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 나의 갈팡질팡 지망생 시절 이야기
반지수 지음 / 송송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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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그림 그리는 마음이 중도에 꺾이지 않고 오직 예술의 길을 걷겠다는 노력과 열정이 돋보인다. 방황하거나 갈팡질팡해도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이끈 것은 포기를 하지 않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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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 나의 갈팡질팡 지망생 시절 이야기
반지수 지음 / 송송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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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하는 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책을 읽지 않다가, 코로나 펜데믹 발생 후 재택 근무하다 책꽂이에서 읽다 만 책 한 권을 다시 읽은 게 발단이 되어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 5년을 꼬박 읽었으니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지만 수백 권 이상 될 듯하다. 물론 읽기에 부담이 없는 에세이·소설 등 문학책이 많았다. 또 의외로 많이 접한 책은 음악·미술 관련 감상법이나 해설서가 많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자주 갔던 콘서트나 전시회였지만 대체용으로 적절했다. 그리고 인문학 서적도 많이 출판되었다. 특히 정신의학과 심리학 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언제나 가장 많이 판매된다는 자기계발서도 역시 연말 서점 집계에서 최다 판매를 기록한 듯하다. 소설은 SF가 특히 많이 쏟아져 나왔다. '대세는 SF'라고 할 만했다. 일본 책 번역 부분에선 미스터리 소설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소설 작가 몇 명의 이름 정도는 알게 됐다. 직장 생활 수십 년 동안 거의 읽지 않은 책이 한 권, 두 권 읽다보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마치 책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무리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 같다. 이젠 1,000권을 거뜬히 넘길 정도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읽은 탓인지 내용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책을 들이밀고 독서 여부를 묻는다면 "읽었다" "안 읽었다"는 대답할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었나?를 질문을 바꾼다면 즉각 응답할 게 별로 없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떨어진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기억력은 다시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책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읽는 시간과 내용을 단순화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는 생각을 해냈다. 기억력은 어렸을 때부터 역순으로 무너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선 그림 설명을 해주는 책을 많이 접했다. 그림 미술에 관한 책을 먼저 집어들었다. 놀랍게도 어렸을 때 그림 그리다 속으로 마음 먹은 것들이 되살아났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게 그림을 설명하는 책과 다시 친해지는 데는 분명 큰 몫을 차지했다.



이 책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도 거침없이 선택했다. “이 책은, 분명 누군가에게 뜨거운 불길이 될 것이다.”란 홍보 문구도 독자의 경우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조용히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놀랍게도 그림을 꿈꾸던 시절부터 그림을 포기하던 때, 그리고 일반 직장에 다니던 때 등 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서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이 책의 표지화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과외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의 공부방과 비슷하다는 기억도 되살아났다. 그 선생님의 이름과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신 분인지도 기억에 살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표지화부터 관심이 생기는 바람에 저자 반지수 소개란에 먼저 눈이 갔다. 책 속의 몇 장의 그림과 한눈에 훑었다. 꽤 낯익은 그림들이다. 소개란에는 『불편한 편의점』, 『위저드 베이커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팽이 식당』 등의 표지그림으로 이름을 알린 그림 작가라고 한다. 몇 년 전 에세이 삽화 작가가 펴낸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작가의 책에는 글보다 그림이 훨씬 많았다. 글은 시보다 적었지만 그림이 훌륭해서인지 꽤 인기가 좋은 작가라고 소개돼 있었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났지만, 지금처럼 많은 생각이 되살아 나지는 않았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많은 기억이 생각났던 것은 저자의 이력과 또 책 속의 글 때문이다. 저자는 독자들로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요?" "비전공자인데 그림을 시작해도 될까요?" "나이가 00살인데, 꿈을 좇아도 괜찮을까요?"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말한다.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만화가, 온라인 교육 플랫폼 인기 그림 강좌 운영자···. 요즘 흔한 말로 N잡러인가? 할 정도로 여러 곳에 관계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모두 그림과 관련된 일들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저렇게 많은 일을 한다면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할까?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좋아하는 그림을 직업으로 삼고,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 반지수가 '천부적 재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노력' 없이는 재능도 발휘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림과는 완전 먼 직업군인데. 저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미술학원이나 예중 예고에 다닌 적도, 입시미술을 배워본 적도 없다. 사회과학도로서 사회운동에 매진하던 23살, 대학 3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을 하고 로스쿨에 가야 할까, 본격적인 사회운동가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던 시기,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휴학을 하고 만났던 많은 이들이 전공을 바꿔 예술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였다.

23살에 다시 그림 그리기를 결심하고도 알바를 하고, 사회운동을 하고, 복학을 하고, 영화를 할지, 그림을 그릴지, 그림은 어떤 그림을 그릴지를 고민하다가 다시 그림을 그려도 될까? 근본부터 회의하기를 반복하고, 희망과 절망, 노력과 번아웃, 자기 확신과 불신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하기를 수년 동안 거듭했다고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하루하루 성장해 결국은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예전에 책을 펴내고 예스24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셨는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이 화가나 만화가였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내가 다른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림그리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배운 적도 없고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어서 계속 미루거나 선택을 못 하다가, 무슨 일을 해도 자꾸 그림 생각이 나고, 어떤 일을 해도 그림이나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일단 시작해봤는데, 너무 몰입이 잘 되어서 ‘이게 내 업인가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해보기로 결정했어요."라고 답했다. 인터뷰라서 그런지 응답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소 김이 빠지는 듯하지만 말투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때 낸 책 『보통의 것이 좋아』(에세이)로 인터뷰한 것인데 이런 질문도 있었다. "평상시에 일러스트 작업을 하실 때 어떤 부분에 가장 고민을 하시고, 신경을 쓰시는지요?" 저자의 답변은 일반적이지만 화가로서 가장 적절한 답변으로 생각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이 담겨 있는가에요. 내가 세상을 보면서 좋았다고 캐치한 부분, 내게 소중했던 순간과 그때의 분위기, 공기. 그게 그림의 모습으로 담겨있는가.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 사실을 계속 확인하면서 그려요. 누군가 이 그림의 첫인상으로 그런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려요."



이 책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는 모두 2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23개의 장이 크게 두 부분으로 갈라져 있다. 저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노력과 방황의 시간과 그림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가 큰 줄기라면, 장과 장 사이에 그 시절 기록했던 〈작업일지〉를 배치했다. 그러니까 각 장의 내용에 대한 글들의 증거 기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림으로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화가로서는 이 책에서 글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치 해설하듯이···.

