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소생이 옛날부터 궁금해 했던 것이어서 언젠가는 한번 이야기해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것인데......그렇다고 뭐 심심하게 심각한 것은 아니고. 소생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게 또 본질과는 좀 동떨어진 옆길로 새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여서 어딘선가 누군가 “쯔쯔즈...별 이상한 생각도 다 하고 있네....책에서 그렇다면 그런줄 알면되지......아이참, 붉은돼지님은 좀 이상한 성격인가봐.” 이런 소리를 할까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어제 〈로마의 일인자〉 3권을 읽다가 그 생각이 또 떠오른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나 〈로마제국 쇠망사〉(아아아! 이건 아직도 5권 3백페이지인가 4백 페이진가 그 어띠쯤에 진을 친지 아마 2~3개월은 된 듯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로마의 총사령관이 결전을 앞둔 로마군단 앞에서 연설을 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로마의 일인자에도 보니 결전 전 총사령관의 연설은 로마군의 관행이라고 한다.) 연설의 내용이야 어떤 식으로든 기록으로 남아있으니 전해졌을 것인데.....소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고 총사령관의 연설에 반응하는 병사들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다 이렇다. 총사령관의 연설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완전 고무되어 열렬히 호응하는 대충 그런 이야기가 많다. 어떤 연설들은 제법 길다. 로마의 일인자 314~315페이지에도 마리우스가 전체 군단병 앞에서 마치 대화하듯이 연설하는 대목이 나온다. 역시 마리우스의 연설에 병사들은 자부심으로 한껏 고무되어 눈물을 흘렸다.

 

 

로마군의 규모는 보통 수만 명에 이른다. 확성기도 없던 시절에 수만명 앞에서 총사령관이 모습을 나타내서 연설을 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겠지만 의미의 전달은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전장에서 군대의 후퇴나 전진 등의 명령을 내릴 때는 깃발이나 나팔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적당한 비유가 아니겠지만 학교에서 수백 명이 조회를 해도 서서 조는놈, 짝다리 집고 엉뚱한 짓거리 하는 놈, 옆 친구와 소곤소곤 이바구하는 놈놈놈,,, 별 놈들이 다 있어 교장선생님의 훌륭하신 훈화는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귀까지 거의 전달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산화한다. 로마군 총사령관의 목소리가 아무리 천둥같거나 아니면 화통을 삶아 먹었다고 해도 의미가 이해가능한 육성이 전달되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다. 앞 줄에 가까이 있는 수십 명이나 수백 명 정도 사령관의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소생이 뭐 시비를 따지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동안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을 한 번 적어봤을 뿐이다. 병사들이 총사령관의 연설에 감동받거나 고무되었다기 보다는 어쨌든 그때의 분위기가 그랬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도 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장편은 시작한 김에 끝을 봐야 하는데...후속 편이 언제 나올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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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9-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속 대대와 장교들만 앞에 데리고 연설했을까요? 뒤에서는 그냥 앞에서 와! 하면 같이 와!!! ㅋㅋ / 저도 어제 3권을 다 읽었습니다. 전에 7이 끝이라고 어디서 들었는데 갑자기 이번 3˝권˝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알아보니 시리즈는 7까지 진행되고 1이 로마의 일인자, 2는 풀잎관....이렇게 나가나 봐요. 그렇다면 시리즈 전체는 약 21권쯤 되는 것인가요? 헉.....

붉은돼지 2015-09-06 21: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로마의 일인자가 말하자면 일부죠 총칠부고요
어쩌면 21권이 넘을지도 ....

