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이클러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 『리사이클러』는 지금부터 약 100년 후인 대한민국 '뉴소울시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명칭은 멋진 신세계처럼 '뉴소울시티'이지만 국가 공동체가 해체된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도시 단위로 살아남은 유일한 공동체이다. 표제어 '리사이클러'란 쓸모없는 하층민의 뇌속에 프로그래밍 된 칩을 심어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재활용 인간'을 의미한다. 인간 육체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지배층의 생존을 돕는 생체로봇인 셈이다. 하층민들의 삶은 젊고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는 매혹적인 지배층의 술책 뒤에 숨겨진 야만적 지배 논리에 매몰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경제적 효용성 간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저자 이기원이 창조한 미래 세상이다. 서기 2120년 '뉴소울시티'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극대화된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으며, 1구역과 2구역이라는 물리적 경계로 구분짓고 있는 사회다.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양 구역 사람들이 불평등을 받아들임으로써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명백한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 조작되고 관리되는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전세계를 덮친 멸망의 파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시 서울. 서울의 통치권을 거머쥔 ‘전국기업인연합(전기련)’은 새로운 형태의 도시국가 ‘뉴소울시티’를 세우고 철저한 계급통치의 시작을 알린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영원불멸의 생을 누리는 1구역과, 1구역 보위를 위한 한낱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2구역. 공고해진 계급 차이만큼 두 지역 사이의 장벽도 높아졌다. 응급 상황 시 출동해 사고를 수습하는 ‘비상 대응 특수팀’의 복무 강령을 보면 ‘우리’로 대표되는 2구역 사람들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전기련을 완벽하게 보위한다.

둘째, 우리는 전기련의 자산을 보호한다.

셋째, 우리는 전기련의 지시에 복종한다.(p.7)



이 소설 작품은 전작 『쥐독』과 『사사기』를 발표하며 한국형 디스토피아의 새로운 초석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은 이기원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다. 『리사이클러』는 영원한 건강과 행복을 누리는 1구역과, 1구역 보위를 위해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 착취당하는 2구역이 장벽 하나를 맞대고 살아가는 미래도시 ‘뉴소울시티’가 배경이다.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나뉜 도시 안의 두 구역 가운데, 이 소설은 죽음이 임박한 2구역 청년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극단적 사건을 다룬다. 전세계가 궤멸한 후 유일하게 남은 도시국가 뉴소울시티를 배경으로, 기술의 혜택이 권력의 도구로 쓰이는 기형적 미래 세계를 고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지만, 『리사이클러』는 세계보다는 인물에 몰입해 개인의 욕망과 죄의식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존에 대한 욕망. 그러나 살아서는 이용되고 죽어서는 재활용되는 2구역 노동자에게 그러한 욕망은,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는 죄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저자 이기원은 〈작가의 말〉을 통해 "내 작품의 시작은 늘 질문이었다. 그리 내놓을 만한 믿음 없는 기독교도인 나는 사후세계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늘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 우리 인생에 죽음 말고 약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어느 유명인의 말처럼, 죽음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니까."라고 트릴로지 작품의 구상을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첫 작품 『쥐독』은 '만약 죽음이 없다면'이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죽음이 없는 세상은 정말로 낙원일까? 또 인간의 불신으로 무너진 정의에 대한 해답은 인공지능밖에 없는 걸까? 인공지능이 완벽한 정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란 질문에 수사물이라는 옷을 입힌 두 번째 작품 『사사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사회 시스템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질문을 갖고 시작한 것이 세 번째 작품 『리사이클러』이다. 저자의 묵직한 질문은 ‘삶은 이용되고 죽음은 재활용된다’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리고 소설의 첫 문장에는 100년 후 서울의 모습이 나타난다.

"구 대한민국의 10대 기업으로 이루어진 연합체인 ‘전국기업인연합’, 속칭 '전기련'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도시인 서울의 통치권을 넘겨받았다."(p.6)



여덟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뉴소울시티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1구역과 2구역, 이렇게 두 구역으로만 나뉘게 되었다. 두 구역 사이에는 장벽이 세워졌다. 장벽은 빈부의 격차만큼이나 나링 갈수록 높아졌다. 의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죽음 없는 영생을 얻게 된 1구역은 찬란하게 번영했고, 2구역은 전기련과 뉴소울시티의 존속을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면서 어두운 운명의 굴레만이 반복되는 황폐한 지역이 되어갔다. 한편 전기련은 뉴소울시티 내에 벌어지는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이해 비상 대응 특수팀(Emergence Response Task-force Team)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줄여서 '에르트(ERTT)'라 불렀다.

에르트의 출동 목적은 1구역과 1구역의 거주자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도시의 모든 시스템은 1구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1구역 시스템은 거의 완벽했기에 비상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고 오히려 시스템이 낙후된 2구역에서 이런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2구역에서는 화재나 붕괴, 폭발 같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출동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렇기에 2구역에서는 대부분의 비상 상황에서 인명 사고도 함께 일어났다. 에르트가 2구역으로 출동하는 경우는 전기련의 자산이나 인력 손실이 포함되는 상황이었다. 전기련의 인력에는 연구원이나 기술자 등도 포함되었지만, 에르트 직원들은 속해 있지 않았다.

이 소설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8개의 장(章)으로 구분된다. 작품 무대와 사건 전개의 변화에 맞춰 장을 나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을 위한 변화 이외에는 색다른 무대 변화는 없기에 일관된 저자의 스토리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각 장(章)마다 하나의 단어나 짧은 문구 정도로 제목이 붙어 있어 각 장의 구별이 주제별로 구분되는 데 기여한다. 특히 각 장의 맨 앞에 인용된 문장은 각 장의 성격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독자들의 독서와 이해를 쉽게 하고 있다. 1장 「15센티미터에 달린 인생」은 "고약한 악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의 운명에 코뚜레를 달아 끌고 가는 착취의 컨베이어 벨트라는 악몽 말이다." - 아바리치아 95년. 콜필드 선언문 중에서"(p.12)

'아바라치아'는 이 소설 1장에 등장한다. "영생은 전기련의 의장사인 아바리치아의 회장 류신의 집착이 이뤄낸 성과이자 의학 기술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다. 영생이란 건 전기련을 위시한 1구역 거주자들에게 절대적 우월감을 주었고, 2구역 거주자들에게는 그들이 더이상 종말의 방주에 함께 탄 승객이 아니라 노를 저어야 하는 노예이자 무임 승선을 한 자들이라는 걸 일깨워주었다. 이후 전기련은 노예들을 장악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p.25~26)

영생을 누리는 1구역 사람들에 비해 2구역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 생존해야 했다. 그들이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은 1구역에 기생하듯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동운(주인공) 앞에 앉아서 심드렁하게 모니터 패널을 들여다보며 하품을 하는 재수 없는 의사도 1구역의 지시에 충실한 톱니바퀴일 뿐이다. 여기서 2구역 의사의 존재가 나오는데 의사가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상위 1%의 상류사회의 직업군이지만 아바리치아(영생 인간) 시대로 변한 100년 후 뉴소울시티 2구역 세상에선 단순한 기술직 정도로 추락됐음을 알 수 있다. 2구역 의사는 동운의 남은 수명을 '길어야 6개월'로 진단하고 있다. 췌장암 4기의 동운에겐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장의 제목인 「15센티미터에 달린 인생」의 의미가 밝혀진다.

