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근현대 편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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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철학을 뜻하는 영어 'philosophy'는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다. 필로소피아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한자로 쓰는 '哲學'의 '哲'이라는 글자도 '賢(어질다)' 또는 '知(알다)'와 같은 뜻이라고 고등학교에서 배웠다. 이처럼 철학이란 글자의 뜻으로 보아서도 단순히 '지'를 사랑한다는 것일 뿐, 그것만으로는 아직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알 수 없다. 철학 이외의 학문은 대부분 명칭에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름만으로는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학문은 독자가 알기로는 없는 듯하다. 독자의 부족한 지식의 범위 내에서 판단하자면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이라고 하면 경제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고, 물리학이라고 하면 물리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이나 물리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것이 무엇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문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철학의 경우는 그 이름만 듣고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을 붙였을까? 많은 백과사전은 철학이라는 학문의 대상이 결코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풀이한다.

무엇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문인지도 모른 채 시작한다면 학문은 어려울 것이다. 대체적으로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학문은 과학·수학 등이고 그렇지 않고 인간의 삶이나 삶의 지혜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은 철학 혹은 인문학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마저도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철학은 어렵다"라는 인식은 고대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를 테면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인간은 '생각'을 통해 알아내려 했다. 과학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고대에도 자연과학이라는 연구와 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자연 현상에 대한 공부의 이유는 인간이 먹는 식량 수확과, 자연 재해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해와 달, 별, 그리고 비와 바람 등에 대한 연구가 벼와 밀 등의 수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런 자연 과학에 비해 철학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 삶, 지혜 등에 대한 공부는 뚜렷하게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많은 학자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평생을 생각하고 연구했을까? 그리고 수천 년 간 철학은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학문의 두 가지 분야를 독자에게 꼽으라고 말하면, 독자는 과학과 인문학을 꼽을 것이다. 여기에서 과학은 기본적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우주과학, 의학 등이 해당되고, 인문학은 철학, 문학, 역사학 등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인식이 달라졌지만 지난 세기 우리 산업화 시대에는 철학이나 역사학, 인문학은 푸대접이었다. 산업화에는 문과보다는 이과, 인문학보다는 경제학이나 공학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적 요구가 이런 상황이니 대학 역시 인문학보다는 공학이나 경제학과 관련된 학과가 훨씬 많았다. 대학 졸업하면 바로 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추세는 서양 문명,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자연스럽게 미국의 학문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크다. 미국의 학문도 사실 모두 유럽의 문명을 그대로 답습했다.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두가 길어진다. 이 책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근현대편)은 우리가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는 철학과 철학자들의 생애를 바탕으로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표제어가 받아들이기엔 거리낌이 있다. '지적 허영'이라는 말 때문이다. 저자 입장에서 겸손한 표현을 한 것이겠지만 자칫 철학이라는 학문이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한 학문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철학은 오히려 지적 내실을 기하는 학문이지, 결코 허영심을 채우는 학문은 아니기에 그렇다. 독자도 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이런 책이 나오면 관심을 먼저 갖는다. 쉽게 설명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적 허영심을 채우려고 하는 학문은 아닌 것이다. 만약 그런 인식으로 철학 공부를 한다면 어쩌면 철학의 문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돌아설 것이다. 다만 철학의 체계를 배우기엔 이 책처럼 좋은 책도 드물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철학도 학문으로 주욱 이어져 왔기에 분명히 흐름이 있을 터, 그 흐름을 알기에는 그림을 보며 배우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때문이다.



철학책은 문자로 된 책을 대해서는 홀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철학사를 공부하려 하다가는 고대 철학의 범주에도 벗어나기 전에 어쩌면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모순적 행위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도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전제가 모순된다면 평생 공부해도 지혜에 다다르기에는 어림없을 터다. 이럴 때 이 책이 필요성이 커진다. 이번 출간된 책은 '근현대편' 개정판이다. 이전에 고대·중세편에서 18명의 철학자들을 먼저 다뤘다. 이번 근현대편에서는 21명의 철학자들이 나온다. 저자 이즐라는 자신이 철학자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 무용론을 주장한다는 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철학 책을 내게 됐을까? 

저자는 ‘책을 읽으면 금세 잊어버리는데, 독서나 지식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고 ‘우리 삶에 철학이 쓸모 있을까’ 하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깨닫게 됐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철학자의 사상이 기억나지 않거나, 조금만 읽다가 책을 덮어버리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 행위 자체가, 지식을 만나고 지성을 채우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허영심 가득한 독서라도, 나만의 의미를 길어 낼 수 있다는 이유다. 정답 없는 사유가 삶과 인간, 세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고 저자는 믿는다고 밝힌다. 저자는 색다른 인문학, 뭔가 다른 철학책을 원한다면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으로 시작해도 좋다고 자신 있게 내민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관련 책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사다가 읽었다고 책 뒷 부분 〈작가의 말〉에서 털어놓는다. 다 읽지도 않을(못할) 책을 잔뜩 샀다. 책을 쓴다는 이유로. 그 자체로 허영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에 책이 많으면 누가 자신을 판단할 때 '지식인' 혹은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면 그것은 '허영심' 맞다. 책을 많이 사는 것과 많이 읽는 것은 다르다. 의미도 다르고 동기도 다르다. 읽지 않을 것을 알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허영심에 다름 아니다. 앞에 '지적(知的)'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허영심엔 변함 없다. 그러나 책을 쓰기 위해 읽기도 하고, 인용도 한다면 그것은 지적 탐구심이지 지적 허영심은 아닐 터, 저자의 행위는 지적 탐구라고 독자는 말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근현대 서양 철학자 21명이 등장한다. 독자의 빈약한 지식으로는 21명 가운데에도 모르는 철학자가 있지만 아무튼 대표적 철학자들이 주로 쓰였을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들은 깊은 사유도 있겠지만 그것을 책으로 남겨야 그의 철학을 이해하게 된다. 쉽게 표현하면 알려지게 된다. 책이 아니면 누가 무슨 철학을 하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책만이 오롯이 그의 철학이나 사유를 담아낼 그릇이었다. 오늘날엔 영상이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남길 수 있지만 근대라는 서양 세계에는 책이 가장 유용하고 좋은 전달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그의 사유의 내용은 무엇인지 모두 저서로 남은 것이다. 가끔은 강연 자체가 남은 것도 있지만 현대, 그것도 최근 21세기에 들어서서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21명의 철학자들의 철학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의 유럽 사회의 문명과 사상을 엿볼 수도 있다. 또 그들의 생애에 대해 연구하면 어쩌면 그의 철학의 원천과 원동력을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1명의 철학자, 2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명이 각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22장이 된 것은 칸트가 유일하게 2개 장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각 장의 제목은 철학자의 대표 사상, 또는 철학의 성격 등을 내포하고 있다.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을 독자는 권유하고 싶다.

1장 「철학책은 왜 읽는 걸까?」-르네 데카르트, 2장 「어떤 철학자를 가장 좋아하세요?」-바뤼흐 스피노자, 3장 「낙관주의자, 그리고 비관주의자」-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4장 「인식과 존재의 상관관계」-조지 버클리, 5장 「관용에 관하여」-볼테르, 6장 「욕망과 현실 사이」-데이비드 흄, 7장 「여긴 어디? 나는 누구?」-장 자크 루소, 8장 「나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임마누엘 칸트 Ⅰ, 9장 「먼저 인간이 되어라」-임마누엘 칸트 Ⅱ, 10장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게오르크 헤겔, 11장 「별은 어둠 속에서 빛난다」-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2장 「이성에게 자유를, 감성에게 포용을」-존 스튜어트 밀, 13장 「왜, 아직도 마르크스를 찾을까?」-카를 마르크스, 14장 「철학도 예술일 수 있을까?」-프리드리히 니체, 15장 「철학의 쓸모」-존 듀이, 16장 「언어가 뭐기에」-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7장 「형이상학에 대한 형이상학적 끌림」-마르틴 하이데거, 18장 「실수해도 괜찮아」-칼 포퍼, 19장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장 폴 사르트르, 20장 「악이란 무엇인가?」-한나 아렌트, 21장 「아는 것이 힘? 아는 것이 힘!」-미셸 푸코, 22장 「나는 나를 해체할 권리가 있다」-자크 데리다 등이다.



