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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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세상'이었던 중세 유럽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평화로운 곳, 수도원을 만들어 신을 받들고, 오로지 신의 말씀만을 따르며 평생 독신으로 사는 사람, 그들을 수사(修士)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는 수도자들을 뜻한다. 그들은 일정 공간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엄격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서 그에 준하는 권한도 주어진다. 신들의 세상이었으니 모든 일이 종교적, 신의 명령으로 규제됐을 것이다. 이곳에서 움트는 인간의 탐욕과 야망, 그리고 성녀의 유골을 둘러싼 피의 비극이 펼쳐진다. 이 소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1137년 중세 영국 슈롭셔주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 사건을 풀어가는 한 수사(캐드펠 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수사(修士)는 가톨릭 청빈·정결·순명을 서약하고 독신으로 '수도하는 남자'라고 앞서 언급한 대로다. 평화롭게 허브밭을 가꾸며 신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캐드펠 수사에게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라는 임무가 부여된다. 부수도원장을 비롯해 귀더린으로 떠난 수사들은 귀더린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맞닥뜨리고, 급기야 반대파를 대표하던 영주가 화살에 맞아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책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세대와 언어를 뛰어넘은 영원한 고전,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된 역사추리소설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연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모두 21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생생한 캐릭터, 선과 악, 삶과 죽음, 신과 인간 등 인간사 최고 난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이 녹아 있는 역사추리소설의 전범을 쓴, 영국 작가로서 탐정소설의 대가 코난 도일,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와 비견될 정도의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화려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문장, 빠르고 다채롭게 전개되는 스토리, 탄탄한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을 풀어가는 ‘탐정’ 캐드펠 수사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원작 시리즈 완간 30년을 기념해 전면 개정된 한국어판이 옷을 갈아입고 독자들을 만난다. 장장 18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된 엘리스 피터스의 역사추리소설 시리즈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에서 번역, 소개된 밀리언셀러로, 영국 BBC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뛰어난 추리력과 인간적 매력의 소유자 캐드펠 수사를 내세운 이 시리즈는 1997년 한국에 처음 소개(『수도사의 두건』, 북하우스)된 이후 한국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은 영국 중서부 슈롭셔의 주도 슈루즈베리에 있다. 슈루즈베리의 북부는 웨일스 지역에 접한다. 세번강에 의해서 남서부의 고지와 북동부의 평야로 나누어진다. 고지는 깊은 협곡을 사이에 끼고 웬록·뷰 등의 산지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예전에 습지대를 이루었던 평야에는 수많은 작은 하천이 흐른다. 12세기 이후에는 웨일스와 변경 제후와의 싸움 중심지가 되어 많은 성채가 구축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의 주산업은 농업으로, 밀·보리·사탕무·감자를 산출하며, 평야에서는 낙농업도 이루어진다. 슈롭셔 양(羊)의 원산지이며, 그 밖에 도기·벽돌·석탄·주철업이 활발하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도 비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군상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인간적 삶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장미의 이름』의 엘리티즘과는 그 결이 다르다. 공포와 전율, 흥미를 동반하는 고전적 추리소설의 매력이 흘러넘치면서 살인 미스터리를 고도의 지적 게임으로 풀어가는 이 시리즈는 교묘하게 짜인 중세의 어두운 미로를 종횡무진 헤쳐가면서 강력한 흡인력으로 읽는 이를 끌어당긴다.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이다. 이러한 캐드펠의 삶의 이력은 덜리 지역 약국의 약 조제사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것처럼 보인다.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따스함과 영적인 깊이 역시 작가 자신의 성숙한 내면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충실히 구현한 이 시리즈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을 닮은 탐정 캐드펠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독자에게 중세의 수도원에서 저잣거리로, 안개 낀 다리 밑에서 허브밭과 약제실로 종횡무진 여행하는 재미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책 앞 부분에는 두 장의 중세 지도가 그려져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정세랑 소설가는 “열일곱 살에,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캐드펠 시리즈〉를 읽었는데 완전히 푹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21세기 한국의 고등학생이 12세기 영국의 수도사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책을 펼치면 캐드펠 수사가 가꾸는 허브밭의 싱그러운 향이 미풍에 실려 오는 것만 같았고, 부지불식간에 이웃처럼 정이 든 마을 사람들이 삶의 우여곡절을 겪을 때는 함께 탄식했다. 그 생생한 경험을 통해 역사와 문학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른다섯 살이 되어 〈캐드펠 시리즈〉를 다시 읽고 싶어졌는데, 혹시 두 번째로 읽었을 때의 감회가 예전만 못할까 걱정했었다. 기우 중의 기우였다. 열일곱 살에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잔뜩 발견하며 읽을 수 있었고, 역사추리소설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매번 자신 있게 추천하곤 했다. 소박하고 담백하게 시작해 역사의 큰 톱니바퀴와 힘 있게 맞물려 들어가는 이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 말할 때 한없이 행복했다. 엘리스 피터스가 육십대 중반에 이처럼 대단한 시리즈를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음에 환한 빛이 든다. 먼 길을 다녀와 켜켜이 쌓인 지혜를 품고 유적지를 직접 걸으며 작품을 구상했을 작가를 상상하고 만다. 멋진 일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고, 심혈을 다해 빚은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이 보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믿게 되었다.”고 추천사를 썼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화려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문장과 빠르고 다채롭게 전개되는 스토리, 치밀하면서도 폭넓고 깊은 추리의 세계, 중세 영국의 풍경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한 명문 등 원텍스트의 묘미가 최대한 살아나도록 편집하였으며, 세련된 디자인으로 역사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책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한쪽 구석에는 사시사철 허브향이 풍기는 허브밭과 이 허브들로 약제를 만드는 약제실이 있다. 이 허브밭과 약제실을 책임지는 노수사 캐드펠은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라는 과거를 뒤로한 채 은둔하는 삶을 선택한 후 수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앙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던 콜룸바누스 수사는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수도원의 명성을 드높이려면 성인의 유골을 안치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콜룸바누스 수사, 캐드펠 수사, 존 수사 등 네 명의 수사들은 성녀의 유골을 가지러 귀더린으로 떠난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 귀더린은 자신의 지역에서 일생을 바친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가겠다며 네 명의 수사가 들어서면서부터 혼란에 휩싸인다. 수사들은 생각보다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당황하고, 그 와중에 이 반대파를 대표하던 영주 리샤르트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평화롭게 일상을 영위하던 시골 마을에도 갈등의 불씨는 잠자고 있었고, 성녀의 유골을 둘러싸고 이 불씨가 활활 불타오른다.

리샤르트의 외동딸이자 상속녀 쇼네드, 쇼네드의 연인이자 마을의 이방인 엥겔라드, 쇼네드를 짝사랑하는 페레디르 간의 갈등이 폭발한 것일까? 엥겔라드가 쇼네드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리샤르트를 살해한 것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마을에 성녀의 분노가 내린 것일까? 콜룸바누스 수사의 발작은 정녕 위니프리스 성녀의 계시를 전하기 위한 신의 안배인가?


주민들은 리샤르트와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모두의 안에서 억눌려 있던 비분한 감정이 리샤르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불같이 끓어올랐다.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외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위니프리드는 귀더린의 성녀이며, 다른 곳에 속하는 분이 아니라는 얘기였다.(p.94)


