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 공감의 대화법을 찾아 나선 소심한 라디오PD의 여정
이진희 지음 / 마일스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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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폭력대화를 만났고, 대화법을 공부하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평화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힌다. 공감 대화법은 독자들의 삶에 새 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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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 공감의 대화법을 찾아 나선 소심한 라디오PD의 여정
이진희 지음 / 마일스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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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는 원만한 대인 관계를 통해 사회 생활의 적절한 적응을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사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 대인 관계인데 대인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면 사회 생활을 해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하고 아는 사실이다. 물론 자신의 직업적 능력(실력)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대인 관계가 원만한 사람이라면 능력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업무를 해결해 나가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을 것이다. 동료나 주위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이기에 사회 생활 적응을 크게 좌우할 문제는 아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대인 관계는 대화로서 이루어진다.

저자 이진희도 이 점에 착안, 개인적 성찰 끝에 '비폭력대화' 프로그램을 참여하며 꾸준하게 노력해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대인 관계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대화법'을 터득해 나가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저자는 라디오 PD란 직업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의견을 나누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종종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나 말투를 살펴봐 달라는 부탁을 받곤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화법과 대화법을 혼동하고, 말투를 바꾸는 것만으로 대화를 잘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화법은 발성을 배우고 나쁜 습관을 고치면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 혼자 반복해서 연습하고, 녹음해 모니터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고 조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화법과 대화법은 다르다. 특히 대인 관계에 있어서의 대화법은 대화를 해나가면서 대화의 목적에 다가가는 것으로서 대화를 더 끌어갈 수 있도록 상호 공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목소리가 멋지고 말투가 친근하면 듣기 좋다. 듣고 있으면 빠져들고, 같은 내용도 더 믿음이 간다. 반대로 불필요한 특정 단어를 반복하거나 집중을 흩뜨리는 습관을 가진 사람의 말은 아무리 맞는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호흡이나 발성, 자세와 손동작 같은 비언어적 요소도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방법을 '화법'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대화법은 한층 어렵다. 서로 주고받는 말을 통해 공감하는 '상호 작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역동적이다. 대화하는 주체의 감정과 욕망이 대화를 움직인다. 스스로 말은 곧잘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막상 대화에는 서툰 이유가 여기 있다. 저자는 적절한 비유로 '운전'의 예를 든다. "운전을 상상하면 쉽다. 화법은 자동차 모는 법을 배우는 거싱다. 차의 각 기능을 알고, 기본적인 운전 기술을 익혀야 하낟. 대화법은 도로주행에 가깝다. 운전면허를 따고 혼자 공터에서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막상 도로에 나가려면 긴장된다. 다양한 상황에서 능숙하게 운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폭력대화법'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마셜 로젠버그가 창안했다고 밝힌다. 비폭력대화(Non Violent Communication)는 '연민의 대화' 또는 '삶의 언어'라고도 불린다고 말한다. 로벤버그는 "인간의 본성은 서로의 삶에 기여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이라고 믿으며, 두 가지 문제에 천착했다는 것. ① 왜 우리는 본성을 잃고 서로 폭력을 씀녀서 살게 되었을까? ②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자기 본연의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로젠버그는 타인과 유대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을 개발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비폭력대화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받기도 하면서 깨달은 경험들에 대한 기록이자 좀 더 괜찮은 대화법을 찾기 위해 여전히 고민 중인 저자의 얘기로 구성돼 있다. 라디오 PD로 일하며 누구보다 많이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수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하루하루 커져가는 헛헛함을 지울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방법, 폭력적인 말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일상을 평화롭게 가꾸는 방법을 찾다가 비폭력 대화를 만났다. 대화법을 공부하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평화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했다. 팟캐스트 〈대화만점〉을 만들어 다양한 사연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변화를 경험했다.

