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남자 편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에 나온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전부 다 안다. 맞다. 조선시대 왕이 정사를 돌본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에서 배운 대로 편년체 사서(史書)로 수량은 2,124책(정족산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에 이른다.

조선시대 정사로 정치 및 정가 동향을 기록했다. 주로 왕을 중심으로. 그래서 야사(野史)와 구분된다. 또 활자본(필사본 일부 포함)이다. 1413년(태종 13)에 《태조실록》이 처음 편찬되고, 25대 《철종실록》은 1865년(고종 2)에 완성되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실록》의 편찬은 대개 전왕이 죽은 후 다음 왕의 즉위 초기에 이루어지는데, 춘추관 내에 임시로 설치된 실록청(또는 撰修廳·일기청)에서 담당하였다. 실록청의 총재관은 재상이 맡았으며, 대제학 등 문필이 뛰어난 인물이 도청(都廳) 및 각방 당상(各房堂上)으로 임명되었다.

시정기(時政記)와 사관(史官)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사초(史草), 각사 등록(謄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실록편찬의 기본자료였고, 문집·일기·야사류 등도 이용되었으며, 후기에는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과 《일성록》도 사용되었다.

조선 역사를 다룰 때 이 실록을 기본으로 한다. 사관이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비록 왕이 죽은 후에 후왕 때(대부분 아들)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승자의 기록'으로 폄훼되기도 하지만 왕은 절대 이 실록을 열람할 수 없도록 규정해 사관의 독립적 기록을 보장했다.

조선왕조 527년의 시기만큼 방대한 분량과 정사로 인정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 책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은 저자가 밝혔듯 정사를 기본으로 야사를 다룬 소설이다. “역사서에는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었다. 그래도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약자와 패자를 악하고 비겁하게 묘사하기 마련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역사 소설'은 정사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일이다. 저자가 말하는 약자와 패자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명도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권력 다툼이나 시대적 희생양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부각시키고자 이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나쁜 남자 편』에는 7명의 ‘나쁜 남자’가 등장한다. 즉 양녕대군, 문종, 현덕왕후, 연산군, 단경왕후, 장옥정, 봉이의 입장에서 회상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정사(正史)에서와는 다른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순서대로 읽다 보면 조선시대의 ‘나쁜 남자’들을 통해서 본 색다른 역사 흐름을 파악하는 귀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승리했다 하옵니다.”

“참말이냐”

“예. 회안군 방간과 박포를 모두 생포하셨다 하옵니다.”

어머니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어머니만 바라보던 우리 남매에게 달려왔다.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은 울면서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무슨 일이 벌어진 줄 모르는 아이들이었지만 그저 어머니의 그 말에 안정이 되었는지 그제야 지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2년 전, 제1차 왕자의 난이 벌어졌던 그때처럼 아버지는 피범벅이 된 채 돌아왔다. 차마 묻지 못했다. 숙부인 회안군 방간은 어떻게 되었는지. 회안군 방간의 큰아들인 의령군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언제나 나를 무시하지 않고 귀여워해주었다. 의령군도 난에 참여한 걸까? 설마 다른 사촌 형제들도 죽이시는 걸까? 나는 두려워 묻지 못했다. 그저 궁금했다. 왕위란 것이 무엇이기에 친혈육과도 전쟁을 벌여야 하는지.

“쉿!”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싶었다. 아버지의 한숨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충녕대군(세종)이 첫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른다면 만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릴 텐데.”

“첫째와 셋째가 바뀌어 태어났으면 하는 아쉬움을 말할 데가 아무 데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오늘 그렇게 혼이 났으니 이제 세자도 정신을 차리고 학문에 정진할 것입니다. 그러니 믿고 봐주소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에 침전 앞에 있던 궁녀가 바들바들 떨었다. 난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왕위를 버린 남자 - 양녕대군」중에서





폐출을 면했다고는 하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었습니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가 왕비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을 제어하지 못한 전하께 서운했습니다. 아니, 미웠습니다.

아버지는 권세를 탐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제일 잘 알고 계신 전하께서 어찌 모른 척 제 아버지가 사사되는 것을 두고 본단 말입니까?

그때부터였습니다. 체한 듯 가슴 한쪽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슴을 쳐도 체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태종대왕께서도, 전하께서도 밥을 들라 명하셨습니다. 임영대군 구를 임신한 몸이었습니다. 배 속의 아이를 위해 억지로 밥 한 술을 삼키면 삼키자마자 신물과 함께 도로 넘어왔습니다. 억지로 먹고 토하길 반복하다 보니 목구멍과 입이 위산으로 헐어버렸습니다. 차라리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드러누웠습니다.

생떼 같은 자식을 품에서 떼어놓는 게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왕비여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선대의 후궁들과 전하의 후궁들까지 복잡한 내명부를 다스리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습니다. 내 새끼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어미든 함부로 할 수 없는 법이지요. 아무리 미워도 제 자식을 길러주는 후궁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식들을 볼모로 잡힌 채 저는 왕비로 살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을 볼 때마다 어미가 아닌 왕비여야만 했던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자라고 보잘것없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을요.

「기도 -소헌왕후」중에서




아바마마는 대신들을 모두 선정전에 불러 모았다.

“윤씨가 흉험하고 악역한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당초에 마땅히 죄를 주어야 하겠지만, 우선 참으면서 개과천선하기를 기다렸다. 이제 원자가 점차 장성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이처럼 안정되지 아니하니, 오늘날에서는 비록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후일의 근심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결국 아바마마는 좌승지 이세좌에게 명해 어머니를 그 집에서 사사하게 하고, 우승지 성준에게 명해 이 뜻을 삼대비전에 아뢰게 했다. 그리고 주서 권주로 하여금 전의감에 가서 비상을 가지고 가게 했다.

어머니가 사사되자마자 나의 외숙부들은 곤장 100대를 맞은 뒤 윤구는 장흥, 윤우는 거제, 윤후는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신씨는 어머니의 염장이 끝난 후 장흥에 유배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는 어머니의 사사 덕분에 무사히 세자위에 오를 수 있었다. 나의 생모가 사사되었기에 신하들은 내가 세자가 되는 것에 대해 흠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신하들은 차라리 세자의 생모가 죽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나는 어머니를 희생해서 내가 즉위했다는 죄책감에 잠이 들 수 없었다.


