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식사합시다
이광재 지음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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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같이 식사합시다』의 저자 이광재는 정치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울 정도로 그의 신임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관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이다.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과 패배도 영광도 함께했다. 그는 정치인인 동시에 강원도 지사를 지낸 관료로서의 면모도 보여줬다. 지금은 국회 사무총장으로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지 않는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저자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다. 다른 진보 정치인들처럼 학생 시절 운동권에 깊숙이 관여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대학생이 돼(1983년) 학생운동으로 수배(1986년) 생활도 했다. 1년 간의 도피생활 끝에 마침내 체포돼 옥살이도 했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덕분에 대학생도 읽기 어렵다는 책들을 읽었다고 이 책에서 회고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가 안 돼도 책 읽는 게 좋아서 절에 들어가 읽을 정도였다.

이 책 『같이 식사합시다』에 기록된 저자 이광재는 정치인으로 생활하는 동안 말그대로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 그가 국회 사무총장으로 음식 관련 책을 냈다는 사실이 처음 믿기지 않았다. 최근 움직임이 거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정치를 떠나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독자는 생각했다. 그가 독자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모 신문에서 기획한 젊은 정치인 4명의 대담 기사 때문이었다. 저자를 포함, 진보권 인사 2명, 그리고 보수권 인사 2명의 생각과 한국 정치에 대한 바람과 발전 방향을 인터뷰 기사로 내보냈다. 한참 떠오르던 4인방 중 보수권 2명은 지금도 정치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다만 진보 인사 1명만 자성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들 4명이 모 신문사가 집중한 것은 그들이 젊은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우리 정치와 나라를 이끌어갈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들의 평가도 내려진 후이니만큼 그들의 정치 인식은 참신했고, 우리나라의 앞날도 밝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들은 올바른 방향의 한국 정치와 나라 발전 방향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독자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어서 그 뒤로 그들의 진로를 눈여겨볼 정도였다. 그 중의 한 명인 저자는 국회 사무총장이 됐는지도 몰랐다. 신문이나 언론에서 크게 다룰 자리는 아니라서 보도를 하지 않았거나 독자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낸 탓이거나 할 터다.

 


 

이 책은 그가 하루아침에 쓴 책은 아닌 듯하다. 에세이 형식의 글이지만 가벼운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 특히 정치인으로서의 삶과 음식을 적절히 섞어가며 잘 차린 밥상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의 이야기까지 자신의 일상 경험을 함께 버무려 정치 역정을 주로 담아냈다. 이 책에 담긴 음식들은 우리 일상에서 늘 먹는 것들이라 별로 특별하지 않은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삶과 함께 풀어놓으니 매우 맛깔스럽다. 대부분 예전의 추억을 간직한 것들이라 애틋한 마음까지 자극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음식과 평범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 정치인의 삶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곡절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봐도 아마 화려함보다는 안타까움, 성공보다는 퇴보의 모습이 더 기억 날 것이다.

저자는 「세상도 정치도 좀 푸근해졌으면 좋겠다」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달고 짜고 쓰고 매운 인생을 살아왔고, 모든 경험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늘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품으며 가슴속에 하나의 메시지를 새겼다"고 전제하고. 그것은 바로 ‘보통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였다고 술회한다. 그가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이 책에서 건네는 이야기는 오늘날 위기의 대한민국, 그리고 그 안에 던져진 국민 모두를 향한 맛의 위로이자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간절한 꿈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찌 들으면 매우 정치적 발언이고, 목적 있는 말 같지만 자신의 진심을 담아내는 데는 솔직한 저자를 믿고 싶다. "먹고사는 일에는 좌우가 없다. 급변하는 시대, 극단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맛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저자의 진심을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출판사 측에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맛있는 음식'이란 말은 과장이다. 그러나, '맛있는 사람, 맛있는 인생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주장은 진실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음식은 모두 10가지다. ① 라면 ② 김치찌개 ③ 도리뱅뱅이 ④ 짜장면 ⑤ 두부 ⑥ 미역국 ⑦ 오므라이스 ⑧ 대합탕 ⑨ 샤부샤부 ⑩ 열무김치 등이다. 모두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대하는 음식이다.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서, 대통령의 오른팔로서, 도지사의 음식은 아니다.

 

 

저자가 평범한 음식을 특별한 음식으로 만들어낸 재주는 그의 진심 때문으로 풀이된다. 말하자면 그의 인생 역정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정성이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눈 뜨며 신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이야기을 담았기에 평범한 일상의 특별한 음식이야기이다. 그의 이 책의 집필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경제 대국', '선진국', '강대국'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난무하던 때가 불과 수년 전이다. 지금은 오히려 잘 살지 못했던 "옛날이 더 그립다"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 보수 정권의 잘못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보 정권 때문도 아니다. 지금 힘들다고 국민들이 느끼는 이유는 경제 문제 때문이기는 하지만 '소통의 부재'가 더 크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독자의 생각이다. 아마 저자도 그런 점을 염두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저자는 실제 예스24와의 인터뷰를 통해 "삶이 전쟁 같은 시대, 하루 먹고살기가 참 힘든 시대,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드리고자 쓴 책입니다. 우리는 늘 “식사하셨어요?”라고 서로에게 안부를 묻잖아요. 그만큼 인간의 삶에 있어 ‘밥’이 주는 의미가 큰데, 10가지 음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았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에서 저자는 음식점을 개업했던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서울시 종로구 청진동에서 ‘소꿉동무’라는 식당을 열었던 기억이 나요. 자영업의 고됨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였지요. 낮에는 주로 오므라이스, 밤에는 낙지볶음에 집중했지요. 직접 시장조사도 뛰고, 주방장도 구하러 다니고... 내 손으로 벌어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잘 쓴 문장을 스스로 뽑아보라는 질문에 “세상도 정치도 좀 푸근해졌으면 좋겠다”는 〈프롤로그〉 제목이라고 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가 담긴 문장이라고 독자는 추정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인생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계절이 켜켜이 쌓여 있다. 마치 반세기 넘는 삶이 한 편의 자기소개서를 보는 듯하다. 그가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가정환경과 주변 상황을 겪으며 성장했는지,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사람을 만나며 지적·정신적 성숙을 이루어갔는지, 그리고 86세대로서 사회의 공적 영역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것이 이후의 정치적 행보에 어떤 나침반이 되었는지 등이 생생하게 살아나온다.

특히 평범한 10가지 음식이 저자의 추억인 된 에피소드가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말 그대로 '인생 음식'이 된다. 책장을 펼칠 때마다 평범한 음식이 맛있는 사람과 만나 맛있는 인생 역정이 펼쳐진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음식은 '새우 라면'이다. 우리나라 라면에 '새우 라면'이 있었나? 의아하지만 평범한 라면이 새우 라면이 된 이유를 들어보면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다. 20대 시절 막노동판에서 일하던 중에 저수지에서 잡은 새우를 넣고 냄비에 보글보글 끓여 먹었던 기억에 '새우 라면'이다. 또 수배자 신분을 숨기고 지내던 중에 부산 어느 주물 공장에서 일하며 먹었던 김치찌개, 2011년 중국 유학 생활 중 너무나 그리웠던 짜장면, 어머니가 손수 끓여주셨던 미역국의 맛을 기억하며 신림동 자취방에서 직접 만들어 먹던 미역국 등 어쩌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식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평범한 음식들이다. 그리고 그 음식들에는 인간 이광재의 인생에 좌표가 되어준 값진 경험과 추억이 새겨져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정치인 이광재를 떠올릴 때마다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故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이광재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치적 동료였다. 함께 밥을 나누는 사이였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함께 꿈꾸던 벗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이러저러한 위기는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치가 답을 주지 못한다는 불신과 불안, 불만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3불(不)은 무엇보다 내가 먼저 반성하고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았다고 고백한다. 이 책이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 책 『같이 식사합시다』에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추억이 알알이 새겨진 음식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저자에게 도리뱅뱅이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음식이다. 도리뱅뱅이는 피라미를 튀기고 구운 요리를 말하는데 청와대 생활 중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 찾았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의 소년 같은 미소를 볼 수 있던 소중한 음식이기도 했다. 국가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훌륭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두 사람이 마음을 다잡던 순간에는 도리뱅뱅이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음식이 늘 있었다고 저자는 책에서 털어놓는다. 독자로서는 다른 9가지 음식은 일상처럼 자주 먹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도리뱅뱅이'란 음식은 처음 접한다. 여기에 재료 등 음식 이름도 적혀 있어 무슨 음식인지 알겠지만 피라미 튀김이란 맛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독자로서는 도리없이 먹어본 '빙어 튀김'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헤아려본다.

