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교통
정병두 지음 / 크레파스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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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물물교환을 하기 전부터 모여 살았다. 가족 단위가 시간이 지나고 친척, 부족, 국가로 집단화했다.

집단화되면서 집단 간의 잉여생산물(주로 곡식이나 가축, 농기구 등)을 교환해 사용했고, 교환물을 용이하게 운반하기 위해 육로는 물론 강과 바다 등을 수로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물물교환과 수로로 이용되는 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한 번 도시화가 되면 전쟁이나 대규모 감염병, 자연재해를 입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번성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자 이젠 운반을 위한 교통로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어려워졌다. 정책적으로 인구 분산책이나 대체 도시 발전을 꾀하기도 했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국가는 세금을 많이 내는 상인이나 무역 종사자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교통 편의를 정책적으로 해결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 계획적으로 도시화가 된 곳도 일정 기간 지나면 늘 교통 문제가 닥쳤다. 쇠퇴해 폐허화된 곳이 아니면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고, 도시화는 결국 교통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더욱이 산업혁명 이후 지나친 화석연료 이용으로 기후변화가 대두되자 환경문제까지 겹치면서 어느 나라나 국가적 난제가 된다. 교통과 환경은 정반대 개념으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간혹 전쟁이 나면 전략적 이용을 위해 설치된 곳이 전쟁 후 도시화가 되기는 했지만 강 유역이나 바닷가가 대체적으로 상업화되기 쉬운 조건이었다.





이젠 각 나라들은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및 환경보호 요구 등 전 세계적 여건 변화에 발맞추는 도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이것은 관련 분야 관계자들만의 논의가 아니라 모두가 고민하는 과제이자 함께 이루어야 할 ‘모두의 일’이다. 도시 시스템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교통 역시 전공 학생이나 실무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통’이어야 한다. 이에 교통공학을 전공한 정병두 교수는 세계 곳곳을 돌며, 도시 공간의 특색을 살린 교통에 대한 정보와 함께 자신의 견해를 담아 『도시와 교통』을 펴냈다.

교통수요관리, 교통정온화, 대중교통 중심개발, 간선급행버스체계, 환경친화적인 트램, 보행자 및 자전거와 공유하는 통합가로 등 사람 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한 교통을 구축하기 위한 고민과 해법을 담은 『도시와 교통』.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 스마트모빌리티로 만드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구성했으며, 국내 도시재생 활성화와 인간과 환경을 생각한 지속가능한 도시, 미래가치 지향의 사람 중심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을 살펴본다.





1장에서는 환경과 교통의 관계, 지속가능한 교통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며, 2장에서는 교통정온화, 최고속도규제, 보행자공간, 교통약자의 이동원활화 등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을 짚어본다. 3장에서 대중교통 중심 개발과 복합환승센터, 간선급행버스, 친환경 교통인 트램, 트랜짓 몰 등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를 다룬 데 이어 자전거 공유시스템 공용자전거, 승용차 공동이용 카셰어링, 실시간 주차관리시스템 스마트주차, 미래의 모빌리티 서비스 등 스마트모빌리티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여러 방법을 4장에서 다루었다. 이를 통해 교통의 현재를 돌아보고 환경과 어우러지는 교통의 미래를 생각한다. 나아가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할 도시를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을 찾아본다.


1장 :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

환경과 교통 / 지속가능한 교통 / 교통수요관리 / 혼잡통행료

2장 :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

교통정온화 / 최고속도규제, 존(Zone) 30 / 보행자 공간 / 교통약자의 이동원활화

3장 :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를 꿈꾸며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 복합환승센터 / 간선급행버스(BRT) / 친환경 교통, 트램 / 트랜짓 몰

4장 : 스마트모빌리티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자

자전거 공유시스템 공용자전거 / 승용차 공동이용 카셰어링 / 실시간 주차관리시스템 스마트 파킹 / 미래의 모빌리 티 서비스


불과 20여년 전에 발표된 교통 문제 해결 논문은 몇 개만 살펴보더라도 대략 노약자와 장애자를 위한 교통시설, 자전거와 자동차, 교통수요관리, 화물수송, 버스, 전철 지하철 및 환승시설, 수운 등에 맞춰져 있던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친환경적으로 바뀌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을 생각하는 친환경 교통이란 무엇인지,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재생과 창조도시의 지속가능한 교통 역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친환경 교통 시스템과 그 도시만의 고유한 공간과 문화와 어우러진 교통 시스템을 들여다봄으로써 역사와 문화 예술의 도시가 어떻게 교통과 어우러지며, 교통 역시 그 도시만의 색깔을 어떻게 가꾸는지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지속가능하며 모두를 위한 교통 시스템 구축과 관련된 내용들을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담고 있는 『도시와 교통』.

일반인들에게는 교통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교통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실무자들에게는 지속가능한 교통 시스템의 방향을 짚어줄 것이다. 사람과 환경이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교통, 모두를 위한 교통을 함께 찾아간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온실가스 농도가 가장 많이 증가하여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그 원인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교통부문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친환경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가까운 곳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p. 15>





안전속도 5030 시행으로 사람이 안전한 도로를 만들어나가다

국토교통부는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를 위해 2016년 ‘교통사고 사상자 줄이기 종합대책 시행계획’에서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를 OECD 중위권 수준인 1.6명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교통안전 시행계획으로 어린이와 노인 등 보행교통사고 감소를 위해 생활도로구역, 어린이와 노인 보호구역을 확대하고, 통행속도를 30㎞/h 규제 제한 등 최근 경찰청에서 ‘안전속도 5030’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p. 101>


도시개발, 대중교통을 먼저 생각하다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이란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보행권과 역세권을 공간 범위로 대중교통 친화적인 공간이 조성되도록 도시를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저밀개발과 도시확산(Urban Sprawl) 등으로 환경과 교통 문제를 경험한 북미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성장과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개발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p. 155>





퍼스널 모빌리티 시대를 열다

근년 친환경 차량 개발 투자와 기술 경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스마트시티 교통서비스에 있어서는 자율주행셔틀 서비스, 퍼스널 모빌리티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모든 교통수단을 통합해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통합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스(MaaS)가 대중교통 이용 서비스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 본문 중에서>


저자 : 정병두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교통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매년 방학 때마다 전 세계의 특색 있으면서도 시민과 어우러지는 도시들을 찾아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CITY 50,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교통》을 펴냈다. 특히 도시 공간의 특색을 살리는 교통, 이용자의 편리와 교통 약자를 배려하는 시스템, 환경을 생각하는 교통관리체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크레파스북에서 출간한 《도시와 교통》 역시 이러한 발품과 연구의 결실 중 하나다.

