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에메랄드 2 - 바다 요정을 만나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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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에메랄드 2 : 바다 요정을 만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4) [원제 : Emerald and The Sea Sprites (2023)]

[My Review MMCLXIV / 을파소 22번째 리뷰] 아무리 내가 실력 좋은 독서논술쌤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소녀 감성'이 물씬 나는 그런 어린이 동화책이다. 물론 나도 어릴 적에 '문학의 밤'에 흠뻑 취하기도 하고, '순정소설' 좀 섭렵하던 '문학소년'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는 남자다. 이런 나를 당혹스럽게 한 어린이책이 바로 <이사도라 문>이었다. 도무지 '갈등'이라고는 없고, 매번 사건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등장하긴 했지만, 어린 소녀가 겪는 갈등이라고는 친한 친구하고 '사소한 말다툼'을 한 것이 전부이고, 어린 소녀가 저지른 말썽이라고는 '예쁜 물건'을 다루다 실수로 망가뜨린 것이 고작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렇게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이 책에서 무슨 '주제'를 고를 수 있고, 무엇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또 한 권의 책'을 읽었구나 싶을 때, 이 책을 읽고 있는 어린 소녀 독자들의 표정을 보고서야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얼굴에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갈등도 없고, 사건사고도 없고, 그저 하염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간에 펼쳐지는 꽁냥꽁냥한 이야기가 소녀들의 감성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남자인 내 가슴에는 그런 '불꽃 감성'이 타오르지 않는다. 그저 밋밋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소녀 독자들에겐 '아름다운 감성' 한 스푼이 보충된 듯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재밌다고 재잘거린다. 그래서 문득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무슨 큰 영광을 누리겠다고 '보물찾기'하듯 주제를 찾아 눈을 부라릴 것이냔 말이다. 하릴없는 일이다.

이 책 <프린세스 에메랄드 2>에는 에메랄드와 델피나 공주가 '가리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호초 숲'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산호초에 '신비롭고 귀여운 바다 요정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책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명의 공주들은 '바다 요정'을 찾아 저멀리 모험을 결심한 것이다. 아빠와 엄마도 모르게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름답고 신비한 모험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지만, 사실 '두 페이지' 분량이 지나기도 전에 모험은 끝나고 '바다 요정'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험은 끝이 난다. 아까부터 밋밋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 모험을 떠나는 도중에 '깊은 바다'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서 늘 환한 '가리비 도시'와는 달리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바다를 지나야 한다는 이야기 한 줄로 모험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산호초 숲'에서 발견한 바다 요정과 만나서 재미나고 신 나게 놀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서둘러 귀가를 하려 한다. 이때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에메랄드와 델피나와 어울려 놀던 바다 요정 세 마리가 졸졸 뒤따라왔던 것이다. 깊은 바다를 지날 때에는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바다 요정이 쫄쫄쫄 따라오는 것도 몰랐다가 환한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소녀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동네 약수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만난 '야생 동물'이 너무 귀여워서 신 나게 놀다가 그 야생 동물이 소녀들을 쫄래쫄래 뒤따라 온 것을 상상하고 있었을 테다. 그런데 델피나는 '바다 요정'을 자신들의 왕국에 초대하자고 말한다. 얼마나 소녀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까? 귀여운 '야생 동물'을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신 났었는데, '바다 요정'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초대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맞게 에메랄드는 아주 커다랗고 아름다운 '인형의 집'을 갖고 있었다. 그곳을 '바다 요정'이 머물 곳으로 정하고, 두 공주님은 '바다 요정'을 정성껏 손님 대접을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소녀 독자들은 '길고양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꾸 뒤를 쫓아오길래 아예 지신의 방으로 초대를 해서 재밌고 낭만적으로 놀이를 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엔 에메랄드의 '인형의 집'에서 재미나고 신 나게 놀던 '바다 요정'이 점점 생기를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요정은 아주 작은 생물이기 때문에 짧은 모험이었는데도 아주 '긴 여정'이었고, 그 덕분에 바다 요정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래서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거니 했지만, '바다 요정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하긴 '야생 동물'도 무리하게 집에서 길들이려 하다간 '소중한 생명' 하나를 무고하게 죽게 만드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야생 동물'이 우연히 집으로 들어와서 함께 살아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만약 그 '야생 동물'이 알고 보니 '천연기념물'일 경우에는 고액의 벌금과 실형까지 살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야생 동물은 사람이 쉽게 길들일 수 없다. 그리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 접중'도 단기간에 여러 차례 맞춰야 하는데, 동물병원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들 수도 있다. 그러니 '길고양이'나 '야생 새' 등과 같은 동물이 살갑게 굴더라도 절대 집에서 기르겠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야생의 꽃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원래 있던 자리'에 살아 숨쉬며 향기를 뿜어내고 자태를 뽐낼 때 그렇다. 야생 동물도 그렇다. 암튼 생기를 잃어가는 '바다 요정'을 살리려면 서둘러서 바다 요정이 원래 살던 '산호초 숲'으로 되돌려 보내는 수밖에 없다. 에메랄드와 델피나 공주가 바다 요정을 살릴 수 있게 될까?

