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세계사를 흔든 사랑 - 유튜브 채널 수다몽이 들려주는 사랑과 욕망의 세계사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수다몽 지음 / 북스고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가 아는 '세계사를 뒤흔든 사랑 이야기'라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장 최근의 영국 항태자비 '다이애나'의 이야기이다. 황태자비 다이애나는 결혼식부터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등 화려하고 '세기의 결혼'이란 말을 들었다. 물론 대부분 알고 있듯이 찰스 황태자의 '바람기'로 결국 이혼하고 다이애나는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을 하는 등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또 하나는 에드워드 8세 이야기이다. 과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왕의 자리를 버린 남자다. 평소 모험심이 강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고 전해지는 윈저 공이 주인공이다. 할아버지였던 에드워드 7세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왕자로 성장하고, 젊은 시절엔 해군에 입대해 참전하기도 했다.

1910년 할아버지였던 에드워드 7세가 사망하자 당시 에드워드 왕자였던 윈저 공도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왕세자로서 당시 에드워드의 인기는 셀러브리티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외모, 지위, 활발한 성격 탓에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았다고. 그는 끊임없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났고, 물론 여자도 많이 만났다. 그 중에는 가끔 결혼한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고, 에드워드 왕자의 사적인 행각이 멈추지 않자 왕실에서는 그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고도 전해진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조지 5세는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1년 안에 본인의 인생을 망칠 걸세”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하니 왕이 계승으로는 우려를 많이 주는 캐릭터였던 것. 이런 아버지의 우려가 사실이 된 걸까? 에드워드 왕자는 영국 왕실에서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바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월리스 심슨. 그녀는 스무 살이 되던 해 해군 조종사 스펜서와 결혼한다. 10년 만에 첫 번째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건너와 다시 사업과 함께 심슨과의 재혼에 성공한다. 타고난 패션 감각과 세련된 태도를 지닌 심슨 부인은 남편의 재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런던 사교계를 휘어잡는다. 그리고 한 파티에서 우연히 에드워드를 만나게 된다. 윈저 공은 당시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던 심슨 부인에게 첫눈에 반하고, 첫눈에 호감이었던 이 둘. 하지만 당시 심슨부인은 말 그대로 '심슨'의 부인. 결혼한 상태였다. 친구를 가장해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요즘말로 '썸'타는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첫 만남에 호감을 가진 두 사람. 결국 깊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남편은 왕이 될 에드워드에게 고스란히 부인을 빼앗기게 된다.

두 번 이혼한 여자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왕세자. 지금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당시 영국 왕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에드워드와 심슨 부인의 사랑은 그의 가족들에게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왕세자는 이미 그녀에게 푹 빠졌고. 1936년 1월 아버지 조지 5세가 사망하자 곧바로 왕위를 이어받게 된 에드워드 8세. 본인에게 왕위 승계가 선포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때조차, 그의 옆에는 아직 다른 남자의 부인이던 심슨이 함께 있었다고. 과연 이 둘은 왕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에 성공했을까? 이미 알려진 대로, 결국 왕이었던 에드워드 8세는 왕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협상까지 시도했지만 영국 내각과 정부, 교회, 가족들까지, 모두에게 거부당한다. 결국 즉위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1936년 12월 10일 동생 알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준 채 퇴위를 결정한다.

 


 

이 책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세계사를 흔든 사랑』에는 윈저 공 못지않은 사랑으로, 또 어떤 이는 악행으로 세계사를 흔든 사건이 담겨 있다. 동서양 합쳐 24개의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남자가 주인공인 경우도 있고, 여자가 주인공인 사례도 있다. 대부분은 사랑에 눈 멀고, 질투에 귀 먼 어리석은 '사랑놀음'이 많았지만 정치나 권력과 연결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권력자도 많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은 "역사는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지금의 인간보다 먼저 살다간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 순간도 몇 십 년, 몇 백 년, 몇 천 년 후에는 역사로 기록될 것이기에 지금을 더욱 소중히 하며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늘 사랑과 갈등, 야망과 권력 속에서 자신 또는 누군가를 위해 애썼다. 이 책에는 역사 속 다양한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저자 수다몽의 역사 수다를 담았다. 특히 세대를 막론하고 늘 관심사이기도 한 24가지의 ‘역사 속 스캔들,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며 그들의 사랑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다루었다. 현실은 더한 ‘막장’이라는 말처럼 충격적이고 놀라운 역사 속 사랑을 통해 역사적 흐름을 쉽고 재미있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고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출간 이유를 밝힌다.

 


 

저자 수다몽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세계사는 사건 중심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관점을 살짝 달리해보면 그 사건들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관심 가진 수다몽은 유튜브 채널 수다몽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이면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부각시켰다. 그중 사랑이라는 주제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세계사를 흔든 사랑』을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의 사랑과 스캔들이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끼쳤는지 만나본다.

역사 속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왕위를 빼앗기거나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현재의 상식으로는 결코 맺어질 수 없는 관계이지만 결혼을 하거나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들의 행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자극적이며 막장일 때가 대부분이다. 절세미인으로 소문난 이웃 나라 왕비를 탐하거나 왕위를 지키고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삼촌이 조카와 결혼하거나 자식과 자식을 결혼시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사랑을 갈구하기도 했으며, 욕망과 치정이 어우러진 불륜과 근친상간의 복잡한 관계도를 보고 있자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책에는 남편을 지독히 사랑하다 정신을 놓아버린 스페인의 후아나 여왕,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아버지의 정부를 사랑한 프랑스의 국왕 앙리 2세, 무용수를 사랑해 국고를 탕진하고 강제 퇴위당할 뻔한 바이에른의 국왕 루트비히 1세, 다른 남자들과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며 자신을 괴롭힌 아내에게 수천 통의 편지를 보내며 애정을 갈구한 나폴레옹 1세 등 세계사를 흔든 사랑 이야기가 애절한 속내를 드러내며 적혀 있다.

