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나잇 욥선생
최주석 지음 / 한사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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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인물 욥이 등장해 삶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위인들의 아포리즘을 통해 여섯 가지 문장으로 나눠 주인공의 깨달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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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욥선생
최주석 지음 / 한사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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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비종교인으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 책 『굿나잇 욥선생』의 표제어 나오는 '욥'은 성경 속 인물이라는 것말 알 뿐 어떤 인물인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은 소설책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읽기 시작했다. 두꺼운 소설책이라면 추리나 공포·스릴러 물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여름철에는 잘 읽지 않는다. 우선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 성경 속의 인물을 등장시켜 종교를 널리 알린다는 의미에서 종교서, 혹은 전도서에 가깝다. 욥이라는 인물과 저자 최주석의 소개를 보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욥(Job)'은 가혹한 시련을 견뎌내고 믿음을 굳게 지킨 인물로서 알려진 구약성서 〈욥기〉의 주인공이다. 노아·다니엘과 더불어 예로부터 의인(義人)의 전형으로 꼽힌다고 두산백과는 풀이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욥은 잇따른 재난으로 재산과 열 명의 자녀를 모두 잃고 건강마저 잃었지만, 하느님을 저주하라는 아내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문병하러 온 세 친구는 그의 고통과 고난이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이 고난받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절망 직전에 놓이는데, 이때 하느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어 하느님의 주권적 힘을 깨닫게 하였으므로 깊이 회개한다. 하느님이 그의 병을 고치고 재산도 풍성하게 하는 축복을 주었다. 독자가 알고 있는 바와 다른 점은 욥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독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욥기〉는 욥의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의 주(主)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한 구약성서의 한 편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총 42장으로 되어 있으며, 〈잠언〉 〈전도서〉와 함께 '지혜문학'을 이룬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족장시대, 즉 아브라함 시대 직후에 있었던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주제는 고통을 통하여 인격과 믿음을 정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욥은 고난받는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의 한 모델로서 국가적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동시대인들에게 하느님(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좋은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도록 격려한다. 그리고 의인이 경건한 신앙적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고 의로운 하느님을 믿으면 반드시 하느님의 복과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해준다.



『라이프성경사전』에는 〈욥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적고 있다. 주인공인 욥, 그리고 욥을 찾아온 세 친구를 막론하고 당시 사람들은 고난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다는 인과응보적인 형벌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비록 〈욥기〉 끝부분에 등장하는 엘리후가 고난에는 연단적 성격이 있다는 다소 진보적인 견해를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32-37장) 고대인들의 고난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욥기〉에는 고난의 원인이 무엇이며, 왜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내리셨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결론 부분에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초월성과 절대 주권만이 소개될 뿐이다(38-41장). 따라서 〈욥기〉는 어찌보면 고난의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기보다 죄를 지어 고난을 받는 자이든, 아무 이유 없이 고난에 직면한 자이든 상관없이 세상 모든 인생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한다 할 수 있다고 풀이한다.

〈욥기〉의 저자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첫째로 본서의 제목이 주인공 ‘욥’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저자를 욥으로 보는 견해. 둘째, 유대 전승이나 탈무드를 근거하여 모세로 보는 견해. 셋째, 본서 28장과 잠언 8장의 문체가 흡사하다 하여 솔로몬으로 보는 견해. 넷째, 문체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예레미야서와 비슷하다 하여 예레미야로 보는 견해. 다섯째, 본서와 시편 88편의 분위기가 유사하다 하여 시편 88편의 저자인 헤만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저자가 인간의 고난 문제 등에 매우 예민하고 종교성이 심오한 사람이며, 〈욥기〉가 세계 문학의 걸작 중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문학성을 지닌 자이고, 동시에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저자 최주석은 청년시절,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그 경험을 계기로 삶에 대해 고난에 대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서울의 호텔에서 호텔리어로 10년간 근무했다. 고난에 대한 많은 철학과 아포리즘이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 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욥을 통해 고난에 대한 진리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욥기를 탐독했다. 〈욥기〉라는 성경의 텍스트와 폴 투르니에, 빅터 프랭크, C.S루이스, 스캇 펙, 애나 렘키, 볼프람 슐츠 여섯 명의 학자의 사상, 그리고 양자역학의 아이디어가 교집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교집합을 이야기로 풀고 싶었다. 이 책에는 이 인물들뿐만 아니라 많은 위인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크론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호텔에서 근무하지만, 크론병으로 일상과 직장생활, 모두 원만하지 못하다. 결혼해 아이까지 있지만 오랜 병으로 직장 생활도 가정 생활도 위기에 닥친다. 병원의 처방으로 약을 먹어가며 꾸준히 치료하지만 의사마저 장담하지 못한다. 처음 크론병을 진단받았을 때 대학병원 교수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병으로,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를 담당하는 모든 장기에 염증이 나타날 수 있으며 악화와 호전을 반복할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와 함께 "설사랑 복통이 대표적인 증상인데 종종 관절염도 동반하고, 소화기관을 포함해서 전신에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의사에 따르면 이 병에 완치란 게 없다. 더 악화된다면 대장의 일부를 절제해야 할 수도 있다. 이 지긋지긋한 복통과 하루에도 화장실을 수십 번 드나드는 생활을 평생해야 한다니···. 천벌이라도 너무 가혹한 형벌이다. 이런 생각에 몇 달간 우울하고 불안에 시달려 정신과에 간 적도 있다. 

11년차 호텔리어지만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기에는 이미 틀린 것 아닌가? 호텔리어 11년 차인데 아직도 '대리' 직급을 못 벗어났다. 동기생들은 벌써 과장인데, 자신만 유독 진급이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으니만큼 당장 그만두기도 어렵다. 심지어 총지배인 등 상사들에게도 이미 낙인이 찍힌 셈이다. "오노남 대리, 호텔에서 근무한다는 사람이 왜 이리 표정이 어두워? 우리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사람이 좀 밝아야지."(p.13)

호텔 근무에는 이미 마음을 비워놓고 때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병으로 인해 앞을 보면 임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뒤를 보면 나만 의지하는 가족들이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긴 스펠링의 약 이름이 적힌 처방전만 내놓을 뿐 별 조언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출근길에 또 소식이 와서 화장실로 직행해서 휴대폰으로 동기인 박 과장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굿모닝, 미안한데 회의 좀 준비해 줄 수 있어?" 간신히 급한 일을 부탁해놓고 주인공의 눈에 들어온 화장실 안쪽 벽과 문에 붙어 있는 '장기 삽니다. 목돈 필요하신 분. 010-3422-OOOO','남남북녀. 미모의 탈북 여성과의 만남 1566-OOOO' 그때 못 보던 금박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용지에 궁서체의 글자가 인쇄된 명함이 발꿈치에 떨어진 것을 발견한다. '인생상담소 신촌역 문화공원 안'.



그날로부터 일주일 후, 지난 주 신청한 6개월의 병가가 처리됐다. "오 대리, 먹여 살릴 가족이 있는 사람이 자기 몸을 잘 돌봐야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거야." 위로인지 연기인지 모를 이사의 말을 뒤로 하고 신촌 주점들이 즐비한 거리를 통과하다 가운데 자리 잡은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공원 한쪽에 있는 공중화장실에에서는 몇몇 10대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오 대리는 그 무리 속에 딸아이가 있나 싶어 슬쩍 쳐다본다. 

