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투쟁 - 청년, 그들의 연대에 홀로 맞서다
정태현 지음 / 열아홉 / 202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오마이 투쟁』은 한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여행 에세이)이 표절한 주체에 대해 적절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한 데 대한 투쟁의 기록이다. 거대 언론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 언론사가 어디인지 금세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오 마이 뉴스〉란 인터넷 매체다. 〈오 마이 뉴스〉는 ‘시민 기자’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며 참신한 언론의 출현을 알렸다. 이들은 이후 진보 언론의 목소리를 전하며 ‘정치 팬덤 문화’를 만드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언론사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를 향해서는 높은 책임 의식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시민 기자의 표절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 정태현의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표절한 기사가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자 오마이뉴스 측에 빠른 조치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들의 무심한 대처와 모욕이었다고 말한다. 오마이 뉴스가 정태현 저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힘없는 젊은 무명 작가’라는 사실 뿐이었다. 이에 저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며 진보 진영의 연대와 차가운 시선을 홀로 감내하며 140일 간 투쟁을 벌였다.

이 책은 사실 2014년 출간된 〈오마이투쟁〉(헤이북스)의 내용을 일부 증보한 개정판이다. 이번에 2022년의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는 〈오마이 투쟁〉은 얼마 전 가요계 전반에 만연한 표절 소동으로 일부 인사들이 한바탕 홍역을 치른 가운데, 〈오마이 투쟁〉이 여전히 표절에 관대한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으로 유효하다는 판단에서 출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상에서의 무분별한 표절과 도용 등 지적 재산권 침해 사안이 선진국에 돌입한 대한민국의 출판 문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프롤로그' 「젊은 예술가들을 위하여」를 통해 투쟁 기간의 소회를 자평한다. "무명의 젊은 작가가 언론사를 상대로 사과를 요구하는 건 생각보다 더욱 힘든 일이었다. 나는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권위에 대한 도전을 꺼리는 집단주의, 타당한 이유보다는 사회적 위치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며 문제를 덮는 게 미덕이라 생각하는 한국식 관습과도 싸워야 했다."

저자의 1인 시위를 두고 어떤 이들은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고작 책 한 권 낸 신인 작가가 별것도 아닌 글 표절당한 것 가지고 째째하게 일인시위까지 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럴 시간에 책 한 권을 더 쓰라는 핀잔과 함께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너 하나만 표절당하느냐, 너보다 더 훌륭한 작가들도 다 표절당했지만, 그때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며 작가 체면을 지켰다고 오히려 꾸짖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작가가 품격 떨어지게 직접 일인시위까지 나서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독자는 이런 말이나 충고에 대해 요즘 말로 '꼰대'들의 상투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작권 침해는 법으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가 정보기술 사회로 번지면서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면서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한과 책임 등이 강화된 지가 언젠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별 수 없이 '꼰대'라고 불릴 만하다. 저자는 첫 책을 펴낸 후 표절을 당했다. 표절한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면 안 된다. 당연히 피해자 입장에서 사안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아야 한다. 저자가 표절된 내용을 확인할 때 얼마나 절망감이 들었을까, 그리고 그들 말대로 '좋게 좋게' 해결하기 위해 사과를 요구한 것이고 그 방안으로 표절 매체를 통해 정중히 사과문을 게재하고 재발 방지에 노력하겠다고 써야 한다. 언론에 관한 사항은 독자가 자세히 모르지만 표절하면 표절한 크기(분량)의 기사를 게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의 첫 책은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라는 여행기라고 한다. 독자가 못 읽어봤기 때문에 인터넷의 힘을 빌어 어떤 책인지 대략 살펴봤다. 책 소개글에 "매력적인 여행의 정수만 가려 모은 ‘소설’ 같은 여행기"라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책은 예상처럼 많이 팔리지 않았고, 저자는 다시 글 쓰고, 노동하는 일을 반반씩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책 발간 2년이 지난 후 여행기가 뒤늦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인터넷에 책 리뷰가 달리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지방의 한 라디오 방송국으로부터는 다가오는 새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코너지기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잡지사로부터 처음 원고 청탁도 받고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연달아 오랫동안 끊겼던 강연 요청도 다시 들어왔다고 하니 역시 '인기 작가'나 '베스트 셀러' 작가를 저자는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D포털사이트의 메인를 읽기 시작했다. 〈오 마이 뉴스〉가 송출한 '회사 때려 치고 세계일주? 지옥을 맛보다'란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저자 자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500일 넘게 세계 여행을 다녀온 터라 기사가 궁금했다. 읽던 중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기사에 자신의 책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의 일부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던 것이다. 명백히 저자의 글을 도용해 쓴 기사라고 판단했다. 저자가 쓴 대로 문단이 통째로 베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저자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독자는 책을 내거나 글을 어디에 발표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사전 연락이나 양해도 없이 남의 글을 가져다 쓰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글을 많이 쓰는 기자들도 원칙적으로 취재원을 밝히고, 밝히기 어려운 경우 익명이나 가명으로 쓰기도 한다고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이건 글 자체를 통째로 가져다 쓰면서 사전 양해는커녕 마치 자신이 다녀와 쓴 것처럼 결론 부분마저 왜곡해 썼다면 이것은 표절의 수준을 넘어 도용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실 관계에 입각한 팩트를 쓰다보니 투쟁 기록 등에 중점을 두었으나 독자는 표절을 확인하기까지의 저자의 생활 등에 더 신경이 간다. 잘 다니던 좋은 회사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할 때 어떤 결심이었을지 분명한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원래 작가가 꿈이었다든지, 아니면 뒤늦게 글 재주를 확인 받고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든지. 저자는 전자에 해당된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결혼도 했는데 아내의 허락(묵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됐다는데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독자의 짐작으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고통을 감내했으리라.

