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컨대, 소생은 운동을 못하고 가무도 형편없다. 잡기에 무능하다. 뭐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것이 없다. 술은 겨우 조금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운동은 보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래 야구장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놀랍죠? 딸을 낳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방도 안간다. 어쩔 수없이 가게 되더라도 노래는 절대 안부른다. 마이크 잡을 사람은 많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보니 하루키도 노래방가는 것은 질색이라고 한다. 정말 적지않은 위안을 얻었다. ‘그럼, 당신은 도대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세요?’ 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그렇건 말건 답은 대충 이렇다. 소생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이런저런 잡동사니 모으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각종 라벨(맥주가 메인이고 기타 와인, 양주, 사케, 소주 등 세상의 모든 주류를 취급합니다.), 맥주 병뚜껑, 프라모델, 영화전단지, 스노우볼 등등을 모은다. 아내는 쓸데없는 짓도 되우한다고 흥흥흥 콧방귀를 뀌며 소생의 취미를 비웃지만 그래도 소생에게는 보물같은 것들이다. 라벨 수집을 위해 가끔 아파트 단지내 쓰레기장의 공병 수집함을 뒤지기도 한다. 좀 부끄럽네요 호호호...

 

 

 

 

 

 

 

 

 

 

 

 

 

이런 꼴로 사십 년 넘게 살다보니 뭐 좀 못하는 것이 있어도 별로 답답한 것은 없다. 하지만 한번씩 아쉽고 또 부러울 때가 있긴 하다. 축구를 보면 골을 넣은 선수가 느끼는 그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기쁨, 그 터져나오는 환희의 감정을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 가요방에서 친구나 직장동료들이 시원하게 내지르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볼 때면 ‘아! 나도 저렇게 한번 불러봤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소생이 죽었다가 다시 깨어날 수는 있어도 축구를 잘하거나 노래를 잘 부를 일은 결코 없다. 몸치에 음치, 양치는 나의 운명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소생은 그 대신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을 택했다. 비록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독서의 즐거움은 운동의 그것에 못지않다.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즐거움도 가무의 즐거움에 결고 뒤지지 않는다. 내 새끼들이 하나하나 늘어갈 때의 그 기쁨, 내 새끼들을 한 곳에 불러모아 놓고 바라보는 그 흐뭇함. 뭐 내 뜻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한번 기어나온 세상, 살기는 살아야겠기에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부러워하면서 한숨만 쉬다가 한 세상 허송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렴!

 

각설하고, 이스탄불에 대하여 이것저것 시시콜콜 조사하다 보니 “이스탄불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신화나 전설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다름아니옵고 바로 축구 이야기였다. 모세의 짝대기질 한방에 홍해의 바닷물이 둘로 똑 따갈라지는 그런 기적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적이 일어난 때는 2005년 5월 25일. 장소는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 AC밀란 대 리버풀의 2004/2005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유럽챔피언스리그의 공식 명칭은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로 유럽축구연맹이 주관하는 클럽축구 대항전이다. 클럽축구라고 뭐 동네 축구가 아니고 이른바 별들의 전쟁이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클럽들과 기라성같은 선수들, 놀랍고 경이로운 이야기들이 무수하고 수다한 꿈의 리그다.

 

 

 

 

 

 

 

 

 

 

 

 

 

이스탄불에 있는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은 터키의 하계올림픽 개최를 대비해서 지어졌는데 2002년도에 개장했다. 2004년도에 UEFA 5성급 경기장으로 선정되어 UEFA 주요대회의 결승전을 치를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터키는 2000년부터 5번에 걸쳐 올림픽 개최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올림픽위원회야 나름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개최지를 선정했겠지만 이스탄불같은 도시를 한번도 선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뭐가 좀 잘못된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2013년도에도 IOC는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동경을 선정했다. 동경은 1964년 대회 이후 두 번째다. 이로써 일본은 동계 2번 하계 2번 총 4번의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가 될 전망이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이슬람국가에서 올림픽이 열린 적은 한번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이 무색하다.

 

그럼 다시 기적이야기로 돌아가서, 당시 AC밀란은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선수들의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반면 리버풀은 일부 주전들의 부상으로 약체로 평가받고 있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진행되어 전반 1분만에 피를로의 프리킥을 말디니가 헤딩슛으로 연결했다. 전반전에 리버풀은 3골을 허용했다. AC밀란 3-0 리버풀.

