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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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써 등단한 뒤 60년 동안 시만 써온 시인 김종해가 산문집을 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그는 '서문' 「불 켜진 시인의 주마등(走馬燈)을 바라보며」에서 소감을 밝힌다. "작은 산문집 하나 세상에 내놓습니다. 저의 첫 산문집이자 마지막 산문집이 될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가 그것입니다. 이 책 한 권을 엮는 동안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지난날의 주마등을 그림으로 보는 듯 그 안에 담긴 한 시인의 삶의 흔적과 행로가 한 컷, 한 컷 모두 덧없고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원고들 모두 불태워버리지 못한 것 또한 이미 늦었습니다. 이 한 권의 산문집을 펴냄으로써 시인으로서 지녀야 할 언어의 엄격한 통제와 자정 능력을 잃고 말았기 때문입니다."(p.5)

시인이나 소설가 등 중 일부 문인들은 수필 쓰는 것을 유난히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책의 저자 김종해 시인이 그런 것 같다. 그는 심지어 산문집을 내는 것을, 시인으로서의 엄격한 언어 통제와 자정 능력을 잃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시 이외의 장르인 산문 쓰는 일을 외도라고 생각했던 '시의 연결성'은 아직도 시인은 갖고 있다고 항변하듯 말한다. 소설가 황순원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소설가로 불리워지길 원했고, 단 한 편의 수필도 남기지 않았다고 전해 들은 바 있다. 이 때문에 김종해 시인이 산문집 내며 변명처럼 '서문'에 썼던 글은 '마지막' 작품을 쓰는 적절한 장르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이기에 평생 써온 시보다 산문을 택했을까? 이 책에 해답이 있다. 60년 여를 시와 함께 살았지만 언제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문우들이고, 가족이었을 것이다. 특히 어머니와 가족들은 실제로 세상을 떠나 곁에 없어도 시인은 떠나보내지 못했다고 생각이 든다. 이를 시로써 녹여내지 않고, 평생 안 쓰던 산문을 썼을까? 하는 질문에 하나의 '연결성'을 이유로 내세우게 된 것이란 생각도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시인의 마음과 아련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 등 시로써 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남아 마지막엔 산문으로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혹은 옳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처럼 축약과 상징, 은유를 사용하는 언어보다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산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아무튼 그의 마음을 읽어보려면 이 책은 읽어야 한다. 독자도 사실 그의 시를 많이 읽어본 기억은 없다. 어떤 시를 써왔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남긴 산문을 통해 그의 시와 시 세계, 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를 함께 기대한다.

"제가 쓴 모든 산문은 시와 시인을 이야기하고,

시와 시인이 그 구심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날까지 저는

누구보다 시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시인의 이름을 갖고 싶습니다.”(p.6)

 


 

1963년 문단 데뷔 이래 처음으로 펴내는 산문집인 이 책에는 시인 김종해의 젊은 시절부터 오랜 세월 시인으로 살아온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와 접목된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시인이여, 시를 떠나라!〉에서는 시를 향한 시인의 구도자적 마음가짐을 엿보게 하고, 2부 〈나의 문학 요람을 흔들어주었던 이들〉에서는 시인이 60년간 문단 활동을 해오며 인연을 맺었던 문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시인과 시 세계를 함께 걸어온 우리 문단의 지성들이 빚은 에피소드를 통하여 낭만과 서정의 감상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산업화 시대의 한중심에서 나오는 감성, 아날로그 감성에 흠뻑 취할 수 있다. 3부 〈시가 된 유년 삽화〉에는 시인으로서 삶의 바탕이 된 저자의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가 실려 있고, 4부 〈그 약을 다 먹으면 나는 잠들리라〉에는 시 작품의 배경과 단상이 담겨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시인은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점원 생활을 했다. 그것마저 여의치 못해 야간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부산에서 속초를 운항하는 500톤짜리 알마크호 여객화물선을 타게 되었다. 이때의 선상생활 체험은 시인이 된 이후 시인에게 중요한 시의 소재를 제공했는데, 연작시 「항해일지」가 바로 그것이다. 「항해일지」는 바다를 항해하는 수부의 기록이 아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 도시에서 노를 젓고,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화되어 있다.(p. 157)

