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의 확률
이묵돌 지음 / FIKA(피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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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의 확률』이란 제목에서 매력을 느낀다. 사랑의 확률은 어느 누구와, 어느 관계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하는 마음을 숨긴 채. 이 소설은 어떤 사랑을 다루고 있을까.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수학 용어가 튀어나오고 작가가 애써 모호한 표현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해도 여전히 '사랑의 확률'에 꽂힌 채 책읽기를 계속한다.

"사랑인지 아닌지 확실히 몰라, 누구도 모르지."

"사랑은 예고 없이 만나는 소나기 같은 것."

가끔 가다 소설 속 인물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작가를 대신해 감정이입시켜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마음, 사랑의 감정이란 수학처럼 공식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물론 일정한 패턴이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는 것. 그 결과값이 다름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번 똑같은 입력값을 관계에 두는 건 아닐까.

한때 모두가 스무살이었고, 서툴지만 그래서 더욱 애틋했던 사랑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이 많아지면서 조금은 뻔한 이야기 앞에서 예전처럼 가슴이 떨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사랑의 확률』은 독자의 스무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시대의 20대는 16년 내내 공부만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덜컥 어른이 돼버린다. 미적분은 알아도 사랑은 모르는, 똑똑한 오늘날의 청춘들은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때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자라 배는 부르지만, 영혼은 그만큼 더 공허해졌다.

사람이 싫으면서도 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했던, 한때 스무 살이었던 우리는 어떤 사람과 사건들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진짜 어른’이 돼가는 것일까?

입시, 낯선 세계, 새로운 만남, 사랑과 이별, 취업준비에서 도피유학까지. 나약하고 우울한 이 시대의 젊음을 담은 청춘 소설 『어떤 사랑의 확률』은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혼란스러운 일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밀레니얼 세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어루만진다.

여러 매체에 칼럼과 수필을 연재하고 개인 SNS를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교류해 온 이묵돌 작가는 그동안 문단을 통하지 않고도 많은 독자와 글쓰기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실천하고 보여주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던 이묵돌 작가가 이번에는 첫 장편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무(無) 근본 오랑캐 같은 글을 쓴다고 자신을 표현하지만 ‘등단 이전의 하루키가 20대에 글을 쓴다면 꼭 이런 느낌일 것 같다’라는 독자평처럼 그의 글에 열광하는 20대가 많다는 점은 이 시대 청춘들이 원하는 글쓰기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1. 연애의 확률

2. 관계의 사칙연산

3. 마음의 증명

4. 우리의 삼각함수

5. 서로의 여집합

6. 감정의 절댓값

7. 불확정성의 원리

8. 사랑의 극한값


주인공 민혁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랑. 자신도 모르게 덜컥 어른이 되어버렸듯, 사랑 또한 서투르기 그지없는 어색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만다.

민혁의 모습을 통해 첫사랑의 설렘부터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복잡한 수학 문제처럼 알쏭달쏭하기만 했던 기억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망설이느라 놓치거나 서툴렀던 사랑의 순간들. 어쩌면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사건이나 알고리즘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아주 가끔 외로운 우리에게 닥쳐오는, 그러면서 아주 소중하고 의미 있는, 말하자면 날씨 같은 것이다. 산책하기 좋은 것 같아서 신나게 밖에 나갔다가도 예고 없이 닥치는 소나기는 어쩔 수 없듯이,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우산을 안 가져온 걸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 알고 보면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다. 함께 비 맞을 사람이 곁에 있다면 더더욱…….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거의 사랑이 떠올라 후회가 밀려온다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이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면 더더욱……. 그리고 언젠가는 내 삶에 예고 없이 닥치는 소나기가 또 내릴 것이기에.




엄마는 학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원룸으로 민혁을 쫓아냈다. 그러나 민혁은 난생처음 생긴 자취방보다 가까운 학교 도서관에 더 오래 머물렀다.

B대학 중앙도서관의 자유 열람실 66번 자리는 지정석 취급을 받았는데, 민혁이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이었다. B대학 학생들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곯아떨어진 민혁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쑥덕거렸다

"담당 교수가 얼마나 괴롭히면 저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안쓰러워 죽겠네……."

"난 절대 대학원은 안 갈 거야. 졸업 학기에는 반드시 취업하고 말겠어."

"대단한 근성이야. 내가 저 사람 같으면 한참 전에 재떨이로 교수 머리를 내리쳤을 텐데. 저 교수가 사람이냐?"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민혁은 쌕쌕 숨을 내쉬면서 자고 있었다. 숫기 없고 지질한 남성의 전형이었지만 어떤 면에선 참 대범한 인물이었다.

「 연애의 확률」 중에서




"제발 좀 와. 제발 와서 청소 좀 해. 청소하고 살아야 인간이 깨끗해진다고. 네가 그렇게 추레하게 입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뭔지 알아? 네 방이 이 모양 이 꼴로 더러워 처먹었기 때문이야! 세상에.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더러운 건데……."

"여자들 방이라고 다 깨끗한 건 아니잖아?"

민혁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대꾸했다.

"어, 깨끗해. 너에 비하면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깨끗해. 그리고, 원래부터 더러운 사람이라고 더러운 걸 좋아하겠냐? 오히려 반대지. 사람은 자기한테 없는 걸 가진 사람한테 호감이 가는 법이니까. 이 멍청한 놈아. 네 몸에 걸친 옷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알아? 집을 무슨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놨어."

"그딴 게 뭔 상관이야. 내가 못 맡으면 되는 거 아냐?"

"진짜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처맞는 말."

「관계의 사칙연산」 중에서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은 민혁이 이어서 말을 꺼냈다.

"이번 주 일요일 시간 되세요?"

"음, 죄송해요! 저 일요일에는 많이 바빠서……."

"아,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럽게."

"그날 썸남이랑 데이트해야 하거든요.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알바하시는 분인데…… 진짜 너무 귀엽다니까요. 사진 볼래요?"

채은이 내민 휴대폰 화면엔 언제 찍었는지 모를 민혁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사진 속 알바생은 애써 다리를 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또 난생처음 마주한 세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오려는 아기 새처럼…….

「마음의 증명」 중에서








코인 노래방은 교착상태에 놓여 있던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몇 없는 진전이었다. 민혁에게 음악이란 오랜 시간 듣는 즐거움으로 그쳤다.