주요 저역서로는 《CITY50,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교통》(2016), 《지구교통계획》(2015), 《공간과 생활〉(2013), 《지구교통계획 매뉴얼》(2013), 《지속가능교통》(2013), 《살고싶은 도시100》(2012), 《가로환경 매뉴얼》(2003)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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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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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에세이(essay)는 중수필(formal essay), 미셀러니(miscellany)는 경수필(informal essay)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 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요즈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에세이로 불리우는 것 같다. 중수필의 부재 탓인지, 경수필의 확장 탓인지 모르지만.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 그 기원을 둔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또는 '시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exiger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essai'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이다. 몽테뉴는 원래 법률을 전공한 법률가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보르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법관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법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지신의 성(城)에 은거하여 사색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이때 그는 유명한 『수상록(隨想錄)』을 저술하였는데, 바로 이 '수상록'이 불어로 'Les Essais'인 것이다. 그리고 이 'Les Essais'가 이 세상에 처음 나온 때는 1580년이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1597년에 를 초판 발행하는데, 이 후 1612년과 1625년에 각각 수필 작품들을 추가로 수록하여 발행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10편이었던 수필 작품수가 1625년에는 다시 배 이상으로 늘어난 58편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추고(推敲)도 거듭하였다. 베이컨의 에세이는 중수필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사전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는 미셀러니에 속할 터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떠나 수필의 의미는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다. 좀 의역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의 마음에 얼마나 와 닿느냐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잘 쓴 수필임에 틀림없다.

'잘 쓴 수필' 하면 20세기 세대는 피천득의 '인연'을 꼽는다. 아사코(일본 여성)에 대한 추억을 담담히 써내려가 독자들의 가슴속에 명작으로 남아 있으니. 이처럼 오늘날 에세이는 경중의 구별 없이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모두 그렇다. 마음이 통한다면 무슨 내용을 담든 글은 매력적이고 궁극적으로 잘 쓴 수필로 남을 터이다.

이 책은 출판사 수필 공모에서 선정돼 출간된 책이다. 당시 심사위원은 심사평을 "우리 관용구 가운데 ‘한 방 먹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소 속된 표현으로 ‘말 따위로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다.’라는 뜻이다. 이 관용구에 나오는 ‘한 방’이라는 낱말을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에 끌어들이고 싶다. 여기의 ‘한 방’을 대체할 적절한 낱말이 안 떠오기 때문이다. 이 수필집 모든 작품에는 ‘한 방’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민혜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는 해드림출판사에서 수필집으로는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기획한 수필집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50여 권 분량의 작품이 들어왔는데, 민혜 수필가는 곧바로 응모를 하여, 다른 이의 작품보다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발굴’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어쩌면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될지 모른다는 예상을 하였다.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이 들어올까 싶을 만큼 공모 의도에 흡족하였기 때문이다. 응모한 작품을 모두 검토한 결과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민혜 수필가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고급스럽다. 사유와 표현력이 뛰어나고, 문장들을 맛깔스럽게 구사한다. 수필이 이처럼 멋진 문학이구나 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여담이지만 수필가로 등단한 작가의 수필집이 출간되면 몇 권이나 팔릴까는 독자로서도 당연한 의문이다. 비교적 오프라인 판매가 많다는 수필(에세이)은 여린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은 게 현실이다. 또 마음의 스트레스 등 상처를 입을 경우 읽으면 심리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힐링'으로서의 책이 많이 나와 있다.

20여 년 출판 관계 일을 한 분이 밝힌 바는 일반 독자가 구매하는 수필집은 1년 동안 채 열 권도 안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혹독한 현실이다. 수필이 얼마나 멋진 문학인지 보여주고 싶어 출판을 기획하고 공모를 통해 책을 펴냈다는 출판사의 고충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독자에게든 특별히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수필집이 필요하였다.

냉정한 독자의 시선과 마음을 유혹해 수필 독자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는 한 출판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책이다.





"삭막해져 가는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데는 수필만 한 문학이 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독서’ 하면 수필이라는 신념에도 변함이 없다. 수필이 국민문학이 될 때 대한민국은 행복지수 1위 국가가 된다는 것을 자신한다.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인연, 문단의 연륜이나 지위 등은 냉정하게 외면한 채 오로지 작품만 보았다. 따라서 이번 도전이, 독자들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며 수필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독자의 지성과 감성을 오지게 자극하며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살가운 동반자가 될 줄 안다."

판매를 자극하는 출판사 측의 말이라 감안해도 수필문학에 대한 자신감과 사명감, 그리고 우리 출판업계의 앞날에 희망적이라는 점에서 독자도 적극 공감한다.

가곡 ‘아마릴리’는 사랑을 호소하는 노래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 마음속 소망의 여인이여…

내 가슴을 열면 심장에 쓰인 것을 볼 수 있으리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내 가슴이 작은 나뭇잎처럼 떨린다. 작곡자 카치니와 그 노래를 영원으로 승화시킨 베냐미노 질리에게 선망을 느끼며 나도 같은 호소를 올리려 한다.

“내 마음속 소망의 독자여, 벗이여, 제 책을 열면 제 심장에 쓰인 것을 볼 수 있어요. 저와 함께 웃고 울지 않으실래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살아온 흔적들을 돌아보며 새삼 울컥했다.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듯 작품에 투영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만나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이었다.

삶이란 결국 저마다의 위치에서 웃고 우는 일이 아니던가. 눈물이란 슬퍼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감사해도 감격해도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나는 눈물이 난다.

출간 문제를 놓고 십여 년 넘는 세월을 고심했다. 작품은 넘치는데 갖은 이유들이 태클을 걸어왔다. 만인이 작가인, 수필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내 작품을 내놔야 하는 명분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나는 자기 글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약한 편이다.

이는 작가로서의 겸손일 수도 있고 보다 높은 고지에 닿고 싶은 갈망일 수도 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누군가 손 내밀며 출판해 주겠다면 모를까 자비출판은 안 하고 싶다는 거였다. 정 섭섭하면 몇 부만 인쇄해 자신에게 헌정할 생각이었다.