앞에서 와~하면 같이 와~
이러면 파도타기되는데 ㅋㅋ

moonnight 2015-09-0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그러네요. 붉은돼지님이 상상하신 장면을 저도 떠올려보며 맞아맞아했어요.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 않아서 책사는 걸 자제하려는데..재미있다 하시면..ㅠㅠ;;;

붉은돼지 2015-09-06 21:46   좋아요 0 | URL
사실 뭐 중요한 건 아니죠
이런 대하소설은 역시 몰아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에요^^

CREBBP 2015-09-0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 어떻게 의미 전달이 됐을까 하고요. 거대 원형경기장인가 고대 연극이 행해졌던 장소에서는 설계상의 고려로 소리가 연극배우들의 소리가 멀리있는 관객석에서도 잘 들린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신기해요

붉은돼지 2015-09-07 13:13   좋아요 0 | URL
전에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러셀 크로우가 말을 타고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연설을 했던 것 같아요....
뭐 중요한 건 아니니.....그건 그렇고 로마 원형극장에서는 정말 배우들의 소리가 저 뒷좌석까지 잘 들린다고 하더군요...무슨 공학적으로다가 그렇게 설계가 되었다고....^^;;;;
 

오늘은 톱카프 궁전 안에 있는 보물 전시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유물 전시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20-30분 정도 줄서 기다린 후에 보물실에 입장했다. 보물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술탄의 단검일 것이다.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다이아라고 한다. 컬리넌 다이아가 원, , 쓰리, ,,,,있는 걸로 아는데 서열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지만 바빠서 패스. 스푼머시기는 86캐럿이나 되는 물방울 모양의 거대 다이아를 49개의 작은 다이아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술탄 메흐메트 4세가 즉위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 다이아를 발견한 사람은 어부인데, 유리조각으로 착각해 스푼 3개 값에 팔았다고 해서 스푼메어커스 다이아몬드라고 불려진다는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역시 어부는 어부로 살 팔자였나보다. ‘단검은 칼자루에 커다란 에메랄드가 3개 박혀있고 칼자루 끝의 뚜겅을 열면 시계가 장치되어 있다. 칼집은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치장되어 있다. 단검은 18세기초 마흐무드 1세가 페르시아의 샤에게 선물로 보낸 것인데 페르시아 내정이 불안하여 샤를 만나지 못한 사절단이 그냥 가지고 돌아온 것을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필름 느와르의 거장 줄스 다신 감독의 영화 중에 1964년 작으로 톱카피 Topkapi라는 영화가 있다. 국제적인 보석털이범 커플이 공범자들을 모아 톱카피 궁전에 보관되어 있는 술탄의 단검을 훔친다는 이야기다. 치밀한 작전으로 정보국 요원들을 따돌리고 단검 탈취에 성공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궁금하쥬??? 아닌가??? 뭐, 사실은 저도 못봤어유.. 헤헤헤... 대도(大盜)에 관한 영화로 가장 재미있고 뛰어난 영화로 알려져 있다. 이후 등장하는 도둑 영화들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보고 싶으면 한번 보시라고 말할려고 하니 국내에 출시된 게 없다. 언젠가 EBS에서 방송한 적은 있다. 줄스 다신은 1911년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났다. 필름누아르 영화인 벌거벗은 도시로 명성을 얻었으나 매카시 선풍에 칼바람을 맞고 유럽으로 망명하여 그리스에 정착한다. 그리스에서 다신은 신화 속의 여신같은 그리스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를 만나 일요일은 참으세요, 페드라, 톱카피등을 같이 찍었고 64년 결혼했다. 부부가 함께 그리스 군사정권에 반대하여 그리스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그리스 대리석 조각의 반환 운동을 지원했으며 2008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

    

 

 

 

 

 

 

 

 

 

 

소생은 멜라니 메르쿠리를 오늘 처음 알았다. 알고보니 이 메르쿠니라는 여성이 보통 인물이 아니다. 참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도 많고 멋진 사람도 많고 운좋은 사람도 많다. 뭐 물론 그 반대인 사람도 많겠지만....어쨋든 그녀는 양가집 참한 규수로,,, 1920년 그리스의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56년 칸에서 줄스 다신을 처음 만났고 60년 줄스 다신 감독의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햇다. 1962년에는 국내에선 죽어도 좋아로 상영되었던 유명한 영화 페드라에 출연했는데 영화 음악을 본인이 직접 부르기도 했다. 64년에는 줄스 다신과 결혼한다. 둘다 재혼이다. 67년 그리스에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자 국외로 추방되어 프랑스에서 배우와 샹송가수로 활동하면서 그리스 군사정권 반대 운동을 계속했다. 74년 군사정권이 붕괴하자 귀국하여 1981년에는 그리스 최초의 여성 문화부 장관이 된다. 그것도 두차례에 걸쳐 10여년간 장관직을 수행했다. 그녀는 물론 미인이지만 예쁘지는 않았고 목소리도 몹시 허스키했으며 골초였다. 1994년 사망했는데 그리스 국민들은 그녀를 몹시 사랑해서 국민장을 치루었다. 

