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심중일기 1 - 혁명이냐 죽음이냐 그의 진짜 속마음은?
유광남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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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처참한 침략을 받은 전쟁으로 기억된다. 왜(倭)로 지칭되던 일본의 침략 야욕은 자신들의 전국(戰國)시대를 통해 통일국가를 만들어냄으로써 마감하고 전역 지배권을 손에 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늘 식량 부족과 물자 부족을 겪던 섬나라 일본은 대륙 정벌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다. 특히 막 전쟁을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을 도왔던 지방세력가인 다이묘들의 눈을 외부로 돌리고 힘을 분출시키기 위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품었다. 무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전쟁에 참여한 다이묘나 군사들에게 전리품도 안겨야 했다. 도요토미가 혼란 정국을 풀어낸 방식은 대륙 정벌을 위한 한반도에 먼저 눈을 돌린 것이다. '정명가도(征明街道)'란 명분을 내세워 한반도를 불법 침략했다. 그들이 명분으로 내세운 정명가도는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전쟁이 7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다. 임진년(1592년)과 정유년(1597년) 각각 쳐들어 왔다. 앞의 것을 임진왜란이라 하고, 뒤의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표기한 것이지만 하나의 전쟁의 일직선에 있다.

이 소설 작품 『이순신의 심중일기』는 임진왜란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소설의 내용에 따라 붙여진 제목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 다른 각도로 들여보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작가의 자유이지만 저자 유광남은 사실을 비틀어 한 발 더 나아간 상상을 했다고 밝힌다. 즉 무능하고 사리사욕만 챙기는 조정 대신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으면 백성들에게 훨씬 더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이는 충무공의 애민 정신을 높이 산 것이고, 그 애민 정신이 전장에서 스러짐에 대해 아쉬움의 작가적 표현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저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단행해 조선에 새로운 하늘을 열어줘야 했다는 아쉬움으로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작가의 심중일기」란 제목의 〈머리말〉을 통해 밝힌다. 저자는 이순신의 삶을 따라가면서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시기를 포착했고, 이 시기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한 팩션(Faction)을 그려냈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당시 조정 대신들의 상소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죄를 입증할 명분을 찾았다고 확신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한, 이순신은 구금으로 인해 난중일기 대신 마음속의 심중일기를 작성하게 된다. 조선의 미래와 백성을 위해 무능한 선조와 전쟁 중에도 사익을 위해 당파싸움에 매몰된 조정을 뒤엎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에 기록된 대로 전쟁이 끝나고 어명을 거역한 죄로 고역을 치를 것인가에 대한 갈등과 고뇌하는 충무공의 인간적인 모습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다. 이미 벌어지고 지나간 일을 훗날 뒤돌아보는 것은 교훈을 얻고 뼈저린 반성을 통해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소설도 '만약'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상당히 자제한다. 자칫 역사를 뒤틀리게 해석함으로써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를 없애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라를 구하는 등 '영웅'에 대한 문학 작품은 더욱 영웅적이고 존경할 수 있는 인물로 미화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더욱이 우리는 당시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이란 나라는 아예 없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배웠지 않은가. 왕의 무능함, 조정 대신의 사리사욕에 의한 정파싸움... 국제 정세에 어두운 관리들이 조정에서 세력 다툼만 한다면 나라의 앞날은 어둡지 않을까. 또 그런 왕과 조정 대신들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이런 의심도 사실은 무의미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조정은 무능했다. 다행히 몇몇 대신들은 신하로써 충성과 나라의 앞날에 대한 비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조선의 바다를 지키던 충무공은 전쟁 이후의 나라와 백성들의 삶에도 지극한 정성을 엿보이는 『난중일기』를 남김으로써 쿠데타로 역성혁명을 통해 새 왕조를 열 생각은 없었다는 점이 밝혀진다. 다만 위대한 장군에 대한 개개인이 그나마 희망이요, 삶의 미래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역사는 실록 등 글로 남겼다.

 

 

사람들이 생각한 개인의 명예나 이익보다는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곧 '백성을 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 것으로,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기록으로 남겨졌다. 이를 통해 전쟁이 끝난 지 50년 가까이 지난 1643년(인조 21)에서야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고, 1659년(효종 10)에 남해의 전적지에 그의 비석이 세워졌다. 1707년(숙종 33)에는 충청도 아산(牙山)에 세워진 그의 사당에 ‘현충(顯忠)’이란 호가 내려졌으며, 1793년(정조 17)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두산백과) 이런 이순신이 역성혁명을 꾀한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저자는 '난중일기'를 '심중일기'로 바꿔 백성들의 삶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면 해볼만한 가정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결국 이순신이란 영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가를 강조하는 의미로 되돌아가는 소설이 『이순신의 심중일기』이다. 난중일기가 그의 사후에 밝혀졌다.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백의종군한 사실도 조작된 누명이라는 사실을 '수정실록'에서 밝혀지며 누명은 벗게 되었음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이순신을 역성혁명의 주역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나라와 백성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를 난중일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토대로 오랫동안 탐구하고 사유를 거듭해 이순신이 꿈꾸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에 대한 사유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저자는 이순신에 대해 신무기를 개발한 창의력, 천재적 전략전술, 자급자족의 경영능력, 신분을 가라지 않는 인재발탁, 전투의 시작과 끝을 예측한 혜안을 가진 영웅으로 규정 짓는 데서 출발한다. 임진왜란은 16세기 말에 끝났다. 17세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동아시아 한·중·일의 영웅들은 어땠을까? 당시의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이들은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여진족)의 누르하치는 청나라를 세우고,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막부를 세웠다. 저자가 안타까운 지점이다. 가장 먼저 바꿨어야 할 조선의 이순신은 왜 전사해야만 했을까? 저자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배어 있다. 이로써 저자는 "역사는 때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전쟁 중에도 압송하여 34일간 옥에 가뒀던 이순신을 선조는 왜 방면할 수밖에 없었을까? 노력 끝에 저자는 그 답을 선조수정실록에서 찾아냈다고 털어놓는다.