그럴 때, 그 절묘한 시점에, 제1회 기획수필집 원고 공모 메일이 날아왔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 낭보가 들려왔다.

그 소식에 십여 년 앓던 통증이 다 사라졌다. 이 출판사가 내겐 의사였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기회를 안겨준 것이다.

한 권의 수필집이 작가의 마음을 활자에 담아 오롯이 전해질 독자들에게 작가는 간절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나는 지금 알약을 손에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유난했기에 왠지 남편의 혼백이 아직 내 곁을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들통 난 비밀에 민망해 할까 봐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짐짓 웃음을 보낸다. 내 마음을 못 읽을까 소리 내어 농도 건넨다.

“당신, 나한테 딱 걸렸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 놀랍거나 불쾌하진 않았거든. 되레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근데, 난 이 약의 용도가 날 의식한 건 아니었을 것 같네. 그건 육감이자 심증 같은 거지만 뭐, 그래도 상관은 없어.”

비아그라 두 알, 이 작은 알약이 주는 파장이 크다. 오만 상념의 발기가 도무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일련의 음습하고 통속적 연상은 새털처럼 날아가는데 한 존재의 가슴에 드리웠을 내밀한 욕망과 외로움의 무게만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색정이란 삶의 본령이자 에너지 같은 것, 그는 꺼져가는 자기 육신을 이 마법의 알약을 통해 되살리고 싶었던 걸까. 비아그라, 비아그라, 헌 물건 내줄 테니 새 물건 내어다오. 그런 주문이라도 토하며 자신의 남성성이 아직 살아 있음을 어떻게든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무릇 생명 지닌 존재는 그 생명성(生命性)으로 소멸의 과정이 이렇듯 애처로운가 보다.

그 욕망의 간절함과 순수함이라니, 대상이 누구이든 그게 무슨 대수랴.

서산에 어둑발이 내리고 있다. 그와 나는 한 지붕 아래의 작은 두 섬이었나보다. 이제 섬 하나는 사라졌다. 서산 너머,

자춤거리던 잔광마저 집어삼킨 아득한 몽리(夢裏)의 저편 세계로 그는 가버렸다. 남편의 영정 사진을 다시 가슴에 품는다. 명치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 「비아그라 두 알」 중에서





저자 : 민혜


서울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네 살 때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년 대표로 교내 미술대회에 나가봤고, 교지에 내 작문도 실렸다. 4학년 때는 학교 합주부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며 클래식에 맛 들였다. 그 세계가 내 삶의 기저를 이룬 셈이라 전 생애를 그 안에서 헤엄치며 살아간다.

1992년 〈창작수필〉로 등단. 초기엔 〈한국 문학〉지를 비롯해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학의 현실 참여를 위해 1990년대엔 재소자들에게 편지쓰기 봉사를 했고, 1995년~2002년까지 신경정신과 환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인 ‘문예치료’ 담당자로 일했으며 디지털 조선일보에 〈힐링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수상경력으론, 2013년 목포문학상 수필 본상 수상. 2014년, 2015년에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2018년 〈가톨릭출판사〉 신앙서적 독후감 공모 우수상 수상. 2020년 월간 〈좋은 생각〉 문예공모 금상 수상. 2020년 〈해드림 출판사〉 제1회 기획 수필 원고 공모 당선. 저서로는 2002년에 개인 수필집 『장미와 미꾸라지』를 상재했고, 5인~12인이 함께한 공저 『꿈꾸는 역마살』 『내가 지나가는 소리』 『우리 기도할까요』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에세이스트 문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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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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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소설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강력한 장치로 도입부 처음 장면에 엽기적 범죄 장면을 묘사하거나 일상의 평범한 생활 속의 느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음험한 분위기 묘사를 즐겨 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독자는 작가 베르나르 미니에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작품은 물론 매스컴에 주목 받은 사실도 몰랐다. 이 소설도 읽기 전 소설 스토리를 보고 엽기적 범죄 장면 묘사에 끌렸기 때문이다. 특히 '말러의 음악이 흐른다'는 부분이 크게 인상적이었다. 잔잔하다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현장 분위기를 돋구어 주는 음악. 책을 펼쳐 들면 바로 사건 현장이 나타난다.

"장대비가 퍼붓던 날 마르삭고교의 여교사 클레르가 고급주택가의 자택 욕조에서 밧줄로 온몸이 꽁꽁 묶인 사체로 발견된다.

헌병대에 최초로 신고한 사람은 이웃집 노교수이다. 그 집에 내려다보면 살해된 여교사의 저택과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체의 목구멍에 손전등이 불이 켜진 채 끼어 있고, 정원의 풀장 수면에는 19개의 인형이 떠있다. 집안 가득 볼륨을 최대한 높인 말러의 음악이 흐른다. 약에 취한 듯 정신이 혼미한 청년 위고가 풀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녹아들어 있는 마르삭의 사건현장으로 출동한 세르바즈 경정은 피해자의 집에서 2년 전 겨울 치료감호소를 탈출해 사라진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저택의 전등이 환하게 불을 밝힌 가운데 풀장의 수면 위에서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흔들리는 인형들, 욕조에서 공포에 질린 눈을 미처 감지도 못하고 익사한 여교사의 사체,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말러의 음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르트만이 과거에 남긴 행적과 닮아 있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현장을 둘러보고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한 세르바즈 경정은 매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의 딸 마르고가 마르삭고교에 다니고 있고,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 위고는 딸과 같은 반이고, 위고의 엄마 마리안은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기 때문이다.

주네브 고등법원에서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무려 40여 명의 여성을 납치 살해한 쥘리앙 이르트만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치료감호소를 탈출한 이후 프랑스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편성해 18개월 동안 추적했지만 결국 검거에 실패하는 한편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이르트만은 뛰어난 머리로 교묘히 수사망을 빠져나가며 연쇄살인을 저질러온 인물이기에 그의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그의 범죄대상은 언제나 여성이었고, 피해자의 시신은 단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세르바즈 경정은 사건 현장을 꼼꼼하고 분석하고 나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수사에 매진한다.





