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의 탄생 - 모리나가 요우의 일러스트로 보는 건들건들 컬렉션
모리나가 요우 지음, 전종훈 옮김 / 레드리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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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의 탄생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다양한 전차의 향연이라니. 저자는 어릴 적 푹 빠져 읽었던 책 <세계 전차 도감>을 언급하며 자신의 인생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황색 책등의 색깔이며 기분 좋아 보이는 올빼미 캐릭터, 영국 마틸다 전차의 정밀한 그림들이 세세하게 기억난다는 그는 나이가 들어도 그것이 되살아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열정적이게 해준다고 고백한다. 모리나가 요우. 군사나 일러스트 분야에 문외한인 일본의 독자들도 그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물을 그리되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게 아니라 변형, 축소, 과장을 통하여 사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데포르메에 있어선 모리나가 요우를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는 평이 나있단다. 이 책을 보니 알 것 같다. 기계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그린 일러스트임은 두말할 것 없을 것 같고. 전차, 즉 탱크의 겉모양만 치중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움직이는지,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말한다. 저자의 엄청난 취재가 깔려있는 부분이다. 특히 1차대전 탱크에 대한 내용은 희귀자료인만큼 귀한 정보가 실려 있다.

 

  목차를 보니 1<전차란 과연 무엇일까?> 2<전차는 어디에서 왔는가?> 로 크게 구성되어 있다. 전차 이전의 화기 진화, 영국의 증기 장갑 트레일러를 시작으로 적탄을 튕겨내고 거친 땅을 나아가는 계보가 이어졌다. 육상전함이지만 탱크라 불린 원조 근대 전차들이 등장했고 프랑스 전차 슈네데르, 생샤몽, 괴벨의 6족 전차, 독일의 포획 전차부대 등 다양한 탱크가 나온다. 이런 전투차량의 모습을 페이지를 넘겨 빨리 보고 싶었다.

 

  책은 화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말풍선, 부수적인 보충칼럼, 수험서와 같은 밑줄을 총동원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있었다. 사진 칼럼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보빙턴의 탱크 박물관에 있는 리틀 윌리를 찍으러 저자는 영국까지 다녀왔다.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누구라도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영국제 궤도를 설계해 트리튼에서 발명한 압력판을 사용하여 만든 리틀 윌리가 마크1과 마찬가지로 오른쪽 핸들이라든지 궤도가 물고기의 배모양이라 약간 뒤로 기울어진 특징이라든지, 실물 하부를 보니 녹색으로 도장한 흔적이라든지(현재는 회색으로 전시해놓았단다) 등을 언급하며 하나하나 자세하게 다뤄주었다. 야포를 앞에 탑재한 전동전차 생샤몽도 기억에 남았다. 슈네데르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차량으로 모든 면에서 그것을 능가해야 했다. 프랑스 정식탱크인 생샤몽은 75mm 포를 사용하기 때문에 차체가 매우 길었다. 너무 튀어나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앞에 바퀴를 달았던 것 같다는 저자의 의견이 재미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균형이 맞지 않아 이상해 보인다며. 나중엔 가젤 다리를 가진 코끼리라는 평을 듣는다니 참 웃겼다.

 

  단순한 일러스트집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초창기 탱크를 개발했던 이들의 시행착오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전차 마니아들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 같다. 나도 차에 관심이 많은 동생에게 건네주어야겠다. 방공포병을 나와서 아마 알은체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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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된다는 것 -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도 새로 태어난다
스베냐 플라스푈러.플로리안 베르너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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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된다는 것

 

  이 책대로라면 난 철학적 모험을 시작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다른 육아서와 달리 이 책은 수유와 기저귀 가는 법, 이유식 방법을 설명하는 실용서가 아니었다. 독일의 젊은 철학자와 문예학자 부부가 쓴 이 책은 부모 노릇의 철학적 차원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며 온갖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시간 순서대로 기록된 만큼 1부는 <딸이 태어나다> , 2부는 <아들이 태어나다> 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은 한 쌍의 짝으로서, 서로 다투는 사람으로서, 두 아이의 부모로서 여러 질문을 좇았다. 10년 전 낳은 딸과 3년 전 낳은 아들을 보며 실존적 차원을 밝히고자 했다. “한 인간이 세상에 왔다!” 는 질문을 던지며 말이다!