"15센티미터. 얇디얇은 복막에 붙어 있는 지방 덩어리와 분간도 안 될 정도로 보잘것없는 생김새. 행여나 잘못 건드렸다간 순식간에 바스라질 유약하고도 예민한 췌장이란 놈이 동운의 삶을 잠식하게 된 건 일 년 전쯤이었다.



아무래도 1장에서는 1구역과 2구역으로 나뉜 뉴소울시티의 모습과 각각의 구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게 해주는 소설 전개 과정 상 주로 2구역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2구역 사람들은 모두 '리사이클러'들이며 전기련은 유토피아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존재처럼 홍보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리사이클러를 만드는 재료도 채무자의 육체로 메꿔야 한다는 전기련의 노골적인 논리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동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정받은 장애인, 시한부 환자, 뇌사자 등을 재료로 삼았다. '너의 뼈가 사라져도 채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전기련의 압박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리사이클러가 되는 것에 동의했다. 그것도 모자라 리사이클러 지원까지 받았다. 도시에서 살면서 지게 된 채무를 일부 탕감해준다는 조건이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리사이클러는 대부분 사람들이 꺼리는 위험한 업무를 떠맡는다. 주로 건설 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거나 외벽 설치, 송신탑 수리, 화재 현장에서의 인명 구조나 화재 진압, 도시 외곽에 흐르는 폐수의 강에서 벌이는 수중 작업, 용광로에서의 업무 같은 것들이었다. 또 리사이클러의 업무 배치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들이 직접 구매해서 업무를 맡기는 방식이다. 때문에 근로자들은 자신의 안전과 업무 할당량 충족을 위해 리사이클러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 작품은 뉴소울시티에는 1구역 영생계층, 2구역은 수명이 다하면 다른 사람 육체를 빌려 뇌속에 이미 프로그래밍 된 칩을 심어 생명의 연장을 꾀하는 리사이클러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2구역 사람들의 생존은, 직업(하는 일)은 모두 1구역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일만이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 구조는 저자 이기원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이고 균형도 맞지 않는 발전을 거듭해 의학 기술로 영생을 얻은 계층은 1구역에 살고 나머지 노동자 계층은 영생의 혜택에서 제외돼 평생 노예의 삶으로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를 형상화한 것이다. 물론 형상화 과정에서 비논리적인 부분은 저자의 구상이나 독자들의 상상으로 메꿔야 할 부분이지만···.



며칠 뒤 동운은 낡은 리사이클러를 처분하고 새 리사이클러를 구매했다. 어차피 6개월밖에 안 남은 인생, 병원비와 약값을 충당하기도 버거웠지만 리사이클러가 없으면 진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했기에 방법이 없었다. 동운은 살고 싶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오래오래. 삶에 대한 욕망과 의지를 번뜩이던 동운은 새 리사이클러에게 ‘쓸모 있는 시간’이라는 뜻의 ‘기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검은색 슈트를 입고 얼굴 전체를 덮는 헬멧을 쓴 기한은 여느 리사이클러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유난히 고된 화재 진압을 마치고 화마가 휩쓴 건물을 빠져나가던 어느 날,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동운의 피를 얼어붙게 했다. 그것은 기한 앞에서 흘린 적도 없고 지시한 적은 더더욱 없는, 오로지 동운 자신만 알고 있던 과거 추악한 악행과 관련된 말이었기 때문이다. 동운과 기한을 태운 헬기가 죽음의 아수라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동운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심장이 요동치는 아찔함을 느꼈다.

인간은 죽음의 굴레를 벗어던질 욕망을 참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다. 하물며 삶에 대한 집착만큼 강한 본능이 있을까?(p.165)

헌대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지배계층은 늘 불평등함을 강조하는 셈법으로 피지배 계층을 지배해왔다.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의식, 육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의식, 지능적으로 우수하다는 우월의식 등이 교묘한 논리로 위장돼 피지배 계층을 노예처럼, 또는 태어날 때부터의 차별 의식을 주입시킴으로써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가장 앞선 문명인임을 강조하는 것이 인종 차별, 신분 차별, 성별 차별로 이어져왔다. 같은 인종은 생태적 한계를 신분 차이로 억누른다. 왕이나 귀족 계급이 일반 국민이나 노예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하는 논리다. 이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백인종의 유럽 문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공산사회주의 등장으로 위협받았으나 100년도 가지 되지 않아 내부로부터 무너진 소련 사회를 무너뜨렸다. 노동자·농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노동자·농민의 세상은 이론상으로 그럴 듯했으나 인간의 욕망에 부응한 자본주의 체제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공산사회주의 이론 자체가 잘못 된 것이라고 지적받지는 않는다.



뉴소울시티도 전기련에 대항해 모든 시민들의 평등을 주장하는 저항세력의 활동이 더욱 과감해지며 도시는 날로 흉흉해진다. 전기련은 ‘저항세력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감사팀을 파견해 동운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을 면담하기 시작하고, 동운은 기한과의 대화 기록으로 인해 괜한 트집을 잡히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고 면담에 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감사팀 선임대리는 동운의 병명과 그에게 남은 기간 등, 그의 개인적인 비밀들을 열거하며 그것을 볼모로 동운이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비상 대응 특수팀으로 위장한 저항세력의 일원을 ‘확실한 증거’와 함께 찾아오면 동운의 육체를 새로운 육체로 바꿀 수 있는 ‘착복식’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 착복식이라는 말에 동운의 눈빛이 바뀐다. 착복식만 하면 지긋지긋한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젊고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심 가는 동료가 있다. 지금 동운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이다. 착복식의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이대로 죽어서 리사이클러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잠든 그날 밤, 동운은 준비를 마치고 동료의 집으로 향한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네가 우리 계획을 망쳐놨어. 우린 이 도시에 삶과 죽음을 공평하게 되돌려 놓으려고 했어. 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그런데 네가 다 망쳐놓은 거야. 너만 살고 싶다는 그 욕심이, 모두가 이 썩어빠진 뉴소울시티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망친 거라고!”(p.194)