철학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독자로서는 이 책에 나온 철학자들의 사상이 대부분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절실한 말들이어서 놀랍다. 대부분의 철학자 이름은 수없이 들어 알고 있지만 처음 듣는 이름도 있다. 조지 버클리와 자크 데리다이다. 책에 따르면 조지 버클리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성직자이다. 17∼18세기 영국 고전경험론을 대표한다. 신흥 자연과학의 유물론과 동시대의 무신론·이신론·자유사상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호교론(護敎論)에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인지원리론(1710)』이 있으며, 그후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복음(福音)을 전하기 위하여 버뮤다섬[島]에 이상적인 칼리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아메리카로 건너갔으나 그 계획은 실패했다. 또 카뮈와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으며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반유태주의와 유태 민족주의에 대해 똑같이 반감을 갖게 된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소속 또는 자기 동일성으로 인한 실존적 고통은 ‘고유한 것의 해체’라는 철학적 형태를 취했다. 주저는 『기하학의 기원』(1962)다. 두 사람은 독자가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여서 이 책을 읽으며 수확한 철학자와 이들의 철학 사상이다. 

독자의 관심을 가장 끄는 철학자는 카를 마르크스다. 독자가 대학 다닐 때만 하더라도 카를 마르크스는 금지인물이었고, 그의 저서는 금서였다.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이론적으로 확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과 이념적 차이로 분단된 후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쳐 아직까지 공산주의에 대해 비체험적 두려움을 갖고 있는 독자로서는 구 소련이 붕괴되며 무너질 줄 알았던 공산주의 체제가 세력을 많이 잃었지만 아직도 굳건하고 냉전의 연장선 상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중요한 철학자이고 그의 저서는 유효하다고 하는 데서 다시 관심권 안에 두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카를 마르크스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열성적 혁명가"로서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설문조사를 통해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자본론』을,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마르크스를 꼽은 적이 있다. 그림 속 화자는 "마르크스가 그렇게 대단해?라고 생각하지만 아인슈타인, 뉴턴, 다윈, 칸트를 제치고 수많은 사람이 마르크스를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생각에 잠긴다. 그림 속 화자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마르크스주의를 낳은 상황이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일까?라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그림과 말풍선, 지문을 통해 마르크스의 출생과 학업, 그리고 철학 공부, 철학 동지(헤겔) 등을 설명한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헤겔과 맥락이 같고, 〈유물론〉을 제시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 중심의 포이어바흐를 지지하면서도,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사변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행동하는 인간의 실천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이론의 힘과 현실성을 실천의 문제로 보았고, 자신의 사상을 행동하는 철학으로 정립시킨다. 이후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역사관을 제시한다.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인간의 역사란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그림 속 말풍선에서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책의 지문에 따르면 '생산력'은 사회의 물질적 발전 정도로 생산 수단에 따른 생산 수준을 뜻하고, '생산관계'는 생산 수단의 소유관계를 비롯하여 생산 과정에서 맺어지는 모든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계급은 생산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주인과 노예, 귀족과 농노,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정 시대의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일치한다. 하지만 생산력은 도구와 기술의 발전으로 나날이 증가하는 데 비해, 생산관계는 구조적으로 조직화되어 굳어져 있다. 이러한 모순이 심화되어 임계점에 다다르면 생산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나 다음 시대의 역사적 단계로 넘어간다는 이론이다. 마르크스는 분업을 통한 생산력의 발전이 중세 체제를 붕괴시키고 근대 자본주의를 불러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비롯한 물질적, 경제적 구조를 토대(하부구조)로 보았고, 그 위에 위치한 정치, 문화, 종교, 법, 예술은 상부구조로서,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된다고 생각했다. 즉 마르크스의 생각은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처럼 마르크스의 이론의 초기부터 결론에 이르는 지문과 그림을 통해 설명해준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빠져든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마르크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 때문이라기보다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불꽃처럼 투쟁했던 마르크스의 뜨거움 마음에 인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은 아닐까?하고 깊은 생각에 빠진다.


저자 : 이즐라


쓸데없이 이런저런 것이 궁금해서, 끌리는 대로 이런저런 책을 읽고,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만화를 그린다. 최근에는 뇌의 신비에 깊이 빠졌다. 진작 빠질 걸 그랬다. 내 뇌는 어딘가에 빠지는 걸 좋아하나 보다. 또 무언가에 빠지고 싶다. 지은 책으로는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고대·중세 편』이 있다.

leezla@naver.com

https://www.instagram.com/chosik_leezla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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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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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은원, 은, 원』은 두 가지 점에서 미스터리하다. 하나는 소설 작품을 두 사람이 공동집필하는 게 가능한가?다. 독자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소설 한 작품을 공동 집필했다고 밝힌 것은 여간해선 드문 일이다. 독자 기억으로는 2년 전쯤 미국의 소설 작품을 형제 공동 이름으로 발표한 것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논문이나 논저, 연구서 등은 공동 저자가 가능하지만 소설 작품은 허구를 바탕으로 사실처럼 형상화해 보여주는 것인데 허구(상상)가 공동일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다. 부부라 할지라도 시나 소설 등 문예 작품 공동 저자로 명기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작품의 사실 여부는 독자가 모르지만···. 또 하나는 소설 내용처럼 진짜 인간(이런 표현은 쓰기 싫지만 복제 인간에 반대되는 개념을 말할 땐 불가피하다)과 복제 인간과의 사랑 여부다. 복제 인간이라도 피복제된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 이성적 판단이 다르지 않을까? 외모나 혈액형 등은 같을 수 있어도 감정이나 기억을 다스리는 뇌의 복제도 가능한가?라는 의문에 부닥친다. 물론 이 미스터리도 독자의 과학·의학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의문이니 독자를 비난한다 해도 할 말은 없다. 독자의 의문에 "소설에서는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독자의 의문을 일축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소설가 한차현과 영화인 김철웅이 공동 집필한 'SF 연애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 『은원, 은, 원』의 남여 주인공들이 처음 서로를 알게 되는 공간은 물류센터의 야간 아르바이트 현장이다. 남자 주인공 차연은 홀로 사는 반지하 방을 나와 두 시간을 전철과 버스로 달려 일터 현장에 도착한다. 산더미처럼 출력된 송장을 일일이 확인한 뒤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물품 중 해당 품목을 ‘피킹’하는 시급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스물아홉 살의 청년이다. 