 


 

책에 따르면 조선사에서 악녀로 평가받는 장희빈의 생애와 닮은 사람이 있다.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 두 번째 국왕인 헨리 8세와 얽힌 여인 앤 불린이다. 애초에 형수 캐서린과 결혼한 것부터 경악스럽지만, 왕비의 시녀 앤 불린과의 러브스토리는 더한다. 교황청에서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자 헨리 8세는 영국 국교회를 만들고, 종교개혁을 단행해버렸으니 사랑 때문에 영국의 종교사는 급변하게 된 셈이다. 당시 이혼 문제를 반대하고 앤 불린과의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며 반역죄로 사형시켜버린 이들이 많았는데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가 이때 처형됐다고 한다.

앤 불린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엘리자베스는 이후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은 엘리자베스 1세로 등극했으니 앤 불린이라는 한 여자가 영국에 남긴 유산은 어마어마하한 셈이다. 헨리 8세의 불꽃 튀는 사랑의 감정이 어찌나 빠르게 솟구치고 사그라지는지 약 1,000일 동안 왕비였다고 처형 당한 앤 불린의 인생을 보면 종교개혁까지 하며 이룬 사랑을 지키지 못한 헨리 8세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후대 엘리자베스 1세의 위업 덕분에 앤 불린의 평가는 악녀에서 신교의 성인으로 이미지가 바뀐다. 저자 수다몽은 장희빈의 아들 경종 역시 성군이 되었었다면 장희빈의 이미지도 다르게 평가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슬며시 남긴다.

마음에 품은 여자 때문에 폐위 위기에 처할 정도로 국고를 탕진한 왕의 사랑도 있다. 어떤 악명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감정을 가슴 깊이 품고 있었던 바이에른 왕국 루드비히 1세의 이야기이다. "당신은 나의 불행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오."라는 글귀가 애틋하게 다가온다. 또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한 왕도 있다. 14세기 포루투갈의 페드로 1세는 왕자 시절 만난 시녀 이네스와의 사랑을 모두가 반대하며 급기야 페드로가 사냥 간 사이 이네스를 처형해버리는 일이 생기자, 이네스의 시체를 왕비의 의자에 앉혀놓고 대관식을 치르는 복수를 한다. 이네스의 사형에 관련된 인물들을 화형에 처하고 도망간 이들도 끝끝내 잡아들인 페드로 1세는 이후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이네스와의 사랑을 지킨다. 포르투갈에는 이들 러브스토리와 관련한 관광 명소도 있다는 게 저자의 귀띔이다.

 

 

세기의 로맨스는 동양에도 있었다.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는 식상한 일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시황은 자신이 가진 원초적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고 잔인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런 콤플렉스의 근원에는 어머니 조희로 인해 출생부터 의심을 받아야 했다고. 조희를 이야기하려면 여불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진시황은 여불위와 관련한 출생의 비밀이 있다. 여불위는 장사 수완이 뛰어난 거상이었고, 진나라와 초나라가 서로의 인질로 교환한 진나라 왕자 자초의 사람됨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초에게 후계자가 되도록 일을 꾸몄다. 자초는 여불위의 애첩 조희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그녀를 데려가 결혼한다. 조희는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채 자초와 결혼했고, 자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니 그가 진시황이었다. 그는 전설에 등장하는 ‘삼황오제’의 ‘황’과 ‘제’를 따서 ‘황제’로 칭했으며, ‘처음 시’를 붙여 스스로 ‘시황제’로 칭했다.

또 춘추시대 식나라의 군주 식후의 아내 식부인은 미모로 명성이 자자했다. 형부인 채애후는 식부인의 미모에 반해 식후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꼈고 희롱하기까지 했다. 식후는 복수를 위해 초문왕을 동원해 채나라를 무너뜨린다. 초문왕은 식나라를 도와주었지만 식부인을 본후 그녀를 얻기 위해 모함을 꾸민다. 식부인이 자신을 선택하면 남편 식후를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식부인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초문왕의 제안을 수략했다. 졸지에 나라와 부인을 잃은 식후는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식부인은 초문왕과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다. 이후 초문왕이 죽었을 때 그의 동생 자원도 식부인의 미모에 반해 집착으로 무너진다. 식부인의 미모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사랑과 집착을 불러일으켜 불행한 결말로 이끌었다. 줄거리만 모자란 솜씨로 간추리다 보니 너무 건조한 스토리가 되었다. 독자들의 필독을 권한다.

