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선수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이유미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8년 7월 7일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골프클럽에서는 미국 여자프로골프투어 메이저 대회인 제53회 US 여자 오픈 연장전이 열렸다. 우승컵의 주인공을 가리게 될 연장전은 단 두 선수, 박세리와 태국계 미국인 제니 추아시리폰만의 대결이었다., 두 선수는 4라운드까지 합계 6오버파로 동률을 이뤘고, 당시 대회 규정에 따라 18홀 '연장 5라운드'를 치르게 됐다. (-12-)



올림픽 2관왕이면 2년 후 있을 아시안게임은 당연히 나가는 거로 생각되지만 양궁대표팀에 당연한 건 없다. 2012 런던 올림픽과 2016 리우 올림픽 사이에 열렸던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는 탈락하며 쓰린 좌절을 맛봤다. 기보배는 인천계양 아시아드 양국장에서 있었던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10위를 기록하며 상위 8명이 참가할 수 있는 평가전 자격을 얻지 못해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됐다. (-57-)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딴 첫 금메달이었다. 반면 여자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1984년 여자 영궁 대푵팀 소속 서향순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운동을 한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1980년대다. 하지만, 양궁 선수 서향순 이후, 여성 스포츠 스타가 올림픽 때마다 나타낫다. 1988년 탁구 현정화가 있었으며, 양궁 김수녕이 있다. 특히 양궁 김수녕 선수는 1988년,1992년, 2000년 올립픽에 출전하여, 4개의 금메달을 따낸 바 있으며, 해외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내에서 ,국가대표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바 있다.

한국에서 여자 선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을 웃고 올렸다. LPG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골프 여제 박세리는 1998년 맨발의 투혼을 펼쳤다. 피계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는 동게올림픽에서, 두번 출전하여, 한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따낸 바 있다. 동계 스포츠에서, 쇼트트랙 이외의 종목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을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해냈으며, 소치 동계 올림픽은 러시아의 텃세에도 불구하고 열연을 펼친바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여자 선수들은 대한민국 내에서,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운동을 한다해서 인정받기 힘든 정서가 있었고,그걸 감내하면서,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내세운 바 있다,농구에서 ,최고의 기량을 거둔 박찬숙 선수의 활약, 전주원 선수, 정선민 선수가 있다. 그것이 우리 나라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 강국 중국에 맞서서, 피와 땀으로 이룬 결과물이며,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지금까지 보여준 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치 멀리서 보면 그럴 듯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조품처럼, 나의 프랑스어에는 빈틈이 여전히 많다고,그것이 나의 프랑스어 수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단 한가지라고. (-25-)



언어가 서툰 상태로 외국에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체념의 자세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벌어지는 부당한 일, 불편한 상황 앞에서 할 말이 없는 게 아니지만 외국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으니 약자의 본능으로 입을 다물고 마는 일상을. 그 경험이 쌓여 만들어지는 순응의 습관을 잘 알고 있다. 이민자들의 마음 속에는 더운 불씨를 머금은 장작 몇 개가 잿더미에 덮여 있을 것이다. (-64-)



해외 생활의 가장 한스러운 순간이 언제인지, 이로써 알게 됐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이 위독할 때, 혹은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할 때, 곧바로 달려갈 수 없는 그 원통함을 어떻게들 다스리고 사는지 모르겠다. (-125-)



유학생인 내게는 모든 학생들이 다 여유있게 사는 듯 보였지만, 그 안에서도 구별되는 아이들이었다. 모두가 보풀이 다 일어난 낡은 모직 코트를 입을 때,윤기가 흐르는 가죽 무스탕을 입고 다니고 겨울 방학이 되면 스위스의 별장으로 스키를 타러 가던 아이들,나와 친하게 지냈던 '보통의' 프랑스 친구들은 그들을 '피스 아 파파'라고 불렀다. (-163-)



지금 현재 나의 생각,가치관,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진리나 지식과 지혜는 언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어려운 단어나 문장, 색다른 언어가 내 앞에 놓여진다 하더라도,그것이 언어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모국어는 나에게 익숙하면서 ,어렵게 느껴지고, 외국어는 낯설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새롭게 느껴진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의 해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는 권력이 되고, 내 삶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힘이다.



