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냥 떠 있는 것 같아도 비상하고 있다네 세트 - 전2권 ㅣ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5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름을 들먹이면 아는 체한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독자들에게 니체는 잘 알려져 있다. 학교에서 그의 철학을 많이 가르쳐서 알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독자 생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덕분이다. 코로나 펜데믹이 세상에 막 알려질 무렵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감염병 발생지가 어디든간에 감염병 발생, 특히 호흡기 관련 감염병이라면 전염성이 강하기에 우선 국경부터 틀어막는다. 그만큼 세상이 개방되고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하루면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갈 수 있는 세상이다. 니체가 왜 코로나와 관계가 있을까? 독자의 판단이지만, 독자 역시 재택 근무가 늘어나면서 회사를 직접 출근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나중에는 일주일에 하루만 회사에 나가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 등에 하루의 상당 부분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밖에 나다니는 것이 제한돼 있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직장 생활한다는 핑계로 멀리했던 책을 손에 잡았다. 잘 들르지 않던 온라인 서점을 찾았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서먹서먹했지만 이내 평정을 찾았다. 카테고리를 먼저 익히니 이용법에 금세 익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은 '니체'의 책이 많았다는 점이다. 니체의 저서 번역본은 물론, 우리나라 철학자가 쓴 니체의 해설서, 또 주석서, 에세이 등 다양하게 니체는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었다. 왜 니체가 인기(?)가 좋을까? 오랜만에 서점에 들른 독자가 섣불리 판단 내릴 문제는 아니었다.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을 선택해 주문했다. 니체 관련 책은 아니었다.
며칠 후 신문에 니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일간지 일요판 '책 소개' 면이었다. 니체의 책이 가장 크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였으나 기사 중에는 니체가 가장 많이 찾는 책 중의 하나라는 내용이 있다. 책을 담당하는 기자가 쓴 글이다. 그렇게 말한 근거도 '서점 집계'로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그 책을 온라인 서점으로 달려가 주문했다. 니체는 그렇게 독자와 가까워졌다. 그러나 번역본은 물론 우리나라 학자가 쓴 '니체 철학'마저 쉽지 않았다. 우리 학자로서는 굉장히 쉬운 말로 쓰고 있는 것 같지만 한두 문장을 지나면 앞 문장의 말과 연결이 안 되는 듯한 느낌이었고, 에세이마저 단숨에 내리 읽기는 힘들었다.
"니체는 어렵다." "그런데도 코로나 펜데믹을 맞아 대한민국 독자들은 니체를 가장 많이 읽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기사가 다시 떠올랐다.

몇 년 후 니체의 아포리즘과 통찰에 관련된 국내 저자가 쓴 에세이를 읽었다. 그 내용에는 그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 그는 책의 서문을 그렇게 썼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반인반수의 사티로스(Satyros)가 되기를 원했다. 사티로스는 얼굴은 사람이지만 몸은 염소이며, 머리에 작은 뿔이 난 디오니소스의 시종이다. 주신을 모시는 시종답게 술과 여자를 좋아하며, 과장된 표현과 몸짓으로 우스꽝스러움을 자아내는 급이 뚝 떨어지는 잡신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며 디오니소스의 시종을 희망한 이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다. 그리고 이 책 이름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이다. 제목과 서문도 파격이지만, 본문은 한 술 더 뜬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질문을 던지고 차례로 응답한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고등학교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코로나 펜데믹 이전까지 철학 책을 읽은 적이 독자의 기억에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학과목 이름이 〈국민윤리〉였지 〈철학〉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었다. 교과서 안에 서양철학자와 동양철학자 등의 이름이 나온 것을 보고서야 '철학' 과목인 줄 인식했다. 고등학교 교양과목이었을 뿐 입시에도 들어가지 않은 과목이었기에 그나마 수업 시수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마디로 철학과는 먼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너무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인지했다. 간단한 말로 시간이 많아서 철학 책을 다시 손에 들었던 것이다.

