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1
조세래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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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옛날 중국에서 전해져 온 하나의 '놀이'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바둑을 두기 위해서는 바둑판과 바둑돌(바둑알)만 있으면 된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다. 바둑이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바둑돌은 흑과 백이 있으며,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그어 교차점에 흑부터 한 수 한 수 벌갈아 둔다. 가장 기본적인 게임의 법칙은 흑부터 한 수씩 번갈아 둔다는 것이다. 흑 혹은 백이 직선으로 뻗어 있으면 '이어진' 것이고, 대각선으로 뻗어 있으면 이어지지 않은 형태다. 서로 번갈아 두기 때문에 항상 선수(先手)가 유리하다. 바둑은 살아남은 돌들로 지은 집의 수를 합쳐 승부를 가른다. 이 때문에 '덤'을 후수인 백에게 미리 준다. '덤 4집 반' 덤 5집반' '덤 6집반'이란 말을 들어본 사람이면 왜 백에게 미리 집을 주는지 알 것이다. 반상 위에는 '반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집'은 비기는 경우를 없애기 위해 마련된 가상의 숫자일 뿐이다. 가령 흑백 집의 수를 가려 흑이 5집의 차이로 이겼으면 '덤 4집반'의 경우 반집을 이긴 셈이 된다. 덤 5집반이라면 반집을 진 것으로 계산해서 승패를 가린다. 덤 제도는 언제 처음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바둑이 발전하면서 선수의 중요성과 유리함을 감안해서 계속 1집씩 올렸다.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6집반, 중국에서는 7집반의 덤 제도가 있다.

바둑을 전쟁이나 인생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기 위해서 집을 많이 차지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집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상대의 집을 줄이거나 내 집을 늘려야 한다. 이때 서로 죽이고 살리는 수법이 전쟁처럼 변화무쌍하다는 점에서 전쟁에 사용하는 용어들이 수없이 많다. 또 전략도 따른다. 때로는 몇 개의 돌을 희생해가며 요충지를 확보해 집을 늘리거나 상대의 돌을 죽이기도 한다. 게임에서 승부는 불가피하다.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서로 비기는 작전을 쓸 수도 없다. 아예 비기는 일을 차단하기 위해 '반집' 제도를 두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이기거나 삶의 경쟁에서 목숨 걸고 싸우듯이 바둑판 위의 싸움도 그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바둑판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이 책 『승부』는 바둑두는 기사(棋士)들의 이야기다. 기사는 바둑을 두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생업으로 바둑을 두는 기사를 '전문기사' 또는 '프로기사'라고 한다. 놀이가 생업이 될 수 있나?라고 의문을 가진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없을 것이다. 동양 특히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중국에서 유래한 바둑을 오래동안 두어 왔기 때문에 대단한 실력을 갖춘 바둑의 천재들이 많다. 그들은 엄격한 바둑 수업을 거쳐 혹독한 훈련과 노력으로 프로기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는지 바둑 애호가들은 잘 알 것이다. 요즘의 바둑기사는 전문직으로 고액연봉자 못지 않은 돈을 벌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기사들이 다 그럴 수는 없지만. 대회에서 상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부 기사들은 기원을 개업해 후진 양성 겸 생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만큼 바둑을 좋아하고, 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바둑 동호인이 5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어쩌면 축구 다음으로 많은 팬을 갖고 있지 않나 싶다. 독자는 동네 아저씨들이 바둑 두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다가 겨우 바둑의 초급 수준인 10급 정도이니, 굳이 군대 계급으로 치면 '기졸(棋卒)'쯤 될 것 같다. 그마저도 그 정도라고 하는 게 정식으로 호칭을 받은 것이 아니라서 너무 자신을 내세운 게 아닌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훈련도 안 거친 게 어떻게 계급을 부치려나 욕이나 안 먹을지...

바둑의 세상은 놀이로 하기에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고, 요즘 대부분의 게임이 '승자독식' 구조라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부로 변질되어 지나치게 승리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바둑은 일종의 도(道)라고 생각하는 정통 바둑인들에게는 기리(棋理)에 따르지 않고 변칙과 술수로만 이기려는 사람들이 마땅치 않을 터다. 그러나 게임엔 이겨야 한다는 것은 전쟁에서 하는 말이다. 전쟁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불가피한 전쟁에 뛰어들었다면 당연히 이기고 난 다음에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진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이는 세상 탓을 할 일이지, 사람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항변도 설득력은 있다.

 


 

이 소설은 진실한 승부가 사라진 세상에 진정한 ‘승부’를 열망케 하는 소설이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전쟁에서 얻을 것(전리품)을 미리 앞세우지 않고 '승부' 자체를 겨루는 일을 극화한 것이다. 소설의 모델이 되는 사람이 있는지는 저자 조세래만 알 일이다. 혹시 바둑에 깊이 관여한 프로 기사들 사이에는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바둑을 놀이로 즐기는 애호가들로서는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다. 독자의 경우 옛날 바둑에 대해서는 "조선말이나 일제강점기 시절, 바둑 잘 두는 사람이 천하를 주유하며 바둑을 두었지만 적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을 떠돌던 그가 다시 세상이 안정돼 국내 프로 기사와 바둑을 두어 형편 없이 졌다던데..."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들었다. 정작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과도 다른, 저자가 창조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온전하고 진실한 승부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시대를 비판하는 속뜻을 담은 진정한 승부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질문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승부의 참다운 모습은 외면당한 채 오직 이기는 것만이 승부의 절대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저자는 바둑이라는 웅장한 투혼의 장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우리나라가 낳은 4대 기성(棋聖) '여목 이상순'과 그의 제자 '설숙', '추평사', 그리고 추평사의 아들 '추동삼', 이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조선의 자존심을 걸고 대륙과 섬을 넘나들며 펼치는 파란만장한 승부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새는 새장을 벗어나야 님을 찾고, 고기는 통발을 물리친 후에야 대해로 나아가며, 승부사는 승부를 떠나야 진정한 승부사가 된다”는 〈작가의 말〉은 『승부』 전편에 장엄하게 흐르는 기상이다. 바둑으로 펼쳐진 뜨거운 삶, 삶으로 은유된 위대한 바둑이 실로 『승부』의 서사인 것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을 쓰게 된 취지를 밝히고 있다. "승부(勝負)는 승과 패를 나누는 것으로, 사회가 빈곤하다거나 인간이 외로울 때 더욱 빈번해진다. 그런 것이니만큼 투철하고 용맹스러우며 때로는 안타깝고 슬픈 것이기도 하다. (중략) 언제부턴가 시중에는 승부란 단어가 무수히 나돌고 있다. 세상이 다각도로 변모하면서 매사가 승부 혹은 승부 정신으로 연관되어 있어 흡사 승부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1권, p.5)