이에 대해 저자는 "그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쓰는 사람이다"고 답한다. 그는 지망생 시절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고 말한다. 읽은 책, 본 영화, 그렸던 그림, 그날그날의 깨달음, 감상, 다짐 같은 것들. 이걸 저자는 〈작업일지〉라고 부른다.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우선 일지에 쏟아놓고, 반복해 다시 읽으며 자신의 상황과 문제를 파악하고 수정하고 개선해나간다. 보통 사람으로는 쉽사리 하지 못할 일이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의 일들에 대해 기록하고 다시 읽으며 반성하고, 개선점까지 다시 기록하는 일은 하루이틀이 아니고서야 "그런 사람이 있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저자는 독학자로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불안, 일반적인 인생 경로를 벗어난 데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하나씩 스스로 깨쳐갈 때의 기쁨 같은 것들이 생생히 기록했다고 고백한다. 뱅뱅 맴도는 것 같은 일상도 매일의 기록을 길게 나열하면 나선처럼 상승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더딘 오늘을 견디는 힘이 된다고 장담하듯 밝힌다. 독자로서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실천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인다. 갈팡질팡하는 지망생이었지만, 하루하루 끈기 있게 고민하고 탐구하고 실행했던 그 기록들이 오늘치의 힘듦을 감당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생생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의 끝없는 ‘갈팡질팡’을 읽다보면 “열심히 하지 않는 법을 모른다”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맞다. 요즘 말로 이른바 '중꺾마'라고 한다던가? "중요한 건 하고 싶다는 마음, 멈추지 않는 시도 아닐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현듯 새로운 각오가 마음속을 소용돌이친다.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며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고 '자퇴 소동'을 빚은 저자는 덕분에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들은 개인적인 이유로 갑자기 그만 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고 느긋하게 하고 싶었던 경험과 활동, 대화와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불태워야 한다고 여긴 것이 공부보다 독서였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이 '생각을 계속 써 두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계속하다 보니 가치관이 많이 변해가더라는 것. 목적을 두었던 변호사라는 직업부터, 법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내가 가고 싶은 또 다른 곳들을 발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로 인해 더 활동적이고 열악한 곳으로 가고 싶어졌고, 사람이 생에서 단 하나의 직업만 가질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다고 책에 적고 있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채롭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일까? 외도(?)도 어느 정도 했는지, 저자의 발걸음은 다시 학교로 간다. 학생운동을 하는 동안 예술과 병행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은 계속했다는 점을 매우 잘한 일로 생각하는 모습이다. 세상을 공부하고 매일 생각이 맞는 친구들과 모여 세상, 예술,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것을 체득했다고 한다. 그 어떤 것보다 자신다운 모습이었고 아름다웠다고 저자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1년 더 학교를 다녔는데도 또 졸업을 하지 못했다. 정말 '꾸.역.꾸.역.' 다녔다고 책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2016년 여름이 되어서야 졸업했다. 처음 자퇴를 하겠다고,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게 2012년이었으니 4년이나 더 학교에 발이 묶여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은 저자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한 시점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게 생각하고, 직접 행동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자신이 현재까지 걸어온 길을 기록에 남긴 대로 다시 써 '젊은 날의 방황' '청춘의 고민' '삶의 열정' 그 시기의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독자들이 얻어갈 것이 많은 책이다. 


저자 : 반지수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던 스물세 살,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이후 수년간 독학으로 갈팡질팡하며 지망생 시절을 보냈다. 희망과 절망, 노력과 번아웃 사이를 오가는 막막한 날들에도, 하루하루 성장해 결국은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저서로 『보통의 것이 좋아』, 『반지수의 책그림』, 『두 고양이와 산책, 사계절 컬러링북』, 그림작가로 참여한 만화책 『너의 인스타-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볼래?』가 있다. 『불편한 편의점』,『위저드 베이커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팽이 식당』 등 책표지 그림을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림책, 만화, 에세이, 화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들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평생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나, 반지수는 그림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한다.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또 만화를 그리며 글을 쓴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될 줄 알았건만 정신 차리고 보니 책 일을 하고 있다. 하루 중 대부분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쓰고, 그리는 셈이다. 먹고살기 위해 표지 일러스트를 그렸고 세 권의 책을 그리고 썼다.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위저드 베이커리』, 『달팽이 식당』, 『책들의 부엌』 등 표지를 꾸준히 그려왔는데, 감사하게도 작업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출판계로부터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나의 그림으로 그림책, 만화, 에세이, 화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들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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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군주론 - 新譯 君主論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세키네 미츠히로 엮음, 이지은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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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술술 읽히는 군주론』은 표제어에서 느껴지는 대로 '쉽게 풀어쓴 군주론'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일본의 저술가 세키네 미츠히로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편역한 책이다. 이를 우리 번역가 이지은이 우리말로 번역했다. 편역자 세키네 미츠히로는 "『군주론』은 지난 500년 동안 꿋꿋하게 지켜온 명성에도 불구하고, 책을 쓸 당시 이탈리아의 복잡한 정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본문 속 수많은 각주로 인해 동서양을 떠나 현대 독자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워 '제목은 알지만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제한 뒤 "그 점을 고려해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술술 읽히는 군주론』의 장점이며 지향이자 미덕"이라고 밝혔다.

세키네 미츠히로는 책 앞 부분 「엮은이의 말」을 통해 15세기의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문화적 중심지로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격렬하고 복잡한 권력투쟁 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메디치가·베네치아·나폴리 등의 이탈리아 제국,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 교황청, 프랑스, 스페인, 신성 로마 제국 등 다양한 세력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패권을 둘러싸고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 세력들의 다툼의 장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20대 후반에 피렌체 공화국 정부 관리로 채용돼 외교와 군사 분야에서 요직을 역임했다고 세키네 미츠히로는 설명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외교관으로 다른 나라에 나가 군주들과 직접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 마키아벨리는 정부 수집과 협상을 잘하는 매우 유능한 관료로 인정받았는데, 정국 변화를 계기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한 시기 실의에 빠져 피렌체 근교 산장에서 은둔생활 중 재기를 노리며 쓴 것이 바로 『군주론』이라고 집필 배경을 덧붙인다.

