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범
홍원식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백범 김구는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독립운동’ 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생각하게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하면 ‘백범 김구’를 떠올린다.

그만큼 독립운동을 초지일관 전개하며 주도하였고 그 중심 기관으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던 김구는 어린 자식들에게 유서를 남기고자 장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백범일지』의 시작이다.

일종의 유서였던 『백범일지』 〈상권〉은 1929년에 완성되었고, 이어 1942년 『백범일지』 〈하권〉을 완성했으며, 해방된 후 1947년 국사원에서 단행본 형태로 처음으로 『백범일지』가 출간되었다. 이후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백범 김구에 대한 연구가 해방 75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백범의 사상은 독립뿐만 아니라 통일의 측면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남북한이 공통으로 존경하는 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백범맨'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백범 김구를 연구해 온 저자 홍원식이 혼신을 다해 썼으며, 『백범일지』를 '미래지향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평등과 화합을 주장한 백범의 사상과 정신을 자연스럽게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백범일지』에서 못다 한 이야기, 백범 김구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소설 백범』에 담아냈다.

이는 백범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분들과의 인터뷰와 각종 사료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우리가 몰랐던 백범을 실감나게 재현해 냈다.

문화의 힘을 키워 독립적인 국가의 건설을 그토록 꿈꾸었던 백범 김구. 『소설 백범』은 그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당시 김구의 위상을 디테일하고 흡인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 홍원식은 지난 2000년 동학군 애기접주의 파릇파릇한 첫사랑. 아버지를 여의고 맞은 여옥과의 옥과 같은 사랑. 안창호 선생의 여동생과의 혁명가적 사랑. 평생의 반려자일 줄 알았던 아내와의 뼈아픈 사별. 피신의 세월, 장막이 되어 주었던 이국 여인의 백범 사랑. 환국 후 충실한 조언자였던 오주경의 신앙적 사랑. 민족제단에서 순교하기까지의 영원한 겨레사랑. 백범 김구의 못다한 사랑과 위대한 역사를 그린 장편소설 『소설 백범 김구』(상, 하)를 펴낸 바 있다.

당시는 백범 김구의 사랑과 역사에 초점을 맞춰 백범정신의 위대함을 그리는 게 집필 의도였다. 이때 쓴 소설을 토대로 전문가 인터뷰와 자신의 사료 연구를 더하여 한 편의 소설로 압축하고 새로 밝혀진 것을 보충해 다시 펴냈다.





백범 김구의 아명은 김창수다. 적군인 동학 토벌군의 수령인 안 진사(안태훈, 안중근의 아버지)가 동학군으로 활동하는 어린 창수를 보고 담대한 기개를 높이 평가해서 어린 나이에 동학군으로 활동하다가 목숨을 잃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인재라는 판단으로 설득했다.

그때 안 진사와 어린 동학군 창수는 '나를 치지 않으면 나도 치지 않는다'는 불가침협정과 함께 '어느 한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동맹을 맺었다는 일화도 소개한다.

이후 사형수로 수감됐으나 집행 직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고 애국지사들과 함께 민중 교육사업을 한다. 하늘을 우러러 나라와 민족 앞에 부끄럼 없는 삶을 다짐하며 그 길로 백범 김구로 이름을 바꾼다. 3.1독립운동을 계기로 김구의 삶은 상해임시정부와 함께 최전선에서 독립 투쟁을 지휘한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하는 장면도 담아내고, 일본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침략과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힘쓰는 장면을 문학적 감각을 더해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재구성한다.





백범이 광복군을 무장시키고 대일본 공격에 미군과 함께 참여하려 했지만 일제가 예상치 않게 이른 시점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무장 광복군의 대일 전쟁 길이 막히는 안타까움과 앞으로 다가올 우리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를 예상하는 듯한 모습도 그려낸다.

그러나 백범은 해방 후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기 전 통일 국가를 세우지 않으면 남북한간 전쟁을 예고하며 당시 분계선인 38선을 넘나들며 북한 집권층과 통일에 대한 남북간 단합이 필요하다며 설득하지만 끝내 이념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념의 벽에 막혔지만 사실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저지된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백범의 독립과 통일 이외에는 아무 욕심이 없는 진정한 민족 지도자상을 부각시키는 대목에서 독자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머무르던 경교장에서 남한 정부 정적 앞잡이에 의해 암살되면서 백범 김구의 삶은 마감한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정신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살아가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 점을 되살리고자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소설이다.





김창수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의 범 같은 기세에 압도되어 어느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틈에 창수의 발밑에 밟혀 있던 왜놈은 몸을 빼내어 잽싸게 칼을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칼날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김창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을 용케도 피하며 왜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자가 ‘억’하는 소리를 내며 거꾸러졌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동학군의 접주로 활약하며 민족무예 택견으로 다져진 창수의 몸엔 기선을 제압할 웅기(雄氣)가 서려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는 다시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칼자루를 쥔 왜놈의 손목을 밟아 눌렀다. 언 땅에 칼이 떨어졌다. 옴짝달싹 못한 채 씩씩거리고만 있는 왜놈을 바라보는 김창수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 「치하포 의거」 중에서


김구는 하늘을 우러러 나라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리라 다짐하면서, 결단코 변절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심장에 새기고 싶었다. 그러한 결심의 표시로 김구는 이름과 호를 바꾸었다. 그렇게 바꾼 이름이 구(九), 호는 백범(白凡)이었다.

‘백(白), 범(凡), 김(金), 구(九).’

그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이름을 ‘구(龜)’에서 ‘구(九)’로 고친 것은 일제의 민적(호적)에서 이탈하겠다는 강한 의지이기도 했다. 그는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났고, 이 이름은 곧 그의 인생이 되었다.