저자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추억에 얽힌 음식이 많다며 털어놓은 이 도리뱅뱅이의 정체를 밝힌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했던 식사만 수천 번, 음식 종류만도 수백 종은된다고 말한다. 역시 '노무현의 오른팔'임이 입증된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음식이 이 도래뱅뱅이라고 한다. 독자의 심정을 헤아리듯 저자는 친절한 음식 맛과 모습을 표현해 준다. 멋진 그림도 곁들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끔 자극적인 음식을 찾았다. “도리뱅뱅이가 먹고 싶은데…” 하면서 소년 같은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강원도 정선에 함께 출장을 갔던 적이 있다. 도리뱅뱅이를 그때 처음 드셨는데, 맛을 잊지 못하셨던 것 같다. 대통령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음식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그런 모습이 애잔해, 옥천 쪽으로 업무차 가는 직원이 있으면 돌아오는 길에 도리뱅뱅이를 좀 사달라고 부탁했다. 대통령의 갈증과 스트레스를 풀어드릴 수 있는 비서진의 작은 선물에 불과했다. 무척 흡족해하시면서 “막걸리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거절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곤 하셨다.(p.93~94)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터놓던 노무현과 이광재는 위로의 정치, 정치의 위로를 꿈꾸었다는 것을 우리 국민 대다수는 알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먼저 하늘의 별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꿈을 마음에 되새기며 저자 이광재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대합탕 편에서도 소개되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추억은 모두가 그리워하던 그때 그 시절로 우리의 시간을 되돌려놓는다.

 

빗소리 들으며 대합탕에 소주 한잔은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비서진 몇십 명을 데리고 가셨던 적이 있다. 몇 번 낙선하면서 보좌관 한두 명 데리고 쓸쓸히 찾아오던 정치인이 어느 날 대통령이 되어 나타나자 주인장도 크게 감동하는 모습이었다. 그 포장마차는 근처에 번듯한 점포를 구해 2023년 현재도 영업 중이다. 가끔 찾아간다. 대합탕을 주문한다. 마주 앉았던 사람의 자리에 빈 술잔을 놓는다.(p.222)

 

저자 : 이광재

 

1965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원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당시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의 보좌진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2002년 ‘대통령 노무현’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30대에 참여정부의 첫 국정상황실장으로 주요 국가 정책 디자인에 매진했다.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2010년 강원도 도지사에 당선되었다. 2011년 정계를 떠나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시야를 넓혔다. 이후 싱크탱크 ‘여시재’의 원장으로 재임하며 국가 미래전략을 연구했다. 재임 중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리더, 학자들과 교류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되어(강원도 원주시 갑) 정계에 복귀했다. 더불어민주당 K뉴딜본부장으로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이미 와 있는 미래,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정책개발에 앞장서왔다. 사회 원로, 전문가, 일반 시민들에게 지혜를 묻고 답하며 함께 생각의 힘을 키우는 저서들을 연속 출간하고 있다. 현재 국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광재 독서록》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노무현이 옳았다》 《세계의 미래를 가장 먼저 만나는 대한민국》 《중국에게 묻다》(공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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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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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의 첫 머리글은 "아래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또한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로 시작한다. 표제어만큼이나 첫 문장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아리송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저자 수재나 캐헐런은 〈프롤로그〉에서 두 가지 사건을 말한다. 두 사건은 모두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데이비드 루리. 서른아홉 살의 광고 카피라이터로, 결혼했고 자식은 둘이며, 환청을 듣는다. 나머지 하나는 스물네 살의 여성으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사람들과 있는 것이 갈수록 불편해서 자신의 아파트에 틀어박혔다. 가족들의 걱정이 점점 늘어간다. 그녀는 가족들을 오히려 피한다. 하는 수 없이 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에 갇힌 그녀는 점차 현실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작을 일으키기도 해서 의사들은 향정신성 약물의 투여량을 늘렸다. 검사를 하고 또 했지만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병원은 그녀를 다룰 수 없다고 판단하여 진료 기록에 '정신병동으로 이송'이라고 적었다.

저자는 루리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고 여성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위 사실은 모두 일어난 사건이다. 전자는 50년 전 일어난 데이비드 로젠한의 '가짜 환자'이고 후자는 저자 자신의 경험을 말한 것이다. 저자의 경우는 "운 좋게도 사려 깊고 창의적인 의사의 추측 덕분에 결국은 정신병동으로 이송되는 것을 면했다. 그 의사가 저자의 신체 증상을 뇌염이라고 정확히 짚어내어 오진으로부터 구해준 것이다. 저자는 운명의 반전이 없었다면, 무너진 당시의 정신보건 시스템 속에서 길을 잃거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치료가 가능한 자가면역 질환(뇌염)이 조현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에 쓴 신체적 증세는 앞서 언급한 대로 조현병과 비슷했다고 한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50년 전 가짜 환자 사건을 〈프롤로그〉에 적시한 이유는 "의사와 의료진이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있"는지 직접 알아보고자 해서 건강한 여덟 명의 남녀가 자발적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사건에 대해 쓰기 위해서다. 저자가 50년 전 사건을 다시 들춰낸 것은 지금도 아직 고쳐지지 않은 정신보건 시스템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셈이다.

 


 

책에 따르면 데이비드 로젠한은 당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로서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여덟 명의 정상인들과 함께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 잠입을 시도했다. 정신의학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려낼 수 있는지 직접 테스트한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진료받은 병원 모두 그들을 정신병자로 오진했고, 평균 20여 일 동안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잘못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실험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되면서 수많은 정신병원이 문을 닫았고, 정신의학계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질문인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라는 논쟁에 불을 붙였다.

1973년 권위 있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실험 내용도,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실험은 로젠한을 포함한 다섯 남성과 세 여성이 실제로는 아무런 증상도, 문제도 없는데도 ‘환청’이 있다고 거짓 증상을 내세우며 정신병원에서 진단과 입원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이들은 미국 5개 주의 12군데 정신병원에서 모두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모든 정신병원이 가짜 환자에 뚫린 셈이다.

미국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저자는 뇌염을 조현병으로 오진 받아 입원한 경험을 계기로 미국의 정신보건 시스템을 파헤쳤다. 저자는 2012년 세상을 떠난 로젠한의 미출간 원고를 추적해 이를 바탕으로 연구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미출간 원고를 살핀 결과 여덟 명의 가짜 환자 가운데 일곱 명이 조현병으로, 한 사람은 조울증으로 진단받아 모두 열두 차례나 입원했다. 연이어 네 차례나 조현병 진단을 받아 입원한 사람도 있었고, 합쳐서 일곱 차례에 걸쳐 총 76일 동안 입원한 경우도 있었다. 여덟 명의 평균 입원 기간은 19일에 이르렀다. 일방적인 환청 주장만으로 모두 오진을 받고 정신병원에 상당 기간 입원한 셈이 됐다.

