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다는 착각 - 어른들을 위한 문해력 수업
조병영 외 지음 / EBS 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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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우연히 교육방송(EBS)에서 방영 중이던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평소에 교육방송을 잘 보는 편이 아니라 조금은 건성으로 봤던 듯하다. 그 프로그램은 '문해력(文解力: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literacy)’을 높이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당시 강사가 책을 읽을 때 "문해력에 따라 이해도의 높낮이가 달라진다"는 말에 잠깐 멈춰서 보았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문해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책을 오랫동안 읽지 않은 자격지심에 책을 다시 읽게 된 계기가 됐다. 문해력에 대한 뉴스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았다. 눈에 띈 것은 「한국인 문해력 OECD 최하위?」란 기사였다. 이 기사는 〈NEWSTOF〉란 인터넷 신문 기사다. 「판정결과-대체로 사실 아님」이란 부제가 더 관심을 끌었다. 

이 기사는 교육방송(EBS)에서 방영했던 〈당신의 문해력〉 프로그램을 시청한 일부 시청자들이 ‘한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문해력 최하위’란 내용의 게시물이 자주 올라온 데 대해 '팩트 체크' 차원의 기사였다. 이 기사의 결론은 ‘한국인의 문해력은 OECD 최하위’라는 주장은 20년 전 자료를 근거로 했으며, 최근 자료로는 한국이 중위권 혹은 중상위권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서가 하나 붙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세대별로 구분하면 일부 연령대에서 최하위권인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문해력 OECD 최하위의 근거는 과거 언론보도에서 찾을 수 있다. 동아일보 2002년 1월 2일 발행한 「한국인 문서 해독능력 형편없다··· OECD국 중 최하위수준」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동아일보 기사는 한국교육개발원 이희수 연구위원의 발언을 인용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서를 읽고 해독하는 능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이 연구위원은 “지난 해(2001년) 8월 16세 이상 65세 미만의 국민 1200여명을 대상으로 국제성인문해조사(IALS)를 실시한 결과 문서문해력 영역에서 908명(75.7%)이 영수증, 열차시간표, 구직원서, 지도, 약 설명서 등의 그림이나 도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최하 수준인 1, 2등급으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관련한 내용은 한국교육개발원의 〈한국성인의 문해실태 및 OECD 국제비교 조사연구〉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은 대졸 성인의 2.4%만이 고급문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OECD평균 22%에 현저히 미달되는 수치로 24개국 중 22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비판 게시글들은 20년 전 자료를 근거로 현재 한국인의 문해력을 평가한 것으로, 〈NEWSTOF〉는 보도 당시로 가장 최근인 자료에 의한 기사가 덧붙여져 있다. OECD의 가장 최근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에 따르면 한국의 ‘문해력’은 273점으로 OECD평균인 266점보다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 청년층(16~24세)에서는 OECD 국가 중 4위이지만, 25세를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해, 35∼44세에는 평균 아래, 45세 이후에는 하위권, 55∼65세에는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문해력 측정 점수가 떨어지는 현상 자체는 일반적이지만 한국의 경우 그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 다른 나라들과 달랐다는 조사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는 2012년 발표된〈 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도 만 15세 한국 청소년의 문해력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조사됐다는 것. 그러나 이 조사도 역시 세대별로 문해력 차이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상위권이던 우리 청소년들도 점차 순위가 뒤로 밀리는 등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NEWSTOF〉 보도는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OECD 성인역량조사결과에 나타난 세대 간 문해력의 차이(황혜진)〉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2012년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의 ‘읽기 영역’에서 전체 참여 국가 중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성인역량 중 문해력 평가에서는 조사에 참여한 22개 나라 중 12위를 기록하였다.”며, “이를 해명할 단서가 되는 것은 세대 간 문해력의 차이이다. 즉, 한국의 청년층은 문해력이 세계 최고인 데 비해 노년층은 세계 최저 그룹에 속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읽기 영역에서 2006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은 가장 최근인 2018년에는 6위로 떨어졌다고 이 논문은 지적하고 있다.

이 논문은 한국인의 문해력이 점점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일부에서는 한자교육을 게을리 한 탓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한자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했던 기성세대가 그렇지 않았던 최근세대에 비해 문해력이 낮게 나타난 것을 감안하면 적절한 설명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독서 부족’을 지적한다는 것이다. 문해력은 독서를 통해서 높일 수 있는데, 디지털 시대와 스마트폰의 일상화가 독서를 멀리하도록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인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였다. 성인의 25%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EBS 〈당신의 문해력〉에서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해력 저하는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이나 한자 교육 폐지 등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독서 부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책 『읽었다는 착각』은 문해력 저하에 대해 관련 계층의 인사들이 연구하고 논의한 대안이 담겨 있다. 6개 분야의 '읽고 이해하기(문해력)' 능력를 향상시키고자 7명의 저자가 공동 집필했다. 이 책은 「읽는다는 것에 관하여」란 제목의 〈서문(책머리에)〉을 통해 책읽기의 개념과 이해력의 관념과 기능의 원천을 밝히고, 문해력 향상을 위해 어떤 점을 특별히 주력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 문해력 저하라는 추상적 개념을 책의 표제어 '읽었다는 착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읽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존 행동과 달리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자동으로 취하는 행동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인간은 의식성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상황을 이해하고, 삶의 과정을 성찰할 수 있다"고 독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나와 남, 관계와 맥락에 관한 표상, 공감, 이해, 성찰이라는 의식적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생존 행동을 넘어서 사유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공동 저자들은 읽는다는 것은 가장 의식적인 인간 경험에 가깝다고 말한다. 읽는다는 것은 자동성에 갇힌 생존 행동이 아니라, 맥락적 이해와 공감적 성찰을 의도하는 실천 작업이란 주장이다. 의식의 읽기는 텍스트의 불확정성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응집된 이해를 도모하는 특별한 노력과 주의를 요하는 일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읽었다는 착각'은 생존 행동의 읽기가 의식성의 읽기를 압도할 때 일어난다고 잘라 말한다. 이 책은 '제대로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특히, 어른들의 문해력에 주목하면서 생활의 읽기, 일의 읽기, 소통의 읽기를 다룬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문해력의 실상을 보고하고, 일상에서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오독의 실제적 예시를 흥미로운 퀴즈와 함께 살핀다. 그리고 그 안에 내포된 의미와 구조를 파악하고 우리가 잘못 읽게되는 오류에 어떻게 빠지는지 함께 찾아본다. 이 책 『읽었다는 착각』은 대한민국 최고의 리터러시 전문가들이 제대로 읽고 싶은 모든 이에게 드리는 일종의 '워크북'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어른들의 문해력을 다룬다. 우리 사회 어른들은 학력 수준도 높고 지적 수준도 훌륭하지만, 간혹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일의 맥락에서도 정보, 문서, 글, 자료, 텍스트를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는 일에 소홀한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몇 가지 읽기 상황, 가령 이메일 소통, 법 읽기, 계약서 읽기, 온라인 읽기, 통계 자료 읽기 등을 제시하고, 이때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나 오독의 문제를 보여준다. 조금 더 잘 읽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6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마주하지 않은 대화-업무 메일 읽기〉, 2장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법-생활 속 통계 읽기〉, 3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온라인 읽기〉, 4장 〈화내지 않고 몰입하다-논쟁 읽기〉, 5장 〈문서로 지키는 권리와 의무-계약서 읽기〉, 6장 〈법으로 살아가는 법-법 문서 읽기〉 등이다. 맨 앞에 〈나의 문해력 향상 전략-읽지 못하는 어른들의 시대〉라는 〈서문(Introduction)〉을 두고 「문해력의 쓸모」「의심과 질문」「의식과 성찰」이라는 항목에서 '문해력이 좋으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제대로 읽고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읽어야 할까?'를 다루고 있다. 〈서문(Introduction)〉에서도 2021년 한국인의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 세대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종이책, 오디오북, 전자책을 막론하고 가장 읽지 않는 세대가 어른이었다고 말한다. 앞서 신문에 보도된 내용과 비슷한 독서량과 문해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2021년 독서량 조사 결과가 세대가 위로 올라갈수록 독서량이 점점 떨어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문서를 이해하고 정보를 활용하는 역량이 눈에 띄게 저하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적 연구와 이론에 기대어 볼 때, 독서량과 문해력 사이에 상당한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삶을 가만 살펴보면 글, 문서, 자료 등 특정 정보와 의미를 담고 있는 '텍스트(text)'를 읽고 쓰는 일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책과 같은 완결된 출판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비롯해서 인터넷 뉴스, 생활 문서, 안내문, 광고문 등 읽어야 할 것들로 넘친다. 계약서나 약관, 공공 문서와 청구서는 물론이고, 흥미로운 웹소설과 웹툰, 매일 쏟아지는 언론 기사, 여론조사, 카드 뉴스, 뉴스레터, '짤'과 밈(meme)도 텍스트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집단, 다양한 주체들이 세상 곳곳에서 제작, 생산, 유통하는 영상 정보들도 이제 보는 것을 넘어서 읽어야 하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이 대세인 요즘에도 책을 읽는 환경, 글이 필요한 상황,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맥락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문해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문제'란 말은 골칫거리이기 이전에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전히 문해력은 어른들의 삶에서 쓸모가 많으며, 그 의미와 가치도 변화된 우리 삶에 맞게 계속해서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 책의 저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책읽기(글읽기)는 책쓰기(글쓰기)와도 직접적이며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문해력이 독서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검증된 바 있다. 이로 인해 문해력 높이기에는 '많이 읽기'가 바탕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많이 쓰는 것처럼. 문해력 높이기에서 더 중요한 건, '읽기'라는 행위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과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공동 저자들의 의견이다. 문해력이라고 해서 글자나 문자에 너무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문자와 글자, 다양한 감각적 상징 기호들을 읽어내는 것이 문해력이지만, 그 핵심에는 나 자신이 '의미 구성자(meaning-maker)'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마 집중력과 동기 등이 함께 결합되어야 문해력 높이기에 필요하다는 주장인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책의 저자 중 한 분인 조병영은 책 속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책은 그 길과 답의 예를 보여주는 것일 뿐, 그것이 정말 자신에게 길이고 답인지는 독자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출간 후 예스24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해력 향상에는 평소에 '인지적 유연성'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늘 자기가 어떻게 읽고 있는지에 대해서 글을 읽기 전후에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을 말한다. 문해력 전략으로는 관성적으로, 습관적으로, 늘 하던 대로 읽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의 글 읽는 과정을 의식적으로 만들어주는 전략들이 있다. 우선 먼저, 글 읽기의 효용을 느껴야 한다. 읽기의 가장 큰 효용은 지식의 구성과 배움이다. 이 때문에 글을 읽기 전 후에 어떤 주제 또는 문제에 관한 나의 앎과 시야가 실제로 바뀌었는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밖에도 독서할 때 메모하고 요약하고 질문하고, 책을 읽으면서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해 보고, 다른 책과 글에서 다른 방식의 답을 찾아보고 더 정교화된 질문을 만들어보는 것 등의 전략들은 모두 독자의 의식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전략들을 사용하는 일이 처음에는 아주 번거롭고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꾸준히 연습하면 나중에는 편하고 쉽게, 적은 노력으로도 실천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문해력 향상에도 "왕도는 없다, 꾸준히 노력하고 천천히 쌓아가면 된다"는 격언이 다시 떠오른다.


