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벤허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그리스도 이야기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 월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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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여 페이지의 어마어마한 두께에 놀랐다. 소설책이니 읽기야 곧 읽겠지만 스케일이 굉장히 방대한 책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좋은 책을 따지기 전부터 두께에 압도당한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푹 빠져 읽기 좋은 책이다는 생각도 든다.

역대 아카데미상 최다수상작 〈벤허〉의 원작 소설 완역본 『벤허(초판본)』이라니 호기심과 함께 독서의욕도 불탄다.

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보면 무슨 대단한 연구나 하나보다 하는 지적 허영심도 채워준다. 사실 이 책은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다. 영화를 여러 버전으로 여러 차례 봤지만 실제 원작을 손에 들어본 것은 처음이라. 800페이지 달하는 소설의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에게 과연 신은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소설 『벤허(초판본)』가 14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회자되는 또다른 이유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 묵직한 질문 때문이기도 하다.

벤허는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배신자(로마인 메살라)에 대한 복수심을 자연스럽게 ‘유대민족을 짓밟은 로마민족’에 대한 복수로 확장시킨다. 그런데 하필이면 당대 로마민족은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는 최강제국의 주인이고, 유대민족의 현실은 극심한 내분으로 작은 땅덩이마저 갈갈이 찢긴 지경이었다.

그러니 벤허는 ‘(유대민족 예언서에 따라 오실) 구원자는 저들을 모조리 때려눕혀줄 정복자일 것’이라고 기대했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나타나 온갖 조롱과 비난을 뒤집어쓰고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매달리며 ‘나는 영혼을 구원하리니, 너희는 저 너머의 왕국을 바라라’고 말한 자를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그리스도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고 무릎을 꿇는다.

벤허처럼 믿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독자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믿음의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심도 있는 종교 사상(그리스, 인도, 이집트, 페르시아 등) 및 예루살렘과 중동 지역의 복잡한 정세까지 과감하게 소개되기 때문에, 독자들 개개인이 함께 사색해 보도록 유도한다.

“복수가 신의 것이라니! 그 세월 내내 나는 복수를 꿈꿔 왔는데…….”

“이제 그가 왔으니, 그는 정복자 왕인가 영혼의 구원자인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니.”



예루살렘 허 가문의 외아들 벤허, 평탄했던 그의 인생은 로마 총독 그라투스의 암살범으로 누명을 쓰면서 큰 돌풍에 휘말린다.

어릴 적부터 절친했던 친구 메살라는 오히려 벤허를 모함하고, 결국 그는 갤리선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루아침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그는 죄인으로 전락하는데......

주인공은 역시 주인공, 로마 총사령관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한 공으로 그의 양자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한다.

죄인에서 로마의 부유한 귀족이 되었지만 벤허는 공허함을 느낀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도,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삶도, 그가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생이별한 어머니와 누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영화 벤허를 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꼽자면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 경기 장면이라 한다.

책에서도 역시 이 장면이 가장 백미다. 메살라의 모함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벤허의 관계는 로마인에게 탄압받는 유대인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유대인 벤허는 온갖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결국 자신을 파괴한 로마인 메살라에게 복수한다. 메살라의 방해공작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소설 『벤허』의 작가 루 월리스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유대인과 로마인의 대립으로만 풀지 않는다.





복수심으로 가득했던 벤허, 그가 기마대에 끌려갔을 때 물을 건넸던 한 사내가 있었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던 너무도 짧은 장면이라 그저 누군가 억울하고 힘겨운 청년에게 물 한 모금 전해준거라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유다와 마리아의 아들이 처음으로 만나고 헤어진(p183)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예루살렘의 왕자 ‘벤허’와 유대인의 왕이 처음 조우했을 때, 그들의 인연은 그저 바람에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벤허가 예수를 다시 찾아 헤맬 때, 그는 큰 꿈이 있었다. 유대인을 핍박한 로마를 무릎 꿇게 하는 것, 하지만 유대인의 왕 나사렛사람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십자가형에 처한 그가 진정 구원자인가.

어째서 그 낙원은 이승에 없는 것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불신 가득했지만 벤허는 다행히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복수극으로 끝낼 수 있는 소설에 종교적 의미까지 더하다니, 엄청난 스케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을 떠나고 여전히 신실하고 부유한 벤허는 저만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며 살아간다.

이 내용을 이렇게 연결하다니, 작가의 작품 구상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무려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대작이지만 짜릿한 복수극은 모두를 열광하게 하지 않는가,

중동 지역의 해묵은 원한의 기원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다니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 벤허가 궁금해진다.