노래방에 가 본 적도 거의 없었다. 학기말고사가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친구들이 한사코 꼬드길 때조차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라 듣는 거야, 하고 선을 그었다. 설날이나 추석에는 별수 없이 따라가기도 했지만 무언가 골라 부르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랬던 민혁이 "자기야, 나랑 노래방 같이 갈래?"라는 채은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건 가히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기야 민혁으로서도 미적지근해진 두 사람의 관계며 마음 같은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자는 제안 자체가 새삼스러워진 기분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민혁은 적당히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적잖은 시간, 수차례의 반복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가창에 재미를 붙였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뭐든 요령이 붙어 조금씩 초보티를 벗어날 때가 가장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변함없이 계속되는 학업이며 지루한 일상 속에서 딱 그 정도의 취미가 필요했던 면도 있다.

「우리의 삼각함수」 중에서




샐리가 For Harry라는 비행기 티켓을 남기고 갔다. 사랑은 용기를 내는것, 그리고 안전지대를 때로는 과감히 벗어나게 한다. 이전의 나는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하고. 얼마나 강력한 감정인가. 혼자서 종착점에 도착한다면, 너무 외롭다. 함께 웃고 뛰는 사람이 있기에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해더라도 좋은 경험이라고 하지 않을까.

민혁의 사촌누나인 은희가 결혼해서 이제 아기 엄마도 되는데, 민혁의 엄마가 해주는 말이다.

"반드시라는 이유는 사실 없었다."

그냥 일어나 버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가끔 닥치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듯이, 그냥 그 순간에 빠져버린 것. 날씨. 그 말도 공감이 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역시 사랑은 해볼만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작가가 확률, 삼각함수, 절댓값, 여집합 등 어려운 수학 용어로 표현하며 아무리 골치 아프게 해도 사랑이란 누군가와의 감정적 깊은 공유로 내면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때로는 너무 아프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껏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신의 최고의 선물임을 확신한다.







저자 : 이묵돌


1994년 경남 창원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대구로 이사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세대로서 성인이 될 때까지 정부보조금을 받았다. 홍익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며 상경했지만 생활고를 겪다 자퇴했다. 중학생 때부터 글을 썼다. 서울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취미삼아 인터넷에 쓰던 글이 관심을 끌었다. 팔로워를 수십만 명쯤 모았다. 페이스북에서는 ‘김리뷰’라는 필명으로 알려져 있다. 책 몇 권을 내고 강연을 몇십 번 했다. 만 스무 살에 콘텐츠 기획자로 스카웃되면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퇴사 이후에는 IT회사를 창업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획하고 출시했지만 2년 뒤 경영난으로 폐쇄했다. 이후 여러 온라인 매체에 칼럼 및 수필을 기고하면서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했다. 본관이 영천인 이씨는 어머니의 성이고, 묵돌은 오랑캐 족장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실제로도 무근본 오랑캐 같은 글을 쓴다. 굳이 의미를 갖다 붙이자면 몽골말로 ‘용기 있는 자’ 정도가 된다. 2019년에 수필집 『역마』, 『사랑하기 좋은 계절에』, 2020년에 『그러니까 우리, 갈라파고스 세대』, 『마카롱 사 먹는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단편 소설집 『시간과 장의사』를 출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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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뭐라고 - 깨달음이 도대체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거죠?
고이데 요코 지음, 정현옥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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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종교를 갖지 않은 비종교인이다. 종교에 대한 관심은 있어 책을 구해 읽기도 하고, 깊은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창시자의 가르침이 좋을 뿐이지 종교 자체가 좋아서 책을 읽어 깨우치는 등의 행동을 실천한 적이 없다. 우리가 위대한 종교라고 말하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를 마음으로 믿거나 따른 적이 없다는 얘기다. 이 책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깨달음이란 용어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깨달음은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이자, 모든 불자의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이 책은 '깨달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에 저자의 관심이 컸나보다. 깨달음에 대해 ‘내 삶과 무관한 것’, ‘아무나 쉽게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수행하는 스님처럼 고행을 통해 얻은 바를 말하는 것인지, 해탈의 경지에 오른 스님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불교에 관심이 있다면 이 깨달음이란 단어를 자신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정의하지 못하면 자칫 열심히 절에 다니고, 스님 말씀 듣고, 실행하려 노력하고 해봐야 헛수고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마치 부처가 누군지 모른 채 무조건 고행하고 수행하며 부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상에 그칠 것이라고.

이 책은 서른두 살 여성 불교 마니아가 일본 불교를 대표하는 여섯 스님을 찾아가 깨달음을 주제로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두루뭉술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깨달음이 어떻게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지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달음의 정의에 조금 다가선 느낌이다.





저자 고이데 요코가 만난 스님은 모두 여섯 사람. 일본 불교계의 주류인 조동종과 임제종, 천태종에서 존경받는 스님들이다. 인도로 건너가 호랑이가 출몰하는 숲에서 홀로 명상 수행을 하거나, 20년 가까운 면벽 수행을 하는 등 한결같이 어려운 수행으로 나름의 도를 터득한 분들이다.


제1장 하나로 연결된 세상 즐기기_ 후지타 잇쇼(조동종 국제센터 소장)

제2장 꿈이었음을 깨달았다면 그 꿈을 즐겨라_ 요코타 난레이(임제종 엔카쿠지파 관장)

제3장 평온함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기_ 고이케 류노스케(전 쓰쿠요미지 주지)

제4장 매 순간 비우면서 살아가는 진흙부처 인생_ 호리사와 소몬(산젠인 문주)

제5장 죽음이 끝이 아닌 스토리로 살아가기_ 샤쿠 텟슈(뇨라이지 주지, 소아이대학교 교수)

제6장 꽁꽁 얼어붙은 나를 녹여 주는 부처의 목소리_ 오미네 아키라(전 센류지 주지)


그 가운데는 『생각 버리기 연습』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고이케 류노스케 스님도 있다. 깨달음에 대한 스님과의 대화록은 인터넷 안의 가상의 절 ‘히간지’에 연재되었는데, 연재 당시 인기를 끌었다.

깨달음에 대한 궁금함을 풀어줄 첫 타자인 후지타 잇쇼(조동종 국제센터 소장) 스님은 “깨달음이란,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러한 자각은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라 특별할 게 없으며, 자각했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 설명을 덧붙인다.