전제를 읽는다는 것은 나와 상대가 기본적으로 무엇을 가정하는지 읽어 내는 것이다. 이때 서로(글을 쓴 필자의 전제와 가정, 그리고 그 글을 읽는 독자의 전제와 가정)의 전제와 가정에서 무엇이 유사하고 무엇이 다른지 읽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위 예시를 통해 각 사람의 전제를 파악해 보면서, 사람마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무엇을 전제로 하여 판단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글쓰기 능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간파할 수 있다. 그리고 전제를 이해하기 위해 상이한 전제들을 연결해 보는 것은 논쟁적 이슈의 복잡성(complexities)을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학교 시험 성적만으로 글쓰기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분석해 보면 또 다른 전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제 읽기는 이렇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관점에서 특정 문제와 주제에 접근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읽기다.(p.291~292) - 「4장 논쟁 읽기」 중에서



저자 : 조병영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및 대학원 러닝사이언스학과 리터러시 전공 교수.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와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미국에서 15년 동안 읽기와 리터러시를 교육하고 연구했으며, 리터러시, 언어, 문화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며 심리학 및 컴퓨터 공학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융복합 연구를 진행했다.

한양대학교 IC-PBL 강의 혁신상을 받았고, 국제리터러시학회에서 올해의 박사학위논문상을 받았으며, 미국교육학술원 및 카네기 뉴욕 재단에서 청소년 리터러시 박사연구자상을 수상했다. 유럽리터러시통합학회의 명예회원, 외국인 최초로 ‘2026 개정 미국 국가교육발전평가 위원’으로 위촉, 유럽리터러시정책네트워크 전문위원, 국제리터러시학회 평가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명실공히 리터러시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다. 또한 EBS 「당신의 문해력」을 기획해 이끌면서 전문가 패널로 출연, EBS 지식 e채널 「당신의 문해력, 리터러시」 강의를 진행하는 등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꾸준히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 이형래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 원로교사, 이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 30년 넘게 교사, 교감, 교장,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학교 현장에 기반한 리터러시 교육에 관심 갖고 연구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직업문식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독서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과 융합 리터러시 평가 문항 개발, 독서자서전 쓰기, 교육부와 교육청의 교육과정 연수, 교원 연수 및 부모 연수를 수행해 왔으며, 국어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룰 심의하고 집필했다. 『독서교육의 이해』(한우리북스, 2011), 『내 아이는 초등학교 1·2학년』(지학사, 2014), 『성인 문해 교과서』(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 2019), 『문해력 교과서』(창비, 2022) 등을 저술했다.


저자 : 조재윤

목원대학교 교수.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의사소통교육, 국어과 교육과정 및 평가, 청소년 언어문화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20 여년 간 교사로 재직하였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어과 교육과정 연구진, 국어과 교과서 및 검정 심의진, 성인문해 교과서 연구진 및 집필진으로 참여하였다. 『화법 용어 해설』(박이정, 2014), 『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제』(한우리북스, 2017), 『생각하고 표현하는 글쓰기』(인문과교양, 2020) 등을 저술했고, 국립국어원 〈청소년 언어문화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 : 유상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현재와 미래 교육을 위한 평가 방안을 연구 중이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언어교육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고려대 한국어문교육연구소 연구교수 및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미국교육연구학회(AERA), 리터러시연구학회(LRA), 국어교육학회, 한국어교육학회, 한국작문학회, 한국화법학회, 한국리터러시학회 등에서 활동하며 다수의 학술 발표를 하고, 연구 논문을 집필하였다. 사고력과 표현력 신장을 위한 논증 교육 방안, 학습자 주도성 기반의 탐구 수업 방안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저자 : 이세형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미래 교육과 평가의 방향을 탐색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수학 텍스트를 읽고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자의 인지부하(Cognitive load)에 대한 연구로 경북대학교에서 수학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학교과서 분야 연구 이외에 교과서 읽기, 텍스트 반복 읽기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였으며, 수학교육이 ‘만인을 위한 수학(Mathematics for all)’이 될 수 있도록 수학적 사고와 통계 리터러시 교육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저자 : 나태영

리터러시 연구소 공감과 동행 소장. 중고등학생들의 리터러시를 향상시키고자 연구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대학원 교과교육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 교과서 개발 연구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EBS 〈당신의 문해력〉(2021)의 성인 문해력 테스트를 출제하였으며, 『훈련도감 문학/비문학』(쏠티북스), 『생각독해』(디딤돌), 『문학 필수개념 독해 연습』(메가북스) 등 다양한 중고등학생용 학습 도서를 집필하였다.


저자 : 이채윤

한양대학교 연구원. 한양대학교 러닝사이언스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이자 뉴리터러시학습연구실의 코디네이터이다. 사람들이 ‘잘 읽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현대 사회 읽기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독자 요인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인터넷 읽기에서 인식론적 신념의 작용 양상을 분석한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중학생 문해력 신장 방안 연구와 초등학생들의 주관적 웰빙 증진을 위한 리터러시 프로그램 효과성 검증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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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 - 읽기만 해도 역사의 흐름이 잡히는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시리즈
임소미 지음, 김재원 감수 / 빅피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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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는 '한국사' 교과서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 임소미는 역사 전문 유튜브 채널 〈쏨작가의 지식사전〉을 운영하고 있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현재 그의 유튜브 채널은 56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가장 쉽고 빠르게 읽는 ‘초압축 한국사’라는 점에서 전작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의 시리즈 속편에 해당한다. 저자 임소미는 전작을 통해 방대한 세계사의 맥락을 순식간에 잡아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출간한 책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는 교과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역사의 참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풍부한 자료 조사를 거쳤다고 밝히고 있다. 교양으로 역사의 기본기를 알고 싶었던 '잘알못(‘잘 알지 못하다’라는 뜻) 어른들을 위해 친절한 우리 역사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저자의 집필 능력은 전작에서 이미 보여준 대로 맛깔나는 입담과 역사의 흐름을 단박에 머릿속에 그려지게끔 서술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 역사는 고조선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책 역시 고조선부터 시작하고 있다. 1960년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기원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단기(단군기원)'를 썼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때가 서력기원으로 기원전 2333년이어서 올해를 단기로 표기한다면 "2024+2333=4357" 즉 단기 4357년이 되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5,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미 교과서를 통해 중고등학교 때 배운 대로다. 