책에서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종교와 상관없이 한번쯤은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정말 강렬하고, 스펙타클하다.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고단한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명작이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이후 근 14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전 세계 다양한 독자층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애독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벤허하면 떠오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맞다. 바로 멋진 전차 경주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를 봤건, 보지 않았건 이 작품이 벤허임을 대번에 알게 해 주는 벤허의 대표적인 명장면이다. 우레와 같은 함성, 흙먼지를 뚫고 질주하는 경주마들 뒤로 튀어 오르는 전차 바퀴와 나뒹구는 기수, 콜로세움을 꽉 채운 열기.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봤었다. 벤허는 1959년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된 이후 우리나라에는 1962년에 비로소 상영되었다. 최초 상영 이후 이 작품은 거의 10년 주기로 매년 재개봉되어 상영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전(2016년)에는 근 50여 년 만에 새롭게 리메이크 되어 개봉되기도 했었다. 역사상 걸작,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 잊을 수 없는 탁월한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벤허, 영화가 아닌 책으로 만나는 벤허는 어떤 느낌일까? 시간의 제약 상 영화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책을 통해 고스란히 그리고 온전하게 알 수 있다.





“6배!”

메살라가 외쳤다. 큰 함성이 터졌다. 메살라가 반복해서 말했다.

“6배로 합시다. 6대 1. 로마인과 유대인의 차이가 그 정도는 되지.”

거액의 내기 소식이 밤거리로, 도시 전체로 퍼졌다. 말 네 필과 누워 있던 벤허도 소식을 들었다.

메살라의 전 재산이 아슬아슬해졌다. 그는 잠들었다. 처음으로 단잠을 잤다.(p. 507)

전차들이 코스를 돌자 함성이 커졌다. 흰색이 주류를 이룬 반환점 부근 관중석에서 사람들이 꽃을 던지고 열렬히 환호했다.

“메살라! 메살라!”

“벤허! 벤허!”

동방의 눈들이 그와 메살라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었다.(pp. 512~513)





이 작품은 저자인 월리스가 그리스도교에 조사하고 연구하며 이해한 내용을 소설의 형식으로 빌어 쓴 작품이라고 한다. 허구 인물인 유대인 귀족 벤허를 내세워 그의 상세한 모험을 다루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깔려 있다.

친구 메살라의 음모로 갤리선의 노예 신세로 전락한 벤허는 우여곡절 끝에 로마 사령관의 양자가 되어 높은 신분을 회복하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되고 마침내 오랜 숙적인 메살라와 전차경주를 벌여 복수를 한 후, 나병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 때문에 마음에서 증오를 몰아내지 못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며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다.(p. 780)




소설 벤허는 같은 유대인이며 연령이 비슷한 예수의 이야기와 나란히 전개되는데, 벤허의 삶과 예수의 삶을 병행하여 보여주면서 지극히 세상에 속한 벤허라는 한 인물이 영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루 월리스는 부지런하면서도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직업은 작가, 군인, 법률가, 정치가 등으로 화려하다.

사실 이 중에 한 가지만 하기에도 버겁고 힘들텐데, 그는 이 어려운 걸 다 해 내었다. 월리스는 1878년 뉴멕시코 주지사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행정을 돌보면서, 이 작품을 탈고하였다고 한다.

벤허는 1880년 출간되었는데 처음에는 비평가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대중들에게도 외면을 받은 책이었다. 하여 출간 초반에는 판매량이 부진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판매량이 점차 증가했고, 서서히 대중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면서

도서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니, 종내에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벤허는 1936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판될 때까지 무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 소설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780페이지, 페이지마다 글자들이 빼곡히 가득한 책, 근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벤허, 인고를 세월을 견디며 이 작품을 쓴 사람도 있는데, 스토리를 구상하면서 쓰는 거에 비하면, 800페이지 정도 읽는 건 그저 누리는 호사가 아니겠는가?





벤허는 출간된 지 이미 100년이 넘었고, 몇 차례 영화로 제작된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명작 영화와 함께 비교하며 읽는 재미, 이게 책으로 만나는 벤허의 또 다른 재미이자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작 벤허와 함께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모티프로 하여 방대한 이야기로 엮어낸 이 작품은, 장면마다 등장하는 세부 묘사가 너무도 세밀하여 마치 눈앞에 그려질 듯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택의 모습, 갤리선, 전차경기장, 사막의 풍경, 예루살렘 거리의 모습 등 마치 독자가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런데 놀랍게도 월리스는 예루살렘은커녕 로마나 중동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자료에 의거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소설이 발표되고 난 후 터키 공사로 재직하며 작품의 배경이 된 곳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기가 묘사한 부분들을 하나도 고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19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소설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성서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미쳤으며, 연극으로 각색되어 브로드웨이에서 20년 이상 장기 상연되었다.

1959년 MGM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는 수천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1960년 아카데미 11개 상 이라는 역사상 최다 수상을 이룸에 따라 책 판매량도 다시금 증가하였다. 또한 소설로서는 교황 레오 13세의 축성을 받는 최초의 영예를 얻기도 했다. 소설 원작과 연극, 영화의 성공으로 벤허는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내는데 활용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저자 : 루 월리스


미국의 작가, 군인, 법률가, 정치가. 1827년 인디애나 주 브룩빌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시와 짧은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사냥과 낚시를 즐기는 숲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대담한 행동력과 낭만적 기질과 혈기왕성한 행동력의 소유자로, 1845년 멕시코와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자 아직 학생임에도 스스로 의용군을 모집해 출정하려 했고, 이에 반대한 아버지가 학비 지원을 중단하자 열여섯의 나이에 자립하여 지방신문 기자로 취직하는 등 사회참여 의식이 활발한 청년이었다.

