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 - 남에게는 너그럽고 나에게는 엄격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친절 수업 단단한 마음 1
김도연 지음 / 언더라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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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심리학에 관한 한 문외한이다. 학교에서 배운 바도 없고, 책도 심리학 관련 책은 읽지 않았다. 심리학은 독심술을 위해 하는 공부이며, 자기 계발을 위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자의 심리학에 대한 무지가 낳은 결과이지만 지금은 심리학에 대해 매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코로나 이후 수많은 힐링과 불안, 우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정신분석학이란 의학 관련 서적도 언제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끼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독서를 다시 시작한 독자도 에세이는 물론 심리학, 정신의학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구스타프 칼 융의 전기나 그의 정신분석학 이론 등에 관해 꽤 여러 권을 읽었다. 프로이트의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의 저서보다는 그의 이론을 해석해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 『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은 심리와 마음과 정신의 구별을 잘 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 심리·마음·정신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엄밀히 다른 의미이다.

 

* 마음 - 지(知), 정(情), 의(意)로 대표되는 인간의 정신작용의 총체, 또는 그 중심에 있는 것으로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정신'과 동의어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신이 로고스(이성)를 체현하는 고차적인 심적능력으로 개인을 초월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면, '마음'은 파토스(정념)를 체현하며 보다 많이 개인적ㆍ주관적인 의미를 가진다.

* 정신-인간의 마음이나 생각, 의식.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나 그런 작용. 육체나 물질에 대응하는 의미이다.

* 심리학(心理學, psychology)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를 뜻한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나 정신과정에 대한 다양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 중의 하나가 바로 심리학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내가 상처받는 것보다 다른 이의 마음을 신경을 쓰고, 자신의 작은 실수에는 심하게 자책을 하지만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다. 더 심하게는 내 마음이 고통스러워도 자기연민을 발휘하지 않고, 자기비난을 넘어서 자기혐오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게 굴며,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상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을 ‘자기자비 또는 자기연민’이 필요하다. 2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돌본 임상심리학자는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많은 내담자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매우 가혹했다. 누군가나 어떤 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돌보지 않았다.

임상심리학자인 김도연 저자는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스스로에게 친절을 베풀 때 변화가 일어남을 알려주었다. 그 동안의 연구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책이 심하거나 부정적 감정으로 휩싸인 사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픈 많은 이들에게 남이 아닌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심리 기술을 알려주고자 한다. 이 책은 불완전한 자신을 감싸 안고 나아가는 마음의 습관 45가지의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실제 경험을 비롯하여 자기친절을 수용하고 실천해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보여준다. 또한 책의 꼭지마다 직접할 수 있는 자기친절 워크시트가 있고, Part 4에는 30일, 60일, 90일, 120일의 자기친절 멘토링 리스트를 실었다.

 


 

저자는 프롤로그 「불완전한 나를 보듬고 감싸 안는 법」을 통해 "임상심리학자의 삶에는 수많은 분들의 고통과 괴로움이 함께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마 꺼낼 수 없던 심중의 아픔을 나누는 동안 슬픔과 절망, 분노와 좌절, 외로움과 공허함, 생과 사에 이르는 철저한 현존의 고통이 지나갑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해질 수 있냐는 질문이 가장 많습니다. 심리학에는 삶의 고통을 지혜롭게 다루도록 돕는 좋은 해법들이 참 많습니다."고 전제한 뒤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돕기 위한 잘 갖춰진 방법들은 단순히 문제를 극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통찰과 사랑, 자신을 향한 자애로움과 수용의 관대함을 따뜻하게 안내합니다."라고 심리학과 심리학자, 심리상담가들이 하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저자가 그간의 임상심리 치료의 현장에서 자신을 돌보며 치유의 회복력을 보여주셨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와 경험, 그리고 상처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로서의 삶을 돕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들을 이 책에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인생의 지혜를 심리학이란 학문 안에서 하나하나 풀어내는 동안 여러분들의 삶 속에 있는 행복이 여러분 곁이길 소망한다고 밝힌다. 저자는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고통을 겪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이제는 이 물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을 낸 취지와 목적을 덧붙인다. "상처를 보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나'일 때 삶은 우리를 향해 준비한 선물을 가득 내어준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시간의 흐름에 '나'의 대처 방법을 맡기는 것이다. 1부 「과거에서 배웁니다」, 2부 「현재에 머무는 연습」, 3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로 돼 있다. 이는 진단, 치료, 삶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진단은 의사가 하듯이 심리적 증세는 자기 자신이 주치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같다. 저자는 보조 치료자 역할을 자처한다. 1부의 소제목들을 살펴보아도 저자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나에게 공감해야 하는 이유', '불안을 허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 신뢰를 높이는 변화계획',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다루는 법', '내 안에 잠든 정서 기억 다루기' 등 대부분 저자는 설명하고 독자가 스스로 해 나가야 할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환자 스스로에게 맡기느냐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필요치 않다.