 


 

"성직자라면 응당 결혼도 할 수 없고 자식도 없어야 하지만 로드리고(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색을 어지간히도 밝혔던 로드리고는 수많은 정부를 두었는데 그중 반노차 카티네이가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했던 여인이었다. 반노차 카티네이는 세 번 정도 결혼을 했고, 로드리고의 정부로 지내는 동안에도 공식적으로는 남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네 명의 아이들 체사레, 후안, 루크레치아, 호프레는 로드리고의 아이들이다. 로드리고는 1492년 8월 엄청난 물밑 작업 끝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된다. 알렉산드르 6세는 교황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쓴 상태라 또 재산을 채워야 했는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 당시 로마에서는 하루에 평균 14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살인범들을 사형에 처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하략)"(p.389)

 

저자 : 수다몽(SUDAMONG)

 

어렸을 때부터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그녀는, 사건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의 역사 수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풀어내며 얽혀 있는 야사까지 들려주어, 지금까지 몰랐던 역사의 이면과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 ‘수다몽’을 통해 한국사, 세계사, 중국사뿐만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에 있던 그녀들의 이야기까지 세상의 모든 역사 수다를 풀어낸다. * 유튜브 SUDAMONG수다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결혼한 지 14개월 밖에 안 된, 아직도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주인공 해나가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출근한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남겼다는 쪽지를 누군가로부터 전달받게 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쪽지에 적힌 글은 짧고, 남편이 남긴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해나는 남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쪽지에는 "당신이 보호해줘"라는 한 줄뿐이다. 무엇을 보호하라는 뜻인지, 무슨 일을 하라는 의미인지 전혀 파악이 어려운 해나에게 다음 행동을 어떻게 취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남편이 남긴 한 줄의 메시지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되짚으며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했던, 철저히 숨길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비밀을 추적해나가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이 소설은 이처럼 한순간에 완전히 뒤바뀐 삶의 여정 속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신뢰, 헌신과 선택에 대한 매우 깊은 울림과 통찰을 형상화함으로써 보여준다. 뭔가 어두운 사건 속으로 들어가며 해나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독자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아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로맨스 미스터리'는 1년 만에 13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올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로맨스 미스터리로 평가받았다.

 


 

머리가 새하얘졌을 해나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사랑하는 남편 오언에게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메모에서 누굴 보호하라는 말인지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무척이나 당혹스러웠고 두려웠지만, 해나는 자신이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 정확히 직감한다. 바로 오언의 딸 베일리였다. 어렸을 때 비극적인 사고로 엄마를 잃은 열여섯 살의 베일리는 청소년기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빠의 새 아내인 해나와는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싶어 하지 않은 채 벽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래서 해나는 늘 베일리와의 소통에 애를 먹어 왔다.

하지만 그 뒤로, 낯선 꼬마아이에게서 받은 노란색 리걸 패드 종이에 적힌 짧은 메시지를 본 뒤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남편 오언. 갑자기 FBI에 체포된 남편의 상사 소식이 뉴스를 통해 들려오고, 예고도 없이 소살리토에 있는 집으로 미 연방수사국 수사관들이 들이닥치면서 해나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빠르게 깨닫는다. 2년 4개월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안다고 믿어왔던 남편은 누구이며, 베일리가 알고 있던 아빠는 누구인가? 어쩌면 오언의 진짜 정체와 그가 사라진 이유를 밝혀줄 열쇠는 베일리가 쥐고 있는지도 몰랐다.

 

 

해나는 진실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해나와 베일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오언의 조각난 과거를 한데 합쳐 나가면서 새로운 미래를, 두 사람 모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미래를 감당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오언은 왜 늘 목숨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해왔던 아내와 딸을 두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걸까? 그가 해나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결코 하지 못한 수많은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상황이 진짜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 송두리째 흔들리는 인생 앞에서 해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많은 궁금증을 독자들에게 전달한 이 소설은 미국에서 출간과 동시에 독자들의 입소문과 탄탄한 스토리에 힘입어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전개”와 “가슴 아픈 감동과 반전”이라는 평과 함께 그야말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소설답게 해나는 하나씩 미지의 진실에 하나씩 접근해 가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원칙과 합리성에 결코 위배되지 않는 점이 돋보인다. 짧은 메시지만 남긴 채 실종된 남편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나서는 한 여성의 아슬아슬한 서스펜스이자 의붓딸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진짜 모성애를 알아가는 가슴 절절한 휴먼 드라마에 독자들이 출간 1년 만에 무려 9만 7,000여 건이 넘는 어마어마한 리뷰 수를 기록, 호응과 응원이 증명된다.

 


 

이 소설은 원래 2012년도에 처음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여러 번의 고민과 수정을 거듭하면서도 결코 중단하거나 놓을 수 없어서 무려 10년 만에 탈고한, 정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숙성하고 완성해낸 역작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독자들이 책장을 펼치는 순간, 시작부터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긴장감, 참신하고 섬세한 감정 묘사, 곳곳에 숨겨진 아찔한 반전과 흡입력 등이 어우러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마지막 순간 충격적이고도 가슴 아픈 장면을 마주하게 될 때까지 독자들로 하여금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 소설은 그간 영미권에서 영화 및 텔레비전에 판권이 팔린 여러 편의 장편 소설을 집필하며 필력을 다져온 저자 로라 데이브를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시킨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남편의 행방과 흔적을 추적해나가는 긴박한 현재의 이야기와 남편이 나에게 남긴 기억의 파편을 재조명해보는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구성이지만, 결코 느슨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단숨에 빠져드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의 힘과 매우 치밀하게 깔린 복선과 강력한 플롯, 끝까지 예측할 수 없게 하는 반전의 묘미는 ‘단 한 장의 페이지도 버릴 게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실감난다. 독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긴 힘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단순히 ‘추리·미스터리’ 혹은 ‘서스펜스·스릴러’라는 장르로 국한하거나 규정하기 힘든, 애틋한 로맨스와 가슴 뭉클한 가족애(부성애와 모성애)를 매우 복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읽고 나면 그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도 안타깝고 슬프다는 것을, 그 어떤 가족 소설보다도 더 마음 찡하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또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가장 선망하는 가족의 모범적 예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내용을 잘 담아 매우 빠르고 재미있게 읽히는 몰입의 페이지 터너를 자랑하면서도 메시지나 여운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이 책에 대해 수많은 독자들이 감탄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살다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던 삶에 불쑥 예기치 않은 불청객이 찾아와 인생 전체를 뒤흔들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배우자의 불륜일 수도 있고, 부모로부터의 버림일 수도 있으며, 남편이 남긴 쪽지 한 장일 수도 있다. 내가 잘 안다고 확신했고 믿었던 나의 가족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남편이 남긴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자 한 주인공 해나를 통해 결혼과 가족,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그 특별하고 위대한 사랑과 신뢰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그 속에서 발견하는 기적 같은 희망을 다시금 온전히 되새겨보는 데에도 이 소설은 힘을 줄 것이다.