여기까지만 보면 '야생 동물'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책의 주제인 듯 싶다. 하지만 <이사도라 문>도 그렇고, <프린세스 에메랄드>에서도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엔딩'을 마무리하고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나조차 '감동스럽긴' 마찬가지다. 나 어릴 적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싸움'을 하셨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화목하고 다정하게' 저녁 식사를 해본 적이 없다. 살림이 넉넉치 못해서 '맞벌이'를 하셨는데,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다 같이 모인 식사시간에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래서 동화책 속에서나마 이런 '화목한 장면'이 연출되면 몹시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읽을 때는 나도 살짝 '감동'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문득 '재혼가정'도 이렇게 아름답고 화목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자 생각이 많아졌다. 기존의 '서양 동화책'에서는 재혼을 한 엄마 아빠 때문에 남겨진 자녀가 모진 고생을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 책은 완전 달라서 온통 '긍정적 이야기'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큰 차이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재혼가정'인데도 '긍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마냥 좋다고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또한 이 책을 흐믓하게 읽고 있는 소녀 독자들의 미소를 보면서 의심을 지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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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4 : 인간, 돈의 유혹에 퐁당 빠지다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김현민 그림, 정재은 글, 정재승 기획, 이고은 자문 / 아울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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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4 : 인간, 돈의 유혹에 퐁당 빠지다>  정재승 / 정재은 / 아울북 (2024)

[My Review MMCLXIII / 아울북 41번째 리뷰] 우여곡절 끝에 고향별 아우레 행성으로 귀환하지 못한 오로라와 라후드, 그리고 뜻하지 않게 지구에서 만난 호리호리 행성의 외계인 도됴리가 지구에 남아 '인간들'을 탐구하며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물론 '귀환선'이 올 때까지 임시 활동이다. 한마디로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늘 하던 것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늘 하던 것인 '인간 탐구'를 본격적으로 해야만 할 이유가 발생했다. 지구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돈'이 없었던 것이다. 원래는 라후드가 '보스' 대신 지구에 남게 되었을 때, 엄청난 갑부이기도 한 보스는 라후드가 지구에서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약속했으나, '약간의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라후드와 오로라, 그리고 도됴리가 쓸 '여비'를 아직 전달 받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예전처럼 '돈'을 벌기 위해 오로라와 라후드는 인간들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데...

인간에게 '돈'은 왜 필요한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행복'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하고픈 것'을 다 할 수 있고, '갖고픈 것'도 다 가질 수 있고, '불편한 것'도 다 없애고 편리하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행복한 느낌'마저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돈을 갖고 싶어 한다. 허나 인간은 '돈'을 갖기 위해서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일'을 해서 최종적으로 돈을 번다. 여기서 '능력'은 대체로 '노동'으로 대체해서 쓸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 수도 있지만, '정신적 노동'을 통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많기 갖고 있다면 '자본'을 통해서 더 큰 액수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돈은 '육체적 노동 < 정신적 노동 < 많은 자본' 순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데, 큰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훨씬 더 적은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대신 '뇌과학'적인 내용에 집중해서, '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탐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지수'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기만 할까? 그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대체로 돈의 액수가 커질수록 행복 지수도 비례적으로 높이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돈의 액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오히려 '행복 지수'가 급락하는 역전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들이 무조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학'에서는 행복 지수는 '상대적 비교우위'에 따른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여기선 그런 내용도 없다. 어디까지나 '뇌과학의 언저리'에서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럼 과학적인 이야기를 해본다면, '로또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이들이 '일확천금'을 목적으로 로또(복권)를 사서 당첨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을 맞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복권'을 사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사실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매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벼락 맞는 것보다 훨씬 더 희박하다는 '당첨 확률'인데 왜 거액의 당첨자는 매주 나오는 것일까? 이는 그만큼 복권 구매자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럼 '벼락 맞을 희박한 확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희박한 확률은 바로 '당신'이 복권을 샀는데 거액의 당첨금을 탈 확률이다. 누군가 당첨되기는 하지만, 그게 '나'일 확률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액의 당첨금을 노리고 엄청난 액수의 '복권 판매수익'이 매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이익을 쓸어 담는 쪽은 언제나 '복권 판매처'다. 거액의 당첨금은 받는 이는 '딱 한 사람(로또의 경우엔 1등 당첨금을 '당첨자 수'로 나눠서 지급)'에 불과하고, 나머지 판매 수익금은 '좋은 일'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복권(로또)을 살 생각을 버려라. 그냥 재미로 하거나, 자선 기부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복권을 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럴 것이다.

