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왜 죽는가
고바야시 다케히코 지음, 김진아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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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사생관이 확 바뀌는, 현대인을 위한 생물학 입문서이다. 인류의 기원, 탄생과 죽음을 진화론적 접근법으로 죽음에 대한 천착하여 밝혀낸 ‘인간‘의 모든 것, 그리고 비밀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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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왜 죽는가
고바야시 다케히코 지음, 김진아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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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태어나고 죽는다. 왜 그럴까? 한 번 태어났으면 죽지 않으면 안 될까? 나는 인간이다. 따라서 언젠가 죽는다. 무생물은 어떤가? 예를 들어 책상은 어떨까? 쓰임새가 다하면 수백년, 수천년까지 살다(?) 죽는다. 나무는 생물로 살다가 무생물로 다시 태어난다? 태어난다는 표현은 잘못일까? 인간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끝없이 이어진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는 것을 생각해볼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시원한 답을 내놓는 것을 독자는 못 봤다. 간혹 읽는, 죽음에 관한 책도 시원한 답은 없다. 학자들은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삶과 죽음에 관해 가장 직접적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은 생물학일 듯 싶다. 이 책 『생물은 왜 죽는가』도 명쾌한 답을 내놓는 대신 많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엔 안성맞춤이다.

이 책은 "왜 모든 생명은 죽어야 할까?" "빨리 죽는 생명과 오래 사는 생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등 죽음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 일본의 생물학자인 고바야시 다케히코가 현대 생물학 최첨단의 지식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답한 책이라고 밝힌다. 물론 과학자답게 실험, 연구, 비교 연구, 분석 연구 등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모든 연구의 결과로 해답을 저자가 주고 있다. 생물학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처럼 문외한인 사람을 비롯, 조금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문과 궁금증을 해소할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한다면 삶과 죽음, 사후 세계에 대한 염원 등에 대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사색할 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우리는 왜 늙고 왜 죽어야 하는 걸까? 수명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생물학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는 죽음으로써 더 다양하고 많은 가능성을 가진 생명들이 탄생하기에, 죽음은 '필요한(?)' 일이고,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 보면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몸과 마음도 서서히 변해 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잘 알지만, 노화는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신호로서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우리는 ‘왜 늙어야 하며 왜 죽어야 하는 걸까?’

이 책은 수명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가 우리에게 절대 공포로 남아 있는 ‘죽음’의 의미를 생물학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모든 생물은 죽는 걸까?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생물도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그 비밀은 무엇일까? 사람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면 그 연구성과는 어디까지 왔을까? 만약 죽음이 자연의 섭리라면 노화에 저항하는 일은 신성 모독인가? 그리고 인류가 만든 ‘죽지 않는 AI’와 ‘수명이 있는 인류’는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까? 지금까지 어떤 철학도 종교도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의문에 이 책만큼 확실하게 응답해 준 적이 없다. 두렵지만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죽음’에 관한 수많은 질문에 대해 매우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가 쉽고 재미있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현대 생물학의 최첨단 지식과 신기한 생물들 이야기는 덤이다.

 

 

모든 생물이 맞이하는 죽음.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왜 우리는 죽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은 많다. 그러나 과연 해답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은 이 문제에 대해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생물이 탄생한 계기에서 시작해서 생물과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죽거나 멸종하는지, 그리고 인류와 AI와의 공존 공생의 미래까지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생알못’도 알기 쉽도록 쉬운 문장으로 친절하게 쓴 책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 즉 생사는 뗄 수 없는 관계다. 1장 「생물은 도대체 왜 탄생했는가?」 2장 「생물은 도대체 왜 멸종하는가?」 3장 「생물은 도대체 어떻게 죽는가?」 4장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죽는가?」 5장 「생물은 도대체 왜 죽는가?」로 모두 의문형 제목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에 대해 답을 찾아간다. 이 책은 책의 중심 주제인 '왜 죽는가?'에서부터 생명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해답을 찾는 연구가 계속되므로 해답 이외에 수많은 질문거리를 내포하고 있다. 독자들이 더 촘촘히 읽을수록 더 많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는 과학하는 기본 태도일 수 있으니 천천히 정독을 할 것을 독자는 기대한다.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이 책은 우리의 지금까지의 사생관을 바꾸어준다. 2022년 1월 10일 일본 NHK종합채널의 ‘NHK뉴스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이며 2022년 10월 현재 16만부 이상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저자는 ‘생물은 왜 죽는가?’라는 질문을 푸는 열쇠가 ‘진화가 생물을 만들었다’는 명제에 있다고 말한다. 46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후 수억 년 걸려 태어난 단 하나의 세포가 모든 생물의 시조가 되었는데 그것은 우연이라기보다 기적이었다. 세포는 세균과 같은 ‘원핵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와 공생하는 ‘진핵세포’로 변화했고, 지금으로부터 약 10억 년 전 ‘다세포 생물’이 태어났다. 그 후 오래된 생물이 죽고 새로운 생물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선택과 변화’를 핵심 원리로 하는 ‘진화’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 더 효율적인 것들을 선택하면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겨남으로써 진화가 이루어진다. 진화 때문에 지금의 인간과 같은 생물이 만들어졌다면 죽음도 진화가 만든 생물 시스템의 일부다.