 

기념품 샵에서 구입한 톱카프 궁전 가이드 북에서 한 컷

 

 

톱카프 궁전에서 지쳐 주저앉은 혜림씨

 

음료수 한 병으로 원기회복한 혜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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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처음 방문한 곳은 톱카프 궁전이다. 우리는 5일짜리 박물관 패스를 미리 끊었기 때문에 매표소에서 줄을 서지 않고 입장했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술탄 메흐메트는 당연히 비잔틴의 황궁을 궁전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도와 무슬림은 생활방식 자체가 달라서 사용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당연히 새 술은 새 부대에 아닌가, 집을 새로 장만해서 이사를 하는데 누가 헌가구를 쓰겠는가. 어쨌든 정복자는 처음에는 지금의 그랜드 바자르 옆 이스탄불 대학이 있는 자리에 궁전을 지었다가 얼마 후에 지금의 톱카프 궁전 자리에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당시에는 궁전입구 출입문 양 옆으로 대포를 배치해 놓아서  ‘톱카프’ 궁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톱은 대포라는 말이고 카프는 문이란 뜻이다.

 

 

1475년~1478년에 지어진 궁전은 19세기 중엽까지 근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인 술탄들이 거처한 정궁이다. 동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제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상의 중요한 사안들이 이 곳에서 입안되고 결정되었다. 원래 궁전의 영역은 지금의 귈하네 공원을 모두 포함하여 이스탄불 곶 상단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이다. 궁전은 골든혼과 보스포루스해협, 마르마라해 세 바다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400년동안 몇 차례의 증축과 개축,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이런 절묘하고 멋들어진 곳에 지어진 궁전은 지구상에서 이 곳밖에 없을 것이다. 

 

 

궁전은 3개의 문과 4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생이 톱카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두 군데다. 하렘은 아니다. 하렘이라고 하면 뭐 벌거벗거나 아니면 먼지떨이 같은 짧은 깃털 치마를 입은 매혹적인 아랍 여인네가 엉덩이를 찰랑찰랑 흔들며 현란한 배꼽춤을 추는 무슨 유흥과 쾌락의 주지육림을 상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무지가 낳은 오해다. '하렘'이란 이슬람 사회에서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방을 뜻한다. 이 곳은 가족이외의 어떤 남성의 출입도 금지된다. 일반 가정에서의 하렘이 확대된 형태가 왕실의 하렘일 것이다. 술탄의 어머니와 술탄의 여인들, 술탄의 어린 자식들이 거처하는 곳일 뿐이다. 금남의 구역이라고 하니 이교도들인 서유럽인들은 야릇하고 해괴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고 관능과 애욕이 불타는 지상낙원이 아니다. 뭐든지 금지된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금지가 강할수록 욕망은 커지고 욕망의 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는 상상이란 형태로 구현되는 법이다.

 

 

