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 - 5천 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부와 성공을 얻었나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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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이다. 가장 많이 읽힌 책도 성경이다. 가장 많이 연구된 책도 성경이다.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읽힌 책은 『탈무드』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공 원인을 꼽을 땐 탈무드라고 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000년 이상 나라 없이 떠돌다가 1948년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 등 승전국들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나라를 다시 옛 땅에 세우도록 허락했다. 이들은 2,000년 전 나라 잃고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이때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나라를 건국했다.

이미 2차 세계대전 때 인구의 절반이 넘은 600만 명이 희생된 뒤였다. 재이스라엘 건국 당시 인구는 300만 명 정도였다. 지금은 9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통계 결과가 나와 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건국, 멸망, 재건국의 2,000년이 불가사의한 일을 해낸 유일무이한 나라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건국 당시 2,000년 동안 살아왔던 팔레스타인이 갑자기 살던 땅에서 쫒겨나게 돼 두 나라간 전쟁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도 두 나라 모두 70년이 넘도록 대치하고 산다. 아직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비극의 땅 팔레스타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그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곳은 신이 점지한 땅이다. 그러나 남은 것은 인간의 싸움이다.

 


 

2,000년간 세계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온갖 핍박과 박해를 받아온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아 세계적 변화를 주도해왔다. 오늘날 유대인 인구는 세계 인구 전체의 0.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정치, 경제, 문화 리더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22%가 유대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처럼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놀라운 성공을 보여준 유대인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탈무드를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탈무드는 약 1,500년 전에 집대성된 오래된 책이지만 오늘날에도 영감을 주는 투자법과 학습법, 네트워크를 만드는 법 등 매우 구체적인 지침이 놀라우리만치 가득하다.

이 처럼 『탈무드』는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온 책이다. 경전이자 잠언집이요, 하나의 문학이기도 하다. 삶의 지혜는 물론이고 처세술 관련 교훈이나 일화들이 있는가 하면 어린이들도 재미있어 할 우화나 동화 같은 이야기도 많다. 이러한 『탈무드』의 내용은 기원전 500년부터 서기 500년에 걸쳐 약 1000년 동안 구전되어 오던 것을 2000여 명의 학자들이 10년 동안 편찬한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탈무드』에는 유대인들의 정신적 · 문화적 자산이 들어 있다. 그 분량도 방대해 총 20권에 1만2000페이지인데 250만 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졌고, 무게가 75킬로그램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탈무드와 관련된 책이 꽤 많다. 한때는 '탈무드 열풍'이라 할 만큼 많은 책이 각각의 모습으로 출판돼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열풍은 가셨지만 아직도 어느 서점에 가나 탈무드가 몇 권씩 꼽혀 있는 곳이 많다. 베스트셀러 자리는 물려줬지만 꾸준히 팔린다는 얘기다. 무엇이 탈무드 열풍을 불러왔고, 무엇이 탈무드를 공부하게 하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기는 화상과 유대상의 상술이 세계 으뜸이어서 그들이 돈을 잘 번다고 들었다. 화상(華商)은 중국 상인을 말하는 것이고 유대상(Judea商)을 지칭한다. 그들의 상술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상술이 있다고 들은 바 있다. 신뢰와 재투자가 이들의 상술에 가미된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그들처럼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들에게만 신뢰와 재투자의 법칙이 통하는가? 왜 다른 나라 상인들은 배워도 원하는 만큼 부자가 되지 못할까? 단순히 운이 좋아서거나 팔자가 정해져 있는 것일까?

물론 이 말은 전해지는 말로, 그들의 상술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탁월한 기업 경영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들에게 그런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들이 그만큼 상술이 뛰어나 돈을 잘 번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야기일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비롯해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 투자가 조지 소로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인사 중 다수가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어떻게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바로 『탈무드』에 있다고 이 책 『유대인 탈무드 명언』의 저자 김태현은 말한다. 탈무드란 ‘위대한 연구’라는 뜻으로 5,000년간에 걸쳐 유대인을 지탱해 온 생활 규범이다. 이 책에서는 제목 앞에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란 말로 탈무드를 수식하고 있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의 위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등 유대인의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이 모두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가 전하는 이와 같은 통찰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도 부와 성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유대인의 지혜를 담고 있는 탈무드와 전 세계 상위 1% 유대인 위인들의 명언 중 770개를 엄선했다. 유대인 탈무드의 가르침은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통찰을 선물함과 동시에, “5천 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부와 성공을 얻었는지” 우리에게 답을 줄 것이다. 저자는 책의 앞 부분 '들어가며'에서 「세상의 지혜를 가장 현명하게 배우다」란 제목으로 이 책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편견과는 다른 유대인의 정신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탈무드』에는 인생의 순리를 따르면서도 가난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배움과 교육을 중시하는 그들의 인생철학이 잘 담겨 있다. 특히 공동체 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민족의 생존을 위해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돕는 자선과 구제를 당연한 의무이자 자신이 복을 받는 비결로 받아들였다. 오랜 이산(離散)의 역사를 거치며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정신세계 덕분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유명 인사 중에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할리우드를 만들어 미국의 영화산업을 주도하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일간지를 만든 것도 이들이다.

