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보이 블랙홀 청소년 문고 12
리사 톰슨 지음, 김지선 옮김 / 블랙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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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보이

 

  주인공은 네이트라는 소년이다. 제목대로 네이트는 라이트 보이였는데 그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오죽하면 엄마가 그를 위해 엄마 식의 야간등을 만들어 주었을까? 그건 빛 유리병이었는데 작은 유리병에 실 조명을 넣어둔 것이다. 네이트는 그 유리병을 정말 좋아했다. 책 표지에도 네이트와 그 유리병이 그려졌는데, 난 처음에 반딧불이 인줄 알았다. 유리병은 방 안에 아늑한 빛을 드리웠지만 새아빠 게리는 그것 때문에 복도에 빛이 새어나오는 걸 못견뎌했다. “난 완전히 어둡지 않으면 잠을 못자니까 이건 여기 둘 수 없어.” 다음 날 아침 유리병이 산산조각이 난 채 부엌 쓰레기통에 들어 있는 걸 알고 난 후 네이트는 조심히 그것을 꺼내 유리 조각을 털어낸 뒤 실조명을 매트리스 밑에 숨겨 두었다.

 

  네이트는 별안간 엄마와 집을 도망치듯 떠났다. 여행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어디 가요, 엄마?” “작은 별장에 갈 건데, 할머니 옛날 친구 분이 거기 주인이야.” 사실 새아빠 게리를 피해 온 것이었다. “우린 이제 안전하단다. 내 아들, 여기 있으면 그 사람은 우릴 찾지 못해.” 이 책이 이혼, 가정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어둡게만 몰고 가지 않았다. 네이트가 숲속 별장에 홀로 남겨지면서 벌어지는 성장 생존기가 흥미롭게 그려져있다. 엄마는 먹을 것을 찾아나선 뒤 연락이 되지 않았고 버려진 별장에서 소년 네이트는 상상 속의 친구 샘과 또 다른 정체불명의 소녀 키티를 만났다. 샘이 게리가 처음부터 무서웠어?” 라고 질문하자 네이트는 아홉 살 때 세계사의 날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린다. 그날 네이트는 역사 속 인물처럼 분장하고 등교해야 했다. 친구 아멜리아 워렐은 클레오파트라로, 데이비드 플레처는 헨리 8세가 되겠다고 했는데, 네이트는 엄마와 함께 꼬마 선장으로 변신했다. 그 모습을 본 게리는 코웃음을 치며 이런 바보 꼴로 딴 애들한테 놀림 받고 싶진 않을텐데?” 라며 비꼬았다. 이 대목을 본 순간 정말 화가 났다. 엄마도 네이트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키티는 네이트가 별장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에 만난 또래 소녀였다. 이곳 별장에 와있다고 말하자 키티는 여긴 개인사유지라서 넌 여기 있으면 안돼.” 라고 받아쳤다. 네이트는 알겠다고 대꾸하며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하자 잠깐 기다려, 넌 나한테 뭐 하고 있었냐고 묻지도 않니?” 라고 말하는 키티. 윌리엄 할아버지가 아빠 제임스와 고모 실럿을 위해 보물찾기를 하나씩 만들고 마지막 실마리에 특별한 선물을 놔뒀는데 키티는 아빠와 고모가 찾지 못한 보물찾기의 실마리를 풀려고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네이트와 함께 찾자고 제안하기에 그는 그런 걸 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지만 어느새 키티와 친구가 되어 함께 숲을 걷게 되었다.

 

  네이트는 수수께끼 소녀 키티에게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아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샘은 네이트 옆에서 용기를 주는 친구였다. 그들과 성장해간 네이트는 수호천사와 같은 친구들 덕분에 힘든 현실을 이겨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묵혀둔 비밀같은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었다. 게리를 피해 온 새로운 공간 숲에서 일어난 일들과 여기서 만난 상상 속 친구는 네이트를 훌쩍 크게 만들었다.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궁금증을 자아내며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베스트셀러 골드피쉬 보이의 저자 리사 톰슨의 작품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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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한 문장의 위로
유영만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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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고 파란색으로 써진 문장인줄 알았는데 그 뜻이 아니었다. 마음의 파란을 일으킨 한 문장 한 문장이 엽서에 담겨 있었다. 파란만장의 파란이다. 작가인 유영만님은 이 문장이 머리로 쓴 게 아니라 몸으로 남기는 얼룩이자 무늬라고 했다. 독자들에게 삶의 파란을 일으키는 선순환이 반복되기를 기대한다며 응원했다.

 

  자신의 소개 글에 새로운 지식을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잉태하고 출산하는 지식산부인과 의사라는 표현이 신선하고 유쾌했다. 붓글씨로 쓴 문장 글씨체와 내용들을 보니 작가의 성품이 엿보인다. <한계는 한 게 없는 사람의 핑계다!> 랄지, <완벽한 를 기다리다 몸에 만 낀다!>, <어휘가 없으면 어이도 없다!> 같은 문장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단호한 느낌이 든다. 글씨에 힘이 느껴지는 궁서체라 활개가 넘친다.

