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산책시키기 - 당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10가지 방법
벤 알드리지 지음, 김지연 옮김 / 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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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의 황금률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스토아주의의 10가지 제안’에 따라 실천해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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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산책시키기 - 당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10가지 방법
벤 알드리지 지음, 김지연 옮김 / 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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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바나나 산책시키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추구했던 스토아 철학과 철학자 이야기다. 단순히 스토아 철학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 벤 알드리지와 스토아 철학과의 뗄 수 없는 인연, '스토아 철학으로 건강 되찾기'를 중심으로 펴낸 책이다. 2,200년이 지난 철학이 다시 소환된 이유는 저자가 어느 날 맞닥뜨린 공황 장애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면서부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책을 정신 없이 읽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스토아 철학과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사상이 눈에 띈 것이 시작이었다. 저자는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잠도 잘 수 없었고, 밥도 먹을 수 없었으며, 급기야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를 다시 살려 낸 것은, 2000년도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 만난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이었다고 밝힌다. 

그들이 활동했던 사사의 중심에서 당시 인간 삶과 만물의 이치를 사고했던 철학자들을 '스토아학파(Stoicism)'라고 이름지어졌다. 이 철학 사상은 기원전 3세기 제논에서 시작되어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이다. 스토아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그리스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주요 학파이다. 헬레니즘 문화에서 탄생해 절충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물론과 범신론적 관점에서 금욕과 평정을 행하는 현자를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고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도 난다.

스토아에 대한 한 가지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 스토아학파의 윤리학을 우리는 보통 금욕주의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소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은 참된 행복이 쾌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를 잘 준수하고 자칫 감정에 사로잡히기 쉬운 자신을 이겨내며 욕정을 단념하는 데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대로 인간의 본성은 이성이기 때문에 그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이 덕이며,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저자도 살아오면서 정신 건강에 대한 교육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로 인해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면서부터 '죽음'이 눈앞에 왔다고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증상이 정신과적 문제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생존이 달렸다고 생각한 끝에 시작한 독서는 책이란 책은 다 읽을 듯이 미친듯이 독서에 매달렸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 많은 날 중 어느날 접했던 스토아철학에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무엇보다 실용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따르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정신력(resillience, 시련과 고난을 이겨 내고 마음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는 능력 : 옮긴이 주)에 관해선그 누구보다 전문가였고, 정신력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정신 나간 짓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점이 저자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이다. 저자가 스토아주의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미리 연습하면 미래에 닥쳐올 역경에 대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욱 더 저자의 마음을 끌어들인 점은 일부러 더위와 추위에 자신을 내던지거나,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는 사실이다. 남들 보기에 낯부끄러운 옷 차림새로 다녔고, 맨발은 기본이었다. 또 끼니를 일부러 거르고 몸소 '빈곤'을 실천했다고 한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이처럼 스토아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자신만의 심리적 안전지대를 벗어나고자 개인적인 도전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본능을 거스른 채 불편함과 역경에 직면하면서부터 저자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결과를 먼저 말한다면 저자의 이런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불안한 마음을 관리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자, 저자는 다시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효과였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실천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이다. 책에 따르면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했고, 산에 올랐으며, 먼 거리를 걷는 일도 성공했다. 틈만 나면 추위를 견디는 훈련도 했다. 날마다 찬물로 샤워를 했고, 강이나 바다에서 수영을 즐겼으며, 얼음물에 뛰어들었다. 루빅큐브를 1분 안에 푸는 법을 습득했고, 일본어와 종이접기도 배우기 시작했다. 한의사를 찾아가 침을 맞으며 침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잤으며,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기도 했다. 카드를 한 번씩만 보고 카드 덱 전체를 암기하는 법과 자물쇠 따는 법도 스스로 터득했다. 순전히 내 정신력을 단련하고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 대열에 합류해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얼핏 생각하면 도저히 정신이든 육체든 건강 되찾기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스토아 철학을 ‘금욕주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자도 개별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오해 혹은 오류였음을 깨달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일부러 이상한 옷을 입고, 맨발로 다니는 것은 정신적 장애 때문이 아니고 욕망을 없애기 위한 실천이었다. 이는 마치 부처가 깨닫기 위해 고행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즉 삶의 원리, 진리 등 도를 깨닫는 실천 덕목이었을 뿐이라는 데 독자로서도 동의한다. 다만 독자는 실천해보지 않아 효과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공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저자는 '쓸데없을 것 같은 실천'을 효과로서 증명했다. 이를 읽은 독자도 스토아 철학은 ‘정신력을 강화하는 훈련’에 가깝다고 이해한다. 공황 장애에 시달리던 저자가 자발적으로 도전과 어려움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 또한 모두 스토아 철학 덕분이라고 했고, 실천을 통해 삶에 중요한 진리와 원리에 대한 깨달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스토아주의라는 고대 사상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봉쇄 조치가 실행되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에베레스트산 등반 대신 집에 있는 계단을 21시간 동안 올랐고, 마라톤 대신 자신의 집 정원을 4,802바퀴나 뛰었다. 이 정도면 ‘스토아주의 프로젝트’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스스로가 쳐 놓은 심리적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그가 실천에 옮겼던 것들은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고 한다. 맨손으로 거미 잡기, 싫어하는 정당에 기부하기, 듣기 싫은 밴드의 음악 듣기, 애완 바나나와 산책하기, 싫어하는 음식 먹기,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상상해 보기···. 예전의 그였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을 그는 ‘안티 버킷 리스트’로 만들어 하나씩 행동으로 옮겼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심이 자꾸만 생겨 났지만 "자의적으로 스토아학파의 삶을 실천한다는 게 정신장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란 믿음에 근거해 독서를 계속할 수 있었다. 또 저자는 이 이상한(?) 도전을 이미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법: 강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는 이상하고 놀라운 43가지 방법』이란 제목의 책을 써 냈다. 개인적으로 정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 도전들에 대해 썼기에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에서 실천 방법이나 단계 등 여러 가지 보완해 스토아주의 실용서로 이 책 『바나나 산책시키기』를 썼다.



