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너머의 클래식 - 한 소절만 들어도 아는 10대 교향곡의 숨겨진 이야기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이은정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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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악보 너머의 클래식』은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지칭하는 세계의 거장 음악가들이 쓴 10곡의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 음악은 클래식을 두 가지로 나뉘어 정의하고 있다. 고전파음악(classic music)을 뜻하는 경우와 또 하나는 대중 음악에 대한 '서양의 고전적 예술 음악'을 가리킨다. 전자는 음악사에서 바흐와 헨델의 시대를 지나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까지(1827)의 음악을 말한다. 시대적으로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친다.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시대에 음악의 중심이 빈으로 옮겨졌으므로, 하이든 이후를 빈 고전파음악이라고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 시대를 고전파음악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음악이 정연한 형식을 존중하고 균형감을 주체로 하는 유형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백과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고전파의 어원에 해당하는 라틴어 'classicus'는 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문학에서는 모범적이고 영속적이며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미적 이상을 추구한 것을 의미한다. 미의 이상이란 형식의 조화와 유형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스토리텔링한 교향곡은 베토벤 이후의 음악가, 말로와 스트라빈스키 등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들이 포함돼 있으니 넓은 의미의 클래식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10곡의 교향곡은 저자 임의로 선정된 것이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곡들이라 어느 곡이 선정됐는지에 대한 관심은 무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각 곡의 제목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우리들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 교과서 등을 통해 자주 들었던 곡명이라 독자처럼 클래식 문외한이거나 입문 수준의 독자라 할지라도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곡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위대한 교향곡을 남긴 음악가들 생애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포함돼 있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특히 저자 나카가와 유스케는 일본에서 〈클래식 저널〉을 창간하고,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예술 개념어 사전』 『클래식 음악, 뭔데 이렇게 쉬워?』 등 클래식 전문 저서도 발간한 '클래식 통'으로 알려진 인물이어서 신뢰감 또한 높다는 점이 이 책의 가치 수준을 높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곡이 모두 교향곡 역사에서 중요한 곡들이라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처음에는 작곡가 한 명당 한 곡씩 선정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베토벤의 〈영웅〉, 〈운명〉, 〈전원〉은 인기와 인지도는 물론 음악사에서의 중요도도 무시할 수 없어서 베토벤의 작품만 세 곡을 선정했다고 「서문(들어가며)」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독자들이 미리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어 미리 밝히고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교향악'이란 표현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교향악이라고 쓰이는 단어는 일본이 서양 고전음악을 받아들이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심포니Symphonie(독), symphoni(이), symphony(영)'의 단어들을 '교향악'이란 표기로 받아들인 데서 연유한 것이라는 말이다. 일본식 한자라는 뜻이다. 서양에서 온 원어 대신 일본이 자신들의 말로 번역해서 표기한 것이 '교향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된 단어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로 인해 용어 사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보인다. '관현악'이란 표현도 있는데 '교향악'은 관현악을 위하여 만들어진 음악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혼동한다고 해서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관현악이란 '오케스트라'란 말의 번역어로서 그리스어 '오르케스트라(orkh?stra)'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 무대와 관람석 사이에 마련된 넓은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코로스(무용수)가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악기연주자가 위치한 장소였다는 것. 그 후 고대 그리스 말기에는 무대를, 16세기에는 무용을 뜻했으며, 18세기에는 극장에서 악기가 위치한 장소를 가리켰다. "여러 가지 악기의 집합체"라는 정의는 J.J.루소의 『음악사전』(1767)에서 처음으로 쓰였다고 알려지고 있다고 〈두산백과〉에서 풀이하고 있다. 결국 오케스트라나 관현악, 교향악이라는 표현이 조그만 차이가 있지만 같은 의미로 혼동돼 써왔다는 이야기다. 

베토벤의 ‘영웅’이 전대미문의 긴 연주 시간으로 야유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슈베르트의 ‘미완성’이 무려 40년 동안이나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가 가까스로 세상의 빛을 본 이야기는 어떤가? 차이콥스키가 역작 ‘비창’을 초연하고 고작 9일 뒤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 이야기는? 이 책은 악보와 음표 너머, 위대한 명곡들이 탄생했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독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전설적인 명곡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다다다 단~’ 하는 강렬한 도입부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베토벤의 〈운명〉, 영화 〈죠스〉 주제가의 모티브가 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등 교향곡은 클래식 음악의 꽃이라고 불린다. 이 책은 클래식 교향곡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음악사에 큰 의미가 있는 불후의 10곡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엄선된 불후의 10대 교향곡은 〈주피터〉, 〈영웅〉, 〈환상〉, 〈비창〉 등 별칭이 붙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사가 없으니 이해하기 어려워서, 또는 ‘누구의 피아노 몇 번 협주곡’처럼 복잡한 명칭이 낯설어서 클래식을 가까이하기 힘들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 수록된 곡들을 클래식 감상의 시작점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5년여 전부터 클래식을 즐겨 듣던 독자에게도 명곡의 작곡 배경과 작곡가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는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됐다. 

모차르트의 〈주피터〉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혁명〉에 이르는 150년 동안 음악사의 주요 장면들은 격변하는 유럽사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전 생애에 걸쳐 나폴레옹과 묘한 연결고리를 가졌던 베토벤, 대숙청 당시의 러시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쇼스타코비치 등 위대한 작곡가들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격랑의 시대 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통해 독자들은 재미있고도 유익하게 클래식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수 세기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살아 숨 쉬는 명곡들, 그 악보 너머 탄생의 순간 속으로 저자를 따라 들어간다. 이 책은 음악 역사 논픽션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부터 베토벤,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말러, 쇼스타코비치까지 위대한 작곡가들의 교향곡 이야기가 국경과 대륙을 넘나들며 이어진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라이벌 관계나 베토벤의 관을 멘 슈베르트처럼 작곡가들 간의 흥미로운 교집합을 따라가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어느새 클래식의 큰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시험을 위해 암기해야 했던 딱딱한 정보와는 달리,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설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를 통해 누구나 부담 없이 재미있게 클래식 배경 지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엄선된 10곡은 모두 과감한 형식 또는 예술성으로 당대 음악계를 뒤흔들고,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었으며, 지금까지도 대작으로 손꼽히는 불후의 명곡이다. 고전파 교향곡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확대한 베토벤의 〈영웅〉, 낭만파 교향곡의 막을 열고 표제음악을 개척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유럽 음악과 미국 음악의 만남을 상징하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등은 클래식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이 10곡의 또 다른 공통적인 특징은 곡이 갖는 느낌을 표현하거나 작곡 당시에 반영되었던 상념, 정경, 이야기 등을 나타내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이 이름들은 숫자와 약어로 이루어진 복잡한 분류체계에 비해 기억하기 쉽고, 이미지를 연상시켜 곡 이해에 도움을 준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첫 시작을 위한 곡으로 제격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에는 수록된 곡과 작곡가들을 순서대로 열거해 본다. 곡에 대한 제목은 저자가 붙인 것이다. 모차르트-〈주피터〉「교향곡의 최고신」, 베토벤-〈영웅〉「영웅이 된 교향곡」, 〈운명〉「운명이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되는 교향곡」, 〈전원〉「전원의 분위기와 정경이 느껴지는 교향곡」, 슈베르트-〈미완성〉「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명곡이 된 교향곡」, 베를리오즈-〈환상〉「사랑의 열병 속에 탄생한 교향곡」, 차이콥스키-〈비창〉「조용히 끝나는 교향곡」, 드로르자크-〈신세계〉「대서양을 건넌 교향곡」, 말러-〈거인〉「모습을 바꾸고 이름을 바꾼 교향곡」, 쇼스타코비치-〈혁명〉「대숙청에서 탄생한 교향곡」 등 8명 10곡이다. 

저자는 첫 장인 모차르트를 프리랜서 음악가로서의 '개척자'라고 설명한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에는 대부분의 음악가가 왕이나 귀족의 궁정악단에 소속되어 있거나 가극장 또는 교회에 속해 있었다. 프리랜서 음악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모차르트는 개척자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프리랜서가 된 모차르트의 수입원은 음악 가정교사, 가극장에서 의뢰받은 오페라의 작곡, 공개 연주회, 악보 출판 원고료(당시에는 인세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등이었다. 때마침 그 무렵은 시민 계급이 대두되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음악 분야에서도 상업화의 조짐이 나타나며 막 시장이 형성되려던 참이었다. 시대의 변화와 천재가 만나 상승효과가 나타난 것이다.(p.19)



베토벤의 교향곡은 이 책에 세 곡이 올랐다.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한참 줏가가 높을 때 "제자로 삼아 달라"며 천재 소년들이 찾아오던 무렵 그 소년들 중의 한 명이어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날도 한 소년이 모차르트를 찾아와 별 기대도 않고 소년의 연주를 들었다. 상당한 실력이었으나 소년에게 "그 정도 실력으론 안 돼"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그러면 즉흥 연주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모차르트는 간단한 주제를 적어서 건넸다. 모차르트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소년이 계속 연주를 이어가자, 모차르트는 조용히 방을 나와 옆방에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이는 보통이 아니야. 언젠가 세계적으로 꼭 유명해질 거라고. 베토벤이라고 하던데, 이름을 잘 기억해 둬." 

