. 세계인문지리사전에 따르면 프로방스 지역은 고대 페니키아의 식민지였으며, 그 뒤 로마가 점령, 일찍이 도시문명이 번영했다. 17세기에 프랑스 땅이 됐다. 프로방스(프랑스어: Provence, 오크어: Provenca, 라틴어: Provincia)는 과거 로마 제국의 속주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에 기원을 둔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서부 일부를 가리킨다. 프로방스에는 유사 이전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나르보넨시스의 일부인 동안 내륙에는 켈트족이, 해안지역에는 기원전 600년경부터 그리스인들과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했으며, 이 시기의 가장 큰 도시는 마실리아(현대 마르세유)였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로마인들의 진출이 시작되어 결국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우리말 번역서‘에는 『아피! 미스트랄』란 제목으로 변형됐다. 여기서 '아피’는 ‘해피’의 프랑스식 발음이고, ‘미스트랄’은 프로방스에 부는 계절풍이라고 한다. 살갗을 파고드는 삭풍이 때때로 휘몰아쳐도 마음만은 따사롭고 행복이 충만한 프로방스에서의 삶을 저자는 '경이로운 삶'으로 표현해 냈다. 책은 처음부터 경이로움으로 이어진다. 1988년 어느 날 런던 생활을 접고 프로방스 시골의 200년 된 농가를 덜컥 사면서 시작된 작가의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경이로운 경험은 무명 작가의 소박한 일기를 무려 25개국 1,0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으로 이어진다. 도대체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이 무슨 매력을 담고 있기에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걸까.

 


 

프랑스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거의 모두 프로방스를 잘 안다. 프로방스는 유럽인들이 늘 동경하며 꿈꾸는 지상 낙원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별장이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코트 다쥐르의 에메랄드빛 바다, 지평선 넘어 노랗게 물든 해바라기밭, 프로방스의 상징 보랏빛 라벤더가 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생각만 해도 멋진 풍광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작품을 냈으며 예술가들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은 '뭔가 있는' 곳이 프로방스다. 햇살 가득한 파라다이스에서 별세계 같은 삶의 이야기로만 이어진다면 이 책이 과연 1,0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한적한 시골 뤼베롱 산기슭에 터를 잡았다. 사계절 빛나는 프로방스의 명소만 돌아봤을 것 같지만, 아니다.

저자 피터 메일의 ‘충동적 선택’에서 비롯된 프로방스에서의 삶은 온통 일상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이웃들은 답답할 정도로 느긋하고, 음식을 대할 때는 유난히 유쾌하다. 포도 경작자 포스탱과 그의 가족, 산속의 엉뚱한 사냥꾼 마소, 집수리를 맡았지만 일 년 내내 밍기적대는 메니쿠치와 그 무리 등 등장하는 이웃들은 특유의 낙천적 기질에 우스꽝스럽다. 느리고 속 터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소박한 시골의 참맛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마치 천국이나 유토피아를 설명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런 시골의 참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았다.

 


 