 


 

이 책은 그 변화의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이다. 함께하는 길에서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베는 칼이 될 수도 있음을, 동시에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고 단단하게 하는 약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저자의 글 중에는 독자와 같은 환경과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공감을 느꼈다. 사회생활의 절반은 말, 즉 대화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대화를 통해 관계를 쌓고 또 유지한다. 순간의 실수로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기도 하고, 별 의미 없이 뱉은 말이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기에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특히 내 말이 폭력이나 무기가 되어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거나 고통으로 기억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독자의 경험에 의한 말과 저자의 경험과 대화법을 배워가는 과정의 사례들은 독자에게 공감을 넘어 완전 동감과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독자는 좀 더 성찰을 거듭해 저자와 같은 생각이 들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생각을 갖고 있다. 저자의 비폭력대화 참여의 시작은 오래 전 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시에 울음이 터지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수백 개가 넘지만 정작 내 마음을 보여줄 친구는 한 명도 없고, 그렇다고 이런 마음을 상담실이나 병원에 가서 토로하기는 싫고. 어디에도 풀어놓지 못한 답답함은 이내 내 감정을 잘 알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좀 더 공감에 능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으로 바뀌었단다.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 주고 싶지 않고, 폭력적인 말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고, 소소한 매일의 일상과 대화를 풍요롭고 평화롭게 가꾸는 방법도 알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저자는 비폭력대화를 만났고, 대화법을 공부하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평화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힌다. 팟캐스트 〈대화만점〉을 만들어 다양한 사연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변화를 경험했다. 누군가를 대하는 표정,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무언가를 행하는 모습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록이자 경험을 함께 나누기 위한 제안이다.

‘비폭력대화’라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폭력적이라는 거야? 나는 욕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는데?”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비폭력’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비폭력’은 인간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의미한다. 욕이나 극단적인 말만 폭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상대를 소외시키고 자기를 기만하는 표현 모두가 ‘폭력’이다. 차근차근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익히다 보면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바로바로 반응을 보이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지를 의식하면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나를 넘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상대가 내뱉는 무례한 발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 않는다. 부적절한 타이밍에 부적절한 대상에게 부적절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일도 현저히 줄었고, 낮에 나눈 대화를 상기하며 애먼 이불을 발로 차는 후회의 밤도 반복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건 아닌데’, ‘어? 이건 좀 불편한데’ 싶지만 “싫어요” “안 돼요” 한마디를 못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강매 당하는 일도 없고, 식당에서 나온 맛있는 반찬이 더 먹고 싶을 땐 큰 소리로 자신 있게 “이모, 여기 반찬 추가요”를 외친다. 명분이나 의무감 때문에 유지해왔지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나를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은 이제 과감히 끊어낼 줄도 안다. 비폭력대화는 이렇게 마음을, 생각을, 행동을 아니 삶을 변화시켰다. 특히 여성 PD로서 동료 선배로부터 격려의 말 속에 듣기 거북한 것을 들을 땐 화도 났지만 적절한 대화법을 몰랐던 과거의 이야기가 공감을 돋운다.

책에 따르면 말과 대화라는 단어 뒤에는 늘 상처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말이라는 게 그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쉽고, 또 누군가에게 말로 인한 상처를 받기도 쉽다는 의미일 것이다. 말이 마음을 베는 칼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 너와 내가 우리로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말들이 이어져 우리 모두가 좀 더 즐거운 대화를 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다. “대화 속 폭력을 의식하며 평화를 향해 살아가길,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연민과 공감의 손길을 건네길 저자는 기도한다. "비폭력대화라는 아름다운 도구가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길 바란다”라는 저자의 당부처럼 우리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과정에 이 책이 꼭 필요한 가이드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진희 씨, 연애를 안 하니 몸이 자꾸 아프지. 남자친구 사귀고 잠자리도 갖고. 어? (알 거 다 알지 않느냐는 웃음을 지으며) 그래야 건강하고 튼튼해진다고.” 여기서 발목 잡히기 쉬운 대목은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걱정’은 관심이자 진심일 때가 많다. 내용이 아무리 쓰레기 같아도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뜻이다. 걱정이라는 의도가 워낙 숭고해서 건드리기 어렵다.