한편, 인센티브(보상)에 열을 올리는 인간들의 뇌과학도 엿볼 수 있다. 늘 하던 일인데, 어느 날 '보상'을 준다고 하면 더 열심히 하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평소에 보상이 없어도 늘 하던 '집안일'인데, 집안이 엉망인 것을 보고 '집안일을 하면 적절한 보상을 주겠다'고 공표하는 순간, 누구보다 열심히 집안일을 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의 집안일이 필요없다고 느껴져서 '보상은 없던 일'로 하는 순간, 이제는 아무도 '집안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 뇌과학의 메커니즘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인간은 '보상(돈이라면 더더욱)'이 걸린 일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곤 한다는 점이다. 별 것 아닌 '보상'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리가 작용해서 인간들은 더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보상'을 없던 일로 만들어 '원래'대로 되돌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 '보상'이 없었던 때보다 훨씬 더 의욕을 잃고 성과도 더 떨어지게 된다.

이를 '공부'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들에게 '성적'을 올리면 적절한 보상을 주겠다고 약속하면 잠시나마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학부모나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학업성적'을 높일 목적으로 '인센티브(보상)'을 걸고 달성한 아이들에게 보상을 걸고, 실제로 주기도 하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사실 '성적올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하위권'에 있는 아이들이 20점에서 70점으로 성적을 올리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70점 맞던 '중위권' 아이를 90점 맞게 만드는 것은 하위권 아이들보다 2~3배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상위권에 있는 90점 이상을 받던 아이들은 최종 점수가 100점이고, 이 점수는 '틀린 문제'가 하나도 없이 완벽해야만 가능한 점수다. 애초에 90점 이상을 받던 아이들은 1~2개밖에 실수를 하지 않던 아이들인데, 그런 인간적인 실수마저 없애고 완벽한 공부를 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공부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아무리 '인센티브'를 걸더라도 상위권 아이들은 노력에 비해 얻는 인센티브가 적다면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인센티브'로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집안일이나 공부처럼 '꼭 해야만 하는 것들'에는 오히려 '반감'을 사거나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니, 그런 쪽으론 '인센티브'를 걸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센티브'를 절대로 걸지 말아야 할 것이 '벌점제(부정적인 인센티브)' 같은 것이다. 이를 테면 상대에게 미안한 일을 했을 때, 벌을 주는 보상으로 '돈'으로 지불해야 하는 방법은 애초에 얻고자 하는 정반대의 효과만 낳을 뿐이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요즘 직장맘이 많으므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도 퇴근길에 아이를 마중 나오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런데 살다보면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 미안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갑자기 발생하는 '추가업무'로 퇴근이 늦어지거나, 퇴근길이 밀려서 어린이집에 제시간에 마중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어린이집 교사들은 '정해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아이를 돌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두 번이라면 서로 양해를 구하며 돌봐줄 수도 있겠지만, 상습적으로 늦게 오는 직장맘들이 발생하면 얄미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 '늦은 시간'만큼 시간외수당이란 취지로 '부정적 인센티브(벌점)'를 주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는 아이 마중시간이 늦은 만큼 미안해하고 죄송해하던 직장맘들이, 퇴원 무렵에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당당히 돈(벌점)을 치루겠으니 1시간만 더 봐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약속된 시간보다 더 늦더라도 전혀 미안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왜냐면 늦은 만큼 '돈'을 지불하면 미안할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정적 인센티브'는 애초에 하지 않은 것보다 더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그렇다면 '인센티브(보상)'은 긍정적이나 부정적이나 '역효과'가 나오기 십상이니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까? 적절한 보상이 지급된다면 '의욕'이 불타오르는 인간의 성향을 잘 활용한다면 가장 빠르고 강력한 효율을 얻을 수도 있으니 무조건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할 것이다. 그럼 바람직한 '보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당연하게 하는 일이나 꼭 해야 할 일에는 절대 보상을 걸지 마라. 또한, 도덕적이거나 도리를 지키는 일에도 보상을 걸면 안 된다. 이건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보상이 없더라도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이런 것 말고, '예정된 마감시간'은 다가오는데 일의 진척이 없어서 미적거리고 있는 상황에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일 할 의욕'을 일시적으로 불태울 필요가 있을 때 '보상'을 걸면 확실히 효과를 볼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하는데 '이성적'으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맞붙었을 때, "오늘 이기면 파티다. 반대로 지게 되면 지옥훈련 하겠다"라는 보상을 걸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능력 이상의 효과'를 해야 할 때에는 '보상'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보상이 '돈'이라면 인간은 눈이 뒤집힐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정말 '돈'에 환장한다. 그런데도 일정 수준 이상의 큰 돈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뇌과학적으로는 왜 그럴까? 인간의 뇌는 행복을 추구하는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늘 행복한 느낌을 갖도록 온갖 호르몬을 뿜어내고 있는데, '돈'이 관련되어 있으면 '긍정적 호르몬'이 엄청나게 분비된다고 한다. 실제로 '종이돈'을 새게 한 집단과 '진짜돈'을 새게 한 집단을 대상으로 '뜨거운 물'에 손을 넣으라고 했을 때, 돈을 샜던 집단이 더 높은 온도의 물에서 '고통'을 덜 느꼈다고 한다. 또한 고된 일을 할 때에도 '돈'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사실을 인지 시키면 일이 고된 줄도 모르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은 '돈'에 미쳐 있다고 한다. 뭐, 돌잡이를 할 때에도 아기가 '돈'을 집으면 환장하는 어른들..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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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에메랄드 1 - 어느 날 공주가 되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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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에메랄드 1 : 어느 날 공주가 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4) [원제 : Emerald and The Ocean Parade (2023)]