이 책은 스토아 철학책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에 가깝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도전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뒤바꾸어 놓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 중심에 바로 ‘스토아 철학’이 있다. 저자는 '스토아주의'라는 이 고대 사상을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하고 훨씬 더 삶이 풍요롭고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성찰에 뒤늦은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스토아주의 덕분에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뒤바뀌었는지, 그 고마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지금이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조언들로 가득하다. 일기 쓰기, 모닝 루틴, 죽음 명상, 역할 모델 고르기 등 모두 평범한 이들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저자가 했던 것처럼 당신도 바나나와 산책을 나갈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면 다시 한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200년 전 고대 철학이란 말도 지우고 싶다면 잊어버려도 괜찮다. 스토아철학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용어가 무수히 등장하고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시작할 엄두조차 안 난다면 용어를 몰라도 괜찮다. "그냥 처음 보는 용어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일단 실천 메뉴얼에 신경을 더 쓰면 된다. 더욱이 번역된 책이니 한두 번 읽으면 번역된 우리말로 기억해도 나쁠 것 없다. 특히 이 책은 철학에 대해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철학을 어떻게 하면 삶의 기술로, 일상의 영역으로, 실천의 목록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 용어가 어렵다, 옛날 사상이나 철학이 뭐 얼마나 우리 삶에 도움을 줄까?란 의문도 말끔히 씻어 버릴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주문하고 싶다. 이 책은 무엇이 되었든 미리 연습을 해 놓으면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인생 사용 설명서’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삶에 더욱 매진할 것을 안내하는 책이다. 고삐 풀린 인생에 지친 사람들에게 삶을 통제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들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 10가지를 제시한다. 모두 저자가 직접 실행해 본 것들이라 상당히 실용적이고 구체적이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방법이 어떻게 스토아주의와 맞닿아 있는지도 알려 준다. 이렇게 10가지 방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각 장의 말미에 〈스토아주의 도전 과제〉와 〈변화를 위한 글쓰기 미션〉을 만나게 된다. 스토아주의를 일상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이 과제들은 당신의 인생을 실질적으로 바꿔 놓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도 「10일짜리 도전 과제」, 「1개월짜리 도전 과제」, 「1년짜리 도전 과제」, 「나, 벤이 추천하는 도전 과제」 등이 함께 실려 있으니 각자 개별적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다. 독자들은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순간, 날뛰는 삶에 대한 통제권도 되찾아 올 것이라 독자는 믿는다. 

출판사 측 소개글은 저자가 쓴 본론을 바탕으로 독자를 감동시킬 만한 멋진 말이 있다. “실천이야말로 스토아주의를 스토아주의답게 만들어 준다. 실천하지 않는 철학은 그저 단어의 나열일 뿐이다.” 스토아주의 덕에 인생을 180도 뒤바꿔 놓는 데 성공한 한 남자가 들려주는, 10가지 방법은 각 독자들이 삶이 변화될 상상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작하기 전부터 감동이 밀려오는 듯하다. 이들 10가지 제시한 방법은 제목부터 자주 들어본 단어들이 많아 기억하기도 훨씬 쉬울 것이다. 저자가 오래 탐구하고 실천하고 성과를 거둔 것을 정리해 놓은 것이니만큼 신뢰도 또한 높다. ① 자발적 불편함을 추구하라 ②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③ 운명을 사랑하라 ④ 스스로를 돌아보라 ⑤ 역할 모델을 찾아라 ⑥ 부정적인 상황도 염두에 두어라 ⑦ 내 마음만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⑧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⑨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⑩ 우주적 관점을 지녀라 등이다. 

저자의 용기를 북돋우는 말은 이 책의 내용 숙지와 실천을 위한 다짐을 더욱 굳게 해준다. "시간을 내어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해 보라. 걸음을 멈추고 장미 향기를 맡아 보라. 인생은 언젠가 끝이 나고, 그럼 더 이상 피자를 먹을 수 없게 될 거란 걸 기억하라. 미래는 불확실성의 연속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지만, 괜찮다. 당신에게는 어떤 어려움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으며, 훈련을 통해 그 힘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외부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에만 집중하면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누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상실을 생각하는 것은 이런 태도에 대항하는 완벽한 방법이다. 배우자, 가족, 친구, 반려동물, 건강, 멀쩡한 감각과 사지, 직업, 돈, 집, 자동차, 노트북, 휴대폰, TV, 옷, 추억이 담긴 물건 등 상실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목록으로 작성해 보라. 처음부터 상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이 훈련이 훌륭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면 어떨까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라. 매일 밤 이를 닦으면서 감사한 일을 모두 읊어 보라. 사방팔방 치약을 튀기지 않으려면 소리 내지 말고 머릿속으로 되뇌는 게 좋다!(p.208) - 「부정적인 상황도 염두에 두어라」 중에서


저자 : 벤 알드리지(Ben Aldridge)


벤 알드리지는 실용주의 철학, 심리적 안전지대, 정신 건강, 모험 등에 대한 글을 쓴다. 등산, 일본어 공부, 마라톤, 루빅큐브, 미식 체험, 얼음 목욕, 노숙 등을 즐긴다. 벤은 독자들에게 기발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을 즐기라고 권한다. 지은 책으로는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법How to Be Comfort with Being Uncomfortable》, 《심리적 안전지대 벗어나기Get Out of Your Comfort Zone》 등이 있다. 트위터 @iambenaldridge / 인스타그램 @dothingsthatchallengeyou


역자 : 김지연


KAIST 경영과학과 졸업 후 미국 듀케인대학교에서 레토릭 및 커뮤니케이션 철학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년간 번역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정확히 읽어내는 타로 리딩》《프로방스에서의 25년: 영국 이방인의 애정 어린 눈에 비친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의 유쾌한 일상》《외로움의 해부학》《발견의 시대: 신 르네상스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알렉산더 해밀턴: 현대 자본주의 미국을 만든 역사상 가장 건설적인 정치가(공역)》《영향력과 설득: 말솜씨가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더미를 위한 밀레니얼 세대 인사관리》《놀라움의 힘》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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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 천재들을 이끈 오펜하이머 리더십
박종규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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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제조 프로젝트를 이끈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인 독일, 일본을 제압하기 위한 특단의 무기 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앞섬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물리학자였던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로서가 아닌, 가공할 무기 제조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맨해튼 프로젝트'란 명칭의 원자폭탄 제조 연구개발팀의 리더로 오펜하이머가 지명됐다. 그는 물리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다만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를 거침으로써 오펜하이머는 원폭 제조를 후회하고 핵반대 운동에 참여하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자폭탄은 가공할 위력으로 한 번의 폭발로 수십 만 명의 인명을 살상하는 바람에 세계 강대국들의 전략 무기로 너도나도 개발함으로써 세계 무기와 전쟁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렸다. 