저자 : 이기원

타인과의 대화, 누군가와의 접점, 무언가와의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진, 때론 외롭고 때론 두려운 공백의 시간 속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시간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작가 이기원에게는 그런 시간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과 맞닿아 있는 연유다. 담배 연기와 짜장면 냄새 가득한 만화방에서 만났던 우라사와 나오키, 추운 겨울 춘천 시내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비디오테이프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인디아나 존스]를 만났던 1985년의 여름날 같은 순간들. 그리고 그런 생각 안으로 죽음에 대한 사유가 비집고 들어왔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을지, 수많은 고민과 반문 끝에 마침내 『쥐독』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약, 중독의 시대를 말하다
배현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의 위치였다. 간혹 마약류를 이용하다가 검거돼 뉴스의 인물로 떠오른 적은 있지만 일부 일탈의 행위로 보았을 뿐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상되지는 않았다.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2023년 마약 사범이 2만 7,611명으로, 우리나라도 역대 최초로 마약 사범이 2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로나 접했던 '마약'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현실로 다가온 국가적 난제로 떠오른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마약이 들어온 것은 청나라 말기인 19세기 무렵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전에는 소량이 약재로만 사용되었을 뿐 우리 국민들은 마약의 마수에 빠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일본이나 서양 제국주의가 우리에게 마수를 뻗치면서 서서히 마약이 우리 사회에 침투해 들어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것도 아니라 아마 문호 개방 이전까지는 얼씬도 하지 못하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이 열리면서 청으로부터 마약이 함께 유입되었던 것 같다. 

얼마 전 미국의 마약 문제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TV로 통해 시청하다가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기억에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였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걸음걸이(걸음이라기보다 곧 넘어질 듯 위태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약 중독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한때 영화에서 붐을 탔던 '좀비'의 걸음걸이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약 중독자들은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아 영상으로만 보여지는 환각에 시달리는 모습만 보았지, 약 기운이 떨어진 환자들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으며, 마약의 무서운 폐해 실상을 줘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국민들이 보았는지 어느새 '필라델피아 좀비'란 별칭까지 퍼져 있었다.

이 책 『마약, 중독의 시대를 말하다』는 우리나라 마약 사용 실상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널리 퍼져 있는 데서 예방 차원에서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이젠 실제 마약 범죄자를 잡아들여 처벌함으로써 마약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저지선이 무너진 데서 출간된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젠 어떤 유명인의 일탈이나 의학적 이유에서 사용되는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관계자들은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흔히 회자되는 아편, 필로폰 등 강력한 중독성 물질로 분류되는 마약에 대해 쓰고 있다. 그러나 최근 마약이 더 강력한 독성 물질로 진화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마약 중독 증세를 보이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어서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사회적 문제를 넘어서 국가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서 사태의 심각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커피, 담배, 술도 모두 중독성 약물로 분류된다. 한번 접하기 시작하면 뇌에 작동하는 주도권이 약물에 넘어가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중독성 약물의 특징이다. 커피, 담배, 술은 다른 중독성 약물을 사용하는 게이트로 작용할 수 있어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른 약물을 사용하는 허들이 낮아지고, 마약류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마약류의 상호 상승 작용에 노출되어 있다는 현실을 바탕으로 마약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켜내야 하는 국가적 사업으로 다루어져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아 독자로서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일상을 파고든 중독성 약물〉, 2장 〈의료용 마약이 더 위험하다!〉, 3장 〈나도 모르는 사이 노출될 수 있는 불법 마약류〉, 4장 〈마약, 이제는 정말 끊어내야 할 때입니다〉 등이다. 1장에서는 일상을 파고든 중독성 약물인 커피, 담배, 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커피, 담배, 술은 우리가 일상에서 죄의식 없이 상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중독성 물질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심각한 상황은 일으키지 않은 데서 불법화하지 않은 물질들이다. 그러나 의학계는 이들 중독성 물질에 쉽게 빠지거나 현재 중독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약 중독에도 쉽게 빠질 수 있다고 밝혀냄으로써 국가적 유해 물질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마약 중독 상태로 쉽게 전화될 수 있는 요건에 노출된 사람을 사전에 마약으로부터 차단하는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2장에서는 수면제, 식욕억제제, 진통제 등 의료용 마약의 위험성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노출될 수 있는 불법 마약류, 즉 헤로인과 코카인, 필로폰, 대마 등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마약류에 관한 처벌 및 예방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중독성 약물을 제대로 알아야 마약의 유혹이라는 더 큰 함정에 빠졌을 때 확실히 벗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우리나라 마약 사용자는 얼마나 되는지 산출해 낸다. 이때 전문가들은 정확한 사용자 수는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이라도 알기 위해서는 '암수율'을 적용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마약 사용은 범죄이기 때문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범죄 단속반은 마약을 사용하는 것을 숨기려 하고, 실제 체포 직전에 어떤 수단을 써서 체포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 누구든지 감옥에 가는 것을 싫어할 때니까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마약에 아직 취해 있는 자는 검거에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붙잡는다고 알려지고 있다. 극한의 상항에서는 죽음도 불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의 경우 마약 사용자는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삶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어 주위 가까운 사람도 고발을 하는 등 적극적 대응보다는 미온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체포의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쉽게 추정된다. 

