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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혼자 남은 너는 상무관 출입계단에 걸터앉았다. 검은색 마분지로 앞뒤 표지를 댄 장부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 아래로 느껴지는 시멘트 계단이 차가웠다. 체육복 위에 걸친 교련복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단단히 팔짱을 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빨라 부르다 말고 너는 멈춘다. 화려강산, 하고 되뇌어보자 한문시간에 외웠던 '려'자가 떠오른다. 이젠 맞게 쓸 자신이 없는 ,유난히 획수가 많은 한자다. (-10-)
역전에서 총을 맞은 두 남자의 시신이 리어카에 실려 시위대의 맨 앞에서 행진했던 날,중절모를 쓴 노인부터 열두어살의 아이들, 색색의 양산을 쓴 여자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던 저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31-)
그가 밧줄에 매다린 채 유인물을 뿌리고 구호를 외치는 동안, 삼사십명의 앳된 남녀 학생들이 도서관 앞 광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노래를 불렀다. 진압이 거칠고 신속했기 때문에, 한곡이 끝까지 불리는 일은 없었다. 그걸 멀리서 지켜본 날 밤이면 그녀는 잠을 설쳤다. 잠들다가도 가위에 눌려 곧 깨었다. (-86-)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134-)
언제든 경찰들이 나타날 수 있었어. 그 순간도 어디서 날 지켜보고 있는지도 몰랐어. 나는 재빨리 사진 한장을 뜯었어. 둘둘 말아서 쥐고 걸었어. 큰길을 건너 골목으로 깊이 즐어갔어. 못 보던 음악감상실 간판이 보였어. 오층 계단을 숨차게 걸어올라가, 동굴 같은 안쪽 방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켰어.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줄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렸어. 분명 음악 소리가 큰 곳이었을 텐데, 깊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마침내 완전히 혼자가 됐을 때 사진을 펼쳤어. (-172-)
마루가 뜯겨나간 자리에 드러난 검붉은 흙바닥으로 나는 내려가 섰다. 고개를 들자 강당의 사면에 뚫린 커다란 창문들이 보였다. 마주 보이는 벽에는 아직 태극기 액자가 걸려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 등도 철거되지 않았다. 반쯤 얼어붙은 흙을 밟으며 나는 오른편 벽을 향해 걸어갔다. 코팅된 A4 용지에 필기체로 인쇄된 문구를 읽었다. 운동할 때는 신을 벗으세요. (-199-)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대한민국의 한강 작가였다. 그중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읽었고,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삶에 대해서,인간의 존재에 재해서,우리 스스로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고 있었다.
소설 『소년이 온다』은 실존인물 문재학 열사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전남대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에 대해서, 동호의 죽음,그리고 동호의 친구 정대가 바라보는 역사적인 아픔에 대해서, 그 모습을 디테일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시민군을 상대로 무자비하고,잔인하게 다루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물어보고, 질문하고, 스스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찾아나서는 그 과정을 놓치지 않고 있다.
피비린내나는 그 현장, 친구가 죽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묵과할 수 없었다.군인에 의해 죽어갔으며,유령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들을 응시한다. 소설의 특이한 문학적 설정은 이렇게 완성되고 있었다. 죽음,장례식에 대해서,살아남은 자는 삶이 장례식이었다. 죽은 자는 죽은 그 순간이 장례식이지만,살아있는자, 살아남은 자는 매일매일이 장례식이다.
실제로도,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 자신의 삶이 장례시이었다.죄책감에 시달리면서,후회하며,,슬픔과 분노에 침전하고 있었다. 폭도로 내몰린 죽어간 아들이 다시 내 곁에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남겨둘 수 없었기에, 김길자 여사께서는 지금까지 아들의 고통과 상처를 위로하며, 어루만지는 투사로 평생을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