오펜하이머는 1954년 청문회를 통해 그가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 원자력에너지위원회에서 과거 행적이 낱낱이 왜곡되면서 파헤쳐지고, 결국 쫒겨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마치 순교자처럼 그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였다고 기록은 증언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당연히 상처받고 고통스러웠겠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모순' 속에서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과 그 당시 처한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2022년 12월, 미국 정부는 1954년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내린 보안인가취소는 부당했다고 판단하고 그 결정을 취소했다. 오펜하이머의 비밀취급인가가 취소된 지 68년 만에, 그리고 1967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5년 만에 마침내 그에 대한 공식적인 복권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해 7월 개봉된 영화 〈오펜하이머〉 끝의 한 장면에서, 1954년의 청문회 결과가 내려진 다음 "그렇게 혹독한 벌을 묵묵히 견디면 세상이 당신을 용서할 것 같아?"라는 아내 키티의 울음 섞인 힐난에 오펜하이머는 "두고 보면 알겠지"라고 조용히 답한다. 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의 저자 박종규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장면의 짧은 말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과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그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기로 결심하게 된 까닭이다.



지난해 7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열풍을 일으키며 역사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이 놀라운 흥행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 중 상대적으로 베일에 싸여있던 ‘오펜하이머’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기 영화라는 점이 가장 컸다고 영화평론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그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정보가 적은 사람이었다. 머리가 비상했고 핵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의 대가였지만, 정작 물리학자로서의 업적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닐스 보어나 엔리코 페르미 같은 기라성 같은 위대한 학자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독자도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까지는 원자폭탄 제조에는 아인슈타인이 기본적 자료를 제공하고 행정으로서의 프로젝트 수장 역할을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책임자가 '오펜하이머'라는 이름의 물리학자란 사실도 제대로 모를 정도였다. 다시 말해 학계에서는 그가 맡은 폭탄이 대량 살상 무기로서 유사 이래 '최악의 무기'라는 여론에 밀려 미국의 승전 영향력이 반감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원자폭탄 프로젝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리더로 기억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한 번에 끝낸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리더였지만, 폭탄 투하를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 앞에선 “내 손에는 피가 묻어있습니다”란 발언을 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겁쟁이 과학자'라는 멸시를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 미국이 소련과 핵전쟁을 시작한 이후엔 자신이 만든 핵폭탄을 반대하는 완전히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쟁을 끝낸 '영웅'과 대량살상 무기의 '학살자'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누구나 추정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의 변신(?)도 어쩌면 이런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저자는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읽어냈다고 밝힌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인류 역사를 뒤바꾼 역사적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조망하고 설명하는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자 박종규는 비밀해제된 기록, 영화와 기록 등을 통해 오펜하이머를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며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탁월한 리더로 분석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인력 13만 명, 비용 40조 원이 투입되었고, 개발 목표 기한을 불가능하게 설정해 모순으로 가득 찬 평범한 인간을 리더로 임명했다는 점에서 무리한 계획이었다고 한다. 결정을 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를 수행한 오펜하이머는 온갖 비난을 받아낸 '희생양'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오펜하이머는 청년기에 타인의 재능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으며, 리더가 된 후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인생 후반기에는 자신이 개발한 핵폭탄에 반대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면밀하고 끈질긴 연구와 분석을 통해, 훌륭한 리더는 자신 안의 ‘모순’을 직면하고 ‘인정’한다는 사실을 이미 발견해냈다. 모순과 인정을 통한 리더는 그것을 통해 오판과 실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을 한다고 저자는 본다. 오펜하이머 또한 ‘모순’과 ‘인정’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리더로서 끊임없이 성장했고, 결국엔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탁월한 리더로 거듭났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에는 오펜하이머가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적용한 사람, 일, 조직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들을 담았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사람을 이끄는 ‘감성지능 리더십’,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에서 시작되어 확실한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 방법으로 급부상한 ‘애자일’*, 권위를 바탕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명령을 내리는 탑다운 방식이 아닌 조직의 맨 아래 구성원부터 설득하여 조직 자체의 변화를 이끄는 ‘상향식 조직개발’ 등 리더와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과 방법론의 모든 것들을 오펜하이머가 실천한 프로젝트 리더로서의 한 일들을 상황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 애자일(Agile) :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미 ‘애자일’(Agile)이라는 단어가 익숙할 테다. 애자일은 문서작업 및 설계에 집중하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프로그래밍에 집중하는 개발 방법론이다. 애자일이란 단어는 ‘날렵한’, ‘민첩한’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다. 애자일 개발 방식도 그 본래 의미를 따른다. 정해진 계획만 따르기보다, 개발 주기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식을 뜻한다.(독자 주)