오늘날 우리는 한반도 최초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넓은 시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빛나는 성취를 이뤄냈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쓰고 있다. 20세기에 탄생한 신생 국가 중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눈부신 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몇 안 되는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이젠 어디와 견주어도 당당하고 내세울 만한 나라가 됐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세계사의 한 측면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등 36년의 식민지 시대와 내전(한국전쟁)을 딛고 불과 반세기만에 '기적'처럼 부활한 나라다. 그러나 한반도 내부에서 볼 때는 여전히 분단이 아픔과 대치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이는 가슴 아프고, 발전과 번영에 큰 걸림돌이기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기회로 본다면 앞으로 남은 '통일'로 간다면 폭발적인 번영의 원동력이 남아 있는 상태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한 나라의 번영과 발전에는 반드시 뼈아프고, 심각한 과거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이 있다. 그냥 이루어지는 성취도 없고, 나쁜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양자역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역사야말로 양자역학 이론에 따르는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는데, 그야말로 양자역학 이론과 딱 맞아떨어진다.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발판 삼아 변화한다. 그것이 역사다라는 점을 단재 선생은 지적하고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 임소미도 오늘날 우리 한국인 앞에는 복잡다단한 해결 과제가 산재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개인과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난 역사에 눈을 돌려보아야 한다고 늘 배웠다. 역사가 그것이다. 역사에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해답이 있다. 현재의 난제에 고민하고 있다거나 앞으로의 발전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반드시 지난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 제안이다. 저자는 한민족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같은 난제에 부닥쳤다면 반드시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가까운 과거에 일제 강점기가 있었고, 그 이전에 조선이 있었다. 조선 역시 고려의 여러 제도를 답습하고 개편하며 이전 시대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한국의 뿌리는 이렇게 점점 더 깊은 과거로 뻗어 간다. 그 뿌리를 만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각각의 시대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남긴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저자의 집필 취지를 읽을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앞서 산 선조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고, 어떤 실수를 반복했으며, 어떤 좌절과 성취를 겪고 이루었는지 살피고 나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축적된 역사 속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함으로써 다양한 문제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힘을 키우게 된다. 이로써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각자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면 한국사를 알야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 책은 과거 정책을 살피거나 실책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한민족으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어 나오는 과정에서의 굵직한 흐름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집필했다. 이 역사의 흐름을 한 권으로 압축한 한국사 입문서이다. 주로 정사(正史)에 의지해 썼으며, 너무 딱딱할 경우나, 맥락이 앞뒤가 다를 경우(승자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역사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 야사(野史)의 재미를 더했다. 한국사에 관심 있는 모든 어른을 위해.



이 책은 역사적 배경지식 없이도 술술 읽히고, 역사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조차도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재미까지 모두 갖췄다고 평가되고 있다. 고조선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역사의 흥망성쇠를 읽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한국사 교양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음은 물론,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귀중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러 사건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사건이든 이해 관계가 상충되는 사람들끼리 사건이 있고, 또는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사이에서도 미묘한 차이점 때문에 역사의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힘 있는 자가 늘 승리하기 때문에 이들이 역사를 주도하게 된다. 잘 됐든 잘못 됐든 역사는 그대로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역사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이미 흘러간 과거의 일을 잘잘못을 따져 가린 후에 무엇에다 쓸 것인가? 지금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복잡미묘한 사안이나 정책까지 모두 알려고 하면 역사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일단 역사의 흐름을 잡고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이 책은 지금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또 대한민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지만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거쳐야 할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 전작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를 통해 ‘역사계의 셰에라자드’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셰에라자드는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ii-Korsakov)의 관현악 모음곡을 이르는 말이다. 유명한 아라비아 설화 《천일야화 Alf laylah wa laylah》에 림스키코르사코프 자신의 상상을 가미한 작품으로 1888년에 완성하여 1910년에 초연했다고 두산백과는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고 있는 설화다. 모든 여자들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믿는 술탄 샤리아르는 어떤 아내든 첫날밤을 지낸 뒤에는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셰에라자드는 첫날밤 재미있는 이야기로 술탄의 관심을 끌어 목숨을 보존하는 데 성공하고,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게 된 술탄은 마침내 자신의 맹세를 포기하고 만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딱딱한 역사를 흥미롭게 구성해 재창조한 데 따른 별칭으로 이해된다. 

"임소미 저자의 역사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펼쳐진다. 저자는 수백 권에 달하는 책과 논문 등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며 정확한 고증을 거친 것은 물론 현대에 꼭 알아야 할 한국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쏙쏙 골라 한 권에 담았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 고려 무신정권, 조선시대 붕당 정치, 예송 논쟁 등 한 번쯤 들어봤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역사적 사건들의 흐름이 단박에 잡힌다."



출판사 측은 또한 풍부한 도판 자료를 본문에 더해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시대별 주요 사건 연표’를 삽입해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사 전체 연표, 고려·조선 왕 계보도’를 부록으로 수록해 핵심을 요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친숙한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김재원 교수의 감수로 역사적 사실 관계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은 모두 5부(PART)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한반도 역사의 시작, 고조선과 삼국시대〉, 2부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 3부 〈한국사의 중세를 연 고려〉, 4부 〈조선 왕조 500년의 시작〉, 5부 〈격동의 시대를 거쳐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등이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 역사 흐름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핵심만 선별해서 담았다. 한반도 역사의 시작을 연 고조선과 초기 국가부터 삼국시대를 통일한 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까지 각 시대마다 변곡점을 만든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놓는다. 꼭 기억해야 할 인물과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한국사의 기본기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다고 독자는 기대한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사극을 통해 많이 등장하는 연산군 때 생긴 말 ‘흥청망청’의 유래를 알 것이다. 지금 이 말은 '돈이나 물건을 마음대로 쓰는 것'을 표현하는데 이 말은 연산군 때 ‘흥청망청’이라는 비난조의 말이 유래다.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던 연산군이 '채홍사'라는 관리를 파견해 각 지방의 아름다운 처녀를 궁궐로 뽑아 오게 해요. 그 숫자는 무려 만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과장된 숫자 같기는 하다. 아무튼 이들 중에서도 특히 외모가 예쁘고, 노래를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는 여자들을 ‘흥청(興淸)’ 이라고 했다. 한자를 보면 '맑은 기운을 일으킨다'는 뜻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산군이 흥청들과 놀아나다 망했다는 뜻에서 백성들은 ‘흥청망청’이라고 비꼰 것이다. 앞서 말한 '야사적 흥미'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또 4부 〈조선 왕조 500년의 시작〉 중 「조선의 부흥과 발전을 이룬 예종과 성종」 장(章)에서 1468년 세조의 둘째아들인 해양대군이 세조에게서 왕위를 이어받는다. 8대 예종의 즉위다. 첫째아들인 의경세자가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했기에 둘째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다. 그러나 의경세자의 부인, 그리고 두 아들이 있어 두 아들 중 누구를 왕위를 물려줄까도 관심이었다고 한다. 세조는 왜 의경세자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둘째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을까? 예종은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왕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즉위 전부터 예종은 신하에게 권세가 옮겨지면 기강이 무너져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장성한 둘째아들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듯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미 세조는 예종이 세자 시절부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도 한다.



특히 세조가 죽은 뒤 예종이 강단 있는 왕임을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세조의 묘호를 정할 때 신하들이 '신종'으로 하자고 했지만 예종은 이를 거부하고 '세조'라는 묘호를 쓰자고 고집해 관철시켰다는 것. 저자는 이를 두고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올리는 이름인 묘호엔 조 또는 종을 썼는데 원칙적으로 나라를 세운 왕에게만 '조'라고 붙일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분석이나 자료가 맞겠지만 나중의 인조와 영조와 정조 등엔 맞지 않는 말인 것 같다. 나라를 세운 왕에게는 당연히 조를 쓴다. 새 왕조를 열었으니 붙이는 것이리라. 이는 중국에서 시행되는 묘호제를 그대로 따라서 했던 것이 아닌가? 중국의 왕조에 태조 이외에 '조'를 붙인 왕이 없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할 것 같은 문제이다. 또 하나 독자가 듣기로는 임금이 세자로 세운 후 중국 황제(조선시대는 명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아야 '종'을 쓰지 않았는가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얼마 전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이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거란의 3차례에 걸친 침공 때 가장 훌륭한 장군으로 우리는 강감찬 장군을 배웠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를 제외하고는 양규가 더 훌륭한 장군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목숨을 걸고 거란의 침략에 맞선 것은 양규나 강감찬 모두 마찬가지지만 강감찬은 20만 대군으로 후퇴하는 거란 침략군 10만을 상대해 전멸될 정도의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양규는 겨우 1,000명 안팎의 수비 결사대 병력으로 6,000명의 거란 침략군이 주둔하던 성을 쳐들어가 빼앗고 거란군을 제압하고 포로 구출 수만 3만 명에 이른다니... 더욱이 양규는 마지막 전투에서 적장을 죽이려고 다가서다 무수한 화살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눈시울마저 붉게 했다. 이때의 기억으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양규의 애국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존경하는 장군의 이미지로 바꿔놓았다. 그런데 과거 왜 양규가 그토록 훌륭한 장군인데도 우리 역사에 길이 남겨 후손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그것은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정사인 〈고려사〉에 아주 짧게 언급돼 있어 안타깝다는 어느 역사연구가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역시 양규에 대한 부분은 짧게 언급되고 있다. 정사에 기초해 써야 하는데 자료가 부족하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잖았을까 하는 생각에 저자의 고충도 십분 이해되기도 한다. 

어느 나라가 흥망의 흐름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그렇다. 우리는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전쟁은 나라의 존망에 깊숙이 관여한다. 전쟁을 중심으로 민족과 역사의 흐름을 짚어보는 저자의 시점은 적절하다고 본다. 사실 세계 역사상 로마를 제외하고는 우리 조선처럼, 고려처럼 오랜 역사를 지속한 왕조는 없다고 한다. 더 깊이 살펴야겠지만 우리 민족성이 전쟁을 싫어해서일까? 이 책 한 권은 우리 역사의 흐름을 잘 짚어볼 수 있게 쓰였고, 읽다 보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 공부의 기본이지 않을까 싶다.