"나는 아직 『항해일지』를 나의 대표시집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연작시 「항해일지」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는 것은 내가 살아온 누더기 같은 밑바닥 삶의 싸움과 사랑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연작시 형태로 재현해가고 있다는 재미 때문이다."(p.225)

 


 

시인은 서정주와 박목월, 황순원, 김춘수 등 학교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문인들과의 교류도 굉장히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문학 등대의 빛으로 삼았던 시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릴 때(17세) 김종해는 파랗게 불꽃을 내뿜는 철공소 용접기를 들었고 500톤 여객화물선을 탔다. 그러나 가슴속 이글거리는 10대의 열정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절실한 삶의 기록을 끊임없이 시화(詩化)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실함은 이후 「항해일지」 연작시로 이어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 김종해 시인의 문학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 서구 소재의 천마산에서 출발함을 볼 수 있다. 그는 말한다. “내 시 의식의 원천이며 모태인 초장동은 언제나 꿈속에서 시공을 뛰어넘어 나타난다.”(p.136)

특히 박목월 시인과의 만남과 인연으로 박목월 시인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물론 시 쓰는 것을 가르쳐준 스승은 아니지만, 열심히 찾아뵌 덕에 저자의 시와 시 세계의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것도 느낌을 줄 만하다. 그와의 일화도 소개한다. 상을 쾅 치고 나서 나는, “목월 선생, 할 말 있소!” 하였다. 좌중은 경악했다. “와 그라노? 할 말 있거든 해봐라.” 목월 선생의 부드러운 말이었다. 다음 순간 나의 주먹이 음식상을 또 내리쳤다. 음식 그릇들과 술잔들이 또 튀었다. “남수 선생, 할 말 있소!” 또다시 그릇들과 술잔들이 튀어올랐다. “한모 선생, 할 말 있소!” (중략) 전날 일어났던 그 무례함과 추태는 나 자신으로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모욕감을 주었다. 심한 위축감과 죄책감과 숙취로 찌든 채, 아침에 원효로의 목월 선생께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은 화들짝 웃어댔다. 그 웃음은 부끄러움 속에 꽉꽉 밀폐해놓은 나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래, 닌 술을 고거밖에 못 마시나, 우째 그래 주량이 작노? 하하하…….”(p.50~51)

 


 

박목월 시인과의 인연은 시인의 결혼식 주례를 설 정도로 진하게 이어졌다. 다동 '호수그릴'에서 박목월 선생 주례로 〈현대시〉 동인의 축하를 받으며 치른 부인 박영자 여사와의 결혼식(1971년). 3살 연상의 여대생에게 무작정 대시한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사랑 고백은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으며 결혼에 이르게 되었고 두 사람은 당시에는 드물게 1964년 동거를 먼저 시작하고 7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렸다. 미당 서정주와 목월은 스승의 예로써 숭배하였고, 스승의 댁이 있는 공덕동과 원효로는 가난한 젊은 시인들의 성지였다. 무엇보다 공덕동의 미당 선생 댁은 명절날이 아닌데도 항시 북적대었다. 미당 선생이 목탁을 두드리면 그 소리를 듣고 방옥숙 사모님이 술과 안주를 끊임없이 내오셨다. 미당 선생은 아들 또래의 우리를 술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해주셨다. 문단에 갓 등단한 60년대 중반부터 이미 우리는 미당의 아호 앞에 ‘시성’이라는 호칭을 각자 마음속에 새겨놓고 있었는데, 미당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되새겼다.