 

 

〈작가의 말〉에 따르면 승부는 인간에게 숙명적인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승부를 만난다. 남을 이기기 위한 승부, 자신을 지켜야 하는 승부, 정도에 벗어난 승부, 경우에 따라선 피치 못할 승부, 자신을 버려야 하는 승부 등 승부는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이렇듯 승부는 일상사가 되어버렸는데 아직까지 승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고 그 뜻조차 변질되고 오도되어 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승부의 참다운 모습은 외면당한 채 오직 이기는 것만이 승부의 절대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진정한 승부사는 찾아볼 수 없고 사이비 승부사만이 득실거리는 것도 승부의 도(道)를 망각한 채 욕(慾)을 다스리지 못하고 교만과 독선에 빠진 극단적 개인주의의 팽배 때문일 것이다. 한 나라를 경영하는 자들이 승부사로서의 자세가 정직하지 못하면 그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사회 지도층이란 자들이 올바른 승부 정신은 없고 간교하고 비열한 승부에만 물들어 있다면 세상 꼴이 또한 어떻게 되겠는가. 혹세무민하는 자도 승부사가 아니요, 잡사(雜事)에 연연하는 자도 승부사일 수 없다.

승부사는 맑고 정직해야 하며 강직하고 깊어야 한다. 그것이 승부가 끝나는 날까지 지켜야 할 승부사로서의 도리다. 저자의 승부관과 세상관, 인간관이 모두 드러나는 말들이 〈작가의 말〉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모두 이 소설에 반영되었을 것이고, 이런 그의 인생관은 이 소설이 주는 흥미만큼 풍요롭고 간명하다.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느끼는 점이 있다면 저자는 혼신의 힘을 다한 집필의 보람이 클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이 소설은 승부로 전 생애를 불사른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가 이긴 자의 기록이듯 승부 역시 이긴 자의 축제인지 모른다. 저자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승부사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독자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남긴 숭고한 승부 정신을 헛되이 하지 말고 후세 사람들이 본받아 앞날의 지표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간은 결국 승부에 땅에서 태어나 승부의 저자거리를 헤매다가 승부의 강을 건너 비로소 승부가 망각된 피안(彼岸)의 세계로 간다."는 저자의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 작품 『승부』는 1, 2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의 이야기는 박민수 화백과 정명운 국수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국수란 명칭은 우리나라에서 바둑을 제일 잘 두는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박 화백은 남종화 계열의 화가로 거장의 반열 문턱에 자리 잡고 있다. 화단 바둑계에서 일인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런 박 화백에게 정 국수의 며느리인 김 여사가 화단을 통해 정 국수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박 화백은 고민 끝에 정 국수를 만나고, 정 국수와의 만남에서 벽송(碧松·벽송이 제작한 바둑판)을 전달받는다. 추동삼이란 이름과 함께. 망설임 끝에 정 국수의 사망을 뒤로 하고 박 화백은 추동삼을 추적해 들어간다. 바둑은 게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 사용하면 도박으로 오용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승리에 집착하는 이유다. 당연히 정통 바둑계는 이를 엄격히 구별한다. 돈 내기 등 일체의 '내기 바둑'을 금지한다. 그러나 공식 바둑계가 아닌 사사로이 자기들끼리 모여 바둑 두며 하는 내기나 어떤 전문 기사가 맞붙을 경우 자기들끼리 돈을 낸다든지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터다.

그러나 바둑을 통해 내기를 하는 일은 법에서 '도박'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돈을 걸거나 내기를 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두세 개의 세계바둑대회는 돈 내기가 아닌 가장 바둑을 잘 둔 기사에게 주는 상금이고 공인된 대회다. 이런 국제 규모의 대회에서 활동하는 전문 기사들은 각국이 인정한 전문기사, 프로기사들이다. 상금액수가 큰 것은 그만큼 협찬사들이 돈을 많이 내주기 때문이다. 바둑팬이 많은 탓에 광고 효과가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다. 1권에선 박 화백이 추동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반 기원 분위기와 또 거기서 자기들끼리 내기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일부 기원에서 하는 일이지 전체 기원의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저자 조세래는 한국 바둑의 근원을 조선 말기로까지 끌고 간다. 이때의 바둑 고수 여목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여목은 원세개와의 인연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그 땅에 짙은 족적을 남기고, 이후 정통성을 상징한 벽송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여목의 제자 설숙과 추평사로 이어지며, 이 둘의 서사는 극렬한 대비를 이룬다.

 


 

여목의 적통을 이은 설숙과 달리 추평사는 모종의 사건으로 떠돌이 내기꾼이 되어 고단한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끝에 일본 내기바둑계 최고 승부사로 꼽히는 시라이시와 생명을 건 승부를 펼친다. 그리고 이렇게 1권의 이야기가 끝난다. 이처럼 이 소설 『승부』는 박 화백을 중심으로 하여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여목으로부터 뻗어간 그 제자들의 승부를 다룬다. 승부의 서사는 치열하고 처절하다. 특히 백돌과 흑돌처럼 배열된 설숙과 추평사의 삶의 대비에서 이러한 서사의 색채는 더욱 도드라진다.