 


 

베일리는 기억의 공백을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로 채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채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기억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 이야기들로 기억의 공백을 채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오언처럼 거짓말을 했다면?

오언은 누구일까?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져버린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한, 자신이 신기루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믿었던 사랑이 거짓이라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인데, 그 같은 거짓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거짓들을 어떻게 끼워 맞춰야만 그 남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주어야 그 남자의 딸도 자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p.210)

 

“베일리,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이미 싼 짐만 챙겨서 나가자. 어서 가야 해.”

하지만 호텔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베일리는 더는 그곳에 없었다. 베일리가 사라졌다.

“베일리?”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베일리에게 전화를 걸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고 전화기를 찾았다. 하지만 곧 내가 전화기를 부숴버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전화기가 없었다. 복도로 달려 나갔다. 청소 카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빨리 카트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층계로 뛰어갔다. 베일리는 없었다. 그 누구도 없었다. 베일리가 간식을 사러 호텔 바에 갔기를 바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호텔 식당으로,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베일리는 두 곳 어디에도 없었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p.319~320)

 


 

저자 : 로라 데이브(LAURA DAVE)

참신한 캐릭터, 섬세한 감정 묘사, 깔끔한 필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800개의 포도(EIGHT HUNDRED GRAPES)》와 《첫 번째 남편(THE FIRST HUSBAND)》을 비롯해 미국과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다. 그녀의 작품은 18개 국가에 번역 출간되었으며, 이 중 총 5권이 영화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바 있다. 가장 최신작인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THE LAST THING HE TOLD ME)》도 현재 리즈 위더스푼의 제작사 헬로 선샤인과 디즈니의 20세기 텔레비전이 참여하는 제니퍼 가너 주연의 애플TV 신작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으며, 직접 드라마 각색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퍼스트맨〉, 〈더 포스트〉 등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화감독인 남편 조시 싱어(JOSH SINGER)와 함께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산다.

 

역자 : 김소정

하루의 반을 책을 읽으며 보내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번역가다.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과학과 역사를 좋아한다. 꾸준히 동네 분들과 독서 모임을 하고 있고, 번역계 후배들과 함께 번역을 공부하고 있다. 실수를 하고 좌절하고 배우고 또 실수를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이기를 바라며 되도록 오랫동안 번역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남아 있는 모든 것》, 《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생물학》, 《길 위의 수학자》,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프리티 씽》,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허즈번드 시크릿》,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외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좀비시대 리토피아 소설선 4
방서현 지음 / 리토피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작품 『좀비시대』는 얼마 전 '열품'을 일으킨 드라마 속의 좀비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제목만 보고 책을 선택했다면 제목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서 나오는 좀비는 노동자들이 '살아 있는 시체'를 연상시킨다는 의미다. '좀비 시대'란 제목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소설은 풍자소설이고 사회 고발 소설이다. 좀비(Zombie)란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시사상식사전을 살펴보면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영화에서는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며,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을 기점으로 해서 〈좀비오〉, 〈바탈리언〉과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고 이 사전은 설명을 덧붙인다. 좀비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건 1838년으로 당시엔 zombi로 표기되었으나, 1900년대에 'e'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zombie가 되었다고 한다. 좀비는 이후 디지털 기기에 푹 빠져 외부 세계와 절연된 사람은 ‘디지털 좀비(digital zombie)’, 장기 보관을 위해 방사선 처리(irradiation)를 한 식품은 ‘좀비 푸드(zombie food)’라고 파생어를 생산해내며 확대해석되었다고 한다. 좀비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일어난 '좀비 열풍'의 원인을 알게 되면 이 소설이 말하는 『좀비시대』의 의미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란 책에서 저자 강준만은 문강형준의 「왜 ‘좀비 열풍’이 부는가?」를 인용했다.(2014. 12. 8) "좀비의 기원은 아이티의 부두교 흑마술로 알려져 있다. 일단의 흑마술사들이 사망 상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약을 사람들에게 먹여 ‘죽였’다가 다른 약으로 나중에 ‘살려’내어, 환각상태에 빠진 이들을 농장의 노예로 부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처럼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채 영원한 노예가 되어버린 자들의 이름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60~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좀비 서사에서 좀비가 흔히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묘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면서도 사물로 변해버린 노동자의 형상은 좀비와 닮았다. 자본주의하의 노동자는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좀비는 또한 쇼핑몰을 배회하는 소비자로 그려진다. 쇼핑몰은 해방감을 선사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또 다른 억압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좀비는 여전히 노예다.······그런 점에서 좀비는 현대인의 거울상이다. 좀비를 뜻하는 ‘살아 있는 시체’라는 표현이 애초에 니체가 인간을 묘사했던 말에서 온 것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 두 명의 시사평론가들은 좀비 열풍을 새로운 노예 노동자의 출현이라는 노동사회적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좀비 열풍을 진단하고 있다. 이 소설 『좀비 시대』의 저자 방서현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노동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풍자적으로 '좀비 시대'란 제목을 붙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 소설은 이미지 광고에 감쪽같이 속아 학습지 회사에 들어간 연우와 수아를 통해 '노예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이십 대 젊은이들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꿈을 접거나 혹은 잠시 내려놓고 현실 세계에 뛰어든다. 하지만 자본의 세계는 그들이 꿈꾼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 속의 사람들은 이상하다. 갑자기 이상한 세계에 놓인 듯한 느낌이다. 현실 속의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좀비가 되어 있다. 이들 좀비는 자신들과 똑같은 좀비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본 창출을 위해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켜려 한다. 저자는 학습지 방문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 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 시대'임을 선언한다. 인류애 대신에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아니, 감염된 그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좀비 시대라는 비유적 표현을 썼다.