두 분을 정성으로 모시고 예도 갖췄지만 저자는 서정주의 시를 극찬한다. "러시아에 푸시킨이 있고, 인도에 타고르가 있다면 한국에는 미당이 있다. 시의 깊은 맛과 오묘함, 시정신의 넓이와 높이를 서로 재고 견줄 수는 없지만, 미당에겐 시인 최고의 호칭 '시성'이란 호칭을 붙여준다 해도 과하지 않다. 한국 현대시사 100년을 통틀어 한 사람의 시인을 호명하라고 한다면, 나는 내 시 읽기의 식성대로 서슴지 않고 미당을 뽑겠다. 릴케와 엘리엇, 칼릴 지브란, 미당과 목월, 김춘수, 김수영, 고은, 이어령은 나의 문청 시절 어둠 속의 등불이었고, 밑줄 친 문학 교과서의 한 문맥이었다."(p.118)

 


 

종로 3가에 있던 문학세계사 사무실은 한국시인협회 사무실도 겸하고 있어서 문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또 각 일간지의 문학 담당 기자들도 무시로 드나들면서 어김없이 바둑판과 고스톱판의 장이 서곤 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원로시인 박남수 선생도 귀국하면 들러 후배 시인들과 회포를 풀던 곳, 최하림 시인과 김원호 시인의 출판사도 잠시 둥지를 틀었던 곳, 1980년대 문학세계사 흑백 사진에 찍힌 추억의 한 풍광이다. 바둑과 고스톱과 술판은 그칠 날이 없었고, 만나면 즐거웠다. 고스톱을 막 배우기 시작한 정한모 선생에게 박현태 시인이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선생님, 똥 잡수이소, 똥!” 좌중은 웃음판이 되었다. (p. 79)

 

저자 : 김종해

부산에서 태어났다. 1963년 《자유문학》지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문학세계사(1979년)를 창업, 지금까지 3천여 종의 문학 관련 도서를 발행하였고,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를 간행하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발기위원,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 제34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상, 구상문학상 본상, 공초문학상, PEN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그밖에 한국출판문화상, 대한민국문화훈장 보관을 수훈했다. 시집으로 『인간의 악기』 『신의 열쇠』 『왜 아니 오시나요』 『천노, 일어서다』(장편서사시) 『항해일지』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별똥별』 『풀』 『봄꿈을 꾸며』 『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 『모두 허공이야』 『늦저녁의 버스킹』이 있고, 시선집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무인도를 위하여』 『우리들의 우산』 『어머니, 우리 어머니』(김종해·김종철 형제 시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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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크라시 - 극우의 반란, 미국 민주주의의 탈선
전홍기혜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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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주의는 팬데믹19 아래서 극우 음모론의 심화, ‘선거사기론‘과 극우 세력의 의회 난입, 백인우월주의와 총기 소지, 극심한 빈부 차이 등 산적한 현안에 손도 못 쓰고 기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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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크라시 - 극우의 반란, 미국 민주주의의 탈선
전홍기혜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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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노크라시』의 제목으로 쓰인 단어는 낯설다. 특히 민주주의 체제의 나라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아노크라시(Anocracy)'는 독자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단어라는 점을 인지해서인지 책 시작하기도 전 가장 앞자리에 단어의 뜻을 새겨넣었다. "아노크라시는 민주주의(데모크라시, Democracy)와 독재(아토크라시, Atutocracy)가 혼합된 상태"를 말한다고 적었다. 독재를 아토크라시로 쓰인다는 것도 독자가 몰랐으니... 영어의 짧음을 느낀다. 인터넷을 통해 이 단어의 쓰임새를 찾아냈다. 2021년 12월 22일자 서울신문 칼럼이다. "옛 소련의 몰락을 학술적으로 예측해낸 것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정치학자 요한 갈퉁은 2016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출이 미국의 쇠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요즘 미국의 후퇴를 확인시켜주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11월 스웨덴 싱크탱크 IDEA는 미국을 ‘퇴보한 민주주의국가’ 목록에 올렸고 바버라 월터 미국 UC샌디에이고 정치학과 교수는 내년 초 출간하는 책 ‘어떻게 내전이 시작하나’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아노크라시(anocracy)’ 수준으로 후퇴했다고 진단했다."

