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로 산다는 것 -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독자로서는 역사 특히 한국사를 공부한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였다. 그것도 대입을 위해 필요한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교양학부에서도 역사 과목은 배제되었고 자연스럽게(?) 사학(史學)과는 멀어졌다. 그러다 사극이 열풍을 일어나는 때가 있었다. 방송국마다 앞다투며 사극을 방영해 이때부터 역사와 친해졌다. 사극을 무척 재밌게 만들어서 그랬겠지만 학교에서 공부한 정사(正史)가 아닌 야사(野史)를 중심으로 드라마 작가들의 상상력을 보태 현대적으로 해석한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궁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드라마에 반영해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아무튼 사극으로 역사와 친해진 뒤 가끔씩 정사보다는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설로 쓴 책, 비사(秘史)를 밝히는 책은 무척 재밌었기 때문에 꽤 흥미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드라마가 화제가 되거나, 역사 문제를 화제로 삼는 자리에서 조금씩은 대화에 낄 정도는 됐던 것 같다. 이후엔 대화에 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더 자주 읽기도 했다. 대개 왕 중심의 정사보다는 왕비나 궁녀 중심의 야사가 인기를 더 끌었다. 그래서 지금도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얘기를 꺼내 우리 역사를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을 보면 새로운 사실을 들은 것처럼 생경한 얘기로 들릴 때가 많다. 그나마 조선왕조 518년 동안 27대 왕의 명칭을 무조건 외웠던 고등학교 역사 수업 덕분에 책을 볼 때마다, 역사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많은 도움이 됐다.



조선왕조 때는 왕비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가 남편이 세자인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세자가 왕이 되면 왕비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세자빈으로 들어오는 경우 대개 10세를 전후한 나이에 삼간택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정작 이 코스를 거쳐 왕비가 된 인물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 박씨,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 숙종의 왕비 인경왕후 김씨,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 어씨 등 6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고 이 책에 더 큰 재미를 더해준다. 조선에 27명의 왕이 있었는데 이처럼 정통 코스를 거친 왕비가 소수에 불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왕비로 산다는 것』의 신병주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저자에 따르면 왕비의 인생은 화려하다기보다 살얼음판 같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에서 그리고 가문과 왕실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 속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했기 때문이다. 계유정난, 단종의 폐위, 두 차례의 반정 등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변수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장자가 아닌 차남이나 손자의 즉위, 여기에 더하여 후궁 소생의 왕들이 즉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양녕대군의 세자빈과 같이 세자가 교체되는 바람에 대군 부인으로 강등된 사례도 있고, 인수대비로 널리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는 남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세자빈의 지위를 잃기도 했다. 소현세자의 세자빈 강씨는 남편의 의문사로 세자빈 지위를 박탈당한 것은 물론 사약까지 받았다. 혜경궁 홍씨 역시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세자빈의 지위를 잃었다.



세자빈이 되어도 왕비가 되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는 세자빈, 왕비, 그리고 아들 숙종이 왕이 되면서 대비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세자빈에서 왕비까지 가는 길도 순탄하지 않았던 것이다. 왕비 집안에 대한 정치적 견제도 심했다.

태종이 원경왕후의 처남들을 처형한 사례나 태종이 왕비의 부친인 심온을 처형한 사례와 같이 왕비가 된 순간 가족들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왕비가 된 후에도 정변으로 폐위되는 경우도 많았다.

세종의 집권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정순왕후는 폐비가 된 후, 현재의 창신동 인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폐위된 지 230여 년 만인 숙종 때에 복권되기는 했지만, 20대 이후의 전 생애를 일반인으로 살아갔던 정순왕후의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폐위로 폐비가 된 폐비 신씨와 폐비 유씨의 삶도 남편의 몰락과 함께 참담함을 거듭했다.



왕비는 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세자 생산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의 정치력을 관철시킨 왕비도 있었다. 원경왕후는 남편 태종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고 정희왕후는 남편 세조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지만 훗날 성종을 대신해 수렴첨정(미성년의 왕이 즉위하였을 때 대왕대비 혹은 왕대비가 왕과 함께 정치에 참여하던 제도)을 했다. 이후 성격은 다르지만 문정왕후, 인순왕후의 수렴첨정이 이어진다.

그동안 ‘왕’과 ‘참모’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다루었다면 이제는 ‘왕비’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들여다보자. 같은 조선도 왕비라는 키워드로 살펴본다면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왕비로 조선을 봤을 때 공주, 대군, 폐세자 등 『왕으로 산다는 것』과 『참모로 산다는 것』에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나온다. 그동안 야록, 설화 등 신변잡기적 내용으로 접했을 법한 이야기를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 신병주 저자가 들려주는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한 팩트로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드라마, 영화 등 사극의 대부분이 궁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사소한 배경과 인물 관계도, 명칭까지 이 〈왕비로 산다는 것〉 을 읽으면 이해가 쉽다. 크고 작은 작품 속 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관계도가 일목요연하게 재정리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정설과 팩트에 근거하여 왕비를 다룸으로써 그녀들의 실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 역시 역사 지식은 물론 역사를 보는 안목도 한 단계 업그레이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라는 왕이 다스렸지만, 그 왕의 통치를 뒤에서 조정한 이들이 왕의 최측근 여인들인 왕비다. 조선시대 군왕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왕비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에서 시작한 궁금증은 이 책을 놓는 순간 말끔히 놓을 수 있다. 저자는 한문 투성이인 조선왕조실록 뿐만 아니라 야사까지 통달하지 않고는 이 책을 쓸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저자의 역사 지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왜 '조선시대 전문가'로 불리워지는지 이해가 된다.