“뜨겁게 타오르다 아름답게 스러져간” 바둑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승부』의 서사는 바둑 애호가들에게는 매혹 그 자체다. 등장인물들의 투혼이 사뭇 애절하고 지독히 고통스러우며 지나치게 아름답다. 한마디로, 일단 읽기 시작하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탁월한 소설이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힘, 소설의 숭고한 목적이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된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표현력도 매우 뛰어나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는 듯 생생하고 한 편의 영화 장면을 설명하든 정교하다. 어쩌면 영화계에 몸담은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저자는 바둑이라는 대결이 갖는 옹골찬 승부의 세계에 천착해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스톤〉을 감독했다고 한다. 저자는 바둑이야말로 삶의 희로애락을 가장 극적으로 담고 있는 스포츠라고 여기는 것 같다. 바둑의 본질은 승부이고 승부의 본질은 인간이라고. 그래서 바둑과 인간의 삶을 등치한 것이다. 소설 『승부』는 삶이라는 승부의 장에서 우리들 각자가 어떤 승부의 모습을 끌어안을 것인지를 숙고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 숙고의 힘이 독자들 각자의 ‘오늘 이후’를 보다 생명력 있는 승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장면에 일본 내기바둑 사상 최고의 승부사로 손꼽히는 시라이시와 추평사와의 대국 장면이 펼쳐진다. 공식 바둑 대결이 아닌 승부를 건 도박 행위지만 바둑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극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표현력을 가리키는 좋은 문장으로 보인다. "웅크리고 있던 평사의 상체가 서서히 펴진다. 평사의 눈이 반상을 비스듬히 쏘아본다. 순간, 그 찌든 눈에서 살기 같은 것이 쏟아진다. 얼굴은 간데없고 눈만 살아 있는 기이한 형상이다."(p.40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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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도 늙지 않기를 권하다 - 죽기 전까지 몸과 정신의 활력을 유지하는 법
마리아네 코흐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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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올해 밝힌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2.7세(남자 79.9세, 여자 85.6세)로 1970년 62.3세(남자 58.7세, 여자 65.8세)에 비해 20년이나 늘었다. 얼마 전에는 〈100세 시대〉를 열었다며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에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열풍이 불기도 했다. 대중가요계도 트로트 바람과 함께 수십 년 전 유행했던 노래 〈100세 인생〉이라는 노래(가수 이애란)가 갑자기 소환돼 수년 동안 국민 최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이젠 말 그대로 〈100세 시대〉를 사는 것 같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에 의한 전 세계에 퍼진 공포에 노래의 유행은 쏘옥 들어갔지만... 수백만, 수천만의 희생자를 냈다는 보도를 뒤로 하고 코로나는 이제 조금 고개를 숙인 듯하다. 감염병 공포가 아직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많은 부분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일상은 아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옛 선조들의 말처럼 마스크와 백신으로 버티며 코로나 정국을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은 어쩌면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많은 후유증이 심각하게 남아 있지만 코로나도 처음 발발했을 때처럼 극한의 공포감은 주지 못할 정도로 됐다. 일상도 가급적 대면 접촉을 피하는 선에서부터 차츰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간 수명에 대한 관심과 호응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고령, 즉 '100세의 삶'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깨달아서일까? 유행가는 속성상 일시적일지라도 인간 수명에 대한 열풍과 희망은 되살아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독자에게도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이 책 『나이 들어도 늙지 않기를 권하다』는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최근 인간 수명이 늘었다는 실감은 굳이 통계청 자료를 빌지 않더라도 실제로 기대수명을 훨씬 뛰어넘은 노인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마리아네 코흐가 「죽기 전까지 몸과 정신의 활력을 유지하는 법」이라는 부제에서 암시하듯 수명이 길어진다는 건 우리가 보내야 하는 노년 역시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는 물론 개인 차원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미 선진 외국에서 특히 장수 국가로 세계적 이름을 떨친 일본은 고령화 사회, 초고령 사회가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서 시작되었다. 지금 일본이 안고 있는 고령화로 인한 사회 문제를 생각해보면 장수가 마냥 축복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저자는 나이 듦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은 곧 젊음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젊어지기 위해 아들의 피를 수혈받아 화제가 된 미국 백만장자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안티에이징 효과가 있다는 물질이 발견될 때마다 세상은 호들갑스럽게 노화의 종말을 언급하지만, 장밋빛 가능성은 아직 동물실험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인간은 노화를 피할 수 없다. 실험실 밖에서 사는 평범한 우리가, 지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최선이란 노화의 시작을 최대한 ‘늦추는’ 것뿐이다.

기대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기대수명만큼 늘지 않는다고 한다. 1988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70.65세였는데 2020년 기준 기대수명은 83.5세로 약 13살이나 늘었다. 기대수명이 느는 만큼,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나이 즉 건강수명은 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계가 증명해준다. 건강수명을 파악하기 시작한 2012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87세, 건강수명은 65.70세였다. 그러나 2020년 기대수명은 83.50세, 건강수명은 66.30세이다. 기대수명이 약 3세 느는 동안 건강수명은 0.6세밖에 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은 더 일찍 사망한다. 가장 큰 문제는 모아 둔 돈이 없는 저소득층 노인들이라는 사실이다. 건강수명을 다시 소득계층별로 구분해 보면 결과는 더 참혹하다. 소득수준이 상위 20%에 속하는 소득 5분위 노인의 경우 건강수명이 72.2세에 달한다. 그러나 반대로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 노인의 건강수명은 60.9세에 불과하다. 2분위 노인(하위 40%)도 65.3세이다. 아프고 병든 노인에게 좋은 일자리가 생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통계청 수치로만 보면 소득 1분위 노인의 경우 이미 몸이 아프고 병들기 시작한 후에 연금을 받기 시작해 고작 10년을 받다가 사망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의 법정 은퇴연령은 만 60세이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에서 은퇴하는 나이는 50세에 미치지 못한다. 원래 직장에서 퇴사하게 되면 소득이 끊기거나 더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이동할 확률이 높아진다. 공적연금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노인이 은퇴 이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통계뿐만 아니라 세계의 인구 통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19년 WHO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수명(83.3세)과 건강 수명(73.1세) 사이에는 약 10년의 차이가 있다. 절대 짧지 않은 이 수치는, 신체나 정신의 질병으로 인해 원활한 일상생활이 어려워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기간을 의미한다. 오래 사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일까? 시대가 변했다. 장수는 이미 도래한 현실이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이 10년의 기간을 줄이는 것, 다시 말해 노화의 시작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깜빡하는 뇌와 약해진 다리, 무기력한 마음으로 수십 년을 버틸 것인가, 아니면 노화의 기간을 단축해 노년을 진정한 자유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매일의 실천으로 건강한 노년을 가능하게 만드는 비밀(?)을 담은 책이 『나이 들어도 늙지 않기를 권하다』이다. 저자 마리아네 코흐는 풍부한 임상 경험을 지닌 의학박사이자 92세란 나이에도 여전히 활력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노화를 질병이나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학 지식과 자신의 삶에서 집약한 노화 지연의 비밀은 절대 복잡하지 않다. 높은 자존감, 건강한 식생활, 규칙적인 운동, 끝없는 배움에 답이 있다.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건강서 베스트셀러 저자로서의 필력이 더해진 이 책은 독일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17만 부 넘게 판매되었다.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은 시니어는 물론 건강한 노년기를 앞서 준비하고자 하는 중년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20년 넘게 라디오 건강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매주 독일 사람들과 만나는 마리아네 코흐 박사는 나이 들어도 몸과 정신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강조하는 노화 지연의 핵심은 높은 자존감, 건강한 식생활, 규칙적인 운동, 끝없는 배움이다. 저자가 높은 자존감을 첫 번째로 꼽는 데는 젊은 시절 그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20~30대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얼굴이 알려진 그였기에 나이 듦에 따라 달라지는 겉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40대가 된 저자는 오랜 꿈이었던 의사가 되기 위해 다시 의대로 돌아가 국가고시를 통과한 뒤 면허를 취득했고, 정부 보건 규정의 변화로 만 68세 이상 의사의 활동이 제한되자 책과 방송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최신 건강 정보를 알리고 있다. 중년 이후 그의 행보는, 배움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끝없는 배움이 나이 들어서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길임을 보여준다.