독자도 십수 년 전 프랑스 여행 때 프로방스 지역에 들렀다.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시골까지는 못 가봤지만 풍광이나 사람들의 표정을 느끼기에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저자가 살고 묘사한 곳은 시골 뤼베롱이 중심이지만 프로방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책에는 프로방스 사람들의 일상과 여유가 넘치는 말, 행동들이 마치 천국을 묘사하듯 전개된다. 눈 뜨자마자 알코올 향 가득한 파스티스 한 잔을 들이켜고, 포도밭을 찾아다니는 행복감만큼이나 올리브유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손꼽아 기다린다. 게이트볼과 유사한 불르 게임의 승리를 위해 온갖 반칙과 생떼 쓰는 일화, 암암리에 이뤄지는 송로 산지 조작 이야기 등은 덤이다. 프로방스에서의 충만한 삶에 관한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지루할 틈이 없다. 이 맛깔나는 열두 달의 기록을 통해 소박하고 정겨운 삶이 주는 기쁨은 정말 멋지다. 인생에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쉼표가 무엇인지 정겹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 독자는 부부의 짧지만 긴 일 년의 사계와 행복한 동행을 한다. ‘사람 사는 맛이 물씬한’ 프로방스의 진면목을 맛보는 것은 정말 어떤 가식도 없는 햇과일을 접하는 풋풋한 느낌이다. 이들 부부는 점점 ‘프로방스 시골뜨기’로 변해 간다. 파리 사람들이 주로 모인 이웃집 야간 파티에서 피터 메일은 말한다. “프로방스의 기준으로는 대화는 속삭임이나 다름없었다. 옛날이었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정상으로 비췄겠지만, 지금은 갑갑하고 위선적이어서 막연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복닥거리며 메마르고 파편화된 도시 생활은 언제나 한적하고 정겨운 시골의 삶을 꿈꾸게 한다. 이를 실행에 옮긴다는 건 적잖은 난관이 따르기 마련이다. 오늘도 꿈꾸는 사람들은 유튜브로 관련 영상을 수도 없이 클릭하며 책을 뒤적이다 주저주저한다. 그러나 저자 피터 메일은 달랐다. 30여 년의 세월만큼이나 여건은 아주 달랐을 것이다. 프로방스 햇살을 받으며 아침잠을 깨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200년 된 오래된 농가부터 샀다. 말 그대로 '덜컥'이다. 충동적이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때부터 저자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순탄치는 않았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 관료주의, 지나치게 느긋한 일꾼들 탓에 일 년 내내 공사 중인 낡은 집, 괴팍하고 지저분한 이웃 등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모두 외지인, 특히나 도시인의 시각에서 문제일 뿐이다. 아마 저자가 시골살이의 불편함만을 마음속에 담았다면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한다. 시시콜콜하고 평범하지만, 특유의 유머 가득한 에피소드들은 도시인으로 살아왔던 저자와 그의 아내에게는 불편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들은 불평만 늘어놓지 않았다. 부부가 프로방스의 자연환경과 주변 이웃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요즘 말하는 ‘도시 생활자의 시골 적응기’일 수도 있다. 자기만의 성을 쌓고 아름다운 풍광을 그저 눈요기 삼고자 한다면, 이웃 누구나 불친절하고 고깝게 굴 것이고 생뚱맞게 대할 것은 뻔한 이치다.

 


 

저자와 그의 아내는 프로방스의 삶과 자연에 녹아들려 했고, 이웃들의 진심을 보고자 끊임없이 다가갔다. 처음 해본 염소 경주 대회, 불르 게임에서 쭈뼛댔다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기다리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도시인의 눈높이로 시골살이를 미리 예단하지 않았다. 이주자가 먼저 다가가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따라 맞추려고 노력했다. 또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원했기에 그의 삶이 누구보다 풍요로워진 것이다. 오늘의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을 이 책은 알려준다.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참된 휴식과 삶의 의미가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이 주는 선물은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고, 삶의 의미다.

이 책에는 「작가의 말」이나 「서문」 대신 「들어가며」를 역자 강주헌이 썼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책의 첫머리에 둔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쪽만을 읽은 사람이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한다. 프로방스를 자세히 모르는 독자들을 위한 프로방스의 설명을 해준다. "프랑스에서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 특히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마르세유, 영화제로 유명한 칸 그리고 니스"를 소개한다. 니스는 그레이스 캘리가 왕비로 있었던 모나코 공국이 30분 거리에 있다. 모나코 공국은 유명한 세계적 도박의 도시이다. 카지노 때문이다. 지금은 프랑스 영토는 아니지만 한때 프랑스령이었다. 인구 5만 명에도 못 미치는 우리 지방 군단위 읍 정도에 불과하다.

 

 

그림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독자들은 '프로방스' 하면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것이다. 반 고흐가 파리로 올라가 생을 마치기 전에 지낸 곳, 고갱과 말다툼을 벌이면서 귀를 잘린 곳인 아를이 프로방스에 속해 있다. 역자는 이 책 원고 번역 작업을 하기 전 프로방스 일대를 둘러보았다고 서두에 적고 있다. 니스에서 피카소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카페를 보았고, 아를에서는 반 고흐가 그린 랑글루아 다리를 보았다고 한다. 마르세유에서는 비린내 나는 선창을 찾았고, 니스에서는 모나코까지 건너가 카지노를 보았다고 한다. 이른바 '관광'이다. 이 책은 프로방스를 관광한 소감을 써내려간 여행기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 살기의 글 속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낀 점도 번역에 많이 반영됐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역자는 말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일 년간의 삶은 곧 인간적인 삶의 축소판일 수 있다. 농사의 시작과 끝이 있고 여름 휴가가 있다. 프로방스에서 농사는 포도 농사이고, 이는 포도주의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프로방스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어 여름이면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휴가객이 몰려오는 곳이다. 조용하던 농촌 마을에 도시인들이 몰려오면서 마을은 겉모습부터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프로방스는 이국적인 얼굴을 갖는다."