그냥 읽고 이해한 다음 이 책의 뒷 부분에 있는 「120일간의 자기친절 연습」을 천천히 해나가면 된다. 2부는 '판단하는 마음 내려놓기' '현재를 알아차리는 연습', '내 마음의 균형 찾기', '하루 10분 몸의 감각 알아차리기', '"그래"라고 말하기', '한 번에 한 가지씩 몰입하기', '감정을 치유하는 먹기 명상' 등 재미 있게 할 수 있는 것들도 눈에 띈다. 이어 3장은 '비극적 시나리오는 다시 쓰기', '유연한 완벽주의자의 길', '합리화라는 방어기제에서 벗어날 것', '지나친 낙관성이 문제가 될 때', '외로움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변하는 것들',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 '핵심 감정 돌보기', '분노의 덫에 빠지지 않는 법', '기분 좋은 순간 늘리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소제목만 봐도 어떤 흐름의 책인지 알았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심리학자들은 삶이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울수록 ‘자기자비, 자기연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연민은 스스로를 안타까운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불완전한 스스로를 사랑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로 삶을 마주한다면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보다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나에게 친절하라’는 말이 매우 상투적으로 느껴지겠지만, 괴로움의 터널을 지날 때 자기연민 만큼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심리 기술이 없다. 20년차 임상심리학자 저자는 스스로에게 자애를 베풀고, 자신에게 친절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우리는 타인에게는 매우 친절한 반면 스스로에게는 꽤나 엄격하다. 타인의 실수에는 “그럴 수 있죠”라는 말로 위로를 건네지만, 나의 실수는 ‘이런,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라면서 스스로를 봐주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하면 자기 발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비판은 종종 심한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불행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일을 미루거나 미래에 목표 달성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저자는 ‘왜 우리에게 자기자비, 자기친절이 필요한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자기자비는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면서 위안을 얻는데, 타인에게 받는 위로는 한계가 있다. 또한 어떤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타인의 지지가 없으면 진정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은 스스로가 돌봐야 한다. 텍사스대 교육심리학 크리스틴 네프 부교수는 “우리 대부분은 인생에서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좋은 친구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 스스로에게 따뜻하고 힘이 되는 친구가 되는 것이 자기연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자비야말로 무례한 사람들과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해주는 최선의 심리 기술이다.

 


 

저자는 자신이야말로 가장 귀한 배려를 받아야 할 일차 대상이라 강조하며, 자기와의 관계에서 친절하고 사려 깊을 때 마음의 평화도 삶의 균형도 유지된다고 말한다. 인생에는 이런저런 일을 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시간이다. 이 책이 제안하는 자기친절 45가지의 방법으로 스스로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을 몸에 익히고, 혹여 상처를 받았더라도 스스로가 보살피며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길 바란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치유의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책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건강이란,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복지의 상태를 포함하며, 단지 질병이나 병약함의 부재만은 아니다’라고 정의 내렸다. 또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현재에 살되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 『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볼 줄 아는 방법을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지난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부터 스스로를 어떤 틀 안에 가두지 않는 법, 감사한 마음을 되돌리는 법 등 15개의 심리를 과거로부터 배우고, 현재에서는 ‘지금-여기’에 머무는 방법을 배운다. 현재에서는 자기자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마인드풀 명상을 다루고 있으며,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에는 미래 자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단단한 관계를 쌓는 법과 가치 중심의 삶을 사는 법,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는 법 등을 소개한다. 총 45개의 마음 습관은 불완전한 자신을 이해하고, 감싸 안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아동기에 양육자가 감정을 잘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한 수용을 자기 안에서 철회한다면 감정은 늘 삶의 괴로움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에 대한 이해를 잘해야 할 필요가 있고,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감정을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할 자기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애정과 사랑이 있을 때 존재는 존엄해지는 것이니까요.(p.211~212)