이 칼럼에서도 아노크라시는 민주주의(democracy)와 독재(autocracy)의 중간쯤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우간다·캄보디아 등이 이에 해당된다. 1946년 유태계 독일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쓴 ‘유토피아의 협로’를 영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아노크라시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우리말로는 부분적 민주주의, 혼합제, 중간 상태 등으로 번역된다. 시리아·레바논 등 내전국을 연구해온 월터 교수는 아노크라시로 접어든 미국에 내전 발발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트럼프 이후의 미국이 ‘초기 충돌’ 단계를 지나 위험 상황으로 진입했다고 분석했다."고 용어 풀이를 덧붙였다.

 


 

이 용어 외에 독자는 얼마 전 생소한 단어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카키스토크라시』란 책이다. 그때도 책 제목이 눈길을 확 잡아 끌어서 읽었다. 카키스토크라시. 전혀 들어본 기억이 없는 생경한 단어여서 눈에 더 띄었다. 부족한 외국어 실력으로 유추해보려 하지만 뒷부분 '크라시(cracy)'를 보고 어떤 정치체제나 이념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민주주의(Democracy)는 고대 그리스 어의 민중을 뜻하는 '데모스(demos)'와 지배 또는 권력을 뜻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서, 민주주의란 곧 '민중에 의한 지배'를 말한다. 즉,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말한다고 배웠다. 이를 토대로 '카키스토'의 뜻만 알면 어떤 단어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다. 신조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답답하다. 제목 밑에 '잡놈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란 부제를 달았으니 어떤 뜻인지 윤곽이 잡힌다. 다행히 출판사 측에서 책에 끼워넣은 책 안내서에 친절하게 설명이 돼 있다.

이에 따르면 '카키스토크라시'는 '가장 어리석고 자격 없고 부도덕한 지도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다. 이 책 『카키스토크라시』의 저자는 부패한 기업가들과 지도자들을 여럿 소개하면서 기울어진 사회의 지형을 촘촘히 묘사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은 예견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미 '잡놈'형 인간이 번창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던 미국 사회를 고찰한다. 또 한국 사회가 이러한 미국 사회의 병폐를 빼닮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우리 '정상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카키스토크라시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건전한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잡놈'들의 지배에 저항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지 비전과 논거를 제시하려 한다. 가치 체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분명 유의미한 독서가 될 것을 바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이처럼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의 단어를 볼 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 앞 두 단어 모두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과 4년만에 재당선을 하지 못하고 현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이 보여준 미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듯해서 남의 나라 일이지만 영 못마땅하다. 이 책 『아노크라시』는 전홍기혜 저자가 2020년 미국 대선을 취재하며 보고, 듣고, 몸소 체험한 미국 민주주의의 균열된 모습을 담았다. 또한 한국인, 나아가 동양인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미국 민주주의. 미국 사회의 속내를 보여 준다. 팬데믹 이후 더욱 위험해 보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균열의 이유와 시작점을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사, 사회, 정치, 문화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전홍기혜 기자는 그 속을 들여다보며 미국의 극우 세력, 백인우월주의, 인종 차별, 총기 소지권, 선거 제도, 포퓰리즘 등의 태동과 현재의 모습을 좇는다. 미국 민주주의의 탈선과 그 민낯을 살피게 하는 『아노크라시』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하고 나아가 한국의 정치 상황과 사회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아무도 미국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거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중략) 그러나 미국은 민주주의와 독재 국가 중간의 무질서를 의미하는 아노크라시(Anocracy) 상태다.” UC 샌디에고대학교 바바라 월터 교수가 한 말이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미국이 아노크라시 상태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사실, 미국 민주주의에 균열이 생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팬데믹 발생 이후 그 균열이 더욱 도드라지고 커지고 있다. 총기 난사 사건, 증오 범죄, 혐오 범죄에 이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되면서 급기야 2021년 1월 6일에는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이 일어났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지난해 11월 3일 치러진 미 대선은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했다. 많은 여론조사와 정치 평론가들이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었을까? 숫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 얻었던 약 6300만 표를 1,000만 표 가까이 많은 약 7,422만 표를 얻었다. 바이든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조 바이든 51.3%, 트럼프 46.8%로 4.5%p 차이에 불과했다. 수치만 놓고 봤을 때 지난 4년간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국민의 수는 오히려 불어난 것이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다음 행보는 당연히 '선거 부정'을 주장했다. 격한 논쟁과 시위, 비난으로 얼룩진 미 대선은 급기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으로 확대되고 말았다. 미 의회 사상 초유의 불미스런 일이라고 한다.