 


 

더욱 문제는 입원 뒤에 벌어졌다. 이들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의료진에게 더 이상 환청증상이 없으며, 상태가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은 무시됐으며, 정신병원 측으로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인정하도록 강요받았다. 게다가 병원에서 처방한 정신질환용 의약품을 복용해야 했다. 실제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들은 항정신병약을 복용하는 조건으로 퇴원을 허가받았다. 이로써 정신의학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진단과 입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자 출신답게 글의 구성력과 문장력이 돋보인다. 저자가 재구성한 이 책의 내용은 1969년 2월, 한 남자가 정신병원을 찾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한다. 이름이 뭡니까?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됩니까? 대통령은 누구죠? 그는 네 가지 질문 모두에 옳게 답했다. 데이비드 루리, 하버포드 주립병원, 1969년 2월 6일, 리처드 닉슨.

이제 의사는 그가 듣는 목소리에 대해 물었다. 환자는 목소리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의사에게 전했다.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해. 둔탁한 소음이 나.” 의사가 물었다. “목소리들을 알아듣겠어요?” “아니오.” “남자 목소린가요? 여자 목소린가요?” “항상 남자예요.” “지금도 들리나요?” “아니오.” “그들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전혀요. 나는 진짜가 아니라고 확신해요. 그런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의사는 진단이 끝난 후, 그에게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내리고 정신병동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데이비드 루리는 환청을 듣지 않는다. 그의 성은 루리가 아니다. 사실, 데이비드 루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데이비드 로젠한이 꾸며낸 가상의 인물이자, 악명 높은 로젠한 실험의 첫 번째 가짜 환자이다.

 

 

당시 로젠한은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실험을 계획했다. 이후 가짜 환자들은 병동 내부의 비윤리적인 행태와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었고, 꼼짝없이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책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이 역사적 실험의 이면을 추적한다.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로젠한은 왜 실험을 계획했으며, 이는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지금껏 알려진 이야기로는 바라볼 수 없는 정신의학의 얼굴을 파헤치며, 아직 걷히지 않은 정신의학에 드리운 거대한 그늘을 보여준다. 마치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겉으로 들어난 사건의 진실은 이후 정신질환과 병원에 대해 의사들과 함께 논란을 거듭해왔지만, 겉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이 모든 것을 얘기해 주는 것은 아니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설명한다.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오진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실험 후 가짜 환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데이비드 로젠한은 이 실험을 왜 계획했으며, 이는 위대한 사건인가 추악한 사기인가? 저자는 이 같은 질문을 세우고 정신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며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며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오랜 시간 광기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광기를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주장했던 초기 종교와 물질적인 신체와 완전히 별개로서 합리적 이성이 무너진 부산물이라고 주장한 계몽주의 사상을 거쳐, 19세기에 들어서야 광기는 의학의 대상이 되었고 ‘정신의학’은 탄생했다.

이후 카를 베르니케, 크레펠린 등의 정신의학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뇌를 비롯한 생물학적 원인에서 찾으려 했고, 프로이트는 유명한 무의식 이론을 주장하며 마음을 분석하여 원인을 밝히려 했다. 하지만 광기, 즉 정신이상의 원인을 찾는 여정이 악령과 이성의 문제에서, 뇌와 육체를 거쳐, 보이지 않는 무의식에 이를 때까지 정신의학은 어떠한 과학적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 오직 정신의학자들이 주장하고 합의하는 것, 그것이 ‘정신’을 개념화했다.

 


 

이 과정에서 회전의자, 뇌엽절리술, 허술한 약물 처방과 같은 끔찍한 치료를 시행했고, 우생학과 단종법, 정신분석과 극단적 진단 허무주의 사이를 크게 오가며 진단에서도 치료에서도 어떠한 답을 밝히지 못했다. 정신의학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누구나 정상에서 추방당할 수 있었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잘못된 치료를 받는 악순환이 역사 내내 계속되었다. 정신의학은 과학적 언어가 없다는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을 판단하고 좌우하는 너무나 크고 중요한 힘을 가졌으며,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로젠한의 실험은 이런 사회적 의구심과 함께 계획되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대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로젠한의 이 질문은 정신이상은 어떤 객관적이고 외적인 진실로 인해 진단되는 것이 아닌, 그저 관찰자의 눈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대학교수라는 직함과 〈사이언스〉라는 명망 높은 학술지가 과학적 엄정함을 뒷받침했고, 1960~70년대 당시 거세게 불었던 반정신의학 운동과 광기에 대한 대중들의 옹호는 로젠한 실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 일조했다. 그렇게 로젠한은 실험의 여러 ‘치명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을 수 있었고, 그에 따른 권위를 얻었다. 저자는 로젠한 실험의 역사적 배경을 꼼꼼히 살피며, 실험이 계획되고 실행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 그리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정신의학 안팎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파고 들어간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과 로젠한 실험의 구체적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로젠한과 관련된 자료와 인물들을 탐색하며, 논문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날조된 로젠한이 숨기려 한 가짜 환자들의 실태를 찾아 나선다. 빌 언더우드라는 이름의 가짜 환자는 로젠한에게 제대로 된 준비를 받지 않은 채 정신병동에 수감되었다. 과도한 약물치료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전기충격요법을 받을 뻔했다.

 


 

또한 로젠한은 빌과 그의 아내에게 그를 언제든지 퇴원시킬 수 있는 인신보호영장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빌은 정신병원에 도사린 온갖 위험에서 어떠한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다. 빌의 아내는 남편과 면회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언젠가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병약자처럼 구는 모습을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보니 참기 어려웠습니다.” 정신병원 수감 경험은 한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로젠한은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모조리 삭제했다.

또 다른 가짜 환자 해리 랜도의 경우 그는 아예 기록에서 삭제되었다. 그가 실험 취지에 어긋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해리는 정신병원에서 안정감을 느꼈고, 의료진 및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현실에서 느낀 불안감과 소외감이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해소된 것이다. 동료들과 진심으로 고민을 나눴고 때로는 리더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해리는 정신병원 생활에 만족했고 이를 보고했지만, 정신의학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게 목표였던 로젠한은 그의 기록을 누락했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실만 가져와 다른 환자의 기록에 덧붙였다. 저자가 밝히는 가짜 환자들의 이야기는 정신병원 내부의 모습, 그리고 정신의학의 한계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로젠한과 가짜 환자들이 의사를 상대로 쓴 속임수, 과장된 진술을 조목조목 살펴보며, 로젠한 실험에 점철된 날조와 왜곡을 흥미롭게 펼쳐낸다.

당시 정신의학계 안에서 실험의 방법론적 결함을 지적하며 가짜 연구임을 고발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내가 혈액 한 통을 마시고는 무슨 짓을 했는지 감추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피를 토한다면, 그곳 직원이 어떻게 행동할지 빤히 예측된다. 그들이 출혈성 궤양이라고 진단하고 치료하면, 의학이 병을 진단할 줄 모른다고 내가 설득력 있게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는 50년 전 진행된 로젠한 실험의 자료를 새롭게 살피며, 로젠한이 오늘날 정신의학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선 숱한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이 폐쇄되고, 전기충격요법·뇌엽절제술 등 효과가 의심되고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많은 과격한 치료법들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로젠한 연구는 사회적으로도 연쇄 반응을 불렀다. 정신질환이 ‘사회적으로 일탈자를 분류하고 정형화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는 프랑스 철학자?역사학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인용하며 ‘모든 광기는 사회적 구성물이며 애초부터 정신병원 시설은 감금을 지배의 도구로 활용한 증거일 뿐’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헝가리계 미국 정신과 의사 토마스 사스는 정신질환이 사회적 골칫거리나 도덕적으로 편향된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억압의 도구라는 주장을 폈다. 스코틀랜드의 정신과 의사 R.D 랭은 정신이상이 ‘미친 세상에 대한 온전한 반응’이라는 반문화적 이론을 내세웠다. “광기라고 해서 반드시 ‘고장’은 아니며 오히려 삶의 돌파구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신의학 치료법의 유효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잠재적인 환자 위해를 주장해온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 운동가들은 연구 결과에 반색했다.