『군주론』은 결국 군주의 통치기술을 다룬 것인데, 군주가 국가를 통치·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의지·야심·용기가 있어야 하며, 필요하면 불성실·몰인정·잔인해도 무방하고, 종교까지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책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로 인해 후세에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게 된 권모술수주의를 주장하였다 하여 비난의 대상 및 위험한 서적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분열과 외국의 간섭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상태에 빠진 이탈리아를 강력한 군주에 의하여 구하고자 한 마키아벨리의 애국심의 발로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며, 근대 정치학을 개척한 획기적 문헌으로 높이 평가되는 대목도 눈여겨봐야 할 일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상적인 군주에 관해 논한 『군주론』을 어떻게 21세기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가 세키네 미츠히로의 관심사였다. 즉 현대 사회에 적용해 보면 '리더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주제라고 판단, 『군주론』 속에는 리더에게 필요한 통치술만 적혀 있는 것은 아니란 점에 착안해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비결을 중심으로 풀어쓰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주변의 복잡하고 냉혹한 현실을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공하겠다는 점이 세키네 미츠히로의 집필 취지이다.

독자도 『군주론』을 이미 읽었지만 발췌 번역본인 데다, 세키네 미츠히로가 언급한 대로 그냥 '교양 필독서'로 별 생각 없이 읽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리고 묘하게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냉혹한 정치가, 권모술수의 군주의 기억보다는 우리 조선 시대 정철의 〈사미인곡〉 같은 느낌이었다. 또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쓰인 『손자병법』보다도 덜 감동적이었고, 당시 피렌체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뚫고 나가는 이른바 도시국가의 작은 군주 역할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만 받았던 기억이 난다.

또 권모술수의 외교책을 말할 때 중국의 귀곡자(鬼谷子)도 떠오르는데 『귀곡자』 역시 권모술수를 말하지만, 후대의 구양수가 밝힌 바와 같이 "시에 따라서 적절하게 변화하고, 일을 가늠해서 적당한 방책을 내는 바는 족히 취할 바가 있다"라고 평가한 점을 이해한다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보다 1,700년이나 앞선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도 많고 학자들도 많은 시대였다. 도시국가 피렌체보다 훨씬 복잡한 정치 세력들이 수백 년 간 전쟁을 벌였다. 수많은 국가의 명멸로 '군웅할거' 시대였다고도 표현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공자를 비롯, 노자·장자·묵자·순자·손자가 국가 부흥의 토양으로 군주들의 정치를 도왔다. 학문으로서도 거의 모든 토대가 갖춰지고 국가의 틀을 완성시키는 시기였다고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이들 학자들의 학문과 이론은 국가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자처했고, 또 성숙해졌다. 이 가운데 『귀곡자』의 저자 귀곡자는 전국시대로 알려진, 2,300여년 전 중국에서 주로 전쟁에 필요한 책으로 알려져 왔다. 다만 손자의 『손자병법』과 다른 점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재주는 모두 동원된" 전쟁 이론이라고 치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수단까지 모두 동원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이 책 『술술 읽히는 군주론』은 모두 2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3장 「권력을 타인에게 준 자는 자멸한다」, 7장 「우연히 군림하게 된 자」, 10장 「‘자력 있는 집단’을 만들려면」, 17장 「자비롭기보다 ‘냉혹’하라」, 18장 「‘야수’와 ‘인간’, 두 얼굴을 사용하라」, 24장 「 ‘나라를 빼앗긴 자’의 공통점」, 26장 「어려울 때야말로 ‘전진’할 때」 등 엄혹한 군주를 독려하는 조항이 많다. 뿐만 아니라 14장 「‘노고’에 익숙해져라」, 15장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아랫사람에게도 자비보다는 엄격한 군주를 강조한다. 

3장의 경우 「권력을 타인에게 준 자는 자멸한다」란 제목의 원제는 '혼성형 군주국'이다. 혼합형 군주국에서는 새로운 군주제의 공통 난제로 정변이 일어난다. 공통 난제란 '지배자를 바꾸기만 하면 모든 것이 나아진다'라는 민중의 믿음이다. 백성들은 무기를 들고 지금까지의 지배자에게 맞서지만, 그렇게 하면 좋아지리라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백성들은 결국 모든 것이 이전보다 더 나빠졌을 뿐이라고 깨닫게 된다. 정변이 일어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새로 군주가 된 자는 군사력을 이용하거나 많은 것을 획득하기 위한 파괴행위로 백성에게 특정 위해를 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해를 입은 사람들은 군주의 적이 된다. 또 군주의 자리에 올려준 사람들조차 기대에 어긋났다고 실망하여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 강경한 조처를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쳐들어간 지역의 주민들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잘 성사되지 않는다고 마키아벨리는 경계하고 있다.

7장 「우연히 군림하게 된 자」의 원제는 '타인의 힘과 운으로 얻은 새로운 군주국'이다. 책에 따르면 단지 운이 좋은 것만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한다. 군주의 자리에 직행했기에 도중에 장애물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온갖 어려움에 부딪힌다. 돈이나 남의 후의로 나라를 물려받은 자도 마찬가지다. 다레이오스 왕이 자기 신변의 안전과 영광을 위해 직접 군주로 모신 자들이 그 예다. 즉 그리스의 이오니아나 헬레스폰토스의 도시국가를 닽게 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지배권을 물려준 인물의 의지와 운의 덕을 입었을 뿐이다. 하지만, 의지도 운도 매우 변덕스럽고 변하기 쉬우며, 불안정하다고 마키아벨리는 조언한다. 그들은 애초에 일개 시민에 불과했기 때문에 웬만한 천재이거나 어지간히 수완이 있지 않은 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명령을 내려야 할지 알지 못해 군주의 지위를 어떻게 유지할지 모른다. 또한 자신의 편이 되어 충성을 맹세하는 병사들도 없어 지위를 유지할 힘도 없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갑자기 만들어진 나라는 태어나자마자 다 성장해 버리는 식물과 마찬가지로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없으므로 첫 번째로 맞는 악천후를 견딜 수 없다. 갑자기 군주에 오른 사람은, 웬만한 수완이 없는 한, 운으로 자기 품에 굴러들어 온 것을 계속 보유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지금까지 선대가 쌓아 온 토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강조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지점에서 역량에 의해 군주가 되거나 운에 의해 군주가 되는 두 가지 방법에 있어서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예를 소개한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와 체사레 보르지아다. 프란체스코는 적절한 수단과 훌륭한 수완으로 일개 시민에서 밀라노 공이 됐다. 밀라노를 손에 넣는 데는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쉬웠다. 한편 민중으로부터 발렌티노 공으로 불리던 체사레 보르지아는 아버지의 운 덕분에 나라를 손에 넣었지만, 그 운이 떨어져 나가자 날라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무력이나 운에 의해 굴러들어 오게 된 영토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사려 깊고 뛰어난 수완을 가진 인물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이에 마키아벨리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리 토대를 마련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큰 수완이 있으면 나중에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다만 토대를 마련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에는 위험이 따라다닐 것이란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 여기서 발렌티노 공이 취해온 행동을 소상히 들여다보면 그가 향후 권력에 대비해 굳건한 토대를 마련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논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새 군주로서 발렌티노만큼 뛰어난 본보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마키아벨리는 역설한다.