모차르트의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린 베토벤은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는 이야기다. 그가 나중에 ‘다다다 단~’으로 유명한 〈운명〉 교향곡 작곡가다. 그가 〈영웅〉을 썼다가 '보나파트르'라고 제목을 붙인 교향곡 제3번의 표지를 찢은 일은 유명한 에피소드가 이 책에 나온다. 1804년 5월, 나폴레옹은 원로원 결의에 따라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국왕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촌스럽다고 느낀 것이다. 국왕의 개념은 이미 혁명으로 부정되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과거의 칭호인 황제를 택했다. 나폴레옹은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썼다. 자신이 민중에 의해 선택된 황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국민 투표를 실시했고 찬성이 357만 2329표, 반대가 불과 2579표로 '국민의 권리로 세운 세습황제'라는 전대미문의 지위에 올랐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격노하며 '보나파르트'라고 적힌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작곡가 자신을 위한 음악, 음악으로 작곡가의 사상과 신조를 표현한다는 전대미문의 혁명은 모차르트로부터 막연하게 시작되어 베토벤에 이르러 달성되었다. 이를 통해 음악가는 장인 또는 귀족이나 교회, 극장의 사용인이라는 신분에서 예술가의 신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영웅〉은 이러한 예술 혁명의 영웅이었다. (중략)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시도를 간파하고 교향곡에 표제를 도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표제가 있는 교향곡’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영웅〉에서 잠재되어 있던 표제는 〈전원〉에 와서 실체화된다. 하지만 그전에 한 곡 더 표제가 있는 듯 없는 듯 애매모호한 문제작이 탄생한다. 바로 〈운명〉이다."(p.100~101)



이 책에 실린 10편의 교향곡에 대한 스토리는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잘못 전달된 것을 바로잡은 것도 있고, 또 알려진 것들 중에서도 축소되거나 과소평가된 것들을 정확하게 전달한 것도 많다. 예술은 자체가 가진 개방성과 무목적성으로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간혹 정치 권력에 의해 목적성을 가지기도 하고, 폐쇄적인 곳에서 외부에 대한 과대 선전용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 화(話)에 등장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 〈혁명〉이 한 사례다. 1937년 러시아 혁명 20주년 기념을 축하하는 소비에트 음악제에서 초연됐다. 11월 21일,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음악제 프로그램 후반부의 날이다. 명문 레닌그라드 필하모니를 지휘하는 젊은 예술가는 프라빈스키였다. 당시 프라빈스키는 서른네 살로, 훗날 세계적인 거장으로 주목받는다. 이 젊은 지휘자에게 명예로운 초연 기회가 들어온 것은 연장자인 지휘자들이 쇼스타코비치의 곡에 위협을 느끼고 피했기 때문이라니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이 '반혁명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까닭이다. 소비에트가 낳은 빛나는 천재 음악가로 추앙받던 쇼스타코비치는 한 해 전인 1936년 소비에트 공산당으로부터 비판의 집중포화를 받고 실각했던 것이다. 이에 기사회생을 노리고 작곡했던 곡이 제5번이다. 

1934년 12월 1일 스탈린 후계자로 점쳐지고 있던 키로프가 레닌그라드 광장에서 암살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암살범은 그의 아내와 키로프가 불륜을 저질러서 죽였다고 자백했다. 겉으로 드러난 살해 동기는 삼각관계의 갈등이었지만 의문점이 가득한 사건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측근의 암살로 정권의 위기를 감지한 스탈린은 사건의 배후 관계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범인은 사건의 발생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29일 총살당했고, 레닌그라드의 당 관계자 약 5,000명이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다. 대대적인 수사 진행 결과, 스탈린 정권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음모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이 당시 스탈린 정권이 발표한 사건의 개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키로프의 인기를 질투한 스탈린이 암살을 명령하고 입을 막기 위해 범인인 니콜라에프를 총살했다는 설도 있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이 암살사건을 구실로 스탈린의 대숙정이 시작됐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우연으로 보기에 마땅찮은 점이 분명 있다. 소비에트는 밀고와 도청으로 치안이 유지되는 음습한 사회가 되어 갔다.



소비에트 혁명 20주년 기념 음악제는 스탈린 정권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기념 음악제가 된 셈이다. 실각 후 생계를 위해 영화 음악을 작곡하던 쇼스타코비치에게는 지위 회복의 기회가 된 것이다. 제4번은 전위적이고 혁신적이었지만 스탈린 정권하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위적인 작품은 비판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대숙청으로 음악가로서의 생명뿐만 아니라 목숨 자체가 위험했다. 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세월이 지난 후 "한밤중에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들리면 공포가 절정에 달했다."고 회상했다. 체포당할 경우 운이 좋으면 수용소행이지만 운이 나쁘면 사형이었던 시대였다. 그런 공포 속에서 1937년 4월에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5번에 착수한 것이다. 

교향곡 제5번 제1악장은 짓눌리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첫머리의 '다다ㅡ안, 다다ㅡ안'이라는 강렬한 울림은 베토벤의 제5번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도 베토벤의 제5번과 마찬가지로 '고뇌에서 승리의 환희로'라는 이야기를 느끼게 만드는 곡이다. 제2악장이 스케르초, 제3악장이 완서악장인 것은 베토벤의 제5번과 반대다. 제4악장은 행진곡풍으로 혁명 투쟁과 같은 이미지다. 싸움은 격렬해지고 승리하나 싶었다가 와해되더니 마지막에는 결국 승리한다. '제1악장에서 러시아 인민은 황제의 압정에 고통스러워하며 고뇌하고 제4악장에서 드디어 혁명의 승리로 해방된다.'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알기 쉬운 음악을 작곡한 쇼스타코비치는 복권되었다.


저자 : 나카가와 유스케(中川右介)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제2문학부를 졸업했다. 출판사 IPC 편집장을 지낸 뒤 1993년 출판사 알파베타를 설립해 2014년까지 대표이사 및 편집장을 지냈다. <카메라 저널>, <클래식 저널>을 창간했으며 독일, 미국 등 출판사와 제휴해 예술가들의 평전과 사진집 등을 출간했다. 문학, 음악, 영화, 만화 등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어 2007년부터 지금까지 관련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예술 개념어 사전》, 《클래식 음악, 뭔데 이렇게 쉬워?》, 《에도가와 란포와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있다.


역자 : 이은정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어 교사 양성과정(문부성 승인)을 수료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연봉 2천만 원부터 시작하는 저축 습관』, 『중요한 것만 남기고 버려라』, 『인간실격』, 『마음』, 『하루 한 번 호오포노포노』, 『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멋진 날들』,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 『서른 살, 만남에 미쳐라』, 『오늘도 집에서 즐거운 하루』, 『말은 필요없어』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일본어 첫걸음』,『흑백 일러스트 테크닉』『쉽게 배우는 옷 주름 그리기 마스터』『만년필로 그림 그리기』『쉽게 배우는 귀여운 동물 드로잉』『클립 스튜디오로 제작하는 동물귀 캐릭터 일러스트 테크닉』『만화 쉽게그리기 : 캐릭터 손&발』『만화 쉽게 그리기 : 배경마스터 1』『가장 친절한 수채화 교과서』『쉽게 배우는 만화 캐릭터 감정표현』『뚝딱 스케치』『맛있는 수채 일러스트』『가장 친절한 데생 인물 소묘』『핵심을 콕콕 찍어주는 미소녀 캐릭터 쉽게 그리기』『재봉틀로 쉽게 만드는 원피스 스타일 북』『재봉틀로 쉽게 만드는 블라우스 스커트 팬츠 스타일 북』『미소녀 그리기』『그날 그때 그 순간의 기록 수첩 스케치』『인물 기본데생』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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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 탐구 - ‘좋아요’와 구독의 알고리즘
올리비아 얄롭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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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함께 발전한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다양한 방법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중 문화 프레임을 바꿀 정도로 부상했다. SNS는 이미 전 세계인들이 실시간으로 의사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인터넷 발전에 힘입어 개발된 SNS가 이젠 인터넷을 통한 인류 번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개인과 개인의 소통을 목적으로 발전해온 SNS는 이제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월드와이드웹 기반의 서비스이다. SNS는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학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등장한 서비스의 수가 많은 만큼 서비스의 특징 또한 다양하여 이것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정의하고 있을 정도로 SNS는 발전 초기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얼마만큼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위키토피아〉는 2012년 SNS를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호적 관계망이나 교호적 관계를 구축해 주고 보여 주는 온라인 서비스 또는 플랫폼"으로 정의한 바 있다.