[My Review MMCLXII / 을파소 21번째 리뷰] '뱀파이어요정 이사도라 문'에서 등장한 인물을 새로 주인공으로 내세운 '파생상품(?)'이 나왔다. 벌써 2명이나 배출했던 모양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마녀요정 미라벨'과 '프린세스 에메랄드'다. 일단 이 세 시리즈가 함께 '이사도라 문 시리즈'로 진행될 모양이다. 그럼 이것이 전부일까? 배경을 살짝 지구밖 '우주'로 넓혀본다면 이사도라 문이 '별똥별'로 착각했던 '빛의 요정 노바'가 있었다. 해리엇 작가라면 얼마든지 그러고도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암튼 이제 읽기 시작한 <프린세스 에메랄드>에 대한 리뷰를 시작해본다.

에메랄드는 '인어'로 등장한다. 바닷속에 살고 있는 '반인반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인어가 부르는 노래에는 묘한 마력이 담겨 있어서 뱃사람들을 유혹해서 잡아먹는 괴물로도 옛이야기에서는 등장한다. 우리는 흔히 인어(Mermaid)이라 표현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세이렌(Siren)'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희곡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괴물로 등장해서 유명하다. 하지만 다른 원전에서는 '세이렌'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에 새의 날개를 달고 있는 괴물로 묘사되기도 하며, 같은 모습을 가진 '하피(Harpie)'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해리엇 먼캐스터가 그린 '인어의 세계'에서는 이런 설정이 모두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그리 깊지 않아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가리비 왕국'이라 불리는 산호초 숲에 살고 있고,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의 풍경과 정경이 펼쳐지는 다분히 '인간적인 모습'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프린세스 에메랄드>를 읽으면서 기존의 설정 같은 것을 전혀 참고할 필요는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인어공주>와도 완전 다르다.

인간이 살고 있는 소도시..아니 '작은 왕국'을 너무도 빼닮은 가리비 왕국에 오스터 왕이 있다. 그런데 인어의 왕이 새로 결혼을 한 모양이다.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는 '배경묘사'나 '등장인물 소개'가 전혀 없고, 그저 '새아빠', '친아빠' 등과 같은 이름만 나와 있기 때문에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인데, 에피소드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소개하는 대목이 나올 것이라 확신(?)할 뿐이다. 암튼, 에메랄드는 새 아빠가 '인어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기 때문에 에메랄드의 친엄마 코랄은 자연스럽게 '왕비'가 되었으며, 코랄의 딸인 에메랄드는 당연하게도 '공주'가 되었다. 그럼 에메랄드는 공주가 되었으니 왕국에서만 살고 있는 걸까? 그건 아니란다. 일 년 중 절반에 해당하는 6달은 친아빠 데이스가 살고 있는 집에서 머문다고 한다. 이렇게 에메랄드는 새아빠와 친아빠로 '두 명의 아빠'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아빠쪽'이나 '엄마쪽' 가운데 한 쪽의 집에서만 살게 되며, 대체로 다른 쪽의 집에는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서양에서는 '양육권'을 소유한 쪽에서 자녀를 기르기는 하지만, '친권'을 가지고 있는 다른 쪽에서도 자녀를 만날 수 있는 권리를 폭넓게 인정해서 자녀가 양쪽의 집을 왔다갔다하는 일이 자유스러운 모양이다. 그래서 '두 명의 아빠'를 모두 사랑하는 에메랄드의 모습이 살짝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래도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혼사유'에는 다툼이 원인이 되기도 해서 이혼한 뒤에는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서 더욱 그렇다. 암튼 '이혼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하도록 하고...