저자는 첫 책을 낸 후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흔히 용기 있다고 말하는데, 저는 남들처럼 용기가 있어서 간 게 아니었어요. 현실 도피에 가까웠어요. 회사를 잘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그 허무함이 너무나도 크고 깊어서 도무지 회사에 다닐 수 없을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퇴사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돈은 많이 줬지만 돈 쓸 시간은 주지 않는 회사였거든요. 주말에도 일해야 했어요. 그래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지금처럼 워라밸과 주 52시간이 잘 지켜졌다면 아마 못 떠났을 거예요." 이렇게 다녀온 여행이고, 그 결과로 느끼고 알게 된 것을 자신의 힘으로 쓴 책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분신과도 같은 글을 도용당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던 걸 여행을 통해 알게 됐고, 그 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뀐 결과로 책을 냈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인데 그것을 실현시키자마자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될 줄은 짐작이나 했으랴. 저자의 첫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책일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작가가 꿈인 사람인데. 특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작가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 보는 눈이 확대되었다는 말도 이 책에 남겼는데.

 


 

저자는 처음에는 이 일을 가지고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글을 표절했다고 싸우는 일이란 마치 자기 것을 대단히 좋게 생각하고 챙기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굉장히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을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는 이유는 그들(〈오 마이 뉴스〉)의 태도였다고 말한다. 독자는 물론 이 책, 즉 저자의 주장만 듣고 판단해서 조금 편향되게 판단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언론사는 오보나 사과문 게재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 신뢰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신뢰를 잃으면 생명은 끝이다는 생각에서 그렇다고 말한 언론계 인사의 말을 사석에서 들은 바 있다. 그 말은 기자들이 발로 직접 뛰고 확인하고, 기사를 쓰라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 어쩌면 〈오 마이 뉴스〉도 그런 차원에서 선뜻 사과도 하지 않고, 사과문 게재도 될수록 미루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기자들이 직접 확인하고 기사를 쓰라는 의미의 말을 자신들의 언론사의 방패막이로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힘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참아야 한다는 논리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산 아니었을까. 이제부터는 '감정'이 개입될 소지가 생긴다. 이후는 상식적으로 전개되는 글이다. 작가는 자존심과 품격을 모두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가? 그 사람들의 눈에는 뻔뻔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저자 역시 나름대로의 작가 철학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시대의 지식인들인 작가가 부당한 대우나 행위에 눈 감고 있는 것은 다른 힘 없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해도 역시 눈을 감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문제점에 대한 빠른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찾는 사람이라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맨 앞에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고 매우 귀찮게, 그리고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들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고 썼다. 책을 읽으니 이 말의 뜻을 이해하기 쉽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결코 이기적이거나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저자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게 더욱 노력하고 더욱 경계하며 더욱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세상에 어찌 정의롭지 않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저자의 세상살이 원칙에 공감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두 번째 책 『오마이 투쟁』(2014년 간)을 내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상대보다 힘이 약한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나보다 힘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이라 해서 그들의 잘못된 일에 눈감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간다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피해를 받을 것이고, 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용기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 일에 또, 그 문제에 대해 절실하지 않다는 거예요. 정말 절실하다면 그 일을 행하는 데에 용기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자 : 정태현

 