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보이드와 엘리슨(Boyd & Ellison)가 2008년 정의한 "개인들로 하여금 ① 특정 시스템 내에 자신의 신상 정보를 공개 또는 준공개적으로 구축하게 하고, ② 그들이 연계를 맺고 있는 다른 이용자들의 목록을 제시해 주며, 나아가 ③ 이런 다른 이용자들이 맺고 있는 연계망의 리스트, 그리고 그 시스템 내의 다른 사람들이 맺고 있는 연계망의 리스트를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웹 기반의 서비스"이다. 어떤 관점을 따르냐에 따라 정의는 각기 달라지지만, 정의들에서 공통으로 지적되는 요소는 웹 사이트라는 온라인 공간, 대인 관계의 형성 및 유지, 관계망의 구조, 관계망의 파도, 정보의 교류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SNS는 웹 사이트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공통의 관심이나 활동을 지향하는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일정한 시간 이상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상 정보를 드러내고 정보 교환을 수행함으로써 대인관계망을 형성토록 해 주는 웹 기반의 온라인 서비스로 정의될 수 있다.



SNS 이외에 소셜 미디어, 소셜 소프트웨어, 마이크로블로그 등 다양한 용어들이 혼용되고 있지만, 마케팅 기원을 가지고 있는 소셜 미디어나 기술적 측면이 강조되는 소셜 소프트웨어 등에 비해 SNS라는 용어가 보다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것 같다. SNS 발전은 디지털 시대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란 뜻의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플루언서는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을 말한다. ‘영향을 주다’는 뜻의 영어단어 ‘influence’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을 붙인 단어이다.

인스타그램·유튜브·트위터 등 SNS에서 수십만 명의 구독자(팔로워)를 보유한 SNS 유명인 혹은 유튜버, 영향력이 큰 블로그(blog)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 등이 이에 속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이들을 활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마케팅 방법이다. 보통 사용 후기 등을 올리는 식으로 기업이 원하는 정보를 전달해 홍보 효과를 내는 정도이지만 향후 발전 방향에 따라 세계를 이끌 리더로 부상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인플루언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따라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시대의 새 직업으로 떠오른 상태다. 사실 사회적·경제적 의미로 국한되어 있지만 정치 등 전문 분야에서의 활동도 자신이 원한다면 지속할 수 있기에 인류 삶의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인플루언서들은 현재 우리가 놓인 순간의 상징이자 우리가 앞으로 향할 곳의 조짐"으로 풀이될 정도의 형국이다. 이 책 『인플루언서 탐구』는 오늘날 온라인 생태계를 지배하게 된 인플루언서의 모든 것을 설득력 있게 분석하기 위해 쓰였다. 저자 올리비아 얄롭은 "개인의 일상과 정보가 업로드되고, 소셜 미디어 스타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좋아요’와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콘텐츠를 양산하는 인플루언서의 시대에 꼭 알아야 할 것들을 풍부한 사례와 유명 인플루언서 및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심도 있게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인플루언서는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고, 그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 성공 가능성과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플루언서 세계의 핵심을 짚고 그 미래를 전망한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개인적인 정보를 기꺼이 공유한다. 뜬금없는 생각과 사소한 행위부터 출산, 입양, 결혼, 죽음, 프러포즈, 휴가, 그리고 미용, 육아, 가족생활 등을 낱낱이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다. 이러한 온라인상의 공유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고도로 수익성 높은 산업이 되어, 가장 인기 있는 이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수백만 명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온라인상의 유명인, 즉 인플루언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일정 분량의 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에 매일 업로드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샅샅이 파헤치고, 자기 삶의 주요 행사를 방송하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숨 가쁜 몸짓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을 사적인 순간에 초대한다. 어느덧 온라인에 자신을 공유하는 것은 제2의 천성이 되었고, 참여와 자기 최적화의 논리는 우리 삶에 구석구석 침투하기 시작했다.

SNS 가운데 하나인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매달 10억 명 이상의 활동적인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8분의 1이고, 매일 1억 개 이상의 포스트가 그 플랫폼에 올라간다는 것. 지난 2018년에는 370만 개 이상의 스폰서십 포스트가 올라갔고, 이 수치는 2020년 600만에 도달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여러 곳의 연구는 전 세계에 5,000만 명 이상의 인플루언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전업 인플루언서는 약 200만 명, 그 나머지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활동하는 아마추어로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인플루언서 업계에서, 이른바 '소셜 미디어 혁명'이라고 불리는 현상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 디지털 에이전시 수백 개 중 하나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소셜 미디어 공간을 지배하는 인플루언서라는 존재를 깊이 있고 폭넓게 분석한다. 열 살도 되지 않은 형제가 공동 유튜브 채널에서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10대 엄마가 자신의 출산 과정을 브이로그로 기록하고, 대학생을 사칭해 온라인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채널을 키우기 위해 괴상한 행위를 일삼고, 정치적 폭동 사건 현장을 찾아가 생중계하는 등과 같은 사례를 통해 인플루언서의 면면을 책을 통해 밝힌다. 저자 올리비아 얄롭은 디지털 미디어의 변화를 실감하면서 이 책을 통해 인플루언서의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취지로 집필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100만 팔로워 정책〉, 2장 〈‘인플루언서’ 인자〉, 3장 〈극도로 온라인인〉, 4장 〈하이프 하우스, #이상적관계, 그리고 키드플루언서들〉, 5장 〈크리에이터 경제학〉, 6장 〈차 엎지르기〉, 7장 〈플랫폼 대 사람〉, 8장 〈로그오프〉 등이다. 인플루언서가 무엇인지부터 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하는지, 인터넷 문화가 어떻게 거대한 인플루언서 산업으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지까지일까. 저자는 인플루언서를 더욱 가까이서 지켜보며 밀착 취재하기 위해 10대 인플루언서 훈련 캠프, 유명 인플루언서들을 위한 파티와 시상식, 온라인 콘텐츠용 사진 촬영 현장을 찾아가는 등 종횡무진 누비는 한편 저자 자신도 직접 인플루언서 실험을 감행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온라인 생태계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인플루언서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기술한다. 이에 따르면 먼저 조회 수와 시청자 수가 치솟아야 한다. 그러면 브랜드와의 협찬 계약과 에이전트가 달라붙기 시작하고, 콘텐츠 업로드 주기는 갈수록 더 큰 압박을 받게 된다. 또한 파벌이 형성되고, 경쟁이 과열되고, 불매운동의 위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100만 이상의 구독자를 달성하면 수많은 팬 계정, 현장 뒤에서 일하는 팀, 그리고 자기 이름을 단 상품 라인 여럿을 거느린 미디어 제국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인플루언서의 수익 창출은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구체적으로 수입액도 밝힌다. 인스타그램의 최고 인플루언서인 카일리 제너(Kylie Jenner)는 포스트당 약 12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포브스〉는 2019년 최고 10위까지의 게이밍 스트리머가 도합 2억7,0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총 1억2,100만 달러를 벌었다고 보도했다. 2019년, 음모이론 블로거인 셰인 도슨(Shane Dawson)과 과시적인 뷰티 구루인 제프리 스타(Jeffree Star)가 손을 잡고 아이섀도 팔레트를 공동으로 출시하여 쇼피파이 서버를 다운시키고 즉시 매진으로 불과 몇 초 만에 3,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사실도 이 책에 적혀 있다. 특히 ‘키드플루언서’인 라이언 카지(Ryan Kaji)는 텍사스에서 활동하며 다채로운 색색의 장난감을 언박싱하는 발랄한 영상으로 조회 수 450억 회 이상을 달성한 어린아이인데, 2020년에 광고 수익으로 2,950만 달러를, 자신의 상품 라인으로는 2억 달러를 벌어들여 유튜브 소득 순위의 정상을 차지했다고 강조한다.