 


 

저자에 따르면 1592년 임진년에 발생한 조선과 일본의 임진왜란은 조선왕조 역사 중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위기의 조선을 구한 명장이 바로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이다. 그가 남긴 난중일기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으로 가득하며 왜적과의 전쟁에 소홀함이 없는 위대한 장군의 기록이다. 그러한 이순신 장군이 반역을 꾀하였다? 이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낸 일종의 픽션 소설이다. 그러나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무능한 왕 선조와 당쟁부패(黨爭腐敗)의 신하들

이들은 병마(病魔)이며 내 절망적 고통의 시작과 끝이다.

그들을 모조리 달 밝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목을 베고 싶다.

아마도 그들의 피는 붉지 않을 것이다.

오염(汚染)된 그 피를 거북도 외면하리라.

길은 외길이다. 반란(反亂)!

-이순신의 心中日記 중에서-

 


 

이순신은 정유재란을 목전에 두고 모함을 받아서 하옥된다. 백성들의 혼란은 안중에도 없고 당권의 당쟁만을 일삼는 조정의 중신들과 왕에게 아첨하며 부패해 가는 그들에게서 이순신은 절망한다. 무능한 왕 선조에 대해서 인간적 배신감도 느낀다. 그의 가슴은 분노로 격탕하게 되고 옥중에서 마음속의 일기 심중일기를 작성한다. 그런 나라를 세우자는 젊은 장수가 한 명 있다. 이름은 김충선, 항왜, 즉 조선에 항복하고 귀순한 일본인으로 이제는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조국 일본과 대적하는 불가사의한 그가 절규한다.

“이순신의 나라는 백성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순신의 나라는 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백성들이 꿈꾸는 나라가 될 것이옵니다.”

 

조선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나의 소원은 결코 외롭지 않다. 이순신은 고립되어 있지 않다. 그의 탁월함으로, 놀라운 지도력으로, 조선의 사대부들도 지지를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모는 이순신의 함대처럼 순항한다.

- 김충선의 옥중일기(亂中日記) 중에서-

 

김충선은 모함으로 압송당하여 죽게 될 이순신을 구하기 위해서 반역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오직 그 방법만이 극악한 왕 선조로부터 이순신을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는 영의정 류성룡과 도원수 권율, 의병장 곽재우 등 당대의 권력가들을 접촉하며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를 위해 왕과 사대부의 권위를 누려오던 특권층의 붕괴를 노린다. 하지만 그들 역시 철저히 가진 자의 권력을 누려왔던 왕권 결탁 세력이었다. 그들은 과연 동조할 것인가? 이 책 『이순신의 심중일기』는 왕 선조에 대한 충성심과 분노, 그리고 일본에 대한 철저한 응징으로 서술되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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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전 시집 : 카페 프란스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정지용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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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 『정지용 전 시집-카페 프란스』는 한때 이름 없는 시인이었던 정지용의 시집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하던 시인으로 해방 후까지 시작과 시집 발간에 몰두했으나 6·25 전쟁 중 납북되어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 시단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동하며 적지 않은 시를 남겼다. 한국문단사에도 큰 업적을 남긴 당시 우리 시단의 대표적 시인이었다. 일도 많지만 6·25전쟁 중 납북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과 사망이 확인되지 않을 때까지는 시인의 이름은 '정O용'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그는 시인이지만 정치색이나 친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어 어쩌면 북한 인민군이 자신들의 선전용으로 납치해 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지용은 특히 윤동주와의 관계가 돈독했고, 윤동주보다 연배여서 선배로 많은 역할과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해방 후 윤동주의 시집 발간에 앞장 서고, 윤동주의 일제 때의 행적을 가장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쓴 시보다 윤동주의 시집을 펴내는 데 더 힘을 쏟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했으며,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 한 주인공이었다. 이동원,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유명한 「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가 가장 존경한 시인이자 일본 도시샤 대학의 선배이기도 하다. 정지용은 해방 후 경향신문 주간으로 재직하면서 윤동주의 시를 알리는 데 앞장섰으며 윤동주의 시집이 나올 때 윤동주를 대신해서 〈서문〉을 쓰기도 했다. 윤동주는 살아생전에 정지용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은 1935년 발간됐다. 이 시집 『정지용 전 시집-카페 프란스』 1부에 그대로 전재됐다. 이 시집은 윤동주 시인의 유품으로 남겨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만큼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를 아꼈다. 책에는 1936년 3월 19일 ‘동주소장’이라는 글귀가 친필로 쓰여 있다. 윤동주 시인이 평양 숭실중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문단사에 따르면 정지용 시인은 절제된 언어와 우리말을 감각적으로 활용한 신선한 시 작품들을 발표하며 이후 한국 시에 확연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 책에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들을 원본 그대로의 표기를 살려 실은 이유도 그에게서 탄생한 시에 담겨 있는 풍성한 우리말을 가능한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자 한 데 목적이 있다고 출판사 측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지금과 다른 표현에는 각주로 설명을 해 놓아 이해에 어려움이 없도록 출판사가 배려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시집 『정지용 전 시집-카페 프란스』는 1부 〈정지용 시집〉, 2부 〈백록담〉 그리고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잡지 등에서 새로 발굴한 작품과 〈미수록 작품〉들로 구분하여 실었다. 1부에는 우리 전통의 서정성과 이국정취가 배합된 시들이 좀 더 특징적이라면, 2부는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그려져 정지용 시인의 변화도 알 수 있다. 한편 이 책은 가톨릭 신자인 그의 신앙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통해서는 그가 받아들인 천주와 성모에 대해서 느끼도록 해 준다.