 

  단지 아이를 책임지고 돌보며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것은 마치 자신의 삶을 지금까지의 차원과 다르게 바라보며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성 역할과 다르게 이 책은 엄마, 아빠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각자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온 생각과 인식을 반영했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부모가 되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그린, 그것도 딱딱한 이론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에 빗대어 유쾌하고 솔직하게 풀어낸 철학서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오랜만에 시선을 부모인 에게 돌려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해주어서.

 

  책은 엄마, 아빠가 번갈아 썼기 때문에 친절하게 남녀표시(,)를 해두었다. 목차를 보니 연민, 유연성, 주체성, 후회, 변비, 망각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각 부제 또한 눈길을 끌었다. <변비 : 출산을 변비 따위와 비교하다니!> 랄지 <연민 : 결국 나는 아내가 견뎌야 하는 고통에서 수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가 그것이다.

 

  아내 스베냐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첫아이를 출산하는 순간 아무런 연민을 느끼지 못했던 자신이 무척 당혹스러웠다는 베르너. 쇼펜하우어가 말한 연민에서 우러나온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어떤 동기든 연민이 아닌 다른 동기에서 나온 행동은 도덕적 가치가 없다.”에서 보자면 더더욱. 인생의 그 어떤 사건보다 둘을 하나로 결합시킬 사건(출산)이 일어나는 그 순간 서로는 정서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다니 아이러니한 것이다. 그러나 베르너는 이내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만큼 그의 고통은 나를 무익하다고 선언한다. 그 결과 역전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이 나 없이 괴로워하는데 내가 왜 그 대신 고통스러워야 한단 말인가? 그의 불행은 그를 내게서 아주 멀리 떼어놓는다.” . 베르너는 스베냐의 산통을 줄여줄 수 없었고 앞으로 아내의 이런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예쁜 딸아이를 안자마자 얼른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었으므로. 그래서 깨달은 건 철학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연민이라는 감정을 포기하고 아내에 대한 공감보다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더 중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의 정의라고 말이다.

 

  출산 할 당시 똥을 싸듯 힘을 주세요!” 란 말을 계속 들었다. 얼굴에만 힘을 주고 있는 내게 병원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아마도 프로이트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설 이론이 그것인데, “아이는 배설물처럼, 배변처럼 배설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아이들은 출산이 장을 거쳐 이루어지며, 따라서 아이는 똥처럼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아이와 똥을 하나로 뭉뚱그려 출산과정을 일상적인 신체작동의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이런 발상이 싫다. 출산의 고통을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다니. 베르너도 동의했다. 우리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작고 연약한 존재를 품에 안는 순간부터 부모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막연한 두려움과 낯섦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한 인간으로서의 를 마주할 수 있어 기뻤다. 부모가 된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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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의 의사가 되시고 만병의 치료자가 되시는 성령 하나님

 

  이 책은 송 글로리아 성도의 간증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던 것처럼 오직 깨끗한 그릇을 원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과 기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 무렵 신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준비하던 때였다. 그녀는 10여 년이 넘도록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이 일러주신 대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겪은 신비한 체험이나 지옥체험간증도 있었다. 3자의 입장에서 일정부분 객관적으로 읽었다. 간증은 사람의 체험이고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성경에 부합되는 것인지, 사실과 진위여부, 간증자의 행실 등을 종합하여 봐야하기에 말이다. 사도바울도 천국체험을 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도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하셨지 그 이상 천국과 지옥의 실제적인 모습을 묘사한 일은 없다. 일례로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의 저자 알렉스는 책을 출간한 지 5년 만에 그 책의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고 고백했다. 6살 때 자동차 사고를 당한 뒤 2개월 간 혼수상태에 있으며 천국을 체험했던 경험을 담고 있었다. 그는 공개서한에서 나는 죽지도 않았고 천국에도 가지 않았다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봐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성경을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유일한 진리는 성경이며, 사람이 쓴 것은 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사건이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겪었던 신비한 체험이 복음 위에 올라가 있는 자신의 신앙 실체를 목격하며 회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현재에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환상과 간증거리를 허락하심은 분명하다. 모든 체험간증이 거짓이라고 반응하는 극단적 현실주의자들도 경계해야 한다. 그것 또한 영적 교만일 것이다. 성경에는 예언의 은사나 치유의 은사를 부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다원주의적 신비주의 같은 류는 조심해야하겠다.