‘1부 새 왕조의 혼란 속 왕비들’에서는 집안의 든든한 후원으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데 힘이 되어주었던 신덕왕후를 시작으로 건국 이후 자리를 잡아가는 조선에서 하나의 역할을 했던 왕비들을 다룬다. 원경왕후는 태종 이방원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정치적 동반자였다.

즉위 후 처가의 권력이 부담으로 다가오자 태종은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을 처형하는 등 원경왕후 가문을 철저히 탄압한다. 강인한 성격의 원경왕후였지만 이후 죽을 때까지 형식적으로만 왕비의 자리를 유지한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은 따르는 세력들이 많아 신권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왕권 강화에 주력했던 태종에 의해 심온은 사사되고 이 일로 소헌왕후의 가문은 몰락하는 비극을 맞는다.

소헌왕후는 가문의 몰락이라는 아픔을 조용한 내조로 극복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지켜나갔다. 한편 최고의 성군이었던 세종에게 며느리 간택 문제는 큰 골칫거리였다. 폐출될 수밖에 없었던 문종의 두 세자빈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까지 다루었다.



‘3부 연속되는 폐비와 반정의 시대’는 성종의 왕비로서 적장자 아들까지 낳았지만 화려한 지위에서 결국은 나락까지 떨어진 폐비 윤씨로 시작한다. 그리고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이후 연속적으로 폐위를 당하는 신씨와 단경왕후로 이어진다. 폐비 신씨는 연산군의 왕비라는 이유로 폐위되었지만 어진 덕이 있어 폭군 옆에서 그나마 이성적으로 내조했던 왕비로 기록되어 있다. 폐비 신씨의 조카이자 중중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된 단경왕후는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7일 만에 폐위된다. 반정이 일어나던 위기 속에서 지혜를 발휘하며 중종을 지켜낸 조강지처였지만 정치적 희생물이 된 것이다. 폐위 이후에도 중종과 단경왕후가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일화는 여럿 전해진다. 단경왕후가 폐위된 후 그 자리에 오른 장경왕후가 25세에 승하하고 중종의 다음 왕비가 된 인물은 문정왕후였다.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 대신 수렴청정을 하며 그 시대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한다. 그리고 사망 때까지 20년간 동생 윤원형, 정난정 등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하며 외척정치를 이어갔다.



‘4부 왜란과 호란, 혼란기의 왕비들’은 임진왜란 시대 선조의 왕비 의인왕후에서 시작한다. 후사를 얻지 못해 늘 조연에 그쳤던 의인왕후는 자식이 없었지만 다른 왕실 소생을 매우 아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녀가 가장 아꼈던 인물은 광해군으로 피난생활까지 함께하며 굳건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이자 즉위 후에도 광해군이 가장 경계했던 적자 영창대군의 어머니다. 광해군은 끝내 영창대군을 증살시키고 이후 인목왕후를 서궁에 유폐한다. 광해군 시대 핍박의 상징이기도 했던 인목왕후는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의 예우를 받으며 대비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회복한다. 연산군의 왕비였던 폐비 신씨와 마찬가지로 광해군의 왕비였던 폐비 유씨 또한 공식적으로는 조선의 왕비로 기록되지 않는다. 광해군 폐위 직후 유배지에서는 폐세자의 탈출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탈출에 실패하면서 폐세자는 사사되고 폐세자빈 박씨는 목을 매어 죽고 페비 유씨는 그 충격으로 생을 마감한다. 왕비 개인에게는 비극적인 가족사였다.

‘5부 당쟁과 명분의 수단이 된 왕비들’는 예의 해석을 두고 한 논쟁이었지만 결국은 서인과 남인의 권력 다툼이었던 예송논쟁의 중심 장렬왕후에서 시작한다. 장렬왕후는 15세의 나이에 인조의 계비로 간택되어 겨우 26세에 대비의 자리에 오른다. 효종, 현종, 숙종까지 3대에 걸쳐 대비로 산 그녀였기에 상복 문제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문투성이 소현세자의 사망 이후 시아버지 인조에게 사약을 받은 비운의 세자빈 소현세자빈 강씨와 사극의 단골 주인공 인현왕후도 다루었다. 인현왕후의 가문은 당시 서인 세력의 핵심이었다. 숙종 시대는 남인과 서인의 정치적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붕당정치가 가장 격화되던 시기였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사건과 다시 인현왕후가 복위된 사건은 이 세력다툼과 무관하지 않았다.



‘6부 노론과 소론 사이 지켜야 했던 자리’에서는 53년을 영조와 함께했던 영조의 조강지처 정성왕후와 15세의 나이에 66세의 영조의 계비가 된 정순왕후를 다루었다. 나이답지 않은 현숙함으로 왕비로 간택된 정순왕후 김씨(단종의 왕비는 정순왕후 송씨)는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사도세자의 충격적인 죽음에 관여하기도 하고 정조의 급서 이후 어린 순조 대신 수렴청정을 하며 경색 정국을 이끌어간다. 혜경궁 홍씨로 알려져 있는 헌경왕후는 《한중록》의 저자이자 사도세자의 세자빈이다. 헌경왕후는 10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실 어른들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세자빈이 되었지만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얽힌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아들 정조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헌경왕후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시아버지 영조를 원망하는 대신 아들 정조를 위해 그를 이해하려는 현명한 태도를 취한다.