이 책에는 뒷 부분에 도쿄대 명예교수의 「로마인과 함께, 로마인의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란 제목의 〈해설〉을 싣고있다. 마키아벨레와 『군주론』에 대한 별도의 해설이다. "16세기 초 피렌체 교외의 산장에 은거한 남자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나무꾼들의 일을 둘러보고, 점심때가 되면 선술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잡담하고 노름에 빠진다. 하지만, 남자는 밤이 되면 정장을 입고 옛사람의 책을 펴서 읽는다. 이 남자는 어릴 때부터 라틴어를 배우 상인 아버지의 장서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서적과 치하게 지냈다. 특히 고대의 역사가 리비우스의 책에는 마음에 끌리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무렵의 피렌체는 인문주의 풍조가 만연했고, 대부호 메디치 가문의 저택엣는 인문학자나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고전의 교양을 독학으로 익힌 남자는 그러한 정통파의 모임에서 한데 어울리지는 않았다."(p.217~218)

〈해설〉의 제목, 책과 저자, 시대 배경, 무대 장소 등 모든 것이 '로마 제국'과 관련이 돼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책 『군주론』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당연한 저서가 아닌가 생각된다면 독자만의 고집일까? 조그만 도시 국가 로마는 유럽 대부분뿐 아니라 아프리카 일부까지 아우르는 대제국 건설과 앞서간 정치 제도, 시민의 권익 중심의 법 제도 등으로 수백 년, 동로마 제국까지 합친다면 2,000년이 넘는 기간 지속됐고, 특히 유럽의 문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강국들은 자신의 나라가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며 로마 제국을 앞세웠다. 왕정 국가뿐 아니라 민주정이든 독재정치든 가릴 것 없이 로마의 문명을 자신들이 이어받았다는 점을 늘 강조했다. 심지어 대영 제국의 식민지로 출발했던 식민지 미국, 독립 전쟁 후 정식 독립해 20세기 세계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21세기도 주도한다고 주장하는 미국 역시 로마의 많은 것을 본보기로 삼았다. 우리가 아는 로마는 사실 민주적 정치보다는 군사 강국으로 발전해 이웃 국가를 차례로 복속시킨 군사 강국이 기틀이 되었다. 당연히 많은 장점과 앞서가는 정치 의식을 가진 인물이 많았다는 점도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그들의 관용과 포용마저도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한 후 베풀어진 것이란 점에서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력은 공과 사가 있는 제국이다. 이 책 『술술 읽히는 군주론』 및 「로마인과 함께, 로마인의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이란 제목의 〈해설〉 역시 로마 제국을 동경하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한 번쯤 우리 입장에서 되돌아보는 것도 이 책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Niccolo di Bernardo dei Machiavelli)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편자 : 세키네 미츠히로

도쿄도 태생의 번역자.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졸업. 역서로는 《세계 행복 기행》, 《불꽃과 분노―트럼프 정권의 내막》, 《힐빌리·엘레지―미국의 번영으로부터 남겨진 백인들》, 《필수 불교―교리·역사·다양화》 등이 있다.


역자 : 이지은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비즈니스 통·번역가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2년여 전부터 출판 번역에도 발을 내딛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기억을 더듬으며 독자에게 좋은 작품을 전달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번역에 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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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인류학 강의 - 사피엔스의 숲을 거닐다
박한선 지음 / 해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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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anthropology)은 생물로서의 인류와 그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전적 의미로,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의식주를 비롯하여 사회구조·관습·종교·예술·과학 등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을 통틀어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 특유의 생활방식과 그 소산 일체를 가리킨다. 인류학은 문화를 지니는 동물인 인류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이지만, 실제의 연구에서는 생물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각각 별개의 관점과 방법이 원용된다고 한다. 인류학의 싹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진화인류학 강의』에서 저자 박한선도 "인류학은 '인간'을 뜻하는 그리스어 '안트로포스(anthropos)와 '학문'을 뜻하는 라틴어 '로기아(logia)'의 합성어이라고 설명한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인류+학문'이라는 뜻의 '안트로피아(anthropia)'라는 단어를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지만, 아직 이 말이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스나 로마 시절에 처음 만들어진 것인지, 중세 시대 이후에 처음 쓰인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 역시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이 누구인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 인류에 대한 말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안트로폴로고스(anthropologos)가 가장 유명한 표현이라고 저자는 덧붙이고 있다.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럽인들의 해외진출(대항해 시대와 식민지 개발 시대)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미개인이나 미개사회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19세기에 진화론이 대두되자 화석인류와 그 문화에 대한 연구가 급속한 진전을 보였다는 게 인류학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즉, 다른 동물과의 비교를 통한 생물로서의 인류라는 인식이라든지, 자신들과는 피부색 ·얼굴 생김새 ·언어 ·풍속 ·습관 등이 다른 이민족에 대한 기록 등에서 인류학의 시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중세의 암흑시대를 거쳐 이 학문이 근대과학으로 발돋움하는 기초는 18세기에 들어와 인류를 동물분류체계에 포함시키고 인종의 분류를 시도한 린네와 인류의 특성이나 인류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고자 노력한 블루멘바흐 등에 의해 마련되었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18세기 후반에는 뷔퐁, E.다윈에 의해 생물진화의 사상이 움트는 한편,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인골이 발견되기도 했으나, 이것이 홍적세 인류의 존재와 인류진화의 증거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C.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고서부터다.