이 책 <프린세스 에메랄드 1>의 내용은 새로 공주로 등극한 '에메랄드'를 왕국의 시민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마차 퍼레이드'가 거행된다는 일정이 잡혔던 것이다. 물론 왕국의 '로열 패밀리'를 새로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왕실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불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에메랄드는 이 퍼레이드에 참석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왜냐면 낯설고 쑥스럽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은 '애초에 공주도 아님'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주'로 인정받는 것,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에메랄드는 퍼레이드에 빠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오스터 왕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왕족이면서 퍼레이드에 불참을 한다니 있을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한마디 할 것으로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오스터 왕은 달랐다. "퍼레이드에 불참하겠다고, 잘 알았다. 하지만 퍼레이드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고 참석여부를 알려 주렴. 정말 가고 싶지 않다면 가지 않아도 좋으니까" 이렇게나 자상한 아빠라니, 더구나 새아빠인데 말이다. 너무 젠틀하다.

자, 여기서 이 책의 주제가 나왔다. 마음이 불편한 자리에 억지로 참석하지 않아도 좋다는 메시지 말이다. 우리 어린이들은 그런 경험이 정말 많다. 어른들의 경조사에 어린이들은 '억지로' 참석하여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경험을 정말 많았을 것이다. 나도 어릴 적에 그랬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장례식 등 '격식'이 필요한 장소에서 아이들은 정말 어색할 따름이다. 배려 많은 어른들이라면 그런 격식을 갖춘 행사에 '아이들의 몫'이라도 남겨두어서 '할 것'이라도 마련해주면 덜 심심하겠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경건한 자리인 만큼' 얌전히 앉아만 있길 바랄뿐이다. 그런 불편한 자리에 불편한 마음으로 참석할 바에야 차라리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아이들도 꽤 많을 것이다. 여기 에메랄드 공주도 딱 그런 심정이다.

더구나 '평범한 소녀'였던 에메랄드가 느닷없이 '공주'라는 고귀한 신분이 되었다. 한창 친구들과 신 나게 놀 궁리만 할 법한 나이 어린 소녀인데, 이것저것 격식을 따지고 예절을 따지는 '왕국 생활'이 쉬울 까닭이 없다. 그래도 에메랄드는 '공주답게' 행동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입어야 '옷맵시'도 살아나고 '자신감'도 뿜뿜하는 법인데, 에메랄드는 공주에 딱 맞는 행동이나 말을 할 자신이 없어서 탈이다. 그저 털털하게 온 왕국 산호초를 천방지축으로 헤엄치며 뛰놀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차 퍼레이드'를 하며 온 왕국에 에메랄드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을 알려야 할 판이다. 정말이지 너무 부담스런 자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기 싫은 일을 억지스럽게 해서 잘 된 적이 많겠는가? 아님 그 반대로, 잘 못 된 수준을 넘어 폭망할 적이 더 많겠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럼 억지스러운 일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격식이니, 예절이니, 전통이니 떠들면서 완전히 강요를 하게 된다면...발버둥을 쳐서라도 '거부의사'를 확고히 표현하고 불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에는 인어 왕국의 왕인 '새아빠'의 처지가 참 곤란해질 것이다. 분명 왕국의 시민들은 새로이 '공주'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텐데 얼굴조차 비추지 않는 일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에메랄드의 최종선택은 무엇일까? 새아빠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가장 아름다운 표정으로 차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퍼레이드와 에메랄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그럴 시간에 친구를 만나서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훨씬 더 큰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고 불참할 것인가? 자, 이제 최종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두구두구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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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 중국 2 - 현대 편 - 이원복 교수님과 함께 떠나는 세계 역사 여행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 중국 2 현대편>  이원복 / 김영사 (2018)

[My Review MMCLXI / 김영사 33번째 리뷰] 중국을 비롯해서 동아시아 대륙의 모든 국가들의 지난 100여 년간의 현대사는 정말 너무 굴곡진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런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동양보다 서양이 '근대화'에 먼저 성공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점도 화가 나는 이유다. 그들은 겉으로는 '문명'을 내세우면서도 뼛속 깊이 '야만'으로 가득차 침략과 약탈만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야욕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으면서도 문명국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야만'을 드러내 서구열강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약탈을 하는 것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로 인해 중국 같은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열강에 모든 것이 털리고, 일본에게 또 한 번 털리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픔을 겪은 동아시아 각국의 나라들에게 '중국의 현대사'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까?