어제 사묘에 나아가 자친(어머니)을 뵈니

잔 드리고 나서 눈물이 자리를 가득 적셨도다

간절한 정회는 한이 없는데

영령도 응당 이 정성을 돌보시리라


나는 어머니를 위해 시를 자주 지었다. 그래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이 내 가슴에 박혀 날 아프게 했다. 그래서 춤을 췄다. 내가 처용무를 출 때면 손짓과 발짓에 넘쳐나는 슬픔과 좌절감에 후궁들과 기생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제헌왕후께서는 용모가 선녀와 같으셨습니다. 굳이 닮은 사람을 꼽으라면 공민왕의 왕비 노국대장공주가 가장 비슷할 듯합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알고 있는 내관의 말에 나는 노국대장공주가 그려진 초상화를 모조리 사들이라 명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구나.”

내가 그렇게 한탄하면 내관은 거울을 가져왔다.

“거울을 보시옵소서. 전하의 용안이 참으로 제헌왕후마마를 닮으셨나이다.”

하지만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아무리 많이 사들여도, 어머니를 죽인 사람들을 샅샅이 찾아내 모두 벌을 주어도 마음속은 언제나 채워지지 않고 텅 빈 채였다. 여전히 어머니의 부재는 내 가슴을 아프게 했고, 받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내 가슴을 쓰리게 했다.

「붉은 적삼 - 연산군」중에서



위 사진들은 일곱 명의 '나쁜 남자'를 묘사한 책 사진이다. 저자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재조명했는지 알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피해자 시각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도 인간이고, 가해자도 살아가는 인간이다. 정치판에서는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이 필요한 모양이다. 가해자라 해도 이후 정치를 잘해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추앙받고 존경받는 왕이 되니까. 일곱 남자에 등장하는 대부분 왕이 된 남자들이고 피해자는 왕비를 비롯 양가집 규수까지 다양하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사진은 서평의 내용과 상관 없이 독자 임의대로 넣어 독자들의 눈을 피로하지 않게 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이성계의 아들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본인이 왕이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계모를 죽이고 왕위에 오를 때가지 일등 공신들인 처남들까지 모두 죽여 처갓집을 풍비박산 만든 권력욕의 화신이다. 물론 정사에는 권력욕의 화신이란 말을 쓸 수 없다. 왕위에 오를 때까지의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사관의 의무기 때문이다. 사관은 왕의 정책이나 행위 등에 대해 판단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사실만은 기록하는 기록비서관이라 생각하면 맞을 듯하다. 때문에 잘잘못을 쓰는 것은 그들의 의무가 아니다. 사실만은 왜곡, 첨삭 없이 모두 그대로 기록만 할 뿐이다. 이에 대한 판단과 해석은 후손들의 몫이다. 저자는 태종 대의 일을 양녕대군의 시선으로 기술한다.. 세자였던 양녕대군은 여색과 향락에 빠져 폐세자된 인물인데 그의 시선으로 당시 자신의 아버지이며 왕이던 태종 때의 일을 바라본다면 정사와 또다른 해석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로 재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은 양녕대군이 폐세자됨으로써 조선의 왕이 된다. 왕위에 오른 충녕대군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한 왕이지만 왕후 밑으로 자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후궁들을 둔 왕이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인 태종이 세종의 부인인 소현왕후의 집안 역시 풍비박산 낼때도 지켜만 보고 있었기에 소현왕후의 시선으로 보면 역사적인 사실을 새롭게 그려 낼 수 있다.

문종은 세종의 아들로 적장자 중 조선 최초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문종 역시 첫번째 아내인 휘빈 김씨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압승술을 하다 들켜 폐위되고 두번째 아내 순빈 봉씨는 동성애에 빠져 발각됨으로써 폐위된다. 첫째 부인은 어찌보면 남편의 사랑을 얻고자 한 일이니 세자의 반대가 있었다면 폐위되지 않았겠지만 폐위된 것은 세자 문종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부인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여자관계는 복잡했던 왕 문종의 시선으로 이야기할 때 가능한 일이다.

성종의 아들인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 사이의 아들로 아머니의 죽음을 알고 난 뒤 무오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또 왕으로써 정사를 돌보는 데 힘을 쏟는 것보다 채홍사를 보내 조선 팔도 각 지역에서 1000명이 넘는 흥청을 소집하는 등 폭정과 악정이 심해진다.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왕이 되어 죽는 인물인데 이를 연산군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나타날까.

중종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왕위계승자도 아니었고, 연산군의 폭정 속에서 몸을 낮추고 살았던 인물이었으나 연산군이 폐위 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왕이 된다. 중종의 부인 단경왕후는 남편이 왕이 됨으로써 왕비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중종반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폐위된다. 권력다툼의 악순환 속에서 그 사실들을 단경왕후의 시선으로 저자는 묘사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장옥정(장희빈), 거기에 가상의 궁녀 김원미가 등장하여 그녀의 시선으로 장희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소설로 보는 역사는 그래서 결과를 알아도 재밌다. 또 역사 재인식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인현왕후는 현명하고 후덕한 본처이고 장희빈은 악녀로 묘사된다.

이 두 사람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준다. 기록들을 살펴 보면 장희빈이 그렇게 막무가내의 악녀는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인현왕후가 폐위될 때 궁녀들이 좋아서 날뛴다는 기록은 선하고 후덕한 왕후가 폐위되는데 저렇게 좋아했을까란 의문이 든다. 그리고 궁녀들에게 장희빈은 인심이 후해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장희빈이 숨진 후 사후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 대우를 해준다.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왕후나 후궁일지라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사건이 된다. 또하나 재미 있는 사실은 유일하게 외모가 뛰어났다고 기록된 인물이 장희빈이라 한다. 연산군 때 죽은 인물보다 중종 때 죽은 사람이 훨씬 더 수가 많다고 한다.

철종은 두 번이나 역모에 휘말려 유배 보내진 강화도에서 농부로 살면서 첫사랑 봉이와 결혼까지 꿈꾸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헌종이 후사가 없어 갑작스럽게 왕이 되고 봉이를 떠나게 된다. 드라마로도 방영된 바 있다. 역시 결말은 다 알고 있지만 과정이 극적이고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 드라마로 엮은 것이다. 당시 봉이의 시선으로 철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면 무척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소설은 우리가 학교나 책에서 배운 정사에 기초한 사실 외에 피해자나 희생양의 시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역사 소설의 필요성이고 묘미이기도 하다. 사실 '나쁜 남자편'이란 제목에서 여성 피해자 중심으로 씌였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지만 마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배운 것 못지 않게 많은 생각거리까지 안겨준 이 소설에 감사한다. 어떤 사건이든 피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보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역사서의 내용은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약자와 패자를 악하고 비겁하게 묘사하기 마련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약하다는 이유로 악한 인간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나의 과거가 역사를 달리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해석한 한 장면 한 장면이 모여 한 권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어쩌면 역사왜곡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나는 철저히 패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지만, 나와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약하기에 악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한풀이라고, 독자들이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 : 최문정


이번에 펴낸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의 최문정 작가는 오랫동안 《조선왕조실록》을 관심 있게 읽어왔다. 그러던 중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작가는 나쁜 남자에 이어 좋은 남자, 나쁜 여자, 좋은 여자 편도 쓸 계획이다. 최문정 작가는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대에 걸쳐 세 여자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애절한 모성애를 그린 《바보엄마 1, 2》(SBS-TV 주말드라마로 방영)와 발레리나인 딸과 군인 아버지의 오래된 갈등과 뜨거운 화해를 그린 《아빠의 별》,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네 자매의 뜨거운 우애를 다룬 《허스토리》(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가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백제의 딸이 일본의 태양신이 되었다는 도발적 팩션소설 《태양의 여신 1, 2》(원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있다. 에세이로는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싸웠던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등 10여 권이 있다.

