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되, 애쓰지 말 것
김은희 지음 / 젤리판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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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읽을 시간조차 내기 쉽지 않은 상태로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어떻게 엄마들의 귀에 꽂힌 공감의 언어로 책을 낼 수 있었을까. 오로지 실력과 노력, 남다른 열정이 요구되는 사회 시스템 아래서 엄마로 일하고 사랑하고 돈 벌고 견디고 기억하고 기록하며 책을 낼 수 있었을까.

독자는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한 부분보다 그 점이 더 궁금하다. 또 이런 시스템의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어떻게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이 간다. 이 책은 서른아홉, 뒤늦은 사춘기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치열하게 보낸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는 대기발령도, 인수인계도 없는 육아, 이른바 ‘독박육아’에서 ‘함께 성장하는 육아’로 거듭나기까지 울고 부딪치며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가득하다. 나아가 육아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일상에 감사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까지 그려낸 데 대해 독자로서 감복한다.

오랫동안 헤맸어도, 지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여도, 끝내 새로운 길을 찾아낼 단단하고 용기 있는 이 시대 워킹맘, 전업맘, 모든 여성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독자의 뜻에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 '마음껏 사랑하되, 너무 애쓰지 말기를' 독자도 따라 해본다.





『사랑하되, 애쓰지 말 것』은 제목처럼 남녀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표지와 제목만 얼핏 보아서는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맞히기 어렵다.

책을 들춰보거나 책 소개글을 접하고 나서야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 즉 양육의 이야기다. 호텔리어로 15년간 일을 한 김은희 저자는 워킹맘과 전업주부로서의 육아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모두 경험했다. 15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워킹맘과 전업맘을 동시에 살아본 저자가 아이 양육에 대한 경험담을 솔직하게 쓴 에세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육아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척, 육아전문가인 척 허세를 부리진 않는다. 스스로 ‘육아전문가’라고 생각하는 믿음이 오히려 좋은 엄마 콤플렉스를 만들어 자신만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워킹맘들은 어려움이 많으리라는 것은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가리지 않고 체험을 통해 알 것이고, 심지어는 남성들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것이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서로 다른 성격의 일을 하다 보면 어느 것 하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고, 이게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도 많다.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부담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여성가족부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적 뒷받침도 하고 있다지만 모든 워킹맘에게 혜택이 다 돌아가는 단계는 아닌 듯하다. 이 같은 정책 시행은 몇 년 전부터의 일이어서 아직 정착되진 않았을 테니 일부 혜택만 받아도 다행이지만.




'쉬어가더라도 멈추지는 말자'는 소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엄마가 체질이 아닌 자신을 타인(곧 아이)을 위해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했다고 말한다. 누구나 나 자신을 아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져야 할 숙제다. 우리는 늘 타인을 관찰하고 판단하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에 맞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 자신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일에 과연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고 있을까? 그래본 적은 있을까? 독자는 자성하게 된다.

독자는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같은 취미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필요한 부분을 최선을 다해 채워주려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사람이다. 그러나 이른바 '자아성찰'엔 그다지 힘을 쏟지 않았다. '그냥 생긴 대로 산다'가 잘 통해서일 게다. 독자가 학교 생활 이후 읽은 책들도 문학, 인문학, 대인관계 분야의 책이 주류를 이룬다. 그것도 많이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굳이 자아성찰을 하게 하는 철학서나 정신분석학, 심리학 분야의 책은 피했다기보다 '어렵다'는 이유로 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를 알고, 또 인정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어려운 문제지만 삶에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내 삶에서만큼은 내가 중심이고 나답게 살기 위한 첫번째 관문인 것 같다. 독자로서 저자에게 한 수 배운다.




저자는 자녀가 두 명이라고 한다. 첫째를 잘 챙겨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책에서 많이 보인다. 아마 워킹맘으로서 양육에 대해 몰라서 그랬을 것 같다. 엄마라는 것을 처음 해본 사람은 누구나 서툴 것이다. 자신의 엄마에게 배우고, 또 책이나 미디어 영상, 친구나 동료로부터 배운다 하더라도 막상 자신이 엄마가 되었을 땐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배운 대로 들은 대로 해서 잘한다면 대화나 가르침의 대상이 안될지도 모른는 일이다. 누구나 주변에서 "나는 나쁜 엄마"라는 말을 한 사람을 많이 봤을 것이다. 대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표현이다. 독자는 남성이지만 그런 표현을 한 사람을 많이 봐왔다. 듣다보면 대개 '나쁜 엄마'라는 표현은 '나는 내 아이를 가장 사랑한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세상에 '나쁜 엄마', '좋은 엄마'가 따로 있을까. 저자는 이를 슈퍼맘 콤플렉스에 걸린 거라고 말한다.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슈퍼맘 콤플렉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엄마라면 이미 충분히 훌륭한 엄마 아닌가? 그저 아이 탓만 하거나 자기반성이 없는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진심은 충분히 이 세상의 엄마들에게 충분히 공감된다.






책에서는 숨통 트이기라는 번외 부분이 중간중간 나오는데 공감되는 것이 많다. 독자가 요즘 가장 많은 생각하고 또 직장 동료들에게 많이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집에 많이 있어보니 비로소 가족이 보이더라'는 말이다. 아이와 배우자가 비로소 자세히 보임을 느낀다. 지금까지의 일상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이르러서야 느꼈다는 게 부끄럽지만 그만큼 집에의 부재를 증명하는 명백한 고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백성사 하는 마음으로 이 얘기를 많이 꺼냈더니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 철들어 가나?'는 비아냥 섞인 농담도 건네 왔다. 또 '때가 이미 늦은 거라네, 이젠 집에 자네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상태라는 반중이라네'라는 말도 들었다. 내 삶의 울타리 안에 있는 식구들이 그동안 안 보였던 것은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자기 성찰과 반성, 새삶에 대한 각오도 생긴다. 이 책을 읽다 느낀 엄청난 수확이다. 그땐 왜 몰랐을까.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더 큰 관심이 늘 '밖'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되돌아본다. 분명 잘못된 점을 발견하다. 새롭게 살 것을 다짐한다. 새로운 삶은 원래 나다운 삶이다. 결국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다는 생각을 깊은 사색 끝에 찾아냈다. 이 책의 덕분이다. 저자의 솔직한 얘기에 공감하고, 독자 스스로를 돌아본 계기다.