이 책은 모두 4부(Part) 2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뛰어난 리더도 사람이다-미숙했던 오펜하이머〉, 2부 〈탁월한 리더는 만들어진다-새로 태어난 오펜하이머〉, 3부 〈훌륭한 리더는 사랑받는다-모두가 원하는 사람이 된 오펜하이머〉, 4부 〈진짜 리더는 숨지 않는다-전부 꺼내보였던 오펜하이머〉 등이다. 25개의 각 장에는 핵심어가 등장한다.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4부로 나눈 뒤 각 장에서 리더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덕목을 핵심어로 표기해놓았다. 일부만 여기에 적시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은 덕목이 제시된다. 이 많은 덕목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는 의문이 들지만 오펜하이머가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리더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오펜하이머는 가지고 있는 것이 있고, 또 리더가 된 다음에 습득한 것도 있다. 그러나 리더는 어찌됐든 이런 조건들이 뒷받침되어야 탁월한 리더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한, 필요한 리더십의 덕목들이 이 책에 차근차근 선을 보인다. 리더고 되고자 한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책에 핵심어로 표기된 리더의 조건을 깊이 사유할 수 있고, 실천해야 탁월한 리더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책에서 채택한 오펜하이머는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실천하며 불가능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질투 시기심 자존감 모순 양면성 다면적 입체적 오만 겸손 감성지능 사회성 자기인식 긍정심리학 강점탐구 오너십 로열티


이상은 1부에 독자가 각 장에 끼워넣은 핵심어들이다. 이들 핵심어는 각 장의 본문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문제점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약점이 강점이 되고 리더십의 중요한 조건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또 그 에피소드를 오펜하이머가 프로젝트 수행 과정과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 잘 드러내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각 장의 제목에 주목해 본다. 이를 테면 1부 5장 「그는 싫어하고 재능도 없는 실험 물리학을 포기했다」에서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배우고 있던 실험물리학이 자기의 재능과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결국 독일의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 자신이 좋아하고 또 잘 할 수 있는 이론 물리학에 집중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당시를 회고하며 자신이 실험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으며, 이론 물리학이라는 재밌으면서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서 기뻤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잘 못하고 게다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들을 낼 수 있게 되었다.(p.80) 5장의 핵심어를 저자는 '#긍정심리학 #강점탐구'로 기록하고 있다.



15장에서 저자는 '#진성리더십 #진정성'을 꼽고 있다. 책에 따르면 진정성은 그리스 말인 'Authentikos(자연스럽게 생긴, 진정한)'에서 비롯된 말로 원래의 형태나 본질을 유지하면서 모방이나 가짜가 아닌 진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Authentikos'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Authentes'인데, 이 단어는 'autos(자신)'와 'hentes(행동하는 존재 혹은 성취)'의 두 의미가 합쳐져서 '자신의 권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진정성을 가지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지가 없다"ㅁ녀서 강조한 '자기탐구'와 '자기성찰'을 통해, 즉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서 실현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만 같지는 않은 진정성을 추구하는 일, 다시 말해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왜 실제로는 쉽지 않을까? 왜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주변에는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 진정성의 개념 안에는 자신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또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게다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노력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경험과 삶,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시선으로, 즉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또 주도적으로 통제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게다가 우리는 타인의 기대 혹은 사회적인 기대나 잣대에 영향을 받거나 쉽게 휘둘린다. 모두가 한 명의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맞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또 때때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거나 혹은 의도적으로나 의도치 않게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할 때도 있다. 즉 자신의 진정성을 숨기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종전 후 오펜하이머의 행동에 따라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저자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초창기에 장교 군복을 차려 입은 오펜하이머에게 이지도어 라비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Take your uniform off ··· So, be yourself, only better(먼저 그 군복을 좀 벗어버려. ··· 너 자신이 돼야지. 더 나은 자신.) 여기에서 'be yourself'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라는 것을 의미하고, 'only better'는 좀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것은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모순'과 '인정'을 통해 탁월한 리더로 거듭나기까지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일 듯싶다. 리더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부딪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오펜하이머 역시 연인원 13만 명의 과학자들을 이끌며 절체절명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기키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는 것을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보여주지만 하나하나 짚어서 리더십의 덕목으로 상장한 저자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응원받을 만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뛰어난 리더도 결국 사람이기에 처음에는 미숙했던 사람 오펜하이머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일들이 리더십의 덕목과 연결되는 과정을 밝히고 이를 연구 결과로 묶어내는 저자의 리더십 강의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제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저자가 각 장의 제목으로 쓴 문구들은 잘 기억해 자신의 도약 발판으로 이용하는 독자들은 수많은 현인들의 오랜 지혜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충만한 느낌을 가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스스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 즉, 진정성의 힘과 긍정적인 영향력을 알게 된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더라도, 진정한 나다움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자기를 거짓 없이 탐구하고 진실되게 성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을 찾으라는 말인 “너 자신을 알라.”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은 리더가 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시지라는 것 역시 진심으로 이해할 것이다.(p.213) - 「결국 진정성이다」 중에서


저자 : 박종규


뉴욕시립 대학교(CUNY) 스테튼아일랜드 칼리지 경영학과 조교수.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리더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팀원과 팀장으로 일하면서 ‘리더십’이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리더십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알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다. 결국 대학교에서 리더십을 전공하고 지금은 리더십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리더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균관 대학교, 서울시립 대학교, LG, 포스텍, 롯데 등에서 리더십 관련 강의를 했고,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LG인화원에서 근무했다. 타워스왓슨과 딜로이트에서 HR과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고, 현재는 미국 로스웰앤드어소시에이츠의 파트너로도 일하고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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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스케치
김유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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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누드 스케치』는 우리에게는 여간해서 접하기 힘든 북한 문학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소설집이다. '탈북 작가' 김유경의 두번째 단편소설집이고, 네 번째 작품으로 알려졌다. '탈북 작가'란 명칭은 공식적 명칭은 아니지만 저자가 북한 출신으로 대한민국으로 와서 문학 활동을 계속한다는 의미에서 독자가 임의로 붙여본 것이다. 독자들이 그를 기억하기 쉽게 붙인 것으로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책의 표제어 '누드 스케치'는 북한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그림 기법임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은 실제 사람의 '누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실상을 가감없이 그린 화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는 북한의 문학 활동을 잘 알지 못한다.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 데다 그들의 문학은 사상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본주의적 사회의 단점을 형상화하는 작품만 허용된다는 사실을 교육을 통해 배워 알고 있는 터다. 오히려 그들이 '최고 존엄'이라고 하는 독재자 칭송의 문학이 활발하다고 알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그들의 문학의 한편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 책 『누드 스케치』에는 모두 8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출판사 측에서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북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죄를 묻다」, 「누드 스케치」, 「되찾은 밑천」, 「붉은 저녁노을」)과 탈북민을 주인공으로 남과 북 소재를 함께 다룬 작품들(「하얀 별똥별」, 「베이초센 마마」, 「올가미」, 「그 봄날의 인연」)이 혼재되어 있다고 분류한다. 독자들에게는 작중인물이나 활동 공간 등이 생소할 수 있지만 읽다 보면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흡입력을 지녔다. 어쩌면 북한 문학을 접하지 못하기에 희소성과 북한의 현실을 가늠하는 잣대로서의 책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들의 주제는 북한의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접하는,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연인, 가슴 아픈 모성애, 선택의 갈림길에 선 순간 마주하게 된 충격적인 진실 등으로서 거부감은 없다. 더욱이 저자 김유경은 대한민국 사회 생활에도 정착한 만큼 충분히 대한민국 소설 기법으로 풀어내는 이중고를 겪은 점을 감안한다면 작품 수준보다는 소설의 스토리 중심으로 읽는 것이 독자들이 흥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선 출판사 측 분류대로 게재 작품들 가운데 북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다룬 4편의 작품을 살펴본다. 작품은 4편이다. 게재 순으로 「붉은 저녁노을」이 가장 먼저다. 이 작품은 북한 최고 존엄 김정은이 정식으로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고모부 장성택 김정은에 의해 숙청되는 과정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용돌이 속 연인들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실었다는 것은 아마도 이 작품에 가장 애정이 있는 것을 아닐지 궁금하게 한다. 

