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클래식 - 천재 음악가들의 아주 사적인 음악 세계
오수현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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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어렸을 때 음악 시간에 배운 클래식(기본적이고 성악곡 몇 곡 정도)으로 클래식을 배웠다고도, 안다고도 말할 정도는 안 된다. 그 당시에는 클래식은 일반 대중들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상류사회(이 말도 당시에는 없었고, 사회 고위층 모임 정도)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일주일에 한 시간 유지되던 음악시간도 2학년 때부터는 대학 입시 체제로 교과 과정이 짜여져 그마저도 사라졌다. 독자 개인으로서는 고 1 때의 음악 시간이 '마지막 수업' 이 된 셈이다. 그래도 당시 음악 선생님은 요즘 말로 일류대인 서울대 음대 출신이어서 성악으로 자주 불리는 '오 솔레 미오' '라 스파뇨라' 등 대여섯 곡을 수업 시작 전에 부르고 본격 수업에 들어갔다.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음악(당시엔 포크송과 팝송)과, 악기라고 해봐야 기타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클래식을 대여섯 곡씩 부르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때 불렀던 당시 클래식 노래 몇 곡은 눈 감고도 부를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클래식 관람료는 일반 서민들이 부담하기에는 엄청나게 비쌌다.(물가 환산을 해 따지면 지금보다 너댓 배는 되는 것 같다. 또 음악대학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는 데에도 돈이 많은 집안의 자녀가 아니면 꿈꾸기 어려울 정도의 학비가 든다고 들었다. 물론 대학의 학비가 비싸다기보다는 학교에서의 공부 이외의 이른바 '교습비'가 엄청나다고 했다. 기악하는 사람들의 악기 또한 상상을 초월했으니 부잣집 자녀가 아니고서는 꿈꾸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만의 교육으로는 흔히 말하는 '무대'에 서기도 어려워 당연히 해외 유학비까지 있어야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력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서양처럼 예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서양도 그랬다고 한다.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부자들이 예술가들의 그림을 주문해서 생산하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후원을 받기를 희망했다는 것. 생계 걱정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메세나'라고 해서 기업들의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당시 예술 지원 가풍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메디치가(Medici family)는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지배했던 가문으로 15~17세기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고 한다. 이 집안은 4명의 교황을 배출했으며,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메디치라는 이름은 1230년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 이전의 역사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메디치(Medici)'는 이탈리아어에서 '의사'를 뜻하는 '메디코(medico)'의 복수형이므로, 이들의 조상이 의사나 약제사, 염료 상인 등의 직업을 가졌던 데에서 그러한 가문의 명칭이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시대에는 직물을 염색하는 데 쓰이는 염료가 약재와 함께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메디치 가문에서는 '코시모(Cosimo)'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것도 의사와 약제사의 수호성인인 '성 코스마스(Saints Cosmas)'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 여름, 우리 신문·방송은 이른바 ' K-클래식' 열풍으로 뜨거웠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부터 첼리스트 최하영,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특히 임윤찬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어마무시한 곡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는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에서만 음악을 배워 최고의 성공을 거둔 K-클래식 '천재 피아니스트'로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책 『스토리 클래식』의 저자 오수현은 ‘과연 우리는 세계가 극찬한 임윤찬의 연주가 주는 감동을 200% 느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임윤찬의 기교가 뭔가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 일반인 중에는 대체 이 곡의 어느 지점에서 감동의 눈물이 나와야 하는 건지, 이 곡이 얼마나 어렵고 특별한 곡인지는 체감이 어렵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실 클래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음악시간이 생각나서 우연히 들은 클래식 전문 방송을 듣다가 아는 노래가 나와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지금은 클래식 애호가(이렇게 칭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성공적 연주를 직접 들어보지도 못했고 아직 그 음반(시판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도 구매하지 못했지만 독자는 여전히 가벼운 일처리를 할 때는 여전히 클래식 방송이나 클래식 CD를 틀어놓고 듣는다. 