어려서부터 『탈무드』를 통해 자부심과 정체성을 교육받은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힘이다. 이 책은 탈무드의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를 전한다. 이 책의 가르침을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한다면, 성공은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을 거듭하며 또 다른 『탈무드』를 써내려 갈지도 모른다. 인생은 계속해서 새롭게 쓰이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주는 대신 질투하고 시기함을 이르는 말이다.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항상 남과 비교하여 우위에 있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남이 잘되면 상대적으로 내가 내려가고 안 되어 보이니 기분이 좋지 않고 남의 일이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내 사람’이다. ‘내 사람’을 만들려면 어떻게 관계를 이끌어야 할까? 탈무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내 사람’으로 만드는 관계

물이란 본디 산 정상에 머물지 않고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법이다. 이처럼 진정한 미덕은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머물지 않으며 겸손하고 낮아지려는 사람에게만 머무는 법이다.(Water does not usually stay on top of a mountain, but flows along a valley. Such true virtue does not dwell on those who are about to rise.)

 

시기, 질투의 덧없음에 대하여

애써 높은 자리를 잡으려 애쓰지 말고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 남으로부터 ‘내려가시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올라가시오’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낫다.(Don’t try to get a high seat and do your best at your work in a low position. It is better to hear ‘go up’ than ‘go down’ from others.)

 


 

이 책은 "마음에 와닿는 명언을 필기하고 SNS에 올려보세요."라고 적혀 있다. 읽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실천하고 토론의 대상을 찾아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어쩌면 유대인처럼 읽고 내용에 대해 토론해 확실히 숙지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는 의미일 것이다. 뒷 부분에는 유대인 출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한 말들도 덧붙여 놓았다. 탈무드에 적혀 있는 말과 실제 성공한 유대인의 말의 차이를 비교하거나 다른 점은 없는지 확인 가능하도록 배려한 저자의 의도가 돋보인다.

 

저자 : 김태현

 

인문학자, 지식큐레이터로 세상에 존재하는 현명한 지식과 그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사유하고 탐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수만 권 이상의 독서를 통해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키워왔고, 여러 분야의 지식 관련 빅데이터를 모으고 큐레이션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 큐레이션을 바탕으로 삶과 인생 관점의 변화를 통한 삶의 지식과 지혜를 추려내어, 사람들의 삶에 좀 더 긍정적이고 통찰력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 대기업 근무, 사업가, 작가, 대중강연, 대학출강, 탐험가, 명상가 등 다양한 인생경험을 하였으며, 대학 및 대학원에서 역사와 철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저서로 『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 『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타인의 속마음, 심리학자들의 명언 700』, 『지적교양 지적대화』, 『걸작 문학작품 속 명언 600』,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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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 사랑, 그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법
이상란 지음 / 치읓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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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도 아니었다. 삶이 사랑과 멀어진 이유는 존재 자체가 사랑임을 부정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이끄는 삶이 빛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며, 사랑하지 못해 괴로웠던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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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란 2022-06-1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이상란입니다.
독서량이 대단하시네요. 서평을 보다가 마음이 이리로 향햤습니다. 저자보다 더 깊이 고민해 주신 흔적이 보여서요. 그리고 제 마음과 가장 맞 닿는 이야기를 서술해 주셔서 감사인사 전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오래된 소망 하나 풀어보고자 겁 없이 내질렀는데... 하지만 느끼는 그대로의 진솔한 마음을 담은 책입니다. 이제야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게 된 초보작가입니다. 진지하게 읽어주신 마음에 발길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는 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 사랑, 그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법
이상란 지음 / 치읓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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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신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에세이가 분명하지만 철학서 같다. 은유가 많고 축약이 많아 한 번에 읽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저자 이상란도 독자로서는 '철학' 이상으로 어렵다. 사전에 저자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그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서평단 책 소개글을 되풀이해 읽어본다. 역시 짧은 저자 소개는 '신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말 이외에는 건질 것이 없다. 마치 그 자신이 신(神)인듯 모호한 명제 같은 말만 몇 마디 적혀 있을 뿐이다. 저자의 정체를 파악하기 가장 좋은 '들어가는 말'부터 읽어본다. 「사랑이 사랑에」란 큼지막한 활자의 제목이다. 역시 시(詩)의 제목 같다. 본문을 읽어도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부제에 다시 집중해 본다. 「사랑, 그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다. 사랑에 접근하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방법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그 방법이 이 책 안에 들어있다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하나의 명제를 내놓고 독자를 집중시킨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기에 사람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람이다.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인생의 본질을 하나씩 깨닫게 된다." 뭔가 건너뛴 것 같은 느낌의 답을 책 소개글은 담고 있다. "저자는 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삶의 저편에서 불어오는 저항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다음의 말과 맥이 잘 통한다. "그녀에게 신은 사랑이며, 삶이며, 지혜였다. 그녀는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고유성에 존재하는 깊은 사랑의 뿌리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필요적 요소이며, 대상이며, 선택임을 그녀 안에 있는 신의 시선을 통해 말하고 있다."는 풀이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사랑이 사랑에」란 '들어가는 말'로 되돌아간다. 무뚝뚝하고 부드럽지는 못했지만, 생계를 걱정하는 동아리 후배들을 위해 몇 달씩 아르바이트하며 쌀이랑 라면을 사주기도 했다는 저자는 그때 심장이 따듯한 아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10년을 모셔온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옮기면서 저자의 마음에 있던 '사랑'이 점점 사라져 갔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사랑을 잃고 가난한 영혼이 되었다. 이제는 선도 아니고 빛도 아니다. 사랑도 아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희생자임을 자처하고 타인들을 이기적인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가르친다. 정의와 용기 있는 삶을 살라고.

