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녀성의 레미장센
안상아(신녀성) 지음 / 토네이도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는 2030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미움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원하는 것에 솔직해져라”가 첫 번째 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녀성의 레미장센
안상아(신녀성) 지음 / 토네이도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신녀성의 레미장센』은 자기계발서다. 독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1위가 늘 자기계발서란 서점가 집계를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 책마다 나름의 주제와 관점을 갖고 쓰인다. 자기계발서가 많이 팔리는 이유가 서점가 집계에서 따로 밝히진 않았지만, 독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독자들이 성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회에서, 또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점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읽어본 자기계발서가 대부분 '성공'을 목적으로 쓰인 데서 비롯된 판단이다. 이 책 역시 성공을 목적으로 쓰였다.

다만 다른 책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대상에 여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철저한 자기 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전문 작가나 학자가 아닌 데도 글이 논리정연하고 주제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한 권을 써 내려간 점에서 탁월한 글쓰기 능력도 돋보인다. 다른 계발서는 '성공'을 목적으로 해도 자기 관리 부분에 들어가서(디테일) 조금 산만해지기 시작하는 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려 350페이지 가까이 썼는데도 말이다.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프롤로그」를 읽어도 느낌이 한결같다는 것은 툭장점이고 잘 쓴 책이라는 반증이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도 책의 주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지금 당신은 삶이 만족스럽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삶을 갈망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놀랍도록 변화한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갖고 싶었던 저자 신녀성은 매력적이면서도 지혜로운 여성들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하면서 인생의 만족도가 높은 여성들에게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공통점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며 성장하고 삶의 기준을 높일 수 있었던 저자는 컨설팅을 통해 만난 20~30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자존감, 이미지, 대화와 센스, 연애 등의 자기관리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아가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항유할 수 있도록 바꾸어 주었다.

이 책은 그녀의 10년을 온전히 바쳐 치열하게 얻어낸 인사이트이자, 컨설팅을 하면서 만난 여성들에게 변화를 일으킨 실천적 방안과 노하우를 압축한 책이다. 『신녀성의 레미장센』에 소개된 그녀들의 인생 전략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근거 있는 자기 확신, 고급스러운 분위기, 품격 있는 말투, 매력적인 태도’가 완벽하게 체득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당당하게 욕망하고 우아하게 쟁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로 첫발을 내디딜 준비가 되었는가? 이제 당신의 차례다."

 


 

책 제목에 굳이 미장센(mise en scene)이란 외국어를 적용한 것도 단순히 멋을 위해서가 아니다. '미장센'이란 원래 연극과 영화 등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을 말한다. 연극무대에서 쓰이던 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영어로 표기하면 'Putting on Stage'로 직역하면 '무대에 배치한다'란 뜻이다. 연극을 공연할 때 희곡에는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무대장치, 조명 등에 관한 지시를 세부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므로 연출자가 연극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대위에 있는 모든 시각대상을 배열하고 조직하는 연출기법을 말한다. 연출가는 '희곡을 무대화'하기 위해 각 장면(scene) 또는 각 시퀀스(sequence)의 미장센을 결정하게 된다.

이 용어는 1820년경부터 연극상연을 위한 인원이나 재료의 총체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으나 1835년경부터는 무대표현의 각종 방법을 종합 통일하는 조작과 기능을 가리켰으며, 19세기 말부터는 무대 표현상의 개성적 예술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영화에서 미장센은 광의의 개념으로 '카메라에 찍히는 모든 장면을 사전에 계획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해석하며, '카메라가 특정 장면을 찍기 시작해서 멈추기까지 화면 속에 담기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 즉, 화면 속에 담길 모든 조형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세트, 인물이나 사물, 조명, 의상, 배열, 구도, 동선, 카메라의 각도와 움직임 등이 포함된다.(출처 : 두산백과)

 


 

이 책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가장 큰 힘은 '솔직함'으로부터 나온다.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정직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피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은 부각시킨다. 자신을 알고 무대에 데뷔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타인에게 드러내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점검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 솔직하게 답하라는 말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라도 본성을 감안한 자기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를 성찰할 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독자들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사실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솔직하면 모두 해결될 일이라는 점이다. 즉 자신이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인지(認知)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는 이야기다. 스스로를 드러내되 남 앞에서 자랑하듯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저자는 욕망을 가진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매력적인 여자가 되어 원하는 인생을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신에게는 물론, 남에게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관념상 여자가 이 같은 욕망을 밝힌다면 '속물'이라는 비난 받을 것 같아 타인에게 숨기고, 결국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로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밑바탕이 될 것이란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것은 저자가 스승으로 삼아온 매력적이면서도 지헤로운 여성의 현실적인 조언이었고, 저자가 20대를 온전히 바쳐 얻어낸 인사이트임을 강조한다.