자가 곽미성은 영화 공부를 위해 파리에 유학하였으며, 스무 해 넘는 세월동안 프랑스어르 잀아처럼 쓰고 있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쓴 시간 만큼 긴 시간동안 프랑스인과 소통하고, 프랑스어르 쓰면서 살아가지만, 언제가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자괴감,절망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매순간 약자로서, 체념과 순응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이 책은 자가 곽미서의 언어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끼쳤고, 그 변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나의 언어는 온전히 새로운 언어로 대체되기 힘들다. 한국어가 영어로 번역되면,그 번역의 질이 깨지고,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 박경리의 토지가 번역되기 힘든 이유다. 


번역이 반역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우리는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 지식인에 의해 서구권의 여러 언어들을 일본식 한자로 번역하려 쓰여지고 있다는 걸 비추어 볼 때, 언어는 지금이 다르고,내일이 달라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신조어는 태어나고, 낡은 언어는 사람들에게 쓰여지지 않음으로서, 서서히 언어의 가치와 의미가 사멸되는 게 정상이다.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언어의 위로가 되었고,우리는 그 언어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 소속감과 민족성을 드러내며 살아간다.작가 곽미성의 언어의 위로는 20년간 프랑스어를 쓰며 살아온 자신을 체념과 순응의 시간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친애하는 악플러 탐 청소년 문학 36
나윤아 지음 / 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딸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왜 나는 엄마를 이렇게나 닮은 거지?'

엄마는 캄보디아인이다. 피부가 까맣고 , 선천적인 주근깨가 있으며, 눈이 꼭 올빼미같이 부리부리하고, 눈썹과 속눈썹이 매우 짙고 풍성했다. (-10-)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더 많은 메이크업이 궁금하다면 구독과 좋아요,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립니다. 다음번에는 '흑과 백만을 이용한 흑백 사진 메이크업'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오늘도 사랑해요,우리 얌체들." (-21-)

그래서 이용한 게 도깨비였다. 반 모두와 어울리지 못하고,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기피 대상이자 조림거리가 되어 있는 그 애를 챙기기 시작했다. 무리에 데리고 들어오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짝 활동에서 그 애를 선택하거나, 먼저 살갑게 인사를 하거나, 뭘 안 가져왔을 때 선뜻 빌려주거나 하는 식이었다. 인위적이지 않게 ,과하지 않게 적절히. (-71-)

차여수는 우리 반에서 꽤 인기가 있는 애다. 귀여운 인사에 말투에는 어리광이 좀 묻어났다. 유튜버로 성공하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서 반 애들 모두 그 애의 꿈이 뭔지 알았다. 유튜브 채널도 하나 열어서 일상 브이로그를 올리고, 틱톡으로도 꾸준히 뭔가르 하느 듯 했는데, 아직 자기 테마를 정하지는 못해서 구독자나 조회수는 별 볼일 없었다. (-126-)

내가 아는 김주언은 상냉하고, 정의롭고, 따뜻하고 , 밝은 빛 같은 애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많은 걸 잃었으니까 우울할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한테 마구잡이로 나쁜 말을 뿌리고 던질 만큼 비열해질 수는 없다. 나는 계속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인스타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하나하나 살폈다. (-198-)

신문기사나 유투브, 인스타그램에 선플이 달리면, 악플도 달린다.그 악플은 자신의 존재를 쉽게 감추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그 악플이 사람에게 가벼운 상처를 주며, 죄책감이나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악플 하나로 내 인생이 잘된 인생처럼 느낄 수 있다. 청소년 소설 『나의 친애하는 악플러』은 우리 일상 속에 흔하게 달리는 악플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최유안은 한국인 아빠와 캄보디아가 고향인 엄마사이애서 태어낫다. 자신의 외모가 엄마의 유전자로 인해 캄보디아 얼굴 형에 가깝다.그것이 최유안에게 숨기고 싶은 외모 컴플렉스였다. 소설에는 최유안의 절친 김주언이 등장하고 있다. 얘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김주언은 유안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겨났다. 유안에게 위로와 치유가 되는 말한 마디가 두 사람이 가까워진 이유다.