그 앞에 나타난 여자 은원은 한 인터넷쇼핑몰에 소속된 서른다섯 살의 팀장이다. 신자유주의와 플랫폼노동 시대의 일면을 응축한 공간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소소하고 잔잔한 연애담은 순진한 느낌마저 든다. 저녁시간에 구내식당에 가는 대신 직접 싸온 바나나를 까먹으며 휴게실에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던 그에게 다가온 은원은 차연이 무심히 건넨 바나나에 은원은 도시락으로, 이후엔 즉석 식품 세트로 화답한다.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가던 중, 은원이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점차 잠식해가는 것을 느끼던 차연은 용기를 끌어모아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어느 날 은원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소설은 기이한 미스터리로 변신한다. 그리고 차연이 은원을 되찾고서 은원의 속사정이, 그녀의 정체가 드러난 뒤 『은원, 은, 원』은 누아르 색채를 띤 SF 분야로 확장된다. 이 책에 대해 출판사 측은 소설가 한차현은 그의 열다섯 번째 장편소설 『은원, 은, 원』을 김철웅 감독과 공동 기획·집필함으로써 한 편의 스타일리시한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몰입도 높은 서사를 보여준다고 소개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차현은 20년 넘게 소설을 쓰는 동안, 혁명을 꿈꾸는 유전자합성인간, 외계인으로 변신하는 교회 목사, 남성용 정조대에 갇혀 고생하는 여관 여행자,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그것으로 만두를 만들어 파는 분식점 사장, 가글액으로 외계 좀비를 물리치는 고등학생 등 독특한 인물들을 형상화해온 작가다. 이번 출간한 소설 『은원, 은, 원』에서도 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인물 ‘은원’을 내세웠다. 또 다른 주인공이자 이야기의 중심인 ‘차연’ 역시 한차현의 소설에 반복해 등장하는 이름으로, “슬프고 음울한”, 그리고 “절절한”(작가의 말) 이 소설을 힘 있게 이끌어가는 캐릭터로 빛난다. 첨단 기술을 소재로 하기에 기존의 연애소설과 결을 달리하는 이 소설은 존재의 근원, 관계의 근원, 끌림의 근원에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독자는 비로소 이 소설의 표제어에 대해 이해한다) 마치 평행우주를 보는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섞어놓은 입체적 시간 구성은 이 작품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한다.

두 사람은 만난 지 600일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은원은 다니던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았고, 은원이 살았던 집으로 찾아간 차연의 눈에는 은원의 일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갑자기 은원이 사라진 것이다. 차연은 은원의 유일한 친구 성이연을 찾아갔다가 의외의 인물을 만난다. 그리고 모든 기억을 잃은 은원을 병원에서 다시 마주친다.



차연은 은원을 찾아다니던 중 만났던 실종수사전담팀 경찰들이 차연을 위로하느라 했던 말을 기억한다. “대한민국은 실종 공화국이에요. 시간당 18세 미만 미성년자 3명, 성인 5.3명이 실종이나 가출로 신고 접수됩니다. 매일 미성년자 71명과 성인 127명의 실종신고가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중략) 천만다행으로, 그들 중 거의 95프로가 일주일 안에 실종해제 처리되곤 해요. 결국은 아무 탈 없이 귀가한다는 의미예요. 세상 모든 실종은 세상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이유를 갖고 있지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제 말씀은, 걱정을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마시라는 겁니다.”(p.72)

그러나 차연은 더 우울해진다. 은원에 대해 아는 것이, 누군가 은원에 대해 물었을 때 대답할 것들이 뜻밖에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600일. 햇수로 3년. 그 누구보다 은원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은원은 정말 은원일까. 기억만이 사라졌을 뿐 예전 은원과 같은 사람일까. 차연이 혼란스럽다. 또는 두렵다. 은원을 다시 만난 이후로 하루 또 하루, 어느 결에 나쁜 풀처럼 싹트고 자라고 번진 혼란이다. 곁에서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눈치챌까 봐 혼란스러운 두려움이다. 차이. 보이지 않는 차이. 은원을 다시 만나, 많이 반갑고 조금 서먹한 속에서, 어딘지 이상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p.133)

이런 부분은 혼란은 물론, 섬뜩함마저 풍긴다. 독자들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인공지능(AI), 로봇, 더 나아가 복제 인간까지 이르는 상상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낸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 공간, 질서 등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자신을 잊은 채 떨어진다는 상상은 죽음의 공포보다 무섭다. 'AI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시대도 끔찍하지만 복제 인간의 세상은 어쩌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산업화 시대 아날로그 감성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갑자기 근미래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다. 십여일 후 은원이 나타난다. 그런데 은원에게는 병이 있었다. 〈베르니크 코스타로프 증후군〉이다. 독자로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다. 베르니크 코스타로프 증후군을 앓으면, 기억상실증이 발병한다고 작품 속에 나와 있다. 뇌신경 이상 등 알 수 없는 이유로 별다른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발생한다고 한다. 은원의 오른손, 검지와 엄지 사이, 초승달과 별 무뉘 타투가 과거와 달라 보인다. 초승달이 커졌고 별의 위치가 다르다. 차연은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병에 대해 설명하는 은원의 어머니와 고모.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은 언젠가 은원이 보여주었던 폰 사진 속 어느 얼굴을 닮았다. 어머니와 고모가 찾아온다. 아니 연락이 와 만난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은원에게 어느 날 갑자기 개인 고유의 과거 정보들을 대부분 회상 못 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발병했는데 이 증상이 1년에 한 번 또는 7~8년에 한 번 예고도 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죠. 기절한 채로, 계속 잠들어 있다가, 사흘 전에 의식이 돌아왔어요." 두 사람은 은원의 첫 발병 이야기부터 가장 최근의 일까지 자세히 들려준다. 차연은 기억을 되돌려 은원과 제주 다녀오던 날 은원의 미심쩍은 행동을 기억해낸다. 작은 변화거리가 필름 돌아가듯 머리를 스치자 '전조 증상'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은원의 고모가 다시 묻는다. “은원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나요. 장차 어떠한 경우건, 은원이를 여전히 은원이로서 이해해주고 아껴줄 수 있나요." 차연은 다시 기억을 잃은 은원이 일상을 되찾는 것을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다. 병원에 있는 은원을 다시 만난 차연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은원을 다시 만나 두 사람이 함께했던 과거에 대해 하나하나 찬찬히 들려준다. 그렇게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고, 공유된 추억을 만들어간다.



이후의 줄거리는 이 작품이 소설이기에 더 이상 쓰기에는 스포일러가 될 듯하다. 줄거리는 줄이고, 대신 소설의 성격과 주제에 대해 출판사 측의 말을 빌어 몇 마디 덧붙인다. "소설 『은원, 은, 원』은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기억,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시간을 넘나들며 방황하는 이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복제인간이라는 SF 소재가 이 작품에서는, 우리와 먼 시간 공간이 아닌 바로 지금 이곳에서 현실적으로 펼쳐진다.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을 되찾는 데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혼란과 두려움 가운데 남은 기억의 힘이다. 그 힘으로, 사라진 연인의 빈자리를 버텨내고, 사라진 연인의 흔적을 추적하고, 사라진 연인의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격려한다. 끄떡없이 매몰차고 거대한 줄로만 알았던 비가시권의 권력도, 그 휘하의 사람들도 기억의 서사가 불러온 감동의 물결에 휩싸인다. 그리고 유일한 존재라고 믿었던 연인을 실제로 상실했음에도, 다시 관계 그려가기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의 근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저자 : 한차현


고전적인 서사의 안정감과 신세대다운 위트를 이색적으로 조화시켰다는 평을 받으면서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1970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1998년 단편소설 「청계산의 남자」를 발표하며 월간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제84회)을 받아 등단했다. 199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양학부를 졸업하고 출판사, 잡지사 등에서 일했으며,1999년 장편 소설 『괴력들』을 발표한 이후 『여관』 『왼쪽 손목이 시릴 때』『영광 전당포 살인사건』 등 장편 소설과 소설집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를 줄기차게 써냈다. 젊은 소설가 모임 '작업'의 동인이다. 그 외 소설『슬픔장애재활클리닉』이 있다. 황소자리 O형 개띠. 삶이란 즐거움의 완성임을 20대에 깨달았지만, 평소의 소설 쓰기와 음주 음악 음행이 그 진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불확실한 편이다. "속 편한 놈"이란 소리를 어째 나이 들수록 듣게 되는데, 더 많이 더 깊이 더 천천히 느끼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할 뿐. 2021년 8월 인왕산이 잡힐 듯 보이는 종로구 옥인동 노란 집에서 아내 문은, 딸 교원과 함께 소설 쓰며 술 마시며 안주 만들며 음악 들으며 영화 보며 화분 키우며 고양이털과 싸우며 대충 잘 사는 중.