유골을 옮기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 지도자 리샤르트가 살해되면서 긴장감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갈등의 과정에서 인간의 탐욕과 야망, 비극은 작품의 긴장감을 한층 높여준다. 수도원이라는 성스러운 배경 속에서 믿음과 과학의 대립이 비춰지는 것은 각각이 추구하는 영역이 다른 학문이 서로 연결되기도, 대립하기도 한다는 영감을 받게 해준다. 당시 어떤 방식으로 성자로 추대되고 성유물이 되는지 미묘한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도 새로운 사실도 알게 해주는 등 거리가 멀었던 중세의 종교관이나 인간에 대한 예우가 '신들의 세상'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의 탁월한 문장과 구성력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늘날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완전히 흡수돼 영국으로 불리지만 중세 당시에는 영혼의 숙적이라 불리었다는 사실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추가한다. 독자가 앞서 말한 대로 책 앞 부분에 있는 지도에 확실하게 나와 있지만 슈롭셔는 웨일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두 지역 간의 갈등이 이 책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스토리에 배어 있다.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이 책뿐만 아니라 〈캐드펠 시리즈〉 전체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국경 기준으로 보면 수도원은 잉글랜드, 귀더린 마을은 웨일스 지역에 속해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앙숙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역사적 갈등과 복잡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두 지역은 갈등과 정복, 동화와 반란의 역사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의해 여러 차례 정복되고 합병되기도 했지만, 웨일스의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웨일스 문화와 웨일스어를 재건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웨일스민족당'을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 요구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잉글랜드가 웨일스를 야만인과 야만국가라고 차별하는 듯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직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합병되지도, 종속되지도 않은 떳떳한 독립국가였으니. 1282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웨일스의 왕국은 사라진다. 열등하게 여기는 정서를 내포하는 대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두 나라간의 갈등을 저자는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인공 캐드펠은 웨일스 출신 잉글랜드 수사이다. 어떻게 보면 사건 수사를 위해 캐들펠 수사는 중립적 위치란 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첫 번째 책의 재미로 봐서 갈수록 흥미롭고 관심 있는 많은 이야기가 기다릴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수사님들은 곧 떠나실 테니 우리가 문제를 죄다 떠안게 된 셈이죠. 수사님들을 욕하자는 건 아닙니다. 수사님들이야 물론 사명이 있는 곳으로 떠나야죠. 하지만 다들 가시고 나면 우리끼리 리샤르트 씨의 죽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 교구 주민들의 절반 정도는 여러분 베네딕토회 사람이 그분을 죽였으리라 생각하고, 나머지 절반은 이 마을에 사는 어떤자가 원한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른 뒤 여러분께 책임을 떠넘긴 채 시침 뚝 떼고 숨어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시기 전까지 이곳은 평화로운 마을이었어요. 살인 따위는 상상조차 못 해봤지요.”(p.289)



일행은 고분고분 발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부수도원장을 지켜보았다. 그는 마치 발끝으로 길을 찾듯이 무성한 잡초와 들꽃들 사이로 수도복 자락을 끌며 조심스레 걸어 들어갔다. 그러곤 머뭇거리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교회의 동쪽 끝에서 일직선이 되는 곳에 자리한 곳, 잡초가 웃자란 작은 흙무더기로 가더니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위니프리드 성녀께서는 여기 누워 계십니다.” 부수도원장이 말했다.(p.183)


교회 안에는 짙고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열린 문으로 아침 바람이 살며시 들어오자 안을 메운 향기가 출렁거렸다. 제대 위에서는 여전히 촛불이 타올랐고, 촛대 사이에는 작은 등잔이 놓여 있었다. 제대 앞 한가운데 놓인 제대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기적의 바람이 산사나무 울타리에서 꽃들을 꺾어 단 한 송이도 흘리지 않고 제대 창문 앞까지 날아와 창 안으로 입김을 훅 불어넣어 흩어놓은 듯, 제대 위에도 관 위에도 눈처럼 하얀 꽃잎들이 흩어져 있었다. 기도대와 그 옆에 놓인 옷 위에도 마찬가지로 꽃잎들이 보였다.(p.320-321)


부수도원장의 분노한 얼굴에 푸른 그늘이 드리우고, 섬세한 눈꺼풀 속 눈은 질투에 차 은빛으로 번쩍였다. 그런 보잘것없는 시골에서, 성녀마저 떠나버린 그 한산한 마을에서, 비가 내리다 말고 멈춘다거나 별것 아닌 상처가 제법 낫는 정도의 사소한 이적을 뛰어넘는 기적이 어찌 감히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 의심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효험의 기적들이 어찌 그 짧은 기간 동안 모두 벌어졌단 말인가. 눈먼 자가 지팡이를 짚고 왔다가 그 지팡이를 내던진 채 돌아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p.338-339)


저자 : 엘리스 피터스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작가 엘리스 피터스 Ellis Peters(본명 에디스 파지터 Edith Pargeter)는 1913년 9월 28일 영국의 시로프셔 주에서 태어났다. 화학실 조교와 약 조제사,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하는 등 그녀가 쌓은 다양한 경험과 이력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녀는 1959년 46세 때 스릴러 소설 『죽음의 가면』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해, 1963년 『죽음과, 행복한 여자』로 미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가 앨런 포 상을 받았고 1970년에는 `현대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치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1981년 캐드펠 시리즈의 한 권 『수도사의 두건』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기도 한 엘리스 피터스는, 1995년 10월 생전에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시로프셔에서 여든두 해의 생을 마쳤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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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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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상실과 발견』은 우리 일상의 경험이 때론 삶의 전부를 흔들수도 있고, 때론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상반된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았다. 이 책은 표제어부터 상반된 개념의 단어를 배치시킴으로써 책의 내용 이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저자 캐스린 슐츠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얼마 전, 결혼하게 될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하게 되는 경험, 사별과 만남이라는 경험을 거의 동시에 겪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 슐츠는 우리의 삶이 온통 상실과 발견으로 빚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힌다. 

우리는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잃기도 한다. 또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 책 『상실과 발견』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안내서이자, 아주 평범한 경험 속의 빛나는 경이를 발견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에세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죽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들이 현혹적이게만 느껴질 뿐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머리를 잡는다. 첫 문장에서 저자는 "나는 죽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표현들이 늘 싫었다."고 강한 톤으로 썼다. '돌아가셨다(passed away)'라거나 '더는 우리 곁에 없다(no longer with us)', '세상을 떠났다(departed)' 같은 표현들은 비록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내게는 위안이 된 적이 전혀 없다. 이런 표현들은 요령껏 말한다는 미명으로 죽음의 충격적인 둔탁함을 외면하고,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아름다움이나 그리움을 불러내기보다 안전함과 친숙함을 택하는데, 내게 그런 선택은 언어적으로 회피하려는 것처럼, 얼버무리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강조한다. 

독자가 영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만 무슨 뜻인지 저자의 내용이 그대로 와서 가슴에 담긴다. 독자의 경험으로도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독자도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고, 또 친한 지인의 문상을 가서도 저자의 생각과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위로의 말을 해야 할 때는 적절한 단어들을 찾지 못했고, 반대로 누군가의 위로를 받을 때도 상대의 모습에서 느껴진다. 그냥 그 모습 자체로 서로 알기에 서로 절을 함으로써 말을 삼가는 것을 암묵적으로 해왔다. 저자의 비난에 가까울 정도의 무게감으로 '전혀 위로되지 않은 말'에 대한 폭격에 독자가 쉽게 공감하고 동의하는 것은,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있지만 적절한 말이 없을 경우 차라리 우리의 형식처럼 '말 없는 맞절'이 효과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가족의 사망은 사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공황 상태에 빠뜨리기도 한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고, 고인의 체취가 아직 남겨진 집에서 그가 쓰던 물건을 바라보며 극한의 슬픔을 참아내려는 사람들은 쉽게 패닉 상태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상태를 오랫동안 홀로 감내해야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독자의 경험으로 볼 때는 적어도 우리의 일상이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그렇게 여유 있는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저자의 경우 아버지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다음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어가는 동안, 저자의 직장에서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으면 이메일에 접근할 수 없다는 자동 경고 메시지들을 연달아 보냈다고 한다. 이 규칙적인 메시지들은 저자의 접근 권한이 열흘 안에, 아흐레 안에, 여드레 안에 만료되리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저자는 결국 접근 권한을 잃었고, 아버지가 사망한 뒤 고객센터 직원에게 이 문제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느라 "제가 지난주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상을 치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이런 표현이 나왔는데, 죽음을 에둘러 말하는 여느 말과는 달리 면피한다거나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저 슬픔 그 자체처럼 단순하고, 애달프고, 쓸쓸하게 들렸다는 것. 사별이 남긴 황폐함과 혼란스러움에 맞춤한 말이었다고 '발견'을 언급한다.

저자는 이후에 '잃었다(lost)'란 말이 그토록 적확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잃다(to lose)'라는 동사는 '슬픔(sorrow)'에 그 뿌리를 곧게 뻗고 있었고, '허망한(forlorn)'이 품은 '적적한(lorn)'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동사는 사별을 의미하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나왔는데, 그 단어는 분리 혹은 쪼개기를 뜻하는 더 오래된 단어에 기인한다. 대상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현대적 의미는 그 후인 13세기에 출현했고, 그로부터 100여 년 뒤, '패배하다(to lose)는 승리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우리가 실성하기(lose our hearts)' 시작한 건 16세기였고, 17세기에는 실의에 빠지게(lose our hearts)'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잃을 수 있는 것들의 연결고리가 우리 자신의 삶과 서로의 삶으로부터 시작되어 꾸준히 확장되어온 것이다. 