"공원 안에는 비틀어져 가는 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고, 낙엽이 바람에 날려 나무를 빙빙 휘감는 모양새다. 저쪽 벤치 한쪽에는 노숙자 차림의 아저씨가 보름달 빵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공원 다른편 구석에는 자그마한 천막이 있었다. 천막 입구에는 '인생상담소'라고 어설프게 프린트한 용지가 코팅된 채 걸려있었다.(p.18) 

주인공 오 대리는 그곳에서 욥을 만난다.(자신이 한 소개이지 그것을 증명할 만한 아무것도 없다) 첫 만남에서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그의 모습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인의 복장과는 달랐다. 푸른색 계통의 양복 차림. 매끈한 회색 넥타이에 금색 넥타이핀. 방금 광을 낸 듯한 번쩍이는 검은 구두. 90년대 배우 안재욱이 유행시켰던 한쪽 눈썹을 가리는 길쭉한 앞머리. 왼쪽 가슴팍에는 땡땡이 무늬의 행거칩. 동그란 안경테와 살짝 검은색이 들어간 컬러 렌즈. '이 사람 뭐지.'

이 사람은 자신을 '욥'이라고 소개한다. "마음이 힘들어서 이곳을 찾으셨군요.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곳은 마음이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오 대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 설명을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 욥은 대뜸 "알 것 같다"는 대꾸다. 오 대리는 말을 이어간다. "친구들은 절 위로해 준답시고, 너보다 힘든 사람 많아, 힘내. 이런 소리를 하는데 타인의 고통과 비교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하긴 싫습니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섞어 말을 흘린다. 욥의 대답은 "그렇죠. 전 인류의 고통보다 자신의 치통이 힘든 법이니깐요." 그리고 사내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들었다는 최고급 시빗 커피라도 마시는 것처럼 종이컵을 코에 대고 향을 맡으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몇 문장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p.31)



이후 이 책은 오 대리와 욥의 대화를 통해, '인생을 바꿀 몇 문장'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과정이다. 주로 인생을 바꿀 문장에 대해 욥이 설명하고 주인공 오 대리는 듣는 입장이지다. 문장은 ① 울 시간이 필요하다 ②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의미가 찾아온다 ③ 확성기 소리를 들어라 ④ 감정은 무시해야 할 때가 있다 ⑤ 근심과 불안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라 ⑥ 나의 의식이 현실을 창조한다 등이다. 이 아포리즘들은 이 책의 각 장(章)의 제목에 들어 있다. 욥이 자신의 친구들이라며 소개하는 위인들이 남긴 말들이다. 욥은 이들의 아포리즘을 들려주며 누가 언제 이 말을 했는지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오 대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필요할 경우 이 아포리즘을 남긴 주인공들의 고난과 운명적 상황도 상세하게 들려준다. 이 아포리즘을 남긴 위인들은 모두 욥의 친구로 등장한다. 물론 욥의 주장이지만. 독자는 비종교인이라서 〈욥기〉를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때문에 이 아포리즘들이 〈욥기〉에 담긴 내용인지, 욥의 말대로 위인 친구들의 아포리즘인지 분별할 능력이 없다. 중요한 것은 〈욥기〉의 내용과 이 아포리즘과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오 대리는 욥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와 고통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욥기〉와 욥을 통한 위인들의 아포리즘에 대해 이들이 겪는 고난과 고통을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이 점은 저자가 〈욥기〉나 이들과 관련 있는 위인들에 대해 미리 깊은 탐구가 있었을 것으로 예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주인공 오 대리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과의 갈등, 공황장애 등 복잡한 문제가 직면해 있지만 욥과의 만남을 통해 삶에 대한 시각을 갖게 된다. 고난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성장과 깨달음의 기회로 인도한다는 사실도 각인한다. 

이 책은 위인들의 아포리즘을 통해 신앙과 철학적인 질문들도 밀도 있게 짚어낸다. 주인공 오 대리는 욥과의 대화를 통해 왜 고난이 존재하는지, 신이 왜 고난을 막지 않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던진다. 이 사실은 〈욥기〉에 ‘어찌하여 의로운 자가 고난을 당하는가? 어찌하여 악인이 형통한가? 과연 하나님은 의로우신가?’ 등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과 결을 함께한다. 특히 이 책에서 욥의 묘사는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욥의 사명을 대신하고 있다.



저자는 휴직한 지 석 달 만에 안내테스트가 아닌 총무팀으로 복직했다. 호텔 비품 구매 업무를 시작했고 입사 후배가 총무팀장이 된 것만 빼고는 불편할 게 없었다. 배의 통증도 덜하고, 의사는 관해기(병증이 완화된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완치는 힘들어도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면서 최대한 호전 상태를 길게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게 의사의 조언이었다. 병세가 악화될 때는 호전될 때를 기다리고, 호전의 상태일 때는 병의 증세가 나빠질 때를 걱정하기보다 일상을 감사하고 누리기로 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양자물리학에 대한 사내의 특강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몇 년이 될지는 몰라도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 중이라고하니 희망을 품어본다. 

어느날 신촌문화공원을 지나며 문득 사내 생각이 났다. 그 사내가 정말 성경 속 인물 욥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GEMINI라는 구글이 개발한 AI에 몯고 싶었다.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GEMINI 질문 창에 입력했다.

성경 속 인물 '욥'이 지금 이 시대에 신촌문화공원 천막 안에 존재할 수 있는가?

GEMINI는 잠시 고민이나 하는 듯 멈칫하더니 금세 답을 내렸다.

욥이 지금 이 시대에 신촌문화공원 천막 안에 존재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양자역학에서는 개별 입자는 동시에여러 상태에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욥이 지금 이 시대에 신촌문화공원 천막 안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가 신촌문화공원 천막 안에서 욥을 만난다면, 그것은 욥이 지금 이 시대에 신촌문화공원 천막 안에 존재하는 상태가 선택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통해 얻은 지혜와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것입니다.(p.136~137)


저자 : 최주석


청년시절,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경험을 계기로 삶에 대해 고난에 대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밥벌이’에 도움 안되는 인문학, 종교철학 관련 책을 읽으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NGO를 거쳐 서울의 호텔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고난에 대한 많은 철학과 아포리즘이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작가는 성경에 등장하는 욥을 통해 고난에 대한 진리를 찾고 싶었다.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욥기를 탐독했다. 욥기라는 성경의 텍스트와 폴 투르니에, 빅터 프랭크, C.S루이스, 스캇 펙, 애나 렘키, 볼프람 슐츠 여섯 명의 학자의 사상, 그리고 양자역학의 아이디어가 교집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교집합을 이야기로 풀고 싶었다. 평범한 월급쟁이로서 노동하며,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문학이 밥먹여 주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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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브렉시트까지, 하룻밤에 읽는 교양 세계사 인생 처음 시리즈 2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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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독자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역사 수업 때, 대학입시를 위한 역사를 배웠을 뿐 진정한 의미의 역사를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7080세대로 일컬어지는 세대는 지금 중년이 되었지만 군부 독재의 기억으로 점철돼 있다. 당시에는 역사 수업뿐만 아니라 전 과목의 수업이 "대학입시를 위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당시 학교 다닌 분들은 느꼈겠지만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도 식민사관이라 하여 일본의 시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세계사 역시 서양 문명의 시각에서 기술된 것을 교과서로 삼았다. 역사 담당 선생님들은 대입 위주로 시험에 나올 만한 사건, 내용만을 열심히 가르쳤다. 왜 역사를 배우는가?에 대한 질문도 없었고,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없었다. 그저 밑도 끝도 없이 중요하다는 것은 암기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지루함을 느꼈지만 당장의 대입 때문에 마지못해 수업을 듣는 셈이다. 