 

전반전이 끝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라커룸으로 들어온 리버풀 선수들에게 감독 베니테즈는 대충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고 한다. “머리를 떨구지 마라. 머리를 높게 들어라. 우리는 리버풀이고 우리는 리버풀을 위해서 뛴다. 만약 우리가 찬스를 만든다면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할 수 있다. 영웅이 될 기회를 잡아라.”

 

감독의 격려 덕분인지 리버풀은 후반 8분에 제라드가, 10분에는 스미체르가, 15분에는 알론소가 각각 골을 넣었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후 양팀은 연장전으로 갔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 AC밀란은 피를로 등 3명의 키커가 승부차기에 실패. 게임은 3-2로 리버풀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승부란 냉혹한 것이어서 한쪽에게 기적은 다른 쪽에게는 악몽이 된다. 당시 AC밀란의 미드필더였던 안드레아 피를로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스탄불 경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고문같은 경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드레싱룸에 얼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우리는 말도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파괴해버렸다. 그 상처는 처음부터 명백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냉혹해지고 심각해 졌다. 불면증, 분노, 우울증, 공허함. 우리는 여러 가지 증상을 가진 새로운 질병을 발명해낸 것이다. 바로 이스탄불 신드롬이라는.”

 

승부란 한편으론 돌고 도는 것이기도 해서 그로부터 2년후인 2006/2007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AC밀란과 리버풀은 아테네에서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피를로의 AC밀란이 리버풀에 2-1로 승리했다. 하지만 피를로에게 이스탄불의 얼룩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피를로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도 이스탄불의 경험으로부터 뭔가 교훈적이고 우아한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으나 이 말 이외에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씨발“

 

소생이 축구에 대해 이만큼이나 알게되고 이렇게나 많이 지껄이게 된 것은 예전같으면 꿈에서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대사건이고 죽었다  깨어난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소생에게는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모두가 이스탄불 덕분이다. 땡큐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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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플 기능이 페이스북처럼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었다면 댓글에 ‘이스탄불의 기적’ 동영상을 띄워 주고 싶어요. 리버풀의 패색이 짙을 때 리버풀 공식 응원가 ‘You will never walk alone’를 부르는 팬들을 촬영한 건데 정말 소름 돋습니다. 후반전에 리버풀이 골을 몰아서 넣는 모습을 보면 이때가 리버풀에게 최고의 경기였고, 챔스 우승이 최고의 시절이였죠.

붉은돼지 2015-06-19 10:02   좋아요 0 | URL
맞아요..동영상으로 봐야 실감이 나는데요....동영상도 여러가지가 있더군요...한편의 드라마로 짧게 특별히 편집한 것도 있고, 레고로 만든 이스탄불의 기적도 있더라구요..ㅎㅎㅎㅎ

만병통치약 2015-06-1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TRL C ->CTRL V 앞 부분을 보고 제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ㅋㅋㅋㅋ 그래도 전 초등학교때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야구대회에 한번 데려가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프로야구는 가본적이 없군요. ㅠㅠ

붉은돼지 2015-06-19 10:05   좋아요 0 | URL
동지가 계셨군요..ㅎㅎㅎㅎ
저는 군대에 있을 때 축구하기 싫어 거의 탈영할 뻔 했는데....

헛발질 몇 번 하니 그후론 빼주더라구요...완전 열외,,,,축구 고문관으로 낙인 ㅠㅠ
물론 헛발질로 골대 근처에서 거의 30분정도 원산폭격하고 있었음다. ㅠㅠ

느린산책 2015-06-19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제가 젤로 좋아라하는 선수가 피를로 제라드인지라 재밌게 읽었네요. 요즘 유명 축구선수의 자서전 출간이 붐인거 같아요. 얼마전 나온 리오 퍼디난드 자서전도 엄청 재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당~

붉은돼지 2015-06-19 10:08   좋아요 0 | URL
저는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피를로 자서전을 읽어보니 나름 재미있더라구요^^
거기에 또 새로운 세상이 있더군요....
앞으로 축구에 관심을 좀 가져볼까 합니다.~~