지금도 직장에선 관리자의 위치에 있지만 덕분에 코로나 상태로 유급 상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가족에 대해 그토록 치열한 사색을 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이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서의 행복이 내 삶의 행복이란 평범한 진리에 한 걸음 다가선 것 같아 즐거운 집콕 생활을 하는 중이다.




저자는 요즘 떠오르는 '미니멀리즘'을 육아에 적용해 보라고 조언한다. 미니멀리즘의 첫 번째가 비워내기인 것처럼 심플 육아의 첫 단계도 '마음 비워내기'이다. 완벽한 나도, 완벽한 아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마음 비워내기의 시작이다.

비워내는 것이 끝났다면 두 번째 단계, 지금 나에게 집중하기를 실천해보자. 내 삶에 있어서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에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적용해보자. 희생하지 말고 함께해보자.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나의 한계 설정하기이다. '엄마에게 대기발령이 없다'와 일맥상통하는 얘기이다. 심플 육아의 핵심은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여 나의 휴식 또는 충전시간을 확보하는 데 있다.

멋진 말이지만 말보다 행동이 더 멋지다. 독자는 '나는 나를 위해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는가'를 자문해본다. 잘 생각나지 않지만24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아직 사색의 단계로 들어가지 못한 화두를 꺼낸 말에 그쳤다. 올 가을엔 이 점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볼 참이다. 열심히는 살아왔지만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되돌아보려는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업글 맘이 되기 위한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바로 홈짐, 경제공부, 독서이다. 책읽기는 관심도 많고 실제 조금 읽는 편이다. 절대 시간은 많은 편이 아니라서 '조금'이라고 표현하지만 다른 부문에 쓰는 시간보다는 많다. 매일... 운동도 좋아했지만 나이 먹어가면서 자연 운동보다는 책 읽는 게 더 좋아진 것 같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삶에 변화를 일으킨 7가지 지혜에 관해 얘기한다. 간단 명료한 7가지가 가슴에 속속 들어와 새겨진다. 저자가 깨달은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핵심 포인트만 독자에게 주려는 것 같다.


저자 : 김은희


대한민국 최초 워킹맘 컨설턴트, 워킹맘 디렉터 멘토. 척박한 가정환경 덕분에, 별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자유롭게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전 이르게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학력차별을 실감하고 대학진학을 결심한다. 이후,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삼성동 소재 특급호텔에서 호텔리어로서의 두 번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엄마로 산 지 7년, 좌충우돌하다 보니 서른아홉이었고 뒤늦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시작했다. 전업맘도 워킹맘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들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그 때, 불쑥불쑥 찾아드는 질문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게 주어졌던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 거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군분투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겁 없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공동저서를 시작으로 작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그녀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때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담아 일, 육아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로 이번 책을 준비했다. 2년간의 고민을 담은 이 책을 계기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버(giver)로서 대한민국 최초 워킹맘 컨설턴트를 자처한다. 사랑하되, 애쓰지 말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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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등산가 -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김영도 지음 / 리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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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어릴 때부터 '산악인' '등반가'라는 말을 동경했다. 고향이 산악 지역이어서가 아니다. 우연히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했다는 우리나라 등반가가 TV에 소개되면서부터다. 그때는 '알피니스트'란 말도 몰랐고,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쯤으로 알던 때다.

그리고 세계적 알피니스트로 힐러리경밖에 모르던 시절이다. 에베레스트에 우리 나라 사람이 오르자 차츰 우리나라 산악인들도 세계적 등반가 반열에 오르고 명성은 대단했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도전을 카메라에 담아 TV로 방영한 프로그램을 볼 때는 마치 독자가 간 것처럼 기쁘기도 했다. 다음날 직장에서 하루 종일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반면 외국의 등반가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줄어갔다. 나이가 들면서 산에 대한 욕심과 그리움은 여전했지만 직접 가기는 어려워졌다. 대신 산악인에 대한 책은 가끔씩 읽고 대리만족을 얻기도 했다. 그들의 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한마디로 '세계 최고'임에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독자는 그렇게 산과 친해졌다. 그리고 한참 때는 일주일마다 근처 가까운 곳에 등산을 갔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유명한 알피니스트가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했다고 해서 그 말을 올라간 산에서 하루 종일 곱씹으며 등산가의 깊은 생각도 알게 됐다. 그러나 일주일마다 가던 산도 나이가 40대 이후로 넘어가니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2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가다가 이젠 조금 유명한 산엔 아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가 됐다.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해 병원 신세를 한 번 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산에 가지 못했다. 호흡기 질환이었으니 근처까지 갔다 해도 오르지 못하고 돌아섰을 터다. 가끔 TV에 방영되는 '산'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등산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이 때 『서재의 등산가』가 눈에 띄었다. 왜 제목을 등산가가 서재에 있다고 할까? 궁금했다.



등산가가 나이 들어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살아갈까? 산에 갈 수 없으니 더는 등산가가 아닐까? 이제 오를 수 없어도 산을 떠나고 싶지 않은 등산가들에게 한국 등산의 역사를 써내려간 노(老)등산가는 산서(山書)와 함께 걷는 삶을 추천한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사랑하는 산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갖고 있구나 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산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산서(山書)는 산과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란 말에 크게 공감한다. 저자는 "등산은 산이 높을수록 오르기 힘들수록 매력이 있다"고 한다. 산에 가기 힘든 때에는 평소 미뤄두었던 산악 명저를 탐독해봄을 추천한다.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이끈 노등산가가 회상하는 한국 등산계의 지난 역사, 그리고 지금 등산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뜻깊은 산악 에세이를 썼다.



우리는 왜 산에 오를까? 산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저자는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젊은이들을 보며 우리가 산이라는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며 안타까워한다. 산에 미친 인생을 살면서 먼저 이 고민에 빠진 사람들은 산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내놓는다.


책에 따르면 발터 보나티는 알프스를 오랫동안 떠났다가 마음의 고향을 잊지 못해 몽블랑으로 돌아오는데, 그때 산록을 덮은 야생화 군락을 보고 넋을 잃는다. 『내 생애의 산들』 끝에 나오는 장면으로, 그때 그는 등반하려고 몽블랑에 온 것이 아니고 옛 고향이 그리워 다시 찾아왔다며 이렇게 써 나간다.

“나는 수년래 여름, 가을, 겨울을 혼자 생각나는 대로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으로 알프스를 돌아다니고 있다.”