유안은 인생이 바뀌었다. 유투브르 통해서,자신의 단점을 강점으로 전환했다. 뷰티 유투버로서,자신과 비슷한 다문화가족 아이들이라도, 얼마든지 예뻐질 수 있고,자신의 외모가 달라지면,인생도 바뀔 수 있으믈 희망을 유투브에 답고 있다.

인기, 유명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유안이 운영하는 유투브,인스타그램 SNS에 악플이 다리기 시작했다. 그 악플은 소수만 알수 있는 그런 악풀이다. 악플은 내 가까운 사람이거나,,내가 친애하는 사람이 아니면 알수 없는 악플이었다. 그 와중에,유안이 겪어야 하는 나쁜 상황과 조건들이 있었다. 왜 나를 미워하고,익명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가상의 공간에 글로서 상처를 주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으며,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청소년 소설은 과거를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면서, 서로 가깝게 지내는 방법, 마음 성장은 상처를 통해서, 얻을 수 있고,서로 가깝게 지내지만 때로는 서로를 미워할 수 있고,나의 열등감을 감추면서,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악플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펜하우어 플러스 - 괴짜 철학가 조영남, 쇼펜하우어를 만나다
조영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책을 읽다 보면 '의지'라는 단어가 자주 증장한다. 그런데 털어놓고 말하자면,나는 이 '의지'라는 개념이 늘 궁금했다.'도대체 의지가 뭘까?'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게 스스로 부끄러워서 대충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19-)



쇼펜하우어: 삶이란 비탄의 연속일 뿐이며, 따라서 낙천주의는 순전히 허무맹랑할 뿐 만 아니라 인류의 재난에 쓰디쓴 조롱에 지나지 않는다. (-33-)



쇼펜하우어: 선량하고 온화하며 겸허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궁핍이나 가난 속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 (-54-)



쇼펜하우아: 오래 사는 것, 장수는 독이다. 인간의 장수는 저 넓은 밤하늘에 떠 있는 작은 별과 흡사하다. 머리서 깜빡거리는 그 별에는 누가 이름을 부여주지도 않고, 특별히 기억해 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80-)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필요하다고 여긴 이 많은 것들이 과연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단지 외부 세계로부터의 불필요한 소유욕에 의해 조장된 것일 뿐인가? 쇼펜하우어가 말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기준에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 자문해 본다. (-107-)



작가 조영남은 1945년 생이며, 이제 여든이 되었다. 가수로서, 화가로서,작가로서 살아온 조영남은 강남 대치동에 살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은 가수였다.특히 여우주연상을 탄 윤여정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조영남이 젊은 시절 , 전처를 매우 힘들게 했다는 것이 시끄러운 적이 있다.



조영남은 세씨뽕 가수 중 하나다. 통기타 하나로 노래를 부르면서, 추억에 잠기게 한다. 한때,미워했더 조영남은 화가로서, 법적 소송에 휘말렸지만, 대법원 까지 가서 무죄로 판명되었다. 작각 조영남은 니채에 영향을 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얼마나 가까운지 확인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인간의 삶은 고통과 번민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것이 내 삶이기에 , 견뎌야 하며,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조영남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여러차례 마주해왔다. 침묵해야 하는 상황에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악하지 않지만, 말을 통해서,자신의 악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조영남은 자살를 고민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니,대중들에게 멀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되었다. 문제는 조영남 스스로 대중들에게 대중들의 코드에 맞는 적절한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건 자신의 성격이면서, 조영남에 대해서 번번히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 때문에, 미워하는 대중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조영남은 스스로 아픔을 감내하고 살았으며,자유로운 삶과 인생을 추구하며 지금까지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가수 조영남처럼 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있다. 이 세상에 성인 도덕군자들만 있다면,재미가 없는 밋밋한 세상이 될 수 있다.하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조영남 같은 연에인도 나쁘지 않다., 삶이란 모난 돌이 모여서 행복의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로 출근 -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길 위에서 만난 모든 당신들에 대하여
이PD.원은혜 지음 / 자화상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양만큼 밝은 빛을 쏴줄 무거운 조명에, 그걸 받쳐주는 다리, 카메라 가방, 카메라 다리까지 양쪽 어깨에 짊어지면 둘 다 완전무장한 군인처럼 보였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있을 때도 아니었기에, 그 짐들을 들고 촬영지까지 너댓시간 거리를 택시로, 고속버스로 갈아타며 다녔다. (-23-)