독자는 짧은 지식이어서 '진화인류학'의 정의나 명확한 발전 과정을 설명할 수 없지만, 오늘날 인류학은 거의 진화인류학과 동의어로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존 인류학은 모두 진화인류학의 발전에 흡수돼 설명되는 듯하다. 이 때문에 독자는 인류학의 역사를 C. 다윈의 〈진화론〉 이후와 이전으로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 『진화인류학 강의』에서도 대항해 시대 이후 19세기부터는 유럽 학자나 연구자들이 직접 세계 각지로 가서 관찰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C. 다윈 역시 그 중의 한 명으로 저자 박한선은 지적한다. 이때 인류학자나 연구자들은 조사하려는 곳에 가서 현지인과 같이 살기도 했다는 말도 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생태와 문화, 관습, 체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수집한 자료에 의존하여 연구하는 인류학자를 '안락의자 인류학자'라고 비웃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다윈은 HMS 비글호를 타고 무려 5년 동안 세계를 일주했다.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티에라 델 푸에고의 원주민을 만나 조사했고, 1832년과 1833년 각각 방문해 그들의 생활 방식과 사회구조, 환경 적응 전략 등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다윈은 그곳의 원주민이 지닌 행동 양상과 문화적 관습이 혹독한 기후 조건에 적응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초의 진화인류학자라고 말한다. 18세기 이후 인류학이 크게 발전하면서 네 가지 주요 분야로 나뉘어진다. 문화인류학은 문화적 현상을, 고고인류학은 유물과 민속자료를, 언어인류학은 인간의 언어를 연구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 사이에는 중요한 교집합이 존재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뿐만 아니다. 인류학은 이론적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의료인류학, 정치인류학, 비즈니스인류학 등으로 응용 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심지어 범죄 수사나 전자제품 개발과 같은 영역에서도 인류학적 지식이 폭넓게 활용된다. 

진화인류학 역시 인류학의 다른 분야와 긴밀하게 연결되며 발전해 왔다. 인간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이들 네 가지 주요 분야와 파생된 응용 분야에 대해 열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진화인류학이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어떤 세게관에 따라 인간을 이해했을까?



'신의 세상'이었던 중세 유럽의 세계관, 《성경》에 등장하는 창조론적 세계관을 저자는 책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자연의 사다리」 세계관에 대해 적지않은 분량의 설명을 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 이전에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여겨진 「자연의 사다리」 세계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에 대한 연구를집대성했고, 그의 사상은 이후 기독교 교부철학자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나 이시도루스와 같은 위대한 학자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통합했다는 말이다. 이는 겉보기에는 우리의 직관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사회의 엄격한 신분 질서를 반영해 왕과 교황이 인간 사회의 최고 지위에 있고, 농민과 노예가 가장 하위에 있는 인간 사회의 거대한 사슬 또한 포함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후 인류학은 기독교 세계관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제시하며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발전은 이른바 '인종'의 구분을 함으로써 비과학적 주장으로 주목했지만 오늘날에도 이 인종 구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들을 보면 학계 밑에서 보는 또다른 시각이 존재함을 증거하고 있다. 

앞서 독자는 인류학은 다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생각을 독자가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신의 세상에서 본 인간과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본 인간이 같이 보였을 리 없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학자가 저지른 실수는 오늘날 '인종 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다. 물론 인종의 차이를 비과학적 설명이어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황인종은 정직하지 않고, 흑인종은 게으르며, 백인은 문화적이고 문명적이란 주장이다. 칼 폰 린네는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동식물 분류학을 창시한 위대한 의사이자 생물학자이지만 인종 구분은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이후 러셀 윌리스와 다윈이 등장으로 인류학은 대전환점을 맞는다. 두 사람은 진화론 특히, 종의 변화를 가져오는 주된 기전으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특성을 가진 개체가 생존하여 번식에 성공하고, 이러한 특성이 세대를 거쳐 대다수의 개체에게 전해지면서 종이 진화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바로 자연선택 이론이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자연선택 이론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다양한 지식과 표본을 체계적으로 정리학 박물학이 아니었다면, 진화이론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유럽 곳곳에 건립된 박물관, 동물우너, 식물원은 전 세계에서 모이 다양한 동식물 표본으로 가득 찼다. 단순히 그림을 보고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서, 실제 표본을 관찰하고 해부하며 토론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체계적인 과학 활동이 가능해진 환경이 조성된 것에 힘입은 바 크다.



진화인류학이 만사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나온 인류, 인간에 대한 연구 중 가장 과학적이고 설득력이 높다고 인정된 학문이다. 결국 연구 대상은 인간이다. 인간을 연구하다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안 것처럼 하는 오만, 그리고 자신의 분류나 이론을 과신하는 편견이 걸림돌이다. 우생학도 이런 과학적 생물인류학 연구에서 자라난 '악성 종양과 같은 것'이란 저자의 표현도 공감된다. 피부색에 의한 현대 과학은 인종 차별의 근거를 희석시켰지만 이론이 낳은 편견은 아직 인간 특히 백인들 사이에 깊게 뿌리내린 탓에 오늘날까지 미해결 문제로 남아 사회문제화 됐다. 피부색에 관한 현대 과학에 따르면 피부색은 주로 지구상 위도에 의해 결정된다. 즉, 햇빛을 쬐면 일어나는 비타민 D를 합성하는 작용과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진화적 변화가 피부색을 다르게 만들 뿐, 피부색과 인종은 별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북유럽인의 피부가 하얀 것은 고위도에서 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 로마인, 슬라브족 등의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짙은 것은 적도 근처의 태양빛이 더 강한 곳에 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이 갖는 권위는 때때로 편견, 혐오, 폭력적인 범죄나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이러한 권위는 과학의 성과와 더불어 위험성도 확대시킬 수 있는 이중성을 지닌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오늘날의 진화인류학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그것들의 특성들이 만들어낸 집단의 역사를 과학적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연구한다. 진화인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검증과 반성의 과정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몸에 익힌다는 의미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진화인류학에 관한 대중적 편견은 지난 200년 동안 진화인류학이 저지른 실수 때문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오래도록 지속된 인간적 속성, 즉 여러 지역과 문화의 인구 집단을 제멋대로 분류하고, 우열을 나누고, 위계를 만드는 인간 본성에 의한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대학 신입생이 읽기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가 심혈을 쓴 이 책은 단순히 진화인류학을 설명하기보다는 무지-편견-혐오-증오의 연결고리에 의해 나타나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 나와 다른 사람을 동떨어진 존재로 폄하하고 사람의 우열을 나누고 싶어하는 본성을 깨뜨리기 위한 가장 확실하 방법인 진화인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존재한 지도 어느덧 수백만 년, 그러나 여전히 인류는 우리에게 연구 대상이다. “아기는 왜 이렇게 연약하게 태어날까?” “사람은 왜 한 연인과 오래도록 사랑할까?” “구름을 보는데 왜 그리운 얼굴이 떠오를까?” “왜 슬플 때 먹어도 케이크는 달콤할까?” “세상엔 왜 늘 일정 비율의 사기꾼이 존재할까?” 질문은 끝이 없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은 너무 많다. 때로는 자기 마음조차 안갯속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진화인류학은 이해되지 않는 인간성도 납득할 만한 현상으로 해석하여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는다. 분노, 죄책감, 사이코패스, 사기꾼의 기만 전략처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인간의 감정과 행동도 ‘생존을 위한 진화의 일부’라는 설명은 삶의 모든 것에 ‘이유’를 찾아야 안심하는 인간에겐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진화인류학의 숲에 들어서기 전에〉, 2부 〈사피엔스가 걸어온 수백만 년의 시간〉, 3부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 4부 〈믿고 속이고 사랑하는 사회〉 등이다. 1부는 진화인류학의 기본 개념을 다룬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했던 당시의 이야기와 급격한 지질 변화, 빙기와 간빙기를 오가는 기후 변화 등에 적응하고 때로는 이동하며 살아남은 인류의 진화 전략, 자연선택과 성선택이라는 진화론의 굵직한 개념까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을 담았다. 2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진화사를 담고 있다. 다양한 인류종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지구 곳곳으로 이동하는 장대한 역사의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거나 더 나은 곳을 향해 이동해 온 인류의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

