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1분 철학 관계수업
서정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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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입장에서는 철학서를 만화로 보는 일은 처음이다. 이 책 『만화로 보는 1분 철학 관계수업』 이외에도 몇 권의 철학 서적이 이미 만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워낙 멀리 했던 철학은 몇 권을 읽어봐도 중심 사상은커녕 철학자의 사유의 원천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살아가면서 알아두면 뭔가 도움이 될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한 탓일까? 몇 권 읽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여러 번이다. 철학은 사실 어려운 학문이고, 특히 사고와 사유의 학문으로 알려진 학문이기에 책도 정독을 해야 할 것으로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도 서적을 만화로 이해하도록 출간한 책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독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다 주신 〈어린이 세계 명작 전집〉에도 늘 그리스·로마 신화가 1, 2번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필독서란 듯이. 그러나 독자의 독서법이 잘못 되었는지 몰라도, 수많은 인명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결국 완독하지 못한 리스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금도 완역판을 읽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거리감이 있다. 많이 등장하는 '제우스'나 '헤라' 등은 머릿속에 박혀 있지만 아직도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더욱이 희랍어와 라틴어 발음이 다르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 정도로 무심했다.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철학보다는 신화가 훨씬 더 생활에 밀접하고 심지어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르고서는 대화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만화로 읽어서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한 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기서 다룬 10명의 철학자는 대부분 익숙한 이름이어서 그나마 쉽게 읽힌다. 걱정했던 이해도도 그림을 곁들여 읽어보니 조금은 더 수월하고 친근감 있어 가깝게 느껴졌다.


저자 서정욱은 대학 교수로 있지만 청소년과 이해하기 쉬운 철학 서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분이란 것도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철학자를 선택한 것도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인물들로 골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제한된 지면과 철학자 수 중에서 철학의 흐름을 가름하는 인물들로 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흔히 서양 철학의 원류를 그리스 철학으로 꼽긴 하지만 인물은 '소크라테스'로 알고 있다. 사실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란 별명도 있지 않은가? 이 책에서는 철학의 원조는 '과학(자연과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의 시작은 탈레스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사에서는 철학의 과제를 우주, 자연, 인간이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당시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우주를 관측할 장비와 자연을 연구할 과학적인 이론의 부족으로 자연에 대해 답을 주기가 힘들었다"고 전제한 뒤 "결국 인간 문제에 눈을 돌렸다"고 설명한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철학이 시작되면서부터 대화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삶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철학자들의 지혜를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만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냈다고 책의 성격을 밝힌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프로타고라스, 제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쇼펜하우어 등 10인의 유명 철학자들이 등장해 현대의 인간관계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명쾌한 지혜를 전달한다. 각 철학자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삶에서 즉각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인간관계를 좀 더 깊고 명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서문〉에 따르면 철학자는 고독한 사유의 존재임을 떠올려본다. 고독한 사유의 존재인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이렇게 정리된 생각은 진리로 이어진다. 결국 철학자들은 인간관계를 통해 진리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이렇게 고독한 사유의 존재인 사람은 항상 누구와 함께함으로써 스스로 완전히 혼자가 아님이 밝혀진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철학자의 고유한 철학은 모두 인간관계 속에서 생겨난 철학자들만의 고유한 통찰이다.

철학사에 등장하는 많은 철학자들은 누구의 스승이거나 후견인이었다. 여기서 '누구'는 왕, 왕자, 귀족, 혹은 명문가의 장군이었다. 즉 철학자는 권력자와 항상 가까이 있었고, 권력자에게 권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권력자는 인간관계를 누구보다 신중하게 해야 할 사람들이다. 철학자는 그들에게 인간관계의 신중함을 가르쳤고, 그들은 정성을 다해 배워 자신의 권력을 배가시켰다. 그 결과 철학자와 권력자의 관계는 단순한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를 통한 투쟁의 장이었고, 서로를 도와준 협력의 관계였다. 권력자는 철학자로부터 배운 인간관계를 자신의 세계로 해석하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철학자는 관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속과 떨어져 자시난의 사유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때 철학자의 친구는 고독, 침묵 등이다. 철학자가 사유하는 이유가 진리를 찾는 것에 있다면, 진리의 원천은 관조의 세계이다. 관조의 중요성을 외로움과 침묵에서 찾는다면, 철학자는 내면의 소리로 인간관계를 논한다. 철학자의 내면의 소리는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 파장은 너무 넓게 퍼져나간다. 이렇게 철학 자체는 혼자의 행위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간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 존재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철학자는 이렇게 다른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의한다. 즉 철학자는 인간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p.5~6)



이 책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철학자 10명이 소개된다.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자신을 보호하는 법〉, 2장 〈이성으로 나를 지키는 법〉, 3장 〈덕을 실천하는 법〉, 4장 〈적을 만들지 않는 법〉, 5장 〈의견이 달라도 대화할 수 있는 법〉, 6장 〈의무로 관계를 지키는 법〉, 7장 〈행복을 추구하는 법〉, 8장 〈힘의 관계를 직시하는 법〉, 9장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10장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 등이다. 현대인들은 '관계' 문제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살면사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자신을 가장 기댈 수 있는 곳이 사람이란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친구, 연인, 직장 동료와의 좋은 관계를 원하고 간혹 갈등이 있으면 괴로워한다. 이 같은 갈등은 가장 가까운 가족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가장 고통스러워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의 인간관계는 선의를 기대하지만 꼭 선의로만 대하지 못할 경우 갈등이 발생하고, 그 갈등은 고통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관계의 지속은 끊임없이 추구하고, 우리를 그만큼 지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국가 중 갈등지수 1위라는 불명예까지 안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관계로 병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으로부터 덜 상처받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해답을 철학에서 찾는다. ‘관계 문제에 철학이라니?’ 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은 인간과 삶,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누구보다 깊고 오래 성찰해온 학문이다. 결국 삶의 모든 문제는 관계에서 비롯되고,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그 해답을 고민해왔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가장 고통을 주는 게 인간관계의 갈등이다.

저자는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인간관계를 잘 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집필했다. 철학에서 배워야 하는데 독자처럼 철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하고 아예 접근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쉽게 철학을 접할 수 있도록 만화로 그려냈다. 이 책에는 철학자 이외 질문자가 한 사람이 나오는데 청소년이다.


청소년이 철학자들을 찾아가 인간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즉, 만화 형식의 철학 수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각 철학자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대화와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독자 스스로 사유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누구나 겪을 법한 관계의 갈등과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철학자들은 그 속에서 예리한 통찰과 실천 가능한 조언들을 던진다.