나는 지금 어른이다. 그것을 할 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던 순수 시대의 정신은 어디에 팔아 버렸을까?" 어린 시절이나 대학 시절, 그 이후까지 얼마간은 사랑이 가득 찬 마음의 소유자였으나 살아오면서 세상에 휩쓸리다 보니 사랑은 온데간데 없고 삭막한 세상을 굳건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바뀌는 댓가로 어른이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들리는 부분이다. 그럴 것이란 이해가 시작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야 저자는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스스로가 빛이고 사랑이고 정의였음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삶이 자신 안에 찌그러져 숨어 있는 사랑을 찾아 밖으로 해맸다고. 가난한 영혼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힘겹게 애쓸 필요가 없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의 삶이 사랑이고 선이다. 그리고 빛이다. 외부의 시선과 타인의 반응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내 크기만큼 사랑하면 된다. 내 밝기만큼 빛을 내면 된다. 그저 내 안의 사랑을 키우고 내 안의 빛을 밝히는 일에 마음을 쓸 일이다. 최초의 순수로 돌아갈 일이다. 사랑이 사랑에 고백한다. 지난 삶들이 주인을 잃은 부끄러운 변명들었다고. 신 앞에 '나'를 드러냄으로써 사랑이 되려고 한다."고 깨닫고 각오를 다진다. 저자는 운명은 '내가 원하는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선택 뒤에 숨겨진 알 수 없는 힘의 실체를 모른다고 설명한다.

1장 「'나' : 직설적, 그 아래의 순수함」에서다. 저자는 늘 알 수 없는 결핍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안 어딘가에 어두운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으면서 삶의 흔적들을 집어삼키고 공허의 자리로 만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삶의 쉼표 사이마다 자신을 언제나 똑같은 공험함에 휩싸이게 했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하고 지내오다 쉰여섯의 나이가 되어 모든 것들이 운명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p.14) 이제 저자는 삶을 이끌어온 원인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결과들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한다. 삶을 구속하고 있는 필연의 이유를 직시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을 때 그것을 넘어서는 자유를 얻게 되고, 인생을 연결하는 매듭의 고리를 찾아내고 풀어가는 일이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저자가 언급한 ‘사랑, 그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법’에 대한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듯하다. 사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사랑은 사랑 그대로의 절대가치를 가진다.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고유하고 탁월한 존재는 없다. 그리고 그 탁월함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그 사랑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그녀의 일상을 바라보는 탁월한 시선과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은, 사랑 앞에 헤매는 우리 인간의 매 순간 망설이는 선택을 보다 가능케 할 것임이 분명하다는 말도 어렵지 않게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 : 직설적, 그 아래의 순수함」, 2장 「‘천국’ : 초원 위에서 신을 만나다」, 3장 「‘교감’ : 낯선 감정, 낯익은 느낌」, 4장 「'신과 개와 고양이' :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5장 「‘가족’ : 신이 내린 가장 어려운 과제」, 6장 「‘길’ : 신의 그림자」, 7장 「‘본성’ : 악의 시대, 사랑을 말하다」, 8장 「‘받아들임’ :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으로 나누어 나, 사랑, 천국, 교감, 주위, 가족, 길, 본성에 대해 탐구한다.

이렇게 구성된 저자의 여정은 신을 사랑함은 앎의 연속이며, 지혜의 쌓여감임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삶을, 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이 삶의 모순과 부정과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을 넘어 온전한 수용으로 향해가는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지만 마침내 도달할, 필연적 결과로 나타난다. 매 순간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삶의 흐름 앞에, 저항이 아닌 사랑을 선택한 것이 필연적 결과를 가져오는 '신의 한 수'로 결론 짓는 독자의 무례함을 용서해주길 빈다. 사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받아들인 저자만의 필로소피아가 가득 담긴 이 책이 더욱 깊고 진한 향기로 다가오는 이유다.