그 세대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인문 교양 책을 접할 수 있었다. 거기에 꼭 들어갔던 두 권의 역사 책이 기억난다. 하나는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 What is history?)란 책으로 E. H. 카(Edward Hallet Carr, 1892∼1982)의 역사이론서 혹은 역사철학서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널드 J.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역사의 연구』다. 전자는 책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남겼다. 카는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이며 따라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역사가는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그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 즉 역사가의 관점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시사상식사전) 

후자는 이전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사관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유기체적인 문명의 주기적인 생멸이 역사이며 또, 문명의 추진력이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과 '대응'의 상호 작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이후의 전통 사학에 맞서 새로운 역사학을 개척했다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토인비는 그리스 이후 쇠퇴하였던 역사의 반복성에 빛을 부여함으로써 고대와 현대 사이에 철학적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었다. 문명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포착하고, 그 생멸(生滅)이 역사이며, 그 생멸에 일정한 규칙성, 즉 발생·성장·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26개의 문명권을 병행적·동시대적으로 나열하고, 이들 모두가 규칙적인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구명하였다. 토인비는 또 문명의 추진력을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과 ‘대응’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보았다. 이 밖에 ‘내적·외적 프롤레타리아트’, ‘세계교회’ 등 특수한 용어에 의한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데, 19세기 이후의 전통사학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개척한 점에서 크게 주목되었다.(두산백과)



모든 학문은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발전을 꾀할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과장 왜곡 없이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규명된 후 평가된 사실을 가르쳐야 배운 사람들이 역사 발전의 방향으로 학문을 지속할 수 있다. 지금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사실 이는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사관의 잘못이라고 오류를 지적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역사를 대학입학 시험용으로 배우다보니 역사의 흐름에는 둔감하고 단편적 지식만 외워 군데군데 기워진 역사관이 형성되어 있어서인지 요즘 출판된 역사 책을 읽어보면 과거 학창 시절에 얼마나 앝은 역사를 배웠는지 실감난다. 이젠 우리도 역사를 보는 눈이 많이 높아지고 깊어졌다는 점만으로 씁쓸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과거 잘못된 역사 기술은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나간 사실을 안다는 즐거움보다는 잘못된 것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잘 짚어내는 일이라고 독자는 말하고 싶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잘못된 역사가 많다. 외침을 받았을 때나 식민지로 전락해 비참한 생활을 해온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독자의 주장은 이를 까발려 스스로 수치심을 자극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떳떳하게 행했던 일과 수치스러웠던 기억들까지 모두 기억해서 남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후손들에게 해야 할 첫 번째 책무다. 돈 잘 벌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앞서 언급한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역사는 '누가 기록했느냐'보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가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독자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 책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도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은 세계사를 기술한 것이어서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유사 이래의 인류사는 6,000년이란 세월을 건너 우리 손에 들어온 기록들이다. 인류가 6,000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에 중점을 두고 생각을 해보면 역사는 지루할 틈이 없다. 전쟁 중심이나 권력자 중심의 역사는 지루하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 바라보면 역사는 흥미롭기까지 하다. 시간과 인간의 관계가 문명에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인류 역사 최근 6,000년은 어떻게 보일까. 이 책은 6,000년 동안 인류의 삶을 '문명'이란 핵심어 초점을 맞췄다. 당연히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는 그대로 '스토리'가 된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앞선 문명의 주인공은 서양(서유럽) 중심의 문명이라고 한다.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들 문명의 기원을 그리스·로마제국에 두고 있다는 말도 폄훼할 이유가 없다. 실제 이 책에서도 조그만 한 도시에 불과한 로마가 제국이 실현되기까지 반도 한 구석에서 500년이 넘는 세월을 숨죽이며 살았다. 그리고 절제된 생활과 부지런함으로 먹을 것을 챙기고 개인들의 힘을 키웠다. 앞선 문명을 배우기 위해 그리스를 수시로 오가며 배웠다. 좋다고 판단되면 따라 하기도 했다. 인구도 많지 않은 나라가 대제국을 건설하고 2,000년 이상을 끌어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독자들은 책에 기술된 내용만으로 생각을 더하면 로마가 대제국으로 번성한 원인이 되는 키워드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집필 취지도 같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아닌가? 이 책은 직접적으로 지적하진 않지만 로마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했느냐로 독자들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또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생각을 더하여 답을 찾아내도록 역사적 기록에 근거해 제시해준다. 로마 제국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은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을 테니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는 역사 기술 방법은 옳지 않다. 그냥 반찬과 밥을 지어 밥상에 올려놓는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객관적 사실만 올려놓아도 관심 있는 독자들은 거의 모든 저자의 의도를 알아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은 잘 기술된 세계사 입문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핵심 내용만 뽑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면 된다. 이 책에는 모두 63개 핵심어가 나온다. 이것만 제대로 알 수 있다면 6,000년의 세계사를 금세 따라잡을 수 있다. 저자 톰 헤드는 인문학 박사이자 역사 스토리텔러라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와 장소로 초대해 식사를 제공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로마 제국 등 세계사의 단골 소재는 물론이고 멕시코의 비밀스러운 올메카 문명과 아프리카의 중세 유적 그레이트 짐바브웨 등 우리에게 생소했던 지역의 역사까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밥상에 올린다. 독자들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읽지 않아도 된다. 전부 다 읽어야 세계 문명사를 아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나 밥상에 올린 음식을 편식을 하다 보면 자칫 영양 불균형으로 균형 잡힌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 가끔은 먹기 싫은 음식도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한다. 사실 못 먹어봐서 맛을 모르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현대 문명사로 들어오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반복되는 인종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 이란 민주주의의 퇴보 등 오늘날의 국제 이슈까지 알차게 담았다는 증거다. 세계사에서 꼭 들여다봐야 할 현대사가 생략된 채 책을 썼다면 일반 식당에 가서 조선시대 밥상을 차려줄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세계사의 전체 흐름이 머리에 들어온다. 사진이나 지도 등 다양한 시각 자료를 함께 게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120여 개의 컬러 이미지와 지도는 주요 국가와 사건, 인물을 부연 설명하며 역사의 현장을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 본문 중간중간 삽입된 ‘한 걸음 더’라는 팁 박스는 세계사 지식뿐만 아니라 철학 사상, 국제 이슈, 인문 교양까지 다루어 더 알고자 하는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것이다. 이 팁 박스를 잘 이용하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어떤 독자들은 미래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어떤 독자들은 기존 분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논란이나 이슈가 되는 이유를 더듬어 보면 뜻하지 않은 역사 인식 확대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미래를 위해 알아야 할 역사」란 제목의 〈에필로그(나오는 글)〉을 통해 "스탠퍼드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1992년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 인류의 역사는 끝날 것이다'라고 썼다.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뿌리내리고 갈등과 반목이 끝나면 더 이상 기록하고 연구할 만한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 전 세계는 평화는커녕 다시 분열과 갈등의 시기에 접어든 듯하다.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여전히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2023년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연이어 발생해 무수한 희생자를 낳고 있다. 갈등의 원인을 찾고자 외신 방송과 현지 소식에 귀 기울여도 단편적인 뉴스만으로는 왜 이런 분쟁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단서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 중 상당수는 세계사와 긴밀한 연결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사를 공부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판단력과 통찰력이 생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해묵은 갈등은 냉전 시대와 북대서양 조약,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반트 지역을 차지하고자 벌였던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을 돌아보면 된다. 역사 속에서 갈등의 이유와 화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세계사는 복잡한 문제와 국제 관계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어준다. 세계사를 알면 세상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이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63개의 키워드들은 그 자체로 세계사의 지식 허브 역할을 한다. 가령 「페르시아 제국」 항목을 보면, 키루스 대왕(성경의 고레스 왕)과 조로아스터교가 현대 민주주의보다 2,500년을 앞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천했다는 사실이 그저 이슬람 제국이니 무자비한 악당일 거라는 우리의 무지와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각종 매체에 나오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페르시아 제국이 고대에 이미 생각보다 많은 선진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데 감탄하게 된다. 이렇듯, 이 책에 나온 63개의 키워드를 역사의 중추 삼아 현재 일어나는 대부분의 세계사 이벤트들을 해석할 프레임까지 얻을 수 있다.