붉은돼지 2015-06-19 10:22   좋아요 0 | URL
아! 그런데 피를로 자서전은 이탈리어판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영어번역본을 번역한 것이어서 그런지 약간 거시기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더 스크랩-1980년대를 추억하며>를 조금씩 읽고 있다. <더 스크랩>은 하루키가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이다. 넘버에서 하루키에게 <에스콰이어>,<뉴요커>,<피플>,<뉴욕>,<롤링스톤>,<뉴욕타임스> 같은 미국 잡지들을 왕창 보내주면 그중에 재미있을 법한 기사를 스크랩해서 일본어로 정리하여 쓴 글이다. 하루키도 “솔직히 말해 정말로 거져먹기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거나 말거나 읽어보면 “햐~ 이런 일도 있었군”하는 신기한 이야기들과, “이거 정말 맞나? 믿을 수가 없네”하는 솔깃한 이야기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고 있다. 한편 한편이 3쪽을 넘기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읽기 그만이다. 물론 이책은 작년에 사서 읽었던 책인데 다시봐도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다.

 

기억력 이야기하니 또 문득 생각나는데 사실 요즘 조금 걱정이다. 소생 기억력말이다. 얼마전에는 아동 후원해 주는 단체이고 한비야도 관여했던 무슨 월드가 갑자기 생각이 안나서,,,월드,월드,월드,,,, 무슨 월드는 월드인데..........무슨 월드더라......아아아아.... 롯데월드, 도투락월드 ㅋㅋㅋㅋㅋ 물론 아니겠고......쥬라기 월드,,,ㅎㅎ 이거 재미있겠던데 언능 봐야지,,,,,,,,,그럼, 위아더 월드.,,,,,,아니고......나중에는 미야베월드까지 생각했지만 끝내 기억해 내지 못했다. 끙! 자기 자신이 무척 한심해지더이다. 그날 저녁에 밥먹다가 문득 생각났다. 월드비젼!!! 아!! 월드가 뒤에 붙은 것이 아니고 앞에 있었구나!!!

 

각설하고 어제 저녁에는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더스크랩>을 펼쳐들고 읽다가.... 하아~~ 하는 한숨과 함께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쓸쓸해서 그만 눈물을 줄줄 흘릴뻔 했다. 물론 눈물을 짜지는 않았다. 어제 읽은 부분은 ‘최후의 나치 사냥꾼’(p125)이라는 부분인데 <베너티페어>라는 잡지에 실린 나치 전범사냥꾼 부부의 르포르타주 이야기다.

 

“세르주 클라르스펠드는 니스 출신의 유대계 프랑스인으로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대신해서 스스로 게슈타포의 손에 잡혀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을 맞았다. 아들 세르주는 그 복수에 일생을 걸었다. 한편 아내 베아테는 독일인이지만, 프랑스에 일하러 왔다가 세르주를 만나 그에게 나치의 유대인 사냥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모국이 저지른 죄를 갚기 위해 남편 못지 않는 열성적인 나치 헌터가 되었다.”

 

잘은 몰라도 아버지가 자신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랬을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짧은데 누군가를 증오하며 그 복수에 자신의 일생을 건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가슴속에 가득 차서 넘쳐흐르는 그 슬픔과 분노를 어찔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루키도 쓰고 있다. “이렇게 쓰면 무슨 그야말로 영웅담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전후 사십년 가까이 지나 늙어서 비틀거리는 나치 전범을 아직도 계속 쫓고 있는 사람들의 애절함과 허무함이 행간에 배어나는 담담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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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6-1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력 이야기 하시니 남일같지 않다고 느껴지네요ㅋㅂㅋ,
저는 요즘에 어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거나, 책 속에서 소개된 책을 가지고 있을땐 읽던 책을 잊어버리고 다른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라곤 해요

또는 집안일을 하다가 여기저기 일만 벌여놓고 마무리 되지 않은 흔적을 발견하게 될때 깊은 한숨과 나는 왜이럴까와 같은 생각을 자주한답니다 ㅋ

그래서 요즘 병아리콩(칙피)를 자주 먹고있어요~~치매 건방증에 좋다고해요ㅋㅋㅋ

붉은돼지 2015-06-15 10:57   좋아요 0 | URL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기도 한데요....예전에 안그랬는데 요즘 좀 그런 현상이 자주 나타나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ㅎㅎㅎㅎ