한편, 중국은 역사상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중국의 힘이 강성할 때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콧대를 높였고, 반대로 힘이 약할 때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한족은 '외세의 침략'이나 '내부의 불안'이 발생할 때마다 엄청난 수의 희생을 치뤄야 했기 때문이다. 멀리 고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으나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는 기록이 많지 않기에 13세기 이후부터 손을 꼽아봐도, 몽골의 침입으로 3500만 사망, 17세기 만주족의 침략으로 2500만 사망, 20세기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때 2000만 사망을 했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이만큼 피해를 봤다면, 내부의 불안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19세기 태평천국의 난 때 2000만 사망, 20세기 국공 내전으로 1000만 사망, 대약진운동으로 4000만 사망, 문화대혁명으로 300만 사망, 그리고 천안문사태로 수백 만 사망(정확한 집계가 공개되지 않아 추정치)으로 중국은 안팎의 혼란을 겪을 때마다 엄청난 인명 사망과 재산 피해를 내곤 했었다.

그 결과 중국은 '강력한 통치자'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띠어야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경험을 너무 오랫동안 겪어왔기에 이런 사회정치 구조에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 듯 싶다. 딴에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의 역대 통일왕조(또는 국가)는 엄청 큰 영토와 수많은 인구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방법은 '단 하나의 권력자'를 중심으로 삼고 똘똘 뭉치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도 영토가 넓어지고 다스릴 시민의 수가 늘어나자 '공화정'을 버리고 '황제정'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민주적인 통치 방식이 좋더라도 덩치가 커지면 민주적인 것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양상은 중국의 현대사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청 왕조가 멸망한 뒤에 수많은 군벌이 등장해서 얼마나 혼란스러웠느냔 말이다. 쑨원이 등장해서 '중화민국'을 건설했지만, 그가 강한 권력자로 등극(?)하지 못하자 위안스카이가 황제 자리를 차지하면서 권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정통성'을 인정 받기도 전에 천명을 다하고 죽었고, 그 뒤를 '장제스'가 이어 받아 중국을 강한 힘으로 통치하려 들었다. 그러나 장제스는 강력한 라이벌 '마오쩌둥'에게 밀려날 운명이었다. 그렇게 마오쩌둥이 공산당의 힘을 빌어 새로운 '권력자'로 등극할 수 있었고, 중국은 잠시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받은 권력자는 '덩사오핑'이었다. 덩사오핑까지 무소불위의 1인 독재권력을 휘두르다 덩사오핑 이후에는 '중국 공산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지금의 시진핑까지 모두 '공산당'에 충성하는 권력자로 등장했고, 앞으로도 중국은 '공산당'이 중국의 인민 모두를 강력하게 휘두르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다. 물론 '공산당'이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중국은 앞으로도 '강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정치체제와 사회문화를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만일 중국에 '강한 권력자'가 등장하지 못한다면 어김 없이 '내부의 불안'으로 엄청난 불상사가 다시 일어날 것이고, 현대에는 '외세의 침략' 같은 일은 대규모로 진행되기 힘든 구조이지만, 만약에 중국이 대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대규모 침략을 받게 된다면 엄청난 인명 사상과 재산 피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중국은 늘 '중화사상'을 자국민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도 강요하고, 강제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사상적 강요도 '중국의 힘'이 강성할 때는 비교적 온건하게 표현되지만, 중국 내부에 혼란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국민'에게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요하며, '다른 나라'에게까지 무리를 넘어 무례할 지경으로 인정하길 요구한다. 중국의 역사가 늘 그랬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안쓰러울 정도로 발버둥을 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떡해서든 살아보겠다고 말이다.

