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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금도 작가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비결(?)을 대자면 ,나보다 먼저 글을 쓴 숱한 작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을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상관없이 그들 모두 내가 작가로 사는데에 '거인'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들이 이룬 결과를 출발점 삼아 그들보다 유리하거나 쉽게 출발할 수 있었다. (-13-)
'6펜스'는 당시 영국의 은화로 가장 낮은 가치를 나타냈다. 그런데도 서머싯 몸은 이것을 물질문명과 규범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어쩌면 가장 낮은 단위를 나타내는 동전에 인간의 욕망을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반면 '달'은 이상과 열정을 상징한다. 달은 만질수 없고 멀리 있기에 더더욱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상이다.나아가 열정과 감서성 대상이며, 대로는 광기의 대상이기도 하다. (-20-)
"피난이요~ 서둘러요.남쪽으로 내려가시오, 빨리 서두르시오!"
멀리 북쪽 하늘에서 드려오는 포성에 놀라 우리 가족도 급히 피란을 서둘렀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봇짐 하나를 등에 동여매고 고무신을 끌며 피란 행렬에 올랐다. 사람들에 휩쓸려 떠밀리다시피 가면서도 혹시나 어머니 곁을 벗어날세라 걸음아 날 살려라 종종 걸음을 쳤던 60여 년 전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80-)
초등하교 성적표 받던 날,장조카의 질투는 극에 달했다. 평소에 온화했던 형님도 참을 수 없이 부아가 치밀어 회초리를 들었단다. 아들의 질투심을 바로잡기 위해 아픈 마음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니도 열심히 했으면 성적이 좋았을 거 아이가! 누구를 질투하노?"
하면서 종아리를 때렸다고 했다.
"엄마는 내 엄마야? 삼촌 엄마야!"
울면서 밖으로 뛰쳐 나가는 아들을 보며 형님은 찢어지게 마음이 아팠다며 사촌 여동생에게 하소연을 했단다. (-126-)
L선생이 담임하는 학급 학생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벌이 세족벌이다. 학생들은 선생님께 모질게 맞을지언정, 세족벌은 결단코 싫다는 것이다. 몹시 두렵게 생각하며, 조심한다고 했다. 선생님께 지적당했을 때 대야에 물 떠 오라는 말씀만 없으면 한숨 도리며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177-)
시, 소설,동화, 산문 등 다양한 장르문학을 섭렵하여, 자신의 인생을 녹여낸다는 것은 치열한 고민과 관찰 안에 숨어 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것, 나를 위해 쓰는 문학이 있지만, 그것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존재할 때,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내 삶에 온전히 파고드는 인생에 대해서,박상률 작가의 문학적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동양 문학>에 희곡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30년을 지킬 수 있었던 박상률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인생에 대해,담담하게 쓰고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면, 그 직업에 대한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던 비결,노하우를 물어본다. 그는 자신이 앞에서, 문학을 해왔던 선배 문인들이 서왔던 글과 시가 있었기에 자신도 그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는 소소한 겸손함으로 자신의 프로필을 정리하고 있다.
작가 권정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범접할수 없는 그가 살아온 인생, 그는 문학과 자신의 삶을 일치하였던 비범함이 존재한다. 박상률 작가는 권정생 작가를 오랫동안 찾아갈 수 없었던 것은 작가로서의 인생에 대한 열등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이 너무나 공감이 갔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주 만나는 이들도 있지만, 일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사람이 있다.그들을 오랫동안 다가가고, 가까이 하지 못했던 이유는 박상률 작가의 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멀리서 응원하고,지지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에 속한다.
이 책의 장르는 에세이집, 산문,수필이다. 수기,수필, 수상에 대해 의미와 개념을 다루고 있다. 1950년 당시 우리는 배고픔을 경험하며 살았다.이 책에는 실제 6.25 전쟁 당시의 삶을 담아낸다.역사 속 전쟁은 인간에 집중하지만,문학은 그 너머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인간 뿐만 아니라,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문학적 요소가 될 수 있고,존재가치를 지닐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문학 속에 담아낸다.
우리는 가난한 삶을 살아왔다. 농경 사회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아이를 많이 낳았다. 지금처럼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것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이를 낳게 되고, 가족을 품고,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두 가족 이상이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놓여진다. 조카와 삼촌의 나이가 같아지거나, 조카가 나이가 더 많아지는 상황이 연출 된다. 내 부모가,나의 부모가 아닌, 돌봄의 주체가 내가 아닐 때,아이는 혼란스럽다. 어린 삼촌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아이는 너무 어리다. 이런 상황이 대가족 농경사회에서 비일비재했다.문학은 그 아픔을 소환하고 있으며,그 아픔 속에서 더 중요한 가치,치유와 회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