저자 : 김철웅


1993년 충무로 촬영부로 상업영화 현장 입문. [하피] 조감독, [예스터데이] 제작팀, [동승] 메이킹 등 다수의 상업영화 스태프 경험. 2010년 시나리오 [꾼]으로 제1회 NHN(네이버) 게임문학상 은상 수상. 2018년 중국 동영상플랫폼 아이치이(愛奇藝, iQIYI) 웹영화 [여의주방] 각본 각색. 그간 13편의 독립(단편)영화를 제작하고 22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작업했지만 업계 전문용어로 엎어지거나 주목받지 못함.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연출지부 소속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 신분을 숨기며 살고 있다. ‘1분에14타’, ‘MC편도준’ 등의 닉네임으로 영화 관련 커뮤니티나 팟캐스트에 자주 출몰했음. 현재 안양과 상암동을 오가며 여러 가지 빅픽처를 구상 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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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평화론 -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다시 읽는
이문영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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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톨스토이 평화론』은 명확하게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쓰였다. '왜 평화는 오지 않는가?', 그리고 '왜 지금 톨스토이인가?'이다. 저자 이문영은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다시 읽는 톨스토이 평화론」이라는 제목의 책의 〈서문〉에서 “러우전쟁 후 많은 강연을 하고 방송에 출연했다. 한국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것,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이면을 주로 다뤘다. 전쟁에 대한 반대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그럴 때만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문제적이고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인 톨스토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전쟁')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자신의 뜻을 알리는 방편으로 톨스토이를 손에 들었다. 푸틴과 지지자는 톨스토이를 앞세워 전쟁의 권위를 세우려 하고, 비판자는 톨스토이를 내세워 전쟁의 정당성을 허문다. 『전쟁과 평화』가 침략자의 최애 소설인 동시에 반전(反戰)의 확고부동한 기호로 함께 쓰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 지지와 반대로 갈라진 톨스토이 후손들은 저마다 '톨스토이의 유산'을 근거로 내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저자의 답변은 명확하다. 

"비밀은 '두 톨스토이'에 있다. '우리가 몰랐던 톨스토이' 또는 톨스토이 대 톨스토이의 대결'이라는 이 책의 주제도 이와 관련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의 생애는 '두 톨스토이'들의 공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성자 톨스토이 vs 사상가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 vs 『부활』의톨스토이, 애국자 톨스토이 vs 아나키스트 톨스토이···. 몇 가지만 추려보아도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의 본문에서 여러 차원의 두 톨스토이를 두루 다루지만, 여기 〈서문〉에서는 애국심을 두고 대결하는 두 톨스토이에 대해 말한다고 밝힌다. 한편 러우전쟁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하면서 발발했다. 이젠 2년 4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제2차 크림반도 전쟁으로 명명된 러우전쟁이 당초 짧은 기간 내에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일찍 종결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우크라이나의 선전과 러시아의 연이은 패배와 졸전으로 장기화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러우전쟁이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었을 때 이미 파국의 씨앗이 뿌려졌음을 감안하면 10년 차로 해도 무방하다. 크림과 전쟁 모두 톨스토이와 이리저리 연이 깊다. 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피 끓는 애국청년이었다. 그가 조국 수호를 외치며 지원한 대표적 전쟁이 바로 '크림전쟁'이었고, 그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준 소설이 바로 이를 다룬 「세바스토폴 이야기」였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된 파토스는 애국주의로, 이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다룬 『전쟁과 평화』도 마찬가지다. 크림전쟁 당시 영국-프랑스-튀르크 연합군과 싸우던 알렉산드르 2세는 「세바스토폴 이야기」를 번역해 러시아인의 애국심을 널리 유럽에 알리라 명했다. 이와 비슷하게, 히틀러와 싸웠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은 『전쟁과 평화』를 널리 보급해 러시아 군인의 애국심을 진작시키라는 특명을 내렸다.

반면, 노년의 톨스토이는 전쟁 반대, 병역 거부를 목놓아 외쳤다. 『부활』을 팔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도왔고, 『전쟁과 평화』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라 도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톨스토이는 내 나라, 내 민족만 귀히 여기는 '애국심은 곧 전쟁'이며, '만악(萬惡)의 근원인 국가'의 기본 동력으로 생각했다고 저자는설명한다. 1904년에 터진 러일전쟁은 톨스토이의 탈애국, 반국가 사상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대사건이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도와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도를 전쟁터로 내몬 차르와 천황을 매섭게 질타하며,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민중의 편에서 '무조건적인 전쟁 중단'을 호소했다고 강조한다. 크게 보아 전쟁에 대한 톨스토이의 변화의 방향은 당연히 젊은 톨스토이에서 노년의 톨스토이 쪽으로다. 하지만 톨스토이 인생의 장면 장면, 두 톨스토이는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크림전쟁의 톨스토이는 애국과 조국 수호를 강조하면서도 전쟁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감추지 못햇다. 「세바스토폴 이야기」, 『전쟁과 평화』에는 전쟁의 부조리, 그 의미 없는 잔폭에 대한 깊은 환멸과 날 선 통찰이 도처에 존재한다. 한편, 러일전쟁의 톨스토이는 애국주의에 결연히 맞서면서도 자기 조국의 패배에 완전히 무감하지는 못했다. 가장 아끼던 작품인 『전쟁과 평화』에 대한 애착도 죽는 순간까지 온전히 내려놓지 못했다."(p.8)



저자는 이번 러우전쟁이 젊은 톨스토이와 러일전쟁의 늙은 톨스토이 사이의 이러한 공존 또는 대결은 그로부터 150여 년 지나 벌어진 크림합병과 러우전쟁을 둘러싼 현재의 풍경 속에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저자의 지적은 톨스토이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 2014년 푸틴이 크림을 합병한 당시, 톨스토이의 증손자인 블라디미르 톨스토이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는 것. 그는 '150년 전 크림의 세바스토폴 요새에서 러시아를 위해 싸운 톨스토이의 후손으로서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 푸틴의 문화 고문이기도 했다. 2022년 러우전쟁을 '집단적 서방'과의 한판 승부로 규정한 푸틴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를 꼽았고, '2028년을 톨스토이 탄생 200주년으로 기념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침공을 고작 3주 앞둔 때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같은 푸틴의 행위는 전쟁의 부조리를 담아내면서도 애국심에 호소한 전쟁을 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왜곡하는 일로 폄하될 가능성이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톨스토이의 또 다른 증손자 표트르 톨스토이는 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단 사실도 저자는 밝혀냈다.

정반대의 현상도 벌어졌다는 점을 저자는 밝혀내고 있다. 푸틴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은 너도나도 톨스토이를 손에 들었다. 모스크바 시민 콘스탄틴 골드만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들고 반전 시위를 벌이다 구금되었고, 크라스노다르에 사는 알렉세이 니키틴은 "애국심은 노예근성이다!-레프 톨스토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또 모스크바 시의원 파벨 야릴린, 사업가 올렉 테리파스크는 톨스토이의 러일전쟁 반대 문구를 인용한 SNS 포스팅으로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되었던 사실도 적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 세계에 퍼진 톨스토이의 후손들도 움직였다. 톨스토이의 유지를 받든 자손 중에 앞서 거론한 블라디미르나 표트르 같은 사람만 있을 리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2022년 4월 톨스토이 직계자손 112명이 전쟁 반대 연명 서한 'Peace Now, Stop the War'를 발표하고, 이를 푸틴에게 발송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러우전쟁 지지자와 반대자 양편 모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푸틴의 행보는 노년의 톨스토이가 부르짖은 평화와 정확히 대척점에 위치한다고 저자는 전제한 뒤 톨스토이가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불벼락을 내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장 전쟁을 멈추라"고 호통치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푸틴의 '『전쟁과 평화』 넘버원' 운운에 대해서는 '내 이럴까 봐 쓰레기통에 버리라 한 것 아니더냐'라며 톨스토이가 펄펄 뛰었을 것이라는 표현과 함께 저자의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저자가 '전쟁 반대'의 편에서 톨스토이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판단은 독자 개인의 느낌이지만 앞으로도 저자의 글에 관심을 크게 가질 만한 요인을 제공한다. 독자 역시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전쟁은 무조건 반대'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다. 