고대 영웅 길가메시의 여정부터 중세 십자군 원정과 근대 산업 혁명을 지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세계사 속 주요 사건들의 이면에는 흥미진진한 배경과 서사가 깔려 있다. 이 이야기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되고, 온라인 게임으로 재해석되고, 교양 프로그램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세계사는 교양 지식을 쌓아주고 사고의 폭을 넓혀주지만 무엇보다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다. 만약 당신이 카이사르라면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할 것인가? 당신이 프랑스혁명을 주도했던 급진파 리더 로베스피에르라고 가정하고 어떤 정책을 폈을지 생각해보자.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미국과 소련 사이 냉전 체제가 유지되었을까? 이렇듯 세계사에서 건져낼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거대하고 근사한 콘텐츠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짓고 전달해왔다. 세계사 속 사건과 인물은 우리의 일상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주변 동료와의 스몰 톡(잡담),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의 티타임,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를 즐겁고 풍성하게 꾸며준다. 이 책은 역사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일상 속 대화를 풍성하게 꾸며주고, 더 나아가 삶의 문제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안내서 역할까지 톡톡히 할 것이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분쟁은 땅, 특히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카르타고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반도 사이의 폭 3.2킬로미터의 메시나 해협을 장악하려 하자 로마는 적의 막강한 군사력에 봉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전에 로마는 카르타고를 선제공격했고, 역사가들이 포에니 전쟁(Punic Wars)이라 부르는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지요. 포에니라는 단어는 페니키아에서 왔습니다. 카르타고가 동지중해 연안에서 건너온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나라였기 때문이지요.(p.103) - 「로마 공화국: 일곱 언덕 위에 세운 도시」 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국가였던 소비에트 연방(소련)은 러시아 제국이 붕괴된 후 건국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소련의 역사는 잔인한 탄압과 숙청 그리고 이념에 치우친 사건들로 점철되었고, 결국 해체되어 러시아와 주변국으로 나뉩니다. 그럼에도 아직 채 검증되지 않은 정치 철학 아래에서 소련은 어느 나라보다 많은 사상자를 감내하며 나치 독일을 막아냈고, 힘과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미국과 대적하며 40년의 냉전을 버텨내기도 했습니다.(p.263~264) - 「소비에트 연방 탄생: 공산주의를 표방한 국가」 중에서


그러나 이제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의 경제적, 군사적 이점은 줄어들고 있지요. 전문가들은 2050년까지 중국과 일본이 세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중앙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포함한 남반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하겠지요. 중동의 이슬람교가 유럽에서 지배적인 기독교를 뛰어넘어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p.338) - 「유럽 연합의 위기: 세계주의와 국수주의」 중에서


저자 : 톰 헤드(Tom Head)


최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 스토리텔러. 종교, 사상,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어바웃닷컴(지금의 닷대시Dotdash, 전문가 검증 기반의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에서 9년간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구독자 300만인문교양 유튜브 채널 《와이즈크랙Wisecrack》에서 작가로 일하며 《조커》, 《주토피아》, 《스타워즈》에 관한 영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을 포함해 역사, 사상, 철학 등 광범위한 주제로 30여 권의 책(공저 포함)을 펴냈고, 『칼 세이건의 말Conversations with Carl Sagan』을 편집했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꾸준히 글을 쓰며 대중에게 역사를 쉽게 알리고자 힘쓰고 있다.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태어나 뉴욕 엑셀시어 대학교에서 학사, 캘리포니아 도밍게즈힐스 주립대학교에서 인문학 석사를 마치고 호주 에디스코완대 대학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자 : 이선주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조선일보》 기자, 월간지 《톱클래스》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혼자 보는 미술관』, 『매일매일 모네처럼』, 『퍼스트맨』,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애프터 라이프』, 『상처받은 관계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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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연대기 - 술 취한 원숭이부터 서부시대 카우보이까지, 쉬지 않고 마셔온 술꾼의 문화사
마크 포사이스 지음, 임상훈 옮김 / 비아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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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주정뱅이 연대기』는 표제어처럼 '술꾼'의 역사를 다룬다. '술'의 역사는 조금 밋밋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 테니 '술꾼(주정뱅이)'으로 바꿔 훨씬 생동감 있는 제목이 됐다. '연대기(年代記)'란 단어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연대순으로 적은 기록'이라는 사전적 풀이가 맞다면 술의 역사를 되짚는다는 것은 재밌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저자 마크 포사이스의 집필 취지에 맞는 흥미롭고 유쾌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독자는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한때는 지나치게 마셨기에, 지금도 술에 관한 책은 유난히 눈에 띈다. 우리 속담에 "제 버릇 개 주랴?"와 일맥상통한다. 이 책이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을 것이란 생각은 표제어로 쓰인 '주정뱅이'로부터 드러난다. 술의 역사라고 썼다면 쉽게 눈이 가지 않았을 터, 독서욕은 표제어부터 강렬하게 일어나게 한다. 

우리도 음주가무를 즐긴 민족이었다는 것은 어렸을 때 역사 수업이나 예체능 수업 때 자주 들었다. 그만큼 '흥'이 있는 민족이란 뜻의 표현일 것이다.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인류는 '술'과 함께했다. "인류는 술과 함께 역사를 같이 했다"는 말대로 일상에서 술은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우리의 음주 문화가 지나치게 많이 마신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이는 서양의 음주 문화와 다른 태생이었다는 단순 증거일 뿐 동양이든 서양이든 관계 없이 인류는 똑같이 술과 함께 역사를 꾸려 왔다. 이 책은 4부(部) 1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포사이스는 1장 「첫째 잔-태초에 원숭이와 술이 있었다」 첫 머리에 "우리는 인간이기 전부터 이미 술꾼이었다."는 엄포성 발언으로 시작한다. '엄포성 발언'이란 말은 독자가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알코올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45억 년 전쯤에 생명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 단세포 미생물은 원시 스프 안에서 부족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이리저리 떠다니며 단당류를 먹고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설했다고 주장한다. 이 역사는 너무나 오래 전(지구의 나이와 같다)이어서 정확한 설명인지 모르겠지만 배설하는 성분이 맥주였던 셈이라는 게 저자의 친절한 말이다. 독자들도 아다시피 에탄올은 알코올의 주성분이라는 것을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대로다. 

이후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하여, 우리에겐 나무와 과일이 생겼다.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과일을 썩도록 내버려두면 자연적으로 발효가 되고, 발효는 당과 알코올을 낳는다고 한다. 원숭이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은 알코올을 즐긴다(?)는 것도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물들에게는 섭섭한 일이겠지만 자연 상태에서 알코올은 파티를 벌일 만큼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설명을 추가한다. 



