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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20년 소풍
황교진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4년 8월
평점 :
어머니는 쓰러지시던 날에도 출근하셨다. 무더위와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을 통과하며 숙녀복 장사를 하셨고, 나느 일년에 한 두 번 어머니를 뵈러 종로에 나갔다. 가게 안까지 가본적은 드물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 3학년 봄이었다. 일을 마친 어머니와 보령약국 앞에서 만나, 울지로 롯데백화점에 가서 내 첫 정장을 사던 기억이 선명하다. (-21-)
서울대학병원에서 앰뷸런스에 어머니를 태우고 집을 향한 날은 햇살이 무척 화사하고 무더운 6월이었다. 내 심경은 절망과 고통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 누구도 나의 이 절망에서 끄집어 내 주지 않았다. (-58-)
고등학교 진학 후 셋방살이를 다시 시작했다. 서대문구 현저동의 달동네에서 시작한 서울 생활은 내가 초등학교 54학년 때 암사동의 방 두 칸 짜리 이층집으로 이사 오면서 살림이 좀 나아졌다.하지만 어머니의 고생은 그치지 않았다. 그 집을 팔고 다시 세를 얻어 지내던 곳에서 빚쟁이들이 종종 찾아왔다. (-109-)
제조사하러 온 보험사 직원은 보상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굳건히 전달했다. 내가 대학원을 휴학하고 집에서 간호하는 현실을 차분히 설명하니 보험사 직원은 담당 의사 선생님 소견으로 결정하자고 했다.그 직원은 의사 소견에 어머니 뇌출혈 원인이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163-)
우리나라 재활병원은 보호자가 해야 할일이 많다. 병원비 마련도 힘들고, 나처럼 오래 직접 병간호한 사람이 보기에는 허술하고 불안한 요소가 너무 많아 참작해 주기도 힘들다.독일의 재활병원처럼 보호자가 신경 쓰지 않고, 외료진이 30분마다 중환자의 상태를 세심히 살피며 필요한 조치를 빠르게 하는 병원은 한국에서 찾을 수 없었다. (-225-)
책 『어머니와의 20년 소풍』은 1997년 11월 27일부터 2017년 10월14일까지,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간호로 20년간 함께 했던 소소한 병간호 스토리를 담고 있다. 평범했던 한 가정이,구토와 두통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대신하여, 자신의 일상에 큰 변곡점이 생길 때,절망과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서른 중반, 1997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광장시장에서 돈을 벌었던 어머니는 갑자기 쓰러졌다.그때는 툭툭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의 병간호에 자신의 시간을 올인하게 된다. 나를 위해서 쓰는 시간이 아닌, 내 가족을 위해서 살아온 인생이다.
예고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오면, 황망한 순간으 맞이할 때가 있다,그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작가 황규진님 또한 비슷했다. 군대를 나와서,대학원에 다니면서,머너니께서 쓰러지고,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어머니의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물신명면으로 신경썼으며, 석션기를 직접 구매하여, 어머니 병간호에 신경쓰고 있었다.
2017년 어머니는 소천하였고,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2017년 소셜벤처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게 되었으며, <실버 임팩트> 를 창업하였다.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국가 정책과 제도, 의료 ,제약,노년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성을 쏟고 있다.
『어머니와의 20년 소풍』 을 읽으면서 , 2014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장례식때, 뇌출혈로 쓰러지고, 몸 거동이 불편한 형수님을 본 적이 있다. 재활운동에 올인하여, 어느정도 건강에 차도가 보였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뇌출혈,뇌종양 등 뇌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내 삶에 있어서 경제적 어려움을 목도 할 수 있다. 한달 500만원 이상의 병원비 뿐만 아니라,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졌기에 하루 하루 아슬한 삶을 살아온 병간호 스토리를 읽으면서, 내 삶의 감사함과 고마움ㅇ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