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템페스트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예용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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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문호'라고 일컬어지는 셰익스피어는 4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써서 남겼다고 초등학교 때 배웠다.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중 『햄릿』과 『리어왕』은 초등학교 때 읽은 기억이 있고, 나머지 두 작품은 중고등학교 때 읽었다. 또 5대 희극이라고 일컬어지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한 여름밤의 꿈』은 『베니스의 상인』만 초등학교 때 읽었고, 나머지는 모두 대학이나 이후에 읽었다. 어렸을 때 읽은 것은 발췌·번역본일 것이고 모두 동화나 소설처럼 쓴 것이어서 번안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이라 역자도 모르고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에 들어 있던 작품이어서 읽었다. 이때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왜 비극에 안 들어가나?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분은 만나지 못했다.

딱 한 분 아버지만 '5대 비극'이란 말을 해주셨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왜 어렸을 때는 그런 의문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잘 생각이 안 난다.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줄거리와 결말은 대체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 이후에도 연극, 드라마, 소설 등으로 많이 읽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란 짐작만 남아 있다. 이때 독자는 '문학'이란 개념보다는 '책'이란 개념이 더 강했다. 책 읽으면 동화나 소설이었을 때니까. 독자의 경우에 한하는 일이지만··· 아무튼 대학 때는 연극 『햄릿』 등은 여러 번 보았고, 대학로에도 여러 번 갔다. 작은 소극장이지만 『햄릿』, 『맥베스』는 무대 공연을 했다. 그러나 희극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한 번 본 기억이 있고 나머지는 무대에서 보질 못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별칭은 '세계의 대문호'와 함께 '비극 작가'쯤으로 불러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생각이란 걸 이제는 잘 안다.

 


 

이 책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 원작 희곡을 번역했다. 다만 당시 영어로 된 것은 읽기 난해하다고 해서 현대어로 된 것을 번역했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셰익스피어 문학 전문가라면 혹시 당시 말로 쓰여진 작품을 직접 현대 영어로 번역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 '템페스트(The Tempest)'는 폭풍우란 뜻이다. 템페스트란 제목의 예술 작품은 클래식 음악과 그림에서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딘지 익숙하고 뜻과 반대로 정감도 간다. 악성 베토벤도 '템페스트'란 제목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다고 네이버 검색을 통해 살펴봤다.

이에 따르면 베토벤의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 Op.31이 작곡된 시기는 베토벤에게 있어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서 그 절정은 1802년 10월 6일에 작성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위대한 인간의 고립과 그로 인한 정신적 분열이 야기한 사건으로서, 신이 자신을 보다 높은 임무를 위하여 선택했다는 신념 덕분에 이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로 구성된 Op.31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준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세 폭의 제단화와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 16번 소나타인 Op.31 No.1에서 풍기는 그 지성 넘치는 우아함과, 18번 소나타인 Op.31 No.3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신선함은 가운데에 위치한 17번 소나타 Op.31 No.2의 그 우울에 대한 문학적 변용과 함께 어우러지며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콘텍스트를 통해 삶의 버거움에 대한 통렬한 인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보다 자연스러운 접근, 생명과 창조력을 찬미하는 일종의 영웅주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 로맨스극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포용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모든 불화 요소들이 화해와 조화를 이루게 되고 이상적인 세계를 이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작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으나, 셰익스피어가 연극계에서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1611년 무렵에 집필되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기록에 따르면 셰익스피어가 소속된 '국왕 극단(King's Men)'은 1611년 11월 1일 제임스 1세를 위해 이 극을 최초로 공연했고, 셰익스피어가 소재를 빌려 왔으리라 짐작되는 버뮤다 섬 근처의 조난 사건에 관한 체험기 또한 이 시기에 여럿 출판됐다.

이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작가관과 세계관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그의 '최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특히 작품 속 '프로스페로의 에필로그'는 작가이자 연극인으로서 자신의 인생과 무대에 바치는 셰익스피어 자신의 마지막 헌사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역자 신예용 역시 같은 의미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옮긴이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희곡 작품과 다르게 '에필로그'를 마지막에 붙여 '프로스페로의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의 짧은 인삿말을 남겼다. "저는 이제 모든 마술을 다 버렸습니다. 제게 남은 힘은 약하기 짝이 없지요. 그러니 여러분이 저를 여기 가두시거나 나폴리로 보내시거나 하십시오. 하지만 부디 이 섬에서 지내게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제 공국을 되찾았고 저를 속인 자도 용서했으니까요. 여러분의 박수갈채로 저를 이 족쇄에서 풀어주십시요. 여러분의 부드러운 칭찬으로 제가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례적인 이 인삿말은 아마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이젠 극작을 더하지 않겠다는 뜻을 연극에서 밝힌 것으로 문학평론가들은 해석하는 것 같다.