1984년 출생. 부산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랐다. 바다를 떠나기 싫어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이후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래에셋 자산운용사에 다니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509일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와 금융맨으로 돌아가는 대신,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담은 책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를 쓰면서 사회적 책임과 소명 의식을 지닌 작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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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
장 프랑수아 버네이 지음, 장영필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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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책을 좋아한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이 책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도 호주 문학을 잘 알아서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의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희귀성에 기대어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호주는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 등으로 부유한 국가이기 때문에 예술도 많이 발달했으리란 막연한 기대에서다. 그러나 문학 부분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호주의 분위기나 수준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다. 역사가 짧은 데다 인구마저 우리나라 절반도 훨씬 못 미치는 나라여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특히 문학은 서구나 남아메리카만큼의 수준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호주 여행 가서도 전쟁 기념관은 들렀지만 오페라 극장을 제외하곤 예술 관련 시설에는 가본 적이 없다. 많은 곳을 다니질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독자는 외국 문학의 경우 매해 발표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한 권씩은 읽어오는 편이라 기억으로는 호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을 쓴 저자 장 프랑수아 버네이도 이름으로 미루어 프랑스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호주 문학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인 게 독자의 문학 수준이었던 것 같다. 호주 소설사를 왜 다른 나라 사람이 썼을까?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저자와 역자의 약력 상으로는 저자 버네이가 호주인은 아니고 프랑스의 대학에서 호주 소설을 탐구한 학자이라고 한다. 역자 역시 호주와 관련된 분이라서 이 책은 영어로 쓰였고, 역자는 영어로 쓴 이 책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독자로서는 누가 썼느냐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호주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라 상관없을 듯하다. 오히려 호주는 자신들의 문학, 소설사를 왜 다른 나라 사람이 쓸 때까지 제대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책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는 한 번 읽긴 했지만 여간해선 제대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조금은 어지럽게 쓰였다. 물론 외국어 번역과 외국의 소설을 읽기에는 독자의 영어 실력이 너무 짧아 우선 작가의 이름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설명을 열심히 읽어도 체계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저자가 집필하고, 체계 분류의 이유도 써놓았는데도 말이다. 낯섦 그대로인 것 같다. 아무튼 한 번 읽고 호주의 소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으리란 기대는 당초 하지 않았기에 저자의 설명과 기술에 따른 호주 소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저자는 “호주 문학이란 무엇인가?” 한 가지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호주 문학에 대한 기초적 정의를 세우고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썼다는 것이다. 저자 장 프랑수아 버네이(JEAN-FRANCOIS VERNAY)는 20여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호주인은 보지 못하는 호주 문학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했다고 기술한다. 이에 따라 수 년에 걸친 연구 조사의 결과물인 이 책은 호주의 역사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호주 소설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문학적 성과를 갈구하는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호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영국의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이 결합하여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 왔다고 말한다. 원주민과의 갈등, 야생 숲이 가득한 자연환경, 민족주의 성향, 다문화주의, 호주 소설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여성 작가들 등 역사의 흐름에 따라 호주 문학사는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 왔다는 것.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는 호주 문학, 그 중에서도 호주 소설이 밟아온 길을 차근차근 되짚어 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호주 역사의 주요 변곡점을 기준으로 호주 소설의 발전을 주요 단계로 나누어 제시하고, 그 속에 담긴 상징적 주제들을 파헤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180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호주 문학이 탄생하기 시작한 1800년대 후반을 지나 1·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난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 시절을 겪을 때마다 달라지는 호주 소설의 방향과 사회적 의미를 철저히 ‘외부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구성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호주 소설의 역사를 한 겹씩 벗겨내는 과정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모든 껍질이 다 벗겨졌다고 생각할 때 알맹이가 등장한다. 바로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더 읽어 보기’이다. '더 읽어 보기'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앞 부분에도 이색적인 글들이 들어가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사연'이 가장 먼저 나오고, '살짝 엿보기'가 뒤를 잇는다. 이 살짝 엿보기는 호주 소설가이자 문학 비평가인 니콜라스 호세가 썼다. 8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그 다음에도 아직 '프롤로그'가 나오지 않는다. '시작하기 전에'라는 제목의 글에 방대한 주제에 접근하고 다루는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던 저자의 고충을 토로하며, 호주 소설사를 쓰기가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설명한다. 주제 표현 방법, 호주 역사의 주요 변곡점을 기준으로 호주 소설의 발전 주요 단계를 나누어 제시하는 방법도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결국 저자는 호주 소설의 진화적 다계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호주에서는 70년대 이후부터 대중적 성공을 두고 영화가 문학과 경쟁했다. 그렇기에 나는 호주 소설의 풍부함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를 은유로 사용하고 영화 용어들을 차용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책 곳곳에 세 가지 형태의 삽입 기사들이 들어 있도록 썼다.(한국어 번역판에서는 산재된 삽입 기사를 책 후반부에 하나로 모아 배치했다-역자 주).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호주 소설이 가지는 의미 있는 주제들, 저자들과 작품들에 주목했고, 「주요 대작들 살피기」는 호주 문학 지평을 지배하고 있는 주요 소설들 또는 작가들을 깊게 살피며, 「주요 작가와 작품 세계 둘러보기」는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 주제, 또는 문학 이력에 대해 적고 있다. 저자는 영화를 문학과 비유하는 것은 작가들과 배우들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 또한 가능케 한다고 주의를 준다. 작가나 작품이 가진 논쟁거리, 그들의 시사성, 대중성 또는 숱한 비판 덕에 인기를 얻는 성공(?)으로 인해, 인기 작가 또는 미디어 노출이 잦은 작가는 대중들에게 지나치게 매체를 타는 유명 영화인들을 연상케 한다.

그들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한 의무적 행위에는 성공을 위한 각종 수상식 참석, 인터뷰, 언론인 상대 회견, 라디어 프로그램들, 그리고 방송 출연 등이 있다. 만일 그것이 항상 그래왔다면, 예술가의 삶이 길고도 조용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조용한 주의는 독자에게는 호주 작가들과 문단 일부에서 이런 소설가나 출판 관계인드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프롤로그에 앞서 '끼워놓은' 글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일부 작가의 대중 영합에 의한 인기를 구가하는 호주 일각의 작가들이나 작품을 배제시켰다는 말로도 들린다. 아무튼 주요 작가와 작품 세계, 주요 대작들 살피기, 자세히 들여다보기 파트를 별도로 두고 설명해야 할 만큼 호주 소설사를 더욱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쓰기까지 저자의 고심이 드러난다. 혹시 책 제목을(번역상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단숨에'가 아니라 '한숨에(a brirf take)'라고 쓴 이유가 따로 있나 싶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호주 소설사에 한걸음 다가가고 이해의 폭을 높이는 데는 이보다 좋은 책은 드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역자 장영필은 책 뒷 부분에 「역자의 말」을 통해 “몇 해 전 어느 날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 이외에도 호주 문학사, 호주 역사서 등 개인적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이 책의 장점은 역자인 나처럼 '외부적 시각으로 호주 사회, 특히 문학계를 바라보았다는 점이다."라고 언급해 이 책의 논조나 집필 취지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음을 시사한다. 역자에 따르면 저자 장 프랑수아 버네이는 뉴칼레도니아에서 태어나, 호주에 정착한 후 최근까지 근 20년 동안 호주 소설들을 연구한 학자이다. 호주 소설사를 다룬 이 책의 초판은 2009년 프랑스에서 발행되었다. 그 후 2016년, 시드니에서 추가 증보판을 내었다. 바로 이 책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처음 이 책을 읽으며 의문스러웠던 점은 '왜 호주에서 초판을 내지 않고 저자의 모국인 프랑스에서 냈을까?였다고 술회한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름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역자 추정).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 출판계의 현실도 문제였겠지만, 이 책은 너무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호주 소설사를 통해 호주 사회의 시작과 현재를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아마 역자가 호주 토박이였다면 상당히 불만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조상들이야 그렇다 치고(?), 지금 우리 수준 높거든?" 역자의 말은 아마 호주인들의 자격지심과 현재의 호주인의 간격에 대해 관련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들린다.

