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순으로 포스터 준다고 해서 얼른 주문했는데 오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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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路難   - 李白 

金樽美酒斗十千 玉盤珍羞直萬錢

停盃投저不能食 拔劍四顧心茫然

欲渡黃河氷塞川 將登太行雪滿山

閒來垂釣碧溪上 忽復乘舟夢日邊

行路難行路難 多岐路今安在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인생살이 어려워라


황금술잔에 만 말의 맑은 술

구슬 쟁반에는 만금의 성찬

술잔 멈추고 젓가락 던져 채 먹지 못하고

칼 뽑아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음은 아득하다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물을 막고

태행산 오르려니 눈이 산에 가득하다

한가로이 시냇물에 낚시 드리우고

홀연히 배를 타고 해로 가까이 가는 꿈을 꾸었다.

인생살이 어려워라 인생살이 어려워라

갈림길 하 많으니 지금 그 길 어드매뇨

거센 바람 파도 부술 때 기다려

구름높이 돛 달고 큰 바다 건너리

 

                                      -   김원중 평역 당시감상대관(까치동양학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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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방문중인 호금도 아저씨가 지난 19일 시애틀에서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유명한 시구를 인용하여 중미관계 발전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는 신문보도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인용한 구절은 이백의 ‘행로란(行路難)’이라는 시 3수 가운데 첫수의 마지막 두 구절로 ‘長風破浪會有時(장풍파랑회유시), 直掛雲帆濟滄海(직괘운범제창해)’이다.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안병렬 안동대 명예교수의 ‘한역당시 300수’를 인용하여,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 큰 뜻 때가 오리니, 높은 돛 바로 달고 창해를 건너리라”는 뜻으로 소개했다. 내 보기에도 김원중 선생의 해석보다는 안병렬교수의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행로난의 그 두 구절이 그렇게나 유명한 명구인지 미처 몰랐으니 글하는 선비(?)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어데 숨을 곳이 없다. 집구석에 있는 당시관련 서적을 뒤져 보았으나 임창순 선생의 ‘당시정해(소나무간)’나 ‘고문진보 시편(육문사간)’에는 이 시가 나와 있지 않았고 김원중의 ‘당시감상대관(까치간)’에는 소개되어 있어 간신히 그 내용을 훑어보며 부끄러운 마음을 잠시 숨겼던 것이다. 처음에 나오는 두 구절 金樽美酒(금준미주)....玉盤珍羞(옥반진수)... 운운은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어사출도 직전에 변사또 생일잔치에서 지은 시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의 구절과 흡사하니 그 구절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음을 이제서야 알겠더라...(혹시 고딩 국어시간에 이미 배웠는데 뒷북치는 건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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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경주 보문단지에 나들이 갔었는데, 역시 가는 날이 장날이라...선재미술관은 내부수리공사로 휴관중. 그래서 미술관 입구에 있는 뚱뚱한 아저씨 아줌마 사진만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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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근래 솔출판사간 <도쿠가와 이에야스(전32권)>를 재독하고 있는 형편에 일본에 대한 관심이 무슨 풍선마냥, 갓 부은 맥주거품마냥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풍선도 너무 부풀어 오르면 터지기 쉽상이고 거품은 시간 지나면 김빠지기 마련이다. 과거 <대망>이란 제하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본 책은 이른바 덕천막부의 300년 에도평화시대가 열리기까지의 그 유혈낭자한 시절을 그리고 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랐듯이 평화도 유혈의 바탕위에서 더욱 굳어지는 모양이다. 강구연월에 격양가를 부르는 시절, 말하자면 어여쁜 백성들이 잔뜩 먹고 들눕어 배 뚜디리며 노래 부르는 그런 시절, 그런 시절이 오면 자연적으로다가 문화가 창달하고 백화가 만발하는 법이니, 이른바 300년 에도평화시절에 ‘하이쿠’와 ‘우키요에’가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보면 일본 사무라이들이 할복하기 전에 반드시 두세줄의 짧은 시형태의 “지세이(辭世)”라는 것을 읊는데 - 이것도 일종의 ‘하이쿠’가 아닌가 모르겠다.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일본의 무사도>를 보면 첫장에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라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세이가 나온다. 기실 이건 히데요시가 할복하기 전에 지은 것이 아니라 종신와석(終身臥席) 간에 말하자면 유언으로 지은 것이다.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대충 훑어 보니 이 <일본의 무사도>라는 책은 무사도를 찬양고무하는 일본정부의 홍보책자 비슷한 그런 책인 것 같다. 독자제위의 주의를 요하는 바이다. - 내 생각하기에 무식한 칼잡이들이 어디서 이런 시짓는 법도 배웠나 신기하기도 했던 것이니, 나 같은 넘은 물론 할복할 용기도 없겠지만 배를 쨀려고 해도 지세이를 짓지 못해 난처해할 것을 생각하니 실로 한심한 생각이 들어 실실 웃음이 다 나올라고 했다. 