근대화와 때를 같이해 알피니즘이 생기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등산가는 알피니즘을 고향으로 여기고 언제나 거기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250년에 걸친 등산 역사가 아닐까. 이렇게 인류 역사에 나타난 등산 세계는 오늘날 그 독특한 지평선을 넓히고 있다. 이 엄청난 동기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 “등산가는 누구나 산속에 자기의 고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선구자가 있다. 사람이 산에 가는 것은 가지 않을 수 없어 간다는 이야기다. 거기가 자기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귀소본능인 셈이며, 등산가가 사서 고생하는 까닭이다.(p. 179)



전문 등산가가 남긴 도전의 과정과 소회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개인적인 체험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등반기를 쓰는 등산가가 많고 그중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산악 명저도 있으며 국내에서도 거듭 읽히는 것이다. 그런 산서들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산악인으로 사는 동안 내게 등산 세계는 바로 사색의 장이었다. 집에서는 산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밖에서는 언제나 간편한 등산 차림으로 산친구들과 만나 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등산이 생활의 연장인 셈이었다. … 물론 고산 등산만 등산으로 본 것은 아니다. 표고가 낮은 설악산 같은 데서도 등산다운 체험을 맛볼 수 있다. 산에서의 사색과 체험은 산을 가는 사람의 자세에 달려 있으며, 엄동의 설악산은 그 좋은 무대다."(p. 144)


등산이 곧 인생이라는 근거는 필경 선구자들의 생의 궤적에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산악계에는 산에서 위험과 싸우다 사그라져 간 산악인은 많다.

여기 등산가의 숙명적인 인생이 있으며, 그들에게 등산은 바로 인생이었다. 등산가는 산과 만나면서 그 인생을 시작한다. 알피니즘 250년의 역사는 이렇게 산과 사람이 만난 역사다. 등산이 곧 인생임을 이 이상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따로 있을까.(P. 176)



저자에 따르면 알피니즘 세계에는 ‘8,000미터 고소의 윤리’라는 불문율이 있다. 죽음의 지대에서는 남을 돕거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듯하지만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자의 자세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히말라야 자이언트 완등을 눈앞에 두고 안나푸르나에서 눈사태로 사망한 아나톨리 부크레예프는 “남의 도움을 기대하는 자는 에베레스트에 오를 자격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한 히말라야와 알프스 등 세계에 이름난 등산 명소에 상업주의 원정이 유행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노등산가는 “지난날 존 헌트가 에베레스트 초등을 노리고 항공사진을 보다 힐러리 스텝 부근의 모습을 판독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데, 오늘날에는 거기에 사람이 몰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수백 명이 운집해 장터를 방불케 하며, 로체 사면에 깔린 고정 자일에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매달리고 있다.”고 한탄한다. “릭 리지웨이의 ‘터무니없는 몽상’이 사어(死語)가 된 지도 오래다.” (213p) 그러나 산은 아직 거기에 있다. 한국의 산에서도 도전과 극복이라는 멋진 체험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한여름 덕유산에 간다.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다로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무주 구천동을 거쳐 백련사에서 시작하는 오름길은 끝이 없는 듯했다. 가도 가도 전망은 열리지 않았고, 가파른 돌길이 이어져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준비한 물은 동난 지 오래였으며, 확확 달아오르는 지열에 숨이 꽉 막혔다. 덕유산의 여름은 원추리 꽃으로 유명한데, 그 많던 야생화가 한 송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타죽은 모양이었다.

나는 덕유산을 오를 때마다 히말라야를 연상한다. 에베레스트의 아이스폴을 지나 6,000미터 고소부터 로체 사면 밑까지 펼쳐지는 대설원을 걸었을 때 흰 눈의 복사열이 어찌나 심했던지 잊히지 않는다. 한여름 덕유산을 오르며 그 생각이 떠올랐다."(115p)라고 술회한다.

저자는 서재에 앉아 산악 명저와 함께 산을 오르면서 등산이 곧 인생과 같다는 깨달음을 다시금 얻었노라 거듭 말하고 있다. 등반기에는 사람이 담겨 있어야 마음에 스며드는 글이 되고 아직도 그런 글이 나오고 있음에 기뻐한다.



등산은 직업이 아니다. 생계 유지 수단이 아니며, 취미나 여가 선용이나 심지어 건강 관리 수단도 아니다. 산악인들은 조 심슨이라는 알피니스트를 잘 안다. 지난날 남미 고산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고도 살아 돌아와 『허공으로 떨어지다』라는 불후의 등반기를 남겼지만, 그 뒤 그는 『고요가 부른다』를 썼다. 그저 산이 그립다는 이야기다. 산에 가는 행위에는 동기가 있으며, 그 동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생활에 지치고 마음에 공허를 느낄 때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가. 리카르도 캐신은 『등반 50년』에 산과 처음 만난 순간을 털어놓았다. 에드워드 윔퍼는 잡지사의 청탁으로 산의 목판화를 그리러 갔다가 그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헤르만 불은 고향 인스부르크에서 카르벤델(2,749m)이라는 멋진 산을 보며 자랐다. 이런 이야기는 끝도 없다. 우리 마음에는 문명보다는 자연을 그리워하는 잠재의식이 있다.(p. 180)



산은 행동의 장이면서 사색의 장이다. 누구나 산이 좋아 산에 가겠지만 그저 그렇게 끝나기에는 너무나 깊고 넓고 높은 곳이 산이다. 산에 담긴 자연성을 그대로 느끼고 알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산의 매력과 등산의 의미란 그런 것에 있다고 본다. 산에 가 서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러고도 우리는 또 산으로 간다. … 그 옛날 머메리가 “정당한 방법으로”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취할 정신과 태도 역시 ‘정당한 방법으로’다. 지구상의 모든 산이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오늘날 알피니스트가 갈 곳은 그래도 산밖에 없다. 그 삼십 대 젊은이가 외로이 오른 한여름의 덕유산은 바로 그런 세계였다.(p. 118)


저자 : 김영도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77년에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을, 1978년에 한국북극탐험대 대장을 맡았다.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회장과 제9대 국회의원과 한국등산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산서회 고문을 맡고 있다.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을 집필했으며 《검은 고독 흰 고독》, 《제7급》, 《8000미터 위와 아래》, 《죽음의 지대》, 《내 생애의 산들》, 《세로 토레》, 《무상의 정복자》, 《나의 인생 나의 철학》, 《산의 비밀》 등 다수의 산악 명저를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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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설영환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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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프로이트, 아들러와 더불어 세계 3대 심리학자로 불리지만, 그의 이론은 그 개념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인기가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2019년 세계적인 보이밴드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앨범이 융 심리학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팬클럽 아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융의 이론에 주목했고, 〈MAP OF THE SOUL〉 앨범 시리즈에 담긴 방탄소년단의 여러 노래를 통해 융 심리학의 핵심 개념들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독자 역시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의 권유로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한 번 읽어봤을 뿐 프로이드와 비슷한 시대의 칼 융은 이름만 아는 정도였다. 최근 가수의 새 앨범 때문인지 코로나로 인한 우을증 등 심리적 장애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의 '분석심리학'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한두 권 읽었지만 여전히 어려워 깊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쉽게 그가 창조한 단어 개념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정도는 된 것 같다. '존재'나 '상징'은 문학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지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서의 전문 용어라는 생각은 해보질 못했다.