저자의 지적대로 임윤찬의 피아노에 감동한 게 아니라 당시에 친 라흐마니노프도 잘 모르고, 그의 「피아노 협주곡 3번」는 처음 듣는다. 이 책 『스토리 클래식』은 클래식 애호가로서 깊이 있는 지식의 탐구를 채우고 싶은, 반대로 클래식을 알고 싶지만 도무지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클래식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집필했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술술 풀어가는 이 책의 스토리텔링은 이제껏 없던 클래식의 몰입을 선사한다.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해 가장 사랑받는 천재 음악가 16인의 중요한 생의 순간들을 포착,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삶의 이야기로 클래식의 이해를 돕는다. 위대한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이 그때 그 시절엔 하인이었다는 사실, 일평생 60번 넘게 이사 다녀야 했던 베토벤의 사연, 지휘하다 결혼식을 올리고 돌아올 정도였던 워커홀릭 말러, 악마의 피아노 연주라는 별명을 가진 리스트의 사교계를 뒤흔든 연애 스캔들 등. 그동안 클래식 음악이 주는 왠지 모를 근엄함에 가려져 있던, 이들의 어딘가 이상하고 요상한 파란만장 삶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피어난 명곡의 탄생 과정과 함께 300년 가까이 이어온 그들 작품의 위대함을 설명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거장들의 혹독하면서도, 현재의 우리와 별다른 것 없는 희로애락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리는 클래식 이야기는 그간 높게만 느껴지던 클래식의 장벽을 확 낮춰준다. 또 각 음악가들의 출생 순서에 맞춘 구성을 통해 자연스레 세계사의 흐름을 익히며,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의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독자처럼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애호가'를 위한 적절한 책이다. 독자는 그동안 클래식을 좋아하는 과정에서 입문서, 음악감상법이 적힌 책, 서양음악사 책, 기악이나 관현악 이론서 등 꽤 많은 책들을 읽었다. 클래식 음악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론서나 음악사 책은 딱딱하고 지루했다. 음악 감상 해설서는 너무 뻔한 이야기의 중복이다. 한 번쯤 들어봤던 유명한 그 곡을 쓴 음악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누구나 아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클래식 감상에도 클래식 지식 보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자 오수현은 어떤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는지 해당 음악가의 삶을 중심으로 써 내려가기에 누구나 쉽게 내용에 빠져들고,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 세계관과 곡 감상하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본문 속 작품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지점마다 QR코드를 넣어 명곡의 감동을 책 끝까지 이어주고, 역사적 사료를 더해 내용의 손쉬운 이해를 돕는 것은 실체 그 자리에서 바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또 클래식 용어를 쉽게 풀이한 ‘클래식 Q&A’와 함께 각 음악가의 특징과 함께 엄선한 주요 작품, 감상 팁을 정리한 ‘클래식 노트’를 담아 누구나 쉽게 클래식의 기초 지식을 정비하고 습득할 수 있게 썼다. 삶의 치열한 번민 속에서도 주옥같은 명곡을 만들어낸 천재들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 위대하지만 조금은 요상한 그들의 음악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껏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던 클래식이 절로 들리게 될 것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젠 가을이다. 가을이면 누구나 감상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가끔 느낀다. 그 요인이 음악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은 다른 무엇보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예술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특히 가을은 색으로도, 언어로도 미처 표현하지 못한 소리로 표현하는 클래식에 한 번 빠져들기 좋은 계절이다. 『스토리 클래식』이 그 길을 안내해 주리라 독자는 믿는다.