저자는 상실에 관한 생각에 잠기고 어떤 유형의 상실은 사실상 긍정적이라는 점을 깨닫고 놀랐다고 털어놓는다. 상실은 살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낙담의 즐거운 예외에 속한다는 저자는 상실의 극단적인 한계까지 더듬어 본질에 다가간다. 이런 사항들은 본질적이고 탐욕스러운 성질이다.



상실의 영역을 확대해 들어가고 본질에 대해 사유한 가운데 어떤 상실은 왜 그토록 충격적으로 여겨지는가?에 대해 탐구해 들어간다. 저자의 가계(家係)를 중심으로 가까운 조상들의 삶을 역추적하고 사유를 지속한다. 저자 캐스린 슐츠는 근대사에서 벌어졌던 가장 전면적이고 끔찍한 끔찍한 상실을 야기한 사건인 제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의 할머니는 폴란드 중부 우치 외곽의 부락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은 전쟁 전에도 유대인으로 살아가기 가장 위협적인 장소였다고 알려진 곳이란 말을 전한다. 저자의 아버지가 태어나 아직 걸음마를 떼지도 않았을 무렵에 키부츠*로 보내져 몇 년간 낯선 이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그곳에 있는 동안, 그의 가족에게는 앞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중대한 상실이 두 번 일어났다. 먼저 그의 친부가 사망했고, 어머니는 재혼했다. 이 사실을 아버지는 2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당신이 결혼하던 날 밤에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폴란드에 남았던 할머니의 가족 전부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것이었다. 

할머니의 부모는 거기서 사망했고, 열 명의 형제 중 아홉 명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1월 27일, 수용소가 해방되었을 때 제일 맏이였던 저자의 고모할머니 에지아만이 살아서 걸어 나왔다. 이런 사실이 언제, 혹은 어떻게 할머니에게 전달되었는지, 텔아비브까지 이름별로 하나씩 도착했을 나머지 소식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저자로서는 알지 못한다. 할머니가 우치를 떠날 때 그곳에는 거의 25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 9,000여 명 정도만이 전쟁에서 살아 남았다고 책에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상실의 경험한 자신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상실의 의미를 확대하기 위해 돋보기를 들이댄다. 다시 내려오며 저자는 한 유대인 가계 전체가 잃어버린 삶이 기억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애도'의 근거로 작동한다고 설명하는 것 같다. 3부로 이뤄진 이 책 1부 〈상실〉에서 저자는 "사라진 것들을 전부 한데 모으려고 애쓰는 건 인간의 마음이 오랫동안 지녀온 '별난 습관'이라고 잘라 말한다. L. 프랭크 바움이 쓴 『즐거운 나라의 도트와 토트』에 나오는 「잃어버린 물건들의 계곡」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필멸자들과 달리 잠시 명부로 출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던 오르페우스나 단테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랑했으나 잃어버린 물건들, 그리고 사랑했으나 잃어버린 사람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들에게 내세를 내어준다. 최소한 이 세계에서는 우리가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달콤씁쓸한 깨달음으로."(p.53)



"사랑하던 이를 잃는 경험이란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한 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p.95) 이 문장은 쉽고도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상실의 슬픔 뒤에 오는 애도라는 드높은 파도가 물러나고 내적 해변에 온갖 이상한 것들만 남겨둔 채 뒤늦게서야 저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기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 뒤에 남겨진 모든 부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부재는 그저 달리 느껴지기 시작할 뿐, 마침내 마음이 슬픔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여전히 거의 매일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모든 곳에 시선을 보낸다. 사진에서, 읽던 책에서, 내가 쓴 문장이 내는 소리와 내 생각들의 형태에서, 어머니와 언니에게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 낯익은 아버지 지갑(이제 아버지 곁에 있지 않게 되었으므로 안전해진)을 보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마주친다. 그중 몇몇은 내 아버지였던 사람에 대해, 잠시 멈추어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는 말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는 증거와도 같다. 저자는 또 몇몇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울하고 애매한 감정이 든다고 말한다. 의자처럼 일상과 관련된 기념물은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환히 빛나고 있기에 저자가 밝힐 필요가 없는 '양초'라고 표현한다. 아버지와는 다르게 이런 것들은 아직 여기 존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들을 만들어낸 사랑처럼 지속적으로. 이것이 상실의 근본적인 역설이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p.104)

책의 2부는 〈발견〉에 대해 저자의 사유를 정리하고 있다. 『트릭 미러』의 저자 지아 톨렌티노는 "슐츠는 익숙한 관념을 이리저리 돌려보아 우주적이고 경이로운 것이 되도록 한다. 그러면서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 회고록은 우연이 운명이 되고, 슬픔이 감사와 얽히는 방식에 대한 탐구로 전환된다. 책을 읽으며 마치 손바닥에 그려진 대륙의 지도를 발견하는 것처럼 조용히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고 추천사를 썼다. 죽음에 관해 말하는 책은 많다. 사랑에 관해 말하는 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상실과 발견』이 그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저자의 세심한 '관찰력'과 '남다른 관점' 때문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편적인 경험을 낯설고 새롭게 들여다보기 위해 독자과 함께 여러 곳을 방문하며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들려준다. 발단은 사별할 때 상투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들에 대한 낯섦과 바로 잡으려는 저자의 깨달음에서 비롯됐다. 소설 속에서 다루어져 온 ‘잃어버린 물건들의 계곡’, 메논의 역설, 베아트리체와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졌던 단테까지, 먼 길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시선을 확보한 채 머뭇거림 없이 나아간다. 호기심과 다정함, 지성과 재치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슐츠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또 경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책 『상실과 발견』은 단순히 회고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생생하게, 충만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안내서가 된다. 상실을 통한 발견, 즉 익숙한 경험을 새로이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평범한 삶이 경이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며, 평범한 비극과 슬픔이 우리를 무너뜨려 '발견'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평범한 발견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경이를 알아챌 수 있다면 삶은 또 다른 데로 이어질 거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앤디 보로위츠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그리고 운석과 단테와 곰에 대한) 깊은 감성과 정교한 글쓰기가 돋보인다. 캐스린 슐츠는 자신의 삶에 관해 썼다. 여러분의 삶을 바꿀 만한 방식으로."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보로위츠는 이 책을 “가장 대담한 종류의 책이며, 바로 ‘행복한 사람의 회고록’”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회고록'이라는 장르는 고통과 아픔을 다루는 장르로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러나 좀처럼 희망과 회복을 말하지 않다가 책의 끝에 가서야 결말처럼 등장한다. 우리는 다른 이가 겪은 역경에서는 무언가를 느끼고 배울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행복의 이야기에는 좀처럼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상실과 발견』은 이런 회고록의 전형을 깨부수는 책이라고 앤디 보로위츠는 보고 있다. 이로써 저자가 묘사하는 아주 일상적인 행복과 기쁨 속에서, 독자들은 자기 자신만의 행복과 기쁨을 찾아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넘쳐나는 냉소주의와 절망의 바다에서 이 책만 한 선택은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 책은 상실을 경험해본 모든 이에게 함께 애도해 나가도록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다. 어두운 현재에 절망하고, 포기를 선택한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변화를 안겨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책의 마지막 3부 〈그리고〉라는 접속사를 제목으로 썼다. 저자는 이 단순한 접속사의 놀라운 힘을 이야기한다. 한 단어가 다른 단어와, 한 개념이 다른 개념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우리가 세계와 연결될 때 빚어지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 단어가 '그리고'라고 강조한다. '그리고'가 어두운 현재에 대한 절망과 포기를 희망과 변화를 바꿔 줄 단어로 저자가 채택한 단어다. 책의 역자 한유주는 책의 뒷 부분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은 〈상실〉 파트가 끝나고, 이어지는 〈발견〉, 그리고 〈그리고〉 파트에서(여기서도 '그리고'가 두 번이나 등장한다. 나는 이 접속사가 이토록 아름다운 권능을 지녔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역자 주) 우리의 삶은 예기치 못한 상실로도 가득하지만, 예상할 수 없었던, 그래서 경이가 배가되는 발견으로도 충만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p.311)"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살아가면서 어떤 상실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삶은 찰나이기에 “인생을 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임을 유감없이,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알려준다.