최문정(본명 유경愈景) 작가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조기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 넘은 여자는 무슨 재미로 살까?
김영미 지음 / 치읓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혼인을 해도 자신의 성(姓)은 여전히 지닌다. 서양과 다른 점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성을 유지해온 게 아니라 유교 관습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도 옛날부터 여성을 비하하고 사회적 위치를 인정해주지 않은 게 관습처럼 이어져 내려왔다. 다만 성은 유지하지만 이름은 잊어버렸다. 누구 딸, 누구 아내, 누구 엄마 등으로 호칭이 바뀐다. 이러한 관습은 현대에 들어서서도 여전하다. 적어도 20세기까지는 그대로 유지돼 왔다. 사회도 남성 중심 그대로. 그러나 20세기말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도 남성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예전과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해방운동이 거세지면서 당당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21세기 들어서면서 많이 달라지긴 했다. 남성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은 '성(性)인식'이다. 이에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투'를 이끌어냈다. 남성 중심의 사회의 인식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 당연한 권리이고 주장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도 법원으로부터 나왔다. 성희롱 등 성폭력을 법에서 보호해주는 정도로는 피해 여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줌마에 대한 인식은 여전하다. 결혼한 여자에게는 호칭으로도, 지칭으로도 통칭된다. 간혹 '아줌마!'로 불렀다가 혼나는 경우도 있지만. 점잖게 부르려면 '부인!'이어야 한다는 말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옛날부터 부인이란 호칭은 고관대작의 아내에게만 붙여졌고, 일반 서민들의 부인은 그냥 아줌마로 통칭되는 게 여전하다. 그렇게 지칭하는 남성도 비하하기 위해 아줌마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러나 정작 여성은 이 호칭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부 여성들은 더 정감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부인으로 호칭되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여자들의 대명사가 되면서부터였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첫 출발점이 '복부인' 아니었을까. 하여튼 "아줌마가 되고 나니 '아줌마'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이라면 아주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말은 조금은 자조적인 냄새가 난다. 대신 아줌마들은 삶을 위해서라면, 가족을 위해서라면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게 대수냐는 생각인 것 같다. 떳떳하게 권리를 갖고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어떻게 볼지는 그 사회에 달려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용감하다. 결혼 전에는 권리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소극적 자세가 결혼하면 대담하게 바뀐다. 부당한 대우는 맞서 싸운다. 삶을 위해서다. 가족을 위해서다. 그렇게 인식되면서 아줌마는 당연한 것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돼 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현재는 자신과 가족, 사회와 나라을 위해 용감해지는 여성들을 누가 비하할 수 있겠는가. 이 책 『마흔 넘은 여자는 무슨 재미로 살까?』는 여자 그 이전에 딸, 아내,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네 인생을 말한다. 아무도 포기하라고 한 적 없는데 책임감 하나로 꾸미는 인생과 꿈 있는 인생을 모두 포기한 우리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과거의 아픔, 현재의 고민을 딛고 오늘 당장 잘 살고 잘 노는 여자가 되어보자. 저자를 따라 시선과 습관을 조금 바꾸는 것뿐인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 여자,진짜 잘 놀아!”

한 번뿐인 인생, 한 번이라도 가슴 떨리게 살아본 적 있는가?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본 적 있는가?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무의식 속에서 책이라는 건 성공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배울 점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했다. 누구나 자기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평범하다 말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사랑받고 있다. 내 일상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누군가의 삶은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우리 안에 샘솟게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 같은 뜻에 따라 집필됐다. 그래서인지 여자라면, 아줌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가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어쩌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사용했던 ‘여자라서’, ‘여자니까’라는 방패를 시원하게 깨부순다. 그리고 사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나눠준다. 사회가, 타인이 슬픔과 아픔을 알아주길 기다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즐겁게 ‘잘 사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말한다.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생을 다해 곧 죽는다 고 가정하자. 그럼 당신은 무엇을 후회하겠는가?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것?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 재벌 2세와 결혼하지 못한 것? 아니다. 답은 모두가 안다. P. 총거스는 이런 말을 했다.

“임종하는 순간에 ‘사업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이 임박해서 삶을 돌아보면, 지나간 그 모두가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왜 더 즐겁게, 행복하게 놀지 못했던가를 후회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꿈이란 것도 사실 별것 아니다. 그냥 뭐 하고 놀지 정하는 것이다. 아직도 ‘열심히만’ 살고 있는 당신! 이제 남은 인생 뭐 하고 놀지를 고민하라!(p. 248)




겉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주 커다 란 변화를 겪은 곳이 있었다. 바로 나의 마음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하게 되었다.

청소가 밀려 있어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약간 어수선하고 부족한 대로 우리 집이 편안하고 좋았다. 찌개 하나에 계란말이, 김이 전부인 밥상이지만 가족과 맛있게 먹기 위해 노력했다. 일어나긴 힘들지만, 자기들끼리 내복이며 바지, 티셔츠까지 척척 챙겨 입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탄하며 행복한 아침을 보냈다. 새벽에 들어와 밥을 차려 달라는 남편이, 꼭 사랑받기 원하는 아이 같아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밥솥에 새로 밥을 짓고 국을 데웠다. 그러는 내가 참 마음에 들었다.(p. 320)


때때로 시련이 다시 나를 찾아올까 두려울 때도 있다. 아무리 지금 편안하고 행복하대도 이 행복이 평생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리는 없다. 그러나 나는 꿈이 있고, 하루하루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내 인생의 방패가 되어 주리란 것을 안다.

위기는 기회가 아니다. 위기는 그냥 위기일 뿐. 위기를 딛고 일어선다면 또 모를까? 위기는 꿈으로 향해가는 길에 있던 돌이다. 넘어지면 일어서면 된다. 상처는 결국 아물고 그 자리에는 전보다 튼튼한 새살이 돋아난다. 그럼 우리는 더 거친 광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당신이 꿈꾸는 삶을 사는 것이다." 당신은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이다.(p. 321)




작가 소개도 특이하다. 한 남자의 아내, 세 딸의 엄마.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꿈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새 나도 아줌마가 되어버려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 좀 더 재밌게 후회없이 살기위해.