- 「백정범부(白丁凡夫)로 다시 태어나다」 중에서





백범은 거무스름한 눈자위가 움푹 패이고 거죽뿐인 볼이 오목해진 아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뼈만 앙상한 손마디와 더욱 작아진 두 어깨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수건에 물을 적셔 쩍쩍 갈라진 입술을 닦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이 너무 늦어 버린 것만 같아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내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백범은 애써 외면하려 안간힘을 썼다. 회한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가족에게 드리워진 그림자」 중에서


백범은 밤사이 가흥을 빠져나와 엄항섭, 안공근과 함께 남경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고 진과부의 명에 의해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던 요인들이 백범 일행을 숙소로 안내했다. 이튿날 밤 백범은 진과부가 제공한 차를 타고 통역을 해 줄 박찬익을 동행하여 장개석의 자택으로 갔다. 안내해 주는 이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장개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개석은 환하게 웃으며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아주 반갑게 백범을 맞이했다.

- 「장개석과의 정상 회담」 중에서





당시 일반 노동자의 한 달 급여는 30원 정도였다. 그런데 백범 한 사람 에게 걸린 현상금은 자그마치 60만 원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백범의 목에 내걸 만큼 백범에 대한 일제의 두려움과 경계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것이다. 곳곳마다 백범의 얼굴이 벽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일제의 감시는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백범의 활동 반경을 조여 왔다. 어딜 가나 정탐꾼들이 득실거렸다. 백범의 신변은 어디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 「상해 탈출」 중에서


“빛과 어둠 중 지금 우리는 흑운이 짙게 깔린 어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어둠의 마수가 영원할 줄 알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의 피를 빨아 살아가고 있는 ‘어둠의 자식들’이 많다는 것은 고국 생활에서 보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인아, 신아, 잠 못 이루던 밤에 경험해 본 적이 있겠다마는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머지않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시절의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의로운 이들에게 머지않아 찬란한 광명은 비춰 오게 되어 있단다. 어느 시대에나 두 부류의 사람이 있지. 어둠의 자식들과 빛의 사자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참된 승리는 반드시 빛의 편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란다. 훗날 너희들의 눈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야. 내가 들려주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역사는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역사다.”

- 「가족과의 재회」 중에서





집무실 안에 정오의 햇살이 가득 차고 있었다. 안두희는 분노도 위협도, 하다못해 두려움조차 없는 백범의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기다릴 테니 떨지 말고 내 가슴을 쏴라! 그래야 산다!”

백범의 육중한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안두희는 눈동자의 초점마저 상실한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던 안두희는 자신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권총을 쳐다보았다.

- 「내 가슴을 쏴라!」 중에서


저자 : 홍원식


<통일헌법 이념으로서의 백범사상>을 연구하여, 국내 최초 백범 전공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중학 졸업 이후 3년 동안 청소년 노동자 생활을 했던 저자는 ‘우리 민족이 인류 행복을 선도하는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백범 정신’에 큰 영향을 받아 학업을 시작해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및 경기대정치전문대학원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남북공동 백범추모행사와 도서 6,000권의 북한 보급 등을 위해 15회에 걸쳐 남북을 왕래하면서 남북관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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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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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운명의 상대를 ‘DNA 매치’ 기술로 찾아준다. 『당신이 사라진 순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유명한 소설가 존 마스는 이 흥미로운 설정을 바탕으로 운명의 연인을 찾는 다섯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 『더 원』이다. 하지만 모두의 매치 결과가 뜻밖이다.

결혼을 앞둔 남자에게 동성의 연인을 추천하고 심지어는 연쇄살인범에게 경찰을 매치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인위적 사랑의 가능성과 어쩌면, 그 ‘한계’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스릴러다.

머리카락 한 올, 입속에 넣었던 면봉 하나만 있으면 완벽한 행복을 보장하는 연인과 연결해주는 가상의 사업 ‘DNA 매치’가 소설의 핵심 소재다. 올 하반기에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10부작이 공개될 예정이다. 소설 속 ‘DNA 매치’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관계로 추앙받지만 주인공들이 반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매치되지 않은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해야 과학과 ‘DNA 매치’를 탓하지 않고 가장 인간다운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뇌한다.

책은 어쩌면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순정에 대한 이야기다.





‘DNA 매치’가 발달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스릴러 『더 원』. 사랑에 대한 이 기발한 상상은 굿리즈 4.2점, 영국 아마존 4.5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았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2018년 최고의 SF소설’, BBC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더 원』은 참신한 소재, 기존의 어느 작품과도 닮지 않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고든 심리 묘사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웰메이드 스릴러다. 장르적으로는 당장 한 페이지 뒤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서스펜스 스릴러에,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는 로맨스, 언뜻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사실 디스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는 입체적인 세계관의 SF까지 환상적으로 버무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추리소설 종합 세트를 완성한다.

작가 존 마스는 데뷔작 『당신이 사라진 순간』을 출판사들에게 거절당한 뒤 자비로 출판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며 독자들에게 먼저 인정을 받았다.





사랑의 성공률은 100%, 실패율은 제로. 더 이상 실연으로 고통받을 일도, 고독에 몸부림칠 일도 없이 운명의 짝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더 원』 속 세계는 ‘DNA 매치’가 발명되어 상용화된 지 10년이 지나 이미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매치를 찾아 기존의 배우자 또는 연인을 떠났거나, 자신의 매치를 따라 대륙을 가로질러 이주했거나, 매치를 찾기 위해 유전자를 제공한 뒤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다.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대신에 결혼 역시 신경 쓸 거리도 안 되는 시대, 매치를 찾았다는 것만으로 결혼을 통해 무엇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시대, 매치에 대한 신뢰가 인종 차별과 각종 혐오를 무너뜨리는 시대.

『더 원』은 ‘DNA 매치’를 통해 운명의 연인을 만나지만,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하고 마는 다섯 커플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아이를 낳고 싶은 이혼녀 맨디는 매치를 만나러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죽고 그의 냉동 정자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런던 전역을 공포에 빠트린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 그의 매치는 놀랍게도 그의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다.