‘7부 근대의 격동기, 마지막 궁중의 모습’에서는 세도정치기와 일제강점기로 정리되는 무력했던 조선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왕비들을 다루었다.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는 세자 시절 순조의 스승이었던 김조순의 딸이었다. 김조순은 19세기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전성기를 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 된다. 순원왕후는 손자인 헌종과 자신이 직접 헌종의 후계자로 지명한 철종 2대에 걸쳐 수렴청정을 하며 권력을 강화해갔다.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 신정왕후는 흥선대원군의 아들인 12세의 명복(고종)이 왕이 되는 데 일조한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 척결이라는 공통의 목표로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후 조선의 왕비 중 최장수로 83세에 승하한다.

조선이 왕비 중 가장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 하면 명성황후일 것이다.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사사건건 맞서가며 근대의 격동기 속에서 결국 일본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왕비였다.



이 책은 그동안 ‘왕’과 ‘참모’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다루었다면 이제는 ‘왕비’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들여다본 책이다. 같은 조선시대이지만 왕비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왕으로 산다는 것』과 『참모로 산다는 것』에 등장하지 않았던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야록, 설화 등 신변잡기적 내용으로 접했을 법한 이야기를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 신병주 교수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한 팩트로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드라마, 영화 등 사극의 대부분이 궁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사소한 배경과 인물 관계도, 명칭까지 이 『왕비로 산다는 것』을 읽으면 이해가 쉽다. 크고 작은 작품 속 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관계도가 일목요연하게 재정리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정설과 팩트에 근거하여 왕비를 다룸으로써 그녀들의 실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 : 신병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조선시대의 전염병과 리더십’, ‘연산군과 광해군’ 편에 출연했다. 현재 KBS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왕으로 산다는 것》,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조선과 만나는 법》, 《조선평전》,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8세, 바다로
나카가미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현대문학의 이단아 나카가미 겐지(1946~1992)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열여덟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일본 문단의 대단한 주목을 받으며 일본의 문학상을 휩쓸 정도로 역량 있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가 문단에 데뷔하기 전부터 쓴 단편소설의 면모를 살펴보면 '고뇌하는 젊음'이 담겨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젊은이의 반항적 고뇌나 행동들은 숨 죽인 일본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가 자신의 눈으로 본 친구, 가족의 죽음, 어른의 외도, 첫사랑, 첫 경험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펼쳐져 있다. 이 시기 한 남자의 머릿속엔 온통 '집착에 가까운 성욕'이 지배한다. 그러나 글은 외설스럽지 않다. 이단아 취급을 했지만 문장은 좋았다는 평가였나 보다. 문체가 뒤죽박죽이라고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 춤을 추듯 생생함이 느껴진다고 호평도 많았다고 한다. 젊은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을 생생하게 되살려 내는 재주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시기에 작가가 쓴 단편소설 모음집인 이 책 『18세, 바다로』를 지금 읽어도 신예 작가의 신선함과 패기가 돋보인다.



술과 재즈, 주체할 수 없는 성욕,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분노, 편협해지고 무감각해지는 사회 속으로의 동화가 두려워 자꾸만 뒤돌아 도망쳐버리고 싶어지는 젊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단편집을 독자도 처음 읽는다. 글만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이 반항적인 작가를 사후(1992년 졸)에도 몰랐으니 일본 문학에 문외한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구태여 변명하자면 일본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추리소설 때문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걸출한 작가는 다른 작가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독자를 매혹시켰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독자의 20대 때를 떠올려보고 작품에 몰입되면서 '반항아'라는 문단의 평을 이해할 수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일본도 그랬겠지만) 우리나라는 만만찮게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독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 활동에 뛰어들어야 했고 사회나 국가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뒷전이었다. 그렇다고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감과 새 시대를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마저 외면하진 않았다. 아무튼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작가와 작품 주인공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 주인공들의 자유와 방황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 속에서 순수함을 벗어버리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혼란과 정제될 수 없었던 내적 고통이란 감정이 비슷하게 전해져 왔다.



전후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젊음이 비틀린 것인지, 그 나이의 젊음이 원래 그런 것인데 사회적 분위기가 부추긴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항이 광기처럼 휘몰아치는 젊음의 정신적 배출구가 없을 땐 극한 상황에 이른 인간은 대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함께 멱을 감던 친구의 죽음, 배다른 이복형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자살해버린 이야기, 아픈 엄마 몰래 내연녀를 두고 있었던 아버지, 학교에서 벌어지는 데모 때문에 학교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섹스에 몰입하는 주인공, 담배와 수면제, 진통제에 취해사는 젊은 친구와 여자친구의 동반자살, 합의되지 않은 첫 경험 등 되돌아보면 무척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약간은 기괴하고 심하게 우울한 이야기가 소재들이다. 재즈와 약, 술, 성욕에 집착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지금은 나이가 훨씬 들어 사회와 나의 관계나 인생관, 가치관이 확고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은 약간 다르지만 당시의 젊음의 입장에서는 본능적인 것만 몰두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행동에 공감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전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그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포자기한 심리를 꾸짖었는지 모르지만 독자들은 '공범 의식'으로 크게 공감했을 거란 추측도 어렵지 않다.