 


 

이 책의 구성은 5개 스테이지(부部, 장章으로 구분해도 될 듯)에 앞서 '리허설'을 별도로 둔다. 리허설(rehearsal)이란 연극·음악·무용 등에서 하는 연습을 이르는 말이다. 방송용어로도 쓰인다. 대본을 보면서 함께 읽은 후 라디오에서는 음악과 효과를 넣어 마이크테스트를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서서 연습하며 어림잡는 드라이리허설, 다음에 카메라리허설, 의상을 입고 하는 드레스리허설이 순서이다. 비디오 녹음이 출현하고부터는 생방송이 줄고 부분적으로 찍어 편집하는 영화적 수법이 많아졌다.(두산백과) 저자는 이 리허설에서 자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기술했다. 즉 책의 부제로 사용된 '인생의 만족도를 최상위 레벨로 바꾼 여자들의 5가지 전략'을 의미하는 「원하는 인생을 쉽게 살기 위한 5가지 방법」을 썼다. 다섯 개의 단어로 표현하고 약간의 설명을 붙인 각 항의 제목을 여기에 적는다.

그 첫 번째가 역시 '원하는 것에 솔직해지기(욕망)'이다. 두 번째는 '절대적인 자기 확신 갖기(담보)'이다. 이어 '고급스러운 분위기 연출하기(연출)', '콘텐츠를 통해 나만의 캐릭터 만들기(표현)', '은밀하면서 우아한 권력 갖추기(매력)' 등 다섯 가지다. 이후 저자는 하나씩 다섯 스테이지를 설명하고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비유, 인용, 사례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다섯 스테이지를 마치면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른다. 이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는 확언하고, 조언한다. "착한 여자보다 욕망에 충실한 여자가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기보다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이미지와 캐릭터를 연출해 나가는 여자를 매력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원하는 이성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이어가는 여자는 우연과 운명에 의지하기보다 계획과 전략을 통해 유혹하는 여자다."(p332)

 


 

저자는 컨설팅을 하면서 만난 적지 않은 여성들이 스스로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하며 “‘착하다’라는 칭찬 아닌 칭찬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아요. 전 사실 착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들로 인해서 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라고 고해성사하듯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고 전한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의 부작용은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안을 받았을 때에도 괜찮다고 말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아무거나 괜찮다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슬픈 것은 ‘정말 괜찮다’는 것이다. 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말로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을 파악하는 순간 2030대에 공통적으로 겪는 일과 사랑, 관계와 자존감 등에 복잡하게 얽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욕망’은 단어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욕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 대한 정중한 예의이자, 나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노력을 뜻한다. 동시에 당신으로부터 빛이 나 시선을 뗄 수 없고 옆에 계속 머물고 싶도록 만드는 유혹의 힘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당신이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욕망하고 그걸 짜릿하게 이루어 나가는 방법을 안내하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나침반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나의 가치를 올려주는 요소와 실천법’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한다. ‘나를 먼저 대접하는 방법부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법, 연출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법, 말투로 품격을 올리는 습관, 나를 발전시켜줄 사람 찾는 법, 가치 싸움에서 승리하는 법’ 등 삶을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업그레이드하는 법을 알려주어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미움 받을 용기'로 수렴된다. 대한민국 헌법으로 말하자면 '1조 1항'이다. 이것은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미움받기를 두려워하지 마라'이다. 성공한 여성으로 대우받고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모든 원칙과 방법의 정체성를 설명해주는 '완전한 말'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대한민국에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성공한 여성의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갖춰야 할 바탕이고 철칙임을 잊지 않으면 그 길은 앞당겨질 것으로 독자가 기대하는 이유다.