3부는 진화 과정에서 변화한 인간의 몸을 다룬다.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손의 자유를 얻고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부터 몸에 비해 큰 뇌를 갖게 되면서 언어 등 복잡한 사고를 하게 된 과정까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추렸다. 4부는 인간의 마음과 사회, 문화의 발전을 설명한다. 사랑과 애착 등 인간의 마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공동체와 도덕과 종교를 통해 유지해 나가는 인간 사회까지 다루어 인간성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진화인류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대중서가 없는 상황을 고려해 청소년도 읽을 만한 책으로 풀어쓰는 데 특별히 신경을 썼다. 저자 특유의 이야기하는 듯한 어투 덕에 수백만 년의 인류 진화사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실제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생들과 함께 수업 내용과 관련된 토론 질문을 뽑았으며, 고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난이도를 조정하는 작업까지 거쳤다. 그 결과 14개의 장 끝에 〈토론해 봅시다〉를 마련했고, 대학 수업에서 실제 활용했던 영상 자료를 QR코드로 수록했으며, 내용 이해를 돕는 다양한 이미지까지 담았다. 부록에서는 〈한국의 고고·자연사 박물관〉을 소개하고 있어 책이 아닌 현장에서 인류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진화인류학이 밝혀낸 인간성에 관한 진실은 셀 수 없이 많다. 앞서 언급한 피부색으로 인종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사실 외에도, 이기심 대신 이타심이 생존에 유리할 수도 있다는 발견, 대체로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말도 안 되게 비합리적인 존재가 인간이라는 모순까지. 이처럼 상반된 특성을 동시에 지닌 인간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혐오와 폭력, 비인간화와 젠더 갈등 등 다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사회문제 역시 더 원활하게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진화인류학이라고 독자가 믿는 이유이다. 저자는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진화인류학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 즉 나와 다른 사람을 동떨어진 존재로 폄하하고 사람의 우열을 나누고 싶어하는 본성을 깨뜨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고 역설한다.


각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고 주고받은 도움의 상대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면, 장기적인 협력 관계가 진화할 수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인지적 능력이 있고, 수명도 길며(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어야 하므로), 집단을 이루고 사는 종에서 흔히 이러한 지연 시간 상리공생이 일어납니다. 주고받은 도움의 상대적 가치가 서로에게 큰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면 좀더 강력한 협력이 일어날 수 있고요.(p.262)


저자 : 박한선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그리고 호주국립대학교 인문사회대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병원 신경정신과 강사, 서울대학교 의생명연구원 연구원, 성안드레아병원 과장 및 사회정신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발자국』, 『인간의 자리』, 『휴먼 디자인』, 공저 『재난과 정신건강』, 『감염병 인류』, 『단 하나의 이론』, 『통합과 번영의 환상도시 사회학』, 역서 『진화와 인간 행동』, 『여성의 진화』, 『행복의 역습』, 『센티언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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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예대의 천재들 - 이상하고 찬란한 예술학교의 나날
니노미야 아쓰토 지음, 문기업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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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동경예대의 천재들』은 일본의 현대 예술계를 이끄는 〈동경예대〉와 예비 예술가들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경예대〉를 우리는 '도쿄예술대학교'로 읽는 게 맞을 것 같다. '동경(東京)'은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는 음이기 때문이다. '현지 발음주의'로는 도쿄 예술대학이고 일본 사람들도 '도쿄'로 읽을 것이다. 이 학교는 전신인 동경미술학교와 동경음악학교를 포함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최고의 종합예술학교이다.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술가들을 양성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 1세대 대중가수인 현인(현동주)도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예술계의 도쿄대’로 불릴 만큼 세계 수준의 예술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 학교 입시 경쟁률과 난이도는 오히려 도쿄대보다 높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일본 도쿄도 다이코구 우에노(우에노 캠퍼스)에 있는(제1 캠퍼스) '일본 국립종합예술대학'이다. 이바라키현 토리데시의 토리데 캠퍼스(제2 캠퍼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의 요코하마 캠퍼스(제3 캠퍼스), 도쿄도 아다치구 센쥬의 센주 캠퍼스(제4 캠퍼스)가 있다. 이처럼 캠퍼스가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학교 규모가 계속적으로 커졌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일본 예술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예술대학으로 손꼽히는 도쿄 예술대는 1949년 도쿄미술학교와 도쿄음악학교를 합병해 국립 종합예술대학으로 면모를 갖췄다. 도쿄미술학교와 도 음악학교 모두 구제전문학교다. 구제전문학교란 1903년 메이지 36년 칙령 제61호 ‘전문학교령’으로 세운 고등교육기관이다. 오늘날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통합과정에 해당하는 구제(舊制)중학교와 고등여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3년 이상 교육하는 학교였다고 교사(校史)는 밝히고 있다. 오늘날 단과대학과 비슷한 개념이다. 도쿄 예술대학의 전신 중 하나인 도쿄미술학교는 회화, 조각, 건축, 도안 분야의 전문가와 미술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1887년에 설립한 일본의 국립미술학교였다. 1896년에는 서양화가이자 정치인 구로다 세이키1866~1924)를 주축으로 서양화과를 개설했다. 도쿄미술학교는 서양화과 개설 후부터 일본 사회에서 서양화를 전파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

도쿄 예술대학은 20세기 초 일본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교육기관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리는 고희동(1886~1965)을 비롯한 김인승(1910~2010), 심형구(1908~1962), 오지호(1905∼1982), 이종우(1899~1981) 등 근대 서양화단을 이끈 주요 화가들이 이곳에서 유학했다.