하렘에 대한 오해와 다소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 바로 ‘터키탕’이 아닌가 생각한다. 터키의 목욕탕은 ‘하맘’이라고 하여 일종의 증기탕이고 탕 안에서도 올누드는 거의 없다. 은밀한 부분은 수건으로 가리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터키탕’ 이라는 것이 유행하면서 터키의 목욕탕을 모두 한국 터키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 아시다시피 과거 우리나라의 ‘터키탕’은 오늘날의 ‘안마방’의 전신이고, 바로 매춘업소다. 1990년대 말에 터키대사관에서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터키탕이라는 용어는 점차 사라져서 지금은 없어졌다. 소생도 소싯적에 동대구역 근처에서 ‘터키탕’이라는 간판을 많이 봤다. 어린 나이에도 저 곳은 어떤 곳일까? 아!!!! 나는 언제쯤 저런 곳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 몹시 애를 태우며 꿈을 키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그 소년은 과연 커서 꿈을 이루었을까요? 그건,,,,, 음.......입니다. 그건 그런데, 얼마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이 한국식 터키탕의 원조는 바로 일본이라고 한다. 2차대전 후 일본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성행한 매춘업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오스만의 궁전에서 소생의 인상에 가장 남았던 두 곳은 이슬람 보물을 보관한 보물보관소와 이슬람교의 성스러운 물건들을 보관한 성유물실이다. 40~50분 줄서서 성유물실에 입장했다. 소생은 성유물실을 둘러보고 놀라서 뒤로 자빠질뻔 했다. 뭐 자빠질려고 해도 사람이 너무 많아 뒷 사람에게 밀려서 자빠질 수도 없었겠지만... 성유물실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은 역시 예언자 무함마드와 관련된 것들이다. 예언자의 망토, 예언자 턱수염의 털, 625년 Uhud 전투에서 부러진 예언자의 이, 예언자의 검, 예언자의 활, 예언자의 발자국, 예언자의 편지 등이다. 안타깝게도 두 곳 다 사진 촬영은 금지다.

 

소생의 입이 똭!! 벌어진 이유는 예언자의 털이나 이 그런 것 때문은 아니고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관련된 물건들 때문이다. 유리 전시함 안에 있는 것이 “아브라함이 사용하던 접시”,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칼”, “요셉의 가운” 이라는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작은 표지판에 ‘staff of Moses’ 혹은 ‘sword of David’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하!!! 모세의 지팡이라니!!!! 내... 참.... 길이는 1미터 조금 넘는 듯하고 중간중간에 대나무같은 마디가 있는 일자 모양의 지팡이다. 노인들이 흔히 집고 다니는 지팡이랑 비슷하다. 저 지팡이가 바로 홍해 바다를 둘로 똭!!! 갈라버린 기적의 그 지팡이???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가 야훼를 면담할 때 짚었을지도 모르는 그 지팡이??? 광야에서 40년 풍찬노숙의 삶을 버틸 때 모세의 노쇠한 몸을 지탱해준 그 지팡이란 말인가??? 모세가 기원전 14세기 사람이라고 한다면, 저 지팡이가 3000년도 훨 넘었다는 이야기인데.....아앙아아아!!!!...이건.... 정말 희대의 사기극이다. 

 

 

 

 

 

 

 

 

 

 

 

톱카피 궁전을 나올 때 기념품 가게에서 영문판 가이드 북을 한 권 샀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사전 찾아가며 근근히 읽어보니 모세의 지팡이나 다윗의 칼 등 구약의 인사들과 관련된 물건들은 그게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추정이라도 누가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추정하였단 말인가? 이건 역시 사기야....하는 생각이 드는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종교란 결국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진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진짜든 가짜든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또 믿어 그 믿음이 쌓여 단단하게 굳어지면 그것은 어느듯 진짜로 성물(聖物)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물보관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궁전의 두 번째 문인 인사의 문이다.

 

하렘의 입구

 

하렘의 내부 중 일부분인데 술탄의 방인지 뭔지 기억이 안난다.

 

 

 

 

 

 궁전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다윗의 칼. 모세의 지팡이는 책에 사진이 안나온다.