품위 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기 연결이 필수다. 단단하게 자기를 공감해야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계속 내 느낌과 욕구에 집중해야 언어폭력을 들었던 상황을 다시 떠올려도 덜 힘들고,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도 달리 대응할 수 있다. 나를 표현할 에너지도 생긴다.(p128~129)

 

저자 : 이진희

 

KBS에서 라디오PD로 일하고 있다. ‘가요광장’, ‘박준형의 FM인기가요’, ‘밤을 잊은 그대에게 소유진입니다’, ‘조충현의 럭키세븐’ 같은 대중음악 프로그램과 ‘생생클래식’, ‘KBS 음악실’ 등의 클래식 프로그램을 거쳐 뉴미디어 시대 라디오의 생존을 고민하는 디지털 팀까지 업계의 여러 부서를 두루 지나왔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힘내세요”라는 말에 헛헛함을 자주 느꼈다. 힘을 내라는데 이 말을 들으면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청취자와 더 깊이 연결되고 싶어 온갖 대화법을 탐구했다. 함께 공부하겠다는 이들이 모여 팟캐스트 〈대화만점〉을 론칭했다. 세 시즌 동안 수많은 이들의 대화 고민을 들었다. 평화와 연결의 대화법인 ‘비폭력대화’의 매력에 빠져 햇수로 7년째 공부 중이다. 《건강한 몸, 착한 몸, 부러운 몸》과 《크게 라디오를 켜고(공저)》를 썼으나 ‘작가’라는 호칭은 여전히 어색하고 민망하다. MBTI 유형 중 전체 인구의 2% 내외라는 ‘INFJ’로 사느라 고단하다. 많이 듣고 쓰려고 애쓰며, 같은 날 태어난 두 아이와 비폭력대화 실전 연습을 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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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땀눈물, 아나운서 -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매일 선다는 일 피땀눈물 시리즈 3
이선영 지음 / 상도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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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피땀눈물, 아나운서』는 출판사 〈상도북스〉의 기획시리즈 3권이다. 이 기획시리즈는 앞서 지난 2월 '자영업자'편과 '작가'을 펴낸 데 이어 3번째로 '아나운서'편을 출간했다. 출판사는 '자영업자'편에서 매일매일 가게 옆에 경쟁업체가 들어올까 전전긍긍하고, 우리 가게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저자(이기혁 이디아커피 둔촌점 점주)의 개미 같은 일상을 담았다. 그리고 그의 일상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소개하며 기획시리즈 물줄기를 텄다. '자영업자' 편은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작가' 편에서는 앉은뱅이 자세로 온종일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온몸이 경직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과 일에 대한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건강한 작가. 그가 작가로 살아가는 이유와 독자를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 그리고 작가인 그를 지탱해 주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작가라는 직업의 피땀눈물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탄탄한 필력과 노력으로 마해송문학상, 조선일보 신춘문예, 사계절문학상의 대상을 차례로 수상함으로써 어린이·청소년 문학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송현 작가가 그 주인공으로 시트콤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한 「지붕 뚫고 하이킥」의 구성작가로 큰 활약을 한 사연을 실었다. 이송현 작가는 문학과 방송을 넘나들며 살아온 웃픈 이력이 생활 에피소드 속에 만화경처럼 빠져들게 해 큰 인기를 끈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3편에는 매일 저녁 KBS 〈2TV 생생정보〉의 메인 아나운서 이선영이 바통을 받았다. 독자가 '바통'으로 표현한 것은 이 세 권의 시리즈의 필자가 모두 본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썼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이 때문에 이 책들을 '직업 에세이'라고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획시리즈라서 출판사가 기획했겠지만. 출판사 측의 3권 『피땀눈물, 아나운서』 소개글에서 "그녀는 오늘도 저녁 7시가 되자마자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명소를 소개한다. 그렇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서서, 매번 다른 감상과 다른 멘트로 시청자의 시선에서 감동을 전한다.