즉 호주 역사가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흉악한 범죄자들을 멀리 격리시키기 위해 시작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속내를 짚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도 조상 이야기할 때 일본 식민지가 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도 '선조가 무능', '일본의 야욕' 등에 대해 서로 맞서고 있지 않은가? 선조탓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하는 졸렬한 변명에 불과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올 법한 호주 문학계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이런 의미가 잠겨 있다는 표현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이 책에서 호주 문학에 대한 자화자찬은 호주 문학에 대한 기존 멸시의 눈을 가려주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책 몇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호주의 노벨상 수상자와 수상작, 그리고 유명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몇 군데 등장한다. 호주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패트릭 화이트는 호주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출신지는 런던이며, 호주와 영국에서 교육받았다. 이 사실에 의해 호주 문단에서 호주 문학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듯싶다. 왜 그랬을까? 후발국가이고 범죄자 조상의 이미지도 씻을 수 있는 기회일 텐데... 아마 문단의 시기와 질투가 반영됐기 때문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호주 문학의 조건은 무엇인가?라고 저자는 되묻고 있다. 작품이 호주에 관한 내용이면 조건을 충족하는가?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안 되고의 기준을 묻는다.

그렇다면 한 작품이 호주 문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작가는 반드시 호주 국적자여야 하는가? 호주가 되려면 그 작품이 호주 땅에서 쓰여야 하는가? 책은 반드시 영어로 써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쏟아내며 호주 소설의 기준을 정하지 못했던 호주 문단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호주 소설을 정의하는 특징이 주제로부터 비롯된다면 저자의 출생지와 국적, 지리적 위치 또는 표현 방식 등, 우리가 여기서 정의하는 것들은 너무 포괄적이거나 제한적이다."고. 프롤로그에서 신랄한 비판을 시작한 저자는 호주 문학의 상징적 주제들을 제시하며 모두 포함하거나, 일부라도 포함된다면 호주 문학의 범주에 두고 살펴봐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밝힌 상징어들은 '탐험', '정복', '항해', '지형(Geography)', '지형(Topography)', '고립', '엔티포드', '풍부함', '종교', '사라짐' 등이다, 저자는 제시한 각 상징에 간략한 설명을 붙여 호주 문학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1장~6장에 걸쳐 식민지 시절(1831~1874) 탐험과 극복의 역사와 호주 문학, 즉 민족의식의 부상(1875~1900)과 문학 논쟁(1901~1950)의 시대를 거쳐, 이용당하고 조작된 현실(1951~1965)에 이어 코스모폴리탄 시대 속 마이너리티 문학(1966~1980)에서 포스트모던 그리고 새 문학사조들의 등장(1981~현재)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다룬다. 여기에 주요작가의 작품세계와 대작들 살피기, 자세히 들여다보기 등을 통해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 : 장 프랑수아 버네이(JEAN-FRANCOIS VERNAY)

프랑스 대학에서 호주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호주에서 소설가이자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며 문학 분야에서 다섯 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달빛 아래 흐르는 강: 호주 소설가 크리스토퍼 코치의 문학적 이상과 현실Water from the Moon: Illusion and Reality in the Works of Australian Novelist Christopher Koch』(Cambria Press, 2007), 『한숨에 읽는 호주 소설사A Brief Take on the Australian Novel』(Wakefield Press, 2016) 등이 있다. 또한 다수의 문학 관련 글을 세계 여러 학술 저널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최근 저서인 『호주 문학의 신경인문학과 신경인식적 해석의 부상The Rise of the Australian Neurohumanities and Neurocognitive Interpretations of Australian Literature: Criticism in the Age of Neuroawareness』은 호주 문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호주 문학 관련 저서는 2022년 한국어와 중국어판에 이어 아랍어판까지 출간될 예정이다.