대체로 나는 놀라움 쪽이 좋다. 나는 연못처럼 단순한 대상조차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놀라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수목원에서의 그날, 나는 다음과 같은 점을 깨달았다. 가차 없는 상실에 직면했을 때 우리를 가장 잘 대접하는 건 슬픔이나 묵인이 아니라 주목이라는 사실을. 최소한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바꾸는 세계는 우리의 소유이고, 그걸로 됐다.(p.298)


저자 : 캐스린 슐츠


작가, 저널리스트, 비평가. 프리랜서로 글을 써오다 지금은 《뉴요커》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태평양 북서부 지진 위기를 다룬 기사로 내셔널매거진어워드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상실과 발견』은 전미도서상과 앤드루카네기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2023년 람다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오류의 인문학』이 있다.


역자 : 한유주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3년 단편 『달로』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9년 단편 『막』으로 제43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 희곡과는 다른 소설만의 고유한 장르성이 어떻게 획득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집으로 『달로』(2006), 『얼음의 책』(2009),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2011) 등이 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세계문학강독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텍스트의 경계를 실험하는 문학동인 ‘루’ 활동을 하고 있다. 『지속의 순간들』, 『작가가 작가에게』, 『교도소 도서관』, 『눈 여행자』 등을 번역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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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의 역사 - 확장판, 쿠데타·혁명에 의한 ‘정치상 대변동’
최경식 지음 / 갈라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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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政變)은 혁명이나 쿠데타 따위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생긴 정치상의 큰 변동을 뜻한다고 사전을 풀이하고 있다. '정변'이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간 예는 우리가 역사 책을 통해 배운 '갑신정변(甲申政變)'을 들 수 있다. 갑신정변은 조선 고종 21년(1884)에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화당이 민씨 일파를 몰아내고 혁신적인 정부를 세우기 위하여 일으킨 정변이다. 거사 이틀 후에 민씨 등의 수구당과 청나라 군사의 반격을 받아 실패로 돌아갔다. 이 책 『정변의 역사』는 지난 1300여 년간 한반도의 역사에서 중대 변곡점이 됐던 20가지 결정적 사건에 대해 저자 최경식이 유의미한 해석과 설명을 더했다.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의심이 가는 대목은 저자가 직접 야사나 관련 서적들까지 뒤져 사실 해석에 신중을 기했다. 특히 구술되어온 야담이나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야사'를 인용할 때는 출처를 밝혀 설득력을 높였다. 저자는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 정변부터 현대의 신군부 12.12 쿠데타까지 시대를 뒤흔든 ‘정치상 대변동’의 원인과 결과, 당시 사회와 역사에 미친 영향 등을 세밀하고 폭넓게 분석해 독자들의 올바른 역사 인식과 교훈을 바로 잡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정변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든 부정적 결과만 도출한 채 실패로 돌아갔든 당시 국가와 국민에게는 많은 시련을 준다는 점에서 많지 않은 게 좋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우리 인류 역사에서 크고 작은 정변은 전쟁보다 더 잦은 일이다. 눈을 세계로 돌려본다면 정변은 미처 헤아리기도 힘들 것이다. 구 소련에서의 흐루쇼프 서기장의 갑작스런 해임이나 중국의 마오쩌둥 시대 문화대혁명 당시의 실권파 추방 등도 정변의 범주에 있는 사건들이다. 다만 당사국들만큼 타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 대부분 묻히는 것도 있을 터, 각국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한반도에서의 정변도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이 가운데 20개를 선정하는 작업도 아마 전수 조사를 할 만큼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 이 책이 한국사를 다룬 무게감 있는 책이 되는 이유다.

저자는 「드라마틱한 인간사 '정변'에 대한 탐구」란 제목의 〈서문〉에서 역사의 흐름을 크게 뒤바꾼 정변을 보다 정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거사 준비 과정에서의 비밀과 음모,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 정변 진행 과정에서의 무력투쟁, 성공한 자의 권력독점과 실패한 자의 전략 등 인간사의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많이 담았다"고 밝힌다. 이는 독자들이 역사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불가피한 대목일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5부(部) 2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정치상 대변동〉, 2부 〈지배체제 변혁〉, 3부 〈극적인 상승과 몰락〉, 4부 〈고난과 좌절〉 등 테마별로 나뉘어져 있다. 이 책에 기술된 순서가 주제별로 나누었는데 연대순으로도 정리가 된 것은 저자의 또 다른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고구려 「연개소문 정변」부터 고려 「무신정변」까지 5개 장이 1부를 이루고 있고, 고려말「공민왕 피살」부터 조선 초기 「계유정난」까지가 2부를 이루고 있다. 또 3부는 「중종반정」부터 조선 말 「동학농민혁명」까지 기록돼 있다. 이후 마지막 4부에서는 「을미사변」부터 현대 대한민국에서의 「12.12 쿠데타」까지 등 5개장으로 나뉘어 실렸다. '또 다른 정변'이란 제목의 〈부록〉에는 우리 역사에 늘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중국 당 태종의 「현무문의 변」, 명의 세 번째 황제인 영락제의 「정난의 변」, 명나라 멸망에 관련된 「이자성의 난」을 추가해 다뤘다. 

"선악현부(善惡賢否)는 별 문제로 하고 당시 동방아시아 전쟁사에서 유일한 중심인물이었으며, 조선 역사 4,000년 이래 최고의 영웅이다··· (중략)··· 봉건세습의 호족공치제의 정치를 타파하여 정권을 한곳에 집중시켰으니, 이는 분립의 대국을 통일로 돌리는 동시에 그 반대자는 군주나 호족을 묻지 않고 한꺼번에 소탕하여 영류왕 이하 수백 명의 대관을 죽였다. 아울러 침노해 온 당 태종을 격파하였을 뿐 아니라 도리어 당을 진격하여 전국을 놀라 떨게 하였으니, 그는 다만 혁명가의 기백을 가졌을 뿐 아니라 또한 혁명가의 재능과 지략을 갖추었다고 함이 옳겠다."(p.15)

우리 역사서 첫 머리를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인용한 저자의 역사 기술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신채호는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일제 강점기 일부 학자들의 식민사관을 비난하고, 국민들에게 올바른 우리 역사를 알리고 민족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직접 우리 역사서를 집필했다. 중국으로 망명해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의열단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을 이끈 열혈 독립운동가로 우리가 배운 인물이다. 독립운동서 서명자로 참여했고 역사서 외에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했다. 『조선혁명선언』은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을 하던 의열단원들이 품속에 지니고 다녔다는 책이다. 그는 강경한 독립운동 신념으로 행동하고, 의열단과 함께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위해 행동에 나섰으나 일경에 체포돼 여순 감옥에서 1936년 옥사 순국하였다.



앞서 인용한 문장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의 일부이며 내용에서 '혁명가'로 지칭되는 인물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다. 저자 최경식은 "한국근대역사학의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조선상고사』에서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대주의 사관이 깃들어 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객관성이 결여된 중국의 역사서 등에서 평가절하됐던 인물을 우리 독립운동사의 고매한 인물로 생각한 까닭이다.

저자는 고구려 말기의 실권자, 대막리지(오늘날 수상)였던 정통 고구려인의 기개를 갖춘 인물이었다고 평가한 신채호의 기록을 인정하고 저자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호전적인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이 어려워했고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도 있지만 대륙에 있는 제국들에 대항해 고구려가 나아가야 할 방향, 즉 '자주적 기조'를 명확히 각인시킨 인물이라는 연개소문에 대한 신채호의 평가다. 저자는 이에 따라 연개소문의 리더십 하에서 고구려는 우리나라 역사상(광의적 의미에서의) '중화 패권주의'에 대등하게 맞섰던, 어쩌면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유일무이한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이 책에 적고 있다. 저자는 이후 자주적인 한민족의 마지막 불꽃, '혼(魂)'으로 평가받는 연개소문은 지금도 중국의 경극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한다. 고구려는 대륙의 하수인이 아닌 '천자의 제국'이라고 선포하며 단행했던 '연개소문 정변'의 전말을 책의 첫 장에서 보여준다.