자각, 곧 깨달음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실제 삶에 녹여내는 일이라는 것. 단발적인 체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으로 구현될 때에야 비로소 깨달음은 가치 있는 무엇이 된다는 얘기다. ‘깨달은 인간 이하의 인간’보다 차라리 ‘깨닫지 않은 인간다운 인간’이 낫다는 스님 말씀은 깨달음을 좇아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에게 진짜로 중요한 건 ‘특별한 깨달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바르게’ 살아가는 것임을 차분하게 일깨워준다.




임제종 엔카쿠지파 관장인 요코타 난레이 스님은 한술 더 떠서 “세상에 아무것도 깨달을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모든 생명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며 존재한다. 눈을 돌려 주변을 바라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이러한 자연의 조화로움을 마음 깊이 인식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의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이케 류노스케 스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한다. “깨달음이란 아무래도 좋고,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침없이 말한다. 살다 보면 깨달음이라고 부를 만한 경험이 찾아오지만, 그 순간도 지나고 나면 과거에 불과하다는 것.

지나간 것을 붙잡고 있으면 집착이 생기고, 집착은 괴로움을 낳는다. 그러니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다 놓아버리고, 매 순간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 밖에도 일본의 다양한 불교 종파를 두루 섭렵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농산행(籠山行, 외부와 접촉을 끊고 12년 동안 칩거하며 좌선과 공부에 매진하는 일본 천태종의 수행법)까지 마친 호리사와 소몬(산젠인 문주) 스님은 “깨달음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더라”고 고백하듯 말한다.

지금 모습 그대로가 부처라는 이치를 알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애먼 데서 깨달음을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끝으로 정토진종 소속 샤쿠 텟슈(뇨라이지 주지) 스님과 오미네 아키라(전 센류지 주지) 스님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심을 바탕으로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이요, 구원이라고 말한다. 진실된 말에 따라 살면, 사는 동안 늘 번뇌와 괴로움이 따라다닐지라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에 관해 여섯 스님이 들려준 답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조금 깊숙이 들어가면, 깨달음이란 일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삶에 밀접한 ‘무엇’이라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지점에서 스님들은 깨달음을 좇는 사람들을 향해 공통의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특별한 깨달음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 것. 둘째, 깨달음을 좇기보다 눈 앞에 펼쳐진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 것. 이 두 가지를 명심하고 살아가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라고 할 만한 것(곳)에 이르게 될 거라는 게 스님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깨달음’으로 시작된 스님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레 ‘삶’의 문제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찾기 위해 애쓰는 까닭이 무얼까?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지금보다 잘 살기 위해서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지금보다 덜 고통스럽고,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기에 애써 깨달음을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기대에 스님들은 어떤 답을 들려주었을까? 과연 깨달음이 우리 삶을 어떻게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을까?

깨달음이 무어냐는 질문에 대한 답처럼, 깨달음이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스님들의 답 역시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공통분모가 있다. ‘연결’, ‘현재’, ‘명상’. 이 세 가지가 핵심 키워드다.

먼저 깨달음은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때 연결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좁게는 내 몸과 마음의 연결이고, 넓게는 나와 내가 아닌 모든 생명과의 연결이다. 이러한 연결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뿌리가 분리감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우리 몸과 마음이 따로 떨어져 있는 양 여긴다. 몸에 집중하느라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마음을 돌보느라 몸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또 자신을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처럼 생각하면서 세상사에 무관심해지거나, 남과 나 사이에 경계를 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것이 현대인이 겪는 외로움의 근원이며, 비교와 질투와 증오가 발생하는 시발점이라는 게 스님들 말씀이다.



또 하나, 깨달음은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 불교에서는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집착을 꼽는다.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 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한 걱정, 기쁨을 간직하고 슬픔을 멀리하려는 욕심 등이다. 깨달음은 이 모든 것이 찰나에 불과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 사실을 알면, 어떤 것에도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다. 아무리 애를 쓴들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집착 없이 온전히 현재에 머물 수 있으면,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좋고 싫다는 평가 없이 그저 흘러가도록 둘 수 있으면, 그 순간 우리 삶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내려놓음과 비움이라는 행복의 기술 역시 현재 머묾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연결성의 회복과 현재에 머물게 하는 힘. 이 두 가지가 깨달음이 우리 삶에 전하는 유의미한 가치이다. 덧붙여 스님들은 꾸준히 명상(수행)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명상이 일상에서 깨달음을 더 자주,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면서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만, 그런 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쫓기듯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 일상에서 틈틈이 명상하고 불교 수행을 실천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향해 문을 열어젖히는 작업이다. 자기 삶을 보살피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여섯 스님의 생생한 인생담을 듣는 데 있다. 어떤 동기로 출가를 했고, 출가 후 삶은 어떠했는지, 불자로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등 보통의 삶과는 다른 ‘스님의 삶’의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덤으로 긴 시간 수행하며 살아온 스님들이 삶에서 체득한 알토란 같은 지혜도 얻을 수 있다. 후지타 스님과 요코타 스님은 젊은 날 전형적인 수행자상에 사로잡혀서 몸에 잔뜩 힘을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신경이 마비될 만큼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그것이 참다운 수행자의 자세라고 착각하며 살았다고 털어놓는다. 시간이 흘러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편협했는지 깨닫고 난 뒤 자연스레 어깨에 힘을 뺄 수 있었고, 세상과 수행을 대하는 태토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밖을 향해 자신을 열어둘 수 있게 되었고, 좌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호리사와 스님은 일본 불교 천태종 역사에 '최초'의 인물로 우뚝 서게 된 사연을 소개한다. 전통을 중시하는 천태종에서 최고의 수행 과정으로 꼽히는 12년 농산행을 전후 최초로 완료한 사람이자, 처음으로 결혼한 스님이 자신이라고 밝힌다. 스님은 남들이 뭐라건 세간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품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본 내 다양한 불교 종파와 교류하고, 다양한 불교 전통을 공부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도까지 날아갔다. 평생 경계 없이, 매임 없이 불도(佛道)를 향해 달려온 스님 인생 스토리는 현대판 무애행(無애行)이었다.

