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대한 바다-지중해 2만년의 문명사>, 2.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3. <지중해-펠리페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1>, 4. <오스만제국은 왜 몰락했는가>. 자고로 읽고있는 역사서류 되겠다. 현재 스코어는 1은 477쪽, 2는 363쪽, 3은 89쪽, 4는 373쪽(1.27일자 페이퍼를 보면 247쪽을 읽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넉달동안에 126쪽을 읽었으니 하루 한쪽을 읽은 셈이다. 참.....세월없이 질기게 읽고있다...내 독서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독서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어디서 많이 듣던...)을 읽고 있다. 빛나는 면면을 보자면 무슨 박사학위 논문이라도 쓰고 있는 줄로 알겠지만 당연한 이야기로 그런건 아니고 그냥 소소한 호기심과 과도한 지적 허영이 힘겨운 독서를 견인하고 있다. 모두가 진지한 내용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3번은 엄청나게 지루해서 글자를 따라가는 눈길이 마치 무거운 짐지고 언덕을 오르는 노새의 걸음걸이와 마찬가지다. 잠시잠깐 노역의 쉬는 틈을 이용해서 시오노나나미의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을 읽고 있다. 역시 이게 제일 잘 읽히고 재미도 있고 글자도 눈에 쏙쏙 들어온다.
이번에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으면서 그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생이 로마인이야기를 다 읽었는지는 잘모르겠다. 아마 완독은 못했을 것이다. 일련의 르네상스 저작들을 포함해서 나나미의 책은 한 20~30권 정도 소장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선가 읽으니(서문에 나왔던 것 같다.)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는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한다고 한다.(이건 여러 책에서 여러번 언급햇던 것으로 안다. 개인적 소신의 표현같지만 어찌보면 주류 역사학계의 비판을 의식한 변명성 발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른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깊은 감화를 받고 있는 소생으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발언이었다. 역사란 모름지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니 불알이 그만 똑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마땅히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비판적인 시각으로 대의명분을 밝혀 엄중하게 기록해야 할 것이관데, 할매는 정녕 옛 사관(史官)들의 드높은 의기와 매운 얼에 대해서 듣도보도 못했단 말인가! 역사가 오락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기는 한 것 같기는 하나...연이나..
소생의 기억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가 먼저 나왔지만 사실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 이전에 일련의 르네상스 관련 저작들을 그야말로 쏟아내었던 것인데, 이런 것들에 또 소소한 에세이집 등을 포함해서 국내에 소개된 시오노의 저작은 거의 60-7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꽃다운 20대 후반에 만리 이국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완전 할매가 될 때까지 이탈리아 역사에 천착하며 역사의 현장 곳곳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취재하고 또 먼지묻은 원사료들을 뒤적이면서 엄청난 양을 글을 써댔으니 정말 대단한 열정이고 실로 놀라운 필력이라 할만하다.
<로마인이야기>가 역사서류로서는 드물게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에 대한 문제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오노의 책으로 로마사를 처음 접한 학생들이 그녀의 저작을 무슨 정사(正史)나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시험에서 침대는 가구가 아니고 과학이라고 답한 학생이 나온 정도는 아니지만 학생 및 일반 시민들의 로마사 역사 인식에 폐단이 나타났던 것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그녀는 일본 우익 인사로 영웅주의 사관(그녀의 카이사르 사랑은 유별나다. 카이사르 덕후라고 할만하다.), 제국주의사관, 위안부 망언 등으로 비판받아왔다. 주경철의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인식’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는 두편의 글이 실려있다. 주경철이 지적하는 나나미의 역사인식의 문제점은 1. 로마의 이민족 지배가 너그럽고 관용적이었다는 것은 환상이다. 세상에 너그러운 이민족 지배자는 없다는 것이고, 2. 주인과 노예간의 강한 유대와 신뢰 등으로 표현되는 로마의 노예제에 대한 환상, 3. 영웅숭배, 4. 재미있는 서술을 위해 가짜 사료까지 동원하는 '역사는 오락'이라는 시오노의 지론 5. 결국 나나미의 로마제국에 대한 사랑은 실패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는 아닌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두가 공감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역사는 오락이라는 시오노의 말대로라면 이것들은 어느정도 양해되는 것이기도 하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뭐 그런 형국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나는 역사적인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이 뒤엉킨 흥미진진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썼는데 왜 혼자 진지하고 엄숙하게 학문으로 받아들이느냐는 뭐 그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시오노나나미의 일부 글에서 보이는 제국주의적 식민사관은 그것이 오락이든 진지한 학문이든 뭐든 마땅히 경계해야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소생이 베네치아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도서를 찾았을 때 당시에는 베네치아에 관한 역사서라고는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 밖에 없었다. 지금은 로저 크롤리의 <부의 도시, 베네치아>도 있지만 통사가 아니고 역시 비전공자의 저작이라, 통사로서는 아직도 나나미의 저작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관한 자료를 찾을 때는 학계의 권위 런치만경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을 제외하고는 역시 나나미의 책이 유일했다. <로도스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 역시 해당 사건에 대한 단행본으로 국내에 출간된 유일한 저작들이다. 르네상스가 궁금해서 찾아보면 이게 또 전부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이거나 외국의 유명한 사학자들의 저작들 뿐이었다.
아국의 사학계는 그동안 인재 교육, 후학 양성에만 매진용진 했는지 어쨌는지 아국 역사학자의 저술 중에 서양사와 관련하여 <로마인이야기> 수준의 읽을 만한 책이 과연 몇 권이 있는지 의문이다. 주경철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서양사학과 교수이자 주류학계의 양명한 역사학자로서 전공 학문에 얼마나 천착하여 얼마만한 성과물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광역시의 변두리 누항에 거주하는 아둔한 축생 따위가 감히 의문을 가질 사항이 아닌줄 알지만, 소생같은 천학이 강호제현께 묻는데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주경철 교수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지중해-펠리페2세 시대의 지중해>등 브로델의 대작들을 번역하였고 대중역사서인 <유럽인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긴 하였으나 이 책은 좀 더 큰 흐름의 유럽인 이야기를 생각했던 소생으로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고 더 나아가서는 결국 <로마인 이야기>의 아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주경철의 시오노 나나미 비판에 있어 소생이 다소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녀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만한 열정과 노작을 선보이지 못한 우리 사학계에 대한 반성도 조금은 심도있게 다루었으면 하는 점이다. 물론 주경철의 시오노 나나미 비판에 그런 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딱 한 줄 나온다. "우리의 역사가, 작가들 가운데 이런 정도의 대작을 내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점도 우리가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하지만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라는 책이 나오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뭐 딱히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반성만 하다가 한 세월이 흘러간 것인지 그때 그 순간에만 반성하고 그 후로는 반성을 안 한 것인지 한심한 소생은 알 길이 없다. 우리의 역사학계에서도 재조든 재야든, 아마추어든 프로든, 오락이든 학문이든, 뭐든간에 일반 독자들이 믿고 읽을 만한 훌륭한 저작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