우리는 대부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의 시를 처음 알게 됐다. 그가 납북된 이후 그의 시를 소개하는 것도, 그의 이름을 밝히는 것도 매우 어려웠던 남북의 극한의 대치 상황 속에서 우리 역시 납북인사인지, 월북인사인지,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 여부가 드러나지 않은 인사들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기에 일어난 분단의 비극이 여실히 반영된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이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사상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시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터였는데도 말이다. 시 「향수」는 이동원과 박인수 교수가 듀엣으로 노래해(1995) 히트곡이 되면서 조영남 등 많은 가수가 부르게 된다. 가장 유명한 노랫말이 된 시가 되었다. 정지용의 시를 읽으며 당시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그의 삶이 여실히 전달되는 감상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위로도 받을 것이다. 그의 시는 모더니즘 경향의 시들을 주로 발표했지만 향토색 짙은 우리의 언어와 사투리, 자신의 신조어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등 시작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한국시사는 그의 시를 크게 세 시기로 특징이 구분한다. 첫 번째 시기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는 「향수」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는 그가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으로 활동했던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그는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여러 편의 종교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반」, 「불사조」, 「다른 하늘」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36년 이후로, 이 시기에 그는 전통적인 미학에 바탕을 둔 자연시들을 발표했다고 한국시사는 기록하고 있다. 「장수산」, 「백록담」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자연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산수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지용은 이처럼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분단 이후 오랫동안 그의 시들은 다른 납북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다 수많은 문인의 청원으로 1988년 3월 비로소 해금되어 대중에게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9년에는 〈지용 시문학상〉이 제정되어 박두진이 1회 수상자로 선정된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중에서

 


 

이 책의 표제어가 된 「카페 프란스」는 정지용이 지상(紙上)에 발표한 최초의 작품이자 그가 쓴 초창기 시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향토적 서정의 상징인 「향수」와 상반되는 모더니즘의 색채를 띠고 있다.

 

옴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쟈. - 「카페·프란스」 중에서

 


 

2부 〈백록담〉의 표제어가 된 '백록담'은 한라산 백록담을 보고 쓴 시로서 우리 국토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기상을 노래한다. 이 시는 장시이자 산문시다.

1.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팔월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통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 「백록담」 중에서

 

또 다른 장시 「슬픈 우상」 역시 산문시다.

 

이밤에 안식(安息)하시옵니까.

내가 홀로 속에ㅅ소리로 그대의 기거(起居)를 문의할삼어도 어찌 홀한 말로 붙일법도 한 일이오니까.

무슨 말슴으로나 좀더 높일만한 좀더 그대께 마땅한 언사가 없사오리까.

눈감고 자는 비달기보담도, 꽃그림자 옮기는 겨를에 여미며 자는 꽃봉오리 보담도, 어여삐 자시올 그대여!

 

그대의 눈을 들어 푸리 하오리까.

속속드리 맑고 푸른 호수가 한쌍.

밤은 함폭 그대의 호수에 깃드리기 위하야 있는 것이오리까.

내가 감히 금성(金星)노릇하야 그대의 호수에 잠길법도 한 일이오리까. - 「슬픈 우상」 중에서

 


 

저자 : 정지용(鄭芝溶)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 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전쟁 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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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뮤지컬
이수진 지음 / 테오리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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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아무리 디지털이 발전을 거듭하고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아날로그 감성의 낭만적 분위기와 사랑의 표현을 담고 있다. 디지털로서는 대체불가 대중예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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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뮤지컬
이수진 지음 / 테오리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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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뮤지컬과 친해진 지 10년도 채 안 된 풋내기이긴 하지만 공연 예술이란 점과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갖게 됐다. 조금 알게 되면서부터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거의 가보질 못해 실제 뮤지컬 관람 횟수도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독자는 호흡기 만성질환이 있어 의사로부터 사람 많은 곳은 가급적 피하라는 주의를 받아서 뮤지컬 공연을 직접 본 지가 3년을 훌쩍 넘긴 것 같다. 그래도 뮤지컬 공연 포스터나 광고를 접할 때는 가슴이 설레고 꼭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 때가 많다. 콘서트는 CD나 음원을 구매해 들으면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지만 뮤지컬은 그마저도 어렵다. 연극처럼 무대 아래서 직접 봐야 하는 즐거움이 있는데 연극을 영화로 보는 것처럼 재미도 덜하다. 이 책 『밤새도록 뮤지컬』은 조그마한 책자로 여러 편의 뮤지컬 해설 모음집에 가깝다. 뮤지컬 평론가 이수진이 펴낸 '뮤지컬을 향한 사랑'을 수줍게 고백하는 에세이이기도 하다다.