결혼을 앞둔 닉이 여자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받은 테스트에서 지목된 그의 매치는 어느 잘생긴 남자다. 매치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간 제이드를 맞아준 연인은 앙상한 몸의 시한부 환자다. 절대적인 ‘영혼의 짝’을 갈구하던 이들이 빠진 딜레마. 예측할 수 없는 연애 블록버스터가 펼쳐진다.





소설 속 ‘DNA 매치’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도구적 장치가 아닌, 사랑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인간 본성을 잘 드러내는 설정으로 활용된다. ‘DNA 매치’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관계로 추앙받지만, 인물들이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아기를 갖는 게 꿈이던 맨디는 매치인 리처드를 찾은 뒤 매일같이 그의 SNS를 염탐하며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리고 건강한 육체를 엿본다.

리처드가 죽고 냉동 정자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우성 유전자를 타고났을 그의 아기를 선뜻 갖기로 한다. 제이드는 케빈이 자신의 매치라는 사실을 알지만, 앙상하고 머리가 벗겨진 그에게 이성으로서의 설렘이 일지 않는다.

또한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는 경찰인 에이미가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는 데 희열을 느끼며, 그녀를 예비 희생자와 조우하게 하는 장난을 친다.





그러나 존 마스가 서로 다른 욕망과 결핍을 지닌 인물들을 시니컬하게만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인물들은 각자 결핍을 채우려 하는 한편으로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매치된 사람끼리의 관계든 매치되지 않은 사람끼리의 관계든, 자신의 감정과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까지가 사랑임을 실감한다.

책 속에는 5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맨디’ ‘크리스토퍼’ ‘제이드’ ‘닉’ ‘앨리’이다. 각 인물들마다 특징이 있다.

우선 ‘맨디’는 37살 이혼녀이고 두 번의 유산을 경험했다. 그녀는 자신의 DNA 매치인 리처드 테일러 라는 젊은 남성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만나기도 전 그는 이미 사고로 죽음을 당해 추도 예배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녀는 한번도 보지 못한 자신의 짝을 알고 싶은 마음에 그곳을 가게 된다. 과연 그녀는 무엇에 이끌려 그곳에 가는 걸까? 그녀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두 번째 ‘크리스토퍼’는 33살 사이코패스다. 살인을 즐기며 자신이 목표로 세운 30명의 여성을 죽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며 한 명씩 계획 살인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의 DNA 매치인 31살 ‘에이미 브룩뱅크스’여성을 만나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이 경찰관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그녀와의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자신의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끼지만 목표로 했던 살인 계획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언제까지 지속 될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목표한 살인을 성공 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제이드’는 많은 빚에 허덕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 이다. 그녀에겐 아직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지구 반대편 호주에 살고 있는 ‘케빈’이라는 남성이 DNA 매치 이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직접 보기 위해 빚을 내서 과감히 여행에 오른다.

과연 그녀가 바라고 원하는 이상형의 남성 일까? 그는 왜 그녀에게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까?

네 번째 ‘닉’은 결혼을 약속한 ‘샐리’가 있는 건실한 청년이다. 그는 DNA 매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그녀가 결혼 전 확인차 해보자는 끈질긴 권유 끝에 하기로 한다. 하지만 너무나 생뚱맞게 그의 DNA 매치는 남성으로 나왔다.

동성애적 기질을 전혀 느끼거나 생각해본 적 없는 ‘닉’은 불같이 화를 낸다. 그의 약혼자 샐리는 한 발 더 나가 한 번 직접 만나 확인해보자고 한다. 결국 그녀의 성화에 못이겨 ‘닉’은 자신의 DNA 매치인 마사지 사인 ‘알렉스’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한다.

과연 ‘닉’은 DNA 매치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 할까? 100% 확률을 자랑하는 DNA 매치는 왜 ‘닉’에게 남성을 추천 한 것일까?





다섯 번째 ‘엘리’는 DNA매치의 유전자를 발견한 과학자이자 4천명의 직원을 둔 CEO이다. 그녀는 자신의 발견한 것으로 초일류 기업을 키웠지만 사람들의 원망과 분노로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고립된 생활을 자초하고 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자신의 연락처로 처음 DNA 매치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녀는 ‘티모시 헌트’라는 38살 시스템 분석가을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과연 그녀는 자신이 계발 한 대로 DNA 매치는 오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제 건물 속에 갇혀 살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다섯 명은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결함이 있고 헛점이 있다. 그것을 용인하며 용납하고 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며 이웃이며 친구인 듯 하다. DNA매치라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일상적이고 상식적이며 통념적인 개념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100% 신뢰라는 무기로 우리의 나약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헤어지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부부가 갈라서고 심지어 죽은 사람과의 매치로 그의 냉동 정자를 받아 자녀를 낳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 충고, 위로는 귀에 들어오지 않은 채 DNA 매치라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일컬어 지는 것을 맹신하게 된다.

사이코패스였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사랑하는 이를 만나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 연쇄살인범을 사랑하게 되고 그를 이해해주고 용납해주는 원천은 바로 DNA 매치 바로 ‘단 한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나약함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 된다고 하니 기대 해 봐도 좋을 듯 하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순식간에 읽었던 좋은 스릴러 책이다.

전반적으로 참신한 소재와 설정의 매력이 돋보이는 재미진 작품이다. 스릴러적 감성도 나쁘지 않다. 작가의 문학적 역량에 바탕이 됐으리라 추측해본다.

이 소설은 특히 인간의 감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랑이라는 관점의 상호작용에 대한 스토리도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고 집중력도 높인다. 단순히 흥미로운 관점에서 대중적인 자극만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딜레마들을 상당히 잘 적용시킨 작품이다.