특히 이 책은 각 철학자의 핵심 메시지를 단 1분 만에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짧고 명료하게 구성되어 있어, 시간 내기 어려운 현대인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독자가 딱 여기에 해당하는 듯하다. 짧은 분량이지만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저자는 독자의 생각을 전환시키고, 일상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실용적 철학으로 다가가도록 꾸몄다. 이 책은 철학이란 결코 어려운 사변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나와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실천의 도구이자 삶의 기술임을 보여주는 데 첫 번째 목적이 있다.

저자는 철학은 단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삶의 도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길을 잃은 이들에게 철학이라는 나침반을 건네며, 이 책을 통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이끈다. 지금 이 순간 철학자들의 지혜를 따라가며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를 다시 조율해볼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관계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 당신의 삶도 조금씩 가벼워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철학자의 노트」란 별도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만화 그림으로 미처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글을 읽음으로써 복습 겸 되새김으로써 확실히 알기에 힘이 될 것이다.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핵심 내용에 대한 설명 등이 주를 이룬다. 마치 시험 치기 전 공부한 것을 정리해둔 별도 요약집 느낌이다. 또 시대적 배경 설명에는 새로운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철학자와 인간관계의 간극을 직접 느낄 수 있다. '프로타고라스' 「철학자의 노트」의 경우 "전쟁이 없던 시기의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민들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법정에 모였다. 생계를 위해 하루 일당을 받는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변호인으로 활동하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배심원은 대부분 법률 지식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기에, 변호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려한 웅변으로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p.36)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출간 후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적는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눈여겨 볼 것을 권유한다. 

Q) 많은 청소년이 철학을 어렵고 고리타분한 옛사람의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철학이 청소년에게 왜 중요한지 짧게 알려주시겠어요?

A) 철학을 배울 때 우리는 대개 철학자의 생애와 이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철학자의 이론과 생애는 중요한 연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철학이든 그 철학에 철학자의 생애와 목표 의식 같은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철학을 안다는 것은 철학자의 생애를 아는 것이고, 철학자의 생애를 아는 것은 철학자의 목표 의식을 아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의 한 단계, 예를 들면 청소년기에 어떤 목표를 찾는 데 철학이 도움을 주는 것이죠.


Q) 그래도 여전히 어렵게 느끼는 청소년이 있을 거 같아요.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요?

A) 거의 모든 철학자가 자신이 살던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철학자의 사상과 생애는 당시 그가 살던 시대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철학자의 생애나 사상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그 철학자가 살던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알면 당대의 철학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래도 철학 이론이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 이론의 중요 개념만 다시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모든 철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려고 몇 가지 중요 개념을 나열합니다. 그 개념만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자 : 서정욱


배재대학교 심리철학상담학과 명예교수.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배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고대 그리스 철학과 신칸트학파, 논리학 분야에서 여러 논문과 저서를 펴내며 연구 활동을 해왔다. 학술 분야 이외에 청소년과 일반 대중을 위한 철학 강의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어릴 때부터 철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을 다수 집필했으며, 소설이나 동화 또는 만화 형식을 빌려 철학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저서로는 『만화 서양 철학사』 1, 2, 3권과 『플라톤이 들려주는 이데아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들려주는 행복 이야기』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2008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 『철학의 고전들』(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 등이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 구름 위에 오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소를 타다』(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로 철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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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 왜 지금 노무현인가
    이장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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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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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표제어가 말하듯 중앙일보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사 등을 묶어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를 위주로 쓰인 기획물이다. 중앙일보는 첫 기획 시리즈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 비사를 묶어 연재를 실시한 바 있다. 이때 제목은 〈대통령 비서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자는 정치에 별로 뜻이 없고, 따라서 관심도 없는 편이었다. 신문을 일일이 찾아 읽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엮어 출간되었을 때 구입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 책은 집 어디 구석엔가 꽂혀 있을 터다. 중앙일보는 그 뒤 대통령이 바뀌고 정치 환경이 변할 때마다 집권기 비사를 중심으로 공과를 평가하는 차원에서 이 기획 시리즈를 이어갔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업적으로나, 인물로나 매우 독특하고 유별난 리더요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한다. 다음 과연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었을까,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에 대해 접근해 들어간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도, 한 정치인으로서도 독특한 이력과 공과가 많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연히 논란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4명의 전현직 기자(이하 저자)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집권 당시 노무현의 지지도가 얼마나 바닥이었는지를 지금의 젊은 세대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퇴임 당시 지지율은 10%가 채 되지 않았으며, 언론이나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한 처량한 신세였다. 하지만 불과 15년이 지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2024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1위(31%)가 바로 노무현이다. 2위 박정희(24%)를 큰 차로 앞섰다.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는 지지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던 그가 지금은 압도적 1등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취재를 따라 노무현의 정치 인생,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등을 알아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중앙일보의 온라인 유료 플랫폼 더중앙플러스에 연재된 기획 시리즈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을 엮은 도서다. 취재팀은 지난 1년간 노무현과 참여정부 5년의 공과를 복원하고 평가했다.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질책했으며, 노무현의 정치적 선택과 정책 판단을 당시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다시는 당사자를 만날 수 없게 된 한계는 증언과 기록을 통해 최대한 보완했다. 이를 위해 20여 년 전 노무현의 시대를 취재 현장에서 겪었던 두 명의 전직 기자, 호기심에 가득한 현직 기자 두 명이 팀을 이뤄 100여 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참여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이 대부분이지만, 반대 진영에 섰던 인물들도 만났다.

    또한 대통령 취임 첫해이던 2003년 11월, 주요 일간지(중앙·조선·동아·한국·세계일보) 편집국장들과 진행한 비공개 동동주 만찬의 대화록을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이던 이장규의 메모를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언론 및 경제, 정치자금 문제뿐 아니라 집안과 개인 문제, 대선 뒷이야기 등을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한 어투로 털어놓았다. 이제 지난 1년여간의 복원 작업 결과를 다시 단행본으로 엮어 세상에 띄운다. 아마도 노무현은 더 오랫동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독자들의 판단을 구한다. "노무현은 과연 1등 대통령인가.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착시인가." 저자가 책에 실은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다.

    독자가 노무현이란 존재를 처음 알았던 것은 〈5공 비리 청문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8년 13대 국회에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때 전두환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가 열리는 국회 바깥에서는 전두환, 이순자의 구속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여졌다. 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사람이 국회의원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은 증언대에 선 채 꽂꽂한 자세로 말을 이어가던 전두환을 향해 정곡을 찌르는 질문과 함께,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고 전두환을 향해 집기를 집어 던지는 과격한 행동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마치 민중의 분노를 대변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거침이 없었고, 많은 동료 의원들의 눈길을 한데 모았다. 노무현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그를 얼마나 알고, 또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나간 시대의 인물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평가하고 기억한다. 노무현은 그런 역사의 인물들 가운데서도 가장 논란이 큰 존재다. 