 

 

높은 자존감과 끝없는 배움이 정신 건강과 직결된다면, 건강한 식생활과 규칙적인 운동은 신체 건강과 직결되는 요소다. 식사와 운동의 중요성은 모든 건강서에서 반복되는 내용이지만 마리아네 코흐 박사는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노년에 쉽게 취약해질 수 있는 신체 기관과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과 연결 지어 어떤 영양소와 운동이 필요한지 상세히 설명한다. 60세 이상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 목록과 백신 접종 주기 등의 정보도 수록했다. 노년을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이해하는 저자의 조언을 담은 이 책은, 친절하고 노련한 주치의를 곁에 두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의 수명은 다른 생물, 특히 동물들에 비하면 수명이 꽤 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수명이 길어진다고 행복 기간이 정비례해 늘지 않는다. 의학의 발전으로 고령화 사회로 변해가면서 이미 사회 문제화 돼 있다. 대체적으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이 고민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선진국 국민들은 은퇴 후 이른바 '노후 대책'을 개인에 맡겨서는 적절한 대책이 안 된다고 판단, 은퇴 후 고령의 노인들에 대한 다양한 복지 대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선진국에 끼지 못하고 개발도상국 상황은 벗어난 상태의 국가들은 노후 대책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미흡하다. 급속도로 성장한 나라들이 대부분이어서 노령화 인구 대책을 제대로 마련할 틈도 없었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한 충분한 재원도 없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예다. 당장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데도 대책은 없다. 고령화 기준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린다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미봉책으로는 급한 효과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대책'이 아니라 문제만 더 키우는 졸속대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들 나라의 정부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능력을 축적해올 시간도, 재원도 충분하지 못했다. 정부에서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늘어난 수명만큼의 의무도 오롯이 자신이 지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병원에 누워서 지낸다면 수십 년을 더 살아도 큰 의미가 없을 터이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노인들은 더 이상 예전의 늙은이가 아니다」, 2장 「우리는 도대체 왜 늙을까」, 3장 「노화를 늦추는 첫 번째 조건, 높은 자존감」, 4장 「노화를 늦추는 두 번째 조건, 건강한 식생활」, 5장 「노화를 늦추는 세 번째 조건, 규칙적인 운동」, 6장 「노화를 늦추는 네 번째 조건, 끝없는 배움」, 7장 「가장 심각한 노인성 질환, 외로움」, 8장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등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당시 92세로 작가이자 기자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를 꿈꿨으나 영화의 제의해 주연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꿈꾸던 의사로 뒤늦게 되돌아갔다. 지금은 작가 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배우 의학 지식과 의사로서의 경험과 사회 생활 등을 토대로 노년의 건강 유지법을 담아낸 책이다. 각 장에 들어 있는 핵심어만으로도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수 있게 매우 간결하게 전할 말을 전하는 기자의 경험에서 쌓아온 글쓰기 능력인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건강(신체, 정신, 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숫자로 말하는 '100세'는 아무 의미가 없는 통계 수치일 뿐이라는 것.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 숫자마저도 허공에 떠 있는 실체 없고, 의미 없는 신기루일 뿐이다는 말이다.

저자는 책서 "머릿속에서 시작되는 젊음의 비결"에 관한 인터뷰 형식의 글을 게재했다.(p.189~195) 이 글에서 저자는 "(죽음은) 두렵지 않다. 물론 언젠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느낍니다. 하지만 고령의 명배우인 앤서니 홉킨스는 '우리가 언젠가 죽을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든다'라고 말했어요.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유한성이 비로소 삶의 가치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노년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되도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이어 저자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머릿속에서 시작됩니다. 자기 나이를 애써 잊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면서 '난 더 이상 못 해' '더 이상 할 필요는 없잖아' '해서 뭐 해'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같은 생각들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태블릿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기에는 너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 적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지는 마세요. (중략) 하지만 배워두면 이메일로 순주들의 최근 사진들을 볼 수 있고 필요한 앱들을 다운 받아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 모든 행위는 회색 뇌세포(졸고 있는 뇌세포)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저자 : 마리아네 코흐(Dr. Med. Marianne Koch)

 

어릴 적부터 의사를 꿈꿔 의대에 진학했으나 영화 출연 제안을 받게 되면서 인생의 경로가 바뀌었다. 독일 영화계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해 ‘황야의 무법자’ 같은 유수의 작품에 주연으로 참여했고, 약 70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마흔이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배우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오랜 꿈인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갔다.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했으나 국가고시를 통과하며 배움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음을 증명해냈다. 그 후 내과 의사로 환자와의 대화를 중시하는 진료를 오랫동안 해왔다.

92세인 지금도 작가이자 의학 전문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바이에른 2 방송국에서 매주 라디오 방송 ‘건강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대중에게 올바른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수상했고, 2019년에는 독일 연방 의사 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상인 파라셀수스 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신이 소개하는 건강 상식을 매일매일 실천에 옮기고 있는 마리아네 코흐 박사는, 우리 스스로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몸소 보여주는 최고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저서로는 『신체지능Korperintelligenz』, 『우리의 놀라운 면역체계Unser erstaunliches Immunsystem』 등이 있다.