저자는 생물이 죽어야 하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식량과 생활 공간의 부족. 천적이 적은 생물이라 포식을 당할 위험성이 적다 해도 개체가 너무 늘어나면 식량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멸종에 가까우리만큼 개체 수가 감소하거나 소자화(少子化)되어 소수 개체만 살아남게 된다. 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생물은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생물이 죽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양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생물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항상 ‘변화’를 반복함으로써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어 왔다. 그 시제품 가운데 우연히 환경에 적합한 것들이 ‘선택’ 받음으로써 생명의 연속성을 유지되었다. 생물 다양성은 이처럼 예상치 못한 환경변화 속에서 종의 생존과 지속에 도움을 준다. ‘죽음’은 생물이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는 왜 죽어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해 저자는 ‘턴 오버(turn over)’라는 개념을 써서 명확히 대답하고 있다. 지구상의 생물은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을 경험했는데, 현재와 같은 포유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은 약 6650만 년 전이다. 이때 운석 낙하 등에 의한 급격한 환경변화로 공룡 등의 거대 생물이 멸종했고 지상의 지배자였던 공룡이 사라진 덕에 쥐를 닮은 소형 생물이 살아남아 인류로 진화했다. 이처럼 한 생물군의 죽음은 새로운 생물군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같은 생물 종 안에서도 선대 생물이 죽으면 더 진화한 후대 생물이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턴 오버’다. 지구상의 생명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원리다. 가슴 아프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보다 더 진화하고 더 다양화된 다음 세대를 위해 죽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생물의 죽음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먼저 사고사(事故死)다. 잡아먹히거나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는 경우가 이것이다. 좀 더 큰 규모의 사례는 공룡이 멸종한 원인으로 여겨지는 운석 충돌이나 대규모 기후 변동 등이다. 또 하나의 방식이 ‘수명’에 따른 죽음이다. 수명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종에 따라 그 길이가 다르다. 현대의 인간은 대부분 노화 과정에서 죽는다. 직접적인 사인은 질병이지만 그것은 대개 노화, 즉 세포의 기능 저하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노화도 진화가 만들었을 텐데 왜 우리는 노화하도록 진화한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만약 몸속의 세포가 늙어 죽지 않으면 세포 대체가 일어나지 않아서 점점 낡은 세포가 쌓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세포 속 구성 성분의 질도 낮아진다. 이때 기능이 저하된 세포가 그대로 조용히 움직이지 말고 죽으면 좋을 텐데 개중에는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 이상 세포가 암을 발생시킨다. 생물은 이것을 막기 위해 세포 노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명에 의한 죽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죽음이 필연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인류는 수명 연장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인류가 알게 된 수명 연장 방법의 하나는 영양 섭취량을 적당량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대사량이 감소해서 세포의 열화를 일으키는 활성 산소를 줄일 수 있다. 장수에 관련된 유전자도 발견되고 있다. 쥐를 활용한 유전자 실험들에서는 장수효과뿐 아니라 체력과 신장 기능이 향상되는 등 회춘 효과도 나타났다. 다른 쥐들의 몇 배나 더 많이 살고 질병도 없는 벌거숭이두더지쥐에 관한 연구도 진척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약물도 몇 가지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들이 다 성공해서 사람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우리는 죽는다’. 아니, ‘죽어야 한다’.

저자는 “생물은 우연히 이기적으로 태어나서 공공적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지금 존재하는 생명이 죽음으로써 더 다양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생명들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은 ‘나쁜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죽음은 현재 살아 있는 생물의 시각에서 보면 삶의 ‘결과’이고 ‘끝’이지만, 기나긴 생명의 역사에서 보면 존재의 ‘원인’이며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삶과 죽음이 거듭되는 무대인 지구를 인간 스스로 파괴하지 않고 지켜나가기 위해 해야 할 일, 생물 종의 다양성을 유지해야 할 이유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이 내린 “우리는 우리보다 더 진화하고 더 다양화된 다음 세대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결론은 지극히 논리적일 뿐 아니라 매우 획기적인 생각이다. 이 생각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가 이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죽음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하고 그것과 과장된 두려움 없이 마주 서게 해준다.

 


 

‘변화와 선택’이라는 사이클 덕분에 우리 인류를 포함한 현존 생물들이 결과적으로 태어나고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턴 오버’에 버금가는 이 책의 두 번째 포인트인 ‘진화가 생물을 만들었다’라는 주제입니다. 생물을 만들어낸 진화는 사실 ‘멸종과 죽음’이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102~103)

- 「제2장 생물은 도대체 왜 멸종했는가?」 중에서

 

사람을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한 인간이 만든 AI는 인간의 도움이 되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AI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정말로 뛰어난 AI는 우리보다도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 만약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정말로 뛰어난 AI는 대체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 어쩌면 AI는 스스로를 죽일(파괴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p.277)

- 「제5장 생물은 도대체 왜 죽는가?」 중에서

 

저자 : 고바야시 다케히코(小林武彦)

 

일본의 생물학자. 일본 학술회의 회원. 규슈대학교 대학원 졸업(이학박사). 일본 기초생물학연구소, 미국 로슈 분자생물학연구소, 미국 국립위생연구소, 일본 국립 유전학연구소를 거쳐 도쿄대학교 정량생명과학연구소(생명동태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분자생물학회 부회장, 일본 유전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일본 생물과학학회연합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노우에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노화를 막고 생명 연속성을 유지하는 게놈 재생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불철주야 연구하고 있다. 바다와 연극을 매우 사랑한다. 16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인 이 책 이외의 저서로는 『수명은 왜 정해져 있는가』, 『DNA의 98%는 수수께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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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승무원 일기
제제 씨 지음 / 처음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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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디스. 이 책 『키 작은 승무원 일기』에서 말하는 '승무원'이 스튜어디스(stewardess)를 말한다. 스튜어디스는 여성 승무원이고, 남자 승무원은 스튜어드(steward)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승무원은 특별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다.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에는 특히 더했다.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할 당시에는 해외 여행인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돈 문제도 있고, 소비를 줄인다는 의미에서 해외 여행은 자유롭지 못했다. 20세기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에 그랬다. 이 때문에 스튜어디스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승객 접대와 대화를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영어나 외국어가 기본이고, 우리 나라보다 주로 외국 승객와 함께 대화를 할 때가 많아 외국어 시험도 입사 시험에 있다고 들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스튜어디스 학력은 대졸이었다. 또 승객에 대한 친절한 응대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미모는 기본이고, 키도 커야 한다. 지금은 키에 관한 규정은 없어졌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일 수 있다며 권고 사항으로 채용 시험에 키를 뺀 듯하다. 그러나 키와 몸무게의 제한은 없어졌지만 실제 일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팔의 길이이기 때문에 팔 길이는 212cm가 되어야 한다는 규정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은 독자도 알고 있지 못하지만 아마 승객이 휴대할 수 있는 짐을 머리 위 박스에 챙겨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키라면 키가 큰 사람과 같은 말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더 중요한 조건은 자기 관리가 잘 된 사람을 뽑는다고 한다. 자기 관리에 체격 조건이 들어간다면 실제 키 제한이 없어지지는 않았을 듯 싶다. 그러나 여성들 사이에서는 스튜어디스가 예전만큼의 선망 직종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잔존하는 욕망은 있으리라.