고구려인의 기개는 우리 모두 역사 책에서 학교 다닐 때 배워 온 바다. 다만 교과서 기술이나 역사 수업 시간은 많지 않은 탓에 당시 국제 정세나 시대 상황에 대해 자세히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국민들은 역사의 질곡에서 어렵게 헤쳐나온 덕분인지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느 국민 못지 않게 강하다. TV드라마에나 영화에서 사극이 많았던 것은 이 같은 국민적 관심에 기대어서다. 시청률이 높고, 관객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이 점차 민주주의와 산업화에 성공하자 역사 기술에도 과거 식민사관은 거의 배제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로 인해 과거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르다는 시청자와 관객들이 보고 어떤 느낌이었을까.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봐도 공통의 시선이다. "제대로 된 역사를 바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의 비극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역사의 중요성을 깨달은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이 책은 20개 사건(정변)을 다루고 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실행한 정치 개혁을 '연개소문 정변(막리지의 난)'이라고 표현한 것은 독자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 당시 왕의 기준에서 본 것 같아서다. 고구려는 중국에 통일 정부(수와 당)가 들어서는 격변기에 동북아 정세에 능동적으로 맞서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보다 우선 외교적 차원의 대비를 해야 했고, 또 최후의 방법(군사적 대치)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고구려를 침략했던 중국의 두 통일 정부는 야욕을 채우지 못하고, 수나라는 30년만에 멸망에 이르고 당나라는 태종이 눈을 감을 때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고구려 침공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 것으로 보아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이때 고구려의 힘에는 연개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땐 그가 개인의 정치적 욕망보다는 고구려의 미래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정변을 일으키지 않았나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특히 고구려의 역사를 '동북공정'이라는 구실로 완전히 중국 변방의 역사로 고정시키려는 현 중국 정부의 의도에 우리가 동의할 수 없다는 명분을 위해서라도 연개소문의 당시 행위에는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같은 시각에서 당시 중국의 정세와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 고구려 왕의 국제 정세 판단력 미숙 등이 수와 당에게 침공 틈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이제 막 새 제국으로 탄생한 중국 통일 정부가 나라의 기틀이 제대로 서지도 않은 채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고구려를 왜 침공했을까에 대해 명분이 부정확하고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때 수, 당 중국 통일 정부가 동원한 군사력이 보급군까지 합치면 100~200만쯤 되니 아무리 큰 나라일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나라 침략은 을지문덕이란 빼어난 장군, 당나라 침략은 연개소문과 양만춘 등의 전략·전술에 능한 장군들이 막아내긴 했지만 장군들의 영웅화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제 막 통일한 정부가 국운을 걸고 고구려를 침공한 사실에 시각을 고정하고 정당한 명분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고구려 역시 이번 침공을 막아냈다고 중국의 통일 정부를 되치고 들어가는 전술을 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후손의 역사학자들이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고구려의 멸망은 연개소문의 사망이 빌미가 되었고, 아들들의 권력 다툼 때문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때 당나라는 우리가 알다시피 신라와 협력하여 백제를 멸망(660)시킨 직후라서 고구려의 국운도 풍전등화 상태였다. 역사 기술의 눈을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 다툼이라는 시각에서 신라로 돌려 외세를 끌여들여 작은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은 당나라를 대적할 힘이 없었기에 외교전으로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추적해 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책은 고구려의 기개와 연개소문의 등장, 중국 정세의 급변, 수의 침공과 멸망, 당의 침공 등 약 100년도 안 된 기간에 숨 막히게 돌아가는 정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당 태종 이세민이 분노한 것은 수의 포로로 잡힌 중국인 포로 송환 요구를 고구려가 거부해 고구려 침공을 결정했다는 점은 아닌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당 태종은 중국인 포로들의 대거 송환을 요구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적국의 포로를 잡아두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나라의 일방적 요구대로 1만여 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아무 조건 없이 풀어줬다. 또한 당나라 요구에 따라 고구려 요충지들이 세세하게 나와있는 지도(봉역도)까지도 넘겨줬다. 지도를 획득한 당나라는 추후 고구려 침공 때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호의적 외교를 침공으로 되갚은 셈이다.

고구려는 왜 포로뿐만 아니라 군사적 목적의 지도까지 넘겨줬을까? 「연개소문 정변」의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 내부의 군부 소장파의 변화 요구와 원로 대신들의 갈등이 원인이자 발화점으로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소장파의 수장인 연개소문의 세력 확장으로 위기 의식을 갖고 있던 원로 대신들이 연개소문 견제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영류태왕을 설득해 연개소문 제거 계획을 세운다. 그 첫 단계로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해 축조하고 있던 '천리장성'에 대한 감독 업무를 연개소문이 맡도록 했다. 천리장성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고구려의 서쪽 국경에 위치해 있었다. 연개소문을 중앙정치 무대가 아닌 변방으로 보낸 후 서서히 힘을 약화시키려는 복안이었다. 저자는 또 다른 설(說)도 함께 적시하고 있다. 당초 연개소문이 천리장성 축조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조정에서 당나라의 요구에 순응해 천리장성 축조를 중단시켰고 연개소문이 이에 격분해 정변을 일으켰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장년·원로 대신들의 계획은 연개소문에게 은밀히 보고됐다. 그는 당하기 전에 먼저 거사를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연개소문은 642년 자신이 관장하는 부에 소속된 사병들을 동원해 평양성 남쪽에서 열병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열병식 날 연개소문의 의도대로 수많은 대신들이 척살됐다고 역사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후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연개소문이 일으킨 정변이라는 점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정확한 정사 기록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기술한 기록 탓인지 여간해선 연개소문의 치적보다는 불법 무력에 의한 정변에 초점이 맞춰진 것에 독자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으로는 가장 최근의 「어둠이 내려앉다」라는 제목의 신군부에 의한 '12.12쿠데타'를 되돌아보고 있다. 이는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면서 시작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9사단장을 필두로 한 패륜적 하극상 사건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10.26의 김재규와 사전 모의한 혐의로 연행한다는 것이지만 당시 대통령 최규화의 재가도 없이 저지른 쿠데타가 명백하다. 더욱이 전방부대 병력과 수도권 일부 병력을 동원한 것도 쿠데타가 사전 모의됐다는 명백한 증거다. 12.12쿠데타로 '참 군인'은 몰락했고, 육사 11기(정규 육사 1기)를 중심으로 한 '하나회' 정치군인들이 득세하게 됐다.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군부 독재가 불필요하게 연장되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나회는 구 군부를 견제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키운 군내 사조직이다. 자신이 5.16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며 대통령에 오르기 직전 예편하는 자리에서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말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사실 구 군부에 대한 견제는 아마도 장기집권에 반발하는 군부 내 일부 장성들을 제압할 목적이 아닌가 추정된다. 물론 독자의 판단이라 여기에 적시할 이유도, 명분도 없는 추정일 뿐이다. 다만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박정희의 장기 집권은 3선 개헌을 거쳐 유신 체제로 변화되며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헌법마저 고치는 상태이니 박정희에 대한 지지는 점점 반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물론 40여년 전에 일어난 쿠데타는 이제 우여곡절 끝에 쿠데타로 판명됐고, 권력욕에 의한 사전모의 등도 밝혀짐에 따라 법적 판결도 나왔지만 정작 본인들은 수긍하지 않은 채 생을 마쳤다. 다만 5.18 관련해서는 노태우가 장남을 시켜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한 것으로 보도된 적은 있다. 이제 남은 사실 확인과 역사 기록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결과에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또 같은 일을 다시 겪게 된다는 역사의 모순적 아포리즘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정변은 발발 배경부터 당대 상황, 비밀과 음모, 권력을 향한 욕망 그리고 승자의 득세와 패자의 퇴장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이 담겨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면 정반대 시선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이유로서 저자의 역사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는 데 독자는 동의한다. 특히 저자가 압축적이고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하는 관련 지식과 정보는 단순히 학습을 위한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역사교양서로써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는 출판사 측의 리뷰 문장에도 공감한다. ‘연개소문 정변’에서 저자는 고당 전쟁 및 그 전후 과정을 매우 생동감 있고 긴박하게 서술한 것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10.26 사태’에서의 주요 장면들도 저자의 글로 전달되는 긴장감은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보았던 흥미로움과 사뭇 다른, 깊숙한 의미를 전달해 준다. 글과 영상의 극명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한껏 고조시켜 준다. 역사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 책은 집어든 순간 끝까지 읽지 않고는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