이 밖에도 신심 깊은 할머니를 만나 불자로서 확고한 신념을 얻었다는 사쿠 스님, 40대 초반 불현듯 찾아온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단숨에 날려버린 오미네 스님, 그리고 수행 과저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알아차림 기법을 계발한 고이케 스님의 사연 등이 책 곳곳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여섯 스님이 들려주는 자기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뭔가 남다르고 특별해 보이는 스님들의 삶 역시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든지, 날마다 나아지는 삶을 위해서는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각자의 삶, 그 길 위에서 스스로 성실하게 묻고 답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을 향한 깨달음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해주는 게 아닐까.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깨달음이란...... 그 뒤에 이어지는 단어는, 아마도 없다."


깨달음을 주제로 스님들과 대화한 후에도 여전히 깨달음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더는 그런 상황이 답답하고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맑고 청명한 기분마저 든다고. 그것은 스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에 대한 환상과 기대, 거기에 다가서고 말리라는 욕심을 훌훌 털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여섯 스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다 보면 '깨달음'에 대한 생가과 관점이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 어쩌면 깨달음에 관한 여섯 스님의 답이 기대했던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라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와 부처님 가르침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깨달음 역시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불교와 깨달음의 진정한 가치일지 모른다.

"불교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일상적이다. 그리고 부처님처럼 산다는 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다."란 말이 마음속에 오래오래 간직해야 할 말이다. 이것만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





저자 : 고이데 요코


니가타 출신. 문필가. 재속 불교 팬. 편집프로덕션 및 미술계 전문도서관 근무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 편집자·문필가로서 불교계 텍스트를 중심으로 편집 및 집필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명상 프로그램 〈TANDEN 메소드〉를 고안해 명상과 대화로 생을 체감하는 방법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명상 및 대화 지도, 집필 활동, 강연 활동 등을 통해 모든 민족과 종교, 사상의 차이를 초월한 ‘미래 지향의 생명’에 관해서도 연구 중이다. 생명을 주제로 대화하는 모임 〈TEMPLE〉(온라인 커뮤니티)을 운영하고 있다.


역자 : 정현옥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학교와 직장에 다니며 7년 동안 거주했다. 2018년 일본 학교 종교 교육 탐방 연수에 통역 자격으로 참가했으며, 2019년부터 오스트리아 관광청 홈페이지의 ‘버킷리스트’ 편을 번역하고 있다. 현재 번역에 주력하면서 틈틈이 통역에도 관심을 두는 한편, 초등학생 자녀와 동반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옮긴 책으로 《초예측》, 《이과식 독서법》, 《슈퍼 기억력 트레이닝》, 《결국 성공하는 힘》, 《나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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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봄은 밤에 피었습니다
김승연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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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봄은 어떤 의미인가요?

원하는 시험에 합격한 순간.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받은 순간.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던 순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추억이 다르듯 각자의 봄날도 다르겠죠.

그 눈부신 봄이 느지막한 밤에 피어난 경험 있으셨나요?

누군가를 생각만 해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 밤,

또는 그 누군가 때문에 울음이 멈추지 않는 밤.

어떤 모습이든 그 모든 순간은 찬란했을 겁니다.

그토록 찬란한 나와 당신의 모습을 여기 담아두고 꺼내 기억해볼게요.

나의 봄은 밤에 피었습니다.



우리는 봄날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은 늘 봄날이었으면 할 것이다. 그러나 계절이 봄만 있는 것이 아니듯 인생도 봄날만 있을 순 없다. 그것은 자연의 진리이고 곧 삶의 진리다. 누구나 화양연화와 같은 봄날을 꿈꾸기도 한다. 언제일까? 어쩌면 우리 일상 속 이미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를 봄날. 그런 당신과 나의 봄날을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지금 봄날을 얘기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도 봄날이지만 같이 있지 못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조차도 봄날이다.

시인이 전하는 화양연화 이 시집에 담겼다.

아름답고 찬란한 수식 문자를 빌리지 않더라도 봄은 그 자체가 희망이고 새출발이고 진리다.



시인은,


천천히 써내려가는 나의 삶

당신 참 예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무척이나 찬란했습니다.

~한다면 그날은 나의 봄날이겠다.

난 기쁘게 피고 질 것이다.

가장 빛났던 밤과

가장 빛났던 우리.


라고 노래한다. 시인의 봄은 왜 밤에 피었을까.


너의 슬픔을 지워주고

진한 밤을 새겨주려

나는 여기 떠 있다.

<달의 시>


달을 통해 위로받는다. 어떻게 보면 달을 통해 슬픔을 지우면서 다시 그리움을 얻어 깊고 깊은 밤 잘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싶다. 달이 달로만 보일까. 시인의 다른 시에도 달이 등장한다. 옛날 연인을 생각하나보다.

시인은 <퇴근길>에서 터벅이는 걸음길, 한숨, 공허함 같은 내용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보여준다.

그러다 후반에 가서는 달을 통해 연인에 대한 그림움, 그리고 그리움 속에 과거의 사랑에 대한 고백과 연인에 대한 걱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

사랑했던 그 시절의 봄은 지나간 밤이 되었고 꽃은 다시 피었으나 이제 질 일만 남은 그런 느낌이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오면 더욱 그립고 가슴 아프지만 그럼에도 아침이 오고 다시 봄은 올 것이다.



시는 낭만을 노래하기도 하고 슬픈 사랑을 읊조리기도 한다. 시인의 느낌대로 사랑은 슬프기도 하고 찬란한 봄이 되기도 한다. 시인은 <화창한 밤>을 통해 "나의 봄은 밤에 피었으니 매달린 벚꽃과 당신 사이 그 떨림의 갈림길을 함께 걸어 주시렵니까."라고 청한다.

첫사랑의 순수하고 아련한 입맞춤의 떨림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의 소리와 멈춰버린 숨결이 전해진다.

봄의 완성은 무엇일까. 아마 만개한 꽃들이 아닐까. 출렁이는 바람에 흔들어 보는 그들의 춤자락에 봄의 상관관계를 볼 수 있다.