왠지 모를 음산한 흥분감이 밀려왔다. 그건 어떤 익숙지 않은 일이 일상을 뒤흔들 때 느끼는 감정으로, 올리버는 이 나이에 이르러 처음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풀장을 중심으로 정원을 훑었다. 정원 끝자락은 마르삭 숲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그 너머 2,700헥타르에 달하는 나무와 오솔길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쪽으로는 벽도 철책도 없었고, 빼곡하게 열 지은 나무와 덤불들이 자연스러운 담장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비교적 최근 축조한 방갈로가 풀장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올리버는 다시 풀장으로 주의를 돌렸다. 폭우로 인해 수면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보이는 저것은…

수면에서 인형 여러 개가 연신 기우뚱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틀림없는 인형들인데…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그걸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인형들이 서로 부딪치며 춤추는 가운데, 빗방울 통통 튀는 수면 위로 희부연 인형 옷자락이 넘실대고 있었다. < pp. 20~21 >





프랑스의 특수반을 비롯해 각국 경찰이 쥘리앙 이르트만을 체포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해 검거에 나섰지만 하나같이 실패했다. 연쇄살인마의 귀환인가, 아니면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트릭인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와 비견되는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이 《눈의 살인》에 이어 다시 세르바즈 경정과 2차전을 벌인다. 한편 살인현장에 남아 있던 여교사의 제자 위고, 피해자와 은밀한 만남을 해온 국회의원 폴 라카즈, 여교사와 오랜 친구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반 아케르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저마다 살인동기와 혐의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드러나지 않는다. 용의자들을 중심으로 전개해오던 수사는 끝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점점 더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든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피레네산맥 인근 지역은 작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고, 아름다운 숲과 호수, 짙은 안개, 계곡을 흐르는 물, 호수와 숲 언저리에 위치한 전원주택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가는 그 지역 출신답게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숲길,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는 먹구름, 천둥과 번개,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는 이 소설의 또 다른 배경이다. '물의 살인'이라는 제목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정신이 들었을 때 오디오세트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무슨 특별한 음악이었나?”

“그게…….” 소년이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제가 그 집에 있을 때 클레르는 종종 음악을 틀어놓곤 했는데 그런 음악은 처음이어서…….”

“어떤 음악이었는데?”

“고전음악이었어요.”

세르바즈는 위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전음악이라면? 등골을 따라 기어오르는 소름이 느껴졌다.

“그녀가 평소에 듣지 않는 음악이었나?”

위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제가 아는 한 그래요. 그녀는 재즈 아니면 록을 들었거든요. 심지어 힙합까지도. 그날 저녁 이전에는 다른 음악을 들은 기억이 없어요. 그래서 정신이 들자마자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딘가 모르게 음울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데, 집은 인기척 없이 휑하더군요. 정말이지 평상시와는 달랐어요.”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세르바즈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희미하고, 넓게 퍼져나가는 무엇. < pp. 109~110 >





이르트만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혹시 성형외과의 힘을 빌리진 않았을까? 머리와 수염을 기르거나 염색을 하고 콘택트렌즈를 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몸무게를 불리고,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바꿔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을까? 이르트만을 떠올리자니 수많은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세르바즈는 만약 그가 완전히 다른 복장을 하고 얼굴에 분장까지 하고 나타나면 과연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인파 속에서 그 스위스인이 몇 센티미터 앞을 지나친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온몸을 훑었다.

세르바즈는 CD를 담은 투명봉지를 감식반원에게 돌려주며 투광기 때문에 두 눈을 깜빡였다. 별안간 뱃속이 쓰렸다.

쥘리앙 이르트만이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저녁 선곡한 곡이 바로 <킨더토튼리더>였다. 세르바즈는 초동수사와 이웃 탐문조사가 정리되는 대로 여러 곳에 전화해 몇몇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오래전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형사생활 중 가장 끔찍했던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어떻게 하나의 범죄현장에 모일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알 듯했다. 그 자신, 검찰의 위임을 받은 수사관일 뿐 아니라 직접 이 사건에 연루된 입장이라는 사실. < pp. 121~122 >





“그중에서 단연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증언이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자기 주유소에 와서 기름을 넣고 신문을 사갔다는 거예요. 모터사이클을 탔는데, 머리를 염색했고, 턱수염을 길렀고,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틀림없이 그 자라는 거죠. 온라인상 사진 중 하나를 빼박았고, 신장과 체격이 일치하고, 어딘가 모르게 스위스 억양이 살짝 실린 말투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엔 운 좋게도, 주유소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영상까지 확보했다는 거 아닙니까. 주유소 주인 말이 사실이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그 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세르바즈는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했다.

“주유소 위치가 어딥니까? 언제 그랬다는 거예요?”

“2주 전입니다. 경정님한테는 잘 된 일일 겁니다, 위치가 몽토방 북쪽 고속도로 A20, 두르 숲 구역이거든요.”

“모터사이클은 영상으로 찍혔나요? 번호는 조회해봤어요?”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터사이클을 세워두더군요. 하지만 툴루즈 방향 좀 더 남쪽에 위치한 톨게이트에서 다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진 않은데 번호는 처음 몇 개만 확인했고, 계속 조사 중입니다. 이제 경정님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죠? 문제의 그 바이커가 진짜 이르트만이라면 현재 그는 경정님의 관할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 pp. 209~210 >





“그중에서 단연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증언이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자기 주유소에 와서 기름을 넣고 신문을 사갔다는 거예요. 모터사이클을 탔는데, 머리를 염색했고, 턱수염을 길렀고,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틀림없이 그 자라는 거죠. 온라인상 사진 중 하나를 빼박았고, 신장과 체격이 일치하고, 어딘가 모르게 스위스 억양이 살짝 실린 말투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엔 운 좋게도, 주유소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영상까지 확보했다는 거 아닙니까. 주유소 주인 말이 사실이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그 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세르바즈는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했다.

“주유소 위치가 어딥니까? 언제 그랬다는 거예요?”

“2주 전입니다. 경정님한테는 잘 된 일일 겁니다, 위치가 몽토방 북쪽 고속도로 A20, 두르 숲 구역이거든요.”