또 다른 전신인 도쿄음악학교는 메이지 시대 교육자 이사와 슈지(1851~1917)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사와는 정치인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와 함께 음악교육 의견서를 문부성에 제출하고, 문부성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듬해인 1879년 일본 음악교육 조사 등을 목적으로 한 음악취조괘를 설립했다. 이후 음악취조괘는 도쿄 사범학교 부속 소학교(현 쓰쿠바대학 부속 소학교)와 도쿄여자사범학교부속유치원(현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 학생에게 음악교육을 제공할 교원을 육성하면서 음악전문교육기관의 역할을 해나갔다. 그 뒤로 여러차례 명칭을 변경했고 1887년 10월 4일 도쿄 음악학교로 정했다. 1893년 한때 도쿄고등사범학교(현 쓰쿠바대학)의 부속학교가 됐다가 1899년에 다시 독립했다.

도쿄 예술대학 우에노 캠퍼스에 대부분의 학과와 시설이 집중돼 있다. 부속도서관, 미술관, 연주예술센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도쿄 예술대학 미술관(University Art Museum)이 유명하다. 1887년부터 작품을 수집해 오늘날 3만 점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22점이 국보 또는 중요문화재(2022년 도쿄 관광 공식 사이트 GO TOKYO 기준)다. 또 대학 졸업생이나 교원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이 학교는 또 한국인 유학생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두 번째 한국인 유학생 김관호(1890~1958)의 〈해질녘, 1916〉을 소장하고 있다. 1941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성남중, 서울중·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한 김재선(1918~1948)의 〈자화상, 1941〉도 있다. 또 김홍도와 함께 조선 후기 정조·순조 연간을 대표하는 화원 화가 이인문(1745~1824 이후)의 작품 〈포도〉도 이곳에 있다.

1963년 대학원도 개설했다. 처음에는 석사 과정만 제공하다 1977년 박사 과정을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해 대학 전체 교육 및 연구 수준을 향상시켰다. 1987년에는 이바라키현 토리데시에 새로운 캠퍼스를 인수했고, 2004년 일본은 국립대학을 정부조직에서 분리시켜 독립법인으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 국립대학법인법을 제정하면서 도쿄 예술대학은 국립대학법인이 됐다. 2005년에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영화뉴미디어대학원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센주 캠퍼스를 열었다. 2016년에는 글로벌예술대학원을 신설했다. 오늘날 도쿄 예술대학은 미술학부(7개 학과)와 음악학부(7개 학과)로 이뤄져 있다. 대학원에는 미술연구과, 음악연구과, 영상연구과, 국제예술창조연구과의 4개 연구과가 있다.



이 책 『동경예대의 천재들』은 일본에서도 베일에 싸여 있던 도쿄 예술대학의 캠퍼스 풍경을 흥미롭게 담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예대 출신 아내를 둔 저자 니노미야 아쓰토가 직접 학교를 탐방하며 각 학과의 학생들과 만난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써 내려간 이 에세이는 명문 예술대학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작품으로서의 재미를 모두 충족해 준다. 우리나라 독자로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일본 예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예술대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볼 수 있고, 그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통해 일본 예술계의 흐름도 알아볼 수 있어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우리 독자로서는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 우리 예술가들이 유학 갔던 곳이기도 해서 독자가 교사를 찾아내 몇 줄 적은 것이다. 또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하면서 예술의 중요성에 대해 눈떴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독자도 공부도 할 겸 적었다. 사실 독자가 도쿄 예술대학교와 비슷한, 우리나라 서울 예술대학교도 있어 비교 겸 찾아 넣었다.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있는 서울예술대학교(Seoul Institute of the Arts)도 〈서울예전〉, 〈서울예대〉를 거쳐 오늘날 명칭을 갖게 됐다. 1962년 유치진이 연극 교육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에 의한 민족문화의 단절을 극복하고, 나아가 민족극을 수립, 중흥시킬 전문예술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했다. 1979년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승격되어 주간부에 연극과 2학급, 영화과·방송연예과·응용미술과·무용과·문예창작과에 각 1학급씩, 7학급 280명, 야간부에 연극과·영화과·방송연예과·응용미술과·문예창작과 등 5개 학과에 5학급 200명 정원으로 확장되었고, 초대 학장에 유덕형이 취임했다. 1981년 사진과와 국악과를 신설, 8개 학과에 18학급 720명의 졸업정원으로 모든 분야의 예술교육이 가능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면모를 일신하였다. 1987년 11월 야간부에 응용미술과·문예창작과·국악과를 설치하고 전공을 분리하였다. 1989년 3월 응용미술과, 문예창작과, 국악과를 각각 시각디자인과(주간)·실내디자인과(야간), 문예창작과(주간)·극작과(야간), 국악과(주간)·실용음악과(야간)로 개편하였다. 1998년 서울예술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2001년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캠퍼스를 신축, 이전했다. 2002년 연극과·영화과·방송연예과·실내디자인과의 수업연한을 3년으로 연장했다. 2008년 전 학과를 3년제로 개편하고, 전공 심화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우리 연극·영화·TV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베테랑들 중 많은 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도쿄예술대학교〉는 ‘예술계의 도쿄대’로 불리워지며, 입학하기 위해 재수는 기본에 5수, 6수를 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됴쿄 예대에 가지 못해 미련이 남은 부모가 자식이라도 보내기 위해 애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력이나 인기 면에서 본다면 단연 최고의 예술 학교임에는 틀림없을 듯하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하는 만큼, 탄탄한 기초는 물론 반짝이는 재능까지 갖춘 예대생들은 소위 '천재'로 불리운다고 한다. 과연 그런 천재들이 모인 도쿄예대의 캠퍼스 라이프는 어떤 모습일까. 푸르른 녹음으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담장 안, 마주 선 미술학부와 음악학부의 캠퍼스에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젊은 예술가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 아오야기 씨가 눈을 감으며 입을 오므렸다. 높고 투명한 음색이 한없이 퍼져나가다가 갑자기 빠른 리듬으로 전환되는가 싶더니, 다시 소리가 매끄럽게 뻗어 나갔다. 아오야기 씨는 마치 공중에 떠올라 입에서 마법의 구름을 내뿜고 있는 듯했다. 이게 정말 휘파람인가?