찬란한 청춘의 삶을 봄으로 조명하고 꽃으로 비유하는 시인의 시상은 많은 사연을 담아내고 있다. 바람이 불어도 상처는 있다. 매마른 마음에 보여주는 무심함의 미련은 시인의 불행의 이유를 말해주고, 밤과 시의 버무려 '아름다운 그러나 쓸쓸한 후회'로 남겨둔다. 채울 수 없는 빈자리의 공백은 그냥 남겨두자. 행여 나그네의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이 되고 훗날 가물거리는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을 터다. 적당한 꽃 내음과 어둑함이 물들어 있던 밤 가장 예쁘게 피어있던 네게 철헚는 마음을 건네니 몽글한 미소가 살랑였다. 화창한 밤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릴 적 나는

구름의 맛이 궁금했다


어른이 된다면

반드시 구름을 한 입 베어보리라

다짐했다


어릴 적 나는

바다를 좋아했다


어른이 된다면

반드시 세계일주를 떠나보리라

다짐했다


어른이 된 나는

구름의 맛을 모른다

어른이 뇓 나는

세계일주를 지워버렸다


어른이 된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은

꼼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버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인은 정말 꿈을 많이 지웠을까. 꿈은 지우는 것이 아니고, 지운다고 내 마음속에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꿈을 지우려고 애쓰던 때보다 당장 현실과는 동떨어진 꿈이라도, 꿈꾸며 살아가는 삶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게 해준다.



1장. 눈부신 당신에게

2장. 삶에 녹아 피어난 것들

3장. 그대 잠시 여기 피어났습니다


이 시집에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와 일상을 담은 시들이 실려 있다. 사춘기 막 지날 무렵의 풋풋함을 담은 시를 읽으면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이별에 대한 시를 읽으며 되돌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도 느낀다. 그래서 가슴에 와 닿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 느낌을 담은 시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고민, 연인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준다.

군더더기 없이 하얀 중이 위해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시를 읽음녀서 시인이 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더 쉽게 이해되고 공감했다. 시 하나 하나를 읽어가면서 시인이 사람간의 관계, 행동, 상황, 감정들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집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에 지쳐 있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저자 : 김승연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낭만을 채워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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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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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클'자도 모르던 시절 독자는 '클래식 콘서트 가자'고 누군가 제안하면 늘 "아무것도 모르면서 앉아 있기 괴롭고, 돈이 아깝다"며 거절했다. 어찌어찌해서 클래식 몇 번 들어보고 '괜찮네'라고 하던 시절에도 "내 돈 내기는 아까워"라며 슬쩍 빠진 적도 있다. 지나온 시절 독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클래식에 입문했다. 아직도 초보다. 그래도 클래식 콘서트에 가느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부터 대기업에서 지은 콘서트홀에도 자주 갔다. 지금은 클래식 마니아는 아니어도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는 됐다. 그래도 누가 '허세'라고 그럴까 대화 중에

클래식 얘기를 먼저 꺼내는 법이 없다. 아직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그냥 좋아..."라는 얘기밖에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곡에 얽힌 얘기나 곡의 해석 등 기초적인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정식으로 클래식을 배운 적이 없어서가 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자주 들으면서 조금씩 귀가 열리는 것 같았다. 가끔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잘 아는 곡이 흘러나오면 속으로 굉장히 즐거웠다.

클래식은 그렇게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려 독자와 친해졌다. 그래서인지 이 책 『90일 밤의 클래식』은 어떤 책보다 소중하게 다가왔다.

하루 한 곡씩 90일을 왜 저자가 선택했는지, 어떤 곡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독자에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클래식 90곡을 선정해 한 곡 한 곡 얽힌 얘기와 감상법은 물론 그 곡을 QR코드로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들어 더 없이 소중한 책이 된 것이다.






'90일 동안 당신의 밤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음악 이야기가 찾아갑니다'라는 출판사의 말대로 이 책은 여러 날 같이 하면서 많은 것을 주었다.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 심금을 울리는 선율 뒤에 숨겨진 반전, 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의 무한한 가능성 등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클래식의 참맛을 본 느낌이다. 난해한 음악 이론 대신 이야기와 감상에 집중하는 시간을 주었다.

이젠 하루 1곡씩 90일 동안 소중한 시간이 예약돼 있는 느낌이어서 코로나로 집콕도 많이 답답해하지 않는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독자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지침서로 자리매김했다.

음악 감상에 깊이를 더해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음악과 함께하니 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게 폭식할까 걱정될 정도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책의 구성으로 음악사의 흐름을 따라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곳에서 책을 펼쳐볼 수 있도록 안내를 미리 해둔다. 독자들에게 책 이용법을 친절하게 명기해둔 예는 많지 않다. 매일 꾸준히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로 보인다. 90일 동안 하루 1곡씩 음악을 소개하는 단순한 구성으로, 난해한 이론 대신 음악가의 이야기와 감상에 집중하여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주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차분히 마음을 채우는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로, 클래식 음악이 어쩐지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책으로 다가간다.

평소에 많이 들어본 음악이라도 곡의 배경이나 작곡가의 의도 등을 알고 나면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훨씬 풍성하게 들릴 것이다.

① 매일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는 ‘QR코드’

② 곡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감상 팁’

③ 곡의 매력을 가득 담은 ‘추천 음반’




첫번째 이야기 속 주인공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너무나 인상깊은 멜로디이다. 첫번째 이야기부터 중세음악이라고 해서 약간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점도 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뒤 QR코드를 따라 음악을 들어본 뒤 독자의 생각과 달리 신선하면서도 꽤 괜찮은 곡의 느낌에 놀랐다.

그러다가 저자가 골라 준 두번째 곡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너무나 익숙한 곡이어서 놀랐고, 바로 전에 들었던 신선했던 중세음악과 같은 제목이라는 것에 신기했다. 웅장하고 멋있는 도입부가 돋보이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듣고 있으니 클래식의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온 걸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클래식 음악’도 부담스러운데 ‘중세음악’(medieval music)이라는 단어부터 툭 튀어나오면 좀 그런가요. 시작부터 어려운 말을 하려는 건 아닌지 부담을 느끼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먼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고, 음악 역시 취향과 스타일은 달라도 내용은 거기에서 거기라고요. 과거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즐겁고 신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애절한 사랑이나 이별의 아픔을 담은 노래들을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의 음악보다 더 자극적인 가사를 담은 노래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심지어는 노골적인 표현을 드러내며 쾌락을 즐겼답니다."(p. 18)





이 책은 페이지를 넘어가면서 계속 놀라고 흥미롭다. 내가 들어보았던 곡의 제목을 알게 되고, 익숙한 곡에는 이런 스토리가 있었구나, 이 곡은 이런 전개였고, 이것이 같은 곡이었구나 하며 연신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기기를 거듭하게 된다. 베토벤의 익숙한 곡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며칠 전 읽었던 중국소설 <환락송>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흐른다. 다섯 커리어 우먼이 함께 사는 한 아퍄트(아파트 이름이 환락송인데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에서 따온 이름이라 했다)와 소설의 줄거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여기 설명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누구나 같은 일상을 바쁘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금 공허해질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언택트(untact)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여행은 물론 미술관이나 공연 관람도 예전처럼 쉽지 않고, 많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감동을 나누는 일은 요원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역설적으로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즐기는 것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무관중 공연이나 텅 빈 밀라노 두오모에서 울려 퍼진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는 슬프기는 했지만 한편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힘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준 바 있다.