 


 

지금 좀비는 우리 나라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인기를 누리는 단어가 되었다. 앞서 인용한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에서 강준만 저자는 〈조선일보〉(2013년 3월 19일)의 “최근에는 국내 인터넷 환경을 설명하며 ‘좀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소위 ‘좌좀’(좌익좀비), ‘우좀’(우익좀비)이라는 조어가 그 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쓰고 있다. “좀비는 기본적으로 떼를 형성하고, 무뇌(無腦)이며, 무한 증식한다. 온라인에서는 거침없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전사이지만, 막상 현실의 오프라인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과도 같다.

문화평론가 이명석 씨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채 떼 지어 다니면서 인간을 사냥하는 좀비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의 이슈에 몰려드는 키보드 워리어(전사)와 닮았다’고 했다. 〈뉴욕 타임스〉는 또 〈워킹 데드〉 방영 당시 ‘현대인이 무방비로 접하는 인터넷과 미디어가 바로 현대의 좀비’라고 보도했다.” 당시 2013년 3월 셋째 주말(15~17일) 국내 개봉 영화 흥행 1위는 좀비를 소재로 다룬 외화 〈웜 바디스(Warm Bodies)〉였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이후, 세기말적 상상력은 대중문화의 강력한 한 축이었다. 공산주의를 유토피아로 착각했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핵 공포와 방사능 유출, 테러, 지진 · 쓰나미 등 자연 · 인공 재난 등이 반복되면서,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등 좀비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의 조지 로메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현존하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라면서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이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이라고 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북한의 핵 위협도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뿌리가 되고 있다.······어쩌면 좀비와 전염병 텍스트의 유행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역설적 경고일지도 모를 일이다.”

 

 

좀비 열풍은 사실 20세기 말 미국의 신자유주의 학파와 맥이 닿아 있다. 신자유주의 학파는 미국 시카고대학의 프리드먼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파이다. 이 학파의 주장은 합리적인 경제운영을 기하고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가격기능을 부활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정부 활동보다는 민간의 자유로운 행동을 중시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1970년대부터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케인스경제학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공황을 겪은 많은 나라들의 경제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가들은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였는데, 그 요체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룸으로써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케인스 이론은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함께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 등으로 세계적인 불황이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 이론에 기반한 경제정책이 실패한 결과라고 지적하며 대두된 것이 신자유주의 이론이다.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되었고, 레이건 행정부 때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되었다. 소련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나라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돼 김영삼 정부 때 '세계화'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추진하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는 'IMF 외환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책 뒷 부분에서 고명철 교수(문학평론가, 광운대)는 「간접고용과 중간착취, 그 디스토피아와 좀비들의 묵시록」이란 해설을 통해 "한국문학사에서 노동문학이 한국 민주주의와 함께 논의되고 그 문학적 실천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고 전제하고 "방서현의 장편소설 『좀비시대』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아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고용 구조 속에서 엄습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 착취에 따른 노동의 구조악과 행태악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설 『좀비시대』는 우리 시대의 노동의 적나라한 문제를 예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바, 비록 장편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교육사업의 경제활동을 통해 학습지 시장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중간착취와 노동 억압에 대한 현장보고서라 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 : 방서현

 

충남 논산에서 자라고 목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랫동안 글쓰기 수련과 깊은 사색을 해왔으며, 202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무지개와 같은 글을 쓰고자 고향 놀뫼에 둥지를 틀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숭고 - 불안과 기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숙의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숭고』를 읽으려면 '숭고', '숭고미', '숭고의 미학'에 대한 개념 정립이 먼저일 것 같다. 미학에서, 숭고란 위대함을 나타내는 용어로, 물리적, 도덕적, 지적, 형이상학적, 미적, 정신적, 또는 예술적인 것을 포함한다. 이 용어는 특히 계산, 측정 또는 모방의 가능성을 넘는 위대함을 나타낸다는 것이 사전적 풀이다. 그러나 숭고란 단어를 백과사전에 찾아 들어가면 훨씬 깊고 풍부한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다.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미적 범주의 하나로서 보통 좁은 의미의 ‘미’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대상이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 또는 힘을 갖는 경우, 소위 미적 형식은 상실되며 처음에는 그 형식과 내용의 길항(拮抗)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지만 곧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유한한 감성을 매개로 무한한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생명 감정이 자극되고 역감(力感)이 높아져 대상에 대한 경외, 정서적인 경악이나 황홀경, 즉 넓은 의미로의 ‘미’의 감정을 낳게 된다. 전형적인 것으로서는 해돋이나 바다와 같은 숭고한 자연(칸트Immanuel Kant), 비극적인 행위의 도덕적 신념(쉴러Friedrich von Schiller) 또는 초기의 인도적, 모하메드적, 유태, 기독교적 시와 신비주의 속에서의 신의 임재(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가 언급될 수 있다. 후기 고대의 논문 『숭고에 관하여Vom Erhabene』(수도-롱기누스Pseudo-Longinos) 이래로 숭고의 개념은 미학의 확고한 구성성분이 되었으며,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서 체계적으로 완성되었다. 철학과 미학적 시선으로 보는 숭고는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한 아름다움으로 일반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다.