저자 : 김영미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딸의 엄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를 모토로 하루하루 ‘뭐 하고 놀지?’를 외치는, 진.짜. 잘 노는 ‘마흔 넘은 여자’다. 드라마 보기가 취미, 수다 떨기가 특기였던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놀아보기 위해 원했던 꿈을 찾아 작가가 되었다.

책을 쓰면서 알게 된 ‘40대 여자가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고, 집에만 숨어서 인생을 지루하게 살고 있는 그녀들을 탈출시키고자 이 책을 썼다. 항상 밝은 웃음을 지니는 그녀지만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고난의 시간들이 웃음 뒤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그 경험들마저도 그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재산이 되었기에, 이제는 누구보다 인생을 적극적으로 즐길 줄 아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첫 책이었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를 통해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진짜 좋은 사람,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글을 쓴다’고 말했던 그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자신 안에 숨겨있던 소중한 기억과 열정을 발견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길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 가슴 떨리게 살아 보자. 내일 죽어도 후회 없도록!”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사람들 - 주변에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 않은 어쩌다 보니, 시리즈 2
안지영 외 지음 / 북산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 가을은 정말 소리 없이 오는 것 같다. 엊그제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 속에 여름이 지나간 줄도 모를 정도였다.

기온도 폭염은 며칠 안 된 것 같다. 작년 여름 유난히 더워 에어컨을 너무 틀었더니 전기요금이 다른 달에 비해 무려 30만원이 더 나와 깜짝 놀랐었는데 올 여름은 독자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에어컨을 안 켰다. 폭염의 날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왠 계절 타령이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독자가 계절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춰서고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이웃이었다는 것을 발견해서다.

『보통사람들』. 이 책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다섯 명의 저자들이 육.책.만(육 개월 안에 책을 내고 만다)이라는 밴드에 가입해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바라보며 쓴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주제로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 같으면 귀담아 듣지 않을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며 삶의 열정으로 이야기를 끌어내, 책으로 만들고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정감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이런 이야기도 책으로 낼 수 있구나' 하는 의욕도 북돋아주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이웃이구나' 하는 자성의 시간도 갖게 한다. 그들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그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한 '보통사람들'이다. 지극히 평범해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언니 또는 동생인 이들은 어느 날 우연히 방송국 기자단에 지원하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밴드에 가입한다.









초대장을 날린 방장의 의무감이었을까? 처음에는 방장의 뭔지 모를 모노드라마와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은근슬쩍 무반응을 결심하고 있었던 4명의 멤버, 하지만 올라오는 글들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느낌, 나와 같은 질문들이 슬금슬금 올라와 머릿속 또는 마음속을 거슬리게 했다.

어느 날 제2의 멤버가 글을 올렸다. 그러자 조용하기만 하던 밴드에 속속들이 다른 멤버들의 글이 올라오며 육.책.만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글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육아의 어려움, 퇴직과 새로운 도전,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발견들, 하나 같이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기한 건 짧게라도 한두 줄 쓰고 나면, 우울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위로와 에너지를 얻게 되고, 소소한 일상의 기쁨도 배가 되었다.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한편이라도 만난 듯 서로에게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이 책은 기대 없이 시작했던 ‘소소한 시작의 결과물’이자, 무모해 보이지만 있는 힘껏 응원해 주고 싶은 ‘보통사람들의 열정’일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책으로 쓰나요?’ 하고 글을 쓰는 시작부터 자조 석인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이들은 보통의 삶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삶의 균형도 새로운 꿈도 찾게 되었다.




누구든 스스로의 경험만으로 세상을 살아나가기가 쉽지 않다. 삶이 가져오는 수많은 질문들 그리고 넘기 힘든 계단과 마주설 때가 많다. 자신의 경험이 그 모든 해답을 갖지 않는다. 그럴 때면 자신의 방법으로 지식을 동원하고, 책을 읽고,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하면서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 큰 용기를 얻고 삶의 긴장을 내려놓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발견했다. 독자 개인적으로도 저자들을 통해 간접 경험이지만 특별한 경험이다. 책이 삶의 지혜를 직접 말해준 듯한 느낌이다.

우리 주위에는 평범한 일을 앞에 두고 쓸데없이 성실하게, 무모하지만 열정적으로 차곡차곡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혜를 줄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바로 우리 이웃인 보통사람들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이러한 보통사람들의 삶속에서 녹아든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다.

어려울 때 위인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도 보지만, 길고 지루한 삶의 미로 속을 걸어가면서도 웃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삶의 지혜를 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 이웃이고 평범한 갑남을녀이다.

육.책.만의 다섯 멤버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분명 위로가 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힘을 낼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더 특별하다. 전쟁터에서 전우가 왜 소중한지, 전우의 목숨을 내 목숨보다 더 아끼고 보호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군 생활의 경험이 삶터에서 그대로 적용될 줄이야.





겪은 일이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러운 언어로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또 머릿속에 생각이 머물러 있고 미사여구를 끌어다가 입혀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글은 술술 읽힌다. 크게 가공하지 않아서 솔직함과 진솔함,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울림도 주고 감동도 준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글은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느껴질 경우 '멋지다' '잘 쓰네' 하는 감탄을 끌어내기에는 좋다. 그러나 읽고 공감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글쓴 사람의 의도를 따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게 쓰거나 일관되지 않을 경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앞에 말한 내용 중에 보통사람이 삶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할 때는 대부분 전자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후자는 작가나 학자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목적을 감추고 쓴 글이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 책 『보통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사소한 일이나 생각을 아무 수식 없이 독자들 앞에 그대로 내놨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나에게 아빠는 숨구멍 같았다. 고민이 있으면 아빠와 의논하며 숨을 고르고, 잘한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큰 숨으로 아빠에게 알리고, 힘겨운 일이 있으면 아빠에게 긴 숨으로 위로를 받았던 나의 숨구멍. 언젠가부터 그 숨구멍이 하나씩 둘씩 점점 더 막혀 간다. 어느 날 내가 숨을 못 쉬게 될까 봐 겁도 나면서. 오늘은 숨 한번 크게 쉬고 기도한다.“하느님, 지금처럼만이면 됩니다. 지금도 감사합니다.”(p. 54)


다행히 나의 어려운 질문들이 어떻게든 답을 얻는다. 재미없는 나에게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내가 인생을 탐험하는 이 여정이 즐겁고 재미난 이유다. 인생의 귀한 질문들을 구하고 답변을 채록하는 모든 과정, 그 자체가 인생이고 소중한 나의 자산이다. 나는 질문으로 산다.(p. 67)




이웃의 근황을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이 다수일 텐데, 첫 번째 안지영 저자는 이웃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16년 동안 살던 목동의 두 동짜리 아파트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한 순간, 그들이 공유한 기쁨과 서로 나누는 정은 돈독하다. 집을 사서 이사 가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일생의 가장 큰 일이고, 가장 큰 기쁨일 터다.