SNS를 자주 이용하지 않은 독자로서는 믿기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SNS가 급격하게 부상한 이유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인플루언서가 창출하는 수익과 활동 범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 바꿔놓고 있다. 그 핵심은 구독과 조회 수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 자신을 상품화하고,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도덕관념까지 기꺼이 집어던져버리는 행태는 인플루언서라는 성공 지표의 어두운 그림자다. 현재로서는 인플루언서 공간을 향한 관심이 전례 없는 성공 사례에만 쏠려 있다. 핵심 선수, 우수 성과자, 새로 등장한 10대 백만장자, 판매 기록 경신, 그리고 인터넷을 폭발시키는 바이럴들···. 하지만 인플루언서는 그저 꼭대기의 숫자가 아니다. 기사 제목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성공적인 콘텐츠로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크리에이터 계급이 상당수 존재한다고 책은 덧붙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양식과 정체성을 소득원으로 삼는 전업 크리에이터다. 그리고 인플루언서를 보조하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전체 골조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마케터나 법률가, 매니지먼트, 홍보 담당, 창작자, 편집자, 전략가, 조수를 비롯해 대체로 레이더에 잡히지 않게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플루언서’라는 용어는 남용되고 오해받고 클릭 낚시용 유행어로 전락하면서 여러모로 그 의미를 잃었다. 그 말은 자신을 넘어 더 넓은 기표가 되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현대인의 신경증, 불만, 영감 등을 나타내는 언어이자 특정한 유형의 사람이나 철학, 그리고 문화적 순간에 대한 지시어가 된 것이다. 많은 점에서 ‘인플루언서’라는 용어는 거꾸로다. 인플루언서가 오히려 영향을 받는 쪽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어떤 개인의 통제력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힘들의 산물로서 말이다. SNS가 급격히 부상하고 또 역사도 얼마 되지 않아 부작용도 많다는 점도 지적한다. 인플루언서의 과도한 정보 공유에 대한 비판은 흔히 개인의 구체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곤 하지만, 포스팅할 권리는 갈수록 광범위하게 기대되는 듯하다. 특히 온라인 콘텐츠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이 계속해서 혁신되고 강화되면서 말이다. 우리 삶과 정체성의 모든 측면을 상업화하는 경쟁에서, 인플루언서는 나머지 우리보다 그저 한 발 앞서 있을 뿐이다는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인플루언서의 세계는 어떻게 작동하고, 또 재구축되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인플루언싱'은 누구나, 모두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 잠재력과 가능성이 인플루언서 산업의 핵심 유인이다. 성공의 비결은 언뜻 스마트폰 버튼 몇 개를 누르는 게 전부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직접 인플루언서의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해본 결과로 남은 건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겨우 한 줌 더 늘어난 팔로워, 그리고 성공이라는 것의 엄청난 복잡성과 상황에 대한 모호한 개념뿐이었다고 주의를 당부한다. 주의 깊게 계산된 전략과 오랜 시간에 걸친 최적화는 이 모든 노력의 결과를 예측 불가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변덕과 균형을 이룬다고도 귀띔하기도 한다. 명확해지는 것은 인플루언스라는 상업적 기계의 요구사항이 갈수록 늘어나기만 한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조차 자리를 지키려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단 뛰어들기는 쉽지만 성취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SNS는 개인이 무한의 개인과 무한의 경쟁적 구도기 때문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일단 직업적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고 나면 인플루언서에 대한 요구는 오로지 증가하기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와 달리 인플루언서들은 고도로 내밀한 순간을 전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프로필을 구축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인플루언서의 빛나는 조명 뒤에는 비방과 인플루언서 가십이 따라붙고 인신공격과도 뒤엉킨다. 안티팬덤, 비판, 혐오, 악플 등과 같은 뜻하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인플루언싱은 수익성 높은 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인플루언서’에 대한 구글 검색량은 다섯 배로 치솟았다. 전통적인 미디어가 종말을 고하고 우리 스스로 온라인 존재가 되어가는 현실에서 저자의 지적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방위적인 변화를 감지하고 추적하고 분석하면서 그 위험성 또한 적지 않음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좋아요’와 구독 버튼을 눌러달라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간곡한 부탁을 매일같이 받고 있다. 낯선 이들과의 소통, 콘텐츠 제작에 대한 압박감, 바이럴 경쟁, 그리고 플랫폼과의 역학 관계 등에서 빚어지는 문제들 또한 이 책을 통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다.



정치가들이 인플루언서가 된 것을 넘어, 그들이 존재하는 플랫폼은 이제 엄청난 영향력을 축적해 그 자체로 핵심적인 정치 참여자가 되었다. 그들의 데이터 뱅크, 정보 흐름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전 지구의 수백만 시민이 이용하는 공적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역할은 페이스북, 틱톡, 유튜브, 그리고 트위터를 심지어 가장 노련한 정치적 인플루언서들조차 맞서 싸워야 하는 권력으로 만든다.(p.329)


"인플루언서 문화는 어쩌면 사멸하는 게 아니라 어느 한편에서 빼앗은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는 유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위기에서 발생한 혼란은 인플루언서 시스템을 포함한 인터넷 전체를 휘감아, 그 위계질서를 파괴하고 그것이 의존한 기존 패턴을 해체했다. 친구, 가족, 팔로워, 정치가, 공인, 직장 동료, 그리고 내 뉴스피드를 채우고 한밤중에 열이 오른 내 머릿속을 빙빙 도는 크리에이터와 함께 난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놀랍지 않은 탄력적인 시대에 들어섰다. 비록 인플루언스 종말의 시대는 아니라 해도, 내가 아는 형태의 인플루언스는 종말을 맞을 터였다."(p.389)


저자 : 올리비아 얄롭(Olivia Yallop)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통적인 광고업계를 거쳐 소셜 미디어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전략가 겸 크리에이티브이자 트렌드 분석가로 일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디즈니, 에스티 로더 및 컨버스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전략 수립에 관여했으며 런던 패션 칼리지, 콘데나스트 칼리지 등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역자 : 김지선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위대하고 찬란한 고대 로마』,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 『기사도와 테러리즘』,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북유럽 문화사』와 『살인자의 사랑법』, 『애프터 쉬즈 곤』, 『출구는 없다』, 『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등 다양한 서스펜스 소설과 더불어 『엠마』, 『오만과 편견』 등의 고전소설을 한국어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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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권력자편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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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역사를 배울 때, 대학입시를 위한 역사를 배웠을 뿐 진정한 의미의 역사를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학교 다니는 자체가 "대학입시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역사 수업도 선생님들이 대입 위주로 시험에 나올 만한 사건을 중심으로 설명을 곁들이는 정도였다. 덕분에 사건의 조각조각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어도 역사의 흐름에는 거의가 문외한이었다. 역사 선생님들도 학년 초 첫 수업 때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해주셨지만 그때뿐,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독자는 학창 시절 생각했던 것 같다. 핑계가 될지 모르지만 역사의 흐름이나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선생님들도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대신 '암기'를 전제로 역사를 가르치셨다. 

대입 시험에서도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순서에 대해 묻는 문항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순 '암기'가 아닌 '이해'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역사 교육 지침에 따른 것으로 안다. 아마 출제 선생님들도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해를 묻는 문항을 꼭 들어가도록 출제했다. 대입 출제 문제에 "다음 사건 중 올바른 순서대로 나열된 문항을 고르시오" 정도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해야 맞출 수 있는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렇게 자세하게 배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암기를 선호했다. 이유는 한결같이 대입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역사'를 위한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차라리 외워서 문제를 풀고 남은 시간에 다른 과목 공부를 더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방법이 정답의 달콤한 열매를 따기에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그렇게 배운 것은 사실 일정 기간 사회에 나와서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하다 못해 드라마를 보더라도 그때 외운 연표나 사건의 연도 등이 기억 속에 남아 있어 시청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봤던 기억이 자주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가르치지도 출제도 그런 식의 문항은 없어졌다고 듣고 있다. 역사 공부의 방법의 변화는 역사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해 본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는 tvN 방송에서 진행한 교양 프로그램 이름이다. 우리가 침략을 받아 어려웠던 시절,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경과는 어땠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또 다른 침략을 대비할 수 있는지 등 역사의 교훈을 깊이 있게 강의하는 교수들이 강사로 나와 자세하게 이해하도록 설명해준다. 시리즈로 방영된 프로그램 가운데 세계사의 「권력자 편」을 따로 묶었다. 저자는 '제작팀'이다. 강의는 각 분야에서 전공으로 연구한 분들이 직접 출연한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지만 '기획·제작 팀'(이하 저자)으로 일원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이 책의 출간 취지에 대해 "이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일은 저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역사 속 사건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사를 좀 더 깊숙이 배운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금이라도 예상하고 대비할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tvN 최고 화제 교양 프로그램인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다뤘던 내용 중 세상을 뒤흔든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권력자가 탄생하는 순간은 물론, 그동안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의외의 사실들까지 담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담았다는 이야기다. 역사를 정사와 야사로 구분한다면 야사도 정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내용까지 이 책에 담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모두 10명의 세계사를 뒤흔들고, 주도적으로 이끈 10명의 인물들이 각 1장(章)씩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제목에는 그 인물을 설명하는 키워드와 함께 부제가 붙어 있다. 또 강의한 분들의 각각의 이름이 첨부돼 있다. 1장 「영국을 근대국가로 만든 희대의 스캔들헨리 8세」, 2장 「러시아는 어떻게 강국이 되었을까?-표트르 대제」, 3장 「청나라의 몰락을 장식한 권력의 화신-서태후」, 4장 「스캔들과 비극으로 얼룩진 정치 명문-케네디 가문」, 5장 「그는 어떻게 히틀러로부터 영국을 구했나-처칠」, 6장 「공포로 소련을 지배한 독재자-스탈린」, 7장 「그녀는 어떻게 흔들리는 영국 왕실을 지켰나?-엘리자베스 2세」, 8장 「미국 대통령에서 범죄 혐의 기소자까지-」「도널드 트럼프」, 9장 「전쟁광 독재자인가, 러시아의 구원자인가-푸틴」, 10장 「세계 1위 부자의 쩐의 전쟁-빈 살만」 등이다. 