    노무현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일한 5년간은 물론,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원칙과 소신을 고집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퇴임 무렵 지지율이 10%대였던 노무현은 지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을 꼽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노무현의 시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저자들은 지난 1년여의 취재를 통해 성공한 노무현과 실패한 노무현을 차분히, 냉정하게 들여다보았다.

    모두가 기억하듯 노무현은 민주화 이후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다.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평범하지 않았다. 영광과 좌절, 성공과 실패가 씨줄과 날줄처럼 뒤엉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삶이었다. 5공 청문회 스타로 떴지만 3당 합당에 반대해 낙선을 거듭했고, 간신히 야당 후보가 돼서는 승산 없는 후보 단일화에 나섰다. 드디어 대통령이 되자 이라크 파병,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지지 기반을 버리는 정책 결정을 감행했다. ‘바보 노무현’으로 집약되는 이런 면모들이 언론과의 싸움, 부동산·교육 개혁 실패, 걸핏하면 터졌던 말실수 등 그가 재직 중에 저지른 무수한 실책들을 가려주고 있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노무현과 참여정부 5년의 이러한 공과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앙의 시선에서 다시 보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이 기획 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예기치 못한 상황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한 후 탄핵 사태, 대통령 파면에 이어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이젠 이재명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고 어지럽고 불확실한 내외 사건이 이어지는 정세 속을 어떻게 돌파할지 새 정부의 막중한 책임이 놓여 있다. 저자들은 돌발적이고 충격적인 사태 진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힌다. 당초 계획했던 내용들을 빼고 시대 상황과 관련된 취재를 추가해 기획안을 수정했다고 털어놓는다. 급박한 상황 변화 속에서 20년 전 노무현 시대가 던지는 메시지를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 탄핵이나 대행 체제, 개헌·대연정 등의 최근 상황은 이미 노무현의 시대에 등장했던 이슈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대나 기간 구별 없이 사건이나 사안 별로 따로 분리해 모두 3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통령의 공과 과는 찬성과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첫 장 "자신을 버려 폐족을 구하다"는 부제가 붙음으로써 좀 더 참담한 마음이 든다. 「스스로 쓴 가혹한 판결문」. 저자는 노무현의 극단적 선택은 정해진 수순에 따른 것은 아니고, 분명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결단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노무현은 낙향하면서 측근들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의욕적으로 도모하고 있었다. 대통령 경험을 토대로 진정한 정치 개혁을 위한 '진보정치의 미래'를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그랬던 것인데, 주변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이를 포기하고, 회고록을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것도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참회록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p.18~19) 이 내용은 미완성 회고록의 일부를 가져왔음을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쓰고 있던 박연차 회장이 선물했다는 시계 이야기는 '치졸'한 대통령으로 몰려는 검찰 측의 의도적임을 간파하고 이를 빼자고 검찰 측에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변호인으로서 검찰 조사 과정을 시종 함께했던 문재인이 장례 직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2009년 6월 2일자)에서 말한 내용이 좀더 구체적이라며 인용하고 있다.


    "(노무현이) 박연차 회장의 돈을 알게 된 것은 올 2~3월째다. 권 여사가 처음에 (자식들) 유학 비용 정도로 이야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집을 사기 위한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 (검찰 수사에 대해서) 정치 보복에 의한 타살론까지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 (그러나)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으니 타살적 요소는 있다." 이 문장을 보니 당시 검찰 수사팀장이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때 청와대 사정수석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설득력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검찰의 수사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개입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밝혀내는 일은 검찰 특수성에 비춰 볼 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다만 당시 중수부장이었던 이인규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란 책을 통해 전모를 밝힌 내용이 있다.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되, 시계 선물을 언론에 흘려서 도덕적 타격을 가하라는 압력이 있었다." 사건을 도덕적 흠결이 있는 비열한 사건으로 몰아감으로써 그의 도덕적 흠집을 내야 한다는 수사 원칙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기법인지 모르지만 정공법이 아니라면 수사 자체가 목적 수사였음을 드러내는 한 부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12·3 비상계엄(내란)으로 대통령은 파면되고 이재명 대통령이 새로 취임했다. 이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당은 이 위헌·불법적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특검까지 출범시키며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부 내란 옹호 세력을 중심으로 정치 보복이란 프레임으로 걸고 넘어지려고 하지만 국민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내란 잔당'으로 몰리자 또다른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 5개 재판을 임기 끝나면 꼭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통령 선거와 당선 등으로 재판이 연기되었으니 임기 후에라도 재판을 받는다는 확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얼핏 들으면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발언 이면에는 대통령의 정치 보복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어떻게 할지는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국민의 뜻이리라.


    위헌·불법적 비상계엄으로 보궐선거 성격의 이번 대선을 통해 계엄선포한 내란 수괴 윤석열 전 대통령 말고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은 단연 '김건희'다. 전 영부인인 김건희는 왜 국민 밉상이 되었나? 국민들에게 비춰진 그의 성격이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에 별 문제가 부각되지 않지만, 사실 선거 전부터 그는 언론의 도마 위에 수없이 올랐다. 그는 남편의 대선 후보로 되기까지 적잖은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그것까진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것 저것 검증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언론으로부터 재산(돈) 문제가 자꾸 불거져 나왔다. 재산이 의외로 많은 점, 김건희의 어머니의 재산 증식 과정에서의 편법 등이 쉴새없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불법적인 점을 밝혀내지 못했다. 또 선거 과정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운영 중인 회사의 설립, 강의하던 대학에서의 이력서 위조 등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그 많은 혐의나 용의점 중 하나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선거전에 돌입했다. 

    전 대구시장 홍준표는 2024년 10월 중순 자신의 SNS를 통해 하필이면 권양숙을 거론하고 나섰다고 저자는 책에 쓰고 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두고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처신을 배워야 한다며 정치 훈수를 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장인의 좌익 경력으로 곤욕을 치른 후 대통령이 된 이후에 권양숙 여사는 5년 내내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언론에 나타나지 않았다. 보수 우파 진영에서도 노 대통령 임기 내내 권 여사를 공격하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기인한다. 지금 대통령의 국민 지지가 퍼스트레이디의 처신이 그중 하나의 이유가 된다면 당연히 나라를 위해서 김 여사께서는 권 여사같이 처신하셔야 한다." 그의 평소 입담에 비하면 매우 정중한 요구다. 국민이 모르던 것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윤 대통령 위에 김 여사'란 풍문이 의도적 공격인 줄 알았다. 