이 책 『그냥 떠 있는 것 같아도 비상하고 있다네』는 니체 '시' 필사집이다. 다시 말해 니체의 철학이나 에세이도 아니고 아포리즘을 다룬 것도 아니다. 니체가 직접 쓴 시 가운데 100편을 선별해 필사집으로 묶었다. 니체가 근대 이후 가장 위대한 철학자란 말은 들었지만 시인으로서 니체를 생각하진 못했다. 가끔 철학서에서 인용된 시를 본 적이 있고, 에세이에서도 니체의 시 일부를 인용하고 있던 것을 본 기억이 있지만 니체가 이렇게 많은 시를 썼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니체를 읽었지만 겉만 읽었다는 뒤늦은 자책감도 들었다.
코로나 발생 직후에 한참 쏟아져 나온 철학 책은 대부분 '니체'였다. 니체의 철학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책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철학적 접근이었다. 번역하는 분들도 모두 철학자이고 니체를 전공했던 분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 분들 중에서도 "니체는 쉽지 않다"고 미리 경계하는 분들도 있다. 어설프게 그의 명언 몇 개에 정신을 쏟다보면 그의 위대한 철학에는 접근도 하지 못하고 손에서 책을 놓게 될 것이란 경고에 가까운 말을 하기도 한다. 이 시집의 내용은 어떨까? 이 책에 「삶을 놀이로서 즐긴 철학자 시인」이란 제목의 〈추천사〉를 쓴 시인 장석주는 "니체는 살아 있음을 긍정하는 철학자다. 그는 누구보다 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사랑하고, 생명을 쇠락으로 이끄는 것들을 거부한다. 그리고 삶을 무한 긍정한다."고 썼다. 시인은 이어 "매사에서, 큰일에서나 작은 일에서나, 언젠가 때가 되면 나는 단지 긍정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 그리고 아모르 파티(Amor fati): "이것이 삶이더냐?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을 외치면서 생을 품는다고 니체의 시 세계로의 안내문을 쓰고 있다.
〈추천사〉에 따르면 신의 돌연한 죽음으로 유럽의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최초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철학자! 니체는 유럽 문명에 곧 황혼이 드리울 것을 알아차렸다. 이 황혼이야말로, 유럽 문명을 덮을 긴 밤, 긴 어둠을 예고한다. 삶이 뒤집히고 유례없는 허무주의의 그림자가 유럽을 뒤덮을 걸 앞서 내다본 니체는 자신도 그 그림자를 밟고 서 있을 운명이라는 걸 알았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아침놀이 밝아오는 예감을 느끼고 받아들인다고 시인 장석주는 설명한다. 허무주의가 빗장을 열고 들어와 세상을 덮치자, 예언자 니체는 허무주의의 그림자, 어둠이 잉태한 여명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오 사람아,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깊은 밤이 뭐라고 말하는가
나는 잠들었다가
깊은 꿈에서 깨어났다
세상은 깊다
낮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다
세상의 고통은 깊다
쾌학은 마음의 근심보다 더 깊다
고통이 말한다
꺼져버려!
- 「취가」 중에서

니체는 사람들에게 권유한다. 오 사람아,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깊은 밤은 뭐라고 말하는가? 세상은 깊다. 그렇다면 세상의 고통도 깊을 것이라고. 니체는 그것이 우리 실존의 조건임을 알았지만 그것에 체념하고 순순히 그 고통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사람들에게 시를 통해 말한다. 니체는 어떤 경우에도 시에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다만 우리 스스로 공감하고 깨닫기를 갈망한다고 시인은 지적한다.
장석주 시인에 따르면 니체는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 어떤 유명한 시인보다 더 삶의 심연을 궤뚫어 본 시인이다. 그에게 시와 철학은 한 나무에서 뻗어 나온 두 가지였다. 니체는 삶을 궤뚫고 비극적 조건을 끈질기게 응시한 뒤 몇 개의 지헤를 거둔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 절망을 견디는 강인함, 행복과 불행, 고독 속에서 빚는 자유, 놀이로서의 삶, 선악의 피안을 두루 사유하고, 수직적 높이의 숭고함을 찬양한다.