「죄를 묻다」는 우리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이끌어가고 있는 '한류 문화'를 소재로 한다. 한류 문화 가운데서도 한국영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 방송 가운데 탈북자들이 출연해 현실을 고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방송에 자주 나온다고 모든 우리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특성상 방송에 부적절한 용어라거나 선정적, 폭력적 용어 사용이 불가능한 점에 비춰볼 때 글로 보는 북한의 실상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독자 개인적으로서도 방송을 통해 자주 접했던 이야기다. 한국영화는 북한 사회에서 엄격히 시청이나 유통이 금지되어 있을 것이다. 북한 특유의 페쇄적 사회의 산물이다. 한국영화 시청이나 유통은 국가안전보위부 담당 사건으로 취급한다. 북한에서는 줄여서 '보위부'로 통칭하는 모양이다. 보위부는 반체제사범 색출 및 관리, 출입국 관리, 간첩 및 불순 적대분자 색출활동, 해외정보 수집 및 공작, 주민사상 동향감시 등 체제 안전과 유지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영화 시청이나 유통을 보위부에서 담당한다는 것은 국가 질서를 문란케하는 정치범 수준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한국영화를 팔다가 적발된 사람은 최고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범죄로 다룬다고 하니 북한 사회의 조급성과 문화적 붕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도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나 인사들을 중범죄인으로 다룬 적이 있지만 지금은 법 조항에서 사라졌다. '불온서적' 적발 감시하던 제도도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를 좀 먹는 것으로 아직도 엄벌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누드 스케치」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기근의 시기(1990년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를 지내는 동안 배급도 보수도 주지 않는 직장인 극장에 나가는 화가가 주인공이다. 북한은 계획경제 사회다.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생산물을 받는 공산주의 사회다. 따라서 국민들이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등 의식주는 물론 의료, 교육까지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 제도다. 그러나 국가가 돈이 없으면 배급도 끊기고 먹을 게 굶주리게 된다. 국민이 굶주리면 다음 그 사회가 어디로 갈지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혁명으로 국가는 전복된다. 이런 과정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실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벌어진 것도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 로마노프가의 황제가 유럽에서 지양하던 농노 제도를 유지하고 일반 국민마저 농노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혁명(10월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런 러시아가 주변의 많은 나라를 소련(소비에트 연방)으로 묶어 공산주의 세를 확산시키고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에 맞섰으나 겨우 70년을 넘길 무렵 경제 체제 붕괴로 실패했다. 이때 푸틴이 정권을 잡고 들어서기 전 민주주의 소련을 이끌었던 유명한 서기장들이 고르바초프와 옐친이다. 그러나 혁명에 참여했던 국민들의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자 결국은 강력한 나라 회복을 내세운 푸틴에게 나라를 맡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드 스케치」는 파국으로 치닫는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의 가장 적나라한 치부를 보여준다. 난처한 상황에서 인근에 사는 화교가 찾아와 노모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의뢰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으로 거금을 번다. 중국에 사는 화교의 사촌이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주인공에게 북한의 현실이 담긴 그림을 요청한다. 북한의 현실을 그려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은 물론 초상화를 그리는 것도 불법인 북한에서 몇 차례 그림을 보내 큰돈을 벌지만, 그림이 미국으로 넘어가 화제가 된다. 이렇게 일이 확산되자 이미 통제 북한 사회의 흐름을 개인인 화가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개인적 능력은 집단의 통제하에서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는 집단 체제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저자 자신의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은 독자만의 느낌일까? 



「누드 스케치」는 이로써 선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북한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림이 개인의 불행과 예술혼에 엄청난 파괴력으로 부숴버린 폐쇄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장마당의 꽃제비들이 죽은 노파의 옷을 서로 차지하려고 벗기고 싸우는 풍경을 스케치한 그림은 헐벗고 굶주린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어떠한 감정이나 사상의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민화도가 소리치자 옷을 벗기던 꽃제비들이 뭔 상관이냐는 듯 흘겨보며 굳어 가는 사람의 몸에서 깡그리 옷을 벗겨서 달아났다. 서로 쥐어박으며 욕질하던 꽃제비들이 사라지자 민화도는 누워 있는 사람에게 조심히 다가섰다. 커다란 황철나무 밑에 서리 낀 누런 나뭇잎이며 풀들, 쓰레기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는데, 그 위에 웬 할머니가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올리고 누워 있었다. 이미 숨이 넘어간 듯 미처 감지 못한 눈은 휜자위만 보였다. 앙상하고 주름진 몸에 남은 것이라곤 누런 팬티 한 장뿐이었다. 무릎뼈가 불룩 솟은 다리며 온몸의 골격이 선명히 드러난 해골 같은 나체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태평하게 누워 있었다."(p.165)