 

처음 한 시간 동안의 어색한 격식이 사라졌다. 모두가 윗도리를 벗어 젖히고 샴페인을 열심히 공략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아내들을 데리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작품을 구경시켰다. 영국식 목욕탕의 수도꼭지에는 ‘핫’과 ‘콜드’로 표시되어 있다며 수군댔고, 목수가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는지 점검하러 서랍을 열어보기도 했으며,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했다.(p.447)

 


 

왜 런던에서는 싼값에 맛있게 먹을 수 없는 것일까? 식사를 끝내고 이런저런 지혜를 모아본 결과, 우리는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보다 외식을 적게 하기 때문에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영국인들은 여러 병의 포도주가 담긴 얼음통, 손가락을 씻는 물그릇, 단편소설에 버금가는 차림표,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랑삼아 떠들 수 있는 계산서를 원한다는 마무리였다.(p.217)

 

뤼베롱 산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산에 특이한 것들과 이상한 사람이 득실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버섯, 설령 야생버섯이라도 다 큰 성인 남자를 공격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버섯이 위험하냐고 물었다.(p.366)

 

저자 : 피터 메일(Peter Mayle)

 

영국인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서 자란 피터 메일은 ‘프랑스인보다 프랑스를 더 사랑하는 작가' 로 유명하다. 한때 광고업계에서 15년간 활동하며 카피라이터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남부 지방을 여행하다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아내와 함께 정착을 결심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 프로방스를 사랑한 피터 메일은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1989』을 발표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책은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수백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기행문’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피터 메일은 9권의 소설을 포함해 총 15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작품들은 리들리 스콧을 비롯한 여러 제작자와 감독들에 의해 영화(어느 멋진 순간)와 TV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제작된 바 있다. 2002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2018년 1월 작고했다. 『프로방스에서의 25년』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16번째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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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워크 -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
탠시 E. 호스킨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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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특히 운동화에 대한 독자의 기억은 슬픔과 기쁨 두 가지가 다 있다. 지금이야 운동화가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물론 명품이라는 또다른 비싼 운동화가 있긴 하지만)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바 브랜드 운동화가 유행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사실 당시 물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러나 그걸 신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도 사주지 못한다고 해서 싼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기억이 슬프다. 그러나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비싼 신발을 사주다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그때 우리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슬퍼지기도 한다. 지금은 우리가 선진국에 돌입할 정도로 경제적 부를 이뤘으니 신발쯤이야 조금 바싸다 해도 그리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독자만 해도 5~6켤레를 갖고 있다. 가격이 싸서 사놓았다가 아직 한 번도 안 신은 등산화도 있다.

이 책 『풋 워크』는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이라는 부제에서 보여지듯이 '신발'에 얽힌 발전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글로벌 사우스로 몰려가는 다국적기업의 무분별한 사냥, 사람들보다 금전적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적 결정,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부의 불평등, 자연자원과 환경 파괴, 통제를 벗어난 과잉소비주의 등을 생생하게 파헤친다. 지금 세계적으로 매년 수백억 켤레의 신발이 생산되는 시대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지던 신발이 전 지구적 교역과 세계화, 그리고 자동화 방식이 확산되면서 고유의 발 보호 역할에서 벗어나 소비재 상품의 상징이 되었다. 저자 탠시 E. 호스킨스는 신발 산업의 다양한 측면에서 그 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각종 통계와 자료를 면밀히 조사하고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평범한 일상용품인 신발이 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로서 불합리하고 위태로운 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모두가 더 밝고 공정한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떼는 외침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21세기로 접어든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일반적인 영국 여성은 신발 스물네 켤레를 갖고 있으며 그중 몇 켤레는 한 번도 신은 적이 없다고 한다.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신발 수집 규모는 수천 켤레에 이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신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신발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열대 아프리카 지역의 농민과 어린아이들은 신발을 살 돈이 없어서 여러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242억 켤레의 신발이 만들어져도 세계 인구 77억 명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는 않는다.