“참말 이거 뭐 대단타…….”

너무 감동한 나머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사투리가 나올 만큼 굉장한 연주였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그 누구보다도 즐겁게 휘파람을 부는 아오야기 씨의 표정이 더 강렬하게 남았다. 바라보는 내가 더 기뻐질 만큼 무척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물건을 만드는 시간을 좋아한다’라고 말한 사노 씨가 떠올랐다. 분명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두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겠다든가, 남을 이기겠다든가 하는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최전선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천재란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p.90~91)



저자에 따르면 도쿄예대의 두 학부, 미술학부와 음악학부는 학부당 7개의 학과와 각각의 세부 전공들로 나뉜다. 구성 체계로만 본다면 일반적인 대학교와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이지만, 예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자유로운 학풍'이다. 개별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능력과 흥미에 따라 자율적으로 전공 실력을 향상하도록 하는 분위기는 예술성을 무한히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예술은 가르쳐 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예대생이 입학하자마자 듣게 된 말이다. 이 말처럼 저자가 만난 예대생들은 수동적으로 대학의 커리큘럼에 의지하는 대신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각자의 길로 질주한다. 전공 공부와 개인 프로젝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하루에 몇 시간 자지 못하면서도 ‘예술에 들이는 시간이 좋다’라고 기꺼이 말하는 이들이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굳이 여기에 쓰지 않아도 독자들이 대부분 잘 아는 사실이다. 도쿄예대뿐이겠는가? 우리의 서울예대도 마찬가지고 세계의 어느 대학이든, 특히 예술대 학생들의 열정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들의 열정은 진지하게 듣는 독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상상을 초월하는 표현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닌 밤중에 온몸에 화선지를 겹겹이 붙여 저자를 깜짝 놀라게 한, 저자의 아내도 도쿄예대생 출신이다. 어느날 부시시 잠에서 깬 저자가 잠자리에 아내가 없어 이 방 저 방 찾아다니다 아내의 괴상망측한 모습에 아연실색한 모습도 이 책에 소개된다. 뿐만 아니다. 토플리스에 타이츠 차림으로 캠퍼스를 활보하는 정의의 히어로 브래지어 우먼, 모두의 창조적 에너지가 폭발하는 혼돈의 예대제까지 평범함을 거부하는 도쿄예대의 일상은 어딘가 이상하지만 저마다의 빛깔로 찬란하고 열정으로 더욱 활활 타오른다.

이 책의 시작점은 도쿄예대의 비밀스러운 담장 너머 예술가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을 만나 재미있어 보이는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자그마한 호기심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명문 예술대학’이라는 이름이 가진 위상처럼 어딘가 문턱이 높고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세계. 하지만 그 속에서 만난 학생들은 하나하나 반짝이는 원석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열정적인 동료에 대한 부러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생계와 재료비 등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 등으로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이기도 하다. 도쿄예대 졸업생 중 취직을 선택하는 사람은 매년 10% 미만이라고 하니 예술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다. 관심이 없는 듯한 학생들도 어떤 형태로든 예술을 계속하기 위해 진학을 선택하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버티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 간다니 과연 '예술대학답다'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전업 예술가로 살아남는 세계라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예대는 '잉여인간 제조소' 같은 면이 좀 있어요."

공예과에서 염색을 전공하는 히하라 유카코 씨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화는 보통 '지금 뭐 만들어?'로 시작돼요. 결국 미술캠의 예대생은 다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거든요. 분명 뭘 만드는 대학이긴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나 싶어요. 선택지가 그거 하나뿐이라도 괜찮은지······."

히하라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잇었다. 다들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졸업 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10년 후, 20년 후에는 자신이 뭘 하고 있을지, 그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불안을 자극하는 말을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p.228~229)

겉으로 다루어지는 일화들만으로도 흥미로운 에세이지만, 그 모습을 그려 내는 저자의 응원 어린 시선에 공감한다면 더욱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극과 극의 인상을 풍기는 미술캠과 음악캠이지만 도쿄예대의 학생들은 누구나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비슷한 고민과 열정을 품고 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세상에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들, 도쿄예대 캠퍼스는 오늘도 개성과 재능을 자유롭게 꽃피우는 청춘의 열기로 가득하다. 세상의 평범한 기준과는 어딘가 다르지만, 이곳에는 무엇보다 뜨겁게 빛나는 열정이 있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숙명적인 이끌림이다. 


저자 : 니노미야 아쓰토(二宮 敦人)

1985년 도쿄 출생.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현재는 작가로 활동 중이며, 독특한 발상과 적극적인 취재가 뒷받침된 탄탄한 글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 《!》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으며 주로 호러 및 오락 소설을 중심으로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다. 《우편배달부 하나키 도코가 훔쳐본다(郵便配達人 花木瞳子が?み見る)》, 《점집·요센도의 통계과학(占い??陽仙堂の統計科?)》, 《폐교의 박물관 Dr. 가타쿠라의 생물학 입문(?校の博物館 Dr. 片倉の生物?入門)》, 《1번 선에 수수께끼가 도착합니다(一番線に謎が到着します)》, 《문예몬스터(文藝モンスタ?)》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올려다보며 너를 생각해(最後の?者は?を見上げて君を想う)》 등 대히트를 친 ‘마지막 의사’ 시리즈 등 인기 시리즈를 다수 보유. 처음 도전한 논픽션 작품 《최후의 비경 도쿄예술대학: 천재들의 카오스 같은 일상(最後の秘境 東京藝大―\天才たちのカオスな日常)》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역자 : 문기업

일본 문부성 국비유학과 출판사 근무 등을 거쳐 다양한 책과 서브컬처를 한국에 소개하고자 마음먹고 번역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출판 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가 대화하는 이유』,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패미컴 컴플리트 가이드』, 『와카코와 술』, 『학원X봉쇄』, 『소설 문호 스트레이독스』, 『싸우는 빵집 주인과 기계장치 종업원』, 『여신의 이노센스』, 『마술사 오펜 애장판』, 『술 한잔 인생 한입』, 『사야와 함께』, 『거짓말쟁이 패러독스』, 『S parther 에스 파트너』, 『이상적인 기둥서방 생활』, 『크로크로클락 결(結)』, 『버터 바른 고양이의 패러독스 2』, 『오키테가미 쿄코의 비망록』, 『와카코와 술』, 『이세계는 스마트폰과 함께』,『클락워크 플래닛』, 『내가 대화하는 이유』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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