서른 살 때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861년 남북전쟁 시에는 인디애나 주 연대장으로 출정해 도넬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샤일로 전투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어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변호사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해, 1873년 역사소설 『아름다운 신(The Fair God)』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2년 동안 15만 부가 팔릴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5년간의 광범위한 자료 조사와 집필 과정을 거쳐, 1880년 『벤허』를 세상에 내보냈다. 출간 직후 비평가들의 반응은 미미했으나 점점 대중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판매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가 출판될 때까지 50년 동안 미국 소설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또한 소설로는 처음으로 교황의 축성을 받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벤허』에 감명받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으로부터 터키 주재 공사를 임명받아 4년 동안 임무를 수행했고, 귀국하여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썼다. 1893년 또 다른 역사소설 『인도의 왕자(The Prince of India)』를 출간했으며, 1905년 자서전을 집필하던 중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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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
라즈 파텔 외 지음, 백우진 외 옮김 / 북돋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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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말하는 '저렴'이란 무엇인가. '저렴하다'는 사전적으로 '물건 따위의 값이 싸다'는 의미다.

자본주의는 생명 생성 관계에 값을 매겨 생산과 소비의 회로 속으로 집어넣고, 그 회로 속에서 이들 관계는 가능한 한 낮은 비용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저렴화는 셈해지지 않던 생명 생성 관계가 가능한 한 적은 화폐 가치로 바뀜을 뜻한다. 간략하게 말해 자본주의가 위기를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생명력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전략이라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저렴화'다.

자본은 계속해서 교환되고 순환되어야 자본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일이 잘되면 이윤이 발생하고 더 많은 노동력과 기계, 원자재에 투자한다.

노동력의 저렴화는 노예 제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현대에도 노예 제도와 비슷한 대량 생산 농장들이 있다. 노예는 사회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취급받으며 투자자들에겐 더 많은 일손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가능한 한 값싸게 노동자를 가르치고 유지해야 했다. 게다가 노예들뿐만 아니라 군인, 사무원, 선원의 임금은 값이 매겨지고 현금으로 몫이 치러진다. 현금에 의존한 이러한 고용은 자본가의 힘을 크게 했다.





자본주의가 생각하는 생명은 어떤 것일까?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는 콜럼버스가 있었던 시대의 신세계 탐험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탐험가들은 식민지를 찾았고 식민지에 살고 있던 토착민 여성을 유린하거나 살해했다.

이렇게 무력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저항도 받았다. 그 뒤에도 여성이나 임금노동자, 토착민, 심지어 지배 계급의 일원까지도 복종하라는 압력에 맞서 싸웠고 자본가들도 이런 저항에 대응해 새로운 프런티어를 개발했다.

그리고 스페인이나 영국은 식민지의 노동력이나 토지에 관심을 두었다. 당시 농장의 지주들은 대규모 토지 소유, 소작농과 그에 딸린 장인 등을 통해 운영하여 토지와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생각하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전략과 저렴화에 대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담대한 역사서인 동시에 도발적인 사회과학서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의 영국이 아니라 15세기 대서양의 섬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에서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를 다룬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이 일곱 가지를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래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오랜 전략이었음을, 그 작동의 원리를 각 장에서 파헤친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왔다’는 저자들의 메시지는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등, 금융 불안 같은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비로소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들었음을 서늘하게 지적한다.

이들 위기는 별개의 해법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총체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재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의 역사를 하나의 시선으로 꿰뚫는 지적인 충만함을 넘어 현재의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한 권으로 탁 트인 시선을 갖출 수 있다.





지구의 미래, 인류의 앞날에 적신호가 켜졌다. 기후 변화,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비상사태라 부르기 시작했고, 불평등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전 세계적인 새로운 위기 요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가. 문제는 절박하고 해답은 미약하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이 '시계 제로'의 시대를 담대하게 진단하고 처방하는 책이다.

약 1만 2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지질학적으로 홀로세라고 부른다. 그중 최근 2천 년을 따로 떼어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구 환경의 변화에 인류가 크게(그리고 나쁘게)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의 저자 라즈 파텔과 제이슨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재를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Capitalocene)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지상주의에 중독된 사회에 통렬한 비판을 가하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던 《경제학의 배신》의 저자 라즈 파텔, 생태학과 자본주의를 결합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제이슨 무어는

이 책에서 “14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자본세로 부름으로써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자본세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그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파고든다.

원제 ‘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A Guide to Capitalism, Nature, and the Future of the Planet’이 가리키듯 일곱 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바로 자본주의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구의 미래를 가늠하도록 안내한다.

이 지적 여정의 목적지는 명확하다. “세계 생태계(world-ecology)라는 개념 속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원과 진화,

불평등의 재생산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명호,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함으로써 “21세기 들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인류의 처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하고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를 자문”(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하는 힘을 담았다.