지구상에서 추위와 위험한 땅바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착용하는 생물은 인간뿐이다. 신발은 인류가 이족 보행으로 이행하면서 착용하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에는 식물섬유와 썩기 쉬운 원료로, 이후에는 가죽을 비롯한 좀 더 튼튼한 원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기계화·분업화되면서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발의 값이 싸고, 그만큼 지구에 가장 높은 대가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잘사는 나라들의 과잉소비에 따른 과잉생산은 우리가 일회용 세상에 살고 있는 양 착각하게 만든다. 혁신과 진보는 오로지 높이 쌓아놓고 헐값에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로 쏠렸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의 과잉생산은 전례가 없는, 충격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주의에 탐닉할 돈이 있는 이들에게 세계화는 선택지와 풍족함을 놀라우리만치 끌어올렸다. 이에 응답하여, 소비주의는 세계화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뒷받침한다. 상품은 한 번에 수십억 톤씩 팔려나가고, 이윤은 쌓이고 또 쌓인다. 자본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건 오직 상품 생산과 판매를 통해서이며, 그토록 많은 이들이 과잉소비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낮은 임금과, 그보다도 더 낮은 규제를 추구하는 세계화된 자본주의를 통해서이다.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은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다. 신발은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중 하나이며 우리 세계를 조형하는 상호 의존과 불평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통신 및 운송 기술의 변화와 저임금 노동자의 세계적 분포 덕분에 신발 제조 공정은 전 세계로 분산되었다.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로 의류와 신발 관련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평범한 일상용품인 신발을 통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복잡하고 불합리한 문제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스니커광’이 모인 행사장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신발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귀담아듣고, 지구상의 신발 공장들을 탐사한다. 임시 난민 수용소의 절박한 실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파키스탄의 재택 노동자, 관련 기관의 담당자를 만나기도 한다. 다국적기업의 무책임한 관행과 제품 가격을 높이는 대신 노동을 쥐어짜는 것을 이윤 창출 전략으로 삼는 유명 브랜드의 행태도 비판한다. 브랜딩과 상표를 만들어내는 신화의 거미줄 뒤에 철저히 숨겨진 고통스런 진실은 때로 충격적이고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 외에도 소들의 산업적 살해라는 일상화된 참상과 아마존 강 유역의 파괴 등은 현실로 다가온 기후 붕괴와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처럼 심각하고도 중대한 문제 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행동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신발 산업이 수작업의 축소와 글로벌 사우스의 노동 및 성 불평등으로 인해 저항하기 힘든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국가와 비정부기구, 환경 단체, 인권 단체 등의 더욱 엄격한 규제와 감시를 촉구한다. 신발이 왜 그토록 많은 아수라장을 초래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신발 산업이 규제 완화와 하도급이 일어나는 자본주의, 즉 글로벌 사우스의 사람들과 지구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하는 과잉생산을 수단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자본주의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발은 글로벌 사우스의 공장과 재택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 걷잡을 수 없는 소비주의, 그것이 낳는 산더미 같은 폐기물, 자본주의가 마술처럼 만들어내는 환영, 이주의 흐름과 장벽, 생물권 착취, 법적 보호 부재와 첨단기술 미래의 시작 같은 세계화의 특성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신발 공급 사슬을 추적하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어쩌다 이런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저자는 신발 산업의 험난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적 변화, 정치적 변화, 그리고 시스템의 변화를 강조하면서 개인의 실천 지침까지 덧붙여놓았다.

연간 242억 켤레 생산, 미국에서 디자인되고 동남아시아에서 제조되고 유럽에서 구매되는 운동화는 제조 과정에서 독성 폐수를 쏟아내고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무두질 공장의 노동자, 50시간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나이키 운동화를 사려면 월급의 절반을 바쳐야 하는 중국인 노동자, 최저임금의 20~25%밖에 벌지 못하는 파키스탄의 재택 노동자, 거대한 쓰레기장을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목적은 신발이 만들어져 소비되고,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따라가면서, 그 과정에 관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세계화라는 시스템이 야기하는 문제에 조명을 비추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각 장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발로 차」에서는 소비의 아찔한 세계를 탐사하면서 그 세계가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적은 사람들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강박적인 신발 수집가들을 만나 신발의 매력을 탐구한다. 제2장 「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는 중국에서 발칸 반도에 이르는 지구상의 신발 공장들을 탐사한다. 이 과정에서 공장 노동자와 공장주를 만나고, 우리가 어쩌다 매년 242억 켤레의 신발을 만들게 되었는지 알아본다. 제3장 「신발 끈에 매달린 삶」은 1차 하청 공장 밑으로 이어지는 공급 사슬을 따라가 세계화를 떠받치는 비밀의 기둥, 즉 재택 노동자들을 만난다.