"1741년경 백작은 업무차 라이프치히에 머물게 됩니다. 이때 백작은 한 가지 어려움을 겪는데, 바로 불면증이었습니다. 백작은 친분이 두터웠던 바흐에게 자신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음악을 부탁하고, 바흐의 곡을 잘 이해해서 연주할 수 있도록 골드베르크에게 바흐의 가르침을 받게 합니다. 바흐는 1733년 작센 드레스덴 궁정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백작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빠르게 이 건반 곡을 완성합니다. 그것을 골드베르크가 연주했죠. 백작의 불면증은 치료가 되었을까요?"(p. 62)


"치마로사의 오페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대사와 음악의 절묘한 앙상블입니다. 특히 1막에서 비밀 결혼한 카롤리나가 자신에게 청혼하는 로빈슨 백작에게 거절 의사를 표시하고 부르는 ‘미안합니다, 백작님’(perdonate, signor mio) 파트의 아리아는 모차르트도 울고 갈 기막힌 위트라 할 수 있습니다."(p. 107)




"독일 낭만음악의 대표 주자인 로베르트 슈만의 [어린이 정경, Op.15]이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게 놀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어린이를 위한 음악이라고 알아왔고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예쁜 멜로디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어린이 정경]은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가 연애하던 시절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 중 클라라가 슈만에게 “가끔 당신이 어린아이 같아 보여요”라고 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동심을 가진 어른을 위한 음악이라 할 수 있죠.(p. 228)


"상상이 되나요? 공식적 사업가이자 비공식적 전문 음악인! 그가 바로 미국이 낳은 현대음악계의 거장 찰스 아이브스입니다. 그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오랜 기간 2가지의 일을 해오던 그가 쉰세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뇌에 빠져 사업과 대내외적 음악 활동을 전면 중단합니다. 그리고 [교향곡 3번]을 초연해 일흔세 살의 나이에 퓰리처상을 받지요. 이때 아이브스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이따위 상은 속물들이나 부러워할 법!'”(p. 317)




"베토벤, 안톤 브루크너, 안토닌 드보르자크, 구스타프 말러 등은 모두 아홉수를 뛰어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작곡가들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이들이 만든 ‘교향곡’ 수가 9번에서 멈춰 10번째 교향곡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이렇듯 음악 역사에서 교향곡이 시작된 이래 모든 작곡가가 쓴 교향곡 수의 평균도 10곡을 넘지 못할 정도로 [9번] 교향곡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홉수의 징크스를 깬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입니다."(p. 345)


"구바이둘리나가 크레머의 비엔나 초연을 위해 소련에서 악보를 밀반출해 간신히 연주가 성사되었습니다. 이후 크레머는 이 협주곡을 자신의 연주 프로그램에 자주 넣어 선보였고, 그 덕에 그녀의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크레머가 그녀와 나눈 40년 넘는 우정과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구바이둘리나를 알고 지내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곡을 연주할 때마다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저의 삶이 풍요로워졌습니다.”(p. 368)




"이 책을 쓰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째, 90곡 모두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것. 둘째, 난해한 음악 이론을 가급적 적용하지 않을 것. 셋째,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할 것. 역시 시작하고 보니 쉽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큰 난관은 이야기가 있는 음악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적당한 길이와 난이도로 다듬으면서도 큰 즐거움과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죠. 집필 과정은 마치 심한 몸살을 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신중한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현실적인 음악 책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음악사를 공부하고 클래식 저널 에디터와 공연기획자 등 다양한 활동으로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알려온 저자가 9개월에 걸쳐 공들여 집필했하고 한다. ‘눈으로 보는 음악’, ‘성격 유형을 표현한 음악’, ‘바흐가 작곡한 ASMR’ 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로 가득하다. 익숙히 들어온 노래가 오페라의 어떤 장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재밌게 본 영화에 어떤 클래식 음악이 사용되었는지, 낭만적으로만 느껴지던 선율에 어떤 반전 배경이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도 크다. 또한 천재 음악가들의 고뇌와 기쁨, 사랑과 이별 등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 등이 연결된 다채로운 음악은 클래식 감상의 폭을 한층 넓혀준다.

책 전체적으로는 시대 순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중세부터 현대까지 음악사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펼쳐지기도 한다.





저자 : 김태용


서양음악사 저술가 겸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추계예술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VIOLIN를 수석 졸업했고, 체코 오파브 필하모닉, 루마니아 지우르지우 필하모닉, 국립경찰교향악단 등과 협연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음악대학에서

음악학MUSICOLOGY(음악사A HISTORY OF WESTERN MUSIC 전공) 석사 과정을 이수했으며, 동 대학 고음악 과정BAROQUE MUSIC THEORY, BAROQUE VIOLIN TECHNIQUE을 마쳤다. 국제적 권위의 영국 클래식 저널 〈THE STRAD〉 및 〈INTERNATIONAL PIANO〉 코리아 매거진의 전문 클래식 음악기자와 상임 에디터를 역임하며 세계적인 연주자들에 대한 칼럼들을 기고했다. 또한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금호아트홀 등의 클래식 전문 공연장의 공연기획자로서 클래식 음악의 대중적 육성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롯데물산, 현대자동차, KT, 세종시정부청사, 미국 뉴욕 K-RADIO ‘용작가의 2시의 클래식’ 등에서 클래식 입문자를 위한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영화관에 간 클래식》, 《5일 만에 끝내는 클래식 음악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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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
이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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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나만의 속도. 그 말이 참 좋다. 책은 글과 함께 사진이 들어가 있다. 저자의 삶의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감성적 언어로 가득 차 있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긴 글은 긴 글대로의 매력이 있다. 섬세하면서도 잔잔하게 적어 내려가는 글. 강요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글. 여유를 느끼며 읽을 수 있는 글.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다. 나의 감각들이 살아나 감성적이 되고, 단어 하나하나를 읊조리며 마음에 새겨본다.