전문가들이 암수율을 적용해 산출한 우리나라 마약 사용자는 마약류 범죄로 10명이 잡혔다면, 실제로는 범죄자가 286명이 존재한다는 심각한 결론에 이른다. 2019년 한 조사팀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마약류 범죄 암수율이 28.57배로 밝혀졌다. 이 암수율을 적용시켜 앞서 286명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 암수율을 2023년 대검찰청이 밝힌 〈마약류 범죄 백서〉에 의한 2023년 마약 사범 2만 7,611명을 적용하면 우리나라 마약 사용자는 78만 8,846명으로 추산된다. 이 백서는 우리나라 마약류 사용자 검거 사상 역대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철저한 조사와 연구, 계획 등을 세워 국가적 차원에서 예방과 검거, 치료에까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판단이 독자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뿐 아니라 비만 치료제인 펜터민까지, 구하고자 하면 마약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중독성 약물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마약 중독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우리의 이야기다. 제대로 알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이 책이 쓰여져야 하는 이유와 우리나라의 마약 사용자 실태, 날로 진화되는 마약의 종류,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마약류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필요에 의해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늦출 수도, 늦춰서도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기라는 마약 문제를 관리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담겼다. 또 호기심의 대상이 아님을 청소년들에게 주지시키는 합목적성에도 충실하게 집필된 책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독자가 마약에 워낙 무지해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두 번째 문제로 미뤄놓더라도 심각한 우리 사회 실태를 적확하게 짚어냈다는 데 필요한 책이라고 전폭 공감한다. 특히 다른 중독성 물질인 커피, 담배, 술 등과의 연관성이나 중독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에게 빠르게 이해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이를 테면 2장 〈의료용 마약이 더 위험하다!〉에서는 「마약류는 무엇일까요?」「마약성 진통제가 마약 중독을 유발한다고요?」「진통제가 마약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요?」「뼈말라족이지만 식욕억제제를 끊을 수 없어요」「연예인들은 왜 프로포폴에 빠질까요?」「집중력을 높이려고 약을 먹는다고요?」「감기약에 마약류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마약류인데 마약이 아닌 약이 있다고요?」 등의 세부 항목에는 진솔하게 서술함으로써 마약류에 대한 무지뿐만 아니라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독자들로부터 큰 설득력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세부 항목 「마약류는 무엇일까요?」에서 저자는 마약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함으로써 독자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마약을 사용하고 나면 몸으로 느끼는 통증이 줄어들고 운동 신경은 무뎌지며, 환각작용 등으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얼마 전 유튜브를 뜨겁게 달궜던 '필라델피아 좀비'를 떠올린다면 이 뜻이 더 잘 이해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략) 아편은 뇌를 억제하며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류이다. 그 때문에 아편을 사용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 몸이 마비되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그 추한 모습을 사용자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만, '마약'과 'narcotics'는 말이 처음에 사용되었을 때는 아편과 같이 진정과 환각작용이 있는 약물을 말했을 것이다. 혹자는 아편이 진정한 '마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약은 단순히 몸만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의존을 일으키면서, 경제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없게 하면서, 사회적으로 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마비를 일으킨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사용한 '마약'은 결국 인생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p.71~72)


「뼈말라족이지만 식욕억제제를 끊을 수 없어요」에서 저자는 다이어트하는 데 필요한 약인 식욕억제제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데서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분명 식욕억제제는 체중을 감량하는 데 매우 좋은 효과를 보인다. 이 때문에 한번 약에 의존해서 체중을 감량한 사람들은 약을 끊은 뒤에도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다시 약을 먹고 체중을 줄이고 싶어 하게 된다. 힘들게 운동하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함정이다. 

저자는 알코올 중독의 무서움을 말하면서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약 중독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 중의 하나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알코올 중독이 무서운 것은 술을 어디에서든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인데, 디에타민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앞선 통계에서 식욕억제제를 1인당 1년에 161정을 복용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양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약국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식욕억제제 복용 환자 중에 굉장히 마른 체형의 환자가 있었는데, 약사가 이 환자에게 약을 주면서 식욕억제제를 복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등을 말해줬는데 환자는 한숨을 쉬며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환자는 '약을 중단하면 무기력하고 의욕이 상실되며 너무 몸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다. 약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더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제는 많은 사람이 마약이나 향정신성 약물 등 중독성 약물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마약은 스스로 끊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법적 처벌로 끝날 게 아니라, 치료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방 교육이다. 철저한 예방 교육만이 마약의 전파를 막을 수 있다. 기초적인 예방 정보는 수없이 많다. 또 원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은 확실한 예방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졸피뎀 역시 벤조디아제핀류로 가바 수용체에 작용해 수면 효과를 내는 약물입니다. 수면 유도 효과가 매우 빠르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숙취 현상(잠이 덜 깨고 어지러운 현상)이 덜하므로 많은 불면증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어요. 하지만 졸피뎀의 큰 문제가 있는데, 바로 내성이 쉽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내성은 처음 약물 양보다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하죠. 처음에 잠이 좀 잘 안 와서 약을 복용 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약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강한 의존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졸피뎀을 복용하고 난 뒤 단기 기억이 없어지는 증상은 정말 심각할 정도입니다.(p.111)


저자 : 배현


2010년부터 10년 넘게 분당에서 밝은미소약국을 운영 중인 현직 약사.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예방교육위원회 위원장, 약국한약제제연구회 회장, 헬스경향 자문위원, 약사OTC연구모임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헬스경향>, <건강다이제스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네이버 포스트>, <경기도약사회지> 등에서 칼럼을 연재했고, 약사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약물·건강 강의도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를 통해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약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약사는 약 전문가로서 대중의 약 선택과 복용의 헬퍼 역할을 해야 하며, 올바른 정보 전달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몸을 위한 최선 셀프메디케이션』, 『알면 약이 되는 약 이야기』, 공저로는 『약사가 말하는 약사』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적 서울 이야기 - 우리가 몰랐던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는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를 읽기 전 '서울'이란 지명을 언제부터 사용했느냐는 점에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수도'라는 의미라고 배웠지만 언제부터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우선 인터넷 네이버를 통해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여러 백과사전이 있고, 서울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이나 서울의 기원 등에 대해서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가 지금의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을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다시 국어사전을 뒤졌다. 두 개의 풀이가 있다. ①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 ② 지명: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한강 하류에 위치하며, 북한산·도봉산·인왕산·관악산 따위의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부로 불리다가 1945년에 서울로 명명되었고, 1949년에 특별시로 승격되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따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을 비롯하여 탑골 공원, 어린이 대공원, 남산 타워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면적은 605.39㎢.로 돼 있다. 