무려 이십여 년을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태풍이 불어도, 폭설이 내려도, 다리 한쪽에 깁스를 하고서도 단 하루의 결방도 없이 달려왔다."고 썼다. 단 하루의 결방 없이 20년 세월을 방송 아나운서로 전념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필자로 선택된 듯하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쌓아 특별함을 만드는 사람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TV 화면에는 늘 웃고 화려하게 보이는 아나운서의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된 것도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아나운서보다는 개그맨, 가수 등 엔터테이너라는 새로운 직업 이름까지 만든 이른바 '프로그램 MC'로서의 입지가 굳어가자 정작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나운서보다 오히려 연예게인 탤런트, 배우, 가수 등으로 인기 직종이 바뀌어 가는 느낌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 이선영도 아나운서로서의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자신의 자리에서 앞만 보고 달렸더니 어느샌가 위에서 끌어당기는 선배들과 아래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사이에 낀 허리연차가 되었다. OTT와 종편과 케이블이 범람하고, 온갖 직업군의 전문가가 방송인이란 이름으로 방송을 장악했다. 조직에 소속된 아나운서로서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개성이 돋보이는 아나운서를 선호하는 요즘 절친한 동료들은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를 선언한다. 하나둘 떠나가는 동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한편, 조직 안에서 전과 다른 환경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어쩔 수 없는’ 방송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최선을 다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그녀를 극한의 ‘꼰대’로 만들기도 하고, 더할 나위 없는 ‘자선사업가’로 만들기도 하며, 숭고한 어머니의 ‘딸’이자 금쪽같은 딸아이를 챙기는 ‘워킹맘’으로 살아가게 한다. 저자는 화자가 유명한 프로선수든 한국말이 어눌한 외국인이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아나운서다. 그녀는 오늘도 저녁 7시가 되자마자 〈생생정보〉를 외치며 불 위에서 춤을 추는 산낙지며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명소를 소개한다. 그렇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서서, 매번 다른 감상과 다른 멘트로 시청자의 시선에서 감동을 전한다.

 


 

무려 이십여 년의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태풍이 불어도, 폭설이 내려도, 다리 한쪽에 깁스를 하고서도 단 하루의 결방도 없이 달려왔다. 묵묵히 도는 쳇바퀴처럼, 아나운서로서의 삶을 이어온 그녀는 여전히 카메라 조명에 설레고, 자신이 서 있는 무대를 사랑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그 누구보다 아나운서다움을 잊지 않고, 반대편 카메라를 응시하며, 오늘의 큐 사인을 기다리는 이선영 아나운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아나운서라는 공인의 삶을 걷게 된 저자는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소명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저자가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은 늘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많았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그렇게 이국의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방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공감을 나누고, 고등학생 취업을 돕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열정에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멀리 아프리카 땅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더욱 깊이 알게 된다.

저자는 그렇다고 스스로 의협심이 강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자신이 맡은 일에 진정성을 더하자 세상이 조금 바뀌는 것을 경험했고, 그로써 세상을 보다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뿐이다. 자신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말의 무게에 늘 신경을 쓰며, 내딛는 발걸음에 책임감을 다할 뿐이라고 밝힌다. 미리 부탁받은 내레이션 녹음을 하고, 늘어진 녹화로 정시 라디오 뉴스에 닿지 않는 선후배 혹은 동료의 대타를 자청하고, 쌓여 있는 서류작업을 마무리하다 보면 벌써 아이의 하원 시간에 다다른다. 이제는 전천후 베테랑 아나운서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도 한 아이의 엄마라는 입장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결국에는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육아의 사선을 넘으며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저자. 그럼에도 그동안 쌓아올린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기에 만삭의 몸으로도 방송을 쉬지 않고, 하루 종일 서서 치러야 하는 플로리스트 시험 중에 배가 뭉쳐 누워 있으면서도 악착같이 버텨 자신의 일과 꿈을 향해 전진했다. 물론 이제 갓 백일 된 아이를 두고 독일로 날아가야 할 때에는 일과 육아의 사이에서 승부를 낼 수 없는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는 고백은 독자들에게 감동과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 저자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에는 ‘워킹맘’이라는 자신의 처지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작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친정 부모님이나 시댁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이전처럼 일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작가는 아이가 주는 기쁨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인간으로서 또 아나운서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부모님의 존재가 있기에 지금의 아나운서 이선영이 있다는 것도 아이를 통해 알아가는 중이라고 언급한다. 이제 저자는 어제보다 더 알찬 오늘을 꾸려간다. 사랑하는 딸아이와 언제나 자신의 편에 서 있어 줄 엄마와 함께.