 

  마음에 와닿는 한마디를 소개하면 이렇다.

<마음이 닫히면 마음도 다친다.>

관심은 관계를 유지하는 접착제이자 각성제이며, 사람은 관심 없이 자랄 수 없는 관계의 동물이다. 마음이 닫힌다면 이 관심에서 의도적으로 멀어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시쳇말로 자발적 아싸라고 부르는 아웃사이더가 생각났다. 대학생과 취준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어떤 결과에 2명 중 1명꼴로 자발적 아싸가 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하니 사람들은 스스로 혼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상처받기 두려워서, 감정노동에 신물이 나서 같은 이유가 있겠지만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가 <공부하는 삶>에서 지성인은 개인주의의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고독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고립은 우리를 무기력하고 메마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했듯이 결국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므로 마음을 닫아 고립되어선 안 된다.

 

<‘안다안는다는 의미다. 알아야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누군가를 잘 안다고 이야기할 때 정말 아는 것인지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맥락 속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를 안고 싶다면 잘 알기 위해 노력하자. 그러기 위해선 살피고 들여다보고 배려해야 한다. 내가 그를 제대로, 잘 안다면 기꺼이, 충분히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엽서집을 서평으로 써보긴 처음이지만, 이 문장들의 모음 또한 어록과도 같고, 책과 같기에 별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연말이다. 한 페이지씩 누군가에게 대신 하고픈 말을 골라 뒷면에 안부 인사를 곁들여 띄우고 싶다. 한 해 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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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도 버거운 당신에게 - 심리 상담가가 들려주는 자존감 회복 수업
베라.제이 지음, 김미선 옮김 / 넥서스BOOKS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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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했다. 저자의 일방적인 위로, 이론이 나열되어 있지 않고 상대방과 대화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책은 베라라는 심리상담가가 자기계발서 작가로 활동하는 친구 제이와 이야기한 내용을 담았다. 졸업 후 소식이 끊겼던 초등학교 단짝인 제이. 수년 만에 받은 연락으로 반가운 마음에 만사를 제쳐두고 한걸음에 달려가 그를 만났다. 제이는 자신을 마음의 치료사라 명명했다. 베라가 사람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면 제이는 그것이 아니라 마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고. 그러면서 자기계발에 대한 잡다한 이론이나 일반적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베라도 심리치료에 대화요법이라는 것이 있어 그의 말에 흥미를 가졌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어떻게 마음의 문제를 낫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그래서 바로 그날부터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반에 카페에서 만나 그에게 마음 치료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이 책 <위로도 버거운 당신에게>는 총 6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세상, 인정,미래,자신,행복,의존이라는 소재에 관해 다뤘다. 첫 번째 토요일 밤에 만나 세상에 관하여 나눈 이야기는 타인은 지옥인가?’ 라는 주제였다. 이 말은 사르트르가 한 말이었는데, 제이는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 직전 한 쌍의 부부가 아주 어렵게 구명정 앞에 도달했는데 안타깝게도 두 명이 아닌 한명만 태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남편은 아내를 포옹한 후 잽싸게 구명정 위로 올라타 버렸다. “아내는 뭐라고 소리쳤을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하면 틀림없이 배신자 남편을 욕했겠지.” “글쎄, 뭐라고 했는데?”

남편은 혼자 돌아가 홀로 딸을 키우고,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딸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그의 일기를 발견했다. 거기엔 아버지가 그날 혼자서 구명정으로 뛰어들었을 때의 상황이 써있었다.‘다시 되돌아가서 당신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싶단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오. 당신의 마지막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 나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오...’ 마지막 한 마디는 바로 여보, 우리 딸을 잘 돌봐 줘요.” 였다.

 

  제이는 입을 열며 이건 단순히 감동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 반만 맞춘 거야.” 라며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리석은 나귀> 라든지, <나희 효과>같은 내용부터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둘의 대화는 마치 내가 곁에서 함께 듣고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고, 어릴 적 책을 읽던 방식처럼(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듯) 포근하고 따뜻했다. 덤으로 얻는 위로와 교훈은 삶의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심리우화 라는 소재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니 새로웠다. 위로보다 역시 이야기의 힘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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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원받은 줄 알았습니다 - 셀프 구원인가, 진짜 구원인가?
박한수 지음 / 두란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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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원받은 줄 알았습니다

 