출판사측에 따르면 나카가미 겐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 그 작품 세계를 완전히 꽃피우지는 못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압도적이고 강력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74년, 사생아로 태어난 주인공의 복잡하게 얽힌 가족 관계와 고향의 강렬한 토속성을 소재로 쓴 「곶」을 발표, 이듬해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그는 문단의 이단아이자 아이돌 같은 존재로 부상한다. 한국을 사랑해서 서울 이야기 글을 쓰기도 했다고. 나카가미 겐지가 쓴 초기 작품들 때문에 '일본 현대 문학의 이단아'라고 불리우기까지 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다 펼치기도 전에 아쉽게도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초기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거칠고도 강렬한 색채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그보다 18살의 높게 밀어붙이는 파도처럼 솔직한 욕구분출을 글자 그대로 토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휩쓸리고 쓸려가고 밀려가는 감정의 기복 또한 날것처럼 녹아 있다.

이 책 『18세, 바다로』는 그 이전, 그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고향을 떠나 도쿄에 올라왔음에도 입시는 치르지 않고 문학과 재즈와 술에 탐닉하는 한편,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고뇌를 부둥켜안은 상태에서 동인지와 문학지에 시와 에세이를 발표하던 시절에 쓴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그야말로 작가의 문학 세계의 태동을 알리는 초기 작품들이기에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인 것이다.



「18세」 1965년에 발표된 비틀스의 ‘미쉘’ 가사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미쉘’의 가사와는 달리 조금도 조화롭지 못하다. 현재의 나른함과 과거 어린 시절의 위태로움과 죽음에의 공포가 교차하는가 하면, 모순과 거짓말로 치장된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저항의 외침과 ‘무슨 짓을 해봐야, 착하게 굴어봐야 소용없다’는 젊음의 무력감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다.

「JAZZ」 끝없이 빠져드는 늪 같은 재즈에 몸을 맡기고 건강한 몽상에 젖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린, 산문시에 가까운 작품이다. 재즈의 선율을 따라 미친 듯이 춤추는 언어는 이해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감응해야 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다카오와 미쓰코」 유일하게 스토리가 있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수면제에 절어 사는 다카오는 돈이 떨어지자 미쓰코와 ‘동반자살미수업’이란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나 그 끝은 말 그대로 ‘동반자살’이었다. 작품 안에서 제시되는 ‘블랙 유머’ 같은 아이러니한 죽음이 화자인 젊은 보스를 짓누른다.

「사랑 같은」 스물한 살 대학생의 일상에 파고든 강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황금 손가락’으로 구현된다. 학교가 데모에 휩싸여 학생으로서의 일상은 무너졌는데, 굳이 문 닫힌 학교에 오가면서 일상의 굳건함을 믿으려는 주인공의 사유가 장황하게 연출되다, 그토록 강박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황금 손가락’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낱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전의 해학성에 화자는 눈물까지 흘리며 킬킬 웃는다.



「불만족」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배경으로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의 독백과 다른 나인 ‘나’와의 대화로 구성된다. 나는 ‘나’를 주인공으로 해학적이고, 비 내리는 아침 같은 하얀 색채를 지닌, 저항으로 가득한 소설을 쓰려는가? 하고 자문하지만, 빗소리에 섞여 ‘언어는 무의미하다’는 중얼거림이 낮게 깔린다.

「잠의 나날」 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 축제는 어엿한 사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남자들의 축제다. ‘충분히 분별력 있는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년도 아닌 스물세 살’의 나는 고향을 떠나기 전에 제 손으로 목숨을 끊은 형의 죽음을 재연하면서, 형을 증오하고 그의 죽음에 안도했던 열두 살 당시의 거짓 없는 감정과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열여덟 살 때의 자신을 반추한다.

「바다로」 바다 앞에 무릎 꿇은 나는, 원점이며 피이며 광기이며 유일한 타자인 바다, 나 자신인 바다와의 거대한 합일을 이루고 정화된다. 작가의 내발적인 힘과 시대 사조와의 다툼이, 이 「바다로」라는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다툼의 소리가 순수하게 울리는 점이 「바다로」의 매력일 것이다.



저자 : 나카가미 겐지


1946∼1992. 일본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나 복잡한 가정에서 자랐다. 《문예수도》 동인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6년 「곶」으로 제74회 아쿠타가와상을, 1977년 『고목탄』으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예술선장 신인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장편 『땅의 끝, 지상의 시간』 『봉선화』 『기적』 『찬가』, 소설집 『열아홉 살의 지도』 『화장』 『중력의 도시』 『천년의 유락』 등이 있다.