책도 차를 마시는 것처럼 음미하며 읽을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도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도 전하고 싶다.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어서 감사한 마음을 듬뿍 담아서...

오늘날 사람들은 하루하루 너무나 바쁘게 살아간다. 그저 남들처럼 살아가느라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속도가 자신에게 맞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하지만 거센 바람 앞에서는 작은 풀잎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듯 너무 빠른 삶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이 우리는 계속해서 마음에 생채기를 입는다. 이 책은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따뜻한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의 작가 이애경이 들려주는 삶의 속도에 대한 스스로의 고백이자 다짐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삶의 속도를 잃어버린 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대신 조금 느릿하게, 혹은 느긋하게 살기 위해 제주의 삶을 택한 작가는 그곳에서 사람마다 자기에게 알맞은 속도가 있음을, 자신이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려오느라 삶의 많은 부분을 놓쳐버렸음을 깨달았다. 이후 굳어있던 마음의 속도계를 조금씩 풀어내고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가면서 발견한 일상은 기쁨과 설렘이 가득한 기적의 순간들이었다.




책에 따르면 오랜 시간 일과 사람에 치이는 기자 생활을 하며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바쁘게, 빠르게 살았던 이애경 작가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제주로 터전을 옮기면서 처음으로 ‘삶의 속도’를 정하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좀 천천히 가자, 마음먹고 스스로 제주로 온 것이건만 천천히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섬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제주는 모든 것이 느렸고, 예상보다 더욱 느렸다. 익숙하지 않은 빠르기로 굴러가는 제주살이에 몇 번이고 마음의 멀미를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속도가 자신에게 맞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비로소 삶의 방향과 속도를 되돌아볼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빠른 것’과 ‘느린 것’, 두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속도가 있음을 알게 된 작가는 스스로에게 맞는 삶의 속도를 찾아냈다.

그리고 지금껏 너무 빠르게 살아가느라 놓쳐버린 소중한 순간들의 아쉬움과 새롭게 발견하게 된 반짝이는 순간들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책의 구성도 독자의 마음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치 바쁘게 사는 독자의 마음속을 들어가본 것처럼.

프롤로그.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시간

Ⅰ. '빠르게'와 '느리게' 사이, 보통의 속도로 걷다

Ⅱ. 서서히 스며들듯이, 보통의 속도로 사랑하다

Ⅲ. 아쉽지도 아프지도 않게, 보통의 속도로 멀어지다

Ⅳ. 마치 여행자처럼, 보통의 속도로 살아가다

Ⅴ. 조금씩 천천히, 보통의 속도로 어른이 되다


우리의 삶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하나씩 줄어들 때 가장 본연의 모습으로 빛나는 게 아닐까. 꽃이 떨어지고, 낙엽이 지고 나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인생에 겨울이 왔다고 슬퍼할 이유는 없다. 겨울에 나는 가장 나다우며, 이쪽저쪽으로 돌아온 인생에서 보이는 노련함과 치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니까. 혹여 당신이라는 나무 안에 촘촘한 단단함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서글퍼 말자. 엉성해 보이는 나를 너무 채근하지 않아도 된다. 밀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봄이 되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오롯이 나를 드러내는 계절」 중에서





조금 천천히 달린다고 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하루하루의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고 살아가는 삶, 서서히 스며들듯이 사랑하고 너무 아프거나 아쉽지 않게 멀어지고 이별하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많이 지치지 않고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보통의 속도에 익숙해질수록 예전에는 상처로 다가왔을 일이 가볍게 웃어넘길 만한 에피소드가 된다. 천천히 걸어도 길은 사라지지 않고 길 끝의 너머에도 세상은 계속된다. 지금이 추운 겨울 같다면 다가올 계절은 따뜻한 봄이다. 남의 기준에 맞춰 걷는 대신 내 마음의 보폭에 맞는 속도로 걷는다면 인생은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공감이 가는 많은 부분 중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천천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속도가 빨라야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참고 기다려야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일은 성취감을 주고, 어떤 것은 만족감을 준다. 또 어떤 일은 오롯이 행복감을 준다. 이 가운데 행복감을 주는 것은 '빨리'보다는 '천천히'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사랑, 과일의 맛, 맛있는 반찬도 그렇다.

우리의 찬란한 문명도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때로는 눈물 짓고, 때로는 땀 흘리려 이뤄낸 것들이다. 천천히.





이렇듯 천천히 혹은 느릿느릿 이루어지는 것을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느림의 미학'은 알지만 '빨리빨리' 해치우고 누리려 하는 마음이 우리를 항상 서두르고 바쁘게 한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세상의 속도에 따라 바쁘게 살아온 우리다. 천천히 해서는 항상 남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우리를 바쁘게 몰아친다. 그러나 혹여 나만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에 빠르고 바쁜 삶을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자꾸만 몸과 마음에 병이 난다. 왜 아플까 생각할 틈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다 문득 돌아보면 남은 것은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는 상처의 흔적들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맞는 삶의 속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빠르게 사는 사람은 더 멀리 갈 수 있지만 속도에 쫓겨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천천히 사는 사람은 더 멀리 가지는 못하더라도 인생의 소중한 순간, 소중한 사람, 소중한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저자의 삶의 철학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이 책은 우리가 각자 마음의 보폭에 맞는 속도, 자기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저자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담아낸 글과 어울리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글과 함께 실린 사진도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모습이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속도를 느끼게 한다.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너무 빠르게 살아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풍광들,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던 아픔들을 돌이켜보기를, 더 이상 지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을 알게 되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다. 이 책도 천천히 읽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한다고 할 때 독자는 그 보폭을 찾아 헤맸다. 성큼성큼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느릿느릿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떤 게 내 보폭인지, 그게 살면서 잃어버린 게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다는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 생각과 글이 어우러진 적당한 사진은 굳이 많은 이야기를 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된다.