이 가려진 사람들은 누구이고, 수많은 가정을 공장으로 바꾸는 시장자본주의는 어떤 결과를 낳고 있으며, 도대체 우리 신발은 얼마나 유해한가? 기업이 신발 생산의 현실을 숨기는 능력은 제4장 「브랜딩」에서 다룬다. 브랜딩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업들은 왜 신발을 우리의 감정과 연결 짓고 싶어 하는지, 우리 신발에 붙은 상표를 믿어도 되는지, 그리고 짝퉁 스니커즈는 세상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제5장 「난민들의 신발」은 임시 난민 수용소에서 시작해 비에 젖고 낡아빠진 신발을 신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왜 돈과 상품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데 인간은 그러지 못하는가? 튀르키예(구 터키)의 지하실에서 신발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수천만 명의 중국 아이들은 어쩌다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되었는가?

 


 

제6장 「지옥과 맞바꾼 가죽」은 가죽 생산에 관해,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희생되는 도살 산업에 관해, 열대우림 파괴에 관해, 노동자의 평균 기대수명이 50세에 불과한 방글라데시의 무두질 공장에 관해 폭로한다. 정치적 폭력에서 노예제와 기후 대재앙에 이르기까지, 가죽 산업은 자신의 손이 닿는 모든 대상에 벌을 내린다. 제7장 「폐기물이 되다」에서는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묻는다. 신발이 구매된 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자원집약적이고 복잡한 물품이 폐기될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242억 켤레의 신발은 버려지면 과연 어디로 가는가? 구두 수선소로부터 중고품 창고와 재활용 공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일회용 세계에 살면서 치러야 하는 비용을 따져본다. 제8장 「로봇들이 몰려온다」는 현재의 쓰레기장을 뒤로하고 미래의 공장으로 떠난다. 로봇으로 인해 신발 산업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자동화가 더 확산되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 여성 노동자 수백만 명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이야기다. 제9장 「신발이 발에 맞으면」에서는 신발 같은 일상용품이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기업은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그 많은 책임을 회피해왔으며, 인류와 지구를 지켜주어야 할 법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기업 프로그램과 그린워싱이 어떻게 사회 진보를 막아왔는지를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제10장 「반격하라」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그간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시도해왔다. 지금은 아래로부터 출발하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체제를 맞이할 시기일까? 좀 더 평등한 방식으로 재배치된 세계는 어떤 모습이며,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 : 탠시 E. 호스킨스(Tansy E. Hoskins)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 <가디언>, 알 자지라, 와 지에 방직 및 의류와 제화 산업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이 작업을 위해 방글라데시, 케냐, 마케도니아 등지를 방문하고 영국 버밍엄의 위성도시인 솔리헐의 톱숍 창고에도 다녀왔다. 첫 책인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는 엠마 왓슨의 ‘궁극의 책 목록’에 올랐다.

 

역자 : 김지선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위대하고 찬란한 고대 로마』,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 『기사도와 테러리즘』,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북유럽 문화사』와 『살인자의 사랑법』, 『애프터 쉬즈 곤』, 『출구는 없다』, 『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등 다양한 서스펜스 소설과 더불어 『엠마』, 『오만과 편견』 등의 고전소설을 한국어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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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한국사 : 사건편 - 본격 우리 역사 스토리텔링쇼 벌거벗은 한국사
tvN〈벌거벗은 한국사〉제작팀 지음, 최태성 감수 / 프런트페이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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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허약한 역사 지식과 의식에도 불구하고 유행처럼 떠돌던 말 한마디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누가 했는지 당시 TV 출연진 중의 한 사람이 밝혔다.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라서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당시 밝힌 대로 단재 신채호의 발언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저서에도 이 말은 없다. 또 역사 사전에도 나와 있지만 출처가 불분명하다. 윈스턴 처칠이 했단 말도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독자 역시 정확한 출처는 모른다. 말 자체로 충분히 기억해 둘 가치가 있는 말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사실 우리 한반도의 역사는 침략을 당한 수모와 비참한 사례가 수없이 많이 얼룩져 있다. 기록은 했지만 역사가 주는 교훈에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말일 수 있다.