저자 : 존 마스


독자들이 먼저 인정한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존 마스는 프리랜서 작가 겸 기자, 자유기고가로서 데뷔 소설 『억울한 아들들(THE WRONGED SONS)』이 출판사 수십 곳에서 거절당한 뒤 자비로 출판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두었다. 이 소설은 2017년에 『당신이 사라진 순간(WHEN YOU DISAPPEARED)』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후 『어디에 계시든 환영합니다(WELCOME TO WHEREVER YOU ARE)』, 『더 원(THE ONE)』, 2018년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선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 경찰 수사 스릴러 『그녀의 마지막 움직임(HER LAST MOVE)』과 무인 자동차를 소재로 한 SF스릴러 『승객들(THE PASSENGER)』 등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존 마스는 또 지난 20년간 전국단위 신문과 잡지에 조니 뎁, 비욘세 등 연예계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를 실어왔다.

≪가디언 가이드≫ ≪허핑턴 포스트≫ ≪인디펜던트≫를 포함한 열 곳 이상의 정기 간행물에 글을 기고했다. 현재는 『그녀의 마지막 움직임』의 성공으로 전업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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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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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기억으로는 중고교 때 페르메이르는 몰랐다. 그러나 〈진주 귀고리 소녀〉는 미술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미술 시간에 미술선생님이 페이메이르를 가르친 적도 없지만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이 교과서에 실렸던 것은 분명하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국내 많은 전시회에도 다녔지만 페이메이르전(展)은 없었다.

사실 이 책을 읽고자 했던 것도 이 그림 때문이다. 많이 봤던 그림이라고 생각했고,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기억을 되살려냈다.

이 책에서 표현한 바는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울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라고 한다. 페르메이르에게 '거장'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데 한몫을 했을 터다.

페르메이르는 좁은 땅에 1천여 명의 화가들이 활동하던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페이메이르는 고요하고 내밀한 작품 세계와 베일에 싸인 생애 때문에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해서 더욱 흥미를 끈다.





클래식 클라우드 21 『페르메이르』는 수수께끼 같은 페르메이르의 작품들과 그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그의 삶을 다루며 페르메이르가 빚어내는 평온한 빛의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인 전원경 작가는 세심한 눈길로 페르메이르의 작품 전작(全作)을 살펴보고 유려하지만 치밀한 필체로 델프트(사진 위)와 암스테르담, 헤이그에서 빈과 런던까지 거장의 흔적을 따라나선다. 페르메이르의 모든 작품을 수록한 친절하고 깊이 있는 안내서이자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까지 빠짐없이 다룬 전원경 작가의 이번 책은 마법 같은 페르메이르의 작품 세계를 다룰 뿐 아니라 일상의 빛나는 찰나를 포착하는 그의 눈을 통해 우리의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독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간 적이 있지만 운하나 주변 경치, 멋진 집, 웅장한 건축물에 눈이 팔려 박물관도 못 들렀다. 아니 아예 일정에 넣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크게 후회했다. 준비 없이 갔다가 아무것도 못 본 채 돌아왔다는 마음에서다.





작가의 안내대로 네덜란드 헤이그로 간다. 헤이그에는 10대 후반의 한 소녀가 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이 소녀는 “막 미소가 사라지고 있는 듯한 찰나의 표정과 눈망울, 입술의 생기 어린 느낌”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는 바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된 〈진주 귀고리 소녀〉 속 인물이다.

누구나 한 번 보면 빠져드는 이 작품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칭송받지만 정작 이 작품의 화가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진주 귀고리 소녀〉를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생전 델프트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당대엔 주로 그 지역에서 이름을 얻었고 사후엔 거의 완벽하게 잊히다시피 했다.

그러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되어 20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차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연구자들은 델프트에 남은 페르메이르의 흔적을 찾아내 화가의 삶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동안 잊혀 있던 탓에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서 페르메이르 연구의 선구자이자 페르메이르를 ‘재발견’한 미술사학자 겸 비평가 테오필 토레뷔르거는 그를 두고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평할 정도였다.





1632년에 태어나 1675년에 죽은 페르메이르는 일평생을 네덜란드의 소도시 델프트에 살았다. 가난한 직물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메이르는 스무 살에 델프트의 유복한 지주 집안의 딸인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하고, 같은 해 12월에 예술가 조합인 델프트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해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독특하게도 이미 ‘아트 마켓’이라고 할 만한 시장이 형성되어서 1천여 명에 달하는 화가들이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등 자기 전문 분야를 정해 그림을 그려 시민들에게 직접 판매했다.

그래서 대개 화가는 1년에 십여 점 이상 작품을 그려야 생계유지가 가능했지만 페르메이르는 처가의 경제적 지원과 그의 그림을 꼬박꼬박 사들이는 후원자 덕분에 한 해에 최대 서너 점 정도만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고급 재료들로 신중하게 공을 들여 한 점 한 점을 완성해나간 덕분에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의 세계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초기작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 〈디아나와 님프들〉에서 이미 빛을 활용한 공간 분할이라는 그의 특기가 엿보였고, 〈뚜쟁이〉에서부터는 실내 풍속화로 자신의 장르를 정했음을 보여준다. 1659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열린 창 앞에서 편지를 읽는 여자〉에서는 작은 방에 여성 한 명이 있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그를 비추는 모습을 그려 페르메이르의 트레이드마크인 ‘빛’, ‘방’, ‘젊은 여성’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이후 전성기의 문턱에서 그린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는 단순히 눈앞의 모델을 그대로 그리는 평범한 실내 풍속화를 뛰어넘어, 범속한 일과를 보내는 하녀의 모습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이 시기 페르메이르는 〈델프트 풍경〉 〈골목길〉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레이스를 뜨는 여자〉 등 환한 빛에 싸인 고요하고 온화한 실내, 신실해 보이는 젊은 처녀, 빛과 그늘의 효과에 대한 치밀한 설계 등 ‘페르메이르다움’이 여실히 드러나는 중요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아마도 페르메이르의 그림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자 “영원히 살아 있는 350년 전의 소녀”인 〈진주 귀고리 소녀〉는 그가 다다른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며, 대범한 붓질과 특유의 ‘빛의 방울’들로 이루어진 그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의 매력은 시간이 지나도 쇠하지 않아 1999년에는 이 그림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 출간되고 2003년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페르메이르가 가장 아낀 작품이자 화가의 명함과도 같은 〈회화의 기술〉 역시 탄생한다.