 

역자 : 서유리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다 얼떨결에 출판 번역에 발을 들인 후 그 오묘한 매력에 빠져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내가 원하는 남자를 만나는 법』, 『공간의 심리학』,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내 남자 친구의 전 여자 친구』, 『사라진 소녀들』, 『상어의 도시』, 『카라바조의 비밀』, 『독일인의 사랑』, 『월요일의 남자』, 『언니, 부탁해』, 『관찰자』, 『타인은 지옥이다』, 『당신의 완벽한 1년』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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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땅 캄보디아
전은경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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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꿈의 땅 캄보디아』를 접할 때 표제어에 있는 '꿈의 땅'이라 문구에 눈이 먼저 갔다. '캄보디아'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앙코르와트이지만, 정치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킬링필드(Killing Fields)'란 단어다. 오늘날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대표적 빈민국 중의 하나다. 앙코르와트(사원)를 보면 이렇게 웅장하고 찬란한 유적을 가질 정도로 강력한 나라가 어떻게 20세기에 자국민을 200만 명이나 학살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앙코르와트는 사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왕궁이라고 한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앙코르 톰이란 도시에서 남쪽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12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앙코르(Angkor)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Wat)는 '사원'을 뜻한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과 합일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독자는 아직 이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세계여행 책이나 안내 영상에 캄보디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유적지라 세계인에게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강인한 민족성과 종교 신앙이 합쳐져 이전에는 꽤 강대국으로 불릴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이 나라에 역사상 가장 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 '킬링 필드'란 참혹한 명칭이 붙은 것은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 정권이 당시 크메르루주의 지도자였던 폴 포트를 최고 지도자로 옹립한 데서 시작됐다. 폴 포트는 1979년까지 4년간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했다고 한다. 우리 방송에서도 이때의 사건을 기획 보도한 적이 있다.

 


 

독자도 그 영상을 보며 공산주의와 폴 포트 정권의 잔인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이 4년 간의 학살은 인근 국가 베트남에서 전쟁을 하고 있던 미군이 1975년 4월 철수함으로써 공산 정권이 들어서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폴 포트가 정권을 잡자 론 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환영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폴 포트는 새로운 농민 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물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여 명을 살해했다. 크메르루주의 만행은 아이러니하게도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되면서 종결되었다.

45년 가까이 지난 지금 아무 의미가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곳에 사는 캄보디아 국민들은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은 채 지금도 가난과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처럼 독자는 느꼈다. 이런 나라에 어떤 사람들이 다녀왔기에 '꿈의 땅'이란 표현을 했을까? 독자가 궁금한 점이었다. 이 책 『꿈의 땅 캄보디아』는 2023년 1월 26일부터 2월 4일까지 9박 10일 동안 진행된 캄보디아 자원봉사 여행기다. 6명의 지은이를 중심으로 함께 참여했던 7명의 MZ세대들(학생)의 해외 봉사 후기가 담겨 있다.

책의 저자들은 보건교사로서 나이팅게일의 후예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현장에서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이들의 첫 해외 봉사는이번에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2015년 페루에서 시작되었고, 2018년에는 아프리카에서 펼쳐졌다. 코로나19로 멈춰졌다가 2023년에 캄보디아 봉사로 다시 이어진 것. 페루와 아프리카에서는 보건교육, 성교육, 건강체험, 교육연수, 문화교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캄보디아에서는 도서관 건립 후원과 벽화 조성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지난 봉사에 함께 참여했던 사회복지사는 청소년희망센터를 창립하고 캄보디아에 그룹홈 지사를 설립했고, 진로를 고민했던 교사를 장학사가 되었고, 대학생은 어엿한 경기도의 교사가 되었다.

 

 

세 번의 해외 봉사를 통해 희망을 품고, 꿈을 이뤄나가는 봉사단의 성장 스토리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봉사단은 세 번의 해외 봉사 모두 자비로 참여했고, 다양한 기관과 함께했다. 현지 문화체험와 연계해 테마에 맞는 캠페인을 펼쳤다는 공통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 봉사단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코이카(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국제협력단)만 하는 줄 알았는데 민간 봉사 단체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코이카는 경제개발과정에서 축적된 우리 대한민국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발전을 지원하고 최빈국 주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등 국제협력을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재정지원기관이다. 독자의 가족 중 한 명도 이 봉사단체의 일원으로 라오스에 다녀온 적이 있어 코이카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민간 단체도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이번 캄보디아 봉사에서는 저자들은 프놈펜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헤브론병원, 모노롬의 클리닉, 캄보디아왕립농업대학교의 보건실과 세종학당의 한글학당도 방문했다. 한국의 학교보건과 성교육에 대해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책에서 밝히기도 한다. 시아누크빌에 있는 라이프대학을 방문하고 간호대학의 현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시엠립에서는 시소폰의 초등학교에서 보건교육, 성교육 등 교육 봉사를 했고 그룹홈에는 도서관을 짓고 벽화를 그려주었다. 다양한 봉사활동이 캄보디아라는 나라에서 펼쳐지는 이 책은 막연하게 해외 봉사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많은 정보와 지식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구성된다. 1장 〈꿈의 땅 캄보디아〉, 2장 〈3인3색 교사들이 교육으로 펼치는 무지갯빛〉, 3장 〈협력해서 함께 참여한 각양각색의 꿈〉, 4장 〈꿈의 땅 캄보디아를 밟은 MZ세대 이야기〉 등이다. 각 장은 각 교사들이 맡은 분야의 봉사활동과 진행 과정, 결과 등을 직접 썼다. 각각 맡은 분야의 글을 세부항목에서 다룬다. 1장에서는 이전 해외 봉사와 이번 해외 봉사를 관통하는 사명감에 대해 말하는 한편 이번 봉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계기독간호재단 창시자 이송희(이하 존칭 생략), 김계숙, 박순복, 성진숙, 신기조 등 캄보디아 현지에서 뿌리내리고 봉사를 펼치는 귀한 분들을 소개한다. 2장은 세 명의 보건교사의 봉사 후기가 각자의 형식으로 자유롭게 담겨 있다. 「내 마음의 별을 따라서」(김명숙), 「캄보디아의 크메르인과 만남」(신선혜), 「일단! 그냥 해보자」(최은화)를 각각의 저자가 썼다.