병아리콩이라는 게 있군요. 치매 건망증에 좋다니 한번 구해서 먹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근자 소생의 관심사인 ‘이스탄불’ 즉 ‘콘스탄티노플’의 설계자이자 건설자는 바로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콘스탄티누스 대제다. 얼마전에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소설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류상태가 지은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이 된 사나이>다. 이 소설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죄없는 처자식을 죽인 냉혹한 인간 아니 괴물로 묘사된다. 류상태는 대광고의 교목이었는데 2004년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으로 목사증을 반납하고 학교를 떠났던 인물이다. 소설가가 아니어서 소설은 상당히 거칠고 내용 전개에도 무리가 많다. 지금의 기독교가 예수의 종교가 아닌 바울의 종교라고 한다. 주장은 강하고 논리는 빈약하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한 권은 막스 갈로의 <콘스탄티누스의 선택>이다. 막스 갈로는 역사학자이며 소설가이자 유럽의회 의원을 지닌 정치가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알렉상드르 뒤마’라고 불리는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한다. 역시 콘스탄티누스가 유일한 권력을 위해 유일신 신앙인 그리스도교를 철저히 이용했다고 이야기한다. 갈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손에 묻은 골육의 피로 괴로워하고 또자신의 권력 유지와 제국의 안녕을 위해 끊임없이 고심하는 고독한 한 인간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고독한 법이고 절대 고독자의 속 마음을 알기는 또 절대적으로 어렵다. 소설은 재미있다.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연대기 1>.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2>,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13, 14> 등을 두루 살펴본 바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대충 이렇다

 

 

 

 

 

 

 

 

 

 

 

그리스도교와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빛나는 업적을 쌓은 대제의 가족사는 근친의 피로 더럽혀졌다. 콘스탄티누스는 310년 아내 파우스타의 아버지인 막시미아누스를 죽였다. 312년에는 아내의 오빠인 막센티우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325년에는 누이동생 콘스탄티아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매제인 리키니우스를 사형에 처했다. 어린 조카도 죽였다. 유혈의 절정은 326년 아들 크리스푸스와 아내 파우스타의 처형이다. 물론 이런 저런 이유는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권력 투쟁의 전장에서 어슬프게 인정을 베풀다 보면 그 인정에 자기 목숨이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그 유혈이 처자에 이르고 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어쨌든 자신의 손에 골육의 피를 묻힌 영혼이 온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두 번 결혼했다. 미천한 출신의 정실부인이었던 미네르비나는 크리스푸스라는 아들을 남기고 죽었다. 뒤이어 막시미나우스 황제의 딸인 파우스타와 결혼하여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우스, 콘스탄스라는 세아들과 두딸을 두었다. 크리스푸스는 17살에 부황제의 칭호를 받았다. 교양과 덕성을 겸비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신민들로부터 대중적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다. 324년 리키니우스와 비잔티움에서 벌인 결전에서 해군의 지휘를 맡아 27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크게 승리하여 아버지 콘스탄티누스의 경쟁자를 소탕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바도 있다. 젊은 황태자에게 쏟아진 대중적인 인기와 전국민적인 존경과 애정은 즉각적으로 아버지 황제의 주목을 끌었다. 아비는 아들의 충성심을 재확인하는 대신 잘못된 야심에서 비롯될지도 모를 해악을 미연에 방지하기로 결심했을 수도 있다.

 

크리스푸스는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집권 20주년 경축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는 와중에 황제의 명령으로 갑자기 체포되었다. 황태자는 엄중한 감시하에 폴라 요새로 압송되어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29세였다. 계모인 황후 파우스타와 간통했다는 패륜 혐의였다. 크리스푸스는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끝내 혐의를 부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 파우스타도 마구간 소속 노예와 간통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황후는 즉각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이 선고되었는데, 온도를 엄청나게 높인 목욕탕에서 증기에 의해 질식사했다고 한다. 이 존속 살해의 비극은 사건의 진상과 재판 과정, 처형 상황 등이 모두 깊은 어둠 속에 묻혀있다. 이 사건에 대한 콘스탄티누스의 태도는 침묵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러이러 해서 도저히 도리없었다는 둥의 합리화를 위한 시나리오 같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후세의 사가들과 호사가들은 온갖 구구한 억측과 망측한 상상을 하고 있다.