그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웃과의 이야기에 가난하고 어렸을 때 추억도 떠오른다. 서로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웃간의 정은 끈끈하게 나누었던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려주는 이 글은 특별한 사람이 쓴, 특별한 주제의 책이 아니다.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더 공감이 가나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웃사촌'이란 말을 만들어냈나 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이웃과 나누는 끈끈한 정이 무엇인지도 더불어 생각해보게 하고, '우리 옆집에 누가 살더라'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보게 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주변 이웃과 관계를 쌓아가는 모습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엄혜령 저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록하기 위해 맞벌이 증명을 위한 출판사를 차린다.

질문하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는 저자는 교회의 아는 동생이 다수의 교회 지인들과 다른 의견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녀는 가족이 거주하는 집에 아버지를 모시게 된다. 아버지가 오시게 되자 불편한 생활이 예상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족들은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 가며 멋진 생활 방식을 찾아간다.

방송국 기자단을 하며 출판사도 창업하고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글을 쓰며 상대방과 소통하는 일이 그녀에게 하는 일이 순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소소한 어린시절 이야기, 결혼식 헤프닝, 워킹맘으로서의 이야기 속에 자아찾기, 책쓰기 도전 등 평범한 일상이지만 독자가 아는 주변의 어느 누구보다도 깊은 생각을 갖고, 하는 일에 열정적이인 다섯 분이다. 각 글의 주제는 그들의 삶의 모습만큼 다르지만 결국 인간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좀 더 애정을 갖고 친분을 쌓은 다섯 명의 시너지와 열정으로 한 권의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 참 멋지다. 누가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한 명을 알게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얻는 에너지, 긍정적인 것이 많은데 이 다섯 분은 서로 잘 만난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멋진 글로서 탄생하고 그 글들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고 독자에게 용기도 주었다. 소소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글로 정리되며 의미 있게 재창조되는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다.


사람과 사람은 오랜 인연이든,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든 영향을 주고받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성격에도 영향을 미치며 한순간 가치관도 바뀌게 할 수 있는 관계도 된다. (...) 결혼을 해서는 배우자에 따라 성격이 바뀌기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통해 나를 보게 된다. 나에게 사람이란 결국 나인 것 같다. 그들을 통해 내가 형성되고 다듬어지니깐.(p. 208)





신용민 저자는 독자처럼 중년을 맞이한 남성이고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음악이 목표다는 점과 사는 곳만 독자와 다를 뿐 많은 생각이나 행동이 독자와 너무 비슷하다. 이 때문에 그의 인상과 일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질 정도여서 공감 100%다. 피아노 관련 유튜브도 진행하고, 다른 악기를 배우고 곡도 쓰는 생활 속에 방송국 기자단까지 하는 모습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하는 보통사람 그대로다. 그가 강조하는 여유 있는 중년의 삶을 누린다는 말은 엄살인 것 같다. 나이는 모르지만 일하는 모습이 중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특별한 중년은 다르지만.


내 모든 사정과 속마음을 까발리고 살 순 없지만 소통이 없는 삶은 고인 물 같아서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물은 움직일 때 촉촉한 비도 되고, 우렁찬 파도도 되고, 태풍을 동반한 폭우도 되고, 시원한 계곡물도 되지 않는가? 내 속의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이 ‘소통’은 정말 중요하다. 소통에는 격려와 화합, 피드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아무리 굳은 결심으로 일을 시작해도 격려가 아닌 비난과 책망을 계속 받으면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잘 알듯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p. 105)



저자 : 안지영

정과 오지랖의 중간 어디메쯤 헤메고 있는, 사업가를 꿈꾸는 전업주부 아줌마. 브런치@anjji624


저자 : 엄혜령

서울에서 30분 거리의, 산, 바다, 갯벌, 포구가 있는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며 산다.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쓴 책, 《생금집에서,우리는》, 《월곶동 책한송이》가 있다. https://cafe.naver.com/gajie2


저자 : 신용민

반백살에 음악하며 곡 하나 팔아보려 용쓰는 백수. 브런치@bamsaee, 오디오클립_아저씨의 피아노 배우기, 유튜브_밤새의 음악놀이, 멜론·지니·벅스_밤새(산허리의 고목아)


저자 : 최미영

사람 좋아하고 발로 뛰는 여자, 유튜버, 브런치 작가, 《비우니 좋다》를 썼다. 브런치@whitelapin, 유튜브_나비토끼씨


저자 : 박세미

다수의 사람을 만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뒤늦게 자아 찾기 삼매경에 빠진 30대 보통여자사람. 브런치@wonder-land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학’ 단어만 들어도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그래왔다. 살아가면서도 그 어려운 물리가 적용할 곳은 별로 없어 보였다. 몰라서 적용할 생각을 못했는지는 사회 생활 한참 후에 살면서 다가온 물건의 특성을 이용해야 삶이 편리하다는 것을 인식하고서부터다. 예를 들면 물건에 충격을 가할 때 물건이 받는 충격은 f=ma란 가장 간단한 공식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으로 저절로 터득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공식을 이때 적용할 생각을 했다면 바로 어느 정도 충격을 줘야 물건이 부숴지는가를 쉽게 알 수 있는 식이다. 물리를 공부한 이유는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고 대학입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이 우리 삶에 적용될지는 생각지 못했다. 물리학은 딱딱하고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이해, 과학의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우연히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단어는 중국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치지)을 이른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으로 된 내용 중, 처음 두 조목을 가리킨다. 이 말은 본래의 뜻이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學派)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주자학파(朱子學派: 程伊川 ·朱熹)와 양명학파(陽明學派: 陸象山 ·王陽明)이다.

주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고, 왕양명은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두산백과]

그냥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말로는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지식(이성)이 필요한지, 마음(감성)이 필요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이다. 사물의 이치나 특성을 연구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역시 학자들의 몫이다. 더욱이 사전에도 한자와 굉장히 어려운 말로 써 있어 정확하게 알기에는 지식이 짧아 낮은 단계의 이해에 머물렀다. 더욱이 삶에 별 필요가 없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욱이 물리학의 세계적 석학들이 하나의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을 칠판 위에 공식을 적어놓은 것을 보고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그저 천재나 아는 것이라고.