「되찾은 밑천」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배급도 끊기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억척같이 가축을 받아서 장마당에 팔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한는 강인한 여인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군인들이 집에 처들어와 가축들과 돈주머니까지 빼앗아 간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이 여인은 집안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행히도 이 작품은 「올가미」와 함께 비교적 해피 엔딩을 보여준다. 「올가미」는 주인공 용범이 특수부대 훈련 교관으로 한참 잘나가던 때, 평양 무역국 간부로 외국을 들락거리던 삼촌이 한국 정보기관과 접촉했다는 간첩죄로 처형당하면서 용범의 신원이 급전직하 모든 것을 잃는다. 고향 평성에서 추방은 물론 강제 제대로 이어지면서 이혼으로까지 연결된다. 이혼 역시 평양 토박이고 꽤 힘 있는 처가 쪽에서 서둘러 부랴부랴 이혼을 시켰다. 자신들의 가족에게 미칠 화를 미리 차단하려는 차원이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었다. 손에 남은 것은 쌀 몇 킬로에 사품이 든 제대 배낭이 전부다. 초라한 몰골로 쓸쓸하게 부대도 떠나야 했던 용범은 검덕이란 행선지가 적힌 종이쪽지 한 장을 들고, 어제까지 부하였던 호성 겸 감시를 검덕으로 가야 했다. 용범은 검덕에 도착하기 전 감시를 따돌리고 중국 쪽 산속에 자리잡고 앞날을 모색한다. 그러나 용범을 호송하던 대원의 보고를 받은 보위부는 곧 추적에 나선다.



정찰총국 특수부대 현황을 손금 꿰듯 아는 용범의 탈북은 비상 사고였다. 부랴부랴 중국 공안에 도움을 요청하고 체포조를 파견했다. 신속히 국경 쪽 중국인들에게 용범의 사진을 배포하고 중국 돈 2만 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기 전 보위부는 회유책을 쓴다. 대한민국에 간첩으로 침투시키려는 것이다. 침투 전 검덕으로 가 가족들을 확인시켜 준다. 남파 후 딴 맘 먹지 못하게 미리 공작하는 술수다. '올가미'다. 그러나 용범은 일부러 남한에서 사고를 친 후 경찰에 자수한 후 전향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죽지 않고 끝나는 몇 안 되는 저자 김유경의 작품 중의 하나다. 

「베이초센 마마」 는 중국어를 모르는 독자에게 새로운 낱말 하나를 가르쳐 준다. '베이초센' 즉, 북한 출신, 탈북 여성이란 뜻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압록강은 건넌 탈북민 중에서 여성들은 중국에서 결혼을 하거나, 불법체류 상태에서 먹고살기 위해 중국인과 정착하기도 하기에 이런 용어가 태어난 게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 '나'는 소설 첫 문장에서 "나의 마마는 베이초센 출신이다."고 정체성을 드러낸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중국인과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는 '베이초센 마마'(북조선 엄마)이다. 나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호적이 없어서 학교에 갈 수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큰아버지의 호적에 올려서 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엄마가 언제 공안에 잡혀서 북한으로 끌려갈지 항상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우려하던 상황은 발생하고 북한으로 끌려간 엄마는 수용소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고 병을 얻은 후에야 풀려난다. 다시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아들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인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큰아버지는 자식이 없으니 어린 나를 데려다 키우겠다고 한다. 엄마와 다시는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나는 엄마와 함께 험난한 탈출을 시작한다. 남한으로 오기 위해서다.

마지막 작품 「하얀 별똥별」에서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가족들을 먹이고 자신은 먹지 못한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지경이 되도록 주인공인 '나'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라고 양복 입고 배급도 나오지 않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한다. 내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할 수도, 존경할 리도 없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죽고 먹을 것이 없자, 아버지가 갑자기 결단을 내린다.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다.



험난한 탈북과정에서 아버지를 의지하며 대한민국에 오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양복만 입고 다닌다. 엄마 제삿날에도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집에 늦게 돌아온 어느 날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내 밥상을 차려준다. 나는 아버지가 새장가 가려는가 하여 더 미워한다. 얼마 후 아주머니가 술 마시며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그때서야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다. 

이 8편의 작품들 속에서 탈북민들이 대부분 가족이 죽거나 헤어지고, 북에도 아직 가족이 남아 있다. 남겨진 가족이 당할 고초를 대한민국에 와서도 함께 겪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을 대한민국으로 오게 하는 방법은 없기도 하려니와 탈북마저도 녹록치 않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북한 사회가 어지러워 대규모 탈북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되는 바람에 가족 단위의 탈북도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탈북 비용'도 북한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천문학적 숫자다. 한 달 일해야 쌀값도 안 되는 현실에서 수천 만 원의 탈북 비용은 엄청난 제약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와 있는 탈북민의 숫자가 3만 명을 넘었다고 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그 숫자는 별로 늘어나지 않은 데서 탈북을 못하도록 강화하는 북한 당국의 감시가 엄격해졌음을 알 수 있다. 

소설가 이정(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은 「한국문학의 확장, 그리고 축복」이란 제목의 소설집의 〈추천사〉를 통해 "김유경은 한국문학의 축복이다. 남북 양쪽을 다 겪은 희소한 작가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미개척지로 남겨 두었던 한반도의 북쪽으로 한국 문학의 터전을 소설 미학적 관점에서 훌륭히 확장시킨 작가이기 때문이다."고 썼다. 김유경은 조선작가동맹원으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 중반 남한으로 삶의 터전을 바꿨다. 적대적 관계의 한편에서 '복무'하다가 다른 한편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건 피눈물을 품은 번민과 목숨을 건 지난한 여정, '상갓집 개만도 못한' 냉대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이정은 말한다. 그는 김유경이 마침내 당과 수령에 가없는 충성을 바친던 '문학 아닌 문학'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학의 본령과 만났다"고 평가했다. 