이 책에서 주로 쓰이는 개념들을 먼저 짚어보자. 저자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세계 생태계, 저렴함, 프런티어라는 개념을 도구로 설명한다. 세계 생태계는 세계 체제라는 익숙한 개념에서 나아가 “자본주의가 무한 축적이라는 힘에 추동되어 프런티어를 지구 전역으로 확장한 생태계”라고 정의한다. 세계의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관계가 다섯 세기 전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현재까지도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 책은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일곱 가지 저렴한(cheap) 것들의 역사에 주목한다.

저렴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다. 이전에는 셈해지지 않았던 것까지 화폐가치로 환산해 가능한 한 적게 값을 매기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 모든 것을 더 저렴하게 만든 역사다.




그러나 노동이건 돌봄이건 에너지건, 모든 것에는 돈이 들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든다. 여기서 프런티어가 등장한다. 프런티어는 바로 그 “새로운 저렴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과 다른 자연의 저렴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장소”다. 즉 권력이 작동하면서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장소다.

자본주의는 이 프런티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더 많은 곳으로 확장하면서 이윤을 창출한다.

이 책은 이러한 개념 도구들을 사용해 일곱 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들춰 자본주의 600년 역사를 낱낱이 살핀다.

이 지적이고 담대한 여정은 결국 자본주의라는 세계 생태계가 현재의 우리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날카롭게 포착한다.





저자들은 미래의 지적인 생명체들은 인류의 흔적으로 플라스틱과 함께 닭 뼈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닭을 꼽은 이유가 있다. 닭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다. 그런데 이 닭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를 조합해 가슴 근육을 부풀린 결과물이다. 육계 농장과 사료용 토지에는 공공 자금이 투입된다. 또 막대한 에너지도 싸게 공급된다.

계육 공장은 시급 25센트를 받는 노동자들로 굴러간다. 이 노동자의 86%는 질병을 앓고 있고 대개 가족의 돌봄에 의존한다. 또 이런 시스템 덕분에 닭은 저렴한 식량으로서 다시 노동자들에게 공급된다. 치킨 한 박스에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가 그대로 담겨 있음을 저자들은 날렵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과연 치킨만 그럴까. 저자들은 소빙하기와 흑사병이 봉건제를 무너뜨린 14세기 유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서양의 마데이라섬이 설탕 농장으로 만들어진 건 국가, 자본가, 지배 계급이 새로운 이윤의 원천을 찾아나서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잉여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한 지배 계급은 ‘신대륙’ 전체로 프런티어를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은 저렴해졌다.





이 책은 특히 ‘신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궤적을 좇는다. 그의 흔적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구축한 인식 세계의 허상을 보여준다. 사회와 자연, 식민지 개척의 주체와 객체, 남성과 여성, 서구와 나머지, 백인과 비백인,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이분법이야말로 대부분의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생명이 저렴한 것으로서 지배의 대상이 되는 데 기여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제 프런티어는 전에 없이 작은 반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자본의 규모는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진단한다. 그간 세계를 저렴하게 만들며 유지되어온 세계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생태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이 결코 저렴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저자들은 그러므로 이분법의 세계에 갇힌 인식의 틀을 부수는 담대한 상상을 제안한다.

그리고 인식, 보상, 재분배, 재상상, 재창조라는 답을 내놓는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제대로 된 보상이 필요하다. 이는 보상을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누가 지불할지를 따지는 일이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이분법과 저렴화 전략이 없는 세계를 담대하게 상상하고 창조할 때 가능하다.





저렴한 자연과 저렴한 노동이 창조되려면 다른 노동이 아무 보수 없이 이뤄져야 했다. 노동을 수행할 신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 그 노동의 대부분이었다. 이번 장에서는 이른바 번식 노동, 즉 돌보고 영양을 공급하고 인간 공동체를 양육하는 노동을 살펴본다. 그런 노동은 대부분 무보수다. 그래야 임금노동 시스템 전체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불노동이 없다면, 특히 돌봄 노동이 없다면 임금노동은 몹시 비쌀 것이다.

- p.158

저렴한 식량 모델은 이런 식으로 작동했다. 자본주의 농업 혁명은 저렴한 식량을 제공했다. 노동자들은 더 적은 임금을 받고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기에 저렴한 식량은 최저임금의 기준을 낮췄다. 프롤레타리아화 규모가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고용주들이 받는 임금 청구서는 줄어들었고 착취 비율은 높아졌다. 저렴한’ 노동자들을 보증하는 식량 잉여가 증가하는 한, 축적 자본은 늘어날 수 있었다.

- p.191





저렴한 석유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화석연료 없이는 자본주의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소매업자, 제조업자는 전기가 고대 화석에서 나오든 풍차나 태양 전지판에서 나오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저렴한 석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태양에너지 체제로 이행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오늘날 자본가들이 여기에 지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다양한 재생에너지 계획에 분명 돈을 걸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기업이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대규모 전환하는 데 필요한 45조 달러를 내놓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 p.235

인종, 국가, 인쇄 자본주의는 긴밀하게 이어졌다. 저렴한 돌봄과 저렴한 노동을 필요로 한 전략은 인종 서열을 만들고 재생산했고, 그럼으로써 인체는 파악되고 범주에 따라 분류되고 사회와 자연의 경계에서 감시되었다. 국내 질서를 고정해놓고 미래의 민족적인 위대함을 보상으로 제시하는 인쇄물과 이야기는 이런 질서를 유통시켰고 공고화했다.