 

저자 : 안상아(신녀성)

 

여성 자기관리 컨설팅 레미장센 대표. 이전에 없던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이라는 뜻의 ‘신녀성’이란 이름으로 자기계발 유튜버 및 블로거로도 활동 중이다.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아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갖고자 했다. 그 결과 꿈꾸어 왔던 일과 사랑을 쟁취할 수 있게 되었고 이 과정을 블로그에 10년 넘게 담아왔다. 자기 인생의 만족도가 높은 여성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발견한 공통점을 삶에 적용시키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꾸준히 기록한 신녀성의 글과 영상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뜨거운 호응과 열렬히 공감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무한한 시장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고 ‘성장하고 싶은 여자, 삶의 기준을 높이고 싶은 여자’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시작했다.

레미장센 컨설팅을 통해 20∼30대 여성들을 만나 공통적으로 겪는 자존감, 이미지, 대화와 센스, 연애 등의 자기관리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아가 인생에서 다양한 기회를 갖고 더 많은 것을 항유할 수 있도록 바꾸어 주었다. ‘당신의 젊음을 아름다움과 욕망에 투자하라!’고 말하는 신녀성은 앞으로도 여성 모두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당당하고 우아하게 쟁취할 수 있도록 돕는 콘텐츠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로 괜찮은 파랑 - 여전히 깊고 푸른 우리들을 위하여
진초록 지음 / 뜻밖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의 팔레트에 담긴 아름다운 사람과 기억, 그리고 치유의 색들. “아름다운 것들은 색과 함께 온다” 당신을 안아주었던 시간과 시절의 색은 무엇인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로 괜찮은 파랑 - 여전히 깊고 푸른 우리들을 위하여
진초록 지음 / 뜻밖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적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였다. 아마 대부분 그런 질문을 받으면서 각자 자신의 꿈을 키웠을 게다. 독자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적 꿈은 그림책에서 봤던 비행기 조종사(파일럿)이었다. 비록 나중에 바뀌었지만···. 그리고 많이 받은 질문은 "넌 무슨 색을 좋아해?"였다. 독자는 늘 '노랑'이었다. 병아리색이라고도 했다. 병아리를 사다가 기른 적도 있다. 며칠 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병아리를 키우진 않았지만 좋아하는 색은 여전히 노란색이었다.

이 책 『그대로 괜찮은 파랑』의 저자 진초록은 필명처럼 파란색을 좋아하나 보다. 사실 파란색과 푸른색은 조금 다르다. 파란색은 바다나 하늘색을 말하는 것이고, 푸른색은 나무잎처럼 푸르름, 녹색을 이른다. 녹색은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덧칠해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혼동해서 쓰기도 한다. 외국에서도 그런지, 독자는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배운 영어나 외국어로는 다른 단어이다. 저자는 연한 담청 혹은 얼어붙은 겨울 강의 얼음 빛깔을 닮은 하늘 색깔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다. 이유는 문학적 은유이겠지만 셀렘과 기다림의 시작처럼 느껴져서이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색, 한 가지 색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연한 담청의 하늘은 오래 바라볼 수 있고, 오래 본다는 것은 오래도록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서 좋아한다. 또 지인이 선물로 준 보라색 장미꽃차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파리에서 온 그 꽃차의 원산지는 이란이다. 저자는 시공간을 넘어 낯선 땅의 보라색 장미 정원을 맨발로 걷는 상상 속에서 헤맨다.

소녀 시절,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발레를 포기한 동생은, 우연히 보러 간 발레 공연장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연분홍 토슈즈를 보며 작가는 꿈 하나를 잃어버린 동생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오늘의 너를 만들었노라고, 언젠가는 웃으며 그런 얘기를 나누고 싶다. 먼 도시에 취업이 되어 부모님 곁을 떠나는 날, 엄마는 아끼는 라벤더색 샤워 가운을 선뜻 작가에게 내준다. 그 무엇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허기를 감당할 때마다 작가는 엄마의 샤워 가운을 입는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 그런 사람의 색을 붙들고 작가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

 


 

저자도 그렇지만 우리도 살면서 좋아하는 색깔은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좋은 인연으로 대체로 그 색을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좋아하는 색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긴 고유의 색을 가진 세상 모든 것들이 인간이 의미를 부여해서 구별하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고유의 색깔을 가진 모든 것들이 태양의 빛을 받아 자신의 색을 내는 것이니까. 그러나 누구나 유독 싫어하는 색도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다. 싫어하는 이유 또한 그 색을 대하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다. 대체적으로는 우리의 감정 중 공포, 불안, 위협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의 색이다. 죽음의 메타포 검정, 음울한 콘크리트 도시의 상징 회색 등이 그렇다.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것일 테지만 세상 사람의 눈에는 그런 색으로 인지되는 이유가 누군가 그 색에 부정적 감정을 투영시킨 것에 공감을 가졌기 때문일 터다. 그게 다른 곳에서 반복되며 색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투영된다.