    저자 : 이장규

    글쓴이 이장규는 언론, 기업, 대학 등을 전전하며 여러 직업을 살아왔다. 경제기자 오래 한 것을 밑천 삼아 술 회사의 CEO도 지냈고, 신재생에너지 회사와 항공사의 경영을 맡기도 했다. 은행과 재벌회사 사외이사를 맡았었고, 회계법인에서도 훈수를 뒀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껴서 한동안 빠졌었고, 대학 경영을 맡아서는 호된 고생과 좌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를 지배하는 DNA는 여전히 기자다. 31년간 중앙일보에서 경제부장, 편집국장, 뉴욕 특파원, 일본총국장, 경제대기자를 거치면서 시작했던 책 쓰기는 직업에 상관없이 나름대로 계속해 왔다. 주 관심사는 정치적 리더십과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다. 정설은 없으나 한국은 그런 점에서 세계사적인 관찰 대상이요, 귀중한 사례 연구거리라고 그는 믿고 있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1991)는 전두환 경제를,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2011)는 노태우 경제를, 『대통령의 경제학』(2014)과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한국경제 이야기』(전 2권, 2014)는 총론적 정리를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담아낸 결과물들이다. 그런 노력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밖의 저서로 『한국경제 설 땅은 없다』(1993), 『19단의 비밀, 다음은 인도다』(2004), 『카스피해 에너지전쟁』(2006) 등이 있다.


    저자 : 손병수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입사, 28년간 경제 담당 기자로 일했다. 경제부장과 산업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경제경영 잡지 발행인, 뉴욕중앙일보사장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퇴직 이후 기업으로 옮겨 삼표그룹에서 대표이사, 대외협력 담당으로 일하기도 했다. 저서로 《한국 경제 먹여 살릴 10 대 산업》(공저), 《희망을 여는 아침》등이 있다.


    저자 : 고성표

    25년 동안 중앙일보, JTBC, 중앙SUNDAY, 월간중앙 등 다양한 매체를 경험했다. 사회부와 탐사기획국 등에서 팀장으로 일하면서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 호흡 긴 탐사보도 분야에 전념해 왔다.


    저자 : 박유미

    대학에서 법학·정치학을 전공했다. 2007년 중앙일보 입사 후 중앙일보와 JTBC에서 정치·경제·사회부를 두루 거쳤다.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세상과 사람을 깊고 넓게 보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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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정유진.한정선 옮김 / 노엔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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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자신의 벽』을 읽다 보면 피히테가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우국 대강연 때 연설하던 것이 떠오른다.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철학자 J. G. 피히테가 적군의 점령하에 있는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행한 우국 대강연 말이다. 우국 대강연은 1807년 12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열렸다고 한다.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振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독일 국민의 분기(奮起)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알려진 명강연이다.

    『자신의 벽』의 저자 요로 다케시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저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은 최근에 자주 떠오르는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등의 그런 생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왠지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고,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고 언급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신경이 너무 많이 쓰여 유치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그런데 인턴은 거쳤지만, 임상의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이 의사가 되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죽어 나갈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등 의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이라고는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일 수 있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믿지 않아서라고 풀이한다. 이는 세상과 잘 타협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신의 마음속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보면 '막다른 곳'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거기에는 과연 내가 정말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라는 동기가 있다고 한다. 사실 자신은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다고 고백한다. 매우 모호한 질문과 답을 마음속으로 하던 저자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하려면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결국에는 결말이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뇌과학을 말하는 것인지, 심리학 이야기인지, 혹은 철학이나, 컨설턴팅인지 모를 저자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이때 저자는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한다. "참고로 문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해 온 것들은 소설에 이미 쓰여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부분을 읽어 보면 안나 오빠의 삶의 방식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니츠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는 미네코가 마지막에 산시로를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나의 허물을 알고 있다. 나의 죄는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는 성경의 구절이 인용됩니다. 젊었을 때부터 저는 이 소설들에 나오는 이 구절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 자체가 저 자신에 대한 해답이 되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참 어렵군요. 해답은 눈앞에 있는데,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p.7)

    저자 이야기의 물꼬를 어디서 어떻게 터야 할지 독자로서는 난감하지만 계속 경청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은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파헤치며 ‘자신’과 ‘개성’,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에세이라는 설명이 이미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유치원생 시절부터 남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경험,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음에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해 의사의 길을 포기한 이야기 등, 저자는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고,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위로와 공감을 얻게 된다." 출판사 측의 정리된 소개글을 읽게 되면 차츰 저자의 집필 의도가 안개 걷히듯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책 『자신의 벽』이란 표제어에 이제 조금 다가선 느낌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다. 저자는 자신이란 “지도 속의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개성이나 자아의 확립,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자신’은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 임사체험, 뇌과학 사례, 문학작품 인용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자신’의 경계와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좋아야 잘하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넘어,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따뜻한 시선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의 연결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문제를 용기 있게 드러내는 저자의 진솔함,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보편적 진리는,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감동을 남길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 2장 〈진짜 나는 마지막에 남는다〉, 3장 〈나의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4장 〈에너지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6장 〈유대에는 좋고 나쁨이 있다〉, 7장 〈정치는 현실을 움직이지 않는다〉, 8장 〈「자신」외의 존재를 의식한다〉, 9장 〈넘쳐나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10장 〈자신감은 「자신」이 키우는 것〉 등이다.