 


 

이 책은 조각가 조숙의가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예술론이다. 저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관하는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수상하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역임한 중견 조각가이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신성과 숭고의 미학을 탐구해오고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현대과학의 눈부신 성과는 인간의 내면은 파편화되고 정신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신과 인간의 관계 또한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물신주의는 우리 모두를 알게 모르게 속물적 존재로 전락시켰다. 저자의 생활철학이자 예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숭고의 미학'이 소중하게 다가오며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문명의 척도로 여기고 있는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고 윤택하게 해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우리는 결코 포기하는 일이 없다. 기대를 넘어서 확고한 믿음으로 자리 잡고 있기까지 하다. 이 믿음은 실상 물질에 대한 미신이자 맹신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며,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실현해 줄 것이라는 착각은 오래 앓아온 현대인의 고질병이다."고 강조한다.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숭고한 인간은 고귀한 영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예술하는 사람을 '숭고한 인간', 예술을 숭고미를 지향한다는 자신의 예술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이런 생각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맥'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독자는 예술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닌 입장에서 그의 작품을 평하기도 어렵고 그의 작품에 내재된 그의 예술혼이나 감각을 읽어낼 수도 없다. 이른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의 서평은 그의 숭고의 미학이나 그의 예술혼, 작품론 등은 모두 저자의 주장에 따라 하나씩 배우는 심정으로 이해해가는 과정임을 미리 밝힌다.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부터 들어본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충체적인 예술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깊은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아픔의 가시를 안고 살아간다. 예술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갈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화해의 길을 모색하며 경직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 아니 단 한 사람에게라고 더 알리고 싶었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다. "인간 지성에 바탕을 둔 인문과학이 아무리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수평적인 차원만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존재가 본래 어디서부터 창조되고 유래했는지 또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기에 철학을 비롯한 제반 인문과학은 인간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피상적인 삶에 몰린 현대인에게 우선 '고요한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하며,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이 고요의 길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숭고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의 작품 세계와 연결된 이 같은 주장은 저자의 작품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리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저자는 우리 사진이 내면 깊숙이 안고 있는, 이유 없이 당하는 가시와 같은 '고통의 문제'에 주목했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겪게 되는 아픔과 고통의 문제는 인생 여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희로애락 가운데에서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가장 절실하면서도 인간 구원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신비로운 감정인 고통의 문제가 놀랍게도 예술작품에 있어서만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등장한다. 인류가 사랑한 예술작품에는 반드시 여러 형태의 고통이 아로새겨져 있고 동시에 숭고한 정신을 드높인다."고 전제하고 "인간의 깊이를 다루는 작품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게 하고, 상처 입고 고통 당하는 내면의 나와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가까운 예로서 내 작품 〈자신 안을 쳐다보다〉가 그렇다. 자신을 향한 시선은 결국, 고요의 통로를 통해서 깊은 침묵 안에서 자신의 근원을 되찾고, 고귀하고 숭고한 자신을 회복하여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한다. 나아가 조화로운 자기조절 능력과 타인(대상)과의 상호작용,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숭고한 인간은 고귀한 영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깔려 있다.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이 많아 한 번 읽고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내용이지만 한 번만 더 읽어본다면 비로소 그의 작품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창작하는 주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는 이 때문에 이른바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접하게 되면 습관처럼 창조주를 찾아 찬미하고 싶은 생각에 이른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피아노곡 〈비창〉을 들으면서 참으로 훌륭한 연주자에게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지만, 이 곡 안에 들어가 감상하면서는 곡의 원주인, 바로 베토벤을 떠올린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는 신비로운 인체를 탐색하는 인체 조각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이토록 섬세하게 설계된 신비로운 인체는 바로 '영적인 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예술론은 서서히 정점을 향하여 오른다. "인간은 정신적이고 영적이며 신비로운 존재이면서도 문젯거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존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존엄하면서도 문젯거리이기도 한 '아이러니'야말로 인간 존재를 관통하는 '숭고한 인간'을 보여준다. 이렇듯 신비로운 세상을 창조한 인격적인 사랑의 '창조주'에 관해서도 이 책에 썼다고 밝힌다. 조각가인 저자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운둔에 가까운 생활에서 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서문」 첫 문장에서 이미 토로한 사안이다. 작가가 작업이 끝나고 텅 빈 작업실에서 느끼는 사람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유대감의 상실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는 게 저자의 집필 이유를 한 가지 더하는 것 같다.