이 책은 칼 융의 이론이나 그에 이론에 관한 해설 등을 모아 만든 책으로 칼 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 그러나 자주 읽고 또 읽다보면 그의 분석심리학의 개념 정도는 알지 않겠느냐는 내심의 욕구로 이 책을 읽게 됐다. 그리고 꽤 많은 진전이 있었음을 밝힌다.



『존재와 상징』은 일반인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융의 연구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쓴 해설서이다. 이 책의 설영환 번역자에 따르면 융의 관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대 정신의학과 심리학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익히 쓰는 ‘외향적’이니 ‘내향적’이니 혹은 ‘원형’이니 하는 말들이 모두 융의 개념이다.

오늘날 이 개념들을 인용하는 경우도 많고, 또 그만큼 오용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의 공로 중에서도 가장 특출한 것은 그의 ‘무의식’의 개념이라 하겠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잠재의식’처럼 단순히 억압당한 욕구가 쌓인 잡다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귀중하고도 현실적인 부분이며, 자아(EGO)의 의식적이고도 깊이 생각하는 세계로서 한없이 넓고 풍부한 세계이다. 무의식에 있어서 언어와 사람은 상징이고, 의사소통의 수단은 꿈이다. 그래서 존재와 인간의 상징을 연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 자신의 무의식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각 장마다 연구자가 다르다.

1장은 융, 2장은 헨더슨, 3장은 폰 프란츠 4장은 야페, 5장은 야코비이다. 1장은 〈존재와 상징〉 전체를 아우르는 융의 ‘꿈’을 분석하는 내용이다.

2장은 신화에 어떤 무의식이 들어가 있는가를 분석하였고 3장은 개인의 생애에 걸친 꿈 전체의 목적을 분석하여 ‘자신’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분석하였다.

4장은 무의식은 시각예술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5장은 3장과 비슷하지만 ‘젊은이’들의 개성 발달에 집중하였다. 3장의 경우는 중년을 개성이 완전히 성숙한 단계로 보고 그것을 분석했으며 5장의 경우는 개성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연구한 것이다.

역자는 책의 머리말 '존재와 상징, 그 필자들에 대하여'에서 "융의 견해로는 무의식이란 의식의 위대한 안내자요, 친구요, 지도자이기 때문에 이 책은 인간과 인간 정신문제에 대한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우리는 꿈을 통하여 무의식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 책을 살펴봄으로써 개개인의 삶을 통하여 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하여 꿈의 영역을 좀 더 넓혀 세상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융은 꿈을 무의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의식에 전달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꿈을 꾼 사람의 심리적 평형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즉, 너무 높은 이상을 갖고 있거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추락하는 꿈을 꾸는 경우 등이다. 그래서 이 꿈을 분석함으로 인해 무의식을 통해 의식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전달받아 자아가 성장할 수 있다.

꿈을 분석할 때는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꿈을 꾼 사람의 배경이나 개인적인 환경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위험한 일을 벌이는 꿈을 꾼 사람이 젊은이인 경우에는 그가 도전해나가야 하는 일을 의미하나, 무모한 모험을 하는 노인의 경우에는 그에게 닥칠 수도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이러한 꿈이 중요한 이유는 문명화에 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의식과 지성을 발전시키고 무의식을 억압했기 때문에 본능이나 무의식으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어졌다. 그러나 꿈은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 전달함으로 인해서 이러한 현실을 보상한다.인간의 무의식은 고대 신화에도 잘 구현되어 있다. 영웅 이야기에서 영웅이 거치는 각 성장 단계는 인간의 전 생애에서 겪는 발전 단계와 동일하다. 서로 교류가 없었던 지역 사이에 고대 신화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신화는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꿈에는 규칙성이나 방향성이 있어서 천천히 성장하는 개성화 과정을 거친다. 이 규칙성을 만드는 것은 마음의 핵 원자인 ‘자기’이다. ‘자기’는 마음의 일부인 ‘자아’와 대립되는 개념이며 마음의 전체/전부를 의미한다.



꿈은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측면인 그림자의 모습을 의식에 전달한다. 이 그림자는 자신이 극복해야 할 결점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의미 깊고 가치 있으며 생명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개성화 과정은 마음 속에 잠재하고 있는 좋은 개성의 발현을 목표로 한다.

그림자 외에도 남성의 마음 속에는 아니마라는 여성 상이 있고 여성의 마음 속에는 아니무스라는 남성 상이 있다. 아니마는 모친에 의해, 아니무스는 부친에 의해 형성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모두 부정적인 힘과 파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아니마는 무의식에서 해결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내적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특히 아니마를 받아들여 창작 활동을 할 경우에 심원한 내적 세계와 접속할 수 있다.

아니무스는 진정한 확신을 갖도록 하며 주도성, 용기, 객관성 등 남성적인 성격을 갖도록 해 주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잘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이해가 되기 시작하자마자 생소한 단어가 튀어나온다. '그림자'이다.

융과 연구를 함께했던 몇 안 되는 융 학파 연구자이자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융 심리학 해석자인 로버트 존슨은 『칼 구스타프 융』이란 책을 통해 융 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그림자’의 의미와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내면에 억눌린 채 울고 있는 그림자와 용감하게 대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바 있다. 또한 ‘그림자를 방치하는 삶’보다는 ‘그림자를 소중히 보살피는 삶’이 더욱 슬기로운 마음챙김의 비법임을 일깨워줬다.