저자는 정신질환은 병변이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논쟁과 생각의 확대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정신의학 종사자들에겐 사회심리학 학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신의학의 지평을 더욱 넓히고 유효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마음의 환자를 위한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확대도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정신의학에 우리의 정신을 맡길 수 있는가?’ 우울증, 공황장애, 성인 ADHD, 조현병…… 누구나 한 번쯤은 정신질환을 염려하는 시대에 이 책이 던지는 도발적 질문은 지금 우리가 논하는 정신이란 것이 무엇이며,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에 대한 길을 찾는 단서를 제공한다.

 


 

저자 : 수재나 캐헐런(Susannah Cahalan)

 

촉망받는 기자였던 저자는 스물네 살의 나이에 삶을 뒤흔드는 정신질환 오진을 경험한다. 병명은 ‘자가면역 뇌염’이었지만 의사들은 차트에 ‘조현병’이라고 적었다. 꼼짝없이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고 결국 정신병원 강제 수감이 결정되기에 이르렀지만, 한 의사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으로 정확한 병명을 밝혀낼 수 있었다. 신체질환을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한 오진, 조현병이라는 꼬리표는 육체와 정신을 사지로 끌고 갔다. 저자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 같은 오진의 희생자가 또 있을까? 자신은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저자는 이 문제를 탐구하는 데 전념했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가짜 환자가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에 잠입하여 정신의학을 송두리째 뒤흔든 ‘로젠한 실험’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마주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데이비드 로젠한이 던진 중요한 질문을 따라 실험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사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로젠한이 왜 정신의학의 기반을 흔드는 실험을 계획했는지, 왜 이런 실험이 가능했고 가짜 환자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데이비드 로젠한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실험의 미스터리한 진면모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과 조사력은 기자 활동 경험에서 비롯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뉴욕 포스트〉 인턴 기자로 시작해 베테랑 기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진 경험을 주제로 쓴 『브레인 온 파이어』가 있다.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세계 22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며, 클로이 머레츠가 연기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역자 : 장호연

 

1971년에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음악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했다. 음악 동호회 얼트 바이러스에서 음악평론을 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해 웹진 [웨이브]에 음악평론을 기고했고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다. 현재 음악과 뇌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얼트 문화와 록 음악 2』(공저),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뇌의 왈츠』, 『뮤지코필리아』,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낯선 땅 이방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거금 100만 달러』,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긍정의 뇌』,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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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하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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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흥화진이 거란군의 기세를 막아내자 거란은 흥화진을 포기하고 남하를 택했다. 지난 2일 방송된 '고려 거란 전쟁'은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풀어갔다. ‘고려 거란 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한 드라마다. 대하 드라마 최초로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에 방영되며 ‘사극 한류’를 이어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앞서 전날 방송된 첫화에서는 고려 땅을 염탐하던 거란 척후병을 발견한 흥화진사 양규(지승현 분)와 강조(이원종 분)는 거란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경계 태세를 취하며 첫 회부터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소설에서도 물론 상권 내용이다.

독자가 상권 내용을 다시 여기에 적는 이유는 방송을 보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펙타클한 오프닝을 비롯해 거란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장군 양규와 강조가 각성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전쟁’을 내세운 만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스펙타클형 전쟁 장면으로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흥화진에는 순검사 양규가 거란의 압박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지휘했다. 양규는 거란으로부터 흥화진을 지켜내기 위해 7일 밤낮없이 사투를 벌이며 40만 대군과 맞서 싸웠다. 참혹한 전장 한가운데에 선 양규의 초인적인 전투력과 희생정신이 빛을 발했다.

거란군은 성문을 돌파하려 진격했지만 양규의 고려군은 기름를 들이부어 불태웠다. 또한 산에다가 돌로 쐐기를 박은 형태의 성벽이라 거란군이 공성무기로 돌을 들이받을수록 더 단단해지기만 했다. 거란은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흥화진을 남겨두는 선택을 하려 했다. 결국 거란의 성종은 흥화진을 버리고 통주에 있었던 강조 휘하의 고려군 주력 30만명을 상대하기로 했다. 흥화진이 버텨낸 것을 알지 못하는 고려군과 강조는 거란군이 남하하자 흥화진이 함락된 줄 알고 좌절했다.

 


 

하권은 도순검사 양규와 그 휘하의 부대 흥위위가 거란에게 빼앗긴 곽주를 탈환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현재의 적은 병력(공성전은 성 안의 군사수에 10배 정도 갖추어야 하지만 10배는 고사하고 성안의 군사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곽주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무모한 전술이다. 중랑장 등 장수급들도 양규의 말을 의심한다. 그러나 양규의 불 같은 성미와 추진력을 잘 알고 있어서 누구 하나 나서서 무리한 전략이라고 반대하지 못한다. 양규는 지금 고려군이 전반적으로 밀리는 상황이고 정공법으로 가기에도 군사의 숫자가 부족해서 택한 방법은 야습이나 게릴라 전밖에 도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전세를 뒤집기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부족이다. 모험이라도 감행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그 위험한 작전의 선봉에 누가 설 것인가? 지난 전투때 거란에 투항하고 살아 돌아온 치욕을 씻지 못하고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사는 노전과 최충 이 두 사람은 참수형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차제에 두 사람은 양규의 부대에 합류하면서 공을 세워 다시 명예를 회복해야겠다는 욕심과 전사해서 명예만이라도 되찾는 수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상태다. 배수진을 친 마음으로 임무를 맡게 된다. 양규로서는 부장급 인재를 두 사람 모두 중용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소수의 병사만 잃고도 기사회생으로 노전과 용기 있는 별동대의 활약은 전쟁의 승리로 끌고 갈 업적을 남긴다. 성문의 빗장을 열고 고려군을 성에 들여 곽주를 탈환한 것이다. 이 소식은 즉각 조정으로 전해지며 이후 완전히 꺾였던 고려군의 전의가 되살아난다. 소설은 이 부분에서 강감찬을 언급된다. 조정의 대신들에게 야전에서 승전보를 듣고만 있는 우리 고관들이 더 분발해야하지 않느냐고 채근하였고 투항은 있을 수 없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장구머리(머리가 몸에 비해 큼)와 단신의 외모로 다소 볼품이 없었던 문신 출신 강감찬은 눈에 띄는 공적은 없지만 원칙주의를 잃지 않아 가늘지만 길게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터다. 구주대첩의 중심에서 전공을 세운 구국의 영웅으로 알며 역사를 배웠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양규를 중심으로 김순흥 등 제목처럼 여럿의 '고려의 영웅들'을 그려내고 있다.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귀주대첩. 사진 출처 : 전쟁기념관

 