대신들은 명을 배신하고 오랑캐와 화친하려는 광해군이 못마땅했어요. 서인 세력은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릴 작정으로 약점을 파기 시작했어요. 궁궐 복원 공사와 권력 남용 등 문제가 많았지만, 특히 주목한 광해군의 약점은 바로 폐모살제였습니다. 폐모살제는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였다는 뜻입니다. 왕권 강화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광해군과 대북파는 여러 무리수를 두었어요. 특히 존재만으로도 위협이었던 영창대군은 결국 강화도로 유배된 뒤 살해되었어요. 영창대군을 낳은 인목왕후는 궁에 갇혀 창덕궁 출입도 못 하게 되었고요. 이런 행동은 대의와 명분과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윤리에 어긋났습니다. 결국 서인 세력이 광해군을 패륜 왕으로 낙인찍으며 인조반정을 일으켰고, 남인도 이에 동조하면서 광해군이 쫓겨납니다. 1623년, 그의 나이 49세였어요.(p.243) - 「청나라에 굴복한 인조의 굴욕」 중에서


저자 : 임소미


한국사와 세계사를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사 스토리텔러. 교육업에 종사하며 역사 콘텐츠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수십 권에 달하는 책과 논문 등의 방대한 자료를 찾아 읽으며 정확한 고증은 물론이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사의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발굴했다. 인류가 지난 세월 동안 거쳐온 전쟁과 협력의 과정을 알면 알수록,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우치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180도 달라지는 놀라운 변화를 사람들과 나누고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세계사를 추려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를 집필했다. 더 많은 이들과 역사 지식을 나누고자 역사 전문 유튜브 채널 〈쏨작가의 지식사전〉을 시작했고, 첫 영상을 올린 지 8개월 만에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하며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낯설기만 한 타국의 역사를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핵심만 쏙쏙 골라 전하는 특유의 스토리텔링 덕분에 입소문을 타고 현재 구독자 53만 명의 대표 역사 채널로 성장하며, 명실상부한 차세대 역사 스토리텔러로 주목받고 있다.


감수 : 김재원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겸임교수,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등을 맡고 있다. MBC 〈선을 넘는 녀석들 시즌5: 더 컬렉션〉 출연, 유튜브 〈14F〉 ‘본스토리’와 〈엠장기획〉 ‘역사 뇌피셜 그 놈’ 〈SBS DALI〉 ‘과몰입 조선사’ 등을 진행했다. 대표 저서로는 《울게 되는 한국사》,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꿰뚫는 한국사》(공저) 등이 있다. 역사를 전공하고 오랜 시간 역사를 공부해 온 역사 연구자로, 현재는 여러 방송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전하고, 아이들이 호기심과 질문을 품어 보며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이제는 역사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는 史(사)차원 재원 쌤이 되어 다가가려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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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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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의 14% 이상은 인터넷을 이용하다 의도치 않게 미성년자의 성적 이미지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4일 연합뉴스TV 헤드라인 기사의 첫 문장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14% 이상은 인터넷을 이용하다 의도치 않게 미성년자의 성적 이미지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인에게 성적인 이미지를 보내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는 비율도 4%로 나타나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여성가족부는 4일 이런 내용이 담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인식 및 피해 경험 조사'를 내놓았다. 지난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한세대학교,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중·고등학생 4,757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4.4%는 '인터넷 이용 중에 의도치 않게 미성년자의 성적 이미지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68.3%가 가장 많이 노출된 경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꼽았다. 3.9%는 '누군가로부터 본인의 성적 이미지를 보내라거나 공유하자는 요구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아는 사람이 동의 없이 성적 이미지를 촬영한 경우는 1.7%, 낯선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카메라로 몰래 본인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는 1.1%로 집계됐다. '본인의 성적 이미지를 유포하겠다고 협박이나 강요받았다'고 밝힌 청소년은 0.6%였다. 비동의 상태에서 허위 영상물을 포함한 본인의 성적 이미지가 공유·유포된 경우는 1.1%였다.

이처럼 비동의 촬영이나 유포 피해를 본 청소년들은 경찰·피해자 지원기관에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혼자서 끙끙 앓거나, 친구 등에게 알리는 경향이 더 높았다. '지인의 비동의 촬영' 피해를 본 청소년의 46.1%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친구나 선후배에게 알렸다'(22.4%), '피해자 지원기관에 도움을 요구했다'(12.4%), '경찰에 신고했다'(12.1%), '가족에게 알렸다'(10.1%), '학교 선생님에게 알렸다'(7.8%) 등의 순이었다. '공공장소 은닉 촬영' 피해 이후 대응 방식으로는 '친구나 선후배에게 알렸다'는 비율이 37.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가족에게 알렸다'(26.0%),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24.4%) 등의 순이었다. '아동·청소년성착취물 관련 행위'에 대한 처벌 필요성의 인식 척도는 평균 4.7점(5점 만점)으로, 관련 행위를 엄벌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전국 19세 이상 성인 2,033명을 대상으로 한 동일한 조사에서도 4.6점으로, 비슷한 인식을 보였다. 성인의 92.7%는 아동·청소년의 성적 이미지를 보는 것이 이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기사는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인식·피해경험 조사 결과다. 이 가운데 4%는 성적 이미지 공유를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이 같은 범죄나 영상제작·유포 등이 확산돼 골머리를 앓았으나 이를 제작·유포한 사이트가 해외에 있는 데다 삭제 요청도 하지만 글로벌 대기업의 자체 심의해 삭제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실제 처벌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국내에서 터진 'n번방 사건'은 사회적 큰 물의를 일으켰다. 지금은 주범에게 4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고 공범들 역시 장기형이 선고되었으나 아직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수사 당국의 말이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은 2018년 하반기부터 2020년 3월까지 텔레그램, 디스코드, 라인, 위커, 와이어,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 앱을 이용하여 피해자들을 유인한 뒤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이다. 피해자는 중학생 등 미성년자를 대거 포함하는데, 수사 종료 시점 실제 피해자는 60~70명이나 피해자들을 특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확한 피해자 수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범죄 가담자 규모는 2020년 3월 경찰 발표 기준, 영상 소지 · 배포자를 포함해 최소 6만명 이상이다.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잠시 소홀해졌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뉴스거리였다. 범죄 규모나 피해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속칭 '박사방'의 주범이 공동 범죄자들을 끌어들여 함께 범행을 저지르면서 8개 방으로 늘어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데서 큰 우려를 낳기도 했다. ‘박사방’은 ‘박사’라는 닉네임이 운영한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인데 주범이 검거되어 43년형을 선고받은 후 복역 중에 수사 당국이 밝혀낸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1번방' '2번방' 등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이 때문에 'n번방 사건'으로 불리워졌다. 이들이 범죄 수익 등 금전거래를 암호화폐 결제로만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는 전문적인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2019년 7월에 등장한 ‘박사’는 갓갓과는 다른 행적을 보였다. 그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 일반인 여성들에게 '고액 스폰(성매매) 알바를 하겠느냐'며 접근했고, 이에 응한 여성들에게서 신상정보와 누드 사진 등을 얻어낸 뒤 이를 이용하여 여성들을 협박하여 가학적인 사진과 영상을 찍고 올리게 했다. 박사는 갓갓과는 다르게 영상의 판매가 목적이었으므로, 암호화폐를 이용하여 영상들을 판매하던 중 체포되었다. n번방과는 달리 주 피해자층은 20~30대 여성이나, 중학생이 포함되어 있는 등 다양한 피해자 연령대를 보유한 사건이다. 보도가 시작되자 ‘박사’는 기자의 신상정보를 파악하고 유포하기도 했다. 또 인천광역시에 있는 고등학생은 아동 음란물과 마약 거래 링크가 공유되는 여러 개의 텔레그램 채팅방을 운영하고, 경찰 수사에 대비하는 요령까지 공유했다.



이 책 『우리가 본 것』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거대 플랫폼 회사의 하청 회사인 〈헥사〉에 소속되어 유해 게시물로 신고된 게시물들을 검토하고 삭제하는 콘텐츠 감수자들의 세계를 속도감 있는 문체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온/오프라인 세계의 모호한 경계를 꼬집고, 우리가 세워놓은 도덕적 기준의 약한 근거를 들추는 이 작품은 오늘날 세상을 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매혹적이고 불안한 소설이다. 독자는 중년 세대라 인터넷이나 디지털 문화에 익숙지 않아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이란 단어도 n번방 사건 때 처음 들었지만 유해 게시물 삭제 하청업체가 따로 있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자체 기준으로 심의한다는 말도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이 책은 네덜란드에서만 65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중국 등 14개국에 번역 소개되었으며,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를 위한 각색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선정적인 묘사, 혐오 표현, 강간, 자살 시도, 학대, 참수 장면··· 온라인 세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러나 우연히 마주친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가득하다. 이른바 온라인 청소부인 콘텐츠 감수자들은 이러한 콘텐츠를 평가하여 ‘디지털 쓰레기’에 해당하는 경우 플랫폼에서 삭제하는 일을 한다. 전 세계에는 사람들이 신고한 게시물을 면밀히 검토하는 수천 명의 이들 노동자들이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헥사〉처럼 하청업체로 모든 작업을 거대 플랫폼 회사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 케일리도 그중 한 명이다.