 

삶의 즐거움과 고요함은 모두 자기 안에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은 감당하기 어려운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복잡한 마음에서 빠져나와 얼마간이라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차를 즐기며, 또는 산책이나 명상을 하며 마음 회복을 위한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회복 탄력성은 의도적인 돌봄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잠깐이라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고 감정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보세요. ‘의도된 돌봄’은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 되어 정신적 평온함을 줄 것입니다.(p.301~302)

 

저자 : 김도연

 

관계로 인한 우울증부터 번아웃, 정서학대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20년 넘게 돌보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이다. 마인드풀니스 심리상담연구소와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의 대표이자 경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지방경찰청 범죄피해평가 감수위원이다. 개인 상담뿐 아니라 클리닉을 찾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분야 R&D 평가위원, 가톨릭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치료와 연구 및 수련감독자,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장으로 활동했다. 한국형 마음챙김명상 전문가로서 강연, 언론, 방송, 교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스라이팅 관련 시그널 인식,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올바른 연애 등을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어제 울었어도 오늘의 행복은 지킬 거야》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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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 프로 덕질러들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
후지타니 지아키 지음, 이경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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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풍요로운 덕질과 쾌적한 생활을 위해 함께 꾸린 ‘덕질 일가’에서 4인 4색의 프로덕질러들이 좌충우돌 유쾌한 덕후 생활을 즐긴다. 서로 최애를 인정하고 조금만의 배려만 있다면 덕후 생활은 지속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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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 프로 덕질러들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
후지타니 지아키 지음, 이경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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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를 읽기 위해선 '덕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얼마 전부터 부쩍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덕질'이란 파생어도 생겨난 상태이다. 독자도 이 단어가 미디어에서 자주, 거리낌없이 사용되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무척 당황했다. 외래어는 그대로 사용하면 안 되고 불가피할 경우 순화(우리말로 번역)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일본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명·지명 등 고유명사는 현지음 그대로 사용한다. 또 우리말로 쓰이는(대체되는) 마땅한 말이 없을 경우에 한해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특례 사항(국어대사전 편찬 원칙)이 있다고알고 있다.

덕후는 일본어에서 온 단어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르는 말인 '오덕후'의 줄임말로 뜻은 오타쿠와 동일하다. 오타쿠는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본래 '집'이나 '댁(당신의 높임말)'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이 의미가 확장되면서 초기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취미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말이 왜 우리말로 대체되지 않고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을까 사뭇 불만스럽다.

 


 

이 책은 일본의 저자 후지타니 지아키가 썼기 때문에 번역상 다른 말이 없어서 그대로 사용되었거나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단어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덕후란 말은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용어인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뜻이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일본말을 모르는 독자가 보기에는 두 단어의 뜻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이 책은 표제어에서 보이듯이 자신만의 취미나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네 명의 여성이 한집살이를 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덕후 생활'을 쓴 것이다.

이 책은 '덕후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덕질에 감동해 소리 지르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며 엄마한테 등짝 맞았을 때, 수만 원의 티켓값이 차곡차곡 모여 체감 ‘수억’의 카드값으로 돌아왔을 때, 최애로 도배한 나와 달리 친구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하나둘 아이들로 채워질 때…… N년차 덕후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현실 자각’의 시간이 있다. 오래도록 설레고 즐겁고 싶은데, 비어가는 통장에 덜컥 겁이 나고 혼자가 될 미래가 불안하다. 덕후라면 한 번쯤 고민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 이대로 덕후로 살고 죽을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데도 힘들어 보인다.

 


 