    1장에서 저자는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흔히 하는 순수한 질문을 한 번 떠올려 볼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입안에 있는 더럽지 않은데, 왜 입 밖으로 뱉으면 더러운 거예요?" 이 질문은 꽤 날카롭다. 실제로 입안에 있는 침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지만, 그 침을 컵에 가득 모아서 마시라고 하면, 아무리 자기 것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어 질문한다. 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갑자기 싫어지는 걸까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좀처럼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은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금방 풀린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의 뇌, 즉 의식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나다'라는 자아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 범위 안에 속해 있으면 「편애」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그때까지 「편애」하던 감정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어 버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논리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람들의 심리 상태의 변화 등을 저자는 1장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침'에 이어 '대소변', '수세식 화장실 보급', '해부학에서의 잘린 목이나 팔' 등을 사례로 들어 하나하나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임사 체험'이다. 현장에 가보면, 체험 중인 사람은 의식이 없다. 그러니 말을 걸어도 당연히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희미한 의식이 남아 뭔가 끔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진다. 이 꿈에는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는 듯하다. '강 건너편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외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보고되고 있는 것이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경험이다. 이를 유체 이탈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뇌의 작용으로 인한 현상이 분명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군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국가주의에 대한 호소로 보기 쉽다. 그러나 독자가 보기에 단연코 이는 아니다. 저자는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시위(데모)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제한다. 한때는 총리 관저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매주 열릴 정도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도 우리의 일부 아닙니까?"라고 말하면, 분명히 화를 내는 이들도 있을 것 같아서 매우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우리의 속내는 이런 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원전이 언제 이렇게 늘었나 하고 의아해 한다고도 밝힌다. 그럼에도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이 문제 역시 나 자신과 연결된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성찰은 지속된다. 본래 일본인은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다는 점도 짚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이라는 한 사람이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천황이 상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한 사람에게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냉정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일본인들은 거기에 특별히 위화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p.79)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수탈을 당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일본인이 왜 군국주의에 쉽게 빠져들었는지 전체주의 사상의 원류를 찾아 지적하고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의 이어지는 지적은 독자를 더욱 놀라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잊었거나 모르고 있겠지만, 과거 일본인에게는 '생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태어난 날은 각각 존재하고 기록은 하지만 그것을 축하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모두가 일제히 새해를 기준으로 나이를 먹게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세는 나이'를 저자는 일본 전체주의 집단주의의 원류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음력설과도 비슷한 셈법인 것 같다. 음력 12월 31일 생이면 하루 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천황을 정점으로 한 사상의 가족이라는 뜻이라고 저자는 자성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세는 나이는 없어졌고, 이런 전쟁 이전의 습관이나 법률도 바뀌었지만, 어딘가에 이런 가족적 의식은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의 주장은 왜 우리에게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일까. 우리도 아직 음력설을 쇠고, 음력의 나이로 나이를 셈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물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는 모두 양력에 따라 바뀌었지만(1961년) 중년 이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력 생일로 호적(?)에 올렸고 가정에서는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환산한 날짜에 맞춰 생일을 쇠는 문화이기에 저자의 지적은 참신한 느낌이다.


    저자 : 요로 다케시(Takeshi Yoro, ようろう たけし, 養老 孟司)


    일본에서 대표적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는 1937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곤충채집에 열정을 쏟아 대학에서 곤충 연구를 희망했지만, 최종 진로는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1962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요로 다케시의 세계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요로 다케시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바보의 벽』, 『신체를 보는 법』, 『유뇌론』, 『죽음의 벽』 등이 있다. 특히 『바보의 벽』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신체를 보는 법』은 산토리 학예상을 요로에게 안겨주었다. 그중 『바보의 벽』은 ‘요로 철학’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일본에서만 400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역자 : 정유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기술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정보와 전략분야에서 일본 관련 일을 했고, 현재 출판과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고등학생을 위한 경제학 입문』(CHIKUMA新書), 『특허미래』(日經BP), 『IoT의 미래』(日經BP)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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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보르기니 60년
    스튜어트 코들링 지음, 엄성수 옮김, 제임스 만 사진 / 잇담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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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람보르기니는 세계 젊은이들의 '로망'이다. 동종 타사가 먼저 출발했지만 지금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부 차종은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람보르기니가 스포츠카를 컨셉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 『람보르기니 60년』은 표제어대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출간한, 출시 차량은 물론 경영 방식까지 모두 밝혀 람보르기니의 미래로 이어지는 디딤돌로 기획됐다. 세계의 명차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각고의 노력이 책 속 곳곳에서 드러나며 혁신적인 경영과 컨셉트카의 상징적인 외관, 스포츠카로서의 엔진 등 람보르기니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다. 압도적인 존재감의 슈퍼카, 람보르기니의 경이로운 60년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람보르기니는 1963년,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350GT와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1947년부터 이어진 페라리 스포츠카보다 약 15년 늦은 셈이다. 그러나 람보르기니는 슈퍼카 유니버스에 지각변동을 불러온 미우라, 모든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의 쿤타치로 슈퍼카의 기준을 완전히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터스포츠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 스튜어트 코들링은 이 책에서 전 세계 슈퍼카 마니아를 설레게 하는 놀라운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으며 60년이 넘는 격동의 세월을 우직하게 걸어온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가감 없이 기술했다.

    다양한 모델의 기술 사양과 함께, 해당 모델에 관한 자동차 전문 기자들의 기록을 풍부하게 제공하며, 역사적인 사진과 람보르기니 기록보관소의 자료, 그리고 이 책을 위해 새로이 촬영된 이미지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람보르기니 모델들의 탄생을 현장감 있게 복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 한 권의 책이다. 기사의 내용은 물론 화보라고 해도 좋을 출시된 차는 다시 한 번 독자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창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물론, 람보르기니의 성공에 기여한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의 면면도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은 세심한 기록이 만들어낸 디테일한 람보르기니 탐구서이다.



    책에 따르면 강렬하고 화려한 람보르기니 자동차 특유의 스타일을 보아서는 쉽사리 짐작되지 않겠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람보르기니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설립 이래 회사의 소유권이 다섯 차례나 바뀌는 중에도 멈추지 않고 도전을 이어온 ‘성난 황소’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기술돼 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엔초 페라리와 언쟁을 벌인 뒤 자신이 직접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는 1963년부터, 아우디가 람보르기니를 인수하며 브랜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후 활기를 되찾은 람보르기니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60년 역사를 책 한 권에 담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전 수석 테스트 드라이버 발렌티노 발보니의 〈서문〉을 통해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당시 페루치오는 늘 경쟁사보다 나은 성능의 자동차를 내놓고 싶어 했다. 첫 양산 모델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독보적인 스포츠카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동시에 세상을 향해 자신이 어떤 성격과 기질을 지녔는지 뚜렷하게 보여주었다."(p.7)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가 창업자와 람보르기니 소유주들을 차별화하는 독보적인 이미지를 쌓으며 통념을 깨고 나아가는 선두에 서길 바랐다는 발보니는 "그 과정에서 나온 미우라(Miura)는 분명 스포츠카 세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모델이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는 전 세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자동차 제조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어 쿤타치(Countach)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디자인으로 지금 봐도 아주 독특하다는 발보니는 열린 마음에 더해, 현대적인 스포츠카는 유려하면서도 편안해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람보르기니 정신을 대변하는 모델로 꼽는다. 물론 미우라와 쿤타치는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규정짓는 많은 모델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람보르기니의 모든 전통과 열정은 현재 산타가타 볼로냐의 람보르기니 공자에서 생산되는 예술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발보니는 강조한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트랙터를 제조해 부와 명성을 쌓았다. 아울러 공압 밸브와 난방 장치 제조를 통해서도 큰 수익을 거두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페라리의 엔초 페라리와 감정 섞인 언쟁을 벌이고 나서 람보르기니가 자신의 자동차 제조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사실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다고 저자 스튜어트 코들링은 말한다. 또 사실이더라도 언쟁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그럴 듯한 이야기'라서 회사 소유권이 다섯 차례나 바뀐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가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창업 비화로 회자되곤 한다고 책에 적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1960년대 초 자동차 업계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트랙터 제조, 난방 장치 공급, 공압 밸브 제조 등 다양한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였다. 당시는 고성능 고급 자동차 제조사 창업 붐이 일던 시기였다. 따라서 그가 페라리의 애프터 서비스 방식에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동차 브랜드를 만들기로 한 건 필연에 가까웠다. 저자는 브랜드에 신비감을 부여하는 데는 '신화'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전제하고, 많은 사람이 6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황소 엠블럼을 부착한 람보르기니 자동차를 구입하고 간직하는 것도 신화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1964년 잡지 〈스포팅 모토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페루치오가 언뜻 내비쳤듯이 당시 고성능 자동차 시장에는 어떤 빈틈이 있었다. 