저자 : 최경식


어릴 때부터 역사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한국사, 세계사, 전쟁사 등 역사 관련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한자능력자격증을 취득했고, 한국사능력검정 시험에도 응시, 합격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를 전공으로, 역사는 부전공하다시피 했다. 현재 브런치스토리와 헤드라잇에서 역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틈틈이 일반인과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역사 강의에도 출강하고 있다. 국민일보,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국회, 금융위, 금감원, 기재부, 중기부, 한국거래소, 산업은행, 교계, 각종 기업, 시민단체 등을 출입했다. 저서로 『숙청의 역사 _ 한국사편 / 세계사편』 『암살의 역사』 등이 있다.

ajdehfdk@naver.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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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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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의 표제어는 두 가지를 함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물리학의 현재 위치를 묻는 질문일 수도 있고, 기존 이론이 현대 물리학의 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20세기 들어 아인슈타인의 특수·일반 상대성 이론이 포문을 연 현대 물리학은 원자폭탄으로 오용됨으로써 그가 물리학에서 이룬 엄청난 업적을 반감시킨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후 현대 물리학은 양자역학, 입자 물리학, 이론 물리학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이 물리학으로 어떤 발달에 기여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물리학에 대해 잘 아는 과학자들이 어떤 설명을 해도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은 현대 물리학 이론이 무엇을 위해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묻는 이유는 아마 원자폭탄이라는 트라우마가 아닐까?라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질문의 이유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현대 물리학에서 제기된 거대한 질문에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답변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 자비네 호젠펠더에 따르면 과학은 이론과 관측, 실험으로 이루어진다. 실체를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을 과학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현대 물리학의 한계를 날카롭게 진단하고자 한다. 호젠펠더는 물리학자들의 아이디어와 과학의 영역에 있는 물리학을 구별하면서, 스티븐 호킹, 숀 캐럴, 카를로 로벨리 등 저명한 물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물리학이 어디까지 답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은 일반인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소중한 작업이기에 무용한 질문일 수 없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저자는 우리가 보는 별빛이 수억 광년 전의 별빛인 것처럼 어딘가에서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다른 우주에 우리의 복제본이 있는 걸까? 정신은 물질의 작용일 뿐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은 일부 물리학자 등 물리학계에서 꾸준히 내놓는 질문들이다. 물리학이나 우주물리학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질문의 이유를 이해하겠지만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질문조차 하기 어렵다. 물론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가 현대 물리학이 내놓은 이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는 물리학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마저 생소한 탓에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다. 그러나 만일 이슈가 될 만한 질문을 물리학계에서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다면 독자로서는 현대 물리학 이론의 실용성 여부를 판단할 정도를 배울 수 있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려는 목적이기도 하다.



물리학이 본질을 파고들수록 물리학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독자는 공감한다. 이에 더해 물리학자들의 설명은 어디까지 진실일까?라는 질문을 저자는 덧붙이고 있다. 이는 현대 물리학을 설명하는 물리학자들의 답변이 충분치 않거나, 혹은 무슨 뜻인지 모를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 저자 호젠펠더는 물리학자들은 인류가 궁금해하는 질문들에 관해 탐구해왔으며 새롭게 등장하는 질문들에 “기가 막히게” 답을 잘 찾아낸다고 말한다. 이는 새로운 문제를 접근하는 데는 이미 그들의 연구 과정이기에 별 문제 없이 답을 잘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물리학자들이 답을 찾는 데 몰두하느라 그 답이 애초의 질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왜 그런 답을 내놓았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과거는 실제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원자로 이루어진 일종의 사물에 불과한 것인가, 또 다른 우주에 나의 복제본이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세상과 인간에 관해 우리의 경험적 인식과 다른 내용을 내놓는 현대 물리학에 궁극적으로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하며 물리학자들의 이론을 연결시킨다.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다 보면 물리학 이론이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잘 팔리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 연구 목적인 분야가 있다고 저자는 슬쩍 내민다. 저자가 연구하는 분야인 기본 물리학의 주요 생산품은 지식이라고 털어놓는다. 동료들과 저자는 이 지식을 지나치게 추상적인 말로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왜 이걸 들여다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고백한다. 저자의 고백은 사실 물리학자들의 이론과 설명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 포장돼 있어 알아듣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이론이 채택될 때 수혜자가 될 일반 사람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도록 설명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다. 

이는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간극을 크게 벌리는 작용을 할 뿐 아니라 관심에서조차 멀어지게 한다는 주장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저자는 이에 관해 이미 지적한 학자들의 말을 인용한다. 사회학자 스티브 풀러는 학자들이 알아듣지조 못할 용어로 빈약한 통찰을 값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언론인이자 퓰리처 수상자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학계가 "통찰을 복잡하고 따분한 산문으로" 암호화하고 "대중이 소지하지 못하도록 이중 잠금장치를 걸어놓은 후, 이 까다로운 말 잔치를 난해한 학술지 안에 숨겨버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폭로한다. 여기에다 저자 호젠펠더는 중요한 점을 하나 더 얹어 불편한 심정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양자역학이 예측 가능하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예측 가능한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은 블랙홀이 정보를 파괴하든 말든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인류 문명의 집단 지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더 관심이 있다. 그들은 은하 필라멘트(galactic filament)가 뇌신경망을 닮았는지 어쨌는지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우주가 생각을 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어서 사람이다. 그런데 또 뭐가 생각한다고? 저자의 지적은 아무리 어려운 물리학이고 이론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관심을 두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연구하고 이론을 세우고 실제 적용해 나가는 것이 어떤 학문이든 채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호젠펠더는 과학적으로 그르다고 분명하게 판정할 수 있는 주장인 ‘비(非)과학’과 구분해, 증거가 없어 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없는 가설을 ‘무(無)과학ascience’이라 칭한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초기 우주에 관한 설명이나, 양자역학의 해석에서 비롯된 다중우주 가설은 과학이 아니라 무과학에 해당한다. 호젠펠더는 물리학자들의 이론적 주장들 중 일부는 실은 과학이라기보다 믿음에 기반한 추측에 가깝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물리학 이론의 한계를 폭로한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에 앞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질문이 무엇인지, 물리학자들의 답변이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인지에 집중해 보기를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이 현대 물리학에서 과학적으로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호젠펠더는 물리학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히 공유할 가치가 있어서일 뿐 아니라, 이 지식을 우리끼지만 가지고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인간의 경험에 관해 물리학이 알려주는 것들을 물리학자들이 앞장서서 설명하지 않으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끼어들어 우리가 만들어낸 암호 같은 용어를 유사과학 증진에 써먹는다는 논리다. 양자 얽힘과 진공 에너지가 대체 요법 치료사, 영매, 약장수들이 자주 들먹이는 이론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리학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만든 난해한 말들을 그런 사람들의 헛소리와 정확히 구분하기가 꽤 어려울 것이라는 당연한 결과를 제시하면서. 그렇다고 이 책의 목적이 단순히 유사과학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적인 개념 중 어떤 것은 현대 물리학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아이디어는 현대 물리학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물리학이 우리와 우주의 관계에 관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과학과 종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를 테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 지식의 한계는 어디일까? 이런 문제들에 관해 물리학자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많은 것을 배웟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의 한계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세상을 더 많이 배울수록 한계는 계속 뒤로 물러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에 따라 믿음을 바탕으로 한 설명은 한때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우리에게 위로를 주기도 했으나 이제는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어떤 물체가 살아 있는 이유는 특별한 물질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라는 아이디어(앙리 베르그송의 '엘랑비탈')는 200년 전의 과학적 사실과 완벽하게 부합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는 점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기본 물리학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법칙을 다룬다고 한다. 여기서도 과거 100여 년 동안 얻은 지식이 믿음 기반의 낡은 설명을 대체하고 있다. 그런 오래된 설명 중 하나는, 의식이 존재하려면 여러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 외에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엘랑비탈 같은 일종의 마법 가루가 물체에 특별한 성질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이것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시대에 뒤처지고 쓸모없는 아이디어라고 저자는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은 모두 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과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2장 〈물리학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밝혀낼 수 있는가〉, 3장 〈물리학적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4장 〈우리는 그저 원자가 든 자루일 뿐인가〉, 5장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 6장 〈물리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7장 〈우주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8장 〈우주는 생각하는가〉, 9장 〈인간은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등이다. 또 4개의 인터뷰 내용도 게재돼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각 장의 뒤에 내용에 부합하는 학자들과의 인터뷰를 저자가 풀어 썼다. 2장 뒤에는 팀 파머와의 「과연 수학이 전부인가」, 4장 뒤에는 데이비드 도이치와의 「지식은 예측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그의 말을 경청했다. 세 번째 인터뷰는 로저 펜로즈와의 「의식은 연산 가능한가」란 제목으로 마지막 네 번째는 자야 메릴리를 통해 「우리는 우주를 창조할 수 있을까?」란 내용을 실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란 제목의 〈에필로그〉를 마저 읽으면 물리학 문외한 독자들도 현대 물리학의 위치와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고, 현대 물리학 이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한 번 정독을 한다면 독자들의 물리학에 대한 지식은 물론 방향과 현 단계, 그리고 기존 이론들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인터뷰 「지식은 예측할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인터뷰에 응한 데이비드 도이치는 양자 연산 분야에 중대한 기여를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7년에는 그 공을 인정받아 국제이론물리학센터(ICTP)에서 디랙 메달을 받으면서 그의 길고 긴 수상 목록에 하나를 더 보탰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사실 저자는 도이치와 양자 연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고 밝힌다. 그의 대중 과학서인 『실재의 구조』와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옥스퍼드대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바라보는 세상』을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는 자기 생각의 논리와 근거를 신중하게 제시할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선 과학자로서 현대 기술보다는 과학 지식의 성장에 더 관심이 많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이득이 되는지 그리고 애초에 과학적 지식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 점이 놀랍고 반가웠다고 털어놓는다. 데이비드는 환원주의의 한계를 상담할 적임자로 보았다는 것이다. 호젠펠더는 이론적 환원주의와 존재론적 환원주의에 대한 질문으로, 도이치에게서 "둘 다 철학적 원리로서는 틀렸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양자중력 이야기, 입자물리학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고 주제 「지식은 예측할 수 있는가」에 대해 "누구도 앞으로 지식이 어떻게 성장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을 이 책에 기록하고 있다.