나카가미 겐지는 「서울 이야기」라는 중편소설을 쓸 만큼 한국에 각별히 관심이 있어 6개월가량 한국에 머물며 글을 쓰기도 했고, 윤흥길의 작품에 반해 그의 소설을 일본과 해외에 소개하기도 했다. 『18세, 바다로』는 나카가미 겐지가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 때까지 쓴 ‘너무도 잔혹한 젊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다카오와 미쓰코〉는 1979년 〈18세, 바다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역자 : 김난주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7년 쇼와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오오츠마여자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옮긴 책으로 『다시, 만나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아주 긴 변명』 『인어가 잠든 집』 『태엽 감는 새 연대기1,2,3』 『서커스 나이트』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무코다 이발소』 『목숨을 팝니다』 『바다의 뚜껑』 『겐지 이야기』 『박사가 사랑한 수식』 『반짝반짝 빛나는』 『키친』 『냉정과 열정 사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여름의 재단』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라클 에너지
안시호 지음 / 명진서가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어서 힘겨운 삶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곧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이르면 내년 초,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생산된다면 우린 다시 예전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 또한 전문가나 의사들의 예견을 믿어야 할 상황이다. 코로나로부터의 공포는 벗어나더라도 완전한 예전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긴 기간 코로나와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각종 병증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이 책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의 안시호 저자가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우울증에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새로운 차원의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자기계발의 범주는 넓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 정, 의’ 영역 안에 있다"며 "지식 계발, 감정(감성)계발, 의지 계발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곧 AI 시대이고, 사람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시대이니 존재감을 잃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기계발은 ‘영성의 계발‘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성은 인스타그램 비활성화 계정처럼 대부분 비활성화 상태다. 어떤 이에게는 영성이라는 단어조차 매우 낯설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정서를 통합해서 영성을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성이란 인간에게 생명력과 같이 내재된 능력이다. 내재되었다는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계발되지 않으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영성이란 한 개인을 우주와 연결시켜주는 우주적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온 대로 생각할 수 없고,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대다. 변화의 낙폭이 크다.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우리에게 영성의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는 나를 지켜주는 에너지를 얻는 가장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영성이 활성화되면 뭐가 좋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 두 가지를 먼저 답한다. 첫째, AI가 넘볼 수 없는 단 하나의 능력, 메타 인지 기능의 활성화 둘째, 변화의 낙폭이 큰 현실에서 오는 필연적인 우울증을 방어하고 치유하는 에너지의 생성이다.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은 밀리언셀러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작을 펴냈던 출판기획자이며 동서양의 통합된 영성 분야를 탐구해 온 저자가 ‘코로나 19’로 인해 우울한 일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성의 계발을 통해 우울을 극복하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자는 제안과 함께 그 기초적 방법을 알기 쉽게 안내한 책이다.

한때 건강 상실과 사업 실패로 좌절을 맛보았던 저자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의 병까지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영성의 계발 즉, 영성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병을 방어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저자는 ‘생각해온 대로 생각할 수 없고,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그동안 접어두었던 영성의 계발을 통한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영성 분야의 큐레이터가 되기를 자처한다. 우리 모두에게 영성은 있지만, 인스타그램 비활성화 계정처럼 대부분 비활성화 상태이고, 우리에게 우울이 찾아 오는 이유는 삶에 필요한 에너지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을 것 없는 이 불편한 시간을, 자신을 지키며 무사히 건너기 위해선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데 그 에너지는 자신의 몸과 영을 소홀히 하지 않는 자기돌봄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어린 시절 절친의 할아버지였던 한국의 대표적 영성가 다석 유영모 선생과의 만남을 계기로 처음 영성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출판계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동양과 서양의 영성을 통합하려 시도한 틱낫한 스님과 인연을 맺거나 토머스 머튼 신부와 같은 대표적인 영성가들의 삶과 사상을 공부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이들을 탐구하면서 얻은 깨달음 외에도 내려놓음을 통한 영성의 활성화로 30억이라는 큰 빚을 갚을 수 있게 되거나, 말기암을 치유하거나, 잃었던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영성의 계발을 통해 자기돌봄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을 안내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따뜻한 거절법’과 토머스 고든이 제시한 소통의 기술인 ‘나-전달법’, 크리스틴 네프의 ‘자기자비’ 개념 등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며 ‘영성 계발’과 ‘자기돌봄’에 필요한 일상적인 요소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단절되었던 신과의 관계를 가깝게 회복하기 위해 체험했던 관상기도 실천법과 틱낫한 스님으로부터 배운 호흡법과 같은 영성 계발의 기초를 가장 쉽게 안내한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변화의 낙폭이 큰 세상에서는, 단절되었던 신(=우주적 에너지)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는 영성의 활성화가 있어야만 근원적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4차 산업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면 사회적 혼란도 예상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량 실업 사태가 대비도 없이 갑자기 닥칠 수도 있고, 경제 활동 수의 감소로 산업 활동이 위축되면 국가의 재정 상태로는 국민의 안전, 재산을 지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도 가중될 것이다. 21세기를 살면서 15세기 이전의 생활을 하라면 혼란 뿐만 아니라 어떤 예견치 못할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4차 산업시대로의 진입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돼야 이에 대비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급격히 이루어진다면 4차 산업을 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계층간 벽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정보나 시스템 이용이 가능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종속시킬 수도 있고, 사회 소외계층도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다. 코로나 자체와의 힘겨운 싸움을 끝내도 또 다른 사회로의 급격한 변혁이 이루어진다면 혼란은 불보듯 뻔한 일 아닌가. 저자는 우울증이나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독자는 저자의 이 같은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동의한다. 명상을 쭉 해온 독자로서는 명상이나 호흡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것이 얼마나 큰 지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로저스가 말한 ‘인간은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실현해 가는 자’라는 정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구현하고 싶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어 하고 돈을 많이 벌고자 합니다. 인간이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척도는 역시 부와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거기서 ‘삑사리’를 냅니다. ‘인간은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실현해 가는 자’일 때의 인간은 그냥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영성’을 자각하며 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따뜻한 사람으로 살다갈 가능성을 품고 출발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이 많은 인생을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영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고 사는 데다, 자각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쏟아지는 햇살과 같은 마음」 중에서


우리 몸에는 늘 긴장과 불안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숨을 들이마시면 그러한 자신의 몸에 대해 차분히 알아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내 몸에 미소를 보내면 곧 평안해집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듯이 주의를 집중해서 숨으로 몸을 껴안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 내 몸은 평안해집니다. 이것이 따뜻함이고 사랑입니다. 숨을 내쉴 때 내 안에 따뜻함이 있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주의를 집중하여 숨으로 몸을 껴안습니다. 곧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만드는 호흡법」 중에서