더욱이 물리학은 문학이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정반대의 개념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보는 것, 인식, 이해, 입증 등이 과학의 영역에서 이뤄지고 보이지 않은 것, 감성, 감각적 수용이 필요한 예술과는 정반대의 세계라는 인식이었다. 이 책 『우주를 만지다』의 권재술 저자는 이러한 독자의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우주를 이야기하면서 우주에 대한 이해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지구의 모든 모래알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작은 원자 단계의 미시세계부터 감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우주 너머의 거시세계까지,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세상을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학 에세이다. 독자들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과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노(老)물리학자의 연륜이 담긴 인생에 대한 고찰, 모든 이야기의 끝에 배치된 짧고 인상적인 시편으로 감성까지 이끌어낸다.

그래서인지 무한한 우주 세계에 관한 탐구로 호기심을, 또 머나먼 우주를 우리의 삶과 연결 짓는 시로 문학성을 동시에 잡은 『우주를 만지다』는 TVN 「알쓸신잡」의 과학박사 김상욱 교수부터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소설가, 유성호 문학평론가, 『오렌지 기하학』 함기석 시인 등 분야를 아우르는 인사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추천사를 책에 실었다. 과학으로부터 전해지는 문학적 감동이라니, 불가능할 것만 같은 두 분야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빚어낸 저자의 '우주도자기'를 만져보려는 독자들은 이 책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문학이라는 별미 같은 조화 속을 유영하다(책을 읽다) 보면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물리학과 우주라는 매력에 빠져들며 인생을, 또 삶을 돌아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우주를 만지다』는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이해하기 쉬운 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우주'의 세계를 설명한다. 키워드로 보자면 별, 원자, 신, 시간 등 4개이다.


1장 별 하나 나 하나

2장 원자들의 춤

3장 신의 주사위 놀이

4장 시간여행


개기일식, 외계인, 상대성이론, 슈뢰딩거의 고양이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아직 낯설기도 한 물리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이 180도 뒤집어질 수도 있고, 눈앞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기를,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과학자 수준의 지식을 얻기보다는 그저 과학자들이 느끼는 자연과 우주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길 바랐으며, 우주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그저 부담 없이 우주를 만지고 우주와 놀면서 더 풍요롭고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가길 바랐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과학이라는 분야가 막연히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막상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과학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지구와 우주의 경계처럼 모호해지고 끝내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행여 당신이 ‘과학 문외한’이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입에서는 “과학이 이렇게 쉽다니, 심지어 재미있기까지?!”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지금처럼 모두의 삶이 힘들 때, 당장의 현실이 막막할 때 오히려 머나먼 곳으로 눈을 돌려 보는 건 어떨까? 하루하루 힐링이 간절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저 멀리에 있는 우주인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시간에 펼치는 『우주를 만지다』는 독자들에게 드넓은 우주를 배우며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책에 따르면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구를 알기 위해, 또 우리의 삶을 알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시간을 기꺼이 마주해 보자. 빛나는 별과 원자들의 춤, 차원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현실로 인해 지쳐 있던 마음속에도 물리학의 즐거움이 서서히 떠오를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는 약 4광년 떨어져 있다. 1광년이란 빛이 1년 동안 가야 하는 거리다. 빛은 1초에 지구 7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를 갈 수 있고,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태양까지도 8분이면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빛으로 한 시간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4년을 가야 한다니. 얼마나 멀리 있는가? 그래도 이것이 가장 가까운 별이고 대부분은 이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멀리 있다. (…)

여러분은 상상이 가는가? 하늘 저 멀리 아득히 수억 광년, 아니 수백억 광년에 걸쳐 있는 별들을 상상해보라. 우주는 얼마나 광활한가? 여러분은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크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우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어마어마한 것보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주여행?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감히 몇억 년의 여행을? 그래도 인간은 그 꿈을 꾸고 있다.(pp. 19~21)


대기는 분자들의 여관방이다. 그 여관방에는 종류와 관계없이 한 방에 한 분자만 들어간다. 분자의 크기나 질량을 따지지 않는다. 여관방이 손님의 키나 몸무게를 따지지 않듯이 분자들의 여관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들의 여관방인 고급 호텔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돈이 있어야 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야 할지 모른다. 인간들의 여관방에는 차별이 있다. 하지만 분자들의 여관방은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는다. 인간들의 여관방과는 달리 아무런 차별이 없다. 자연은 인간보다 더 공평하다.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p. 137)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고, 무엇에 부딪히면 반사를 하고, 유리나 물을 통과할 때 굴절하는 것을 본 뉴턴은 빛을 입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빛은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가고, 두 빛이 서로 만나면 간섭을 해서 무지개와 같은 색깔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맥스웰에 의해서 빛이 전자기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빛이 파동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빛은 그렇게 쉽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는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나 보다. 빛을 금속에 비추면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 현상을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는 가설로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이 공로로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빛은 회절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파동인데 또 광전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입자다. 그러면 도대체 빛은 입자란 말인가 파동이란 말인가? (…)

빛은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빛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듯이(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빛도 파동이라고 하면 이미 파동이 아니고 입자라고 하면 이미 입자가 아니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빛이다.(pp. 156~158)


양자중첩을 좀 더 확장해서 인생사에 적용해볼 수도 있다. 미래에 내가 성공한 사람이 될지 실패할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현재의 나는 성공과 실패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패나 성공 둘 중의 하나가 현실이 될 것이다. 모든 미래는 양자중첩 상태다. 시간이 흐르면 이 중첩 상태 중 어느 한 상태가 현실이 될 것이다. 내가 수만 번 환생한다면 실패한 나와 성공한 내가 반반으로 나올지 모른다.

우리는 진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실은 O 아니면 X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흑과 백으로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오히려 중첩적이고 모호하다. 이 모호함이 진실의 오묘함이 아닐까?(p. 178)






자연과학책이지만 감성적인 '시(詩)'가 함께 담겨 있다.

그 중 기억에 새로운 것 중 하나인 <암흑물질> 이라는 시는 읽고나면 첫사랑이 생각나는 순수하고 감성적인 내용이다.

암흑물질을 이용하여 감성적인 시를 담은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과 암흑물질의 상관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칼 세이건은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다. 독자도 TV를 보면서 우주를 향하고 있던 보이저 1호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내 보이저 1호의 카메라의 방향을 지구로 돌려보니 아주 작은 푸른 점으로 보이는 장면에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다.

"저 작은 점에 수백억~수천억,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니..."라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인 내 생명은 보잘 것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였다. 이 책에서도 그 얘기가 나오니 반갑다. 사막을 헤매는데 길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다.