 

 

모두 5막으로 무대에 올린 『템페스트』는 배경은 이탈리아이다. 나폴리와 밀라노란 지명이 나온다. 당시에도 같은 지명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현재 지명으로 표기됐다. 밀라노의 대공 프로스페로는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음모에 의해 딸 미란다와 함께 추방당한다. 오랜 기간 섬에서 체류하며 마법의 힘을 얻게 된 프로스페로는 튀니스 왕과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알론조 왕 일행을 발견하고 태풍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알론조 일행의 배는 난파되고 승선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섬에 오게 된다. 배가 난파되는 상황을 목격한 미란다는 안타까워하면서 아버지에게 태풍을 멈춰 달라 요청한다. 이에 프로스페로는 딸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해 준다. 이에 따르면 밀라노의 공작이었던 자신의 자리를 동생 안토니오에 의해 찬탈당한 데 이어 추방당했으나, 곤잘로가 마법 서적을 포함한 생필품 등을 제공한 덕분에 살아남아 이 섬에 당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다.

태풍으로 조난당한 나폴리 왕은 아들 퍼디난드가 죽었다 생각하고 비통해 하고, 따로 섬에 상륙한 퍼디난드는 아버지가 익사했다고 믿는다. 요정 에어리얼은 주인인 프로스페로의 지시를 받들어 매혹적인 노래로 퍼디난드를 프로스페로의 거처로 유인하고, 그곳에서 첫 대면하게 된 퍼디난드와 미란다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계획대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 것을 알아채지만 퍼디난드의 마음이 가벼운 것일 수도 있단 생각에 이를 시험한다. 그는 퍼디난드에게 캘리밴의 일인 통나무 운반 일을 시키고, 미란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동굴에 가두기까지 한다. 여기에 알론조 왕의 동생인 세바스찬과 안토니오는 잠에 빠진 왕과 충신 곤잘로를 죽이려는 역모를 시도하지만 에어리얼이 잠든 사람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 저지시킨다.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암굴 앞에 모인 알론조 일행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죄를 묻는다. 알론조 왕은 아들을 잃은 애통함 속에서 프로스페로를 모략으로 쫓아냈던 과거의 일을 뉘우친다. 이에 밀라노의 공작이었던 본인의 정체를 밝힌 프로스페로는 그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결국 용서한다. 그리고 암굴의 문을 열어 퍼디난드와 미란다가 다정하게 체스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알론조 왕과 퍼디난드는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되고, 퍼디난드와 미란다의 사랑으로 오랜 앙숙 관계도 해소된다. 이후 프로스페로는 마법의 능력을 모두 버리고 밀라노 공작으로 복귀할 것을 선언하고, 에어리얼을 해방시켜 준다.

역자 신예용은 "『폭풍우(The Tempest)』는 그저 비극이나 희극이라고만은 할 수 없고, 단순히 로맨스라고 보기도 어렵다. 비극과 희극, 로맨스에 가면극까지 결합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친동생에게 배신당하거나 배가 난파되고 아들을 잃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폭풍우』에는 분명 비극적인 요소가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차차 풀리고 해결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비극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는 여러 희극적인 요소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다스리던 공국 밀라노에서 쫒겨난 프로스페로,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결탁하여 그를 무자비하게 내친 친동생 안토니오가 작품의 무거움을 담당한다면, 공기의 요정 어어리얼과 괴상하게 생긴 야만인 캘리번, 캘리번에게 설득당해 프로스페로를 죽이려는 음모에 동참하는 술꾼 주방장 스테파노와 어릿광대 트린큘로는 이 작품에서 장난기와 익살스러움을 맡고 있다. 충직한 노신하 곤잘로와 알론조의 동생 세바스찬, 안토니오가 주고받는 재치 있는 대화도 배신과 음모의 드라마에 경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한다.(p.133~134)