주인공 케일리는 옛 연인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주다 빈털터리가 되어 콜센터보다 높은 시급을 주는 〈헥사〉에 취직한다. 그리고 하루에 500개의 클립을 확인하고 평가해야 하며 화장실에 가려고 책상에서 일어서면 곧장 스톱워치가 작동하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하게 된다. 게다가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회사 때문에 사무실에는 필기도구를 비롯해 그 어떤 물건도 들일 수 없다. 그러나 케일리는 이전 직장에서와 달리 〈헥사〉에서는 아무도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 편안하다고 말한다.

구인 광고에는 시급 말고는 별 말이 없었어요. 기껏해야 간단한 요건으로, 헥사에서 찾고 있는 인재는 ‘품질 보증 관리자’라고 적혀 있었죠. 이게 무슨 뜻인지 그 자리에서 당장 찾아봤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20퍼센트 높은 시급에 눈이 멀어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아주 달갑게 받아들이리라는 생각뿐이었어요. 간이 면접에서는 헥사가 하청 업체일 뿐이라는 말을 들었죠. 실제로 하게 될 일은 어느 영향력 있는 미디어 대기업을 위한 ‘콘텐츠 평가’였어요.(p.17)



케일리의 동료들은 매일같이 폭력적인 게시물을 접하면서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고, 결국 〈헥사〉에게 하청을 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대 플랫폼 회사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케일리의 눈을 통해 케일리의 동료들이 서서히 미쳐가는 세계, 취한 상태에서만 일상을 견디며 점차 음모 서사의 세계로 빠져드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동료들은 우울해하고, 편집증으로 인해 테이저건을 들고 잠자리에 들고, 슈퍼마켓에서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움찔한다.

케일리는 어떨까? 케일리는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헥사’에서 다섯 살 연상의 아름다운 동료 시흐리트와 사귀게 되면서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도 치워둘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폭한 게시물들은 곧 두 사람의 사생활과 연애에 침입하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삭제한다고 해서 머릿속에서도 지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접하는 잔인한 게시물에 심한 충격을 받은 시흐리트는 구기자 열매, 치아씨드, 알코올을 섞어 스스로를 치료하려고 한다. 케일리는 그 행동들을 외면한다.

시흐리트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서사의 전환점이 된다. 이제 케일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아니, 오직 충격적인 상황만이 그녀를 깨우고 그녀가 오랫동안 빠져 있던 심연의 깊이를 깨닫게 할 수 있다. 게시물 속 주인공을 찾아 떠나는 결말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고 소설은 클라이맥스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속도감 있는 문체는 케일리의 비참함을 칼로 끊어내듯 보여준다.

사실 플랫폼 회사의 하청업체에서 유해 게시물 자체 삭제팀을 운영한다는 말을 독자는 처음 들었다. 이 소설에서도 지적하지만 그들에게는 일반 회사에 비해 약간 높은 보수가 주어진다. 일정한 자격이 요구되지도 않고, 약간의 상담과 면접 만으로 입사할 수도 있다. 연수 기간이 있지만 가장 힘든 일은 업무에서 수많은 영상을 직접 보고 받는 스트레스일 것이다. 

"이 대기업 플랫폼은 사람들이 '모든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다' 같은 글을 게재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무슬림은 여성이나 동성애자, 심지어 (스티틱 씨, 당신이 믿든 안 믿든) 이성애자 같은 단어처럼 '보호 카테고리'에 속했기 때문이에요. 반면에 '모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다'라는 글은 가능했어요. 테러리스트는 보호 카테고리가 아닐 뿐더러, 무슬림이 유해한 용어도 아니었기 때문이에요."(p.19~20)



독자가 우리나라 'n번방 사건'을 서두에 쓴 이유는 당시 수사 당국이 거대 플랫폼 회사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삭제 요청'을 해도 결코 쉽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 범죄행위로 제작한 영상 삭제 요구가 묵살되다니, 독자로선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의혹이 해소된 느낌이다. 주인공 케일리가 연수 기간에 두 가지 메뉴얼을 배부받았다 말하며 밝힌 약관 설명서와 가이드라인 안내서이다. 당시 케일리는 가이드라인이 수시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는다. 더욱이 이 안내서는 집으로 가져갈 수도 없게 규정돼 있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컴퓨터 화면에 연달아 뜨는 사진과 영상, 실시간 방송을 검토한다. 이들은 이걸 플랫폼에 올려두는 게 괜찮을까? 만약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왜 안 되는지 말해야 했는데, 이 부분이 가장 까다롭다. 

"창문 밖으로 고양이를 내던지는 사람의 동영상은 학대 행위가 아닌 경우에만 업로드가 가능했고, 창문 밖으로 고양이를 내던지는 사람의 사진은 언제나 가능했죠. 침대에서 키스를 하는 동영상은 성기나 여성의 유도만 보이지 않는다면 가능했는데, 남성의 유두는 보여도 괜찮았어요. 질 안의 음경을 손으로 그린 그림은 가능했지만, 외음부를 디지털로 그린 그림은 금지였죠. 벌거벗은 아이의 이미지인 경우, 뉴스 관련 자료라면 가능했지만 홀로코스트와 연관되어 있다면 불가였어요. 미성년자인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나체 사진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니까요. 총 사진은 게재 기준에 부합했지만 총 판매용 사진이라면 게재 불가였어요. 소아 성도착자에 대한 살인 협박은 게재 가능했지만 정치인에 대한 살인 협박은 게재가 불가능했어요."(p.20)

케일리는 〈헥사〉를 그만두고 난 지금도 콘텐츠 삭제 규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외울 수 있다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회상한다. 동영상은 언제 삭제해야 할까? 피가 보인다면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 명백히 웃긴다면 괜찮다. 가학성이 개입되어 있으면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게시물의 내용이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경우는 또 괜찮다. 이 모든 규정을 지금까지 외우고 있는 케일리가 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독자들은 그녀의 말 속에서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녀의 냉정한 태도는 보호 기제 또는 억압 메커니즘일 뿐이라는 것을.

남자애는 휴대폰으로 자기 발 쪽을 찍고 있었는데,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 칼을 놓고 칼끝을 꾹 눌렀대요. 마치 두 발가락을 분리하는 수술을 막 집도하려는 것처럼요.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다른 손으로는 칼을 누르는 게 엄청 어설퍼 보였대요. 결국 피를 보게 된 순간, 시흐리트는 영상을 꺼버렸다고 했어요.

“왜?” 내가 물었어요. 동영상은 당연히 끝까지 다 봤어야 하니까요. 시흐리트가 아는 한, 다음에 생식기가 등장하거나 제3자에 의한 학대 행위가 나왔을 거라고 했어요.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어. 그 영상을 보면 자꾸 뭔가가 떠올랐으니까.”(p.95)



저자 하나 베르부츠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이 작품에서 심리적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빠른 서사 속도로 압축해냈고, 이를 통해 디지털 커뮤니티가 품고 있는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측면들을 독자들 앞으로 끌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인터넷에서 ‘정상’은 누가 결정할까? 무엇이 우리의 필터에 걸리는 것일까? 도덕적 개념을 무디게 하고 사용자를 감정적 좀비로 만드는 이미지들은 비단 케일리를 건드리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전체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의 존재감을 높게 사야 한다. 매일같이 ‘유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매일이다시피 접하는 유해 콘텐츠 추방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이 소설은 재미와 속도감으로 읽는 즐거움을 끌어내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저자는 이 소설이 모두 허구이지만 현실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현실에서 자료를 찾고 탐색하면서 빚어낸 소설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우리가 본 것』은 우리가 디지털 세계를 매일같이 경험하며 겪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다루어 독자들을 디지털 세계의 심연으로 깊숙이 끌어들일 것이다. 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 〈참고 자료〉란 면을 마련, 저자는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그들의 경험은 창작의 산물이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느 전 세계 상업용 콘텐츠 감수자들이의 근무 환경을 조사하면서 다음과 같은 책, 연구, 다큐멘터리, 기사 등을 활용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에게 13건의 자료들을 권한다.


저자 : 하나 베르부츠(Hanna Bervoets)


오늘날 네덜란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화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2009년 『또는 어떻게 왜(Of hoe waarom)』를 발표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2011년 출간한 『사랑하는 셀린(Lieve Celine)』으로 다음 해에 오프제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2012년 출간한 『모든 것(Alles wat er was)』은 네덜란드 서점가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7년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프란스 켈런동크 상을 수상했고, 2022년에는 첫 단편집 『현대의 희망(Een modern verlangen)』으로 J.M.A 비스회벨 상을 수상했다. 베르부츠가 펴낸 그 밖의 작품으로는 『에프터르(Efter)』 『이바노브(Ivanov)』, 『퓌지(Fuzzie)』, 『아픈 사람들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kom in het Rijk der zieken)』, 『당신이 아는 것을 가르쳐주세요(Leer me alles wat je weet)』 등이 있다.