 

역자 : 장영필

1992년 출판계 입문하여 2006년까지 IT 분야 및 출판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2007년 호주 시드니로 기술이민, 현지에서 도서관 서비스 전공의 직업 전문 대학 과정과 한영 통역 과정(TAFE, Sydney Ultimo)을 마쳤다. 이후 수년간 호주 최초의 공공 대여 도서관인 Sydney Mechanics School of Arts Library를 비롯한 공공 도서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호주 문화와 문학, 역사 관련 도서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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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하우스, 숲에서 행복하기
서경석 지음 / 마인드큐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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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삶의 태도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과 모색을 해야 한다. 물질만능, 인간 중심, 편리 위주의 문명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환경재앙을 막고 공존공생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트리하우스는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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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하우스, 숲에서 행복하기
서경석 지음 / 마인드큐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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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로 세계 각국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지났다. 기후변화협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모든 온실가스의 인위적인 배출을 규제하기 위한 협약으로,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리우회의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이후 교토의정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차례로 채택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하나로 도출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세계는 기후 이상으로 큰 혼란과 재앙을 겪고 있다. 이 국제협약의 목적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의 방출을 제한하여 지구온난화를 막는 것이다. 대표적인 규제대상 물질로 탄산·메테인가스·프레온가스 등이 있다. 협약 내용은 기본원칙, 온실가스 규제문제, 재정지원 및 기술이전문제, 특수상황에 처한 국가에 대한 고려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변화협약 체결국은 염화플루오린화탄소(CFC)를 제외한 모든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제거량을 조사하여 이를 협상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며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국가계획도 작성해야 한다. 이 협약이 횟수를 거듭하며 각계 각층, 세계 각국이 모두 목적이나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막상 여기에 따른 재정 지원이나 온실가스 감축량 등에 들어가서는 외면하는 실정이다. 국가간 일이 되면 어느 나라도 강력한 규제를 발동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이용해 이산화탄소 대량 배출국은 적극 참여를 하지 않은 채 미온적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태도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과 모색의 시간들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물질만능의, 인간 중심의, 편리 위주의 문명적인 삶의 태도로는 우리 앞에 와있는 환경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생태인류학자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세계적 위기, 인류 존속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면서 환경과 인류에 대한 성찰은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 『트리하우스, 숲에서 행복하기』는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다. 기후 문제나 팬데믹은 국가적, 세계적으로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그 혼란과 재앙은 이제 전 세계인에게 돌아간다. 이런 시점에서 숲에서 생활하기나 숲에서 행복하기란 취지의 '트리하우스'는 훨씬 앞선 혜안을 가진 저자 서경석이 일찍부터 해온 작은 환경운동의 취지로 받아들이기에 어렵지 않다. 이는 저자가 그동한 해온 숲 살리기, 숲 가꾸기 등의 맥락과 통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인 지금은 '숲'과 나무의 혜택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한 시점이어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하고 영감을 주기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책은 평생 숲, 나무와 함께해온 저자가 지속가능한 자연에서의 대안적 삶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자연에세이이다.

임업전문인이자 숲지킴이인 저자의 자연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솔방울을 벌려 솔씨로 야생짐승의 먹이를 제공하는 자연의 재생력에 놀라며, 봄여름가을겨울 철마다 색을 달리하는 트리하우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에 감동한다. 다람쥐가 흩어놓은 천연 씨앗이 인간이 심은 나무보다 몇 백 년은 더 오래 살아가는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는 장면 등은 오랜 숲살림꾼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그만의 자연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자연의 위대한 솜씨는 인간이 놓치고 있는 나무와 동식물, 사람의 공생·공존하는 자연살이와 산사람으로서의 지분지족(知分知足)으로 더해져 우리에게 남다른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코로나 팬데믹에 지친 우리들에게 작은 휴식처이지만 의미 깊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본보기를 제시해주는 것 같아 깊은 애정이 간다.

 


 

저자는 '프롤로그' 「숲에서 행복하기 위한 시간들」을 통해 "“숲은 쉼터이고 쉴터이며 shelter이다. 숲은 수(樹)와 풀(草)이다. 교목과 관목 그리고 초본류의 식물과 곤충과 동물이 자연스럽게 공생하는 곳이다. 사람이 나무 밑에 있으면 편하지만 나무도 사람과 있으면 더 충실하게 잘 자란다. 트리하우스에 이용된 나무는 주변의 나무와는 월등하게 푸르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면 나무도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숲의 속성을 조목조목 풀이해 준다. 저자는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생·공존하는 뜨거운 숲살이와 이색적인 트리하우스 캠핑장 운영으로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주요 언론에서 화제의 삶으로 소개된 '나무철학자'이다.

『트리하우스, 숲에서 행복하기』에는 제목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행복한 숲살이가 책 곳곳에 녹음처럼 무성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트리하우스 숲 즐기기가 독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50년 내공의 간단치 않은 임업전문가로서의 신산(辛酸)한 삶이 오늘에 이르는 밑돌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추측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서경석’ 하면 따라붙는 ‘나무독립군’, ‘겨울이 뜨거운 숲사람’, ‘신한옥 개척자’, ‘트리하우스 짓는 산사람’ 등의 별호는 아무도 선뜻 가려 하지 않았던 ‘홍천 산 지킴이’이자 ‘임업경영인’으로서의 그만의 삶의 편린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산주’로서의 운명적인 삶을 지명 받은 이후 산림행정가, 한국감사협회 회장, 산림조합중앙회 상임감사 등 숲과 나무에 관한 한 우리 산과 나무의 현실적 한계를 일찍이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 나무를 대량 소비하고 산촌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헌신해 온 그의 남다른 이력은 자연철학자로서의 그의 안목을 더욱 공감하게 한다. 저자는 국산 소나무와 자생 나무를 대량 소비하기 위해 신한옥을 짓고, 트리하우스를 만들며, 산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버섯종균 배양 표고목 생산, 버섯 재배, 장작나무 판매, 산나물 채취 등 일련의 쉽지 않은 산촌살이를 개척해갔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결론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자연과 벗하며 자연의 이치를 터득해가는 '소유요(遡遊謠)-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 내려가는' 의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자연을 조응하며, 아름드리 숲과 신선한 야생의 향기를 저자 특유의 낭만과 여유가 묻어나는 사진 한 장으로 느끼는 감흥도 트리하우스 숲 즐기기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줄 것이다. 느끼고, 사유하며, 체험했을 저자의 아픔과 환희, 생명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숨 쉬며 가슴 저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동이 복받친다.