〈회화의 기술〉은 푸른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담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그림에서 스스로를 드러낸 적이 거의 없고 남아 있는 자화상도 없지만 이 작품에서 등을 보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페르메이르로 보인다.

화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네덜란드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담긴 이 그림을 페르메이르는 죽을 때까지 팔지 않았고, 유족도 어떻게든 남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지키려고 했으니 의미가 깊은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후 그린 작품들은 그에 미치지는 못했고, 페르메이르는 천재성을 소진한 듯 기울어간다.

게다가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한 사건은 페르메이르의 삶은 물론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쟁이 벌어지자 네덜란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페르메이르 집안 역시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됐다. 문화 관련 소비도 극도로 줄어, 궁지에 몰려 생계를 모색한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페르메이르 역시 모든 재능을 짜내 팔릴 만한 그림을 그려냈지만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1675년 페르메이르는 경제적 압박 속에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 빚 청산을 위해 열린 경매에서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유럽 곳곳으로 흩어진다.

이름은 잊히고 작품은 흩어졌어도 페르메이르의 진가는 결국 되살아났다. 전원경 작가는 페르메이르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 분위기까지 아울러 짚으며 페르메이르라는 화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독자가 어떤 루트로 암스테르담, 헤이그, 델프트를 돌아보면 좋을지 실용적인 정보 역시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페르메이르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죽은 뒤 3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다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이야기, 페르메이르 작품들이 겪은 굴곡과 최근에 발표된 연구 성과까지 차곡차곡 담아 페르메이르의 삶과 작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페르메이르는 이 벽이 실은 빛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벽에는 못이 박혀 있거나, 못을 뺀 구멍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바닥 가까이에는 세월의 흔적인 얼룩과 때가 보인다. 바닥과 벽 사이 걸레받이 부분에는 델프트 타일이 붙어 있는데 역시 오래된 듯 지저분하다.

이 벽은 빛과 그늘이 만들어낸 놀라운 드라마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여염집의 부엌, 초라한 부엌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법처럼 반짝거리는 그림’인 동시에 ‘일상에 가장 가까운 장소와 평범한 여자를 그린 그림’이라는 점이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경이로운 면모다.

- 「4장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 암스테르담」 중에서


플랑드르 화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네덜란드 화가들은 그림의 모든 요소들을 예외 없이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 페르메이르는 이러한 전통에 조용히 반기를 든다. 화가는 빛을 받은 부분과 그늘에 들어가 있는 부분, 또 빛과 그늘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을 모두 다르게 그렸으나 그 ‘다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합해져 이 작은 그림, 평범한 주제를 그린 그림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들고 있다.

- 「4장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 암스테르담」 중에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진주 귀고리 소녀〉는 왜 보는 이를 대번에 매혹시키는가? 이 이유를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그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다. 어둠 속에서 홀연히 떠오른 소녀의 얼굴은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으로 빛난다. 금방이라도 보는 이들에게 입술을 달싹여 말을 걸 듯한 분위기다. 이 그림의 탁월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동시대 네덜란드 화가들은 그림의 모든 요소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그렸다. 페르메이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골목길〉에서 낡은 벽돌집을 그린 솜씨는 거의 사진을 연상케 할 정도다. 유독 이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만 화가는 최소한의 터치와 최소한의 색감을 사용해 그림을 완성시켰다. 여러 겹으로 색을 겹쳐 칠하긴 했으나 우리 눈에 뜨이는 색감은 검정, 흰색, 노랑, 파랑 정도뿐이다. 이 단순함과 대범함이 오히려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 「5장 미소 속에 담긴 수수께끼 - 헤이그」 중에서


최근에 〈진주 귀고리 소녀〉에 관해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림의 검은색 배경은 화가가 원래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2년간 이 그림을 꼼꼼히 연구한 결과를 2020년 4월에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진주 귀고리 소녀〉의 배경에는 짙은 초록색 커튼이 쳐져 있었다. 그림 왼편 상단에는 페르메이르의 서명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배경의 초록색은 점점 더 검게 변색되어갔고 그 와중에 커튼과 화가의 서명은 사라지고 말았다.





페르메이르의 모든 그림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페르메이르 기념관의 자원봉사자 에벨리너의 말을 빌리면, 페르메이르 그림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는 ‘내밀함’과 ‘이야기’에 있다. 그러나 이 〈회화의 기술〉처럼 페르메이르 본인의 이야기를 풍부하고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은 없다. 이 그림은 단순히 화가와 모델을 그린 게 아니라 페르메이르의 생각과 가치관 자체를 담고 있다. 그 증거는 여러 군데서 눈에 띈다.

- 「6장 화가의 내밀한 고백 - 빈」 중에서


천문학자는 미지의 영역인 하늘을, 지리학자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주문한 이가 이 두 가지 주제를 다룬 한 쌍의 그림을 원했고, 페르메이르는 이 거창한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빛이 가득한 방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두 학자)으로 소화해낸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쪽이든 간에 두 그림을 주문한 사람은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아예 주문자 본인이 그림의 모델을 자처했을지도 모른다.

- 「7장 화가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 런던」 중에서





우리의 삶이 덧없는 이유 중 하나는 행복이나 사랑, 희망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흘 피어 있는 꽃이 없듯이, 좋은 것들은 우리 곁에 그리 길게 남아 있지 않는 법이다. 한때 영원히 우리에게 머무를 듯했던 젊음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그 뒤에는 긴 회한과 아련한 기억만이 남는다. 그러나 류트를 조율하며 연인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 그림 속 처녀처럼, 누구에게나 영롱하게 빛나는 젊은 날은 있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보여주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이 우리의 손에 쥐여졌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덜 쓸쓸해지고 조금 더 안온해진다.

