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겨우// 결혼하는 후배가// 결혼 축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고민에 빠져 하루를 보냈다// (양복도 한 벌 해주고, 돈도 많이 주겠다니 구미는 당기지만.)

결혼생활 파투난 내가 무슨 자격으로//축시를 쓰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알면 비웃을텐데// 평생 1회 뿐일 행사에서//

자격 미달인 사람이 축시를 낭송하면//

저주가 되지 않을까//

자격도 문제고 내용은 또 어떻게 //어쩌지 어째야`하나 `하다가 //

아 어쩌지 하나 하다가// 제발 ,너라도 잘 살아라 라고 쓰기로 했다 (-67-)



며칠 전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 우연히 들어갔다 왔다.그곳에는 대구경북 지역 시인들의 시집이 수백권 전열되어 있었다. 그 시집은 시인들의 시간과 노력이 투영되어 있었으며, 안도현 시인의 시가 여러 권 있었다.책 『시의 시간들 (2024 겨울 창간호)』에 수록되어 있는 안도현 시가 반가운 이유다. 



책 『시의 시간들 (2024 겨울 창간호)』은 시인들의 의리를 엿볼 수 있다. 시인들은 대체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그리하여,서로 이름이 알려진 시인들이 시인을 서로 챙겨주는 문화가 있다. 안도현 시인과 김주대 시인이 쓴 시가 『시의 시간들 (2024 겨울 창간호)』에 수록된 이유는 그런 과정 속에 있다.특히 김주대 시인은 류근 시인과 서로 주거니 받거니 소통하고,욕도 섞어가면서, 만담을 즐기는 시인이다. 시적인 따뜻함 뿐만 아니라,그림에도 소질이 있다 .김주대 시인은 디테일한 것을 놓치지 않는 시인이다. 유혹 때문에, 결혼 축시를 받아놓고 물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김주대 시인은 자신의 솔직함을 결혼 축시에 반영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끄러움도 사라지고, 결혼축시의 목적도 얻었다. 스스로 망가짐으로서,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망가져서, 결혼이 행복하다면,그것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잠깐 체면을 내려놓고,자존심도 내려놓으면 된다. 김주대 시인의 시에는 해학이 묻어나 있으며,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며, 남을 위해 스스로 희생할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시인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현실을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때로는 타인도 배려할 줄 알고, 상황에 맞게 염치도 알고 살아야 하며, 때때로,자신의 현실에 대해서, 눈치 보며 사는 경우도 잇다. 양복 하나에 결혼축시를 쓰겠다 약속했지만,도저히 현실과 이상사의 어긋나는 것을 용서하기 힘들었다. 그는 스스로 내려놓았기에, 타인의 결혼에 대해서,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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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기억, 남겨진 사랑 : 두 번째 이야기 그리운 기억, 남겨진 사랑
김정회 외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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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어머니는 힘든 일이 있어도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셨다.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당당함으로 마음을 무장하셨다. 법 없어도 살아갈 순수함으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가정을 돌보며 부모의 길을 걸어오셨다. (-14-)



늘 대기 상태로 어머니의 부름에 대답해야 한다.집안의 어른과 함께 살다 보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다. 갑자기 외출하고 싶어 하시거나,넘어져 다치시거나, 이불 빨래들을 몽땅 내놓으시거나, 대소변 실수를 하시는 등의 일들이다. 이 모든 일들은 나를 시간에 쫓기게 하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만든다. (-48-)



우리 가족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인내와 배려를 실천한다.어머니를 먼저 챙긴 뒤에야 자신의 볼일을 보거나 외출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생활에 불평이나 불만을 하지 않는다.아내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가족 중에 한 명이 보초를 서는 게 우리 가족의 불문율이다. (-85-)



가장 힘들었던 건 할머니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똥을 싸 놓고 손으로 비벼 버리는 행동이었다. 그걸 치우는 일은 어린 나에게 매우 고통스러웠다. 날이 갈수록 할머니는 가족도 구별하지 못하고, 이웃 사람들을 보면 욕설을 하거나 괴상한 행동을 반복하며 증세가 점점 심해졌다. (-131-)



시어머님은 건강하셨다. 함께 살며 옆에서 지켜본 결과로도, 어머님은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아끼는 분이라 큰 걱정이 없었고, 스스로를 잘 챙기시는 모습이 고맙기도 했다. 가끔 두 다리를 뻗으며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긴 했지만, 심하게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앓는 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단지 가벼운 엄살처럼 보였고, 나이 들면서 근력이 약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191-)