 

"바람의 방향과 바람의 움직임은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제멋대로 불어대다가도 멈춰야 할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숲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계곡으로 흐르는 바람은 때에 따라 딱 그만큼의 움직임을 허락한다. 오랜 숲살이로 터득한 자연의 법칙은 바람은 막는다고 멈추는 게 아니라 기다리면 멈춘다는 것이다. 바람의 지혜는 나에게 기다릴 줄 아는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주었다." - 「산을 잘 가꾸고 산을 잘 지켜라」중에서

 


 

인류 존속마저 불안한 시대에 저자가 제시하는 자연 속에서, 나무와 인간, 동식물이 공생공존하고, 자기만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숲에서의 조용한 즐김은 심신의 위안과 함께 휴식, 놀이문화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리하우스 숲에서 즐기기는 이처럼 주변으로의 시선을 내 안으로, 자연 속으로, 고요의 공간으로 이끌며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자연의 품안에 깃들여 '숲멍', '불멍', '물멍'을 하며 원초적인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아름다운 자연체험을 『트리하우스, 숲에서 행복하기』는 그 원초적 이유들을 들어 깊이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는 눈에 확 띌 만한 사진이 많다. 저자가 트리하우스를 운영하기까지의 모습과 개척해가는 모습, 주위 경관, 트리하우스가 일부 완성된 모습 등 그동안 트리하우스에 대한 저자의 신념과 노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아 한 번 보고, 글을 읽다 또 다시 펼쳐보곤 하게 된다. 글이 내면의 세계의 표현이라면, 사진은 직관의 풍경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도구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트리하우스 숲 즐기기’를 보다 깊고 진한 울림으로 표현해주는 건 바로 저자가 직접 찍은 트리하우스와 나무, 숲, 사람들 사진 때문일 수도 있다.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한 저자의 묵직한 울림을 주는 130여 컷의 사진들은 독자들에게 녹음 짙은 숲으로의 생생한 비경(秘經)과 원시적인 즐거움의 공간으로서의 트리하우스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펼쳐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트리하우스’는 나무 위에 지은 집을 말한다. 한마디로 트리하우스 숲 체험은 어린이들에겐 꿈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길이자 어른들의 대안적 캠핑 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요즘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캠핑문화이다. 이 장에서는 완전 친환경 건축인 트리하우스의 자연친화적인 즐김에서부터 사계절 각각의 다른 색으로 다가오는 트리하우스 숲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우리 소나무를 활용한 저자의 트리하우스 건축철학에 이르기까지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뛰어놀고 편안하게 쉬고 올 수 있는 트리하우스 계곡 야영장의 모든 것이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독자들을 자연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저자는 책 곳곳에 자신이 좋아하고 산촌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산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실천하는 숲살이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만의 홍천 숲살림의 정수는 바로 1, 2차 산림산업에 3차 서비스업이 결합된 산림 6차 산업이 산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이다. 야영장도 하고 캠핑장도 하면서 그 속에서 숲체험과 숲 치유, 숲에 관한 교육 등 숲의 가치를 몸과 마음으로 즐기는 사업들을 해야 함을 강조해 주장한다. 또한 지역주민들과 함께 봄에는 산나물, 가을에는 싸리버섯-능이버섯-송이버섯-표고버섯을 심고 기른다. 여기에 더해 표고나무에 인공적으로 균사를 접종해서 가을에 송이가 지고 난 다음에 표고버섯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홍천의 쏠쏠한 겨울 경제나기는 땔감용 나무나 목재용 나무를 만들고 표고목을 만드는 것이다. 그밖에 봄이면 고로쇠수액을 채취하고, 시시때때로 원형벌통도 만들어 토종꿀벌도 하며 지역주민과 함께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나무를 활용해 집도 짓고 간단한 생활도구도 만들고 트리하우스에 들어갈 나무텐트며 페치카를 만들고 캠핑장에서 사용할 장작도 만들어 놓는 일들이 나무독립군이 가장 신경을 써서 해야 할 일들이다.

 

숲속 야영장은 원래의 산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놀이문화에서 발전해 다양한 이용객의 니즈를 맞춰주는 레저학습근무환경에 맞는 진일보한 캠핑시설로의 변신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놀이문화의 일상생활문화로의 자리매김은 앞으로의 숲속야영장의 경제효과뿐만 아니라 비대면시 대의 미래형 레저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p.163) - 「코로나시대의 여행, 숲캠핑 워케이션」중에서

 

저자 : 서경석

 