여느 직장인이나 마찬가지이듯 아나운서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 이면에는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다. 잘해도 잘하지 못해도, 자신이 있어도 자신이 없어도,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 그것이 바로 아나운서의 일이다. 실력보다는 개인의 인지도에 따라 좌우되는가 하면, 영영 앞에 나가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방송을 할 때도 있지만 공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먹는 일도 왕왕 있다. 그렇다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자신의 일에 애정이 있는 만큼 오래토록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저자가 선택한 건 바로 ‘꽃’이었다. 저자는 늘 누군가에게 지배되었던 삶에서 지배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찰나의 시간, 안도감을 얻었다. 같은 꽃이라도 누가 어떻게 꽂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꽃의 세계에서 해방감도 느꼈다. 그렇게 꽃에 애정을 쏟아부은 시간만큼 본업에 대한 열정이 높아지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일단 시작한 일에는 ‘열심’ 버튼이 눌러지는 저자는 지난 2015년에는 IHK(독일상공회의소)·FDF(독일연방화훼협회)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2016년에는 독일 현지에서 플로리스트 마이스터(floral stylist)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9년에는 농식품부 주최 화훼장식대회 공간장식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는 본캐는 아나운서, 부캐는 촉망받는 플로리스트로서 활약하고 있는 저자는 올초, 매월의 생화와 꽃말을 주제로 한 전시회 ‘성화(成花)’를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여 열어 또 한번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잘해도 잘하지 못해도, 자신 있어도 자신 없어도, 누군가 나에게 기회를 줘야만 그것을 수행할 수 있다. 나는 피지배자로서 살아야 하는 방송국 생활에 버틸 힘을 꽃의 지배자로서 풀어냈다."는 저자가 직업 에세이 3번 주자로 바통을 이어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 이선영

 

KBS공채 31기 아나운서이자, 플로럴 마이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아나플로리스트’. 매일 아침 전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려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열심히 물었다. 사랑과 나눔의 의미를 브라운관 너머의 시청자에게 알리고자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눈물 고인 눈으로 ‘러브 인 아시아’를 읊조렸다. 또 지친 하루 일과를 마친 시청자들에게 발랄하게 웃으면서 ‘생생정보’를 외친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데일리 프로그램에 매진하다 보니 벌써 아나운서 인생 이십 년을 눈앞에 둔 이선영 아나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방송의 목적성을 제대로 파악하여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전달하는 ‘아나운서로서의 신념’ 이 확고한 아나운서 중의 아나운서다.

여리한 모습과는 달리 한번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불도저처럼 묵직하게 밀어붙이는 반면, 주어진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두는 치밀감도 갖춘 그녀는 아나운서라는 본업 외에도 ‘N잡러’라 불릴 만큼 바쁘게 살아간다. 어느 강직한 어머니의 딸이자 자기주장이 똑 부러지는 소녀의 워킹맘로서, 국내에서는 손에 꼽는 플로리스트 마이스터로서, 기아대책기구의 홍보대사로서. 지금은 매일 저녁 KBS [2TV생생정보]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표 프로그램으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러브 인 아시아] [좋은나라 운동본부] [아침마당] [스카우트] [주주클럽] [가족오락관] [투데이스포츠] [연예가중계]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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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법칙 - 세상의 작동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가장 정확한 언어
시라토리 케이 지음, 김정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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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학창 시절 가장 약했던 과목이 '물리'였다. 다음이 수학. 과학으로 표현되는 물리·수학에 약했으니 과학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고, '과학'은 '어려운 학문'이다는 생각이 머릿속 깊숙이 박힌 것 같다. 당시 대학은 문과와 이과로 구별되어 학생들을 모집했다. 독자는 '이과반'이었지만 이런 이유로 문과대로 전향, 입학했다. 독자가 과학과 점점 멀어지는 계기였으리라. 그러나 문과를 선택했다는 것에 크게 후회한 적도, 삶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다. 그래도 삶에서 몰라서 만족이었지, 문과가 이과보다 삶에 이익이 되는 학문이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모두 우리 삶에 필요한 학문들이다.