- 「7장 화가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 런던」 중에서


오사카와 암스테르담, 헤이그와 런던과 빈에서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을 보며, 그리고 화가가 길지 않은 생을 살았던 델프트의 운하 옆 길과 마르크트 광장을 걸으며 내 머릿속을 내내 떠나지 않은 구절은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 “사랑은 가도 과거는 남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지만 기억은 간직할 수 있다.

예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큰 이유는 그 예술 작품이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바로 그러한 부분, 아스라하게 사라져가는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는 17세기 델프트에 살고 있지 않은 우리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힘이 위대한 예술 작품의 능력이라면,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바로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전원경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 시티 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비평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간 『객석』과 시사주간지 『주간동아』의 문화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글라스고 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 산업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 외래교수이며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국립중앙박물관의 강의와 수원 SK아트리움, 울산 문화예술회관의 그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비롯해서 『예술가의 거리』,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런던 미술관 산책』, 『클림트』, 『예술, 역사를 만들다』 등 예술과 역사, 문화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책을 썼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동경했던 예술 작품들의 세계를 말과 글로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을 늘 감사하고 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와 『예술, 도시를 만나다』의 뒤를 이어 뛰어난 예술 작품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예술, 인간을 말하다』(가제)까지 ‘예술 3부작’을 계획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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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목을 한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는 아침 세상과 소통하는 지혜 2
박세현 지음 / 예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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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렵다'는 게 뜬금없게 들리지 않는다. 시 습작을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동의할지 모른다. 시가 시인 이유를 모르는 독자들은 왜 시(詩)인가를 반복해 질문한다.

독자는 '어려워서 시'란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상징과 은유, 함축과 절제 등을 이해한다면, 아니 시인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산문이다. 제목은 사뭇 시 같지만 왜 시인은 굳이 '산문'이란 점을 표지 머리에 달았을까.

산문체로 쓴다고 다 산문은 아니다. 근현대시 역시 시인에 따라서는 산문체로 쓰기도 한다.

이 책은 삶 자체를 픽션으로 보고자 하는 관점을 지속적으로 견지한다. 그래서 지은이 자신과 글 속의 H는 적당히 포개어지고 때로는 다른 인물로 분화되어 드러난다. 산문이라고 굳이 저자가 책 표지에 밝힌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싶다.





이 책은 시를 대하는 시인 자신의 임상적 태도가 충분하게, 솔직하게, 까칠하게 드러나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책의 첫 부분부터 자신의 신상을 털어놓는다. 어디에 살며, 책상 위의 사소한 물건까지. 또 집 주위의 잘 가는 음식점이나 하루 일상에 대해 아낌없이 밝힌다. 시인 h 대역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 하나 이미 마음속에는 확실하게 밝히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왜 그랬을까. 독자는 잠시 멈춰 소제목들을 살펴본다. 거짓투성이의 진실 / 더 모호하게, 완전 모호하게 / 읽지 않는 독서모임 등 시니컬한 눈빛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이나 주목하고 있는 사실들에 역설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3만원짜리 시'에는 시인 h가 밥벌이도 못하는 시를 쓰는 존재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얼핏 계산해도 한 달 백 편의 시를 쓴다해도(지면도 없겠지만) 최하층 노동자의 월급에도 못 미치는 상태라는 걸 암시한다.

시 한 편에 3만원이라는 것은 독자가 생각하기에는 도무지 설득되지 않는다. 왜 이런 현실을 자신만만하게 드러내는가. 자책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이 시이고, 시가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인가.





시인 h는 나의 대역이자 뜬소문이라고 항변해야 설득력이 없다.

"꿈이 깨어 있는 삶의 다른 해석이라면, 깨어 있는 삶 또한 꿈의 또 다른 해석이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말은 내 성급한 문자들이 종이 위에서 꾼 꿈에 어울리는 해몽이 되어 주리라.(뒷표지)는 표현이 더 적확한 것이리라."

결국 저자는 시인 h를 통해 시에 대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그린 산문집이다.

시인 h에게 대역을 맡기면서 '산문'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저자의 말이 얼핏 공감이 간다.





"이 책에는 자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러나 시인의 라이프 스토리일 거라고 생각하면 곧 실망하게 된다.

그것은 저자의 픽션이자 가장(masquerade)이다. 시인은 산문을 통해 자기를 드러나면서 자기를 교묘히 숨기거나 극화하고 있다.

심지어 저자는 이 산문을 오로지 소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꿈 속에서 꿈을 꾸듯이 독자는 산문 속에서 하나의 현실을, 또다른 꿈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시라는 비현실이다. 시인의 일상이 현실처럼, 소설처럼 독자 앞에 제시된다.

시인 h는 박세현 시인으로 지목되지만 실제로는 박세현 이상이거나 그것을 넘어선다. 즉, h는 그저 박세현인 척하는 가공의 대역이다.

그렇든 저렇든 독자는 시인 h가 처한 하나의 현실(또는 환상)을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시라는 추상을 한껏 스트레칭해보는 덧없는 진실을 만나게 된다. 재즈적이고 이종격투기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박세현 특유의 산문은 이제 박세현 장르로 진화했다."

이제금 서평가의 글을 읽고서야 확신이 든다.





집에 들렀다가 다시 집을 나서는데 30분 걸렸는데 사실은 30년이 걸렸다. 오늘은 목요일 오후다.

얼굴을 스치는 이 바람, 이 공기, 이 느낌, 이 생각이 모두 살아생전의 시다. 몸 속에 시가 흥건하지만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 순간을 글로 쓰고 나면 시는 사라진다. 문장에 담긴 것은 시와 함께 흘러가고 남은 찌꺼기다. h의 문장에서 증발한 것만이 오로지 h의 시다.

h가 시라고 썼던 시들은 언어의 껍질일 뿐이다. h가 하고 싶은 말들은 다 사라지고 없다. 그게 h의 시다.