저자 후지타니 지아키는 이 책의 서문 「들어가며」에서 "덕후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서브 컬처'에 한 발, 아니 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못박는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신작 제작 소식에 고기를 굽는 사람도 덕후, 소셜 게임에 빠진 사람도 덕후, 3차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도 덕후, 최근에는 록 밴드 팬도 소비 형태에 따라 덕후로 정의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 또한 비주얼계 밴드 팬을 그럭저럭 사반세기 넘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25년 넘게 덕질하며 살아온 한 비혼 1인 가구 세대주인 저자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해 덕후 세 친구와 함께 꾸린 덕질 친화 셰어 하우스 입성기이다. 저자가 셰어 하우스를 꾸리게 된 계기부터 멤버 모집, 우당탕탕 집 구하기, 입주, 좌충우돌 동거 생활까지 ‘덕질 메이트’ 네 여자가 실제로 동거를 결심하고 실행한 경험을 담았다. 서문에서 저자는 덕후 생활을 한 이유도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덕후는 좋아하는 것에 관련된 것은 전부 모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좋아하는 게 많아질수록 물건도 늘어난다. 최애는 끝도 없이 늘기 마련인데, 도쿄 땅덩어리는 한정돼 있고, 집세는 비싸고, 수입은 그리 간단히 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공연 원정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데 덕후 굿즈 창고로 둔갑한 집에 터무니없이 비싼 집세를 내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에는 4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저자는 친절하게 4명의 주인공을 모두 별도 페이지를 마련해 소개한다.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아이돌, 밴드, 배우, 연극, 뮤지컬…… 좋아하는 것도 제각각인 네 여자가 ‘덕후로 살고 덕후로 죽기 위해’ 한집에 뭉쳤다는 것이다. 최애는 알아도 본명은 몰랐던 이들이지만, SNS라는 훌륭한 인성 지표를 통해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거를 결심하고, 오랜 기간 다져온 검색 능력을 이용해 ‘가족이나 (결혼 예정) 연인이 아니라면 셰어 하우스 불가’라는 편견 가득한 조건을 뛰어넘어 덕후 네 명을 위한 이상적인 집을 찾아낸다.

이렇게 시작된 ‘덕후 하우스’에서 네 명의 덕후들은 덕질이라는 일상을 함께 즐기고, 문제 상황에는 덕후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전 지구적 팬데믹이 불러온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 위기를 덕질로 대동단결해 극복한다. 상대의 ‘지뢰’를 절대 밟지 않는 덕후의 예의로 갈등을 피하고, ‘최애’ 하우스에 대한 사랑으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먼저 집안일에 나서는가 하면, 문제가 생기면 ‘드립 대결’로 불안감을 저 멀리 보내버리고, 코로나19로 재택을 하는 동안에는 모두가 좋아하는 덕질 콘텐츠로 온라인 상영회를 열며 전 지구적 재난을 버텨낸다. 서로에 대한 선을 지키면서도 재밌는 건 적극 ‘영업’하며 즐거움은 공유하고 생활을 나눈다. 4인 가족용 주택을 나눠 쓰니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욕조와 넓은 거실이 생긴 것은 덤이다.

 


 

도시에 불 켜진 세 집 가운데 한 집에는 외로운 노후, 불안한 경제적 지위에 대한 걱정을 뒤로 미루고 넷플릭스와 트위터를 여는 한 사람이 서식한다. 서울 사는 3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라는 시대다(‘2020년 서울시 복지실태조사’). 청년층의 경우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지만, 통계는 1인 가구가 겪는 3대 어려움 역시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바로 ‘위급할 때 대처의 어려움, 외로움, 경제적 불안’이다. 이런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공유 주거 형태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모르는 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도 생각하지 않고, 종종 선을 넘는 가족도 나의 훌륭한 동거인이 되어줄 수 없다면, ‘지향’이 같은 이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덕후’들의 동거를 시작했다. 덕질이 생활이고 생활이 덕질인 네 여자는 덕질의 씨실과 날실을 엮으면서 매일의 서사를 함께 써나간다. 덕후들의 동거에서, 서로는 무언가에 푹 빠진 친구의 얼굴을 보며 기쁨을 얻는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아는 이들끼리 때로 덕질의 고난을 위로하고 취향을 공유하면서 더 많은 즐거움을 함께 찾아 나선다. 이 책도 한집에 사는 세 사람의 덕후의 동의를 얻고 집필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4월 1일 저녁, 어느 밴드의 해체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접하게 됐다. 만우절에 이건 아니지. 거실 식탁에 엎드려 있는데 동거인들이 속속 집으로 돌아왔다. …… 가쿠타 : 초밥 사 왔는데요. (쿵!) 호시노 : 나는 맥주를. (쿵!) …… 동거인들은 모두 같은 세대라서, 그 밴드의 인기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 그날 밤은 초밥을 먹으며 각자의 추억을 얘기했다. 그야말로 초상집이다. 그래도 슬픔을 나눌 사람이 집에 있는 건 나쁘지 않네.”(p.119~120)