말 그대로 겪은 일과 느낌, 그리고 성과 등에 대해 세세하게 적었다. 저자 김명숙은 「내 마음의 별을 따라서」을 통해 "모든 길은 열려 있다. 수많은 길이 열려 있지만 내가 걸어가야 길이 되어 준다. 첫 해외 봉사지 아프리카를 다녀올 때는 경험 많은 선배들이 있어 조력자의 역할을 담당했으나 이번에는 총괄팀장을 맡아 준비와 진행, 마무리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참여해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열정에 오히려 감복하고 더 열심히 봉사 활동을 했다는 성취감을 표현한다. "공사장에서나 볼 것 같은 비계에 오르는 청년들의 열정을 만나고 호수 위에 곱게 물든 석양을 배경 삼아 추억도 남겼다. 언어는 달라도 앎의 지평을 넓혀 준 해외 간호학자들과 만남도 가졌고, 은퇴한 보건교사 선배가 전해주는 삶의 가치와 성과도 확인했다. 가진 것을 나누며 안주하지 않는 성장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간호사 선배들을 만나며 나의 걱정은 설렘과 기대로 바뀌었다."(p.83)

 


 

저자 신선혜는 「캄보디아의 크메르인과 만남」에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봉사활동 중 얻은 감성을 끌어올려 이 소중한 인연을 글로 옮긴다는 말을 전제하고 "겨울방학에 어디에 갔다 왔냐는 질문에 조금 흥분된 어조로 초등보건교육연구회에서 주최하는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했었다고 말했다. 그런 내 모습이 9박 10일 동안 힘들었지만, 보람되고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프놈펜, 시아누크빌, 시엠립 등 이름도 낯선 그곳 사람들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사랑스럽고 타국인에게 호의적이었다. 단 음식을 좋아해서 당뇨 질환, 치과 질환 환자가 많았고, 의료시설이 부족해 기본적인 위생교육, 식생활 개선, 약물 오남용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은 안타까웠다."(p.103)라고 적었다. 이어 '여정'을 소개하면서 그곳 풍경을 글로 표현해 옮기기도 한다. 붉은 빛에 비치는 건물들의 형태, 동시에 나무그림자로 올라오는 빛줄기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자의 다른 감동으로 전해짐을 느낄 수 었었다. 시간대별로 색깔과 각도에 따라 나무의 느낌이 하늘의 빛깔과 어우러져서 다채롭게 연출된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고 앙코르와트의 일출, 석양 노을, 그리고 호수를 배경으로 풍경 사진을 함께 게재해 아름다운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해준다.

현지인들과 함께한 활동, 그곳의 풍경과 음식물, 생활 모습 등이 어우러져 캄보디아의 참모습에 많은 면을 할애해 사진과 함께 실었다. 미처 사진이 담아내지 못한 내용은 그림으로 그려 보이기도 한다. 대단한 솜씨로 보인다. 이쯤 되니 사실 '꿈의 땅'이란 캄보디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름다워 '꿈의 땅'인지 자신이 그곳을 방문한 경험이 있기에 '꿈의 땅'인지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두 가지가 다 해당되기에 '꿈의 땅'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란 독자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곳은 '킬링 필드'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지금 어리고 젊은이들에겐 분명 꿈의 땅이 되기를 독자는 바란다.

 


 

3장에서는 함께한 간호대학 교수와 사회복지사가 참여한 봉사에 대한 후기를 다른 시각에서 소개했다. 4장은 참여한 MZ세대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번 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참여 소감 등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부록으로는 ‘Hello 캄보디아 교육봉사 및 학술대회’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이번 프로그램 일정표를 담았다.

 

저자 : 전은경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게 할 수 있는 교사는 귀한 직업이다.” 건강한 아이들, 행복한 선생님이 가득한 학교를 꿈꾸는 선생님이다. 자원봉사, 미래교육, 건강과 안전,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준비하며 꿈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보건교사, 경기도교육청 장학사, 초등학교 교감을 거쳐 현재 양평에 있는 행복한 작은 학교, 곡수초등학교를 교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초딩들의 사춘기』, 『대한민국의 학생과 교사, 아프리카에서 새 희망을 찾다』 등이 있다.

 

저자 : 김명숙

눈물 가득 담긴 아프리카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교육하는 간호사가 되었다. 배운 것을 나누며 겹이 두터워지고, 결이 고와지는 사람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며, 현재 용인 상현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대한민국의 학생과 교사, 아프리카에서 새 희망을 찾다』 등이 있다.

 

저자 : 신선혜

현실에 충실하게 살다 보니 봉사라는 단어가 멀게만 생각되었다. 그러던 중 ‘경기도초등보건교육연구회’라는 친밀한 단체에서 해외 봉사를 권해와서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값진 추억과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여행을 넘어 이제는 봉사로 다른 나라의 생활 깊숙이 들어가 함께 식사도 하고 눈빛 교환도 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고 있다. 현재 부천에 있는 부원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저자 : 최은화

완벽주의가 아닌 경험주의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보건교사다. 평택에서 3곳의 학교를 거쳐 현재 오산 운산초등학교에 보건교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 : 이지선

사실에 근거해서 정답보다 적합한 것을 사고(思考)하며 다양하고 넓은 세상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간호사를 양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간호대학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주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 후 가톨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듀크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에서 박사 후 방문학자로 있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지역사회 기반 참여형 연구에 초점을 맞춘 건강, 건강 격차 및 건강증진에 관한 것이다.

 

저자 : 박정미

“나의 작은 손길이 이곳 아이들에게 작은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딸아이의 고백처럼, 누군가에게 받은 고마움과 은혜를 누군가에게로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작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대구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재활심리학을 공부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상담심리 전공 석사 후 현재 특수아상담을 하고 있다.

 

저자 : 조수민

카메라 앵글로 캄보디아 봉사를 담았다. 가진 작은 재능을 담아 숲속작은도서관을 디자인하고 함께 그리고 채색했던 기억이 귀한 스펙이 되었다. 한양여자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를 졸업 후 현재 ㈜사람과 기술에 재직 중이다.