저자 : 안시호


밀리언셀러 기획자 겸 영성 큐레이터. 1990년대 출판계에 입문해 북 프로듀서로서 오랜 경력을 쌓은 우리나라 대중서 분야의 손꼽히는 기획자이다. 밀리언셀러가 된 틱낫한 스님의 《화anger》를 출간하고 세계인의 영적 스승인 틱낫한 스님을 한국에 초청하여 대중들에게 명상 문화를 전파하였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죽기 직전에 품었던 영성적 질문 24가지를 모티브로 한 차동엽 신부의 화제작 《잊혀진 질문》을 프로듀싱하였으며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인기 강사 김미경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준 베스트셀러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각자의 감정을 이입해 그림 보는 방법을 제시한 콘셉트로 히트작이 된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 170만부를 판매한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15권 등 20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히트작을 기획하고 프로듀싱하였다.

어릴 적 절친의 할아버지인 한국의 대표적 영성가 다석 유영모 선생을 만나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세계인의 영적 스승 틱낫한 스님과 인연을 맺어 서양의 영성과 동양의 영성이 통합되는 지점을 탐구해 왔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곧 AI 시대이고, 사람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시대이니 존재감을 잃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영성의 계발’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영성 분야의 큐레이터spiritual curator’가 되기로 한다. 첫 번째 큐레이션을 담은 책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에서는 변화의 낙폭이 큰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기계발은 ‘영성의 계발’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독한 외로움. 그것은 이후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삶을 끝낼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졌다.

사람은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보다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위해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현생 인류 탄생부터 지속돼 온 습관이 유전자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살지 못하는 경우 그 외로움은 다시 살아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외로움을 두려움이나 괴로움보다 더 싫어하는 것 같다. 두려움이나 괴로움은 일시적이지만 외로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까.

외로움은 외부적 요인일까, 내부적 요인일까. 이 소설은 외로움의 극한 상태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살피기에 적합한 느낌이다. 어릴 때 환경이 성장 후까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면 어떤 삶이 될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소설은 어릴 적 기억이 모티브가 된 '자전적 소설'의 경향을 보인다. 매우 척박한 삶을 살아온 할머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부터 집안에서 일어나는 입에 담기 어려운 폭력도 모티브에 작용했다. 그 폭력에 대응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소극적이고 회피성 태도, 그러나 그 속에서의 할머니와의 추억 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주인공의 삶을 지배하고 관여한다. 독자는 저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 어릴 때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는 '우'를 범하지만 그 역시 감정의 자연스러운 것이니 탓할 게 못된다. 흰 눈 내리는 저녁 어스름. 사위가 어둠으로 덮이기 시작할 때의 고요함. 소리는 없지만 굴뚝을 통해 나오는 연기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기억으로 마냥 행복한 시간이 남아 있는 독자로서는 저자가 내민 소설 배경에서의 느낌이 다르다.



눈이 많이 오는 고향에서 자란 주인공은 심장귀신을 보고 산신령을 믿으며 할머니와 기묘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정월 대보름이면 쥐불놀이대회를 여는 풍습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열 살의 어린 나이에 가장 멀리 쥐불을 날리며 우승을 하지만, 집에서는 살육과 같은 폭력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기 위해, 어머니와 다름없는 할머니의 사고를 모른 척하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뜨거운 피가 흐르지만, 단지 살아만 있는 상태‘로 죄책감을 스무 살까지 오래도 끌고 오게 된다. 주인공이 죄책감을 없애기 위한 선택들은, 마음을 짓누르고 자신을 괴물로 만드는 선택들이었다. 결국, 감정을 숨겨가며 억지로 나를 소모시키며 살아가고 깊은 우울감에 충동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이 주인공을 살리게 된다. 흰 두부, 은방울꽃, 은반지, 목화솜 눈, 여린 쑥, 잣 세 알, 한지 석장, 은혜 갚은 까마귀, 되돌아온 고양이, 현충원의 설국 등의 희망적인 단서가 제시되고, 쇄빙선이 만들어낸 일직선을 따라가며 불행하지 않은 미래를 암시한다. 눈에 대한 그리움을 창호지와 장독과 같은 따스한 한국적인 정서로 담아냈다는 것이 평단의 설명이다.



처음 소설 배경에 주목하던 독자들은 이상한 존재를 보는 어린아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할머니덕분에 이상한 존재를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조금 더 읽으면 해맑게 쥐불놀이를 하고, 그러다가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해 다친다. 이게 무슨 내용인가 하고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을 따라 읽어가면 조금씩 느낌이 달라진다. 할머니와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만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개입되고서부터는 분위기가 변한다. 암울하고 증오심 가득한 주인공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저자의 말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순간의 충동정인 감정으로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 없이 나 또는 막내입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모든 분이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고개 숙이지 말고 땅을 보지 말고 당당하게 걷기를 바랍니다."

어떤 외부적인 요인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던 저자에게는 "지긋지긋한 빚을 갚고, 언니를 지켜내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 외에는 중요한 일이 없었다. 나는 영원히 진짜 내가 될 수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라기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내 감정을 속이는 삶. 그 삶 속에 어울릴 수 없는 내가 되어 있었다"며 소설의 내용을 대신해 고백한다.