- p.26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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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 - KBS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작품집
김경미 지음 / 문학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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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로 낭송되어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애청자들을 라디오에 묶어두던 ‘시’와 경쾌한 에스프리로 엮은 ‘시-이야기’ 시집, 『카프카식 이별』이 어느 날 불쑥 내게로 왔다. 뮤즈의 목소리로 아침마다 시를 읽어주는 배우 김미숙 진행자를 좋아하는데 품격 있는 시 낭송은 애청자들에게 아름다운 아침을 선물한다. 김경미 시인의 시와 조화되며 아름다운 공감을 불러내는 방송이다.

제목의 『카프카식 이별』은 이 시작품집에서 두 번의 시로 나타난다.


카프카식 이별 1


그만두자고 일방적으로 상처 주고 떠나온 여행

누워도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 2층 침대 윗칸에서

이별이 고통스럽기는 왜 내가 더 고통스러운지





시인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타고서 왜 카프카를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시인이 시 곁에 쓴 시작 노트에 따르면 혼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적이 있다. 기차 차창 밖으로 눈 쌓인 자작나무숲을 보고 싶었지만 겨울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한여름에 떠났다. "3등석 2층 침대의 윗칸은 상반신을 다 일으키는 게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중략) 벌 받는 것 같은 그 공간에서 카프카를 떠올렸습니다. 카프카는 생전에 한 여인에게 두 번, 또 다른 여인에게 한 번, 두 명의 여인에게 모두 세 번 파혼을 통고했습니다. 세 번째 파혼은 결혼식 이틀 전의 통고였죠. 여인들도 상처를 많이 받았겠지만 이별을 통고한 카프카 자신도 자신의 예민함과 누군가와의 공동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고독한 기질에 스스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어 "카프카식 예민함은 온 세상과 늘 혼자 절연했다가 혼자 상처받고 혼자 화해하고 본인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까지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게 '카프카'가 되는 일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더 크게 키우고 싶습니다"고 고백한다.

카프카식 이별은 서로에게 고통이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면 '승화된 이별'이다. 당시 카프카는 중증 폐결핵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함께한 도라 디만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비로소 일찍이 맛보지 못한 삶의 애착과 행복을 경험한다. 도라는 그의 곁을 밤낮으로 지키며 간호했지만 1924년, 병약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출세,결혼 등의 중압감에 쫓기며 글을 쓰다가 폐결핵에 영양부족까지 겹쳐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카프카식 이별은 결국 좋아하는 글을 쓰며 자신의 불행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않기 위해 이별하는 것을 뜻한 것은 아닐지.





'카프카식 이별'은 제목 그대로 이별에 관한 시로 이별이 아주 고통스럽다고 한다.

소설가로 알려진 카프카의 사랑은 이별과 고통이었다. 어쩌면 그 고통에서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고통에서 나와 회복해야 한다고 한다.

2년 전에도, 지금도 아침 방송마다 쓴 시가 낭송 된다는 건 시인에게 거대한 고통이고 라디오 청취자에겐 삶을 감사하게 만드는 기쁨이다.

시인은 많지만 시를 매일 쓰는 시인은 없다. 시인이 시를 매일 쓰지 못하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시는 이데아 저 편에 있는 신의 영혼을 훔쳐오고 해와 별과 달과 꽃의 마음도 담아야 하고 사람들 정신에 가끔 벼락도 비춰주어야 하고

생의 쓸쓸함과 비애와 깊은 고독도 맛보아야 하기에 그렇다.





김경미 시인이 아침마다 전해주는 그녀의 시 주머니에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언어의 천둥과 낡은 추억을 꿰매 조각보를 만드는 투명한 바늘,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하는 나침반, 희미한 사랑에게 건네는 커피 한 잔, 이별마저 사랑이라고 부르는 따뜻한 패러독스, 수첩과 공책의 줄무늬를 사랑하게 만드는 마력, 삶이라는 지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짜릿한 일탈, 사소한 것에 이름 붙여주는 애련미, 창가에 불을 밝혀두는 그리움……

아침마다 그녀의 시를 듣기 위해 라디오 앞에 귀를 세우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녀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달나라까지 갈 만큼 많다고.





시 '장갑이라는 새'는 이십대 시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십대에 많은 것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연애도 실패, 시험도 실패, 직장도 실패인 경험만 했다. 자신의 몸 하나 누일 공간 없이 다섯 번째 이사를 한다.

이삿짐을 싸던 중 발견한 장갑 한쪽. 이 장갑을 집으면 힘을 내고 다시 인생이 날아오를지도 모른다는 내용이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 '나를 용서하는 기도'에서는 게으르고 의지가 약한, 가끔은 이기적이면서 계산적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는 내용이다.