 

저자 : 김유민

체육교사를 꿈꾸며 체육교육학과를 들어갔다. 사회복지사인 아버지를 따라 봉사에 참여하며 가치 있는 교사로 사는 것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 꿈꾸고 나누는 체육교사가 되고 싶다. 서원대학교 체육교육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저자 : 김찬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예비 사회복지사다.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이 복지라고 생각하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저자 : 홍나희

나눔의 행복을 실천하기 위해 국내 봉사, 페루, 아프리카, 캄보디아 등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평화를 위해 연주하는 호르니스트를 꿈꾸며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후 현재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저자 : 홍나연

지구촌 사람과 동물, 자연까지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벽화 그리기, 해외 봉사 등 여러 봉사활동을 참여하고 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워 교사라는 꿈을 꾸고 있다. 현재 동일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저자 : 김유은

중앙예닮학교 8학년

 

저자 : 심서율

방교중학교 2학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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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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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인류가 지구의 종말 앞에 선 시각까지 남은 시간을 말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인류의 최후를 예고하는 느낌이다. 오싹하고 절망적인 어휘다. 지구 나이 45억 년에 비하면 인류, 특히 현생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불과 15만~25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다고 추정된다. 그야말로 지구 나이 연대에 비하면 점에 불과할 정도의 짧은 기간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와 '불'을 발명하면서 비약적 발전을 하고 이 시기를 구석기 시대라고 인류학자들은 구분한다. 불과 5만 년 전이다. 호모 사피엔스란 학명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1758년 '현대 분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가 현생인류의 종(種)에 붙인 명칭이다. 생물학이나 고인류학에서 두루 쓰인다. 철학에서는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하는 인간관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구석기 시대 이후 인류는 두뇌와 섬세한 손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문명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선사시대의 업적은 구전으로, 신석기 시대 문자 시대 이후부터는 글과 책으로 인류 발전과 문명의 발달을 자세히 기록해서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지구는 생존의 각축장이 된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방법으로는 의식주 해결이 불가피해지자 이웃한 집단으로 쳐들어가 약탈과 노략질로 의식주를 해결했다. 그야말로 국가별 집단의 전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인류의 종말을 예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늙어서 자연사하는 사람과 전쟁터에서 죽는 사람의 숫자의 합보다 출생의 숫자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인류는 지속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간의 노동 대신 기계를 이용하는 대변혁을 이루어냈기에 엄청난 물량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문명의 발전은 계속되고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의 에너지로 석탄, 석유를 쓰면서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문명의 이익을 누리기에 급급했을 뿐, 석유 석탄이 지구의 공기를 오염시켜 우리의 삶을 망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산업혁명 당시 세상의 중심지였던 대영 제국의 수도에서 '스모그'란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때 이미 공장과 자동차에서 뿜는 매연에 의한 공기 오염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대기와 수질·토양 오염의 심각성을 지적했지만 국가를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오늘날 마침내 삶의 터전인 지구마저 큰 위기에 빠뜨리는 '인류 멸망'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우주를 관찰하거나 직접 갈 수도 있고, 세균에 의한 인간 질병을 어느 정도 정복했다고 하지만 의식주의 풍요를 즐기기 위해 쓰여진 화석에너지가 이제는 인간과 지구의 존속을 동시에 위협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란 질문에 봉착한다. 아니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세기 들어 그것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뒤늦게 대처에 나섰지만 환경 위기는 대책 마련이 간단치 않다. 문명의 발전이 에너지 발전과 산업 구조의 개편으로 이루어진 만큼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지구 환경의 위기는 눈앞에 닥쳤다. 70년대부터 지구 기후 변화에 대비한 국제적 모임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국가 이익이라는 이기적 욕심과 개인의 편의를 위한 욕망의 난관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환경 오염의 주범격인 선진 각국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논쟁으로 벌써 기후변화 대책 협의회는 벌써 50년이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뚜렷한 대안이 없다. 다만 발등의 불 끄기 식의 플라스틱 줄이기, 탄소배출량 제도 등 소극적이고도 개인적 노력만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우리는 왜 지구의 위기를 외면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 최평순은 환경 다큐멘터리 PD로서 이 질문에 한 가지 질문을 더해 이 책을 썼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란 질문이다. 환경 위기에 대처하는 노력과 앞으로의 전망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제시하고자 했다. 저자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지구 위기, 인류 삶의 존속 등을 걱정하거나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책에 그의 진심인 인류의 미래와, 지구 환경 위기 앞에선 인류의 행동을 촉구하는 의미에서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소행성은 쳐다보지 마!〉, 2장 〈대중의 언어〉, 3장 〈이슈화의 최전선〉, 4장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기〉 등이다. 이 가운데 신선한 단어 하나가 눈길을 잡아 끈다. '인류세(Anthropocene)'다. 독자로서도 딱 한 번 매스컴에서 들은 기억이 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한 단어다. 책에 따르면 인류세는 네덜란드의 화학자이자 1995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로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는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를 뜻한다. 시대 순으로는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와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에 이은 것이다. 지질시대를 연대로 구분할 때 기(紀)를 더 세분한 단위인 세(世)를 현대에 적용한 것으로, 시대 순으로 따지면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와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에 이은 전혀 새로운 시대이다.

지금까지 계속되던 충적세가 끝나고, 이제 과거의 충적세와는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아직 학문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구태여 구분하자면 크뤼천이 제안한 2000년 안팎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보면 된다.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은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를 들 수 있다. 그동안 인류는 끊임없이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파괴함으로써 인류가 이제까지 진화해 온 안정적이고 길들여진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엘니뇨·라니냐·라마마와 같은 해수의 이상기온 현상, 지구온난화 등 기후 변화로 인해 물리·화학·생물 등 지구의 환경체계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로 인해 인류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면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다.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이기 때문에 인류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2004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로사이언스 포럼에 참가한 각 분야 과학자들도 인류세 이론을 지지하였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재앙을 일으키는 가장 치명적인 지역으로 사하라사막, 아마존강 유역의 삼림지대, 북대서양 해류, 남극 서부의 빙원, 아시아의 계절풍 지대, 지브롤터해협 등 12개 정도를 꼽고 있다. 이처럼 아직 인간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단어는 많은 생물학자나 생태학자 등 학자들은 물론 환경운동가, 심지어는 정치인들도 적절하고도 놀라운 개념의 창안에 환호하고 있다. 저자 최평순도 '인류세'는 단 세 글자로 지금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와 다른 생물종을 대멸종으로 몰아놓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마법의 단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단어의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많은 글을 이 책에서 환기시키고 있다. 그만큼 환경운동가에게는 금과옥조의 어휘임을 뜻하기도 한다.