『우리가 본 것』은 2021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선정된 소설로, 소셜 미디어의 유해 콘텐츠를 검토하고 삭제하는 이들의 세계를 생생하고도 인상적으로 묘사하며 화제를 모았다. 네덜란드에서만 65만 부가 판매된 이 작품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중국 등 14개국에 번역 소개되었으며,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를 위한 각색이 진행 중이다.


역자 : 유수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히스토리카 세계사 9』, 『축복받은 불안』, 『피델 카스트로&체 게바라』, 『세계도시파노라마 2권: 베이징』, 『노예12년』, 『히든위치』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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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대지 - 간도, 찾아야 할 우리 땅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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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김정호가 전국 방방곡곡을 도는 험난한 여정 끝에 지도를 만들었다는 우리가 위인전에서 읽은 내용에 기초를 두고 제작된 영화다. 김정호(1804~1866 추정)는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조정(정부)이 해야 할 일을 개인의 의지로 이뤄낸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19세기 관점에서 보면 그는 역대 최고의 '지도쟁이'이자 '지도꾼'이다. 한반도를 지도 위에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지도를 통해 대중에게 가장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실용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한국 지도의 발달사라는 관점에서도 그는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영화의 내용은 김정호가 지도 제작을 위해 눈비를 맞고 배고픔에 허덕이며 전국을 누볐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어느 선까지는 사실일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사업을 국가가 나서서 하지 않은데 개인으로서는 사비를 들여야 지도 제작이 가능했을 터, 김정호에게 그만한 돈이나 지위가 있을 리 없다. 그는 양반 계급이라면 으레 남아 있을 족보나 어느 기록에도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생몰 연대, 본관, 신분, 고향, 주요 주거지, 가계 등에 대해 어느 것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중인 계급의 이름 없는 사람이 지도 제작을 해낼 만한 재산이 있을 리 없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러나 김정호는 지도 제작이 평생 해온 직업이고, 따라서 지도 제작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지도에 미친 '지도꾼'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도 제작은 국가적 사업이다. 국가가 지도 제작에 나서야 제대로 된 지도를 얻을 수 있는 대형 국책 사업이다. 그것은 현대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방과 국토 개발 등 큰 국가적 사업 등도 지도가 있어야 제대로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 전반에 대한 지도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개인이 나서서 다른 지도 제작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일일 것이다. 만일 당시 조정에서 지도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관원이나 지리에 밝은 학자들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조정은 그럴 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조선은 국방에 관해서는 '0점'을 줄 수밖에 없는 국가인 이유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에 사대하는(섬기는) 한 나라가 망할 일은 없다고 믿는 국가가 조선이다. 사대주의가 국시로 돼 있는 조선이기에 지도의 필요성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500년 넘은 조선이 두 번의 외침에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국가 안보 차원의 지도마저 갖추지 않았던 나라가 조선이다.



김정호가 업적을 이룬 방식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판단은 지금의 지리학자들도 짐작만 할 뿐이다. 그가 영화에서처럼 눈비를 맞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전국을 누볐다는 이야기는 현재로서는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 그래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기반을 두고 있는 설정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이름을 남긴 곳은 많다. 당시 조선은 국가가 최고의 지도 제작에 필요한 인적·물적 기반과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에 개인이 쉽게 나설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김정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생 지도 제작을 생업으로 삼은 데다, 지도 제작에는 남다른 열정이 있었기에 결국에는 〈대동여지도〉를 완성해 낸 인물만이 가능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김정호가 생각해낸 방법은 기존 지도를 확인하고, 자료로 활용했을 거란 짐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도의 제작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이 있었기에 자료 수집도 쉬웠을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호는 국가가 생산한 기존 자료를 십분 활용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기존의 지도를 참조하고 보완 내지는 수정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지도를 저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려낸 것이다. 사실 기존의 지도만 갖고는 조금의 지리적 지식을 더한다고 정확한 지도가 제작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당연히 당시 김정호로서는 구체적인 지리 지식을 담은 지리지의 도움도 빌려야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기존의 지도와 더불어 지리지의 도움을 더해 〈청구도〉와 〈동여도〉란 지도를 만들고, 나아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고 현재의 지리학자들의 추정이다. 김정호가 기존 지도와 더불어 지리지에도 많이 의존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이 <〈동여도지〉나 〈여비도지〉 같은 지리지를 집필한 데서도 추론 가능하다. 지리지를 많이 읽어보고 참고하다 보니 기존 지리지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고, 이에 따라 기존과 다른 새로운 지리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여행에 주로 의존하여 지도를 제작했다면, 지리지를 만드는 데 그렇게 공을 쏟지는 않았을 것이란 반대적 가설이 성립되는 이유다.

이 책 『잃어버린 대지』는 김정호가 그리고 쓴 지도와 책을 바탕으로 간도 지역이 우리 땅이었다는 사실을 확증하고자 하는 한 지리학자의 여정을 소설로 담아내고 있다. 대동여지도로 유명한 김정호가 백두산과 주변 지역을 상세히 조사하고 기록한, 그러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 지리지인 『대동지지(大東地志)』 제26권 「변방고(邊防考)」를 추적하며 겪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 『잃어버린 대지』는 우연히 미국에서 전해진 “리뷰 오브 코리안 보더(Review of Korean Boader)”란 영문 문서에서 그간 전설처럼 전해지던 「변방고」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주인공 윤성욱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과연 「변방고」는 어디에 있을까? 또 어떤 내용이 쓰여 있길래, 왜 사라진 것일까.



『대동지지』는 김정호가 1861∼1866년께 편찬한 지리책으로 32권 15책이 전해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대동지지』는 목판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22첩을 간행할 무렵 32권 15책의 필사본으로 전국 지리지이자 역사지리서이다. 김정호는 목판본의 『대동여지도』 22첩 등 주로 지도의 제작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지도와 지리지를 함께 제작한 지리학자이며, 『대동지지』는 그가 마지막으로 편찬한 지리지이다. 현재 완질본이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 김정호의 친필본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호는 국토정보를 효율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지도와 지리지를 함께 이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청구도 범례」등 여러 곳에서 피력하였다. 지도는 한눈에 이미지로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정보를 수록하는 데 한계가 있고, 지리지는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록할 수 있지만 한눈에 이해할 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호는 평생 동안 지도와 지리지를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대동지지』의 가장 앞쪽에는 김정호가 참고한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조선측의 자료가 43종이나 되고 중국측의 자료는 22종이다. 이는 김정호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임과 동시에 조선의 지리지를 집대성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목차 다음 부분에는 대표적인 순우리말의 지명유래에 대한 소개와 한자로의 표기에 대해 기록해 놓았는데, 그가 참고한 상당수의 한자 지명이 원래는 순우리말 이름을 한자의 소리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임을 알려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국 지리지로는 경도(京都) 및 한성부(漢城府)가 1권, 경기도가 2∼4권, 충청도가 5∼6권, 경상도가 7∼10권, 전라도가 11∼14권, 강원도가 15∼16권, 황해도가 17∼18권, 함경도가 19∼20권, 평안도가 21∼24권까지 수록되어 있다. 하천에 관한 내용인 산수고(山水考)는 25권으로, 국경 방어에 관한 내용인 변방고(邊防考)는 26권으로 편제되었지만 내용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수도인 한양에서 전국 중요 지점까지의 거리 정보를 정리한 정리고(程里考)가 27∼28권에 수록되어 있고, 28권에는 역참(驛站)과 관련된 내용인 발참(撥站)과 연변해로(沿邊海路)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총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기록한 방여총지(方輿總志)가 29∼32권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대동지지』 제26권이 「변방고」이고 내용은 없이 편제로만 남아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집필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잃어버린 대지』는 간도 영유권을 둘러싼 역사적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은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워 역사적 장면 사이사이에 개연성 있는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현대판 스토리로 풀어낸 역사 팩션(Fact+Fiction=Faction)이다.



현재 간도는 중국의 영토로 인식되고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영토였으며, 여전히 북간도 지역에는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다. 간도 영유권을 둘러싼 논란은 조선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소설 『잃어버린 대지』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간도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조명하는 역작으로, 독자들에게 잃어버린 땅 간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묵직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간도 땅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1712년(숙종 38)에 세워진 〈백두산 정계비〉의 비문에 있는 문구를 근거로 삼는다. "서위압록(西爲鴨綠) 동위토문(東爲土門)" 중국(淸)과 조선의 국경은 "서쪽은 압록강으로, 동쪽은 토문강으로써 분계선을 삼는다"고 새겨져 있다. 간도는 토문강과 두만강 사이, 곧 토문강 동남에 있는 땅이다. 여기서 토문강(土門江)은 백두산 천지(天池)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흐르는 송화(松花, 쑹화)강의 한 지류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후일 두만강으로 착각했거나 고의로 변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선 숙종 때 규정한 이후 '토문'은 우리 민족이 계속 살고 있고(현재까지) 중간중간에 국가간 영토 문제로 부각됐던 곳이기도 하다. 일본이 간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지배했던 시절,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경선 재협약 등이 어우러지면서 애매해진 상태다. 이 때문에 『대동지지』 제26권이 「변방고」가 이 소설을 이끌고 가는 핵심이 되는 것이다. 