이른바 ‘국딩(초딩) 세대‘는 그 당시만의 추억과 감성이 있다. 쥐불놀이를 하며 환영의 불꽃을 보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어린 자신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 속에서의 나 자신을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쥐불놀이, 상인들의 잔치였던 운동회, 수박 서리, 개울가 빨래, 간첩신고, 뒷동산 눈썰매장, 얼굴만 아는 동네 사람이 아이들의 밥을 넉넉한 인심으로 챙겨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고, 훨씬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리워하며 산다.

소설 속 주인공도 국민학교 세대를 보냈다. 80년대 생들에게,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공감될 만한 이야기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정착하게 된 주인공은 여러 사건으로 두 번의 극단적인 선택을 마주한다. 자살시도자 10명 중 8명은 충동적인 자살을 시도하며 14세기 무렵에야 인간이 중심이 되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개인에 대한 다방면의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분석과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사회에서 10대 청소년 자살, 처지비관, 빈곤자살, 더 세부적인 명명이 늘어가기만 할 뿐, 자살률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추억만 되새기고 소설이 전개되기를 바랐던 독자의 기대를 저자는 정면으로 외면한다. 자매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감내하기 힘든 생활이 이어진다. '흰 눈'에 대한 서정적 생각이나 극복 과정의 현명함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끝내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발단이 돼 삶의 위기를 잘 극복해내는 자매에게 감동의 마음도 생긴다.

이때 독자로서는 주인공 자매가 기특하다는 생각도 했고, 감정이입해 '나는 이런 상황이었다면 과연 이 자매들처럼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비교도 해본다. 그리고 누구 못지 않게 힘든 삶을 잘 버티고 대응해 최소한 보통 사람들처럼 살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평탄한 내 삶을 감사하게 생각한 삶에 대한 옹졸하고도 안이한 의지를 혼자서 꾸짖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의 삶의 태도가 독자에게 오히려 교훈이 된 셈이다. 앞으로라도 평온한 삶에 대한 감사도 해야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늘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로 임해야겠다는 반성도 했다. 주인공 자매가 할머니나 큰아버지의 존재로 그나마 좋은 삶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큰아버지, 그런 할머니가 되겠다는 위인전을 읽고 난 다음 같은 감동도 있다. 어려운 환경의 극복한 어린 아이들의 삶의 성공을 보는 듯해서. 그것은 저자의 의도된 구성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당연한 일이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를 폄훼하려 하는 말이 아니지만 소설이기 때문이다. 구성이 허술하면 극적 포인트가 없고 일대기를 나열한 밋밋한 글이 되기 십상이니까. 그러나 아무튼 자전적 성장 소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벽돌 같은 모양을 한 심장귀신이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일기. 호두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명확한 두 명. 두 명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 부분을 아버지가 펼치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찢어냈다.(p. 29)


나는 그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떤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만 아니고자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p. 144)


확실히 내 발끝까지 뜨거운 피를 보내며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이 심장이 정말 나를 위해 뛰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나를 위해서도 뛰고 싶은 것일까. 내 의지를 싣지 않은 뜨거운 혈액이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p. 297)


저자 : 이한칸


책과 글을 늘 가까이 두고자 했고 독립서점-슈뢰딩거에서 우겨서 얻어낸 본부장 직함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꿈꿔왔습니다. 허름한 공장 한구석, 독서실 한 칸, 고시원 한 평, 내 꿈이 담기지 않은 사무실, 교실의 비좁은 책상과 그 모든 한 칸 남짓한 공간에서 우주만큼 큰 꿈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
태피 브로데서애크너 지음, 오세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업 결혼 자택 등을 포기하는 '오포세대'가 우리 나라 청춘들의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시대다.

코로나로 취업 문제가 잠시 당면 문제의 뒷전으로 밀렸지만 여전히 미취없 청춘들은 당장 먹고 살 일이 더 걱정이다. 수십, 수백 군데 이력서를 내고, 면접도 보지만 청년 취업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세계적 팬데믹 상황으로 방역이 우선이어서 취업 문제는 얼굴도 못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나마 선제적 방역으로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 중이고, 일부 국가에서는 3차 임상실험을 끝내지 않고도 환자에 투여하고 취약계층부터 독감 백신을 맟추고 있다. 독감과 코로나의 관계를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정부 방역당국의 조치에 따르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청년은 결혼을 꺼리고 결혼 안정기라는 중년의 나이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이혼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도 보인다. 수입이 없어져 생계가 막막해질 정도로 경제적 압박이 심해서일까. 그러나 막상 이유를 찾아가보면 대개 예전의 이혼 부부와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고 한다. 결론은 코로나와 결혼, 이혼은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없다는점이다.







미국은 우리와 상황이 달라서인가? 보도를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 등 동양권보다 서양 사회에서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는 상상도 못할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희생자도 수십 만 명에 이르고 백만 명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결혼 14년이 넘었는데 특별한 이혼 사유가 없는 것 같은데 별거, 이혼을 서두르고 있다. 코로나가 별거나 이혼 사유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왜 늘어나는가?

사회학자들은 중년의 부부 위기는 대개 삶의 이유가 충분하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자주 부딪치는 부부 갈등 문제를 풀지 못하고 결국 '사랑 이후의 부부'로 남는 일을 선택하려 한다.

이혼이 이렇게 설득력 있는 이유를 갖지 못한 채 흘러가면 결국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 명백하다. 인구 문제, 의학 발달에 따른 고령화 문제. 모두 국가가 위기를 느끼긴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 소설은 결혼과 이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현대의 인간관계를 섬세히 관찰했고 유머로 풀어 쓴 작품이다.