바이든 측은 "세계의 롤 모델인 미국의 민주주의에 결정적 해악을 끼쳤다"며 트럼프의 탄핵에 나섰다. 그러나 탄핵은 하원 통과 후 상원에서 인용되지 않았다. 상원의원 3분의 2의 의결 정족수에 모자란 것이다.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미국 민주주의에 역사상 가장 험한 오점을 남긴 사례라고 규정했다. 바이든 당시 당선자는 정상적으로 1월 20일 취임했지만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트럼프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극우 트럼프 세력이 미국 각지에 많이 남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궁극에 가서는 소멸될 것이라는 일부 정치인들의 전망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저자는 서늘하게 장담한다. "영원한 제국이란 없고, 강대국은 언젠가 몰락하게 되어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실패했고 '정상인'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가 취임한 후에 미국이 정상 국가의 모습을 쉽게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게 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또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1980년대부터 본격 시행된 로널드 레이건과 공화당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것이 낳은 사회 기풍이 가져온 필연적 귀결로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학계는 또 제2의 트럼프의 등장 혹은 트럼프 본인의 재선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임을 시사한다. 분명 심상치 않은 징조들이 보인다.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들이 나서서 트럼프의 인품을 비판하고, 능력 부족과 비리 행적을 지적해도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라고 맞받아친다. 다시 4년이 흐른 뒤에 이들 중 얼마가 마음을 바꿀까? 트럼프의 등장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판단은 여기서 기인한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바뀌면서 정말 삽시간에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는 병 자체가 아니라 병의 두드러진 증상일 뿐이다. 미국이 앓고 있는 병은 오랜 시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심화된 것이다.”(p. 150) 질주하던 한 명의 ‘특출난 잡놈’을 치웠으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얘기다. 올해 치러진 미국 조 바이든 중간 선거 격인 상·하원 의원 일부 지역 선거에서 상원은 동수(의장 캐스팅보트), 하원은 여전히 공화당 강세로 재편됐다. 미약하지만 조 바이든의 민주당에게 조금은 힘이 쏠린 느낌이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한 세기 만에 찾아온 펜데믹: 극우 음모론이 심화한 재난」, 2부 「'선거사기론', 미국 민주주의를 흔들다」, 3부 「문화전쟁과 포퓰리즘: 백인우월주의의 작동 기제」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보여준 미국 사회는 극심한 인종차별, 자본주의의 심화, '극우'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 등을 중점적으로 취재했다. 저자는 '들어가며' 「팬데믹이 시작되다」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재난은 그 사회의 갈등을 극대화해 보여 준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 착용 거부, 백신 접종 거부 등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아시안 증오 범죄, 2021년 의회 폭동에 이르기까지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미국이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극우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의 이름을 딴 '트럼피즘'으로 불렸던 정치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의 자부심을 훼손하는 진짜 재난이었다."(p.9)

 


 

이 책은 3부 「문화전쟁과 포퓰리즘: 백인우월주의의 작동 기제」에서 아시안 증오 급증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가장 실제감을 줄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미국 정치와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면 인종차별로서의 사회 문제 등에 대해 집중 분석한다. 이 파트에서는 독자가 가장 관심이 쏠렸던 부분은 '아시안 대상 '증오' 와 '폭력'의 역사를 다룬 박스 기사다. 이 기사에서 저자는 "미국이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인종적 폭력의 역사는 유구하다"고 말한 뒤 "뉴욕 빙햄턴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정청세 선임 연구원의 말을 인용한다. "미국 내에서 커뮤니티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갈등과 위기가 불거졌을 때 쉽게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를 보여주는 사건은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 독자가 임의로 10개만 간추려 여기에 적는다.

① 1871년 LA '중국인 대학살': 백인과 중국인 폭력 조직 사이의 갈등이 비화돼 수백 명의 백인과 히스패닉이 LA 차이나타운을 습격해 20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사망한 사건이다.

