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범죄코드를 찾아라 - 세상의 모든 범죄는 영화 한 편에 다 들어 있다
이윤호 지음, 박진숙 그림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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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저물어가는 1991년 세상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 놀랄 만한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영화 팬들은 물론 수사 관계자, 범죄학자들에게도 범죄의 잔학성과 연구 과제를 많이 남겼다.

손꼽히는 범죄영화 중 하나인 「양들의 침묵」이다.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 렉터 박사의 오싹한 이미지는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각인돼 있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들리는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 수사, 연쇄살인범이라는 소재와 한니발 박사와 스털링 요원의 심리전이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독자는 그 당시 최고의 범죄 스릴러 영화로 순전히 흥미 위주로 봤다. 그러나 범죄학자나 많은 수사 관계자들은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은 모양이다. 이 책을 쓴 이윤호 저자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저자가 분석한 범죄 코드들을 통해 그때는 지나쳐버렸던 주제들과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더듬어 본다.

양들의 침묵 영화의 한 장면




"이 책 안에 언급된 모든 영화들이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그 중에서 몇 개를 꼽으라면 우선 「양들의 침묵」을 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그저 공포영화라고 인식하겠지만 이 영화는 범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범죄 심리라든가 프로파일링, 범죄자 인권, 사형제도의 존페, 교도소 내 처우와 교도관들의 부패, 지금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남녀 차별이 깃든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는 범죄를 대중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집필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요즘 우리 시대상과 맞는 영화가 있는데 그것이 「씬 시티」다. 이 영화는 권력자들의 부패, 남성의 종속물이나 희생양으로 표현되는 여성들에 대해 성윤리에 대한 범죄 코드가 담겨 있다. 그리고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정치범죄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관계성을 담고 있는데 언론의 한계와 효용에 대해 많은 부분을 생각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또한 지금의 주가조작에 대해 엘리트들의 범죄를 지적하고 있다. 수많은 개미들의 고통을 외면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범죄는 사회의 생태계를 해치고 고통에 몰아넣고 있기에 이 영화도 엘리트의 범죄라는 측면에서 중요도가 높다."

저자가 『영화 속 범죄 코드를 찾아라』 출간 직후 밝힌 말이다.

양들의 침묵 국내 상영 포스터





이 책은 10개의 주제 아래 37편의 범죄영화를 나눠서 각 편의 범죄 코드를 해석한다. 1973년 개봉된 「황무지」를 시작으로, 다큐 영화의 절정이라고 평가받는 「거짓의 F」, 프랭크 에버그네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치 미 이프 유 캔」, 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를 대중화시킨 「양들의 침묵」, 21세기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암시한 「인셉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전향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의 처절한 삶을 그린 「메멘토」, 일반인에게 사회화가 존재한다면 재소자에게 교도소화가 있다는 걸을 알려준 「예언자」, 범인의 살인 행각이 아니라 범인을 쫓는 기자와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룬 「조디악」, 언론의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스포트라이트」 등 걸작을 통해 범죄 코드를 설명하고 범죄를 약화시키는 해결 방안까지 알려주고 있다. 그저 범죄를 프로파일링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범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론까지 제시하는 책은 『영화 속 범죄 코드를 찾아라』가 최초일 것이다.

대중매체와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로, 특히 범죄는 언론에서 재구성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범죄 이미지로 가득하고, 신문과 방송은 하루도 빠짐없이 각종 범죄사건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시민은 대중매체가 표출하고 표현하는 이미지를 거침없이 받아들이며, 그것이 곧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특히 영화의 경우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의 행동과 심리 묘사를 더 잘 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감점을 이입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다. 이로 인해 대중은 더 사실처럼 만드는 영화에 비친 범죄를 진실이라고 믿어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범죄 정보를 왜곡되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도 한다. 특히 모방범죄는 왜곡된 관점을 통해 파생된 좋지 않은 폐해다.

그렇다면 우리는 범죄영화를 어떻게 해독해야 할까? 범죄영화 속에 숨은 범죄 코드(암시, 교훈, 메시지 등)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범죄학을 기반으로 하는 인과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영화 속 범죄 코드를 찾아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범죄학 박사 이윤호 교수가 은퇴를 앞두고 범죄영화를 통해 우리가 꼭 염두에 둬야 할 범죄에 대한 바른 시선을 제공싶다는 큰 의미를 담고 집필한 책이다. 이윤호 교수는 더 이상 완전범죄는 없어야 하며 더불어 장기미제사건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통해 범죄의 진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억울하게 상처를 받거나 죽어야 하는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범죄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직언한다.

특히 『영화 속 범죄 코드를 찾아라』는 수형자와 교화 개선과 사회복귀의 문제점도 놓치지 않는다. 결국 그들도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사람들이라면 누범자가 되지 않도록 대중의 인식과 지역 내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범죄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범죄의 모든 것을 담은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 수 있다.