 


 

훤칠한 키에 말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단정한 유니폼과 부드러운 미소까지... 우리가 흔히 승무원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남자가 여성 상대에게 원하는 관심 사항과 같을 것이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유니폼만 뺀다면. 사실 항공사마다 추구하는 이미지에 약간씩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 그래도 단정치 못한 태도와 복장, 무뚝뚝한 표정이나 화난 표정을 상상하는 사람은 채용 때부터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승무원이 되고 싶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터다. 하지만 노력으로 바꾸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키'다. 그렇다면 키가 작은 사람은 어떨까? 그런 사람도 승무원이 될 수 있을까? 『키 작은 승무원 일기』에서 키 작은 승무원 제제 씨를 만나보자. 특히 승무원 준비생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다.

독자도 해외 여행을 1990년 대 중반부터 여러 번 다녔는데 그 때의 느낌으로는 우리나라 여자 승무원들이 탁월하게 예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유럽 여행을 가다보면 유럽 내에서도 통행은 자유롭지만 바쁜 일정에 따라 비행기로 이동할 때도 생긴다. 이 경우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승무원들이 우리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독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갈 때 에어 프랑스를 탔었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독자와의 대화를 위해 많은 애를 써서 알아들으려고 애쓰는 승무원들을 보고 매우 고마움을 느낀 적도 있다. 두 명의 여 승무원이 승객들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모두 외모는 그리 빼어나지 않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게댜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얼핏 보기에도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 승무원이었다. 그때 처음 외국 여승무원을 직접 본 것이었는데 우리나라 승무원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책의 저자이자 '키 작은 승무원'이 '제제 씨'이다. 그는 미대를 졸업한 후 승무원이라는 전혀 다른 취업 길에 도전하기를 여러 해 탈락의 고배를 여러 잔 마신 후에 마침내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 열정 가득한 직장인이다. 지금은 국내 모 항공사에 재직하면서, 아직까지 완결이 나지 않은 자신의 비행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뒤 이어 나올 책도 기대해 본다.

미대를 나온 저자는 책을 내게 된 데 대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연 내가 작가로 불릴 만 한가?'라는 의구심도 든다고 한다. 많은 작가들이 처음 책을 낼 때 쏟은 노력과 흔히 따르는 소감대로다. 승무원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건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출간 제의를 받고 많이 고민했다고도 한다. 그 때 동기 언니에게 상담을 했는데 "너 이거 지금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거 같은데?"라는 말을 듣고 바로 도전을 결심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작업하면서 욕심이 막 생기더라고요. 좀 더 재밌게, 좀 더 완성도 있게 라고요. 실제로 마감하고 보니 뿌듯한 마음이 가장 컸고요. 더 잘 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어요. 그러나 제 자식이 가장 예뻐 보인다는 말처럼 제일 사랑스럽기도 하고요."

저자의 키는 159cm이다. 왜 키 작은 승무원이 별명이 됐을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승무원 채용 과정에서 키가 작은 여성은 아예 선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채용 조건이 변경됐다 하더라도 면접까지 없앨 수는 없을 터, 키와 외모는 최소한의 면접관에게 있었으리라는 짐작은 맞을 것 같다. 저자도 우여곡절 끝에 승무원이 됐지만 유독 혼자가 키가 작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저자는 책이 나온 후 〈채널 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승무원이 된 계기에 대해 "처음 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취준생 때였어요. 당시 절박한 마음에 승무원 에세이나 영화, 블로그까지 안 본 매체가 없었죠. 그런데 대부분이 친구를 따라 면접장에 갔다거나 그냥 한 번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는 등, 우연히 승무원이 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때의 저는 여러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셔서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때라 그 이야기들이 모두 "넌 불가능해"로 들리는 것 같았어요. 동시에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어요. '내가 꼭 붙어서 평범한 사람의 취업 준비 생활도 공유해보자!'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작업을 병행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캐릭터를 이리저리 만들어보고, 컨셉 구상하는 것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리고 그 끝에 '키 작은 제제 씨'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네요."

저자는 또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해왔다고 말한다. "키가 작은데도 합격할 수 있나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합격한 비법이 뭔가요?" 같은 메시지를 자주 받는데, 여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답변은 없었다고 한다. 인사팀도, 인사 권한을 가진 사람도 아닌데 알고 있다는 듯 대답할 수 없으리라. 다만, 여러 소문, 흔히 말하는 '카더라'에 휩쓸리지 않게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책을 냈다고 밝힌다.