죽고 사는 것은 순서가 없다. 요즘 들어서, 정례식 예고 부고장을 간간이 받고 있다.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 대,예전보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음을 모므로 체감하며 살아간다.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700명이 사망한다.태어나는 숫자보다 죽는 숫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 그 안에서,가장 큰 비중은 치매 환자일 것이다. 치매 환자는 등급에 따라 구별되며, 집이 아닌 요양원,요양 병원에서,대부분 돌아가신다. 물론 장례식도, 요양원 가까운 곳에서,간소하게 치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책 『그리운 기억, 남겨진 사랑: 두 번째 이야기』은 제 8회 디멘시아 문학상 수기 부분 작품집이다.치매에 관하여, 네 명의 작가의 치매 간병 수기가 소개되고 있다. 대체적을고 수기에는 내 가조긔 삶을 말하고 있다. 일상적인 생활을 추구하였던 가족이 하루 아침에 의식을 잃고,기억을 잃어감으로서,일상 생활이 어려워진다. 아기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고, 항상 가족이 옆에 붙어 있거나,간병인이 함께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치매는 기억이 사라지는 질병이다.꾸준한 운동으로 치매 예방이 가능하다. 뇌를 자주 써야 하며, 숫자 계산,독서 , 바둑처럼,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는 뇌훈련과 가벼운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치매를 완벽하게 막을 순 없다. 알츠하이머병, 외경색, 뇌졸즐과 같은 질환은 단순한 일들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넘어지거나,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진다. 의식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돌아오는 증상이 반복되어서,자신의 실수를 무의식적으로 감추려 한다.이런 모습을 지켜 보는 가족 입장에서,매우 속상하고,무기력한 상황에 놓여지며,깐깐하고,엄격하고, 완벽한 모습의 부모가 하루 아침에 어린아이가 되는 모습을 지켜 보는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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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3.0, 내일을 위한 어제와의 대화
민은선 지음 / 라온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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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방직기가 개발된 산업혁명 덕분에 기계를 활용한 직물 제조는 한땀 한땀 손으로 만든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패션을 서민들에게 전파했다. 전기 에너지 기반의 2차 산업혁명은 패션산업을 시스템화된 대량생산 체제로 구축하면서 섬유와 의류 제조 과정이 대대적으로 혁신됐고 이후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에게 제공, 진정한 패션 민주주의로 이어졌다. (-6-)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딥러닝 기술이 등장하면서 패션 업계는 패션트렌드르 예측하고 분석하는 패러다임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인공지능은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와 같은 소셜미디어와 다양한 쇼핑몰 플랫폼에서 방대한 양의 이미지와 게시물, 베스트셀러 아이템의 컬러와 스타일을 수집 분석해 어떤 스타일이 인기를 얻고 있는지를 파악해준다. (-29-)



독창적 스타일을 추구하는 노바, 아르페지오, 소르젠떼(에스콰이아),바쏘(세계물산),모두스비벤디(신원) 등 브랜드들이 등장하고엠포리오아르마니, 캘빈클라인 등 직수입도 확대된다.(-93-)



제일모직의 역사는 퍽이나 깊고 아련하다. 전후 팍팍하던 시절, 홍코이나 마카오에서 밀수한 복지로 만든 양복이 너무 비싸 국민들이 입을 꿈도 못 꾸던 때,이병철 회장이 "고급 모직물을 국내에서 생산해 싸게 공급하자"라던 게 제일모직의 시작이다. 제일모직 양복지가 생산됐을 때 국산 양복은 국가적 자랑이었다. 영국 신사나 마카오 신사에 못지 않은 대한민국 신사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119-)



미국의 헤어브랜드 '베러낫 영거(Better not younger)'는 브랜드명에서 드러나듯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어지려는 게 아니라 더 좋아지는 것'으로 정의한다. 우리가 시니어를 바라보는 개념도 일을 안하고 늙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이 들어감에 따라 지혜가 쌓이는 사람이라고 바꿔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190-)



패션은 많은 정보가 이미지로 함축돼있고 구매결정에 개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소비재다. 패션리테일에서 고개에게 개인화된 상품추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패션상품 자체의 정보가 제대로 설정돼있어야 한다.고객이 제품을 검색하는 과정을 돕고 구매전환율을 옾이기 위해서는 일관되고 체계획적인 상품 속성 분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41-)



1950년대 대한민국 패션시장의 규모는 5000억원에 불과했다. 전쟁이 끝나고, 국토 전체가 폐허가 된 상태에서,미군 물자에 의존해 ,의식주를 겨우 해결한다. 하얀 모시로 옷을 입었고, 추위를 겨우 견디며 살아왔다. 이후 1990년 이 되어서, 패션시장은 5조원을 돌파하였으며, 2020년대엔 50조원의 패션시장 규모를 갖추고 있다.