 

  각설하고,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의 어머니께서 소천하시는 모습을 담은 내용과 코로나 전염병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전자는 8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마지막을 묘사했다. 이 땅에서 마지막 떠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환하고 밝은 모습 그 자체였다. 너무 젊어보여서 가족들과 우리 엄마가 맞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하늘나라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이야기가 대조되었다. 그 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임종하실 때 동물 울음소리같이 울부짖으며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저자는 말한다. 인생에는 영원한 두 길이 있다고. 생명으로 가는 영원한 길과 마귀를 따라가는 멸망의 지옥. 선택은 단 한번 뿐이며 본인이 할 수 있다. 전염병 이야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법을 무너뜨리고 죄악 가운데 빠져 살게 되었기 때문에 심판하고 계심이라고 말한다. 그 죄악 중 동성애가 있다. 성경에도 소돔과 고모라성이 성적타락으로 불로 심판받아 망했던 사실을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삶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당장 주님이 다시 오실 것처럼 살아야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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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한 어느 부부의 특별한 실험
박햇님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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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혼 3년차인 나는 이 책 제목에 깊은(?) 동질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악다구니만 남은 아내의 산문집인가 싶었는데 웬걸, 추천사를 쓴 엄지혜 작가의 말대로 너무 화가 치밀어 글을 쓰기로 했다지만 그녀의 글은 더없이 따뜻하고 경쾌했다. 서평을 쓰면서 이 책처럼 많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책에 표시를 해둔 경우는 없었다. 목차를 보면서 마음이 가는 소제목부터 찾아 읽었는데, 이를테면 <우리 집에선 나도 자랑하고픈 딸이란 말이다> 랄지, <틀린 게 아니라 달라서 하는 부부싸움> 같은 것이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들어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부부싸움의 골이 깊어질 때면 나도 친정생각이 난다. 그 공간과 아직도 유지중인 내 방의 냄새, 아늑함이 막무가내로 그립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나를 로 봐주는 사람은 하나 둘씩 줄어들었다. 나조차도 역할에 얽매여 나 자체를 바라볼 여유가 적어졌으니까. 이럴 때 내가 더 잘 되었으면,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하는 오빠의 바람이 저자에겐 꽤 신선한 느낌이었나보다. 나도 무뚝뚝한 남동생이 있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툭 내뱉는 말들에 감동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친정식구들만 줄 수 있는 오롯한 느낌.

 

  오사카에 있을 때 저자의 절친 s와 만났던 에피소드도 기억난다. 서로의 흑역사를 꿸 만큼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한 번도 허물을 약점 잡아 말한 적 없는 그녀. 밑천이 없는 초라한 시절에도 아껴주고 존중해준 따뜻함이 좋았단다.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사랑이 진한 우정 같기만 해도 좋겠다>였는데, 진심을 다해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그 자세대로 부부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나도 생각해보았다. 나에게도 s같은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동창인데 우린 어른이 되어 마주한 다양한 감정소모 상황에도 서로 균형을 잡아주며 위로하는 사이였다. 친구에겐 이렇게 관대한데 왜 남편은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부부싸움을 할 때도 대다수의 갈등이 그렇듯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판단해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사소한 의견차이로 크게 싸우면서 서로를 길들이려는 행동을 할 때 난 마치 잔 다르크와 같은 저항감으로 남편에게 저항했음을 고백한다. 누가 이 결혼 생활에 더 애쓰고 있는지를 피력하며 유치한 대화를 이어나갈 때면 어느 순간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도대체 왜 싸우고 있는 거지? 라고 반문하며.