그의 시에서 너무나 많은 인생을 배웠다고 시인은 털어놓는다. 시인이 니체에게서 늘 감탄한 것은 그가 마치 한 쌍이 아니라 여러 겹의 생을 살아낸 사람 같다고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니체는 고독 속에 칩거하여 인생을 궁구하고, 생의 환희를 찾아내서 기쁜 목소리로 노래한다고도 평한다. 니체의 시구들은 촌철살인의 진리를 담아낸다고 말한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p.162,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자, 무수한 등을 타고 춤추어라/ 파도의 등을 타고, 파도의 심술을 견디며 춤추어라"(p.188, 「북서풍에게」), "강인함을 잃지 마라, 내 용감한 심장이여!/ 이유는 묻지 마라!"(p.172, 「해가 저문다」),, "가라, 꺼져버려라/ 너희 침울한 눈빛의 진리여/ 나는 덜 여물어 떫고 성급한 진리가/ 내 산마루에 머무는 걸 보고 싷ㅍ지 않다!"(p.244, 「가장 부유한 자의 가난에 대하여」) 같은 구절을 읽을 때, 나는 전율을 느낀다.
시인은 또 니체는 높은 산꼭대기를 사랑한 철학자, 삶을 높이로서 즐긴 시인, 하늘과 벼락을 사모한 철학자라고 설명한다. "니체가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숲과 바다의 동물들처럼/ 한참 동안 넋을 잃고 한눈을 파는 것/ 사랑스런 혼란 속에 쪼그려 앉아 사색에 잠기는 것/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것"(「고독한 자」)이다고 강조한다.

번역자 유영미는 니체와의 만남은 다른 철학자들과의 만남과는 사뭇 다르다고 〈옮긴이의 글〉에서 적고 있다. 이에 따르면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답게, 그의 글 하나하나가 우리의 가슴을 쿵쿵 울려대고 나태한 정신을 흔ㄷ르어 깨운다. 영원한 젊음과 용기로 무장한 정신이 새로운 삶, 세로운 유희로 주저 없이 나아가게 한다. 사유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 그것이 바로 니체다.
역자는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니체의 시(詩)에서도 그 모습이 빛난다고 말한다. 알프스의 산속에서, 이탈리아의 햇살 아래서 빚어낸 그의 사색은 시의 형태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밝힌다. 사유의 깊이가 워낙 심오하다 보니 다소 어려운 시도 있고 단번에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시도 있다. 니체의 초기 시들은 약간 서정적이라고 역자는 풀이한다. 냉소적인 시도 있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시도 있다. 삶과 사상이 깊이 연결되어 있던 철학자니만큼 니체의 삶과 철학을 알면 니체의 시도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라고 역자는 조심스럽게 귀띔한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없다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역자는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니체를 좋아해서 젊은 시절 비 내리는 일요일이면 니체를 열 시간씩 탐독하곤 했던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역자는 전한다.
"음악은 다만 우리의 영혼만을 요구한다." 시 또한 음악과 가까운 장르이니, 일단은 헤세가 그랬듯 우리의 영혼만 가지고 니체를 읽어도 충분하리라고 역자는 속내를 드러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자리가 다르니만큼, 니체 시를 통해 받아들이는 메시지들도 다른다는 말이다. 아무쪼록 삶을 변화시키는 한 구절, 용기와 힘을 주는 한 구절을 만날 수 있기를 역자는 바란다. 그리하여 삶을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한 니체의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있기를 역자는 기대한다.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독일 뤼첸 근처 뢰켄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 1849년, 니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와 여동생, 하녀 등 여성으로만 둘러싸인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신체적으로 쇠약하여 일생을 잔병치레로 고통받았다. 1864년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전공하다가 스승인 리츨 교수를 따라 1865년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 문헌학 전공으로 학문을 이어나갔고 1869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지성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니체는 시인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자 모범생으로, 학교의 수석 학생으로, 마침내 바젤 대학의 최연소 교수로 젊은 나이에 성과에 대한 압박과 고통을 견뎌냈다. 따라서 늘 ‘내면의 혼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저서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극의 탄생』 『디오니소스 송가』 『이 사람을 보라』 『바그너의 경우』 『즐거운 지식』 『도덕의 계보학』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반시대적 고찰』 『생성의 무죄』 『힘에의 의지』 『우리 문헌학자들』 등이 있다.
역자 : 유영미
연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쓰는 기쁨: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 《카이로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감정사용설명서》 《가문비나무의 노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예민함이라는 무기》 《부분과 전체》 《혼자가 좋다》 《불행 피하기 기술》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