 

쇼팽은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여자는 정말 질색이야. 진짜 여자이긴 한 걸까!” 예술사에 길이 남은 커플인 쇼팽과 상드의 첫 만남은 이렇게 비호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둘은 어떻게 19세기 유럽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세기의 커플이 될 수 있었을까요.(p.115) - 「프레데리크 쇼팽, 사랑을 갈구했지만 허약하고 불완전했던 남자」 중에서

 


 

독자는 책은 조금 읽었지만 클래식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못했고, 공부하지도 않았다. 클래식을 조금 들었다고 클래식 전문가가 쓴 책을 칭찬하기에도 버겁고, 비평을 할 지식도 못 갖추고 있다. 독자 같은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 못한 독자들에게 가장 멋진 추천평을 해준 분의 말을 여기에 대신 싣는다.

"열네 살, 가족을 떠나 낯선 땅 오스트리아 빈에서 맞은 첫 겨울은 무척 어둡고 추웠습니다. 어느 날 동네를 터벅터벅 걷다가 발견한 슈베르트의 생가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저에게 반가운 친구의 집처럼 따뜻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때 받은 위로 때문인지 지금도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면 제 안에선 애틋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 샘솟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작곡가와 정서적으로 연결된다는 건 연주자에게 정말 특별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작품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되니까요. 제가 어린 시절 슈베르트와 친구가 된 것처럼, 여러분도 『스토리 클래식』을 통해 위대한 음악의 거장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이들과 친구가 된다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클래식 음악이 친근하고, 따뜻하게 들릴 겁니다."

- 김정원 (피아니스트, CBS 음악FM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진행자)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일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평생 지휘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10개의 교향곡을 비롯한 후기 낭만주의의 이정표와 같은 위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오페라단 소속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연주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되는 직책입니다. 말러에겐 오페라 시즌 후 여름휴가를 알프스에서 보내면서 교향곡 작곡에 매진하는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에게 엄격했고, 가혹하리만큼 자신을 몰아세웠습니다. 말러의 일 중독 성향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는 연습 때 단 1분도 지휘대를 비우는 법이 없는 엄격한 지휘자였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런 말러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죠. 그러던 어느 날 말러가 연습 도중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 1시간만 자리를 비우겠네.” 말러는 1시간 뒤 정확히 자리로 돌아왔죠. 연습이 끝난 뒤 한 단원이 어딜 다녀왔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왔다네.”(p.259) - 「구스타프 말러, 지휘하다가 결혼식 올리고 돌아온 워커홀릭」 중에서

 

저자 : 오수현

 

어릴 적 집에는 클래식 음반이 꽤 많았다. 돌아보면 부모님께선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셨던 것 같은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밴 클라이번 같은 전설적인 연주자들의 명반이 많았다. 부모님 모두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마침 집에는 큰 전축이 있었던 터라 ‘이게 뭘까’ 하는 심정으로 음반들을 한 개씩 꺼내 듣다가 또래보다 음악에 일찍 귀가 트였고, 전공까지 하게 됐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매일경제>에서 기자로 생활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땐 위대한 작곡가는 아니어도 밥은 음악으로 벌어먹고 살 줄 알았는데, 졸업 후 십수 년째 기자로 살고 있다. ‘음대 나온 신문 기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십분 살려 정치 기사처럼 쉽게 읽히고, 경제 기사처럼 중요한 정보만 추려낸 클래식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 전문 연주자, 음대 교수님들보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어떤 지점에서 클래식 음악을 어려워하고 어떤 의문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보다 딱 반 발짝만 앞서서 클래식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싶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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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
김완석 지음 / 라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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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감정 상태를 말과 태도로 확실하게 표출한다. 가끔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버거울 때도 있다. 감정의 주인은 분명 나 자신인데 내가 주인공이 아닐 때가 많다. 이럴 때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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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
김완석 지음 / 라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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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 『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의 저자는 현직 아파트 경비원이다. 아파트 경비원이란 직업은 저자가 표현한 대로 '슈퍼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하는 직업이다. 아파트의 경비 일을 하며 월급을 주민들이 주는 구조로 돼 있는 직업이다. 대개 경비원 1인당 100~200가구를 담당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식 직원도 아니다. 용역 회사를 통한 파견 근로자 형식이어서 소속감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주민들이 가구당 3명씩만 있다고 가정해도 대략 500명 가까운 셈이다. 많은 주민들이 있다보니 요구사항도 다양하다고 한다.

그러나 들어줄 수 있는 요구나 가능한 요구를 하는 경우는 해야 하겠지만 부당한 요구이거나 '갑질'의 행패까지는 받아주기 어려울 것이다. 경비원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주민 폭행으로 피해 경비원이 '극한 선택'을 한 일이 사회 문제로 부각된 적도 있다. 부당한 요구를 하고 들어주지 않자 폭행을 하는 바람에 결국 피해 경비원이 극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소 처우가 나아졌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태라고 독자는 들은 바 있다. 이런 어려운 일자리를 생계 때문에 떨치고 나올 수 없는 이유가 경비원들의 나이가 적지 않은 곳이 많아 다른 대체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당한 처우라도 생계를 위해선 놓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일하는 셈이다.