 

초록은 여러모로 생의 감각을 닮은 색이다. 구급차의 초록, 비상탈출구의 초록색 안내등, 세상 모든 결실의 시작인 새싹 한 포기부터 인간의 죽어가는 마음을 살리고 우울을 다독이는 드넓고 푸른 초원까지 전부 그렇다. 이 세상에 색을 하나만 남기고 모두 잃어야 한다면, 그런데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선택은 초록이겠다.(p.276)

 


 

저자의 색에 대한 관심은 다양하다.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보았던 짙은 주황빛 노을을 잊지 못한다. 그리움이 짙어 다시 그 언덕에 서는 날, 저자는 "그간 네게 많은 빚을 졌다고, 그래서 다행히 기운차게 살았다"고 말해주려 한다. 또 작가는 고양이를 기른다. 둥글고 하얀 고양이의 발이 마룻바닥에 닿을 때 나는 소리를 특히 좋아한다. 언제부터인가 거실부터 부엌, 부엌부터 현관까지 고양이와 걸으며 작가는 자신이 고양이의 우주에 초대받았다고 깨닫는다. 그 시간은 새벽 기도 같기도 일요일 아침 미사 같기도 하다.

작가에게 장면 속의 색을 읽어내는 일, 언어 속의 색을 읽어내는 일은 너무나 충만하고 아름다워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행복한 취미다. 작가는 자신의 즐거움만큼이나 독자들의 즐거운 순간을 궁금해한다. 들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들으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함께 나누기에 가장 아름다운 무엇일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책에 따르면 열 살 무렵 막연하게 죽음이라는 추상의 개념을 인식하게 된 저자는 밤마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울었다. 그러다 어느 날, 늘 제자리에서 자신을 비추어주는 환한 달을 보며 더는 무섭지 않게 되었다. 달빛 아래에서 작가는 달과 신호를 주고받는 기분으로 이젠 괜찮다고, 덜 힘들고 무섭지 않다고 느낀다. 작가는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타게 되었을 때 용기를 배웠다. 무서워서 제대로 흐름과 균형을 타지 못한 게 패인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는 순간 그것을 돌파할 줄도 알게 되었다.

빛나는 형광색 사물을 보면 바퀴에 형광색 구슬을 줄줄이 매단 어린 날의 자전거가 떠오른다. 그 색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되어야 할 것 같고 더 씩씩해져야 할 것 같다. 한번은 떨어지지 않는 열을 안고 병원에서 받은 약 봉투를 챙겨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갔다. 도망치듯 잔인한 도시를 떠나자 열은 씻은 듯 내렸다. 그곳에서 한밤중에 쪽배를 타고 청량한 금빛을 내뿜는 반딧불이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아주 작은 빛을 보았다. 다시 돌아온 도시에서 일상의 고통은 그대로였지만 작가는 세상 어딘가에서 반딧불이가 반짝이고 고요와 적막이 흐르는, 그런 질서가 있다는 것만으로 숨 쉴 틈을 얻는다.

 


 

이렇듯 색은 저마다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람마다 사는 게 다르고, 주위 환경도 다르고, 고유 풍습이나 문화도 다르다. 당연히 좋아하는 색깔도 다양하고 세상의 모든 색깔은 세상의 모든 물건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선다. 어떤 색이 좋고, 어떤 색을 싫어하는 것은 온전히 그 색깔을 보는 사람의 경험이나 인연에 따른다. 독자는 어렸을 적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면서 덧칠을 좋아했다. 색을 혼합해 어떤 색이 나오는지 알기 위해서였지만, 나만의 색깔, 한 번도 보지 못한 색깔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혼합색이 많이 사용되는 경우 선생님의 칭찬은 없었다. 그림은 꽤 잘 그린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혼합색을 많이 사용하면 이상하게(?) 칭찬이 거의 없었다. 선생님은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 않아 그냥 독자 스스로 잘못 그렸나 하고 다시 그 색을 안 쓰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십 년이 지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기억을 문득 "혹시 색깔이 특이해서 선생님이 공감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말을 쓴다. "우리의 삶에서 누군가 빛을 거두어 가더라도 그 빛이 정말 사라지는 건 아니라, 여전히 모든 것은 푸르고 빛나고 더 짙어진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눈을 들어 사위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리라는 것을 믿고 우리 영영 푸른 하늘처럼, 붉은 노을처럼, 한여름의 초목처럼 살아가자고요."(p.298)