저자 이수진은 스스로를 '뮤지컬 덕후'라고 말한다. 일주일에 9편의 공연을 보러 다닐 정도로 뮤지컬에 푹 빠져 살았다는 것. 미국에서는 공연에 중독된 사람들을 '씨어터고어(Theatergoer)'라고 한다면서 뮤지컬에 중독된 사람을 우리나라 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뮤지컬 덕후'가 적절할 것 같다는 고백을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힌다. 저자는 특히 자신이 사랑한 열다섯 편의 작품을 이 책에서 다룬다. 이 작품들 속에는 여성, 성 소수자, 생의 끝에 선 노인 등 세상의 주류에서 벗어난 다양한 군상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원래 뮤지컬은 오페라에서 파생된 장르라고 한다. 당초 뮤지컬의 명칭은 '뮤지컬 코메디' 또는 '뮤지컬 플레이'의 약칭이다. 뮤지컬이 스토리가 있는 연극과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19세기 영국에서 탄생하였는데, 그 근원은 유럽의 대중연극이다. 1728년 이와 형식이 비슷한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가 런던에서 상연되었는데, 조지 에드워드(George Edwardes)가 제작한 〈거리에서(In town)〉(1892년 초연)를 첫 뮤지컬로 보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특히 뮤지컬은 대중극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뮤지컬의 기원과 연관이 있으며, 뮤지컬이 상업적 공연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데에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귀족 중심의 오페라와 구분되기도 한다.

 


 

미국은 최초의 뮤지컬 코메디를 탄생시켰다고 백과사전에 등재돼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성행한 벌레스크(해학적인) 희극에다, 유럽에서 발달한 오페레타를 조화시킨 것이다. 작곡가 제롬 칸, 대본에 리처드 로저스, 작사자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등이 등장했다. 이들은 미국인의 꿈과 향수를 제재로, 미국의 민요와 흑인음악의 멜로디, 그리고 리듬을 적극 수용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일환으로 미시시피강을 내왕하는 쇼보트를 무대로 인생의 애환을 그렸는데, 바로 〈쇼보트〉(1927)다. 이것은 오늘의 뮤지컬의 기초를 다졌다고 두산백과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또 G.거슈윈은 G.S.카프만과 리스킨드의 대본으로 〈나는 너를 위해 노래한다〉(1931)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문학적 가치가 높은 뮤지컬을 시도하였다. 거슈윈은 만년에 흑인생활을 리얼하게 그린 〈포기와 베스〉(1935)를 만들었는데, 경쾌한 리듬과 나른한 멜로디를 특징으로 하는 노래를 썼다. 〈포기와 베스〉는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서구식 뮤지컬의 첫 작품이다. 1966년 동랑레퍼토리극단에서 도입, 시도했다. 이 작품은 앞서 1950년대 말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하였으나, 컷이 많고 음악이 제대로 살지 못하여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 이수진은 젓가락을 들 힘이 있을 때까지 극장에 가고 싶다는 ‘뮤덕’답게 이 책을 무대 삼아 주인공들과 함께 마음껏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마치 극장의 한쪽에서 뮤지컬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작은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뮤지컬 덕후에게는 작품을 추억하게 하고, '뮤린이'에게는 작품을 보는 눈을 알려주는 뮤지컬 입문서, 해설서”로서 적절하다. 저자의 뮤지컬에 대한 남다른 지식과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뮤지컬 덕후답게 ‘뮤지컬 넘버’에 대한 설명도 깔끔하다.

 


 

미국은 최초의 뮤지컬 코메디를 탄생시켰다고 백과사전에 등재돼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성행한 벌레스크(해학적인) 희극에다, 유럽에서 발달한 오페레타를 조화시킨 것이다. 작곡가 제롬 칸, 대본에 리처드 로저스, 작사자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등이 등장했다. 이들은 미국인의 꿈과 향수를 제재로, 미국의 민요와 흑인음악의 멜로디, 그리고 리듬을 적극 수용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일환으로 미시시피강을 내왕하는 쇼보트를 무대로 인생의 애환을 그렸는데, 바로 〈쇼보트〉(1927)다. 이것은 오늘의 뮤지컬의 기초를 다졌다고 두산백과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또 G.거슈윈은 G.S.카프만과 리스킨드의 대본으로 〈나는 너를 위해 노래한다〉(1931)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문학적 가치가 높은 뮤지컬을 시도하였다. 거슈윈은 만년에 흑인생활을 리얼하게 그린 〈포기와 베스〉(1935)를 만들었는데, 경쾌한 리듬과 나른한 멜로디를 특징으로 하는 노래를 썼다. 〈포기와 베스〉는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서구식 뮤지컬의 첫 작품이다. 1966년 동랑레퍼토리극단에서 도입, 시도했다. 이 작품은 앞서 1950년대 말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하였으나, 컷이 많고 음악이 제대로 살지 못하여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 이수진은 젓가락을 들 힘이 있을 때까지 극장에 가고 싶다는 ‘뮤덕’답게 이 책을 무대 삼아 주인공들과 함께 마음껏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마치 극장의 한쪽에서 뮤지컬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작은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뮤지컬 덕후에게는 작품을 추억하게 하고, '뮤린이'에게는 작품을 보는 눈을 알려주는 뮤지컬 입문서, 해설서”로서 적절하다. 저자의 뮤지컬에 대한 남다른 지식과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뮤지컬 덕후답게 ‘뮤지컬 넘버’에 대한 설명도 깔끔하다.