 


 

독자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실체를 정의하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사랑'하며 살아왔다.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사랑이 뭔지 모르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알고, 그렇게 듣고, 감사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내민 "우리는 사랑할 수 있기에 사람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람이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쩔쩔맸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살아도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사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또 다른 명제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인생의 본질을 하나씩 깨닫게 된다."는 명제에 부딪치며 적잖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랑'에 대해 실천하고 사유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에 대해 사색을 거듭한 후 깨달아 알게 되고 글로써 이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있다. 독자는 거듭 생각하고 이 글을 두 번, 세 번 읽으며 그 뜻을 어슴푸레 이해하기 시작하고 '사랑'의 본질을 이제야 깨닫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조금씩 조금씩 사랑의 실체를 깨달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독자도 저자가 "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삶의 저편에서 불어오는 저항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는 말도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저자에게 신은 사랑이며, 삶이며, 앎이며, 지혜였다.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고유성에 존재하는 깊은 사랑의 뿌리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필요적 요소이며, 대상이며, 선택임을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의 시선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사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사랑은 사랑 그대로의 절대가치를 가진다.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고유하고 탁월한 존재는 없다. 그리고 그 탁월함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그 사랑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저자의 일상을 바라보는 탁월한 시선과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은, 사랑 앞에 헤매는 우리 인간의 매 순간 망설이는 선택을 보다 가능케 할 것임이 분명하다고 독자는 믿는다. 이 책에서 저자의 시선은 날카롭고 분석은 치밀하지만, 문장은 따뜻하다. 저자는 자연 속에서, 여행 중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흔히 넘어갈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신을 발견하고 이 책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의 아이러니가 그럴 수 있는 일임을 알게 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이 사실은 본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시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게 된다. 인간이 늙는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임을 당연히 알게 된다.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도 내 삶을, 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은 단숨에 읽을 정도의 가벼운 책이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저가의 깊은 사유와 힘든 여정의 시간과 걸어 온 길이 어우러져 있기에 삶의 무게가 함께 담겨 있다. 그렇기에 맑고 아름다운 '사랑'을 떠받치고 있는 실체의 속성을 하나씩 깨달을 때마다 환한 빛의 발견이자 지혜의 터득이 된다. 독자는 저자가 걸어온 별빛이 쏟아지는 몽골 초원의 밤하늘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를 생각했다. 또 색을 갈아입는 가을의 거리에서 무엇을 보았을까를 사유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무수한 질문을 만난다. 질문들의 답을 찾으며 저자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이것이 이 책을 읽는 묘미와 지혜이다. 독자들에게 차분한 마음으로 감정과 이성을 모두 쏟아 이 책을 읽어볼 것을 독자는 감히 권한다. 분명히 저자의 사랑에 대한 사유의 깊이나 지혜의 깊음에는 못 미칠지라도 최소한 가는 길에 대한 영감은 얻을 것으로 독자는 믿기 때문이다.

 

신은 저기에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와 내 옆에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동시에 같은 에너지로 존재하며 작동하고 있는 실재이다.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을 만날 수 있고, 신을 숭배해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신의 일부, 신이 발현되는 현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고,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있다. 우리는 신의 세상에 신의 일부로 사는 것이다. 신은 전체이고 조화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작동하는 운동이다.(p.225)

 

저자 : 이상란

 

쉽게 정의하기 힘든 그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필로소피아(philosophia)다. ‘사랑하다’라는 뜻의 필로(philo), ‘지혜’라는 뜻의 소피아(sophia), 그녀에게 신은 앎이자 지혜였다. 적지 않은 인생의 난관 속에서 고난과 고통의 구분 없는 기로 앞에 서게 하는 신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을 사랑함은 앎의 연속이며, 지혜의 쌓여감임을 깨달은 그녀는, 그녀의 삶을, 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이 삶의 모순과 부정과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을 넘어 온전한 수용으로 향해가는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삶의 흐름 앞에, 저항이 아닌 사랑을 선택했다. 사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받아들인 그녀만의 필로소피아가 가득 담긴 이 책이 더욱 깊고 진한 향기로 다가오는 이유다. E-MAIL : lsr7018@naver.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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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 heresy)은 사전에 '어떤 종교집단의 내부에서 정통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장에 대하여 정통자측에서 부르는 배타적 호칭'으로 풀이돼 있다. 또 국어사전에도 ①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 ②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 ③ 전통이나 권위, 세속적인 상식에 반항하여 자기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여 고립되어 있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 서평에 '이단'이란 단어 풀이를 해두는 이유는 이 책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의 부제가 「프란시스코 고야부터 나오미 클라인까지, 세상과 맞서 싸운 이단아들」이라고 붙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 박홍규도 「머리말」을 통해 "이단아가 무엇이고, 57명을 이단아로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글을 쓰는 동안 그 점을 특별히 의식한 적이 없었고 책을 내면서도 설명할 생각이 없다.

대체로 시대와 세상 또는 나라의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대세에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간 사람들을 이단아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아웃사이더, 소수자, 반항인, 저항인, 예외자 등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잠시 의미를 두고 있다. 사전적 풀이 이외에 특별한 의미를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의 뇌리 속을 스치는 한 인물은 일제강점기 '박열'이 잠시 떠올랐을 뿐이다. '이단아'라고 사전 풀이나 이 책의 저자가 한 말의 뉘앙스에 적합한 인물을 우리나라 사람에서 쉽게 찾지 못한 것은 어쩌면 독자의 지식이 부족해서일 터다. 다만 어쩌면 우리의 역사 교육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약간은 씁쓸한 느낌도 있다.