다양한 사례들과 신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부분에 이르러서 처음의 안개속 같은 머릿속은 조금씩 걷혔다. 이해했다기보다는 설득당했다고 고백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깊이 그의 사상과 이론에 빠져들면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축인 무의식이 세계가 무엇인지를, 더 크게는 인간이란 존재와 그 삶을 또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 경험은 마치 칼 구스타프 융이라는 어려운 지식의 산을 넘은 게 아니라 이제 오르기 시작한 기분이다. 갈 길은 멀고도 험하겠지만만 그의 이론과 분석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독서를 계속하겠다는 각오도 새로 생긴다. 우리 인간 내면 깊숙이 들어 있는 무의식 세계를 바라본 그의 생각을 함께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면서...

독자가 삶에 크게 쓰일 지식을 왜 그리 알고 싶어하는지가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를 알고 이해하고 싶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칼 구스타프 융이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을 창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환자 치료 신념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존경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책 『칼 구스타프 융』에 따르면 융은 분석심리학의 창립자이다. 그는 환자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려 깊은 심리학자였다. 틀에 박힌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경계했으며 개인에 대한 개별적 이해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권위보다는 환자를 생각했고 환자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면 다른 학파의 방법도 개의치 않았다.

융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회자가 많은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일치하지 않는 모순들과 오랜 시간 싸워야 했는데, 그 모순을 덮어 버리지 않고 답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성찰하였다.

이와 같은 성장 배경은 융이 환자를 인격적으로 배려하면서 치료하고자 한 신념이 되었고, 반복적으로 자기성찰을 하며 자신만의 사상 체계를 확립해 가도록 이끌었다. 융이 연금술에 몰두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서 나왔다.



시각 예술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상징이 있다. 원은 정신의 전체를 상징하고 만다라는 신의 힘과 관련된 우주를 상징한다. 원과 만다라는 많은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기 때문에, 인간의 공통된 무의식을 표현한다.

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의 경우 무의식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자아를 강화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 이것은 꿈의 강력한 상징적 메시지를 해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무의식의 내용을 인정하고 그 힘을 경험할 때 성장이 가능해진다.

융은 무의식적인 것들이나 원형(정신의 역동적인 핵)이 개인에게 큰 힘을 미치며 인간관계 및 개인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이런 원형은 우리에게 창조적인 힘 또는 파괴적인 힘을 미칠 수 있으며 신화, 종교 예술 등 문화 전반에서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융 심리학은 앞으로 미시물리학과 심리학과의 관계, 자연수와 심리학의 관계 등을 추후 연구할 계획이다.

무의식과 꿈에 대한 책을 읽고 꿈 분석 사례를 듣다 보니 무의식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또 존재와 상징, 그리고 그림자라는 개념을 의학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등 새로운 세계에 관심이 커진다.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융이 타계 10일 전에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의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무의식과 꿈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한 독자에게 입문서로서의 역할은 훌륭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카를 구스타프 융


저자 : 칼 구스타프 융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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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비밀코드와 신미대사 - 맥락적 근거로 파고든 한글 탄생 비밀 이야기
최시선 지음 / 경진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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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백성이 니르고저 할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펴지 못할놈이 하니다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니겨 날로쓰매 편아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使於日用耳.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불상유통 고우민 유소욕언 이종부득신기정자다의 여위차민연 신제이십팔자 욕사인인 이습 사어일용이).


이것이 그 자랑스럽고 유명한 훈민정음 반포의 어제 서문이다. 고등학교 때 "시험에 잘 나오니 무조건 외워라"는 국어 선생님의 엄명에 따라 죽자사자 외웠다. 이 때문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부분이 들리면 따라 외울 수 있을 정도다. 그리 길지 않고 뜻이 분명해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한 개의 문장이란 사실도 뒤에 안 사실이고 이 서문이 단순명료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글의 흐름이 순해서 물 흐르는 듯해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평은 한 소설을 통해 알게 됐다. 한글로 풀어쓴 해례본은 왕이 힘 없고 못 배운 백성을 위해 새 글자를 만들었으니 누구든지 쉽게 배워 날마다 익혀 자신의 뜻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고 적었다. 당시 세종대왕이 백성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담은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세종이 학문이 깊고 백성 사랑이 넓다고 하지만 글자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일부 집현전 학사들과 공주 등이 도왔다는 것은 그때 배운 사실이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와 중국의 경계를 뚫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후에 사극이나 역사 소설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세종의 뜻을 받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다 영화 '나랏말싸미'가 상영되면서 신미대사라는 스님이 있었다고 해 혼란이 왔었다. 그러나 학계의 정설이나 역사적 근거(실록)가 부족해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과연 훈민정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책 『훈민정음 비밀코드와 신미대사』의 최시선 저자는 탄생의 비밀에 대해 가져온 의혹이 더 짙어졌다. 영화 '나랏말싸미'를 보고 난 이후다. 저자는 직접 해답을 찾아나섰다. 저자는 수필작가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장이다. 단번에 수십 권의 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지고 밤잠을 설쳐가며 훈민정음에 파고들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들어가 관련 자료를 내려 받아 틈나는 대로 읽었다는 것. 시작일 뿐이다. 세종25(1443)년 12월 30일 기사에 딱 한 번 창제 사실이 나온다. 앞뒤가 잘려 나간 채 달랑 57자의 한자가 전부다.

왜 그랬을까? 그 중요한 새로운 문자의 창제 사실을 그렇게 간단하게 알렸을까?

저자는 훈민정음을 공부하면서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훈민정음 비밀코드 15가지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나랏말싸미 중국에 달아….’로 시작하는 〈세종어제서문〉은 정확히 108자다. 이것은 약과다. 이외에도 알 수 없는 코드가 널려 있다. 이는 다빈치 코드가 아니라, 한글 코드다. 누가 이를 심어놓았을까? 저자는 그가 바로 신미대사일 것으로 확신한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신미대사와 세종.(독자임의채택)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대사가 자료를 분석해 직접 써보고 있다.(독자임의채택)


"나 역시 최근에 '나랏말싸미'란 영화를 보고 나름 충격을 받았다. 단순한 픽션인가 아니면 근거가 있는 진실인가? 영화 속에서 한글을 만든 이들은 신미와 그의 제자들이었다. 우리 교과서에 배운 집현전 학사와 세종이 아니었다. 매우 혼란스러웠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아무리 천재이고 음운학에 밝았다고 하지만, 그 어려운 문자를 혼자의 힘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마도 대왕을 도운 숨은 공로자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시 음운학에 능통하고 세종과 소통했던 불교의 학승이며 실록에도 기사로 69건, 이름으로 139번 등장하는 신미…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집현전 학사들과 세종이 함께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이는 교과서의 영향이 클 것이다."(p. 154)