    "과거에 저는 가장 비싼 고성능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그 멋진 차마다 늘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차는 덥고, 어떤 차는 불편하고, 어떤 차는 빠르지 못했죠. 아니면 마무리가 완벽하지 않거나. 그래서 제가 직접 흠 없는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려고 합니다. 기술적 문제가 많은 폭탄 같은 자동차 말고요. 아주 정상적이면서도 완벽한 자동차 말입니다."(p.11) 

    이 말은 1962년 자동차 회사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할 때, 그리고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여러 금융 기관과 지방 정부 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일 때 제시한 창업 목표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350GT의 제작 출시에 관한 에피소드도 저자는 귀띔한다. 이에 따르면 람보르기니 측은 시제품 보디 다자인 작업을 프랑코 스카글리오네에게 의뢰했다. 스카글리오네는 토리노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훗날 이 보디 디자인 작업은 보디 제작업체 카로체리아 투어링으로 넘어가 양산차 350GT 모델의 토대가 된다. 엔지니어 지오토 비자리니에 따르면, 그가 페루치오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배기량 1.5리터짜리 쿼드-캠 12기통 포뮬러 원 엔진을 보여주었는데, 배기량을 더 키워 페라리의 경쟁 모델보다 더 강력한 엔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비자리니는 애초의 계획과 달리 너무 강력한 경주용 레이스카 엔진을 만들었고, 그 결과 페루치오와 결별하고 만다. 이와 관련해서는 엔지니어 잔 파올로 달라라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보아야 할 듯하다. 그들에 따르면 당시 페루치오는 빠른 로드카 엔진을 만들지, 아니면 또 다른 경주용 레이스카 엔진을 만들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지오토 비자리니의 엔진은 제작된 적이 없고, 람보르기니의 12기통 엔진은 혼다(Honda) 자동차가 비밀리에 제작했다"고 한 자동차 전문 저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밝힌다.

    혼다가 1965년 배기량 1.5리터짜리 12기통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로 포뮬러 원에 참가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엔진은 유입관이 V자 안이 아닌 캠샤프트 사이에 위치하는 등 몇 가지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고 익명의 출처와 희망 사항에 근거를 둔 듯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L.J.K. 세트라이트처럼 공공연한 혼다 예찬자라면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는 주장이었다. 오랜 세월 람보르기니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밥 윌리스는 그런 주장이 다 '헛소리'라고 일축한다.

    이 책은 모두 1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미우라〉-「세계 최초 미드-엔진 슈퍼카」, 2장 〈주류가 되다〉-「슈퍼카 성능의 가정용 자동차」, 3장 〈쿤타치〉-「슈퍼카의 전형」, 4장 〈루프를 들어 올리다〉-「미국 시장 진출」, 5장 〈디아블로〉-「거듭난 슈퍼카」, 6장 〈무르시엘라고〉-「아우디, 실력을 발휘하다」, 7장 〈가야르도〉-「운전자의 슈퍼카」, 8장 〈레벤톤〉-「독보적인 성능」, 9장 〈아벤타도르〉-「슈퍼카의 공식을 바꾸다」, 10장 〈세스토 엘레멘토〉-「출력은 올리고, 무게는 줄이고」, 11장 〈우라칸〉-「현재가 미래다」, 12장 〈괴물들〉-「'람보 람보' 출시」, 13장 〈미래의 과거를 향해〉「리메이크, 재해석, 리부트」 등이다.



    람보르기니 마니아라면 차 이름만 들어도 어떤 차이고 어떻게 생겼다는 슈퍼카의 이모저모를 잘 알 터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은 여간해선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멋진 외관에 쏠려 차이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사실 누가 옆에서 알려주거나 엠블럼 정도로 구분하는 정도다. 이 책의 1장은 앞서 언급한 〈미우라〉에 관한 이야기다. 1장의 발제문으로 대신한다. "1965년 람보르기니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던 걸까. 잔 파올로 달라라에 따르면, 350GT 모델은 가까스로 제작에 들어간 걸로 보인다. 적절한 테스트 없이 작업을 서두르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했다. 그러나 람보르기니의 젊고 야심만만한 엔지니어링 팀은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 1965년 11월, 그들은 토리노 모터쇼에 신차를 공개한다. 아직 보디 셸도 없고, 정식 모델명도 붙지 않은 자동차였지만 모터쇼를 찾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어 세울 만큼 매혹적이었다."(p.21)

    저자는 미우라는 색깔 덕에 한층 매력적으로 보였다고 말한다. 그 어떤 자동차에서도, 심지어 어떤 모터쇼에서도 본 적 없는 색깔,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중간 어디쯤인 그 색깔은 이후 몇 년간 가장 매혹적이고 유행하는 자동차 색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미우라에도 비사가 있다.

    "이렇게 혁신적인 자동차가 롤링 섀시 상태로 모터쇼에 정식 공개되기까지 단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잠깐, 제네바 모터쇼에 진열했던 미우라 모델에 수치스러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아는가? 그건 바로 자동차 뒷부분을 적절한 높이로 유지하는 일부 바닥짐을 제외하곤 엔진 격납실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제품 완성을 서두르느라 그랬을 텐데, 하긴 엔진이 할당된 공간에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무튼 모터쇼 기간 내내 엔진 격납실은 꼭 잠겨 있었다. 그 사이 람보르기니의 영업 책임자 우발도 스가르지는 미우라와 400GT 모델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미리 확보해 놓았다.(p.25)



    람보르기니가 합성 소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부풀린 내용이 아니었다. 람보르기니는 실제로 많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787 드림라이너를 생산하고 있는 보잉과 제휴하는 등, 다른 기업들과 협력해 새로운 주물 기술을 개발했다. 2007년에는 보잉과 미국연방항공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미국 시애틀에 자리한 워싱턴대학교에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 첨단 합성 구조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p.183) - 「10장 세스토 엘레멘토」 중에서


    저자 : 스튜어트 코들링(Stuart Codling)

    저명한 모터스포츠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 미국에서 스포츠카 레이싱을 취재한 이후, 200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포뮬러 원 잡지 《F1 레이싱》에 합류했다. 『포뮬러 원: 생존을 위해 달리다FORMULA 1: DRIVE TO SURVIVE』 등 F1을 다루는 다양한 도서를 집필했고, F1 전문가로 TV와 라디오에 출연했으며, ‘르노 F1’팀의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 서리의 파넘에 거주하며 《F1 레이싱》, 《오토스포트》, 《오토카》, 《더 레드 불레틴》 등에 기고하고 있다.