저자는 1장의 서술에서 "인간은 원래 술을 마시도록 만들어졌다"고까지 주장한다. 우리는 술 마시는 일에는 정말 능숙하다. 어떤 포유류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단, 말레이시아 나무두더지는 예외라는 말로 주의를 준다. 저자는 말레이시아 나무두더지와 절대로 술 내기를 하지 말 것을 귀띔한다. 혹시 내기를 약속했다면, 체급을 참작해달라는 수작은 귓등으로도 들은 척하지 말아야 한다. 이 녀석들은 인간으로 치면 와인 아홉 잔쯤은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마시는 놈들이라는 것이다. 술 마시는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의미인 것 같다. 저자는 술 마시는 동물의 종류를 이 책의 1장에서 여러 종을 제시한다. 쥐, 코끼리, 오랑우탄, 코뿔소, 개미, 개코원숭이 등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실험과 가설을 토대로 알려준다. 

앞서 언급한 나무두더지가 술꾼으로서는 우승을 차지하지만 우리 인간도 그다지 꿀리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역시 술을 마시도록 진화해 왔다는 것. 천만년 전쯤 우리 선조들은 나무에서 내려왔다.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너무 익어서 숲 바닥에 떨어진 향기로운 과일을 좇아 내려왔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슬쩍 내민다. 이 과일에서 당분과 알코올이 듬뿍 담겨 있다는 말은 앞서 말한 대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멀리서도 알코올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이 발달했다는 주장이다. 알코올은 우리를 당분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였다고 책에 적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아페리티프 효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알코올의 맛, 알코올의 냄새가 식욕을 증가시키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독자도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 한잔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 일을 자주 경험했다. 어쩌면 그 욕구도 배가 고플 때가 되기에 당분을 섭취하려는 뇌신경의 작용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은 이렇듯 배고픔과 당분 섭취, 알코올과 당분이 들어 있는 너무 익은 과일 등이 어우러져 인간은 술을 마시도록 자연선택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 다음 인간에게는 가장 중요한 최종 진화가 남아 있었다. 술 마시는 방법의 진화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신다. 함께 마시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한다. 같이 술 마시는 사람들에게 실없는 이야기며, 비밀스런 이야기 등을 늘어놓는다. 술 취한 원숭이 가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는데, 이 모든 것이 진화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우리가 술에 취하는 걸 즐기는 이유는 이 모든 칼로리 섭취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옛날 '검치 호랑이'가 포식자로 군림할 때 인간이 혼자서 술 마시다 쓸데없는 만용으로 검치 호랑이에게 대들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너무나 뻔한 일이다.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러나 취한 사람이 스무 명이라면 배고픈 검치 호랑이라도 재고해 볼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살아남는 생존 본능에 따른 진화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물론 아직 많은 생물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 수준이지만.



이 책은 유사 이전 시대부터 술꾼의 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을 한다. 1부 〈선사〉, 2부 〈고대〉, 3부 〈중세〉, 4부 〈근대〉 등으로 나뉘었다. 1부는 앞서 말한 1장 「태초에 원숭이와 술이 있었다」와 2장 「술이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다」로 이루어져 있다. 2부엔 3장 「수메르에 강림한 맥주의 여신」, 4장 「만취한 이집트인들의 축제」, 5장 「디오니소스의 후예들과 심포지엄」, 6장 「술을 경계한 중국인들」, 7장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좋은 것」, 8장 「로마와 모욕의 술잔」이 기술되어 있다. 이어 3부는 9장 「암흑시대의 수도사와 건배」, 10장 「코란과 술이 흐르는 강」, 11장 「바이킹의 숨블」, 12장 「여관과 선술집과 에일하우스」, 13장 「아즈텍과 400마리의 술 취한 토끼」에 이어, 4부 14장 「런던을 휩쓴 진 광풍」, 15장 「럼 위에 세운 나라」, 16장 「카우보이 살룬」, 17장 「독재자와 보드카」, 18장 「금주법의 예상치 못한 결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뒷 부분에는 저자의 〈에필로그〉가 「나가며 한잔-우주에서도 우리 곁에 있을 믿음직한 한 모금」, 역자의 「옮긴이와 한잔-포사이스식 ‘빅히스토리’」가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독자는 고대 로마 제국을 좋아한다. 당시 로마 정치인들은 앞선 문화국인 그리스로부터 배우고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책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로마'는 서로마 멸망(A.D. 476) 동로마 멸망(A.D. 1453)까지 무려 2,000년이 넘는 동안 유지됐다. 서로마 멸망으로 사실상의 로마제국이 멸망했지만 기독교 공인 제국으로서 기독교권을 결속시킨 동로마 제국은 이후 1,000년 간 더 지속되었다. 로마 제국을 이르는 말로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등 정치제도 상의 개선을 거듭하며 제국을 유지했다. 강력한 군대로 시작했지만 제국이 완성된 후엔 로마 시민과 제국의 안정을 이루는 각종 법과 질서를 바로잡는 최대 제국, 최고 문명국이란 칭호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서양 문명권이라는 현재의 서유럽과 신대륙의 아메리카 등 많은 강대국은 자신들이 '로마의 후예'라고 내세울 정도로 로마는 서양 문명에 가장 강렬한 유산을 남겼다. 로마는 읽을수록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독자가 로마를 좋아하는 이유다. 많은 영화에서 로마 군단의 잔인함을 표현하지만 당시 문명으로서는 앞선 문명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과연 그들은 술을 어떻게 마셨을까. 이 책에서 찾아본다. 

8장 「로마와 모욕의 술잔」에서 짧게 기술되어 있다. 저자는 "초기 로마는 대단히 엄격했고, 술을 멀리하는 곳이었다."고 말머리를 잡는다. 로마 제국이 형성되기 전 본격 공화국 시절인 B.C. 200년경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말끔하게 면도하고, 머리를 짧게 자른 군인 스타일을 하고 다녔고, 워낙 물을 좋아해서, 이 영원한 도시에 영원히 물을 공급하기 위한 커다란 수도관을 짓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와인은 있었지만 그다지 풍부하지는 않았다. 로마에도 물론 와인의 신은 잉ㅆ었다. (자유로운 자라는 의미의) 리베르(Liber)라는 이름이었는데, 그다지 중요한 신은 아니었다. 그는 밀의 여신 케레스(Ceres)의 자식이었고, 언론의 자유와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로마인들은 만취한 사람들을 보면 얼굴을 찌푸리며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마인들은 보기에 술에 취해 해롱대는 것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수염이 덥수룩하며 호사스러운 삶을 즐기는 그리스인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당시 그리스인 들은 모든 면에서 로마인들과 상반되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로 정의되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도 술을 적게 마셨다. 1세기 역사책 『기억에 남는 행적』(大플리니우스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에그나티우스 메텔루스는 몽둥이를 들어 아내를 죽을 때까지 때렸다. 아내가 꽤 많은 양의 와인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나서서 그를 고발하지 않았고, 심지어 비난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모든 사람은 이 행동을 금주법 위반에 대한 처벌의 훌륭한 예라고 생각했다. 와인을 과도하리만큼 마신 여성은 미덕으로 향하는 모든 문을 닫고, 악으로 향하는 모든 문은 여는 법이다."(p.113)

전해지는 말에는 술을 마시다가 발각된 여성을 죄다 사형에 처한다는 법은 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 케레스가 그를 키웠다고 한다)가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에그나티우스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아내를 좀 더 빨리 죽인 것뿐이다. 여성들은 친척들을 볼 대마다 키스해야 했는데, 이는 친척들이 냄새를 맡고 술을 마셨는지 아닌지를 하나의 격언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이 모든 관습에 대한 초기 로마의 태도는 하나의 격언에 잘 요약되어 있다. '세 가지가 나쁘다. 밤, 여자, 그리고 와인이다.' 이제 우리는 기원전 186년에 일어났던 기묘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저자는 로마에서 술꾼은 배척당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술에 취한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들은 제국을 얻엇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적고 있다. 