“모터사이클은 영상으로 찍혔나요? 번호는 조회해봤어요?”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터사이클을 세워두더군요. 하지만 툴루즈 방향 좀 더 남쪽에 위치한 톨게이트에서 다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진 않은데 번호는 처음 몇 개만 확인했고, 계속 조사 중입니다. 이제 경정님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죠? 문제의 그 바이커가 진짜 이르트만이라면 현재 그는 경정님의 관할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 pp. 209~210 >





“말씀드렸다시피 익사한 경우 사망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다보면 좀 더 확실한 추정이 가능하겠죠. 예컨대 혈액 내 스트론튬 농도가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혈액 안에 존재하는 스트론튬 농도가 여자가 발견된 욕조 물에 근접한 수준을 보일 경우 욕조에 잠겨 익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

“사체의 푸르죽죽한 색조도 마찬가집니다. 침수현상은 그런 색의 형성 자체를 지연시키지요. 조직검사도 해봤지만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이 말이 세르바즈의 심기를 상당히 건드렸다.

“손전등은요?”

“네? 손전등이요?”

“그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글쎄요. 해석은 그쪽 일이고, 저야 팩트를 다루는 데 만족해야죠. 여자가 패닉 상태였던 건 분명합니다. 심하게 몸부림을 쳐서 몸을 묶은 끈이 살점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문제는 어느 시점에 그랬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마도 두개골에 치명타가 가해졌다는 가설은 논외로 쳐야할 겁니다.”

세르바즈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법의학자의 말투에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물론 델마는 아주 꼼꼼한 전문가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러하기에 더욱 조심스러워한다는 점 역시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건 뭔가 좀 더…….”

“딱 떨어지는 결론 말이죠? 분석이 낱낱이 행해지고 나면 아마 그런 게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자가 산 채로 욕조에 빠져 익사했을 확률이 95퍼센트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정도면 그리 모호한 결론이라고 할 순 없죠, 안 그렇습니까?” < pp. 304~306 >





“한 가지 충고하겠습니다. 당신은 말할 때마다 은연중 ‘제가 생각하기엔’이랄지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같은 표현은 쓰는데 좀 자제하세요.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개인적 의견 따위는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건 행동과 사실입니다.” 까칠한 말투였다.

이 대목은 묘하게 머릿속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2권이 기대된다.


저자 : 베르나르 미니에(BERNARD MINIER)


세관직원으로 근무하며 단편과 중편소설을 써오다가 50대에 첫 장편 『눈의 살인』을 발표하며 늦깎이로 데뷔한 작가이다.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산맥 근처 베지에에서 태어났고, 인근 몽레조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 주로 고향인 피레네 산맥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늦은 데뷔였지만 중단편 소설 을 습작으로 써오면서 쌓은 실력이 탄탄해 첫 소설 『눈의 살인』부터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2011년 장편소설 『눈의 살인』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작인 『눈의 살인』은 코냑추리소설대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M6텔레비전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최우수 TV시리즈상을 받았다. 현재 파리 교외 지역에서 거주하며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생생한 대화,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의 살인 LE CERCLE』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 한 작은 대학 도시 ‘마르삭’에서 발생한 여교사 살인사건을 다룬다. 『눈의 살인』에 이어 마르탱 세르바즈 형사가 다시 사건 해결을 위해 소환돼 어느 한 비극적인 사건에서 비롯된 연쇄살인의 비밀을 파헤친다. 주요 작품으로 『눈의 살인』, 『자매 SOEURS』, 『밤 NUIT』, 『빌어먹을 이야기 UNE PUTAIN D'HISTOIRE』, 『불을 끄지 마』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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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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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봐야 할 일이 생기면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사 마셔요. 그리고 24시간 후에 만나는 거예요“

CIA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의 영화보다 더 놀랍고 매혹적인 삶을 담은 『언더커버』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녀가 카라치에서 미행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핵무기 테러를 막기 위해 혼자서 파키스탄 카라치의 뒷골목을 누빈다. 이유는 테러범들과의 협상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조력자와의 만남은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를 건네며 시작되었다.

카드잔액을 체크해 라떼 금액이 빠지면 24시간 후에 접선이 이루어졌다. 혹은 특정한 카페 화장실 변기의 물탱크에 메모를 남겨 정보를 교류했다.

『언더커버』에서는 이처럼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흥미진진한 일화들을 전하고 있다. 이에 워싱턴포스트는 “CIA 요원들의 회고록 중에서도 가장 디테일하고 풍성하다!”라고 극찬한 반면, CIA에서는 이 책을 두고 지나치게 정보를 오픈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취하며 출간을 우려했다.





『언더커버』 저자 아마릴리스 폭스는 중국 상하이부터 파키스탄 카라치까지 세계 곳곳에 잠입해 10년간 예술품 사업가라는 위장된 신분으로 살았다.

테러를 막기 위한 포섭과 잠입, 협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 중국 스파이인 가정부가 있었다. 가족, 친구, 주변인들 누구에게도 그녀가 하는 일을 숨겨야 했다. 때로는 동료 요원에게조차.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1년간 옥스퍼드 대학 입학을 미룬다. 그녀는 버마로 가서 군부에 맞서는 이들의 투쟁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아웅 산 수치와 만나게 되고, 버마 국민들을 향한 그녀의 메시지를 언론사에 전달해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버마 정부로부터 신분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영국인 금융전문가와 위장결혼을 선택하는 대담함도 보여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 대학원 재학 중, 테러범들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이를 본 CIA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22살에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으로 선발되었다. 그 후 가장 위험하지만 모두가 선망하던 최정예 비밀작전에 투입되면서, 수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6개국의 테러조직을 추적했다.





정향유 한 병으로 테러를 막은 일화도 눈에 띈다. 테러집단 지도자의 아이가 천식으로 호흡이 힘겨워 보였고, 아마릴리스는 가방 속에 있던 정향유를 건넸다. “우리 딸도 가끔 호흡이 가빠질 때가 있어요. 이걸 써본 적이 있어요?” 다음날, 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총구를 겨누었지만 아이를 둔 부모라는 순간적인 유대가 두 사람을 감쌌다.

“그러나 그 전쟁을 끝내는 길은 그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테러와 전쟁이 끔찍하고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 전쟁을 끝내는 길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최측근에게조차 비밀에 부쳐야 했던 가짜로 가득한 삶, 끝없이 이어지는 위장 속에서도 유일한 진실은 그럼에도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품에서 느껴져 오는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였다고 말한다. 『언더커버』는 영화보다 더 매혹적이고 첩보소설만큼 흥미진진하다. 긴박한 전개와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한 권이 될 것이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고, 「캡틴 마블」의 여성히어로 브리 라슨 주연의 애플TV 드라마화가 결정되며 연일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책 표지의 느낌은 '여성 비밀요원'이란 점과 '매혹적인 삶'이란 문구가 첩보원의 상징인 무술과 최신 무기를 잘 다루는 요원보다 '미인계'를 쓴 비밀요원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마타하리처럼.