저자 오세영은 책 뒷 부분에 있는 〈작가의 말〉을 통해 "간도는 1964년 북한과 중국 사이에 체결한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중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우리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두만강 너머의 북간도에는 지금도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곳의 영유권 다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1964년 조중변계조약은 1909년 일본과 청나라가 체결한 간도협약에 기초했고, 간도협약은 을유년(1885년)과 정해년(1887년)에 조선과 청나라가 국경을 정한 감계를 참고했다. 그리고 두 감계는 1712년의 정계비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밝힌다. 정계비는 압록강과 토문강을 두 나라의 국경으로 정했는데 토문강의 위치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간도가 조선 땅인가 중국 땅인가가 결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간도협약을 주도했던 시노다 지사쿠는 나중에 줄기차게 '간도는 조선 땅'임을 역설했다고고 한다. 지사쿠는 당시 통감부 간도파출소 총무과장이었으며 후일 경성제국대학 학장을 역임하는 저명한 일본의 역사지리학자이다고 덧붙인다.



소설의 주인공 윤성옥은 독일 홈볼트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기 시작한 지 5년째인 유학생이다. 홈볼트 대학은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배출한 학교로서 사상과 철학 분야에서 명망이 높지만, 윤성옥이 전공하고 있는 역사지리학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루빨리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가지고 귀국해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를 꿈꾸는 유학 생활이 만만치 않다. 늘어나는 경비도 문제지만 대학 강단의 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이다. 지도교수 깐깐하기로 소문난 베른하르트와의 만남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철저히 준비해도 될까말까한 논문 심사의 날도 하루하루 줄어감에 따라 초조함은 늘어나지만 준비에 매진한다. 논문의 주제를 「리히트호펜이 동양지리학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로 정했다. '실크로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은 1860년대 초반에 독일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북아시아를 방문하고서 상세한 기록을 남겼고, 귀국해서는 여기 홈볼트 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소설 속에서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서 고대 중국과 로마 제국을 연결했던 실크로드는 바닷길이 열리고, 하늘길이 뚫려서 세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로와 함께 '신실크로드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논문을 위한 자료집 독파를 하던 윤성옥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리히트호펜보다 먼저 일대를 조사한 사람의 흔적이다. 그 사람이 가진 자료의 방대함과 과학적인 조사에 리히트호펜이 크게 놀랐다는 내용이 윤성옥의 눈을 잡아 끈 것이다. 리히트호펜은 동북아시아 조사 때 "동쪽에서 온 지리학자"로부터 큰 감명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었다. 동쪽에서 온 뛰어난 지리학자? 그가 누굴까. 당연히 서양학자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문맥으로 봐서 중국인도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인? 하지만 자료에 적힌 1864년은 일본이 아직 중국에 진출하지 못했을 때다. 그럼 조선인? 윤성옥은 설마 하면서 자료로 눈길을 돌린다. 

동쪽에서 온 지리학자가 동북 3성 중에서 길림성 일대를 집중적으로 탐사하고서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의 세밀한 조사와 과학적인 기법에 경탄했음을 리히트호펜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누구며 무슨 목적으로 길림성 일대를 탐사했을까. 히리트호펜이 감탄을 아끼지 않는 걸로 봐서 예사 인물이 아닐 것이다. 혹시 자세한 내용은 없을까. 강한 호기심을 느낀 윤성옥은?



이 소설의 특성상 윤성옥의 다음 행동은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글로서만으로도 어떤 내용일지 훤히 궤뚫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쓴 역사소설은, 혹은 팩션은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어떻게 꿰맞추느냐만 남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니까. 또 저자 오세영은 팩션을 이번에 처음으로 쓴 것은 아니다. 이미 『베니스의 개성상인』, 『구텐베르크의 조선』, 『소설 자산어보』 등을 집필해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 작가 아닌가. 

그렇다고 내용에 대해 전혀 기술하지 않을 수 없어 페이지를 건너뛰어 책의 한 부분만 발췌해 여기에 싣는다. 


"도댜체 탐사자는 누구며 1864년에 백두산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그 의문은 다음 장에서 풀렸다. 탐사자는 국경표지석에서 정한 동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 청나라가 주장하는 강이 아닌 훨씬 북쪽의 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적고 있었다. 

1864년······ 백두산······ 국경표지석······ 하면 '리뷰 오브 코리안 보더'는 정계비에서 토문강의 위치를 추적하는 탐사를 말하는 것인가. 그런데 자동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라면······ 아무래도 기리고차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기리고차는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가할 때 사용했던 도구로, 후일 실제 거리가 110.95km인 경도 1도의 거리를 108km로 측정했을 정도로 정확한 기구였다. 그리고 1864년은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와 짝을 이루는 대동지지를 저술한 해다. 하면 김정호가 토문강을 답사했단 말인가. 

"······!"

윤성옥은 터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잊고 있었던 리히트호펜의 논문이 떠오른 것이다.(p.81)


저자 : 오세영


195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경희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서의 행간을 채우는 일을 즐겼던 오세영에게 역사를 이야기로 꾸미는 역사 작가는 잘 어울리는 직업인 셈이다. 오세영에게 역사는 내일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소설은 역사를 쉽게 풀어쓰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그는 역사학계에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문단에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러나 시대와 삶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소재를 발굴해서 독자들을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베니스의 개성상인』,『구텐베르크의 조선』, 『원행』, 『만파식적』, 『타임 레이더스』, 『화랑서유기』, 『포세이돈 어드벤처』, 『창공의 투사』, 『소설 자산어보』, 『콜럼버스와 신대륙 발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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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2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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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 이론을 꺼내야 하는 독자는 당혹스럽다. 역사는 좋아했지만 물리학은 싫어했기 때문이다. 호불호에 따라 대학 입시도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져 대학 입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리를 싫어한 독자로서는 당연히 인문학 계열로 입학했다. 덕택에 물리학은 적어도 독자의 삶에서 수십 년 동안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어서 적지 않은 기간에 역사는 TV 드라마 사극에 나오는 정도만 이해하면 되었다. 세계사는 대부분 서양의 역사에 맞추어져 있어서 자세하고 깊은 것까지 배울 필요는 없었다. 영화나 혹은 가끔 관련 책을 읽는 정도만 흡수해도 삶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사와 우리 삶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사건편 2』(이하 『벌거벗은 세계사 2』)는 tvN의 교양 프로그램인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다룬 내용 가운데 세상을 뒤흔든 중요한 사건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는 모두 10개의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은 매회 다른 강사와 다른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이 책에 있는 모두 강연자가 다르다. 때문에 편의상 저자를 'tvN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으로 통칭한다. 

저자는 이 책을 제작하면서 세상의 모든 사건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즉 어떤 일이든, 크든 작든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 제작팀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제작팀이 10개의 사건을 책으로 만들다보니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저자가 출판사 책 소개글에 낸 첫 문장이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인 것으로 미루어 합리적인 지적일 듯하다. 소개글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일은 저마다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역사 속 사건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된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사를 좀 더 깊숙이 배운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금이라도 예상하고 대비할 힘을 기를 수 있다.

이 일련의 소개글은 앞서 언급한 '양자역학'의 이론에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에 대답하기 위해 반도체 없는 컴퓨터를 상상해 보자. 반도체가 없다면 노트북, 스마트폰과 같이 작은 컴퓨터의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는 등 현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많은 기술들의 이론적 바탕이 됐다. 또한 양자역학은 과학기술의 측면뿐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20세기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이란 무엇일까? 물리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는 독자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개념이라도 알기 위해선 백과사전이나 관련 책을 이용해야 할 듯하다. 김재영의 『물리산책』에 따르면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으로, Quantenmechanik(크반텐메하닉)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뒤에, 일본에서 ‘量子力學(료오시리키가쿠)’라 새로 번역됐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양자역학’이란 용어로 번역됐다. 양자역학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양자’와 ‘역학’을 각각 살펴보는 것이 좋다. ‘양자(量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온 말로,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학(力學)’은 말 그대로는 ‘힘의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힘과 운동’의 이론이다. 이렇듯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2』에 나오는 사건은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순간은 물론, 처음 만나는 의외의 사실들까지 더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프레임 밖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와는 다른 시각을 보인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을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양자역학 이론이 적용된다는 점, 일종의 통찰력을 가진 역사 의식에 바탕한 내용으로 풀어헤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신’ 제우스가 시작한 집안싸움이 아테네의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놀라운 과정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비행기 납치와 테러가 벌어지던 공포의 20세기 후반의 상황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사건을 둘러싼 역사 속 결정적 순간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시간 관계상 방송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내용까지 상세하게 정리해 역사 속 흥망성쇠의 진짜 원인부터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뒷이야기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역사란 스포일러가 넘치고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이야기"라는 말도 꺼낸다. 이는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시연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으나 역사 통찰력으로 갖고 살피면 '그냥'이나 '우연'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이 때문에 사건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시각으로 해체할 수도 있다. 이는 다시 조합을 이루어 '필연'을 만들어내는 등 독자 입장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2』는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역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속속들이 파헤친다. 외우지 않아도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껏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역사의 이면을 탐구하기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독자들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 아는 것을 넘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10개의 사건이 등장한다. 작게는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인류 전체가 휘말려드는 사건으로 확대될 수도 있고, 크게는 국가라는 거대집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사건은 기록으로 남겨진 것뿐만 아니라 구전되어온 '신화'까지도 포함해 인류가 살아온 모습과 과정에 대한 혜안을 제공한다. 