 


 

역자는 이어 "작품에서 로맨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와 알론조의 아들 퍼디넌드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미란다와 퍼디넌드의 결혼에는 두 연인의 만남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밀라노를 다스리는 프로스페로의 유일한 후계자 미란다와 나폴리의 왕자 퍼디넌드가 맺어짐으로써 밀라노와 나폴리의 결합과 동맹을 상징하는 것이다. (중략) 복수를 꿈꾸는 프로스페로가 그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을 다루었으니 작품의 주제를 "착한 자는 복을 받고 나쁜 자는 벌을 받는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 『폭풍우』는 여러 가지 형식이 결합된 다채로운 구성만큼이나 전달하는 메시지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프로스페로는 알론조와 안토니오, 세바스찬이 뉘우치기만 한다면 자신도 복수를 강행하지만 않겠다는 뜻을 비친다. '용서가 복수보다 더 가치 있는 행동'(본문 제 5막 제 1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선과 악으로 명백하게 구분할 수 없는 일이 많지 않던가? 무언가를 빼앗으면 그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뺏긴 사람은 억울하게 당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이렇듯 복합적이고 때로는 선과 악을 판별하기 어려운 지점을 반영함으로써 『폭풍우』는 보다 통찰력 있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거듭난다.(p134~135)

역자의 해석은 소설 문장에 익숙해 있고, 희곡을 통째로 읽는 일이 별로 없는 독자들에게 작품의 이해를 위해 좋은 촉매제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독자도 희곡을 통째로 들고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드라마 대본도 요즘 출판돼 나왔지만 연기자나 극에 관계하는 사람 아니고는 굳이 희곡이나 대본을 읽을 필요가 없을 터이니. 독자가 이 작품 『템페스트』를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일은 독자들의 '상상력'이 무척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경우 영상물은 없지만 문자로 배경이나 분위기, 말(대사)의 의미, 말하는 사람의 표정, 심리 등을 작가가 일일이 말해 주기 때문에 굳이 상상력을 많이 발휘할 공간은 적어지는 셈 아닌가. 물론 모든 것을 희곡식으로 써서 서사로 표현한다면 아마 서사에 대한 흥미는 반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희곡의 독서는 독자로서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됐다.

 


 

저자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564년 4월 23일 존(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영국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살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딸과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이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극작가로 성공했으며 희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후원자 사우샘프턴 백작의 도움으로 궁정에도 출입하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에게 후대를 받아 1594년에는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업적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재산 관리에도 능숙해 상당한 부동산을 구입하여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수많은 희곡 중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를 질투하고 살해하는 비극을 다룬 『오셀로』, 자신에 대한 딸들의 충성을 시험하다 비극을 맞는 『리어왕』,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맥베스』, 그리고 마지막이 이 4대 비극 중 가장 앞서 쓰였다는 『햄릿』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인간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시선은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에 길고긴 생명을 부여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이 그 방증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인물들을 파고들고 해석하는데, 문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가치를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1590년 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더해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했다. 1610년경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셰익스피어는 대저택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서거하여 성트리니티 교회에 안장되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대표 작품으로는 『공연한 소동』, 『12야(夜)』, 『자(尺)에는 자로』, 등의 희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의 비극을 비롯해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 등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의 시집 및 『소네트집』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역자 : 신예용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며, 방송사에서 구성작가로 일했다.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자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용기의 땅 1부 1: 흩어진 무리』, 『물의 무게』, 『히로빈 추격』, 『드래곤 템플의 전투』, 『하루 10분 책 육아』, 『북유럽 공부법』, 『가장 잔인한 달』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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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투쟁 - 청년, 그들의 연대에 홀로 맞서다
정태현 지음 / 열아홉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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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책에서 베껴 쓴 기사를 검증 없이 게재한 ‘오마이뉴스 표절 사건‘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 있고, 선진국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와 책임에 관해 덜 숙성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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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투쟁 - 청년, 그들의 연대에 홀로 맞서다
정태현 지음 / 열아홉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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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마이 투쟁』은 한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여행 에세이)이 표절한 주체에 대해 적절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한 데 대한 투쟁의 기록이다. 거대 언론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 언론사가 어디인지 금세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오 마이 뉴스〉란 인터넷 매체다. 〈오 마이 뉴스〉는 ‘시민 기자’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며 참신한 언론의 출현을 알렸다. 이들은 이후 진보 언론의 목소리를 전하며 ‘정치 팬덤 문화’를 만드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언론사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를 향해서는 높은 책임 의식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시민 기자의 표절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 정태현의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표절한 기사가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자 오마이뉴스 측에 빠른 조치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들의 무심한 대처와 모욕이었다고 말한다. 오마이 뉴스가 정태현 저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힘없는 젊은 무명 작가’라는 사실 뿐이었다. 이에 저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며 진보 진영의 연대와 차가운 시선을 홀로 감내하며 140일 간 투쟁을 벌였다.