다른 누군가만 용서해줄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먼저 용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카프카식 이별』은 시집이지만 시를 설명해 주는 시인의 글이 있어 더욱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김경미의 시집 『카프카식 이별』은 시인 스스로의 존재론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감각의 결실로 다가온다. 또한 그것은 아프게 통과해온 시간에 대한 재현과 치유의 기록이자 지상의 존재자를 향한 지극한 슬픔과 사랑과 그리움을 토로하고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실존적 의지를 밝힌 더없는 진정성의 고백록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김경미의 ‘시’와 ‘시적 후화’를 함께 읽음으로써 시를 ‘듣는 것’과 시를 ‘읽는 것’이 다른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의 일임을 깨닫게 된다. 김경미 시의 기원이 된 삶과 함께, 삶의 기록이 된 그녀의 시를 한 꺼번에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녀의 시는 따뜻하고 투명한 목소리의 파동으로 모든 이들의 아침을 쑥쑥 일으켜갈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그녀 스스로에게도, 삶의 새로운 오프닝을 위하여 열어가는 아름답고 눈부신 아침이 되어줄 것이다.

-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저자 : 김경미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실천문학사),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창비),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 비), 『밤의 입국심사』(문학과지성사)가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바다, 내게 로 오다』, 『행복한 심리학』, 『심리학의 위안』, 『그 한마디에 물들다』, 『너 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등이 있고, 노작문학상, 서정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 주최 〈국제창작 프로그램(IWP)〉 참여 작가로 선 정되어 활동했으며, 한국참여작가로는 처음으로 IWP 발행 웹진 〈92ST MERIDIAN〉지에 영역 시 2편이 수록되었다. 한라대학, 경희사이버대학 강사를 역임했다.

방송작가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시작으로 〈명작의 고향〉 〈양희경의 가요응접실〉 〈전기현의 음악풍경〉

〈노래의 날개 위에〉 등 다수의 라 디오 프로그램 원고를 썼으며 한국방송작가협회 라디오작가상을 수상 (2007)했다. 현재 활발한 시작활동과 함께 KBS 1FM의 〈김미숙의 가정음악〉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방송 오프닝에 소개되는 ‘가정음악을 위한 시’ 를 통해 애청자들에게 행복의 전율을 전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 들은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청취자들을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라디오 앞에 귀를 세우게 하던 바로 그 심미적 언어의 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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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 - 일상예술가의 북카페&서점 이야기
정슬 지음 / SISO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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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책이 있는 곳이 휴식의 장소다.

극단적으로는 책이 곁에 있어야 잠이 든다는 사람도 있다. 그 정도면 '책 중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책을 읽는 마음은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책의 내용이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더라도, 몰입해 읽는 동안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 쌓여도, 더 읽어나가면 곧 풀릴 것이라는 안도감에서인지 후유증이 남아 스트레스로 작용하진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 때도 독서에 집중하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을 때도 책을 같이 읽기도 하는 것 같다.

휴식이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을 뜻한다.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은, 보고 들으며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이 되는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아하고 친절 베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예전엔 커피숍에 조용한 클래식을 들려주는 곳이 많았다.

굉장히 고급한 유럽 귀족의 품격을 맛보기 때문일까. 독자는 그 이유를 잘 모르지만 학창 시절 때 그런 커피숍을 자주 갔다. 그러나 그곳엔 책이 없었다. 책은 분실되기 쉬워서 갖다 놓기가 어려운 건지 모르지만 책이 많은 커피숍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무척 많이 바뀌었다. 커피와 클래식(혹은 발라드)이 있는 곳이면 으레 책이 장식품처럼 놓여 있는 곳이 크게 늘었다. 이른바 북카페 선풍이다.

“커피 한 잔, 책 향기 한 스푼 하실래요?”

어느새 조용히 잃어버리고 있는 ‘낭만’에 대하여 향긋한 한 잔의 커피와 영감을 주는 한 권의 책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북카페’가 인생 2막의 꿈인 사람들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려 보았을 낭만적 상상이다.

『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의 저자 정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나 보다. 이 책에는 인생 중반의 나이에 ‘북카페 주인장’이라는 타이틀에 새롭게 도전한 저자가 북카페&서점을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겪었던 낭만적 이야기와 운영 노하우가 소박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

평범한 소시민이 사적인 북카페&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실감하며 지금도 열심히 애정의 공간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로망을 끄집어내고 싶은 독자라면, 그저 책이 좋아서 북카페와 서점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북카페&서점의 희로애락을 맛볼 수 있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갓 내린 커피의 그윽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감미로운 음악이 기분 좋게 몸 안으로 스며든다. 서가에는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다. 책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저자가 운영하는 북카페&서점 〈헤세처럼〉은 시와 그림과 음악과 자연을 사랑한 헤르만 헤세의 삶에 공감하여 ‘시(책), 그림(또는 사진), 음악, 자연’의 네 가지 콘셉트로 꾸며져 있다. 『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에서는 낭만이 있는 머물고 싶은 카페 이야기, 아름다운 인생의 비법이 담긴 서점 풍경, 삶의 향기가 감도는 사람 이야기, 일상예술가의 소소한 여행법 등을 담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북카페&서점 〈헤세처럼〉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 ‘사진 일기’는 덤이다.

분주한 삶의 현장을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쉼을 얻기 위해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북카페의 풍경을 다채롭게 수 놓는다.