②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강제 수용소 수용: 진주만 공습 뒤 행정명령에 의해 일본계 거주자 20여만 명이 강제 수용되고 재산도 몰수당했다. 이들 중 80% 가량이 미국 시민이었다고 한다.

③ 1885년 록 스프링스 중국인 대학살: 와이오밍주의 광산에서 백인 광부들이 중국인 광부들을 공격해 28명이 숨진 사건이다.

④ 1982년 빈센트 친 살해 사건: 디트로이트 외곽에서 중국계 청년 빈센트 친이 일본인으로 오해받아 '일본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침식하고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이유로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이다.

⑤ 1992년 LA 폭동: 흑인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경찰관들의 무죄 판결로 분노한 흑인들이 한인타운을 습격해 6일 동안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던 사건이다.

⑥ 귀화법(1790년): 미국에서 2젼 이상 거주한 이민자 중 좋은 평판을 가진 자유 신분의 백인 이민자에게만 귀화 자격을 부여했다.

⑦ 페이지법(1875년): "부도덕한 목적"을 가진 여성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기 위한 법. 이는 아시안 여성들에 대한 성적 편견을 드러내는 법으로 주로 중국 여성들의 입국을 막는 용도로 활용됐다.

⑧ 중국인 배척법(1882년): 중국 출신 노동자들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고 시민권 부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단일 출신 국가를 상대로 한 입국금지 조치는 이 법이 유일하다.

⑨ 이민법 개정(1917년): 일본과 필리핀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에서 이민을 금지했다.

⑩ 인종 간 결혼금지 정책(1931년): 아시아인 비율이 가장 높았던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많은 주에서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취업 등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왔던 한국인들도 당시 단독 이민만 가능했고, 인종 간 결혼을 금지했기 때문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저자가 책 뒷 부분에 '나가며' 「분열된 미국의 앞날은」에서 말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나라라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절실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저자는 이미 미국 정치 분열에 오랫동안 천착해 『미국은 더 이상 그 미국이 아니다』라는 책을 쓴 경희대학교 안병진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후기를 대신한다. "향후 미 연방은 계속 더 분열되는 미국이 될 것이다. 아직도 미국을 건국 시조들의 자유주의 사상이 공통의 지반으로서 작용하는 나라로 낭만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지금의 미국은 선거를 통한 민의에 대한 반응성, 견제와 균형, 법적 지배, 개인 존엄 등 자유주의, 헌정주의, 민주주의라는 공통 가치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적 원리로 작용하지 않는다. 바이든은 취임 후 "미국의 귀환" 을 선언하며 트럼프 집권 당시 후퇴했던 민주주의의 복원과 통합을 약속했지만 실패했다. 안 교수는 "지금 미국은 어떤 정치 세력이 등장해도 공통의 지반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혼돈의 이행기"라고 분석했다.

 

저자 : 전홍기혜

 

23년 차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오마이뉴스》, 《참여연대》를 거쳐 현재 《프레시안》에서 정치, 사회, 국제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으며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기자로 일한 덕분에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도상(2018년)을 받았고,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대한 심층보도 등으로 아동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2018년 제96회 어린이날 유공자)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 등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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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달력 - 영감 부자를 만드는 하루 한 문장
정철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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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매일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짜증은 같은 일만 되풀이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겉만 보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겉, 사물의 표면, 천지의 변화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입을 모은다. "나름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 일상은 똑같다. 좋은 걸 봐도 예전만큼 감동이 없다. 새로운 걸 경험할 기회마저 점점 줄어든다." 이 책 『영감달력』을 쓴 저자 정철은 카피라이터다. 광고 문구나 메시지 작성하는 일이다. 보는 것만 보고 쓰는 말만 쓰고 하는 생각만 하느라 머리가 굳어진 35세 이상을 뒤집어 깨울 아주 특별한 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사람이 먼저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등 명카피를 탄생시킨 국가대표 카피라이터 정철의 『영감달력』이다.