-「언어의 껍질」중에서





저자 : 박세현


1953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8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고, 25년간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며 교수생활을 했다. 시집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남자』 『저기 한 사람』 『헌정』 『본의 아니게』 『사경을 헤매다』 『치악산』 『정선아리랑』 『길찾기』 『오늘 문득 나를 바꾸고 싶다』 『꿈꾸지 않는 자의 행복』, 산문집으로 『시를 쓰는 일』『오는 비는 올지라도』 『시만 모르는 것』 『시인의 잡담』 『설렘』을 출판했으며, 연구서 『김유정의 소설세계』가 있다. 빗소리듣기모임 준회원으로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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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몰랐던 매혹적인 바다이야기 27
고명석 지음 / 청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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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지구는 물의 비율이 각각 약 70%로 비슷하다고 배웠다. 우연인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인체의 신비만큼 바다도 신비롭다. 어쩌면 인류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와 비밀을 바다는 아직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다는 자연과학적으로 생물의 존재와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았을 뿐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도 인류 문화사에 큰 영향을 줬던 신비한 존재였다.

『당신만 몰랐던 매혹적인 바다이야기 27』은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독자들을 바다로 안내한다. 저자 고명석은 자신이 경험했던 바다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다양한 역사적, 과학적 시점의 스토리로 풀어냈다. 저자는 일반 대중들에게 이 책이 바다와 친숙해질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썼다.

저자가 그동안 인터넷 언론을 통해 연재했던 칼럼 ‘알신잼SEA(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Sea Story)’ 중 27편을 엮어 구성했다.

바다 상식, 해양 동물 이야기, 해양 동물의 역사, 해양오염 등에서 시작해서 세계사와 바다, 근대역사와 바다까지 폭넓게 다뤄지는 책이라 역사, 특히 바다에 대해 관심이 있고, 바다 오염을 우려하는 분들이면 누구나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1부 놀랍고 신기한 바다는 바다 생명체를 주제로 한 이야기다. 스타벅스 로고와 명칭이 바이킹과 세이렌 신화에서 유래했고, 500년을 넘게 사는 상어가 존재하며, 스스로 성형 수술을 하는 기발한 물고기가 등장하는 등 상상을 뛰어넘는 신기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부 유럽의 바다는 유럽 역사 속에서 발굴한 숨겨진 바다 이야기이다.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바이킹이었으며, 청어의 뼈 위에 네덜란드가 세워졌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것은 속도 경쟁이 원인이었다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3부 동양의 바다는 동아시아 바다에서 벌어지는 생소하고 진기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은 독도 강치잡이에서 비롯되었으며, 홍어 장수가 표류 중 2개 국어를 구사하는 민간외교관으로 활약하고, 조선 시대에도 불법 중국어선인 황당선이 출현했으며, 콜럼버스보다 90년 앞서 세계 일주를 했던 중국 함대가 등장하는 등 우리가 몰랐던 숨겨진 역사가 펼쳐진다.





첫 이야기부터 굉장히 흥미롭다. 바다와 관련된, 바다로부터 전해 내려온 ‘커피’의 상징인 스타벅스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넣은 것 또한 이 책의 전체적인 흥미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바다를 사랑한 사람들, 바다에 사는 동물들 등 바다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쉬어가는 코너에서는 바다에 대해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던 상식들이나 궁금증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다 보니 책 제목처럼 내가 몰랐던 바의 이야기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더 알아가면서 바다라는 매력에 빠져서 들어간다.

바다를 좋아하고, 또한 바다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별도로 구성된 쉬어가는 코너〔그거 알아요?〕는 “왜 비오는 날 생선회를 먹지 말라고 할까?”등 바다와 관련하여 생활 속에서 알쏭달쏭했던 궁금증을 풀어가는 코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중간 중간 배치했다.

매년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달을 기념해 5월을 ‘바다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바다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소중함을 일깨우는 날을 즈음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서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쑥쑥 자라길!”

사람의 몸은 사실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몸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도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그 물들 중에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부분을 ‘바다’라고 부르고 있고,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바다’는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표지부터 흥미를 더했다. 표지에 등장한 여인은 ‘인어공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인어공주가 아닌 ‘세이렌’이다. 세이렌은 항해자들을 유혹하여 바다로 끌고 가서 죽음을 맞이하게 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인데, 이 세이렌을 표지로 삼은 것만큼 바다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에 너는 한 번 빠져 보지 않을래?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인류는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인간이 이동하고 도착하는 정착지마다 학살과 멸종이 이어졌다. 가는 곳마다 대형 동물, 그러니까 먹을거리가 좀 있는 동물은 모두 사라져갔다.

콜롬버스의 우연한, 기적적인, 운 좋은 항해는 세계 역사의 판도를 뒤흔들었고, 해적은 유럽의 전쟁사를 새롭게 써야 했다.

유럽인이 배를 타고 대항해에 나서기 시작한 16세기 이후 탐험의 깃발이 올라가자 멸종의 시곗바늘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제6의 대량 멸종이 본격화되었다. 이전의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나 국지적 형태로 진행된 것과는 달랐다.

인간은 바다를 통하여 전 지구적으로 항해하여 나아갔고, 다양한 종에 걸쳐 광범위한 참극이 시작되었다.





유럽인이 도착한 모든 곳에서 살육이 시작되었다. 바다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최고의 경제성을 가진 동물은 고래였다. 석탄과 석유를 사용하기 전 포경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고래 기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비싸게 팔려 나갔다.

1864년 모선에서 포를 쏘아 고래를 공격할 수 있는 작살포가 발명되어 포경의 산업화 시대를 열었고, 이는 빠르게 헤엄치는 대형종까지 멸종위기로 내몰았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래들의 고향인 남극 바다에는 포경포를 갖춘 포경선과 거대한 가공선이 가득하게 된다. 이들 움직이는 고래 공장은 경제적 이윤이 바닥에 이르기까지 학살을 지속했다.