강감찬은 예부시랑이나 육십이 넘은 나이다. 평소 말이 많지 않다. 소설에서는 원리원칙주의자인 데다가 이상주의자로 자신의 원칙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그의 성격으로 조정 대신들로부터 멀어지는 '왕따' 신세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게도 왕따 신세는 마찬가지다. 너무 고지식해 높은 품계로 올라가기가 엄두도 못낼 위인이라고 아내로부터 매일 비난을 듣는 신세다. 그러나 법도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어서 누가 험담하거나 불의한 일을 상의해오지 않은 것은 오히려 강감찬 개인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관료들이 평소 강감찬과 가까이하기를 꺼린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안위를 지키는 데에는 더 호재였을 것이다. 강감찬은 관료들끼리 사적인 교분을 맺는 것을 싫어했고 당파를 이루는 것은 더욱 싫어했던 까닭에 굳이 관료들과 어울려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문하생들의 모임에도 당연히 나가지 않았다. 강감찬은 관료들끼리 사적 교분을 지나치게 맺으면 조정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권에서는 이처럼 강감찬의 성격과 조정에서의 위치 등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저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곧 있을 강감찬의 구(귀)주대첩을 예고하는 듯하다. 사실 2차 침입 때는 양규와 김숙홍의 활약이 가장 인상적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그들의 이름은 아예 없는데도 역사에서는 큰 업적을 남긴 것이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그들의 영웅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로 상권에서 펼쳐지는 곽주 탈환, 결심한 후 거침없는 행보는 본받을 만하다. 또 거란의 포로로 잡힌 고려인을 구하고자 애쓰는 모습은 감동까지 안겨준다. 승전을 기약할 수 없는 전략으로, 절박함까지 더해진 양규의 리더십은 길이 기려 마땅하다.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 역사 상 가장 치열하고 힘든 전쟁으로 기억된다. 후에 몽골군의 침략으로 완전히 나라가 망가지기 전까지 말이다. 고려 초기이기 때문에 이때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고려를 앞으로도 400년 가까이 더 이어질 수 있는 고려 정신과 강한 나라의 자긍심을 갖게 했기 때문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 책 『고려거란전쟁』은 역사 기록의 가감 없이 순수한 사료에 바탕을 두고 극적 긴장감을 갖춘 채 고려의 정신과 강한 나라의 자부심을 되살려 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각하! 우리는 모두 ‘벼락같이’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명만 하십시오!” 양규가 보니 이관이었다. 이관은 투구를 쓰지 않은 채였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적 병장기에 머리 부분을 얻어맞은 듯했다. 이관의 수하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양규는 그중 한 젊은 군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을 보자, 그의 이름이 ‘선명’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양규는 선명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흑낭대 낭장 원태가 병장기를 높이 들며 외쳤다. “우리는 거란주를 잡으러 간다! 내가 앞장설 것이다!” 원태의 외침에 흥위위 초군들이 병장기를 높이 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흥위위가 간다!” 흥위위 초군들이 기세를 올리자 김숙흥이 구주군에게 말했다. “구주군,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 구주는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 또 다른 전설을 쓸 것이다. 우리는 지금 거란주를 잡는다!” 구주군 역시 힘차게 외쳤다. “구주~~~~~!” 구주군이 함성을 지르자, 이보량이 구주 도령기를 스스로 높이 들었다. 양규가 모두에게 명했다. “우리가 거란주를 잡아 이 전쟁을 끝낼 것이다! 진격하라!” 고려군들은 이제는 기다려서 방어하지 않고 전진했다. 거란군들을 밀어붙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계속 나아갔다. 오직 거란주의 깃발을 목표로!(하권, p.437~438) - 「벼락같이」 중에서

 


 

거란군들은 물러갔으나 이제 시작이었다. 이후 거란군의 침공이 십 년 이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양규와 김숙흥은 이 전쟁을 스스로 끝내지는 못했지만, 거란에 막대한 피해를 줘서 거란의 그 후 침공을 늦추게 된다. 그 시간 동안 고려는 내부적 힘을 기를 수 있었다. 팔 년 후, 소배압이 다시 한번 개경까지 밀고 들어오나….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 달 사이에 모두 일곱 번을 싸워 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삼만여 명을 되찾았다. 그 전공으로 양규에게 공부상서(工部尙書)가 추증되었고, 아들 양대춘(楊帶春)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현종은 손수 다음과 같은 교서를 지어 양규의 처 홍씨(洪氏)에게 내려주었다. “그대 남편은 장수로서의 지략을 갖추었고 또한 올바른 정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항상 올곧은 절개를 지니고 밤낮으로 직무에 충실하였다. 그리하여 끝까지 나라에 충성을 바쳤으니, 그 충정은 비할 데가 없는 것이다.

북쪽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용맹을 떨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니, 그 위세는 돌과 화살을 압도했다. 적을 추격하여 생포하고 그 힘으로 국토를 안정시켰다. 한 번 칼을 뽑으면 만 명의 적군들이 다투어 달아나고, 강궁을 당기면 모든 적이 항복했다.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어 나라를 구했으나 불행히도 전사하고 말았다. 그 빼어난 전공을 항상 기억하여 이미 관직을 높였으나 다시 보답할 생각이 간절하다. 따라서 양규의 처인 그대에게 해마다 벼와 곡식 일백 석을 내려줄 것이다.” 김숙흥(金叔興)에게는 장군을 추증했으며, 또 그의 모친 이씨(李氏)에게 교서를 내렸다. 교서의 글은 다음과 같다. “추증한 장군 김숙흥은 변방의 성을 지킬 때부터 적과 용감히 싸워 파죽지세의 승리로 전공을 세웠으나,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그 공을 기념하여 마땅히 후한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에 그의 모친에게 매년 곡식 오십 석을 종신토록 주노라.” 현종 10년(1019)에는 양규와 김숙흥에게 공신녹권(功臣錄券)이 내려지고, 15년(1024)에 다시 두 사람에게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칭호를 내려주었다.(2권, p. 444~445)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길승수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역사 콘텐츠를 좋아해서 역사학과와 관련 학과를 다녔다. 어느 날 역사 소설을 쓰기로 결정하고 ‘고려와 거란의 2차 전쟁’을 다룬 소설 《고려거란전기, 겨울에 내리는 단비》를 썼고 후속작품인 《고려거란전기, 구주대첩》을 집필 중이다. 방송활동으로는 역시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JTBC 평화전쟁1019〉에 작가와 자문으로 참여했으며, 2023년 11월에 방영 예정인 KBS 대하사극 〈KBS 고려거란전쟁(가제)〉에 원작자와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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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상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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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극 시대가 열리는가? 공영방송 〈KBS〉가 대하 사극 시대를 연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다. 방송가에서는 이때부터를 '정통사극의 시대'라고 꼽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태조 왕건〉이 훨씬 더 알려져 있다. 현재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바람과 구름과 비〉, 〈파천무〉가 크게 유행하고 〈삼국기〉가 인기를 끌면서 정통사극은 전성기를 맞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KBS1에서는 〈야망의 세월〉과 〈먼동〉과 〈김구〉를 제작, KBS2에서는 월화정통사극 시리즈였던 〈한명회〉, 〈장녹수〉, 〈서궁〉, 〈조광조〉를 제작, 인기를 끌었다. KBS 대하드라마는 〈찬란한 여명〉을 시작으로 〈용의 눈물〉과 〈왕과 비〉가 방영되면서 시청률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대하드라마 시대를 지속시켰다. 2000년대 김대중 정부 때에도 사극의 전성기는 이어졌고, 특히 KBS 대하드라마인 〈태조 왕건〉은 지금도 우리 국민들에게 큰 궤적을 남기고 있을 정도다.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는 각 방송국이 사극을 연속으로 기획해 한국의 방송은 매일 사극을 방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KBS의 성공적 사극 시대를 이끌었다는 평가에 MBC는 거의 퓨전으로 전환했는데 〈허준〉이 방송사의 자존심을 지키며 정통 사극의 맥을 이었다. SBS는 〈연개소문〉, MBC는 〈주몽〉으로 정통사극 시대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대조영〉을 끝으로 '퓨전사극'의 약진에 눌리는 상황으로 바뀌었지만 KBS는 〈정도전〉을 시작으로 정통사극을 다시 부활시켰으며〈광개토태왕〉, 〈불멸의 이순신〉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퓨전사극도 꾸준히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면서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왜 정통사극이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독자는 아마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빼어난 역사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우선 정통사극의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재료로서의 실록은 극을 쓰는 작가들의 화수분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작가들의 각고의 노력과 연출, 배우, 스탭들의 노력이 뒷받침했지만 역시 왜곡 없는 정통 사극이 국민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 때문으로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이는 서희(942~998년). 사진 출처 : 전쟁기념관

 

이 책 『고려거란전쟁』은 고려 역사에서 잊혔던 영웅들과 그들의 위업을 다시 한번 기리는 소설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이 책은 지난 11월부터 방영되는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의 원작으로 전작 〈고려거란전기:겨울에 내리는 단비1, 2〉를 대폭 개정한 것이며, 고려와 거란 사이의 긴 전쟁을 유일하게 다루는 정통 ‘역사소설’이라고 한다. 특히 대하드라마, 정통사극 등이 인물(영웅) 중심의 드라마인데 비해 이 책은 '전쟁'이라는 표제어가 암시하듯 역사에서 잊혀지는 많은 영웅들을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대하드라마 정통사극과 결을 달리한다. 이 책의 저자 길승수는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JTBC 평화전쟁 1019〉에 대본 작가와 자문으로 참여했으며,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에도 원작자와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1010년 거란의 2차 침공’을 다루고 있으며 ‘1019년 구주대첩’으로 이어지는 그 후속 이야기도 곧 선보일 예정으로 알려졌다.