'키 작은 사람이 승무원이 되는 건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은 아니다. 여기에 증인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라는 것. 그렇다고 헛된 희망만 주어서는 안 되고, 무조건 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말도 할 수 없을 테니, 실제로 자신이 했던 노력과 겪은 일은 알려주자는 생각에서 책을 낼 결심을 했다고 설명한다. 헛소문은 아니라고 알려줄 수 있고, 키가 왜 채용 기준인지, 어떤 점이 불리했는지, 일하면서 어떤 불편함을 겪는 지 같은 생생한 경험을 나누면서 승무원에 대한 환상적인 생각은 버리고 실체에 다가가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 집필 취지이다고 강조한다. 그래도 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도 함께 책에 실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승무원이 짐을 올려드리는 게 사실 의무는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몸이 불편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승객 같은 경우 도와드리지만. 하지만, 가끔 건장한 손님이 가방을 복도에 두고 자리에 들어가버리는 경우엔 좀 난감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자가 만난 승객들은 대부분 척척 잘 올리더라고 설명한다. 키가 작아 아예 부탁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슬쩍 말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착각일 수 있다고 단서를 단다.

이에 비해 승무원으로서 키가 작으면 단점은 정말 많다고 토로한다. 짐을 정리할 때도 늘 좌석 옆 발 받침대를 밟고 올라가야 하고, 각종 기물들을 꺼낼 때도 까치발을 들어서 힘겹게 꺼내야 한다. 가끔 갤리 천장에 손을 뻗을 때면, 상의가 치마 밖으로 다 튀어나와서 다시 고쳐 입을 때도 많고... 한번은 키가 큰 남자 선배와 일을 할 때 기내 선반을 고개만 휙 들어서 확인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고 자신은 무조건 발 받침대를 밟고 올라가야 선반 안쪽이 보이는데 말이다. 자신의 단점이 드러날 때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안으로만 움츠려들지 않고 과감하게 조크로 넘기는 데는 저자의 천부적 성격인 것 같다.

전·현직 승무원, 그리고 승무원 준비생 여러분들께 공감과 응원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저자는 미대 출신인 탓에 자신의 작품이 각자의 이야기로 해석되는 걸 예전부터 꿈꿨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귀여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 악역 없는 힐링 스토리를 즐기는 사람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유와 필요에 의해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각자의 의미로 해석하면 좋겠다고 책을 낸 소감에 바람을 덧대어 말하고 있다.

 


 

"키가 작아도 승무원을 할 수 있다." 희망을 그림 에세이에서 저자는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어려움에 좌절하고 있는 이들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따듯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스타툰으로 공개된 26개의 리터치한 에피소드와 오직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32개의 이야기를 수록했다. 저자의 피땀눈물 나는 승준생 시절부터 지금의 좌충우돌 승무원 이야기가 한때의 즐거움을 주고, 더불어 희망과 실체의 인식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펴낸 책이다. 그의 일상에서 독자들은 분명히 무언가를 찾아낼 것이다.

"저는 제 이야기가 승무원이라는 특정 직업에 한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려움이 있는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직장에서 느끼는 고민과 간간히 느끼는 마음의 휴식 등은 각자의 위치가 다를 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저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제 직업을 잘 말 안 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승무원에게 거리감을 느끼거나 다른 시선을 던지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었거든요. 이 책에서 저는 승무원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틀을 깨고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그냥 잠시 함께 비행을 하게 되는, 그런 시간으로 만났으면 좋겠어요."

 

저자 : 제제씨

 

흔히 키 크고 날씬한 이미지로 대변되는 승무원. 그 속에 키 159cm의 작은 승무원이 있다. 졸업을 앞두고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승무원 준비는 어느덧 2년을 넘기고 있었고, 그렇게 길어진 취업 준비 생활에 지쳐갈 때쯤 덜컥 승무원에 합격하였다. 고군분투했던 승준생 시절을 뒤로하고 승무원이 된 지금, 인스타그램에서 승준생 에피소드부터 현재의 비행 순간을 그리며 웃음과 희망을 주고 있다.

인스타그램_ @jeje_little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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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
토마스 불핀치 지음, 손길영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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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탄생 이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2,500년을 이어왔다. 오랜 기간 이어오면서 원형에 첨삭된 점도 있겠지만 각 예술 분야에서는 물론 우리 삶에 대한 영감을 주는 가장 오래된 인류 기록물이기도 하다. 최근 발굴된 바빌로니아 문명의 『길가메시』로 최초의 서사시라는 명예는 넘겨 줬지만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포함된 내용을 시인 호메로스가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초등학교 때 처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했다. 당시 '어린이 세계명작전집'에는 반드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포함되어 있었다. 독자의 기억으로는 가장 먼저 위치했다. 50권 전집류든 100권 전집이든 1권 혹은 1~2권은 이 작품이 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독자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이들 두 작품은 별개의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읽었던 것이다.