독자가 서울에 대해 사전을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국어사전을 통해 뜻풀이를 찾아볼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영어사전은 사전이 때묻고 닳아 아무데나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이용했는데 '왜 서울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을까?' 내심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서울이란 명칭과 기타 다른 정보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다소 심적 보상이 되었다. ‘서울’이라는 단어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보이는 국호의 서라벌, 서벌(나라, 도성의 뜻)과 동의라고 한다. 이후 우리 역사의 모든 기록은 한자로 했고, 한자가 국가 공용어로 사용됐기 때문에 주로 한자음이 지역별로 다른 점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말하는 일종의 사투리로 발음됐던 것 같다. 중국 본토에서도 한자는 문서 작성에 공용으로 쓰였지만 막상 발음하는 것은 통일 왕조였을 때도 지금의 우리 '표준말'처럼 통일 발음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역시 비슷한 정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자가 이처럼 추정하는 것은 가장 최근 왕조인 조선시대에도 한자만 사용했고, 일반 백성이나 사회 활동이 제한돼 있는 부녀자들은 한자를 따로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 고위관료 등에서는 책을 읽을 정도의 한자 교육을 가정에서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널리 쓰이기를 바랐으나, 사대(事大)를 국시로 했던 조선에서 다른 언어를 만들어 쓴다는 것은 중국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생각해 한글은 정부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벼슬을 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이나 부녀자들 사이에 한글은 쉽게 퍼져 그런 대로 명맥은 유지했을 것이다. 편지를 쓴다거나 최소한의 뜻을 펴기에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가능했으니까 필요한 일부 부녀자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 중기 이후 한글소설도 발표되고, 또 배우기가 쉬워 필요한 이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시대에도 우리나라 수도는 당연히 한자로 표기했다. '한성(漢城)' 혹은 '한양(漢陽)'으로 표기했을 터다. 그러나 발음도 '서울'로 하지는 않았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국한문을 혼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한성이라 표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학자도 거의 없는데다 한글 전용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때였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으로 '경성(京城)'으로 표기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경성으로 사용하다가 해방 후 비로소 '서울'이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이 됐다. 표기법은 다르지만 조선시대 수도로 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다.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이하 『옛적 서울 이야기』)의 저자 배한철도 〈서문〉에서 19살 때 처음 상경해 서울역을 나서며, 마주했던 역앞 건물(대우빌딩, 현 서울스퀘어)을 보고 적지않은 충격을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서 기껏해야 2~3층의 건물을 보다가 압도적 위용의 건물 앞에 놀랐다는 이야기다. 저자는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알게 됐던 서울의 각종 역사, 기억, 기록들이 무척 재미있고, 한편으론 변화무쌍한 산업화 시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많은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이 책의 집필했다고 밝힌다. 

"송파구 잠실 일대의 한강은 더욱 변화무쌍한 역사가 있다.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선 잠실이 애초 한강의 북쪽 편 뚝섬(광진구)의 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잠실은 조선 제11대 중종대 한강의 홍수로, 뚝섬 한가운데에 물길이 만들어지면서 섬으로 분리된다. 원래의 이 일대 한강의 명칭은 송파강이었으며 홍수로 새로 만들어진 물길은 신천으로 불렸다. 송파구 신천동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한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잠실섬을 육지화하고 송파강은 막아 인공호수를 조성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석촌호수다."(p.7)



이 책은 2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이다. 1부엔 「낯선 조선, 뜻밖의 서울」「지옥보다 못한 최악의 헬조선」「혼돈과 격동의 역사」「발길 닿는 곳마다 명승지」 등 4개의 장과, 2부에 「조선의 주인, 경화사족」「같은 듯 서로 다른 인생」「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오백년 사직 지킨 이데올로기」 등 4개의 장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양은 조선 왕조의 수도로서 자리 잡았다. 흔히 왕과 신하가 오가던 정치의 무대로 기억되지만, 실제론 그보다 더 넓고 복잡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얽힌 도시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동안 따분하게 배워왔던 정치사나 왕조 중심의 조선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도시 한양의 진짜 얼굴을 골목과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낸다고 저자는 밝힌다. 궁궐이 아닌 주택가, 왕이 아닌 백성들의 내밀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조선시대 한양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 과거의 한양을 시간 여행하듯 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에서는 도시의 구조, 경제, 명소, 위기와 같은 큰 이야기를 다룬다. 선입견과는 달리 한양은 소고기 소비량이 엄청났던 미식의 도시였다고 한다. 또 왕궁이 있는 도시이니만큼 독특한 내시들의 사회와 복잡한 신분 질서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지금처럼 주택 광풍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 벌어지는 등, 한양은 정치 무대를 넘어선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에서는 역사책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노비, 무당, 군인, 상인, 여성 등의 시선을 따라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추적한다. 청계천이 거대한 도시 하수도로 쓰였고, 지금의 이태원과 한남동은 공동묘지였으며, 왕십리와 서대문은 서울의 식자재를 공급하는 배추와 미나리 밭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역사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서울 도심은 곳곳이 역사 이야기의 보고다. 당연히 나라의 도읍지로 518년을 지속했고, 조선이 멸망하고도 115년이 지난 수도 서울은 조선시대 수도로 지정된 지 700년이 훌쩍 넘었다. 세 번의 외침과, 일제에 의해 망국의 한을 품고, 강대국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분단시키고 또 자신들이 싸우느라 납북간 전쟁까지 일으켰다. 서울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폐허을 딛고 민주국가로서의 발돋움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고,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위해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도시다.


서울의 고갯길은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저자에 따르면 서울은 외사산(바깥 4개의 큰 산), 내사산(안쪽 4개의 큰 산)에 둘러싸여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물길이 한데 모였다가 다시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지형이어서 무수한 구릉지와 고개가 존재했으며 현재도 그 흔적이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종묘 오른편의 종로4가 일원에는 난전인 이현(梨峴)시장이 존재했다. 이현은 순수 우리말로 배오개(배고개)라고 했다. 고갯길 주변으로 배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고 해서 이렇게 지칭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이곳에서는 상인들이 돈과 물건을 노리는 도둑떼가 활개를 치는 무법지대였다. 따라서 대낮에도 100명이 모여야 고개를 겨우 넘어갈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상한 것은 배오개가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지역이 아니라 관허시장인 종로시전에 인접한 번화가였다는 점이다. 

"허가를 받지 않은 상인들이 워낙 부자여서 도적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강도질을 감행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시기 서울 인구는 3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이로 인해 각종 도시문제가 불거지고 살인 등 강력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조선 조정은 엄벌주의 사형제를 시행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한복판에서 중대 범죄자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사형 장면을 볼 수 있도록 해 일번백계의 효과도 얻고자 했다. 한양도성의 가장 번잡한 거리인 종로 시전 일대와 도성 밖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서소문 밖 네거리는 끔찍한 방법으로 죄수를 죽이는 한성부의 대표적인 사형장으로 악명을 떨쳤다.

오늘날 부촌으로 각광받는 한남동과 옥수·금호동, 마포, 광희문 밖 신당동이 무덤으로 가득한 공동묘지였다는 것도 매우 낯설다. 산 전체를 빼곡하게 뒤덮은 묘지를 보고 외국인들은 "천연두 흉터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묘지는 오늘날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인식돼 화장장만 들어서도 인근 주민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친다. 그러나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은 과거 '무덤의 도시'였으며 서울 사람들은 묘터 위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또 죽어서는 그 자리에 묻혔다. 