저자 : 김유경


북한에서 조선작가동맹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꾸준히 소설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장편소설 《청춘연가》(웅진지식하우스)로 한국 문단에 데뷔하여 대중과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장편소설 《인간 모독소》(카멜북스)는 프랑스 출판사(필립 피키)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되었다. 2023년에 내놓은 소설집 《푸른 낙엽》(푸른사상출판사)은 올해 초 ‘진중문고’에 선정되었으며, 일본 홋카이도 신문사와 번역 출간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 출간한 소설집 《누드 스케치》는 2024년 통일부 남북통합문화콘텐츠 창작 지원 공모에 선정되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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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신 - 신이 없다면 우린 행복할까?
앤서니 T. 크론먼 지음, 이재학 옮김 / 돌밭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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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3의 신』의 〈서문〉의 제목은 「벽장 속에 숨겨진 신」이다. 쉽지 않은 내용을 다룬 책이라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벽장 속에 숨겼다(숨겨졌다)는 말은 애매모호하다. 아마 독자가 비종교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신(神)'에 대한 개념은 종교적 범주에서 출발했기에 존재 유무를 독자가 추정한다면 논쟁만 낳을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신(神, God)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백과사전을 찾았다. 인터넷을 통해서다. 존재 유무가 불확실한 신의 의미에 대해 백과사전은 어떻게 풀이할까? 백과사전이 신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아무도 본 적도 없고, 따라서 형태가 묘사된 적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추상적 개념으로 막연히 붙여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사전적 풀이로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자연계를 지배하며, 인류에게 화복을 내린다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시대와 분야에 따라 그 개념과 성격이 다양하게 정의되었다고 한다. 신의 개념을 문자로 정의한 것은 불과 수천 년의 역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유사 이전에도 인간은 신을 믿었다고 배운 적이 있다. 그 신은 지역마다 다르고, 존재의 형식도 다르게 표현된다고 교과서에 씌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류는 문자가 없던 유사 이전에는 신에 대해 어떻게 표현했을까? 독자의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자면 아마 하늘을 가리키는 정도의 몸짓이나 손짓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쟁이 있어 왔다. 이를 긍정하는 측의 대표적인 것에는 다음의 세 증명을 든다. ① 신은 완전한 것인데, 만약 ‘존재’라고 하는 요소가 빠지면 신은 불완전하게 되므로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본체론적 증명. ② 자연계에 있는 것은 모두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므로 인과관계를 더듬어서 점차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후에는 제1원인으로서의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우주론적 증명. ③ 천체가 질서정연하게 운행하고 있는 것은 목적이나 의장을 창출한 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목적론적 증명 등이다. 또한 이들을 비판한 역사적 증명, 도덕적 증명, 체험적 증명 등도 있다고 두산백과사전에는 기술되어 있다. 비종교인인 독자로서는 충분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로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마리를 잡은 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의 저자 앤서니 T. 크론먼(Anthony T. Kronman)은 윌리엄스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로 계약, 파산, 법률학, 사회이론과 ‘지도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에 기여하고 있다. 예일 대학교 이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저서로 『막스 베버의 법률사회학』(공저), 『길잃은 변호사』, 『예일 법과대학사』, 『계약법의 경제학』(공저) 등이 있다. 대학과 저서를 보니 법학자이고 법학 교수 등을 지낸, 종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분인 것 같다. 저자는 왜 종교와 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책을 썼을까? 

이유가 책의 〈서문〉에 적혀 있다. 저자는 신앙심이 깊은 종교인이나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이나 모두 어딘가 너무 넘치거나 조금 부족하다 싶다고 느낀 때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한편으론 광신자라 외면하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는 일에 치여 그런 문제를 곰곰이 따져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버텨내는 일이 더 버겁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열두세 살 무렵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따르면 자신이 가진 우주의 처음은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계속 존재해왔는가? 우주는 소멸되는가? 인간은 광대한 사물의 질서 속에 어디쯤 서 있는가?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에 비추어 인간의 삶에 어떤 지속적인 의미가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들을 그때부터 끊임없이 해왔다. 

당시 어머니와의 대화 상황을 서술한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난 다음 마티니 한잔을 손에 들고 어머니는 집 현관의 계단에 서서 한 말을 전한다. "우리는 오직 잠시 살아갈 뿐이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성취는 이 생애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신의 도움 없이, 그리고 목적이나 계획이 없는 세상의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한 채"라는 내용이다. 그때 저자의 어머니는 실존철학을 신봉한다고 선언했다고도 한다.



이후 저자의 어머니는는 96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그 철학을 꿋꿋하게 지켜나갔다. 저자는 어머니와 나누었던 그런 대화에 넋을 잃을 정도로 집중했다. 치자나무 꽃이 만개했던 그날 밤도 저자는 결코 잊지 않았다. 아마 그런 기억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그렇게 수십 년 간 지속해온 독서와 사색의 결과물로 자신만의 독특한 종교관과 인생관을 정리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이 책에 앞서 2016년 10월 『다시 태어난 이교도의 고백』이란 책을 출간했다. 비록 아브라함의 종교가 가리키는 창조주 유일신은 아니지만 영원불멸의 존재인 세계 그 자체를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자신만의 신학을 기술한 내용이었다고 밝힌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는 의미의 다시 태어난(Born-Agai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책 『제3의 신』은 그 후속편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작은 오늘 날 우리의 사고를 형성해온 고대의 위대한 철학 체계들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자신이 현재의 세계관을 갖게 됐는지 하향식으로 설명한다. 철학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반면 이 책 『제3의 신』은 인간의 경험, 저자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어떻게 자신의 인생관과 종교관까지 나아갔는지 차근차근 비교적 쉽게 설명해 간다. 전작의 해설서 또는 입문서와 같은 책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무한한 시공간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출발점에서 『제3의 신』을 시작한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여느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한한 시간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지점에서 동물과 달라진다. 그런 절대 불변의 영원성을 인지한다는 생각이 곧 신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은 순간을 사는 동물이면서도 영원성을 관장하는 신의 세계에도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이 어정쩡함을 인간의 존재 구속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두 세계의 간극에서 깊은 절망과 삶의 환희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장이다.



