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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 ㅣ 내일의 고전
김갑용 지음 / 소전서가 / 2024년 6월
평점 :





시간이 지나면 모든 순간이 잊힌다는 걸 어릴 적에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야간 운행을 하던 아버지가 안방에 자는 낮 동안 나머지 네 식구가 숨죽여 생활해야 했던 좁은 방에 홀로 남겨지면 어김없이 시도하던 게 있었다. 오후의 창에서 스며드는 빛의 조도와 낡은 장롱이 드리우던 그림자의 기울기, 철 지난 이불의 구겨진 모양새, 거울을 마주보고 선 나의 어색하고 굳은 표정, 그 순간 주워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애쓰며 되뇌었다. (-10-)
죽음! 절대적인 죽음! 결단코! 죽음!
울분에 찬 외침이 입밖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삼키면서 출근을 준비한다. 더는 못하겠다. 싶은 순간에는 머리통을 주먹으로 서너번 세게 내리쳐 가며, 사람들에게 거지 같은 행색으로 비치지 않게 옷을 갈아입고 누구도 감염시킬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도록 마스크를 쓴다. 그녀의 약통에서 더듬더듬 종류별로 한 알씩 꺼내 입에 털어 넣고 현관문 밖으로 나선다. (-47-)
돈을 돌려받으려면 나도 지하로 내려가 노인을 잡아내야 할 판이었다. 지불하는 데는 아무 거리낌 없으면서 돌려받는데는 어찌나 큰 용기와 당위가 필요한지. 이내, 지하로 내려가 사기꾼과 드잡이해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셋방을 빼면서 반환받은 보증금의 반은 그녀 것이었다. 언젠가 돌려줘야 하는 돈이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돈은 죽는 순간까지 맡아야 했다. 젖은 장작같이 무거운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여 이미 사라진 고양이를 따라 층계로 내려갔다. (-95-)
이미 그의 출입증은 상사에게 지급되었다. 상사는 주민등록 등본과 백신 접종 증명서를 지참해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미 본사에서 제출했다고 거짓말했다. 상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정적이어서 지루할 텐데 적용할수 있겠느냐고.
그가 대답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169-)
또한 모두가 퇴근하고 서고에 아무도 없어야 할 시각에 안에서 뛰쳐나왔다가 도로 되돌아온 글를 보안요원이 아무런 추궁이나 제지 없이 단지 체온만 재고 들여보냈다는 사실도 몹시 수상쩍었다. 만약 모든 직원이 한통속이고 이곳 도서관이 허술하면서도 웅숭 깊은 하나의 덫이라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직원들에게 지시 내렸을 누군가가 뭘 노리는지 그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이곳 도서관은 단순한 덫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속여야 하는 덫이라는 구조물에 이리도 뚜렷한 자의식과 손길이 묻어 나올 수는 없으므로,직원 누구든 그를 딱히 사냥감으로 여기지도 않앗다. 그들은 그에게 융숭한 동시에 태평했다, (-197-)
첫번째로 만난 사람은 그를 그녀에게로 이끌었던 선생님으로,더는 이곳 도서관에서 형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타자 소리와 마찬가지로 천장에서 말했는데 보다 더 선명하고 가까웠다. 선생님은 이제야 자신이 삶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곳 도서관 밖 삶으로 돌아가 먼거리에서 목소리로나마 이야기를 전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이곳 도서관와 하나 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239-)
그는 배게에서 풀려났다. 그녀는 한결 온화해졌다. 다시 머그잔에 술을 가득 채워왔다.그는 순순히 약 한 주먹을 여러 차례에 나눠 술과 함께 찬찬히 삼켰다. 그녀는 항구 토제가 있는지 물엇고, 그가 색깔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가 모은 약들을 받아들고 그는 술의 도움 없이도 능숙하게 삼켰다. 그러고는 술에 젖어 축축한 자리에 누웠다. (-289-)
소설 『냉담』은 작가 김갑용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동정심, 죄의식,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를 언급하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만나면서 생겨나는 변화를 담고 있었다. 그는 단편소설 『토성의 겨울』(2022) 을 써낸 바 있다.인간의 본성 너머에 숨겨진 생각과 의식의 흐름에 대해서, 도서관이라느 공간,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물어보고 있었으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냉담'이라는 단어는 차가운 의미를 품고 있다.그 반대의 의미는' 돌봄 이다. 작가는 우리의 삶과 죽음 너머에 냉담과 일치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함께' '공동체'를 좋아하고,인간 관계를 우선하는 사회의 분위기,우리가 추구하는 미덕과 상반되고 있다. 걸국 우리 스스로 관심에서 벗어난 무존재감 속에서 살아가며, 어떤 위기에 봉착하게 될 때는, 혼자서 ,각자 살아가는 존재였음을 놓치지 않았다.작가는 이 소설을 도서관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한정하고 있다. 지루하면서도 조용한 공간 도서관에 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관찰하고, 소설에 이미지화하면서,작가느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만남을 상징과 은유로 더하고 있었다.
2020년부터 3년간 이어진 코로나 시국에서, 격리는 당연한 처사였다. 이 과정에서,역학 조사원이 나오고, 서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삶이 한순간에 멈추면서, 보이지 않았던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법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동물들을 통제하는데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 속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관찰 하였고,그것을 소설 『냉담』 으로 형성화 했다. 지금 현재에서, 가까운 미래를 엮어내면서,우리가 처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소설 『냉담』 속에는 어떤 이름도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상황과 주인공의 생각과 의식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