 


 

여느 아파트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젊은' 경비원을 독자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그곳이 생계 유지의 일자리다. 다른 경비원처럼 쉽게 일자리를 놓칠 수 없는 이유가 나이가 아닌 자신의 건강 때문이라고 한다. 희귀병이라니 치료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르긴 해도 치료비도 만만찮을 테니 자신의 입장에서 생계 유지보다 앞선 '생명 유지' 차원의 일자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대단한 것이 삶에 대한 의지를 결코 꺾지 않고 치열한 투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글을 읽기 전에 그의 삶의 의지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박수부터 보내고 싶다. 그는 아마 건강을 고려해 다른 취미를 쉽게 가지지 못하고 '글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취미가 유일한 낙인 것 같다.

이 책도 30만 글스타그램이 추천했다고 하니 글솜씨도 상당하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어쩌면 글솜씨보다 '진정성'이 더 중요하겠지만. 매 글마다 수십 개의 공감 댓글이 달리는 것이 진정성 때문이리라.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삶의 의지와 열정으로 경비 일을 하며 따뜻함을 잃지 않는 작가로 거듭난 셈이다. 책의 제목부터 현장에서의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기고 그가 쓴 글이 위로의 글이었다는 글의 정체성도 말해주는 것 같아 감탄스럽다. 위로를 받아야 할 입장의 희귀성 난치병 환자의 힘듦을 이겨내며 글로 남을 위로하는 데까지 이르다니, 대단한 노력과 열정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저자 김완석은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경비원이 됐다고 밝힌다. 저자는 다른 경비워들처럼 소란스러운 일을 자주 겪는다. 아파트 경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감정 표현은 과격하기 하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겠지만 모욕적인 말을 쏟아내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는 것은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부분 담담하게 받아내지만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다. 감정의 주인은 분명 나 자신인데 내가 주인공이 아닐 때가 많다고 말한 데서 참기 힘든 모욕적인 언행도 겪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이 책은 저자가 지난 몇 년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쓴 글을 모은 것이다. SNS에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온 저자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기분에 맞춰 살아야만 하는 이들의 격한 공감을 받으며 단 며칠 만에 5,000여 명의 팔로워를 늘리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며 살아왔던 지난날들, 이제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 아닌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다짐이 담긴 이 책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경험과 사색, 그리고 글을 쓰면서 승화시킨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데 충분할 정도로 농익은 감정 순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울면서 출근해야 했고, 부당해도 삼켜야 했으며, 허겁지겁 달리다 수차례 넘어져야 했던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의 글에서 문득 '의인'의 향기도 난다.

 


 

책을 읽다 보니 분노가 치밀 때도 있고, 감사하게 생각될 일도 있고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이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자 자신은 이 일을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 부끄럽게 여긴다면 이 일을 계속할 필요가 없을 터다. 나이가 아직 젊은데 찾아보면 일자리 없을까 하는 생각이 독자에게도 있다. 다른 경비원들과 마찬가지로 모욕적인 말을 듣는 것이 일상이고 가끔은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는 말엔 연민의 정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어린 학생의 손편지에 감동하고 남몰래 요구르트를 챙겨주는 할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낀다니 조그만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아주 선량한 사람이란 느낌이다.

이 일은 저자에겐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만나며 더 단단해지고, 수많은 감정들을 마주하며 더 깊어지도록 자신을 단련시킨다. 이것이 자신의 일을 조금이라더 더 열심히 더 잘해낼 수 있는 이유이다. 독자도 아파트에 산다. 여러 명의 경비원과 얼굴을 마주하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친구처럼 다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속 깊은 얘기를 들을 때는 오히려 독자가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더욱이 저자는 한참 나이 스물아홉 살이라니, 그 나이에 일반 청년들은 참기 어려운 일이 많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욕설, 술주정, 심지어 폭행도 경우에 따라서는 참고 넘어가는 일도 있을 것이다. 경비원이 겪는 세상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은 얼마 전 주민 폭행 사건 때 많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어느 아파트나 그런 사람이 꼭 있나보다. 새벽에 만취한 입주민의 술주정을 받기도 하고, 층간 소음 민원을 해결하려다 욕세례를 받기도 한다는 저자가 경비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굳이 그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이제는 다 아는 사실이 되었을 정도로 일반화된 '갑질'들이다. 저자는 쉬는 시간 경비실에 들이닥쳐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는 경비실장의 잔소리는 덤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그에게 “왜 실패하셨어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실패자'가 되기도 한다.