 

파우스타의 아들들이 점점 커가고 있고 아버지가 자신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푸스가 반란을 꾀하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미래 권력 주위에 응겨붙기 마련인 파리떼와도 같은 경솔하고 아첨을 일삼는 추종자들이 크리스푸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다가 밀고자에게 고발되었을 수도 있다. 파우스타는 콘스탄티누스와의 사이에 3남 2녀을 두고 있으나 전처의 소생인 크리스푸스가 너무 훌륭하게 장성하여 신민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자 자신과 자식들의 미래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크리스푸스를 중상 모략해서 죽게하고 결국 자신도 음모가 들통나서 죽게 되었을 수도 있다.

 

전해지는 바와 같이 불륜을 포함한 남녀간의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당시 40전후의 나이로 추정되는 파우스타와 29세의 크리스푸스가 어쩌면 정말 그렇고 그런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파우스타가 젊고 아름다운 크리스푸스를 유혹하려다가 일이 여의치않게 되자 거꾸로 크리스푸스가 아버지의 아내인 자신을 범하려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질투심에 불타는 황제가 자신이 낳은 자식들의 가장 무서운 경쟁자인 황태자를 제거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해 줬을 수도 있다. 에드워드 기번이 추측한 것처럼 에우리피데스의 고대 비극 <히폴리토스>가 로마 황실에 재현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히폴리토스>의 내용을 소개해 본다. 히폴리토스는 아테네왕 테세우스와 아마존족 히폴리테의 아들이다. 테세우스는 말년에 아리아드네의 동생인 파이드라와 결혼하게 된다. 히폴리투스는 아마존의 아들답게 남녀사이의 사랑이라든지 결혼 같은 것을 하찮게 여기고 사냥을 즐기며 순결과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를 신봉하고 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예쁘게 볼리 만무하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히폴리토스를 저주한다. 파이드라는 의붓아들인 히폴리투스를 보자 첫눈에 반해버린다. 파이드라의 유모는 파이드라의 가슴속에 숨겨진 사랑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자살하려는 마음을 알고 히폴리토스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순결의 여신을 숭상하는 히폴리투스는 당연히 역겨움을 나타내며 천박하다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파이드라는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는 거짓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히폴리투스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버지 테세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아들에게 저주를 내려줄 것을 간청하면서 아들을 추방한다. 히폴리토스는 해안을 따라 전차를 몰고 가다가 바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에 놀란 말들이 마차를 부수고 주인을 이리저리 끌고 다녀 죽게한다. 테세우스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는 이야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이 허위 고발을 믿고 경솔하게 아들을 죽인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여 40일동안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상의 안락을 멀리하고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 크리스푸스의 황금조각상을 세우고 “내가 부당하게 처형한 나의 아들을 위하여”라는 비문을 새겨넣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파우스타가 어떤 식으로든 의붓아들인 크리스푸스의 죽음과 연관되었으리라는 추측에 관해서는 적어도 네 명의 고대 역사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노리치는 말하고 있다. 전처 소생과 후처 사이의 싸움은 왕권쟁탈전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망자들의 혼령을 불러낸다고 하더라도 비극의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기는 어려울는지도 모른다. 자식의 장래에 대한 파우스타의 불안감과 크리스푸스 주위의 파리떼들과 황태자에 대한 황제의 질투심, 누구의 범접도 허용하지 않은 황제의 권력의지 뭐 이런 것들이 뒤엉켜 상호 복잡하고 오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년간 제국을 통치한 뒤 337년 5월 22일 성령 강림절 정오에 니코메디아에서 숨을 거두었다. 죽기직전에 대제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동안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악행을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세례를 통해 순식간에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리스도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볼때는 참 편한 방법이다. 나쁜 짓을 많이 해도 회계하면 끝. 그 죄는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아비의 손에 묻은 아들의 피가 과연 세례의 물로 씻길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누스를 언급할 때마다 12사도에 준하는 분이라는 명칭을 받드시 붙였다. 불경한 점이 없지 않으나 복음을 전파한 범위와 수로 본다면 12사도에 필적할 것이다. 더구나 황제는 수많은 교인들을 그 참혹한 고문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었다.