그러나 느낌은 희망이나 느낌일 뿐, 책을 펼치면서 '잘못 생각했네'라는 겸연쩍은 미소가 흐른다.

아마 독자가 나폴레온 솔로의 영국 첩보원 등과 책을 통해 나오는 옛날 첩보원을 머릿속의 편견을 지우지 않고 책을 펼쳤기 때문이리다. '역시 아날로그 세대임이 분명하네'라는 자성과 함께다.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첩보원이 아니라면 대단한 액션 가능한 첩보원? 여기에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기대했지만 조금은 느슨하다. 액션은 없고 작전 없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 자주 나와서 그럴 것이다. 지루하지는 않다.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읽어나가니 곧 훈련, 임무가 반복되어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 개인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에세이다. 에세이에서 비밀 첩보원의 대단한 활약상을 기대한 것이 선입견을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첩보원이 되기 전 만나 첩보원임을 밝히고 결혼한 앤서니나 농장 훈련을 졸업한 동료 첩보원 딘과의 결혼 생활 등이 일반 직장 생활인이나 다름없는 듯하다. 표지나 첩보원의 느낌과는 다른.





저자가 CIA를 사임한 결정적 이유는 조이 때문이었을 것 같다는 자연스런 추정도 해본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성격도 파악할 수 있고, 심리적 변화나 인생관 등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자가 원하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

국가를 위한 일을 하고, 그 경험이나 노하우를 통해 제 2의 삶을 더 화려하게 살고 있는 비밀요원의 삶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에서 여성의 삶이 부럽기조차 하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정보요원들의 삶과 비교도 해보면서 우리의 실정에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책을 읽어가면서 몇 가지 비밀요원다운 일을 하는 저자를 발견하면서 첩보원의 삶이 쉽지 않으리란 믿음에 더 무게가 간다.

첩보원을 누군가 따라 붙었다면 최대한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개자를 통해 만난 소련제 잉여 군수품 조달업자와의 만남 장면에선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긴장감도 준다. 핵 테러와 관련돼 만난 사람에게 미행이 따라 붙으면서 작전을 중단하는 모습에선 '엘리트 비밀요원 맞네' 하며 인정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만나는 여러 가지 문구도 스릴 있고 으스스하다. 치밀하고 실전에 유용한 것이란 사실에 대테러 첩보원 생활이 얼마나 어려을지 짐작케 한다.

'오늘은 현장 답사, 작전일은 내일이다'

'상대가 원하는 건 국제 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다 - 테러 조직의 목적'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이 타겟으로 적합하다'





"10년간 미술품 사업가라는 위장 신분으로 세계 곳곳에 잠입하여 테러를 막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남편도 동료 요원이었지만 서로의 임무를 역시 숨겨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삶일지 상상이 쉽지 않다. 늘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일하고 쉬고, 삶의 행복도 같이 느끼고 같이 슬퍼하기도 하는 보통사람의 삶과는 너무 다르다.

또 CIA 요원들도 임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는다. CIA 로비의 벽에 박힌 희생자를 기리는 별들이 늘 그런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건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는 건 무기가 아니라 위장신분이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상대의 목숨이 아니라 신뢰였다."는 말은 국가 비밀 첩보원의 삶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해준다.


"20년간 벽장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위장신분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어. 하지만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밖으로 나가. 정보원을 포섭해. 테러 위협을 막아. 그러다보면 언젠가 물러나라는 통보를 받을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며 빈둥거리는 것보다 그게 낫지."

"잘 기억해둬, 넘어질거면 앞으로 넘어지라고."






저자 : 아마릴리스 폭스


전 CIA 비밀요원이자 당시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이었다. 현재는 작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방송활동도 겸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국제법과 신학을 공부한 아마릴리스는 미국 조지타운 대학원에서 테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이를 본 CIA가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결국 그녀는 22살에 CIA 비밀요원으로 선발되었다.

당시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이었다. 그 후 가장 위험하지만 모두가 선망하던 최정예 비밀작전에 투입되면서, 수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6개국의 테러집단을 추적했다.

대 테러 센터에서 알 카에다에 납치된 포로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대량살상무기가 테러범들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테러 조직 출신의 수감자들을 만나는 한편, 국제 암시장에서 무기상들로부터 생화학무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아마릴리스 폭스는 2010년 CIA에서 은퇴 후 CNN,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알자지라, BBC 등 세계적인 뉴스 매체에서 시사 문제를 분석해왔다. 또한 세계 각지를 돌며 다양한 행사와 대학 연단에서 평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녀의 매혹적이고 놀라운 삶을 담은 책 『언더커버』를 원작으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캡틴 마블」의 여성히어로 브리 라슨이 주연을 맡은 기대작이다. 또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중독의 비즈니스THE BUSINESS OF DRUGS」의 진행을 맡았다. 세 번의 결혼을 거쳐 현재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의 증손자인 로버트 주니어 3세와 결혼을 해 미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남편, 그리고 두 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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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 -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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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오랜 수명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들이 많다. 또 1,000살이 넘는 수명에 전설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덧대져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는 나무도 있다. 오래된 나무들은 사람들에겐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무는 오랜 수명과 함께 인간에게 주는 혜택이 너무나 커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가구 등 목재, 배 등 군용, 난방용 식사용 땔감까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오래된 나무를 대할 때마다 독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어디에 있는, 어떤 나무일까 궁금했다. 백과사전이나 기타 책 등을 찾아보아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기 않았다.(독자가 못 찾은 것은 책에 없어서가 아니라 독자가 지식이 부족해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궁금증에 그쳤지만 이 책의 저자이자 세계적 사진작가 레이첼 서스만은 삼림 보호 차원에서 오래된 나무를 찾아 기록해둬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지구 끝까지 샅샅이 뒤졌다. 전 세계 학자들과 함께다. 필요하다면 바닷속까지 찾아다녔다.

이렇게 10여 년간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유럽은 물론 시베리아와 남극까지, 사막부터 바닷속까지, 세계를 돌아다니며 2,000살이 넘는 생명체를 기록했다.