양들의 침묵 영화의 한 장면


예전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인물들은 어려서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학대를 당했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 진화한 모습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곤 했지만 최근 들어 학대의 정황도 찾을 수 없고 그저 보통 사람임에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이후에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어느 정도 정형화된 틀도 깨져버린 듯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기의 종류를 총망라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이 저지르는 잔인한 살인을 담은 '황무지'나 '스프링 브레이커스'를 통해 미성년자의 살인을 통념상 사회적인 시선과 미성년자라는 이유가

갱생 가능성의 여지가 있기에 형량 감량으로 이어지는 상반된 견해는 어느 나라든 간에 여전히 뜨거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성범죄는 마약범죄와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 공급 차단이라는 정책을 활용했다. 하지만 범죄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었다. 특히 『영화 속 범죄코드를 찾아라』에 나오는 「트래픽」에서도 마약과의 전쟁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것은 공급 차단 정책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급 차단과 함께 수요 차단을 해야만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게 마약범죄와 디지털 성범죄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컴퓨터를 어는 정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대담하게 뛰어드는 게 디지털 성범죄다.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 수요를 차단하는 게 급선무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받지 못하도록 막거나 수요자들을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이 중요한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솜방망이 처벌로는 디지털 성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동에 대한 성범죄는 악질 범죄로 처벌 수위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공해서도, 제공받아서도 안 되는 정책이 되어야만 근절할 수 있다.




영화의 주된 주제는 가톨릭계에 팽배한 아동 성적 학대와 이를 은폐만 해온 교계 상부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사회적 경고일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처음 아동성애자의 문제를 취재하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히 게오간 신부 개인의 일탈로 시작됐으나 탐사가 계속되면서 교계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임을 알게 된다. 신부의 일탈은 그냥 ‘썩은 사과(Rotten apple)’ 하나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이 은폐되고 쉬쉬되면 전체를 도려내야 할 만큼 ‘썩은 상자(Rotten box)’의 문제로 밝혀진다. 특히 영화의 배경인 보스턴이란 도시는 유난히 천주교 영향이 강한 곳이기에 이처럼 광범위한 일탈이 일어남에도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교회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교계의 영향력으로 인한 언론과 정계 다방면에 걸친 유착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종의 음모론까지 수면에 오른 상황이었다.

「스포트라이트 ‘어떻게 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중에서

전문가들은 피해자 주장의 신빙성을 소위 말하는 ‘그루밍Grooming 성폭력’으로 뒷받침한다. 글자 그대로 그루밍이란 길들이기, 꾸미기 등의 의미이며, 따라서 ‘그루밍 성폭력’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길들여서 성폭력을 행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피해자는 성에 대한 인식도 낮고, 판단력이나 저항력이 비교적 취약한 아동이나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상담과 지원, 호의 등을 미끼로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신뢰를 얻어서 피해자 스스로 성폭력을 허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로 피해 대상이 경제적, 가정적, 사회적 문제에 취약한 청소년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그루밍 성폭력 범죄는 대체로 먼저 피해자 물색, 접근, 신뢰 쌓기, 피해자 욕구 충족시키기, 피해자 고립시키기, 성적 접촉, 회유와 협박을 통한 통제 등의 단계로 이어진다고 한다.

「스포트라이트 ‘어떻게 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중에서






촉탁소년은 만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말하고 어떤 범죄를 행해도 형사 처분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만 14세라고 하면 예전에는 결혼을 통해 나름 준성인 대접을 받았다. 특히 지금은 더욱더 신체조건이 발달하기 때문에 성인보다 강인한 체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소년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버죄를 저질러도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어른도 생각하기 힘든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소년들을 아무런 형사 처분을 주지 앟는다면 범죄의 질이 더욱 과격해질 것이다. 이들은 어른 못지 않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반성의 기미도 없이 어던 형사 처분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형사 처분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낮추는 경우가 있다. 이 논란에 불을 지피운 것이 영국에서 일어났는데 9살짜리 남자애 둘이 학교 가기 싫어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다 그곳에서 5살짜리 여자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사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번 제도로는 아무런 처분을 하지 못했다. 또 미국에서도 9살짜리 남자애가 동갑인 여자 친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무런 처벌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무리 어리지만 잔인한 범죄라면 처벌하자는 논의가 일어난 것이다. 판단은 국각기관에 맡기지만 최소한 악질적이 범죄를 막기 위해선 처벌에 대한 허용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범죄학을 연구해온 저자의 주장이다.





FBI의 훈련생이자 범죄심리학자 사이의 쥐와 고양이의 교환(cat and mouseexchange)과도 같다. 조나단 드미 감독은 영화라는 상상력의 수술을 통하여 렉터의 비뚤어진 두개골 속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 제목에 나오는 양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의심의 여지도 없이 ‘양’은 종교적 상징이 크다. 『성경』에도 수없이 인용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도 예수(Jesus)를 ‘신의 희생(The sacrifice of God)’이자 ‘신의 양(The lamb of God)’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에 몇 가지 해석이 따른다.

첫째 양은 아름답지만 무고하며 무력한 대상으로 보살펴주는 사람이 필요한 존재로 해석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의미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양들일 것이고 이들을 대신하여 개입하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스털링이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둘째는 스털링을 양으로 보는 것으로, 그녀 또한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신입 훈련생으로서 아름답고, 무력하며, 무고한 존재로서 한니발이나 버팔로 빌과 같은 악마로 가득한 세상에 놓여 있다.