저자는 1장에서 "누군가 지금 당신의 우선순위를 묻는다고 치자.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답을 고를 것이다. 인류세는 질문의 전제를 바꾼다.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남은 시간이 석 달이라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요?'"(p.19) 지구의 위기를 인식시키기 위해 저자의 질문은 강렬하다. 강렬하다는 것은 절박하다는 의미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의미로 연결된다.

 


 

저자는 기후 위기와 과학 지식에 무관심해지고 심지어 불신하게 된 우리 사회에 대해서 말한다. 사회학자를 만나 과학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물어보고, 심리학자에게는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심리적인 편향에 대해 물어본다. 과학자들의 97%가 기후 변화가 사실이라는 점과 그 원인이 인간 활동임에 동의하고 있다. 지금 히말라야에서는 빙하 홍수가 발생하고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는 물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2장에서는 기자, 언론학자, 정책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기후 위기의 시대에 언론이 담당하는 막중한 역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경고 신호를 보내도 언론이 이를 대중에게 잘 전달하지 않으면 사회를 움직일 수 없다. 한국 언론이 기후 위기 뉴스를 소홀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 위기에 대한 철학의 부재와 한국 언론 특유의 출입처 시스템은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한 언론의 접근을 일차원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출입처에서 얻은 정보로 매일매일 지면과 방송 뉴스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이 한국 언론의 관행이지만, 지구적 문제를 담당하는 한 부서나 기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외의 언론은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프랑스에서는 폭염 보도에 한 남성이 일광욕을 하는 사진을 실은 보도 참사를 계기로 ‘생태 비상에 대응하기 위한 저널리즘 헌장’이 탄생했고, 독일 방송사들은 기후 관련 소식을 황금 시간대 뉴스 헤드라인에서 다룬다.

또 3장에서는 기후 위기를 대중에게 알리고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바다를 지키기 위해 공해를 누비는 그린피스 선박에 올라 선원들을 취재하고, 돌고래를 취재하는 영화감독, 조류 유리창 충돌을 기록하는 사람들, 플라스틱 돌을 수집하는 예술가, 기후우울을 만화로 그리는 웹툰 작가를 인터뷰한다. 한국 1호 영장류학자인 김산하 박사는 지구적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를 질타한다. 지구의 문제는 국경을 초월한 행성 전체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는 공동 운명체인데, 여전히 “왜 내가 굳이 그런 걸 알아야 하죠?”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 4장은 기후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방법을 찾는 일을 다룬다. 사회학자, 과학기술학자, 과학철학자를 만나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저자는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2009년에 제작한 자신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우리 사회가 지난 10여 년 동안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분투했는지를 설명한다. 그 동안 일회용 컵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찾아보기 제법 어려워졌고, 일회용 컵을 규제하는 제도도 도입되었다.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을 앞둔 2023년 11월,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철회한다고 발표함으로써 한 발 후퇴했고, 이에 대해서 환경 단체와 운동가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렇듯 변화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느긋하게 기다리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이번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인류 멸종이 올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발언도 나오고 있는 오늘날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 기사를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유명 대학교 소속의 과학자들이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 매일 홍수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우리 종의 생존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이 긴박한 메시지는 대중에게 잘 가닿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은 위기를 경고하는 뉴스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위기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음모론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마치 영화 〈돈 룩 업〉에서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을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멸망을 맞이한 사람들처럼 우리에게 남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 〈긴팔인간〉 등 EBS에서 여러 명작 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저자는 불타는 우림, 쓰레기가 떠다니는 태평양, 스모그가 가득한 인도의 도시까지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 현장을 찾아 오늘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지구 역사상 최악의 위기라는 오늘날 '인류세'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뻔한 동시에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구적 재난을 외면하는 세상이 이 상황을 마주할 수 있게 알리고 공유하는 것.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지구적 재난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어 있고, 심리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재난 현실을 외면하며 살기 쉬운 조건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조건들은 하나씩 사라질 것이다. 2030년의 지구, 2040년의 지구는 더 가혹하게 인류를, 대한민국 국민을 위협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외면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지구에서 살고 있고,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연구팀은 과거에는 역대 최악의 수준이었던 가뭄이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이른바 ‘재난’이 일상화되는 시기를 추정해냈다. 연구 결과는 지중해 연안이나 남미의 남부 등 특정한 지역은 이번 세기 전반 혹은 중간쯤에 역대 최악의 가뭄이 적어도 5년 이상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를 맞이하고, 과거에는 비정상 상태로 간주되었던 재난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날 확률이 높아짐을 보였다. 또한 온실가스의 배출을 적극적으로 줄여나가더라도 어떤 지역에서는 십여 년 안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김형준 교수는 그것을 ‘재난의 일상화’, 다른 말로 ‘비정상의 일상화’라고 부른다. 비정상의 일상화라. 두려운 말이다. 정상이 아닌 것이 정상이 되는 시대. 그 말을 과학자의 입을 통해 들으니 섬뜩하다. 그의 연구팀과 슈퍼컴퓨터는 계속 섬뜩한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 24시간 가동 중이다.(p.54)

 

저자 : 최평순

 

환경·생태 전문 PD. 플라스틱에 대한 단편 영화감독으로 2010년 다큐멘터리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EBS에 입사해 〈하나뿐인 지구〉, 〈이것이 야생이다〉 시리즈, 다큐프라임 〈긴팔인간〉,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을 연출했다. 유인원 기번의 생태를 다룬 〈긴팔인간〉은 IWFF 국제야생영화제, VAASA 국제환경영화제 등에 초청됐으며, 〈인류세〉는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여섯 번째 대멸종〉은 2022년 호주 과학영화제(SCINEMA) 소셜임팩트상을 수상했다. 현재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기후과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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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식사합시다
이광재 지음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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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다정한 정치 연서(戀書)��� 정치인 이광재와 대통령 노무현이 진심으로 꿈꾸는, 보통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담아 진솔하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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