 

대제의 죽음으로 골육상쟁도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으련만 권력이 있는 곳에는 유혈도 대를 이어 계승되기 마련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자 가장 먼저 궁정을 장악한 대제의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는 두명의 숙부 율리우스 콘스탄티누스와 달마티우스, 일곱 명의 사촌, 부황의 매제 2명 등의 황족들을 학살했다. 남자 황족 중 살아남은 사람은 콘스탄티우스를 포함한 파우스타의 세 아들을 제외하고는 율리우스 콘스탄티누스(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복동생)의 어린 두 아들 갈루스와 율리아누스 뿐이었다. 337년. 콘스탄티우스 19세였다. 학살이 있은 후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우스, 콘스탄스 삼형제가 삼등분 했지만 영토 분할에 불만을 품은 맏이 콘스탄티누스가 막내 콘스탄스를 공격했다가 오히려 패배해 살해되었다. 340년. 콘스탄티누스 23세였다. 그로부터 10여년후 제국의 서방을 담당하고 있던 콘스탄스는 부하 장수의 반란으로 살해당한다. 350년. 콘스탄스 30세.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제국을 일통하고 일인자가 된 콘스탄티우스는 제국의 방위를 위해 어쩔수 없이 자신이 죽인 숙부의 아들 갈루스를 부황제로 임명한다. 갈루스는 실정을 거듭하다가 결국 얼마전에 크리스푸스가 처형되어 유명해진 폴라 요새로 호송되어 극심한 고문 끝에 황제 살해 음모를 자백하고 참수된다. 354년. 갈루스 29세였다. 그런데 콘스탄티우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355년 황제는 고심 끝에 갈루스의 동생인 율리아누스를 부황제로 임명한다. 361년 콘스탄티우스가 병사하자 율리아누스는 로마제국 유일의 최고권력자가 된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가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남자 혈육이자 후세에 배교자로 불리게 되는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배교였지만 율리아누스의 입장에서는 제국의 오랜 전통으로의 복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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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5-06-1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넘 재밌어요. 막장 드라마에 환장하는지라..ㅎㅎ 역사, 연대기엔 많이 약하지만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붉은돼지 2015-06-14 09:40   좋아요 0 | URL
역사책을 보다 보면 정말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사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북다이제스터 2015-06-1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생 한번 터키 가볼수 있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알수록 신기한 나라입니다. ^^

붉은돼지 2015-06-14 09:42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터키에 대해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역시 뭘 좀 알고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가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김훈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한 애착을 갖고 책들을 쌓아놓거나 분류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책은 자료나 사전, 일종의 일을 하기 위한 도구에요.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나 삽, 플래시 그런 것이듯 이 방에는 나의 도구들이 있어요.”, “저는 각종 언어 영어, 독일어, 한문, 국어사전과 우리나라의 여러 법전을 가지고 있지요. 한문 사전을 주로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여가가 있을 때는 한자의 글자를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쓰려면 외국어, 특히 한문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전은 이해가 가는데 법전은 어디에 써먹는지 자뭇 궁금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김훈의 서재에는 단국대에서 나온 <한한대사전>도 보인다. 몇십년간 <이규태 코너>를 쓴 이규태나 요즘 조선일보에 <세설신어(世設新語)>를 쓰고 있는 정민같은 분들을 보면 정말 도구로서의 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고한 이규태는 월급의 1/3을 도서구입비로 지출했다고 한다.) 가끔 인터넷으로 정민의 세설신어를 보는데 현 세태에 딱 맞아떨어지는 옛일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내어 한편의 깔끔한 칼럼을 완성해 내는지 그 솜씨가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나만은 요즘 들어서는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뭐 뼈에 사무칠 그런 정도는 아니고... 공부는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릴 때 억지로라도 공부를 많이 시켜야 된다는 그런 주의는 당연 아니다. 소생도 소생의 어린 여식에게 공부를 강요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소생이 중학교 다닐 때 방학만 되면 아버지의 강권에 어쩔수 없이 향교에 다니면서 한문을 배웠다. 머리 허연 할아버지들 틈에 끼여 아침마다 맹자며, 논어며, 고문진보며 이런 것들을 배웠다. 할배들로부터 어린 넘이 참 기특하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향교 수업은 아마 아침 7시~8시까지 였던 것 같다. 7시까지 향교에 가려면 집에서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 한없이 달달한 꿀잠을 원없이 잘 수 있는 방학인데, 그 피같은 꿀잠을 포기하고 새벽마다 향교에 다니려니 정말 곧 죽을 지경이었다. 배우는 한문이 중학생에게는 어려운 수준이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니 공부가 잘 될리 없다. 그래도 그때 주워 들은 공력으로도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한문 좀 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허!