조선시대 하면, 극소수 양반들만 모든 권리를 독점해 떵떵거리며 살고 일반 백성들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지레짐작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질적으로 낙후되고 궁핍했다는 것 흔한 인식이라고도 말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일제강점기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조선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역사의식을 주입한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다시 한 번 반일의식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내시는 가난과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자발적으로 거세하고 자원하는 사례가 많았다.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 성립기 직전까지만 해도 여의도에 움막으로 된 고자 시술소가 영업했다고 구전된다. 내시는 생식기능이 없었지만 어엿이 부인과 자녀를 거느렸다. 아내가 죽으면 재혼했고 첩까지 있었다.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왕실과 줄을 대기 위해 평민뿐 아니라 양반 가문 규수들도 서로 내시의 아내가 되고자 했다.(p.283)


종로구청 옆 이마빌딩은 궁중에 필요한 말을 기르는 사복시가, 청계천 마전교에는 말과 소를 빌려 주거나 매매하는 세마장이 위치해 말의 배설물이 그대로 하천으로 유입됐다. 나라에서도 굳이 단속하지 않았다. 세종 때 “도읍은 인가가 번성하고 그곳의 개천도 더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어효첨의 주장을 받아들여 오물투기를 방관했다. 동물 사체, 유아의 시체까지도 밤중에 몰래 버렸으며 종종 살인사건도 발생했다.(p.314)


이 책은 서울을 주제로 한 역사 교양서지만, 기존의 도시사와는 결이 다르다. 정치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의 자리에서 조선을 들여다보며, 현재 서울의 도시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생활사 기반의 인문 콘텐츠다. 서울의 현재는 조선의 골목 위에 있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 오랜 시간의 지층 위로 다시 한번 걸어보게 만드는 책인 셈이다.


저자 : 배한철


박물관과 유적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문화재 기자. 발품을 팔아 얻은 생생한 체험으로 문화재와 역사에 관한 칼럼을 쓰고 관련 책을 꾸준히 출간했다. 대학에서는 이와 전혀 무관한 경영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정책 기사를 주로 써왔다. 하지만 학창시절 관심분야였던 문화재와 역사 공부를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2011년부터는 문화재 분야를 취재하며 못다 이룬 역사학도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국보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국보가 간직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역사서와 고문헌을 깊숙이 탐독하고, 전국 유적지를 구석구석 답사하며 이 책을 썼다.

현재 〈매일경제신문〉과 네이버에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쓴다. 저서로 《한국사 스크랩》(2015년 세종도서 선정)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등 베스트셀러 역사 교양서가 다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세전쟁 - 전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 2.0시대 최악의 충격파
추동훈.이승주.강영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5일(미 동부시간) 전화 통화를 하고 교착 상태에 빠진 양국간 무역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양국의 '관세 전쟁 휴전' 이후에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지속과,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 및 중국인 학생 미국 유학 차단 시도 등으로 더욱 첨예해진 미중 간 갈등은 일단 봉합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략) 미국과 중국은 지난 달 10∼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위급 회담을 갖고 90일간 무역 협상을 위해 서로에게 부과하던 100% 넘는 관세를 대폭(115% 포인트) 낮추는 '관세 전쟁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양국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중국이 비관세 조치 해제를 약속하고도 핵심 광물 및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하지 않는다며 합의를 전반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중국은 이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미국이 반도체 등 일부 품목 수출통제 및 중국인 미국 유학생 비자 취소 등 차별 조처를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양국 정상은 이날 통화에서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6일 연합뉴스의 보도 내용이다. 이번 '관세전쟁'은 트럼프 2기가 출범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선언이라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독자는 본다. 트럼프 1기때 미중 '무역전쟁'을 선포한 경험이 있어서다. 다만 관세율이 상상을 초월해 100~150% 수준의 인상인데다 무역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지금 이 전쟁에서 극복해 나갈 원동력이 별로 없다는 데서 더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원자폭탄급'이라는 인식에 독자는 공감한다. 더욱이 지난 12월 3일의 비상계엄부터 6개월간 이에 대한 대책이 정부 입장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은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기에 안타까움이 더한다. 

이 책 『관세전쟁』은 지난 4월 2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진 이후 극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자세히 짚어보고, 적절한 대책으로 이제부터라도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집필됐다. 지난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 늦었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는 상태다. 다행히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를 강조하면서 대응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이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게 되기를 바라는형국이다.


4월 2일 트럼프의 발표 이튿날 나스닥은 6% 급락, 3일 하루 증발한 시가총액만 무려 약 3조 1,000억 달러에 이르러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고 한다. 환율 역시 급락하는 등 전 세계 경제에 충격파가 급속도로 퍼져 전 세계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중국과는 연일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145%(미국) vs 125%(중국)’까지 보복 관세를 올리는 등 '치킨게임'으로까지 치달았으나 중국이 강경한 맞대응이 미국 내 물가 상승과 달러화 가치 하락 등 이상 증상을 잠재우기까지 일단 수면 아래로 감춰진 듯하다. 중국의 맞대응은 미중 경제전쟁으로까지 번질 위기는 일단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진화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관세’는 트럼프 2.0 시기에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화약고에 다름 아닐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당사국인 중국과는 달리 미국의 관세 대응에 맞대응이 곤란한 나라들은 희생양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은 그의 당선 이전에도 일정 부분 예견된 바 있다. 노벨 경제학상에 빛나는 폴 크루그먼은 일찍이 “트럼프는 경제를 협상의 수단으로 보며, 관세를 외교 무기로 사용한다. 그가 돌아오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무시하고, 동맹국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관세전쟁을 재시작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모건스탠리 역시 2024년 말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10% 전면 관세 가능성이 높고, 이는 글로벌 GDP를 최소 0.5% 이상 끌어내릴 수 있다”고 했으며, 골드만삭스는 2024년 대선 시나리오 분석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관세 인상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중 간 디커플링(decoupling)이 본격화된다”라고 예측했다. 지금의 위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관세전쟁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생존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이 출간된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은 추동훈(매일경제신문 산업부), 이승주(문화일보 경제부), 강영연(한국경제신문) 등 3명의 기자(이하 저자)들이 과연 우리가 '무역전쟁' '경제전쟁' '관세전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짚어보고,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를 짚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어 썼다.