 


 

‘뮤지컬 넘버’는 뮤지컬 속 노래를 말한다. 뮤지컬을 몇 번 보기 전에는 독자도 뮤지컬 속에 나오는 음악에 번호를 붙여 표현하는 것으로 알았다. 알고 보니 거꾸로 알았다. 뮤지컬을 제작할 때 극의 이야기를 정하고 특정 장면의 노래를 숫자로 정한 뒤 이후에 제목을 붙여 만든다고 한다는 것. 뮤지컬의 노래를 ‘넘버(number)’라고 말하는 것이다. 뮤지컬 넘버는 뮤지컬을 시작하는 ‘오프닝 넘버’나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프로덕션 넘버’등이 있다. 각 뮤지컬을 대표하는 뮤지컬 넘버는 극 중 이야기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소설이 원작이지만 워낙 명성 높은 작품이라 영화와 뮤지컬 등으로 타 장르에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 초연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금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서울과 지방에서 공연이 진행 중이다. 원작은 독자들도 읽어보았을 빅토르 위고의 '불후의 명작'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배계층에 의해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던 일반 시민들이 1832년에 지배계층을 상대로 일으킨 ‘민중 봉기’에 대한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불리는 '민중의 소리가 들리는가'라는 합창이 있다. 이 합창은 실패할 것을 알지만 옳은 길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구슬프면서도 힘찬 느낌을 주어 굳센 의지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노래를 '뮤지컬 넘버'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뮤지컬은 한국전쟁 후 연극과 함께 시도됐지만 제대로 된 공연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이후라고 한다. 창작곡도 이 무렵 많은 명작을 남긴다. 〈아리랑, 아리랑〉(1988), 〈아리송하네요〉(1989), 〈그날이 오면〉(1991), 〈꿈꾸는 철마〉(1992) 등이 공연됐다고 전해진다. 특히 〈명성황후〉는 굉장한 인기와 한국 뮤지컬을 한 단계 끌어올린 뮤지컬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첨예한 디지털화로 경제사회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21세기 사회에서 뮤지컬 산업은 오히려 비복제의 문화적 특성이라는 아날로그 요소를 근간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대 위에서 반복적으로 실연되는 공연 산업의 예술적 형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장기 상연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는 상업성을 동시에 이루는 뮤지컬은 근본적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의 합일을 지향하는 태생적 특성이 반영된 문화 산업 분야라 할 수 있다. 뮤지컬의 이러한 본질적 속성은 예술적 체험에 무게를 두는 다른 공연예술 생산물들과 차별되는 독자적인 특성을 만들어 냈으며, 더불어 다양한 대중성의 반영과 형식적 재구성의 전통을 일궈내는 문화 산업적 환경을 잉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뮤지컬의 본산지 19세기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많은 돈을 모은 시민들이 새로운 지도층으로 성장했고, 이들이 이전 귀족과는 다른 예술을 원했기에 대중성 있는 뮤지컬이 탄생한 것처럼 우리도 산업화 이후 중산층이 늘어난 것과 때를 같이하는 점을 비춰볼 때 맥락을 같이 한다고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사회적 풍요가 자연스럽게 대중적 예술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이 매우 비슷하다. 지금 뮤지컬은 대중 예술의 총아다.

뮤지컬은 또 내용적 구분에서 사실주의 무대라기보다는 낭만주의 연극에 가까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낭만주의 연극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정형보다는 정열이, 사실성보다는 환상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뮤지컬이 여타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화려하고 낙천적이며, 환상성을 띠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낭만주의적 성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 이수진은 뮤지컬 공연장에 가면 화려한 무대와 배우의 멋진 연기 등 볼거리가 있고,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격정적이며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아련한 멜로디와 노랫말의 넘버도 있다고 말한다. 뮤지컬 〈원더풀 타운〉에는 ‘남자에게 차이는 백 가지 지름길’이라는 넘버가 나온다. 소위 여성지에 많이 실리던 이른바 남자 잡는 법을 비튼 제목이다. 뮤지컬을 즐기는 데도 백 가지 지름길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중 ‘뮤지컬 넘버’라는 지름길로 뮤지컬을 즐기러 간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뮤지컬은 자신만의 ‘뮤지컬 넘버’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라카지〉의 드랙퀸 앨빈은 세계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자신을 당당하게 여기고 숨지 않으며 세상에 당당하게 소리친다. “이게 바로 나”라고. 〈렌트〉의 모린과 조안은 각자의 다른 애정관을 두고 자신의 사랑법이 옳다고 주장한다. 두 여성이 이 노래를 부를 때의 두 인물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치매 걸린 빌리의 할머니는 안개 낀 듯 희미한 기억 속에서 다시 인생을 산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과 만나지 않았을 사람과 마음 주지 않았을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살림할 돈으로 위스키와 맥주를 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할머니와 결혼한 적도 없었던 그 할아버지에 대해 노래한다.