저자는 우주탐험의 종착점은 우주가 아니고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를 알기 위해서 지구를 떠나는 것이라고.. 정말 멋진 말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모두 물체가 왜 떨어지는지 잘 설명하지만, 빛에 대해서 두 이론은 우열이 갈린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빛은 질량이 없으므로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빛은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구나 태양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별 주위에 공간이 휘어져 있으므로 질량이 없는 빛이라도 휘어져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런 주장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으나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에 의해서 실제로 빛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서 휘어진다는 것이 관측되었다. 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증명이 되었고, 아인슈타인은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휘어진 공간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던가?

우리가 사는 공간은 휘어져 있지만 그 휘어져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논리적 결론이지만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pp. 287~288)






눈으로 보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도 역시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또 아무것도 모르고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흥미롭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알고 싶고 듣고 싶다. 그것이 인간 탐구면 예술이고, 우주 탐험이면 과학이다. 이 책은 예술과 과학이 서로 다른 듯하지만 공통점이 많다는 것과,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우주를 설명하면서 시를 접목시켰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인간 탐구든 우주탐험이든 시발점과 종착역은 인간이고 우리가 사는 지구다. 때문에 두 분야는 연결 가능성이 있다. 독자의 오판인지 모르지만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읽을수록 그 생각은 깊어진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쿨레(Paul Klee)의 말이다. 독자가 이 말을 읽었을 때 크게 공감해서 외워두었던 덕분에 여기에 쓴다. 우주 탐험 역시 이 책에서 느낀 점은 시발점이나 종착역 역시 모두 우리가 사는 지구다. 그런 점에서 독자는 예술과 과학이 정반대의 분야로 남는 게 아니라 연결된 분야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별을 보는 사람의 시각과 예술적 감각으로 별을 보는 사람의 시선의 연결 선상에 무엇이 있을까. 표현과 수행 과정만 다를 뿐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독자는 믿는다. 예술은 현실을 상상화시키고 과학은 상상을 현실화시킨다.


저자 : 권재술


저자 권재술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과학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교원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했으며,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한국물리학회 물리교육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학에서는 과학교육론과 상대론을 강의했으며, 초·중등 과학 및 물리 교과서를 다수 집필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과학교육론』(공저)과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실한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은 잘못이 없다 - 어느 술고래 작가의 술(酒)기로운 금주 생활
마치다 고 지음, 이은정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는 엄청나게 술을 좋아했다. 술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할 정도로 마셨다. 우리 속담에 "사람이 술을 먹다가 나중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30여년 술을 지독하게 마셔본 독자는 절제하는 술, 끊는 술, 마지막 술, 못 마실 때까지 마시는 술 등 각종 술을 다 섭렵(?)했다. 그렇게 마시다보니 결국 몸에 무리가 왔다. 술을 끊었다. 엄밀히 말하면 '끊겼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동안 의사로부터 경고도 수차례 들을 정도로 응급실 신세도 여러 번 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코피가 계속 나서 민간요법으로 처치가 안 되자 응급실로 달려갔던 일, 술 기운에 휘청거리다 무언가에 부딪쳐 의식을 잠시 잃고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주위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간 일 등 부끄러운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주위의 강요나 의사의 경고 등으로 며칠 혹은 몇 달씩 금주한 적도 많다. 그러다 아주 시시한 이유로 다시 마시면 어김없이 예전의 술꾼 상태로 돌아간다.

의사는 알코올 의존증(알코올 중독)을 의심하고 입원을 권유하기도 했다. 직장은 나가야 한다며 애써 외면한 적도 여러 번. 그래도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술을 끊은 지 2년이 넘었다. 그래도 식구들은 예전의 술버릇이 다시 재현될까 전전긍긍한다. 술병은 물론 냉장고 술도 말끔히 치우고 다시는 사 들여오지 않는다. 이 정도 마셨으니 집안에서의 의심에 화만 날 뿐 반발하거나 예전처럼 홧김에 술을 마시는 일은 없다. 예전에는 술 얘기 나오면 독자를 비난했다. 비난 받으면 화가 났으니 풀 길 없어 술을 마시는 악순환 속에 갇혔다고 해야 맞다. 그 정신으로 세상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주의, 경고까지 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일은 잘한다고 평가됐는지 술을 마신다고 해고하지는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독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술 마시러, 술 마실 돈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술 끊은 이후에 생각이지만.

술을 많이 마셔봐서 이 책 소제목만 봐도 어떤 상태였는지 눈에 선하고 어떤 심리상태인지 알 것 같다. 책을 선택한 것도 술에 대한 향수보다는 술을 끊었다고 선언한 저명한 저자가 술 마시게 하는 글을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예상은 맞았지만 너무 재밌게 썼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다. 여기서도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아준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술에 관한 책을 읽고 서평 졸고를 쓰려하니 독자 얘기만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술은 끊기 어려운 것이고, 술을 끊으면 세상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니 자칫 독자들이 오해가 있을까 미리 밝힌다.






숙취 때문에 타는 듯한 갈증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날, 우리는 침대 위를 기어 나와 간신히 물을 한 모금 머금고는 ‘아, 이게 다 망할 놈의 술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비난은 잘못됐다. 술은 자신을 마시라고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직접 잔을 들어 식도로 흘려보낸 것은 스스로의 의지다. 그러니 술로 인한 모든 고통은 다 나의 책임이다. 비극은 술로 인한 고통이 신체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분명 기분이 좋아지려고, 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먹은 술인데 기분이나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되려 나쁜 쪽으로 흐를 때가 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 마치다 고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한다. 인생은 언제나 밸런스 게임처럼, 행복이 있는 곳의 반대편에는 반드시 불행이 있다는 것을 금주를 통해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며 마시고 또 마시고, 권하면 반드시 마시고 권하지 않더라도 자작해서 마시고 말술은 더욱 거부하지 않는 생활을 30년에 걸쳐서 계속해 왔다. 물론 실수도 했다. 스승뻘 되는 사람한테 대들다가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친구와 별거 아닌 일로 말싸움을 하는 바람에 오랜 세월 쌓아온 우정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초밥집에서 떡이 될 정도로 거나하게 취해서 “너 이 새끼. 뭐 이따위로 초밥 만들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말이지 파리의 일본 요리 전문점에서 3일간 배운 사람이라고. 비켜! 내가 한 솜씨 보여주지!”라고 말하며 카운터를 훌쩍 뛰어넘어 주방으로 들어가 초밥을 만들었다. 정말 목숨이 몇 십 개 있어도 부족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닥치는 대로 했다.(p. 14)