이후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많은 흥미거리를 남긴 채 잊혀져 갔지만 상급 학교로 올라가도 여전히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자주 언급됐다. 국어 교과서 정도에서 역사 교과서에도 취급되고 있었다. 또 권장도서에도 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완역본을 읽어본 기억은 없다. 어쩌면 방대한 양이고 그리스 로마 원어로 된 것에 대한 번역자들이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영어로 된 작품 번역본은 서점에도 늘 꽂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신화는 "창조적 지혜가 담긴 용광로와 같다. 따라서 신화를 알면 세상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기쁨과 슬픔, 전쟁과 평화, 과거와 현재 등 수없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또한 신화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상력과 호기심의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어 타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이 책에 대한 출판사 소개글에 공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꾸준히 독자들이 좋아한 내용이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역사 저작가 설민석이 TV에서 방송을 시작하면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고 한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평가다. 신화란 인간의 역사문화와 관련이 있어서 사람들의 희망과 두려움, 용기와 열정, 그리고 호기심을 투사하여 공상적으로 창조해 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역사적인 색채를 띰으로써 도시나 가문에 있어 고귀한 유래가 될 수도 있고, 또한 서사시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는 종교의 예식이나 신앙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를 설명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또한 조형미술, 문학, 기타 그리스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언제나 차용되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신화는 이성과 신앙의 중간에서 고유한 생명을 가진다. 그리스인의, 또 그들 후대의 모든 고찰은 신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신화는 일상 속에 스며들어 누구에게나 친근한 것이 되었다. 시인은 제재를 신화에서 구했다. 프로메테우스, 오이디푸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 전설의 주인공들이 벽화나 기둥, 항아리, 술잔 등 여러 기물 위에 그려졌다. 철학자조차도 추론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신화를 통해 도움을 구했다. 이와 같이, 신화의 일반화와 그 힘의 해방이야말로 그리스 문화가 인간의 정신세계에 가져온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기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 토머스 불핀치는 역사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변화하고 충실해진 신화를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은 1855년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거의 200년 가까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기 판본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토머스 불핀치의 신화’로서 애독되고 있는 영원한 스테디셀러이다. 단지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이란 부제는 뒤에 붙여진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출판 당시 붙인 것인지는 독자로서는 알 수 없다. 이 책 '서문'에 해당하는 「신화란 무엇인가」는 역자가 쓴 것인지 저자가 쓴 내용에 역자가 덧붙인 것인지 저자의 일생이 덧붙여 설명돼 있어 부제에 대한 궁금증은 남는다. 서문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설명만 붙어 있다.

"그리스 신화란 기원전 8,9세기, 즉 호메로스의 시편에서 소개된 이후부터 그리스도 탄생 후, 즉 서기 3,4세기에 걸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갖가기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총괄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이러한 신화의 기원과 성격을 규명하기란 어려운데, 서구의 정신사에 미친 그리스 신화의 역할을 매우 중대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신화는 문학·철학·사학자들의 저서에 부단히 인용되어 왔고, 그래서 신화 자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신화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p5~6)

그리스 신화의 탄생에 대해 후세 학자들의 연구는 모두 일치한다. 그리스 신화는 올림포스 산꼭대기에 있는 12명의 신이 중심이 된다. 이들 외에도 지상과 지하와 바다에 사는 신과 요정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또 신과 관계를 맺은 영웅, 보통 인간들이 모두 등장한다. 신 가운데 우두머리는 제우스이며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코로노스를 제거하고 신들의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가족 가운데 자신의 지위를 탐내는 자가 있을까 항상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제우스의 아내는 헤라인데 헤라는 제우스가 300년 간의 노력 끝에 맞이한 아내이다. 이들과 그 외의 신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종교에서의 신처럼 신비하고 전지전능하지는 않으며, 인간과 다름없이 웃고 울며, 성내기도 하는 인간적 감정과 행동을 한다. 다만 다른 점은 초월적인 능력으로 서로 대결하고 투쟁하며 사랑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여러 신들이 인간 세상의 온갖 사건에 참여하고 간섭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각종의 기담, 모험담, 연애담 등이 그리스 신화의 줄거리를 이루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밝힌 바 있듯이 신화 속의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 의도는 신화를 딱딱한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그로써 독자들의 인생을 좀더 즐겁고 유쾌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를 뒷받침해주는 현실성을 바탕으로, 아무리 많은 세대가 지나도 신화를 읽는 모든 독자들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신화 속 주인공들의 고뇌와 의지는 인간의 역사 그 자체에 투영된다. 신화에 나타난 신, 영웅들의 생활과 비극, 애환은 수천여 년 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생활 곳곳에 여전히 살아있다. 신화는 높은 삶의 질, 즉 폭넓고 풍부한 인생, 성숙한 인간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 이것은 바로 문학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이다. 그에 더하여, 신화에서는 모든 시대의 역사를 뛰어넘는 그 무렵의 삶, 풍속, 사회관계의 단면들을 볼 수 있고, 그것들로 말미암아 인류역사 전체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다는 특별함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러한 신화의 본디 의의를, 읽는 이에게 감명 깊게 전해 준다. 또한 독자들에게 고전문학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도 교양을 높이려고 생각했다.

 

 

저자는 책을 읽는 독자들을 그리스, 로마, 스칸디나비아, 또는 동양 등에서 전해지는 고대 고전문학의 세계로 이끌어, 이미 물질문명에 침범당하기 시작한 19세기 시민에게 정신문화의 중요성과 그 위기를 인식시키려고 애썼다. 이 책이 출간된 19세기는 미국의 산업혁명 전 기간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출판된 1855년 세상은 ‘기술과 과학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런 시대인 만큼 높은 정신성이나 풍부한 인간성을 고대 신화나 전설의 시대에서 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따라서 저자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과학의 발달에 따라 차츰 고갈되어 가는 인류의 시적 상상력을 다시 살리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고, 그런 의도 아래에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화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지혜의 용광로이자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의 원천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마음껏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다.

이 책은 34개의 제목이 각 장(章)을 이룬다. 1장 「그리스 신과 로마의 신」부터 34장 「피타고라스, 시바리스와 크로톤, 오라클」까지 이어져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을 따로 구별하지 않은데 대해 "(신화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우선 고대 그리스인들 간에 인식되고 있던 세계 구조의 관련성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인은 그리스인으로부터, 그 밖의 국민은 로마인으로부터 그들의 과학과 종교를 계승하였기 때문이다."고 제시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그리스인은 지구가 평평한 원반 모양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나라는 그 중앙에 있고, 그 중심점을 이루는 것이 신들의 주거지인 올림포스 산, 혹은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의 성지라고 믿고 있었다. 이 원반과 같은 세계는 바다에 의해서 서에서 동으로 횡단되고 두 개로 등분되어 있었다. 그 바다를 사람들은 지중해라고 불렀고, 그것에 이어지는 바다를 에옥세이노스, 즉 흑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는 바다는 이 두 개뿐이었다.