 


 

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 '이단', '이단아'는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또는 그 사람’을 말한다. 저자는 이들을 아웃사이더, 소수자, 반항인, 저항인, 예외자 등으로 부를 수 있고, 아방가르드(전위), 선구자, 선각자, 예지자, 예언자, 지성인, 사상가 등으로도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주류와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의사들의 기득권과 싸운 의사인 마이클 샤디드는 의대 입학을 제한함으로써 의사협회가 의사의 공급을 줄이고 의사의 수입을 올리는 독점 관계를 형성한다고 보고, 의사들의 의료 행위를 약탈적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의사협회에 반기를 들고 의사들의 ‘의료 이기주의’를 비판했던 것이다. 결국 의사협회는 그의 의사 면허증을 박탈하고 의사협회에서 퇴출시켰다.

또 누구보다 사회적이면서도 반사회적인 반항아였던 헤르만 헤세는 자기 존재를 통해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삶의 불멸성을 보여주었다. 즉, 그는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며, 개성은 개인이 찾는 것이지 누구도 그 개성을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누구도 누구의 모델이 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모범으로 살지 말라고 경고했다. 저자는 이 책을 2부로 나누어 구성했다. 제 1부 「사상과 행동의 이단아들」, 제 2부 「문학과 예술의 이단아들」로 분류했다. 했던 일에 따른 분류라고 생각된다. 독자들에 따라서는 이 분류를 마음에 내키지 않은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저자가 판단하는 관점도 분명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로 다른 점이 문제될 일을 없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루이즈 미셸부터 나오미 클라인까지, 사상과 행동의 이단아들과 프란시스코 고야부터 히치카스까지, 문학과 예술의 이단아들을 다룬다. 이들은 모두 시대와 세상 또는 나라의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즉 대세에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와 기득권과 싸우고,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반전운동을 벌이고, 여성해방을 부르짖고, 평화주의를 외치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환경운동의 선봉을 섰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평생을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았다.

루이즈 미셸은 몽마르트르 여성위원회의 수장으로서 혁명정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바리케이드를 쌓고 무장투쟁에 가담했다. 그는 남자들에게 조롱을 당했지만, “남녀가 모든 인간성의 권리를 획득한 뒤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한몫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후 정부군이 파리를 탈환하자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되었다. 1880년 파리코뮌 참가자에게 사면이 내려져 미셸은 파리로 돌아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를 공격하는 혁명 활동과 함께 사형제·동물실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남녀만이 아니라 식민지인이나 비서양인은 물론 동식물까지도 자유롭고 평등하기를 바란 미셸은 성매매나 결혼은 똑같은 거래관계라고 비판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 제인 애덤스와 장 지오노는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가담하지 않은 자유인이었고, 이시도르 파인스타인 스톤은 권력과 거리를 둔 영원한 아웃사이더였다. 토리 모리슨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저항했다.

 


 

한국인으로서 현계옥은 만주 벌판에서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해 싸웠다. 영화 〈밀정〉(2016)에서 한계옥을 모델로 했다는 배우 한지민(연계순)은 한계옥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실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계옥은 얼굴과 몸집이 크고 늠름한 모습의 대장부 풍모다. 그녀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로 전한다. 좁은 기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기보다 광야에서 말달리는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린다. 영화 〈암살〉(2015)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남자현(안옥윤)도 마찬가지다. 가냘픈 서구식 미녀가 아니라 강인한 생활력을 갖춘 우리 이웃 같은 억센 여장부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는 실제의 역사와도 많이 달라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단다.

책에 따르면 현계옥은 1896년 경남 밀양에서 관기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당시 천민이었던 악공 아버지는 딸을 어머니처럼 관기로 키우려고 가르쳤다. 그러나 1908년 관기 제도가 폐지되자, 현계옥은 달성군으로 이주해 노래와 춤을 파는 동기(童妓)가 된다. 기생집에서 일하던 중 그는 노동야학 보조교사인 현정건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현정건은 『동아일보』 사회부장 때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웠던 소설가 현진건의 셋째 형이다. 배제학당을 졸업한 현정건은 상하이에서 무역을 했으며, 1919년부터 독립운동에 관여했다. 또 1920년에는 상하이 고려공산당 등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했던 탓인지 그는 오랫동안 독립운동사에서도 잊힌 인물이었다.

 


 

현계옥은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 김원봉에게 폭탄투척법과 권총 사격법을 배운다. 최초의 여성 단원이었던 그는 헝가리인 폭탄 전문가 마자르를 도와 폭탄 제조와 운반 작업을 수행하기도 햇으나, 1923년쯤 의열단 일은 끝났다. 당시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이 주도한 조직인 청년동맹회가 의열단의 암살 활동을 테러리즘으로 매도해 청년동맹회의 중요 멤버인 현정건과 대립했기 때문이다. 의열단을 떠난 현계옥은 청년동맹회에 참여해 현정건과 함께 1926년에 잡지 『여자해방』 발간을 담당했다.