2013년에는 크림베이지 색 모닝이 생겼다. 어찌 매번 그 짐을 들고 생고생을 하며 다니니, 라며 혀를 끌끌 차시던 부모님께서 그즈음 사주셨다.원래는 촬영장비만 한 트럭이니 좀 더 큰 차를 사줄까 고민했다 하시며, 만날 험한 곳을 다니니 첫 차는 일단 이렇게 시작해보라 하셨다. (-96-)

언젠가는 나의 삶이 조선시대 보부상 같다 생각했다. 봇짐을 짊어지고 떠돌려면 그 시대에는 참 일찍도 서둘러야 했겠다. 장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산을 하나씩 넘어 다니려면, 아마 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나는 닭 대신 알람시계가 울리는 시대에 있으니, 보부상 선배들보다 새벽 기상이 좀 더 수월한 점은 참 다행스럽다. (-137-)

10년 저는 나와 원 작가는 경상북도 영주의 한 시골 마을 도로 위에 서 있었다. 차도 얼마 다니지 않는 그 마을에는 서울살이를 하다 고향에 내려온 50대 후반의 남자가 살았다. 그 남자의 아내는 엇비슷한 나이로,아직 서울에서 일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을 보러 왔다. (-188-)

어느 연말에 경상북도 구미시의 금오산을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해발 976미터 정상 근처에 자리한 약사암을 오르기 위해서 우리는 오전 8시 산행을 시작했다. 그곳은 한 해 저무는 연말, 새해 소원 명소를 소개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었다. (-222-)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그곳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자욱한 운무가 절벽을 감싸 안은 채 발아래 깔려 있었다. 하얗게 피어오른 운무는 섬진강의 물줄기와 함께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담도 높은 수묵과 같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257-)

PD일을 하면서,리포터로 일을 하고 있는 이PD와 이PD와 함께 동행하는 방송작가 .원은혜 작가가 쓴 『길 위로 출근』은 대한민국 곳곳의 숨어 있는 곳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여행 정보와 여행의 행복을 소개한다. 13년간 ,새벽 2시에 집을 나서면서, 촬영, 편집, 연출, 출련을 도맡아 하고 있다. 여행과 관광 사람들의 숨어잇는 인생사까지 알려주고 있으며, 같은 장소라도, 계절에 다라 다른 아름다움을 챙기면서, 대한민국의 다채로운 삶을 느낄 수 있다.

길위로 출근한다느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과 가깝다는 의미다. 두 다리가 튼튼해야 하는 직업이다. 문제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짐이 많다는 것이다.지금처럼 카메라 성능이 좋지 않았던 10년 전을 보면, 조명, 카메라, 삼각대 등등 카메라 관련 장비들을 챙기며 다녀야 한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선시대 보부상, 21세기 노가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이 있기에 우리는 텔레비전 속에서, 대한민국 곳곳을 여행지를 탐방하는 기분을 얻을 수 있다. 여행이 직업이며, 촬영을 하며 다닌다는 것은 카메라 촬영 기술 뿐만 아니라,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산과 들과 강으로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였고, 우리 인생의 흰모애락을 놓치지 않았다.특히 대한민국에 보고, 듣고,느낄 수 잇느 다채로운 여행지가 많이 있었으며,가까운 곳에서 내가 놓치고 잇었던 곳을 알려주는 특별함이 있다. 직업이 행복인 두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대한민국 사계절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