 


 

저자 : 진초록

 

로스쿨에 다니며 글을 쓴다. 대학에서는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잡지를 펴낸 적이 있고 방송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짧게 일했다. 서울 생활이 답답해 못 견딜 때쯤 훌쩍 바닷가로 이주했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 아버지는 진초록에게 공주가 아니라 여왕이 되기를 꿈꾸라고 가르쳤다. 그런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홀로 세상에 나왔을 때 비로소 알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잔인하고 버거운지를. 『우리는 살아남는 중이다』는 우리의 일상에서 여성혐오가 얼마나 여전히 생생히 살아 숨 쉬는지, 가부장제가 또 얼마나 완고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기록했다. 함께 험지를 헤쳐 나가는 모든 여성을 위해 썼다.

방송물은 한 모금. 여행자처럼 헤매었고 먼바다와 무등의 도시를 건너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 모든 모험을 함께한 고양이와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내 삶의 팔레트를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영영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내 생을 스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기억과 추억에 대해서. 그것들에 물든 온갖 색체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얻어진 마음들에 대해서. 『그대로 괜찮은 파랑』은 어느 푸르고 쨍한 밤, 사람은 색에서 위로를 얻고 색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가졌다는 걸 느꼈던 그 밤 이후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하나씩 되짚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써나간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예전에 읽고 알고 있는 '판도라(Pandora)'는 이 책 『판도라는 죄가 없다』에 나오는 판도라와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었고(극히 일부 발췌본)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을 얻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진흙을 빚어서 만들게 한 여성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판도라가 온갖 불행을 가두어 둔 상자를 호기심에 못 이겨 여는 바람에 인류의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책을 통해 알고 있다. 이쯤 되면 생각 나는 여인이 한 명 더 있다. 성경 속 에덴동산의 '이브'이다. 이브 역시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리 인간은 그 벌을 대신해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독자는 어렸을 때 그리스·로마 신화를 수많은 버전으로 여러 번 읽었다. 그러나 발췌본(그때는 발췌본인지도 모르고 읽었다)이고 발음도 달라 아직도 신과 영웅, 여신과 왕비 등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은 몇 안 된다. 그만큼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하고 또 다양하게 해석돼 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 들어 배운 바로는 특히 그리스어가 로마의 라틴어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이 모든 이름들을 그래도 몇몇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사실 로마의 실존 인물인 율리우스 캐사르도 영어로 처음 접했기 때문에 '줄리어스 시저'라고 알고 있었다.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계승 발전시킨 문명이다. 제국이 멸망하고 화려한 흔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유럽의 각국, 심지어는 미국까지도 로마의 문명이 지금까지 인류 문명의 모태로 삼고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 1896년경(위) 및 쥘 조제프 르페브르 [판도라] 1882. 출처 :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그리스 문명의 위대함은 별도로 역사나 문학, 철학, 사상 등 각 분야별로 배웠지만 제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는 먼 문명이었다. 중국의 문명을 받아들인 우리로서는 중국의 문화가 훨씬 가깝고 더 친근했다. 지금의 중국 문화는 옛날 중국 문화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중국 문명도 서양에서 만든 공산주의 이론에 의해 다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중국 문명이 어쨌든 우리는 지금 서양 문화와 더 가깝고 더 친근함을 느낀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이 책의 서평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는 여기서 그친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 문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 저변의 생각을 말한 것일 뿐이니까.

『판도라는 죄가 없다』의 저자 나탈리 헤인에 따르면 우리가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여성들은 사실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이는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티라노스〉에서 이오카스테의 대사 분량은 10%도 되지 않고, 오이디푸스의 대사 분량은 다른 인물들보다 5배 이상 많다. 우리는 이오카스테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오카스테의 남아 있는 이미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왜일까? 저자는 고대의 그림 작가들은 나이가 많은 여성이 주인공인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고대의 화가들은 대부분 10대나 20대의 여성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그들을 그릴 때는 지치는 법이 없었다. 이오카스테와 같은 40대 이상의 여성들의 그림을 남기는 데에는 남은 열정이 없었다.