사실 '나의 호의가 누군가의 권리가 되어 돌아올 때, 나의 최선이 누군가에게 실패로 비쳐질 때' 우리는 좌절한다. 좌절감에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넘길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남에게 건넸던 위로의 말들을 자신에게 건넸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했음을, 충분히 잘 살았음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는 것. 대단한 삶의 내공이다. 힘든 경험은 더 나은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일까. 스물아홉 나이에 겪지 않을 일들을 미리 겪어서 일찍 내공이 쌓인 것일까? 저자가 매일매일 써내려간 글들이 책이 된 이 내용들을 곱씹다 보면 독자도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나도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며, 꽤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득 이 책을 읽은 이유가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인가? 하는 기분 좋은 느낌. 이 책은 그런 깨달음을 통해 지금까지 독자를 갉아먹었던 불필요한 감정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시간을 갖도록 힘과 의지를 갖도록 메시지를 준다. 이것이 저자의 진정성에서 비롯됨을 독자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지친 하루 끝에 “고생했어”라는 말 한마디를 들었을 때 마음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린 대개 사소한 것들로 위로받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때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pp.38-39)

 

어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도 참아야 했고, 힘든 감정도 숨겨야 했다. 참고 또 참다 보니 어느새 행복까지 참게 되었다.(pp.50-51)

 

저자 : 김완석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희귀성 난치병도 앓고 있다.

인스타 @kimwanseok33

카카오스토리 wanseok3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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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상호부조론 - 자선이 아닌 연대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딘 스페이드 지음, 장석준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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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력, 조직 갈등, 돈 문제 그리고 번아웃 등등... 상호부조단체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과감히 벗어나서 자선에 의지하지 말고 연대 협력 강화해 인류 대위기의 시대를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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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전쟁과 협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 가지를 번갈아 지속해 왔다. 전쟁은 인류가 이뤄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였고, 협력은 전쟁의 복구나 생존을 위해 집단간 필요해 의해서만 성립했다. 결국 끊임없이 경쟁을 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지속될 것이란 암울한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은 인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학자들도 있다. 인류의 역사 내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수립한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 구조는 사람들이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겼을 뿐 서로 연대하고 필요한 자원을 공유해온 방식을 파괴함으로써 부를 소수에 편중되게 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 공공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다. 건강 유지가 아니라 이윤을 중심으로 설계된 보건 시스템, 환경을 파괴하는 식량 및 교통 시스템, 폭력적인 치안 시스템하에서 우리는 의지할 곳 없이 고립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신질환이나 약물남용, 가정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리는 사람은 경찰이나 법원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도움도 얻지 못하는데, 공권력의 개입은 피해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공공 서비스가 배제적이고 불충분하며 징벌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돌봄과 좋은 삶을 누리도록 하는 상호부조 활동은 충분히 급진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범죄로 여기기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책에 따르면 재난은 정치의 방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 재난은 시스템의 균열과 허점을 드러내고 대안을 요구한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상호부조 단체들이 급증했고, 지난 수십 년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상호부조를 조직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있다. 이는 많은 변화를 이뤄낼 커다란 기회라는 것이다. 위기의 절정을 넘기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꾸준히 더 많은 사람을 활동으로 이끌어 그들을 격분하게 하는 위기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깊이 이해하며 대담한 집단행동 역량을 구축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상호부조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라는 것이다. 로빈 켈리(Robin D. G. Kelley, 역사학자, 《자유의 꿈: 흑인 급진파의 상상력Freedom Dreams: The Black Radical Imagination》 저자)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를 가리켜 ‘진화의 한 요인’이라 했으며, 블랙팬서당은 ‘생존을 위한 지속적 혁명’이다"고 말했다. 이 책 『21세기 상호부존론』의 저자 딘 스페이드(Dean Spade)는 상호부조가 지속적 혁명과 연대를 이루기 위한 근본 토대임을 강조한다. 우리 시대의 필수 안내서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이 책은 상호부조 없이는 강력한 사회운동이 있을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주장으로 추천평을 썼다.