 

 예언자의 신성한 망토가 보관된 금궤

 

예언자의 이 보관함

 

예언자의 성스러운 털이다. 어째 말투가 불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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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여행 중 8.8일 날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곳이 터키 이스람 예술 박물관이라고 앞서 이야기했다. 이 박물관은 1524년에 지어진 건물로 원래는 오스만 제국의 최고 전성기인 슐레이만 대제 시절의 재상인 이브라힘 파샤의 궁전이다.(왜 저택이라하지 않고 궁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금일은 술레이만 대제와 이브라함 재상, 술레이만의 아내였던 록셀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술레이만은 '솔로몬'의 터키식 발음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슬람은 그리스도교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지혜로운 유대의 왕 솔로몬은 무슬림들에게도 역시 본받아야 할 왕인 것이다. 술레이만은 1520년 즉위해서 장장 46년간 제위에 있었다. 평생 13차례의 대정벌을 감행했고 결국 전장에서 죽었다. 1521년 10만 대군을 동원해 베오그라드를 함락시키고 1522년에는 로도스섬을 점령한다. 로도스는 제주도의 3/4정도 크기로 아나톨리아반도 바로 턱 밑에 위치하고 있는 섬인데 당시에는 베네치아령으로 성요한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어 오스만제국으로서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같은 존재였다. 대제는 6개월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난공불락의 섬을 점령하지만 불굴의 항전에 탄복하여 항복한 기사들이 무사히 섬을 빠져나갈 수 있게 온정을 베풀었다. 기사들은 그 후에 몰타 섬에 정착하고, 몇 십년 후에 다시 몰타섬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 공방전에서는 술탄의 군대가 패한다.

 

1529년과 1532년 두 차례에 걸쳐 빈을 포위 공격하여 신성로마제국을 압박하고 술탄의 위엄을 만방에 떨쳤지만 길어진 보급선과 악천후 등으로 끝내 빈을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이 포위전 때 커피가 유럽으로 처음 전해졌다고 한다. 1538년 해적출신인 오스만의 제독 바르바로사는 교황,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유럽 연합함대를 그리스 북서부 프레베자에서 맞아 대승을 거둔다. 프레베자 해전이다. 이 해전으로 오스만제국은 1571년 레판토 에서 유럽 연합함대에 완패할 때까지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게 된다.  술탄의 군대는 동쪽으로도 진군했다. 1534년, 1548년 1554년 세 차례의 원정을 통해 대제는 아덴, 예맨, 바그다드와 이라크의 대부분, 아르메니아 서부, 소아시아 동부 등을 점령했지만 결정적으로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를 패망시키지는 못했다.

 

대제의 치세기간 동안에 제국은 문화적으로도 그야말로 백화만발한 황금기를 구가했다. 술래이만 자신이 무하비라는 필명으로 시를 쓰기도 했는데 록셀란에게 바친 연애시도 전해지고 있다. 슐레이만 대제 이전의 오스만 제국의 문화는 주로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대제 이후로는 오스만 제국 고유의 예술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건축분야에서는 오스만의 대 건축가이자 이슬람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미마르 시난이 크게 활약했다. 시난은 대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300여개 건축물을 지었다. 구시가지에 있는 술레이마니예 모스크는 시난의 걸작품 중 하나다. 대제는 또한 법률을 집대성하는 등 법체계 확립에 혁혁한 공적이 있어 ‘카누니’ 즉 입법자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대제의 사랑은 순애보에 가깝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제의 딸로 전쟁 중 노예로 잡혀 술탄의 하렘으로 보내진 록셀란이란 여자에게 매혹당한 대제는 술탄은 전통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관습을 깨고 록셀란과 정식으로 혼인을 하고 평생 일부일처를 고수했다. 물론 하렘의 다른 여자들을 전혀 만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대제는 두 번 결혼하지 않았으며 그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록셀란은 5남 1녀를 낳았다. 왕실의 다산은 축복이자 유혈의 씨앗이다. 보위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골육간의 상쟁은 왕실의 피를 타고 태어난 자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대제가 하렘의 다른 여인에게서 얻은 첫째 아들 무스타파는 록셀란의 음모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된다. 1553년의 일이다. 무스타파가 죽자 이복 형을 몹시 따랐던 록셀란의 막내아들 지한기르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지한기르는 곱사등이였다고 하는데 자살했다고도 한다.) 셀림과 바예지드가 후계자의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다가 바예지드는 패하여 처형되고 셀림은 황태자가 된다. 록셀란은 1558년에 눈을 감는다. 8년 후인 1566년 대제도 원정 중에 죽어서 록셀란과 함께 슐레이마니예 모스크에 묻혔다.