이 책은 사실 2014년 출간된 〈오마이투쟁〉(헤이북스)의 내용을 일부 증보한 개정판이다. 이번에 2022년의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는 〈오마이 투쟁〉은 얼마 전 가요계 전반에 만연한 표절 소동으로 일부 인사들이 한바탕 홍역을 치른 가운데, 〈오마이 투쟁〉이 여전히 표절에 관대한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으로 유효하다는 판단에서 출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상에서의 무분별한 표절과 도용 등 지적 재산권 침해 사안이 선진국에 돌입한 대한민국의 출판 문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프롤로그' 「젊은 예술가들을 위하여」를 통해 투쟁 기간의 소회를 자평한다. "무명의 젊은 작가가 언론사를 상대로 사과를 요구하는 건 생각보다 더욱 힘든 일이었다. 나는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권위에 대한 도전을 꺼리는 집단주의, 타당한 이유보다는 사회적 위치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며 문제를 덮는 게 미덕이라 생각하는 한국식 관습과도 싸워야 했다."

저자의 1인 시위를 두고 어떤 이들은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고작 책 한 권 낸 신인 작가가 별것도 아닌 글 표절당한 것 가지고 째째하게 일인시위까지 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럴 시간에 책 한 권을 더 쓰라는 핀잔과 함께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너 하나만 표절당하느냐, 너보다 더 훌륭한 작가들도 다 표절당했지만, 그때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며 작가 체면을 지켰다고 오히려 꾸짖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작가가 품격 떨어지게 직접 일인시위까지 나서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독자는 이런 말이나 충고에 대해 요즘 말로 '꼰대'들의 상투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작권 침해는 법으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가 정보기술 사회로 번지면서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면서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한과 책임 등이 강화된 지가 언젠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별 수 없이 '꼰대'라고 불릴 만하다. 저자는 첫 책을 펴낸 후 표절을 당했다. 표절한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면 안 된다. 당연히 피해자 입장에서 사안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아야 한다. 저자가 표절된 내용을 확인할 때 얼마나 절망감이 들었을까, 그리고 그들 말대로 '좋게 좋게' 해결하기 위해 사과를 요구한 것이고 그 방안으로 표절 매체를 통해 정중히 사과문을 게재하고 재발 방지에 노력하겠다고 써야 한다. 언론에 관한 사항은 독자가 자세히 모르지만 표절하면 표절한 크기(분량)의 기사를 게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의 첫 책은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라는 여행기라고 한다. 독자가 못 읽어봤기 때문에 인터넷의 힘을 빌어 어떤 책인지 대략 살펴봤다. 책 소개글에 "매력적인 여행의 정수만 가려 모은 ‘소설’ 같은 여행기"라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책은 예상처럼 많이 팔리지 않았고, 저자는 다시 글 쓰고, 노동하는 일을 반반씩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책 발간 2년이 지난 후 여행기가 뒤늦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인터넷에 책 리뷰가 달리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지방의 한 라디오 방송국으로부터는 다가오는 새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코너지기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잡지사로부터 처음 원고 청탁도 받고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연달아 오랫동안 끊겼던 강연 요청도 다시 들어왔다고 하니 역시 '인기 작가'나 '베스트 셀러' 작가를 저자는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D포털사이트의 메인를 읽기 시작했다. 〈오 마이 뉴스〉가 송출한 '회사 때려 치고 세계일주? 지옥을 맛보다'란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저자 자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500일 넘게 세계 여행을 다녀온 터라 기사가 궁금했다. 읽던 중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기사에 자신의 책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의 일부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던 것이다. 명백히 저자의 글을 도용해 쓴 기사라고 판단했다. 저자가 쓴 대로 문단이 통째로 베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저자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독자는 책을 내거나 글을 어디에 발표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사전 연락이나 양해도 없이 남의 글을 가져다 쓰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글을 많이 쓰는 기자들도 원칙적으로 취재원을 밝히고, 밝히기 어려운 경우 익명이나 가명으로 쓰기도 한다고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이건 글 자체를 통째로 가져다 쓰면서 사전 양해는커녕 마치 자신이 다녀와 쓴 것처럼 결론 부분마저 왜곡해 썼다면 이것은 표절의 수준을 넘어 도용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실 관계에 입각한 팩트를 쓰다보니 투쟁 기록 등에 중점을 두었으나 독자는 표절을 확인하기까지의 저자의 생활 등에 더 신경이 간다. 잘 다니던 좋은 회사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할 때 어떤 결심이었을지 분명한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원래 작가가 꿈이었다든지, 아니면 뒤늦게 글 재주를 확인 받고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든지. 저자는 전자에 해당된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결혼도 했는데 아내의 허락(묵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됐다는데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독자의 짐작으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고통을 감내했으리라.