이 책 『21세기 상호부존론』에서 저자는 재난 시기야말로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점이라고 주장하며, 지금 그리고 미래의 위기를 대비한 민중의 연대로서 상호부조 단체의 가치와 가능성을 전망하고 그 실행을 위한 매뉴얼을 찾는다. 이 책은 2부 5장으로 이루어졌다 1부 「상호부조란 무엇인가?」는 오늘날 상호부조가 왜 중요하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설명했으며, 2부 「목적의식을 가지고 협력하기」에서는 상호부조단체가 직면하는 어려운 문제들, 예컨대 집단문화와 의사결정 권한, 구성원 간의 갈등, 돈 관리와 번아웃 등을 다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일련의 논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상호부조를 일상에서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우리 자신에 대한 집단적 돌봄을 조직하고 수천만 민중을 참여시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는 방법을 상상하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저자 딘 스페이드는 이 책에서 좌파 사회운동에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는 파국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존하도록 돕기 위한 ‘조직화’, 둘째는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수천만 민중이 저항에 참여하도록 하는 ‘확장’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저항에 참여하게 이끈다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할 방법이 바로 상호부조 프로젝트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세력화하고 중요한 변화를 이뤄낸 사회운동들은 모두 상호부조를 포함했지만, 이는 운동 안에서 눈에 잘 띄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코로나 국면에서 이미 보았듯이, 운동이 구축되면 정부, 대기업, 거대 언론이 접근할 텐데, 이는 부정적인 영향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일부는 상호부조 활동의 급증을 무시한다. 또 다른 일부는 이를 자원봉사 담론 안에 가둬두려 하며, 상호부조 활동을 영웅적이라 칭하면서 기존 시스템과 대립하기보다는 시스템과 정부의 노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묘사하려고 애쓴다. 마지막으로 일부 경찰과 첩보기관은 상호부조 활동을 감시하고 범죄시한다. 문제는 상호부조 단체도 그에 대한 피드백으로 세 가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움받을 자격을 위계구조화해 또다시 취약계층을 소외시키거나, 시혜적인 태도로 구세주주의와 온정주의에 빠지거나, 제도권으로 흡수되어 세력이 약화되거나 심지어 시스템을 정당화 또는 확장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저자는 또 지난 50년간 사회운동 역사는 치안 당국, 기금 제공자, 문화의 압력 아래에서 자선 모델이나 사회서비스 모델로 변질되고 변혁적 역량을 상실한 상호부조 단체의 사례로 넘쳐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호부조 활동의 긴급성으로 인한 한 가지 단점은,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신경 쓰지만, 막상 단체가 강력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한 훌륭한 내부 관행을 만드는 데는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결정이 투명하지 않은 단체에서는 지도자가 돈이나 명예에 유혹받고, 일자리를 얻고 보조금을 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단체의 핵심 가치를 팔아넘기기가 훨씬 쉽다. 치안 당국이 침투해 파괴하기도 쉽다. 또한 참여자들이 과로에 시달리다 번아웃되기 십상이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2부는 저자가 활동가로서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단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체크리스트와 템플릿을 수록한 실용적인 가이드북이다. 민주적인 집단문화를 구축하고 합의형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과정,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지도력 자질, 구성원 개인의 과로와 번아웃을 예방하는 방안, 갈등 상황을 조율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단체 내에서 자주 겪게 되는 문제들을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표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실려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삶의 일부로서 지속적으로 상호부조에 참여함으로써, 이윤이나 위계에서 벗어나 지구에 파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먹고 소통하며 대피하고 이주하며 치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세계를 이 책은 상상한다.

 

 

기후위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부 정책이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특정 집단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지역사회 안에서 대응에 나서야겠다고 느끼는 보통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자원을 함께 나누고 취약한 이웃을 돕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운동과 연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구조 활동, 이른바 ‘상호부조(mutual aid)’다. '상호부조는 자선이 아니라 연대!'라는 책의 내용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이유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음식, 물, 의약품과 기타 필수품을 공급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이전 해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에서 태동한 자원활동가 기반 네트워크 오큐파이 샌디였다. 2019년 홍콩에서 반정부시위가 이어지던 당시 코로나 발생 국면임에도 당국이 복면금지법을 내세워 마스크 착용을 막고 국경 폐쇄를 꺼리자, 시위대가 직접 시민들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공급했고, 노동조합에 속한 7,000명의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국경 폐쇄와 개인보호장비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그 밖에 구급차 출동이 오래 걸리는 가난한 동네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위해 응급 처치를 훈련하거나, 병원비가 없는 이들을 위해 임신중절 비용을 모금하거나, 과도한 경찰폭력이나 이민 단속에 맞서 범죄화된 대상을 숨겨주는 행동이 모두 상호부조 사례다. 상호부조는 지역사회가 사회운동과 연계해 생존과 관련된 필요를 충족하는 다양한 구조 활동을 아우른다.