 


 

세계의 주위에는 '대양 하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흐르는 방향은 지구의 서편에서는 남에서 북으로, 동편에서는 그 반대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물의 흐름은 언제나 한결같았고 어떠한 폭풍우가 몰아쳐도 범람하는 일이 없었다. 바다와 지구상의 모든 강은 그곳으로부터 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구의 북쪽 일부에는 히페르보레오스라 불리는 행복한 민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민족은 헬라스 사람들을 얼게 하는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쏟아져 나오는 커다란 동굴들이 있는 높은 산들 너머에서 영원한 기쁨과 봄을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은 질병도, 노쇠도, 전쟁도 모르고 살았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이상향(유토리파)를 생각해 낼 것이다. 그들도 유토피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현실의 삶이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독자의 생각과 같다는 느낌이다. 신화의 시대 그리스인들은 현실 세계의 4곳의 극단에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거의 모든 신이 망라돼 있다. 물론 중요한 신, 문학이나 각종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신들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고 그렇지 않은 신이나 영웅은 짧은 설명으로 끝난다. 어쩌면 원형의 서술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독자는 받았다.

아프로디테는 백조가 끄는 이륜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으나 아직 키프로스섬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의 신음 소리가 공기를 타고 들려 왔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백조들을 지상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공중으로부터 피투성이가 된 아도니스의 시체를 보았을 때, 아프로디테는 급히 지상에 내려 시체 위에 엎드려 자기의 가슴을 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운명의 여신을 원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여신들의 승리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리다. 그리고 내 아도니스여, 내 슬픔의 기억은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고 그대의 죽음과 내 애통해하는 마음은 해마다 새로워지리라. 그대가 흘린 피는 꽃으로 변할 것이고, 아무도 이를 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그 피 위에 신주(神酒)를 뿌렸다.(p.124)

-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중에서

 


 

이같이 포세이돈이 그리스군을 원조하여 트로이아군을 물리치고 있을 동안에, 제우스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헤라의 간계로 그는 싸움에 대해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헤라는 갖은 수단을 써서 매력적으로 몸을 꾸였는데, 특히 케스토스라는 허리띠를 아프로디테로부터 빌렸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왜냐하면 이 허리띠는 그것을 띠고 있는 자의 매력을 그에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몸을 꾸미고서 헤라는 올림포스 산위에 앉아서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던 남편 곁으로 갔다. 그가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매력은 대단하였으므로, 지난날의 불타는 듯한 사랑이 다시 일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도, 그 밖에 다른 국사도 잊어버리고 그녀만을 생각하고, 전쟁은 되는 대로 방치하였던 것이다.(p.373)

- 「‘일리아스’」 중에서

 

저자 : 토머스 불핀치(Thomas Bulfinch)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근교에서 출생. 보스턴 라틴 스쿨,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 등 명문학교를 거쳐 1814년 하버드대학(고전학 전공)을 졸업하고, 모교인 보스턴 라틴 스쿨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837년 보스턴 머천트 은행에 들어가 평범한 은행원으로 생애를 마쳤다. 미국의 산업혁명 시대를 살다간 그는, 이러한 실리적인 시대에는 고대의 신화와 전설 속에서 높은 정신성과 풍요한 인간성을 찾아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역사와 고전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책을 썼다. 그중에서 1855년에 발표한 그의 작품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으로 15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꾸준히 애독되고 있다. 다른 저술로는 중세 기사도 이야기를 정리한 『원탁의 기사』(1858년), 『샤를마뉴 전설』(1862년) 등이 있다. 1867년 5월 보스턴에서 71세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이 작품들만으로도 그의 문학적 깊이의 방대함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역자 : 손길영

 

알래스카 시인으로 통하는 손길영 작가는 한국외국어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받았다. 영문학교수와 미국 대사관 연구관, 문공부 전문위원 역임하였다. 그리고 KBS, MBC, CBS 토플/토익 강좌와 함께 많은 대학에 초청되어 통번역 강의와 고급 영문법, 기초 영작문, 시사 영작문, 실용 영작문 등을 강의하였다.

저서로는 12권으로 구성된 USA토익을 비롯하여 시사 영작법, 영작법 연구, 실용 기초 영작문, 작문식 생활영어, 통역 대화체 영작문 고급 영문법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역서로는 대단한 욕망, 프랭클린 자서전, 조지 부시 자서전, 연극이란 무엇인가, 구원의 신화 등 100여권의 저서와 번역서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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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토피아 - 에덴의 기억이나 예감이 없다면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이다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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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사와 유토피아』는 책의 제목만큼이나 무거운 철학·종교·사상·국가 등의 개념을 동원해 부조리한 사회 비판의 에세이다. 에세이지만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에세이의 정의에 한층 가깝게 간다. 에세이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 에세이는 통상 일기·편지·감상문·기행문·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양식을 포괄하며, 모든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는 사전적 풀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에세이의 종류를 기술할 땐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 혹은 공식적(formal) 에세이와 비공식적(informal) 에세이로 나누기도 하는데, 전자는 대개 지적·객관적·논리적 성격이 강하며, 후자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플라톤의 『대화록』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이 장르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프랑스의 몽테뉴(Montaigne)가 쓴 『수상록(Essais)』에서 현재의 의미로 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후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과 찰스 램, 독일의 프리드리히 니체와 발터 벤야민, 미국의 랄프 에머슨 등을 통해 에세이의 현대적 모습과 각국의 문화적 특성에 따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 『역사와 유토피아』는 몽테뉴의 『수상록(Essais)』처럼 포멀 에세이에 속한다. 6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진 이 책 각 장의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이 포멀 에세이집이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1장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 2장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 3장 「폭군들의 학교에서」, 4장 「원한의 오디세이아」, 5장 「유토피아의 매커니즘」, 6장 「황금기」이다.