서경석은 홍천에서 나고 자랐다. 강원대학교 대학원 박사를 거쳐 농협에서 근무한 후, 임업전문가로서의 산림경영을 행정에 반영해 (사)한국감사협회 10대 회장과 산림조합중앙회 9대, 10대, 11대 상임감사를 역임했다. 2013년 고향으로 귀향해 자신의 산을 트리하우스계곡야영장으로 가꿔 ‘트리하우스 숲캠핑’이라는 새로운 가족캠핑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고향인 홍천의 산림 및 지방문화 개선에 힘써 홍천군 축제위원회 자문위원, (주)황토한옥학교 교장, (주)홍천장작마을 대표 등을 역임한 후 (사)한국임업경영인협회 부회장과 (사)한국산악회이사 (사)한국감사협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산림기술인교육원 교수와 임업기계훈련원 교수로 산촌 귀촌인의 소득증대와 임업경영에 관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1억으로 짓는 힐링 한옥》(2014년)이 있고, 박사학위논문으로 ‘자연휴양림의 효과분석’(1995, 강원대 석·박사학위 논문)이 있다. 대한민국 임업인 최초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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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커먼스 - 유전자에서 디지털까지, 인류 빅 히스토리를 통한 공간의 미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도서
홍윤철 지음 / 포르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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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호모 커먼스』는 부제 「유전자에서 디지털까지 인류 빅 히스토리를 통한 공간의 미래」에서 보여지듯이 생물학, 의학, 사회학, 미생물학, 유전학 등 인류가 꾸준히 발전시켜 온 각종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인류 진화학적 측면에서 미래 인류의 존속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저자 홍윤철은 가정의학, 예방의학,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자격을 갖춘 의사로서 인간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후 위기와 펜데믹 상황인 지금 제대로 방향을 맟춰 인류 문명 발전에서 지속해 온 공유, 협력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 「공생과 공존, 그리고 공유성」을 통해 "공유지(Commons)'라는 말은 공동체를 뜻하는 커뮨(Cmmune)에서 왔다. 따라서 공유지는 '공동체의 공유적 장소'라는 의미다. 공동체가 없으면 공유지는 없고, 또 공유지가 없으면 공동체의 실체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공유지는 공동체가 공동의 자원을 활용하여 경제 활동을 하는 대상, 즉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의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공유지를 물려준 선대부터 이를 다시 넘겨줄 후대에 이르기까지 좋은 상태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의 개념이 포함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유지는 자유시장경제의 논리가 제한 없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라, 보다 큰 시각 즉 문화적 전통이나 사회 공동 자산의 유지 관리, 더 나아가 생태계 보존에 대한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 책에서 지구 역사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인류가 지구의 운명을 손에 쥐고 흔드는 존재가 되기까지 짧은 기간에 어떻게 막대한 영향을 가질 수 있었을까란 문제부터 파고 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실 이처럼 인류가 마치 우주 창조자인 '신의 대리인' 위치로 올라설 때까지는 인류의 노력이라기보다 물려받은 유산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삼림을 보호하고 생태 자원을 보존하는 것은 인류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자세라는 것이다. 기후 비상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생태계를 꾸리고 새로운 도시를 생성해야 하는가. 끊임없는 팬데믹의 시대에 도래한 지금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개인과 집단의 권리, 의무, 개인의 자유와 권력이 품고 있는 강제성, 사익과 공익, 이 모든 것에 대한 적절한 균형의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책 『호모 커먼스』는 생태계와 인간의 공생, 공존, 그리고 공유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문제에 접근해야 인류를 위한 해결책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고 있다.. ‘공유’와 ‘인류’에 대한 생각의 전환과 발전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새로운 길이 되어 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공감을 통한 연대」, 2장 「생태계와의 공존과 공유」, 3장 「인간 안의 생태계」, 4장 「인간과 공진화」, 5장 「사회적 인간」, 6장 「공유 사회」, 7장 「협력 사회」, 8장 「새로운 공유지의 개척」, 9장 「디지털 공유지」, 10장 「새로운 도시」이다. '들어가는 말'을 통해 공유지로서의 개념을 언급한 바 있지만, 이는 갑자기 저자가 하는 주장이 아니라 이미 1217년 영국 국왕 헨리 3세가 이미 공식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확립된 개념이라고 한다. 이 문서가 학교 다니면서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는 '마그나 카르타'이다. 우리는 '자유대헌장'이라고만 배웠지만, 이때 서명한 두 개의 문서 중 하나는 '카르타 데 포레스타(Carta de Foresta)'란 삼림헌장이다.

 


 

이 같은 공유지 논리는 자본주의가 채택한 '시장 논리'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의 특허권은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백신 개발을 촉진시키는 수단이므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특허권으로 인해 비용이 올라가면 가난한 국가에서는 백신 공급이 더뎌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가난한 국가뿐 아니라 선진 국가에 사는 사람들 역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백신 특허권은 공익을 위하여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논리의 대립을 피하고 상생의 방안을 찾았던 화이자는 국가별로 백신 가격을 차별화하여 중상위 소득 국가의 백신 가격은 고소득 국가 가격의 절반으로, 중하위 소득과 저도득 국가에는 원가에 공급하는 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은 개인과 집단의 권리와 의무, 개인의 자유와 정부 권력의 강제, 그리고 사익과 공익의 적절한 균형에 대해 잘 정리할 필요성이 있음을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이는 근원적으로 '나는 무엇인가?', '나의 권리는 어디까지인가?'와 관련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나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호모 사피엔스 인류 종에 속하고, 나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특성은 호모 사피엔스 종이 가진 고유한 유전체에서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미생물 군집과 같이 공존하는 복합생물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의 본질적 측면은 공유적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공유적 방식의 삶을 사는 인간, 즉 호모 커먼스에게 독점적으로 귀속되는 소유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저자는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문제 제기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데 의학은 물론 생물학, 미생물학, 유전학적인 시각의 접근을 시도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각장의 제목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에 이 책이 얼마나 치밀하게 여러 분야에서 증명될 수 있음을 독자들은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사회학적 접근과 미래학 시각의 접근도 시도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가벼운 질문을 던지면서 하나씩 해결 방법으로 접근해 간다.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역사를 거슬러 보면 인류와 침팬지는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진 존재이다. 진화를 거치며 인류의 뇌는 커졌고, 다른 종과 비교하자면 인류의 뇌는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큰 크기를 가지고 있다. 뇌의 발달로 인류는 지구 환경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뇌는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거나 기쁜 순간을 경험했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감정을 공유한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도 나를 넘어선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는 공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가 변화되고 있다.