「양들의 침묵 ‘상처, 고통, 통증, 이것들을 사랑하라’」 중에서

저자에 따르면 교도소 내에는 교화가 힘든 악질적인 범죄자도 있지만 교화를 통해 평범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순간의 실수를 통해 저질러진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죄를 평생 해가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들은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에 제 2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의 제 2의 범행을 막기 위해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또 범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이런 것은 국가기관에서 할 수 없다. 지역사회 내 처우나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달라져야 이들이 누범자가 되지 않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경계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그들을 우리들의 품으로 안는 순간, 우리를 두렵게 한 범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저자 : 이윤호

대한민국 최고의 범죄학자인 이윤호 교수는 범죄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당시 국내에서 유일했던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군 제대 후 범죄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경찰행정학과를 개설해 범죄학과 형사정책학 분야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미시간주립대학교의 형사사법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1987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주요대학에서 범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지 취업을 권하는 은사 교수들의 고언을 뿌리치고 귀국하여 국내 최초로 개설된 경기대학교 교정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한 이래 교학2처장 등 보직을 수행하다 마음 한편에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던 실무 경험을 쌓고자 최초의 민간전문가 개방형 임용을 통해 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으로 근무했다.

그 후 학교의 대외협력처장을 거쳐 행정대학원장의 보임을 수행하던 중 모교인 동국대학교의 특별 초빙으로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입학처장,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초대경찰사법대학장과 경찰사법대학원장을 역임하고, 대외적으로 국가경찰위원회 위원 그리고 대한범죄학회 초대회장, 한국경찰학회, 한국공안행정학회, 한국대테러정책학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현재도 범죄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경찰청 최초로 등록된 사단법인 목멱사회과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로서 많은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0년 8월 31일,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열정을 쏟아 부은 동국대학교를 은퇴하고, 고려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을 계속할 예정이다.

범죄학과 경찰학 그리고 피해자학과 관련한 100여 편의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저서로 『범죄학』 『경찰학』 『교정학』『피해자학』『범죄심리학』 『현대사회와 범죄』 『범죄 그 진실과 오해』 『피해자학』 『한국형사사법정책론』 『청소년비행론』 등을 집필했고, 범죄의 대중화를 위해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 등을 출간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하루 한 줄, 행복에 물들다』 『인생프로파일링, 삶을 해부하다』 등을 출간했다. 옮긴 책으로는 『폭력의 해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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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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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Zombie)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형 좀비 영화의 가능성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에 이어, 칸 영화제 초청작 〈반도〉가 코로나로 침체된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 역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K-팝' 열풍을 넘어서는 'K-좀비' 시대라고 하면 독자의 편견일까.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영화에서는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며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을 기점으로 해서 <좀비오><바탈리언>과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 좀비영화는 대개 사회 풍자적이거나 블랙 코미디 성향이 강하다. 이 사회 풍자가 좀 막 나가면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좀비영화 같지가 않은 괴작들도 종종 나온다. 일반적으로 좀비영화라 하면 시체, 피, 고어. 괴작 중에는 심지어 전쟁에서 죽은 것이 한이 되어 투표권을 행사하려고 군인 좀비들이 국립묘지에서 부활하는 미쿡 좀비영화도 있다(《마스터즈 오브 호러》 1시즌 6편 '귀향<Homecoming>').

이 책은 좀비 장르가 소수 마니아층의 전유물이던 시절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오늘날까지 무한한 상상력으로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왔던 자타공인 ‘좀비 전문가’ 정명섭의 장편 소설이다. 미스터리, 서스펜스, 호러, 로맨스 장르를 아우르는 들녘 〈미스티 아일랜드〉 시리즈의 신간으로 선보인다. 책의 제목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에서 '그들'이 바로 좀비다.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살아 있는 시체, 즉 좀비들이 지구를 잠식한다. 인류는 좀비들을 피해 우주로 도피하였다가 102년 만에 귀환하는데, 폐허가 된 지구에 다시 돌아온 이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2012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절찬리 연재되었던 바 있으며, 오늘날의 감각에 맞게 다듬어 정식 출간한다. 여기에 따뜻하고 몽환적이면서 개성적인 작품 세계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산호가 표지 및 삽화를 그렸다. 작품 속 세계를 선명한 시각 이미지로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좀비물이라는 장르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긴 하지만, 그 시초는 오래전 일인 까닭에 많은 이들에게 비교적 친숙하고 일종의 클리셰까지 형성되어 있는 장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비물의 핵심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이언스 픽션 장르까지 접목하여 새롭고 독창적인 서사를 펼쳐 보인다. 단연코 올여름 기대할 만한 신작이다.


좀비 상상도 시사상식사전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구인류라 불리는, 좀비 바이러스 발생 당시를 살았던 인간들의 이야기와 우주에서 태어나 한 번도 지구를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신인류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며 소설의 서사를 이룬다.

좀비 바이러스 확산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인류는 우주로 이주하고, A.D.의 종식과 함께 좀비 아포칼립스, 즉 Z.A.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한다. 하지만 필요한 자원은 물론 산소조차 얻기 힘든 우주에서의 생활은 고달픈 것이었다. 그리하여 102년 만에 인간은 지구로 돌아가기를 선택하고, 곳곳에 선발대를 보낸다. 그중 한반도 원정대장으로 파견된 K-기준은 현지를 정찰하던 중 우연히 구인류의 일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일기를 통해 좀비 출현 사태 당시의 상황을 파악해간다. 맨 처음 아칸소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유행병처럼 퍼져나간 좀비 바이러스는 차츰 일상의 균열을 내고 모든 사회 질서를 전복하며 남은 자들의 인간성까지 파괴해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한반도 원정대는 예측 밖의 돌발 상황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고, K-기준은 곧 사령부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으며 지구를 되찾기 위한 또 다른 사투가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세상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자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정말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상상의 나래와 함께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호러 장르의 수많은 분과 중에서도 유독 좀비 장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좀비 장르는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만들어내는 불가해한 공포와 재앙 및 재난 서사가 만들어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두려움 사이의 영역에 위치해 있다.