이런 이야기는 '개인적'인 것들이어서 서평 쓰는 데 적합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 『세상의 모든 법칙』이고, '세상의 모든 법칙'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법칙이 있다. 이런 법칙은 알아두는 게 삶에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책을 읽다보니 독자 개인의 옛날 생각이 절못된 것인지 검토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법칙'은 사전적 풀이로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 또는 '수학 연산의 규칙'을 말한다고 돼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필연적인 불변의 관계'를 이른다고 한다. 철학적 의미가 가미된 뜻풀이인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 속에 있다. 매일 해가 뜨고,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주기적으로 계절은 변하며, 지구 위의 모두가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연 현상은 물론이고 나아가 사회 현상까지 나름의 규칙과 패턴이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해 꾸준히 관찰하고 수없이 많은 실험과 반증을 거쳐 반드시 그렇게 되고야 마는 결과를 정리한 것이 바로 ‘법칙, 공식, 정리’다. 그러므로 법칙은 이 세상의 변화 속에서 찾은 하나의 원리를 낭비나 모순 없이 그야말로 꼭 필요한 ‘농축된 지식’(출판사 측은 '엑기스'라고 표현한 것을 독자가 싫어하는 단어라 임의로 해석 대체함)만 모아 추출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농축된 지식 중에서도 꼭 필요한 것만 모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 『세상의 모든 법칙』이다.

책에서는 컵 속의 얼음이 전부 녹아버려도 컵의 물은 넘치지 않는 현상(‘아르키메데스의 원리’)과 같이 살면서 한 번쯤 궁금했던 일상생활 속 원리를 해석해주고, 나아가 밤하늘은 어둡기에 우주는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우주론(‘올베르스의 역설’)이나 은하계에 존재하는 지적 문명의 수를 구할 수 있다는 수식(‘드레이크 방정식’)을 통해 이 지구에서 가장 멀고 어두운 공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또 장거리 연애가 파국을 맞이하기 쉬운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며(‘장거리 연애의 법칙) 평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며,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라는 것까지 알려준다(‘자네의 법칙’).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주에 있는 행성의 위치가 변하고, 지각 변동으로 인해 땅도 움직이며, 어떤 생물에게도 영원한 젊음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때 법칙과 공식, 정리는 세상의 모든 현상과 변화의 흐름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언어라 할 수 있다. 어지럽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가장 확실한 정답, 바로 법칙이다.

이처럼 법칙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할 터인데 독자의 부족한 과학 지식 탓인지, 독자는 이런 법칙을 듣게 되면 법칙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과학자의 이름이 아니라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인생이란 것이 알고 보면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마칠 무렵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삶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을 설계한 다음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이런 단어를 쓰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의 불교적·동양사상적 측면에서 '삶의 법칙'을 설명하듯이.

 


 

독자는 최근 한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던 〈대우주〉란 프로그램을 여러 번 보았다. 워낙 어렵고 평소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를 방송에서 기획 시리즈로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보니 보면 볼수록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의 존재감이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상 이외의 내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도 그 방송 내용의 일부에 포함된다. "현재의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가 약 150억 년 전의 빅뱅 이후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당시는 우주가 변하지 않는 공간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거나 혹은 수축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우주가 팽창도 수축도 하지 않는 정상 우주가 되도록 우주항이라는 새로운 항을 넣은 방정식을 제시했다.

그런데 1922년에 러시아의 물리학자인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이 우주가 팽창할 가능성을 지적했고, 1929년에 에드윈 허블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두고 아인슈타인은 방정식에 우주항을 넣은 것을 “생애 최대의 실수였다”라고 말하며 후회했다고 한다.(p.45) 이런 내용과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생무상'의 뜻과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부처도 '대우주'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것인가? 하는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다. 불교도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닌 한 독자로서 생각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어려운 것이라 '추정'에 불과한 '가설'이지만 말이다. '인생무상'과 '대우주의 법칙'이 극과 극의 얘기 같지만 서로 상통하는 것 아닌가 하는 궁금증은 여전하다.

 


 