 

  저자도 연애 시절 남편에게 꽤 꿀 떨어지는 연애 편지를 받은 모양이다. 나도 종종 편지를 받았었는데 그 편지안의 자상함과 위트, 로맨틱함은 어디 가고 이 책의 표현대로 스타카토와 악센트가 버무려진 남편의 화법에 말문이 막히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건 나를 비롯해 시부모님께도 마찬가지여서 며느리로서 내가 난감할 때가 많다.) 서로 다른 남녀가 다름에 반해 결혼했다가 결혼하고 나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아이러니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은 하지만 고구마 백 개 먹은 기분이라고 하면 정확할까? 저자는 남편에 대해 쓰기 시작하자 삶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이참에 남편이 미우니 글을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시시콜콜하게 그리고 소심하게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 신나게 남편을 까긴 하지만. 울적할 때마다 혼자였던 자신을 떠올리다 어차피 이혼할 게 아니라면 상대를 보며 낙담하는 대신 탐구해보자고, 자세히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속에 담아둔 말이 적어도 내 마음을 잠식하진 않을 거란 위안이 된다.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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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데 - 소중한 이와 나누고픈 따뜻한 이야기
이창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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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데

 

  아침저녁으로 안양천을 지나가며 출퇴근을 한다. 그곳엔 수많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들꽃과 들풀이 가득하다. 스프링클러에 온 몸을 적시고 파릇파릇 자라나는 풀잎을 보면 내심 흐뭇하다. 이들을 자세히 보면 정호승 시인이 이야기하듯 상처가 있다.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해 밟기도 하고, 일부러 이파리를 뜯어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각종 곤충과 바람에 할퀴어 풀잎도 모르는 사이 숭숭 구멍이 뚫리기도 하고, 녹슨 쇠처럼 결이 거칠어지기도 한다. 우리 주변엔 이런 작은 풀잎과 같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알아채지 못할 지라도 비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위태롭게 서있는 풀잎같이.

 

  이 책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데>는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서로 공감해줄 수 있는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대의 말로, 상대의 눈빛으로, 상대의 어떠한 행동으로 상처받고 나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 저자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 노래가삿말, , 명언, 시들을 삽입했다. <로또, 생각바꾸기>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도대체 당첨이 되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힘든 자신을 좀 보살펴 준다면 나에게도 행운이 올텐데라면서 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디 한 두 분이겠냐? 네 아버지도 순서를 기다리셔야 할 거 아니야!” 이 말에 옥수수 튀어 오르듯 모두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하긴,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불평도 생각을 바꾸면 여유의 불쏘시개가 된다. <긍정적인 밥>의 함민복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라고.


  성경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경망과 근육을 타고 오면서 솜털을 빳빳하게 일으켜 세울 정도로 전율을 느끼게 한다. 도대체 누가 비판할 수 있겠는가. 우린 다른 이를 정죄하기 전에 이 말씀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부언으로는 자기를 꾸짖고 다른 이를 용서하라는 책기서인을 기억할 것. 얼마 전에 복직원 서류를 내러 온 교원이 있었다. 서류 중 등본이 필요해서 다시 학교 근처 주민센터에 나갔다 오셨는데, 교감선생님이 점심 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에 안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난 점심지도를 나가신 줄 알고 선생님께 서류 전달 해드릴 테니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5분이 지나고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변선생님 안 오셨어요?” 라고 묻자 아 방금 가셨어요. 서류는 놓고 가셨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교장님께 인사드리고 가야지~” 하면서 다시 오시라고 전화를 드리는 게 아닌가. 난 내 실수로 그 선생님을 이 더운 날 다시 학교로 돌아오시게 했고, 교장, 교감님의 점심식사는 그만큼 늦어졌다. 너무 죄송했다. 교감님은 어떤 실수나 잘못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면 이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분이었기에망정이지 아직도 세분께 죄송스럽다. 이렇듯 실수는 변명대신 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된다. 나에게 더 엄격하고 남에게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자고 다시금 다짐했다.


  이 산문집은 저자의 소중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인생의 깨달음도 담담하게 서술해놓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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