패션은 타인의 욕망을 욕암하는 산업이다. 타인이 어떤 옷을 입으면,그곳을 사고 싶은 심리가 강하다, 옷이 보온의 기능을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대한민국의 패션 산업은 동대문시장에서 시작되었으며, 기성복 보급화가 재래시장에 팔리기 시작하였다. 19970년대 유행하였던 브랜드 뱅뱅이 있고, 코오롱스포츠, 인디안,미즈노, 캠브리지멤버스, 소다. 로가디스, 톰보이, 티파니 등의 브랜드가 나타났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일러 복이 탄생된 시기다.



못은 유행을 탄다, 그 시대의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화장품 시장보다 패션 산업 시장의 더 크다. 그건 패션 시장은 필연적으로 사치와 연관되어 있으며,컨셉과 트렌드에 따라서, 선호하는 브랜드도 바뀌게 된다. 한때,등골 브레이크 패딩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아이들의 패딩 유행이 부모들을 힌들게 한다는 말이다.이제 패딩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고급 패딩을 선호하는 패션 흐름이 줄어들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경우다.경제적인 문제와 패션시장은 서로 비슷한 분포표르 형설하였다.



패션 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옷을 만드는데도 환경을 오염시키지만,옷의 대부분을 버리는 과정에서도 환경오염이 발생한다.패션업체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고를 버리느 경우가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과거에 비해 브랜드 선호도가 약해지고 있으며,패션에 대해서, 무신사나 무인양품에서 제작된 옷이나 의류를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패션업계에 환경적인 책임,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패션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고, 여성오피스룩, 골프웨어, 스키복, 데님 브랜드 등의 옷이 팔리기 시작하였다.그후 캘빈클라인 등 수입 브랜드 가 팔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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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스폰서 - 대통령이 스폰서가 된 나라
정용재 증언, 구영식.정희상 지음 / 비아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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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집행했던 검사 출신 대통령이 왜 이런 반헌법적인 일을 벌인 것일까?역설적이지만 검사 출신 대통령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비현실적인 한밤중 쿠데타는 검사 우월주의 혹은 선민의식에서 비롯됐다. 평생을 선과 악, 불법과 합법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판단해온 검사의 외눈박이 시각, 자신들만이 선악을 척결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의 선민의식, 수사하는 검사처럼 국정을 운영하는 수사통치, 헌법보다 형법을 우선하는 통치 스타일 등이 쿠데타를 배태했다. (-7-)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지난 2010년 5월 12일 사버연수원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권력과 권한을 견제하는 것은 맞지만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어디서 찾겠습니까?"

'떡값을 받는 검사'를 가리키는 말인'떡검'의 실체를 알고 나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52-)



검사 출신을 대통령에 앉혀놓으니까 그렇다. 이 사람은 검사를 한 거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인사를 보좌하는 직책에다 검사 출신을 앉혔다. 검사와 검찰수사관이 어떤 직책에서도 유력한 후보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인재군을 협애하게 쓰는 거다. (-96-)



법인 연대보증 때문에 70억 여 원을 물어줬다. 그래서 남한건설을 계속 운영할 수가 없어 문을 닫고 부산으로 넘어왔다. 부산에서는 대기업 공사의 시공 참여자로 선정됐다. 협력업체가 된 이후에는 돈을 많이 벌었다. 이때도 물론 전주지청에서 근무하던 검사들과는 계속 연락이 유지됐다. (-126-)



크나큰 실망만 안겨준 특검 결과 발표가 있고 나서 나는 심신이 더욱 피폐해졌다. 10월 18일에는 그동안 입원해 있던 대동병원에서 부산 시내 다른 병원의 정신과 폐쇄 병동으로 옯겨 치료를 시작했다. 진상규명위원회와 특검 결과 발표에 대한 절망감, 허탈함에 어이가 없었고 그로 인해서 잃은 게 너무나 많았다. (-199-)



2010년 4월 PD수첩에서,3부작으로 연속 검사와 스폰서에 대해 다뤘다. 검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그 중심에 부산의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던 정용재씨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버지의 건설 사업을 물려 받았다. 이십대 젊은 나이에 건설업체 남한건설 대표가 되었다. 그는 사업을 우영하느 과정에서, 검사와 유착관계가 있었으며, 후원,스폰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검사들은 필요한 것을 요구하였고, 들어주는 입장이었다.흔히 밀하는 떡검, 섹검이 시작되었고,검사를 상대로, 촌지 뿐만 아니라,회식에 쓰여지는 회식 비용, 프리미언 술을 바치거나,직접 지불하게 된다.