로마제국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부 전체가 하나의 도시로 수렴되는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의 결과 지구상에 존재했던 도시 중 가장 부유한 도시가 탄생했다. 돈은 부패를 낳고, 엄청난 양의 돈은 엄청난 양의 재미를 낳는다. 그 결과는, 어린아이라도 알고 있듯이, 도덕적 타락이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로마인들은 물보다 와인을 더 즐기기 시작했고 여성들의 음주마저 권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그리스 서적을 읽고 난 후에는, 마침내 술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동성애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격랑을 불러왔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려는 대목은 술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유전학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결과이므로 강제로 금주를 시키는 사회는 비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자신의 안전은 물론 사회 안정에도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시대 여러 술꾼들의 비도덕적 타락의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진정한 의도는 권력이 술을 이용해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시대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로마 제국도 그 사례 중의 하나라는 점을 8장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제국의 전성기에 로마 제국은 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허영과 뻐기며 잘난 척하는 데 이용했으며,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또 인종 차별과 계급적 대우 등 제국의 멸망을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의 콘비비움 제도는 일종의 사교 모임인데 이 자리에 아랫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을 중심으로 좌우편으로 갈라 각각의 자리에 앉힌다. 자리 배치, 노예, 와인 품질, 와인 양, 음식, 와인 잔, 와인을 버리는 곳 등은 목적에 따라 치밀하게 준비한다. 자신은 비스듬히 누운 채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그 대화가 별로 의미도 없는 것이라서 주인에게 아부하는 자리일 뿐이라는 것. 또 집 전체는 기어다니는 노예들로 가득 찼으며 주인은 권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노예를 채찍질했다고 한다. 일일이 소개하는 일이 벅찬 듯 콘비비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페트로니우스가 쓴 『사티리콘』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17장 「독재자와 보드카」에서 1914년 차르 니콜라스 2세는 러시아 전역에서 보드카 판매를 금지했다. 1918년 차르 니콜라스 2세와 황족 모두가 예카테린부르크 시 한 지하실에서 처형되었다. 두 사실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니콜라스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논쟁은 명백히 두 편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한편에서 보자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러시아 병사들은 최근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병사들이 고래처럼 술을 마셔댔기 때문이었다. 다른 편에서 보자면, 국가 수입의 4분의 1이 알코올 세금에서 나왔다. 따라서 전쟁을 시작하면서 주 수입원을 갑자기 감축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역사가들은 보드카가 러시아 혁명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를 놓고 흥미 있는 논쟁을 많이도 벌여왔다고 주장한다. 주세가 줄어들어서 나라가 망가졌는가? 금주법은 사회적 긴장을 악화시켰는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러시아 법은 오두막에서 얼어 죽어가는 평민들에게만 적용되었다는 지적이다. 평민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던 '작은 물'을 저택에서 살아가는 부자들은 여전히 마음껏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러시아 황제와 정부에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값비싼 레스토랑에서도 여전히 보드카를 살 수 있었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만 돈이 없어 사지 못할 뿐이었다는 말이다.



러시아 독재자들은 나라 수입의 상당 부분을 보드카에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제정 러시아 때도, 혁명 후 두 번째 집권자 스탈린도 마찬가지였다는 것. 자신은 즐기지도 않고, 거의 마시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스탈린도 고위 간부들의 반정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들에게 수치심을 줄 목적으로 자신의 권력에 복종시키기 위해 술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는 로마 제국의 부자 귀족들이 그렇듯 아랫사람들의 수치심을 자극해 권력을 지키는 방법으로 기시감마저 든다. 러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지녔지만 추운 날씨로 독한 술이 인기가 있었던 듯하다. 저자의 지적을 바탕으로 출판사 측의 소개글은 러시아 권력자들은 술을 이용해 자신을 권력을 유지하거나, 혹은 자신이 실권으로 가는 길을 걸었던 많은 지도자들의 몰락을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의 권력자들은 국민이 술을 마시지 않을까 끔찍하게 걱정했다. 이반뇌제는 러시아 모든 술집을 국영화해 국가 수입을 보드카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독재자 스탈린은 공포와 더불어 과음으로 소비에트 공화국을 통치했다. 고위 간부들은 매일 밤 스탈린의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인사불성으로 술을 마셔야 했다. 술은 그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서로 반목하게 했으며, 실수로 본심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스탈린이 축출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술을 거부한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잃었다. 니콜라이 로마노프가 그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그랬다.

음주가 주는 여러 해악과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술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우리와 함께한다. 저자는 이 모순적인 관계에서 역사화되지 않은 과거의 존재들을 수면 위로 이끈다. 술은 가난한 사람의 위안이자 가난의 원인이며, 도피의 수단이자 강력한 해방의 상징이었다. 인간 사회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긴 술꾼들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취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마크 포사이스(Mark Forsyth)


작가, 언론인이자 편집인이다. 197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언어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방대한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기는 ‘수다쟁이’가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파투 내러 돌아왔다. 지금껏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크리스마스의 수상한 관습과 그 뿌리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크리스마스가 무료한 괴짜들을 위한 터무니없이 괴상하고, 특별하게 재미있는 선물! 주의하시라, 이 책을 펼친 순간부터 다시는 크리스마스를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수 없을테니.

『콜린스 영어사전』의 편집자로 서문을 썼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영어 단어의 어원을 다룬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사람을 홀려온 위대한 문장들의 비밀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문장의 맛』 등을 펴냈다.


역자 : 임상훈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료 번역가들과 ‘번역인’이라는 작업실을 꾸려 번역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침묵을 보다』, 『설득의 심리학』, 『자본주의 대전환』, 『골드: 금의 문화사』, 『건축 다시 읽기』(공역) 등이 있으며 『재즈로 시작하는 음악여행』을 집필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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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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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녹나무의 여신』은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작 『녹나무의 파수꾼』의 속편이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데뷔 35주년 기념 작품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전작에 이어 이 소설 작품도 전 세계 동시 출간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속편이니만큼 표제어 녹나무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신비로운 힘을 믿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을 번역한 양윤옥은 소설 마지막 뒷 부분에 〈옮긴이의 말〉에 녹나무의 실재에 대해 썼다. 전작 출간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녹나무가 실제로 있다는 독자들의 제보 같은 메시지를 많이 받았고, 검색을 통해 알아본 내용을 적었다.