일상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라는 현실적인 공포와 좀비라는 대상이 주는 비현실적인 공포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좀비 장르는 일상의 위기에 반응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한 점에서 좀비물은 상당 부분 현실의 반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어느 날 등장한 좀비 바이러스로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목도하면서도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하였다. 그러면서도 우주 세대 신인류의 시각을 통해 서사를 전개해간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상상력을 배가하는 장치도 잊지 않았다고 평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상의 끝에서 자신의 모든 소유와 인간애까지 가진 것을 다 잃고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 살아남겠노라고 다짐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생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확인해줌과 더불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때는 Z.A. 102년. Z.A.란 좀비바이러스가 팬데믹 사태에 이르러 전 지구가 좀비에 의해 잡아먹힌 사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우주로 떠난 인류가 102년이 지나 다시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 곳곳에 착륙해 생존지를 확보하려는 원정대. 그 가운데 한반도에 도착한 팀을 중심으로 사건은 진행된다. 과연 이들은 지구 정착에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 아칸소에서 시작된 독감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고 한반도는 서울을 시작으로 수도권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심정지 후에도 움직이는 시체의 출현에 미국 당국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정보가 밖으로 유출되지 못하게 하는 데만 급급해하는 사이 사건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그런 아비규환 같은 상황에서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지구를 탈출한지 어언 백여 년, 시뮬레이션대로라면 좀비가 멸종했을 거란 예측을 토대로 지구파는 11개 탐사선을 꾸려 세계 곳곳에 탐사팀을 보내 지구의 근황을 살펴보기로 하지만 대부분의 탐사선은 지구 착륙 도중 불안한 기체 결함으로 인해 사라져 실제로 지구에 발을 내린 탐사선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한반도에 발을 내린 K-기준이 선두로 이끄는 탐사선은 지구에 닿자마자 좀비와의 격렬한 싸움을 한 뒤 곧 뒤따라 올 지원팀을 맞이하기 위해 정착지를 만든다.

그리고 다음날 주변 정찰에 나갔던 K-기준은 맨홀 밑으로 빠져 고립되고 어두운 곳에 혼자 갇혀있다는 사실보다 좀비가 있을지도 모를 두려움 속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때 오래전 좀비 출현 당시의 상황을 지구인이 기록해 놓은 일기장을 발견한다.





기장의 주인은 이대 앞 치즈베라는 카페에서 일하는 청년으로 미국에서 발생한 아칸소 독감이 전 세계로 퍼지는 상황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다. 그럼에도 아직 한반도까지는 영향이 미치지 않아 긴박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윽고 정부의 조치로 항공이 폐쇄되고 사람들의 사재기가 시작되면서 점점 혼란스러움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프리덤 워치라는 단체가 미국이 숨기는 영상을 보여준다 .

그렇게 조금씩 밝혀지는 아칸소 독감의 실체가 죽지 않고 썩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는 인간이었으니 점차 수가 증가하면서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고 일기장의 주인공을 비롯해 프리덤 워치 멤버 몇 명이 모여 카페를 아지트화하기 시작한다.

버려진 건물처럼 보이도록 꾸미고 장기전 돌입을 위해 비상식량과 무기 등을 구비해놓던 젊은이들은 좀비 소탕에 나선 군인들의 등장에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좀비와의 전투는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아닌 군인의 개입으로 아군 간의 피 터지는 전쟁이 군인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불투명해지기만 하다.





좀비 이야기라고 하면 다소 뻔한 스토리대로 이리저리 끌고 가다 결국엔 비스무리한 결말로 마무리가 되곤 하는데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도 그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그런 뻔해 보이는 스토리보다 좀비의 출현으로 당장 내가 살기 위해 약자를 내쳐야 하는 인간 상실에 비중을 두고 있어 눈앞에서 뇌수가 터지고 팔다리가 잘리는 장면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 널브러져 있는 것에 무덤덤해지고 당장 내가 살기 위해 돌이 갓 지난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는 애 엄마의 눈물 어린 호소를 외면해야만 하는 현실은 내가 살아남고자함인 본능이지만 당연히 느낄 인간애까지 버려야 할 때의 그 고통은 죽음과 견주었을 때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점들이 소설 속에 녹아 있어 좀비 소설임에도 지금껏 보았던 좀비 소설과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달에서 채취한 석영을 정제해 만든 관측창으로 본 지구는 온통 잿빛이었다. 왠지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K-기준은 공용어인 영어로 중얼거렸다.

“지구는 밝고 찬란한 녹색이라고 하지 않았나?”

“웬걸. 데이모스보다 더 어두운데.”