『영감달력』에는 재미도 새로움도 감각도 떨어져 가는 35+ 독자를 위한 영감이 1년 치나 들어 있다. 무려 36.5년 차 카피라이터이자 십수 년간 책을 써 온 저자가 그중에서 ‘내가 봐도 잘 쓴 글’ 365개를 직접 뽑고, 그 글이 주는 인사이트를 놓치지 않도록 ‘새로 쓴 질문’ 365개를 실었다. 그동안의 책들을 집대성한 저자의 베스트 앨범 같은 책이자, 모든 페이지가 다르게 디자인되어 넘기는 것만으로 자극을 주는 본문과 영감을 숫자 0으로 풀어낸 고급스러운 표지까지 세련된 멋를 자랑한다.

 


 

저자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모든 날에 글 하나씩을 주었는데 35+에게 필요한 글뿐 아니라 그날, 그달, 그 계절에 걸맞은 글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하루에 글 하나씩 읽도록 구성되어 부모님, 친구, 연인 등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하게 선물할 수 있다(20대 독자는 숨어서 읽어 주길 바란다). 삶에 변화가 필요할 때, 아이디어를 짜야 할 때, 업무가 안 풀릴 때 이 책을 열어 보자.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던 당신의 영감과 기발한 글감,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맞는 반가운 한 문장까지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루 한 문장으로 만나는 ‘정철 베스트 카피 컬렉션’이다. 10년 이상 10여 권 넘게 책을 써 온 저자가 그중에서 ‘내가 봐도 잘 쓴 글’을 직접 뽑았다고 한다. 『카피책』 등 스테디셀러뿐 아니라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저자의 초기작 『세븐 센스』, 『학교 밖 선생님 365』 등에서도 글을 건져 올렸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글이 무려 365개다. 저자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모든 날에 글을 하나씩 주었다. 선택이 많아진 30대에 필요한 글, 노안이 찾아오는 40대를 위한 글, 은퇴하면 뭐 할지 고민하는 50대의 생각을 바꾸는 글 등 그 나이대에 필요한 글뿐 아니라 지구의 날엔 지구를, 고래의 날엔 고래를, 커피의 날엔 커피를 붙들고 쓴 글을 주었다. 그 나이에, 그날에, 그 계절에 걸맞은 글을 줌으로써 이 책은 한 권의 두툼한 달력이 되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글에 어울리는 새로운 질문을 하나씩 썼다. “이 날에는, 이 글에서는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시지요” 하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글이 주는 인사이트를 꼭 붙들게 해 주는 질문을 가장한 또 하나의 글을. 묵직한 통찰과 예리한 발상이 담긴 저자의 질문(이자 간섭이자 또 하나의 글)에 답을 해 보는 것도 내 안에 없던 영감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일력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날짜를 확인하기 위한 일반적 달력이 아니다. 하루 한 장씩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환기시키는 카피라이터의 글. 영감을 숫자 0과 펜촉으로 풀어낸 고급스러운 표지와 모든 페이지가 다르게 디자인되어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 신선한 자극을 주는 세련된 본문까지. 당신을 영감 부자로 만들어 줄 ‘1일 1영감 적금’ 같은 유용한 책이다. 삶에 변화가 필요할 때, 글을 쓸 때, 아이디어를 짜야 할 때, 일이 안 풀릴 때 이 책을 열고 그날의 페이지로 이동하면 기발한 글감과 생각의 힌트를 얻게 될 것이다. 특정 요일이나 연도에 구애받지 않도록 구성하여 언제 어느 날 읽어도 좋은 소장가치 높은 책이다. 오늘, 내 생일, 친구나 가족과의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어떤 글이 있을지 찾아 읽는 것도 추천한다. 독자도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새해에는 이 '달력'과 함께 보내면서 삶의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막연한 확신이 아니다. 몇 페이지만 봐도 독자들은 '마땅한 확신'이 들 것으로 기대된다.

 


 

새해 1월 1일의 페이지를 들춰본다. '1'이란 숫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볼 수 있다.

 

합계보다 큰 수.

1과 1의 합계는 2에 불과하지만

1과 1의 함께는 3이 될 수도 있고

10이 될 수도 있다.

 

합계는 수학이지만

함께는 인문학이다.