 


 

"아도르노와 료타르의 미학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아도르노에 있어서 예술작품은 사유될 수도 묘사될 수도 없는 것의 가상적이고 감각적인 현실이었다. 그는 현대의 문화를 중의성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의성(重義性) 속에는 미적이고 의사소통적인 잠재력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문화가 사멸하게 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아도르노가 미적 체험의 무아적 황홀경의 계기를 유토피아적 계기로 해석하는 한 그의 사상은 중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영복, 「료타르의 숭엄성의 미학」, 1996) 독자는 갑자기 미학에 관심을 둔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숭고'이고, 이 숭고에 대한 미적 추구는 오랫동안 논란이 거듭된 점 때문이다. 독자는 이들로부터 배운 것은 숭고함에 대한 견해차뿐만 아니라 '숭고미'에 다가가는 접근의 차이이다. 저자도 이미 이런 논의나 주장에 대한 충분한 인지 아래서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숭고'에 대해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하였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그의 작품들은 이를 더욱 설득력 있게 해주는 실체적 증거로서도 충분하다. 저자는 조각가이다. 그의 조각예술론을 여기에 적어본다. "구상 조각에 있어서 인체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인체 조각을 흔히 판에 박은 듯 정형화된 형태의 전형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만큼 인체 조각이라 것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체 조각에 관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누드의 포즈부터가 조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적, 심리적 표현성을 그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격정적인 몸짓이 아니더라도 절제된 포즈의 입상이나 좌상은 보다 내면화된 감정의 표출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p.99) 이후 이 책에 실린 작품 감상이나 해석은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예술론과 해설에 따라가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독서가 됐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고통당하는 인간’은 언제나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중심 화두이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통의 문제를 쉽게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생물학적 구조나 심리상태, 사회생활, 심지어 영혼의 문제까지 진지하고 성실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간과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빼놓는 것이다.(p.134)

 

저자 : 조숙의

 

조각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현대조각에 있어서 성(Holiness)과 실존(Existence)의 문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제네바, 뉴욕 등에서 1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창작활동과 더불어 20여 년간 교직 생활을 했으며, 2000년부터 인천 가톨릭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가톨릭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2007년 『월간조선』에서 주관하는 ‘평론가 선정 현대작가 55人’에 선정되었고, 201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관하는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한국 조각계의 중심에 굳건히 자리매김해오고 있는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역임했고, 가르멜수도회 제3회원으로 2021년 은경축을 지냈다. 현재 고요한 창작 생활과 연구 활동으로 다음 세대의 꿈나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요 작품 및 소장처로는, 제네바 UN 대한민국대표부 소녀상, 과천시민회관 로비 벽면 부조 무동답교놀이, 2005년 서울 가톨릭대학교 개교 150주년 기념 조각(신학대학, 혜화동), 맨발 가르멜수도회 영성센터 청동문과 성미술 작품(명륜동 한국본부), 일만 위순교자현양동산 위로의 주님상(인천 강화도), 나자로마을 나자로상(의왕시), 겟세마니 피정의 집 십자가의 길(강원도 인제),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성가족상, 성당 성미술 작품,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정하상기념경당의 가족상, 정약종 등 5人의 초상 조각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 딱 남들만큼 특별한 산중냥이의 사계
보경 지음, 권윤주 그림 / 불광출판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산사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자연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수행 스님의 일상이 결코 따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저자 보경 스님은 고양이와 살게 된 인연을 고양이가 좋아서는 아니다.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길고양이 한 마리(냥이)가 산중암자에 사는 스님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날 이후 낯선 고양이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스님은 사람과 닮은 듯 다른 고양이의 생활을 지켜보며 존재와 삶을 생각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글로 적어 왔다. 이미 그 첫 기록이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바라보기’와 ‘기다리기’가 중심 이야기였다.

이어서 『고양이를 읽는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두 번째 책에는 고양이와 무더운 여름을 함께 나며 터득한 ‘느리게’ 그리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담았다. 이번에 출간된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세 번째 책으로 앞선 두 책을 잇는 보경 스님의 고양이 에세이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매 순간을 기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을 성찰한 글이다. 독자는 앞서 발간된 두 책을 읽어보지 못해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당연한 기우였다. 오히려 더 깊은 사색과 자연에 대한 성찰은 물론, 생명을 귀중하게 보호하는 불교 수행자로서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더 감동적이었다.

 


 

저자인 보경 스님과 냥이가 함께 지낸 지 햇수로 6년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스님이 십수 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산중암자로 돌아온 2017년 겨울 저녁,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꼬리 없는 누런 고양이에게 우유와 토스트를 건넨 것이 이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산중암자에 불쑥 찾아든 야지의 고양이는 이제 스님의 거처인 송광사 탑전을 자신의 왕국으로 삼아 그 주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안온하게 지내고 있다. 도 한번 닦아보겠다는 출가도 아니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버린 그 태도가 너무나 태연하여 스님은 꼼짝없이 고양이를 보살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님과 냥이가 알콩달콩 지내는 사이, 계절이 오가듯 많은 인연이 오고 갔다. 엄마 이쁜이와 주니어 이쁜이, 주니어 이쁜이가 낳은 여러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 여러 차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는 와중에 스님 마음속에는 잊지 못할 추억과 이야깃거리가 수북이 쌓여 갔다. 단풍이 무르익듯 깊어진 스님과 고양이들의 나날을 담은 이 책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어찌할 수 없는 인연의 오고 감과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인적 드문 산중암자에서 ‘냥이선사’로부터 터득한 농밀한 삶의 지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고 각자의 농사가 있다. 그 일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경 스님은 50대에 접어들어 책 읽고 글 쓰며 불교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하는 일로 인생의 후반부 계획을 세웠다. ‘반짝이는 번개 속에서 글을 읽더라도 읽는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모토로 삼아 삶과 수행에서 얻은 통찰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려 애쓰고 있다. 지식이든 지혜든, 자신이 아는 것을 남들과 나누지 않고 홀로 삭이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스님의 메시지는 ‘경이롭게 바라보기’다. 평생 혼자 사는 데 익숙한 스님에게 찾아온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 사람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면서 알게 된 행복의 비결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놀라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 볼 일 없다는 듯 바라보면 모든 게 다 시시하다. 그런 삶에는 즐거움이 적다. 작은 것 하나도 경이롭게 바라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 안에 있는 특별함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면 매 순간이 놀랍고 흥미로워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 선사와 현자 들이 하나같이 행복을 좇지 말라고 가르친 까닭이다. 행복은 외적 발견이 아닌 내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고양이들의 습성은 물론 고양이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보경 스님의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고양이를 통해 얻은 지혜와 부처의 말씀은 물론 서양 철학자나 문호들의 말들이 적절하게 인용돼 고양이와 자연 예찬이 드러난다. 고양이들은 어디서든 잘 산다. 고양이들이 낯선 곳이라도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들의 생각이 바람과 같아서 불현듯 옮겨가고 지난 과거는 머릿속에 남기지 않아서다. 그리고 매사 ‘알맞게’, ‘지나치지 않게’ 살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하는 존재가 바로 고양이들이다. 마땅히 사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것에 대한 집착은 삶을 옥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거라는 헛된 기대와 환상도 마찬가지다. 집착과 욕망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공범이다. 지치거나 치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세상을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욕망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 좋은 삶이란 생각을 좇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일 없이 지금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것, 곧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세야말로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힘이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는 의 말(『행복한 기원』 중에서)이 떠오른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자연을 배워가며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은 사색이 엿보이는 등 이 책은 '고양이 집사'로서의 즐거움보다는 고양이 마음을 읽어내고 자연과 함께 사는 수행 스님의 잘 드러나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색거리를 던져 준다.