 


판도라 인물관계도. 출처 :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저자의 해석의 관점은 약간 다르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예술·철학·과학 분야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판도라와 아마존 등을 제외한 여덟 인물에 간단한 설명을 독자가 임의로 덧붙인다. 저자와 관점이 다른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에 따른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이오카스테(Iocaste) 왕비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와 결혼하여 오이디푸스를 낳은 이오카스테는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살을 섞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아들을 산 속에 버리게 한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인 줄 모르고 그와 결혼한 이오카스테는 2남 2녀를 낳지만 뒤늦게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목을 매 목숨을 끊는다.

헬레네(Helene) 왕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절세의 미녀이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지만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유혹에 넘어가 함께 트로이로 도주하는 바람에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게 만든다.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난 뒤 다시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어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메두사(Medusa) 괴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혹은 괴물로, 고르고네스 3자매 중 하나이다. 메두사의 얼굴은 너무나 무시무시해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린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불사신이 아닌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클리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 왕비

그리스 신화에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왕비이다.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한 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찾아온 아들 오레스테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에우리디케(Eurydike) 인명이 2명 이상 존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님페이자 전설적인 리라의 명수 오르페우스의 아내이다.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 밖에도 여러 명의 에우리디케가 있다.

파이드라(Phaedra) 왕비

영웅 테세우스의 후처이다. 전 부인의 소생 히폴리토스에 대한 사랑이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데이아(Medea, Medeia) 신화 속 인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이다. 아르고호 원정대를 이끌고 도착한 이아손에게 반해서 아버지인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를 배신하고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 뒤 그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이아손이 자신을 배신하고 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 하자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독살하고 이아손과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두 아들마저 제 손으로 죽여 이아손에게 복수하였다.

페넬로페(Penelope) 왕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이에 수많은 구혼자들로부터 결혼을 요구받으며 시달렸지만 끝까지 지조를 버리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마침내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을 모두 죽이고 페넬로페를 구해주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인물 관계도와 사진 2장을 싣는다. 이 관계도 및 사진은 각 해당 자료 하단에 설명에서 밝힌다.

 


 

책의 제목은 '판도라'에 관한 것이지만 실제 10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판도라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저자가 연구해온 여성 문제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적합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저자는 제 1장 「판도라」에서 "수 세기 동안 판도라의 이야기에서 강조된 부분은 인간의 타락에서 그녀가 혼자 도맡은 역할이다."고 말한다.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인간 타락의 '주범'이라고 몰아세웠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브'보다 비교해도 지독하게 푸대접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에서든, 혹은 악의로든 상자를 열지 않았다. 실제로 그 상자는 헤시오도스가 그리스어로 시(詩)를 쓰고 난 지 2,000년이 훨씬 지난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고 말한다.

에라스뮈스가 헤시오도스의 운문 〈일과 날〉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까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상자는 없었다고 한다. 에라스뮈스는 '항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피토스'를 옮길 만한 단어를 찾고 있었다.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인 M.L. 웨스트의 설명을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헤시오도스가 쓴 말은 1m 정도 높이의 저장용 도자기 항아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항아리는 바닥 면은 좁고 너른 입구까지 벌어지는 구조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지 않다. 고대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 어디든 좋으니 한 번 둘러보자. 고대 유물 항아리들의 수많은 균열과 수리된 상태를 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대 항아리들의 부서지기 쉬운 본질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웨스트는 에라스뮈스가 판도라와 프쉬케(psyche, 그리스 신화에서 puxos(폭소스), 더 일반적으로는 pyxis(픽시스)로 발음되며, 지하세계를 탐험할 때 상자를 운반함)의 이야기를 혼동했다고 추측한다. 저자의 주장도 '혼동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저자는 에라스뮈스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 전에 판도라가 예술적으로 재현된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비록 화가가 판도라를 악당으로 등장시키고, 그림의 이미지가 그 모습을 반영하더라도 그녀는 항아리와 함께 나타난다. 장 쿠쟁은 1550년 경 그녀를 판도라와 이브가 혼합된 〈에바 프리마 판도라〉로 그렸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다리 사이에 감긴 얇은 천을 제외하면 알몸인 상태로 누워 한 손은 항아리에, 다른 한 손은 인간의 두개골 위에 얹어 놓은 모습이다. 이후에도 그녀가 항아리와 함께 있는 모습을 화폭에 담은 그림들은 더 있다. 헨리 하워드의 1834년 그림 〈판도라의 꽃병 열기〉가 그 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그로부터 약 40년 후쯤 나타날 것이다.