그들에게 Z.A. 이전의 지구는 물과 대기가 무한하고, 필요한 광물질이 모두 존재하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어쩌면 그런 꿈같은 기억 때문에 인간들은 지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비에게 희생당하고, 핵폭발로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말이다. 여하튼 드디어 인간이 이 땅에 다시 돌아왔다. 백 년만에.





“좀비들은 주로 남동쪽에서 나타났네. 하지만 나흘 전까지는 그쪽에 위협이 될 만한 좀비 집단이 없었어. 그런데 이걸 봐. 사흘 전 저녁에 찍은 거야.”

홀로그램 이미지가 변하면서 좀비를 뜻하는 녹색 점이 지도 위에 표시되었다.

“좀비 무리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마법처럼 갑자기 나타났어. 그리고는 곧장 우리 쪽을 향해 진군해왔네. 마치 군대처럼 말이야.”

“그래도 출몰한 곳이 있을 거 아닙니까?”

“의심 가는 곳이 있긴 하지.”

사령관이 손으로 홀로그램 지도의 끝을 찍자 지도가 그쪽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인공적인 구조물들의 홀로그램이 솟아났다.

“이건 뭡니까?”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구조를 보면 군사용임이 틀림없어. 지명도 확인했다네. 평택이야.”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그래, 꼬맹아. 인간이 지구를 되찾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해. 하지만 적어도 그 피는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지 않고 대지에 뿌려지겠지. 지구에서 인간으로 죽는 거야.”

우리는 동시에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스쿠터가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자빠질 때까지. 와당탕 넘어지면서 그녀와 부딪치는 바람에 이마가 얼얼했지만 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

짧은 입맞춤 후 그녀는 두렵지만 이겨내보겠다고 말했다. 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켜주겠다고 대답했다.





저자 : 정명섭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과 바리스타를 거쳐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대중 강연을 병행하고 있다. 글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은밀하거나 사라진 공간을 얘기할 때 빛이 난다고 믿는다. 그동안 쓴 작품으로 역사추리소설 『적패』를 비롯하여 『개봉동 명탐정』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유품정리사』 『한성 프리메이슨』 『어린 만세꾼』 『상해임시정부』 『살아서 가야 한다』 『달이 부서진 밤』 『미스 손탁』 『멸화군』 『불 꺼진 아파트의 아이들』 『어쩌다 고양이 탐정』외 다수가 있다. 그 밖에 『조기의 한국사』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조선 사건 실록』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라』 『역사 탐험대, 일제의 흔적을 찾아라』 등의 역사서와 함께 쓴 작품집 『일상감시구역』 『모두가 사라질 때』 『좀비 썰록』 『어위크』 등이 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상을 받았다. 한국 미스터리작가모임과 무경계 작가단에서 활동 중이다.


그림 : 산호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상상을 눈앞에 옮기고 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픽노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을 출간했으며,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그림 속에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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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K-포엣 시리즈 13
이영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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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는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은 이영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동시에, 적절한 무게로 이영주 시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시집이다. ‘K-포엣’ 시리즈 열세 번째 시집이다.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시인을 시에 대해 “거대한 상실의 시간을 삼킨 채 존재하는 삶을 그린다”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깊게 드리워져 있는 불행 등을 부정하지 않고, '포개어진 손으로 백지를 가득 채우며' 삶에 대한 도전을 이어 간다고 평했다.

이따금 그 불안을 딛게 해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록하며. 시인의 삶의 의지를 시인이 쓴 죽음에서 찾아낸 듯하다.

함께 출간된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영문판에는 이영주 시인의 시 세계를 오랜 시간 들여다 본 김재균 번역가의 번역이 실려, 시의 해석과 품격을 높였다.





이영주 시인의 시에는 늘 죽음이 어른거린다. 얼핏 죽음을 '삶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옥의 다양성. 나가고 싶어. 나는 슬픔처럼 얼음에 끼어 있다. 하지만 넌 유리 유골 공예처럼 죽음까지 다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며 말했다. 걸어가면서 파편이 떨어진 한밤을 뒤돌아보곤 했다.(하략)

<빙하의 맛>


다마스쿠스의 이야기꾼들은 몇 세기가 넘도록 카페에 모여 있지. 나는 카페 문을 닫을 수가 없네.


이야기꾼들은 불빛 아래에 모여 서로의 사랑에 대해 물어본다. 세계에서 제일 끔찍한 일에 대해 물어본다. 어떤 자는 깊숙이 앉아서 생물이란 천천히 짓밟히면서 섬세하게 자란다고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어두운 마음에 대햐여 이야기하고 있다. 의자 곁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검은 생물체와 마주보고 있어. 어떻게 이 오랜 시간을(하략)

<생활적인 카페 주인>





시인은 <시인 에세이>를 통해 덧붙인다.


안경을 썼지


이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매일매일 망명을 생각한다.

열하홉. 일기에 쓴 문장이다. 아, 이런 허세라니.

인간이 자아를 형성하는 데에는 동일실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는 돌 같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든 돌이든, 우리는 격렬한 불안의 세계로 내던져진다. 그 사라과 그 돌과 나는 다른 층위에서 걸어 나왔잖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잖아. 태어나서 죽는 위치도 다르니까. 심지어 죽지 않는 돌은 어쩌니. 물론 죽는 순서는 뒤비뀔 수 있다.