타고난 바람둥이 기질로 무려 여섯 번이나 결혼한, 심지어 첫 결혼은 형의 아내와 했던 헨리 8세의 이야기부터 재벌집 망나니에서 미국 대통령까지 된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재산을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돈이 많은 세계 1위 부자 빈 살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돈과 힘의 역사가 입체적으로 책 안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면 독자들의 재미는 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저자는 시간 관계상 방송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내용까지 상세하게 정리해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 뒤바꾼 세계사 속 결정적 순간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역사란 스포일러가 넘치고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세계사 : 권력자편』은 세계 질서를 뒤흔든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 사이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역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속속들이 파헤친다. 외우지 않아도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껏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역사의 이면과 진실을 탐구할 수 있도록 설명과 함께 다양한 그림과 지도, 사진도 컬러로 담았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아는 것을 넘어 경험으로 안내된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로 가르친 것은 이 책에 담겨 있지 않다. 정사를 근거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지만 정사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는 반증인 셈이다. 공개된 역사의 이면에 더 중점을 두었다는 제작진의 설명이다. 첫 장은 영국의 헨리 8세의 이야기다. 유럽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왕 중 한 명이다. 엄청난 여성 편력과 바람기로 무려 여섯 명의 여성과 결혼했다. 그중에는 형의 아내도 있다. 스캔들만 능한 왕이 아니라 놀랍게도 그의 여성 편력은 영국이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에는 아내(왕비)가 된 6명의 여성이 모두 소개되지만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은 왕조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서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헨리 8세의 아버지이자 전 왕 헨리 7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왕은 튜더 가문이지만 기반이 약했다. 이때문에 헨리 8세는 자신이 죽으면 왕권이 다른 가문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아들을 낳지 못한 이유를 모두 왕비에게 돌리며 아내를 바꿨다고 말한다.



다만 왕비를 버리거나 죽이면서까지 아내를 바꾼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저자는 본다. 특히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은 아내의 시종 등도 필요하다면 취하는 데 있어 겉으로 내세운 이유가 대부분 "아들이 못 낳아서"로 밝혀진다고 한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받아들이는 입장은 관계가 없는 왕의 권력이 남용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또 딸이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대영제국으로의 확장에 밑거름이 된 여왕이다. 남성이 왕이었던 시대보다 훨씬 영국을 잘 이끌었던 것이다. 물론 헨리 8세의 생각은 달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영국(당시에는 웨일즈를 포함한 잉글랜드)에는 엘리자베스 1세 이전에는 여왕이 없었다고 하니 헨리 8세의 변명도 설득력이 있긴 하다. 

또 왕비가 된 앤 블린은 불륜의 관계이며 아내 캐서린을 내쫒고 결국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 앤 블린은 정부로 있을 때 정식으로 결혼하고 싶다고 밝혔기에 헨리 8세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캐서린을 내쳤다. 그러나 왕비가 엄연히 존재하고, 교회법에 따라 이혼을 할 수 없게 되자 캐서린과의 결혼이 잘못 되었다고 증명하는 술수를 쓴다. 저자는 이때 '혼인 무효'를 위해 교황에게 인정받기 위해 《성경》의 〈레위기〉 20장 21절을 인용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그의 형제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교황에게 자신이 형수와 결혼해서 하느님이 벌을 내린 것이라고 '자승자박'으로 위기를 돌파했다고 하니 과연 '스캔들의 왕'이라 할 만하다. 왕실을 굳건히 하기 위해 종교를 바꾸면서까지 이뤄낸 결혼이었지만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한 헨리 8세는 이번에도 앤 블린과의 혼인을 무효로 만들기로 한다. 그가 이번에 찾은 방법은 앤 블린이 불륜을 저지른 간통죄와 근친상간의 죄까지 뒤집어씌운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철면피함도 보여준다. 앤 블린은 5명의 남자와 간통 및 근친상간을 한 죄로 런던탑에 가두어버린다. 

헨리 8세는 앤 블린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특히 제인 시모어는 의붓딸인 메리와 엘리자베스와도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헨리 8세와 가까워지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그토록 바라던 아들 에드워드를 얻었다. 왕위를 이어받을 아들의 탄생으로 왕실의 후계 구도가 완성된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전 국민이 축하할 수 있는 축제를 열 정도로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았고, 헨리 7세와 아버지 헨리 7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제인 시모어가 함께 있는 '가족 초상화'를 궁정화가에게 제작케 하고 복사해 전 국민에게 널리 알렸다고 하니 헨리 8세의 '아들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에는 두 명의 미국 대통령이 소개되고 있는데 한 명은 케네디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 전통의 명문 가문인데다 젊고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의 힘 있는 업적이 소개될 것을 바랐지만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케네디의 스캔들도 만만찮다. 존 F. 케네디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아마 가문 덕이라고 저서에서는 언급되지만 '쿠바 봉쇄령'으로 미국의 힘과 능력을 러시아도 꼼짝 못하는 강경책이 성공했다는 판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케네디는 스캔들과 비극적 죽음(암살)에 대해 주로 설명하고 있다. 케네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 후보 시절 TV 토론회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토론회 전까지 존 F. 케네디 46%, 닉슨이 47%로 박빙이었는데 1차 토론회 이후부터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1차 토론회가 끝난 후 존 F. 케네디 49%, 닉슨은 46%로 전제가 뒤집혔다.

여세를 몰아 선거에서 이긴 케네디는 '뉴 프런티어'라는 새로운 세대의 개척자 정신을 강조했고, 인종차별 폐지와 사회복지 확산에 힘써 더욱 인기 있는 대통령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화봉사단을 설립하고 세계 각지에 봉사단을 파견해 저개발국의 발전을 돕기도 했다. 또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 시대에 소련과의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무사히 념겼고, 아폴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달 탐사 시대의 포문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재클린의 사이 좋은 부부 사이의 간극에는 추악한 비밀이 존재했다고. 가장 먼저 독보적 분위기와 외모를 자랑한 독일 출신의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염문을 뿌렸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존 F. 케네디 아버지와와도 스캔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 시카고 마피아 샘 지안카나의 정부이자 배우인 주디스 캠벨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존 F. 케네디와 지안카나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케네디 정부와 마피아의 연계설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키도 했다. 존 F. 케네디는 배우들뿐 아니라 백악관 내부에서도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패멀라 트루누어는 재클린의 언론 비서관이자 케네디 대통령의 연인이었다고 알려졌다. 아내의 최측근과도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또 대통령 해외 출장에 동행하는 여비서 두 명이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과 염문설을 뿌린 케네디 대통령의 스캔드릉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섹시 스타 마릴린 먼로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녀는 1962년 뉴욕 메디슨 크퀘어 가든에서 열린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파티에서 축하 공연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두 사람은 이때 이미 연인 관계였다고 한다. 케네디는 암살로, 마릴린 먼로는 의문의 약물 중독사로 밝혀진 죽음을 싸고 각종 루머가 발생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서태후는 중국 역사상 희대의 악녀로 손꼽힌다.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둘렀으며 청의 몰락을 함께한 인물이기도 하다. 서태후가 죽자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그녀가 밤마다 미소년들을 궁으로 부르고, 황제와 황태후를 독살했다며 욕했다. 또한 그녀의 사치 때문에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며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진실일까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그의 악행은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약명의 권력자로서 러시아의 스탈린을 빼놓을 수 없다. 스탈린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집권기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최소 수백만 명에서 최대 수천만 명까지로 추산되고 있다. 그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이토록 많은 희생으로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막말꾼’, ‘트러블 메이커’, ‘미국 정치계의 빌런’ 등으로 불렸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대통령이기도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은 ‘재벌집 망나니’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랬던 그는 어떻게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고 대통령까지 되었을까? 권력자들은 권력을 잡기 전까지도 많은 의문의 과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자리가 그만큼 지키기 힘들다는 이유일까, 아니면 독하지 않고서는 권력자에 오르기가 어려운 걸까? 이 책이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세계적 영향을 끼친 권력자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부자들의 순위를 집계한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등이 이곳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 즉 ‘비공식 세계 부자 1위’는 따로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이자 절대 권력을 가진 왕위 승계 서열 1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다. 그의 재산은 상상을 초월하며 매일 100억 원씩 700년을 써도 다 쓸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의 25번째 아들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난 빈 살만은 1,000명이 넘는 왕의 손자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에 오르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의 권력이기도 하니까.