〈서편제〉에서 오로지 송화만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예술을 완성시키는 인물이다. 무대 위 송화는 소맷자락을 거두듯이 모든 원망을 거두며 눈을 뜨고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부른다. 그리고 〈원더풀 타운〉에서 루스는 좀처럼 낫지 않는 남자들의 불치병, 이제는 최소한 병명은 붙은 유구한 역사의 병을 퇴치할 노래를 부른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병을 퇴치할 노래 ‘남자에게 차이는 백 가지 지름길’을. '뮤지컬 넘버'에 대한 저자의 애착은 강하다. "뮤지컬의 매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 절대 놓칠 수 없는 한 가지는 ‘뮤지컬 넘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열다섯 곡의 ‘뮤지컬 넘버’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마치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듯 독자와 끊임없이 교감한다.

 


 

그토록 미워했지만 할아버지와 춤을 추던 순간만은 할머니의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고, 그 기억만큼이나 많은 댄서들이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할아버지처럼 담배를 들고 창문을 넘어 들어와 할머니와 춤을 추고 다시 하나씩 둘씩 창문을 넘어 나가버린다. 연기처럼. 할머니의 기억처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할머니의 지나온 인생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하나의 넘버로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인생이 완벽하게 그려진다.(p.94)

 

이 뮤지컬(서편제)에서 오로지 송화만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예술을 완성시키는 인물이다. 눈이 멀어서도 소리꾼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유랑꾼이다. 그런 인물의 삶이 어찌 어린 소녀처럼 긴 소맷자락 안에 갇히랴. 누구보다 큰 질곡을 겪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은 강한 인물이건만 송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그를 망가뜨리면서도 사랑한다고 부르짖던 그 사람들의 시선 안에 갇힌다. 이 뮤지컬을 볼 때마다, 살포시 송화의 소맷자락을 올려주고 싶어진다. 그때는 송화가 눈을 번쩍 뜨리라.(pp.115~116)

 

그 ‘주말의 명화’나 ‘토요 명화’ 시간에 가끔 뮤지컬 영화들을 방영해주곤 했다. 그런 날이면 부모님과 함께 나란히 앉아 밤늦도록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뭔지도 잘 몰랐던 어린 시절이라 왜 서양 사람들은 총천연색의 화면 속에서 사랑 고백을 노래로 하는지 궁금했었다. 부모님이 어린 자식을 재우지 않고 맘 놓고 보여줄 수 있는 영화 대부분이 뮤지컬 영화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좀 더 철이 든 후에야 알게 되었다.(pp.140~141)

 

저자 : 이수진

 

어린 시절엔 진짜 믿었다. 주인공이 길에 나서서 노래를 부르면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모든 사람이 웃는 얼굴로 연주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세상이 진짜 있다고 믿었다. 나도 그런 세상에 끼고 싶어 뮤지컬에 입문했다. 하지만 정작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작품을 간혹 쓰고, 번역도 하고, 공연평도 하면서 뮤지컬 동네에 한 발 슬쩍 걸친 삶을 살고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100년을 개괄한 《뮤지컬 이야기》를 공저로 쓴 일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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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
강한수 지음 / 파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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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사진으로만 봤던 유럽의 성당들을 실제로 처음으로 독자가 본 것은 지난 90년 대 해외여행 자유화조치 이후였다. 사실 산업화 시대에 해외 여행과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간다는 것은 꿈으로 그리기만 했을 뿐 실제 다녀 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산업화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민주화도 차츰 성숙되어 가던 90년 대 초 공산주의 붕괴에 따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승리감에 젖어 있을 무렵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DP)이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했고,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였다.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들떠 흥분하기도 했다. 남북통일도 독일처럼 무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가능할 것도 같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군사 독재를 넘어 처음으로 민간 정부라는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 군부독재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많은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쉽지 않을 거란 금융실명제도 철저한 보안 속에 성공적으로 달성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때 국민들을 더욱 흥분하게 했던 일이 해외여행 자유화조치였다. 외국 여행 가서 쓸 수 있는 돈(환전)도 5,000달러에서 10,000달러로 상향 조치했다. 너도 나도 해외 여행을 꿈꾸고 대다수 국민이 해외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해외 여행은 필수 요소가 될 무렵이다.