『훈민정음 비밀코드와 신미대사』는 이러한 의문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교양서적이지만 어느 정도 합리적 의심으로 다가간 연구 보고서라고 한 말이 맞을 것 같다. 한글 창제의 진실에 대하여 화두를 던진다. 특히 신미대사와 관련된 실록 기사를 낱낱이 해부하여 실었다. 이러한 시도는 모름지기 최초일 것이다. 저자는 신미의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접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다. 역대 왕들은 신미를 왕사급으로 대우하는데, 대소신료들은 승냥이처럼 그를 물어뜯는다. 실록 기사에 온통 비난과 질시로 가득하다는 것. 도대체 왜 그랬을까? 단지 억불숭유의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신미는 한낱 승려로서 천민 신분이었는데, 역대 왕들의 존중을 받으며 어떻게 실록에 당당히 등장할 수 있었을까?

독자도 이 책의 내용을 읽고 의문이 풀리는 부분이 많았다. 저자의 노력에 공감이 가고, 유의미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내용은 4부로 이루어졌다.

1부는 ‘영화 〈나랏말싸미〉 그 후’다.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후 저자 나름의 의문을 SNS에 올린 글을 다시 풀어썼다. 현장에 직접 가보기도 하고, 지인들과 함께 토론한 내용도 담았다.

2부는 ‘훈민정음을 공부하다’이다.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하고 알게 된 내용을 글로 썼다. 여기서 백미는 단연 ‘훈민정음 비밀코드’다. 이곳에서 코드를 다 설명하지는 못했다. 비밀코드는 여러 곳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나타난다.

3부는 ‘훈민정음에서 신미를 보다’이다. 이 글은 연구 논문이다. 공부하다 보니 공모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지역 학술지 ≪충북학≫ 21집에 실렸다.

4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훈민정음과 신미를 보다’이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훈민정음 10건, 신미대사 69건의 기사(신미대사 이름으로 139번 등장함)를 샅샅이 뒤져서 하나하나 해설을 붙였다. 그리고 가감 없이 상상과 추론을 더했다.





세계에는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지만, 자기만의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에게 훈민정음, 한글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삼국시대에 유입되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한자를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를 보고 세종대왕과 신미, 그리고 훈민정음에 대해 여러 의문을 품었고, 종내는 궁금증이 폭발하여 훈민정음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훈민정음 공부를 위해 수십 권의 책을 구입하며 훈민정음에 숨겨진 있는 비밀을 밝히기 위한 관련 자료들을 모으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하기 위해 두 달을 청주에서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저자의 노력이 눈물겹다. 이렇게 해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비밀코드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어제서문 글자 수 : 108자, 정음편의 한자 갈래 수 : 108자

훈민정음 해례본의 종이 장수 : 33장, 불가의 저녁 예불 범종 : 33번

훈민정음 창제 문자 수 : 28자, 불가의 새벽 예불 범종 : 28번

신미대사와 그의 둘째 동생 집현전 학사를 지낸 김수온 그리고 세종, 훈민정음 대중화와 보급을 위한 불경 언해 사업 주관,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신미에 대한 지극한 공경 등 이 책은 훈민정음의 비밀코드를 밝히는 내용들 담고 있다.




저자는 자료를 정리하며 비밀코드를 풀기 위한 세부작업에 돌입한다. 발견한 훈민정음 비밀코드는 모두 15가지이다.

1.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어제서문 글자 수 108자

2.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음편(서문+예의) 한자 갈래 수 108자

3. '월인석보' 권1의 종이 장수 108장

4. '훈민정음' 해례본의 종이 장수 33장

5. 훈민정음 창제 문자 수 28자(자음 17자, 모음 11자)

6. 훈민정음 창제 중성(모음) 기본자 3자

7. '훈민정음' 해례본 정음해례편의 '결왈(訣曰)' 칠언고시 형식

8. 문종실록에서 신미와 정음청의 일 언급

9. 세종이 신미에게 내린 26자 칭호 중 우국이세(祐國利世)

10.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신미에 대한 지극한 공경

11. 범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언어학의 대가로서 세종과 소통

12. 훈민정음 대중화와 보급을 위한 불경 언해 사업 주관

13. 훈민정음 창제 후 세종의 두 번에 걸친 청주 초수 행궁 행차

14. 신미가 예종에게 올린 한글 상소

15. 세조의 속리산 복천사 방문과 오대산 상원사 중창 지원





기존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루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단연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주체가 되어 한글을 만들었다.

이 책은 교양서적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선왕조실록 및 개인 문집 등 역사 속 실재자료들을 토대로 실질적인 근거를 가지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연구 결과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글 창제에 깊이 관여 되어 있는 신미대사와 관련된 실록 기사를 낱낱이 해부하여 분석한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읽을거리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훈민정음과 영화에서 다룬 훈민정음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훈민정음, 한글 탄생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기에 꼭 읽어보기를 권하기보다 집현전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결과물 대신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한 한글의 창제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신미대사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는 사실과 이 작가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을 보며 책을 읽어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한글 창제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글날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며 독자는 감사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과 탄생 비밀을 밝히려는 저자의 노력에.




저자 : 최시선


충북대와 한국교원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동안 중ㆍ고등학교 교사, 장학사와 교감을 거쳐 지금은 충북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6년 문단에 데뷔하여, 한국문인협회ㆍ충북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청주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중부매일신문에 10년간 수필을 연재하고 있으며, 틈나는 대로 SNS에 글을 올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개정증보판),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등이 있다. 2019년 한 해가 다 갈 무렵, 영화 〈나랏말싸미〉를 본 후 훈민정음이 너무 궁금해 8주간이나 청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훈민정음≫ 해례본 강독 교육을 마쳤다. 현재는 다음 카페 ‘한글 창제와 신미대사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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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퍼시픽 실험 - 중국과 미국은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는가
매트 시한 지음, 박영준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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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 전쟁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 정세를 양분하던 구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자리를 G2로 올라선 중국이 꿰찬 셈이다. 이와 관련 대한민국은 정치적 지리적 이유로 양국의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미중 양국은 정치체제도, 경제 발전 과정도, 문화적 배경과 성향도 서로 다르지만 21세기를 주도해나가는 양국의 관계 변화를 읽으면 세계정세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이는 양 당사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 상대 1국이고 정치나 경제 제도가 미국과 동맹국이며 상호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양국의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이념 등의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언론인이자 중국 분석 전문가인 매트 시한이 6년간 태평양을 오가면서 직접 취재한,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초강대국 간의 민간교류인 '트랜스퍼시픽 실험'의 현장 이야기다. "그게 뭐야?" 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던 독자도 "군사적 실험인가?" 했을 뿐 문외한이다. 독자뿐만 아니라 직접 관여하는 전문가나 관료, 학자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존재조차 모를 정도로 생경한 단어이다.