한반도 역사에서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침략 전쟁은 삼국시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민족의 침입이다. 북방의 거란, 여진 족의 침입부터 몽골군, 왜적까지 한반도를 침략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바람 아래 촛불처럼 위태로웠던 큰 침략을 당했다. 이 가운데 일본은 임진왜란과 근대 대한제국 때까지 두 번째 침략으로 한반도 산하를 피로 물들였고, 특히 식민지배를 통해 민족의 해체를 꾀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마땅한 반성과 사과를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협력과 공동 번영은 실제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정확하게 역사를 알고, 똑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책 『벌거벗은 한국사 : 사건편』은 〈벌거벗은 한국사〉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 제작팀이 소개한 매력적인 한국사의 장면들 중 나라의 운명을 바꾼 사건들의 내막을 담은 역사 교양서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에피소드를 알게 되는 즐거움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또 자신의 명예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기록하지 않은 역사 기록자들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할 터다. 제작팀은 당시로 돌아가 철저하게 검증하고 고증하여 사건의 발단과 과정, 사건 종료 후 역사적 평가를 내릴 때 얼마나 객관적이고 철저한 역사 의식이 필요한 지 보여준다. 이 책에는 8장(章)에 걸쳐 굵직한 사건을 각 1장씩 기술한다. 많은 부분 가리워졌던 일들이 드러나고 역사적 평가가 달라져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 대부분은 기록에 의존했기 때문에 역사 기록자들의 이해 관계나 역사 의식 결함으로 잘못된 일도 바로잡기에 중점을 두고 있어 개인적으로 '올바른 역사 의식 정립'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젊은 관료가 내려친 뺨 한 대가 어떻게 고려 무신정변의 불씨를 지폈는지, 7년간 조선 땅을 폐허로 만든 임진왜란이 벌어진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이완용은 어떻게 조선을 팔아넘겼기에 지금까지 매국노라 불리는지, 35년간의 식민 지배가 끝나던 해방의 날에 한반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등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숨겨진 진실과 속사정을 파헤치며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단편적인 사실 아래 가려졌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렵기만 했던 역사가 감동 가득한 드라마로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깊이 있는 지식과 명쾌한 해설을 바탕으로 몰입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펼치는 이 책은 기존의 딱딱하고 어려운 역사책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단번에 해결해준다.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시 배우려는 사람도 『벌거벗은 한국사 : 사건편』과 함께라면 부담 없이 재미있게 역사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떠나는 특별한 시간 여행에 역사와 가까워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받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우리 역사에 대해 배웠다. 그러나 어쩐지 역사 앞에서는 목소리가 작아짐을 느낀다. 나라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이웃 나라 위에 군림하려는 적도 없고, 침략을 수없이 받아도 보복이나 재침략 방지를 위해 상대국에 단 한 번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달콤한 말로 충분히 설득력을 가졌던 말도 지금은 믿지 않는다.

뼈아픈 침략을 당해 야만적 식민지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정부가 정식 출범하고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서 겨룰 수 있는 상황에서도 늘 일본에는 저자세였다. 정부와 관계자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또다른 주류로 성장해 왔다. 식민 피해에 대한 마땅한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공식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는데도 하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한 일을 제대로 겪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부와 명예를 일본 침략 하에서 얻었던 사람들, 이른바 친일파들이다. 일본의 패전에 우리가 정식으로 개입하지 못해 얻지 못한 권리이지만 그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공식적으로 받아내야 했다. 우리가 역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할 경우 연도, 사건, 인물 같은 단편적인 지식만 떠오르기 일쑤다.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외울 것 많고 복잡한 지식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하나로 모으고 역사적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서는 역사는 ‘이야기’라는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책 저자(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 제작팀)는 말한다.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벌거벗겨 흥미로운 이야기로 들려주는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도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방송에서 다룬 다양한 이야기 중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주요 사건들의 이야기를 모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은 각 시대와 분야별 역사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하고, 한국사 대표 강사 최태성이 다년간의 강의 노하우를 발휘하여 명쾌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내 깊이와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뿐만 아니라 시간 관계상 방송에서는 미처 보여주지 못한 내용과 사진 자료까지 새롭게 담아 완성도를 높였다.