시류에 편승해 독자도 유럽 여러 나라를 묶어 여행을 다녀오는 일정으로 첫 해외 여행을 갔다. 꿈에 그리던 유럽이라서 들뜬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 가본다는 의미에서 훨씬 힘들기도 했다. 말(영어)도 수준에 미달해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 여행을 하기로 했고, 그만큼 비쌌지만 처음이라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돈의 여부에 관계 없이 가기로 했다. 여행사가 미리 나눠준 사전 지식을 위한 팸플릿 등을 순식간에 복 또 본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하니 유럽의 유명한 관광지 중심이었다. 처음 유럽에 나가는 터라 유적이나 유명 관광지가 훨씬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보였음은 물론이다. 지금이라면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보다는 친구나, 가족, 연인 등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때는 앞뒤 가릴 상황이 되지 못했다. 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밀라노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관광하다가 일정 중에 있던 밀라노 대성당이었다. 차에서 내려 유명한 극장(스칼라 극장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근처를 5분 정도 걸였다. 그 골목길을 돌아 나온 순간 눈앞에 펼쳐진 건축물에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졌다. 밀라노 대성당이라고 하는데 이게 과연 사람이 지은 건물인가 할 정도로 크고 높았다. 거기에 장식마저 화려했다. 건물을 보고 압도 당한 느낌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성당은 건축미뿐만 아니라 내부 장식이나 꾸밈이 매우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나 불행이었던 것은 내부 관람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공사 중이라는 이유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외부에도 위쪽 부분에 가림막을 쳐두고 있었다. 위쪽 외부 공사는 낙석 위험이 있어서 아예 몇m쯤 떨어져야 한다는 안내 표지판도 있었다. 지금도 있겠지만 광장의 동상 안쪽으로 출입 저지선을 쳐놓고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성당 내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때라 외관이 아름다운 더 많은 것을 보기를 원했기에 섭섭하지는 않았다. 성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도 못했기에 오히려 광장 옆에 바로 붙어 있는 실내 시장에서 구경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유럽의 성당은 이때의 일정으로 몇 개 더 있었고, 다른 곳은 내부에도 들어가 봤지만 상상보다는 크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크게 떠들면 안 된다는 말과 사진 촬영 금지라는 가이드의 주의 사항을 듣지 않아도 분위기 자체가 무겁고 약간은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였다. 그냥 구경만 하는 식으로 돌아다녔지만, 이 때 한 가지 깊게 머릿속에 박힌 것은 성당의 건축 기간이다. 기본 200년에서 400년이 넘은 것도 많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단지 건설에도 2~3년이면 끝낸다는 '빠른 공사'를 장점이는 사실이 돋보일 때이기에 유럽의 성당 규모는 물론 건축 기간도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독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에 더 성당을 보러 다니지도 않았기에 유럽의 성당에 대한 짧은 지식은 거기서 멈췄다. 그러나 이 책 『고딕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을 읽으면서 독자의 단견과 이해 부족을 절감했다. 지금 유럽 문명이 가장 앞선 문명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상태에서 왜 그들은 그렇게 건축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을까? 이 책은 강한수가 오랫동안 탐구하고 연구한 성당 건축 연구의 일면을 독자들이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독자도 한 번 읽음으로써 일부 암기도 가능할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사실 저자는 '건축가'가 아닌 '신부'이다. 의정부 교구 소속의 사제로 〈교구주보〉에 3년 간 연재해온 글을 책으로 엮었다. 전작 『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이 1부라면, 이 책 『고딕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는 2부이자 완결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에는 그럴 만한 이력이 있다. 사제로서는 독특하다고 할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전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국내외 건축현장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그것이다. 이후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로마 그레고리아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공부하며 건축과 신학의 내밀한 관계를, 특히 중세 동안 진행되어온 성당 건축에 스며있는 신학적 배경과 건축공학은 물론 역사, 철학, 문화, 예술적 비의를 해독하는 안목을 갖추었다.

 


 

이 책은 성당 건축 양식 중 로마네스크에서 이어지는 고딕 양식의 과도기에서 후기 고딕에 이르는 건축 양식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지역적 문화적 특성이 성당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서로마 멸망 후 새로운 권력 재편 과정에서 중세 유럽의 성당들은 당대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당연히 아는 만큼 보일 수밖에 없으며, 알게 될수록 이제까지 그저 경건함과 웅장함의 이미지 속에 감추어졌던 깊은 의미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이 부분을 세심하게 다루면서도 성당의 배치와 구조와 변화의 양상 등 신학적이며 건축적인 관점에서의 이해를 친절하게 돕고 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웅장한 중세 유럽 고딕 성당들이 왜 그런 형태를 하고 있는지, 외부와 내부 구조의 원리가 무엇인지, 천장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그 낱낱의 의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라면 외관을 보고 내부를 상상할 수도 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로마네스크에 이은 고딕 성당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친절하고 세심한 탐구와 설명으로 중세 천년으로의 여행에 독자를 초대하는 셈이다.