“우키요에”로 말하자면 19세기 일본의 상품이 유럽에 들어올 때 포장지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인데, 알려진 이야기로는 인상파 화가들이 우연히 이 우키요에를 보고는 그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에 말그대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고호,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 이래로 이 “우키요에”라는 것이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손철주가 <인생은 그림같다>에서 한 아래와 같은 이야기(이건 요 아래 담뽀뽀님의 서평을 보고 알았다)는 한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일본은 지금도 방방곡곡을 우키요에로 도배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한쪽 구석에라도 민화를 걸어놓고 즐기는 집안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민족이 먼저 소비하지 않는 상품을 외국인이 무엇이 아쉬워 찾을 것인가. 우키요에의 번성을 돌아보며 민화의 복권을 꿈꿀 일이다." 우리의 민화가 비록 우키요에 만큼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집구석에서 조차 사라진다는 것은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이 책 <하이쿠.....>를 보니, 아마도 인상파에 강한 인상을 준 그림은 바로 19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들인 것 같다. 그들의 그림은 지금봐도 색감이 뛰어나고 세련되어 보인다. 예경에서 나온 <에도시대의 일본미술>을 보니 양인은 무슨 역사의 라이벌 내지는 당시 일본 화단을 이끌던 쌍두마차 비슷한 존재였던 것 같다. (물론 예경에서 나온 <에도시대의 일본미술>도 읽지는 못했다. 예경에서 무슨 염가판매 행사를 해서 아트라이브러리 시리즈 여런권을 헐값에 구입할 때 딸려온 것 같다.) 호쿠사이가 히로시게보다 연상이고 ‘후지산 36경’연작으로 먼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서 히로시게가 유명한 ‘도카이도(東海道) 53역참’을 제작했으며, 이책 <하이쿠....>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명소에도백경(名所江戶百景)’은 히로시게 말년의 야심찬 기획이었다고 한다.


효형에서 나온 <에도의 여행자들>을 보면 - 물론 이 책도 사놓고 보지 못한 축이다. 이번에 대충 앞쪽만 훑어봤다 - 교토에서 나고야를 거쳐 에도에 이르는 가도를 ‘도카이도(東海道)’라고 한단다. 이 책 첫장의 제목은 ‘문인들의 여행’이고, 소제목은 ‘마쓰오 바쇼와 오쿠노 호소미치의 여행’, ‘고바야시 잇사와 시나노 귀향 여행’, ‘요사노 부손과 하이카이 그리고 그림 여행‘ 등으로, 바쇼, 잇사, 부손의 소위 하이쿠 3대 가인이 모두 등장한다. 시인묵객에게 있어 방랑이란 어쩌면 숙명같은 것이리라. 알알이 주옥같은(하이쿠에 있어 알알이 주옥같다는 표현을 정말 적확하다는 생각이다.) 시편들을 남겼으나 혹은 객사하고 혹은 고향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책 <에도의 여행자들>에 히로시게의 <명소에도백경>의 컬러판 도판을 곁들였더라면 훨씬 보기에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어쩌면 히로시게의 <명소에도백경>만으로 JUST GO나 HELLO 시리즈 류보다 훨씬 기품있는 <도쿄관광 가이드북>이 한권 나올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건 끝으로 해보는 쓸데없는 여담인데, 우키요에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춘화(春畵)가 이 책에서는 배제되어 다소간에 허전한 마음이 없지 않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에도근경 8경> 중 '하네다의 낙안(落雁)'(1837).  아닌 것 같으면서도 언뜻선뜻보면 고흐풍의 느낌을 받기도 한다. 문득 당나라 시인 왕발의 <등왕각서>중 유명한 구절 <낙하는 여고목제비하고, 추수는 공장천일색이라 (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떨어지는 저녁놀은 외로운 기러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물은 길게 뻗은 하늘과 더불어 한색이로구나) 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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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non 2006-05-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라이는 무식한 칼잡이가 아니라 당시의 지식인 계층이었죠.

붉은돼지 2006-05-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인 계층이라기 보다는 지배계급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시절>을 읽다가  p172~173에서



 

꽃씨와 도둑 - 피천득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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