저자 호젠펠더는 이 밖에도 자연상수들이 왜 지금의 값인지를 알아내려는 시도나 관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평행우주를 끌어들이는 이론들은 수학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과학으로 변장한 종교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에필로그〉 참조). 특히 물리학자들은 수학을 도구가 아니라 실재라고 인식하는 오류에 빠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리학자들의 그런 탐구나 가정들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과학이라고 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 책은 다른 물리학자의 견해도 담았다는 점은 앞서 독자가 언급한 대로다. 근본적인 설명을 찾는 물리학자들은 종종 몸과 마음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원론, 합성체는 구성 물질의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환원주의, 구성 요소 수준에서 정의될 수 없는 상위 계층의 성질이 나타남을 인정하는 창발성 등 철학적 개념에 닿는다. 호젠펠더는 과학과 철학, 종교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물리학자들의 생각을 듣는다. 이 책은 물리학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좋은 과학적 설명이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저서다. 


저자 : 자비네 호젠펠더(Sabine Hossenfelder)


197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으며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애리조나 대학교,UC 샌타바버라, 페리미터 이론물리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노르디타 연구소 조교수를 거쳐 현재 프랑크푸르트 고등과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표준모형, 현상학적 양자중력이론, 일반상대성이론 등에 관한 7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2006년부터 과학블로그 Backreaction에 물리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포브스』, 『네이처』, 『피직스 투데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퀀타 매거진』 등에 기고했다. 남편과 두 자녀와 함께 하이델베르크에서 살고 있으며, 유튜브,SNS, 블로그 등을 통해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역자 : 배지은


서강대학교 물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휴대전화를 만드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을 전공하고 소설과 과학책을 번역하고 있다. 『엿보는 자들의 밤』, 『밤의 새가 말하다』, 『열흘간의 불가사의』, 『최후의 일격』, 『꼬리 많은 고양이』, 『퀸 수사국』,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아파트먼트』, 『물질의 탐구』, 『입자 동물원』,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양자역학지식 50』, 『전자부품 백과사전』(전 3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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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배자 - 사피엔스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예지의 과학
토머스 서든도프 외 지음, 조은영 옮김 / 디플롯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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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든지 어렸을 때부터 시간의 중요성을 배워왔다. 매일 매일 스승으로부터, 부모로부터 듣고 배웠다. 시간은 우리 일생의 모든 일에 관여한다. 공부든, 놀이든, 또 일이든 모두 시간으로부터 비롯된다. '시간은 금이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시간이다' 등 수많은 격언을 마음속에 새기며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말에 신뢰감을 가졌다. 대학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는 '4당5락'이란 말로도 스스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4시간 자는 사람은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을 새기고 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 동안 배우고 뼈에 새긴 말들에 들어 있는 '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알아보지 않았다. 그냥 주어진 것이기에 뜻 깊고 의미 있는 데 써야 한다는 '시간'의 속성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것을 배우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 채 수십 년을 살아왔다. 이젠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에 따라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란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 책 『시간의 지배자』는 인간이 가진 '예지력'에 관한 저서다. 또 예지력으로 진보된 문명을 만들어내고 뒤로는 많은 해악을 남기기도 했다. 예지력이 미래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하는 능력일 텐데 '시간'과는 무슨 관계일까? 공동 저자(토머스 서든도프, 조너선 레드쇼, 애덤 벌리, 이하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예지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기회와 위협을 준비하게 한다."고 전제한 뒤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세상이다. 인공지능의 도래로 매일 목도하는 숨 가쁜 변화와 그로 인해 가능해질 예측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고 선언한다. 왜 지금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중요한가? 인간은 수백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현대의 문명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의 이런 능력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인간의 예지력은 독보적으로 강력하고 다른 동물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앞일을 예측하고 계획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예지력이 지닌 힘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한계를 스스로 인지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간은 현재에서 출발하는 여러 버전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으므로 주어진 선택권을 얼마든지 저울질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위기 극복 능력과 문명 창조 능력이 예지력에 의한 여러 버전 중에서 가장 좋은 버전을 선택하는 등 삶의 궤적을 자신이 통제한다는 자유의지를 느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저마다의 타임머신〉, 2장 〈미래의 창조〉, 3장 〈자아의 발명〉, 4장 〈뇌가 하는 일〉, 5장 〈다른 동물은 그저 현재에 갇혀 있는가〉, 6장 〈4차원의 발견〉, 7장 〈시간여행의 도구〉, 8장 〈우리 시대의 시간〉 등이다. 1장에서 저자는 5,000년 전에 알프스 산맥에 오른 한 사내가 추위에 얼어죽은 채 1991년 발견됐다. 그의 시체와 함께 발견된 옷과 칼, 모자와 신발, 석기 도구와 불을 지필 때 쓰는 황철석 등으로 미루어 우리는 많은 것을 알아낸다고 저자는 말을 꺼낸다. 이 사내의 시체는 부상당한 채였으며 그가 지닌 물건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우선 그가 부상당한 채 산에 오른 점에 관심을 둔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골절된 손가락 등을 통해 확인한다. 또 그를 추적할지 모르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칼도 발견된다. 추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옷과 신발, 그리고 불을 일으킬 수 있는 황철석도 발견됐다. 

저자는 이 사내와 물건들로부터 과거의 경험을 되새겨 미래에 요긴하게 쓰일 것들을 미리 짐작하는 우리 종의 보편적 능력을 예시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정신은 사실상 일종의 타임머신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한 번 더 경험하고,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없어도 미래를 상상한다는 설명이다. 인간은 정신의 시간여행자이기에 사내가 그랬듯 미래를 자신이 계획한 대로 설계하며 기회와 위험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예지력(foresight)'은 어쩌면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일 것이란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지구의 수명을 약 46억 년으로, 최초의 생물체인 원핵생물이 약 38~41억 년 전에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구상 생명의 역사를 대략 40억 년으로 상정하고 이를 다시 한 달로 축소해본다면, 최초의 영장류는 불과 10시간 전(약 6000만 년 전)에 진화했으며, 인류가 현생 침팬지와 마지막으로 조상을 공유하고 갈라진 시점은 고작 60분, 그러니까 고작 1시간 전(약 600만 년 전)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마지막 1시간 만에 일어난 격동은, 그 이전의 모든 변화를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다. 특히,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는 불과 2분 전에 등장했고, 30초 전에 동굴 벽화를 그렸고, 6초 전에 최초의 달력을, 2초 전에 최초의 컴퓨터를, 0.5초 전에 시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인류는 로켓을 타고 우주를 탐험한다.