여기서 저자는 톨스토이의 내면의 격렬한 싸움을 이해하는 듯한 말을 한다. "두 톨스토이가 생애 마지막까지 그의 내면에서 격투했다 한들, 당사자에게 그것은 고통이고 한계였다"는 말이다. 젊은 톨스토이를 온전히 비워내는 것, 그것이 참회 이후 절대평화주의를 지향했던 톨스토이의 필생의 과제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럼에도 두 톨스토이의 족적은 톨스토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러시아 문명 속에 자리 잡았다. 그것도 그 문명을 대표하는 가장 거대하고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러우전쟁을 둘러싸고 푸틴과 톨스토이가 각기 다른 좌표로, 그러나 러시아 문명이라는 하나의 자장 속에 이어졌다 갈라서기를 거듭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러우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 올렌사드르 트카첸코는 이 전쟁을 '역사와 문화를 둘러싼 문명 전쟁'으로 규정하고, 러시아 문화유산과 완전히 절연할 것을 촉구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우크라이나 작가 협회 펜 우크라이나(PEN Ukraine)는 러시아 책에 대한 전 세계적 보이콧을 호소했다. 톨스토이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교육부는 학교 커리큘럼에서 『전쟁과 평화』를 삭제했고, 톨스토이의 여러 고전이 재활용 파쇄기에 갈려 일회용 컵 홀더와 계란판이 되었다. 키이우 도심의 '톨스토이 광장' 역은 '우크라이나 영웅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나라 전역에서 톨스토이 동상이 철거되었다. 저자가 전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증오심이 반영되는 일 같아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그러나 피침략국 우크라이나 입장은 독자로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다. 피해 당사국으로서 뭔들 못하겠는가.



이 책은 2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톨스토이와 평화: 성자와 전사 사이〉, 2부 〈톨스토이와 아시아 평화〉이다. 1부에는 1장 「참회와 파문」, 2장 「반국가와 탈애국」, 3장 「톨스토이와 세계평화」, 4장 「The Last Station: 위대한 고통의 인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어 2부에는 5장 「톨스토이와 인도」, 6장 「톨스토이와 중국」, 7장 「톨스토이와 일본」, 8장 「톨스토이와 한국」으로 톨스토이가 아시아 각국의 반전, 평화주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를 살펴본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몰랐던 톨스토이, 특히 성자 톨스토이와 전사 톨스토이의 대결과 공존을 ‘평화’라는 키워드로 다루고 있다. 독자도 톨스토이를 읽기 전에 이런 사전 정보가 있었다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큰 고통과 고뇌 속에서 탄생했는지 절절히 느끼며 감동을 더했으리란 뒤늦은 아쉬움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톨스토이, 즉 불세출의 작가이자, 사랑과 용서,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설교하는 성자(聖者) 톨스토이 뒷모습은 대문호와 귀족 계급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탈국가, 탈민족을 외치던 근대의 이단아, 적그리스도라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신앙을 설파하며 기성 권력과 맹렬히 싸운 전사 톨스토이의 모습은 생경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는다. 다시 그의 작품을 재독, 삼독할 터인데 그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설레기도 한다. 전사 톨스토이는 국가로 대표되는 모든 제도화된 폭력의 거부, 정당방위조차 허용하지 않는 견결한 비폭력주의를 주장했다. 이러한 절대평화주의는 전투적이고 ‘불온한’ 평화주의로, 안전한 이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를 대문호라고 칭하는 이유가 충분하게 납득이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성자 톨스토이와 전사 톨스토이의 두 모습을 보여줬다. 두 모습의 톨스토이가 우리가 흔히 비유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중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대문호의 자질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어느 하나를 제외한 톨스토이가 아니다. 이에 따라 저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성자 톨스토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평화를 위해 싸운 전사로서의 톨스토이가 부각되고 그의 삶의 의미로 더해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말 그대로 ‘비타협적’으로 싸웠던 톨스토이, 그 결과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하고, 비밀요원에게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혹독한 검열로 자기 땅에서 어느 책 하나 온전히 출판할 수 없었던 저항자 톨스토이에 대한 이야기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의 출발점은 톨스토이의 지난한 투쟁이 발원하는 지점, 바로 그의 평화사상이다. 저자가 쓴 이 책은 이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 다룬 아시아 평화와 평화론자에 끼친 영향에서 우리의 작가 춘원 이광수가 등장한다. 또 같은 시기 활동한 일본의 작가들도 몇 명 나온다. 자세히 읽기는 했지만 독자의 이광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여기에 적기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저자가 쓴 부분을 일부 발췌해 옮긴다. 독자들의 양해 바란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미친 영향도 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핵심은 이런 법적인 조치들에 대한 거부와 불복종, 그로 인해 초래되는 모든 폭력적 처벌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그 토대에는 ‘오직 신의 법칙만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국가가 정한 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물리쳐서는 안 된다’는 톨스토이의 가르침이 깔려 있다. 이후 간디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시민불복종 운동, 즉 국가법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은 이렇게 톨스토이의 『하느님 나라』에서 얻은 각성으로부터 발화한 것이다.(p.147)


한국 근현대작가를 통틀어 춘원 이광수만큼 러시아와 인연이 깊은 사람도 드물다. 그는 문학비평가 김윤식이 ‘히스테리아 시베리아카(hysteria siberiaca)’라 부른, 병적일 정도의 러시아 사랑을 평생 간직했다. 『유정』이 보여주듯이 시베리아를 창작의 모티프로 자주 활용했으며, 작품 번역이 가능할 정도의 러시아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러시아 망명자들의 도시 하얼빈이나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랑하고, 1913년에서 1914년 사이 시베리아 바이칼주의 치타공화국에서 7개월간 살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이런 인연은 바로 이광수의 지극한 톨스토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p.233)


누구도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강고한 국가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의 흐름 속에 홀로 반국가, 반애국, 탈민족을 외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을 감행하는 것,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 양자 모두 도저한 윤리적 결단이다. 헤아릴 수 없는 논란과 의혹과 박해 속에서, 무엇보다 고통 속에서 톨스토이는 둘을 모두 해냈다.(p.249)


저자 : 이문영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노어노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톨스토이와 평화』 『평화를 만든 사람들: 노벨평화상 21』(공저), 『폭력이란 무엇인가: 기원과 구조』(공저), 『러시아학 입문』(공저), 『중앙아시아의 문명과 반(反)문명』(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바흐찐의 대화주의와 contradictio in adjecto」, 「Русская массовая музыка, русский рок и их освоение в Корее(러시아 대중음악과 록, 그리고 한국에서 수용상황 연구)」, 「포스트-소비에트 시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관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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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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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은 서양인과 비서양인으로 구분되어지는 시대다. 그것은 마치 문명인과 비문명인으로 구분되어지는 것과 같다. 세계의 모든 것이 이분법으로 나뉘어진 상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다인종, 다원화 등 다양화된 세계에서 살면서 왜 거의 모든 것들이 이분법으로 이루어졌을까? 이유를 찾으려면 인종 차별의 역사와 현실, 문명을 이루는 과학의 발전과 이용, 문명인이 말하는 문명과 비문명의 구분을 말한 곳으로 가야 한다. 또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파헤쳐야 한다. 잘 다음어진 구분이라면 인정하고, 잘못된 방법의 구별으로 판단되면 개선해야 한다. 