저자 : tvN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삶에 들이닥친 코로나19. 자유롭게 누군가를 만나고 여행을 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질 무렵 집에서 안전하게 세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 숨겨진 세계사까지 배울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 <벌거벗은 세계사>이다. 그 마음이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이 책이 조금이나마 현시대의 갈증을 해소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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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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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는 말을 한 사람은? 이라는 문제를 내면 열에 아홉은 '백설공주'라고 답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동화 〈백설공주〉 속 새 엄마인 왕비(계비)가 거울에게 물어본 말이다. 〈백설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었던 동화다. 이 동화는 전래동화와 달리 독일 작가 그림 형제(Bruder Grimm)가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에 수록한 이야기이다. 초판에는 『백설공주』라는 제목으로 실렸다가, 1857년 최종판에서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로 바뀌었다고 한다. 

초판에서는 새 왕비가 아닌 백설공주의 친어머니가 공주를 질투하였으며, 그녀를 숲 속으로 데려간 것도 왕비가 직접 한 것으로 내용이 전개되었으나,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점점 순화시키면서 최종판에서는 현재와 같은 이야기로 변형이 되었다고 〈두산백과사전〉은 기록하고 있다. 이 동화는 세계 여러 나라로 전해지면서 알바니아에서는 새 왕비와 두 명의 언니가 주인공을 괴롭히고, 러시아에서는 일곱명의 난쟁이 대신 일곱명의 기사가 등장하는 등 번주가 이뤄졌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설공주'는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의 소재로도 무수히 사용될 정도로 독특하고 동화 속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의 이미지로 굳혀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에게도 전래동화가 있다. 주로 구전으로 전해져 온 것이 많으며, 조선시대 들어서는 일부 소설 혹은 이야기 책에 적혀 전해진 것도 있다. 전래동화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어린이들이 직면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실존적인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실마리가 될 만한 주제를 은유와 상징, 혹은 알레고리를 통해 돌려서 제시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교훈적 메시지가 담겼기 때문이다. 독자도 어렸을 때 전집류의 동화책을 많이 가졌고, 또 읽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단행본보다는 전집으로 발간되었다. 당시 전집류에는 주로 서양 동화(소설)가 많이 실렸다. 당시 전래 동화는 전집에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끼어들어간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세계명작전집〉 혹은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이었으며, 여기에 포함된 책은 대부분 서양 문학이었다. 아마 해방 후 서양문화가 우리 사회에 들어왔고, 또 한국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가 받은 서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동화에는 다양한 신화적 상징이 등장한다. 또한 신체의 절단과 훼손·친족 살해 등의 상징적 사건들도 많다. 이 같은 사건들은 모두 현실의 잔혹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성장과 변화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그 문제의 해결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분석한다. 잔혹한 사건이나 문제 해결의 과정은 종종 환상과 마법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 환상과 마법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어린이들의 용기와 자존감을 북돋우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독자가 어렸을 때 읽어던 전집류의 동화책에는 『그리스·로마 신화』 『소공녀』 『보물섬』 『톰소여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 등이 늘 들어 있었으며, 어른이 되어서야 지극히 단순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실망한 적도 많다. 이를 테면 『로빈슨 크루소』에서 나오는 모험심과 용기 많은 주인공은 노예 상인이었다는 말이다. 노예무역선을 타고 가다 배가 좌초된 후 무인도에서 홀로 살다가 식인종인 토인(그때는 표현은 '토인'이었다)들이 잡아 먹으려는 한 흑인 아이를 가까스로 구출해 함께 살며 겪는 이야기가 독자에게는 가장 기억이 생생하다.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결국 그 섬을 빠져나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험심과 용기에 감동하고 모험심의 상상력을 높이기도 했었다. 동화의 실체에 접근하다 보면 의외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상징과 은유가 많아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는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잔혹함'의 요소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세계적 동화 작가로 알려진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 등의 당초 목적과 일치하는 의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책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는 「동화 여주 잔혹사」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동화 속 여주인공이 권력자의 잔혹함에 피해를 입고 생명을 잃을 정도로 핍박을 받지만 결국은 '백마 탄 왕자'에 의해 구출되는 스토리가 많아서 붙여진 부제인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여는 말)〉을 통해 "이 책은 내게 서구의 옛날 이야기를 다시 읽는 작업이자, 오랫동안 이야기 속에 억눌렸던 여성들의 살을 쓰는 작업이기도 했다"고 역설한다. '내 살을 썼다. 당신에게 가서 살이 되기를 빈다'는 이야기에 독자는 공감한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추천평을 쓴 문학박사 정희진은 '본디 동화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승하는 수단'이라고 잘라 말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담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 시대는 글자 그대로 읽기보다 재해석하는 힘이 중요해졌다.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는 여성의 고난을 피해라고 보기보다는 치유로, 회복으로 재해석한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분석한다는 면에서 창의적 글쓰기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래동화, 젠더, 젠더화된 동화라는 세 분야를 아우른 빼어난 텍스트이자, 젠더의 관점에서 전래동화 입문서, 교과서, 전문서의 경계를 허문다고 책의 추천사를 썼다.

이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젠더=‘여성 문제’로 간주한다. 젠더에 관한 한 최악의 관점이다. 이 책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형성 과정이 어떻게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되었는지 보여주고,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인식론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젠더의 지적인 지위를 높인다. 다양한 사례와 다방면에 걸친 저자의 박식함과 통찰 덕분에, 이 책은 여성주의와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참고문헌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는 세상을 설득하려는 세계관이 아니다. 이 책은 여성주의 시각의 우월성을 드러내므로, 온-오프 세계에서 여성의 ‘무기’로도 더할 나위 없다. 한편 도전과 전복의 연속인 이야기의 힘과 풍부한 콘텐츠는,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어른이 읽고 후대에 ‘전래(傳來)’할 의무가 있음을 증명한다.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이 시대가 혼란스럽기만 한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권한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쌍년이 되는 건 해법이 아니다」, 2장 「소년이 걸어야 하는 자기 몫의 황무지」, 3장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는 여자」, 4장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갈까?」, 5장 「탑에서 나와 광야를 걷는 여자」, 6장 「자식은 죽여도 아버지는 못 죽인다」, 7장 「백설공주 계모 왕비의 거울 뒤, 그놈 목소리」, 8장 「이제는 인간으로 변신할 시간」, 9장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10장 「뜨개질하는 여자를 두려워하라」 등이다. 책의 앞뒤로 「낯선 만큼 매혹적인, 그 이야기의 숲길로」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와 「숲에서 돌아 나오다」라는 제목의 〈에필로그〉가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숲'을 말한다. 


현재 인간은 숲 밖에서 살아간다. 

숲 밖이 문명이자 이성이고 편리라면, 

숲은, 진정한 의미의 숲은 사라져버렸다.

우리에게 숲은 피톤치트가 뿜어져 나오는 

산림욕과 휴양의 장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저자는 "옛이야기(동화)는 권력자의 논리를 전하는 통로인 동시에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의 지혜가 숨어 있는 보물창고"라고 전제한 후, 우리는 이 책과 함께 옛이야기가 전하는 삶의 무기를 찾아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1장의 제목 「쌍년이 되는 건 해법이 아니다」라고 욕설을 섞어 '동화 제대로 읽기'로 강렬한 재해석을 준비한다. 1장에서 저자는 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신의 제단에라도 오르는 일인 것처럼 착각해서 낭만화의 허구에 빠지면, 백설공주 꼴이 난다고 주장한다. 착하고 어질게 순종하면서 자신의 욕망도 모르고 욕망의 주체가 되어보지도 못한 채 사는 여성은 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처럼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착하면 호구'라는 세간의 표현은 여기에도 딱 들어맞는다. 사실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것만큼 인간에게 치명적인 대우는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키우지 못하고 남자들의 시선을 가치의 기준점을 삼는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 같은 삶은 비참하다. 여성을 오로지 살덩어리로 여기는 남성들의 가치관에 따르면, 언제나 살덩어리는 새로운 살덩어리, 더 어리고 예쁜 살덩어리로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고도 강렬한 재해석을 저자는 내놓는다.

4장의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가는 걸까?란 의문은 '살덩어리'론을 뒷받침한다. 배부르게 먹을 거면 통통한 아기나 살찐 아줌마가 낫지 않을까? 씹을 맛 있는 근육질 기사는 어떻고? 저자는 “용이 사실은 여자 그 자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용은, 그러니까 애초에 여자를 잡아간 것이 아니었다. 여자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용감하고, 제멋대로인가 하면 신비한 능력과 깊은 지혜가 있다. 여자는 용처럼 제멋대로인 야성과 파워를 함께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자리를 잡던 시절, 용맹하고 제멋대로인 여자는 필요 없었다. 멋지고 나이스한 기사는 달려가 용에게 공주를 내어 놓으라고 소리 지른다. 공주는 귀한 신분이 되어 왕궁에서 살아야 한다며, 용과 함께 숲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공격한다. 기사의 공격에 여자는 용의 면모는 버리고, 예쁘고 여린 여린 공주의 모습만 갖고 기사를 따라나선 것이다. 그러니 “용이 공주만 잡아간 것이 아니라 기사가 공주만 구해온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새로운 시대, 지금도 여자는 공주로 사는 것이 최고일까?