소설의 배경은 10세기 초, 신라가 쇠퇴하며 왕건이 세운 고려가 한반도의 지배 세력으로 떠오른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은 그 시절 고려와 거란의 긴밀한 대립 구도 속에서 벌어진 전란 중, 특히 거란의 두 번째 고려 침공(1010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당대 고려를 둘러싼 주변 상황과 주요 사건,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인물들을 충분한 고증과 연구 끝에 흥미진진한 이야기 안으로 불러냈다는 점, 서희와 강감찬 뒤에 가려졌던 고려의 명장 양규를 재조명하여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또 한 사람의 명장을 회자하게 했다는 점은 이 소설만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다. 또한 이 소설은 양규 외에도 김숙흥, 강감찬, 조원, 강민첨 등 고려의 중요 장수들은 물론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오르자마자 전란을 마주한 고려 현종에 대한 살아 숨 쉬는 듯한 묘사를 통해 그들의 고뇌와 충정을 가슴으로 읽게 해준다고 방송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저자 길승수는 조선 후기까지 거의 잊혔던 인물들의 업적과 역사적 사건을 『고려사(高麗史)』, 『요사(遼史)』, 『송사(宋史)』 등의 신뢰할 수 있는 사료를 근거로 철저히 연구하고 재구성해 현대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독자들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 전란의 현장,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과 고민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사적으로 주요한 이슈나 사건을 재평가하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 특화한 이 책은 “고려 거란 전쟁에 관한 유일무이한 원천 콘텐츠”로서 앞으로 다양한 장르로 개발하는 데 있어서나 학술적 토론, 그리고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는 데에도 큰 몫을 담당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소설의 상권 시작 부분에서는 강조(康兆)라는 인물이 중심이 된다. 고려시대의 무신으로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이 왕위에 올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종 즉위 후 중대사(中臺使)라는 벼슬에 올랐다. 거란(요)의 성종이 침략해 오자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가 되어 싸웠다고 한다.사망 연도가 1010년으로 거란과의 전쟁 중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강조는 왕을 시해하고 다른 왕을 왕위에 올리는 등 무력을 행사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는데 목종 때는 중추사우상시(中樞使右常侍)로서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다. 우리가 역사로 배워 알고 있는 바, 1009년(목종 12)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가 외척 김치양과 더불어,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를 계기로 정변을 일으켜 대량군(大良君) 순(詢: 현종)을 옹립하고 목종을 시해하였다. 현종 즉위 후 중대사(中臺使)가 되었고, 이듬해 거란의 성종이 목종을 시해한 데 대한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40만 대군으로 침입해 오는 빌미를 제공했다. 물론 이는 거란의 침략 명분이었지 고려는 주권국으로 거란에 왕의 재가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는 나라다. 30만의 고려군을 이끌고 통주(通州)에서 거란과 맞서 싸우다 사로잡혔다. 거란의 성종으로부터 자기의 신하가 되라는 회유와 압력을 받았으나, 끝내 거절하고 살해되었다.(일부 두산백과 참조)

 


 

앞서 언급한 대로 고려는 자주국으로 조선시대와 달리 왕권 계승 때 당시 중국이나 여타 강대국의 허락을 받는 나라가 아니다. 송나라와 친교를 맺고 대국으로서의 대우와 맞물려 송나라는 상업 정책 등 내치에 힘을 기울여 속국이나 고려에 간섭하지 않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였다. 그러나 거란이 세를 불리다 압도적 기병의 군사력으로 점차 송나라는 물론 배후국으로 고려의 힘을 먼저 약화시키기 위해 고려를 침략해 들어왔던 것이다. 이는 태조 왕건 때부터 이어진 고려의 북진 정책과 친송 정책이 거란의 침입을 부른 원인이 되었을 것이란 역사적 판단도 있다. 태조 왕건 이후 고려는 4대 임금인 광종 때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와 정식으로 국교를 맺으면서 송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라 이름을 고려로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를 잇고자 했던 것으로 고려는 강한 군사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도 갖추지 못한 30만 대군을 강조가 이끌고 거란의 40만 대군과 맞섰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고려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북진 정책을 꾸준히 진행시켜 온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려의 친송 정책과 북진 정책은 거란을 자극했을 것으로 보인다. 압록강 유역에 살고 있던 거란은 늘 고려가 송과 군사 동맹을 맺어 자신들을 공격할까봐 초조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송보다 먼저 고려와 외교를 맺으려는 까닭이다. 그러나 고려는 문명이 뒤떨어진 야만족으로 거란을 싫어했다. 독자가 TV에서 어느 사학자가 한 강연을 들은 바에 따르면 태조 왕건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라고 생각해서 무척 경계했다고 한다. 942년 거란이 고려와 친해지기 위해 낙타 50마리를 사신과 함께 보낸 적이 있었는데, 태조는 그 낙타들을 다리 밑에 묶어 굶겨 죽여 버리기까지 한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저자 길승수가 소설 첫 머리에 〈일러두기〉를 통해 1010년 당시 고려의 군사 편제를 밝혔는데 중앙군 6위가 정예부대로 상설 운영되는 군사들인 것 같다. 이에 따르면 전투부대, 치안 유지, 의장대, 수문 부대 등 약 3만 명이다. 이 밖에 국경의 주·진에 주둔하며 방어를 담당한 주진군, 노동을 담당한 사역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한 숫자는 명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록에 없는 듯하다.

 


 

당시 상황과 교통로, 해안과 군사들의 무기도 자세히 그림과 함께 책 앞 부분에 새겨 넣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검차(劍車)'다. 이는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한 무기라고 한다. 검차란 많은 검(劍)을 실어 다연발로 쏘는 이동이 가능한 무기라고 한다. 거란병이 쳐들어올 때 강조가 검차를 진에 배치하여 가까운 산에 진을 치고 또 하나의 부대는 성에 의지해 진을 쳐서 방어했다고 한다. 특히 검차는 이때 무더기로 쳐들어오는 검차는 위력을 발휘한 무기로서 기마병을 거꾸러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거마창' '골타' '철질려' '목만 또는 포만' '야차뢰' '낭아박' '첨두목려(충차)' '투석기' '운제' 등이 수성과 공성 무기로 쓰였다고 한다. 자세히 그림과 함께 본문에도 사용하는 방법이 자주 언급되기에 독자들의 전황 읽기에도 좋은 시도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전작을 드라마에 맞게 개작을 했다고 말했다. 아마 드라마로 제작한다는 방송국 방침을 전해 듣고 좀 더 스토리의 긴박성과 극적인 장면에 첨삭을 가했을 것이다. 스토리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니 바꿀 게 없을 것이지만 전투 장면이나 각 인물의 성격, 업적 등에는 조금씩 고쳐 썼을 것으로 판단된다. 글로만 읽으면 독자가 상상한 대로 몰입해 읽을 수 있지만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면 독자들의 상상력을 압도할 만큼의 화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긴장감과 극적 상황이 없게 될 경우 스토리 전개는 마치 우리가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을 고려와 거란으로 나뉘어 책을 읽기 전에 시대 배경과 전쟁 국면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으로 판단해 몇 명씩을 소개한다. 고려 측의 주요 인물 중 우리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인물과 유명 인물이 함께 섞여 있으나 아마 주요 활동을 고려해 저자가 나열해 놓은 듯하다. 이에 따르면 양규는 서북면 도순검사(압록강 국경지역의 최고위직)로서 거란군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김숙흥은 구주(龜州,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시) 별장(무반 정7품)으로 양규와 함께 거란군에 맞선다.