이 책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서양, 즉 유럽 그중에서도 서유럽으로 가야 의문이 풀린다. 시대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그리스서양 세계를·로마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에게해를 장악한 무역으로 발달된 문명의 시작이며, 유럽의 대부분을 하나로 제국으로 묶은 로마 제국 시대로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그들의 표현대로 유럽은 문명화된 최고의 통치 방법이 있고, 과학적 원리를 탐구해 자국의 국민들에게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곁으로 치워놓고, 직접 역사를 탐구해 들어가면 많은 주장이 그들의 시각대로, 그들의 입맛대로 꿰맞춘 것임을 알게 된다. 힘으로 바다를 장악해 무역로를 독점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돈으로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스 시대의 문명은 신(神)의 도움으로 이룬 것이기에, 엄청난 건축물인 신전을 세우고 그들을 기렸다. 그들의 신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서양을 하나의 제국으로 열린 로마 제국은 전쟁을 통한 피의 댓가이다. 삶의 풍요로움을 이루기 위해 식량은 물론 바닷길을 장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한 로마는 그들의 앞바다 지중해를 장악하고 제국이 완성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격언대로다. 

특히 로마는 황제 체제와 공화제를 왔다갔다 하면서 통치술을 발전시켰으며 결국 막강한 권력의 황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가 5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서로마)했다. 당시 로마는 많은 부분을 그리스 문화를 따랐다. 다만 전쟁을 위한 길과, 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법은 매우 합리적으로 제정됐다고 많은 학자들이 인정한다. 지금의 서구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로마 제국은 무력을 뺀다면 '길'과 '법'의 나라라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라." 등의 격언도 그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이 책의 저자 수바드라 다스는 서양인(서구 백인)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신념으로 공유되는 10가지 핵심 가치의 이면을 살펴보며, 역사와 우리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파헤친다.



저자는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이성의 최고봉이고, 교육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교양의 중심이라고 배웠다고 말한다. 저자도 '물론'이라고 말하듯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또 시간은 효율적으로 활용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이며, 글은 모든 생각과 사건을 표현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로 배운 것도 사실이다.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런 시각은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다. 교육과 시간의 중요성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 등 타지역도 마찬가지지여서 교육을 통해 이런 것들은 우리의 보편적 생각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갖추는 것을 문명화의 기본으로 간주해 왔다. 이에 따라 이를 갖추지 못한 사회, 사람은 자연스럽게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간주된다. 저자의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머릿속에 깊이 박힌 ‘과학’, ‘교육’, ‘글’, ‘시간’ 등의 개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우리가 세운 문명화의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누가 확립했으며, 결정적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있는가? 

이 책은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열 가지 핵심 개념의 생성 과정을 탐구하며, 서구 권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틀을 활용해 세계를 문명과 야만으로 나누고,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펼쳤는지 살펴본다. 멋지고 당연해 보이는 가치들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모양을 갖추고 발전하며,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의 결정적 도구로 활용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들이 짜놓은 권력 게임의 중심엔 ‘문명과 야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10가지 핵심 가치의 생성 과정을 탐구하며, 서구 권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프레임을 활용해 세계를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펼쳤는지 파헤친다.

과학을 독차지한 자들은 누구인가? ‘고전’은 누가 결정하며, 어떻게 제국주의의 비전이 되었나?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지었다는 말에 숨겨진 뜻은? 시간은 왜 우리를 걷잡을 수 없이 조여오는가? 잉카제국의 문자 ‘키푸’가 역사에서 삭제된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서구 세계가 만든 거대한 억압과 착취의 구조가 역사에, 그리고 우리 머릿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 하나씩 밝혀낸다.



저자의 집필 취지에 따라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과학」, 2장 「아는 것이 힘이다: 교육」, 3장 「펜은 칼보다 강하다: 문자」, 4장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법」, 5장 「민중에게 권력을: 민주주의」, 6장 「시간은 돈이다: 시간」, 7장 「국가는 당신을 원한다: 국민」, 8장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 9장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죽음」, 10장 「우리는 한배를 타고 있다: 공동선」 등이다. 각 장의 제목을 나열했지만 대부분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러한 말들은 믿어 의심치 않은 지혜로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고 있다. ‘과학의 합리성’, ‘교육의 힘’, ‘시간의 중요성’, ‘글의 영향력’ 등을 대표하는 보편적인 신념들은 현대 문명의 성취이자,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로 지금도 공유된다. 하지만 이를 순수하게 옳은 것으로만 생각해도 될까?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그 안에 깃든 역사적 의미를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비판적 시각은 얼마나 정교하고 깊게 탐구된 것인지 책을 읽으면서 판단하면 될 일이다.

저자는 인도의 성인이라고 추앙받는 간디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에 따르면 간디는 청년 시절 영국인들만큼 서구화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문명화'되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각 잡힌 양복을 입고,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런던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식민지를 문명화한다는 임무에 딱 맞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을 들였던 그 순간부터 마주했던 인종차별을 겪는다. 인종차별은 위대한 영혼의 지도자 간디에게도 넘지 못할 벽이었다. 대영제국은 식민지 사람들을 문명화하기 위해 정의, 평등, 자유, 민주주의, 자치를 가르치지만 어디까지나 백인 시민에게만 이런 기준을 적용하는 위선을 드러낸다. 인도로 돌아온 간디는 여성과 달리트(일반적으로 '불가촉천민'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부른다. 힌두교 카스트 제도의 밑바닥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다)에게도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그는 문명적인 사회에서는 가능하다고 배웠던 모든 신념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데 생을 바쳤으며, 진정한 평등과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간디의 삶은 서양 문명이 우리의 생각만큼 우리의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쯤되면 '문명'이란 개념에 대해 의심해 볼 만하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문명화되었다는 말은 진보와 발전이라는 개념을 포함한다"고 전제한 뒤 "온갖 복잡한 기반 시설과 세련됨을 갖춘 도시는 시골이나 야생보다 더 발전되고 문명화된 곳이라는 말을 듣는다. '야만인'이나 '미개인'과는 달리, 문명화된 사람은 합리적이고, 교육을 받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라고 배운다. 제일 중요한 점은 역사에서 문명화는 유사체(類似體)적인 개념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문명화된 그 모든 것들의 반대편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비문명적인 사물과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라고 지적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그리스어를 구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미개인'이었다. 고대 로마인 입장에서는 'civis'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시 거주자였다. 시골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사람들과는 구분되었다. 저자가 이런 사례를 언급한 까닭은 고대 그리스인과 고대 로마인 모두 다 지금 우리가 '문명'이라 여기는 것의 문화적 조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계몽주의 시대부터 20세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명이라는 말은 새롭고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의미를 탐구하고 '문명'이라는 말이 어떻게 해서 '서양'이라는 말과 결국은 사이 좋게 더불어 안착했는지 역사적 기원을 추적한다고 쓰고 있다. 

실마리는 '서양'이라는 말 속에, 그리고 서양과 비서양의 구분은 단 한 번도 순수하게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 속에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유럽의 작은 왕국에서, 북아메리카의 탁 트인 평원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를 지나, 전 세계 소수 민족 거주지까지, 서양 문명의 심장부 곳곳을 살펴본다면, 이 모두가 지닌 단 하나의 공통점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서양이란 바로 백인이 있는 곳이다." 서양 문명이 의미를 띠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서양 문명과 연관 짓는 관행과 가치들(몇 가지만 언급해 보자면, 민주주의, 정의, 과학의 합리성 등이다)은 점점 커져가는 유럽 제국의 야망과 권력에 발맞춰 나타났다. 어디가, 또 무엇이 문명화되었는가를 결정한 것은 바로 식민지 통치자들이었으며, 이들은 자신들만의 프레임 속에서 문명을 규정했다. 그리하여 유럽 바깥에, 그러니까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정착형 식민지, 사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서구인들이 건설한 이곳들은 현재 서양의 문명 세계를 이루는 곳들이라 여겨지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 내린 정의를 살펴보면, 이런 장소들은 단순히 더 강력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나머지 지역보다 더욱 발전한 곳들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10가지 프레임은 현실을 누르고 브랜딩이 성공한 사례라는 얘기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서양'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서양 문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명화라는 사명'은 식민지를 건설한 국가들의 비전이자 변명이었다는 것. 유럽의 강대국들은 세계의 나머지 지역을 단순히 자기들 것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문명이라는 틀을 이용해 완전히 재구성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단순히 이런 관념 뒤에 자리 잡은 거짓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기보다는 애초에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런 관념들이 사실이라고 제풀에 속아 넘어갔는가를 이해해보기 위해 10가지 프레임을 추출해냈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지닌 서양이라는 관념 속에 널리 퍼져 있는 "서양은 나머지 세계와 확실하게 구분되며, 이들보다 확실하게 우월하다는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서양 문명은 항상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서양 문명은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럴듯한 존재라고 주장했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문명화된 서구와 비문명적인 '타자' 사이에 그어진 선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겠다고 결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보는지를 얘기한다. 또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특수한 시각에서 제외된 사람들에 관한 책이며, 그렇게 제외되었던 사람들을 다시 포함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한편으로 독자에게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 이유가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을 겪고 남북으로 갈라진 채,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서구 문물을 바탕으로 사회 체계가 형성되었기에 우리 고유의 민족혼이나 정체성에 상처가 깊다는 점에서 이 책의 증언들이 사실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한다. 선진 문명이란 명목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서구 세계의 사상과 가치관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고,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아쉽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세계의 프레임마저 그대로 내면화하여 우리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질문을 던지며, 이제 프레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되찾자고 제안한 저자의 열정에 응원할 수 있다.