1장 「공감을 통한 연대」에서 인간의 유전자, 즉 우리가 갖고 있는 유전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부모의 난자와 정자가 융합되어 만들어졌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실은 인간에게서 발견된 대부분의 유전자가 과거 언젠가 다른 종으로부터 전달되었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졌다. 진화론적 시간으로 유전자의 공유를 본다면 인간은 전체적으로 유전 정보의 50% 이상을 식물 및 동물과 공유하고 있다. 동물과의 유전자 공유를 보면 초파리 같은 벌레와 61%를 공유하고, 소와는 약 80%를 공유한다.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 중 원숭이와 DNA의 약 93%를 공유하고, 고릴라는 98.4%, 오랑우탄과 DNA의 96.9%를 공유한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보노보, 침팬지와는 DNA의 98.8%를 공유한다. 인간 사이의 DNA의 공유는 99.9%다.

 

 

디지털 시대, 인류는 어떻게 미래의 공유지를 만들어 갈 것인가? 사회 인프라는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사회적 공유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소유한 공유지의 질이 높아지면 커뮤니티 구성원의 삶의 질 또한 마찬가지로 향상된다. 이는 또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안전망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공유지가 축소되어 가는 현재 시대에서 사회적 공유지의 비율을 높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방안이다. 인류는 구역화되고 배타적인 장소가 되어 가는 현 도시의 모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다. 이 책은 우리가 미래 사회의 공유지를 어떻게 설정하고 꾸려 나가야 하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인류가 “생태계의 지배자가 아닌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세계관은 “생태계 구성 요소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이러한 생각이 자연과 사회가 가진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호모 커먼스』는 사회 공동체가 같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자연뿐 아니라 사회적 지식, 기술이며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 생태계와 그동안 쌓아온 업적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공유지는 현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합의를 통해 공동 소유로 결정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결정권은 과연 누가 가지고 있는가?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오늘날의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왔다는 점과 인류가 지닌 모든 능력과 전략은 번성의 기반이 되어 사회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간 토론해 온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이 첨예한 지적과 통찰은 우리 미래 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각 분야별 시각으로의 접근과 분석을 통해 인류의 존속 문제를 파악한 저자는 최종 결론에 이르도록 독자들을 돕는다. 각 분야별로 분산된 결과 서로 부딪치는 문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란 예상 외로 한 가지 사실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저자는 '정리하며' 「미래의 공동체 사회」를 통해 결론을 정리한다. "공유지는 사회 공동체가 같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토지, 산, 강, 바다와 같은 자연뿐 아니라 사회적 지식, 기술, 그리고 산물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태계,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은 상당 부분이 공유지의 영역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유지의 대부분은 현재의 공동체 구성원이 합의에 의해 공동 소유지로 결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대부분 과거의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으로 봐야 하고, 따라서 현재의 구성원들이 사용하고 미래 세대에게 다시 물려주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즉 현재의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는 공유지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분 이후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적 소유에서 사적 소유로 전환되었고 이제는 공유화할 공간이나 영역 자체가 부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유지 사유화의 결과로 삶이 피폐해지고 가난해진 공동체의 하층민은 낙오자가 되어 양극화의 희생양이 되어 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동체의 공동성을 훼손함으로써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고, 양극화 과정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상류계층 역시 안전하지 않다. 따라서 공유지의 회복을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지위를 갖고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참여의 공유지 광장, 즉 아테네의 아고라 같은 장소에서 공감을 바탕으로 공유와 공생이 그리고 공존의 가치를 들고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공생 관계는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개체 경쟁에 의한 자연선택은 주어진 환경에 보다 적합한 유전자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우수한 유전자들이 진화를 주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주어진 환경에 과거나 현재 시점에서 적합하게 구성된 유전자는 환경 변화가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경우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합성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기능의 저하나 질병으로 나타난다.(p.115) - 「인간은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다」 중에서

 

비즈니스 네트워킹은 이제 경력 개발과 전문적 성공을 위한 최고의 자원 중 하나다. 좋은 네트워크는 취업 기회를 주고, 승진 가능성을 높이며,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한다. 또한 네트워킹을 통해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기회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나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사람으로 구성되며, 이들 모두는 잠재적으로 귀중한 전문적인 지원을 줄 수 있는 자원이 된다.(p.272) - 「폐쇄적 길드에서 개방적 공유지로」 중에서

 

저자 : 홍윤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의학, 예방의학,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이면서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학생들에게 〔인간, 사회, 그리고 의료〕라는 학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며, 『질병의 탄생』, 『질병의 종식』이란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이는 각각 『The Origin of Diseases』와 『The Changing Era of Diseases』로 번역되어 해외 출간되기도 하였다. 국제학술지에 30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정회원 그리고 세계보건기구 WHO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 『펜데믹』, 『미래의 귀환』, 『코로나 이후 생존 도시』를 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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