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한길에서 나온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건축이야기 시리즈중 <이슬람 사원>은 이번에 처음 구입해서 보았지만, <고딕성당>과 <성>은 예전에 구입했었는데, 오래전 대방출시 모두 처분했다. 또 다시 구입해야할 모양이다. 알라딘의 도서 분류에는 ‘4~7세’, ‘초등 전학년’이라고 되어있지만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이슬람 사원이나 고딕성당의 구조와 건축 방법 등에 대해서는 소년이나 청장년이나 노년이나 모르기는 피차상호간 매일반이니 어느 연령대의 누가 읽어도 매우 유익하다는 생각이다. 역시 그림으로 보니 아둔한 소생이 이해하기에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야긴데 어쩌면 소생 수준이 초등수준인지도 모르겠다. 가만 곰곰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수년 전에는 베네치아에 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그 때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최고는 <아빠와 함께 한 베니스 여행>이었다. 요건 알라딘에서 ‘초등 3~4학년’이라고 분류되어있다. 아아아!!! 정말 맞는갑다. 영험하신 알라딘께서 분류를 잘못하실 리 없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각설허고,
오스만 제국 이슬람 사원의 원형이 되는 건물은 지금의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다. 서기 360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으나 화재로 두차례 소실되었다가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재건되어 거의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원래는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정복자 메흐메트 2세는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었다. 내부에 미흐랍이 설치된 것, 십자가가 제거되고 기독교 성화들이 회칠로 가려진 대신 알라, 무함마드 등 글씨가 새겨진 거대한 동판이 걸린 것, 네 개의 뾰족한 미나레트가 설치된 것외의 변형은 거의 없었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에서도 엄청난 부를 이룬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서민들의 종교적, 교육적, 시민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자선단체를 만드는 행위가 관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자선단체는 새로운 사원 및 학교, 식당, 시장, 하맘(목욕탕) 등여러 용도의 건물들을 필요로 하고, 이 모든 건물들이 한데 모여 ‘퀼리에’ 라고 불리는 하나의 건물 단지를 이룬다.
30년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메흐메트 파사 장군은 존경받는 귀족이자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 이제는 은퇴한 장군은 자신의 부와 행운이 신의 의지 덕택임을 알고 전통에 따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의 마지막 소명은 자선단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1595년 10월 어느날 장군이 궁정 건축가인 아키프 아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면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에 나오는 건물 단지와 주요 인물들은 상상의 산물이다. 하지만 개별 구조물들은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건축가인 시난이 1540년에서 1580년 사이에 이스탄불에 지은 실제 건축물들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면 마르마르해 너머로 이스탄불이 보인다. 그너머로 더 나아가면 보스포루스 해협이다.

이슬람 사원의 모형이다. 아래 왼편 그림의 중앙 제일 위쪽에 있는 것이 ‘미흐랍’이다. ‘미흐랍’은 모스크 내부에 있는 벽감을 말하는데, 이 미흐랍은 반드시 이슬람 성지인 메카가 위치하고 있는 방향을 가리키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모든 이슬람 사원의 건축은 측량사가 미흐랍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뜰 중앙에 있는 정자모양의 ‘사디르반’은 예배를 드리기 전 손과 발을 씻는 세정시설로 보통 사원의 안뜰 중앙에 위치한다.

주랑 현관 베이(기둥과 기둥 사이 또는 기둥에 둘러싸인 한 구획)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원의 기둥머리와 벽이 세워지고 반쪽 돔들을 받칠 아치들을 만들기 위해 홍예틀(아치를 만들 때 아치를 만드는 돌들을 임시로 받치는 나무틀)이 올려졌다. 숲처럼 보이는 비계 안에서 예배당 건물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인 미나레트의 발코니 부분이다. 무에진이 기도시간을 알리는 발코니는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으로 돌을 5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무에진은 미나레트에 올라서 하루에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려주고 코란의 말씀을 낭독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루 5번이라고 돌을 5단으로 쌓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하루에 다섯 번 첨탑 발코니에 오르려면 몹시 바쁘기도 하겠지만 꽤 힘도 들었을 것이다.

주요 아치들과 펜던티브들이 완성되었다. 팔각형 각 구석에는 보초병처럼 받침 기둥이 서 있다. 예배당의 높은 천장을 덮을 중앙 돔을 만들기 위해 아키프 아가는 중앙 비계의 중심축 위에 견고하면서도 쉽게 회전할 수 있는 가볍고 평평한 반구모양의 나무틀을 만들어 올렸다. 벽돌공들이 나무틀 양쪽 끝에서 두꺼운 회반죽을 사용해 벽돌을 하나씩 조심스레 쌓아갔다.

도금을 한 초승달 장식이 돔위로 올라가자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외관은 거의 완성되었지만 아직 사원이 완공되기까지는 몇 달이 남아 있고 ‘퀼리에’ 전체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자선단체에서 일할 사람들을 벌써 고용했다. 1600년 4월 3일 직원들의 진용이 짜여지면서 자선 단체의 공식 업무가 시작되었다.

사원 내부를 장식하는 세라믹 타일은 대부분 아나톨리아에 있는 유명한 이즈니크(비잔틴 시절의 니케아공의회로 유명한 그 니케아 되겠다)의 가마에서 가져왔다. 하얀색으로 글씨를 쓴 청색 타일이외에도 장인들은 다양한 꽃과 덩굴식물의 선과 모양을 응용한 색색의 타일을 만들어 냈다. 이슬람은 일체의 우상 숭배를 금지하고 있어 이슬람 사원의 장식으로는 코란의 말씀, 꽃 덩굴 식물등 자연 식물 그리고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만이 허용된다.
완공된 메흐메트 파사 장군의 '퀼리에‘는 공식적으로는 7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7개의 건물은 사원,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 이마레트(무료 식당), 하맘(목욕탕), 투르베(영묘), 한(가게와 숙박시설), 캐러밴서리(여행자 숙소와 마구간) 되겠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수백 개의 건물들이 있었다. 사원이 완공된 후 얼마되지 않아 파사 장군은 정원에서 무화과를 따다가 다쳐서 죽었다. 장군은 이 '퀼리에'에 안에 있는 투르베에 묻혔다.

<추신 >
이글을 쓰다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대성당 건축이 필생의 꿈인 석공 톰이 등장하는 켄 폴릿의 소설 <대지의 기둥> 말이다. 책은 3권인데 오래전에 2권까지 읽다가 다 못읽고 중도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뭐 눈알 빠지게 재미있지는 않았어도 그런대로 읽은 만 했는데 왜 끝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미드도 있었는데 역시 보다 말았다. 누군가가 <대지의 기둥>을 읽는다는 것이 그만 레이먼드 카바의 <대성당>을 집어들고 읽었다는 그런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폴릿의 소설은 맥컬레이의 <고딕성당>과 함께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