배냉 왕국이 파괴되기 전에도 약탈은 자행되고 있었다. (···) 이 가운데 최고봉은 대략 천 개쯤 되는 황동판으로, 유럽 전역의 박물관에 퍼져 전시되었다. 이를 배냉 장식판이라고 총칭한다. 1897년 런던만 따져보더라도, 배냉에서 가져온 약탈품은 왕립 식민 협회, 왕립 지리 학괴, 포레스트 힐의 호니먼 박물관, 그리고 당연히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곳에는 오늘도 여전히 100개 정도가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 지하에 있는 아프리카관 소장품의 일부다. 판에 끼워져 가로 여덟 줄과 세로 일곱 줄로 이뤄진 바둑판 모양으로 전시되어 있어, 마치 우주를 자유자재로 떠다니는 것만 같다. 이런 식으로 전리품 또는 식민지 시기의 노획물과 약탈품을 지구에 유의미하게 연결되지 않은 것인 양 전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시 방식은 서양이 이 사물들의 함의와 맥락을 무시한 채 바라본다는 점을 뚜렷하게 드러낸다.(p.301) 


저자 : 수바드라 다스(Subhadra Das)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과학사와 철학사를 전공했고, 동 대학교 박물관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과학적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한다. 팟캐스트, TV, 라디오 등에서 대중과 활발히 접촉하며, 권력이 조작하고 숨긴 역사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첫 책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세계사를 연대, 사건, 인물과 같은 기존의 주제가 아닌 개념과 생각을 중심으로 풀어내며 역사 분야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서구 중심주의’라는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진부하고 낡은 것이라 간주되던 메시지를 ‘프레임’과 연관시키며, 서구 세계가 만든 거대한 억압과 착취의 구조가 역사에, 그리고 우리 머릿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 통렬하게 밝혀내어 찬사를 받았다.


역자 : 장한라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과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으며,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서 그리스 · 로마 고전을 읽고 비평했다. 교보문고 보라(VORA) 에디터로 활동했다. 국제학술대회 통역과 사회과학 분야 논문 번역을 맡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및 명예교수의 영어 코치를 담당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남달라도 괜찮아』 『말의 무게』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등이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 『너와 나의 야자 시간』 『게을러도 괜찮아』 등이 있다.

구입한 물건을 오래 쓰고, 되도록 음식은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환경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글을 쓰거나 옮기며 여행 생활자로 지내고 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경험의 기록을 『열두 달 초록의 말들』로 한데 모았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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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할 용기 - 내 인생을 바꾸는 10단계 루틴
데이먼 자하리아데스 지음, 김송호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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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절제할 용기』는 인간다운 삶의 덕목 가운데 하나인 '절제'에 대한 이야기다. 절제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이다. 절제(節制)의 사전적 풀이는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다. 영어로는 'moderation', 'self-control', 'restraint' 등이 사용된다. 절제라는 단어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대로 '중용'에 가깝다. 동양에서 공자가 가르친 중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옛 사람들은 절제를 인간이 가진 고유한 덕목의 하나로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나 청소년기에 절제력을 키우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또 집안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배운 것이다. 그러나 절제는 그리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종류의 정신 상태가 아니다. 때문에 절제를 결심해서 한 번에 절제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평생을 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데이먼 자하리아데스는 〈프롤로그〉를 통해 절제를 결심한 이후 대부분 실패하지만 또 어느 시기가 되면 다시 결심하고, 그러다 조금 후 또 실패한다. 이렇게 누구나 절제와 자기조절을 개선시켜 나간다고 전제한다. '충동을 억제하는 방법'도 배워나가면서 절제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절제는 의외로 시도자들에게 많은 보상을 선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절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지금까지 '절제력이 없다'는 약점과 씨름해왔다. 그 약점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또 절제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유혹에 넘어갈 때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비틀거리면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더 이상 실패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제가 승리하는 순간은 점점 늘어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점진적으로 절제력이 높아지게 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지적한다. 절제력이 높아진 뒤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언제든지 게으름과 나쁜 습관으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이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를 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의 양은 점차 줄어 들어가리라는 희망이 있다. 절제가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투쟁은 대개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자신은 절제를 위한 처절한 전투를 치르는 과정인데도 주변에는 절제와 규율이 몸에 밴 사람들이 존재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 먹을 만큼만 먹고 입을 닦는 사람, 주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 몸과 정신에 해로운 것들을 멀리 하는 사람 등 찬찬히 살펴보면 의외로 많다. 이들은 엄격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들은 손쉽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간다.

반면에 나는 어떨까? 비교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다른가를 알기 위해 불가피하게 비교는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비교는 상대의 속속들이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내밀한 환경이나 개인적 성격, 그리고 절제에 관한 투쟁 노력 등을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기껏 받아낼 수 있는 답변은 "살기 위해서"라는 정도가 최선이다. 반대로 내 자신은 어떤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많지만 항상 내 몸과 마음이 따라와주지 못했다. 갖지 말아야 할 자격지심이 생길 판이다. 독자 개인적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절제한 적도 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가장 흔한 금연, 금주 등뿐만 아니라 하루 30분 아침(새벽) 운동도 실패했다. 이젠 절제를 유지한다는 게 내 인생과 관련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멀게만 느껴졌던 '절제의 삶'에 절제를 이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변화의 툴을 제공한다고 집필 취지를 밝힌다. 저자는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절제가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절제한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용기를 내는 것뿐이라는 격려도 아끼지 않는다. 절제의 삶의 열쇠는 '습관'에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절제의 가장 큰 이점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절제를 하려면 우리의 욕구와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절제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습관’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절제하는 행동을 습관화시키면 구태여 애쓰지 않아도 시스템에 의해 우리의 욕구와 욕망이 불식된다. 이 책은 어떠한 행동을 습관으로 들이는 방법을 비롯해, 우리의 삶에서 절제를 유지하는 다양한 기술이 담겨있다. 처음부터 ‘열심히 일하는 습관’, ‘일찍 자는 습관’, ‘조금 먹는 습관’을 들일 필요는 없다. 저자의 솔루션은 ‘일 시작하기 전 커피 한 잔 마시기’, ‘잠자기 전 쇼팽 음악 듣기’, ‘밥 먹기 전 다 먹은 후의 모습을 상상하기’ 등 힘들게 할 필요가 없는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두뇌가 습관의 메커니즘에 서서히 익숙해지게 만들어간다.