저자는 「돌아온 트럼프, 관세전쟁의 서막」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 "4년 만에 복귀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전보다 강하고 공격적인 정책으로 무장했다. 그의 정책은 훨씬 맵고 짜게 변했다. 이는 전 세계 경제구조를 뒤흔드는 듣도 보도 못한 레시피다."고 지적한다. 이 무기는 경제를 중심으로 무역, 외교, 안보를 하나로 엮어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트럼프의 노골적 의도를 선명하게 담은 무기다. 그리고 재집권 초기에 이를 수행하는 핵심 첨병이 바로 '관세'다."라고 저자는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또 관세전쟁(Tariff War)은 더 이상 경제지표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경제를 뒤흔들려는 트럼프의 복잡한 셈법이자, 미국식 패권주의의 새로운 표현 방식이다. 중국에 집중했던 트럼프 1기와 대조적으로 2025년 트럼프는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캐나다처럼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국들과도 전쟁을 선포했다. 관세는 이제 그 자체로 미국의 외교 수단이면서 지정학적 메시지다. 표면적으로는 '거래 조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압박 도구'로 쓰이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선포 이후 드러난 현상을 토대로 트럼프의 의도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첫 100일 동안 미국은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거의 모든 산업을 관세의 영향권 아래 두고 있다. '국가안보'와 '경제주권'이라는 명분이 내세워졌지만 그 이면에는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사업가 트럼프의 진면모가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다. 직전 정부인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 '반독점'을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점잖게 진행했던 동맹 기반 협력 체계는 트럼프 정부 들어 '네 편도, 내 편도 없는 전면전'으로 선회했다. 트럼프의 협상 기술을 장착한 미국의 관세정책은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을 어지러이 흔들고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 주식시장은 관세정책에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중이다. 달러와 금, 채권 시장은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널을 뛰고 있다."(p.5)

저자는 이에 따라 이번 관세전쟁은 '미국의 보호무역' 논리로만 접근할 단순한 일차 방정식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트럼프의 철저한 정치적 의도와 안보적 계산 등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 결합한 고차원 방정식이라고 규정짓는다. 심지어 그 정답이 있는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난제에 가깝다는 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제도적 울타리를 오래전에 넘어갔다. 걸림돌이 되는 조약과 약속은 과감하게 무시했다. 트럼프는 전 세게가 합의하에 수십 년간 지켜오던 '글로벌주의'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저자는 더 나아가 이 관세전쟁은 포퓰리즘 정치가 나쁘게 진화된 형태라고 강조한다. 복잡한 공급망과 무역흑자, 기술수출, 서비스 교역 등의 이야기는 소수의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고, 그마저도 엉터리로 작성됐다고 과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5%로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가 26%로 바꾼 뒤 또다시 25%로 회귀한 것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 『관세전쟁』은 트럼프 2기 정책의 핵심이자 전 세계에 연일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관세전쟁'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그 전망을 두루 살펴본다. 관세전쟁이 불러올 경제적 충격과 세계 경제의 방향을 조망하며, 특히 한국에 미칠 여파와 그에 대한 생존 전략을 도모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무엇보다 개인투자자와 기업 입장에서 관세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대응법을 알아보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트럼프 2기 무역 정책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구조적·전략적 선택이다. 그리고 그 마중물로 ‘관세’라는 통상정책을 택했을 뿐이다. 이제 관세는 더 이상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경제 정책의 하위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외교 전략이자 산업정책이며, 안보 수단이다. 미국의 관세라는 칼의 한쪽 날이 경쟁국을 겨누고 있다면 그 반대편 날은 다름 아닌 동맹국을 스치고 있다. 이게 바로 트럼프가 손에 쥔 양날검의 무서움이다. 관세는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진짜 목표는, 세계 경제의 규칙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p.7)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관세전쟁의 충격-발발 원인과 방향〉, 2장 〈관세전쟁이 뒤흔드는 글로벌 경제-글로벌 경제 전망〉, 3장 〈관세전쟁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법-한국의 현황 분석과 대응 전략〉, 4장 〈개인과 기업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개인의 투자 전략과 기업의 리스크 관리법〉 등이다. 이번 관세전쟁에서 우리로서는 우리 한국이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장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등 국가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는 수출 품목에 관세의 올가미가 씌워지느냐 마느냐, 씌워진다면 그 폭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의 불확실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수출과 내수 부진에 따른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경제, 그리고 기업과 개인에게는 공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관세 정책이 단기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화될 경우 국가와 기업, 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지대할 것이고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의 실체를 파악,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시대적 과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의 1장에서 트럼프 2기 정책의 핵심인 ‘관세전쟁’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그 전망을 두루 살펴본다. 또 관세전쟁이 불러올 경제적 충격과 세계 경제의 방향을 전망하며 특히 한국에 미칠 여파와 그에 대한 생존 전략을 도모해본다. 무엇보다 개인 투자자와 기업의 입장에서 관세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대응법을 알아보는 것이 핵심이다. 4장에서는 개인의 투자 전략과 기업의 리스크 관리법을 살펴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트럼프 2기의 무역 정책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일회성 대응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다만 그 수단으로 ‘관세’라는 전통적 무기를 택했을 뿐이다. 이제 관세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경제 정책의 하위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외교 전략이며, 산업 정책이고, 안보 수단이다. 그리고 때로는 동맹을 압박하는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관세는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진짜 목표는 세계 경제의 규칙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명확하게 읽고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관세가 매겨지면 관세 부담 없이 자유롭게 미국과 교역하던 우리나라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판매 저하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세는 한국산 제품에만 매겨지는 게 아닌 큼, 그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산업군별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 가장 주목되는 품목은 우리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다. 반도체는 4월 초 품목별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자동차 등 다른 산업군보다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향후 관세가 부과될 여지가 남아있는 만큼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태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 최대 품목이지만, 미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적은 편이라 피해는 다른 산업군 대비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는 2024년 기준 대미 수출 3위 품목이다.(p.152) 한국은 미국에 106억 달러의 반도체를 수출한 바 있다.


관세전쟁을 치르면서 확실해진 것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이든 연설로든 강조했던 부분은 반드시 관련 정책이 나온다는 점이다. 상호관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강조하던 내용이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통상정책 공약에 포함돼 있었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레이스 초반에는 전 세계에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일률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는 강화됐고, 대선 직전에는 최대 20%를 매길 수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물론 실제 상호관세는 이 같은 예상을 모두 뛰어넘었지만 방향성은 예고됐던 셈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그간 트럼프가 강조했던 정책과 아젠다를 확인하며 투자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p.196~197)


"트럼프 2.0 시대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시장을 바라보는 시야를 단기에서 장기로, 나무에서 숲으로 확장하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p.249)


저자 : 추동훈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2013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디지털테크부, 부동산부, 증권부, 정치부, 뉴욕특파원 등을 거쳤다. 현재 산업부에서 국내·외 기업들의 경영 전략, 사업 트렌드를 취재하고 있다.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이야기를 다루는 〈흥부전(흥미로운 부랜드 전)〉 코너를 네이버와 매일경제에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일론 머스크 디스럽션 X》, 《부동산 1만 시간의 법칙》, 《최소한의 정치공부》 등이 있다.