저자는 첫 책을 낸 후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흔히 용기 있다고 말하는데, 저는 남들처럼 용기가 있어서 간 게 아니었어요. 현실 도피에 가까웠어요. 회사를 잘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그 허무함이 너무나도 크고 깊어서 도무지 회사에 다닐 수 없을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퇴사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돈은 많이 줬지만 돈 쓸 시간은 주지 않는 회사였거든요. 주말에도 일해야 했어요. 그래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지금처럼 워라밸과 주 52시간이 잘 지켜졌다면 아마 못 떠났을 거예요." 이렇게 다녀온 여행이고, 그 결과로 느끼고 알게 된 것을 자신의 힘으로 쓴 책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분신과도 같은 글을 도용당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던 걸 여행을 통해 알게 됐고, 그 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뀐 결과로 책을 냈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인데 그것을 실현시키자마자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될 줄은 짐작이나 했으랴. 저자의 첫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책일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작가가 꿈인 사람인데. 특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작가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 보는 눈이 확대되었다는 말도 이 책에 남겼는데.

 


 

저자는 처음에는 이 일을 가지고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글을 표절했다고 싸우는 일이란 마치 자기 것을 대단히 좋게 생각하고 챙기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굉장히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을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는 이유는 그들(〈오 마이 뉴스〉)의 태도였다고 말한다. 독자는 물론 이 책, 즉 저자의 주장만 듣고 판단해서 조금 편향되게 판단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언론사는 오보나 사과문 게재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 신뢰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신뢰를 잃으면 생명은 끝이다는 생각에서 그렇다고 말한 언론계 인사의 말을 사석에서 들은 바 있다. 그 말은 기자들이 발로 직접 뛰고 확인하고, 기사를 쓰라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 어쩌면 〈오 마이 뉴스〉도 그런 차원에서 선뜻 사과도 하지 않고, 사과문 게재도 될수록 미루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기자들이 직접 확인하고 기사를 쓰라는 의미의 말을 자신들의 언론사의 방패막이로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힘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참아야 한다는 논리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산 아니었을까. 이제부터는 '감정'이 개입될 소지가 생긴다. 이후는 상식적으로 전개되는 글이다. 작가는 자존심과 품격을 모두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가? 그 사람들의 눈에는 뻔뻔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저자 역시 나름대로의 작가 철학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시대의 지식인들인 작가가 부당한 대우나 행위에 눈 감고 있는 것은 다른 힘 없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해도 역시 눈을 감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문제점에 대한 빠른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찾는 사람이라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맨 앞에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고 매우 귀찮게, 그리고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들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고 썼다. 책을 읽으니 이 말의 뜻을 이해하기 쉽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결코 이기적이거나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저자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게 더욱 노력하고 더욱 경계하며 더욱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세상에 어찌 정의롭지 않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저자의 세상살이 원칙에 공감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두 번째 책 『오마이 투쟁』(2014년 간)을 내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상대보다 힘이 약한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나보다 힘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이라 해서 그들의 잘못된 일에 눈감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간다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피해를 받을 것이고, 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용기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 일에 또, 그 문제에 대해 절실하지 않다는 거예요. 정말 절실하다면 그 일을 행하는 데에 용기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자 : 정태현