그니까 정리하자면 술의 즐거움은 인생의 자산이 아니며 즐거움이라고 부르던 것이 실은 부채라는 사실을 한 수 가르쳐 줬다, 이 말이지. 이 생각을 발전시키면 반드시 인생 자체의 균형이라는 지점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즐거움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고통이 있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듯이. 삶이라는 자산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부채가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즐거움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웃돌게 하지 않으면 오로지 고통스러워지기 위해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 그런데 말이야, 적어도 음주에만 한해서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 지금까지 봐 왔듯 마이너스가 너무 커서 고통이라는 부채가 늘어날 뿐이라는 건 명확하다 이거야.(p. 56)


인생에는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반드시 수반된다. 이 고통이 바로 부채다. 술꾼들은 술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으며 즐거움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생명은 유한하고 생과 사는 세트라서 삶이 언젠가 죽음으로 청산되니,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반대쪽에는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비교적 알기 쉬운 것으로는 술독에 좀먹은 건강, 시간 낭비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 금전 소비, 술 취함으로 인한 착오, 판단 실수, 착오로 발생하는 주위 사람들과의 알력 등이 있다. (중략) 술이 주는 즐거움의 본질은 술에 취하는 것이고 그것은 몇 시간 만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기억과 경험, 즉 인생의 자산으로 남지 않는다. 단지 위에서 말한 부채만이 남는다. 즉 즐거움과 고통이 조화되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이 남는다.(p. 59)




이 책은 ‘술을 끊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금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리듬감 있는 문장과 위트 있는 언어로 쓰여진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생에서 술이 빠지더라도 무채색에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료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금주를 하게 되면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어떤 작은 행복,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최대 행복이라고 느꼈던 술을 포기해야지만 찾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정확한 행복이라니. 그렇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 여유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매일 즐겁게 생활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오늘 하루, 별로 즐겁지 않았다. 먹고 살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바람에 나를 위한 시간이 단 1초도 없었다. 인간은 24시간을 하루로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위한 시간에서 가장 손쉽고 간편하고 효율적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음주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런 권리는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법으로 행복 추구 권리를 인정받고 있지만 행복의 권리를 저절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p. 178)






『술은 잘못이 없다』의 저자 마치다 고는 시인, 가수, 배우까지 한 다재다능한 일본의 유명 작가다. 신인 때부터 각종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쓸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상, 아쿠타가와상 등 각종 문학상을 모두 받으며 문학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한다. 그의 글을 '술을 잘 마시는 작가'로서 아닌 '술 끊은 작가'로서는 처음 읽는 셈이다. 그것은 독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문학상을 받은 예전 작품들은 독자도 술을 많이 마실 때 읽었고, 그가 술을 끊은 이후 읽은 이 에세이는 독자도 술을 끊었을 때니까. 억지로 맟추려니 조금 쑥스럽다.

저자의 글 중에 "인생이 즐겁지 않다고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말하라"고 주문한다. 괴로워서 술을 마신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듯하다. 즐겁지 않은 삶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하려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술을 마시려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 말은 책의 제목 『술은 잘못이 없다』와 맥을 같이 한다. 자칫 술은 잘못이 없다란 표현이 '술은 마셔도 좋으니 많이 마시고 싶으면 마셔라'는 뜻으로 오해할까 저자가 제목의 원래 뜻을 오해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이유를 술에게서 찾으려는 술꾼들에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 핑계를 잘 댄다. 기분 좋아서, 고민이 있어서, 비가 와서 등등... 1년 365일 술을 마신다면 365개의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래서 옛날 우리 문인들 중 한 분(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은 '니까 술'이라 했다. 비가 오니까, 기분이 좋으니까, 괴로우니까 등의 이유를 잘 댄다고 해서다.



저자의 글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금주, 단주라는 것은 늘 자신의 제정신과 미친 광기의 싸움이다. 금주를 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강압보다 자신의 힘으로 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 개조가 필요한데 자기애(自己愛)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건 바르지 못한 생각이다."

이처럼 금주로 시작된 고민과 술에 대한 생각이 인간사에 대한 고민으로 확대된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술은 잘못이 없다란 표현이 어떤 뜻인지 정확하게 이젠 감이 잡힌다. 독자도 저자의 말에 100% 공감한다. 술꾼은 핑계를 잘 댄다는 말은 이미 기술했던 대로다. 회사에서 상사의 압력을 받을 땐 일 때문에, 집에서 아내의 바가지를 대할 땐 너 때문에, 날씨가 나빠 하늘을 욕할 때는 추워서... 이성적인 판단을 갖고 있을 땐 전혀 터무니없는 핑계들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밑천 떨어지면 술 때문에 술 마신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술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해 핑계를 둘러대도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핑계는 술 마시지 않은 상태의 상대에게는 통할 리 없다. 결국 자기가 자신을 속일 뿐이다.





작가는 금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인생은 쓸쓸하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더는 즐거움을 좇기 위해 술을 마시고, 그 술이 고스란히 부채로 남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나는 일 투성이었던 고된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맥주를 먹겠다고 다짐하다가도, 그의 충고를 떠올리면 맥주 없이도 이 밤을 지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정신적 여유다. 다른 말로 하면 여백 정도라고나 할까. 놀이, 라고 해도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여유, 여백이 없었기 때문에 강한 자극을 목적으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최단거리로 가고 있었지만 여유, 여백이 생기면서 천천히, 가끔 멈추기도 하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곳에 의외의 기쁨과 놀라움이 있었다. 꽃과 풀이 나 있고, 비 냄새가 나고, 사람의 사소한 표정 속에서 사랑과 슬픔이 보였다. 서둘러서 가면 못 보고 지나칠 것 같은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야말로 행복이라는 사실을 겨우 알게 되었다.(p. 277)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펴낸 스님이 생각난다. 술을 멈추면 술꾼에게는 뭐가 보일까. 그렇다. 삶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가족이 보이고 주위가 보이고, 결국 자기 자신이 보인다. 술 얘기에 느닷없이 스님의 책 제목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경스럽고 우습지만 독자가 술을 끊고 보니 주위의 삶이 보이고, 주위의 사람이 보이고, 결국 자신의 삶과 자신이 보이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술을 계속 안 마시는 원동력이 된다. 온전한 생활을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저자 : 마치다 고(町田 康)


소설가, 시인, 가수, 배우. 1962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마치다 마치조 町田 町?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에 펑크밴드 ‘INU’로 데뷔했고, 그 이후 배우로도 활약했다. 1992년 시집 《헌화供花》를 출간, 작가로 데뷔했다. 1996년 첫 소설 《굿슨다이코쿠くっすん大?》로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했고, 2000년 두 번째 소설 《산산조각きれぎれ》으로 아쿠타가와상을, 2002년 《권현의 무희?現の踊り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상을, 2005년 대표작 《살인의 고백》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2008년 《여관 순례宿屋めぐり》로 노마문예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일본 최고의 문학상들을 휩쓸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초기 작품부터 독자적인 문체와 어법을 확립했으며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