"소설 속 녹나무가 실제로 어디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요. 일본의 한 사찰에 있는 나무가 '그 나무'와 흡사하다는 얘기가 올라와 있었다. '다케오 녹나무'를 검색하면 우리 여행자들의 사진이 꽤 많이 나옵니다. 규슈 사가현 다케오시의 사찰인데, 뒤쪽으로 울창한 대나무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문득 주위의 공기마저 서늘해지면서 거대한 나무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추정 수령은 3,000년, 높이는 27m, 나무뿌리 둘레는 26m에 달한다고 하네요. 가장 중요한 나무 기둥 아래쪽 동굴은 넓이가 20제곱미터라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 예념과 수념이 이루어진 곳. 그리고 구메다 고사쿠 씨가 하룻밤을 보내며 이런저런 궁리를 했던 장소가 이런 곳이겠지요."(p.394~395)

『녹나무의 여신』이 속편이니만큼 전작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다. 전작에서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절도범이 된 레이토가 월향신사 관리인이자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며 녹나무의 신비한 기념 의식에 관해 알게 되고, 개과천선하는 과정을 다뤘다. 이번 속편은 레이토가 여러 사건에 휘말려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기적'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이번 『녹나무의 여신』은 세계관이 더욱 확장되면서 별개로 보이던 에피소드들이 톱니바퀴처럼 치밀하게 그리고 빠르게 서로 맞아 들어가며, 단 한 장도 놓치기 힘들 만큼 숨 가쁘게 전개된다. 또한 전편에서 채 마무리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함께 진행된다. 정돈된 일상을 지내며 어른스러워진 레이토가 기지를 발휘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약자를 돕기도 하지만, 여전히 잔꾀를 부리는 탓에 파수꾼의 도리를 두고 치후네와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곳곳에 놓인 익숙하고도 반가운 장면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글에서 장담하고 있다. 다만 독자가 전작을 읽지 못해 이번 소설 속 생소한 단어들에 대해 미리 공부한 것으로 독자들의 양해 바란다. 우선 녹나무는 신비한 영험을 가진 나무로 역자가 설명한 다케오 녹나무를 연상하면 될 듯하다. 



'예념'과 '수념'이라는 단어도 생경하다. 당연히 우리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다행히 이 책에 설명되어 있다. 주인공 레이토가 녹나무에 염원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약속하고 찾아온 사카가미란 사람과의 대화하는 부분이다. 사카가미는 자그마한 몸집의 60대 남자다.

"녹나무 장소와 기념 절차는 알고 계십니까?"

"야나기사와 치후네 씨한테 설명 들었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잘 다녀오십시오. 사카가미 님의 염원이 녹나무에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마워요."

사카가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뗐다. 그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가뿐해 보였다. 레이토는 안심하고 발길을 돌렸다.

녹나무의 기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예념과 수념이다. 예념은 초승달이 뜨는 초하루 무렵에 행한다. 녹나무 안에 들어가 밀초에 불을 켜고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염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염원이 녹나무에 새겨진다. 염원을 받는 것을 수념이라고 하는데, 보름달이 뜨는 날 밤에 행한다. 예념한 이와 혈연관계인 사람이 녹나무 안에서 밀초에 불을 켜고 예념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염원이 전해져 온다. 기적과도 같은 이 현상은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기에 오랫동안 야나기사와 가문에 의해 엄중히 관리되었다. 그리고 현재 실질적인 관리자가 레이토였다.(p.37~38)


월향신사의 좁은 덤불숲을 따라 들어가면 길 끝에 거대하고 장엄한 녹나무 한 그루가 있다. 초하룻날과 보름날 밤마다 나무 기둥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밀초에 불을 켜면 한 사람의 염원을 주고받을 수 있다. 녹나무에 염원을 새기면 예념이고 받으면 수념이라고 하는데, 예념자와 수념자를 이어 주는 사람이 바로 파수꾼이다. 소설 속 주인공 레이토이다. 파수꾼에게는 규칙이 몇 가지 있다. 매일 월향신사를 청소하고 관리하며 기념의 내용을 함부로 물어보거나 발설하면 안 된다는 것. 레이토는 치후네의 뒤를 이어 새로운 파수꾼이 돼 매일같이 경내를 청소하고 기념이 있는 밤마다 손님을 안내한다.



『녹나무의 여신』에서 녹나무 기념을 위해 온 사카가미 씨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종무소에서 밀린 과제를 하고 있던 레이토의 스마트폰이 울리고 전화가 왔다. 화면을 확인하자 치후네의 이름이 떴다. 

"네, 저예요. 무슨 일이세요?"

레이토, 지금 바로 녹나무 쪽에 가 보도록 하세요."

"예? 왜요, 무슨 일인데요?"

"사카가미 씨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사카가미 씨라니, 지금 기념을 하는 분 말이에요?"

"그렇죠,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고 뭔가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신음 소리?"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요. 무슨 일인지, 얼른 가서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세요."


사카가미가 여기서 머문 건 채 삼십 분이 안 된다. 밀초는 두 시간용을 가져갔다. 그렇다면 약 한 시간 반 동안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촛불만 타고 있었던 셈이다. 그 사이에 돌풍이 들이쳐 촛대에서 불이 붙은 초가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레이토는 문단속도 하지 못한 채 종무소를 급히 비웠고, 다음 날 돌아와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빗물에 젖거나 쓰러져 있어야 할 밀초가 멀쩡히 다 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월향신사에 형사가 느닷없이 찾아오면서 한 집에 두 명의 절도범과 강도범이 연달아 침입한 사건에 레이토는 휘말린다. 더구나 시집을 대신 팔아 달라는 여고생과 잠들면 기억을 잃는 소년까지 나타나며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 사고는 후에 녹나무와 레이토를 분기점으로 삼아 영향을 주고받으며 신비롭게 소용돌이치는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시켜 간다. 벌어진 인과의 틈새를 매끄럽게 메워 가며 예상보다 훨씬 큰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 방식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삶의 눈부신 순간을 은유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과 별것 아닌 호의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용기를 얻을 때처럼 말이다. 또한 신비한 녹나무 이야기는 여러 에피소드가 중첩되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결말까지 힘 있게 나아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서술 방식과 은유, 그리고 유기적 구성 능력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듯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과 명쾌하고 스피디한 문장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뜻밖의 반전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문장력과 구성은 『녹나무의 여신』을 추리와 판타지를 혼합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해 내며 따뜻한 감동까지 녹아들어 독창성 있는 하나의 완전한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우리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소설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한다. 물론 공식적인 집계는 아니지만 출판업계에서는 많은 분들이 동의하는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 가장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독자도 무라카미 하루키 외의 일본 소설가는 잘 몰랐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히트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돌풍을 일으킬 때도 몰랐다. 그리고 어쩌다 마주친 그의 작품 대다수는 추리소설 같았다. 공포 스릴러는 아니지만 어쩐지 범죄보다는 분위기 자체가 추리 사건 같았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100권이 넘는 소설을 썼다고 하니 자신이 쓴 게 맞아? 하는 정도의 놀라움을 주었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더 많이 쓰기 경주라도 하듯이. 일본의 소설은 옛날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은 명성에 의해 읽었지만 일본 소설 자체를 별로 안 좋아했던 일본 문학 문외한이었다. 사실 독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처음 기억했던 게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 근무가 잦을 때였다. 우연히 멋진 양장의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숙명』이라는 제목이었다. 매우 재밌게 읽은 기억도 있지만 이후 정신 없이 쏟아지듯 출간되는 작품이 너무 많아 "혹시 다른 사람이 대필하나" 할 정도로 많은 작품이 출간된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암울한 상황의 사회 분위기와 그의 소설 성향이 잘 맞아 떨어졌는지 독자로서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렇게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소설 서평은 스토리를 전했다가는 스포일러라고 마땅치 않아 한다. 저자도, 출판사도 다 그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스토리를 알고 읽으면 흥미를 떨어뜨리고, 판매도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저에서 소설 서평은 어렵다. 사실 소설을 잘 몰라서 못 쓰기도 하지만 스포일러 제약은 무척 제한적인 서평을 요구한다. 소설 서평을 쓸 때마다 느끼지만 다른 방법을 아직 못 찾고 있다. 전문 서평인도 아닌데 뾰족한 서평이 나올 리 없고 의뢰한 쪽도 큰 기대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을 참고해 스토리 전개를 각자가 정해서 맞춰야 할 것 같다. 출판사 측은 소개를을 통해 이 소설의 흥미를 담보하는 면만 쓰기에는 어려운 듯하다. 소설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소설 내용이 지향하는, 어쩌면 메시지라고 해도 좋을 내용을 써놓았다. "선하다고 해서 모두 지루하고 뻔하지만은 않다. 선을 악보다 재미있게 묘사하기란 어렵지만, 레이토가 녹나무를 이용해 복잡하게 뒤얽힌 사건을 풀어 나가는 모습은 꽤 흥미롭게 관전해 볼 만하다.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 중요한 건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지. 동전 던지기 따위에 기대지 말고.'(p.69)라고 이와모토 변호사가 조언하듯이, 레이토는 제 마음이 끌리는 대로 눈앞의 사람을 선뜻 돕기를 선택한다. 과연 그 일이 합리적인지 따지는 건 행동의 근거를 외부상황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동전 던지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레이토를 따라 몰입하다 보면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조금씩 부족하고 어긋나 있지만, 서로 모서리를 비스듬히 이어 맞추며 살아갈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눈부시고 가슴 벅찬지 보여 준다. 인간은 본래 추악할 수밖에 없다고도 하지만, 누군가 우연히 건넨 호의도 한 사람의 구성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인생 한번 살아 볼 만하지 않을까."