 


 

저자 후지타니 지아키는 동거 생활을 게임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셰어 하우스 생활은) 게임으로 치면 목숨이 세 개 남은 상태다. 목숨 세 개가 잘못되더라도 게임 오버가 아니라는 사실은 꽤 든든하다.”(p.118) 닥쳐오는 위기에 조금쯤 휘청이더라도 절대 쓰러지지는 않는다. 거실에는 응원봉, 서재에는 만화책, 그리고 옆방에는 나와 함께 생활을 꾸리고 위기를 헤쳐 나갈 덕후가 있기 때문이다. ‘재밌으면 가보자고’를 외치는 덕후 여자 네 명의 왁자지껄 유쾌한 동거 생활을 보고 있자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사라지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기대가 피어오른다. 비혼이라면, 혼자 살고 있고 혼자 될 노후를 고민해본 이라면 평점 좋은 애니메이션 신작처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판타지 소설처럼 즐거운 상상의 실마리를 열어줄 ‘비혼 덕후 동거 장려 에세이’ 『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를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동거인들에게 ‘덕후 셰어 하우스 유지 포인트’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마루야마 : 아무래도 덕후와 함께 살면 느닷없이 발광하거나 물건이 쌓이는 걸 이해해주니 편해요.

가쿠타 : 덕후는 서로의 ‘지뢰’를 밟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게 실생활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 같아요. ……

마루야마 :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역시 어딘가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거나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좋은 것 같아요.(p.188~189)

 


 

“이래저래 각자 온라인 회식을 즐기거나, 뜬금없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소蘇’를 만들며 집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태국 BL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중에서도 걸작으로 유명한 「보이프렌즈」를 SNS에서 강력하게 추천받아, 하우스 멤버나 덕질 메이트들과 우와~ 꺄악~ 소리를 내며(어느새 소리치고 있었다) 온라인 상영회를 한 것도 재밌었다. 우울해지기 쉬운 재택 기간에 열대 나라의 알콩달콩한 로맨틱 코미디는 위안을 주기에 충분했다. …… 덕후 콘텐츠와 SNS, 그리고 하우스 멤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p.173~174)

 

저자 : 후지타니 지아키(藤谷千明)

1981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공업고교를 졸업 후 자위대에 입대했다. 그 후 서점 직원, 편집디자이너 등 여러 직업을 거쳐 프리랜서 작가가 됐다. 취미를 살려 주로 서브컬처 분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공저로 『모든 길은 비주얼계로 통한다(すべての道はV系へ通)』 『물방울 자전 아방가르드 연대기(水玉自? ア?バンギャルドㆍクロニクル)』가 있다.

 