 


 

변호사이자 법학 교수, 사회운동가인 저자 딘 스페이드는 저소득층 유색 인종 성소수자를 위해 법률구조를 지원하는 단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빈곤한 유대인 가정 출신 트랜스젠더로서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했다. 미국의 각박한 복지제도, 열악한 서비스산업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 계급·젠더·인종 등 미국 사회의 온갖 모순이 응축된 입양제도 등등… 이 중 어디에서도 저자는 그저 차가운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머물렀던 적이 없다.

"'20세기 후반에 급증한 비영리 부문의 탄생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반인종주의, 반식민지, 페미니스트 운동의 대중적 상호부조 활동이 제기한 위협에 맞선 직접적 대응이었다. 비영리단체는 진정한 변화는 소수의 유급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로 이루어진 운동을 통해 실현된다는 진실을 감추고 불의한 시스템을 정당화하며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고안되었다. 오늘날 빈곤을 해결한다고 자처하는 비영리단체는 대개 백인 엘리트에 의해 운영된다. 비영리단체와 대학은 석 · 박사 학위 소지자가 사회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는 데 적격이라는 생각을 고취한다. 빈곤 문제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만이 풀 수 있는 일종의 알쏭달쏭한 수학 문제인 양 포장하면서 빈곤의 원인을 신비화한다. 그러나 가난한 이라면 누구나 빈곤의 원인이 사장, 지주, 의료보험회사의 탐욕이고, 백인우월주의와 식민주의 시스템이며, 전쟁과 강제 이주임을 안다. 엘리트적 빈곤 해법은 항상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다."(p52~53)

 


 

이 책의 역자 장석준은 「옮긴이 해제」 '갑자기 왜 21세기 코로나19 팬데믹 논의에서 벗어나 100년도 더 된 책(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이야기를 꺼내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부족하거나 결핍된 사회적 요소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후반부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크로포트킨은 다른 생물 종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상호부조를 통해 생존하고 발전하며 번영했음을 보여주며, 문명 발전에 따라 협력의 양상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훑는다. 그러면서 협동과 연대가 개별 인간이 아니라, 그렇다고 국가도 아니라 주로 다양한 연합들을 통해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던 시기에는 마을 공동체가 이런 역할을 했고, 도시가 등장한 뒤에는 도시 자치조직(코뮌)과 동업조합(길드)이 이 임무를 맡았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제회 같은 자발적 결사체들이 그 뒤를 이었다. 크로포트킨은 제도화된 종교에 적대적인 아나키스트임에도 여러 종교 공동체 역시 이런 상호부조 조직에 속한다고 인정한다고 밝혔다."고 언급한다. 즉 지금의 한국 사회의 흐름을 보면 급진좌파 사회운동가 크로포트킨의 주장이 생각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 : 딘 스페이드(Dean Spade)

변호사이자 시애틀대학 로스쿨 부교수. 주로 공권력, 감금, 젠더, 인종, 사회운동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20여 년 동안 감옥, 국경, 빈곤, 전쟁을 철폐하고 민중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사회운동에 종사해왔다. 특히 2002년에는 저소득층, 유색인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젠더 비순응자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동체 방식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법률 단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Sylvia Rivera Law Project’를 창설했다. 저서로는 《정상적 삶: 행정 폭력, 비판적 트랜스 정치 그리고 법의 한계Normal Life: Administrative Violence, Critical Trans Politics, and the Limits of Law》 등이 있고,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아웃Out》, 《인 디즈 타임스In These Times》, 《소셜 텍스트Social Text》, 《사이즈Signs》 등에 정기 기고하고 있다.

 

역자 : 장석준

사회학을 공부하고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활동에 참여해 왔다. 지금은 출판·연구 집단 산현재 기획 위원으로 일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연구하고 글을 쓴다. 그동안 쓴 어린이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가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의 적록서재》 등을 쓰고 《디그로쓰》,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유럽민중사》, 《도서관과 작업장》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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