북카페가 그런 이들에게 오롯이 쉼과 여유가 있는 문화충전소가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담은 책이다.





책이 아이보리색의 깔끔한 배경색 디자인만 아니라, 제목도 매우 감성적이다.

저자는 수원시 팔달구에서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소소한 일상과 손님들과의 에피소드 그리고 생각들을 적어 둔 것을 책으로 펴냈다. 책에는 큼지막한 사진들이 들어가 있어 눈도 시원하게 해준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진이 카페의 내부를 비치고 있어, 이미 북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낭만의 직업일 수 있는 '북카페 사장' 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저자는 어쩌면 현실적인 고민도 많이 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의 취미가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비지니스'가 되는 것 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독자는 서울에 있는 북카페와 지방(강릉 등)에서도 많이 갔다. 일상적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책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력적이어서다.

그곳에는 대부분 클래식과 커피, 그리고 책이 있다. 독자의 경험과 저자의 글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북카페에 갈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독자가 찾지 못한 '낭만'을 저자가 언급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으로 한 것도 저자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듯하다.





독자는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일이다.

신뢰가 없으면 그 사람 얘기 구절구절을 들어줄 리 없지 않은가.

중간에 아무리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작가의 말을 끊고 내 이야기를 계속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다. 타인의 시선에서 이타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북카페란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다. 내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인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어찌 낭만적이고 매력적이지 않은가.





요즘은 영상매체가 넘쳐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찾고,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며 더 많은 소통을 한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영상문화는 나날이 발전하고 넘쳐나지만 활자매체인 책은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매우 안타깝지만 시대적 흐름이라면 막을 수 없고, 따라야 한다. 그만큼 낭만과 책의 향기는 멀어지거나 다른 대체품을 찾아야 할 터다.

영상을 보는 것은 빠르고 직접적이다. 이는 마치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것과도 같은 것 같다. 인스턴트 스틱커피를 종이컵에 '스르륵' 비우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넣는다. 그리고 비워진 플라스틱 스틱으로 종이컵을 휘~ 달달한 커피가 완성이 된다. 커피 맛이나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인스턴트 커피가 없다.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를 내리는 시간과 향을 함께 즐기기 때문이란다. 김치가 발효되거나 와인이 숙성하는 데는 값비싼 재료가 많이 필요하지만, 많은 재료들 중 최종적으로 맛과 품질을 결정하는 재료는 바로 '시간'이다. 커피와 우리 김치와 닮은 점도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다.

만드는 시간뿐만 아니라 먹는 시간 또한 매우 중요하다. 누구도 오랜 시간 숙성한 와인을 소주 잔에 담에 '꼴깍' 원샷하지 않는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음미한다. 책과 커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즉석적이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지만, 시간을 들여 숙성되고 먹을 때는 '음미'하는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진 작가의 글도 오랜 시간 공들여 쓰인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고맙지 아니한가. 독자도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의 향기를 아스라히 알 것 같다.

이 책은 독자의 '책 욕심'도 충족시키고, 읽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꼭꼭 씹을수록 맛이 우러나오는 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맛이고 멋이다.





여기서 행복할 것


책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낭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일주일 중 6일을 북카페&서점인 <헤세처럼>에서, 하루만 집에서 시간을 활용하다보니 여행과는 거리가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런데 여행이 멀리 벗어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었다. 여행이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라는 말을 되새기고 꼭꼭 씹어볼 만하다. 책을 덮은 후에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드는 게 어쩐지 동네 북카페라도 가봐야 할 것 같다.


저자 : 정슬


속초에서 자랐다. 단국대학교에서 특수교육,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교육현장에서 특수교사로 21년간 일했고, 상담과 미술치료를 접목하여 전문상담 교사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수원에서 북카페&서점 <헤세처럼>을 운영하고 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식물을 가꾸고 사진 찍는 일을 할 때 마음이 즐겁다.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인생 2막을 준비 중이며, 읽고 쓰고 그리는 삶을 꿈꾼다. 단행본 『내 삶에 스며든 헤세』의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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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데 - 소중한 이와 나누고픈 따뜻한 이야기
이창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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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편하게 풀어가는 것이 마치 저녁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듯하다.

“당신 생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당신은 위로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창수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된다.

이 책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데』는 '힐링', '치유'의 에세이다.

표지의 책의 배경색에도 녹색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일상생활은 물론, 교육, 경제, 문화, 사회, 정치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염병의 특성이 그렇지만 전 세계로 대유행되는 감염병은 인간의 지금까지의 질서를 뒤엎어버린다. 특히 감염병은 전 지구 인류에게 현재도 어렵지만, 이런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예측하기 어렵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삶 자체에 위협적이다.

이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작가가 꺼낸 따뜻한 이야기는 잠시나마 불안을 지우고 위로를 받는다.