저자의 관점에 따른다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이 이성을 발휘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주장은 오류다. 그렇다고 지상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 없지만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천국에서 누구나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아브라함의 종교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한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인간은 그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간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질서, 사회적 이상향, 심지어 완벽한 사랑을 찾아가는 단계를 살아갈 뿐, 그 최종적인 단계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상과 천상의 도시 양쪽 모두에 속하는 이중적 시민권을 가진 인간의 삶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른바 '제3의 신'의 개념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저자가 사춘기 시절의 자의식을 폄하하고, 설익은 자신만의 철학을 끝까지 천착한 노학자가 이끌어낸 사색의 결과물이라는 종교인들의 반대와 저항에 부닥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성을 대단히 중시하지만 만능으로 여기지 않고, 영원성과 영성적인 태도를 중시하지만 인간됨의 포기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원하는 소중한 목표에 끝내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좌절에 시달려도 신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 나가는 길에 삶의 환희가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비종교인인 독자가 읽기에는 수용하고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지만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나 무슬림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일 것 같다. 

나는, 이 공동체와 나라는, 아니 세계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고 그런 사랑과 현대 과학의 학문적 노력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고 싶은가? 우리는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할지 망설이며, 사회 정의의 구현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한가? 나는 무엇을 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가? 저자의 이 같은 질문은 이 책의 주제와 연결된다. 저자의 논리에 따른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신도 아니고, 무신론자의 믿음처럼 '신은 없다'도 아니다. 그 경계에 선 저자의 신은 이렇게 '벽장 속에 숨겨져 있는, 제3의 신'이 성립을 가져온다. '저자만의 신'이라고 바꿔 말해도 이상할 게 없다. 대학 공부를 앞두고 있거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유할 만한 소중한 책이다. 저자나 출판사 측은 적어도 세 번은 읽어보길 권한다. 본문과 저자 주를 읽을 때마다 무언가 조금씩 더 깨닫고 공감하게 된다는 사실은 먼저 읽은 독자도 느낀다. 사실 어렵다. 그러나 가치 있는 책이다. 어쩌면 인생관이나 세계관, 가치관 등 세상을 살아갈 사람이 가정 먼저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본주의자에게 찾아온 신」, 2장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 3장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미몽」, 4장 「삶의 환희」등이다. 제목으로만 깊이 생각하고, 유추하면 이 책의 절반쯤 읽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저자 자신은 부모로부터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는 결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배웠다고 말한다. 성공을 무조건 떠받드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저자의 어머니는 이성을 기초로 해 수립된 견해들만이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저자가 믿기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숙고하기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범죄를 저지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또 신앙을 근거로 했다든가, 혹은 남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떤 말도 인정하지 말라고 어린 저자에게 주지시켰다 밝힌다. 어머니는 합리주의자였고, 또한 철학자였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의 종교관은 어렸을(12~13세) 때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철학자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라는 입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과도 화합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린 저자에게 "오직 잠시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을 잠시 인용해본다. "우리는 죽는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성취는 이 생애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도움 없이, 그리고 목적이나 계획 없는 세상의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며, 그마저 덧없다고 저자의 어머니는 말했다. 그런 어머니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고, 합리주의자, 실존주의자였다는 것. 저자는 이를 물려받아 대답을 스스로 찾아가려는 노력 덕분에 카뮈와 사르트르에 이르렀다. 어려운 책을 읽어가면서 실존주의에 심취하기는커녕 서서히 실존주의는 무너져갔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종교인과 무신론자의 경계에서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신론이 번성하는 최근의 환경에서 무신론자는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가 진실로 영원한 무엇과 우리를 이어주는 그 연결고리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엔 그 같은 연결성이 강조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 역사적으로 오랜 투쟁 끝에 우리는 이제 이를 더 분명하게 본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무엇이 우리 자신들의 삶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저자는 무신론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무신론자가 조롱하는 영원에의 갈망이 우리 인간성에 가해지는 피치 못할 위협이 아니라 그 구성 요소의 하나임을, 오류가 아니라 그 특징의 하나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한 내용이 무신론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들의 이런 반종교적 독단의 가장 정교한 주장을 물리치려면 무신론자의 손아귀에서 인본주의를 구해내야 한다. 신을 부끄럼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유물로 인본주의를 되돌려주어야만 한다. 영원성에의 갈망을 인간 조건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그 갈망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곳에 속한다.

2장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은 '영원성'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과학의 특징은 우리가 시간을 두고 더 가까이 다가가긴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시간을 다 쓰고도 결코 도달하지 못할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모든 추구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영원성이라는 단어에 있는, '초시간성'과 '무한한 시간'이라는 두 가지 의미와 개념이 모두 필요하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깊은 좌절이라는 인간 특유의 경험과 그럼에도 조금씩 발전하면서 점점 더 커져가는 능력이 주는 환희를 설명하려면 우리에게는 그런 개념이 필요하다. 좌절이 수반되는 그런 환희는 더 많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만큼이나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서 얻는 유일한 보상이라고 시간을 풀어헤친다. 현대과학은 인간 조건의 한계와 전망을 무엇보다 더 잘 나타내는 일반적 현상의 특별하고 명쾌한 사례일 뿐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3장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미몽」은 고대 그리스와 예루살렘에서의 학문과 종교가 가진 헛점을 짚어낸다. 인간만이 우리의 삶에 끝이 있음을 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또한 끝없는 시간의 존재를 안다. 무한한 시간이라는 개념은 어떤 제한된 시간 안에 달성되지 않는 목표를 상상하게 해준다. 우리가 창조주에 비해 얼마나 결함이 많은 존재인지 알게 되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누리는 상태 이상의 더 나은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신과 같아지기를, 부패와 죽음을 넘어, 우리의 모든 고통의 근원이 되는 시간 그 자체를 초월해 신의 왕국에서 신과 함께 하길 갈망한다. 저자의 논리에 경의를 표할 만큼 이 저서는 독자들의 경이와 경탄을 불러낸다. 이 책의 가치가 영원성 위에 놓일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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