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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위로 앉은 위로 ㅣ 모해시선 1
윤미경 지음 / 모해출판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의자 위로 앉은 위로

어제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현관에서부터 아이가 퀴즈를 맞춰야 들어올 수 있다면서 다짜고짜 “다리가 4개인데 못 걷는 것은?”이라길래 주저없이 “의자” 라고 답했고 김이 샌 듯(틀려줘야 하는데) 정답이라고 대답했다.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의자에 앉아 있다. 시집의 제목 또한 ‘의자’ 가 등장하는데 난 의자라는 소재보다 ‘위로’ 라는 단어가 라임에 맞게 2군데 들어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시집답게 짧은(혹은 약간 긴)단어 위주로 줄줄이 적혀있는 목차를 훑어본다. 눈에 띄는 제목을 발췌하여 접어놓는다. <원고, 최후 진술하세요>, <의자 위로 앉은 위로>, <소라이 미치미치 개미 똥구녁>, <미취학 어른이>, <지랄의 총량> 과 같은 시 말이다.
어릴 적 동네에서 아이들과 해질녘까지 놀던 아스라이 노을이 지는 풍경이 눈에 그려진다. ‘동네마다 놀이를 시작하는 마법 주문이 모두 다르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고 깔깔깔 거렸지’ 라는 시구를 보곤 피식 웃었다. 아이가 요즘 가위바위보를 하자면서 ‘가위바위보슬보슬개똥구멍멍이가노래를한다람쥐가노래를한다’를 무한 반복한다. 이것도 노래를 한다는 ‘어미’ 말고도 오줌을 싼다, 춤을 춘다, 알밤을 깐다 등 다양한 동네별 버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 말장난 혹은 개미 똥꾸녁에 진심이었던 가시네들은 모두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나는 단골 여보, 그 머시매는 누구의 여보가 됐을지 나도 궁금하다. 여행스케치의 ‘산다는 건’ 이 기억나는 순간이다.
시인이 관찰하는 일상이 날 감탄시키는 시어로 탄생하여 감동을 주는 이유로 나는 시집을 감사하며 읽는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의자 위로 앉은 위로>라는 시는 두꺼비의 호흡을 빌어 숨을 쉰다는 표현이나 그제를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어제와 똑같은 오늘, 다람쥐처럼 하루를 돌면 쥐꼬리로 환산되는 복붙의 나날들이라는 시구에 감탄했다. 이런 시구는 필사를 해두리라 다짐한다.
나도 자녀를 키우기에 <지랄의 총량>에도 무한한 동질감을 느꼈다. ‘지랄은 자기 복제가 무한해서’, ‘나는 네가 떨어뜨린 지랄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는 번번이 탈이 났지’, ‘내 어린 탕자가 벨을 눌렀을 때 맨발로 나가 맞았지’ 라는 시구에선 눈물이 날 뻔했다. ‘욕조 가득 물을 받아 주었지 식탁에 따뜻한 밥 한그릇 올려두었지’ 라고 끝나는 시는 내가 어미임을 잊지 않게 해주었고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게 해주었다.
이정록 시인이 이 시집을 두고 ‘문장 사이 비좁은 숲길로 거친 짐승이 내달린다’ 고 표현했는데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