『여자해방』은 3호 정도의 발간으로 그쳤으나, 여성해방과 민족해방,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이라는 삼위일체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한 점에서 당시 국내에서 시작된 정칠성 등의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연결되었다. 또한 그것은 나혜석이나 김명순 등의 연애 중심의 여성해방론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학계에서 나혜석을 아나코 페미니즘(무정부 여성주의)의 원조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적어도 엠마 골드만에게서 보는 아나코 페니니즘을 나혜석의 그것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중략) 1932년 현정건이 출옥하고 6개월 만에 병으로 죽자 운덕경(현정건의 본처)도 한달 뒤에 음독자살한다. 그리고 현계옥은 몽골 평야에서 야생마처럼 사라진다. 1924년에 세워진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몽골인민공화국에 가서독립운동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그곳에서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와 함께 소피아 코발렙스카야는 가부장 세계에 저항해 치열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산화한 이단아였다. 특히 남성 과학자들이 주류인 과학계에서는 그가 여성이라는 점 자체가 이단이었다. 소피야는 ‘편미분 방정식’, ‘토성의 고리 역학’, ‘타원 적분’에 관한 논문 3편을 발표하고 유럽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수학 강사가 되지 못했고, 무료 강의 제안도 거부되었다. 조국 러시아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점과 정치적 견해 때문에 거부당했다. 결국 스웨덴의 스톡홀름대학에서 사강사로 지내고, 5년제 계약교수가 되고, 당시 과학계의 최고상인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보르댕 상을 받았다. 래퍼인 슬릭의 노래처럼 소피아는 “나는 불꽃이다. 붉게 타올라 그 빛으로 앞을 밝힌다”에 맞는 인물이다.

루시 파슨스는 언론과 저술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가정부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주부의 역할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05년 유진 데브스·마더 존스와 함께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을 설립해 산업민주주의를 추구했다. 당시 시카고 경찰은 그를 “폭도 1,000명보다 더 위험한” 사람으로 불렀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 창립총회의 유일한 여성 연설자인 루시는 여성을 ‘노예의 노예’라고 하면서 자신의 독립성과 인간성에 따라 개성을 주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 정부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비롯해 모든 계급차별에 맞서 싸운 루시를 지속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노동자들에 의한 공장의 자주관리와 이를 통해 사회를 자유연합으로 만들어갈 것을 주장한 생디칼리슴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밖에 레오폴트 코어는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롭고, 더 창조적이고, 더 번영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사회적 불행은 거대함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작은 나라들로 다시 해체된다면, 작은 규모의 정치 단위가 평화와 안보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작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국가의 구성으로 돌아가 권력 집단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질병은 추악함, 가난, 범죄, 방치가 아니라 현대국가와 도시 거대주의의 비견할 수 없는 차원에서 오는 추악함, 빈곤, 범죄, 방임이라고 했다. 너무 크면 아름답지도, 올바르지도, 참되지도 않다고 했던 그는 녹색사상, 생태지역주의, 제4세계, 분권주의, 아나키즘 운동 등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로런스 베이커는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었다. 그는 한센병 전문의사와 결혼하고 히말라야의 외딴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산속 골짜기의 황무지 언덕 비탈에 집과 병원을 짓고 16년 동안 그들을 돌보며 살았다. 그는 집을 지을 때 현대 기술을 신중하게 채택함으로써 지역 건축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고,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한 지역 재료의 사용은 건축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었다. 건축물을 건설하고 벽돌 등 건축자재를 제조하는 일에 지역의 노동력을 사용함으로써 지역 경제도 되살렸다. 또한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고 디자인을 검소하게 만드는 생태건축을 지향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로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저자 : 박홍규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영국 노팅엄대학 법대·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학·고베대학·리쓰메이칸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그동안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미국을 까발린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비주류의 이의신청』(2021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내 친구 존 스튜어트 밀』,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저항하는 지성, 고야』, 『놈 촘스키』,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공저,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존 스튜어트 밀』, 『아돌프 히틀러』,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불편한 인권』(2018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내 친구 톨스토이』, 『함석헌과 간디』(201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마키아벨리, 시민정치의 오래된 미래』,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독서독인』(2015년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마르틴 부버』, 『이반 일리히』, 『예술, 법을 만나다』, 『플라톤 다시 보기』,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윌리엄 모리스 평전』, 『내 친구 빈센트』,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자유인 루쉰』 등을 집필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모리스 예술론』, 『간디 자서전』, 『예술은 무엇인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유한계급론』, 『산업민주주의』, 『간디가 말하는 자치의 정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유토피아』, 『인간의 전환』, 『유토피아 이야기』, 『이반 일리히의 유언』, 『학교 없는 사회』, 『자유론』, 『오리엔탈리즘』, 『사상의 자유의 역사』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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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그리스 신화는 독자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시기를 막론하고 '필독서'였다. 마치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세계문학전집'을 사다주어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1, 2권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것부터 먼저 읽어라는 식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자세히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내용도 알고 있는 게 많다. 독자도 그렇다.