이 책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 중국 현대편>의 내용을 추려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서구열강에 의해서 청 왕조가 멸망한 뒤에 중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근대화를 벤치마킹해서 '자국의 근대화'를 꾀했다. 허나 중국의 지식인들은 '근대화 교육'에 성공적이었지만, 중국의 민중들은 전혀 근대화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적 혁명'은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래서 쑨원이 늘 실패했던 것이다. 하지만 쑨원의 사상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중국의 민중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중국의 자발적 근대화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허나 아직도 대다수의 중국 노동자와 농민들은 이런 '근대화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군벌'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힘을 쥐고 있었다. 위안스카이가 대표적인 군벌이었고, 중국의 지방 곳곳에 이런 군벌들이 중앙의 통치에서 벗어나 각 지방에서의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열강은 제1차 세계대전에 휘쓸리게 되었다. 중국 침탈에 열을 올리던 유럽 각국이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모국으로 돌아간 사이 '일본'이 승전국의 지위를 차지하며 패전국의 점령지역을 야금야금 빼앗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신음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등장해서 서구열강의 군대를 대신 내몰아주니 '해방군'으로 환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일본군은 오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고, 서구열강을 대신해서 야만적인 침탈을 시작했다. 중국도 같은 처지였고 말이다. 그렇게 중국의 동북부 지역인 '만주'와 '내몽골' 지역에 일본의 괴뢰국이 탄생했고, 일본은 이 지역을 '만몽'이라 부르면서 일본의 이익선이라 불렀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장제스는 일본의 침탈에 항의했지만, 장제스는 일본의 침략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면서 다른 짓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군 토벌이었다. 그렇게 일본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던 장제스는 '국공내전'을 일으키며 공산당 토벌에만 열을 올리게 된다.

강력한 통치자가 등장하지 못한 중국의 혼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가? 외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내부의 적을 토벌하겠다고 자국민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살골'을 넣는 일을 멈춘 것은 중국 전역이 '공산화'가 되고 마오쩌둥이 '공산주의 이념'을 내세워서 강력한 독재자로 등극할 때까지였다. 비록 공산정권이 들어서긴 했지만,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자 중국은 일시에 혼란을 멈추고 '평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성장동력을 잃어버릴 운명에 놓였고, '공산당의 부패'로 인해 인민들은 철저한 사상통제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중국의 대혼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런 중국의 혼란을 되살린 '권력자'는 다름 아닌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이념보다는 '실용'을 앞세워서 공산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자본주의'를 일부 받아들여 철저히 실리를 챙기는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중국은 강력한 '성장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사실 중국의 현대사는 '공산주의 이념(마오이즘)'을 중심으로 내세운 것을 '홍(紅)'이라 부르고, '실사구시'를 내세워 실리를 챙기는 것을 '전(專)'이라 부르는데, 이 홍과 전 가운데 어떤 것을 더 내세웠는지에 따라 성장모드가 달랐다고 볼 수도 있다. 대체로 홍의 세력이 강할 때에는 폭망하는 시기였고, 전의 세력이 강할 때에는 급성장하는 양상을 띠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정책은 전형적인 '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덩샤오핑도 개혁정책에 한계를 보이면서 '천안문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이 살아있을 때에는 공산당의 정책에 '비판'조차 할 수 없었지만, 덩샤오핑은 개혁을 부르짓었기 때문에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이 더 강력한 '개혁정책'을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가 그렇듯이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면, 권력을 내려놓기 싫기 마련이다. 그래서 권력에 집착하게 되고 비판을 수긍하지 못하며 차츰차츰 '독재자'가 되어 간다. 덩샤오핑도 말년에는 자신의 능력 밖을 인정하지 못하고 '독재자'로 군림하길 바라며 중국 인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것이다.

중국의 인민들은 덩샤오핑을 끝으로 '개인적인 권력자'에게 충성하지 않고, '집단적인 권력'인 '공산당'에 충성했다. 물론 이는 덩샤오핑의 개혁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헌법 제정'에 의한 것이었다. 마오쩌둥 시절에만 해도 마오의 말씀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덩샤오핑은 과감한 개혁을 하며 이를 고쳐나갔다. 비록 덩샤오핑도 말년에 '독재자'로 군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공산당'에서 배출한 권력자가 모든 중국 인민들을 이끌어가는 양상으로 바뀐 것이다. 허나 이런 방식에도 맹점은 있었다.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에 충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중국 인민의 '개인적 인권'보다 '공산당의 권력'이 더 우위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이익에 앞서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은 철저한 희생을 당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팽배해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중국인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까닭이다. 공산당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10억 인구의 힘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미중 대결'에서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을 편들지 않고 미국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렇게 싸우다 둘 다 망하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은 결정 되었다. 중국을 응원할 수는 없지만 중국과 싸울 필요도 없다. 저 거대한 나라와 싸워서 이득을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설령 이긴다한들 5000만 인구로 10억이 넘는 인구를 어찌 지배할 수 있겠는가? 저 광활한 영토를 집어 삼킬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충성할 필요도 없다. 미국을 혈맹이라 부르면서 영원한 친구로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미국은 우리를 노예 취급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등치고 배신 할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히 가지고 놀기에 딱 좋은 나라다. 물론 지금도 '초강대국'인 것은 맞지만, 현재의 미국은 단물 다 빠진 껌과 다를 바가 없다.