 

1984년 출생. 부산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랐다. 바다를 떠나기 싫어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이후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래에셋 자산운용사에 다니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509일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와 금융맨으로 돌아가는 대신,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담은 책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를 쓰면서 사회적 책임과 소명 의식을 지닌 작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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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
장 프랑수아 버네이 지음, 장영필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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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책을 좋아한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이 책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도 호주 문학을 잘 알아서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의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희귀성에 기대어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호주는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 등으로 부유한 국가이기 때문에 예술도 많이 발달했으리란 막연한 기대에서다. 그러나 문학 부분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호주의 분위기나 수준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다. 역사가 짧은 데다 인구마저 우리나라 절반도 훨씬 못 미치는 나라여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특히 문학은 서구나 남아메리카만큼의 수준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호주 여행 가서도 전쟁 기념관은 들렀지만 오페라 극장을 제외하곤 예술 관련 시설에는 가본 적이 없다. 많은 곳을 다니질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독자는 외국 문학의 경우 매해 발표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한 권씩은 읽어오는 편이라 기억으로는 호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을 쓴 저자 장 프랑수아 버네이도 이름으로 미루어 프랑스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호주 문학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인 게 독자의 문학 수준이었던 것 같다. 호주 소설사를 왜 다른 나라 사람이 썼을까?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저자와 역자의 약력 상으로는 저자 버네이가 호주인은 아니고 프랑스의 대학에서 호주 소설을 탐구한 학자이라고 한다. 역자 역시 호주와 관련된 분이라서 이 책은 영어로 쓰였고, 역자는 영어로 쓴 이 책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독자로서는 누가 썼느냐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호주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라 상관없을 듯하다. 오히려 호주는 자신들의 문학, 소설사를 왜 다른 나라 사람이 쓸 때까지 제대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책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는 한 번 읽긴 했지만 여간해선 제대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조금은 어지럽게 쓰였다. 물론 외국어 번역과 외국의 소설을 읽기에는 독자의 영어 실력이 너무 짧아 우선 작가의 이름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설명을 열심히 읽어도 체계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저자가 집필하고, 체계 분류의 이유도 써놓았는데도 말이다. 낯섦 그대로인 것 같다. 아무튼 한 번 읽고 호주의 소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으리란 기대는 당초 하지 않았기에 저자의 설명과 기술에 따른 호주 소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저자는 “호주 문학이란 무엇인가?” 한 가지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호주 문학에 대한 기초적 정의를 세우고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썼다는 것이다. 저자 장 프랑수아 버네이(JEAN-FRANCOIS VERNAY)는 20여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호주인은 보지 못하는 호주 문학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했다고 기술한다. 이에 따라 수 년에 걸친 연구 조사의 결과물인 이 책은 호주의 역사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호주 소설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문학적 성과를 갈구하는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호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영국의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이 결합하여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 왔다고 말한다. 원주민과의 갈등, 야생 숲이 가득한 자연환경, 민족주의 성향, 다문화주의, 호주 소설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여성 작가들 등 역사의 흐름에 따라 호주 문학사는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 왔다는 것.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는 호주 문학, 그 중에서도 호주 소설이 밟아온 길을 차근차근 되짚어 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호주 역사의 주요 변곡점을 기준으로 호주 소설의 발전을 주요 단계로 나누어 제시하고, 그 속에 담긴 상징적 주제들을 파헤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180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호주 문학이 탄생하기 시작한 1800년대 후반을 지나 1·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난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 시절을 겪을 때마다 달라지는 호주 소설의 방향과 사회적 의미를 철저히 ‘외부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구성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호주 소설의 역사를 한 겹씩 벗겨내는 과정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모든 껍질이 다 벗겨졌다고 생각할 때 알맹이가 등장한다. 바로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더 읽어 보기’이다. '더 읽어 보기'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앞 부분에도 이색적인 글들이 들어가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사연'이 가장 먼저 나오고, '살짝 엿보기'가 뒤를 잇는다. 이 살짝 엿보기는 호주 소설가이자 문학 비평가인 니콜라스 호세가 썼다. 8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그 다음에도 아직 '프롤로그'가 나오지 않는다. '시작하기 전에'라는 제목의 글에 방대한 주제에 접근하고 다루는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던 저자의 고충을 토로하며, 호주 소설사를 쓰기가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설명한다. 주제 표현 방법, 호주 역사의 주요 변곡점을 기준으로 호주 소설의 발전 주요 단계를 나누어 제시하는 방법도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결국 저자는 호주 소설의 진화적 다계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호주에서는 70년대 이후부터 대중적 성공을 두고 영화가 문학과 경쟁했다. 그렇기에 나는 호주 소설의 풍부함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를 은유로 사용하고 영화 용어들을 차용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책 곳곳에 세 가지 형태의 삽입 기사들이 들어 있도록 썼다.(한국어 번역판에서는 산재된 삽입 기사를 책 후반부에 하나로 모아 배치했다-역자 주).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호주 소설이 가지는 의미 있는 주제들, 저자들과 작품들에 주목했고, 「주요 대작들 살피기」는 호주 문학 지평을 지배하고 있는 주요 소설들 또는 작가들을 깊게 살피며, 「주요 작가와 작품 세계 둘러보기」는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 주제, 또는 문학 이력에 대해 적고 있다. 저자는 영화를 문학과 비유하는 것은 작가들과 배우들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 또한 가능케 한다고 주의를 준다. 작가나 작품이 가진 논쟁거리, 그들의 시사성, 대중성 또는 숱한 비판 덕에 인기를 얻는 성공(?)으로 인해, 인기 작가 또는 미디어 노출이 잦은 작가는 대중들에게 지나치게 매체를 타는 유명 영화인들을 연상케 한다.