 


 

나치 독일의 멸망으로 루마니아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사회주의국가가 되어버리자, 파리에서 무국적자로 머물러야 했던 이 책의 저자 에밀 시오랑은 루마니아어와 이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로 결정한다. 『역사와 유토피아』는 1960년에 출간된 그의 네 번째 프랑스어 작품으로 상까지 수상하며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첫 에세이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는 루마니아 철학자 콘스탄틴 노이카(Constantin Noica)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권력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시오랑에 따르면 역사는 정해진 어떤 방향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저 그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무리 중 가장 강한 자가 권력을 잡는다는 것.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에서 그는 러시아, 러시아의 역사, 발전, 그리고 그가 “자유의 미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시선을 보여준다. 「폭군의 학교에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는 보기 드문 명쾌함과 설득력 있는 논리로 폭군과 폭정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원한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이웃을 미워하는’,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복수를 하려는 우리 모두의 뿌리 깊은 꿈을 조사한다. 마지막 「황금기」에서는 수많은 시인과 사상가의 유토피아인 성경의 에덴동산인 “황금기”의 개념을 분석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글들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러니와 독설과 풍부한 지식과 ‘무해’한 사상을 구사한 그의 문명 비평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독자는 사실 저자 에밀 시오랑(Emil Michel Cioran)도 처음 접하고, 그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진 못했다. 이 책과 저자에 대한 짧은 글로 이 책의 '서문'의 역할을 하는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1960년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출판된 시오랑의 『역사와 유토피아』는 역사와 유토피아라는 두 명제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수없이 다루어져 왔지만 항상 시사성을 잃지 않고 있는 주제다. 함축적인 짧은 글로 이루어진 다른 저자들과 달리 인용문과 세밀한 분석으로 통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특유의 날카로운 독설이 완화되어 있지만, 시오랑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냉혹하다.

인간은 선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 원한, 질투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다. 경쟁과 투쟁으로 피로한 인간은 열렬하게 유토피아를 염원한다. 유토피아는 가능할까? 아니다. 유토피아는 경직과 침체를 피할 수 있는 개념으로 유용하지만 결코 실현된 수도 없고, 실현되어서도 안 되는 이상향이다. 악의 어둠이 사라지고 빛만 존재하는 일원성의 세계, 갈등과 다양성이 진정된 세계, 영원한 현재가 지배하는 정체된 세계, 그 유토피아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그 획일성과 단조로움에서 인간은 질식한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유토피아와 반대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역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역사의 본질은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돌발성이다. 변화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의 의식은 선택의 가능성을 열며 자유를 갖게 하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간은 의식을, 자유를, 지식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용기를 내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구원을 인간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시오랑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본주의적이다.(p.7)

 


 

시오랑은 이 책에서 유토피아, 종교(가톨릭), 러시아, 사회주의에 대해 천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11년 루마니아 태생이다. 익숙한 이름 시오랑도 아니고 ‘치오란’이라고 한다. 루마니아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베를린 대학교에서 장학금으로 수학했지만 철학적 에세이, 개인 사상가로의 활동이나 책쓰기에 몰두했던 것 같다. 루마니아로 돌아가 잠시 철학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1937년 프랑스 문화원 장학생으로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수업과 논문 쓰기를 버리고 프랑스 전국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직후 1947년 조국 루마니아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동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회주의 소련 치하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책에서 나와 있지는 않은 사실이고 단순히 독자의 추정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명분이든 동방정교의 명분이든 러시아는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명성을 무너트릴 운명을 타고났다. 러시아인들이 가톨릭의 목표를 용납하려면 자신들의 사명과 계획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 치하의 러시아인들은 가톨릭이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도구라고 규정하고 ‘저주’의 기도를 했다. 지금은 가톨릭을 반동의 앞잡이 사탄으로 생각하고 옛날의 저주보다 더 강도 높은 욕설을 퍼붓고 있다. 곧 모든 무게와 힘으로 가톨릭을 침몰시킬 것이다. 금세기 깜짝 사건의 하나로 베드로 성자의 마지막 후계자 교황이 사라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p.51) -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 중에서

 


 

시오랑은 학계나 사상가, 철학자들과의 교류를 하지 않은 채 프랑스어로 쓴 책들에서 절제된 아포리즘적 절규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고 한다. 『해체의 개설(Precis de decomposition)』, 『고통의 삼단논법(Syllogismes de l’amertume)』(1952), 『존재의 유혹(La tentation d’exister)』(1956), 『역사와 유토피아(Histoire et utopie)』(1960), 『고백과 저주(Aveux et anathemes)』(1987) 등이 연달아 출간됐다. 여러 차례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수상을 모두 거부했고 생계를 이을 수입도 없어 단 한 차례 1950년 리바롤(Rivarol)상을 받았다. 이때 생계가 어려웠기에 그 상이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시오랑은 특히 유토피아에 대한 강한 플라톤 이후 현대 사회까지 유럽 사회에서 떠나지 않는 욕망일 뿐이라고 강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유토피아, 즉 지상에 이상사회를 건설하고 싶다는 이념은 허구라는 사실에 방점을 둔다. 유토피아에 대한 주장과 추구는 이미 그들이 말했던 완전함이란 결점이었고, 참신한 희망이란 재앙이었다는 것이다. 감상적으로 상상했던 사회 유형이었지만 실제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고.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데, 동시에 이 말은 '좋은(eu-)', '장소'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서유럽 사상에서 유토피아의 역사는 보통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이상국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러나 정확히는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1516)를 시초로 하여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1623),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1627) 등 근세 초기, 즉 16∼17세기에 유토피아 사상이 연이어 출현한 시기를 그 탄생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유토피아는 중세적 사회질서에서 근세적 사회질서로 옮아가는 재편성의 시기를 맞아, 또는 거기에서 생기는 사회 모순에 대한 단적인 반성으로서, 또는 근세 과학기술 문명의 양양한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생긴 것이다. 전자의 예로는 종교개혁 사상 가운데 가장 과격파인 '천년지복설(千年至福說)'의 비전을, 후자의 예로는 『뉴아틀란티스』를 각각 그 전형으로 들 수 있다. 이들 유토피아의 비전은 또한 18∼19세기의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이상사회의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근세의 유토피아 사상과, 나아가서는 루소 등의 원초적 자연상태로서의 황금시대에 대한 꿈이나 플라톤의 이상국에 대한 꿈까지를 포함하여 일관된 특징은, 그것들이 이상향을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하면서도, 실은 어디까지나 현세와의 시간적·공간적 연속선상에서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즉 유토피아는 '도원경(桃源境)'이니, '황천국(黃泉國)'이니, '하데스(Hades)'니 하는 원시시대 이래 인류 일반에게서 볼 수 있는 '타계관념'처럼 시공을 단절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에른스트 브로호, 마르쿠제 등 20세기 유토피아 사상의 계승자들의 사상에 있어서나 또는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등의 20세기의 '역(逆) 유토피아' 사상에 있어서도 같다.