다만 정식으로 완역본을 읽거나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이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내용을 알기도 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골격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 책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는 그리스신화의 하나인 트로이아(영어 발음으로 배워서 '트로이') 전쟁 때의 이야기다. 트로이아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고 트로이아 패전국의 일부 세력이 도망쳐 로마 건국의 시조가 되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아무튼 그때의 패전은 곧 노예가 된다는 의미였다. 이 책도 트로이아 전쟁의 패전국 왕비 브리세이스가 등장한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전쟁 물자를 조달하고자 또 하나의 도시국가를 함락시키고 브리세이스 왕비를 자기 노예로 삼는다. 브리세이스로서는 승전국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호메로스가 쓴 『일리어스』에서는 영웅으로 묘사된다)을 '용서할 수 없는 원수', '무자비한 도살자', '어두운 영혼을 가진 가여운 자'인 아킬레우스의 운명에 말려들게 된다.

 


 

사실 독자는 그리스 신화를 읽게 되면서 많은 의문점을 가졌었다. 왜 신을 인격화해서 굉장한 폭군으로 등장시켰을까?와 왜 이런 이야기를 널리 알리려고 문자로 적어 정리했을까?였다.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자세히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이 궁금증을 오래 갖고 있었다. 지금도 실제 이유는 정확히 모르고 있음을 고백한다. 다만 이것 저것 조금씩 읽어본 기억과 독자 나름의 판단으로는 나라와 지배계층이 의도적으로 기획해서 문자로 정리하고 책으로 남겼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문자가 없었을 당시에는 구전(口傳)됐겠지만 문자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책으로 남긴 이유가 왕과 지배층의 명분을 확립하고 다른 나라에게도 확실한 명분을 내세우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트로이아 전쟁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 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 아테나가 서로 다투다가 트로이아 왕자 파레스가 심판을 내려 아프로디테가 주인이 되었다. 그 대가로 파레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아 원정길에 나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승전국 그리스로서는 당연히 전쟁의 명분과 승전의 향연을 즐길 명분이 생기게 되는 일이다. 그리스 신화는 결국 왕과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다스릴 명분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도 트로이아 전쟁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 작품이다. 트로이아의 왕자 파레스가 그리스 스파르타에서 헬레네 왕비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무단으로 데리고 온 후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고 나온다. 트로이아 성 앞에서 아홉 해 동안 진을 치고 있던 그리스군의 병영에는, 트로이아의 도시국가 리르네소스의 왕비였지만 이제는 아킬레우스의 노예로 전락한 주인공 브리세이스가 있다. 그리스가 주변 국가들을 토벌하고 약탈한 뒤 그녀를 전리품으로 취한 것이다. 도시국가들 사이에 그리스 영웅들의 이름은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그녀도 그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브리세이스는 병영에서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오디세우스, 아가멤논, 네스토르, 아이아스와 같은 영웅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숨겨져 있던 범속함과 어두운 측면을 알게 된다. 브리세이스의 시선을 통해 신화적 지위에서 끌어 내려진 그들은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 퇴행행동을 하거나 자존심을 짓밟혀 분노하며,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고도 뉘우치지 않는다. 이렇게 변주된 신화 속 인물들의 입체적 면모는 서사를 수놓는 관계들에 더욱 풍부한 심리적 미스터리를 드리운다. 이 낯선 긴장감은 이미 아킬레우스 신화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서사적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평소 생각하던 그리스 신화의 낯선 모습이 오히려 더 반갑다. 당시의 왕과 전쟁, 남자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한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조명한다. 전장에서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고, 베틀로 천을 짜고, 전사자를 염습하면서 병영의 세간을 떠받치던 수천 명의 여자 노예들이 이제 소설 속에서 제 목소리로, 오랜 침묵을 깨고 말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브리세이스는 그들 중 한 명이자, 역사의 또 다른 증인이다. 이 책이 〈가디언〉으로부터 ‘21세기 최고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따낸 것이 단순히 유명한 신화를 변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인공 브리세이스는 자기와 같은 처지로 병영에 끌려오게 된 여자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자신의 아버지, 남편, 아들을 학살한 자들 옆에서 여성들은 어떤 삶의 양식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역사에서 지워지고 배제되고 만 이름들. 저자 팻 바커는 숨 막히게 세밀한 시대 묘사와 빛나는 문장으로 인물 하나하나를 되살려내는 동시에, 그들을 품고 있던 복잡한 그리스 병영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재현한다.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브리세이스의 증언은 그간 수많은 전쟁 한복판에서 수치를 감수하고 살아남은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오랜 침묵으로부터 되돌려주면서, 오직 명예와 권력만을 향해 나아가는 남성들의 목소리와 대비시킨다. 나아가 주인공은 비록 결코 명예롭다고 할 수 없는 자리로 내몰릴지라도, 시간은 살아가는 일을 버티는 자에게 언젠가는 삶의 찬란함을 되돌려준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며 약자들의 존엄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팻 바커는 독자들에게 익숙한 신화 속 인물들을 미묘하고 복잡한 캐릭터로 재구축하여 뒤틀고, 브리세이스라는 새로운 여성 화자를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서사시를 완성해냈다. 