 


 

이 책을 독자가 좋아하게 된 이유는 '자연과의 삶', '자연적인 삶'에 대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조근조근 옆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책을 여러 권 냈다고 하지만(이 책의 내용도 그렇지만) 문학적 수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사유와 수행으로 얻은 삶의 지혜를 일러춘다. 그의 태도는 진지하지만 과장이 없고, 심오하지만 이해하기 쉽다. 가르치는 듯한 내용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저자의 글 습관일 것이다. 그 글 습관은 저자 자신의 사람 대하는, 또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먼저 차분해진다. 한두 줄만 읽으며 깊은 사유가 묻어나오고 자연에의 외경심도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정감 있는 태도는 그의 말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구든 그의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 누리는 이 여유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볼 생각을 하는 것이고 사람이 아닌 저 털북숭이 친구인 냥이에게도 말을 건네고 마음을 주고 뭐라도 재미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냥이가 실제 즐겁고 행복할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냥이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대하며 소홀하지 않는 자세에서 나의 마음이 익어가는 게 유쾌하다. 그렇다면 뭘 못해? 까짓것 정원쯤이야. 그렇게 해서 화단을 만들었고 어설프지만 ‘냥이의 장미정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p.81~82)

 


 

저자는 「여는 글」을 통해 속내를 드러낸다. 스스로 산중에 산다고 자연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 깊어졌음을 고백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에게 자연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묻는다면 '청빈'과 '시간'의 문제를 말하고 싶다고 한다. 청빈은 신비주의자들에고 수행자들에게도 존중되는 삶의 주체라는 것이다. 마호메트가 "나는 나의 가난을 자랑한다"고 했듯이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호메트도, 그 이전의 예수도, 또 그 이전의 부처도 같은 말을 한 셈이다. 저자의 비유가 한층 돋보인다. 자연 속의 생활에서 얻은 듯하다. "속이 꽉 찬 피리는 없다. 비워야 울린다. 값진 기름을 품고 있는 호두알갱이를 꺼내려면 껍데기를 깨야 하고 진주를 꺼내려면 조개를 깨뜨려야 한다. 하물며 영혼의 정화를 고난 없이 얻을 수 있겠는가." 마음 비움과 함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세상을 살면서 적어도 시간만은 나의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정도는 경험해봐야 한다. 시간을 얻었으면 된 것이다.

평범한 돌조차 오랜 기간 햇볕을 쬐면 루비가 된다. 야생의 세계는 고독하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면 눈에 띄는 모든 생명체들이 죄다 홀로 살아간다. 고독은 다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세계로의 진입이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는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이 있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일은 인간 행복의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선종의 물 긷고 나무하는 일체가 도 아닌 게 없다는 법문이 그냥 생긴 게아니다.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사람에게 기쁨은 주어지게 마련이다. 저자가 수행하면서 실천하고 자연 속에서의 깨달음이라 더욱 귀중한 말이다.

 


 

나는 선명하게 깨어있으려고 한 번씩 밖으로 나가 햇살을 살피고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냥이는 잠에서 잠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또 한 세계를 보고 있는지 오후 햇살이 넘어가도록 콧등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따라 밀키와 쵸코도 웬일인지 방에서 늘어지게 잔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는 이 느슨함은 도리어 팽팽한 긴장감을 드리운다. 평화는 긴장의 균형 속에서 찾아진다. 고요하다.(p.64)

 

저자 : 보경

 

송광사가 출가본사다. 선방에서 10년을 살았고 서울 법련사 주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보조사상연구원장을 역임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수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겸임교원으로 강의를 했다. 일생 만권독서의 꿈, 불교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고 정진하고 있다.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탑전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는 즐거움》, 《이야기 숲을 거닐다》, 《행복한 기원》, 《인생을 바꾸는 하루 명상》 등의 에세이와 《기도하는 즐거움》,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 《숫타니파타를 읽는 즐거움》, 《선문염송 강설》, 《원하고 행하니 이루어지더라》, 《아함경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수선사 연구》 등의 경전류와 논서가 있다. 이 책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전작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잇는 연작으로써 탑전 냥이의 사계를 채우는 가을과 봄의 이야기다.

 

그림 : 스노우캣(권윤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