 

고등학교 진학하고는 향교에는 안다녔는데 역시 어릴 때 배운 게 무서운지 나중에 대학졸업 즈음에 취직준비를 할 때 갑자기 한문공부가 하고 싶어져서 취업 준비하면서 틈틈이 <논어집주>를 각주까지 한글자도 빠트리지 않고 완독한 적이 있다. 한 1년 걸렸던 것 같다. 논어 완독이 취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지만 심적 안정에 보탬이 되었는지 어쨌든 취업이 되었고, 직장에 다니고 부터는 다시 한문과는 영영 빠이빠이가 되었다.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쉬지않고 한문 공부를 했더라면 지금쯤은 집구석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문집들도 무슨 글하는 선비마냥 술술술 읽고 했을텐데... 하는 헛된 생각을 해본다. 해본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오늘 <곁에 두는 세계사>,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 – 정재 류치명의 삶과 학문>을 구입했다.  <곁에 두는 세계사>는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구와 같은 책이다. 소생이 뭐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취미로 서재질을 해도 나름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 관련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잘 정리된 연표가 있었으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던 차이다. 가격이 좀 나가지만 차일피일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 김훈의 말마따나 도구라고 하면 역시 사전이 그중 으뜸이다. 소생 필생의 과업이 또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단국대학교에서 나온 <한한대사전>을 완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4권을 구입했다. 본편 1권, 2권, 3권과 색인 1권이다. 권당 10만원이다. 억소리 난다. 색인도 5만원이다. 색인포함 총 16권이다. 155만원. 허허허. 그만큼의 소용이 있을지는 역시 미지수다.

 

 

 

 

 

 

 

 

 

 

 

 

 

 

알라딘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퇴계학파 인물시리즈라는 책이 무려 15권이나 나온 것을 알았다. 한문이나 한학에 대한 향수가 밀려와 그중 하나를 구입했다. 그것이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 – 정재 류치명의 삶과 학문>이다.

 

 

 

 

 

 

 

 

 

 

 

 

 

 

소설가 이인화의 본명은 류철균이다. 논란이 되었던 2000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시인의 별>을 보면 나의 문학적 자서전에 물의 골짜기 어쩌고 하는 작가의 고향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물의 골짜기란 한자로 수곡(水谷)이고 물의 마을이란 한글로 무실이다. 이인화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선대의 고향은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의 무실마을이다. 임하댐 건설로 마을은 이미 오래전에 수몰되었다. 물속으로 사라진 물의 마을 무실. 고택들은 뜯어서 구미 해평으로 옮겼다. 이인화는 전주류씨 수곡파이고 퇴계의 학통을 이은 영남학파의 거두 정재 류치명은 이인화의 직계조상이 된다.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에도 류치명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인몽의 아내가 도망친 곳이 류치명의 집이고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부사영감도 류치명이다.

 

 

 

 

 

 

 

 

 

 

 

 

 

 

양반이라고 하면 당파싸움으로 나라 말아먹은 추물 취급을 하고 영남학파니 안동이니 하면 무턱대고 보수 꼴통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것 같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떠나 조선이 500년을 버틴 것은 성리학을 한 양반사대부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사들이 전국에서 제일 많은 지방도 단연 안동이다. 소위 빨갱이가 되어 월북한 인사들도 많았다. 이문열의 아버지는 안동사람은 아니지만 (이인화의 고향 무실에서 산봉우리 하나 넘으면 바로 영양 석보다.) 역시 공산주의자로 전쟁 중에 월북했다. 처자식 버리고 떠나는 심사가 오죽했으리오마는 빨갱이 새끼로 낙인찍힌 이문열과 그 가족들은 혹독한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이문열의 소설 <영웅시대>는 그 비극적인 가족사의 기록이다.