 


 

또 조원은 통군녹사(문반 정7품)로서 중하급 관료이나 중책을 맡게 된다. 강민철은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으며, 1010년 전쟁 당시 애수진장(문반 7품)으로 역시 중하급 관료였다. 왕순은 당시 고려의 왕 현종을 가르키며 순은 이름이다. 18세에 강조에 의해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여기서 강감찬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관료였으나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상권보다는 하권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아내에게 핍박받는 요령 없는 인물로 드라마에서는 배우 최수종이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 강조는 앞서 언급했듯 고려의 주력군을 이끌고 거란군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지만 방심으로 적군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한다.

거란군의 주요인물은 우리가 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어서 드라마 방송사 KBS의 소개로 대신한다. 물론 저자 길승수는 책 앞 부분에 고려 주요인물 다음에 거란의 주요인물을 배치해 놓았다. 이 가운데 '야율융서'의 첫 등장 신에서는 차가우면서 이성적인 모습으로 나왔다. 인물이 어떻게 묘사되던 간에 복장이 야만족처럼 묘사되었던 천추태후보다는 영향력이 큰 이민족처럼 묘사되었다.

고려 장수들의 복장은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에서 사용한 여말선초 찰갑 소품을 기반으로 송나라 양식의 봉시식이 달린 투구를 착용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KBS는 밝히고 있다. 고증에도 엄청난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여말선초와 여요전쟁은 거의 수백 년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찰갑은 제작 방법의 특성상 형태의 기본적인 큰 틀은 고대부터 중근세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 불화나 불탑 부조, 고려도경이나 몽고습래회사 속 묘사 등을 참조해보면 고려군은 송나라와 매우 유사한 양식의 투구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해 설득력 있는 고증을 마쳤다고 한다. 특히 고려시대는 실제 유물이나 벽화 등이 많이 남아 있는 삼국시대, 조선시대 갑옷과는 달리 시각적 자료가 부족한 탓에 사극에서 판타지 갑옷을 입힌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고 KBS 측은 밝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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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까지 인류가 상상한 온갖 저세상 이야기
켄 제닝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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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사후 세계'란 어휘가 요즘 책 표제어에 자주 등장하는 점을 주목한다. 최근 '사후 세계'가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 등 예술의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아마 SF(과학판타지)의 영향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비스럽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상상의 세계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후 세계란 단어는 사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할 정도로 오래된 말이다. 사후 세계는 한 단어가 아니라 두 개의 명사가 합쳐진 복합명사이다. 사후(死後), 즉 '인간이 죽고 난 이후 가는 세상'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an afterlife', 'the other side'쯤으로 해석된다. 인류가 기록으로 남긴 사후 세계만 보더라도 이미 고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수메르 문명에서는 BC 4000년 경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점토판 문자에 기록됐다고 하니 말이다.

주로 종교적 의미에서 사후 세계를 창출해 낸 것은 살아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선(善)하게 살아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쉽게 해석할 수 있다. 위대한 세계 종교인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모든 종교가 경전을 통해 사후 세계를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등도 마찬가지다. 사후 세계는 인간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서인지, 아니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인지는 무신, 무교인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종교에서 가장 먼저 개념을 도입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후 세계는 영적인 면, 민간 신앙적인 면 등을 가정하는 만큼 과학과는 정반대의 입장일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독자는 최근 그 생각마저도 달라졌다. 과학의 영역인 한 정신과 의사의 책 『애프터 라이프(원제: AFTER)』를 읽고서다. 의사가 사후 세계를 들먹이는 것조차 과학자가 미신을 믿는 것처럼 어색한 것은 독자만의 느낌일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체는 모두 죽음을 피하려 한다. 오히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생물체는 인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프터 라이프』는 50년 전 '죽었다 살아난' 사람을 치료한 경험을 했다. 그 환자가 들려준 사후 세계 경험 이야기에 충격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의사가 직접 치료한 사람에게 직접 들은 사후 세계는 정신분열증에 의한 환각을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실제 있기는 한 듯하다. 어떻게 죽고 난 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갖고 있다는 기독교에서도 예수가 신(神)의 아들이냐, 사람의 아들이냐로 한때 논란이 있었다. 아마 '부활'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아무 종교도 없는 독자로서 무지한 탓인지 믿기지 않지만, 교계에서도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오래 전부터 이 사실에 주목하고 그들의 사례를 찾아 직접 이야기를 듣는 등 한 과학자의 연구와 노력으로 '사후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애프터 라이프』는 쓰여졌다. 종교인도 아닌, 과학자가 이런 연구를 한다는 사실이 중세라면 마땅히 처형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듯 저자 브루스 그레이슨은 50년 전 의과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응급실에서 자기가 진료한 환자가 말한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40여 년간 1,000건 이상의 임사체험 사례를 모아,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경험과 대조하면서 세계 최초로 임사체험의 다양한 주제와 의미를 통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특히, 개인의 독특하고 신비한 체험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의미, 그리고 임사체험을 경험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적용될 만한 여러 인사이트는 죽음 이후의 삶, 과학과 영성, 삶의 의미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큰 충격과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독자는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한 번도 사후 세계를 경험한 적이 없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영역에서의 관심을 갖게 해줄지도 모른다.

 


 

이 책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는 미국의 한 작가 켄 제닝스가 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여행하는 법에 관한 가이드를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책 등 예술에서의 '사후 세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100가지 이야기(Afterlife), 즉 사후 세계란 사람 혹은 생명체가 죽은 뒤에 가게 된다고 여겨지는 세계를 말한다.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늙고 병들어 죽기 마련이지만, 오직 인류만이 죽음을 걱정하고 이 사후 세계를 상상하고 준비하였으며 철학과 종교를 통해 영혼과 내세의 존재에 관한 논쟁을 벌여왔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자, 시인, 신비주의자, 예술가, 드라마 작가들이 5,000년 동안 꿈꿔온 사후 세계를 총망라한 여행서이자, 죽음을 맞이한 이후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상상해보게끔 돕는 가이드 역할의 책이다. 책에 따르면 실제로 고대인들은 죽음을 일종의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책은 사후 세계에 관한 ‘쓸데없지만 알아두면 좋은’ 각종 지식까지 제공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문호 단테의 '지옥' 중 가장 멋진 숙소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고대 이집트 지하 세계의 최고급 식당은? 힌두교의 저승에서 살인 뱀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데스, 오딘의 발할라, 더 굿 플레이스에 숨겨져 있는 보물은? 잡학의 대가이자 매력적인 글솜씨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저자 켄 제닝스가 이 별난 여행의 동반자로 나선다.

이 책은 ① 신화(MYTHOLOGY) ② 종교(RELIGION) ③ 책(BOOKS) ④ 영화(MOVIES) ⑤ 텔레비전(TELEVISION) ⑥ 음악과 연극(MUSIC AND THEATER) ⑦ 기타 다양한 사후 세계들(MISCELLANEOUS) 등 7개 분야로 분류돼 있다. '사후 세계'를 다룬 각종 기록물과 책, 영상, 음악 등을 망라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까?’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내놓는다. 저자는 지역과 풍습, 시대와 자연환경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왔다고 전제하고, 수천 년 동안 전 세계의 신화, 종교, 책, 영화, 텔레비전, 음악과 연극 등에 그려진 사후 세계를 모두 100곳으로 간추려, 일곱 파트의 각 주제별 출처들이 정의한 사후 세계관을 자세히 다룬다.