역자 : 이경은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드라마 제작회사에서 일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영화 스태프로 일했다. ‘냥덕후’로,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두 주인님을 모시고 있다. 길고양이가 학대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길 친구들을 돌보고 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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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인문학 - 경계 없는 서재에서 찾는 의사의 길
안태환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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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나는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듯 『의사의 인문학』 또한 ‘나는 어떤 의사로 존재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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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인문학 - 경계 없는 서재에서 찾는 의사의 길
안태환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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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과학자다. 서양의학이 과학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또 치료제나 백신, 신약 개발 등도 모두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고 임상 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하기 때문일 터다. 의학이 과학이냐, 아니냐는 별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의학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성시되기도 한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공부 역시 다른 과목보다 2년이 길다.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오랜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의사는 그만큼 힘든 길을 거쳐야 비로소 탄생한다. 직업으로서도 중요한 직업이다. 대개는 돈도 잘 번다. 월급을 받든 개업의이든 수익이 높다. 의사는 특히 우리 나라에서 굉장히 높은 보수를 받는 직업군으로 분류되지만 대신 의사로서의 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다는 평가도 마땅하리라. 그러나 의사는 피곤하다. 특히 정신적으로 매우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환자를 돌보고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대부분의 직업인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척 바쁘다. 의사 1인당 우리나라 의사가 돌봐야 하는 환자수가 OECD 최고 수준이라 한다. 의사 수가 부족하는 얘기일 터다. 의사가 바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고수익은 격무의 댓가로 환산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 책 『의사의 인문학』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은 과학자인 의사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즉 의술에 인문학적 소양을 겸하게 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러나 의사인 저자가 인문학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다. 자칫 의사가 인문학 강의를 한다고 하면 쉽지 않은 일일 뿐만 아니라 강의를 듣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싶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교감하며 얻는 깨달음이 가미되니 얘기가 달라진다. 책 사람, 그리고 삶이 일깨워주는 소중한 지혜들, 저자 자신이 마주해온 한 사람 한사람, 자신이 가는 길에 진심인 사람만이 얻는 통찰들이 담겨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유능하지만 속 깊은 의사가 “당신은 저에게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합니다.”라고 나직이 말해주는 것 같다. 환자에 대한 마음이 전해져 우리의 마음도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 책은 환자가 의사의 관심과 존중을 느낄 수 있도록 온기어린 말과 태도로 환자의 고통과 진심어린 교감을 나누는 것이 돋보인다. 더 나은 치료를 위해 환자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살피는 마음이 존경심을 갖게 한다. 힘든 순간에도 누군가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어떤 순간에도 희망이 있음을 기억하도록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누구라도 본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의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정작 위로받고 마음의 힘이 커지며 삶의 기쁨과 활력을 더해가는 것은 의사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진짜 의사의 삶은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책 「서문」을 통해 의사로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그간의 획일적 입장에서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환자친화적 사고 틀로 변환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줄 것은 기대한다고 밝힌다. 그렇다고 의사의 인문학이 마치 별스러운 대접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직업으로서의 의사의 시선 정도로 봐주기를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매우 겸손한 표현이지만 자신의 경험에 따라 의사의 인문학적 소양은 치료에 불가피한 것이고, 이는 분명히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는 일, 쉽지는 않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온전하고 미덥게 마주해야 참된 관계가 형성된다. 치료할 의사와 아픈 환자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통증의 교감, 의사의 절대가치다.”(p.46)

 

“외부로부터 얻어진 마음의 상처에도 굴하지 않는 스스로의 면역력은 흉터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 내면의 힘이 단단해지면 마음의 상처에 옹골진 딱지가 내려앉는다. 치료의 시작은 의사와 환자의 교감이라는 지혜는 틀림없다.”(p.21)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의사의 시간」, 2장 「의사의 인문학」, 3장 「치유의 공동체」, 4장 「일상의 위로」이다. 각 장은 연결돼 있으며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결국은 의사가 되기까지의 어려움, 의사가 되고 난 후 치료하는 어려움, 치료 경력이 쌓인 후 의사로서의 의무와 공헌, 그리고 환자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말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각 장은 소제목으로 나뉘어 관련 글을 언제든 찾기 쉽게 나열해 독자들의 편의를 제공한다. 가령 1장 첫 소제목은 '의사가 서 있는 곳'이다.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은 언제나 '환자의 곁'이란 말을 하고 싶은 듯하다.

"아름다워지려 결심한 코 수술의 후유증으로 병원을 돌고 돌아 내게 온 환자는 끊임없는 절망과 슬픔의 변주 속에서 사람들과의 대면조차 버거워했다. 혼자 외롭게 웅크리고 있었을 환자에게 보통 그런 경우는 다소 건조한 의학적 조언에 더해 "잘 치료하면 분명히 나아집니다. 환자분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살포시 건네 본다. (중략) 그래야 치료 효과도 좋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그럴 때 절망을 밀어낸다." 이어 저자는 "절망을 지닌 채 찾아온 환자의 치료 앞에 용기를 갖겠다는 것과 실천으로 환자에 대한 존경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 의사는 서 있기 때문이다."고 말해 의사는 독자의 예측대로 환자의 곁이 아닌 '희망과 절망 사이'에 있다고 강조한다.

 


 