자, 이렇게 본다면 답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힘을 더 키워야 하는 방법뿐이다. 100년 전의 처지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중국도, 미국도, 만만히 볼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저들의 위협에 살짝 쫄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허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밝다. 아직까진 초강대국이라 불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꽃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꽤 높기 때문이다. 물론 가시밭길도 놓여 있다. 그 길을 밟지 않고 잘 나아가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 임해서도 위태롭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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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원의 영어 대모험 2 - 명사의 단수와 복수, 만화로 시작하는 이시원표 초등영어 이시원의 영어 대모험 2
이시원 지음, 이태영 그림, 박시연 글, 시원스쿨 기획 / 아울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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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원의 영어 대모험 2 : 명사의 단수와 복수>  이시원 / 박시연 / 아울북 (2020)

[My Review MMCLX / 아울북 40번째 리뷰] 내가 영어를 구사하면서 가장 헷갈려 하는 것이 바로 '명사의 단수와 복수'다. 한국어 문법에서는 '-들'이라고 간단히 구분할 수 있지만, 영어 문법에서는 단수 명사에는 '관사'라고 하는 a, an을 붙여 써야 한다. 이게 정말 헷갈린다. 이것은 고양이다. 라고 했을 때 This is cat.이라고 표현하면 틀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마리의) 고양이다.라는 식으로 This is a cat.이라고 표현한단다. 그런데 난 어릴 적부터 이게 정말 헷갈렸다. 그냥 단수/복수를 구분할 때 '고양이/고양이들'이라고 하면 될 것을, 'a cat/cats'로 구분하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선생님도 이렇게 구분해서 쓰는 까닭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서양의 관습이 그렇고, 그들의 방식이니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하니 그냥 외울 수밖에 없었는데, 난 이런 식으로 '이유'도 모른 채 외우려 들면 잘 외우지 못한다. 아쉽게도 이 책에도 그런 설명은 따로 해주지 않았다. 1권에서는 영어를 쓰는 '앵글로색슨 족'이 유목민으로 생활했었기 때문에 '나(아군)'와 '남(적군)'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그걸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Who am I? I am a Warrior. 라는 식으로 '나'를 인식하고, '너'를 구분하고, '우리'를 인지하는 것처럼 '인칭대명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참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쏙 들었는데 말이다. 참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렇지만 외울 땐 외우더라도 '효과적으로' 잘 외울 수 있으면 좋은 책이다. 요즘에는 시중에 나온 책들이 '이런 효율성'이 매우 좋은 편이기 때문에 어느 책을 고르더라도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그렇기에 좀 더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해서는 정리되어 있는 예문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명사'는 어떤 대상의 이름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예문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은 예문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책을 출간할 때에 '분량'을 정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정 예문을 써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예문이 적혀 있다고 좋은 책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 책은 '학습만화'이지 '문제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중요한 것은 책속에 담긴 '주제'와 그 주제에 딱 알맞는 '에피소드'가 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편은 so. so.다.

이번 편에서는 영어를 즐겁게 공부하는 '예스잉글리쉬단'과 영어 공부가 지겹게 느껴지게 만드는 '노잉글리쉬단'의 대립구도가 불명확했다. 또한 '명사의 단수와 복수'를 이해하기 위해 '외계생물체(alien)'를 등장시킨 까닭도 살짝쿵 언벨런스한 느낌이었다. 굳이? 더구나 좁디 좁은 '국제우주정거장' 안에서 우주인을 납치하고 감금시키는 것도 상상불가인데, '비밀통로'까지 있어서 영웅과 악당이 활극(?)을 펼친다? 그리고 1권부터 '방귀'라는 소재는 왜 자꾸 등장시키는 것인지...어린이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 나름의 '장치'를 한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방귀를 너무 자주 써먹으니까 좀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뭐, 이건 어른 독자인 '나만의 관점'일 수도 있다. 실제로 어린 독자들은 이걸 재밌어 할 수도 있으니 무조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은 '수준'을 높여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어린이 독자들의 교양 수준을 한없이 낮춰서 보는 것도 실례일테니 말이다.

1권에서 너무 감동을 한 탓인지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것 같다. 2권도 나름 유익한 점이 분명 있었는데, 1권에서 감동스러웠던 '매력포인트'가 2권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아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눈에 띈 모양이다. 3권에서는 다시 기대했던 '매력포인트'가 다시 두각을 드러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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