책에 따르면 법칙과 이론은 고루한 학문이 아니라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일상 생활의 토대가 되는 거의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 정리’는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대표적 법칙으로, 주로 내구성이 높고 안전한 건물을 지을 때나 인테리어를 설계하는 데 쓰인다. 또한 어떤 대상을 볼 때 안정감과 조화를 느끼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비율은 약 ‘1대 1.618’이라는 수치로 나타나며 ‘황금비’라고 부른다. 이는 무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기준인 것인지 고대 그리스인이 만든 밀로의 비너스상이나 파르테논 신전의 비율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오늘날의 명함 및 각종 가구 등에도 황금비가 적용돼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범죄 행위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데도 활용되는데, 도청을 감지하기 위해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응용된 양자 암호 기술이 쓰이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제3자가 도청을 할 경우 양자 정보가 그 순간 바로 반응하여 한 점으로 수축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간섭, 즉 도청이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은 텔레비전 시청률 조사 결과는 아주 적은 표본만으로도 충분히 유효한 결과를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이나 초고성능의 슈퍼컴퓨터가 있어도 완벽하고 정확한 기상 예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 등 여태껏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주관적인 느낌으로 판단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현상들의 원리까지도 일목요연하게 밝혀준다.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지 사소한 일상의 모든 테두리 안에 법칙이 있고, 우리의 생활을 안전하고 편리하며 윤택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스티글러의 명명 법칙’이란 것이 있다. 시카고대학교의 교수 스티글러가 조사한 결과, 우리에게 친숙한 법칙 중 대부분이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피보나치 수열은 피보나치가 최초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과거 인도나 유럽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으며, 핼리 혜성도 천문학자 핼리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법칙의 이름은 첫 발견자보다는 그 주제를 꾸준히 탐구하여 발견의 가치를 높인 후대 과학자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를테면 행성의 운동에 관해 설명한 케플러의 법칙을 이야기할 때는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를 빼놓을 수 없다. 망원경조차 발명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그는 육안으로 행성의 운행을 정밀하게 관찰했고, 그 결과 행성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음을 확신했다. 이는 수십 년 후 케플러가 튀코의 자료를 바탕으로 ‘케플러의 법칙’이라는 결실을 보게 된다. 앞선 튀코의 연구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나 법칙의 이름은 케플러의 것으로 남았다.

즉, 과학 법칙의 세계에서는 어떤 이론을 찾아낸 최초 발견자보다 발견을 넘어 꾸준히 실험하고 연구한 사람을 더 주목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과학 법칙을 눈여겨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발견이라는 결과적인 가치보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 더 방점을 두는 것, 끝없는 실험과 반증으로 잘못과 오류를 찾아내고 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 등을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과학 법칙만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에서 배워야 하는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과학, 특히 물리학의 발전은 대단한 인류의 업적으로 평가되지만 독자처럼 과학이나 물리학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자연과 생명의 과학자' 최재천의 말이 더 실감나고 가깝게 들린다. "지금은 생명과학이 속된 표현으로 ‘잘 나가는’ 분야로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기 전까지 과학의 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물리학이었다. 수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이론과 실험 모두에서 이른바 ‘정확한 과학(exact science)’ 혹은 ‘경성과학(hard science)’의 표상으로 군림했던 물리학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그런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를 숨기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한 과학인 생물학이 물리학 사자들의 가장 손쉬운 먹이가 되었다. 잔뜩 주눅이 든 생물학자들 사이에는 한때 ‘물리학 선망(physics-envy)’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쓰이기도 했다."(최재천 『생물산책』 중에서)

 

저자 : 시라토리 케이(白鳥敬)

과학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과학, 사회 등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법칙이 우리의 삶에 큰 변화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는데 정작 대부분이 이러한 법칙을 어렵게 느끼거나,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 정도로 취급하곤 한다. 저자는 법칙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 책 『세상의 모든 법칙』을 썼다. 그 밖에 쓴 책으로 『날씨와 기상』, 『그림을 통해 이해하는 항공 역학』 등이 있고,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왜 그럴까? : 생각을 키우는 90가지 과학 원리』가 있다.

 

역자 : 김정환

건국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외국어전문학교 일한통번역과를 수료했다. 21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 한 권에 흥미를 느끼고 번역의 세계를 발을 들여,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번역의 오묘함과 어려움을 느끼면서 항상 다음 책에서는 더 나은 번역,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번역을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공대 출신의 번역가로서 공대의 특징인 논리성을 살리면서 번역에 필요한 문과의 감성을 접목하는 것이 목표다. 번역한 책으로는 『재밌어서 밤새읽는 물리 이야기』, 『재밌어서 밤새 읽는 진화론 이야기』, 『마흔에 다시 읽는 수학』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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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의 맛 - 유튜버 자취남이 300명의 집을 가보고 느낀 것들
자취남(정성권)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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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많아진 요즘, 사회적으로 경력도 쌓이고 혼자 사는 기술도 쌓인 레벨 높은 자취인들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쉽고 간단하게, 알차고 ‘화려한 자취‘를 할 수 있다. 그들이 사는 법을 소개하는 저자의 신바람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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