1장 〈벌거벗은 그리스 민주주의-제우스의 집안싸움이 불러온 민주주의의 탄생〉, 2장 〈벌거벗은 인도-힌두교와 카스트의 진실〉, 3장 〈벌거벗은 초한지《삼국지》의 모태가 된 두 영웅〉, 4장 〈벌거벗은 종교개혁-신의 대리인, 교황의 탐욕〉, 5장 〈벌거벗은 스페인 내전-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 리허설〉, 6장 〈벌거벗은 쑹씨 세 자매-중국 현대사를 뒤흔든 이들의 정체는?〉, 7장 〈벌거벗은 러시아의 흑역사-괴승 라스푸틴과 러시아 제국의 몰락〉, 8장 〈벌거벗은 도쿄재판-일본의 전쟁 학살자들은 왜 풀려났나?〉, 9장 〈벌거벗은 CIA-기밀해제 문서로 본 CIA와 라틴 아메리카〉, 10장 〈벌거벗은 테러의 시대-뮌헨 올림픽 참사와 비행기 납치 사건〉 등 10개의 장(章)이다. 

지금까지 역사는 승자의 입맛에 맞춰 그들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만 기록되어 왔다. 사가(史家)들도 모두 인정하고, 그것을 텍스트로 역사를 해석한다. 물론 명백하게 허위를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팩트)은 접어두고라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사가의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그동안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의 사실과 근거를 살펴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진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같은 시대 사람들이 잊고 싶어 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도 잘못된 시선으로 한쪽의 역사만을 보면 전체를 놓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고르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로 읽힌다. 이 책은 세상과 질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통찰과 미래를 읽는 전망을 얻을 수 있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다. 언급한 대로 1장에서는 신화의 이야기다. 신화는 문자 기록보다는 문자 이전, 즉 구전으로 내려온 설화나 영웅담을 모아놓은 것이다. 우리가 2,500년 동안 사실로 믿어온 그리스 신화도 마찬가지다. 구전의 내용을 기초로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배웠고, 믿었다. 물론 문학적 위치나 최초 문명의 발상지라는 영예는 뒤늦게 발굴된 바빌로니아 수메르인들의 『길가메시』에게 내주었지만. 

이 책에는 여전히 그리스 신화를 더 믿을 수 있는 위치에 놓고 있다. 아직 『길가메시』를 새긴 점토판이 완전히 발굴되지 않은 데다 이미 발굴된 점토판의 문자 해독이 불가능해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예지력을 가진 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신들의 전유물인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결과 ‘신들의 신’이자 자신의 사촌인 제우스로부터 절벽에 매달린 채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수백 년이 넘도록 프로메테우스는 굴하지 않았고, 그의 뚝심에 제우스는 끝내 손을 들고 만다. 시간이 흘러 프로메테우스의 저항정신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원전 6세기경, 아테네 평민에게도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왕정과 귀족 정치를 거쳐, 참주 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층 민중의 불만을 이용해 그들의 지지를 얻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정치를 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p.39) 그에 대한 보답으로 참주는 노예를 해방시키고, 귀족이 독점했던 땅을 빼앗아 평민들에게 나눠줬으며, 농사지을 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또 이때 대규모 축제를 열어 평민들의 지친 마음을 풀어주려던 대규모 축제인 '디오니소스 축제'로 성장했다. 이 축제는 참주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민들의 새로운 힘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디오니소스는 최대 1만8,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규모 공연장이었고, 공연은 프로메테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라는 연극이다. 절벽 위에 매달려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수백 년 감내하면서 최고 권력자인 제우스에게 굴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때 프로메테우스가 내뱉은 대사가 "그대들 신출내기들은 통치한 지가 얼마 안 되거늘 벌써 고통도 모르고 성채에서 사는 건가?"였다고 저자는 전한다. 축제를 통해 연대의식을 느끼고, 공연을 통해 저항 정신과 민주 의식을 깨친 시민들은 이제 국가 권력의 주체는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태동한 이유다. 아테네와 민주주의는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인도에서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흐름도 세계 정세를 바꾸어놓은 사건이다. 사실 카스트 제도는 2,000년간 유지되어온 인도 고유의 신분제도다. 인도의 종교 힌두교는 원래 사회적 의무와 물질적 풍요, 쾌락만 가르친 종교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불교와 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가 등장하면서 힌두교는 물질만 추구하고 불평등을 강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불평등한 사회를 떠나 수행자의 가르침을 쫓아 깨달음을 구하려는 사람도 점차 증가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최고 신분계급인 브라만이 고심 끝에 내놓은 해답이 힌두교도의 삶의 목표에 '깨달음'을 추가했다. 힌두교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회유하려는 의도였다. 이 결과 힌두교에는 물질과 쾌락을 추구하는 동시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다소 모순적인 가치관이 공존하게 된다. 사실 깨달음을 통해 속세에서 벗어난 사람은 인도에서도 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인도인은 힌두교라는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각자의 이익과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도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다. 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기나긴 중세 시대를 겪으면서 처음에는 4개로 구분되던 카스트가 수천 개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수많은 '자띠'(직업이나 가문이라는 뜻)가 생겨난 것이다. 인도인들은 지금도 카스트보다 자띠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카스트 체계는 18세기에 들어 또다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영국의 침략이다. 식민지로 전락한 인도는 세포이 반란(1857)도 영국의 무력에 좌절되었고 멀리 떨어진 영국은 인도 대륙을 다스리기에 벅찼다. 영국 정부가 한 가지 묘안을 짜낸 것이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인구 총조사이다. 이때 영국은 조사 항목에서 인도인을 단순한 기준으로 구분했는데 바로 고대 인도 때 만든 힌두 경전의 카스트다. 이미 수천 개의 자띠로 나뉘어진 인도인들은 자신이 수드라인지, 바이샤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욱여넣듯이 대강 분류해 짜맞추었다는 것. 이 인구 총조사가 사그라들었던 카스트 제도에 다시 불을 붙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격변기가 비참한 상황의 불가촉천민에겐 기회가 되기도 했다. 도축과 가죽, 육류 가공이 근대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이 업에 종사하던 불가촉천민들이 큰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도나 영국에 꼭 필요한 산업이었기에 이들에게 신분 상승과 함께 수천 년 간 이어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난 계기가 된 셈이다. 이들 신흥 불가촉천민들은 다른 계급처럼 돈을 뿌려서 높은 카스트로 올라가거나 고급 교육을 받고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하니, 독자로서는 우리 조선시대의 천민 계급이 떠올라 숙연해지기도 한다. 지금의 인도는 알고 있는 바와 다르게 1947년 영국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헌법과 법률로 차별 금지법이 만들어져 차별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러나 아직 일부 지역이나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는 아직도 남아 있는 악습이지만 완전히 사라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20세기 초 청나라, 여성의 인권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던 이곳에서 중국 여성 최초로 미국 유학생이 된 세 자매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아이링, 메이링, 칭링이라 불린 이들은 청나라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던 격동의 시대에 ‘누구의 아내’로 불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우리로 보면 '신여성'인 셈이다. 이들의 삶과 결혼은 중국 현대사를 뒤흔들었다고 하는데 커다란 변화의 물결 뒤에 숨어 있는 세 자매의 흥미진진한 인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 책에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분노하고 놀랐던 일본 전범 재판 이야기를 읽을 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전쟁으로 1,00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일본의 전쟁범죄자, 즉 전범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을 열었다. 모두 118명의 A급 전범 용의자 중 28명이 재판정에 섰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이 전쟁 중에 벌인 끔찍하고 잔혹한 학살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뒤 다수의 전범 용의자가 풀려나거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석방되었다. 제대로 처벌받은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는 것. 도대체 일본의 전쟁 학살자들은 어떻게 법망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국제군사재판은 왜 제대로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까? 

이와 함께 1970년 전후, 세계 곳곳에서는 비행기 납치와 공항 이용객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연이어 발생했다. 1969년에만 80여 건의 항공 테러가 이어져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다. 그러던 중 1972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올림픽을 둘러싸고 비행기 납치, 공항 시설 공격, 인질 납치 및 살인 등 최악의 국제 테러가 일어났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국제 테러는 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무고한 희생을 담보로 한 잔인한 비극은 왜 아직도 계속되는 걸까?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시작한 집안싸움이 지금의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놀라운 과정을 밝혀준 이 책은 비행기 납치가 교통사고만큼 자주 벌어지던 20세기 말 '테러의 시대'까지 조명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모르고 있거나, 알았다고 해도 뒤에 숨은 권력의 힘을 알아내지는 못했을 내용이 이 책에는 실려 있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2』는 국가를 뒤흔든 흥망성쇠의 뒷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왜 과거를 뒤돌아봐야 하는지, 이를 거울삼아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저자 : tvN〈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에 들이닥친 코로나19. 자유롭게 누군가를 만나고 여행을 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질 무렵 집에서 안전하게 세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 숨겨진 세계사까지 배울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 <벌거벗은 세계사>입니다. 그 마음이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이 책이 조금이나마 현시대의 갈증을 해소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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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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