 

이브라힘 파샤는 그리스 출신으로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렸다가 우연한 기회에 술레이만 대제가 아직 왕자였던 시절에 만나서 그의 시동이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심지어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잤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동성애 관계였다는 소문도 있다. 이브라힘은 술레이만이 술탄에 즉위한 지 삼년만인 1523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제국의 대재상이 된다. 이브라힘은 심지어‘다른 대신들의 눈도 있으니 제발 좀 천천히 승진시켜 달라’고 술탄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어지간 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런 부탁 한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뭐 물론 그런 일이야 내가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겠지만.....

 

어쨋든 대단한 이브라힘은 이듬해에는 술레이만의 여동생과 결혼한다. 하지만 어쩔것이냐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권력은 아편과도 같아서 이브라힘도 처음의 겸손함과 현명함을 잃었고, 대 페르시아 전쟁에서 일부 실책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려는 록셀란의 음모에 말려 결국 1536년 술탄의 묵인 하에 암살된다. 슐레이만은 이브라힘에게 자신이 보위에 있는 동안은 절대 그대를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다고 하지만 권력 앞에서 맹세나 약속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아아아!!! 새끼손가락 약속은 깨어지고.....하지만 카누니(입법자)의 호칭으로 불리는 술래이만이다. 대제는 맹세가 마음에 걸려 율법학자들과 상담도 했다고 한다. 상담의 결과는 맹세를 깨는 것에 대해 신에게 회개하는 의미로 모스크에 기부를 하라는 것.

 

 

록셀란도 이브라힘과 마찬가지로 노예출신이다. 흔히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부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전쟁 통에 포로로 잡혀 술탄의 하렘으로 보내진다. 기록에 의하면 록셀란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지만 우아했다.” 그녀는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명랑한 여인 즉 후렘이란 별명을 얻었다. 물론 록셀란의 초상화도 몇 점 남아있다. 이스탄불 여행 중에 여러 박물관의 기념품 샵에서 록셀란의 초상화가 커다랗게 인쇄된, 지금은 망해버린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화유산’ 크기 만한 도서를 여러 권 본 적이 있다. 책 이야기를 하니 지금와서 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 거대하고 멋진 장정의 록셀란의 이야기 책이나 이슬람 보물에 관한 책이나 박물관에 관한 책을 한 권도 못 산 것이다. 물론 작은 크기의 책은 몇 권 사긴 샀지만.

 

 

록셀란이 술레이만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하렘에는 대제의 총애를 받아 무스타파라는 아들까지 낳은 마히데브란(혹은 귈바하르)이라는 여성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록셀란은 하렘 내의 암투에서 승리하여 대제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술레이만은 하렘의 여인들과 결혼하지 않는 오스만의 전통을 무시하고 록셀란과 정식으로 혼인을 한다. 명랑한 여인은 노예의 신분에서 황후가 된 것이다. 록셀란은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궁중 암투에 뛰어들면서 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먼저 대제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이브라힘 대재상을 암살하는데 개입한다. 물론 재상 본인의 잘못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록셀란과 재상의 독주를 시기하는 세력들의 영향이 결국 제상을 파멸로 몰았다. 더구나 재상은 대제의 장자인 무스타파를 지지하고 있었다. 록셀란은 또한 인품과 능력이 뛰어났던 무스타파를 음모로 엮어 반역죄로 처형하는데도 깊이 관여한다.

