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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 소란과 홀로 사이
배은비 지음 / 하모니북 / 2020년 10월
평점 :

어쩌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얼마 전 퇴근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휘황찬란한 상가 불빛 위로 성큼 눈썹달이 선명하게 새겨져있었다. 화려한 야경보다 정갈하고 섬세하며 존재감이 분명한, 눈썹달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소라의 ‘눈썹달’이라는 6집 앨범이 생각나서였을까? 거기 수록된, 내가 좋아하는 ‘바람이 분다’ 라든지 ‘별’, ‘아로새기다’ 같은 곡들이 떠올라서였을까? 아니면 저 여리한 달이 까만 밤에 더 반짝이고 있어 지금의 내 모습과 오버랩이 되어서는 아니었을까?
모두가 지키고 우울해졌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실업과 폐업, 관계에서의 고립,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일상이 될 정도로 사람들은 급격한 사회의 변화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내 주변에서도 실업자 한명, 이혼 한명이 나왔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이 깊어져간다.
배은비 작가는 책의 제목과 같이 어쩌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글을 썼다고 한다. 글이 자신에게 버텨낼 힘을 준 것처럼 독자인 나에게도 그러고 싶었다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내 모습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놀랍고도 또한 평안해졌다. 엄마에게 더는 투정을 부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내 투정이 엄마 맘을 더 아프게 할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마음이 생기면 난 이렇게 책에서 위로받았다. 그녀가 읽은 책 김동영 작가의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에선 이런 말이 나온단다. ‘인생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지만 내가 그 인생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들도 배려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 아빠가 바닷가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제안할 때 피곤하다며 말을 잘라버렸던, 그래서 아빠를 외롭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기적인 사람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저자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더 가기 전에 가족, 특히 부모님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이자고. 언젠가는 지금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귀찮다고 미뤄버린 친구 R의 전화, 마지막 부재중 통화를 놓쳐버린 거짓말이나 장난 같은 상황에선 나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얼마 전 개그우먼의 사망 소식에 한동안 멍해졌다. 그녀는 내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브라운관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모습에 반가웠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너무 놀랐었다. 10년도 더 지난 이맘때쯤, 동생이 군대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수화기를 잡아 집에 전화를 건 날이 있었다. 그날 우리 집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전화를 못 받은 게 아직도 미안할 뿐이다. 신호음만 계속 가고 받는 사람이 없던 그 날을 동생은 평생 기억할 것만 같아서.
환한 낮보다는 어스름히 빛나는 밤을 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특히 4장, <사랑, 너의 무게만큼 달빛이 기울어>란 목차와 5장, <나를 위로함은 당신을 위로함이었다>가 인상적이었다. 옷깃을 여미는 추운 날씨는 이제 겨울이 왔음을 알렸다. 따뜻한 그 위로 한마디가 듣고 싶다면, 배은비 작가의 글을 읽어보시라.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될 것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