그러나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이 실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교육, 기술, 영화, 녹색투자, 부동산, 미국의 정치 등 여섯 영역에 걸쳐 펼쳐지는 트랜스퍼시픽 실험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즉 학생, 영화제작자, 시장, 기업가, 공동체 운동가 같은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두 나라의 새로운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변화하는 미래 환경에 대응하고 있을까?




오랫동안 자유시장, 민주정치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세계의 지배권을 행사해온 미국과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국내적 혼란을 딛고 일어나 글로벌 리더십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 전 세계적으로 무역 전쟁의 파고가 점차 높아지는 오늘날, 두 초강대국의 관계 지형 변화와 주도권 다툼은 결코 양국에 한정된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책은 미·중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은 동등한 입장에서 중국과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이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중국 기업과 협력할 수 있을까? 중국인 투자자는 미국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미국의 지적재산만 빼앗아가는가?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로 인해 저렴한 주택이 더 많이 지어지는가, 아니면 부동산 가격만 높아지는가? 중국 학생은 미?중 관계의 우호적 바탕을 구축하는 일을 돕는가, 아니면 양국 간의 틈을 더욱 벌리는 역할을 하는가? 등 조금만 알고 들어가면 '해법이 있겠어?' 할 정도로 복잡하고 오래 계속돼온 문제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독자도 배우기 위해 이 책 『트랜스 퍼시픽 실험』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근 10년간 캘리포니아에서는 민간교류의 거대하고 생생한 실험이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어왔다. 일명 ‘트랜스퍼시픽 실험(Transpacific Experiment)’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민간 차원의 외교적 교류를 일컫는 말로, 골든스테이트(Golden State)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 주와 세계의 중심(中國)이라고 자부하는 국가 사이에 형성되는 학생, 기업가, 투자자, 이민자, 그리고 갖가지 아이디어의 역동적인 생태계를 의미한다. 중국 학생이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중국 투자자를 찾고, 캘리포니아의 도시 시장이 중국으로부터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중국의 성장(省長)이 캘리포니아의 탄소시장을 연구하는 일 등은 모두 이 실험의 생생한 모습이다.

트랜스퍼시픽 실험의 결과는 이미 미국과 중국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으며, 두 나라를 둘러싼 국제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양국 간의 상호작용으로 수많은 기회, 즉 투자, 일자리, 대학 재정 충족, 문화적 결합 등이 새롭게 생겨났지만,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가 간의 외교는 일반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다양하게 변화한다.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낯선 ‘타인’이 이웃, 학우, 심지어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접촉이 늘어날수록 서로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고, 국가 간의 지정학적 문제가 개인적 사안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것은 곧 양국 간의 통합 및 시너지를 확대하고자 하는 욕구에 따른 흡인력과,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이용 혹은 조종당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반발력이다.





세계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과 중국이 처한 입장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여러 산업의 본거지로서 세계를 선도해온 미국의 위상이 점차 퇴색해가는 상황에서 중국은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신흥강국으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나가야 하는 때에 이르렀다. 특히 중국은 레닌주의 정치체제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그리고 언론과 문화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배합된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지정학적 역할과 국제적 위상 변화는 양국의 국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트랜스퍼시픽 실험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준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새로 이주한 부유한 중국인을 불안감이 혼재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중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때로 미국과 미국 기업을 존경의 대상이자 예술, 기업, 교육 등에 대한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미국이 돌이킬 수 없이 몰락하는 늙은 국가이며, 오직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상을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면적인 제한 조치를 내리는 대신, 보다 구체적으로 제재의 표적을 정했다.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는 로봇공학, 항공우주, 첨단제조 등의 영역을 지원하는 중국 학생에게 비자 발급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비자의 유효기간도 5년에서 1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루비오 상원의원은 이 제재 조치가 발표되자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엄청난 진전!’이라는 찬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중국 학생에게 발급되는 비자를 일종의 ‘무기’라고 표현했다. 중국 정부가 ‘세계의 지배권을 훔치기 위해’ 치밀하게 조직한 활동에 이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로 보면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제재 조치가 발동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2018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가들과 사적으로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 학생은 스파이다”라고 말했다.

「제1장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에서





실리콘밸리의 대기업은 이제 중국 땅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스냅챗, 인스타그램 등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은 ‘만리방화벽’에 철저히 가로막혔다. 10억 명의 새로운 고객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기업은 중국공산당의 엄격한 검열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국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페이스북은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정치적인 내용이 담긴 콘텐츠를 외국으로 전송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구글도 완벽한 검열 기능이 포함된 검색 프로그램을 출시해서 또다시 중국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인류의 기술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들은 중국인들의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을 통해 중국의 민주화가 앞당겨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실리콘밸리가 중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고 묻지 않고 ‘중국이 실리콘밸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로 인해 세계의 인터넷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중국을 찾은 이 거물들의 분위기는 몇 년 전에 비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판이했다. 구글이 중국을 떠났을 때만 해도 업계의 분석가들은 중국 정부가 결국 마음을 돌릴 거라고 예상했다. 중국인들은 구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 회사와 어떻게든 타협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기술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 5년이 흐르는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중국은 외국의 인터넷 대기업을 성공적으로 내쫓아버리고 대신 자국의 기업에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안겨주었다. 중국은 스마트폰, 전자 상거래, 최첨단 온라인 서비스 등의 영역에서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으로 성장했다. 2015년 중국의 온라인 인구는 6억 5,000만 명이었지만, 인터넷 보급률은 50퍼센트에 불과했다. 만일 보급률이 미국과 같은 75퍼센트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3억 2,500만 명의 온라인 사용자가 새로 생긴다는 의미였다.