    사진 : 제임스 만(James Mann)

    영국 도싯에 거주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및 오토바이 전문 사진작가. 30년 넘게 자동차 산업 전반을 위한 사진을 촬영해왔으며, 전 세계의 출판사, 자동차 기업과 함께 작업했다. 그의 작품은 『람보르기니 슈퍼카LAMBORGHINI SUPERCARS』 등 70권이 넘는 책의 표지 및 내지에 실려 있으며, 《클래식 앤 스포츠카》, 《카》, 《포르자》, 《선데이 타임스》, 《오토모바일 매거진》 등 다양한 신문, 잡지에도 인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왔다.


    역자 : 엄성수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다년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거의 모든 것의 종말』, 『승리하는 습관』,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나아가라』, 『테슬라 모터스』, 『더 이상 가난한 부자로 살지 않겠다』, 『러브 팩추얼리』, 『창조하는 뇌』, 『유전자 클린 혁명』, 『유튜브 컬쳐』, 『노동 없는 미래』 등이 있으며, 저서로 『초보탈출 독학 영어』, 『친절쟁이 영어 첫걸음』, 『왕초보 영어회화 누워서 말문 트기』, 『기본을 다시 잡아주는 영문법 국민 교과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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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저널리즘/리얼리즘 -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20여 년 기자 경력의 현직 사회부장이 들려주는 저널리즘의 생생한 속사정
    김정훈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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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저널리즘 리얼리즘』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표제어를 수식하는 문구와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이라는 부제로 앞뒤로 달려 있어 무엇을 이야기하는 책인지 다소 헷갈리게 한다. 핵심어는 '저널리즘'이겠지만 '리얼리즘'이란 단어를 붙여 저널리즘과 리얼리즘의 관계를 먼저 풀어보려는 의도일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수식하는 문구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한데 묶어 모호하게 한다. 기자 경력 20여 년의 현직 사회부장으로서 제목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는 저자 김정훈은 왜 혼란스러운 제목의 책을 썼을까? 자칫 제목만 보아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과 분리될 수 없는 당신에게」란 제목의 〈서문〉을 여는 순간 '저널리즘'을 말하기 위한 책이라는 걸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저널리즘을 내건 이 책이 당신에게 닿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저널리즘을 폄하하고, 특히 레거시 미디어*를 외면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갈수록 뉴스를 믿지 않습니다. 뉴스를 만드는 기자는 조롱받기 일쑤이지요. 권력 놀음을 했던 흑역사가 있었으니, 언론의 침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면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언론이 왜소해지는 현실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전면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테니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 건전한 토론이 사라져 가고 있고, 민주주의도 힘을 잃어 갑니다. 이대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모두가 정의를 얘기하지만, 종국엔 그 모두가 정의롭지 않게 되는 세상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생각을 하면 참담합니다."(p.9)


    * 레거시(L egacy) 미디어 : 웹 기반의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 견줘 전통적 미디어인 TV, 라디오, 신문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 레거시는 정보 시스템에서 낡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새로 제안하는 방식이나 기술을 부각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즉 레거시 미디어는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오래된 대중매체를 지칭한다.(시사상식사전)


    느닷없는 비상계엄령으로 전 국민을 불안과 공포를 몰아넣은 윤석열 정권은 탄핵되고, 파면되었다. 헌법에 정해진 절자대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여야는 바뀌고 비상계엄령을 옹호하거나 탄핵을 반대하던 당시 여당은 야당이 되었지만 아직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당내 분열로 소수당인 당력마저 한데 모으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계엄 6개월만에 완전히 뒤바뀐 정국이다. 

    이 책은 현 정국의 틈에서 기존 언론의 한 언론인으로서 한 번쯤 성찰해볼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사상 초유의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2024년과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시 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집필의 전제를 내세운다. 비정상이 이어질 때는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려내기 위해서는 합리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언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비상계엄령의 여파로 생긴 혼란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당장 닥친 민생 경제의 회복과 민주주의 회복력을 세계를 향해 외쳐 달라고 야당인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주어 민생을 꼭 챙겨 줄 것을 당부했다. 아직 20일도 안 된 새 정부가 소기의 성과를 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모자란 탓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저자의 언론 성찰은 뒤늦게라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독자로서는 판단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묻는다. 이제 ‘언론이 더 잘 하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될까요? 그리고 답한다. "언론에 대한 규탄과 이에 따른 성찰만으로는 미사여구로 치장된 장밋빛 청사진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낡고 금이 간 그릇을 올바로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하나는 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손쉬운 욕지거리만으로는 문제를 푸는 첫 단추도 꿸 수 없습니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지적으로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잘 알게 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분명한 비판의 지점이 보일 것입니다. 알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습니다."(p.9~10)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는 말(서문)〉과 〈맺는 말〉을 제외하면 6장이다. 2장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3장 〈밋밋한 현실 어딘가에 있나, 흰 까마귀〉, 4장 〈사실과 진실, 참과 거짓의 뫼비우스 띠〉, 5장 〈이해와 소통의 폭 넓히는 커뮤니케이션〉, 6장 〈알다가도 모를 한 길 사람 속을 향해〉, 7장 〈저널리즘 심폐소생, 정죄와 자조를 넘어〉 등이다. 2장에는 저자가 CBS의 기자로 입사해 20년 동안 근무하며 느낀 CBS 기자로서의 생활, 자신의 언론관, 우리 언론의 현실 등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방송'이라는 종교 언론으로 시작했지만 방송 본연의 정도 보도를 위한 기본적 체계는 시작부터 잘 갖춰진 방송국이었다.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상업 방송처럼 기업의 압박을 받지 않는 정도 언론을 표방했고 이 기조를 잘 지켜냈다는 CBS 기자로서의 자긍심도 담겨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정부 측 지분이 있어 어떻게든 정권의 영향력 아래 놓이거나, 특정 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나, 경영권이 사주 일가 안에서만 대물림되거나 하는 모습을 띠는 게 일반적입니다. 각기, 기자들이 자유 의지를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지요."(p.29)