저자가 모진 고생을 겪으며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 거리를 나무 찾아 헤맨 끝에 내린 결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와 함께 생명체들은 나름의 살아남기 위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3만 평에 펼쳐져 있으나 뿌리가 하나인 판도는 영양분과 수분을 부족한 쪽으로 고르게 분배할 줄 아는 아량을 지녔다. 불이 잘 나는 남아프리카 저지대에서 살아가는 지하 삼림은 아예 몸통을 땅속으로 숨겨버리고 머리 쪽만 땅 위로 나와 있어 화재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브리슬콘 파인은 개체 전체의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시스템은 모두 닫고 제한된 영양분으로만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터득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이 생명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생명체를 찾아가는 여정과 그리고 이제는 인류의 보물이 된 생명체를 둘러싼 이야기들, 그리고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사진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책이다. 세계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1위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 칼 짐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책을 보는 관점과 시야를 넓혀주며, 생물 위치 지도와 ‘심원한 시간’의 연표 등 인포그래픽이 고령 생명체의 지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과거의 기록이자 행동을 촉구하는 현재의 목소리이며 미래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으로, 아마존에서 뽑은 올해 최고의 책(예술 분야)에 선정되었고 서스만의 TED 강연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와 함께 나무의 세계로 들어가본다. 여기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남은 생명체들이 있다. ‘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고령 생물들. 하나하나가 지구의 역사를 품은 생태적 초상화인 그들은 남극부터 그린란드까지, 모하비 사막에서 호주 아웃백까지 지구상 곳곳에 분포해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이며 뉴욕 필름 아카데미 석학회원인 사진작가 레이첼 서스만은 10년간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들을 찾아다녔다. 최소 2,000살 이상을 기준으로, 초고령 나무들과 균류와 지의류, 뇌산호 등을 사진에 담고 기록을 남겼다. 레이첼 서스만이 기록한 생명체들은 오래 산 생물답게 그들만의 지혜를 활용해 살고 있다.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고령의 나무들은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린란드로 3,000살이 넘은 지도 이끼를 찾으러 떠난 서스만은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존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8시간을 보낸 서스만은 광막한 곳에서 수천 년을 세월을 살아간 고독한 생명체를 생각한다. 또, 4년마다 올림픽 선수들을 위해 자신의 가지를 떼어주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상처를 치유하며 살고있는 그리스의 3,000살 올리브 나무를 보며 인간의 상처도 너무 깊지 않다면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계획에 없던 7,000살의 조몬 소나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세상에는 자신의 경험과 예상 이상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며 생각지도 못한 모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원전에 탄생한 생명체들과 연결되는 인간의 삶을 허무하게 느끼기보다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는 단순히 고령 생명체의 역사와 현재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영혼을 담아낸 사진들은 비애에 찬 감동을 전한다. 나무를 향한 존경심이 샘솟는 사진들, 지구 생태계가 적대적으로 변해갈수록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선택은 마치 ‘생각하는 뇌’를 지닌 듯 현명한 결정으로 가득하다.

오래된 생명체를 찾아가는 파란만장한 여정과 그리고 이제는 인류의 보물이 된 생명체를 둘러싼 더욱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며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서정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사진들이 조화를 이룬 책이다. 세계 미술계 파워 인물 100인 중 1위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 칼 짐머의 에세이가 책을 보는 관점과 시야를 넓혀주며 생물 위치 지도와 심원한 시간의 연표 등 다양한 인포그래픽이 고령 생명체의 지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세상이 어떠했는지, 어떠할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지구상의 오랜 생명체들은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몸으로 보여주는 현자들이다.

전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세계에 대해 가장 매력적인 관점을 부여해주는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을 손에 쥔 독자에게도 소장의 행운과 행복감이 오롯이 전해온다.





다시 저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보면 의미가 한층 더 깊다. 2000년 이상의 세월, 사람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개념을 훌쩍 뛰어넘는 그 기나긴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나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나무의 말을 얻어낸 저자는 책을 통해 밝힌다.

나무로부터 명쾌한 답변이 아닌, 더 깊이있는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이 자신이 맡은 일이라고...

이 책은 단순히 나무의 특성과 위치 그리고 오랜 세월을 유지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 지식 추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 책의 의미를 헤아리기 어렵다. 나무 하나하나를 읽어가며 스스로 하나의 질문을 떠올리고, 나아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삶과 연관지어 생각을 하며 읽는다면 더욱 이 책의 의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책의 처음 부분에 있는 생물 위치 지도를 보고 "지구 곳곳에는 이렇게 많은 고령의 생물들이 있구나"였다. 탐험하면서 갖는 신비감과 발견의 기쁨 같은 것이다. 무더운 사막 또는 극한으로 추운 시베리아 지역 등 거친 환경을, 일반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기이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방선균과 모하비유카는 상당히 흥미롭다. 물 속의 뇌산호에서 남극의 이끼 등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생물의 신비로움과 기이한 진화의 역사를 추정해가며 다시 한번 자연의 신비와 웅장함에 감탄이 나온다. 칼 세이건이 던진 "인류가 꾸며온 앞무대를 한없이 작아 보이게 만드는 거대하고 장엄한 우주의 문턱에 우리가 서 있다"는 한마디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진으로 세이건의 말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는 저자의 세심한 설명엔 미묘한 두근거림마저 생긴다.





저마다의 방식을 뽐내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생명체의 모습이 책에 담겨 있지만, 그 사진들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분리된 '상태'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진행 경과에 따라 그들의 생태계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얼마나 우리들과 함께 지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모론다. 인간의 이익에 눈먼 듯한 무차별적 행위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에 미치는 엄청난 결과에 안타까움만 더한다. 수많은 생태계 지도를 하나하나 되짚어 가며, 자연의 웅장함 그리고 안타까운 자연의 상태.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스스로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은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자연의 웅장함을 떠올리며 수많은 작가와 학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의미있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문명이라는 껍데기 뒤편으로 밀쳐낸다면 더 이상 그런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사진들을 보면서 우아한 소박함을 보았다. 나무는 그저 묵묵히 지나온 세월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지구라는 행성에 터를 잡고 다른 생명체들과 유기적으로 얽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2,000살이 넘는 나무가 말하는 것들이 저자에게는 나무의 '생존법'이고 '지혜'라고 지혜로운 결정에 다가간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2,000살 넘은 생물을 촬영하러 다녔다. 4만3,600살 된 로마니아를 찾으로 타즈마니아에도 갔는데 이 관목은 자기복제 방식으로 번식하는 관목이라고 한다. 지금 멸종위기다. 환경이 바뀌면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아이러니하게 이 생물은 이론적으로는 불멸이지만 환경에 적응을 못해 멸종 위기인 생물이다. 사람도 스스로 자기 복제가 되는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루살이처럼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온갖 오지를 다니면서 힘들게 2,000살 넘는 생물들을 만나는 시간이 저자는 즐거워보였다. 팔이 부러져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과목을 보기도 전에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이때는 좀 위태로웠던 것 같다. 제때 쓰지 못할 쓰지 못할 수도 있었다.