권력을 돈으로 사는 대한민국 사회는 검사와 스폰서 관계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고 있다.기소와 수사 독점주의에 따라서, 검사는 묻어두었던 사건을 다시 꺼내 수사 기소하였고, 표적 수사도 불사하였다.건설업체 사장으로서, 공익제보에 나선 이유는 스스로 죽음을 각오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기에, 시사인, 오마이뉴스,PD수첩이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제보에 대해서, 정황 뿐만 아니라., 정용재가 말한 증거와 인물들이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검사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였고,그것이 3부작 다큐로 만들어진 다음, PD수첩의 특종이 될 수 있었다.



2010년 검사와 스폰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공수처가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또한 검사의 비리와 비위에 있었다. 검사가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그들은 암암리에 ,서로가 서로를 봐주었고,언론에 나온 검사들의 부정 부패는 언제나 꼬리를 감추었다.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으로 중앙정보부가 사라지고,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검사가 있는 검사공화국이 된 이유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검사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으며,검사를 대통령으로 만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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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과 나 - 그 시절 노래들과 함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임요세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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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마치, 성공과 명예에 목숨 건 사람처럼,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마지막 강연에서 세상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태어난 게 목적이다.그걸로 목적을 다한 거다.그게 소명이고,우리의 삶은 보너스다." (-17-)



1991년 ,이승철은 <방황> 을 발표했다. 파란 넥타이, 줄무늬 팬티라는 다소 파격적인 가사, 그리고 개그맨 박명수가 원가수를 모창한 것으로 유명한 노래다. 가사는 이승철이 직접 썼고, 작곡과 편곡을 김홍순이 했다. (-60-)



1999년,이승철은 <오직 너뿐인 나를> 을 발표했다. 팝 발라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곡이다. 세련된 편곡 스타일에 30대 초반 이승철의 미성이 더해지니, 대중에게 제대로 통하는 노래가 탄생했다. 애절한 노랫말,애수 어린 목소리,쭉쭉 뻗는 고음의 영향으로 <오직 너뿐인 나를>은 이승철표 발라드곡 중 하나로 오랫동안 애창된다. (-121-)



2005년 이승철은 <열을 세어 보아요>를 발표했다.이 노래는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A Walk to Remember 》 의 대표곡이다. 그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인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리고 'SG 워너비'의 수많은 히트곡을 창작한 조영수가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참고로,이 노래는 와인애호가로 유명한 이승철이 화이트 와인을 한잔 마신 후 녹음한 곡이기도 하다. (-173-)



2021년,이승철은 데뷔 35주년 기녕 싱글 <우린>을 발표했다. 예전 히트곡 <My Love> 를 소녀시대 태연과 듀엣으로 재발매한 데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였다. 후배들과의 협업을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취지였다. 이승철의 이번 선택은 악동뮤지셩 찬혁이었다. 여러모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한 조합이었다. (본문)



1966년생 라이브 황제 이승철이 어느덧 예순이 되었다. 그가 데뷔한 시기는 1986년이었고, 형처럼 쫒아 다녔던 김태원과 함께 부활을 결성하여, 부활 2대 보컬로 호홉을 맞춰 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추구하는 음악이 달랐기에 ,이승철은 솔로가수로 홀로서기를 시작하였으며, 2025년은 이승철 데뷔 39주년이 되었다.



금융업, 기업금융을 주업으로 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 임요세프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승철 덕후를 자쳐하며, 그의 음악을 음미하고, 진심으로 응원하며 40년 가까운 시간동안 그의 음악에 인생을 심어왔다.그의 유연한 인생이 작가의 인생에 스며들게 된다. 



가수 이승철과 작가 임요세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직업으로서 음악을, 취미로서 음악을 즐기고 있다. 책에는 가수 이승철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느낄 수 있다. 발라드의 황태자임에도 불구하고,자신에게 채찍질하면서,음악에 변화를 추구했다. 시대에 걸맞는 노래,시대의 변화에 맞는 유연함,그것이 이승철이 추구하는 음악이었으며, 까마득한 후배에게도 기꺼이 노래를 의뢰하고, 만들어진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하고자 하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치열함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걸그룹 소녀시대의 모티브가 되었던 ,1989년에 발표된 이승철의 노래 <소녀시대>  가 이승철의 대표곡이다. 그의 음악은 거져 만들어지지 않았다.부활의 리더 김태원과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십 여년 만에 두 사람은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부활의 노래에 가장 적합한 보컬이 이승철이었기에 가능했다.그러나 음악의 유효기간이 끝났기에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낚시를 좋아하고, 와인 애호가이기도 한 이승철은 음악이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정계진출 유혹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음악이 자신의 인생이며, 발라드 음악에 매진하고 았다. 2026년 예정된 이승철 데뷔 40주년 콘서트가 어떨지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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