우리가 몰랐던 한국사의 이면에 주목하는 『벌거벗은 한국사 : 사건편』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에피소드와 개념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한국사의 큰 맥락을 잡게 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배경 지식까지 선물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역사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쾌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매력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새로운 역사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일은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아는 데 소중한 기회이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8장으로 이루어졌다. 각 장마다 한국사 연구가들이 검증하고, 고증하고, 사료 발굴이나 판단을 정확하게 감수하는 등 역사가로서 최선을 다해 이야기로 만들어낸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1장 「벌거벗은 무신정변」(박재우), 2장 「벌거벗은 여몽전쟁」(이영미), 3장 「벌거벗은 임진왜란」(노혜경), 4장 「벌거벗은 병자호란」(이근호), 5장 「벌거벗은 조선 환관」(김경수), 6장 「벌거벗은 경술국치」(김현철), 7장 「벌거벗은 조선어학회」(박용규), 8장 「벌거벗은 광복」(조건)이다.

 


 

독자는 아무래도 일제 치하에서의 광복 1945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 궁금했다. 이미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울고 웃으며 기뻐하는 민족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빛바랜 흑백사진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과연 낮 12시 방송을 듣고 저렇게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기뼈했을까? 오랜 일본의 통치 아래 숨죽이고 불평등한, 심지어는 노예 취급하는 일본에 주눅들어 살아온 이 땅의 힘 없은 사람들이... 책에 따르면 35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1945년 8월 15일.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던 역사적인 날이었지만, 거리는 마치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만세 함성도 태극기 행렬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방의 기쁨으로 한반도가 떠들썩해진 것은 해방 다음 날인 8월 16일! 왜 사람들은 해방된 날이 아닌 그다음 날 만세를 불렀을까? 조선과 일본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뒤바뀐 그날,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이 책엔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천황의 방송보다 더 큰 일을 앞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원자폭탄 투하도, 일본의 항복도 제 시간에 알기 어려웠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방송을 듣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었던 모습은 하루가 지난 다음날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경성에서는 대규모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이우. 그는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장남으로 조선의 마지막 왕자였습니다.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으로 복무하고 있던 이우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본에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우의 장례식이 있기 9일 전인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아침 8시 15분, 갑자기 번쩍하더니 한낮의 태양보다 밝은 하얀 빛이 히로시마 전역을 집어삼켰습니다. 히로시마 상공 580미터에서 터진 핵폭탄은 약 4,000도의 열 폭풍을 일으켰고, 그 사이로 거대한 자줏빛 버섯구름이 솟아올랐습니다. 화염이 도시를 휩쓸었고, 히로시마는 초토화가 되었습니다."(p.279~280)

 


 

이 책은 고려 역사의 분기점이 된 무신정변부터 매국노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게 된 경술국치까지, 우리 역사의 운명을 뒤흔든 사건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파헤친다. 역사 스토리텔링쇼답게 이 책은 사건에 연관된 인물과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를 자세하게 살펴봄으로써 사건 전개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각 사건이 한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해준다. 이로써 역사적 사건을 빛바랜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와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탈바꿈시킨다. 역사 안내자로 나선 최태성 강사는 단편적인 사실 몇 개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역사 속에 녹아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재미있게 접하고 싶다면 건조한 키워드들로 사건을 이해하는 대신 진짜 스토리를 만나야 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순간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는 스토리를 만날 때, 도무지 흐름을 잡기 어려웠던 사건들이 한 편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완성되며 역사의 맥락이 잡힌다.

 

당시 이완용의 별명은 ‘조선 제일 현금 부자’였습니다. 이완용은 나라와 민족을 판 대가로 돈을 쓸어모으며 죽을 때까지 반역자라는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완용은 1926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완용이 죽은 뒤 신문 사설에는 “팔아서 안 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팔아서는 안 될 나라를 팔아 누려서는 안 될 영화를 누렸다는 의미였지요. 대한제국 사람들은 이완용을 미워했고, 그의 죽음을 조롱했습니다. 사는 동안에는 죗값을 피했을지 몰라도 앞으로 계속될 역사의 심판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완용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p.236) - 「6장 벌거벗은 경술국치-이완용은 어떻게 조선을 팔아넘겼나」 중에서

 

저자 :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 제작팀

 

우리 역사가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벌거벗은 한국사〉를 기획했습니다. 역사 스토리텔링쇼 〈벌거벗은 한국사〉는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의 숨겨진 내막을 벌거벗겨 어렵고 복잡한 역사를 흥미진진한 한 편의 드라마로 탈바꿈시키려 합니다. 반만년 한국사 속 가장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인물과 만나는 특별한 여행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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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수 지음 / 라온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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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성과 관련하여 지나치게 부정적인 혐오와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에 게 균형을 잡아 주는 방법과 생애주기에 따라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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