(하략)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이영주의 이번 시집은 그간의 이영주 시집의 존재 여부를 무의미하게 여기게 되는 지점에서 읽힌다. 대부분 새로운 시집은 앞선 시집들이 일궈놓은 성과의 연장으로서(그 의미가 하나의 맥락을 이루는가 그렇지 않는가와 무관하게) 읽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주목을 요하는 하나의 지점을 갖는다. 어째서 이 시집에 묶인 시집들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쌓은 이영주 시의 세계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는 이어 "무엇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기' 자체에 의미를 두듯이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눈물집]에서 말하듯 "죽었는데도 왜 형태를 보존하는 일에 그렇게 힘을 쓰는지"와 같은 물음의 형식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데도 그 삶을 지속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어째서 어떤 삶은 그 삶과 연결된 또 다른 삶들에게 '삶이란 단절의 형식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물음이 절실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의 삶'의 상실을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흘러가는 것'에 주목하는 이 시집 속의 특별한 시선에 주목해볼 수 있다. 여기서 흘러가는 것들은 '흐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비자발적인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가족의 죽믕을 목격하고 경험한 삶에게 죽음은 생을 마치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듯 살아 있어야만 했을 그 모든 순간들에, 그 삶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듯 실제로 죽음을 맞을 때와 같은 굵직한 국면들 외에도 그 사이를 메우는 무수한 기억들 속에서 그는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주의 시는 그 역설적인 삶의 방식ㅇ르 '흐르는 것'이라는 존재 양태로 그려낸다.

삶은 그저 흐르는 것 속에서 발견되고, 흐르는 것은 그것을 흐르게 하는 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채로만 계속 흐를 수 있다는 것. 이 점을 시인은 말하고 있나 보다.

독자는 제목 속에서 '이 여름의 나'를 생각해본다. 코로나와 집중폭우 속 어수선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의 고통도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기 힘든 것이라면 동반하면서 그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죽음 같은 고통이라도.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읽고 싶은 한국 시의 정수를 소개하는 ‘K-포엣’ 시리즈. 시간이 흘러도 명작으로 손꼽힐 한국 시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함과 동시에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 세계에 알리어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발돋움시키고 있다.


저자 : 이영주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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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란 무엇인가 - 맨날 속는 국민을 위한 진짜 국회 설명서
신상준 지음 / 생각의창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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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란 무엇인가』란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독자 개인으로선 어렸을 때부터 정치엔 큰 관심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의 범위 자체에 없었다. 집안에 정치하시는 분도 없는 데다 독자 성격상 정치와는 안 맞는다는 스스로의 판단 결과다. 더욱이 그들이 저지른 비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는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란 생각으로 국회뿐만 아니라 정치인 자체가 싫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정치 일선에 들어서고 정책적으로 국민의 아픈 부분이나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법 제도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부터다. 군부 독재시절 학교를 다니고 사회 첫 발을 내디딘 많은 분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라 봐도 무방할 때였다. 군부 독재시절엔 그야말로 순치됐기 때문에 별 희망도 갖지 않아서 그런 장면은 가슴이 설렐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느 교수가 서양 사상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당신보다 더 멍청하고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란 말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 정착 단계까지 왔다고 대외적으로 인정 받게 됐다.

그런데 민주주의 본산이란 국회는 왜 아직도 서로를 바방하고 심지어 몸싸움에 막말까지 하며 싸우나? 하는 의문이 많이 일었다. 이 책은 그런 의문을 해소해줄 적절한 책이란 생각이다. 부제에 "맨날 속는 국민을 위한 진짜 국회 설명서'라고 쓰여 있다.





『국회란 무엇인가』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놈이 그놈'이라며 불신하고 욕만 하는 국회에 대한 이야기다.

‘국회를 알아야 나라가 산다’는 사명감으로 저자 신상준이 집필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헬조선’이라 불리는 곳에서 태어나, 새벽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최저임금의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도 생애 첫 선거권 행사에 설레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국회란 어떤 곳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썼다.

‘국회’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문헌조사를 병행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그만큼 이 책은 전 국민의 인문학적 상식 쌓기를 위한 정치 교양서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했다는 얘기로 읽힌다.





저자는 책에서 자문자답하며 책이 왜 썼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을까.

“국회선진화법은 무엇인지?” “패스트트랙은 무엇이고, 연동형비례대표는 또 무엇인지?” “선거권은 어떻게 주어지는지?”

“국민과 국회의원의 관계는 무엇인지?” “대통령은 임기 중 탄핵할 수 있는데, 국회의원도 탄핵할 수 있는지?” “국회의원을 탄핵할 수 없다면 왜 그럴 수 없는지?” “국회는 왜 맨날 싸우는지?”

아마 대다수의 우리는 제대로 된 답을 못하고 진땀이 흐르는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하기 위해 쓰였다.

“국회란 무엇인가?”가 “정치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일 정도로 국회가 곧 정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국회는 우리 정치에, 아니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로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나라의 주인이라는 우리는 어떤가?

국회를 잘 모른다. 아니 모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불신한다. 그리고 욕만 한다.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이 대목에선 독자도 '뜨끔'한다.

이 책은 이런 국회를 알기 위해, 국회의 기원에서부터 역할, 기능 등 우리가 알아야 할 국회의 모든 것을 이론화하고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이 한 권이 정치 교양서로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상식과 지식 쌓기에 도움이 되길 기원하는 저자의 마음을 담아서.