 

 

 

 

 

 

 

 

 

 

 

 

 

 

 

이문열은 영양 석보의 재령 이씨다. 이문열의 조상인 갈암 이현일은 영남학파의 학통을 이은 큰 선비다. 영남학파의 학통은 퇴계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에서 경당 장흥효, 갈암 이현일 등등을 거쳐 정재 류치명에 이른다. 영남학파는 학문적으로는 퇴계의 학문을 계승했고 정치적으로는 남인이었다. 영남 남인들은 영정조이후로는 정권에서 완전 소외된다. 그 소외에 대한 반동이 항일 구국운동으로 분출되었을 지도 모른다. 또 정권에의 소외가 학문적 성취에 대한 집착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권력 투쟁에서 완전 퇴출로 상처입은 자존심은 비록 누추한 지방에 거처하지만 심오한 학문에 매진하고 있다는 학같이 고고하고 꼬장한 선비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자신들은 권력을 놓고 승냥이처럼 서로 물어뜯고 이전투구하는 탐관오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니 어쩌면 학문에 매진하는 척하면서도 항상 중앙정계로의 복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한낱 포말로 스러진 영남남인들의 정치적 야망에 대한 진혼곡이자 자기연민의 애가에 다름아닌 것이다.

 

 

추신 1.

김훈 관련 자료를 찾으려고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를 검색했더니 지식인의 서재가 업데이트 되었다. 한분이 추가되었다. 금회 인터뷰어는 천병희다. 천병희의 서재도 김훈의 서재와 비슷한 맥락이다. 천병희 편의 타이틀은 “천병희의 서재는 작업장이다.”이고, 김훈 편의 타이틀은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이다. 지식인들이 추천하는 내 인생의 책들은 주요 관심사항이어서 목록을 꼼꼼이 체크하며 본다. 여기서 소생은 귀중한 책을 처음 접하기도 하고 지식인의 소개로 재발견하게되는 반가운 책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번 천병희의 추천도서는 반 이상이 본인의 번역서들이어서 약간 실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천병희 선생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제외하고 과연 무슨 책을 추천할 수 있겠는가.

 

 

추신 2.

오늘 두권을 주문하니 오만원이 넘었다. 짜잔... 드디어 복불복 도전의 기회가 다시 왔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전에 삼세번 어쩌고 하면서 세 번만 하고 그만한다고 했는데 오늘까지 포함해서 다섯 번도 넘은 것 같다. 당근 당첨된 적은 없다. 오늘은 간도 크게 5만 마일리지에 도전했다. 역시 꽝이다. 소심한 넘이 대범한 척 할려니 뭐가 잘 안되고 속이 쓰리다. 간이 자꾸만 땡땡 부어오르는지 불뚝 오기가 생길려고 한다. 깜량을 모르고 쓸데없이 오기부리면 끝이 안좋은데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새 발이 질퍽한 늪속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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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6-05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외구매라서 이런 저런 혜택은 거의 못 누리고 삽니다만.ㅎㅎ 그나저나 붉은돼지님도 참 대단한 책사랑을 보여주시네요.ㅎ 한학교육을 받은 부분은 부럽기 그지없구요. 아직도 한자를 좀 알았으면 하는 맘이 간절한데, 이젠 어렵네요.

붉은돼지 2015-06-05 10:20   좋아요 0 | URL
한자 공부는 지금부터 하셔도 될 듯합니다. 뭐, 공부는 평생..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죠 ^^
해외구매에는 복불복 이런 게 없는 모양입니다. 안타깝습니다요..ㅎㅎㅎㅎ
저는 언젠가는 고액마일리지에 꼭 당첨될 것만 같아요..ㅋㅋㅋ

[그장소] 2015-07-1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옥편놓고 사전놓고 말뿌리 찾다 하루가 온통 가는 날들이 있곤하는데,저는 있는 것도 소화 못하는 주제라 이런 책 덥썩 사는 분 서재는 어떨까..마구 궁금과 부러움이...^^ 도전하신 것에 응답이 꼭 있으시길 응원놓고 갑니다!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 새워 읽었어요^^

제가 비록 조모에게는 언감생심 미치지 못하지만,
한마리 돼지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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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5-29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ni 2015-05-29 19:44   좋아요 1 | URL
저도 조만간 읽을예정입니다 ^^*

붉은돼지 2015-05-29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생이 일필휘지로 써갈긴 상기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좋아요를 누르니
˝자신의 글은 좋아요 할수 없어요˝ 라고 뜨네요.^^
아 자신이 자신의 글을 좋아하지 못하면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