그 무렵 에라스뮈스의 정정본은 집단예술의식에 내면화된 듯이 보인다. 저자는 이처럼 시공을 초월한 예술 공간을 넘나들고, 역사적 사실을 파고 들어 판도라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잘못된 것으로 주장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연 것도 아니고, 이후 예술가나 역사가, 혹은 그 이외 학자들도 도덕적으로 타락한 '판도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이브의 서사 전개 과정에서 아담과 뱀이 많은 비난을 피해갔듯이 제우스, 헤르메스, 에피메테우스 역시 이후 거의 모든 판도라와 관련된 서사에서 책임을 면제 받았다고 기술한다. 저자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역사 문헌적으로도 설득력을 얻고 따라서 역사에서 모든 잘못된 일의 원인을 찾을 때면 항상 지침이 되는 원칙은 지나치리만치 '여자를 조심하라((cherchez Is femme)'였다고 강조한다.

 


 

이후 2~9장의 내용은 이처럼 저자의 집요한 연구와 여성들의 희생에 매몰된 이유 연구에 천착해 이 책에 적힌 나머지 9명의 인물들에 대한 여성 비하가 원인이고, 또 결과를 더욱 확실하게 못 박아 남성 중심의 남성 추축 사회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뒷 부분에 논저처럼 별도의 〈결론〉을 마련한다. 책에 다르면 판도라의 항아리에 담긴 것들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올 때 우리는 이것을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하려 한다. 1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고대 작가의 경우 항아리의 내용물이 항상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신화의 일부 버전에서는 좋다. 그러나 그 버전은 선호하는 서사로 널리 퍼지지 못했다. 아마도 상황이 예전만큼 좋지 않다고 믿기가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종류의 쇠퇴론, 즉 상황은 항상 약간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은 유혹이 더크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항아리를 여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냥 여자 자체가 문제인가? 판도라는 첫 번째 여성이다. 남성들의 희생양이 됐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판도라는 변화의 주체며, 제우스의 의지로 실현한 화신이다. 그녀는 순전히 악마가 아니다. 그녀의 놀라운 평판이 여러분을 믿게 할 것이다. 판도라는 이중적이다. kalon kakon, 아름답고 추악하며, 선이자 재앙(악)이다. 판도라가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복잡한 특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에 있는 모든 여성에게 해당한다. 어떤 이들은 악당으로 그려지고(클리타임네스트, 메데이아), 어떤 이들은 희생자로 그려지고(에우리디케, 페넬로페), 또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괴무처럼 그려진다(메두사). (중략) 우리는 더 이상 영웅과 악당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믿는다면 진심으로 상황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앗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질문이 생길 때 - 왜 우리는 여성을 중심에 놓는 그리스 신화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 그것은 항상 이상한 가정으로 가득 차 있다. 기본적인 믿음이 여성은 이야기의 주변에 있고, 항상 그래왔다는 것이다. 신화는 언제나 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여성은 작은 역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장소에서 여러 저자에 의해 쓰인 신화에 ‘진짜’ 혹은 ‘진정한’ 버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굳어진 믿음 역시 포함된다.(p.357)

 

저자 : 나탈리 헤인즈(NATALIE HAYNES)

작가이자 방송인인 나탈리 헤인즈는 BBC 라디오 4 프로그램 〈나탈리 헤인즈 스탠드 업 포 더 클래식NATALIE HAYNES STANDS UP FOR THE CLASSICS〉의 시리즈 두 편을 직접 쓰고 진행했다. 2015년 고전을 더 많은 청중에게 전해준 공로로 고전학회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이오카스테의 아이들THE CHILDREN OF JOCASTA》, 올해의 스코틀랜드 범죄 도서 후보에 오른 《앰버 퓨리THE AMBER FURY》, 그리고 2020년 여성상2020 WOMEN'S PRIZE FOR FICTION 최종후보작인 《천 척의 배A THOUSAND SHIPS》가 있다.

 

역자 : 이현숙

호주 매쿼리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으로 인터내셔널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였으며 영어 잡지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루이스 헤이의 치유 수업: 나를 위로해주는 마법의 긍정 확언》, 《조금 멀리서 마음의 안부를 묻다》, 《스토리텔링 불변의 법칙》, 《디즈니 픽사 소울 아트북》, 《세계 문화 여행: 러시아》, 《노엘의 다이어리》, 《스타를 찾아서》, 《신데렐라 프로젝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