이집트 지하 세계부터 이누이트 얼음 지옥 등의 신화, 가톨릭의 연옥과 불교의 열반 등 종교, 단테의 시와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현대의 팝송, 게임, 〈심슨 가족〉 같은 애니메이션,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지옥 풍경, ‘긱 경제’로 돌아가는 2020년대의 천국까지... 시대와 국경, 장르를 넘나드는 방대한 스케일의 인용에 읽을수록 감탄하게 되는 이 책은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인문서일 뿐 아니라 신화와 전설의 상상력이 어떻게 근사한 문화 상품으로 탄생하였는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레퍼런스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사후 세계에 대한 문명별 사유의 특징과 핵심을 재치 있게 풀어내는 저자는 공포와 죄의식, 욕망과 믿음,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인류 오랜 고민의 역사들을 편견이나 난해함 대신 흥미진진함으로 다가오게끔 만들어준다.

우리는 보통 전쟁이나 집단 학살, 대형 참사 같은 참혹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인간의 운명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인류가 상상하고 믿어온 ‘내세’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이들, 문화권마다 다른 삶과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이 현대문화에 어떻게 스며들어 왔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먼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점검이 끝났다면, 여행지 선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영원은 엄청나게 긴긴 시간이다. 계획을 잘못 세워 엉뚱한 곳에 ‘영원히’ 머무르는 재난은 피해야 한다. 게다가 언제 이 여행을 떠나게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지 않는가. 자, 이제 책장을 넘겨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러 가자. 이 여행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꼭 해보고 싶어 하는 여행이니 말이다.”(p. 11)

 


 

저자에 따르면 사후 세계는 죽은 후에도 영혼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기에,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크게 달래주기도 했다, 그 믿음은 수많은 종교들을 흥하게 하였고 때론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도록 하였으며, 〈스타트렉〉 클링온제국 용사들이 그러하듯 전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죽음은 신의 영역이니, 우리는 그저 현생을 충실히 살아가면 될까? 혹은 다음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는 이번 생의 노력에 달렸다고 믿으며 수행을 거듭해야 할까? 과학적 시각에서 인간의 정신활동은 뇌(육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뇌가 죽은 이후에도 정신이 유지되어 다른 세계를 여행한다는 개념은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부정된다. 저자 역시 천국이 있는지, 진짜 환생을 하는지는 증명할 수 있는 성격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향한 ‘믿음’을 가지는 것도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죽고 나서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진정한 모험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오래된 인류의 상상을 통해 마주하고, 위트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 삶 또한 두렵지 않다. 고대 문명인들이 상상한 내세에서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그려지는 천국까지, 저자 켄 제닝스가 심혈을 기울여 셀렉트한 이 별난 여행지들은 우리가 앞으로 더 단단한 삶을 살아가도록 안내하는 중요한 표지판이 되어줄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을 들여다볼 준비가 된 독자들은 이제 기상천외한 모험의 세계로 들어간다.

 

“전생에 향수를 훔쳤다면 암컷 사향 쥐로 환생하게 되고, 금을 훔쳤다면 끔찍한 손톱을 가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며, 스승의 배우자와 바람을 피웠다면 지상에서 풀 한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풀 덩어리로 사는 것은 매우 지루하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때 딱히 끔찍한 죄를 짓기도 어려울 테니 다음 환생에서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풀 덩어리가 벌통을 파괴하거나 생선을 거래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p. 126) - 「2장 종교: 나라카(힌두교)」 중에서

 


 

앞서 언급한 한 의사의 연구보고서 『애프터 라이프』는 과학자가 썼고, 이 책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는 인문 서적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의사가 쓴 사후 세계 임사체험자들은 모두 천국을 묘사하고 있지만, 작가가 쓴 이 책은 천국과 지옥 또는 연옥 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점이 앞으로 사후 세계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상상력 세계를 더욱 깊고 확대하게 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독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② 종교(RELIGION)' 파트에서 「열여덟 지옥」을 말한 불교의 장(章)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세계의 종교 대부분에서 지옥의 불은 영원하지는 않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불은 기독교만큼이나 영원히 지속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생전에 부처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실천하기 위해 정진하지 않았다면 사후 세계에서 반드시 고통을 겪게 된다고 경전의 내용을 밝힌다. 탄생과 죽음의 순환인 '삼사라(Samsara, 윤회)'는 모든 사후 세계가 끝이자 시작이며, 망자는 이승 또는 저승으로 결국 다시 환생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불교의 지옥에 관한 최초의 산스크리트어 문헌과 팔리어 문헌에 따르면 땅 밑에는 여덟 개의 불타는 지옥이 존재한다. 각각의 지옥은 각 변의 길이가 1.000km가 넘는 정사각형 모양의 요새로, 철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철로 만든 지붕의 높이도 1,000km가 넘는다. 이 요새는 바닥도 철로 돼 있으며, 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불길은 사방 몇 km까지 퍼진다.

불교에서는 정확하게 누가 누구를 괴롭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 지옥의 무자비한 간수들이 부리가 쇠로 된 까마귀, 불을 뿜는 당나귀, 뾰족한 입으로 죄인의 뼈를 뚫고 골수를 파먹는 짐승 등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지옥에서 이렇게 죄인들은 몸을 해부당하고 뜨거운 쇳물을 먹기도 하지만, 이승에서 겪는 실명, 문둥병, 광기, 추함, 자식이 없이 느끼는 외로움 같은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또 여덟 개의 불타는 지옥 외에도, 후기 불교 경전에서는 하늘 끝에 위치한 산에 있는 열 개의 '차가운' 지옥을 다루고 있다. 이 지옥은 생전에 가난한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누지 않은 사람들의 업보에 대한 형벌을 가하는 곳이라고 강조하며 생전 선한 행동을 저자는 귀띔하고 있다.

 


 

“이 사후 세계에서 여러분은 전날 살았던 모든 기억을 간직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매일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같은 대화를 하게 되고, 날씨까지 끊임없이 똑같이 반복되기 때문에 마치 폐소공포증 환자가 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상황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허무주의, 쾌락주의, 도피주의, 이타주의 등 다양한 삶의 철학을 매일 새로 시험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p. 250) - 「3장 책: 시간 거품 『7번째 내가 죽던 날』」 중에서

 

저자 : 켄 제닝스(Ken Jennings)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역사 · 문학 · 예술 · 대중문화 · 과학 · 스포츠 · 지질학 · 세계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미국 유명 텔레비전 퀴즈 쇼 [제퍼디Jeopardy!]에 출연해 기록적인 74연승을 거두며, 무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서 일약 지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올해의 가장 매력적인 인물’, ‘상식 세계의 제왕’, ‘상식계의 마이클 조던’ 등의 수식어를 보유한 그는 2022년부터는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미국 문화의 이모저모를 다룬 『브레이니악Brainiac』, 지도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맵헤드Maphead』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그가 이번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여행하는 법에 관한 가이드를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저자는 책을 쓰는 과정에서 100개가 넘는 다양한 사후 세계를 조사하면서, 죽음의 개념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며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역자 : 고현석

 

연세대학교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 과학부, 〈경향신문〉 생활과학부, 국제부, 사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과학기술처와 정보통신부를 출입하면서 과학 정책, IT 관련 기사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현재는 과학과 민주주의, 우주물리학, 생명과학, 문화와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기획하고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다마지오의 『느낌의 진화』와 『느끼고 아는 존재』를 비롯하여 『지구 밖 생명을 묻는다』, 『코스모스 오디세이』, 『의자의 배신』, 『세상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수학 공식』, 『측정의 과학』, 『보이스』, 『제국주의와 전염병』, 『큇Quit』, 『우리 몸은 전기다』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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