    저자는 CBS 기자 경력 20여 년 동안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압력도 적은 기자 본연의 자세를 지켜온 데에는 앞서 지적한 권려과 경영주,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 가능했다는 자긍심을 자신의 CBS 기자 경력 동안 충분히 저널리스트로서의 긍지를 갖게 해주었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상대적으로 그런 배경의 언론사는 자사 이익이 먼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도'를 걷기 어려웠다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3장에서는 '흰 까마귀'를 등장시켜 대한민국 언론 역사를 조망하고 역사의 분기점마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해 낸다. 여기서 흰 까마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 도출한 비유적 표현이다. "검은 까마귀 세 마리를 보았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가 다 검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흰 까마귀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우리는 모든 까마귀가 검은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라고 쓴 것을 인용하고 있다. 수많은 검은색 까마귀와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흰색 까마귀 속에서도, 세상에 흰 까마귀는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흰 까마귀를 인용한 것은 12·3 내란 사태 국면에도 충격적 깨우침에서 비롯된 비유다. 

    저자는 12·3 비상계엄을 '느닷없는' '불시에' '예상치 못한' 계엄으로 본 것이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광주 5·18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계엄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쓴 것이다. 사실 12·3 비상계엄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설마' '갑자기?' '전쟁?'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화면으로 지켜보면서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설마 가짜 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 이 점에 있어 저자도 귀가하려고 운전하다가 동료로부터 '비상계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독자도 TV를 보면서도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했나? 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저자도 너무나도 황당한 소식을 믿지 못해 휴대전화로 TV화면을 보았더니 믿기지 않은 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밝힌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3 내란 사태는 저자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흰 까마귀'로 비유한 표현이 등장한 이유다.

    "결국 그는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자만, 독재자 윤석열의 망동과 계엄 선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세계관을 교정해야 할 정도의 충격을 남겼습니다. 사실 김민석, 김병주 의원 등이 사전에 계엄령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할 때만 해도 과격한 주장 정도로 흘려들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야 했다.


    '비상계엄령'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은 '5·18 광주'다. 12·3 이전 마지막 비상계엄이기도 하고, 어느 때보다 선량한 시민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5·18은 신군부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국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시민 학살'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광주 시민이나 호남 사람들, 심지어는 5·18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침묵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군부를 비방하거나 희생된 아들 딸에 관한 이야기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서슬 퍼런 신군부가 계획대로 정권을 잡고 헌법을 고쳐 7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되며 국정을 장악했다. 그들 앞에서 광주 시민들은 죄인이었고,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일부 떠드는 사람은 일부 국회의원의 발언을 통해 있었지만 그것도 면책 발언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전두환 아래서는 말 그대로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광주에서조차 5·18에 관한 말은 활발하지 못했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문재인 정권 때인 2017년에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추가적인 진실 규명에 나섰을 때 계엄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한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영, 이희성 등의 목소리가 아니라 광주 거리에서 총을 들었던, 시민들을 향해 실제 방아쇠를 당겼던 그 계엄군들의 목소리 말이다. 실제 게엄군의 목소리는 그때까지 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상황이 가장 궁금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묘사되던 전남도청 앞 발포 상황을 가리킨다. 그때 현장에 있던 한 계엄군의 목소리를 여기에서 전한다.

    "학생 시민들하고 대치하고 있는데, 시민들 쪽에서 화염병 하나가 날아오더라고. 그게 하필 장갑차 아래로 굴러 들어갔어. 근데 장갑차는 기름 탱크가 아래에 있단 말이야. 그래서 그 상황에 차가 터질까 봐 급히 장갑차를 후진했는데, 마침 뒤에서 졸고 있던 ○○○(장교)가 눈이 뒤집히면서 기관총을 빠바박 쏘더라고. 그렇게 발포된 거지."

    그러나 장교가 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쐈는지 시민들을 향해 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책에 기술하고 있다. 다만, 첨예한 대립 속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울리던 총성에 다른 총구에서도 연이어 불꽃이 튀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아직 현직에 있지만 이번 비상계엄령 이후 달라진 언론 환경에서 성찰하고 다짐해 다시 언론의 정론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올곧은 기자의 길을 걸어온 분으로서 기자라는 명함을 갖고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언론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자 노력한 모습으로 독자에게는 기대감을 준다. 또 이 문제를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함으로써 올바른 기자상을 세우고, 언론사 측의 각성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 훌륭하지도 않고 혁혁한 성과와도 거리가 먼 저의 담백한 고백을 녹여, 언론계에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고민과 과제 등을 솔직히 적어 보았습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언론 내부를 여실하고도 넉넉히 반영하려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동료 기자들을 향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올바른 당위를 바로 세우고,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를 함께 찾아보자는 요청입니다. 대중의 외면과 수익성 하락, 기술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각자도생하기보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언론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책임은 우리 스스로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에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은 언론과 관계하는 업무 종사자들, 그리고 언론 지망생들을 위한 길라잡이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염두에 두고, 기자라는 직업인과 언론 현장을 가능한 한 생생히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언론에 친숙함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제가 목표한 바는 거의 달성하는 셈입니다. 이 모두를 위해 취재와 보도의 원칙뿐만 아니라, 진짜와 가짜, 사실과 진실을 가리는 작업의 난해함, 주관적 인지 편향과 이로 인한 갈등, 미디어 및 기술의 환경 변화, 그리고 언론의 수익 모델 등을 두루 짚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독자, 기자, 지망생 등 언론과 떨어져 살 수 없는 모든 이들을 향한 언론의 자화상입니다. 이를 보고 기자와 언론을 이해해 주시고 따끔히 지적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가운데 다시 기대와 희망이 생겨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요.

    책은 앞선 현자(賢者)들의 다양한 글들을 종종 인용했습니다. 제 생각의 깊이가 도저히 그들을 따를 수 없는 탓입니다. 제가 탄복해 마지않던 그들의 지혜를, 독자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언론 일반에 관한 글임에도 제 성장 과정과 제가 속한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로 글문을 열겠습니다. 저널리즘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가진 시각이 그 연원부터 더 잘 이해되기를 바라는 취지입니다."(p.10~11)


    저자 : 김정훈


    2003년 CBS에 입사한 뒤 정치부·사회부·경제부·산업부·뉴미디어팀 등에서 취재 보도를 이어왔다. 또 노동조합과 기획조정실을 거쳤고, 〈김현정의 뉴스쇼〉 팀에 파견돼 PD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험도 익혔다. 현재 보도국 사회부장으로, 저널리즘의 쇠락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언론학 석사)

    · 美 위스콘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연구원

    ·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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