이 숫자만 해도 이미 미국의 전체 인구수를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그 사용자들이 온라인에서 쇼핑을 하고, 책을 읽고, 비디오를 시청한다고 가정하면, 이는 기업들이 무시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시장이었다. 한때 중국에 등을 돌렸던 CEO들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3장 새로운 기술의 지평을 향해」 중에서




중국의 경쟁적 생태계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뒤흔들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과거 반세기 동안 기술과 문화 영역에서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면서 개인적 자유와 기술혁신 및 문화적 생산성은 절대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굳게 믿었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 나라는 혁신이 불가능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국민은 성공적인 문화 산업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기술 발전, 그리고 영화산업의 도약에 따라 그러한 신념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중국은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기보다 산업의 기반을 차곡차곡 구축하는 데 힘을 모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고, 자본을 모으고, 영화 세트를 만들고, 스크린을 확보하고, 업계 종사자의 소득을 보장하면 혁신과 문화 발전은 자연히 따라올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 또한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양측 간의 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초창기에는 할리우드와 중국이 상대방의 무한한 가능성과 신비로움에 이끌려 서로를 향해 활짝 팔을 벌렸다. 그러다 두 나라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로 인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면서 양측은 ‘공동제작’ 모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할리우드의 제작사는 중국의 부자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미국의 블록버스터에 중국적인 콘텐츠를 포함시켜주는 대신 그 영화를 중국 시장에 진출시켜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중국의 부유한 후원자와 할리우드의 제작자는 파트너십의 통제권을 두고 무대 뒤에서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했다. 이런 인위적 중매결혼 같은 관계에서 유기적인 영화제작 과정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영화이기에 앞서 국제적 마케팅 캠페인에 가까웠다.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했지만, 어떤 경우든 두 나라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4장 미키 마우스는 미국 쥐일까?」 중에서




미국의 문화적 지배력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요새는 할리우드다. 지난 수십 년간 할리우드 영화는 중국의 영화관을 점령하고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 자체의 영화산업 발전, 정부의 통제, 그리고 중국산 블록버스터 등으로 인해 중국 내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력은 점점 약화되어간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처럼,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들 역시 중국 정부의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영화의 스토리를 재구성함으로써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중국의 영화산업이 자체적으로 발달하면서 이제 미국의 영화사는 중국 제작자가 할리우드의 기술과 지역정서를 결합해서 만들어낸 영화들, 말하자면 ?람보?나 ?캡틴 아메리카?의 중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블록버스터와 경쟁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산업 발전 덕분에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캘리포니아의 주택시장은 이미 가격 폭등을 겪었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부유한 중국인들이 집을 사들이며 주택 가격은 더욱 크게 뛰었다. 자국 내부의 정치적?경제적 혼란기를 경험한 중국의 부자들에게 해외 부동산은 재무적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획기적인 대안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주택이라는 ‘새로운 스위스 은행 계좌’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부유한 중국인들은 부동산 가격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 자본은 대략 세 가지 경로로 캘리포니아의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었다. 첫째, 중국인이 직접 투자한 상업적 건설 프로젝트. 둘째, 개별 중국인 가족의 주택 구입. 셋째, EB-5 자금. 그중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EB-5 프로그램은 외국인이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미국 기업에 5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 경우, 투자자 본인과 가족에게 미국 영주권을 제공하는 일종의 투자이민제도였다. 관련된 제3자에게 모두 혜택을 안겨준다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따르면 지역의 기업은 싼 이자로 자금을 지원받고, 미국 노동자는 일자리를 얻고, 이민을 원하는 외국인은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EB-5 비자를 받은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 투자자였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에 배정된 영주권의 80퍼센트를 독식했고, 미국의 부동산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물론 EB-5 비자를 통해 미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수동적인 투자자에 불과했지만(그들은 프로젝트에 관여할 권한이 없었으며, 개발 사업에 참여한 대가로 아파트를 받지도 못했다), 중국인이 싼 이자로 제공한 자금은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대형 개발 사업을 출범시키는 역할을 했다.

「제6장 핵폐기물에서 부활한 불사조」 중에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신들이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를 기꺼이 포용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의 포용심은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스스로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는 모든 이민자를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하고, 지치고, 위축된’ 사람들만 받아들일 것인가?





새로운 중국인 이민자가 미국에 자리잡으면서, 중국인이 미국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정치적 유대 관계도 흔들리는 추세다. 과거 미국에 도착한 중국인 이민자는 대부분 노동자 계층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흑인이나 라틴 계열의 운동가와 범민족 연합을 형성해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요즘 중국을 떠나 새롭게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자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차이나타운의 최저임금 일자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부유한 교외 지역에 거주하면서 높은 급여의 기술직이나 투자 업무에 종사한다. 정부의 소수집단 우대 정책에도 오히려 강력한 반기를 드는 이 새로운 세대의 중국계 운동가들은 최근에 도널드 트럼프라는 뜻밖의 인물을 중심으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시의회로 진출해 보수 성향의 중국계 미국인을 위한 정치적 전위부대 역할을 수행한다. 미·중 관계는 지정학적 차원에서 미국인의 일상적 삶의 영역으로 파고 들어왔다. 이제 양국 관계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백악관이 아니라 일반인의 가정집이며,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아니라 학부모 모임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나라가 어떻게 만나고, 협력하고, 경쟁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워싱DC나 베이징에서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트랜스 퍼시픽 실험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이유다.





저자 : 매트 시한(Matt Sheehan)


언론인이자 중국 분석 전문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출신으로, 중국 본토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서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2018년에는 ‘젊은 중국 연구자’ 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고 그가 직접 취재해 쓴 글이 〈바이스 뉴스〉, 〈월드포스트〉, 〈포린 폴리시〉, 〈더 애틀랜틱〉 등에 게재되었다. 지금은 폴슨 연구소 산하의 싱크탱크 마크로폴로 연구소의 비상근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 중국과 미국의 기술적 관계, 캘리포니아와 중국의 유대 관계 등에 관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고 있다. 이 책에 관련된 사진, 동영상, 대화식 그래픽 등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웹사이트 ‘transpacificexperiment.com’을 방문해보기 바란다.


역자 : 박영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외국계 기업과 국내 기업을 두루 거치며 일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중국, 세계로 가다』, 『애널리틱스』, 『자전거의 즐거움』, 『21세기 미중 관계』, 『최고의 리더는 사람에 집중한다』, 『훌륭한 관리자의 평범한 습관들』 , 『신뢰의 힘』 ,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 , 『심플, 강력한 승리의 전략』 , 『우버 인사이드』 , 『노동의 미래와 기본소득』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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