마지막 10장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뜨개질하는 여자를 두려워하라」고 주문한다. 저자는 뜨개질하는 여성이 이야기에 등장하면 긴장해야 한다라고 주의를 준다. 그 여성이 바로 이야기를 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음모를 계획하거나,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폭풍의 언덕』에서 화자인 록우드가 직접 보고 겪은 부분은 늙은 히스클리프의 집에서 묵은 경험과 캐서린 주니어와 힌들리 주니어가 등장하는 장면 정도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 이야기는 대부분 넬리가 뜨개질하며 들려준 이야기를 록우드의 입으로 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와 함께 자란 하녀 넬리가 재구성한 이야기를 록우드가 듣고 옮긴 이야기로, 두 사람의 입을 거친다. 물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이야기는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주워 온 고아인데 주인 나리가 된 히스클리프와 두 남자에게 사랑받고도 만족하지 못한 캐서린을 과연 넬리는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 개인적인 감정은 하나도 개입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진술할 수 있었을까? 이야기를 지어내는 힘을 지닌 뜨개질하는 넬리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얼마만큼 끼워 넣고 채색했을까? 저자는 의문의 답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찾는다. 뜨개질하는 여성의 원형은 '모이라'라는 그리스 신화 속 운명의 여신들로, 한 명은 인간의 생명을 나타내는 실을 잣고, 한 명은 감고, 또 한 명은 끊는다. 이 신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대부터 인간의 삶은 실처럼 자아내고 엮는 것으로 여겼으며 이야기를 자아내고 짓는 행위와 늘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즉, 실을 잣고 옷감을 짜고 뜨개질하는 곳에는 늘 이야기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실 잣는 세 여인』이라는 그림 형제 이야기를 보면, 실을 잣는 일은 여성의 몫이고 이를 잘하면 최고의 신랑감에게 시집간다는 교훈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 명의 실 잣는 여인은 운명의 여신들을 변주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 이 이야기는 실을 잣는 육체적인 노동이 어떻게 정신적인 가치로 환원되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예로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여왕은 실잣기에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는 아가씨를 왕궁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사흘 안에 실을 자아내면 왕자와 혼인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실잣기는 아가씨가 아니라 세 명의 늙은 여인이 나타나 대신 해낸다. 여인들은 반드시 결혼식에 초대해 달라는 조건을 붙인다. 이 일이 수 세기 혹은 수천 년을 걸쳐 여성들이 노동으로 쌓아 올린 그 모든 업적은 아가씨와 결혼하는 왕자의 결정으로 그 가치가 전도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단순히 재미있고, 조금 낯선 이야기로서 전래 동화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내용을 낱낱이 밝혀서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내용과 이제 버리고 새로 써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옛 여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할 책도, 학교도 없었다. 불가에서, 물가에서, 혹은 뜨개질을 하며 전래동화 속에 지혜와 예언과 과거를 이야기에 담아 전달할 뿐이었다.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특히 여성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옛 여인들이 이야기 속에 숨겨둔 보물을 캐내야 할 때라고 현재를 규정한다.. 또한 저자는 책에서 전래 동화의 문학적 즐거움을 새롭게 조명하고, 동시에 전래 동화에서 배우는 인간 성장의 비결을 이야기한다. 이 시대, 우리가 여전히 옛이야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성장의 비결을 아는 것.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전래 동화를 새롭게 쓰는 것.

사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에는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온 상징과 이미저리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앞으로 만들어 나갈 이야기이자 소재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온 전래 동화에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메시지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수천 년 깊게 공유해온 집단 무의식의 흐름을 저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러나 여자 혼자 변한다고 해서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자도 자기 몫의 광야를 거쳐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왕자가 눈이 멀었다고 해도 왕이 있는 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 이상하다. 흥미롭게도, 이야기에서 눈이 머는 건 주로 남자들이다(여자는 주로 목소리를 잃는다).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무지몽매함, 그러니까 여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눈먼 상태가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는 눈이 먼 상태로 광야를 헤매다가, 영적인 통찰과 인도를 상징하는 노랫소리를 듣고 자신의 여자와 만나 화합해야 한다.

그러니까 라푼젤 이야기는 여자와 남자가 온전한 파트너십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한편, 한 사람 내면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떻게 온전하게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p.126~127)


저자 : 조이스 박(박주영)


영어교육전문가이자 영어교재 저자 및 강연자, 에세이스트로 인천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교양영어를 가르쳤고 현재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실용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각종 교육청 및 학원 본사에서 교강사 연수를 주로 하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전국 공무원 순회 젠더 콘서트 패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영미 문화 강연을 고려사이버대학, 코엑스, 엔씨소프트 삼성전자 등에서 진행했고, 세계시민교육과 영어그림책 강연을 해오고 있다. NGO 러빙핸즈의 이사로도 활동하며 멘토링 및 지원 사업 홍보에 힘쓰고 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부 및 대학원,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TESOL 대학원을 거쳐, 한국외대에서 TESOL 박사를 수료했다. 또한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저지 비즈니스 스쿨의 DEI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저서에는 『조이스 박의 챗GPT 영어공부법』, 『오이스터 영어공부법』, 『하루 10분 명문낭독』, 『내가 사랑한 시옷들』 등. 역서에는 『행복의 나락』, 『2가지 언어에 능통한 아이로 키우기』 등 총 80 여권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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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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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청혼』은 표제어에서 풍기는 느낌으로는 청춘 로맨스 소설쯤으로 보인다. 맞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도 누구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더 정확하게 분류하자면 SF소설로서 로맨스 소설이다. 그러나 국경이나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열렬한 청춘들의 로맨스처럼 격정적이지 않다. 지구에서 180시간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군 복무 중인 ‘나’가 지구에 사는 연인에게 보내는 열두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판타지 소설이다. 아득한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과 로맨스를 교차시킨 것으로 아름답고 애틋함을 더했다. 이 소설은 지난 2013년 초판본이 발행됐다. 당시로서는 SF문학이 대세를 이룬 시기는 아니다. 영국의 작가 조앤 K. 롤링의 〈해피포터 시리즈〉가 발표돼 '해리 포터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부터 SF문학이 소설 장르의 대세가 된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1997년 제1권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2007년 제7권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출간되면서 10년간 이어진 해리포터 시리즈의 막을 내렸다. 2001년엔 해리 포터 첫 번째 시리즈가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영화 역시 매편마다 차례로 제작되며 2011년까지 이어지며 큰 흥행을 거두었다. 

그 이전에 SF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리포터가 대세 문학으로 자리 잡게 한 역할을 한 주인공이란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일부 작가가 간간이 SF소설을 발표했다. 독자는 SF소설에 큰 관심이 없어 읽지는 못했지만 몇몇 작가는 문단 데뷔할 때부터 우리나라 SF소설의 역사는 세계 문학사와 함께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숫적으로 판단할 때는 아직 전성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초판본 출간 11년 만에 전면적인 개정 작업을 거쳐 복간된 것이다. 이 작품은 첫 발표 당시 짜임새 있는 전술과 생생한 전투 묘사가 자아내는 박진감, 서사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천체물리학과 군사학 등의 전문 지식, 서정성이 돋보이는 사랑 감정의 서술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 배명훈은 2005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장르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저자는 이번 개정 작업은 거의 모든 문장을 다시 쓰는 정도로 조탁하고 묘사와 표현을 시대감각에 발맞추어 수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층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재탄생한 『청혼』은 거대한 우주 공간과 우주의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력을 무한 자극하면서 읽는 재미를 선사하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청혼』 발표 이후 단편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와 『미래과거시제』를 펴내면서 SF소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저자는 하루게 다르게 발전하는 우주 공간에 대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청혼』의 몇몇 내용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문예중앙〉이라는 문학잡지의 복간호에 맨 처음 발표되었다. 지금은 많은 소설가가 문학잡지에 SF소설을 발표할 수 있지만, 11년 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어느 문단 모임에서 나는 이 소설에 대한 평으로, 'SF 그거 안 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특별히 마음에 두지는 않아서 누가 한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수많은 문단 구성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빙산의 일각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다른 문학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학잡지에 글을 발표하는 SF 작가에 대한 평은 SF 독자 사이에서도 꽤 박해서, 나는 일종의 '전향한 작가' 취급을 받기 일쑤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럴 때면, 저자가그 지면에 구체적으로 어떤 소설을 발표했는지 읽어보고 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자신은 '순문학을 주로 다루는 잡지의 주목받는 지면에 우주 전쟁 이야기를 실을 수 있는 소설가' 같은 것이었는데, 그 우주 전쟁 이야기가 바로 이 작품 『청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두 개의 문학장 사이에 놓인 '라그랑주 포인트'*에서 처음 발표되었다고 해설하는 말을 쓰고 있다. 이 말은 SF소설이 어느 쪽 문장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다는 저자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이후 발표한 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에서도 썼지만, "원래 남의 예술은 다 이상한 법이고, 다만 내 예술도 다른 사람에게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 라그랑주 포인트(Lagrangian point) : 케플러운동을 하는 두 천체가 있을 때, 그 주위에서 중력이 0이 되는 5개의 점으로 라그랑주 특수해라고도 부른다. 두 천체를 잇는 직선상에 3개, 두 천체와 정삼각형을 이루는 2개의 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삼각형을 이루는 2점에 제3천체가 있을 경우 매우 안정하여 라그랑주 점이라고 부른다. 라그랑주는 케플러운동을 하고 있는 두 천체를 연결하는 직선상의 3점과, 또 두 천체와 정삼각형을 이루는 2점에서 중력이 0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5개 점을 라그랑주의 특수해라고 한다.(독자 주)



