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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유배지에서 꿈을 쓰다 - 정약용과 정약전의 실학 이야기 ㅣ 토토 역사 속의 만남
우현옥 지음, 김세현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감수 / 토토북 / 2019년 7월
평점 :
형제, 유배지에서 꿈을 쓰다
이 책은 오랫동안 어린이책 기획자로 일하신 동화작가 우현옥님의 글과, 우리 조상들의 삶과 정신을 그림 속에 담아 전하고 싶은 동양화가 김세현님의 그림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유명한 실학자인 정약용의 일대기는 그의 저서를 통해 어느 정도 알았지만 그분의 형 정약전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학창 시절 ‘자산어보’ 의 저자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정약용의 학문적인 깊이와 방대한 저서는 늘 둘째형이었던 정약전의 조언과 연구가 함께 있었습니다. 늘 동생의 뒤에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정약전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 알려지길 바랐다는 작가님의 의도가 형제 이야기를 통해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물가에서 다리가 잘린 게를 본 약용은 그 게를 들고 형 약전에게로 달려가 보여주었습니다. 형은 “전에 보니까 어떤 게들은 다리가 잘려도 새로 나더라.” 며 물웅덩이를 함께 파고 그 게를 넣어주었지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던 게를 보고 “죽었나?” 하며 의아해하는 약용에게 “나뭇가지에 새순 올라오듯 새살이 올라올 거야.”며 안심시켜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약전은 틈만 나면 손으로 뚝딱뚝딱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두 살씩 터울지는 형제들이 모여 앉은 모습은 징검다리같이 다정했습니다. 형제의 시간은 갈수록 깊어지며 애틋해졌습니다.
약용이 천주교신자인건 알고 있었지만 종교로 먼저 받아들인 건 약전이었습니다. 그는 천주교의 평등사상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는데 큰 감동을 받았죠. 천주실의나 기하학원론을 읽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형을 보고 약용 또한 공부에 뒤질 리 없었습니다. 형제와 함께 천주교를 공부했던 김범우가 유배를 간 지 1년 만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서학을 엄히 다스리고 배척하는 시대였기에 약전 형제와 각별히 지내던 윤지충 마저 참수형을 당하자 충격을 받은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연히 천주학을 소개해 아버님마저 돌아가시자 약전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누구보다 형제를 아끼던 정조임금마저 세상을 떠난 1801년, 18년간의 형제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약전에 임금에게 사직을 고한 다음날 대사간에서 서학을 문제 삼아 약전의 이름을 포함하여 상소를 올렸지요. 사학을 하는 무리들을 모두 죽여 없애라는 대비의 명에 따라 형제들에게 국청이 시작되었고, 유배를 보내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약전은 신지도로, 약용은 장기현으로 귀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험한 매질을 견뎌냈을 약용을 보며 형 약전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약전과 약용이 이번에는 귀양 온지 열 달 만에 한양에 압송되었습니다. 황사영 백서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약현의 사위 황사영이 잡혀가자 그 배후에 형제가 있다고 의심받아 또 다시 국청이 시작되었지요. 황사영은 능지처참을, 어머니와 부인은 노비로,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강진으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특히 흑산도는 누구라도 귀양을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두려운 섬이었습니다. 남인에 대한 대비 김씨의 앙갚음이었죠. 18년간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워한 두 형제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고통스러운 유배생활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힘이 되었고 약용은 학문에 힘써 수백 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정씨 일가의 고단한 삶이 지금까지도 읽혀지는 저서로 재탄생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실학을 집대성하고 우리나라 해양생물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저서들을 집필한 형제의 도전과 교감이 부럽습니다. 이 내용이 아득하고도 신비스러운 동양화와 어우러져 더욱 깊이 있게 묘사되었습니다. 초등생이 읽으면 정말 좋을 교훈적인 책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