그들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한 의무적 행위에는 성공을 위한 각종 수상식 참석, 인터뷰, 언론인 상대 회견, 라디어 프로그램들, 그리고 방송 출연 등이 있다. 만일 그것이 항상 그래왔다면, 예술가의 삶이 길고도 조용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조용한 주의는 독자에게는 호주 작가들과 문단 일부에서 이런 소설가나 출판 관계인드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프롤로그에 앞서 '끼워놓은' 글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일부 작가의 대중 영합에 의한 인기를 구가하는 호주 일각의 작가들이나 작품을 배제시켰다는 말로도 들린다. 아무튼 주요 작가와 작품 세계, 주요 대작들 살피기, 자세히 들여다보기 파트를 별도로 두고 설명해야 할 만큼 호주 소설사를 더욱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쓰기까지 저자의 고심이 드러난다. 혹시 책 제목을(번역상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단숨에'가 아니라 '한숨에(a brirf take)'라고 쓴 이유가 따로 있나 싶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호주 소설사에 한걸음 다가가고 이해의 폭을 높이는 데는 이보다 좋은 책은 드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역자 장영필은 책 뒷 부분에 「역자의 말」을 통해 “몇 해 전 어느 날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 이외에도 호주 문학사, 호주 역사서 등 개인적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이 책의 장점은 역자인 나처럼 '외부적 시각으로 호주 사회, 특히 문학계를 바라보았다는 점이다."라고 언급해 이 책의 논조나 집필 취지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음을 시사한다. 역자에 따르면 저자 장 프랑수아 버네이는 뉴칼레도니아에서 태어나, 호주에 정착한 후 최근까지 근 20년 동안 호주 소설들을 연구한 학자이다. 호주 소설사를 다룬 이 책의 초판은 2009년 프랑스에서 발행되었다. 그 후 2016년, 시드니에서 추가 증보판을 내었다. 바로 이 책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처음 이 책을 읽으며 의문스러웠던 점은 '왜 호주에서 초판을 내지 않고 저자의 모국인 프랑스에서 냈을까?였다고 술회한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름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역자 추정).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 출판계의 현실도 문제였겠지만, 이 책은 너무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호주 소설사를 통해 호주 사회의 시작과 현재를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아마 역자가 호주 토박이였다면 상당히 불만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조상들이야 그렇다 치고(?), 지금 우리 수준 높거든?" 역자의 말은 아마 호주인들의 자격지심과 현재의 호주인의 간격에 대해 관련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들린다.