  책을 읽고 제목 그대로 나도 착각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는? 바울의 신앙은 확실하나 긴장감이 감돌고 기쁨이 넘치나 두려움이 감도는 신앙이었다. 모태신앙이라고, 세례를 받았다고, 지금도 꾸준히 교회에 출석한다고 다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안전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늘 나를 붙으시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나를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언제든지 믿음을 배반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느꼈다.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죄의 길을 걸어간다면 그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삶이 바뀌어야 한다. 옛날처럼 성질 부리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지 못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들, 즉 거듭난 사람들은 그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 증거다. 배려심 없고 이기적이고 비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상처 주는 그 사람도 내가 용서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며 사랑하게 된다. 나의 노력과 의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힘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 있다. 내 삶에서 나는 죽고 예수님만 살아있게 된다. 그 구원의 감격으로 가장 감사드릴 수 있는 표현은 바로 예배이다. 그 예배당에서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이 종종 선포되고 있다. 잘못된 복음인 것이다. 내세에 있을 천국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현세에 있을 복에 초점을 맞춘다. 거짓 구원이다. 말세지말에 판을 치는 거짓선지자들을 구별하는 방법이 6가지로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는 빼고 사랑만 강조한다. 천국만 강조하고 지옥은 침묵한다. 죄의 심각성, 회개의 필요성, 성결한 생활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마지막으로 안일한 구원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인에 대해 어떤 교훈도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기 점검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해 위로할 뿐이다. 나도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 자기만족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이다.

 

  책은 각 챕터별로 마지막 장에 <솔직한 질문과 활발한 나눔>을 위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주로 질문형으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 봅시다. 당신이 넘어지기 쉬운 것은 무엇입니까? 와 같은 질문이 그것이다.

 

  목사이신 저자는 목회 대상이 세상의 불신자라기보다 교회 안의 불신자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교회는 죄인들의 집합소이며 구원받은 줄 알고 교회 생활을 하는, 알곡이라 착각하는 가라지가 너무 많다. 나도 삶에 실재하는 구원의 열매를 맺으며 성화되는 과정을 평생토록 훈련하며 진행중인 구원을 놓치지 않고 주님께 붙들려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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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상처도 꽃잎이야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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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상처도 꽃잎이야

 

  이정하님의 시집이 나왔다. 제목의 전제는 당신을 사랑하는 한, 포기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고 있는 한.’ 상처받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다. 그 상처마저 꽃잎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인의 사랑이야기를 들어보자.


  시집은 4장으로 이뤄졌다. 시 중간 중간 흑백의 사진을 끼워 넣은 채.

1_길이 되어 당신께로_속절없이 지더라도 행복했다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으로

2_그 소년은 어디 갔을까_그때의 나는 어디 가 있을까 그때의 푸른 꿈은 또 어디에

3_만나면 헤어지고_내 몸을 전부 태울 만큼 센 화력으로 그의 마음을 데웠는가?

4_여명_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시인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숲에 너무 깊이 빠졌다고 표현했다. 들어가긴 했는데 나올 길을 찾지 못했다고. 한평생 헤매 다닐 것만 같다고. 길이 나지 않은 숲을 서성이는 모습이 헨젤과 그레텔의 그들처럼 애처롭지만은 않은 까닭은 그 숲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리라. 혹여 길을 잃더라도 괜찮다고.

 

  2장에 수록된 시 나는 강도다에서는 이 시집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이 단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87세의 엄마에게, 잘 나간 한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늘 돈에 곤궁한 막내아들이 딱하고 아픈 손가락이다. ‘한평생 내어주고도 얼마나 더 내어주시렵니까라고 묻는 시인은 당신의 강도다.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시집 간 딸이 시집가기 전부터 입은 허리까지밖에 안 내려온 숏패딩을 여전히 입고 다니자 당장 홈쇼핑에서 159천 원짜리 퓨* 브랜드 롱패딩을 결제해버렸단다. 9개월 할부로. 난 시집가도 여전히 우리 엄마의 걱정만 안겨드리는 못난 딸이다. 사드리려면 내가 사드려야지 날강도가 따로 없다.

 

  3장에서는 화목난로가 가장 인상 깊었다.

너는, 네 몸을 전부 태울 만큼 센 화력으로

그의 마음을 데웠는가?

 

고작 장작 몇 개만으로

깔짝깔짝대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혹시나, 잠깐 불이나 쬐려고 다가온 그에게

너 혼자 그의 마음을 데우려고 애쓴 것은 아닌가?

 

  스쳐지나간 그들이 생각난다. 대학교 2학년 때 교양수업으로 음악의 이해를 들었는데 그때 조별 발표를 같이 준비했던 공대3학년 오빠가 꽤 멋있었다. 섣불리 다가가 내 마음을 표현했던 게 아쉽다. 좀 더 지켜볼걸. 다가오길 기다릴걸. 충분히 시간을 가졌더라면 그가 먼저 내게 마음을 이야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스물한 살 나의 뜨거움으로 그는 손을 데었다. 움찔 놀란 그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사랑과 이별만큼 흔한 소재도 없다지만 이것 빼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 그래서 이것은 시간이 지나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단골소재인가보다. 어느 사랑이야기, 이별이야기를 들어도 나에게 대입할 수 있는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정하님의 시집은 그래서 더 실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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