저자 : 이승주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2014년 뉴시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부동산부·금융부·증권부·정치부·국제부 등을 거쳤고, 3년 전부터 세종시에서 경제정책을 맡고 있다. 최근까지 산업통상자원부를 출입하며 트럼프 당선을 지켜봤다. 저서로는 《토익보다 부동산》, 《부동산 투자를 잘한다는 것》,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7》(공저), 《코인 부자는 무엇이 달랐나》(공저) 등이 있다.


저자 :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2011년부터 한국경제신문에서 일하며 산업부·IT과학부·생활경제부·국제부·증권부·정치부·뉴욕특파원 등을 거쳤다. 저서로는 《주식, 나는 대가처럼 투자한다》, 《대치동이야기》(공저), 《이토록 쉬운 경제학》(공저), 《시네마노믹스》(공저)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 아우렐리우스편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을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번역본이고, 번역본은 영어로 쓰인 판본이다. 고대 로마 문장(라틴어)은 해석고, 번역한 사람마다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해석이 달랐다는 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뜻을 이해하기에 바빴고 어떤 것이 잘 된 번역인지는 알 길이 없었기에 그렇다. 결국 독자는 영어 번역본 『명상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곤 했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편저자 이근오가 〈서문〉을 썼다. 편저자는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줄까"를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물론 '무엇을 하고 싶다', '어떻게 살까' 정도는 하고 살지만··· 그러나 편저자처럼 깊은 생각에 빠지면 명쾌한 답이 내려지기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질문을 오래 하지 않는다. 편자의 경우 깊은 생각이 오히려 자신을 더 외롭게 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때 만난 사람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편저자는 밝힌다. 

편저자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엄격하게 돌아보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고요한 마음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원래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다. 하루의 끝에서 자신을 다잡기 위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그저 조용히 스스로에게 써내려간 문장들이었다. 그런 글이 편자에게는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생애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황제였다. 전쟁터에서 『명상록』을 집필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살륙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전장(戰場)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보통의 황제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아우렐리우스는 훌륭한 황제로서, 후계자를 세습하기보다 로마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황제이자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편저자는 『명상록』을 읽을 때마다 황제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안과 조급함이 엿보였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글들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미 오래 전 모든 사람을 다스렸던 황제이자 한 명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외로움이 편자의 외로움과 결이 같다고 느꼈을까?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 갈 것,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갈 것 등이 절절하게 전해졌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도 다가온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행동이 아니라면 철학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은 자기의 본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본성은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이며,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아우렐리우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로마의 황제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철학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그의 신념은,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을 접하는 현대인들이 그의 태도를 배워,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이 곧 편자의 말임을 독자에게는 읽힌다.

『명상록』이 편자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함께 준 책이었다는 말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편자는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문장들, 그리고 편자가 살아오며 겪은 마음의 조각들을 조금씩 꺼내어 책으로 엮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로 『명상록』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을 남겼다. 황제가 『명상록』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전쟁과 정치도 굉장히 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물론 그의 치적을 영화 등의 예술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명상록』은 황제로서 겪은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거나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고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필독서로 꼽히며 넬슨 만델라와 빅터 프랭클도 이 책을 읽고 살아야 할 용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 중에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핵심적인 주요 골자를 가려 뽑아 『명상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가려 뽑아 묶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데 지혜가 필요할 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로 고민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이 책은 『명상록』의 문장 가운데 주제별로 묶어 모두 5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왜 당신은 상처받지 않아도 될 말에 아파하는가〉, 2장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라〉, 3장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4장 〈나를 지키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5장 〈삶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등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통에서도 10년에 걸쳐 일기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외세의 침략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그였지만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늘 고민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영원불변의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1장 첫 번째 「나를 아프게 한 건 나의 해석이다」에서는 살다보면 상대방에게 까닭없이 비난 받을 경우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속해서 시간을 쏟는 경우가 잦다. 이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외부의 일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당신이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편저자의 해석이 이어진다. "처음엔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를 괴롭힌 말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서 왔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말이 옳고 안 옳고의 문제보다, 내가 그 단순한 말에 어떤 무게를 부여햇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p.17) 

편저자의 의견이 이어진다.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어떤 말이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아지가 아무리 짖어도 내 마음에 어떤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를 보며 계속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같이 짖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짖는 개를 보고 나도 같이 짖는다면 목적지에 절대 도착할 수 없다. "타인의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깊이로 받아들이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p.18)


2장 네 번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의 글은 흥미롭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좋은 점을 말하며 관심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편저자는 쓰고 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마음먹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편저자는 지적한다. 그렇게 꾸준히 생각하고 애쓰며 만든 결과로 인품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싶다. 사람들은 완벽을 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완벽보다는 노력을 통한 변화를 더 좋아하고, 말로만 하는 배려보다는 진심이 보이는 행동에 더 감동받는다. 그렇기에 꼭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고 꼭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함에도 매일 조금씩 더 괜찮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는 것. 도와주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그 짐을 덜어주는 것. 아낀다는 말보다는 정말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런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는 결국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편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라."(p.71)

3장 첫 번째 「남의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라는 글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류 공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저자는 지적한다. 남의 삶을 궁금해하다 보면 결국 가장 소홀해지는 것은 나의 삶이다. 내가 더 신경 쓰고 생각해야 할 것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점점 더 빈 수레가 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자기 계발에 신경 써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남 얘기만 ㅎ며 변화 없는 삶에 머문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을 편저자는 『명상록』에서 찾아 적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신경 쓰지 마라. 오직 당신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하라."(p.99)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은 남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며, 어떤 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3장 다섯 번째 「네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너의 태도를 바꿔라」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관계로 인한 불편함을 겪게 된다. 누군가의 태도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낀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 소모는 더 커진다. 실망과 불편함 속에서도 참아내는 것이 배려이고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며, 이해되지 않아도 억지로 받아들이려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불편함을 무조건 참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분명하게 상황을 구분하라고 했다. "네게 일어난 일을 바꾸는 것이 네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에 대한 너의 태도뿐이다."(p.114)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 《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편역 : 이근오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와닿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