정치권에서 자주 이용하는 '프레임을 짠다'는 말이 있다. 새로 생긴 신조어가 아니라 최근 비공영 방송이나 팟케스트, 유튜브를 통해 많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프레임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있다. 원래 영화나 경제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이 책에서는 '틀'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프레임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이라고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프레임을 통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더욱이 프레임 밖에 있는 것은 모르거나 프레임을 거치며 왜곡된 상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항상 영향을 주는 프레임을 벗어나는 경험을 통해 지적인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레임을 깨는 즐거움과 함께 지쳐있는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





이 책은 풀잎과 함께하는 바람, 햇살, 노래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진실한 위로는 귀로 듣는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사람의 말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어설픈 말로 위로하는 것보다 차분히 귀 기울여 주는 것이 더 위로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요즘 "나 때는 말야" 하면 '꼰대' 소리를 듣는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는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비하하는 은어여서 함부로 내뱉기 힘들었다.

선생님 중에서도 '앞뒤 막힌'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훈육하는 교사를 뒤에서 험담할 때 쓰는 학생들 은어였다. 그래서 어원도 모른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일본말에서 유래됐나 하는 정도였고, 자주 쓰이지 않다 잊어버린 말이 요즘 다시 유행한다.

말 안 듣고 바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면 훈육 차원에서 타이르던 선생님이 그리울 정도다. 그러던 독자도 이젠 세월이 흘러 '꼰대 세대'가 됐다.

그래서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아주 포근하고 정이 있었음을 회고하면 그 순간 '꼰대' 소리를 듣기에 아예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독자로서는 이래저래 꼰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너스레로 위기를 넘길 뿐이다.





그때는 그런 대로 '낭만'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도 돈독했다. 개인보다 집단이 앞서던 시절이었지만,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정과 낭만이 넘쳐나던 시절이다. 데모가 일상적일 때도 지금처럼 살벌하지 않았다.

저자의 예전의 추억을 빌미로 그때의 추억을 맘껏 해보니 속이 후련하다. 그만큼 주눅들고, 눈치 보는 세대가 됐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이 책에 유독 공감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환경이 달라지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고, 접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달라진 대로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깊이 있는 관계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소중해지는 것 같다.





비둘기호(완행열자, 독자 주석)나 통일호(특급 열차)와 같은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 이동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이동하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여행 재미를 주었다. 지금은 비행기나 고속철도와 같이 이동은 빠르지만, 열차 안팎의 세상 풍경을 볼 기회가 사라졌다. 저자의 글처럼 새로운 풍광과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여행의 재미인데 그것을 느낄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이같이 무엇이든지 천천히,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이는 것 같다는 저자의 주장에 크게 공감한다.

대한민국의 산업과 경제 발전과 함께해온 '빨리빨리' 문화도 그때 만들어진 부작용(?)이다. 빨리 일을 끝내야 돈을 더 벌고 식구들이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빠른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레 들인 습관이 '빨리빨리' 문화다.

지금 와 생각하면 얻는 것 못지않게 진정한 가치 있는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못하는 것이다.

"말에 베인 상처는 칼에 베인 상처보다 더 아프다."

말이 칼보다 무섭다는 말은 종종 들어봐서 조심하려고 노력은 한다.

하지만 '진정한 위로는 귀로'. 크게 동의하고 정말 잘 지었다 생각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을 수 있지만, 말 하지 않음으로써는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물질보다 마음이 가치가 높을 때도 많다.





여백의 미


채우는 것 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다.

이는 조기 교육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색칠 공부나 글자 연습을 할 때 보면 항상 칸에 다 색칠해야 했고, 칸에 꽉 차게 써야 했다.

빈 공간을 허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습관이 계속 이어지면서, 채우는 것에는 익숙해도 비우는 것에는 의심이 드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분명히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채움과 비움이 균형을 이룰 때 '행복'을 가장 선명하게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쉼표를 찍을 수 있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으며, 또 언제든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생각했던 것 만큼 따뜻하고, 생각지 못했지만 술술 잘 읽혀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다행히 어려운 단어도 없고, 친구와 대화 나누듯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따뜻함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 기분이 좋다.





이 책 제목이기도 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데』는 정호승 시인의 시 제목에서 영감을 받은 표현이다.

저자는 들녘에 서서 바람을 몸으로 받으며 상처 입는 것은 바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나무들뿐만이 아니라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풀잎들도 있다고 말한다.

영화 속 엑스트라도 그들 인생에서는 주인공이다. 그들도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땅덩어리에는 사연 없는 이가 없다는 말처럼.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심리실험과 그 결과를 통해서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감정이 상하면 논리는 없다'도 우리 사회를 되돌아봐야 하는 의무감을 갖게 한다. '승자 독식'의 사회를 누구든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환상 로또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해부할 경우 환상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러나 환상이 주는 행복을 즐기는 인간성이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드는 '로또 연작' 등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듯한 삶에서의 고민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일상 속에서 프레임을 깨는 발상을 통해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권하기도 한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긍정과 배려, 선한 영향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저자 : 이창수


생활인으로서 말하고 싶은 풀잎.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교직에 몸담고 있으며 현재 중학교 교감으로 근무 중이다. 선생님과 꼰대라는 사회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생활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편안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서로는 오랜 교직 생활의 경험에서 얻게 된 노하우를 정리한 『공부가 쉽다구요?』, 소설 『The 공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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