2,000살 넘은 뇌산호를 만나기 위해 잠수하다 불산호에 쏘인 사건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얼굴까지 퉁퉁 부었다고 한다. 불산호는 자신을 건드린 녀석에게 들러붙어서 살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에 소개되는 판도는 나이가 8만 살로 나무가 각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가 한 그루의 나무라고 해서 놀랐다. 판도는 사시나무 무성번식 군락인데 하나의 거대한 뿌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나무(총 4만7,000개가 있다)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줄기들이다. (p. 101)

이처럼 거대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미미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들 최소 2,000살 이상 세상을 버텨온 위대한 조상님이다. 아레타는 바위 위에 뭉쳐진 이끼처럼 보인다. 아레타는 작은 잎들이 엉켜 있는 수천 개의 줄기로 이뤄진 관목이라고 한다. 고도가 4,500미터에서 살기 때문에 아레타를 보기 위해서는 어지러움을 참아야 했다. 아레타는 불에 잘 타서 연료로 쓰여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버텼는데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짓으로 불타거나 수명이 다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 남은 생명체들은 과거의 기념이자 기록이고, 현재의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며, 미래를 가늠하게 해주는 지표다. (p. 15)

저자의 주장은 오랫동안 지구상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들도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지, 곧 멸종위기에 처할지 알 수 없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소멸하는 것에 대해 더욱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걱정해야 할 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를 보았다. 기온이 상승하고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세상에서 나무들은 얼마나 오래 버텨낼 수 있을까. 호주의 대형 산불, 시베리아의 산불, 무분별한 개발로 뽑혀나가는 산림. 나무의 말에 등장하는 이 오래된 나무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을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생존방식을 지닌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성장하고 살아간다. 이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식물도 자신을 방어하고 산다고 한다. 분노하면 독성을 내뿜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독이기도 하고 인간에게 내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체는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식물의 생존 유무는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긴 수명을 자랑하는 생명체는 마법처럼 신비롭다.

무려 2000년 이상을 살고 있는 생명체를 보며 세월의 깊이만큼 거칠고 두꺼워진 껍질과 험난한 역사를 상징하는 상처들을 보며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나무와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상처가 너무 깊지만 않다면 치유될 수 있으며 실제로 치유된다는 점이다." (p. 187)





미래는 과거에서 온 조각들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는 곧 현재는 미래의 자원을 빌려 쓰며 살아간다는 얘기와 동의어로 들린다. 우리는 미래를 너무 당겨쓰고 있다. 마치 영원하고 무한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당장 누군가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은 슬퍼하면서도 식물이 서서히 죽어가는 현상에 대해선 그냥 지나친다. 이젠 나무를, 생명을, 자연을 보호하고 챙기며 살아야 한다.

우선 생물 위치 지도를 보며 제일 오래된 나무부터 찾아보았다. 역시 시베리아에 있다. 어렸을 때 영구동토라고 배운 곳이다. 최근엔 기후변화로 영구동토로 알고 있단 땅도 녹고 있다. 해수면을 상승시킬 정도로 빨리 녹는다. 잦은 산불로 신음하고 있는 땅도 많다. 언제까지 자연의 경고음을 무시할 것인지, 눈앞에 벌어지는 자연 재앙 현상을 보면서도 인간은 욕망을 내려놓지 않는다.

수많은 가지와 뿌리가 뒤엉켜 있는 판도의 사시나무 군락과 휴언 파인 군락지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스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하고 어린 왕자의 행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설이 있는 바오밥 나무도 기괴한 모습을 넘어 판타지 영화의 세트장 같은 느낌도 받는다.

지하 세계라고 저자의 방문이 끊어지지 않는다.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지하 삼림은 사진으로만 보아선 가늠이 잘 되지 않는데 뭔가 독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저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정치적 이유(이란)로 찾아가지 못한 곳도 있고 중간에 새로운 종의 기사를 접하기도 한다. 사진 촬영을 하다 다치기도 하고 맘에 드는 사진을 얻지 못해 다시 찾기도 하는 등 저자는 노력이 눈물겹다. 저자는 그래도 최대한 생명체의 경이로움을 전하고자 지난한 노력을 한 것은 사명감이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극히 험한 환경 여건은 오히려 굉장히 적응성이 강한 생물로 키워낼 수 있다.(p. 71)

나무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면서 흙과 햇살과 바람과 비에 적응하고 인내한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변모시켜 왔다. 그런 나무가 장수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는 많다. 최대의 방해물은 역시 시간이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는 나무는 고독을 넘어서 생명의 무성생식을 통해서 시간을 거슬러 생명의 꿈을 이어왔다. 거기에는 가깝게는 가끔 번개, 동물이 있다.

사막 쥐들이 수분 섭취를 위해서 잎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의 불장난으로 사라진 상원의원 나무, 훼손된 나무 반면에 속이 비어 있어서 땔감으로는 효용이 낮아서 살아남았으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바오밥 나무는 화장실이나 술집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관광객들은 기념품 삼아 나무를 떼어 가기도 한다. 꿀버섯(Honey Mushroom)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성장과 번식을 막는 유일한 생물이다.(p. 78) 이런 장애를 꿋꿋이 이겨내고 현재 이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존재를 보면, 꼭 사람이 아니라도 존경심이 절로 난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기후변화이다. 시간은 나무의 편이 아니라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고령 생물들은 우리를 심원한 시간에 연결시켜 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찰나적인 감각, 생각, 감정에 묶여 있고 그것들로 구성돼 있다."(p. 198)

저자의 말이 가슴을 두드리며 책을 덮어도 가라앉지 않는다. 마치 탐험가가 탐험여행을 시작하는 것처럼. 대문호의 명작 한 편을 읽었을 때처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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