시오랑은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주장했던 카베의 공상 소설 『이카리아 여행』을 예로 인용한다. 토머스 모어에서 캄파넬라, 카베, 푸리에까지,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쓰여진 수많은 유토피아 문학을 섭렵한 시오랑은 거기에 그려져 있는 악의 부재와 사람 냄새의 부족을, 인간이 모두 로봇으로 되어버리는 환경에 깊은 위화감을 느낀다. 유토피아에서는 비정상적인 사람, 이단자, 모양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고뇌에 시달리고 목까지 악에 잠겨 있다. 그런데 이런 관리와 질서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악의 어둠이 사라지고 빛만 존재하는 일원성의 세계, 갈등과 다양성이 진정된 세계, 영원한 현재가 지배하는 정체된 세계, 그 유토피아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그 획일성과 단조로움에서 인간은 질식한다. 유토피아 기술에서 시오랑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예외는 『걸리버 여행기』로 스위프트가 그린, 그 희망이 가득한 나라뿐이다. 시오랑의 주장이 예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시오랑은 러시아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을 서슴지 않는다. 마르크스, 레닌의 사상도 유토피아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들 간 불평등 해소, 같은 민족 내 평등의 진전 그리고 인류의 완성이다."라는 콩도르세(1743~1794,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의 말에 대해 역사는 이 주장을 긍정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실제 사회를 관찰하면서 우리의 희망이 어디서나 항상 실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좌절해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고 언급한다. 타키투스와 같은 역사학자들에게 이상적 로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비유함으로써 스스로의 주장에 힘을 싣는 듯하다.

그는 "비극은 역사의 핵심이고 결정이다. 유토피아는 비극에 반대된다. 유토피아에는 비이성도 없고, 복원 불가도 없다. 유토피아라는 완벽한 사회에서는 갈등이 멈추고, 인간들의 의지가 억제되고 진정되어 기적적으로 하나가 된다. 우연이나 모순과 같은 성분이 사라지고 단일성이 지배한다. 유토피아는 위험한 이성주의와 인간적 순결주의가 합성된 것이다.

"사람은 불가능에 부딪혀야 행동한다. 유토피아를 생산할 능력이 없고 거기에 헌신할 능력이 없는 사회는 딱딱하게 굳어져 망한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현자들은 주어진, 가지고 있는 행복에 만족하라고 한다. 인간은 거부한다. 그 거부를 통해서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꿈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p.149) - 「유토피아의 메커니즘」 중에서

 


 

저자 : 에밀 시오랑(Emil Michel Cioran)

1911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에밀 시오랑은 1937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며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은 ‘치오란’이 아니라 ‘시오랑’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졌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베르그송’에 대한 논문으로 학사 과정을 마쳤다. 1933년에 독일 훔볼트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했지만 체계로서의 철학에서 멀어져 철학적 에세이, 개인 사상가로서의 글쓰기에 경도된다. 1934년 첫 책 『절망의 정점에서(Pe culmile disper?rii)』를 출간했고, 1936년에는 루마니아로 돌아가 잠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7년에 프랑스 문화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로 가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수업과 논문 쓰기를 접어두고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모국어로 쓴 책 『사유의 석양(Amurgul gandurilor)』(1940년)을 출간하고 난 다음 1947년 이후에는 루마니아어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9년 프랑스어로 쓴 첫 책 『해체의 개설(Precis de decomposition)』이 출간되었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고통의 삼단논법(Syllogismes de l’amertume)』(1952), 『존재의 유혹(La tentation d’exister)』(1956), 『역사와 유토피아(Histoire et utopie)』(1960), 『고백과 저주(Aveux et anathemes)』(1987) 등의 책을 출간하며, 고독과 처절하게 맞선 글쓰기, 절제된 아포리즘적 절규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여러 차례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수상을 모두 거부했고, 단 한 차례 1950년 리바롤(Rivarol)상을 받았는데, 생계가 어려웠기에 그 상이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95년 6월 20일, 파리에서 숨을 거두어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역자 : 김정숙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4대학Paris IV Sorbonne에서 프랑스 현대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배재대학교 주시경대학 교수 및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프랑스어권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역서로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사전: 알제리 소수민족의 삶과 역사』, 『북아프리카지역에서의 부족집단 간 갈등 양상에 관한 기초연구』(공저), 『마그레브: 북아프리카의 민족과 문명』(공역)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프랑스어권문학: 탈식민화 기획과 실천의 가능성」, 「마그레브 프랑스어문학: 모호한 정체성과 위상」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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