2006년 옥스퍼드대학교 국제생물의학센터와 영국왕립과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발제자로 참여했던 토머스 서든도프는 인간과 동물의 격차에 관한 세계적인 연구자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격차가 예지력(foresight), 즉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밝혀내며, ‘멘탈 타임머신(mental time machine)’ 능력이 인간 진화의 핵심적인 원동력이었다는 개념을 최초로 제안했다. 인간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미래를 설계하며, 다가올 기회와 위험을 대비하는 능력이 꾸준히 진화되어온 결과가 현재 문명이라는 말이다. 예지력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사피엔스가 예지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이래 지구는 놀라운 진보와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알프스 설산에서 발견된 사내도 자신이 등에 화살을 맞고 5,000년 동안 얼음 위에 엎드려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숱하게 닥치고, 예상한 일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멘탈 타임머신'을 조종하는 서툰 솜씨를 두고 할 말은 많다. 인간의 역사는 가공할 결과를 초래할 엉터리 계획들이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인간은 시간을 앞당겨 볼 수 있는 대담한 기술들을 고안해왔다. 먼지, 모래, 쌀알, 연기, 재 등으로 앞일을 맞히는 점술에서부터 새, 개미, 염소, 당나귀의 행동을 보고 앞날을 예언하는 행위까지.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은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점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멘탈 타임머신이 부여한 자유의지는 자기 행동에 책임감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행동까지 판단하고 처벌, 응징하게 한다고 저자는 보았다. 이 자유의지는 예지력이 불러온 윤리적 딜레마 등 많은 난제를 해결해나가는 힘으로 작용하며, 부닥친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멘탈 타임머신은 사실상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이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복잡하고 강력한 장치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래에 관해 생각하는 힘은 확실히 강력하다. 그러나 미래에 관한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힘은 더욱 강력하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미래가 그저 나의 상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예측이 얼마나 비참한 실패로 끝날 수 있는지, 또 최선의 계획이 어떤 식으로 틀어질 수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미흡함을 보완하려고 한다."(p.37)



저자는 2장 〈미래의 창조〉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지력을 발휘한 덕분에 이제 우리는 선사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증조할아버지 세대조차 꿈꾸지 모산 운송 수단과 통신의 편안함으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바다의 썰물과 밀물은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아니라 선원들이 배를 몰고 뭍으로 올라오지 않으려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잘 알려진 주기다. 신이 내린 형벌로 보였을 지진해일도 이제는 예측 가능한 지질학적 사건의 결과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으며, 초기경보 시스템은 지진해일이 육지에 도달하기 전에 사람들이 높은 곳으로 대피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준다. 모두 예지력에 의한 진보된 실천을 꾸준히 한 결과다. 

이에 비해 우리는 인류의 진보가 빚어낸 결과가 분명한 여러 해악들도 인지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실 저자의 이 주장은 단순히 인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다. 지금 지구의 숲은 불에 타고 있고, 빙하는 녹고 있고, 감당하기 힘든 수의 생물 종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원하는 것을 무한정 캐내면서 우리가 지나간 길 뒤로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만 남긴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는 가장 깊은 심해의 해구부터 대기 바깥에서까지 발견된다. 인간이 지구에 끼치는 영향이 극한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과학자들은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선언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의 핵무기 실험이 지구 전체의 암석층에 방사성 원소의 흔적을 남겨 이 시대의 줄발점을 표시했다. 오염, 기후변화, 대량 멸종에 관한 수많은 과학적 예측이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기로에 있음을 알린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온 예지력을 실험할 적기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인지하기에는 이미 충분한 설명이 된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작별 인사를 나누는 유일한 종인 인간은 ‘내일’이라는 개념을 발명해내고, 진화의 승자가 되며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인간은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예측하며 현재를 살아냈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이 일종의 ‘멘탈 타임머신’이라는 점을 밝혀내며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의 가장 뜨거운 주제인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과학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6장 〈4차원의 발견〉에서 "‘내일’은 하룻밤 사이에 발명된 개념이 아니다"(p.196)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가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정교한 수준의 예지력을 발휘했다는 증거는 180만년 전 구인류인 호모 에릭투스가 제작한 양날손도끼에서 발견되었다. 양날손도끼는 적합한 원자재를 선택하고 대칭 모양으로 만들기 위한 정밀한 타격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제작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미래를 보았고 도구 제작 기술을 공동체가 함께 연마했으며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현생 인류는 5만년 전에 운반 도구를 발명했으며 4만 년 전부터 아름다운 동굴 벽화나 섬세한 조각품을 창작했다. 정교한 계획, 혁신, 추상적 사고, 상징의 사용으로 요약되는 ‘행동 현대성(modern behavior)’이 시작된 것이다. 예지력이 없으면 정교한 계획을 세울 수 없으며, 추상적 사고와 상징을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지력은 혁신과 협력을 촉진하며 사회적 힘을 촉발시켰다. 즉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의 개념을 발명해낸 인간 사회는 비약적인 문화적 진화를 이뤄냈다.

7장 〈시간여행의 도구〉에서는 인간은 매일 아침저녁 같은 장소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강조한다. "7000년 전 독일의 고제크 사람들은 천문학 관측소를 만들어 태양의 일출과 일몰을 추적하며 내일, 한 달 뒤, 1년 뒤에는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냈다. 4000년 전 바빌론 사람들은 12개월로 구성된 달력을 발명했으며 다양한 문화권에서 모래시계나 물시계 같은 최초의 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자와 쓰기를 발명한 인간은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을 합의하고 단기든 장기든 일정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의 발명은 거래를 확장시키고 깨지기 쉬운 협력의 약점을 보완해냈다. 문자, 쓰기, 달력, 시계와 같은 멘탈 타임머신의 도구들은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며 혁신을 견인했다. 동물에게는 불가해한 세계를, 인간은 창조해냈다."(p.239))

이 책은 인간의 예지력이 숨 가쁘게 열어젖힌 흥미진진한 진보의 역사를 톺아보고 인류세의 재앙을 예견하며 예지의 과학을 펼쳐낸다.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선 반드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현재를 살아내기 원하는 모든 시간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로서 훌륭한 역할을 위해 쓰였다.



저자는 인류세를 살아가는 사피엔스의 예측 가능한 타임라인은 무척 절망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인간의 예지력은 도리어 인류세의 재앙을 앞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예지력, 즉 멘탈 타임머신 능력에 달려 있다고 이 책을 통해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공멸의 디스토피아를 내다보며 멘탈 타임머신 능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에 관한 몇 가지 제안을 이 책에서 덧붙인다. “기후변화, 핵전쟁, 생명공학적 팬데믹은 우리 스스로 초래하여 직면하게 된 위협의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고 단언하며 지금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저자 : 토머스 서든도프(Thomas Suddendorf)

퀸즐랜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오클랜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 정신의 본질과 진화에 관한 연구로 호주사회과학원, 호주심리과학협회, 미국심리과학협회 등에서 여러 상을 수상했다. 자아, 시간, 정신의 이해에 중점을 두고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을 연구하며, 그의 논문은 《사이언스》 《가디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뉴사이언티스트》 등의 매체에 실렸다. 2006년 옥스퍼드대학교 국제생물의학센터와 영국왕립과학연구소가 함께 개최한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심포지엄에서 인류학·생물학·신경과학·의학·뇌과학·기술과학·철학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발제자로 참여했다. 첫 책 《간극: 우리를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것의 과학(The Gap: The Science of What Separates Us from Other Animals)》(2013)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근본적 이유에 대한 과학적 탐구로, 《퍼블리셔스 위클리》 《가디언》 〈BBC〉 등으로부터 올해의 과학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저자 : 조너선 레드쇼(Jonathan Redshaw)

퀸즐랜드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인간과 동물이 미래를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연구하며 멘탈 타임머신의 본질과 진화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2021년 미국심리과학협회로부터 라이징스타어워드(Rising Star Award)를 수상했다.


저자 : 애덤 벌리(Adam Bulley)

하버드대학교와 시드니대학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예지력과 의사결정에 관한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영국 국무조정실 산하의 행동통찰팀(Behavioral Insights Team, BIT) 수석 고문으로 일하며 정신건강, 장애, 고용 등에 관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역자 : 조은영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대학원과 미국 조지아대학교 식물학과에서 공부했다. 어려운 과학책은 쉽게, 쉬운 과학책은 재미있게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파브르 식물기』 『바이러스, 퀴어, 보살핌』 『암컷들』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언더랜드』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0퍼센트 인간』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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