중앙정부의 의회인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우리는 매일 국회나 국회의원들이 한 일을 뉴스로 듣는다. 하지만 정확하게 국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원들이 모여 중요한 국가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곳이다.

이 모든 것은 다수인 국민의 뜻을 대신 전달하기 위한 곳으로 의회의 권한 중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은 입법에 관한 사항이다.

입법은 법률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회의 실정은 어떨까? 국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싸우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국회에서 서로 싸우는 국회의원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국회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국민의 대표로 여겨지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있기에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토론과 거국적 협상을 통해 다양하게 분열된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것이 국회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인 대의 민주주의는 공개성과 투명성을 이념적 바탕으로 한다. 특히 대의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자유는 아주 중요하다. 언론기관이 공평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작동이 불완전하기도 하다.

국가가 언론기관의 독과점 현상을 방지하고 자유 언론 제도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해소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이유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개인의 자유도 보장되고 민주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으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해 독재의 우려가 있다. 물론 이런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현대는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퍼져있는 가짜뉴스가 오히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일부 매체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다. 지적이 받아들여져 가짜뉴스를 만들어 사익을 위해 쓰는 사람들이 받아들일지는 그래도 의문으로 남는다. 국회의원들이 뉴스를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회에서 '진짜 뉴스'만 발언할 정도로 정보와 지식이 있을까도 의문이다.





또다른 의문(과제)을 내놓은 채 이 책은 끝맺는다. 책의 주제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순수하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를 말한다.

또 국민이 국회와 정치인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도출된 문제들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제기된 문제에 국민과 정치인들이 각자 관심을 갖고 해결에 뜻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집필의도고 국회가 할 일의 첫 지점이다.


저자 : 신상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법학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은행 법규실, 조사국 등을 거쳐 금융안정분석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8년에서 2010년까지 바젤은행감독위원회, 바젤Ⅲ 개정을 위한 자본 정의 그룹에 참여했다. 한국은행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가족이 있는 삶’을 지향하며 주말 저녁 식사를 직접 마련한 지 15년이 넘었다. 2016년 11월, 대학생 딸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난 뒤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광장에 울려 퍼지던 평범한 주권자들의 외침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왔던 것이다. 길거리 분식점이나 커피 자판기 앞에서 평범한 주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는데, 이 땅의 수많은 법률가와 정치인, 학자와 엘리트 가운데 그 누구도 민주주의와 공화국과 대통령과 탄핵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갑갑함을 느꼈다. 숭고한 광장의 주권자들과 마음속의 울림에 응답하기 위해 새벽 3~4시까지 숱한 문헌을 뒤적이며 정리한 투박한 공부의 결과로, 2017년 3월 《평범한 주권자의 탄핵공부》라는 책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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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리를 꿈꾼다 -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 : 심화 편
임상빈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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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렵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느낀다. 클래식 콘서트에 가서 연주나 노래를 만나도 확 닿는 느낌이 별로 없다.

예술에 직접 참여하는 예술가들을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은 '예술은 어렵다'에 쉽게 동의한다. 물론 학문도 문외한에게 느낌이나 감동을 먼저 주지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공감이 가야 비로소 감동도 되고, 아름다움과 숨겨진 메시지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라는 제목에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이란 부제를 붙였다. 독자 입장에서 잘 된 제목이라 생각지 않는다. 제목이야 주어와 목적어가 도치됐더라도 우리와 예술을 동급으로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건 없다. 우리와 예술이 공감대를 이룬다면 문제될 것도 없다.

부제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통찰이란 말도 쉽게 의미가 잡히지 않은 단어인데도 '예술적 인문학'이라니 이 무슨 언어의 향연인가. 독자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비롯됐기를 바란다. 만일 '예술이 전공한 사람들만의 전유물, 소수만을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 편견 말이다.

저자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지금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예술 엘리트다.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위치도 확고한 것 같다. 예술 엘리트인 저자가 일반 대중을 위해 책을 쓰는데 제목부터가 거부감이 드는 무지몽매한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시킬지가 사뭇 관심이 간다.





저자 임상빈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술의 중요성, 인문학으로써의 예술, 자기 계발을 위한 예술의 세 가지다. 결론은 예술적 삶을 살고 예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1장에서 <예술> <인문> <통찰>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서두를 연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본 작품의 이미지는 우리의 상상과 다르다. 저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실제로 봤을 때 훨씬 작았다고 회고한다. 뉴욕의 더러운 길거리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름에 충격이었다고 한다. 작품 자체가 뿜어내는 매력은 좋은 것인데 그것의 유명세에 편승해 유혹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을 상상하고 들은 것에 기초해 직접 가서 보면 실망한 점도 있을 것이다. 독자도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그 경험이 정말 있다. 모나리자를 봤을 때 그랬다. 그러나 박물관 규모는 크고 웅장한 것에는 경이롭다고 할 만큼 놀랐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며 ‘미술을 막연히 어렵고 멀게만 느끼는 현실, 갇혀 있는 사고방식과 죽은 지식으로 답답하게 전해지는 예술’이 안타까워 선입견을 넘어 예술의 매력을 함께 나눌 예술 인문학 시리즈를 구상했다. 앞서 선보인 첫 책에 이은 심화 편,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에서는 “예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고 드러내는지,” “예술 작품은 어떤 도구와 요소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시되는지, ” 또한 “예술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탐험한다.