 

록셀란은 5남 1녀를 두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일찍 죽었다. 또 이복형인 무스타파를 몹시 따랐던 막내 지한기르는 무스타파가 죽자 상심하여 앓다가 죽었다. 또 다른 아들들인 셀림과 바예지드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서로 각축하다 결국 바예지드는 처형되고 셀림이 다음 술탄으로 등극한다. 셀림은 술주정뱅이였다고 한다. 록셀란은 1558년에 죽어서 다행히도 아들 바예지드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또 다른 아들 셀림이 술탄으로 즉위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록셀란 이후로 하렘의 여인들이 술탄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각축하는 궁중 암투가 본격화되어 결국은 제국이 쇠퇴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록셀란은 오랫동안 제국을 망친 악녀 혹은 팜므파탈로 여겨졌지만 현대에 와서 재평가 되고 있다. 술탄의 노예로 머물러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여 성공을 이룬 진취적인 여성으로 말이다. 우크라이나에는 록셀란의 동상도 있다.

 

자료를 찾다보니 “무흐테솀 유즈이을”이라는 터키 TV드라마가 있다. 2011 ~ 2014년까지 터키 STAR TV 에서 방영했던 사극인데 무려 139부작이라고 한다. “무스테솀 유즈이을”은 터키어로 “위대한 세기”를 뜻한다. 술레이만 대제와 황후였던 록셀란의 이야기다. 미드처럼 시즌별로 나누어 방영했는데, 오스만 제국 시대의 궁정과 하렘을 화려하게 재현한 영상미와 하렘 여인들의 암투를 흥미진진하게 극화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아,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각국으로 수출되어 거의 한류 비슷한 터키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리스와 거의 원수지간인 그리스에서도 드라마 방영후 터키어 학습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포스터 중 하나다. 중앙은 슐레이만 대제, 왼쪽이 휴렘 술탄(록셀란)이고, 왼쪽 아래는 알바니아 귀족 출신의 마히데브란으로 슐레이만이 록셀란을 만나기 전에 총애했던 하렘의 여인이다. 슐레이만의 장자 무스타파를 낳았다. 대제의 오른쪽은 아마도 대제의 어머니인듯하다.(아닌것 같기도 하다.) 뒷줄 왼쪽은 대제의 여동생인 하티제 술탄으로 후에 이브라힘과 결혼한다. 하티제 술탄은 이브라힘이 처형되고 2년도 안되어 죽었는데, 남편의 죽음에 상심하여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그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

 

하티제의 오른쪽은 이브라힘 파샤다. 노예 출신으로 대제의 시동이자 친구이자 동지로 초고속 승진을 하여 약관의 나이에 제국의 대재상이 되지만 결국 록셀란과 재상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획책으로 암살된다. 이브라힘의 옆은 아마도 마히데브란의 아들인 무스타파인 것 같다. 슐레이만의 장자다. 총명하고 인품도 뛰어나 유력한 후계자였으나 자신의 아들을 술탄으로 만들려는 록셀란의 음모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된다. 그 옆은 아마도 록셀란의 아들인 셀림 황자인 것 같다(짐작이다.) 나중에 대제의 뒤를 이어 술탄으로 즉위한다. 셀림2세다. 설명이 맞는지 모르겠다.

 

 

 

 

 

 

 

 

 

 

 

찾다보니 또 이와 관련된 만화도 나오고 있다. 시노하라 치에의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이라는 만화다. 여기서는 록셀란이 이브라힘을 연모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 같다. 만화에서는 삼인의 관계가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3권까지 일본에서는 6권까지 출간된 모양이다. 이 만화가 언제 처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작가가 터키 드라마를 보고 작품을 구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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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0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붉은돼지님이 글 쓰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터키’ 마니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붉은돼지 2015-09-03 10: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cyrus님 ㅎㅎㅎㅎ 마니아 분야에 터키나 이스탄불 같은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마니아를 찾아보니 제가 이슬람/중동/이스라엘 분야에 2위로 되어있더군요..깜짝놀랐습니다. ^^

보슬비 2015-09-05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cyrus님 말씀에 100% 공감입니다.~~ ^^
그런데 이슬람/중동/이스라엘 1위가 아닌 2위라니요.. 곧 1위 등극하실겁니다. ㅎㅎ

붉은돼지 2015-09-06 13: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상냥하신 보슬비님~
100%라니요 80%만 하셔도 감지덕지에요 ㅎㅎㅎㅎ

무불통지 2024-04-2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설명은 안 하는 게 나았습니다. 인물의 설명이 거의 다 맞지 않습니다.
 