『미래과거시제』는 『예술과 중력가속도』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단독 소설집으로, 최근 3년간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집중적으로 집필한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국 문단의 중견 작가 곽재식은 이 책에 대해 “한국 SF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작가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곽재식 작가는 책 뒷 부분에 실린 추천사를 통해 "한국 SF가 성장하여 문학의 주류에 다가오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배명훈 작가는 항상 그 선봉 중에서도 맨 앞 줄에 서 있었다"면서 "단어 하나하나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재료로 제 몫을 하고 있고, 즐겁게 이어나가는 줄거리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현대 한국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통찰이 스며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래과거시제』는 독자가 배명훈의 소설을 처음 읽은 책이다.

2005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저자 배명훈의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는 저자가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이 더욱 경이로워졌고,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래상어 그림을 감상하러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났다가 함정에 빠진 돈 쓰는 로봇 마사로 이야기(「수요곡선의 수호자」), 비말 차단을 위해 파열음을 완전히 제거한 미래 세계(「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시간 여행을 둘러싼 한 연인의 사랑스러운 미스터리(「미래과거시제」), 판소리 형식으로 펼쳐지는 유일무이 요절복통 로봇 전투담(「임시 조종사」) 등이 갈고 닦은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드러난다. 또 종이처럼 2차원의 형태로 날아온 외계의 존재들(「접히는 신들」), 잠들어 있는 의식과 듀얼 가상현실이라는 구상(「알람이 울리면」)까지, 저자는 언어와 시간과 공간을 다양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꿈’과 ‘만약’의 세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상상과 성찰이 맞물린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운다. 이 소설집은 배명훈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들은 물론 배명훈의 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각별하고도 뜻깊게 다가갈 것이라는 느낌을 독자는 받았다.



독자는 사실 SF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다. 소설 작품을 좋아하지만 '과학'이 들어감으로써 독자에게는 '서먹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먼저이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쏟아지는 SF 작품을 읽기 위해서라도 과학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자로서는 고등학교 때 과학이나 수학을 착실히 공부하지 않았다는 뒤늦은 각성을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SF 소설은 물리학 등 과학 분야에 대한 기초 공부를 더 해야 더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해피포터 시리즈〉도 영화로 나온 뒤에야 관심을 갖고 접근했지 책을 먼저 읽은 적도 없다. SF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 용어나 원리를 읽을 때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할 정도로 문외한이었으니 쉽게 SF 소설이 다가오지 못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배명훈 저자의 작품을 읽었지만 앞으론 그의 소설을 찾아 읽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집들이었다. 그리고 이 책 『청혼』은 짧지만 장편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 단편집을 주로 낸 저자가로 생각했던 독자의 과문함을 탓해야 할 일이다. 이 소설이 앞서 두 단편집보다 이른 시기에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혼』을 읽은 이후 독자는 마치 신문명에 눈 뜬 듯한 느낌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그동안 한국의 SF를 따로 읽은 것은 별로 없지만 외국이나 일본의 SF 작품은 여러 권 읽은 기억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업무 시간이 무척 많이 남았다. 집에서 일하는 날이 더 많았으니... 출퇴근 시간도 오롯이 남은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지만 가벼운 읽을거리부터 찾아 꾸준히 읽어보니 예전의 다독의 습관이 다시 배어들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는 서적을 훑어보다가 SF소설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처 몰랐던 환상의 세계, 미래의 세계, 과거까지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는 SF소설의 또다른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독자의 SF소설에 대한 관심은 오롯이 배명훈 작가의 소설들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소설 『청혼』의 줄거리는 무미건조할 정도로 이성적이어서인지 저자가 지구 여성과 우주인 '나'의 로맨스를 끼워넣은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독자 개인의 생각이다. 다른 분들은 우주 전쟁과 로맨스를 교차시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평가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청혼』은 목성 근처 소행성대에서 궤도연합군 작전 장교로 복무 중인 우주 출신 ‘나’가 지구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나’와 ‘너’는 빛의 속도로 17분 44초 떨어진 거리에서 ‘장거리 연애’ 중이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지구까지 170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도 마다하지 않고, ‘너’도 ‘나’를 만나기 위해 180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날아온다. ‘나’는 지구의 중력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너’와 함께할 수 있다면 지구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지구로 가게 될 날을 막연히 그려본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곳 우주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끝나야 한다.

‘나’가 복무 중인 우주 함대에는 사연이 있다. 오래전 지구에서는 옛 예언서에 적힌 대로 외계 함대가 공격해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함대를 건설해 목성 근처에 파견했는데, 의심했던 목소리들도 잠시, 건설 30년 뒤에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예언서 내용대로 현실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궤도연합군을 공격해온 적의 정체는 아직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지구에서는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궤도연합군 사령관 데 나다 장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해 감찰군을 파견하고, 사사건건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찰군으로 인해 누가 진짜 적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사이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함대를 정비하는 동안 휴가를 받은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170시간을 날아 지구로 가지만 떨어져 있던 거리만큼 뭔가 서먹해진 관계 속에서 ‘너’에게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180시간을 날아 귀환한다. 귀환한 뒤 우주에서는 몇 차례 전투가 벌어지는데 적은 마치 시간을 건너오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공격하고 사라지곤 한다. ‘나’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적의 존재, 그리고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전쟁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다. 전쟁의 형세는 점점 복잡해지는데…… 전쟁이 끝나는 때는 언제일까. 궤도연합군 사령관 데 나다 장군은 진짜 반란군일까. ‘나’는 데 나다 장군이 이끄는 궤도연합군에 남을 것인가, 감찰군 편에 설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너’를 만나러 다시 지구로 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2013년 이후 여러 독자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p.154) 〈작가의 말〉에서 저자 배명훈은 로맨스를 다루었기에 필요한 말이 아니라, 저자의 우주 개척관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밝힌다. 이에 따르면 지구인의 정상성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우주를 감각하는 사람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들의 고뇌와 갈등을 2013년의 내가 의도한 방식으로 형상화하려면 군인과 천문학자, 지구 행정 기구의 파견인 등이 필요했던 셈이다. 주인공에게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라는 말은, 이 모든 인물을 다 겪은 다음에나 쓸 수 있는 문장이었을 것이다. 또 이 소설에서 처음 다룬 '공간의 거대함과 극복할 수 없는 시차의 문제'는 이후에 발표한 여러 편의 소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하고 변주하며 내 소설의 주요 주제로 발전시켰다. 2013년에는 일종의 실험이었지만, 지금은 대규모 정착지가 세워진 탄탄한 공간이 되었으니 안심하고 발을 디뎌도 좋다는 뜻이다."(p.159~160)


"너는 모르겠지. 그런 건 없다고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함대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지구 출신과 나 같은 우주 태생 사이에 가로놓인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수도 없이 봐왔어. 그건 말이야, 사소해 보여서 더 본질적인 그런 차이야. 그만큼 각자의 삶에 밀착돼 있지. 은연중에 튀어나오고, 충돌이 생길 때마다 상대가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그 무언가.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인지, 지구에 애인을 둔 수많은 우주 태생 동료가 똑같은 고충을 이야기해. 우리끼리 모여서 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진짜로 지구 출신과는 다른 인류가 돼버린 게 아닌가 싶어."(pp.115~116)


저자 : 배명훈(Myung-hoon Bae)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대학문학상’을 받았고 2005년 「스마트D」로 SF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3인 공동 창작집 『누군가를 만났어』를 비롯해 『판타스틱』 등에 단편을 수록한 바 있다. 201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주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한국문학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가장 행보가 주목되는 작가로서, 연작소설 『타워』는 그의 첫 소설집이다. 2010년에는 『안녕, 인공존재!』를 펴냈다. 『총통각하』(2012), 『예술과 중력 가속도』, 장편소설 『신의 궤도』(2011), 『은닉』(2012), 『맛집폭격』 『첫숨』 『고고심령학자』, 『빙글빙글 우주군』, SF동화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2011), 중편소설 『가마틀 스타일』 『청혼』, 단편 단행본 「춤추는 사신」, 「푸른파 피망」, 에세이 『SF 작가입니다』 등을 출간했다.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하였는데, 앤솔러지 『놀이터는 24시』에 「수요 곡선의 수호자」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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