이 책은 도입부에 문어체로 화두를 던진 후 ‘사방으로 튀며 생생하게’ 이어지는 다채로운 대화로 구성된다.

저자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인 아내와 딸, 다른 이들과의 대화 상황을 비롯해 여러 담론이 담겼다. 더불어 곳곳에 유년기부터 유학 시절, 현재까지의 삶을 솔직하게 녹여낸 통찰과 생각들을 풀어낸다. 편안한 이야기 속에서 ‘미학, 예술, 역사, 철학, 사상, 사회’ 등 폭넓은 지식을 아우른다.

눈으로 보며 머릿속에서 들리는 그 대화와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미술에 대한 넓어진 시야와 마음에 남는 묘한 여운을 경험하게 된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 많이 봐왔던 것이 꽤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작품에 대해 많은 듣고, 본 것도 있고, 다른 책이나 영상을 통해 배운 것도 있다. '환영'인데 실제보다 생생하게 생각되는 신기한 작품도 있다. 예술은 이렇게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나 보다.

저자는 '마술적 환영주의'라고 풀이한다. 사실적인 이미지, 느낌 오는 이미지, 다중 감각적인 느낌을 포함한 일종의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도구적 측면, 즉 작품을 어떤 도구로 만들 것인가? 저자는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아쉽게도 미술학과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그 과목의 이수 학점수를 줄이는 추세여서 안타깝다고 한다. 저자는 입대했을 때 선임들의 자화상을 그린 예를 들고 있다. 재료의 중요성과 함께 작품을 어떤 요소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전시하며 우리는 그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만이 예술품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누구나 작품을 설계하고 구상할 수 있다. 노래방세서 누구나 가수이듯 예술도 언제 어디에서나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주장에 공감하자 실제로 예술작품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자꾸 정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불현듯 생긴다. 주입식 교육에서 교과서에 실린 미술 작품과 화가들은 나의 생활, 나의 삶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선입견이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면서 천천히 읽다보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자질이나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쯤 되니 저자가 제목과 부제에서 사용한 부조화하고, 어려운 단어를 꿰맞췄다고 잠시 생각했던 독자의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을 고백한다.





독창적인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작품 등 다양한 창작을 이어 온 예술가인 저자는 ‘책’이라는 매체에서도 개성을 발휘한다. 현실감 있는 ‘대화’는 낯설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마치 예술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흥미롭게 만나도록 돕는다. 나아가 인문학적 지식 전달을 넘어 독자 스스로 능동적인 사고의 주체로 삶을 돌아보며 한결 자유롭고 행복하게 예술을 누리는 계기를 주고자 한다.

이 모든 시도는 사방으로 자유롭게 뻗는 ‘열린 사고와 대화’, ‘멀지 않은 예술’을 지향하는 저자의 순수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독자는 추측한다. 페이지마다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독자들과 마음을 나누려는 진심이 가득하다는 게 오롯이 전해져온다.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에서는 다채로운 비유와 의인화한 알레고리를 통해 예술 자신의 속마음과 예술의 절친한 친구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예술 작품은 경직된 지식과 특정한 방법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저마다 느끼는 대로 누리면 된다는 당부로 미술 감상의 높은 문턱을 낮춘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인생의 감독으로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예술가임을 강조한다. 맥락에 따라 오랜 역사를 가진 고전 작품은 물론, 최근의 현대 미술 작가와 작품들까지 폭넓은 예시들이 언급된다.

그렇게 인류와 함께 수많은 흔적으로 이어져 온 예술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꿈꾸는”, 인간을 위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목차를 살펴보면 독자들이 편하게 저자와 교감할 수 있도록 잘 구성돼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한눈에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며, 어떤 도구를 사용하며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을 설명한다. 물론 저자가 미술가이기에 미술 위주의 설명이 이어진다. 완성된 예술작품이 어떻게 전시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마무리로 책을 전개시킨다. 같은 그림이라도 전시되는 장소에 따라 또 배치에 따라 주는 인상이 달라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본질은 같은데 놓인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찾아가는 작업이 예술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본격 이론들은 기대보다 다소 어렵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운 대목이 중간 중간 드러나오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가끔 철학 이야기까지 등장하여 당황할 수도 있다. 또 대화식으로 이어지는 미술 이야기에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독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읽는다면 마지막 책을 덮을 때는 유명 철학자의 강의보다 저술가의 어려운 말보다 훨씬 예술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는 놀라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미술 이야기를 글로, 말로 오래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미술은 시각 예술인데 작품 자체를 보지 않고 얘기를 이어간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자칫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조금만 갖고 저자의 예술론을 듣는다면 달콤하고 아름다운 작품 감상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고.





저자 : 임상빈


1976년 서울 생으로 어려서부터 미술작가가 꿈이었다. 예원학교 미술과,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풀브라이트 한미교육위원단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학교 대학원 회화와 판화과(PAINTING & PRINTMAKING)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티처스칼리지 미술과 미술교육과(ART & ART EDUCATI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미국 등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더불어, 세상을 살면서 깨우친 자신의 예술적인 통찰을 여러 방식의 글쓰기로 기록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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