로마는 제국 후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 발표 이후 재판소나 집회장 등으로 사용되던 공공건물을 개조했던 바실리카 양식은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전환되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12세기 중엽에 등장했던 초기 고딕 성당은 로마네스크적인 요소가 잔재해 과도기적 경향을 띠며, 13세기에 이르러서야 고전적 고딕 성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책은 고딕 성당의 긴 여행을 로마네스크 성당인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레세(Lessay)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에서 시작한다. 고딕 양식의 조짐이 태동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로마네스크'가 '로마다운'이란 뜻이었다면, ‘고딕’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을 가리키는 '고트인의'란 뜻을 지니고 있다. 고딕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화가이자 미술사가 조르지오 바사리(1511~1574)다. 새롭게 등장했던 미술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고딕’ 또한 처음 등장할 때는 ‘조악하고 야만적인 고트족의 문화’라는 멸시의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고딕 양식은 고트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13~15세기 무렵의 예술 양식을 통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고딕 양식은 건축으로 대표되며 이 시기의 건축은 고딕 성당으로 요약된다. 고딕 성당은 로마네스크 성당보다 웅장하며 수직성을 강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육중한 벽체와 기둥은 훨씬 더 날렵해지고 창은 넓어졌다. 높게 솟은 첨탑은 하느님을 향한 종교적 열망을 한껏 드러내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풍부한 빛은 신비롭고 경건하기만 하다. 파사드 상단에 장미꽃을 닮은 원형 창(장미창)을 배치해 이곳이 영원한 진리와 빛, 그리스도의 거처임을 밝히고 있다. 이 모든 공간적 변화는 새로운 건축 기술인 포인티드 아치(Pointed arch, 첨두아치)와 리브 그로인 볼트(Rib Groin Vault, 늑재 교차 궁륭),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공중 버팀벽)란 외부 버팀목이 발명됐기에 가능했다. 이 세 가지 건축 기술이 고딕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핵심을 이룬다.

흔히 중세를 문화의 암흑기라 말하지만, 고딕 성당을 염두에 두면 의문을 품지 않을 수밖에 없다. 중세에 발아하고 꽃을 피운 고딕 성당이야말로 서양문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고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딕 성당이야말로 당대의 종교, 역사, 철학, 예술 등 모든 문화의 집결체이며 상징적 공간이라고 한다면,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저자는 고딕 양식과 스콜라철학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동시성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스콜라 학파는 인식의 ‘명료함’을 추구했다. 심지어 신의 존재마저도 가시적으로 드러내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신의 현존을 빛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당연히 성당은 빛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이를 위해 건축의 수직성과 벽체의 경량화, 크고 넓은 창문을 확보하는 기술이 개발되어야만 했다.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고딕 양식의 건축이 태동하고 발전을 주도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거쳐 샤르트르 대성당에 이르면서 고딕 양식의 성당 건축은 전성기를 누리게 되고, 랭스 대성당과 아미엥 대성당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프랑스의 고딕 양식이 이웃 국가들에 전파되고 지역성을 반영한 양식으로 변주되면서 유럽의 고딕 양식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의 솔즈베리 대성당,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등이 그 대표적인 성당들이다. 각국의 후기 고딕 양식은 프랑스의 수직성에 대한 강요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고딕 이전의 고전적인 수평성과 개성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로마네스크 양식의 끝자락에서 고딕 양식으로 이어지는 태동기에서 시작해 유럽의 각국으로 전파되어 나름의 고딕 양식을 갖추게 되는 완성기에 이르는 성당 건축의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과정의 갈피에 스며있는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맥락을 짚어냄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친절히 돕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유럽의 유서 깊고 고풍스러운 성당들이 그냥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기둥 하나 창문 하나에 스며있는 중세의 역사와 건축적 변화, 당시 사람들의 신에 대한 지극하고 숭고한 믿음의 이야기들이 저자의 말처럼 귀에 남아 쟁쟁하게 울릴 터이니 말이다. 독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가톨릭 신자도, 지금의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한마디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에 감동을 받는 까닭은 성당의 건축 양식의 변화가 유럽 문화의 역사와 신앙의 역사, 그리고 당시대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역시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의 변화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마리아의 중개에 대한 신학자들의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중세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마리아의 존재는 세상살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어루만져주시는 자비로운 어머니로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교좌성당이 성모 마리아(노트르담)를 주보 성인으로 정했고,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성모 마리아 성당, 곧 노트르담 대성당이 파리의 노트르담 주교좌성당입니다.(p.67) -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중에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북부에서 이어진 이탈리아 고딕의 생명력은 이미 지난 세기에 수도원 성당에서 시작된 대형화를 넘어서 '거대화'(Gigantismo)의 경향을 띠었습니다. 그중에서 밀라노 대성당이 대표적입니다. 밀라노 대성당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 대장군'(Cattedrale della Nativita della Beata Maria)으로 봉헌되었으며, 이전에는 '산타 마조레 대성당'과 '산타 태클라 대성당'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386년 종탑이 무너진 후 대주교는 새로운 성당의 건축을 명했습니다. 밀라노 대성당의 건축은 건축가뿐만 아니라 수학자와 화가 등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계획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건축가는 고딕의 보편적 구조주의를, 톡일 건축가는 첨탑 등의 수직성을, 이탈리아 건축가는 정사각형 비례와 기하학적 물질성 등의 고전주의를 주장했고, 결국 그들의 관심은 수직성과 수평성이 모두 강조된 거대화에 집중되었습니다.(p.244~247) - 「밀라노 대성당」 중에서

 

저자 : 강한수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제다. 사제의 길을 걷기 전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외 현장에서 일했다. 이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7년 후 사제서품을 받고,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공부했다. 의정부교구 평신도 교육기관인 신앙교육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고, 본당 사목을 하면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사론을 가르쳤으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이다. 안식년에 로마 사피엔자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고대 및 중세 건축사 연수를 했고, 현재 본당 사목을 하면서 건축신학연구소를 맡고 있다. 저서로 『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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