아메리카노는 뜨거운 물에 에스프레소를 섞어 만드는데, 뜨거운 물을 잔에 담은 뒤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크레마가 두껍고 향이 짙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컵에 에스프레소를 먼저 추출한 뒤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크레마가 얇게 흩어져 커피가 묽고 신선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한다. 크레마가 깊게 입에 닿을 때 더 맛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같은 커피인데, 다른 커피인 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쓴맛부터 시작이라면 좋아할까. 커피 한 모금 인생 한 모금 아메리카노에게 묻는다.

「인생도 아메리카노처럼」 중에서




그리움이 닿다


예고 없이 비가 찾아오듯

너라는 비가 내린다.

늘 그렇듯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다 젖고 만다.

흔들리고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비는 늘 그리움을 몰고 온다.

그리움이 너에게 닿을 때까지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언제쯤 그칠까, 이 비는.


이별도 운명이라면


만남이 운명이라면

헤어짐도 운명이다.

이별이 힘든 건

운명을 거스르려 하기 때문이다.






사랑도 비슷하다. 매일매일 쳐다보며 잎을 만져주고, 또 가끔씩 분무를 해주어 공중습도를 높여주지만, 물을 주는 타이밍은 아주 신중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과하지 않게 물을 줘야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결국 식물은 나의 물 주는 습관에 적응하게 된다. 사랑은 길들이는 것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게 아닐까. 사랑도, 숨이 막히도록 퍼붓는 것이 아니라, 한여름 장맛비처럼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처럼 길러야 하는 것 같다.

정말 사랑하지만 시크하고 무심히. 그렇게 할 때 사랑은 늘 푸르게 유지되는 게 아닐까.

「사랑은 무심하고 시크하게」 중에서


네가 봄의 속도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빠르게 다가왔다가 어느 지점에서 정차하는 바람에 애가 타지도 않고, 너무 느리게 왔다가 어느 변곡점에서 갑자기 달음박질을 하는 바람에 숨을 헐떡거리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속도. 누구든 봄이 오는 걸 알아챌 정도로 꾸준히, 그러나 서서히 진행되는 바로 그 속도로. 우리가 길들여진 사랑의 속도는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세상의 사랑이 혼잡스러운 건 이 적정 속도를 잃거나, 혹은 무시하는 사랑들이 여기저기에서 무질서하게 운행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속도」 중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바느질을 하며 삶을 세어나간다. 그리고 이 속도에 내 삶의 한 땀 한 땀을 이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애쓰지 않으면서도 너무 무심하지 않은 정도의 속도. 내버려 둔 것 같지만 촘촘히 혹은 얼기설기 짜인 계획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속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문득 돌아보면 확연히 달라져 있는 정도의 순차적인 이질감이 허용되는 속도이다. 이 속도에 익숙해지면 삶은 조금 편해질 것이다. 단거리 경주를 하듯 초반에 온 힘을 쏟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저 그때그때 정해지는 방향대로 걸어가면 되니까.

모두가 기다리는 인생의 봄도 아마 이 정도 빠르기로 오는 중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그 속도를 감지하지 못해 지쳐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성큼성큼 봄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봄이 나에게로 오는 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봄의 속도로 살아가기」 중에서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 산 지 꽤 되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하거나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몸이 알아서 자고 깰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었다. 생각보다 몸은 내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기 전, 빛이 창틈으로 스며들 준비를 할 때 나는 정확히 잠에서 깨어났고, 해가 사라지는 자리에 졸음이 밀고 들어오는 패턴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나는 태양이 창문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밤이 내려앉는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를 버리고 자연에 안착하니 그것이 더 쉬워졌다.

「정해진 시간표를 버리다」 중에서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속도가 조금씩 변한 걸 느꼈다. 친구 생일 선물로 배송시킨 물건이 생일날까지 도착하지 않았는데, 배송기사에게 전화하거나 배송 추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식사 자리에서 ‘선물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미리 예상해서 더 빨리 주문했었어야지!’라고 스스로를 볶아대던 것이 예전의 나라면 지금은 나에게 한결 여유로워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도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내는 게 나의 능력이라고 자부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조금 더 느슨해졌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고백하건데, 난 지금이 좋다

「조금 느리게, 좀 더 여유롭게」 중에서


식물들을 보며 사람이 가장 겁쟁이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우리는 늘 확률을 따지며 뭔가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가능성의 씨앗을 없애버리는 데 익숙하니까. 식물은 확률을 따져보고 발아나 뿌리내리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또 기다림이 연습되어 있어 보채지 않고 자연의 속도대로 삶의 속도를 정한다. 식물에게서 삶을 배운다. 확률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 그리고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삶.

삶에 정답은 없고 정해진 속도도 없다. 나의 속도를 알고 그 속도대로 살아간다면 늘 자라나는 나무가 되지 않을까.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막에서도 자라나는 나무처럼」 중에서




저자 : 이애경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보내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가면서 삶의 속도를 정하는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치열하고 복잡했던 삶을 내려놓고 조금 천천히, 조금 느리게 살고 싶었고, 제주는 그런 바람을 이루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섬이라는 특성으로 인한 반강제적인 느림이 있는 곳, 모든 것이 느리고 느린 곳이 제주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는 쉽게 적응할 만한 것이 아니었고, 익숙하지 않은 삶의 시차에 멀미를 겪던 중 깨달았다. 세상에는 빠른 것과 느린 것, 두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삶의 속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바쁘게 살아가느라 잃어버렸던 나만의 속도,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보통의 속도를 찾는 순간 일상은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워졌다.

이제 우리 모두 ‘빠름’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의 보폭에 맞는 속도를 찾기를,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행복을 얻기를 소망한다. 여성들의 섬세한 심리 변화를 감각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에세이스트.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생각을 변화시키는 기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에 희망을 갖고 오늘도 글을 쓴다. 연예·음악 담당 기자를 거쳐 조용필의 ‘기다리는 아픔’, ‘작은 천국’, ‘꿈의 아리랑’, 윤하의 ‘오디션’, ‘My song and…’, ‘Someday’ 등 다수의 곡에 노랫말을 붙였다. 지은 책으로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그냥 눈물이 나』,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를 어디에 두고 온 걸까』, 『너라는 숲』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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