뇌과학과 심리학에 정통한 저자가 개발한 이 솔루션은 저자 자신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이 책이 왜 출간 후 아마존 자기계발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 분야에 10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유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각 장의 끝에 달린 ‘절제 연습’ 코너에 있다. 절제 연습은 본문에서 읽은 내용을 실제로 내 삶에 적용해보는 훈련 과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적혀있어 손쉽게 따라해볼 수 있다.

새로운 습관을 기르려면 일상 속에 새로운 행동을 끌어들인 다음, 오랜 기간 그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한다. 이런 행동은 이미 존재하는 나쁜 습관을 거스르기 때문에 습관을 들이고자 하는 분야가 익숙한 분야이든 아니든 힘들기 마련이다. 인간의 두뇌는 익숙한 루틴, 즉 습관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도파민은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신경전달 물질이다. 두뇌는 새로운 유형의 행동을 할 때 특히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하다보니, 익숙한 루틴에 따라 행동할 때 만족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두뇌가 도파민 분비를 위해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 이것을 ‘충동’이라고 부른다. 습관을 기르는 것은 이러한 충동에 맞서 우리 뇌가 익숙해질 때까지 새로운 행동을 지속하는 일이다. 이윽고 새로운 행동이 습관으로 정착되면 그때부터는 두뇌가 그 새로운 행동을 하도록 충동을 일으킨다. 이러한 습관의 원리를 이용해 자신의 행동을 올바르게 이끌어나가는 힘이 절제력이다.(p.32)



삶속에서 절제를 실천해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연습을 성공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게 한다. 연습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따라하기만 하면 어느새 절제가 내 삶에 스며들어온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 힘들다. 이는 이렇게 쉬운 것을 나는 지금까지 실패만 해온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면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지침대로 실천해 보면 천천히 저자의 솔루션으로 빠져들어가며 하루하루 다르게 발전되는 '절제의 나'를 발견하게 되고, 더욱 더 에너지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연습 과정은 저자가 출간해온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한다. 이미 검증이 된 방법이라고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작과는 달리 이 책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가 출간해온 자기계발서 시리즈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 24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개인 워크숍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자들을 교육 과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수련시킬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3개 부로 나뉘어 각 부마다 교육 과정에 맞게 하나씩 목표를 갖고 있다. 그 목표들에 대해서는 각 부의 맨 앞에 매일매일 책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썼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독자들이 실현 가능한 절제 원칙과 연습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독자들이 요구받을 내용은 단순하다. 책에서 배운 절제 원칙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보는 것뿐이다. 연습을 따라하다보면 절제가 있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1부는 독자들이 절제력을 갖고 싶도록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는 장이다. 우리가 절제력을 키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절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다고 저자는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부에 절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절제의 중요성과 쓸모에 대해서 논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절제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1부를 읽고 나면 절제력을 기르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습득할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2부는 절제력을 키우기 위한 10단계를 제시한다. 실전 과정이다. 10단계는 곧바로 실행 가능한 원칙들이 제시된다. 개인의 성격과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단계적인 실행 계획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저자의 절제력 키우는 경험에 의해서다. 이 같은 점에서 2부는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각 단계의 연습 방법은 두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밝힌다. ① 각 단계가 내포하고 있는 콘셉트를 명확하게 이해한다. ② 그 콘셉트를 내 삶에 적용하고 마스터한다. 2부를 마치고 나면, 독자들은 충동을 억제하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됨으로써 목표와 가치, 신념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3부는 평생 절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원리와 방법이 제시된다. 절제력은 근육과 같아서, 매일 사용하면 점점 강해지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는 게 저자의 믿음이다. 절제력을 기른 다음에는, 그것을 규칙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약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앞서 저자는 언제든지 게으름과 나쁜 습관으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유지에도 절제력 키우기처럼 매일매일 반복해서 연습할 것을 주문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제가 승리하는 순간은 점점 늘어나고 이런 과정 속에서 점진적으로 절제력이 높아지게 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를 유지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이 이 책은 제시하고 설명하지만, 이 방법이 독자들의 결정과 행동이 각자의 의도하는 바에 맞춰지도록 하는 실제적인 전략도 배울 수 있다. 

저자는 필요한 내용을 빼먹지 않을 것이지만, 본문 전개 과정에서는 가능한 글의 진행 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독자들이 책을 빠르게 끝까지 읽어내려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이론서나 원리 설명서가 아니라 실천서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밝히는 로드맵은 독자들이 나아갈 방향을 단계별로 한 단계씩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이 로드맵에는 독자들이 살아가는 동안 피해야 할 장애물에 대한 정보도 제시되어 있다. 이 정보는 실천자들이 많이 드러내는 함정 같은 장애물로서 독자들이 같은 허점에 노출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꿀팁'처럼 제시되어 있다. 적어도 실천하는 동안엔 잊지 말아야 할 장애요소들이다. "절제의 여행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살다보면 당신의 절제력이 차츰 마모되어 약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따라서 새로 시작할 필요를 느낄 때마다 이 책을 반복해서 읽고 실천하기를 저자는 권한다.



의지력이 고갈됐을 때도 절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동시스템’ 안에 존재해야 한다. 행동시스템은 특정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연속된 행동의 집합으로, 목적이 되는 행동과 그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방아쇠가 되는 행동으로 이뤄져있다. 행동시스템은 특정한 일을 해야 한다고 몸에 신호를 주는 루틴이다. 이러한 루틴이 습관이 되면 최소한의 생각과 노력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수면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물을 마시고, 내일 할 일 목록을 작성하고, 기도나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이게 당신의 저녁 루틴이고, 저녁 행동시스템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런 행동들을 하겠다고 의도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행동시스템을 처음 작동시키는 ‘물을 마시는 행동’ 외에는 어떤 행동도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행동들은 이전 행동에 따라 습관대로 이뤄져, 밤에 잠이 드는 것이 쉬워진다.(p.173~174)


저자 : 데이먼 자하리아데스(Damon Zahariades)


미국의 떠오르는 자기계발 멘토. 신간을 출간할 때마다 무조건 믿고 사고, 주변에 홍보를 자처하는 열혈 골수팬을 확보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기존의 자기계발 멘토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개인적인 경험이나 연구 결과가 아니라 철저히 이론과 실천을 중심에 둔다는 데 있다. 가슴을 잠깐 뛰게 하는 화려한 동기부여 연설보다 실제로 독자가 삶을 바꿀 수 있게 실용적인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강연이나 워크숍을 하지 않고 오로지 책으로만 독자들과 소통하는 비밀에 싸인 저자로 알려져 있다. 원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데이먼 자하리아데스는 쓸데없는 회의와 동료들과의 잡담으로 가득한 산만한 근무 환경을 버티다 못해 대기업 퇴사를 선언하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업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법을 다룬 블로그 ArtofProductivity.com을 운영하면서 자기계발 전문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20년 출간한 《멘탈이 강해지는 연습》은 광고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리뷰 4,000개가 달리며 아마존 분야 1위를 달성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리뷰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역자 : 김송호(KIM,SONG-HO,金松虎)


서울대 학사, KAIST 석사를 마친 후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자로서 주로 기업에서 경력을 쌓는 중에도 공학 분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책들을 출간하고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과 대학,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감사 및 평가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물병자리, 2016)'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한 지방대생 성공 전략』(비피기술거래, 2018), 『신재생 에너지 기술 및 시장 분석』(비피기술거래, 2016), 『부의 진화론』(태웅출판사, 2014), 『사오정 넘고 오륙도 돌아 행복공동체로』(필맥, 2013), 『퇴직은 행복의 시작이다』(필맥, 2011), 『녹색성장의 길』(한국표준협회, 2011)' 『CEO 공학의 숲에서 경영을 논하다』(페이퍼로드, 2010), 『당신의 미래에 취업하라』(필맥, 2009), 『부동산 신투자전략』(지상사, 2009), 『행복하게 나이 들기』(휴먼앤북스, 2008)' 『대한민국 이공계 공돌이를 버려라』(청림출판, 2007).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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