 

뭔가 떠오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인가에 대한 선택도 독자의 몫이다.

저자는 질문을 슬쩍 끼워넣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문장 뒤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답을 슬쩍 끼어넣어 완성한다.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내 대답은 이 글의 제목입니다." 본문부터 읽으려는 성급함에 제목을 읽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에 다시 한 번 쳐다본다. "함께"

 


 

1월 6일 페이지에 「김광석이 사는 곳」. 갑자기? 혼란스러웠지만 본문으로 가면 혼란은 사라지고 그곳이 어딘지 찾아낼 수 있다.

그곳은 김현식이 사는 곳.

그곳은 유재하가 사는 곳.

그곳은 신해철이 사는 곳.

그들은 안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겠지.

나중에 그 마을에 가려면 음악을 해야 할까.

기타를 배워야 할까.

딴따라들과 친해져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들처럼 내게 주어진 작은 일에 나를 쏟는 것.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쏟는 것. 지금 쏟는 것. 이게 그 마을로 가는 딱 하나의 길일 거야.

이 페이지에 왜 갑자기 김광석이 나왔는지 '머리말' 「용기가 필요했던 책」의 글 중에서 드러냈다. 이날은 고(故) 김광석의 기일이다.

 


 

12월 31일에는 어떤 글이 적혔을까. 독자의 궁금증은 금세 뛴다.

눈이 내린다.

한 것도 없이 1년이 갔다는 상실감이 머리 위에 내린다.

새해 다짐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어깨 위에 내린다. 나이 한 살 더 먹어야 한다는 무거움이 발등 위에 내린다.

오늘로 끝인가.

아니다. 눈은 세상을 하얗게 덮어준다. 지난 1년 아팠던, 슬펐던, 아쉬웠던 기억 모두 덮어 준다.

그리고 말한다.

새햐얀 도화지를 새로 깔아 줄 테니

처음부터 다시 칠해 보라고.

(중략)

그대, 아직 젊다. 저자는 삼켰던 말을 꺼내 적는다. "마지막 부탁입니다. 따라 읽어 주십시오. 나는 아직, 젊다."

 


 

이 책 『영감달력』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고백한다. 이 책은 용기가 필요했던 책이라고. 기존에 쓴 글을 우려먹는, 내가 나를 우려먹는 책이라고. 그러나 단 한 권으로 카피라이터의 인사이트를 가장 쉽고 빠르게 섭취할 수 있다면, 누구나 맛보고 싶어 할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장식하는 카피 한 줄을 위해 노트 수십 페이지를 메모로 도배하는 저자의 글쓰기 십수 년을 압축한 『영감달력』. 그가 직접 추린 베스트 카피만 모으고, 글에 상응하는 새로운 질문까지 풍성하게 담은 책인 만큼 값진 독서 경험과 확실한 영감을 선물한다. 저자의 팬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베스트 앨범 같은 책이며, 하루에 글 하나씩 읽도록 부담 없이 구성되어 부모님, 친구, 연인 등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하게 선물할 수 있다(35세 이상을 위한 책이므로 20대 독자는 숨어서 읽어 주길 바란다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인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잘 쓴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긴 글을 소화하기 어려운 독서 초보에게도 적극 권한다. 카피라이터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통찰이 궁금하다면, 진짜 잘 쓴 글이 읽고 싶다면, 영감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이 답이다.

 

저자 : 정철

 

오전엔 카피라이터. 오후엔 선생. 저녁엔 작가. 연필 들고 영감 만드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서서히 흰 수염 영감이 되어 간다. 《내 머리 사용법》, 《한 글자》, 《카피책》, 《사람사전》, 《누구나 카피라이터》 같은 책을 썼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정철카피 대표,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초빙교수로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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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고 싶은 수학
사토 마사히코.오시마 료.히로세 준야 지음, 조미량 옮김 / 이아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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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우리의 행위 등에서 의문 나는 부분을 문제로 만들어 수학의 원리와 논리적 사고력으로 다가가 의문을 풀 수 있는 방법을 키워준다. 이로써 수학이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학문이란 것을 영상을 통해 증명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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