분명히 거기 있었음에도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다른 반쪽의 역사가 여기에 도착했다. 브리세이스는 말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노래가 필요하다”고. 부커상을 수상하고 영미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팻 바커의 이 소설은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빠지는 함정을 절묘하게 피하며 또 하나의 모던클래식을 완성했다는 외신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모두가 안다고 자부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새로운 시각이 눈을 붙들고, 아름답고 역동적인 문장으로 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워싱턴타임스〉가 “모든 게 생생하다. 강력한 서사는 단지 틀에 불과할 뿐, 이 소설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모든 디테일이다.”라고 평했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작품은 무려 26개국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이 소설 뒷 부분에는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의 「해제」가 있어 독자들의 이해와 감상을 돕는다. 독자 역시 이 해제를 통해 이 생경하지만 친숙한 영웅들에 대한 재해석과 그리스 신화에 대해 재조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이 해제에서 김헌 교수는 호메로스의 『일리어스』와 이 작품을 비교하는 부분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호메로스는 『일리어스』에서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역사를 기술하듯 시간 순서에 따라 모든 이야기를 낱낱이 나열하는 대신, 전쟁의 10년째 되는 해 며칠 동안에 초점을 맞춰 "아킬레우스의 진노"에 관해 이야기를 집중시켰고, 탁월한 솜씨로 전쟁의 다채로운 전모를 적절하게 끼워 넣어 전체의 완결성을 높였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호메로스가 영웅 아킬레우스가 추구하는 불멸의 명성과 그로 인해 발생한 진노의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 배경들을 생략해 버렸다. 이야기의 유기적인 흐름을 흐리거나 완결성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사에서 배제되었다고 해서 그것들이 애초에 무가치한 것들은 아니며 사건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그 나름의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는 김현 교수의 주장이다. 이어 김 교수는 팻 바커는 『일리어스』 서사의 가장자리에 머물던 브리세이스를 그 중심으로 끌어오면서 또 다른 사건의 한가운데로, 즉 "도살자" 아킬레우스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브리세이스의 도시 리르네소스 성벽을 유린하는 장면 속으로 직진한다. 그리고 『일리어스』에 가득한 영웅들 주변부에만 내몰렸던 다른 여인들을 함께 불러들여,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전쟁의 참상과 인권유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리고 묻는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짐승보다도 더 야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앟는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가? 그 어떤 순간에도 인간이 지켜야 하고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는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즉 『일리어스』를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의 시점으로 시선을 가져갈 경우 정말 다른 신화가 되고 소설이 됨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참신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리어스』는 지배자와 승전의 시점으로 기술한 반면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는 패전과 전쟁터 뒤편에 숨겨져 있던 여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지적한다. 전쟁의 패배로 순식간에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전리품이나 노예로 전락해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했던 여인들, 브리세이스와 이피스, 크리세이스와 우자, 테크메사, 헤카메데, 릿사의 감정과 말과 행동, 그리고 침묵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서사라는 동전의 뒷면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독자는 김 교수의 평가에 크게 공감한다. 이 소설의 가치는 이 같은 시선으로 더욱 높아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처음에는 아킬레우스가 나를 그곳에 두는 이유를 몰랐지만, 그가 하루에 남자들 예순 명을 죽인 보상으로 나를 받았다는 기억이 났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나를 손님들 앞에 내놓고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트로피를 벽장 구석에 숨겨두는 사람은 없으니까."(p.55)

"아킬레우스가 도시를 불태우고 가져온 약탈품이 사방 가득한 곳간에서, 그 말이 내 주위를 감돌았다.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피할 수 없었던 걸 했지. 남편과 오라비를 죽인 자에게 다리를 벌렸으니.”(p.360)

 

저자 : 팻 바커

 

1943년 5월 8일 영국 쏘너비에서 태어났다. 1982년 《유니언 스트리트》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기억과 트라우마, 생존과 회복을 중심 소재로 15권의 작품을 집필하였다. 1995년 부커상 수상작인 《고스트 로드》로 절정을 이룬 팻 바커의 ‘갱생 3부작’은 그녀를 ‘영국 역사소설의 거장’ 반열에 올려놓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시대적 진실성과 서사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는 팻 바커의 역사소설을 순문학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역자 : 고유라

 

중학생일 때 ‘딜버트’를 만난 이후로 스콧 애덤스의 팬이 되었고 그 인연으로 《열정은 쓰레기다》를 번역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과 프랑스에 체류하며 외국어를 익혔다. 《진짜 여자가 되는 법》, 《책 읽는 소녀》, 《쓸모없는 짓의 행복》, 《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 《승리의 기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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