등장인물의 성격 평가는 본받을 만하다. 소설의 여주인공 치우네는 후한 평가를 받는다. 꽤 높은 교양을 갖추고 자존심도 무척 강한 치후네는 인지증을 앓는 탓에 때때로 조금씩 혹은 완전히 기억을 잊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치후네는 내면 깊은 곳까지 통째로 흔들린 듯이 좌절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리 생각하면 차례차례 잊어 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군요."(p.324)라며 낯선 오늘에 적응하고 새롭게 배워 나가는 기쁨을 맛본다. 잠들면 기억이 사라지는 모토야도 매일 일기를 쓰고 읽는 행위를 통해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며 천천히 어른이 된다. 

책의 끝에 다다르면 기적의 새로운 의미가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녹나무의 여신이 독자들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기적은 어쩌면 신비한 녹나무가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봄바람만큼 따뜻한 감동과 반전을 일으키며 언제든 곁에 두고 읽기 좋은 소설이다. 그러다 보면 이 착한 이야기가 우리를 신비롭게 물들일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통해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대목을 몇 줄 발췌해 여기 남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한 소년이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고요히 가라앉은 행사장에 치후네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렸다. “소년이 찾고 있는 건 신비한 영험을 가진 여신이었습니다. 그 영험이란 미래를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소년은 왜 미래가 보고 싶은 걸까요? 그건 지금까지 너무도 힘겹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퍼져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연달아 재해가 닥쳐 소중하게 여겨 온 것들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끔찍한 일들뿐이라니, 내 인생은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불안에 떠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때 미래를 보여 준다는 여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여신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p.350)


여신이 신비한 주문을 외우자 소년의 눈앞에 길이 나타난다. 언젠가 지나온 듯한 기나긴 길이었다. 그곳을 한 남자가 걷고 있다. 찬찬히 바라보니 그는 어른이 된 소년의 모습이었다. 10년 후인 것이다. 

"소년은 10년 후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남자는 대답했습니다. 음, 지금 나는 미래를 보여 주는 여신을 찾고 있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미래를 알고 싶은 거란다. 그러자 소년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이래서야 지금의 나와 완전히 똑같지 않은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은가. 여신님, 좀 더 나중의 미래를 보여 주세요. 이번에는 20년 후를 보여 주세요.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험준한 바위산을 한 남자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건 20년 후의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남자는 대답했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으나 고통에 허덕일 뿐, 내가 어디로 나아가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구나. 그래서 좀 더 나중의 미래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여신을 찾고 있단다. 소년은 놀랐습니다. 20년 후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년은 여신에게 빌었습니다. 부탁입니다. 좀 더, 좀 더 나중의 미래를 보여 주세요. 나는 답을 알고 싶습니다."

소원을 빌자 소년의 눈앞에 여러 풍경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그곳에는 30년 후, 40년 후, 50년 후로 이어지는 소년의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똑같았다. 여전히 기을 헤매고 여전히 여신만을 찾으며 방황했다. 소년은 탄식하며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이제 알겠느냐, 하고 여신은 말했습니다. 몇 년이 흘러도 아무리 미래로 나아가도 인간은 언제나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니라. 곧 다가올 앞날에 대한 불안이 사라져 없어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니다. 너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그러하다. 하지만 괜찮지 않으냐, 인간에게는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소년은 물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여신은 대답했습니다······."(p.352~353)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ひがしの けいご, 東野圭吾)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를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첫 작품 발표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이라는 많은 작품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1958년 2월 4일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곧바로 일본 전자회사인 '덴소사'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틈틈이 소설을 쓴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85년 『방과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전업작가가 되었다. 이공계 출신이라는 그의 특이한 이력은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도 인터넷의 무료메일, 게시판, 불법 휴대전화, FAX, 비디오 카메라 등 하이테크 장비를 이용해 무사히 몸값을 받아내고 유괴를 성공해내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과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발한 트릭과 반전이 빛나는 본격 추리소설부터 서스펜스, 미스터리 색채가 강한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 중 상당수의 작품이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에도가와 란포 상은 그 해의 가장 우수한 추리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데뷔작이자 수상작인 『방과후』로 화려하게 등단한 그는 일본 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지만, 유독 한국에서 그 명성과 실력에 맞는 인지도를 쌓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비밀』을 계기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엄마의 영혼이 딸에게 빙의된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이 작품은 청순한 이미지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히로스에 료코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소설은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독자를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빙의나 의료 사고 등 녹록치 않은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당대 첨예한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추리소설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소설을 쓰고 있다. 늘 새로운 소재와 치밀한 구성, 생생한 문장으로 매번 높은 평가를 받는 저력 있는 작가인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답게 작품 중 19편이 영화와 드라마로 다시 독자들과 관객들을 만났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전세계적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데뷔작 이후 2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50편이 넘는 작품을 써내면서도 자신의 사생활을 절대 밝히지 않는 '비밀'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퀄리티 높은 다작의 작품과 한 장의 사진이 남긴 강한 인상으로 스타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작가로, 20세기 중반의 하드보일드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드라이한 문체는 극명하게 사건과 행위 위주의 전개 방식을 지향한다. 감정은 휘발되고, 독자들은 등장인물과 함께 다음 퍼즐의 조각을 찾아 매 페이지를 바쁘게 내달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종종 '읽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소재주의라는 함정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동시대의 현실 감각을 놓치지 않는 재능에 감탄하게끔 만들어버린다.

『비밀』로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초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과 제6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소설부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제7회 중앙공론문예상, 2013년 『몽환화』로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 2014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제48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제까지 나오키 상에 『비밀』, 『백야행』, 『짝사랑』(片想い), 『편지』(手紙), 『환야』(幻夜)등 다섯 작품이 후보로 추천받은 바 있으나 전부 낙선하여, 나오키 상과는 인연이 없는 남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여섯 번째 추천작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결국 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중앙공론 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에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 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자 : 양윤옥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별이 총총』,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밤의 괴물』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눈보라 체이스』, 『그대 눈동자에 건배』, 『위험한 비너스』, 『라플라스의 마녀』, 『악의』, 『유성의 인연』,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마스다 미리의 『5년 전에 잊어버린 것』 오카자키 다쿠마의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라플라스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사쿠라기 시노의 『굽이치는 달』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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