즉 호주 역사가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흉악한 범죄자들을 멀리 격리시키기 위해 시작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속내를 짚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도 조상 이야기할 때 일본 식민지가 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도 '선조가 무능', '일본의 야욕' 등에 대해 서로 맞서고 있지 않은가? 선조탓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하는 졸렬한 변명에 불과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올 법한 호주 문학계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이런 의미가 잠겨 있다는 표현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이 책에서 호주 문학에 대한 자화자찬은 호주 문학에 대한 기존 멸시의 눈을 가려주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책 몇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호주의 노벨상 수상자와 수상작, 그리고 유명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몇 군데 등장한다. 호주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패트릭 화이트는 호주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출신지는 런던이며, 호주와 영국에서 교육받았다. 이 사실에 의해 호주 문단에서 호주 문학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듯싶다. 왜 그랬을까? 후발국가이고 범죄자 조상의 이미지도 씻을 수 있는 기회일 텐데... 아마 문단의 시기와 질투가 반영됐기 때문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호주 문학의 조건은 무엇인가?라고 저자는 되묻고 있다. 작품이 호주에 관한 내용이면 조건을 충족하는가?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안 되고의 기준을 묻는다.

그렇다면 한 작품이 호주 문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작가는 반드시 호주 국적자여야 하는가? 호주가 되려면 그 작품이 호주 땅에서 쓰여야 하는가? 책은 반드시 영어로 써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쏟아내며 호주 소설의 기준을 정하지 못했던 호주 문단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호주 소설을 정의하는 특징이 주제로부터 비롯된다면 저자의 출생지와 국적, 지리적 위치 또는 표현 방식 등, 우리가 여기서 정의하는 것들은 너무 포괄적이거나 제한적이다."고. 프롤로그에서 신랄한 비판을 시작한 저자는 호주 문학의 상징적 주제들을 제시하며 모두 포함하거나, 일부라도 포함된다면 호주 문학의 범주에 두고 살펴봐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밝힌 상징어들은 '탐험', '정복', '항해', '지형(Geography)', '지형(Topography)', '고립', '엔티포드', '풍부함', '종교', '사라짐' 등이다, 저자는 제시한 각 상징에 간략한 설명을 붙여 호주 문학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1장~6장에 걸쳐 식민지 시절(1831~1874) 탐험과 극복의 역사와 호주 문학, 즉 민족의식의 부상(1875~1900)과 문학 논쟁(1901~1950)의 시대를 거쳐, 이용당하고 조작된 현실(1951~1965)에 이어 코스모폴리탄 시대 속 마이너리티 문학(1966~1980)에서 포스트모던 그리고 새 문학사조들의 등장(1981~현재)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다룬다. 여기에 주요작가의 작품세계와 대작들 살피기, 자세히 들여다보기 등을 통해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 : 장 프랑수아 버네이(JEAN-FRANCOIS VERNAY)

프랑스 대학에서 호주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호주에서 소설가이자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며 문학 분야에서 다섯 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달빛 아래 흐르는 강: 호주 소설가 크리스토퍼 코치의 문학적 이상과 현실Water from the Moon: Illusion and Reality in the Works of Australian Novelist Christopher Koch』(Cambria Press, 2007),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A Brief Take on the Australian Novel』(Wakefield Press, 2016) 등이 있다. 또한 다수의 문학 관련 글을 세계 여러 학술 저널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최근 저서인 『호주 문학의 신경인문학과 신경인식적 해석의 부상The Rise of the Australian Neurohumanities and Neurocognitive Interpretations of Australian Literature: Criticism in the Age of Neuroawareness』은 호주 문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호주 문학 관련 저서는 2022년 한국어와 중국어판에 이어 아랍어판까지 출간될 예정이다.

 

역자 : 장영필

1992년 출판계 입문하여 2006년까지 IT 분야 및 출판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2007년 호주 시드니로 기술이민, 현지에서 도서관 서비스 전공의 직업 전문 대학 과정과 한영 통역 과정(TAFE, Sydney Ultimo)을 마쳤다. 이후 수년간 호주 최초의 공공 대여 도서관인 Sydney Mechanics School of Arts Library를 비롯한 공공 도서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호주 문화와 문학, 역사 관련 도서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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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하우스, 숲에서 행복하기
서경석 지음 / 마인드큐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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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삶의 태도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과 모색을 해야 한다. 물질만능, 인간 중심, 편리 위주의 문명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환경재앙을 막고 공존공생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트리하우스는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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