 

 

 

 

 

 

 

 

 

 

 

 

일요일 <로마의 일인자> 2권을 읽었다1권에서는 카이사르(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카이사르의 할아버지)가 딸 율리아에게 마리우스를 소개시켜주는 장면에서 18(17살인가?) 율리아가 40대의 마리우스를 보고는 첫 눈에 똭!!! 반했다는데서...아아아아!!! 저럴수도 있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2권에서는 당시 로마의 헬레네라고 불릴 정도의 절대미모였던 아우렐리아가 37명(38명인가??)의 쟁쟁한 구혼자들을 뿌리치고 외삼촌 루푸스(맞나????)가 소개팅을 시켜준, 인물말고는 크게 내세울 것이 없는 카이사르(이 카이사르는 우리가 아는 카이사르의 아버지다.)를 보고는 역시 첫눈에 똭!!! 반했다는 데서...아아아아아아!!!! 이럴수도 있나 하는 생각을 또 했다. 소생이 이런저런 쓸데없는 궁리를 해본들...작가가 그렇다고 하는데야 뭐 별 수 없는 일이고,...또 사실 누가 봤나?? 누가 들었나??? 어차피 알 수 없는 일, 그럴 수도 있지.......하는 생각도 든다. 둔감한 소생이 첫눈에 똭!!!’하는.... 그런 운명적 사랑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맞다..맞아.....그런 거 같다. 그렇다고 그게 어디 체험장에서 가서 돈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또 지금와서 이 나이에 그걸 경험해 보고 싶지도 않다. 평지풍파없이 편안하게 그냥 맛있는 거나 실컷 먹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돼지 한 마리...ㅜㅜ

 

각설해야할 것 같다. 연애사는 모르겠고.....전쟁 이야기는 재미있다. 로마의 일인자를 읽는데 가장 큰 애로는 역시 로마 사람의 이름이다. 로마인이야기도 읽고 로마에 관한 이런저런 책들도 한 두권 읽고 해서 나도 나름 로마는 좀 아는데 하는 가당찮은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깜시나 천부당만부당 아니아니고......무슨 놈의 이름이....이름이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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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31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혹 아들의 이름이 아버지나 조상의 이름과 똑같은 경우가 있어서 구분 잘 해야 돼요.

붉은돼지 2015-08-31 23:16   좋아요 0 | URL
맞아요...이름 때문에 헷갈려서 돌아가실 것 같아요ㅎㅎ
도쿠가와 이에야스 첨 읽을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moonnight 2015-08-31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요. 첫눈에 똭!!! 같은 무서운 일은 당하고 싶지 않아요-_-;;;;
살까말까 했는데 붉은돼지님 덕분에 읽는 걸로 결론. ^^

붉은돼지 2015-08-31 23:19   좋아요 0 | URL
첫 눈에 똭!!!
이거 한번 해봐야 하는데 말이죵~~
뭐 지금은 늦었지만 착한 일 많이 해서 다시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한번 해봐야죠ㅋㅋ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ㅋㅋ

transient-guest 2015-09-01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해놓고 시작하지는 않았는데요, 와우...도쿠가와 이에야스 급의 이름트릭이라니요..ㅎㅎㅎ 기대반 우려반입니다.

붉은돼지 2015-09-01 09:12   좋아요 0 | URL
도쿠가와 처음 읽을 때 사람 이름때문에 많이 헷갈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ㅎㅎㅎ
센코쿠 시대 일본 무장들은 직위가 올라가거나 하면 이름이 또 바뀌잖아요...
그래도 워낙 장편이다 보니 어느듯 적응이 되더라구요...

수이 2015-09-01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일본 대하소설이랑 로마 이야기는 이름이 너무 헷갈려서 읽다가 자꾸 덮고 덮어요 ㅠㅠ 무식이 통통;;;;

붉은돼지 2015-09-03 10:18   좋아요 0 | URL
맞아요...일본, 로마, 러시아는 이름 헷갈리는 3대국이에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