바다표범, 물개 등은 18세기 후반에 남대서양과 남극해에서 살육당했다. 육지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는 습성을 이용해 해안에 올라오는 것을 때려잡았다.

배 한 척이 한 철에 몇 만 마리를 죽였다. 북대서양 얼음 위에서는 하프물범이 방망이를 맞고 죽어갔고, 알류산 열도나 알래스카 부근에서는 바다표범과 코끼리 물범이 모피와 기름을 얻기 위해 죽었다. 이런 식으로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물범류가 어림잡아 6,000만 마리가 도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항해가 인간에게 미친 여파가 세계의 식민지화였다면, 동물 생태계에 미친 후폭풍은 종의 멸종이었다.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전 지구적으로 행해진 살육은 돌이키지 못할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물들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거대한 바다소는 베링해 차가운 해안에 살았었다. 러시아 표트르 황제가 보낸 베링 탐험대는 북태평양 작은 섬에 조난당했다. 일행 중 과학자인 게오르크 슈텔러는 거기서 코끼리보다 더 큰 해양포유류가 얕은 바다에서 둥둥 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의 이름을 딴 스텔러바다소는 온순하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고기가 지방이 많고 맛있다고 전해지면서 사냥이 시작됐고, 발견이후 27년 만에 멸종되었다.

북해에서 멸종한 새도 있다. 큰 바다쇠오리는 펭귄처럼 생겼고 북대서양과 북극해에 서식하던 바닷새의 일종이었다.

큰 바다쇠오리는 북극곰 이외에 천적이 없었으며,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없고 오히려 호기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특성이 오히려 화를 불러 사냥감이 되었고, 그 깃털과 고기 등을 얻기 위해 무분별한 사냥이 시작되었다. 결국 큰 바다쇠오리도 1844년 멸종되었다.





탐험이란 이름으로 지구 곳곳에 유럽인이 진출하면서 사라져간 동물은 이외에도 많다. 날지 못하는 커다란 바닷새 오크, 카리브해의 몽크바다표범, 양쯔강 돌고래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인간종도 멸종되었다.

호주 남쪽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에서 살았던 태즈메이니아인이 그 예이다. 1800년 초 유럽인이 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인구는 5,000~10,000명 정도로 추정되었다. 몇 만 년 동안 거기에 살고 있었지만, 유럽인과 함께 온 전염병에 취약했던 이들은 불과 70여 년만인 1876년 멸종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록이 남아있는 경우였다.

유럽인의 탐험으로 수많은 인간 종족이 아메리카, 태평양, 아프리카의 섬과 밀림에서 멸종되었을 것이다.

황폐화된 자연은 되돌릴 수 없다. 여러 과학자들은 제6의 대량 멸종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제5의 대량 멸종까지와는 달리, 이번 경우는 철저히 인간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마이클 테너슨이 《인간 이후》에서 예고하듯이 멸종 리스트에는 사피엔스의 이름도 포함될 것이다. 지구 위 대부분의 다른 동물이 멸종하고 난 후, 사피엔스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에게 붙인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사람)’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만큼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지구 내의 각종 생물과 무생물은 그렇게 인간의 욕심에 의해 철저히 황폐화됐다. 그것은 과거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 현재진행형의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올지 불보듯 뻔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강치잡이로부터 비롯됐다. 메이지 시대 전후 일본에서 모피산업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되었다.

해양박물관에 따르면 독도 강치는 동북아 바다 연안에서 서식했었다가 멸종한 바다사자의 일종으로 울릉도, 독도 등 동해의 섬과 연안 그리고 오호츠크, 사할린, 쿠릴 열도 등에 분포하였다.

1903년 나카이 요자부로라는 일본인이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 큰 수익을 남겼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강치잡이 독점권을 원했다. 그는 일본 정부를 통해 조선에 독도 어업권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청원서를 받은 일본 정부는 이를 조선에 통보하지 않고, 나카이에게 “독도는 주인 없는 섬이니 조선이 아니라 일본 정부에 영토 편입 및 독점권을 청원하라”고 독려하였다.

그러자 1904년 나카이가 이 같은 청원서를 제출하였고, 일본 정부는 각의를 거쳐 독도를 시마네현 영토로 편입시켜 버렸다. 이것이 주인 없는 독도를 먼저 차지했다는 무주지 선점론이다.1905년 2월 22일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 40호에 “독도는 오끼도에 속한다”고 일방적으로 선포였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했다. 일본이 억지를 부리는 논리 중 가장 강력하게 제시하는 것이 시마네현 고시 40호인데, 에도 시대까지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할만한 역사적 기록도 없었다.

이렇게 독도 강치는 가죽은 모피로, 지방은 기름으로, 고기는 사료로 쓰이면서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4년까지는 살아있는 개체가 발견되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가 끝날 즈음에는 이미 생물학적 멸종단계에 이르렀다.

이처럼 다케시마의 날이 강치 학살의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학살의 주범인 일본이 오히려 강치 잡이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단골메뉴로 이용하고 있으니,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바다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의외로 모르는 사실들이 많다. 40여년 전 초등학교 다닐 때 삼면이 바다라서 수산자원이 풍부하다고 배웠는데 지금은 수산자원이 없어 다른 나라에서 사다 먹는 것은 왜일까. 뒤늦게 해양 오염에 대한 자각을 하고 환경보전 차원에서 바다 보호하는 나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 책은 깊은 지식보다는 상식 수준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그냥 흘려들었던 바다 이야기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귀한 독서 시간을 준다.


저자 : 고명석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를 졸업했으며,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학사, 美 인디애나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석사, 인하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38회 행정고시 합격 후, 25년째 해양경찰(해양경찰청 기획조정관/서해지방해양경찰청 청장/제11대 해양경찰교육원 원장)에 몸담고 있다. 바다 관련 책을 많이 읽으려 노력한다. 많은 이들이 바다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일반인에게 쉽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바다를 알리는 것이 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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