대학 시절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14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해오며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을 둔 토비와 레이철 플라이시먼 부부. 이들이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혼을 하기로 결심한 걸까?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사랑과 결혼, 부부의 갈등과 위기 등을 고찰한다.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뇌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을 통해, 종종 폭소를 터뜨리게 하면서도 결혼 생활의 실존에 관한 통찰력 있고 마음을 울리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다.





미국 뉴욕시에 있는 병원에서 간의학 전문의로 일하는 토비 플라이시먼. 그는 레이철과 이혼 절차를 밟으며 자녀 해나와 솔리를 공동으로 양육한다. 별거 후 토비는 심리 치료를 받으며 악몽과 같았던 결혼 생활에서 회복하려는 한편, 돌아온 싱글로 온라인 데이팅 앱에 빠져 여러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철이 새벽에 그의 집에 두 아이를 데려다 놓고는 사라진다. 토비는 레이철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 애쓰면서 병원에서는 위중한 환자들을 진료하고, 데이팅 앱에서는 여자들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오지만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그의 결혼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알아내려 한다.

대학 4학년 때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한 토비와 레이철. 의사로, 에이전시 직원으로 일하며 아름다웠던 결혼, 꿈같은 신혼 생활 뒤 임신과 출산을 겪고, 두 아이를 양육하며 점차 중산층에서 부유층으로 사회적 상승을 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세월이 지나 어느 덧 서로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두 사람 각자 상대방에게 원하는 요구만 남아 있다. 서로에 대한 갈등과 분노, 증오가 심화되어 부부 상담도 시도해보지만 결국 이혼을 하기로 합의한다. 소설의 화자는 대학 시절 토비와 친구가 된 기자 출신 리비이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 둘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일까?




리비는 토비와 레이철 부부의 결혼 이야기, 여전히 싱글로 지내는 친구 세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랑과 결혼, 맞벌이에 육아를 병행하는 부부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조명한다. 이 시대에 여성으로서 겪는 현실, 직장 생활과 자녀 양육 사이에서의 번민,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와 가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한 실존적 고민들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유머와 풍자가 가득하면서도 동정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인물들의 삶을 그리며, 인생의 의미를 통찰력 있게 담아낸다.


토비와 레이철은 1학기가 끝난 직후인 6월 초에 헤어졌다. 거의 1년에 걸친 과정의 결말, 아니, 어쩌면 14년 전 그들의 결혼식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 과정의 결말이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누가 그것을 바라보는지, 또는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이혼으로 끝나는 결혼은 처음부터 그렇게 될 운명이었을까?(p. 23)


한 사람이 모든 산소를 독차지하고 있는 결혼에는 두 사람이 설 공간이 있을 수 없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아이들 학교에서 전화가 올 때 받아야 했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아이들의 백신 접종 기록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했다. 둘 중 한 사람은 염병할 설거지를 해야 했다.(p. 94)


아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불안과 걱정으로 정신적인 고문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기 위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편, 마치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여자와 섹스팅을 하고 있다니,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p. 174)






아내는 최고의 애인이나 영원한 애인이 아니다.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다. 그녀는 네가 너 자신을 재료로 해서 함께 만든 존재다. 그녀는 너 없이는 아내가 될 수 없고, 그래서 그녀를 미워하거나 배반하거나, 네가 그녀와 겪고 있는 고민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의 괴사한 손가락을 욕하는 것과 같다.(p. 395)


또한 이혼은 건망증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그런 모든 혼란이 있기 이전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며, 사랑에 빠진 순간들을, 떨어져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더 특별하다고 깨달은 순간들을 망각하는 것이다. 결혼은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며 봉사하며 살아간다.(p. 495)


부부의 위기를 다룬 소설과 드라마, 영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엄청나게 많다. 대개 서양 쪽에서 만든 영화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에게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얼마 전 모TV에서 방영한 '부부의 세계'는 종합편성 TV의 한계를 딛고 시청률을 지상파 방송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에서 관심을 갖고 그려내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일부 부부들의 얘기지만 전폭적인 인기를 받은 것은 분명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중년에 들어서는 부부들은 권태스러울 만큼 충분히 살았다는 점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전편을 다 보진 못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단어 '불륜'이 모티브가 된다. 내용도 진부한 내용이다. 다만 심리 표현을 잘해 그쪽에 신경을 쓴 듯한 의지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결혼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한울타리 안에서 같이 살게 되면 더 잘 살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참고 살고, 애들 때문에 살고, 아직도 상대를 믿기 때문에 살고...






저자 : 태피 브로데서애크너(TAFFY BRODESSER-AKNER)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기자로, 〈GQ〉 〈ESPN 매거진〉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써왔다. 이 책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은 저자의 첫 장편소설로, 출간 뒤 2019년 전미비평가협회 존 레너드상, 2020년 영국 도서상 데뷔작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9년 전미도서상, 카네기 메달상, 2020년 여성소설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9년 뉴욕공립도서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올해 최고의 책 TOP 10,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등 영미 주요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찬사를 받았다.


역자 : 오세원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공군 통역 장교로 복무했으며, 금융업계에 근무 중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 윌리엄 앤 매리 대학교 MBA를 마쳤고, 현재 녹색기후기금(GCF)에서 근무 중이다. 옮긴 책으로 《제임스 서버》 《랭스턴 휴스》 《펭씨네 가족》 《당신 없는 일주일》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뜻밖의 회심》 《퓨처 누아르》 《청춘을 위한 기독교 변증》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