2장의 보다 많은 인문학 요소가 드러난다. '인간의 면역은 행복이었다'는 제목의 내용에서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 유명한 히포크레테스의 명언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사실, 의사의 '인생은 짧고 의술은 영원하다'라는 의미였다. 의사가 되기 위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해명을 한 뒤 "오늘날 현대의학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퇴치는 요원하다. 환경의 파괴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 출현을 야기했고 여전히 우린 그들과 투쟁 중이다. 전 인류가 고통 받고 있는 '코로나19'가 그렇다. 전염병이 창궐할수록 의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균열되고 있으며 현대의학에 대한 철학적 반성으로 의학철학을 주목하게 된다. 시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는 코로나의 역습으로부터 의료인문학 공동체 재구성에 주요한 단초를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의료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배경이기도 하다."고 넌지시 자신의 속엣말을 꺼낸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그리스는 2008년 9월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유럽의 작은 나라였던 그리스는 유로존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여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파르테논 신전' 같은 돌덩어리 빼고는 국내외 자산이 각국으로 팔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017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묵작한 이야기다."고 전제한다. 이어 저자는 "이 영화가 인간의 행복에 대해 근원적 성찰을 안겨주는 잔잔한 풍경은 위기 속에서도 사람에게 희망을 찾는 지혜를 보여준다. 그렇다. 인간의 면역은 행복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사체액설의 정수라 치환해도 과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인문학적 사유를 거쳐 저자가 건져올린 단어는 '면역'과 '행복'이었다.

 


 

독자는 비염 환자다. 때문에 '봄철, 알레르기성 비염에 대한 브리핑'을 관심 있게 읽었다. 저자의 얘기는 단순 비염에 관한 치료부터 수술요법까지 적잖은 얘기를 한다. 독자는 비염으로 병원도 가고 약국에서 약을 사다 복용도 했지만 약으로는 한계가 있는 듯한 질병이다. 거의 콧물을 달고 살다시피 해도 이 책처럼 자세하게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심코 흐르는 콧물은 의외로 내 몸의 질환을 설명해 주는 경우가 많다. 투명하고 맑은 콧물은 흔히 말하는 감기나 알레르기성 비염일 가능성이 크다. 주로 호흡기 질환 초기에 많이 나타난다.

2주 이상 콧물이 멈추지 않고 재채기, 눈의 충혈, 가려움증이 동반되면 감기보다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다른 질환들을 의심해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발병하는 원인은 크게 유전적인 영향과 꽃가루나 진드기 등 외부적 영향에서 기인한다. 부모가 알레르기 환자라면 유전될 확률은 무려 50~80%에 달한다고 의학계에서는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비염은 코의 염증이다. 다시 말해 코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질환을 '비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콧물, 코막힘, 재채기, 가려움 등으로 콧속이 충혈되고 콧살이 붓는 환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라고 통칭한다." 이 설명만으로도 독자의 상태와 치료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후 병원에서의 치료 방법, 심한 경우 수술을 병행하기도 한다는 말, 예방, 치료 중 수칙 등에 대해 잔잔하고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의료 현자에서의 저자의 개인적 경험, 자신의 취미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접했던 색다른 경험 등도 모두 인문학적 지식을 토대로 재해석해 환자 치료에 응용하기도 한다는 말도 곁들인다. 그것이 치료 효과를 높이고 환자와의 교감은 치료에 그만큼 중요하고 희망적이라는 확신을 준다고 말한다. 과학자로서의 의사가 아닌 인문학자이자 의사로서 하는 말일 게다. 그의 인문학적 소양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이 과학에서처럼 눈앞에 바로바로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저자의 소신대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마땅한 의사의 자세라고 생각이 든다. 독자는 그의 인문학적 지식보다 과학자로서 인문학 지식을 결합시켜 환자 치료에 효과를 나타내는 의사의 모습이 더욱 믿음직스럽다.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니코즈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의사로서의 삶의 좌표를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뿐인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방법에 대해 조르바는 조언한다. 이념과 제도로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한 자신에 집중하며 불합리한 상황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이다. 조르바의 삶의 태도는 의료현장에서 질곡의 시간들을 헤쳐 온 위로였으며 힘이었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라는 문장은 카잔차키스가 인류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함축한다. 그것은 박제된 윤리만이 추구되는 세상에 대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어찌 변하지 않은 가치가 있을 것인가. 변이하는 바이러스를 대하는 현대 의학의 경직성은 없던 것일까. 의술이 권위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p.72~73)

 

저자 : 안태환

 

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이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며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2017년에는 한국의 명의 100인에 선정되었다. 현재 프레쉬 이비인후과·성형외과 강남 본원 대표원장이며 중앙일보 ‘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칼럼과 국민일보 ‘안태환 리포트’ 칼럼을 오랜 기간 연재 중이고 TV조선 ‘내 몸을 지키는 기적의 습관’과 ‘백세누리쇼’ 고정 패널로 매주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전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보험이사 및 학술이사를 역임했고 현 대한피부레이저모발학회 회장으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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